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는 <텔레비전에 관하여 Sur la television>에서 자신의 이론인 '상징적 폭력'과 '장(場) 이론'을 구체적으로 펼치고 있다. 텔레비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검열은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상징적 폭력)의 방편이며, 텔레비전은 이를 둘러싼 여러 이익집단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장(場)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부르디외가 말한 텔레비전의 검열과 장의 내용 그리고 미디어의 전망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 검열 : 상징적 폭력


 부르디외가 지적한 텔레비전의 부정적 기능 중 하나는 '검열(檢閱)'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가 아닌 텔레비전에 비춰진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검열 기능은  뉴스의 전달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기자들에 의해 지각된 것이고, 이것은 곧 기자들에게 '잘 보임'을 뜻합니다. 철학자나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에 의존할 수 없게 된다면, 가능한 한 자주 방송 화면에 나타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p21)... 텔레비전에 접근하는 것은 무서운 검열을 반대급부로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율성의 상실로서, 무엇보다도 주체에 강요되는 커뮤니케이션이 조건입니다. (p24)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텔레비전은 상당히 많은 인구의 두뇌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정보전달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다양한 일상사를 강조하면서, 그리고 텅 비고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귀중한 시간을 때우면서, 시민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적절한 정보들을 멀리하게 만듭니다.(p29)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2. 장(場) 이론 


 부르디외는 사회 공간을 '장'으로 인식하는데, 특히, 저널리즘(journalism)이라는 장은 외부성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에서 행해지는 외부성은 광고주, 정치집단과 텔레비전을 소유한 매체, 텔레비전 컨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에 의한 압력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장(場)이란 구조화된 사회 공간입니다. 힘의 장에는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이 있어서, 이 공간 내에서는 항시적인 불평등의 관계들이 있습니다. 힘의 장은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기도 합니다.(p70)... 저널리즘의 장은 하나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문화의 장들, 즉 수학의 장, 문학의 장, 법의 장, 학문의 장 등보다 훨씬 더 외부의 힘들에 종속되어 있습니다.(p91)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텔레비전에 압력을 행사하는 힘 중 하나인 미디어 업체는 최근 자본의 집중화, 거대화라는 분위기에 맞춰 소수의 기업에 집중화되고 있다. 반면, 시청자의 관여정도가 높은 텔레비전 매체 특성 상 시청자들의 의견 역시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청률 조사'를 통해 프로그램의 존폐가 결정되는 미디어의 현실은 이를 잘 설명한다고 여겨진다. 


 세계화를 다룬 저서에서 데이비드 헬드 David Heild와 그의 동료들은 세계적 수준의 미디어 질서를 가져온 다섯 가지 핵심 변화(세계적 미디어 소유권의 집중 증가, 사적 소유권으로의 전환, 초국적 기업 구조, 미디어 산물의 다변화, 증가하는 미디어 합병)를 지적했다.(p783) <현대 사회학> 中

 

 텔레비전은 선명도가 낮기 때문에, 시청자의 관여의 정도가 높다. 따라서 가장 효과 있는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어떠한 과정으로 구성된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다.(p442)... 사람들이 텔레비전 영상을 통하여 깊은 경험에 몰입하게 된다는 사실은 시각적 공간과 모자이크 공간의 차이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p461)<미디어의 이해> 中


 텔레비전에서 시청률은 완전히 특별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긴급성의 압력으로 전환됩니다. 신문들간의 경쟁, 신문과 텔레비전의 경쟁, 텔레비전들간의 경쟁은 일등이 되기 위하여 '속보'를 얻기 위한 일시적 경쟁의 형태를 띱니다.(p46)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텔레비전에 대하여>를 통해서 부르디외는 텔레비전을 '상징적 폭력이 행해지는 장'이라고 생각하면서, 텔레비전은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결론짓는다. 부르디외의 이러한 결론은 최근까지 정치권력에 의한 왜곡 보도 등을 통해 텔레비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경험한 우리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텔레비전을 거부하고 기피할 것인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의견을 통해 살펴보자.


 저는 책임의식이 강한 언론인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진실로 말해서, 텔레비전은 정치적 삶과 민주주의에 큰 위험을 준다고까지 생각합니다.(p11)... 텔레비전은 일부 신문과 같이 가장 광범위한 수용자를 찾아서, 외국인을 싫어하고 인종차별적인 선언과 행동을 인정하거나, 정치에 있어서 민족주의가 아닌 협소한 자국적 비전을 매일 보여 줍니다.(p12)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3. 텔레비전에 대한 같은 생각, 다른 대처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 ~ )은 1999년 EBS를 통해 <노자와 21세기>라는 주제로 텔레비전 강의를 했었다. 저자는 같은 제목의 책 서문에서 자신이 텔레비전 강의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방이후의 우리사회의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변화의 상당부분이 우리 삶의 공간으로 테레비라는 괴물이 진입함으로써 생겨난 사태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p9)... 사실 테레비는 이미 어떤 "물건"이나,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나로부터 객관화되고 타자화될 수 없는 "사회"다.(p10)... 국민을 교육시킬 수 있는 매체로서 국가정책의 효율성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테레비만큼 강력하고 효율적인 매체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현실이다.(p13) <노자와 21세기>(상)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대해 부르디외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도올 김용옥은 가치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두 저자의 글 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절대(絶對)'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 현실이라 여겨진다. 그 중에서 어느 면을 더 크게 보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자신의 철학(phliosophy)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제국주의에 대한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의 전망을 옮기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치고자 한다. 자본의 집중화에 따라 미디어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요즘, 기든스는 미디어 생태계의 자정(自淨)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역시 어느 면을 더 크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라 여겨진다...

