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칼레츠키의 법칙: 노동자는 번 만큼 쓰고, 자본가는 쓴 만큼 번다

칼레츠키 법칙의 전반부는 가계가 모든 소득을 지출하며 저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제의 후반부는 기업의 투자 지출이 기업의 이윤을 창출한다는 말과 같으며, 이러한 원리는 개별 기업이 아닌 전체 기업 차원에서 적용된다. 이에 따라 한 기업의 투자 지출은 다른 기업의 수익을 형성한다... 칼레츠키의 법칙은 임금 비용 감축 전략이 필연적으로 기업에 유익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실제 임금 하락으로 인한 가계소비의 감소는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 제고가 낳은 무역수지의 잠재적 개선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p85)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칼레츠키 법칙은 분명 의미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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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9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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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9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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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9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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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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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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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퍼는 얼마전 작성한 <도덕감정론> 리뷰에 중 이웃분이신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답(答)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1. <도덕감정론>의 원리와 <국부론>의 원리는 상호 모순적인가? 


역자에 따르면 <도덕감정론>에서 제기한 동감의 원리와 <국부론>의 원리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도덕감정론>에서는 상호동감하는 개인과 이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의 질서 원리를 말하고 있는데, 타인을 억압하거나 강제하려는 인간의 감정은 자신과 타인(他人)의 동감에 의해 조절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타인과 교환할 때 이익(interest)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국부론 國富論>을 통해 답이 이루어진다. 


 '<도덕감정론>에서 전개한 그의 "동감(同感)의 원리"와 <국부론>에서 전개한 그의 "교환(交換)의 원리"= "경쟁(競爭)의 원리" = "시장(市場)의 원리"가 실은 동일한 논리구조 위에 서 있다는 사실과, 두 원리가 모두 중세적 속박에서 인간의 이성(理性)뿐 아니라 본능(本能)까지 해방된 사회에서 이기심(利己心)이 사회적 선(즉 公益)이 될 수 있게 하는 메커니즘 내지 조건임을 밝힌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 원리가 동일한 논리구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양자가 공히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하는 자연적 성향에서 출발함을 의미한다. 동감의 원리란, 이미 본 바와 같이, 인간은 상호동감(mutual sympathy) 속에서 큰 희열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교환의 원리는 인간의 본성 속에는 거래, 교역(交易), 교환하려는 성향 내지 충동이 내재하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스미스는 교환성향은 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에게만 독특하게 발견되는 성향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원인 모두 인간의 이기적 충동을 사회적 선(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p690)' 


그렇다면, 인간과 사회는 동감의 원리로 작동하는데 왜 시장(市場)의 원리는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가? 그것은 상대에게 이익을 제시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구절이라 영어로도 써본다.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얻을 수 없다. 그가 만약 그들 자신의 자애심(自愛心 : 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발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가 그들에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일을 그들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오." 이것이 이러한 거래에 담겨진 의미다. (p18)...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자애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유리함을 말한다.(p19)


 'But man has almost constant occasion for the help of his brethren, and it is in vain for him to expect it from their benevolence only. He will be more likely to prevail if he can interest their self-love in his favour, and shew them that it is for their own advantage to do for him what he requires of them. Whoever offers to another a bargain of any kind, proposes to do this. Give me that which I want, and you shall have this which you want, is the meaning of every such offer ; and it is in this manner that we obtain from one another the far greater part of those good offices which we stand in need of.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p22)'


 바로 이 구절을 통해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연결점을 가지면서, 아담 스미스의 철학체계에서 전자(前者)는 법학의 원리로, 후자는 정치경제학의 원리로 정리된다. 


'이상과 같이 인간의 이기심, 자애심(自愛心)은 동감(同感)의 원리에 의해 인간 내부에서 견제를 받으며, 동시에 교환의 원리, 특히 경쟁적 교환의 원리에 의해 외부적으로도 공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되도록 인도되는 것이다.(p691)' -역자 해제 中 -


2.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도덕감정론>


진화생물학자인 매트 리들리(Matt Ridley, 1958 ~ )은 그의 저서 <이타적 유전자 The Origins of Virtue>에서 <도덕감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애덤 스미스는 첫 저작(<도덕감정론>)에서 개인들이 집단의 이익에 관해 어떤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집단의 이익에 역행해 행동하는 구성원들의 활동을 억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경꾼들이 반사회적인 행동을 응징하기 위해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번째 저작(<국부론>)에서 사회란 개인들에 의해 신중하게 보호되는 공공재가 아니라 개인들 각자의 사리 추구에 따른 부작용에 가깝다는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예전의 주장을 번복한 것처럼 보인다.(p208)... 덕이 있다는 것은 덕이 있는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 상호 이익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협동가들이 일단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로부터 분리되어 응집하기 시작하면 전혀 새로운 진화의 동력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 새로운 동력은 개인들이 아니라 집단들을 서로 투쟁하게 한다.(p209)'


