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식민지가 대영제국에서 독립하려는 합당하고 정당한 이유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독립선언문의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제퍼슨은 정부가 너무 가혹한 정책으로 일관할 때 인간은 정부의 형태를 바꿀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정부의 정통성은 '국민의 동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동의를 얻지 못한 정부는 통치권이 없다는 것이 논지의 기본이었다.(p96)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미국사 The story of America> 中


 하워드 진(Howard Zinn, 1922 ~ 2010)의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A young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미국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독립선언'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역사책이 위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다면,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식민지들이 성장할수록 지배계급은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게 되었다. 최고의 부유층(富裕層)과 극빈층(極貧層)이 존재하는 사이에 백인 중산층(中産層)이 발전했다... 상층계급은 중산층의 충성을 얻는 데 성공했는데, 여기에는 분명 중산층에게 대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p51)... 1760년대와 1770년대의 지배계급은 최적의 방법을 찾아냈다.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에 관한 말이었다.(p52)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1776년 무렵 북아메리카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의 일부 중요 인사들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나라를 세운 후 합중국(United States)이라 칭한다면 대영제국을 위해 식민지를 관리해온 사람들에게서 토지와 재산, 정치 권력을 빼앗을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각으로 미국 혁명을 바라볼 경우 매우 천재적이고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Foundiing Fathers)은 200년 이상 잘 운영되고 있던 국가 통제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p53)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사진]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american-revolution/declaration-of-independence)


 <살아있는 미국 역사>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대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미국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어린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저술한 책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다루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역사를 저술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은 정복이나 살인과 같은 끔찍한 일들을 진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역사를 정부, 정복자, 지배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정부 또는 국가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하는 것이 된다. 그런 역사 속의 배우들은 왕, 대통령, 장군들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농부, 유색인종, 여성, 아이들은 대체 어떤 존재들이란 말인가? 그들 역시 역사를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다.(p24)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살아 있는 미국 역사> 속에서는 미국의 인종, 계급, 성, 연령 문제가 종합적으로 제기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문제, 아프리카 노예 문제, 유럽으로부터의 이주민 문제등을 안고 시작한 미국은 출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온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의 그물망은 흑인들을 아메리카의 노예제로 옭아매었다. 이 그물망은 굶주린 정착민들의 절망적인 위기감, 고향을 잃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무기력함, 노예무역 상인들과 담배 재배자들에게 보장된 이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을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법과 관습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식민지 지배자들은 백인들과 흑인들이 평등하게 함께 단결하지 못하게 차단하기 위해 가난한 백인들에게 신분상의 작은 이익과 혜택을 주었던 것이다.(p40)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영국에서 건너온 법률과 사고방식은 여성들에게 또 다른 족쇄가 되었다. 여성이 결혼할 경우 남편이 그녀의 주인이 되는 것이 당시의 법률이었다. 아내에 대한 권리가 남편에게 있었다. 죽이거나 평생 낫지 않을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 남편은 아내에게 체벌을 가할 수도 있었으며, 아내의 재산과 소유물 또한 남편의 소유가 되었다. 아내의 재산이 곧 남편의 재산이기도 했다.(p81)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1979년 미국에는 아파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살 수 없는 아이들이 100만 명이나 되었다. 그 아이들이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증거 자료가 없었다. 17세 이하 1,800만 명의 아이들은 치과에 가본 적도 없었다... 매리언 라이트 에덜먼(Marian Wright Edelman)은 의회에서 아동 건강 프로그램 예산을 8,800만 달러 감축함으로써 아동 보호를 위한 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p263)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살아있는 미국 역사>에서는 미국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또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부의 대농장주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흑인 노예들과 가난한 백인들이 베이컨의 반란 같은 대규모 봉기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은 흑인들과 백인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버지니아의 노예제를 연구한 역사가 에드먼드 모건은 <미국의 노예 제도, 미국의 자유>에서 인종차별이란 흑백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은 백인 지배자들이 흑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장했다는 것이다.(p51)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살아있는 미국 역사>는 처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출발한 신생국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는데, 하워드 진의 글을 통해 저자의 역사관을 자세히 살펴보자.


 필자는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숨겨진 단면들, 사람들이 권력층에 저항하거나 함께 단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순간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과거의 역사 가운데 전쟁의 장면보다 선의와 용기의 장면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미국 역사에 대한 필자의 접근 방법이다.(p25) <하워드 진 : 살아있는 미국역사> 中


 이러한 저자의 글속에서 조셉 캠벨(Joseph Cambell, 1904 ~ 1987)의 영웅(英雄)에 대한 정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살아있는 미국 역사>를 바라볼 때, 하워드 진이 바라보는 '민중'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오직 탄생(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p2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中


 민중(people)이라는 이름의 영웅(hero)들이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끊임없이 재생되고 부활하는 과정을 미국 25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려낸 책. 그 책이 <미국민중사>이고,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 역사>는  이를 위한 도입부(Intro)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PS. <살아있는 미국역사>를 읽으면서 이 음악이 계속 연상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미국 민중사>를 잘 나타내는  OST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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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18-07-11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미국 역사서들이 주로 국가와 지배층을 기본 단위로 하여 역사를 바라보았다면,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는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관점을 취했네요. 그런 시각으로 보면, 과연 미국사는 그 시작점부터 모든 개인이 자유를 위해 투쟁한 역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더욱 듭니다. 겨울호랑이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2 00:13   좋아요 2 | URL
비록 미국의 역사가 짧지만,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베텔게우스님의 말씀을 통해 저 역시 다른 관점에서 미국사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7-12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2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7-15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조만간 미국 민중사 읽어볼 생각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5 1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독서 시간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국부론 -상 - 경제학고전선 애덤 스미스, 개역판 국부론 시리즈
아담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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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nature)에는 분명히 몇 가지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연민(憐憫 pity)이나 동정심(同精心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우리는 그가 기뻐하는 것에 대한 동감을 통하여 기뻐하게 되는데, 우리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이 동감(同感)인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것은 전자로부터 얻는 기쁨과 후자로부터 얻는 고통에 일정한 작용을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결코 기쁨과 고통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기쁨과 고통이 생겨나는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p15) <도덕감정론> 中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인간행동의 원리를 탐구하고 있다. <도덕감정론>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 중에서 우리가 '동감'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이  '동감'이 어떻게 사회를 움직이는가를 설명하는 지점부터 <국부론 An Inquir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은 시작된다.


