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는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 / Anna Mary Robertson Moses(1860 ~ 1961)가 자신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림과 함께 풀어간 책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19세기 중후반의 미국 시골의 풍경과 함께 아름답게 펼쳐진 그녀의 그림을 보면 도시에 살던 이들도 아련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동요 <노을>를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림에서 주는 이런 여유와 아름다움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할머니의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p275)'
[그림] country Fair(1950) (출처 : http://www.all-art.org/art_20th_century/moses3.html)
할머니의 그림은 여러 면에서 독특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서양회화의 특징이 거의 완벽하게 무시되고 있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모지스 할머니의 독특한 그림 특징을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전경은 물론 배경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냈습니다. 이러한 화풍 때문에 할머니의 그림은 네모난 조각들을 이어붙인 퀼트에 비유되기도 하지요. 색을 쓰는 방법은 자수를 닯았고요. 물감을 섞어 쓰지 않고, 마치 여러 색의 털실을 나란히 수놓은 것처럼 여러 물감을 나란히 칠합니다. 창밖 풍경을 관찰하고 또 관찰해 그림을 그린다는 그녀는 계절별로, 시간별로 바뀌는 자연의 색감을 종이로 생생하게 옮겨내지요.(p280)'
원근법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 1472)는 회화를 "가시세계의 한 단편을 볼 수 있는 투명한 창"에 비유했다. 같은 크기의 대상은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질수록 그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한계를 정하는 벽, 바닥, 천정,혹은 풍경의 여러 구성요소를 배치하는 지표는 원경을 향해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에 직각을 이루었던 선(직교선)이 발전하여 중앙의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1340년 경(그때부터 약 39년 후에 북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그 중심은 이미 하나의 "소실점"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직교선"은 최소한 방해받지 않는 한 평면 내에서 수학적인 정확함으로 그 "소실점"에 수렴되었다. 그리고 1420 ~ 25년 경에 기울어진 입방체 건물의 지평선은 하나의 지평선 상에 대칭적으로 위치한 두 점을 향해 집중되는 것처럼 보인다.(Perspectiva cornuta)(p351)'
르네상스 시기 발전하기 시작한 원근법의 표현형태는 소실점이라는 하나의 점(點, point)로 귀결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한 점(one point)으로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고 작가의 의도가 표현되는 것이 원근법이라 생각됩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Matrix>에서 'the one'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근대 이후의 많은 그림들이 이러한 구도로 그려지는 반면, 할머니의 그림은 원급법을 사용하지 않기에 그림 내에서 위계가 표현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펼쳐진 그림 속에서 작가는 '그저 좋았다'는 관찰자의 입장에 있습니다.
[사진] 고속도로 사진(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eehaduk&logNo=22031369816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우리 삶에서 원근법의 구도가 극명하게 나타날 때는 고속도로 운전을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의 끝에 목적지가 있기에 운전중 우리는 눈 앞의 길을 보고, 길의 끝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도로 좌우측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게 되는 것이 현재 우리의 삶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고속도로에서 차를 멈추고 풍경을 바라본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그림의 편안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여겨집니다.
[그림] So long till next year(1960) (출처 : http://www.all-art.org/art_20th_century/moses3.html)
이제 2017년도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웃분들께서 2018년 한 해 많은 목표와 계획을 세우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시겠지요. 내년 한 해 원하시는 바 많이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다만, 바라는 목표의 끝에만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가는 길 좌우에도 소중한 존재(사람, 삶 등등)가 있기에, 힘들 때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여유있는 삶 또한 가지시길 바라봅니다. 끝으로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의 할머니 글을 옮기며 이번 페이퍼를 마칩니다. 지난 한 해 이웃분들 덕분에 많이 행복햇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지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p275)'
ps. 고속도로에서 갓길 정차는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