 <이타적 유전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고 넘어가자. 원서 제목과 전혀 동떨어진 책 제목은 아마도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의식한 것 같다. 제목만 놓고 보면 <이기적 유전자>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런것도 아니다. 오히려, 같은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그 전제는 '이기적 유전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한 전제는 <이기적 유전자>의 30주년 기념판 서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에 또 하나의 훌륭한 대안은 "협력적 유전자 The cooperative Gene"일 것이다. 이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정반대 의미로 들리지만, 이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들 사이의 협동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한다. 오히려 각각의 유전자는 유전자 풀(Pool 한 종 내에서 유성 생식으로 서로 섞이게 될 유전자 세트들) 내에 있는 다른 유전자들을 배경으로 하여 그 자신의 이기적인 계획을 이행하는 것이다.(p11)'


 <이기적 유전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유전자들의 협력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면에서 영어 제목인 'The Origins of Virtue'가 책 내용과 잘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타적 유전자>로 제목을 지은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명성에 기대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굳이 번역한다면, '인간 덕목의 기원', 또는 '도덕성의 기원' 정도가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생물학의 탈을 쓴 인간 본성(本性)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회 질서의 뿌리는 우리 인간의 머릿속에 있다. 인간의 머릿속에 완전한 조화와 미덕의 사회를 실현할 본능적인 능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실현할 능력은 존재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제도는 이 같은 본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제도이다. 우리는 평등한 개인 간의 사회적, 물질적 거래를 조장해야 한다. 신뢰는 거래를 통해 획득되고, 또한 신뢰는 미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p366)'


3. 이기(利己)적 유전자 -> 이타(利他)적 행동 -> 이타적 개체(인간) -> (경제적으로) 이기적 행동 ->이기적 사회(?)


 이상에서처럼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 본성의 전제와 사회 법칙을 전제하고, <국부론>에서는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시켜준다는 면에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내용은 모순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추가로 언급한 생물학 서적의 내용도 추가하여 논의를 유전자(Gene) 단계로까지 확대 시켜 네 권의 책의 내용을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거친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유전형질(形質)을 보존하려는 유전자들의 성향은 이타적인 협동을 유발하게 된다. 개별 개체가 유전자들의 조합이라고 했을 때, 개체는 유전자들의 협동으로 인해 이타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다만, 경제적인 부문에서는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의 이기심을 자극하게 되고, 이러한 이기심이 강조됨에 따라 물질과 경제가 강조되는 21세기의 우리 사회는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다소 프랑켄슈타인같은 결론에 다다랐지만, 추가적으로 우리는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도덕성이 높은 개인의 행동이, 이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로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를 마치도록 하자.


ps.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제기해주신 물음에 잘 답변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추가적인 내용은 말씀드린 대로 <국부론>을 읽은 후 정리할 계획입니다. 할 일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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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호랑이님 페이퍼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연결고리...] 참고 자료) 사회와 생물에 대해서
    from 공음미문 2018-01-22 20:36 
    상상하기 어려운 진기한 생물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괴로운 인간 동물 얘기가 더 많아서 아쉽기도 유익하기도^^;;
 
 
AgalmA 2018-01-22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환성향이 인간에게만 있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물 세계에도 충분히 있으며 그들도 생각과 감정을 바탕으로 그러하니까요.

동감과 이익심리를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 끼워맞추는 도식성이 되는 거 아닌가 좀 우려스럽네요.
극단적인 예로 일베나 태극기 집회 같은 사회적 무리가 국정원 지원이나 자기 세를 늘리려는 이익 심리로만 모이는 게 아니니까요. 선함을 추구하는 본성 반대되는 성질도 충분히 동감을 바탕으로 해서 모입니다.
즉 동감과 이익심리라는 게 그렇게 칼로 나누듯이 갈라지는 게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이가 죽게 됐을 때 자신은 죽으면서까지 구하는 게 과연 이타적이기만 할까요. 종을 지키려는 유전적 본능, 학습으로 인해 가지게 된 도덕심, 공명심 등등 저는 아주 많은 것들이 혼합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 얘기 나올 때마다 누차 나오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소수의 가치를 위해 다수를 희생할 것인가. 소수의 가치보다 다수를 더 우선할 것인가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한 견해가 사람에 따라 혼재 양상이죠.
유전자론을 언급하셔서 그나마 중재가 되는 것 같긴 한데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바탕으로 한 동감의 원리-교환의 이익 심리 구분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분법성, 개념의 독단에서 철학의 문제성을 늘 느끼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2 21:49   좋아요 2 | URL
^^: 교환성향과 관련해서 ‘동물도 교환성향이 있다‘는 AgalmA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일례로 ‘상어-빨판상어‘, ‘악어-악어새‘의 공생관계등이 이러한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그런 동물들의 행동을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이 경우 유전자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잘 모르는 아이를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는 이의 행동을 유전자의 작용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처럼 모든 것을 ‘유전자의 작용‘으로만 단일하게 바라보는 것 또한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나와 다른 이의 유전적 형질이 얼마나 유사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라는 개체 내 주도권을 행사하는 유전자가 ‘나의 죽음‘보다 ‘아이의 삶‘이 주도적 유전자에게 유리한 상황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도 제기될 수 있구요. 그런 면에서 인간의 행동은 문화적, 생물학적 여러 특질이 복합적으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번 페이퍼에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언급한 것은 이 부분이 절대진리라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아담 스미스의 철학체계인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사이의 ‘약한 연결 고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거의 200여년 전에 씌여진 책이니만큼 현대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비판할 부분 이 많겠지요...