 1. 거래의 의미 : 보이지 않는 손


  저자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했듯이, '동감'만으로는 인간의 행동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애심'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고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감'에 호소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분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거래'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애심'과 타인에 대한 '동감'의 조정. 그것이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얻을 수가 없다. 그가 만약 그들 자신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가 그들에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일을 그들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오." 이것이 거래에 담겨진 의미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상호간 도움의 대부분이 유무상통, 물물교환, 구매를 통해 획득되는 것처럼 당초 분업을 야기시키는 것도 이러한 교환의 성향이다.(p19) <국부론 상> 中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p552) <국부론 상> 中 


2.  분업 : 분업을 일으키는 원인과 제한 


 인간의 교환성향으로부터 발생되는 분업은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분업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전문적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자아실현(自我實現)이라고 부르는 동기 또한 전문화된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생산 및 교환의 확대는 사회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국부론>을 통해 분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의 확대와 재고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분업을 통해 대량생산된 물건은 교환되어야 한다. 이때 교환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제 교환가치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노동생산력을 최대로 개선, 증진시키는 것은, 그리고 노동을 할 때 발휘되는 대부분의 기능, 숙련, 판단은 분업(分業, division of labour)의 결과인 것 같다.(p7)... 분업은 그와 같은 폭넓은 효용을 예상하지 못한 인간성의 어떤 성향으로부터, 비록 매우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이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생긴 결과이다. 그 성향이란 곧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바꿔 갖고,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이다.(p17) <국부론 상> 中


 교환능력이 분업을 야기하기 때문에, 분업의 정도는 언제나 이 교환능력의 크기,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시장이 매우 작을 때는 어느 누구에게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도록 장려할 수 없다.(p22) <국부론 상> 中


 사물의 본성상, 재고의 축적은 분업에 앞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재고가 미리 더 많이 축적되면 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분업은 더욱 세분된다.(p334)... 노동생산력의 커다란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리 재고가 축적되어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재고의 축적은 자연히 이러한 개선을 가져온다.(p335) <국부론 상> 中



3. 교환가치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자신이 사용하거나 소비하려 하지 않고 다른 상품과 교환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상품이 그로 하여금 구매하거나 지배할 수 있게 해 주는 노동의 양(量)과 같다. 따라서 노동은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진실한 척도(尺度)이다.(p37)... 비록 노동이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의 진실한 척도이지만, 상품의 가치는 보통 노동에 의해 측량(測量)되지 않는다.(p39)... 상품의 교환가치를, 그 상품이 구매할 수 있는 노동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상품이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양에 의해서 평가하는 것이 좀더 자연스럽다.(p40) <국부론 상> 中


 애덤 스미스에게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투여된 노동(labour)의 양과 같다. (노동가치설 labor theory of value , 勞動價値理論) 그러나, 노동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 측정의 수단으로 화폐가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상품의 진실된 가격이라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입장이다. 


 분업이 처음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교환능력의 작용은 흔히 여러 가지 장애와 곤란에 부딪힌다.(p28)... 이러한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어느 시기에나, 분업이 처음으로 확립된 뒤, 분별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노동의 특수한 생산물 이외에, 타인들의 상품과 교환할 때 타인들이 받기를 거절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떤 종류의 상품 일정량을 항상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했음에 틀림없다.(p29) <국부론 상> 中


노동은 상품의 진실 가격이고, 화폐는 상품의 명목가격일 뿐이다.(p42) <국부론 상> 中



4. 가치를 이루는 세 요소 : 이윤, 지대, 임금


 애덤 스미스는 상품의 가치를 이루는 요소를 자본 사용 비용인 이윤(利潤), 토지 사용 비용인 지대(地代), 노동의 비용인 임금(賃金)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이윤과 임금이다. 교환으로부터 얻어진 가치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애덤 스미스는 이윤율과 이자율은 사회가 진보될 수록 점차 하락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연가격'이 있다.


 이윤은 전적으로 투자한 자본의 가치에 의해 지배되며, 그 크기는 투자한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p62)... 자본의 소유자는 거의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윤이 자기 자본에 정비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품가격에서 자본이윤은 노동임금과는 전혀 상이하고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규제되는 구성부분을 이룬다.(p63)<국부론 상> 中


 가장 진보된 사회에는 그 가격이 두 부분, 즉 노동의 임금과 자본의 이윤으로만 분해되는 소수의 상품들이 존재하며, 노동임금으로만 구성되는 상품들도 그 수는 더욱 적지만 존재한다... 지대는 가격을 구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p64) <국부론 상> 中


 노동임금의 상승은 필연적으로, 상품가격 중 임금으로 분해되는 부분을 증가시킴으로써, 많은 상품들의 가격을 인상시키며, 그리고 인상된 만큼 그 상품들의 국내외 소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p113)... 그러나 노동임금을 상승시킨 바로 그 원인, 즉 자본의 증가는 노동생산력을 증가시켜서 더 적은 노동량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p114) <국부론 상> 中


