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과 <닥터 지바고>를 허겁지겁 읽게 생겼습니다. 열린책들 오픈파트너이신 분 계시나요? 공지사항에 별 관심 안 두다가 오늘 페북에 들어가서 논란을 봤습니다.

1. 오픈파트너는 열린책들 세계문학이 이북앱을 런칭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먼저 투자받기 위해 내놓은 상품입니다. 정확한 가격이 기억나지 않는데 약 15만 원~17만 원 즈음의 가격으로 앱을 선구매 하면 향후 출간되는 세계문학 전자책을 계속 받아볼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2. 인기가 좋아 판매는 한 달 만에 끝이 났고, 앱은 런칭했으며, 북플에서 만든 리더기능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형광펜이 사람이 밑줄 친 것마냥 구불구불하게 표시된다든가, 각주 번호를 누르면 아래에서 팝업으로 뜨는 점 등이 신기했습니다.

3. 이후 알라딘, 교보, 리디 등 이북 서비스 회사가 확대되고 열린책들 앱은 기능에 있어 업데이트를 게을리하며 뒤처지기 시작합니다.

4. 사업상 어려움이 많았는지-정확힌 앱 오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사업을 정리(cyrus님 덧글 참조)- 열린책들은 북플과 연을 끊고 오픈파트너와 세계문학 이북 구입자들을 다른 서비스회사로 이관하기로 합니다.

5. 이관 회사는 교보sam과 리디북스인데 교보는 추후 업그레이드는 약속했으나 sam 사업 자체가 불안한 모양이라 이마저 없어져버리면 독자들은 갈 데가 없어지는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작권 등의 문제로 <악령>과 <닥터 지바고>는 읽을 수 없게 됩니다. 리디북스는 추후 출간되는 책들은 추가로 구매를 해야 합니다.

6. 많은 수의 오픈파트너들은 리디북스를 원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오픈파트너의 가장 큰 매력인, 새로 출간되는 책들을 사야 하지요. 이건 계약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7. 하여, 소송 준비 중인 모양입니다.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용돈을 아껴 책을 사면 집에선 쓸 데 없는 데 돈을 썼다며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는 분위기였고 현재도 좁은 집에 전집은 언감생심. 그러던 차에 비록 전자책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마련한 전집이라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돈에 비해 이 정도면 많이 읽었다 싶어 교보든 리디든 이관 결정이 기쁘기만 했는데 제가 참 게으르게 산다는 걸 느꼈네요. 어떻게 될지. 아무튼 저는 교보로 이관 신청을 했고, <악령>과 <닥터 지바고>가 빠진다고 하니 이 책들부터 먼저 읽으려고 합니다. 중간까지 읽고 덜 읽은 책들이 쌓여 있건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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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21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달 전부터 어플 오류가 많아서 이용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출판사가 오류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자책 사업을 철수하네요.

조그만 메모수첩 2019-06-22 07:41   좋아요 0 | URL
그런 사정이었군요.. 이용하는 동안 별 오류 없이 잘 사용했던 저는 운이 좋았나봅니다. 오픈파트너 가입시 이게 나름 목돈이다 보니 주변에서 그 서비스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며 말렸는데.. 대강 그렇게 되어가나 보네요 ㅠ

CREBBP 2019-06-22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책이... 애정하는 출판사이지만, 베르나르베르베르에만 올인하고 정작 열심으로 절판된 책을 이북으로 재출간하던 열정은 점점 사라지는 듯해서 애증이 교차하는군요. 제 경우는 알라딘에서 그냥 전자책 세트 구입했는데(생각만 해도 흐뭇) 얼렁 읽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조그만 메모수첩 2019-06-22 19:44   좋아요 0 | URL
저도 좀 기다렸다가 알라딘에서 이것저것 마련할 걸 그랬어요. 절판본 출간이야 말로 이북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안타깝네요 ㅠㅠ
 