2018-01-23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3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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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5: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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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8: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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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25 12:20   좋아요 1 | URL
네.. 극과 극은 통한다.. 정치적으로는 극좌에서 극우로 이어지는 섬세한 독재가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아주 춥네요.. 살이 없는 신체 부위들은 극단적인 고통입니다..^^ 손가락, 발가락은 무슨 죄인지 겨울만 되면..ㅎㅎ

2018-01-23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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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1-24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딴 데 정신 팔려 있느라 책과 북플 멀리하여 이제야 먼 댓글 봤습니다. ㅠ
공감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과 공감을 배제한 개인의 이기주의와 합리성이 공존할 수 있는지 제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긴 글로 화답해 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
하여튼, 요즘 넘 먹고살기 힘든 것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1-24 22:59   좋아요 1 | URL
많이 바쁘셨군요.. 추운 날 건강 조심하시며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2018-01-26 0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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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0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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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18-02-02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아담 스미스의 두 주저가 모순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을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의 틀에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에 대해 말할 때는 ‘공감‘이라는 큰 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긍정하는 식입니다. 이런 이해의 틀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소외나 착취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가 예를 들 때도 공장주와 노동자가 아니라 소상인이나 소공업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지요.

겨울호랑이 2018-02-02 20:2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황금모자님 말씀처럼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가 아닌 산업혁명 이전 시기의 사회구조를 먼저 염두에 두지 않으면 ‘공감‘에 기반한 아담 스미스 사상이 오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상이 시대의 산물임을 항상 기억해야할 것 같네요. 황금모자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8-04-20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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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아이들은 정말 피곤해.
당신 말이 맞습니다.
당신은 또 말합니다.
아이들에겐 눈높이를 맞춰줘야 한다고.
키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쪼그려 낮춰야 한다고.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피곤한 게 아닙니다. 아이들의 감정 높이까지 올라가야 하니까 피곤한 겁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몸을 쭉 펴고 길게 늘여, 발 끝으로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야누슈 코르차크(폴란드 의사, 교육가, 아동문학가) -

아이를 키우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가 날 때가 언제인지를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제 단점을 아이가 닮을 때‘인 것 같습니다. 커가는 아이의 모습속에서 부모의 모습은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부모의 단점은 안 닮았으면 하는 억지스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저만 그런가요?^^:)

대체로 제 자신의 안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런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아이의 행동을 통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육아 이전의 단계에서 부모 자신의 마음 치유가 선행되어야한다는 책의 내용이 제게는 더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아이 마음 속으로」에서는 아이의 마음을 열기 전 먼저 부모 자신이 행복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책에 제시된 아이의 속마음을 여는 일곱 가지 질문을 통해 아이의 심리를 읽을 수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이의 속마음을 여는 일곱 가지 질문]

하나, 아이가 무슨 일을 겪었을까?
둘, 아이가 뭐라고 하는 거지?
셋,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넷,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 거지?
다섯, 나 편하자고 아이를 막는 것은 아닐까?
여섯,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일곱,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수십년동안 가져왔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평생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과 아이를 위해서라면 보다 용기있게 자신의 상처를 응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면에서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활동‘임과 동시에, ‘자신을 키우는 활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은 딱 하나다. 부모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치유하는 것이다.(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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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2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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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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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0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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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0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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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1-21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이유로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데 거의 몇 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결실을 맺는 것 같아요. 아이는 어른의 어머니, 아이는 부모의 거울 같은 말들의 의미를 겨울호랑이님 글 보고 더 깊이 알 것 같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1 18:39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좋은 결실을 맺으신다니 다행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1-21 2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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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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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25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트러블이 생기면 가족 정도가 아니면 안 보고 말지 하거나 거리를 두며 맘을 더이상 안 주게 되죠. 차고 넘치는 게 사람인데 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되나 싶기도 하고 말예요.

며칠 전에 20년도 넘은 친구랑 대판 싸우고 알랭 드 보통 책을 읽기 시작했죠. 도대체가 이 모양인 사람의 감정을 좀 알고 싶어서. 이 나이에도 저렇게도 이렇게도 모르고 대처가 잘 안 되고 이러나 속상하고.
오늘 제가 먼저 전화해 네가 뭘 잘못했는지 차근차근 말해 주니 그제야 자기가 그랬구나, 미안하다 그러더라고요. 마지막엔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사과보다 그 말이 더 맘을 따뜻하게 해줬어요. 지지고 볶아도 우리가 친구긴 친구긴 해 하며 웃으며 며칠 동안의 마음 어지러움이 가라앉았어요. 알랭 드 보통이 아니어도 다 아는 인내와 배려...가 잘 안 되더라도 답은 답인 거 같아요. 그걸 가장 잘하려는 사람이 부모인 거겠고. 겨울호랑이님은 잘 하고 계신 듯^^