 5. 자연가격과 실제가격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모든 상품들의 가격은 자연가격으로 회귀(回歸)된다. 비록, 일시적인 장애등으로 현실 가격이 자연가격과 차이를 나타낼 수 있지만, 결국은 현실가격은 자연가격으로 돌아가게 된다. 단, 여기에는 '규제나  장벽이 없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가 '시장의 자유'를 통해 주장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자연가격은 모든 상품들의 가격이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끌려가는 중심가격(central price)이다. 각종 우연한 사건에 의해 상품의 가격이 이 중심가격보다 상당히 높게 유지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그것보다 상당히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격이 이 안정(安定) 및 지속의 중심에 정착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무엇이든, 가격은 끊임없이 자연가격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p76)  <국부론 상> 中


 한 업종으로부터 다른 업종으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도 방해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업에 사용될 수 있는 자본량은 그 사업에 고용될 수 있는 노동량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p176) <국부론 상> 中


 애덤 스미스는 국가가 최대의 부(富)를 축적한 후에는 낮은 이자율, 낮은 이윤율의 상태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풍요로운 자산(資産)만큼 그 가치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산에 의존하지 않고, 소득(所得)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사회는 활기차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최대의 부를 이미 획득한 나라, 각 사업분야마다 사용될 수 있는 최대의 자본량이 이미 사용된 나라에서는 통상의 순이익률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거기로부터 지불될 수 있는 통상의 시장이자율도 너무 낮으므로, 매우 부유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기의 화폐이자로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p125) <국부론 상> 中


 그렇지만, 현실은 <국부론>의 예측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국가가 부유해질 수록 자본이 가져가는 이윤의 몫은 점차 커지게 되었고, 부동산 임대 수익이 근로 소득보다 더 선호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국부론>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국부론>의 한계일까?


 많은 경우 우리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만을 알고 있다. 시장 자율에 맡겨둔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이 말은 규제 철폐를 주장할 때 활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국부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지만, <국부론>에서 말하는 규제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도시 안의 각 집단 상호간의 거래에서 그들은 누구도 그 규정에 의해 손실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농촌과의 거래에서 그들은 모두 큰 이익을 보았고, 도시를 유지하고 부유하게 한 거래 모두는 농촌과의 거래였다.(p162)... 임금, 이윤이 일반적 수준을 초과하도록 하는 규정들은 모두 도시로 하여금 자기의 더 적은 노동의 생산물로 시골의 더 많은 노동의 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p163) <국부론 상> 中



 '도시 -  농촌' 간 거래를 통해 불평등한 거래가 지속된 결과, 농촌은 점차 가난해졌다는 농촌 문제는 21세기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농촌문제의 원인을 불공정한 거래로 보았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규제는 약자를 보호하는 보호정책이 아닌,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었다. 이런  애덤 스미스의 관점과 시장의 자유만을 강조사는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관점은 분명 차이가 있다 여겨진다. 


 많은 경우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주장이 상호 배타적이라고 오해되고 있지만, 그것은 <국부론>의 단면을 크게 부각시켰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동감'을 강조한 <도적감정론>과 연결시켜 본다면 우리는 <국부론>속에서 애덤 스미스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최저임금제'와 관련한 <국부론>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며,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한 주일 중 나흘동안 지나치게 일에 몰두한 것이 나머지 사흘을 빈둥거리는 것의 진정한 원인인데도 이를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p107)... 고용주가 항상 이성과 인도주의 정신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는 흔히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하도록 고무하기보다는 그것을 누그려뜨려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p107)  <국부론 상> 中

 

 사람이 항상 자신의 노동에 의해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의 임금은 적어도 그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충분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임금은 이것보다 좀 더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것이며, 노동자 종족은 제1세대를 넘어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p89) <국부론 상> 中



[사진] 최저임금 딜레마(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5/2017072501740.html)


PS. 우리가 언제까지 '최저임금'만을 이야기 해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최저임금이 임금지급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이제는 '최저이윤'이 기업이윤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최저이윤'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관련기사 : 30대 기업 사내유보율, 2년 새 두 배 증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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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7-10 1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 어린이 진짜 많이 컸네요.
노랑 원피스에 가방까지 노랑으로 들어주는 패션 룩의 종결자네요~^^

겨울호랑이 2018-07-10 21:04   좋아요 2 | URL
정말 연의가 여자아이어서인지 요즘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패션센스는 엄마유전인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7-10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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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10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자아실현이란 동기는 전문성에 의해 가능하다는 건 스미스 주장인가요?^^
마르크스 의견과는 정반대라서요...ㅎㅎ

북다이제스터 2018-07-10 20:17   좋아요 2 | URL
정말 개인적 생각인데요, 우리는 엄밀하게 봐야 할 때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 대체적으로 봐야 할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
제 주장이 옳다면 스미스는 후자라고 생각됩니다. 스미스가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0 21:08   좋아요 3 | URL
^^:) ‘자아실현‘이라는 용어를 아담 스미스가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분업의 장점에 대해 <국부론>에서 자세히 언급을 하고 있네요. 아담 스미스 당대에는 공장제 수공업이 대부분이었기에, 오늘날의 ‘자아실현‘같은 개념을 직업면에서 생각하지는 못했을 듯 합니다... 그렇군요. 아담 스미스가 만든 정치경제학체계로부터 경제학이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아담 스미스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비판받을 측면도 있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그 부분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10 21:32   좋아요 2 | URL
분업의 장점은 명확하죠.
근데 누가 돈벌고 그에따라 누가 손해 본다면 분업의 장점은 곧 폐해가 될 것 같습니다. ㅠ
그러한 점에서 말씀하신 ‘최저이윤’은 극하게 공감합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7-10 21:50   좋아요 2 | URL
경제학에서 생산-교환-분배의 단계 중에서 가장 논점이 갈리는 부분이 ‘분배‘라는 점은 다수가 동의할 것입니다. ‘분배 정의의 실현‘이 우리의 과제인 것은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네요. 그만큼 어렵기도 하겠지만,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들어선만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과제라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10 22:02   좋아요 2 | URL
네 저도 근래 월드컵 때 우리나라와 독일 축구 경기 보고 처음 알았는데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 근데... 맞는 말인지는...
갑자기 얘기가 축구로 흐르는데요... 죄송합니다... 우리가 이번 마지막에 독일에 이긴 것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ㅠㅠ
세상은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ㅠㅠ 혹시 모든 과정을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들고요. 과정이 결과를 만드는 거 같기도 해서요. .. 넘 어렵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7-10 23:32   좋아요 2 | URL
축구에서 독일을 이긴 것은 작은 위안이 되니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 그랬으면 더 안좋았겠지요. 고3 마칠 때 대학교에 바로 진학한다면 수험생활 전체가 추억이 되겠지만, 떨어지면 붙을 때까지 고통의 시간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결과가 다는 아니어도 중요한 부분인 것은 분명한 것 같네요...

