우리는 항상 어떤 성과를 쌓아야만 우리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 사실은 특히 성과를 더 낼 수 없을 때 분명해진다.

우리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이익이 될 때만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다... 혹 몸이 아파도 병을 받아들이면 의미가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서 가치가 생겨난다. 우리는 병으로 제한된 삶을 통해서 다른 가치, 사랑의 무한한 가치를 증명한다...

몸(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은 그 약함으로 누구보다 훌륭한 인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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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9-11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연약함과 상함을 내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좋아해요..

겨울호랑이 2017-09-12 06:45   좋아요 2 | URL
모든 것을 초월한 이보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가 더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네요..‘상처받은 치유자‘ 멋진 표현입니다^^:

오거서 2017-09-12 0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짧은 페이퍼에서도 감동을 얻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입니다. 농담입니다만, 제 입장에는 읽기 너무 편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12 08:56   좋아요 2 | URL
^^: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글 자체가 좋아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상쾌한 가을입니다. 오거서님 하루 즐겁게 시작하세요^^:

페크pek0501 2017-09-13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미녀는 자신이 미녀임을 알아서 추하고 추녀는 자신이 추녀임을 알아서 아름답다는 것. ㅋ

겨울호랑이 2017-09-13 21:1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pek0501님 말씀처럼 정말 모든 일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 삶은 드러난 의미보다는 ‘숨겨진 뜻‘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2017-09-1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6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기독교 역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한 저 위대한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지도자들에게는 종교적 구원의 감정이라는 현상이, 모든 것은 오직 한 객관적 힘의 전유적(專有的)인 작용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지 절대 그 자신의 가치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의식과 결부되어 있었다. 죄의식에 의해 초래되는 무시무시한 정신적 긴장감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희열에 찬 확신과 그것이 주는 강렬한 감정이 돌연히 그들의 마음에 밀려와, 이 엄청난 은총의 선물은 그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협력한 덕택이라든가 자신의 신앙과 의지의 공로나 특성과 결부될 수 있다는 표상의 모든 가능성을 근절해버린 듯하다'(p178)... 신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위해 있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오직 신의 위엄의 찬미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p181)'


리 알려진 바와 같이,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 ~ 1920)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禁欲)주의 정신을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으로 인식했다. 거칠게 표현해서 프로테스탄티즘의 결과로 자본의 축적이 가능했다면, 당대의 사람들이 금욕으로 인해 억압된 욕구 배출구는 무엇이었을까? 기독교에서 사순기간 직전의 사육제(謝肉祭, carnival)이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였다면, 음악에서는 교회 칸타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1. 교회 칸타타


'모든 예술에는 서로 대립되면서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가는 두 개의 주요한 경향이 있습니다. 첫번째 경향은 대칭에 대한 욕구입니다. 재료를 깎아내고 수정하고, 윤곽을 단순화하고, 명백한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경향 말이에요... 이 경향이 과열된 탓에 또다른 경향이 나옵니다. 생기 없고 단조로운 규칙성에 권태를 느끼고 기하학을 박차고 나온 거죠. 이제 예술은 자연물의 유려함, 식물의 풍부함과 무성함을 모방하려 합니다. 바로크(baroque)인 기발함을 좃게 된 거에요.(p288)'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가 재능을 꽃피운 프로테스탄트 사회는 이미지를 배척했죠. 이탈리아의 신앙이 자기만족을 얻곤 했던 극적이고 시각적인 화려함이나 이교도 신앙에서 차용한 요소들을 모두 거부했어요. 독일 종교개혁이 그 모든 이미지의 세계를 억압하고 금지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어떤 배출구가 절박하게 필요해졌습니다... 어떤 형상을 만들고 싶은 흥취가 사방으로 갇혀버린 판국에 음악만이 유일한 피난처이자 분출구가 되었던 겁니다. 음악과 시, 연극, 회화의 결탁은 낭만주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싹은 이미 바흐의 훌륭한 칸타타들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습니다.(p290)'



 '나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 바흐의 칸타타 제150번을 골라보았습니다. "주여, 제가 당신께 간구하나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요. 이 독주들과 합주들을 들어봐요. 특히 경이로운 피날레의 샤콘에서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기악 작곡법을 성악에서 응용하죠. 이탈리아 아리아의 구조들과 슬슬 비슷해지기 시작하는 선율들도 주의깊게 들어봅시다(p292).'


2. 대칭성(Symmetry)과 이(理)


'애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 ~ 1849)가 그랬죠. "탁월한 아름다움에는 항상 묘하게 조화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조화에서 벗어나는 기묘함, 그게 바로 바로크의 기원입니다.(p287)'


 <음악의 기쁨>에서 언급된 조화의 아름다움 중 하나인 대칭성은 다음과 같이 '합동성'과 '주기성' 그리고 이들의 배열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에서 대칭성의 표현은 주제음과 이들의 '반복'된 형태로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형태로 구현된다.


 '대칭성을 보인 수많은 다양한 대상들이 가진 공통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합동성과 주기성의 개념부터 이해해야한다. 대부분의 대칭적 대상은 어떤 형태로든 이런 성질이 있으며 이런 성질이 빠지면 대칭성이 축소되거나 사라진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대칭성은 직선을 따라 규칙적으로 형태를 반복해 배치하거나, 어레이(array) 형태로 무늬를 연장하는 것이다. 이론상 이러한 종류의 단순한 배열은 분명 무한히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요소와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만 대칭성을 가지게 된다.(p8)'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자연(自然) 상태에서 이러한 대칭성이 완벽하게 구현되기는 어렵다. 이상(理想)적인 대칭성은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보다 복잡한 모습의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은 발생한다. 음악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변주곡(變奏曲, Variation)은 '대칭적 아름다움의 현실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용암이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균일한 물질이었다면 그물망이 아니라 정육각형 패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하학적 이상 상태는 여기서도 그렇고 자연의 어느 곳에서도 실현되기 아주 힘들다... 사실 이러한 복잡한 모습이야말로 '이(理)'의 징표다. 완벽하게 질서 정연한 배열은 순수 대칭의 영역에 속한다.(p40)