 

 몇몇 미디어 기업의 손에 있는 인터넷의 전망은 불과 몇 년 전 인터넷 개척자에 의해 받아들여졌던 자유롭고 무제한적 전자 세계의 생각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는 불가피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보원과 유통 채널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거의 성공하기 힘들 터인데, 독점 방지를 목표로 하는 앤티-트러스트(anti-trust)법 때문이거나, 아니면 대안적 정보원을 찾고 있는 미디어 사용자의 집요하고 창조적인 반응을 통해 제동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형태와 내용이 그 범위와 분량에서 확장을 거듭함에 따라, 개인들은  접하는 메시지와 자료들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 미숙이 아니라 원숙해지는 것이다.(p786) <현대 사회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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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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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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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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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5: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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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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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1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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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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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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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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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 ~ )는 <다중지능 Multiple Intelligences>속에서 인간의 지능을 8개의 지능으로 구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능이란 시간, 장소, 문화에 의해 정의되며, 어떤 상징도구를 활용하여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업적을 산출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지능은 단일한 것이 아니다. 

 

 지능은 시간, 장소, 문화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는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정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1) 농업, 문학, 예술 같이 문화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영역(domains)과 (2) 어른에 대한 존경, 학문적 전통의 보존, 실용적 해결책의 선호같이 문화 내에 깊숙히 뿌리박힌 가치들(values), 그리고 (3) 개인의 다양한 역량(competences)을 키우고 육성하는 교육체계다.(p239) <다중지능> 中


 가드너는 <다중 지능>에서 8가지의 지능을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공간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대인 관계 지능, 개인 이해 지능, 자연 이해 지능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 8가지 지능의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지만, 이들이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여기에 '실존지능'도 추가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 어떤 지능이 추가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지능은 IQ 검사 하나로 결정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드너는 앞서 기술한 정의와 기준을 활용하여 여덟 가지의 지능을 규명하였다. 첫째, 언어 지능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사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둘째, 논리-수학지능은 추상적 관계를 활용/이해/분석하는 능력이다. 셋째, 공간 지능은 시각적/공간적 정보를 지각하고, 이 정보를 변형하여 기억으로부터 시각적 이미지를 재창조할 수 있게 해 준다. 넷째, 음악 지능은 소리로부터 만들어지는 의미를 창조, 소통,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섯째, 신체-운동 지능은 문제 해결과 생산물을 창조하는 데 신체의 일부분 또는 전체를 활용한다. 여섯째, 대인 관계 지능은 타인의 느낌과 의도간의 차이를 식별하고 문제 해결에 이러한 능력을 적용할 수 있다. 일곱째, 개인 이해 지능은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인식, 판별하고 자신의 정신적 모델을 구축하며, 이러한 모델을 삶에 대한 결정에 활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자연 이해 지능은 사람들에게 자연 세계의 특징을 식별, 분류 및 활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p7) <다중지능 학교사례> 中 


 가드너가 <다중 이론>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지능이 여러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여러 잠재적 가능성인 다중 지능을 통해 획일적인 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저자가 <다중 이론>을 주장한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획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즉 모든 아동들이 같은 것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방식에 얼마나 길들여졌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다. 물론 이런 접근은 학술적으로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p5) <다중 지능> 한국어판 서문 中


 그렇다면 저자가 말한 <다중 지능> 교육의 실제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획일화된 현대 평가 방식 대신 과거 도제제도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즉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와 관련한 대안도 다른 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 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들고, 교육과정이 맥락에 기초하여 평가될 수 있도록 영역 프로젝트나 프로세스폴리오와 같은 활동을 고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제제도를 부활시키자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도제제도가 현대의 평가 방식에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p230)...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p231) <다중 지능> 中