겨울호랑이 2018-01-25 08:31   좋아요 1 | URL
에고... 저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생각은 ‘내가 조금 굽히면 되겠지‘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이번에 그렇게 넘어가면, 다음에는 달라지려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을 수 있는 것도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네요. 저 스스로 생각해도 이런 면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를 본다면 저와는 분명 또 다르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제가 모르고 타인들만 아는 부분에서는 제가 어떻게 보일런지...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인내‘와 ‘배려‘를 꾸준히 추구해야할 덕목이라 여겨지네요^^: 이웃분들의 저에 대한 고평가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겠습니다.ㅋㅋ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5 08:47   좋아요 1 | URL
고평가하면 그에 맞는 품격이 되려고 하지 더 엇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아주 작은 일로도 고칭찬을 하는 거잖아요. 이런 것들이 모인 도덕 같은 게 강력하게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이유이죠. 암튼 겨울호랑이님을 그렇게 계도하려는 우리 모두의 음모? ㅋㅋ 설마 그럴라고요ㅎ
이미지란 게 상대적인 것도 있지만 각자가 가진 고유성도 있으니까요. 넘 부담스러워서 겨울호랑이님이 사기를 치고 해외도피를 한다고 해도 그럴 사정이 있었겠지 할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겁니다. 이상한 방식의 칭찬ㅋ 모로 가도 전달ㅋㅋ

겨울호랑이 2018-01-25 08:55   좋아요 1 | URL
ㅋㅋ 알라딘에서 ‘겨울호랑이 길들이기‘가 저 몰래 이루어졌군요..ㅋ 농담입니다. 지(겨울호랑이)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러겠어요.ㅋ 솔직히 사기를 치거나, 음모를 꾸미는 것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하긴, 그런 능력이 있다해도 조마조마하게 사는 것보다는 그저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결론적으로 그저 ‘추운 겨울날 난로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게으른, 만사태평한 겨울 고양이‘인 것 같습니다.ㅋㅋ
 

< 해방의 비극 : 중국혁명의 역사 1945 ~ 1957 The tragedy of liberation : A History of the Chinese Revolution 1945 ~ 1957>은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ter, 1961 ~ )가 바라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장졔스(蔣介石, 1887 ~ 1975)의 국민당 정부를 물리치고,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로 서기 위한 사회 변혁이 이 시기의 중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변혁의 모습은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 Politeia>,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 ~ 1535)의 <유토피아 Utopia> 속의 이상국가를 지향하고 있기에, 이번 페이퍼에서는 중국 혁명의 유토피아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생산=선(善), 소비 =악(惡)

 

'진정으로 불명예스러운 죄를 지은 자들은 귀와 손가락에 금반지를 달고, 목에 금 목걸이를 차고, 머리에 금관을 강제로 쓰고 다녀야 합니다. 그들은 사실상 금과 은, 두 귀금속을 경멸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금은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생기더라도 누구든 단 한마디도 애석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p145)' - <유토피아 > 中 -  


 중국 공산주의 혁명에서 주체는 도시의 노동자, 농촌의 농민이었다. 이들 중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근검절약'이 강조되었고, 생산은 '선(善)'인 반면, 소비는 '악(惡)'이었기에, 최소한의 소비만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금.은 등의 사치품 소비가 억제되는 사회 분위기는 <유토피아>의 현실적 구현이었다.


 '사람들은 근검절약하라는 말을 들었다. 생산은 찬양되고 소비는 지탄을 받았다. 이념적 순수성은 경제적 쇠락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한때는 번잡했던 대도시들을 생기 없는 칙칙한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혁명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쾌락을 쫓는 행위는 부르주아적 경박함의 상징이 되어 눈쌀을 찌부리게 만드는 어떤 것이 되었다.(p106)' - <해방의 비극> 中 -


2. 같은 색깔의 평등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성별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약간만 차이가 날 뿐 똑같은 옷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행 또한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옷은 보기에 매우 좋고, 입은 상태에서 팔다리를 움직이기도 편리합니다. 그리고 더운 날씨에 입든 추운 날씨에 입든 똑같이 편리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옷이 집에서 손수 만들어집니다. (p123)' - <유토피아 > 中 -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나타내는 모든 것은 적으로 간주되었고,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사회는 통합(統合)되어야 했다. 언어, 언론 심지어는 의류(clothing)와 헤어스타일도 단일하게 통일되어 갔다. 이제 중국은 회색의 마오스타일의 정장으로 사회 전체가 옷을 갈아 입게 되었다. 


 '영어는 더 이상 국제 비즈니스 언어가 아니었고 제국주의의 착취를 상징할 뿐이었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았으며(p106)... 사방이 온통 망치와 원형 낫, 붉은 별이었다. 시가 전차나 건물, 현수막, 깃발 등에도 있었고 공무원들이 차고 다니는 배지에도 예외없이 이러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언론도 거의 즉각적으로 정리되었다. 1949년 2월에 이르자 베이징에서는 당의 공식 신문을 제외한 총 20여 개의 일간지 중 오직 하나만 여전히 명맥을 유지했다.(p107)' - <해방의 비극> 中 -


 '사람들이 옷을 입는 방식도 하루아침에 바뀐 듯했다. 장신구가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다른 사치품도 마찬가지였다. 립스틱과 화장품이 사라졌다. 젊은 여성들은 곱슬하게 말았던 머리를 잘랐다. 남녀를 불문하고 반지도 뺐다.... 17년 만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돌아온 리즈쑤이는  대다수 베이징 시민들이 너무 자주 빨아서 거의 완전히 색이 바랜 파란색과 회식 면직물 옷을 입은 따분한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p108)' - <해방의 비극> 中 -