3. 깊이 읽기 : 칸타타(Cantata)


'17세기 초엽에서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 시대에 가장 성행했던 성악곡의 형식. 이탈리어어의 cantare(노래하다)에서 파샌된 말이다. 보통 독창(아리아와 레치타티보)-중창-합창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독창만의 칸타타도 있고 또 처음의 기악의 서곡이 붙어 있는 것도 적지않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교체되는 독창 칸타타를 길러낸 독일은 18세기에 들어 그리스도교의 교회음악으로서 독일 특유의 칸타타를 발전시켰다. 그것들은 17세기 이래의 교회합창곡과 오페라풍의 아리아, 레치타티보를 융합한 것으로 가사로는 자유로운 종교시에 성서의 구절이나 찬송가(코럴 coral)을 곁들인 것들이 많다... 독일 교회 칸타타의 절정을 이룬 것은 약 200곡에 이르는 바흐의 작품들이다. 형식과 내용의 다양성에 있어서 그것들은 바흐음악의 정수라고 부를 만하다. 바흐 칸타타의 가장 전형적인 형식은 처음에 기악의 서주를 지닌 규모가 큰 대위법적인 합창곡을 두고 거기에 몇 개의 아리아- 레치타티보-중창이 이어지며 단순한 코럴합창단이 전곡(全曲)을 맺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타타의 전성기는 바흐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해도 무방하다.'


 '불협화음'으로 대표되는 바로크 음악의 특성은 변주와는 다른 뜻을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세 스콜라(Schola)철학과 로마네스크(Romanesque)-고딕(Gothic)양식으로 대표되는 신(神)의 절대질서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 바로크 음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칭성의 파괴라고는 하지만 불협화음 수준을 넘지 않는 '수학적 절대성'이 적용된 음악이었음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오늘 아침 안개가 심하네요. 안개가 심한 것을 보면 오늘은 날이 더울 것 같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건강한 토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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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9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9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9 2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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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9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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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9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9-09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칭성이 없는 것 같은데 카오스 이론은 프랙탈의 반복성을 발견한 걸 보면 또 놀랍죠.
변주와 불협 속에도 대칭의 미는 있지요. 인간의 습성상. 자연의 본질적인 방향성 같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제 모자람이 한탄스럽움요ㅜㅜ
이런 걸 발견하고 조립해내는 어떤 인간은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겨울호랑이 2017-09-10 08:40   좋아요 1 | URL
^^: 각자 자신만의 장점과 특기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걸 발견하고 조립하는 사람은 ‘1일 1그림‘을 그릴 능력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ㅋㅋ 그나저나 한탄스러움은 제 몫인듯 하네요..ㅜㅜ

yamoo 2017-09-16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9-16 19:01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yamoo님 몸은 괜찮으신지요? 이사도 잘 하시고 정리되시는 날 yamoo님의 멋진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항우는 어렸을 때 글을 배웠으나 다 마치지 못한 채 포기하고 검술을 배웠다. 이 또한 다 마치지 못했다. 항량이 노하자 항우는 말했다. "글은 이름과 성을 기록하는 것으로 족할 따름입니다. 검 또한 한 사람만을 대적할 뿐이니 깊이 배울만 하지 못합니다. 만인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 항량이 병법을 가르치자 항우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대략 그 뜻만 알고는 또한 끝까지 배우려 하지는 않았다.'<사기본기 史記 本記 >(항우項羽 p317) 


 마지막 문장은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93)이 항우의 인물됨을 비판하기 위해 넣은 문장일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항량이 항우가 원하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만약, 항우가 만인(萬人)이라는 모호한 표현 대신 보다 구체적인 수치을 제시해서 뜻을 명확히 했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수학(數學)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여 통해 우리로 하여금 양(量)을 가늠케 한다. 이러한 수학의 위상은 서구 문명에서 더욱 크다.


 '수학은 방법, 예술, 그리고 언어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철학자, 논리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 그리고 정치가와 신학자들의 교리에 영향을 주는 내용, 천체를 조사하는 사람들과 음악의 달콤함에 대하여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내용, 그리고 비록 때로는 잘 지각되지는 않지만 현대 역사의 과정을 형성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지식의 총체이다.'(p24)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는 모리스 클라인(Morris Kline) 교수가 저술한 수학이 서구 문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책이다. 음악, 미술, 물리, 경제 등 여러 분야와 수학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그러나 어렵지 않게 서술하고 있다.  수학이 서구 문명에서 다른 분야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이번 페이퍼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미술 안의 수학 : 원근법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에서는 미술의 원근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주 소멸점'이라고 불리는 한 점을 통해서 그림 감상자는 수직으로 그림과 만나게 되고, 주 소멸점을 중심으로 지평선이 뻗어가면서 구도를 잡게 된다. 또한, '주 소멸점'과 '대각선 소멸점' 사이의 관계 사이에도 원칙이 있는데, '등거리'와 '평행'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러한 원칙하에서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원근법을 통한 그림의 전체 구도가 잡히게 된다. 