베텔게우스 2018-07-10 1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애덤 스미스가 규제라는 말을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정말 몰랐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야기되어 오던 ˝정부의 규제를 철폐해야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의 뿌리가 국부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네요. 겨울호랑이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0 20:57   좋아요 3 | URL
<국부론>에서는 사회가 발달하게 될 수록 자본이 풍부해져 자본의 이윤이 낮아진다고 해석하고 있네요. 그래서, 결국에는 상품가치의 대부분이 노동에 귀속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자라기 보다 인본주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텔게우스님 감사합니다.^^:)

cyrus 2018-07-10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도 한계가 있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 때문인지 그의 이론의 참된 가치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0 21:01   좋아요 1 | URL
cyrus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담 스미스가 오늘날의 경제학이라는 ‘판‘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생각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생각합니다.^^:)

Tempus_fugit 2018-07-12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 가치설‘은 데이비드 흄이 이븐 칼둔을 인용하고, 그것을 스미스가 인용한 것 같습니다. 이미 14세기에 이븐 칼둔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와 분업 문제, 노동 가치설을 정립해 놨다고 하던데, 아담 스미스보다 350여년 전에 그런 이론이 나왔다는 게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2 13:2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이븐 칼둔이라면 「역사서설」저자로만 알고 있는데 관련 내용을 자세히 읽지 못했습니다. 이슬람 문명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kokoro님 덕분에 독서 목록에 저작 하나 추가하네요. 감사합니다^^:)
 


 괴델의 아이디어는 사실상 "S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문장 S를 만드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해보면 그런 문장은 참인 동시에 증명 불가능하다. 이런 문장을 수론의 언어 내에 짜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 괴델의 놀라운 성취이다... 괴델의 두 번째 불완전성 정리는 "이론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순인 공리계 T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것이 무모순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괴델은 T가 무모순이면,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수론의 문장으로 부호화했을 때) T로부터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따라서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참이면서도 증명불가능한 문장이다.(p259) <Mathematics 2> 中 


<괴델의 증명>은 괴델(Kurt Godel, 1906 ~ 1978)의 불완정성 정리(Godel's incompleteness theorems)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한 책이다. 얇은 분량의 책이지만,  불완정성 정리의 전체적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라 여겨진다. 책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괴델은 정리를 도출하기 위해 초수학(meta-mathematics 수학을 설명하는 언어)을 수학의 질서로 끌어들인다. 각각의 언어에 정수를 부여함으로써, 초수학적 개념을 수리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괴델은 '임의의 산술공식 G는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산술 공식 스스로 주장'하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사상(寫像 mapping)의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즉, '대상 object'의 한 영역에서 구체화된 관계의 추상적 구조가 다른 영역의 '대상' 사이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괴델이 그의 증명을 구축하는 데 바탕으로 삼았던 것도 바로 이런 특징이었다.(p83)... 괴델은 참값으로 진술된 어떤 초수학적 명제에 대응하는 산술 공식이나 그 명제의 부정 否定에 대응하는 산술 공식은 어떤 것도 산술 계산식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법을 고안했다.(p85) <괴델의 증명> 中


 괴델이 입증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얻은 주된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괴델은 산술 전체가 포함되는 포괄적 체계의 무모순성을 초수학적으로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증명했다. 그런 증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산술 체계의 정리를 유도하는 데 사용되는 변형 규칙과 근본적으로 다른 추론 규칙을 사용해야 한다는 자체 모순이 있다.(p76) <괴델의 증명> 中


  괴델의 두 번째 결론은 더욱 놀랍고, 가히 혁명적이다. 공리적 방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사실을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다. 괴델은 <수학원리>를 비롯해서 산술학이 전개될 수 있는 다른 어떤 체계도 근본에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달리 말하면, 모순되지 않는 산술 공리로 이루어진 임의의 집합이 주어질 때, 그 집합에서 유도될 수 없는 참값의 산술적 명제가 있다는 것이다.(p77) <괴델의 증명> 中


 '어떤 체계를 설명하는 명제의 무모순성을 그 체계 내에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정리되는 '괴델의 증명' 를 바탕으로 서양 철학의 오랜 과제인 신 존재 증명(Proof for the Existence of God) 과제를 다시 살펴보자. 괴델의 신 존재 증명 식은 다음과 같다. 


공리1. (이분법) 속성은 그 부정이 부정적일 경우에만 긍정이다.

공리2. (닫힘) 속성은 긍정적인 속성을 가진 경우에만 긍정이다.

정리1. 긍정적 속성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다시 말해 실례를 가질 수도 있다.)

