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여당의 압승과 야권의 궤멸'로 끝난 이번 선거를 어느 한 유권자의 입장에서 선거 성격과 선택 배경 등을 정리해 보려한다.
1. 지방선거 : 양자 운동과 중력 사이 그 어딘가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 중 가장 큰 10의 15승 미터가 중력과 중력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면, 가장 작은 단위에서 볼 수 있는(10의 -16승 미터) 몇 가지 장면들은 양자 운동의 예가 된다. 이들은 뉴턴의 법칙이 아닌 새로운 법칙을 따른다. 중력 효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 영역은 양자 운동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일상 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달력도 아니며, 어느 정도 우연하게 중력계에 존재하는 궤도들도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물질의 안정성이다.(p27) <10의 제곱수> 中
지방선거는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을 선출한다는 의미와 함께 중앙정부에 대한 민심을 전달한다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 때마다 정권심판론과 인물론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선거의 성격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두 상이한 성격은 내용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좌우하는 미시의 세계와 중력의 지배를 받는 거시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자연세계와 정치세계에서 우리는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발견하게 된다. 현재까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이론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지방선거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물리학과 정치학의 공통점이라 여겨진다. 다만, 물리학의 세계와 달리 이들 법칙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차이점인 듯하다.
2.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그림] 제1차 삼두체제 당시의 세력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aesar%27s_Civil_War)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다음해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놓여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소야대, 경제적으로는 재벌개혁과 소득불균형, 외교적으로는 남북문제 등으로 문재인 정부는 많은 개혁과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서 주도권을 잡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BC 106 ~BC 48)에게 역(逆)포위되어 있었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현재 한국의 현실은 짙은 어둠 안에 놓여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과거보다 상황은 조금 나아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해결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여러 부분에서 야당(특히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인해 개혁이 무산되는 것을 유권자들을 지난 1년동안 지켜봐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갈리아와 로마의 국경 지대인 '루비콘 강' 앞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망설인다. 이대로 강을 건너면 반란의 주역이 된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그는 결국 루비콘을 건넌다(p17)... 폼페이우스는 일단 이탈리아를 벗어나 그의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중해와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고자 했다. 추격 도중 잠시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는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취임하면서 로마의 내정을 돌본 후 급히 다시 폼페이우스를 뒤쫓는다.(p19) <카이사르의 내전기 Commentarili De Bello Civili> 中
3. 유권자의 선택 : 차선의 이론
최근 유권자들은 여러 개혁 과제들이 독립된 과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문제임을 확인해왔다.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구하는 것처럼 어떤 선택지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차선의 이론'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차선의 이론에 따르면 충족되는 효율성의 조건의 수와 사회 후생의 극대화와 반드시 관련있는 것만은 아니다. 차선의 이론은 우리에게 현재의 제약조건은 순차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개선되어야함을 알려준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서는 n개의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중 하나가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할 때, 나머지 (n-1)개의 조건만은 모두 만족되는 것이 차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는 이와 같은 직관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이미 하나 이상의 효율성 조건이 위배되어 있을 때는 충족되는 효율성 조건의 수가 늘어난다 해서 사회 후생이 더 커지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p572) <미시경제학> 中
[그림1] 차선의 이론(by 겨울호랑이)
[그림1]에서 원점에 대해 오목한 생산가능곡선과 몇 개의 사회무차별곡선들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배분은 E점이 의미하는 쌀과 옷의 조합이 생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선분FG로 대표되는 이 선분의 바깥쪽에 있는 상품의 조합은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이 제약하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점이 반드시 생산의 효율성을 의미하는 생산가능곡선 위에 위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보면 생산가능곡선 위의 H점에서 보다 그 곡선 위에 있지 않은 I점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p573) <미시경제학> 中
4. 유권자의 제약 배경 : 불가능성정리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49060.html
이에 대한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응 논리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였다. 문재인 독재를 방치할 경우 개별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한데, 이들의 논리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결국 이슈가 독재와 사회개혁으로 압축된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는 '불가능성 정리'라는 제약조건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사회적 효율성과 독재성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성 정리의 핵심이다.
애로우(K.Arrow)의 불가능성정리(不可能性定理, impossibility theorem)는 바람직한 성격을 두루 갖춘 사회 후생함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함으로써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불가능성정리는 사회적 선호체계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성격으로 다음의 네 가지 공리(axiom)를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애로우는 이들 공리 중 1), 2), 4)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호체계는 반드시 공리 3)을 위배하는 것을 증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가능성정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문재인 독재를 공격하는 이론적 논거가 될 것이다)
1) 완비성(完備性, completeness)과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 : 모든 사회적 상태를 비교,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a / b / c 라는 세 사회적 상태에 대해 a를 b보다 더 선호하고 b를 c보다 더 선호한다면 a를 c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2)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 :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a를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사회도 a를 b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3) 비독재성(non-dictatorship) :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의 선호가 전체 사회의 선호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4) 제3의 선택 가능성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 a와 b의 두 사회적 상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이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의 선택 가능성 c의 존재는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p571) <미시경제학> 中
결국,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 놓여진 과제 상황은 사회후생의 극대화를 위해 어느 조건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개혁은 단숨에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개인적으로 부패한 독립군'과 '개인적으로 훌륭한 일본제국군인'이 선거에 나왔을 때,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 개인의 품성보다 그가 속한 조직을 보고 선택한 것과 같은 결과가 이번 선거에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지방 선거 이후 과제와 정리
참패를 한 야당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권인 여당에게 주는 국민의 메세지가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임을 <확장된 표현형 The Extended Phenotype>의 표현을 빌려 옮겨본다. 유전자가 적응의 수혜자라는 자연 법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가 멸종하는 바와 같이 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이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라 분석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떤 행동 유형이 부적응이라는 말은 오직 이를 수행하는 동물 개체에서만 부적응이라는 뜻이다. 행동을 수행하는 개체는 적응인 행동으로 이득을 얻는 존재자가 아니다. 적응은 개체를 만든 유전하는 복제자에게 이익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 동물 개체에게 이익을 줄 뿐이다.(p454) <확장된 표현형> 中
선택은 다른 유전자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하는 유전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 결과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한다....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신조에 따라 유전자(유전하는 복제자)가 내는 표현형 효과는 세계 전체에 미친다고 보는 것이 최선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개체나 다른 어떤 운반자에게 효과를 미치는 일은 그저 부수적 사건에 불과하다.(p227) <확장된 표현형> 中
[사진] 사진으로 요약한 제7회 지방선거 : 정의, 평화 그리고 심판(by 겨울호랑이)
PS. 선거에서 '차선의 이론'의 결론을 피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은 아이러니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