거꾸로 보는 경제학 - 경제인이 되기 위한 깊고 맥락 있는 지식
이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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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제목으로 인기를 끄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따라하는 작명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생각나는 것으론 <과학 콘서트>의 ‘~ 콘서트’,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의 ‘거의 모든 ~’ <불편해도 괜찮아>의 ‘~ 괜찮아’ 등등. (물론 이 문구들은 이 책들의 출간 전에도 여러 번 쓰인 적도 있으니 원조(?)는 아닙니다만) ‘거꾸로 ~’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문구의 원조는 어떤 책이었을까요? 알라딘에서 출간일 순으로 검색해보니 푸른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거꾸로 읽는 책’시리즈 6권이 1989년에 출간이 되었네요.(2016년 출간한 23권 <꼼당선언>이 현재 이 시리즈의 마지막 책인 것 같습니다.)

‘거꾸로’는 상반된 의미로 사용됩니다. 통념을 뒤집는,의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도 있고, 바로 보/읽/듣/일하/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의미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거꾸로’ 100%의 의미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 <누구나 거꾸로 설 수 있다> 건강서적입니다. 표지 모델이 진짜 거꾸로 서 있습니다.)

<거꾸로 보는 경제학>은 전자의 의미의 ‘거꾸로’입니다. 뉴스에 범람하는 경제 정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통념을 깨면서 글을 진행합니다. 체계를 가진 책이 아니라 각종 예시를 통한 통찰을 전하는 병렬식 구성의 책이라 짬짬이 읽는데 부담이 없습니다. 저자가 기자인 만큼 글도 쉽게 풀어서 썼습니다. 정의의 가격, 혁신이 혹시 무임승차는 아닌지, 효율 추구의 함정, 경제지표를 다각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 등이 흥미진진하게 쓰여 있습니다.

저자 이진우 기자는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이며 팟캐스트 ‘신과 함께’의 진행자들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경알못이지만(경알못이라서? 솔직히 방송내용 다 못 알아 듣습니다 ㅠㅠ) 가끔 이 두 방송을 듣는데 이분 특기가 질문입니다. 살짝 비치는 자기 비하를 통해 방어막을 쳐놓고 인터뷰이가 타당하지 못한 말을 할 때 공격할 땐 청취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런 스타일 질문도 자주 합니다. 이해관계가 걸린 어떤 문제-금융상품 같은-의 장단점을 인터뷰이가 열심히 소개하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도에서 그칠 것을 꼭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 가지를 소개해주셨는데요, 그런 뫄뫄님 개인적으로는 어떤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셨나요?” 약간 능글맞지요.

종이책은 절판이라, 도서관 대여나 이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해도 좋을 책입니다. 저자 개인 의견이 많아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쉽겠다는 생각입니다.






* <신과 함께>를 다 듣진 못하는데 ‘신의 경제사 특강’과 ‘최준영의 지구본 연구소’는 챙겨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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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는 이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끄적이는 이유는 한때 이 병원의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독특한 생활방식과 의학에 관한 관점, 한옥을 개조한 병원 건물로 유명해져 여러 매체에 자주 소개되었습니다. 유방 염증에 관한 치료법이 미미하던 시기,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염증의 원인이 환경호르몬 등에 있다고 생각하고 비건 채식과 친환경 웰빙(?) 등을 치료법으로 표방, 명성을 얻었습니다. 필력도 좋아 저서도 여러 권이며,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이제 그 훌륭한 병원을 왜 그만 다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통증이 있고 멍울이 잡혀 혹시 유방암이 아닌가 두려움에 떨다가 검색을 통해 이 병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검진을 마치고(이 부위는 마취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암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만, 잘 치료가 되지 않는 염증으로, 결핵처럼 오래 바라보고 인내심 있게 치료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염증 치료. 치료 과정은 간단하지만 한편 힘듭니다. 의사도 환자도 둘 다 힘들어요. 먼저 리도카인으로 마취를 하지만 앞서 말했듯 마취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구로 속을 긁어 상한 부위를 제거하는데 그 고통이란 것이.. 제가 아픈 걸 잘 참지는 못합니다. 엄살이 심해 주사 맞아야 할 때도 간호사께 안 아프게 해주쎄용 완전 비굴모드로 굽신거리죠. 그런데 이 아픔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처음 경험해봤지요. 아무리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몸이 저절로 뒤틀리고 입술을 깨물어도 비명을 지르게 되더군요. 그때 의사가 소리 질렀습니다. 제가 움직여서 제대로 치료 못하겠다며 기구를 던지다시피 하고 나가버렸어요. 그리고 환부엔 빨대 비슷한 것이 꽂혔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다음 치료도 그 다음 치료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인간이 아니라 그냥 실험대의 동물 취급을 받는구나 서러운 생각이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참겠습니다를 한 열 번 정도 말한 것 같아요. 반성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환자의 장기적 건강을 위해 약을 쓰지 않으니 나같은 엄살 환자를 많이 봐서 신경이 날카로우신가보다. 그런데 네 번째 치료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그냥 염증 치료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몸보다 정신이 너무나 황폐해졌어요.