정의.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만이 신적이다.

공리3. 신적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속성이다.

공리4. 긍정적인 속성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정의.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리2.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 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의. NE(x) : 핵심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x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공리5.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은 신적이다.

정리3. 신적인 x는 반드시 몇몇 개가 존재한다. (p382) <신의 베틀> 中


  괴델의 신 존재 증명은 이처럼 '신적인 것은 몇몇 개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지지만, 이것이 신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식 이전에 이미 '신(神)적인 것'에 대한 전제가 증명에는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위의 증명에서 일관성, 긍정성, 존재성 등을 신의 속성으로 받아들였을 때에만, 다음 공리와 정의로 넘어갈 수 있는 이 증명은 객관성과 타당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중세 철학의 신 존재 증명을 살펴보자. 


 켄터베리의 안셀무스(Anselmus Cantuariensis, AD 1033 ~ 1109)가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Monologion & Proslogion>에서 '존재하는 것들 중의 가장 좋은 것, 가장 큰 것, 가장 높은 것'을 신(神)이라 부르는 것에서 증명을 시작하고, 이러한 존재가 존재할 수 없다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신 존재를 증명한다. 

 

 이 큰 선(善)은 모든 선이 그것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통해 per se 선하다. 따라서 그 밖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선하고, 오직 이 큰 선만이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선하다. 오직 그 자체를 통해 선한 것만이 바로 최고선(God)이다. 그러므로 최고선은 또한 가장 큰 것이기도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최고 summum omnium quae sunt 이기도 하다. (p19)...그리고 확실히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단순히 지성 속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p187)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中


 돌아가서, 괴델의 신 증명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보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신의 창조물인 인간은 인간과 자연을 설명하는 법칙을 포함하는 신 존재를 수학 공리 체계 내에서 모순성을 포함한 존재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결론이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쉬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이 그 내용을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개략적인 내용을 아는 것마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괴델의 증명>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가솔린 엔진( 출처 :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gasoline-engine)


 우리는 자동차 엔진의 부품과 기능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별 불편함없이 운전을 한다.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것에 큰 불편함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학에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굳이 연습장과 연필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수험생은 제외) 만화책을 읽듯이 편하게 수학책을 접했을 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나는 만화책을 편하게 읽지는 못하는 편이다.


PS 2. 어떤 체계를 설명할 때 그 체계 내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자. 이것은 '괴델의 불완전성 증명'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의미가 아닐까.


 옛날 중동지방의 어느 부유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세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17마리의 낙타를 물려 줄 터이니 맏이는 절반을 갖고 둘째는 1/3을 갖고 막내는 1/9을 갖거라.단, 반드시 산 채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고민하던 삼형제는 때마침 지나가던 상인으로부터 낙타 1마리를 빌려 유산을 나눌 수 있었다...


 공부가 안 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때는 잠시 바람을 쐬거나, 커피를 마셔보는 것이 어떨까. 잠시 주위를 환기 시킨 후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분명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아까 할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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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7-0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할걸...‘에서 빵 터져 웃습니다.
점심 먹고 잠이 쏟아지는 오후, 덕분에 경쾌하게 시작합니다.
일단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잠을 깨볼려구요~^^

겨울호랑이 2018-07-05 14:30   좋아요 1 | URL
저도 친구에게 들은 농담이었습니다. 날이 많이 덥네요. 양철나무꾼님께서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07-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연찮게 요즘 저와 비슷한 소재 책 읽으셨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7-05 20:01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시니, 북다이제스터님의 관심사가 아닌 책을 고르기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갱지 2018-07-05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아요:-), 말그대로 모순 없는 체계 안에서 증명을 하다보면 그 체계가 모순일 수 있다는 거죠? 인간이 한자락 깔고 신을 증명하듯이... 제 짧은 머리로는 한계가 오네요. 후후
문득 괴델이라는 사람의 종교적 신실함이 궁금해지네요.


겨울호랑이 2018-07-05 20:19   좋아요 1 | URL
저도 ‘불완전성 정리‘를 완벽하게 아는게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체계 내에서 그 체계의 모순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기에 갱지님의 말씀과 큰 틀에서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괴델의 삶을 보면 다른 논리학자들과는 달리 종교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니데이 2018-07-05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의 ˝아까 할 걸.˝ 같은 마음에 요즘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겨울호랑이님, 시원한 여름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7-05 21:37   좋아요 1 | URL
^^:) 제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오네요.. 뭐 지금 하는 것이 남은 인생 중 가장 빨리 하는 것이라니, 마음 편히 드시고 행복한 하루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8-07-05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선생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여전히 신 문제로 옥신각신 중ㅎㅎ
신이 있다 없다를 차치하고서 기독교적 세계가 그들의 종교를 믿는 자만 구원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폐쇄적이고 지극히 인간적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신이라는 전제에 모순이 생겨요. 그러니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란 말이 나올 밖에^^;

겨울호랑이 2018-07-05 22:03   좋아요 1 | URL
^^:) 기독교 이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도 제법 알고 임습니다. 물론 아닌 분도 있겠습니다만. 신이 있다 없다의 문제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08 23:47   좋아요 1 | URL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어디서 말이 들었다 생각했는데, 혹시 <죄와 벌>에 나오는 문장이 아닌가 싶네요...

AgalmA 2018-07-09 00:45   좋아요 1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관념적 인간인 이반 카라마조프가 신을 부정하며 내세우는 논리죠^^ 무신론을 논할 때 철학이나 기타 인문학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죠.

겨울호랑이 2018-07-09 00:28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이반도 알게 되네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속에서 도박을 좋아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혹시 그래서 ‘도선생‘은 아니겠지만요..