3. 토지개혁을 통해 모두가 가난해지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모든 시민들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도시에서 파산, 선망, 탐욕, 맛과 향의 즐거움을 전부 몰아낼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도 없애려 했다." 그는 금화와 은화를 쓰지 못하게 하고 철로 만든 주화를 사용하게 했는데, 주화의 가치가 너무 낮아 "그 돈으로 10미나를 모으려면 어느 집의 창고 하나를 다 채울 정도였다.(p162)...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 정치 체제의 문제점을 낱낱이 비판한다. 그는 감독관들이 너무 가난한 경우가 흔하여 매수되기 쉬웠다고 한다.(p160)' - <서양 철학사> 中 - 

 

 농촌에서는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 계급을 타파하고, 토지의 무상분배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의 지배권은 개인이 아닌 '당(黨)'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했다. 가정별로 할당된 목표량을 정하는 것이었으며, 소작인 입장에서는 결국 토지 주인이 '지주'에서 '당'으로 주인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이 기간중 지식인과 지주 계급에 대한 숙청은 해당 '지역 인구의 몇 %'식의 목표가 주어진 마녀재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토지 개혁이 마을 주민들 간에 갈등을 유발하고 포악한 대회를 통해 서로를 비난하게 되면서 마침내 농촌의 실질적인 재산이 세간에 공개되었다. 부자들로부터 몰수된 땅은 작게 분할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다. 소작료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공산당은 정확히 얼마나 많은 땅이 존재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각각의 좁고 기다란 형태의 땅에서 생산될 수 있는 양이 결정되었고 각 가정에 지정된 양의 곡식을 납부하도록 하였다.([p119)' - <해방의 비극> 中 -


3. 수단으로서의 문화/예술


 

'"나는 선법들은 모르네. 하지만 이런 선법은 남겨 놓게나. 즉 전투 행위나 모든 강제적인 업무에 있어서 용감한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그리고 또 좌절하더라도, 말하자면 부상이나 죽음에 당면하게 되거나 또는 다른 어떤 불행에 떨어지더라도, 이런 모든 사태에서도 자신의 불운을 꿋꿋하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막아내는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적절하게 모방하게 될 선법을 말일세. (399 : a - b)... 자, 그러면 나머지 것들도 정화하세나. 우리의 선법에 이어지는 것은 리듬에 관한 것이겠기 때문일세. 우리는 복잡 미묘한 리듬도 온갖 종류의 운율(步格 : basis)도 추구하지 말고, 예절 바르고 용감한 삶을 나타내는 리듬이 무엇무엇인지 보도록 해야만 하네. 이를 본 다음에 그런 사람의 말(노랫말)에 시각(詩脚 :pous)과 선율(melos)이 따르도록 해야지. 말(노랫말)이 시각과 선율을 따르도록 해서는 아니 되네."(399 : e - 400 : a)' - <국가, 정체> 3권 中 - 


 문화, 예술 활동은 혁명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른바 고전(古典)이라 불리우는 음악, 책, 미술 등은 음란하거나 선정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파괴되었다. 용케 파괴에서 살아 남은 것들 중 대다수가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통해 사라지게 된다. 이는 인민3부작 중 마지막 3권 <문화 대혁명>의 주제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북소리와 혁명가 노랫소리가 클래식 음악을 밀어냈다. 베토벤, 쇼팽, 슈베르트,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부르주아로 간주된 그 밖의 여러 작곡가들 음반이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p300)... 해방 이전의 상하이는 아시아의 음악적 수도로 여겨질 만큼 재즈 수요가 많았다.... 상하이가 함락되고 불과 몇 주 만에 나이트클럽들이 폐쇄되거나 공장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는 재즈를 퇴폐적이고 음란하며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전면 금지했다.... 저우쉬안 같은 스타들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널리 방송되고 축음기에서 재생된 적도 있었지만 1949년 이후로는 음란하다는 비판을 받을 뿐이었다. 곧 사람들의 귀는 소련의 문화 사절단을 통해 도입된 새로운 음악에 적응되었다.... 부르주아의 특징적이라는 표현법이라는 이유로 용납되지 않던 독창과는 달리 합창은 안전했다. 게다가 합창은 선전을 유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p301)' - <해방의 비극> 中 -


 '공연은 또 다른 선전 수단이었다. 게다가 짧고 단순하며 매우 시사적인 까닭에 효과도 훨씬 좋았다. 인민 해방군 소속 무용단이 부른 <앙가(秧歌)>처럼 군에 소속된 배우들이 선전 활동을 도왔다. 그들은 광장이나 정원, 공원은 물론이고 그 밖의 어떤 공공 장소도 가리지 않고 보행자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박수칠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에서나 대중적인 연극을 공연했다.(p304)' - <해방의 비극> 中 -