[그림] 원근법


 '원근법의 수학적 주요 정리 또는 규칙은 무엇인가? 캔버스가 수직으로 놓여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눈에서 캔버스까지의 수직면은 주소멸점이라고 불리는 한 점에서 캔버스와 만난다. 주 소멸점을 통과하는 수평으로 된 선을 지평선이라 불린다. 그림에서 점P가 주 소멸점이며 선D2-P-D1이 지평선이 된다 ... 첫 번째로 핵심적인 정리는 그림 속에 있는 캔버스의 평면과 수직인 모든 지평선들은 주 소멸점과 만나도록 캔버스 위에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AA', EE', DD'와 다른 선들이 P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두 번째 정리는 AB'와 EK와 같은 선들은 실지 장면에서는 평행이며 캔버스의 면과는 45도의 각도로 점 D와 만나게 되는데, 이를 대각선 소멸점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거리 PD2는 거리 OP와의 거리, 즉 눈에서 주 소멸점까지의 거리와 같아야 한다... 세번째 정리는 캔버스 평면과 평행하는 장면의 평행 수평선들은 수평이면서 평행하게 그려야 하며 수직 평행선들은 수직이며 평행하게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p199)


[사진] 최후의 만찬( 출처 : https://brunch.co.kr/@bookfit/907)


 주 소멸점이 눈에서 캔버스까지의 수직면이라는 정의를 생각해본다면 대표적인 원근법 적용 작품으로 알고 있는 <최후의 만찬>을 우리는 현장에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아래에서부터 올려다 보는 관점은 원근법의 수학적 원칙을 위반한 감상관점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2. 음악 안의 수학 : 푸리에 변환

 

'장 바티스트 조제프 푸리에 남작(jean Baptiste Joseph, Baron de Fourier, 1768 ~ 1830)은 물체를 가열했을 때의 열의 전달 방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열이 퍼져 나가는 상태도 파동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푸리에가 관찰한 파동은 매우 복잡했지만 주기를 갖고 있었다. 즉, 같은 형태의 파동이 거듭하여 나타나는 것이었다.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주기를 가진 파동은, 아무리 복잡한 것이라도 단순한 파동이 결합해 이루어진다.'<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p24)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은 푸리에 법칙에 대해 그림과 함께 설명했기 때문에 푸리에 급수에 대해 보다 이해를 쉽게 한다. 주기를 가진 파동은 단순한 파동의 결합이라는 푸리에 법칙이 음악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순수 수학의 정리라고 말하기에는 푸리에의 공헌이 너무나 단순한 것처럼 보인다. 그 정리에 따르면, 주기적인 음을 나타내는 공식은 a sin bx 형식에서 단순한 sin 항들의 총합이다. 게다가 a sin bx의 형태로 나타난 간단한 사인 항들의 빈도는 두 배, 세 배처럼 가장 낮은 것의 정수 곱으로 나타난다.(p413)... 그렇다면 푸리에의 정리는 물리학적으로 어떠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가? 수학적 언어로 보면, 이 정리는 어떤 음향의 공식이든 모두  a sin bx의 형태로 된 항들의 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항들은 각각 적절한 진동과 진폭을 지닌 소리굽쇠의 소리와 마찬가지로 단순 음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정리에 따르면 아무리 복잡한 음향이라도 모든 음향은 소리굽쇠가 내는 소리인 단순 음향들의 결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p414)


[그림] 악기와 푸리에 변환(출처 : http://fluorf.net/lectures/lectures3_2.htm)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음(音)은 옥타브(octave : 주파수가 두 배 차이 나는 두 음 사이의 음정)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는 음을 sin과 cos함수로 분석할 수 있으며, 이는 음악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음악과 AI(artificial intelligence)이 결합할 경우 '예술적 영감(靈感)'없이도 작곡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음사이의 수학적 관계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2 ? ~ BC 497 ?)가 최초로 제시하였으며,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에 의해 동일하게 조율된 음계가 제기된 이후 서양의 기본 음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피타고라스의 발견에 따르면, 가장 듣기 좋은 코드, 즉 화음은 그 진동수가 단순 정수들의 비율이 되는 소리들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장음 3도는 그 진동수의 비가 4대 5인 한 쌍의 음, 즉 음정이 된다. 4도는 그 진동수가 3 대 4인 음정이며, 5도는 2 대 3인 음정이다. 이들 화음이 우리 귀에 즐겁게 들리는 것은 화음의 고저 사이에 이와 같은 산술 관계를 인식하는 것으로 잘 설명된다... 각 음의 진동수가 고정되어 있는 피아노와 같은 악기들로부터 무한한  또는 아주 넓은 범위의 진동수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일하게 조율한 음계를 구성함으로써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였다. 바흐와 그의 아들 카를 필립 에마누엘이 이 음계를 주창하였으며, 이후 서구 문명은 이를 영구히 채택하기에 이른다.'(p420)


 동일하게 조율된 음계(평균율 平均律, Equal temperament)는 완전한 협화를 포기하고 모든 음의 간격을 동일하게 만든 음계를 말한다. 이러한 평균율을 사용하여 만든 대표적인 곡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Well-Tempered Clavier)>다.



 '동일하게 조율된 음계에는 12개의 음이 있다. C에서 한 옥타브 높은 C'까지는 12개의 음정이 있게 된다. 11개의 중간 음들의 진동은 고정되어 있으며 각 음들은 앞선 음과 일정한 비율을 가진다. C에서 C' 사이에 12개의 음정이 있고, 이 두 음의 진동 비율은 2이기 때문에 연속한 음들의 진동 비율은 (1.0594의 12승 = 2) 1.0594이다. 그러므로 반음으로 불리는 동일하게 조율된 음계에서 각 음정은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어떤 음이든 작곡할 때 조로 사용될 수 있다.'(p420)


  20세기에 들어 12음계를 사용한 기법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 ~ 1951)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12음계의 수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음악의 패턴들, 특히 음의 높낮이와 리듬은 수학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었고, 그중 일부는 대수적 논리로 다룰 수 있었다. 특히 12개의 똑같은 평균율의 음표체계는 자연스럽게 모듈러 연산을 이용하여 모형화되었고, 이는 조합론 명제들과 함께 20세기 음악이론에 사용되었다.(p439)...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12음계 작곡 기법은 1920년대 시작되었는데, 12음계 음악에서는 12음계를 똑같은 중요성을 가진다고 가정한다. 특히 장조나 단조에서 으뜸음처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단음이 없다. 12음계 곡의 기본 요소는 음렬(tone row)로 반음계의 12음의 어떤 치환에 의해 주어진 수열이다. 일단 음렬이 선택되면, 네 가지 유형의 변환, 즉 조옮김, 전위, 역행, 역행, 역행전위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 음악의 조옮김은 수학에서 평행이동에 해당한다.'<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2(p445)

3. 경제 속의 수학 : 상관관계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과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 ~ 1665)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분면과 방정식을 결합시키는 아이디어를 고안한다. 이는 기하학과 대수학이 결합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이 아이디어는  '일대일대응 一對一對應'에 기반한 수학적 사고다. 