 <다중 지능>에서 제기한 교육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안들은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예술 교과들인 글쓰기, 음악, 미술 분야에서 다중 지능을 고려한 학습 평가 방향이 각각 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문학, 음악, 미술 이라는 다른 분야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프로펠 모델'에 따라 수업과정을 설명을 하고 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 프로펠의 모델에 근거하여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과연 프로펠은 어떤 교육적 활동인지 이해하는 것이 책의 근본적인 목적을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첫째 프로펠의 첫 번째 구성요소는 지각(Pereception)이다. 지각은 관찰과 외부 환경에 대한 학습의 동기화를 강화시키는 학습활동이다... 두 번째 구성요소인 창작(Producion)은 지능이 실제 세계에서의 산물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 내리는 인지심리학자들의 주장이 그대로 구현된 수업활동이다. 세 번째 구성요소는 반성(reflection)이다. 반성은 최근 학습에서 강조되고 있는 초인지(Meta-cognition) 기술을 강화하기 위한 수업활동으로서, 최근 학교 교육 목표 연구자들에 의하여 학교 교육이 학생들에게 강조해야할 가장 중요한 탐구기술로서 인정받고 있다.(p7)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 Arts Propel 1 : 창의적 글쓰기> 中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에서 학생들은 감상자가 아닌 창작자(작가, 연주가, 화가)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과정 중 일지 작성을 통한 과정 관리와 교사와 동료들에 의한 다면 평가를 통해 입체적인 조언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교육에서는 피교육자와 교육자가 2차원의 원(圓)과 같은 관계를 맺었다면, 이제는 동료와 지역사회 등이 추가되어 3차원의 구(球)와 같은 관계를 맺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보다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그림] 구와 원(출처 : 위키백과)


 포트폴리오는 학생들의 작품집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다시 보고 반성을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을 교사와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스스로 수행한다. 학생들은 그들의 작품묶음을 보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작품들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교사들은 이런 반성적 과정을 이끌어 내고, 가끔씩 포트폴리오 자료들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기 위해 과제를 준다.(p47)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 Arts Propel 1 : 창의적 글쓰기> 中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에서 저자는 예술 교과에 대한 초/중등학생들의 교과과정에 대해 다루지만, 저자는 예술 지능 자체는 없다고 단언한다. 대신, 다른 지능의 예술적 발현되는 것을 '예술적'이라고 해석한다. 저자의 이러한 해석은 지능들이 각기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관련을 맺고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역량',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결국 지능들의 복합적 표현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강점(强點)을 통해 약점(弱點)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엄격하게 말하면 예술 지능은 없다. 그보다는 지능이 예술적으로 혹은 예술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 책에서처럼 언어를 설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언어지능을 심미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언어를 은유적으로 또는 파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언어 지능이 예술적으로 활용된 것이다.(p110) <다중 지능> 中


 결국 <다중 지능>을 활용한 교육은 강점을 활용한 교육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중 지능을 활용한 교육 사례를 담은 이 책 속에서 저자는 강점 활용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슈나이더는 "교사는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여 가르치고 약점은 강점을 활용하므로 보완됩니다."라고 말하였다. 강점에 대한 강조는 아동을 교육과정에 몰입하도록 도와주며 이는 학습에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다... 이 교실의 교사들은 종종 아동의 강점을 활용하고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역할과 작업을 창출할 기회를 지원한다.(p152)<다중지능 학교사례> 中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이를 통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중 지능> 교육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각각의 지능은 실제 생활의 성공에 기여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는 아동이 가진 보다 광범위한 강점을 다루어 주어 학교 밖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p8) <다중지능 학교사례> 中 


 다중지능이론은 교육 이외의 영역에도 효과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개인, 팀, 조직은 훨씬 더 복잡한 환경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인적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p281) <다중 지능> 中


<다중 지능>에서는 이처럼 인간의 여러 가능성을 긍정하고, 평가와 피드백(feedback)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강점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자들에게 과정을 중시하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것을 요청한다. 여기에, 교육을 '피교육자-교육자'의 관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동료 학습자들의 협조도 또한 다중 지능 교육에서 강조되는 사항들이다.


 최근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교육감(敎育監)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전체 17곳에서 14명이 당선되었다. 진보교육감들의 공통된 교육방향 중 하나인 '혁신학교'는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중 지능>과 통하는 면이 있다 여겨진다. 혁신학교와 관련된 엇갈린 의견도 많지만, 단일화된 평가를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성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만큼 보다 성공적인 제도의 안착을 기대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 지능>에서 다음과 같이 학습부적응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소개한다. 이와 관련하여 보다 많이 알고 싶은 분들은 저자의 다른 책 <열정과 기질>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인간의 운명은 불가항력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삶의 궤적은 상당 부분 각자가 개발해온 능력과 기술로 구성되고, 각자가 타고난 또는 생의 초기에 발달시킨 지능 프로파일이 하나의 척도가 되어 삶의 궤적에 영향을 미친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학습에 심각한 문제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문제로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여 각자의 고유 영역에서 비범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교육의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강점과 성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p183) <다중 지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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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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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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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 1343 ? ~ 1400)의 작품으로 켄터베리를 향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순례를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페이퍼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켄터베리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원래 120개의 이야기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토머스 베게트(Thomas Becket, 1118 ~ 1170)의 사당을 향해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여행의 지겨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초서는 이 120개 이야기 중에서 스물한 개를 완성했고 세 개는 미완 혹은 중단된 상태로 남겨 놓았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성지(聖地)를 향한 공통된 목적을 지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었다. '하나된 신앙' 이 강조된 중세의 질서 안에서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종교행사인 순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건 사회는 아주 촘촘한 알갱이들로 형성된 구조였다. 이 사회는 너무 빽빽한 덩어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개인들은 당시의 '프라이버시'라 할 수 있는 행위로, 비좁은 공간의 과도한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주위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두르며 꼭 닫힌 정원에 자기를 가두려고 했다... 누군가가 외따로 떨어져 있다면 설령 나쁜 짓을 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저지를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광기의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였다.(p717) <사생활의 역사 2> 中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의미하는 순례는 중세인들에게는 일종의 '세례(洗禮)'와 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는 의미와 함께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녔기에, 중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이성은 그들에게 낯선 곳, 다시 말해 고립을 벗어나 질서 속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명으로의 복귀는 그들에게는 사생활로, 궁정으로, 다시 말해 집단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거기로 돌아가지만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정화되고 쇄신된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위험과 고립 같은 힘든 시련은 강한 자들과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지고의 선을 행해 나아갈 기회였던 것처럼 보인다.(p718) <사생활의 역사 2> 中