AgalmA 2018-07-09 00:34   좋아요 0 | URL
이번 주 내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었어요. 당시 과학과 유럽 사상의 범람 속에 도선생이 인간의 휴머니즘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엿보이는 작품이죠. 거의 다 읽고 이제 리뷰를 써야 하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ㅎㅎ....겨울호랑이님도 무슨 책을 읽다가 생각나서 말씀하신 게군요~
그래서 도선생ㅋㅋ 역시 이름은 중요해ㅋㅋ 저도 어디서는 개장수의 뜻으로 불리는 건 아닌지ㅋ 그런 이름에 관련된 언어 유희들도 도선생 책에 많이 나와요ㅎ

겨울호랑이 2018-07-09 00:3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과 과제가 늘어났네요. 한 권 읽으면 보관함에는 세 권이 쌓이니 만년 독서수지는 적자입니다 ㅋㅋ

2018-07-06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7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7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집트인은 인간의 생이 현세에 국한되지 않고 사후세계에서도 현세 이상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내세관은 이집트가 갖고 있는 건조한 사막의 풍토 속에서 잉태되었다. 사막의 열사 위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이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자연적으로 미라화되어 생전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본 후손들은 사자가 현세와 동일한 신체를 가지고 사후생활을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p87) <이집트 사자의 서> 中


 부활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신이 결합해야만 한다. 마치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해 살해된 후 이시스에 의해 부활한 것처럼,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육신과 영혼이 파괴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내세관이다. 이집트인들이 말하는 영혼은 카(Ka)와 쿠(Khu)로 이루어진다. 우리식 개념으로 보자면 카는 영(靈)에 해당하고, 쿠는 혼(魂)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에 제3의 개념으로 영혼의 새인 바(Ba)가 있다.(p88) <이집트 사자의 서> 中 


 <이집트 사자의 서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는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믿었던 그들의 내세관(來世觀)이 담긴 책이다.  이집트인들은 사자(死者)는 죽음을 통해 오시리스(Asar, Aser, Ausar, Ausir, Wesir, Usir, Usire, Ausare)의 심판을 받은 후 정화되고 태양신 라(Ra)가 지배하는 저편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카는 개인의 운명을 내세로 인도하고 내세에 거주한다. 즉 사자를 도와서 신 앞에서 그를 변호하거나 태양신 라 앞에 인도하며 사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한다... 반면, 우리의 관념상 혼에 해당하는 개념이 '쿠'이다. 쿠는 인간의 육체 내에 있지만 인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체내를 빠져나와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믿어졌다.(p89)...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바'가 있다. 생전에는 육체에 있지만 사후에는 체외로 빠져나와 비상(飛上)하여 사자의 미라 주위를 선회하거나 미라 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체내로 들어간다... 신관들이 장례일에 행하는 장의의 목적은 바가 갇히거나 파괴당해 내세로 못가게 되지 않도록 기원하는데 있다.(p90) <이집트 사자의 서> 中


 인간의 영혼은 '카'와 '쿠' 그리고 '바'로 구분된다. '카'는 웹툰만화 <신과 함께>에서 변호사 진기한(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이고, '바'는 사후 오시리스를 만나는 여행을 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쿠'는 유체이탈을 하는 '혼(魂)'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집트 사자의 서>는 죽은 후 '바'가 몸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자의 서>에 수록된 각 장은 사실상 전체가 주문으로 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는 열쇠는 "주문을 낭송하기 위해서는 라 앞에서 손을 씻고, 정화하고, 향을 피우고, 빵과 맥주를 바쳐야 한다. 그러면 영혼이 파괴당하지 않고 백만 년의 수명이 주어질 것이다" "이 주문을 아는 자는 내세에서 영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류(類)의 주문에 있다. 이것이 부활의 조건이 된다. 주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자의 영혼이 부활하여 영원을 얻는데 있다. 모든 장들은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p151) <이집트 사자의 서>中 


 심판관인 오시리스를 만나기 전 사자의 '바'는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 죽은 자는 끊임없이 오시리스와 라를 향해 기도를 하면서 오시리스에게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 의식을 통해 정화된 영혼은 오시리스를 만나고 부활을 통해 영원한 세상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이다.


[사진] 심장의 무게 달기(출처 : 위키백과)



 이집트의 전수 및 죽음의 의식 가운데 절정을 이루는 것은 '심장의 무게 달기'의식이다.(p181)... 충실한 보호자 아누비스와 죽은 자 후네페르 앞에는 진실의 저울이 놓여 있으며 접시 위에는 마트의 흰색 깃털이 꽂혀 있다. 무릎을 꿇은 아누비스가 저울의 균형을 살피고 있으며, 굶주린 괴물 아미트는 불순한 심장의 찌꺼기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후네페르의 심장이 왼쪽 접시에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진실의 깃털이 놓여 있다. 저울이 균형을 유지하면 후네페르는 '정의로운 것'으로 선언된다. 그러나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면 심장의 불순한 조각을 제거해서 후네페르가 저주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괴물 아미트가 심장의 불순물을 먹어치워 영혼을 순수하게 하고 카르마, 즉 업보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심판을 마치고 환하게 미소짓는 전수자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에게 인도되어 심판관 오시리스를 만나게 된다.(p183)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Seth)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아내 이시스(Isis)에 의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다른 삶으로의 연결인 탄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죽음 이후의 삶'은 생전의 육신과 사후 영혼인 '바'의 결합이 필요한만큼, 티벳 불교의 윤회와는 다르다.  죽음에 대한 두 문명의 차이는  장례 문화의 차이에서 보다 극적으로 표현된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을 강조했으며, 사후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천장(天葬)을 지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바'의 귀환을 기다리며 사막 위에 부활의 공간인 피라미드(pyrramid)를 만들어냈다.


