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시아나 아프리카나 이탈리아를 떠나 황량하고 일기불순하며 살기에도 보기에도 음울한 게르마니아를 찾겠는가? 그곳이 고향이라면 몰라도.(p26)... 싸움터에서 시종들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은 주군에게 치욕이고, 주군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은 시종들에게 치욕이다. 그리고 주군이 전사했는데 살아서 싸움터를 떠난다는 것은 평생의 치욕이자 수치이다... 게르마니족은 평온이 싫고, 위험 속에서 더 쉽게 명성을 얻는 데다 폭력과 전쟁이 아니고서는 시종들의 대집단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p50) <게르마니아> 中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AD 55 ? ~ 117 ?)는 <게르마니아 Germania> 속에서 당시 야만족의 땅이라 불렸던 게르마니아의 땅과 게르만 족의 용맹함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농경민족인 라틴족의 시각에서 바라본 게르만족은 용맹스럽지만 야만스러운 종족이었다. 게르만족은 오랜 기간 로마의 골칫거리였고, 중국 흉노(匈奴)의 일파로 추정되는 훈 족의 침입으로 게르만 민족이 이동하면서 결국 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해마다 가을이면 강한 기병을 활용한 흉노의 침입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고사성어다.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흉노 역시 농경국가인 한(漢)과 오랜기간 대립해왔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흉노, 선비, 거란, 몽골과 같은 북부 유목(遊牧)민족과 한(漢)족의 다툼으로 요약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도] 한 제국의 확장( 출처 : https://www.quora.com/Why-did-the-Huns-led-by-Attila-invade-Europe-and-not-China)

 

  진나라가 망한 뒤 혼란을 수습하고 이제 막 등장한 중원의 통일제국 한나라와, 북방 유목민을 모두 통합하고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로 탄생한 흉노의 대결은 불가피해졌다... 이제 흉노는 장성 이북의 유목민들을 모두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초원 세계에서는 부족한 식량, 비단, 의복, 금은, 각종 사치품을 전쟁이나 약탈이라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흉노는 서로는 알타이에서 동으로는 싱안링, 북으로는 바이칼에서 남으로는 장성 지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제국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p37)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中


 이러한 다툼의 양상은 중앙아시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이란인으로 추정되는 스키타이인(Scythian)들과 농경 제국 페르시아(Persian)의 전쟁 역시 거대한 '유목 - 농경' 민족의 전쟁의 흐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국 내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리우스 대제(BC 550 ~ 486)는  BC 514년 대규모 스키타이 원정을 계획하지만,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역시 '유목 - 농경' 민족 간의 대립이 오랜 기간 있어왔고, 스키타이 원정 이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입(BC 492)으로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난 것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 제1차 페르시아 전쟁(출처 : https://www.shorthistory.org/ancient-civilizations/ancient-greece/the-greco-persian-wars-first-persian-invasion-of-greece/)


  스키타이인들은 페르시아 군과 직접 대결을 피하고 계속 초원 깊숙이 들어갔고, 다리우스는 그들의 종적을 좇아 초원을 헤매야만 했다... 상황은 역전되어 스키타이가 추격하고 다리우스는 쫓기는 입장이 되었으나, 그는 운 좋게 추격을 피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의 대군을 물리친 사건이 스키타이의 명성을 크게 높여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스키타이는 외적의 위협이 사라진 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여러 도시와 활발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p29)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中


 이처럼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간적으로는 동에서는 한(漢)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서쪽 로마에 이르기까지 유목 민족과 농경민족의 대립은 존재해 왔다. 따뜻한 남쪽에 위치한 나라들이 '경제력'을 갖췄다면, 추운 북방 민족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경제력- 군사력'의 상호 우위를 통해 세계는 균형을 유지해왔다.  독일의 역사학자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 ~ 1936)는 <인간과 기술 Der Mensch und Die Technik>에서 북방 민족이 강인할 수 있었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북방은 생활 조건의 어려움과 추위, 상존하는 생존의 곤경에 의해서 그 안에 있는 인종을 최고도로 첨예화된 정신과 전투, 모험, 진보에 있어서 엄청난 열정의 차디찬 정열을 갖춘 강한 인종으로 단련시킨다.(p62) <인간과 기술> 中