 공통의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 안에서 어느 누군가가 육욕(肉慾)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야기 속에서 교회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聖)과 속(俗).<켄터베리 이야기>의 세계관을 요약한다면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음란한 색욕(色慾)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음탕한 욕망은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음란한 행위는 차치하고, 그런 죄를 범하겠다는 의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만신창이가 됩니까! (p162) <켄터베리 이야기> - 변호사의 이야기 - 中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야곱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위대한 성인(聖人)이에요. 그런데 많은 다른 성인들처럼 두 성인도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어요... 동정이나 처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지키는 것이에요... 내 남편이 죽으면, 내가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두 남자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역시 죄가 아니랍니다. (p17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켄터베리 이야기>는 당대 지배층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중세의 가을 Herfsttij der Middeleeuwen> 속에서 중세의 두 기둥이라고 표현한 기사(귀족), 학자들 역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중세 기사도 이상의 표본적 인물로 칭송되는 부시코 Boucicaut의 전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의지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것이 주어졌다. 그것은 신성한 법과 인간의 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두 기둥은 기사단과 학자들이다.(p139) <중세의 가을> 中


 귀족이란 말은 자비를 베푼 선조들의 명성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예요. 귀족적인 성품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의 진정한 귀족적 성품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오는 것이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것이 아니에요. (p20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연금술을 배우면 이런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아주 이상한 전문적인 말들입니다. 그래서 난해한 학문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작업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재주를 부려보았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p518) <켄터베리 이야기>  - 성당 참사회원 종자의 이야기 - 中


 성직자 역시 <켄터베리 이야기> 속에서 풍자 대상으로 등장한다. 다만, 하위징아는 거대한 교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대중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에 대한 조롱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같은 지배계급이었지만, 친근감을 가졌다는 면에서 중세 성직자는 기사, 학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이 부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삼부회( Etas Generaux)를 구성했던 제1신분, 2신분이었던 성직자,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시각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니, 잠시 접어두고 간다.)


 제 목숨을 걸고 말하는데, 아마 여러분들은 방귀 소리와 악취가 동일한 속도로 열두 개의 바퀴살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고해 수사님은 매우 고귀한 분이시므로 이 지위에 걸맞게 방귀 소리와 냄새를 가장 먼저 맛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만 해도 교단에서 훌륭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방귀 냄새를 처음으로 맡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p236) <켄터베리 이야기> - 소환리의 이야기 - 中 


 그 시대의 일상적인 종교 생활은 불쑥 정반대의 입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어떤 때는 사제와 수사에게 조롱과 증오심을 쏟아 부었으나, 그것은 동전의 표리(表裏)처럼 마음속 깊이 품은 애정과 존경심의 뒷면일 뿐이었다. (p338) <중세의 가을> 中


 그렇지만, 목적지인 켄터베리에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띄게 되고, 결국 죄의 용서와 참회, 구원 등 교회 교리를 주제로 한 본당신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면 이처럼 복된 나라를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살면 하느님의 영광을 얻을 것이고, 굶주리고 목마르게 산 사람은 천국의 완전한 기쁨을 누릴 것이며, 열심히 일한 사람은 평안을 얻을 것이고, 죄를 뉘우치고 죽은 사람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켄터베리 이야기> - 본당신부의 이야기 - 中 


 여러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와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종교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켄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순절 직전의 사육제를 떠올리게 된다. 성스러운 성지 순례 이전 여행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순 기간 금육(禁肉), 금식(禁食)의 고통을 덜기 위해 행하는 사육제(카니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사육제과 사순절의 싸움( 출처 : http://www.pictorem.com/24201/Fight%20Between%20Carnival%20and%20Lent.html)


 카니발 Carnival  :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절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제전(祭典).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하는데, 라틴어의 카르네 발레(carne vale :  고기여 그만) 또는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 고기를 먹지 않는다)가 어원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로마 사람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들의 농신제(農神祭)를 인정한 것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제전이었다. 이것이 계승되어 매년 부활절 40일 전에 시작하는 사순절 이전 즐겁게 노는 행사가 되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켄터베리 이야기>는 이처럼 14세기 중세 영국 사회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비록 중세 음악은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중세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켄터베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클리프턴 패디먼(Clifton Fadiman, 1904 ~ 1999)의 <평생독서계획 The New Lifetime Reading Plan>에서 소개한 감상포인트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에 대한 페이퍼를 마친다. 