그리고 ㅂ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가서 ‘무조건 여자 의사샘으로 진료 받게 해주세요!’ 외쳤어요. 다음은 ㅂ병원 진료입니다.

1. 가슴을 드러냈으나 염증이 없는 쪽은 수건으로 덮어줬습니다.( vs 내가 치료 내내 상의를 끌어올려 잡고 있었음. 수건은 개뿔)
2. 초음파 젤이 체온에 맞게 데워져(?) 있었습니다.( vs 아 차가워)
3. 리도카인 주사 후 1분 정도 문지르며 뭔가 안심할 수 있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마취가 안 되는 건 사실이고 문지르나 안 문지르나 약효는 똑같다고 합니다. 제가 ‘또 소리 지르면 어떡하지요? ㅠㅠ (정말 수치스러웠습니다)’라고 하니 ‘아직 아무 소리도 안 지르셨어요^^’ 하는 대답이 은근히 힘이 되었습니다. ( vs 마음의 준비 같은 거 1초도 안 줌)
4. 현재 어떤 처치를 하고 있고 어떤 상태다 모니터를 환자 시야에도 하나 더 둬서 설명을 하며 치료합니다. ( vs 에헤이 움직이면 치료 안 된다니까! 버럭)
5. 아플 때 잡으라고 인형 같은 게 있습니다. ( vs 생략)

마취? 잘 안 됐습니다. 디지게 아팠어요. 그런데 몸도 안 뒤틀고 소리도 안 질렀습니다. 참을 수 있었어요. (의사 추임새 : 아이구 아프시겠다~ 아이구 잘 참는다~). 주사 맞았습니다. 항생제 복용했습니다. 몇 년 걸린다던 치료는 약 한 달 반 정도만에 끝났어요.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요 언제든 다시 염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하니까요.

투덜거리다가 글이 끝나게 생겼네요 -_-;;; 아무튼 ㅂ병원 의사도 내리 강조한 것은 채식입니다. 기름도 커피도 안 된다고 했어요(식물성 기름 포함). 채식인인데다 술 담배는 원래 하지 않으니 상관은 없었으나, 참기름 올리브유 등도 안 된다고 해서 좀 당황했습니다. 현재 기름없이 야채를 갈아서 스프처럼 조리해 만든 카레와 두부•야채만 넣어 직접 빚은 만두 위주로 식단을 구성해 먹고 있습니다. 초콜렛과 사탕은 조금씩 먹고 있어요. 가끔 리미터 해제의 날을 가져 꼬북칩이나 라면을 손을 덜덜 떨면서 먹습니다, 맛있어라 ㅠㅠㅠ

이상 한 엄살쟁이의 수난기였습니다. 임재양 선생님은 제가 후에 치료받은 ㅂ병원 의사샘도 존경하는 훌륭한 의사임은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상성 문제겠지요. 한편 면역에 관한 독서를 할 계획입니다. 뭘 읽으면 좋을까요? (<면역에 관하여> 제외)







* 쓰고 나니 뭔가 모르게 속이 시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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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5-25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웅~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겠어요~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제게까지 고통이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재발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나시길 기원합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9-05-26 08:27   좋아요 1 | URL
투덜거림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외칩니다 건강 최고..
 