  오랜 기간 유지되온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균형은 서구사회에서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이 결합된 과학기술(science and technology)면서부터 깨지게 되었다. 슈펭글러에 의하면 본래  '기술'의 의미는 '삶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문명이나 생존 전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유럽 문명은 여기에 과학을 결합시키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물의 삶이란 싸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삶의 전략 및 "타자"에 대한 그들의 우열성(ihre Uberoder Unterlegenheit) - 이 타자가 유기적 자연이든 무기적 자연 - 은 이 삶의 역사, 말하자면 이 삶이 타자의 역사에 해를 끼치느냐 또는 반대로 타자의 역사로부터 해를 입은 운명이냐를 결정짓는다. 기술이란 전체적 삶의 전략이다. 기술이란 삶 그 자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싸움에서의 수법이 가지는 내면적 형식이다.(p14) <인간과 기술> 中


 슈펭글러가 '동역학(Dynamics)' 이라고 표현한 서구과학기술의 발달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결국 문명의 성격도 바뀌었다. 서구 문명이 발달된 과학기술이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만나, 기독교라는 사상을 가지고 제국을 추구했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 할 수 있다.(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를 참고) 슈펭글러는 서구 문명을  '파우스트적 욕망'으로 정의한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꽃피워낸 문명으로 규정하고, 이 문명은 인간이 속하는 자연(自然)을 점거하고 오염시키면서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고 결론 짓는데, 이는 주저 <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1918)의 결론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정신적 힘과 전리품에 대한 굶주림과 모험심을 가지고 13~14세기의 북부 승려들이 기술적-물리적 물제의 세계로 밀고 들어온다. 여기에는 중국, 인도, 고대 아랍의 학자들이 갖는, 실행에서 동떨어진 한가한 호기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여기에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간단한 "이론"이나 어떤 모습을 담아 내려고 사변력을 발휘하는 일이 없다... 파우스트적 자연 과학, 오직 이것만이 그리스의 정역학과 아랍의 연금술과는 대조적으로 동역학인 것이다.(p64) <인간과 기술> 中

 

  정신적인 바이킹의 이동은 물밀듯이 이어진다. 화약과 인쇄술이 발명된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술적 절차 방법들이 잇따른다. 이것들은 전체적으로 환경 세계로부터 비유기적 힘을 분리시켜서 동물과 인간 대신에 작업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p67) <인간과 기술> 中


 요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계는 '기술의 남미 축구'와 '힘과 높이의 유럽 축구'로 양분(兩分)되어 있었지만, 이러한 균형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으로 완전히 힘의 균형이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독일이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경기)라 생각된다. 


[사진] 2018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 vs 아르헨티나(출처 : 더팩트)


 어제 벌어진 프랑스 VS 아르헨티나 경기는 4 : 3 프랑스 승리로 끝났다. 비록 프랑스의  한 점 차 승리 였지만, 게임 내용상으로는 프랑스가 압도적이었던 경기였고, 아르헨티나는 더이상 과거와 같은 강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메시의 모습에서 이제는 몰락한 몽골 기마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오랜 대립이 서구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력 = 군사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최근의 월드컵을 통해 '자본력 = 스포츠 파워'라는 냉정한 현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 가난한 남미의 여러 국가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들의 식민 종주국들을 누르면서 쾌감을 느꼈다면, 이러한 한(恨)풀이가 더 이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개천에서 용(龍)이 나는' 그런 인생 역전 드라마를 보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 여겨져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장마전선과 태풍의 북상(北上)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 우리의 현재 날씨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기상도를 봐야하는 것처럼, 한국사(韓國史) 역시 세계사(世界史)의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2018년 7월 1일 현재 기상도(출처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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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1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2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이 브라질을 크게 이긴 경기는 결승전이 아니라 4강전이에요.. ^^;;

겨울호랑이 2018-07-02 12:28   좋아요 0 | URL
아 그렇네요. cyrus님 말씀 듣고 수정했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7-02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_^

겨울호랑이 2018-07-02 20:40   좋아요 2 | URL
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