 맨 앞에 나오는 프롤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영문학 사상 가장 훌륭한 초상화의 갤러리이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은, 기사, 방앗간 주인, 수녀원장, 수녀시승, 면죄승, 바스의 여장부, 서기, 상인, 수습기사, 수도참사 회원의 종자의 이야기 등이다. 또한 여러 편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각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대화들을 읽을 것을 권한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이야기의 동시대성은 각자의 언어적 개성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여행'이라는 서술 맥락으로 수용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잘 들어났다... <켄터베리 이야기>는 산문 형식의 두 글인 멜리베오의 이야기와 파로코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2행 시절로 되어 있다... <켄터베리 이야기>의 문학적 꾸밈은 이야기꾼의 두 가지 기능으로 지탱된다. 초서는 저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나 마지막에는 교육적-그리스도교적으로 충분한 목적성을 보여 주지 못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를 전부 부정했다... 초서는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보카치오처럼 폭넓은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과 활력, 복합적 특징을 부여했다.여기에는 매우 이질적인 주제와 양식, 구조가 공존했다.(p771) <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나가기 전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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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모순적인 사육제와 사순제가 붙어 있는 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 말입니다(왜 군대식 말투가...). <켄터베리 이야기>가 고상한 척하는 지배층의 아주 세속적인 적나라함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여기 우리는 모두 방귀 안 뀌는 듯이 좋은 말, 문장을 구사하는 것에 기를 쓰고 있지만 인간은 아무리 미인도! 누구나 하루에 7번 이상은 방귀를 뀐다는 과학적 보고가...(곰곰이 내 하루를 뒤돌아보며)....인간의 뗄 수 없는 양면성을 말한다는 게 갑자기 방귀에 꽂혀서.... 댓글에서 방귀 냄새 풀풀))) 죄송합니다...(이 댓글은 망했....);;

겨울호랑이 2018-06-16 19:37   좋아요 2 | URL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반대로 ‘그런 척‘하면서 살기도 하구요... 적당히 알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삶인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규정한 형이상학적 가치는 사람을 질식시키네요... 방귀처럼 말입니다 ㅋㅋ

2018-06-16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16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독서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지...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6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북다이제스터님의 깊이 있는 독서가 더 부럽습니다.^^:)

2018-06-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8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6-18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어 살짝 다녀가려 했는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셨군요.
연의 어린이 완전 멋진걸요.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여러모로 보시하고 게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8 12:22   좋아요 0 | URL
중세와 관련된 내용을 얼기설기 엮은 페이퍼라 좀 길었습니다. 연의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여당의 압승과 야권의 궤멸'로 끝난 이번 선거를 어느 한 유권자의 입장에서 선거 성격과 선택 배경 등을 정리해 보려한다.


 1. 지방선거 : 양자 운동과 중력 사이 그 어딘가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 중 가장 큰 10의 15승 미터가 중력과 중력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면, 가장 작은 단위에서 볼 수 있는(10의 -16승 미터) 몇 가지 장면들은 양자 운동의 예가 된다. 이들은 뉴턴의 법칙이 아닌 새로운 법칙을 따른다. 중력 효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 영역은 양자 운동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일상 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달력도 아니며, 어느 정도 우연하게 중력계에 존재하는 궤도들도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물질의 안정성이다.(p27) <10의 제곱수> 中


 지방선거는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을 선출한다는 의미와 함께 중앙정부에 대한 민심을 전달한다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 때마다 정권심판론과 인물론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선거의 성격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두 상이한 성격은 내용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좌우하는 미시의 세계와 중력의 지배를 받는 거시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자연세계와 정치세계에서 우리는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발견하게 된다. 현재까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이론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지방선거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물리학과 정치학의 공통점이라 여겨진다. 다만, 물리학의 세계와 달리 이들 법칙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차이점인 듯하다.


2.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그림] 제1차 삼두체제 당시의 세력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aesar%27s_Civil_War)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다음해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놓여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소야대, 경제적으로는 재벌개혁과 소득불균형, 외교적으로는 남북문제 등으로 문재인 정부는 많은 개혁과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서 주도권을 잡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BC 106 ~BC 48)에게 역(逆)포위되어 있었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현재 한국의 현실은 짙은 어둠 안에 놓여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과거보다 상황은 조금 나아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해결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여러 부분에서 야당(특히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인해 개혁이 무산되는 것을 유권자들을 지난 1년동안 지켜봐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갈리아와 로마의 국경 지대인 '루비콘 강' 앞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망설인다. 이대로 강을 건너면 반란의 주역이 된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그는 결국 루비콘을 건넌다(p17)... 폼페이우스는 일단 이탈리아를 벗어나 그의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중해와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고자 했다. 추격 도중 잠시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는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취임하면서 로마의 내정을 돌본 후 급히 다시 폼페이우스를 뒤쫓는다.(p19) <카이사르의 내전기 Commentarili De Bello Civili> 中


3. 유권자의 선택 : 차선의 이론

 