 죽음은 냉혹하게도 탄생과 연결된다. 이 둘은 밤과 낮, 음과 양,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렇듯 신은 종종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오시리스는 원래 죽음과 관련이 있지만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기도 하고, 사랑과 탄생의 신인 하토르는 죽음을 상징하거나 매일 저녁 해가 지고 '죽는' 서쪽과 연관되기도 한다.(p177)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이집트의 전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과응보적인 윤회사상과는 다르다.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악행과 악업을 저지른 삶이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혼을 파괴당하면 그의 바는 전생(轉生)하여 살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때문에 동양적 사고에서 말하는 윤회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p90) <이집트 사자의 서> 中

 

 무엇보다도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투명된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삶도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삶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이집트 사자의 서>는 이처럼 이집트인들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또한 책 안에서 유럽 문명의 여러 철학과 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 여겨진다. 그중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카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자 정신적 지주를 상실한 플라톤은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그는 카 사상으로부터 지적 충격을 받고 이것을 '이데아'로 받아들여 그의 저작에서 발전시켰다.(p89)<이집트 사자의 서> 中


 저녁에 태양이 지면 그것은 종종 지하 세계나 지옥의 영역으로 잘못 알려진 어둡고 굴 같은 두아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믿었다... 두아트는 12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밤의 12시간과 일치한다... 이 어둡고 불안한 통로를 성공적으로 항해하게 되면 그 결과로 태양이 떠오르고 낮이라는 밝은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다.(p162)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 이집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위의 글을 읽은 후 <국가> 제 7권을 읽어보면,  '동굴의 비유'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속세의 굴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은 후 두아트를 지나 태양신 라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후 다시 동굴로 돌아와 부활한다는 이집트 신화에 기반한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런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동굴의 비유' 이면에 이집트의 영향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집트 사자의 서> 속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신화 원형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예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다만, 이처럼 <이집트 사자의 서>는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사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출처 : https://www.pinterest.co.uk/pin/454159943648399992/)


 여기 지하 동굴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게. 동굴의 입구는 길고 동굴 자체만큼 넓으며 빛을 향해 열려 있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에 언제나 같은 곳에 머물러 있으며, 쇠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앞쪽 밖에 볼 수 없네. 그들의 뒤편 저 멀리 위쪽으로부터는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으며, 불과 수감자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나지막한 담이 쌓여 있네.(514 a-b)... 그들 가운데 누가 쇠사슬에서 풀려나 갑자기 일어서서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직이며 불빛을 쳐다보도록 강요받는다면, 그는 고통받을 것이며 광채에 눈이 부셔서 여태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의 실물들을 바라볼 수 가 없을 것일세.(515 c-d)... 마지막에는 태양을 보게 될 텐데, 본래 있어야할 장소에서 태양 자체를 직접 보며 관찰하게 될 것이네. 그 다음 그는 벌써 계절과 해(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태양이며, 또한 태양이 가시적인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516 b) <국가 Politeia> 中


 PS. 이집트 문명 또는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 문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래 책들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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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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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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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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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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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1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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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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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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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7-10 23:34   좋아요 1 | URL
미드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곧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종말론적 세계관은 저 역시 공감하기 어렵네요^^:)
 


 누가 아시아나 아프리카나 이탈리아를 떠나 황량하고 일기불순하며 살기에도 보기에도 음울한 게르마니아를 찾겠는가? 그곳이 고향이라면 몰라도.(p26)... 싸움터에서 시종들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은 주군에게 치욕이고, 주군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은 시종들에게 치욕이다. 그리고 주군이 전사했는데 살아서 싸움터를 떠난다는 것은 평생의 치욕이자 수치이다... 게르마니족은 평온이 싫고, 위험 속에서 더 쉽게 명성을 얻는 데다 폭력과 전쟁이 아니고서는 시종들의 대집단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p50) <게르마니아> 中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AD 55 ? ~ 117 ?)는 <게르마니아 Germania> 속에서 당시 야만족의 땅이라 불렸던 게르마니아의 땅과 게르만 족의 용맹함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농경민족인 라틴족의 시각에서 바라본 게르만족은 용맹스럽지만 야만스러운 종족이었다. 게르만족은 오랜 기간 로마의 골칫거리였고, 중국 흉노(匈奴)의 일파로 추정되는 훈 족의 침입으로 게르만 민족이 이동하면서 결국 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해마다 가을이면 강한 기병을 활용한 흉노의 침입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고사성어다.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흉노 역시 농경국가인 한(漢)과 오랜기간 대립해왔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흉노, 선비, 거란, 몽골과 같은 북부 유목(遊牧)민족과 한(漢)족의 다툼으로 요약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도] 한 제국의 확장( 출처 : https://www.quora.com/Why-did-the-Huns-led-by-Attila-invade-Europe-and-not-China)

 

  진나라가 망한 뒤 혼란을 수습하고 이제 막 등장한 중원의 통일제국 한나라와, 북방 유목민을 모두 통합하고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로 탄생한 흉노의 대결은 불가피해졌다... 이제 흉노는 장성 이북의 유목민들을 모두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초원 세계에서는 부족한 식량, 비단, 의복, 금은, 각종 사치품을 전쟁이나 약탈이라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흉노는 서로는 알타이에서 동으로는 싱안링, 북으로는 바이칼에서 남으로는 장성 지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제국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p37)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中


 이러한 다툼의 양상은 중앙아시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이란인으로 추정되는 스키타이인(Scythian)들과 농경 제국 페르시아(Persian)의 전쟁 역시 거대한 '유목 - 농경' 민족의 전쟁의 흐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국 내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리우스 대제(BC 550 ~ 486)는  BC 514년 대규모 스키타이 원정을 계획하지만,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역시 '유목 - 농경' 민족 간의 대립이 오랜 기간 있어왔고, 스키타이 원정 이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입(BC 492)으로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난 것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 제1차 페르시아 전쟁(출처 : https://www.shorthistory.org/ancient-civilizations/ancient-greece/the-greco-persian-wars-first-persian-invasion-of-greece/)