5. 대국굴기(大國崛起)의 빛과 어둠


 1950년의 한국전쟁은 중국에게도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전까지 소련 스탈린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던 중국은 이 전쟁을 통해 미국과 비기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전쟁에서의 성공은 스탈린 사후 마오쩌둥의 입지 강화에 도움을 주지만, 전쟁 수행을 위한 막대한 인적 손실과 식량 및 군수품 반출은 중국에게도 큰 타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1951년 7월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은 약 300만에 달하는 병력을 전선에 투입했고 그들 중 대략 40만 명이 사망했다. 끔찍한 인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쟁은 마오쩌둥 개인의 승리였다. 당초 그는 동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강행했었다.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다. 중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멈추게 만든 것이다. 마침내 중국이 우뚝 섰다.([p218)' - <해방의 비극> 中 -


 '빈곤은 일상이 되었다. 몇몇 집안이 수대에 걸쳐 힘들게 노력해서 이룩한 상대적인 부가 하룻밤 사이에 증발했다. 자주성과 근면함, 인내심 덕분에 자주성가한 사람들이 버림을 받았다. 마을이 보유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은 조롱거리가 되었고 성공은 착취의 상징이 되었다. 대신 가난한 소작농들과 노동자들이 찬양되었다.(p138)' - <해방의 비극> 中 -


5. 철인(哲人) = 공산당(共産黨)에 의한 지배


 '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이 : ho philosophors)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basileus) 또는 [최고 권력자(dynastes)]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 권력(dynamis politike)]과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 : philophia)이 한데 합쳐지지 않는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인류에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kakon paula)은 없다네."(473 : c - d)' - <국가, 정체> 5권 中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토지개혁과 지주, 지식인 숙청 등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지배권을 확장시켜 갔으며, 이 기간 터져나오는 사회 내부의 불만은 한국전쟁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하며 이를 억눌러왔다. 그렇지만,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는 이러한 명분도 사라지면서 중국 사회 내 긴장은 점점 고조되어 가게 되었다. 플라톤의 '철인' 지배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공산당'에 의한 지배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당의 지배는 노예로 전락한 농민과 노동자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사회가 한층 더 엄격하게 관리되었고 이는 공산당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p169)... 한때는 우정이라 불리던 것이 사라졌다. 더 이상 손님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향적으로 변했으며 점점 더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외국인들의 대대적인 탈출로 중국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p171)' - <해방의 비극> 中 -


 '1956년에는 수년 전 해방에서 비롯되었던 많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농민은 집산화라는 명목 아래 토지와 농기구와 가축을 잃었다... 도시의 공장과 상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정부에서 선전하듯이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 아니라 채무 노동자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유례없이 오랜 시간을 일하고 하나의 생산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강요되었으며 그럼에도 소득은 계속 줄어들었다... 모든 사람이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사회적 긴장이 정부를 향한 공공연한 적대감으로 표출되기 일보 직전이었다.(p419)' - <해방의 비극> 中 -


 '힘들고 더러운 온갖 식당 허드렛일은 노예들이 담당합니다.(p135)' - <유토피아 > 中 - 


6. Intro : <마오의 대기근>


 높은 사회적 불만에 직면한 마오의 선택은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이었다. 그렇지만, 1962년까지 이어진 대약진운동의 결과는 대기근으로 참담하게 끝나게 되었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마오의 대기근>을 통해 대약진운동과 이로 인해 얻어진 참혹한 결과를 살펴본다는 예고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1845년 인구 850만명의 아일랜드에서 100만명의 아사자(餓死子)와 200만명의 이민자가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의 비극이 이에 견줄만하다고 생각되어, 다음 페이퍼에서 같이 살펴볼 계획이다.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을 통해 당시 패권국이었던 영국을 15년 안에 따라잡는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4,500만명의 중국 인민들이 강제 노역, 굶주림, 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PS. 벼락치기의 끝은 거의 언제나 별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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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20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뻘소리)
오뎅탕 대문사진 탁월한 선택이심-_-)b ... 연의 프필 사진 언제 업뎃 해주실 겁니꽈~!(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AgalmA 2018-01-20 20:06   좋아요 1 | URL
히히, 실시간 업뎃ㅋ 감사.