 최근 유권자들은 여러 개혁 과제들이 독립된 과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문제임을 확인해왔다.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구하는 것처럼 어떤 선택지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차선의 이론'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차선의 이론에 따르면 충족되는 효율성의 조건의 수와 사회 후생의 극대화와 반드시 관련있는 것만은 아니다. 차선의 이론은 우리에게 현재의 제약조건은 순차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개선되어야함을 알려준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서는 n개의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중 하나가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할 때, 나머지 (n-1)개의 조건만은 모두 만족되는 것이 차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는 이와 같은 직관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이미 하나 이상의 효율성 조건이 위배되어 있을 때는 충족되는 효율성 조건의 수가 늘어난다 해서 사회 후생이 더 커지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p572) <미시경제학> 中

[그림1] 차선의 이론(by 겨울호랑이)


[그림1]에서 원점에 대해 오목한 생산가능곡선과 몇 개의 사회무차별곡선들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배분은 E점이 의미하는 쌀과 옷의 조합이 생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선분FG로 대표되는 이 선분의 바깥쪽에 있는 상품의 조합은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이 제약하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점이 반드시 생산의 효율성을 의미하는 생산가능곡선 위에 위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보면 생산가능곡선 위의 H점에서 보다 그 곡선 위에 있지 않은 I점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p573) <미시경제학> 中


4. 유권자의 제약 배경 : 불가능성정리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49060.html


  이에 대한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응 논리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였다. 문재인 독재를 방치할 경우 개별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한데, 이들의 논리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결국 이슈가 독재와 사회개혁으로 압축된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는 '불가능성 정리'라는 제약조건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사회적 효율성과 독재성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성 정리의 핵심이다.


 애로우(K.Arrow)의 불가능성정리(不可能性定理, impossibility theorem)는 바람직한 성격을 두루 갖춘 사회 후생함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함으로써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불가능성정리는 사회적 선호체계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성격으로 다음의 네 가지 공리(axiom)를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애로우는 이들 공리 중 1), 2), 4)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호체계는 반드시 공리 3)을 위배하는 것을 증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가능성정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문재인 독재를 공격하는 이론적 논거가 될 것이다)


1) 완비성(完備性, completeness)과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 : 모든 사회적 상태를 비교,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a / b / c 라는 세 사회적 상태에 대해 a를 b보다 더 선호하고 b를 c보다 더 선호한다면 a를 c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2)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 :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a를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사회도 a를 b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3) 비독재성(non-dictatorship) :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의 선호가 전체 사회의 선호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4) 제3의 선택 가능성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 a와 b의 두 사회적 상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이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의 선택 가능성 c의 존재는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p571) <미시경제학> 中


 결국,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 놓여진 과제 상황은 사회후생의 극대화를 위해 어느 조건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개혁은 단숨에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개인적으로 부패한 독립군'과 '개인적으로 훌륭한 일본제국군인'이 선거에 나왔을 때,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 개인의 품성보다 그가 속한 조직을 보고 선택한 것과 같은 결과가 이번 선거에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지방 선거 이후 과제와 정리


 참패를 한 야당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권인 여당에게 주는 국민의 메세지가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임을 <확장된 표현형 The Extended Phenotype>의 표현을 빌려 옮겨본다. 유전자가 적응의 수혜자라는 자연 법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가 멸종하는 바와 같이 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이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라 분석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떤 행동 유형이 부적응이라는 말은 오직 이를 수행하는 동물 개체에서만 부적응이라는 뜻이다. 행동을 수행하는 개체는 적응인 행동으로 이득을 얻는 존재자가 아니다. 적응은 개체를 만든 유전하는 복제자에게 이익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 동물 개체에게 이익을 줄 뿐이다.(p454) <확장된 표현형> 中


 선택은 다른 유전자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하는 유전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 결과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한다....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신조에 따라 유전자(유전하는 복제자)가 내는 표현형 효과는 세계 전체에 미친다고 보는 것이 최선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개체나 다른 어떤 운반자에게 효과를 미치는 일은 그저 부수적 사건에 불과하다.(p227) <확장된 표현형> 中


[사진] 사진으로 요약한 제7회 지방선거 : 정의, 평화 그리고 심판(by 겨울호랑이)


PS. 선거에서 '차선의 이론'의 결론을 피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은 아이러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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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6-15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급스러운 글을 읽는 기분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6-15 11:26   좋아요 0 | URL
^^:) 조금 아는 것을 이어붙여 길게 늘어졌습니다 ㅋ 감사합니다

2018-06-15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15 14: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묵직하기가 하늘입니다 ㅎ

겨울호랑이 2018-06-15 14:40   좋아요 3 | URL
에고... 여러 이야기를 담다보니 글이 무거워졌네요 ^^:)

나와같다면 2018-06-15 17: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

그들이 이 무게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5 17:47   좋아요 3 | URL
정말 그래야겠지요... 물론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유권자들은 또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민주당 자신을 위해 깨달아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cyrus 2018-06-15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 언론들은 ‘야권의 궤멸’을 ‘보수(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의 궤멸’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그렇게 보시는 것 같고요. 선거 전부터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대결 구도 프레임으로 정치 지형을 분석하는 방식에 불편합니다. 이러한 분석 관점은 나이브합니다.