  스키타이인들은 페르시아 군과 직접 대결을 피하고 계속 초원 깊숙이 들어갔고, 다리우스는 그들의 종적을 좇아 초원을 헤매야만 했다... 상황은 역전되어 스키타이가 추격하고 다리우스는 쫓기는 입장이 되었으나, 그는 운 좋게 추격을 피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의 대군을 물리친 사건이 스키타이의 명성을 크게 높여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스키타이는 외적의 위협이 사라진 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여러 도시와 활발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p29)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中


 이처럼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간적으로는 동에서는 한(漢)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서쪽 로마에 이르기까지 유목 민족과 농경민족의 대립은 존재해 왔다. 따뜻한 남쪽에 위치한 나라들이 '경제력'을 갖췄다면, 추운 북방 민족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경제력- 군사력'의 상호 우위를 통해 세계는 균형을 유지해왔다.  독일의 역사학자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 ~ 1936)는 <인간과 기술 Der Mensch und Die Technik>에서 북방 민족이 강인할 수 있었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북방은 생활 조건의 어려움과 추위, 상존하는 생존의 곤경에 의해서 그 안에 있는 인종을 최고도로 첨예화된 정신과 전투, 모험, 진보에 있어서 엄청난 열정의 차디찬 정열을 갖춘 강한 인종으로 단련시킨다.(p62) <인간과 기술> 中


  오랜 기간 유지되온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균형은 서구사회에서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이 결합된 과학기술(science and technology)면서부터 깨지게 되었다. 슈펭글러에 의하면 본래  '기술'의 의미는 '삶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문명이나 생존 전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유럽 문명은 여기에 과학을 결합시키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물의 삶이란 싸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삶의 전략 및 "타자"에 대한 그들의 우열성(ihre Uberoder Unterlegenheit) - 이 타자가 유기적 자연이든 무기적 자연 - 은 이 삶의 역사, 말하자면 이 삶이 타자의 역사에 해를 끼치느냐 또는 반대로 타자의 역사로부터 해를 입은 운명이냐를 결정짓는다. 기술이란 전체적 삶의 전략이다. 기술이란 삶 그 자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싸움에서의 수법이 가지는 내면적 형식이다.(p14) <인간과 기술> 中


 슈펭글러가 '동역학(Dynamics)' 이라고 표현한 서구과학기술의 발달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결국 문명의 성격도 바뀌었다. 서구 문명이 발달된 과학기술이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만나, 기독교라는 사상을 가지고 제국을 추구했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 할 수 있다.(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를 참고) 슈펭글러는 서구 문명을  '파우스트적 욕망'으로 정의한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꽃피워낸 문명으로 규정하고, 이 문명은 인간이 속하는 자연(自然)을 점거하고 오염시키면서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고 결론 짓는데, 이는 주저 <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1918)의 결론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정신적 힘과 전리품에 대한 굶주림과 모험심을 가지고 13~14세기의 북부 승려들이 기술적-물리적 물제의 세계로 밀고 들어온다. 여기에는 중국, 인도, 고대 아랍의 학자들이 갖는, 실행에서 동떨어진 한가한 호기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여기에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간단한 "이론"이나 어떤 모습을 담아 내려고 사변력을 발휘하는 일이 없다... 파우스트적 자연 과학, 오직 이것만이 그리스의 정역학과 아랍의 연금술과는 대조적으로 동역학인 것이다.(p64) <인간과 기술> 中

 

  정신적인 바이킹의 이동은 물밀듯이 이어진다. 화약과 인쇄술이 발명된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술적 절차 방법들이 잇따른다. 이것들은 전체적으로 환경 세계로부터 비유기적 힘을 분리시켜서 동물과 인간 대신에 작업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p67) <인간과 기술> 中


 요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계는 '기술의 남미 축구'와 '힘과 높이의 유럽 축구'로 양분(兩分)되어 있었지만, 이러한 균형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으로 완전히 힘의 균형이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독일이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경기)라 생각된다. 


[사진] 2018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 vs 아르헨티나(출처 : 더팩트)


 어제 벌어진 프랑스 VS 아르헨티나 경기는 4 : 3 프랑스 승리로 끝났다. 비록 프랑스의  한 점 차 승리 였지만, 게임 내용상으로는 프랑스가 압도적이었던 경기였고, 아르헨티나는 더이상 과거와 같은 강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메시의 모습에서 이제는 몰락한 몽골 기마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오랜 대립이 서구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력 = 군사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최근의 월드컵을 통해 '자본력 = 스포츠 파워'라는 냉정한 현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 가난한 남미의 여러 국가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들의 식민 종주국들을 누르면서 쾌감을 느꼈다면, 이러한 한(恨)풀이가 더 이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개천에서 용(龍)이 나는' 그런 인생 역전 드라마를 보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 여겨져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장마전선과 태풍의 북상(北上)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 우리의 현재 날씨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기상도를 봐야하는 것처럼, 한국사(韓國史) 역시 세계사(世界史)의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2018년 7월 1일 현재 기상도(출처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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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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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2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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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2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이 브라질을 크게 이긴 경기는 결승전이 아니라 4강전이에요.. ^^;;

겨울호랑이 2018-07-02 12:28   좋아요 0 | URL
아 그렇네요. cyrus님 말씀 듣고 수정했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7-02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4: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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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_^

겨울호랑이 2018-07-02 20:40   좋아요 2 | URL
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