굿바이, 게으름 -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10가지 열쇠, 개정판
문요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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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제겐 그렇습니다. ‘근대사회, 소외된 노동자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득도 및 지행합일을 이루었다고 착각하게 하는 팁들을 모은 종이 다발 플러스 저자 자기 자랑’ 정도가 이런 부류의 도서가 갖는 의미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멘탈 게이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 진통제 맞는 느낌으로 이런 책들을 읽곤 합니다. 읽을 상황이 아니면 이 부류의 제목들만 읽기도 하지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제법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 덕분에 일상에 규칙이 생겨 갈등상황을 큰 스트레스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요. 다만 플랭클린 플래너를 해마다 비싼 돈 주고 사서 폐지로 만들어 버린 일은 없었던 일로 하고 싶습니다(주먹울음).

<굿바이, 게으름>. 저같은 게으름뱅이가 아 읽어야지 하고 사놨다가 결국 안 읽고 말 것 같은 책이 가질 법한 제목입니다. 두 달 전부터 구독하고 있는 리디셀렉트에 들어와 있는 책 제목들을 슬렁슬렁 넘겨 읽다가 ‘그러고 보니 뽕 맞을 때가 되었군’ 하며 아무거나 찍어서 읽는다는 것이 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건질 것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자잘한 팁들을 그럴 듯하게 담아낸 책이 아니라, 게으름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라도 사람은 게으를 수 있습니다. 게으른 행동이란 ‘자기 실현’이란 삶의 목적을 상실하거나 소홀했을 때 행하는 모든 도피적 행동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융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적 상실엔 여러 동기가 있겠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개인이 겪는 정신적 상처나 곤궁 혹은 성장의 부재를 가장 크게 봅니다. 그러니 이런 도식이 그려지지요 ; 정신적 곤란 => 자기 실현 목적 상실 => 자기 실현을 위한 생활에서 도피(=게으름). 이후 책은 이런 도피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안을 워크북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워크북을 통해 단련되어 나오길, 필자가 바라는 독자의 모습은 ‘능동적이고 몰입과 휴식을 구분하며 실패로부터 배우고 하루를 반성하며 긍정에너지 충만한 인간’ 정도가 됩니다. (워크북을 따라하다 보면 이런 프로그램의 워크샵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데 책 제일 뒤에 저자가 운영하는 기관의 워크샵 소개가 뙇... #빅픽처)

그런데 말이지요, 저는 왠지 이제 더 이상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란 융의 말을 대전제로 놓아두면, 나머지 인생의 이런 저런 요령들은 연역적으로 딱딱 해결되지 않을지. 자기계발서 독자의 마지막 수업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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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금각사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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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승려의 아들로 태어난 미조구치는 자신없는 외모에 말을 더듬는 문제로 일찍부터 세상과 자신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그 공허한 거리를 메우는 것은 미에 대한 성찰과 탐닉이었지요. 그 ‘미’는 금각사로 형상화 되어 미조구치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의 열등감은 높은 담장이 되어 세상을 아래에 두는 거만함의 기반이 됩니다. 금각사는 이후 짝사랑하던 우이코의 이미지로 변형되기도 하는 등 그의 성장기에서 이성에 대한 욕망과 구별되기도,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아버지 사후 그는 금각사의 도제로 들어가고, 거기서 친구 쓰루카와와의 교제를 통해 밝은 세상에 편입되기도 합니다.