심각한 건 언론은 정의당, 녹색당, 민주평화당, 노동당 같은 진보 정당들의 정책 어젠다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선거 결과 이후 전체적으로 보면 진보 정당들이 약진한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정책 어젠다나 정치 이슈가 장기적으로 알려진다면, 진보 정당들도 불리합니다. 그럴수록 유권자의 선택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겨울호랑이님이 유권자의 선택을 분석한 관점(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 원론적으로 맞을지 모르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어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모두 싫어서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원내정당인 정의당뿐만 아니라 원외정당에 속한 진보 정당들(녹색당, 노동당)도 정책 어젠다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진보 정당들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았고, 진보 정당들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들려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이러니까 국민들은 진보 정당들은 정책 어젠다를 못 내놓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2중대’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대결 구도 프레임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론과 국민이 쏠리는 관심 정당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국민이 다양한 정당의 정책 어젠다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6-15 20:51   좋아요 4 | URL
먼저 cyrus님께서 좋은 의견 말씀해주셔 감사합니다. 그리고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다양한 정책 어젠다로 가야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 저또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전에 선행과제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선거제도 개혁 같은 부분이 있겠지요. 현재의 소선거구제 하에서 진보 정당을 비롯한 중소 정당들이 의회 진출할 길은 많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전에 중선거구제 도입 등의 제도 개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지역 유지들과 정치권이 밀착 양상을 보이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례 대표제도를 강화할 필요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겨지네요. 이러한 정치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야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이전에는 거대 양당이외 세력이 자리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이 단기적으로 바뀌기 전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전략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투표에서 실제 투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cyrus님 말씀처럼 유권자들이 정당 정책을 확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확인하는 유권자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공약에 대한 평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결과는 제도적 제약하에서 행해진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행태로 생각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결과에 대한 해석일 뿐 우리가 가야할 방향성과는 다르다 여겨집니다.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개헌과 제도 개혁을 통한 사회변혁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시작되기를 바라봅니다.

Tempus_fugit 2018-06-15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선의 이론과 유권자의 선택을 고찰하신 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마침 스티글리츠의 책을 읽고 있는데 스티글리츠는 차선의 이론이 최선의 상황이 달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정부 개입을 부인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것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었거든요^^

결국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개인의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집계할 수 있는 완벽한 사회적 의사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사회적 대안을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회후생 함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개인도 배제시키지 않고(보편성) 모든 사회적 대안에 대해(완비성) 항상 일관된 답을 줄 수 있는(이행성) 민주적인(비독재성) 사회적 의사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능성 정리의 조건 중 지나치게 제약적이거나 덜 중요한 조건들을 하나씩 완화시키면 바람직한 사회적 의사결정체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제한된 수의 선택 가능성 사이에 서열을 매길 수 있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적 선호 체계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접근(완비성 완화)을 하고 있고, 베르그송(Bergson)은 사회적 후생 함수에 적극적으로 적절한 가치판단을 도입하여 개인 간의 효용의 비교를 어느 정도 허용한다(무관한 선택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 완화)는 접근법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개인의 선호를 단봉 선호로 제한(보편성 완화)하거나 서수적 효용 함수가 아닌 기수적 효용을 사용하는 사회후생 함수(베르그송-새뮤엘슨) 등의 다양한 접근법 또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표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60.2%는 너무 낮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을 주류 경제학(합리적 무지 가설)이 아닌 행동경제학으로 고찰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5 23:18   좋아요 2 | URL
kokoro님, 감사합니다.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정치학을 다루고 있어, 페이퍼에서 여러 생각을 해봤습니다.

kokoro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 전제인 ‘공리‘의 한계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알려주신 아마티아 센, 베르그송, 새뮤엘슨 등의 석학들이 제시한 방식 역시 애로우의 강공리 대신 약공리를 대안으로 삼는 것인 것 같네요. 다만, 이러한 대안에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짧게 해봅니다.

예를 들어, 행동경제학과 기수적 효용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주관성으로부터 사회 전체 복리를 증진시키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해결하기에 쉽지 않은 과제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됩니다...

투표율 60%가 낮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거 산업화시대 도입된 제도가 21세기 변화된 생활 양식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수의 직장인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현실 속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권자에 대한 다른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공인인증으로 인터넷, 모바일 뱅킹을 하면서 모바일 투표는 왜 도입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도 언뜻 해보게 됩니다. 보완할 점이 있겠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여러 방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시대에 맞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제도가 못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kokoro님 덕분에 여러 가지 많이 배우고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Tempus_fugit 2018-06-15 23:31   좋아요 2 | URL
말씀 감사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기본 가정과 전제에 회의감이 들곤 합니다^^; 겨울호랑이님께서 올리시는 글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6-15 23:37   좋아요 2 | URL
저 역시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 전제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경제학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합리적 인간‘과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는 붙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계몽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이성‘과 ‘다수‘라는 핵심 용어 대신 ‘감정‘과 ‘개인‘을 바라볼 수 있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의 21세기 경제학을 기대해 봅니다.^^:) kokoro님 감사합니다.
 