 '데카르트와 페르마가 행한 아이디어의 핵심은 명백하다. 각 곡선에는 다른 점이 아닌, 그 곡선의 점만을 유일하게 나타내는 하나의 등식이 존재한다. 역으로 x, y와 관련된 각 등식은 x와 y를 점의 좌표로 해석함으로써 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다. 공식화 하여 말하면, 어떤 곡석은 등신은 다른 점들의 좌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곡선상의 모든 점들의 좌표에 의하여 만족되는 대수식과 동일하다. 이제 등식과 곡선의 관련이 바로 새로운 사고의 핵심이다. 대수의 최선과 기하학의 최선을 결합함으로써, 데카르트와 페르마는 기하학적 도형을 연구하는 새롭고, 엄청나게 가치있는 방법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p244)


 '일대일대응 一對一對應'의 관계가 유지되는 자연법칙과는 달리 사회과학 속에서는  '일대다대응 一對多對應'의 관계가 성립되어 일반적인 공식을 유도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 수학적으로 '상관관계(Correlation Analysis)'를 분석하게 된다. 그리고, 상관관계 분석은 폭넓은 자료의 활용을 가능케하여 사회과학 발전에 이바지한다. 


 '골턴(Francis Galton, 1822 ~ 1911)은 상관관계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두 변수간의 상관관계는 둘 사이의 관계를 측정한 것이다. 이 측정치, 혹은 수치는 -1에서 +1까지의 값을 갖는 특별히 고안된 상관계수를 말한다. 1의 상관이 있으면 이것은 정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1의 상관이 있다는 말은 한 변수가 정확히 다른 변수가 변화하는 것과 반대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p490)... 상관관계라는 개념은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가령, 미국의 산업 생산 수준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산업 생산과 주식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수량 사이에 높은 상관 관계가 있다면, 그 중에서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 즉 주식의 수량을 이용할 수 있다.'(p491)


4. 물리 속의 수학 : 상대성 이론


 현대 물리학은 수학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은  그의 '상대성 이론 (theory of relativity)'을 적절한 함수의 선택을 통해 훌륭하게 증명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행성의 위치는 네 개의 좌표를 사용함으로써 구체화된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네 개의 좌표 중 세 개는 공간 속의 위치에 해당하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위치를 사건이 점유하게 되는 시간을 뜻한다. 연속적인 위치는 4차원 수학적 세계의 곡선상에 놓여 있다. 아인슈타인이 각 행성의 "경로"가 그 결과로 형성된 기하학에서 최단 거리를 나타내는 선이 되도록 공간-시간차에 대한 공식을 선택했다는 데에 그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p607)


 '산맥 속에 있는 산들의 형태 차이가 지구 표면상의 최단 거리를 나타내는 선을 다양하게 만들어내듯이, 공간-시간 간격에 대한 공식 속에 적절한 함수를 선택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세계의 질량의 존재가 그 질량 주변의 공간-시간과 최단 거리를 나타내는 선의 성격을 결정하도록 자신의 공간-시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구 표면 근처의 물체들은 이 지역의 공간-시간의 최단 거리를 나타내는 선을 따르는 것뿐이므로, 그 경로를 설명하는 데에 만유인력 같은 것은 전혀 필요 없게 된다.'(p608)

 

<상대성 이론>에서 각 행성의 경로가 최단 거리를 나타낸다는 선이 되도록 아인슈타인이 설명했으나, 현대 양자 이론에서는 행성의 경로(빛의 경로)가 확률적으로 결정됨을 설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 ~ 1988)의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강의>를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에는 수학이 서구 문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쉽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영문 제목과 다른 제목 번역은 책 내용과는 다소 떨어진 느낌이 들어 아쉽다. 또한, 수학자인 저자의 한계일까. 수학이 발달하지 못한 로마 문명은 창조적인 문명이 아니라 빌려온 문명이라는 저자의 비판은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경영과 관리 및 정복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아름다운 아치 밑을 통과하는 군대의 개선 행진으로만 상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둔감한 사람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로마인들은 실용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이들은 진정으로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것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 로마 문화는 빌려온 것들이다. 로마의 통치 시기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업적들은 모두 로마의 정치적 지배를 받고 있던 소아시아의 그리스인들이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p28)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속에서 우리는 수학이 서구 문명의 근원이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서구 문명에 대한 수학의 이러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추상화를 통한 관념(觀念)화와 동떨어진 이론화는 우리가 경계해야할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를 읽으며 떠오른 우화하나를 옮겨본다. 


'수학의 추상적 정리들과 그것들을 적용하는 것과의 관련에 대하여 또 다른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추상적 정리들은 이상적인 경우를 진술하는 것인 반면에, 그것이 적용되는 물질적 상황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p84)


'어떤 사람이 황금 알을 낳는 예쁜 암탉 한 마리를 갖고 있었다. 그는 암탉의 몸속에 금덩이가 들어있는 줄 알고 암탉을 죽였다. 그러나 그 암탉은 여느 암탉과 똑같았다. 그는 단번에 부자가 되려다가 가지고 있던 작은 이익마저 잃고 말았다.'<이솝 우화> 황금알을 낳는 암탉 (p313)