겨울호랑이 2018-01-20 20:08   좋아요 1 | URL
^^: AglmA님께서 말씀하시니, 서둘러.ㅋㅋ

cyrus 2018-01-20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은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지려면 좋은 음악을 듣으라고 주장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란 수학, 철학 같은 유용한 학문의 내용을 전달하는 음악입니다. 플라톤은 학문을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학문 습득을 오락하듯이 즐길 수 있는 수단으로 음악을 필요했어요. 플라톤은 시를 싫어했지만 음악은 좋아했어요. 음악의 장점을 주장한 플라톤의 생각은 특정 이념을 알리는 ‘수단으로서 예술‘의 의미와 무관합니다. ‘학습 의욕 고취‘에 중점을 둔 플라톤의 예술관과 ‘이념 고취‘에 중점을 둔 중국 공산당의 예술관을 무리하게 연결지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0 22:30   좋아요 0 | URL
^^: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이 우주의 질서를 수리적으로 (산술평균, 조화평균, 기하평균) 설명한 것을 보면 cyrus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플라톤은 「국가, 정체」3권과 마지막 10권에서 위의 인용에 넣은 부분에서 처럼 용감한 기상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리아식 선율을 제외한 다른 음악을 금지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용기‘를 ‘공산주의 혁명‘사상으로 대체했을 때도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조는 보다 후대에 쓰여진 「법률 Nomoi」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제가 아직 읽지 못한 다른 대화편에서는 다른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다음에 더 찾아보겠습니다. cyrus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01-20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새로운 연의 사진의 프로필이네요. 볼 때마다 이전 사진보다 더 많이 크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금방 자라고 배우는 시기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1-20 21:56   좋아요 2 | URL
^^: 특히 아이들이 감기라든지 아프고 나면 더 빨리 크는 것 같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의 의미를 연의를 통해 직접 보게 되네요.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 2018-01-21 00:01   좋아요 1 | URL
아프면서 성숙해진다는 말 자체가 아프지만 공감하게 됩니다.. 어른인 저도 그랬으니까요..^^ 겨호님의 좋은 댓글에 공감하고 갑니다.. 최근 연의가 감기에 걸려서 고생했나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1 00:07   좋아요 2 | URL
네^^: 연의가 감기걸려 조금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아픈 아이를 보면서 부모님 마음도 느끼게 됩니다. ‘아픈 나를 지켜보시는 부모님 마음이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면에서 저도 조금은 자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18-01-21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2-26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방의 비극부터 시작한 중국사 3부작 짜리는 읽은만 한가요? 사실 읽어보고는 싶은데 지난번 페이스북에서 어떤수꼴이 이책을 극찬하는거 보고 약간 호감이 떨어지더라구요. 물론 마오쩌둥의 위대한 혁명가이기는 하지만 대약진 운동으로 3천만명을 아사시키고 문혁으로 수십수백만을 숙청과 죽음으로 몰아간 폭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국을 통일하는데 있어서의 공은 마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봅니다. 뭐 조만간 에드거 스노의 붉은별과 알렉산더 판초프가 쓴 마오쩌둥 평전 읽을 생각이지만 이 책의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여 물어봤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2-26 20:58   좋아요 1 | URL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 제시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부여한다는 면은 장점이 되는 반면, 편향된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책의 단점이라 여겨집니다. ^^:

NamGiKim 2018-02-26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몇몇 수꼴들이 이 책을 아주 호평하길래 처음부터 의심의 눈으로 보긴 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2-26 21:11   좋아요 0 | URL
^^: 역사책이 중립적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대 중국사의 다른 측면을 아는데 책의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NamGiKim님 께서 다른 책을 함께 보실 때 관점의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징가 2018-05-24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거 스노우 중국의 붉은별 읽고 마오에 대해 호감적이 갔었는데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국 박정희 급으로 싫어하더군요.. 제 시각이 너무 편협해 진건 아닌가 해서 함 읽어보려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24 08:08   좋아요 1 | URL
박정희, 나폴레옹 등 독재자들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인 평가에서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그런 면에서 마오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지네요. 민정식님 좋은 독서 되세요^^:)
 
에우튀프론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20
플라톤 지음, 강성훈 옮김 / 이제이북스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에우튀프론 Euthyphron >은 플라톤(Platon , BC 424 ~ BC 348)의 초기 대화편 중 하나로 경건(敬虔)을 주제로 한다.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한 에우튀프론 사이의 대화를 통해 '경건'의 정의를 완성시켜 나가지만, 완성된 형태에 이르지 못하고  아포리아(aporia) 대화로 마무리된다. 이번 리뷰에서는 경건에 대한 에우튀프론의 다섯 정의와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대화의 시작


 에우튀프론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불경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에우튀프론은 자신이 경건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경건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그분들 주장으로는 아버지가 그를 죽인 것도 아니고, 설사 죽인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살인자인 마당에 그런 사람을 위해서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고요. 소크라테스님, 그건 이분들이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에 대한 신적인 입장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4 : e)'


2. 경건에 대한 정의


가.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첫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에우튀프론은 자신의 행동이 바로 경건한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개별 행동이 아닌 경건의 이데아(idea, eidos)가 무엇인지를 재차 요구한다.


 '저는 경건한 것이 바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살인이나 신성한 것들을 훔치는 일이나 다른 어떤 그런 잘못을 벌함으로써 부정의한 행동을 하는 자를, 그가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고소하는 것이라고요. 고소하지 않는 것은 불경한 일이고요.(5 : e)'


 '그럼 내가 많은 경건한 것들 중 한두 개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건한 것들이 그것에 의해서 경건한 것이 되는 그 형상(eidos, idea) 자체를 요구했다는 것을 기억합니까?... 그러니 이 형상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주시죠.(6 : d ~e)'


나.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두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소크라테스의 요구에 에우튀프론은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재정의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여러 신들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올바른 정의가 아니라고 논박한다.