티벳 사자의 서
파드마삼바바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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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 Bardo Thos-grol>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고 번역된다.(p10)... 생을 마치고 사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대 앞에는 많은 빛들이 나타날 것이다. 임종의 순간에는 최초의 투명한 빛이 그대를 맞이하러 나타나리라. 그대는 그 빛을 따라가야만 한다. 그 빛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진리의 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 中 


 <티벳 死者의 書>는 죽음을 맞이한 후 환생(還生) 이전까지 윤회(輪回)의 전체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티벳 전통 사상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후 49일 동안 인간이 마주하게 될 여러 모습 - 빛의 인도, 평화의 신(神)들과 분노의 신들 - 을 확인하게 되지만, 보다 중요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투명된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삶도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삶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그렇다면, <티벳 사자의 서>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 완성된 부처임을 스스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비어있음(沖)과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은(無形) 본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 죽은 자들의 과제임을 깨우쳐 주는 구절 속에서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가볍게 해주는 위로를 느끼게 된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곧 참된 의식이며 완전한 선을 지닌 붓다임을 깨달으라.그것은 텅 빈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이 아니라 아무런 걸림이 없고, 스스로 빛나며,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텅 빔이다. 본래 텅 비어 있고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은 그대 자신의 참된 의식이 곧 그대의 마음이다. 그것은 스스로 빛나고 더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세계다.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다. 그 하나됨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다.(p250) <티벳 사자의 서> 中


 <티벳 사자의 서>의 깨달음이 죽은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 때가 바로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기 때문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 ~ 2004)이 '결정적 순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진 한 장에 표현하는 바와 같이 죽음의 순간, 우리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내야 한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갖는 마지막 생각이 그 다음 환생의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믿는다.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때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인도의 현자들은 가르친다.(p40)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사진] <국민당 최후의 날, 중국 1948> by Henri Cartier-Bresson (출처 : http://photovil.hani.co.kr/213534)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모든 것이 환상이고, 죽음의 순간에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면, 우리가 살았을 때 과연 착하게 살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답을 하고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런 깨달음으로 대자유에 이를지라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수는 많고 악한 카르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지는 너무 깊고 나쁜 습성이 오랫동안 뿌리내렸기 때문에 무지와 환영의 수레바퀴는 힘이 떨어지지도 않고 가속이 붙지도 않는다.(p317) <티벳 사자의 서> 中


 이처럼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이전에 가보지 못한 길을 걸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긍정하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모습을 않는다면 고통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티벳 사자의 서>는 이러한 내용으로 죽은 자에게도, 이를 읽어주는 이들에게도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면에서 <티벳 사자의 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서>이기도 할 것이다.



PS. 티벳의 전통 장례는 천장(天葬)으로 치뤄진다. 사람의 시신을 토막내어 독수리에게 던져주는 그들의 장례 문화는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함께 하늘로 돌아가는(歸天) 모습을 담은 천장의 준비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다음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티벳 천장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67520)


 그대의 몸은 카르마의 성향만을 지닌 사념체이기 때문에 베이고 잘리고 토막나더라도 죽지 않는다. 그대의 몸은 실제로는 텅 비어 있으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죽을 수가 없다. 그대의 몸이 조각조각 난도질당해도 그대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거듭되는 난도질은 그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리라.(p351) <티벳 사자의 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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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6-12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의 내용과는 생뚱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국민당 최후의 날, 이란 제목의 사진
이 압권이었습니다 ㅋ

겨울호랑이 2018-06-12 15:39   좋아요 0 | URL
^^:) 어쩐지 이 사진이 끌리더군요. 제목이 ‘최후의 날‘이어서 때문인지, 내일 지방선거 어느 당 때문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ㅋㅋ

sslmo 2018-06-12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워낙 감정이입을 잘 하는 편이라,
몇번 들춰보기만 했을뿐 제대로 읽지를 못했네요.

제가 이 책을 버거워한 이유는 다른 사진책에서 ‘천장‘하는 사진을 보고나서였습니다.
무섭거나 두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꼈달까요.

암튼, 언젠가는 읽어야할 숙제로 남겨두고 있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반가운 생각이 들어서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꾸벅~(__)

겨울호랑이 2018-06-12 16:4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천장‘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느꼈습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양철나무꾼님께서 말씀하신 경이로움이 무엇이었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6-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6-1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대에 너무 제 사념에 빠져서 이 책을 읽은 게 아쉬워서 다시 읽어야지 읽어여지 하다가 어언....-_-; <이집트 사자의 서>는 이 책과 달리 백과사전식이라 이게 뭐야-ㅁ-), 영적이지 않잖아! 흥미를 잃고;;....죽기 전에 제대로 중심 좀 잡아야 카르마에 안 잡힐텐데 말입죠;

겨울호랑이 2018-06-16 10:50   좋아요 1 | URL
저는 버스에서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하기, 연의와 놀아주기 등으로 작은 선업을 쌓은 후 죽기 전 ‘모든 것이 다 뻥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세상을 떠나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집트 사자의 서>도 지금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이집트 신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