 원래 위의 우화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를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달걀을 낳는 닭도, 황금을 낳는 닭도 결국 같은 닭이었던 것처럼 음악, 미술등의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서구 문명에서의 여러 분야가 '수학'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수렴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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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5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5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인슈타인이 대학생이었을 때 교수랑 친하지 않아서 수학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고 해요. 그래서 수포자가 되어 물리학 공부에 전념했어요. 수학 성적 때문에 졸업을 못했어요. 상대성 원리에 수학의 원리가 들어있는 걸 보면 아인슈타인은 ‘게으른 천재’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05 18:3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수학을 그렇게 싫어하고 못했던 사람이 수학으로 자신 사상의 체계를 설명한 것을 보면 수학이 생각보다 가까운 학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AgalmA 2017-09-08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아름다운 남성 나체상으로 가십처럼 회자되지만 현장에서 보면 각도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보입니다. 표정이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사뭇 위협적이죠. 시선이 향하는 방향도 의미가 있고요. 자세한 내용은 <우아한 관찰주의자> 참조ㅎ 본문에서 겨울호랑이님이 최후의 만찬을 공간까지 가져와 설명하셨듯이 많은 경우 공간을 감안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예술을 감상할 때 애초에 예술가가 의도한 것과 매우 달라질 수 있죠. 우리는 손쉽게 감상의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작품의 제반적인 정보뿐 아니라 실재에서도 협소한 단면만 소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단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음악이 가장 추상적이라는 말은 아주 의미심장하죠. 수학처럼 확고한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한한 의미를 품는다는 것이....

그나저나 바꾸신 연의 사진 보니 맘도 환해지네요 :) 성공!

겨울호랑이 2017-09-08 21:45   좋아요 1 | URL
^^: 그렇겠군요. 그래서 미술 작품 감상을 직접 발품을 팔면서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은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기에 시간과 공간 제약을 미술보다 더 많이 받기도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성적인 면에서부터 감성적인 면을 표현한다는 면에서 음악의 옥타브와 미술에서 색채가 통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장난꾸러기 연의지요 ㅋㅋ

2017-09-09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9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태백산맥 >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대로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이 발생한 1948년 벌교 지역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뛰어난 몰입감을 주는 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몇 부분을 옮겨본다.


1. 선(善)과 악(惡)

 

'전혀 다른 두 모습의 문서방. 그 어느 쪽이 진짜인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표변할 수 있는가. 그 어느 쪽이 진실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이중적일 수 있는가... 그렇다, 인간은 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감정의 줄기를 소유한 동물이다. 문서방의 전혀 다른 두 모습은 그런 인간의 속성이 표출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모습은 다 문 서방의 참모습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면서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따라 그것은 반응하는 것이다. 문 서방은 아버지에게는 선한 인간으로 반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한 인간으로 반응한 것뿐이다. 만약 아버지가 악한 지주였다면 문 서방은 여지없이 악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 서방의 악은 악이 아니라 선인 것이었다.'(p68)


 <태백산맥>에서 묘사된 인간 본성(本性)의 문제는 여러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이러한 오래된 철학적 질문에 대해 주인공 범우는 인간 내부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답하고 있다. 이러한 김범우의 생각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주(註)를 단 왕필(王弼, 226 ~ 249)의 의견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는 것 같다.

 

'왕필이 선(善)과 불선(不善)을 '시(是)'와 '비(非)'에 상응시킨 것은 바로 잘 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핵심적인 것은 즐거움과 성남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옳음과 그름이 한곳에서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불이(不二)"의 사고입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양자가 심층적으로는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통념적으로 대립시키는 것들을 같은 뿌리로 소급시키는 것은 곧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는 선(善)과 악(惡)의 구별의 피안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para-doxa"의 사유이기도 합니다.'<개념-뿌리들>(p558)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범우의 말속에서 전통적인 동양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동양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수용하면서 생긴 사상대립. 한국전쟁과 이념 대립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상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상이 극단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2. 남로당과 칼 마르크스


 <태백산맥>1에서는 남로당(南勞黨)과 군정(軍政)간의 대립이 잘 묘사되고 있다. 남로당은 어려운 경제 현실로부터 탈피하고자하는 민중의 열망을 정치투쟁으로 확산시키려했던 반면 군정은 이를 좌절시키려 한 것이다. 


 '남로당은 어쩌면 남쪽 전역에 걸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열렬한 지지였지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미군정의 경제정책에 대한 생존보호와 불만표현이 먼저였다. 그러니까 남로당은 군정과 정치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고, 민중들은 군정과 경제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로당은 민중들의 경제투쟁을 조직화하여 정치투쟁으로 확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교활할 만큼 영리한 군정이 그것을 좌시할 리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무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박살을 내고는 한 것이다.'(p238)


이러한 남로당의 투쟁 노선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기반한 것임을 우리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1872 ~ 1970의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1883)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변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그러나 물질은 인간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원자론자들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고찰해온 독특한 의미를 갖는 물질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이든 정치, 종교, 철학, 예술은 속한 시대의 생산 방법과 비중은 조금 낮지만 분배 방법의 산물이다.' <러셀 서양철학사> (p990)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하부구조가 보다 형이상학적인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일제(日帝) 하에서 토지의 균등한 분배등 경제적 평등을 약속한 남로당의 약속은 가난했던 많은 민중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로당의 투쟁이 현실의 삶과 다소 거리가 있는 정치 투쟁으로 이어졌을 때도 먹고사는데만 관심있는 민중들의 지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혁명이론으로 현실적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문화와 제국주의


 <태백산맥>속에서는 제국주의(帝國主義)에 대한 비판이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했었던 손승호라는 인물을 통해 가해진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1616)가 과연 인도(印度)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가? 라는 물음에 대한 손승호의 비판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지는 몰라도 그런 비유법을 쓴 영국인들은 한심한 종자들이야. 그 과장의 정도야 아무래도 상관할 게 없지만, 비유의 대상을 한 나라로 잡았다는 건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야. 셰익스피어가 제아무리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한들 어찌 인도보다 더 위대할 수가 있느냔 말야. 인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는 차치하고라도 거기엔 4억을 헤아리는 인간들이 엄연히 생존하고 있어. 그 생명들의 존엄성보다 셰익스피어가 더 위대하다니. 그따위 발상법을 가진 영국인들은 일본놈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식민주의자들이야.'(p240)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思想)이라고 한다면 셰익스피어의 중요성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제국주의 종주국들에게는. 이에 대한 내용을 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 Said, 1935 ~ 2003)의 작품 <문화와 제국주의 Culture and Imperialism>을 통해 살펴보자. 