이후 차기 금각사 으뜸 자리에 대한 야망을 인정받아, 소원대로 노사의 총애를 받게된 그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거기서 안짱다리를 가진, 또한 휘어진 다리 못지 않게 휘어지고 뒤틀어진 정신세계를 가진 가시와기와 교제합니다. 롤모델이 되어 마땅함직한 노사의 부정을 목격하고 노사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부정과 암묵적인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미에 대한 문제는 미조구치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미조구치 역시 이에 집착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까지, 금각사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험담부터 좀 하겠습니다.
1. 여성에 대한 시각이, 당대 세태를 감안해서 까방권을 준다 하더라도 불쾌하기 그지 없습니다. 여성이 사람이란 걸 전혀 감안하지 않습니다.
2. 현실에 발 딱 붙이고 밥 먹고 열심히 살면 안 되겠니?
3. 남성성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모르는 작가의 집필 태도 괴롭습니다.

작품이 총 100으로 되어 있다면 여기서 위의 3을 빼고, 나머지 97은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기껏 천재로 태어나놓고 왜 인생 후반을 작가는 그렇게 살고 말았을까 안타깝고 애석하지요. 탐미의 문제에 있어선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또한 그에 맞선 대결이 한 인물의 인생을 끌어가는 줄기라는 것, 허무를 통해 완성하는 존재에 관한 고찰(이 부분이 상당히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구요), 성욕을 통해 보여주는 생명과 소멸에 관한 인식, 이 정도가 단편적으로 머리에 떠돌 뿐입니다.

다만 좋았던 97의 지분은 문장 속에 결마다 스며든 유려한 감정 묘사와 통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문 몇 개를 들면 이렇습니다.

“그는 정말로 선의의 통역자, 내 말을 현세의 말로 번역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렇다. 때로는 쓰루카와가 납에서 황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사진의 음화, 그는 양화였다. 한번 그의 마음으로 여과되면 나의 혼탁하고 어두운 감정이 하나도 남김없이 투명한 빛을 발하는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던가! 내가 말을 더듬으며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쓰루카와의 손이 내 감정을 뒤집어서 외부로 전해준다.”

“하나의 솔직한 감정을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정당화하는 동안은 좋으나, 때로는 두뇌에서 만들어낸 무수한 이유들이 자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을 스스로 강요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역시 내 체험에는 누적이라는 것이 없었다. 누적되어 지층을 이루고 산의 모양을 형성하는 따위의 두께가 없었다. 금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사물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친근감을 품지 못했다. 단지 그러한 체험 중에서 어두운 시간의 바다에 휩쓸려버리지 않는 부분, 무의미하고 끝없는 반복으로 함몰되지 않는 부분, 그러한 작은 부분의 연속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의 꺼림칙하고 불길한 그림이 점차로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맥락 속에서 생명력을 가진 문장들을 칼로 도려내듯 떼어와서 인용하니 그 싱싱함을 잃어버렸지만, 이런 표현들이 독서 당시 마음에 일으킨 파문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다소 정적으로 진행되던 줄거리가 후반부 급물살을 타며 긴장감으로 터질 듯할 때 이 파문은 큰 파도가 되지요.

독자에 따라 호오가 갈릴 것 같은 작품입니다. 현란한 기교로 때우는 소설로 읽힐 수도, 탐미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여 속세로부터 보호해주는 피난처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추천하고 싶습니다.






* 1950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읽었는데 덕분에 후반에 줄거리가 갖는 긴장감을 ‘스포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읽다가 뒤집어지게 웃은 부분이 있었는데 각종 뜬구름 잡는 소리로 사람 불편하게 하는 가시와기가, 돈 문제가 딱 걸리자 무섭사리 현실모드로 전환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도 만만치 않아 떼먹을 궁리부터 합니다. 이런 묘사가 없었으면 소설은 상당히 느끼했을 것 같습니다.

* 마루야마 겐지는 미시마 유키오의 저격수였던데, <금각사>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궁금합니다.

* 20대 남자들 허세는 시대와 장소 불문 견디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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