[그림] 파리스의 심판 : 세 여신들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美)가? (출처 : http://blog.daum.net/spdjcj/1357)


 '그럼,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은 경건한 것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불경한 것입니다.(6 : e)'


 '그럼 고귀한 에우튀프론, 당신 말에 따르면, 신들 중에서도 이 신은 이것을 저 신은 저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또 서로 다른 것들은 아름답고 추하고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동일한 것들을 어떤 신들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신들은 부정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당신 주장입니다.... 당신이 제우스 신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크로노스 신과 우라노스 신에게는 미움을 사고 또 헤파이스토스 신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헤라 여신에게는 미움을 사는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8 : a ~ b)'


다.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세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이에 대해 에우튀프론은 모든 신들이 공통으로 사랑하는 것이 경건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지만, 이 역시 논박을 당하게 된다. 즉,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론으로 이 정의 역시 무력하게 된다.(에우튀프론 딜레마 Euthyphron dilemma)


 '아, 그럼 저는 모든 신들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경건한 것이고, 반대로 모든 신이 미워하는 것은 불경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습니다.( 9 : e)'


'어떤 것이 변하거나 뭔가를 겪는다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하는 게 아니라, 변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또, "겪는 것"이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라, 겪기 때문에 "겪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이것도 앞의 것들과 마찬가지겠지요?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지요?( 10 : c)'


 결국 에우튀프론은 정의를 내리는 것에 실패하고, 이제는 소크라테스의 도움을 받아 경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시작한다. 정의를 내리기 전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정의로운 것이 있는 곳에 경건한 것도 있습니까? 아니면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어서, 경건한 것이 있는 곳에는 정의로운 것도 있지만 정의로운 것이 있는 곳 모두에 경건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라면, 우리는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어떠한 부분인지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12 : d)'


라.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네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경건'을 '정의'의 부분집합으로 놓았을 때, 에우튀프론은 신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한 부분이 경건이라고 정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번에는 '보살핌'이라는 언어적 정의를 지적한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보살핌'은 '섬기기 기술'로 서로 합의한다. 


 '정의로운 것 중에서 신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된 부분이 신을 공경하는 것이자 경건한 것이고, 인간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된 부분은 정의로운 것의 나머지 부분입니다.(13 : a)'


 '당신이 "보살핌"이라는 말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신들에 대한 보살핌"을 이야기할 때 다른 것들에 대한 보살핌과 똑같은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경건함은 신들에 대한 어떤 보살핌입니까? 노예들이 주인들을 보살피는 바로 그런 보살핌입니다, 소크라테스님. 알겠습니다. 그건 신들에 대한 일종의 섬기기 기술일 것 같군요.(12 : d ~ 13 : d)'


마.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다섯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결국, 다섯번 째 정의에서 에우튀프론과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이란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을 올바르게 요청하는 일종의 상거래 기술'임을 도출하지만, 이후 논의를 진행하기 전 에우튀프론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면서 더이상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제사 지내면서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행할 줄 안다면 그가 그러는 것들은 경건한 것들이고, 그러한 것들이 사적으로 가정들과 공적으로 나라의 일들을 구원합니다.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에 반대되는 것들은 신에 대해 불손한 것들로, 이것들은 모든 것을 뒤엎고 파괴하지요.(14 :b)'


 '올바로 요청하기란 그들에게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로 주기란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선물로 갚아 주는 것이겠군요?... 에우튀프론, 그럼 경건함은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의 일종의 상거래 기술이겠군요.(14 : e)'


  <에우튀프론>은 이처럼 '경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이 대화편을 통해 그리스 다신(多神)에 대한 플라톤의 부정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절대적인 이데아 세계를 설명하는데, 여러 다른 신의 존재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그리스 전통신관과 다른 데미우르고스(demiurge)로 표현되는 플라톤의 신관(神觀)이 나오게 된 배경도 다소 나마 짐작하게 된다. 또, 논의를 통해 집합 명제와 관련된 내용과 언어정의의 중요성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정의(定意)를 하기 위한 기본수단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에우튀프론>은 짧은 초기 대화편이지만, 그 안에서 플라톤 철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와는 별도로 에우튀프론이 살인죄로 아버지를 고소하는 장면에서  논어(論語) 子路篇(자로편) 18장을 연상하게 된다. 섭공과 공자(孔子, BC 551 ~ BC479) 사이에 '직(直)' 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다음의 대화를 보면서 동서양(東西洋) 모두에서 부모를 고발하는 행동은 비록 그 부모가 잘못이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葉公語孔子曰  吾黨 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섭공어공자왈  오당  유직궁자  기부양양   이자증지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공자왈  오당지직자 이어시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숨겨줍니다. 그 가운데 정직함이 있습니다. (출처: http://ingee.tistory.com/361 [있는 그대로])


 또한, 이처럼 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덕목(德目)이라면, 이를 정의해서 형상(이데아)를 규명하고자 하는 플라톤(또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무모한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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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서양은 절대개념(신)이 없음 뭔 말도 성립이 안 돼요ㅎ;;; 그러믄서 뭔 잘난 척은 그리도 많이 하는지;
공자의 저 말은 상대성 속의 유동성을 말하고 있죠. 상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겨울호랑이 2018-01-20 20:16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서양철학은 신(神)의 존재와 함께 흘러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에서는 ‘절대진리=idea=神‘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에 반해, 동양에서는 ‘상황‘에 보다 집중하고 있는 것 같네요. <에우튀프론>에서 다신론에서 단신론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이 다음에 올 ‘절대진리‘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