 

'만일 중요한 종주국 문화의 몇 가지 -가령 영국, 프랑스, 미국의 문화-를 제국을 추구하는(그리고 제국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지리적 배경 속에서 연구한다면, 명확한 문화 지형도가 선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가령 영국 문화에서 스펜서, 셰익스피어, 디포, 오스틴이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먼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권력의 거점을 종주국인 영국 또는 유럽에 설정하고, 이어 작품의 구상, 동기, 전개에 의해 그러한 권력 거점을 원격의 "주변"세계,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열등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세계(아일랜드, 베네치아, 아프리카, 자메이카)에 접속하는 것이다.'<문화와 제국주의>(p132)


 셰익스피어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다면, 셰익스피어가 존재하는 한  지금 당장 인도를 잃는다하더라도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4.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그외에도 <태백산맥> 속에는 민족주의의 입장과 공산주의의 입장이 각각 김범우와 염상진의 말과 생각을 통해 나타나 우리는 당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체감할 수 있다.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p85)


  '힘은 조직화될수록 강해지고, 그 힘은 공격을 감행할 때 더 강해지고,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을 때 그 힘은 절정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건 힘의 법칙이고, 힘의 미학이었다. 북조선의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힘은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면 남조선의 오합지졸인 비조직화된 힘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한반도 전역에 공산혁명의 깃발을 나부끼게 할 것임을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하늘처럼 믿었던 북조선의 조직화된 힘은 뻗쳐오지 않았고, 오합지졸인 줄만 알았던 남조선의 힘에 쫓기게 된 것이다. 왜 북조선은 힘을 쓰지 않은 것인가. 남조선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었는가. 그럼 북조선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일까.'(p125)


 한국 현대사의 이념대립을 다룬 <태백산맥>은 이처럼 인물과 사건을 통해 선과 악,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 대립적 요소가 잘 제시된다. <태백산맥>이 현대사를 다룬 뛰어난 문학작품인 이유는 작품이 주는 몰입감과 더불어 당대의 이념들간의 대립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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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3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04 0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 통학시간이 길었던 덕에 태백산맥을 빌려 지하철에서 읽었었는데...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구매해 두었으나 읽을 엄두를 못 내고 방치 중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7-09-04 04:09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께서는 일찍 태백산맥을 읽으셨군요^^: 저도 좀 더 일찍 읽었다면 현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2017-09-0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4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저 보고서 - 악당들의 시대, 한국현대사와 박정희시대에 대한 가장 완벽한 평가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 지음, 김병년 엮음 / 레드북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프레이저 보고서 Fraser Report>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of the Commitee On International Relations U.S. House Of Representatives)에서 1978년 10월 제출된 <한-미 관계 조사 보고서 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 Report>가 원제다. 원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프레이저 보고서>는 당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숨겨진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보고서의 많은 내용이 보고서가 작성된 후 약 40년이 지난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이번 리뷰에서는 <프레이저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북한에 대한 위협 강조와 현실


 이미 1978년에 한국군의 능력은 북한을 능가한다는 국방부 부차관보의 증언을 보더라도 한국군의 전투력은 결코 북한보다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무기의 해외 수출을 추진하던 당시 상황을 보더라도 북한의 위협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함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왜 1970년대 미군 철수를 그토록 반대했던 것일까? 그것은 미국의 국방예산 지원금과 생필품이 박정희 정권에게 돈벌이의 수단이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진] 태극기 집회(출처 : 뉴스1)


 '한국인들이 북한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들은 결정적으로 외국세력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더욱 안정된 억제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상의 역할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미 국방부 부차관보 아브라모위츠(Morton Abramowitz)는 대한민국은 지금(1978년 현재) 북한과 더욱 대등하게 걷고 있으며, 전쟁 수행을 위해 동맹국의 주둔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p124)


 '이곳 사람들은 매우 격양되어 있다. 만일 한국인들이 최근 수년 간 말해왔던 것처럼 북한의 위협이 그렇게 엄청나다면, 그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방어에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것들을 해외에 팔려고 하는가?'(p144)


 '한국의 국방 능력을 키우려는 미국의 군사정책 역시 경제원조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승인 아래 한국정부는 미국이 한국의 국방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원조한 생필품들을 국내에서 판매하여 그 수익금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p257)


2.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 : 농촌문제와 도시 빈민 문제


  박정희 정권은 불안한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 자금이 필요했다. 그것은 한국의 경제 성장이 국내 곡물 가격 억제로 인한 인플레이션 요인 통제, 그리고 저임금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공급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한국 경제에 있어 농촌 문제와 도시 빈민 문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중요한 불안요인이 되었고, 정권의 정당성이 결여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 


 '1960년대 PL480 프로그램은 식량 요구들을 충족시키고 대규모 방위시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원의 일부를 한국정부에 공급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 기간 동안 농업분야는 산업분야만큼 급속히 성장하지 못했는데, 한국정부가 농업분야로 재원들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업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1970년대 초까지 PL480은 농업 성장률과 생산성, 그리고 수입을 꽉 억눌렀던 것으로 보인다.'(p339)


 '1960년대 중반 경, AID는 한국정부가 일부 국내 식량 곡물에 대한 가격을 시장가격 이하로만 허락하는 정책 때문에 농촌 소득은 최소한의 증가만 이루어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정책과 함께 농촌 소득이 낮은 성장을 초래하는 이유는, 한국정부의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과 도시 저임금노동자들에게 싼 생필품을 제공할 필요성 때문이었다.(p288)...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도 도시노동자의 소득은 증가했다. 그러나 1975년과 마찬가지로 도시노동자의 월 평균소득은 월 가계지출보다 적었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정부는 값싼 노동력의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유순하게 했고, 권위주의적 수단에 의지했으며, 고용주의 협력을 얻는 정책을 지속했다.'(p296)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낮은 임금 강요는 40년 전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최저임금제와 관련된 논란은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조업 임금은 수출 경쟁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되었고, 조직된 노동자는 극도로 제한을 받았다. 1960년대의 대부분과 1970년대 초반을 통해 농산물 가격 또한 도시의 불만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낮게 유지되었다. 이것은 농촌과 농업의 발전을 방해했다. 모든 영역에서의 사회복지는 경제 개발의 뒤편으로 밀려났다.'(p328)



3. 무능한 한국 정부


 이러한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정부는 정치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정치적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끊임없는 재정 확대책을 펼칠 수 밖에 없고, 항상 재정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정권 유지를 위한 끊임없는 재정지출 속에서 박정희 정권은 한국경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국 경제를 낙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원조만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의 경제정책은 단지 무책임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낮은 외환보유고와 함께 국제수지 적자가 증가하고 단기 신용 역시 이미 한계에 달했는데도 긴축보다 팽창을 선택했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운용이다. 재계 지도자들은 그 위험을 명확히 알고 우려하지만, 이미 어려워진 정치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엄청난 정치적 압력에 의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 1975년 5월 美 재무부 보고서 - '(p315)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원조 없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결핍되어 있었다. 따라서 심리적, 경제적 의존 양상이 뿌리 깊었다. 더 나아가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국민소득이 약간이라도 증대되면 그에 상응해서 미국이 원조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제 원조로 한국군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들의 염려는 특히 컸다.'(p267)


 오히려, 한국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은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보이고 있다. <프레이저 보고서>에 적시된 한국의 미개발 자원이 '인적 자원(人的 資原)'이라는 사실을 박정희 정권은 알고 있었을까. 결국, 한국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주역은 박정희 정권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國民)이었음을 우리는 다른 나라의 보고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우리의 장점을 우리가 모르고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은 슬픈 일이다.


 '몇몇 거대한 정부소유 기업들은 부실한 관리와 비경제적 요금 구조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해외 부문에 있어서 엄청난 지불 격차의 균형은 오로지 미국원조에 의해서만 지탱되었다.... 1950년대의 토지개혁은 비록 가난했지만, 농촌 부문을 정치적으로 안정시켰다. 비록 비효율적인 수입대체전략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1950년대 동안 산업 능력은 꾸준히 발전되었고, 보다 효율적인 용도로 전환될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 스스로가 근면하고 교육받고 훈련된, 엄청나다고 표현될 만한 미개발 자원이었다.'(p260) 


4. 정치 기부금 : 베트남 전쟁과 기업 뇌물


 박정희 정부는 통치 자금 마련을 위해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만 손을 댄 것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 참전을 들 수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 약 10억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를 한국 정부에 지불했으며, 그 금액은 당시 한국의 외화 수령액을 고려한다면 매우 큰 금액이었다. 또한, 당시 유력한 한국의 기업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이는 선거 때마다 정치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최근 K-재단과 미르 재단 문제의 뿌리는 이미 반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사진] K-재단, 미르재단(출처 : SBS뉴스)


 '미국정부는 최근에 합의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과 연계하여, 양국 대통령 간에 합의된 1억 5천만 달러의, 또는 그 이상의 개발차관을 우호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정부는 다음 5년에 걸쳐 한국에 상당한 액수의 재원을 차관으로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p272)... 미국정부는 특히 통화 정책의 개혁을 원했다. 선거 시기에 자금 공급을 확대시키려는 한국정부의 경향은, 만성적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중단되어야만 했다.'(p274)


 '1973년에 회계감사원이 지적했듯이, 미국이 한국군의 베트남 모험의 결과에 지불한 금액을 산정하는 것은 자료 부족으로 어렵다. 1970년에 국방부는 미국의 해외 안보협정과 공약에 관한 소위원회의 사이밍턴(Symington) 상원위원에게 추정을 제출했는데, 다음과 같이 복사되어 있었다. 9억 2,700만 달러였다.(p281)... 미 회계국은 1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 베트남전과 관련된 소득이 연간 2억 달러라고 추산했다. 대충 잡더라도 그 금액은 1966년에는 한국의 외화 수령액의 40%를 차지했으나 1970년도에는 15%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만성적인 외화부족을 고려한다면, 15%조차도 중요했다.'(p282)


 '1971년에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정치자금의 필요는 더욱 심화되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박대통령은 1970년 6월에 민주공화당에 십만 달러씩을 기부할 수 있는 한국 기업들의 명단을 작성하도록 직접 김성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 명단에는 한국의 거대한 재벌들, 럭키 그룹, 현대 건설, 삼성 그룹, 김성곤이 경영하는 쌍용 그룹 등이 포함되었다.'(p370)


5. 정치 자금의 활용


 박정희 정부는 이렇게 모은 정치 자금을 이용하여 미 상하원 의원들을 설득하였으며, 친(親) 정부 활동 자금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일부는 자신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선거구에 회사 본부가 소재해 있는 하원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미 한국에 투자해 온 거대기업들(Gulf, Caltex, American Airlines, Fairchild)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들과 활동들은 외부의 출처들과 다양한 수단들을 이용해서 자금을 공급받았다... 예를 들어 쌀 수수료는 박동선의 조지타운클럽과 다른 프로젝트들의 재정을 도왔다. 한국문화자유재단과 그 계획인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한국정부는 미국 내 출처로부터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친정부 활동들을 지도, 통제할 수 있었다.'(p170)


6. 개인적 뇌물 수수 


 정부 정치자금 중 일부는 개인 재산으로 축적되었고, 이중 일부는 박정희에게도 전달되었다. 박정희에게 전달된 자금은 청와대 금고와 스위스 계좌에 예치되는 형태로 보관, 유지되었다. 이러한 정치자금과 관련한 중심에는 한국중앙정보부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들은 1965년 일본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아왔다.



[사진]김-오히라 메모(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logId=minlovemuch&blogNo=100093008276)


 '1969년 이후 모든 형태의 대출 유용성이 감소되었다. 그것은 정부 정치자금의 기본적 원천들 중 하나의 감소를 재촉했다. 세금 체계를 통해 자금을 증가시킴으로서 문제를 해결하하려는 노력이 명백히 착수되었지만 -그것은 제도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러한  노력들은 부패의 일반적 수준이 반영된 한국정부 관리들의 입장에서는 개인적 뇌물 수수의 범위가 방해받는 것이었다. 1970년 경에는 이후락, 김성곤, 김혁욱이 각각 축적한 개인 재산이 1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 청와대 고위급 관리가 주장했다.'(p369) 


 '이후락에 의해 수집된 자금들이 스위스 은행계좌에 예치되었고, 원칙적으로 대통령에 의한 용도였다고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후락과 다른 사람들도 대통령에게 자금을 제공했다. 그 돈들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탁자 뒤에 있는 금고 안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스위스 계좌의 존재는 은행 기록들로 구체화되었고, 이동훈(이후락의 아들들 중 한 명)에 의해,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 다수의 청와대 고위관리들 중 최측근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동훈은 본 소위에서, 스위스의 그 돈들은 대통령이 사용하기 위한 "정부자금"이었다고 진술했다.'(p370)


 '워커힐 리조트 건설과 일본에서 자동차 수입과 같은 상업적 거래들에 한국중앙정보부가 깊이 빠져들었다는 믿을만한 표시들이 있었다. 그 후 한국중앙정보부가 워커힐 프로젝트에서 수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고 추정되었다. 1963년 봄 기간 동안 한국중앙정보부는 주식시장의 은밀한 조작에 휩쓸려 들어갔고, 이 공작으로 거의 4천만 달러를 챙겼다고 추정되었다... 김-오히라 메모의 공개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재정으로 사용될 선금조로 1억3천만 달러, 그리고 다가오는 선거를 위한 민주공화당 자금으로 2천만 달러를 김종필이 일본에서 받았다는 혐의들의 가죽 끈을 풀어버렸다.'(p361)


7. 한국중앙정보부(KCIA)와 감찰


 한국중앙정보부의 권한은 막대한 것이었으며, 한국 내 국민 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을 감시하는등 민간인 사찰을 통해 언론 통제 등에 나섰으며, 이를 통해 반(反)정부 활동을 억압했음을 우리는 보고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사진] 군 기무사 민간인 사찰(출처 : 통일뉴스)


 '전 한국중앙정보부(KCIA) 부장이었던 김형욱은 그것이 미국의 CIA와 FBI의 기능을 합친 것이라고 말했다. 전 한국외교관 이재현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실제로 한국중정은 한국인들 삶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p147)


 '한국교민 담당관으로서 김상근의 다른 책무들 중 하나는, 유신헌법에 대한 선전 자료를 배포하고 반정부 활동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시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때 그는 영사관 관리들과 협력했고 한인교포들을 이용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정보를 위해 지역 한국 언론의 기사들을 읽었다.'(p152)


 '한국 법에 의하면, 비록 미국에서 발행되었다고 할지라도 서울사무소가 미주 동아의 내용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졌다. 1976년 1월 13일자 편지에서 김남은, 만약 정부의 비상계엄령을 위반한 기사가 앞으로 발행된다면 소환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한국중앙정보부는 한국정부에 비판적인 편집 정책을 가진 미국 내 다른 한국어 신문의 발행자들을 괴롭히고 협박하려고 했다.(p468)... 때때로 한국중앙정보부는 한국정부와 정책을 유리한 관점에서 제시하는 출판 및 방송매체를 공개적으로 설립하거나 혹은 자금 지원하려고 시도했다.'(p469)


 이외에도 프레이저 보고서의 주요한 내용으로는 통일교와 한국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교주 문선명이 이끄는 통일교 조직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폐지된 범세계적 단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어떠한 활동을 했으며, 이러한 활동이 한국 정부와 어떤 영향이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프레이저 보고서>는 1970년대 한국의 고속성장이 농촌과 도시 빈민의 수탈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이러한 사회적 불만을 누르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했는지 그리고 개인자산을 만들었는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정권 유지를 위한 한국중앙정보부의 중심적 역할에 대해서도 상세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깊은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프레이저 보고서>의 중심이 '한-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정 부문 한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이후의 극우 정권이 '왜 미국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보고서라는 한계로 읽기에 다소 지루함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의 납득하지 못할 정부의 행태를 잘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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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02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씨......
얼추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게 되니 더 열받네요.

겨울호랑이 2017-09-02 14:38   좋아요 1 | URL
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이 하는 모습은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시대를 거슬러 살고있는가를 실감하게 되네요...

AgalmA 2017-09-02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금 꼼수 부리려고 통괄로 걷을 수 있는 부가가치세를 지금처럼 마련한 게 박정희로 알고 있습니다. 종교계 세금 걷는 거 가지고도 여당인 민주당 의원이 나서서 만류하는 모양새 하며... 세금 조정만 잘 해도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예산 굽신 안해도 될 텐데 세금 조정할라치면 국회며 야당이 포퓰리즘이다 어쩐다 또 얼마나 발목 잡을지ㅎ;;

겨울호랑이 2017-09-02 16:19   좋아요 1 | URL
내년 지방 단체장 선거에서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보여줘야할 것 같아요...한동안 구체제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네요...

나와같다면 2017-09-02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열세인가 우위인가?

리영희 선생님은 1980년대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해 이미 남한이 북한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셨죠..

겨울호랑이 2017-09-02 21:51   좋아요 1 | URL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풀려진 공포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을 보면 그들의 저의에 대해 의심할 수 밖에 없네요..

2017-09-03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