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자아(‘저자’라고 생각되는 자아)가 일상생활을 하는 자아와 같지 않다는 이런 관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불쌍한 어린 넬8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가 자식들을 위해 부지런히 크리스마스 게임을 만들던 유쾌한 가장 찰스 디킨스가 아닌 게 확실한가요? 디킨스가 펜을 든 자신의 손이 무자비하게 넬을 죽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세요.

아뇨, 넬을 죽인 건 그의 내면에 잉크로 된 촌충처럼 도사리고 있던 시체 애호가였습니다.

이자크 디네센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읽은 게 아닌가 싶네요. 그녀라면 읽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말이지요. 그런 식의 변신이라면 몸소 겪어서 익숙했을 테니까요. 그녀는 평범한 인간일 때는 카렌 블릭센으로, 소설가일 때는 이자크 디네센으로 살았지요. 일부 여성 작가들처럼 지킬 박사에서 한 술 더 떠 성별까지 바꾸어서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오랜 늑대인간 이야기(평범한 남자가 특정 상황만 되면 날카로운 이빨의 미치광이로 돌변한다는 이야기)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도플갱어에 대한 옛이야기에도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불행을 막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를 죽였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를 뭔지 모르게 기괴하다고 여깁니다. 똑같이 복제된 생김새가 우리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닮은꼴은 쌍둥이나 형제보다 더합니다. 그는 ‘나’이니까요. 나의 가장 본질적 특징(외모, 목소리, 심지어 이름까지)을 공유하는 나이지요.

스코틀랜드의 민속 신앙에서는 자신의 닮은꼴을 만나는 것을 죽음에 대한 징조라고 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 이야기는 자신의 닮은꼴을 만나는 상황을 경고하는 미신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요. 나르시스가 자신의 비친 얼굴, 즉 자기 자신이지만 반대쪽 수면에 비친 자신을 보고, 그 얼굴이 그를 죽음으로 유인하니까요.

누군가 여러분이 농가에서 소들에게 마법을 거는 장면을 봤다고 칩시다. 그런데 같은 시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나온 겁니다. 그러면 결백을 증명할 수 있겠다 싶겠지만 이는 오히려 여러분이 닮은꼴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즉 마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과만 낳습니다(법정에서 ‘유령의 증거’를 금지하고 나서야 뉴잉글랜드 마녀재판은 마침내 끝이 났지요).

〈스텝포드 와이프〉 〈디 아더〉 〈데드 링거〉와 같은 ‘닮은꼴’ 영화들을 본 영화팬이라면 알 겁니다.

유형의 ‘닮은꼴’을 다룬 초기 영문학 작품 중 하나가 제임스 호그의 《사면된 죄인의 고백》(1824)이지요. 구원받을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고 확신하는 이 책의 주인공은 긴 잠에서 깨어난 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고약한 짓을 저지른 걸 깨닫고 대신 책임을 지게 됩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 〈윌리엄 윌슨〉(1839)도 비슷하지요. 여기서 주인공은 양심적으로 참견을 해대는, 자신과 외모도 이름도 똑같은 남자에게 평생을 시달립니다. 그러다 결국 또 다른 윌리엄 윌슨, 고로 자신을 죽이면서 생을 마감하지요.

두 명의 윌리엄 윌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죽음을 공유한 사이이므로 나머지 한쪽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마법의 그림 속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13(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주인공―옮긴이)도 있습니다.

이 책의 교훈은 이겁니다. 마법의 그림이 있으면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그냥 가만히 둬라.

여기에 보탤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다섯 손가락의 야수》14라는 묘하게 무서운 작품입니다. 적어도 10대 시절, 밤에 아기 돌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읽었을 때는 이상하게도 무섭더군요.

최고의 메타소설 《마녀의 망치》15에 나오는, 마녀의 꾐에 넘어간 음경이 주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새둥지에서 잠을 잔다는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코가 한 남자에게서 도망쳐서 제복 차림의 궁중 관리가 되었다가 마침내 붙잡혀 다시 몸에 붙여진다는 내용을 그린 고골리의 소설 〈코〉가 떠오르시나요?

삼촌이 죽고 손이 담긴 소포가 도착했을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보세요. 손이 유언장을 위조해 삼촌의 몸에서 자신을 잘라낸 뒤 우편으로 부치도록 지시하다니요. 멀쩡히 살아 있는 손은 밖으로 뛰어나와 커튼을 기어오르고 주인공을 괴롭히며 많은 닮은꼴들이 그런 것처럼 그의 인생을 망치기 시작합니다(이를테면 편지도 쓰고 주인공 이름으로 서명도 합니다. 손으로서는 불필요한 능력이 아닐 수 없지요).

남자가 손을 파괴하지만 손 역시 남자를 파괴하면서 이 책이 어떤 문학적 혈통을 물려받았는지 분명히 보여주지요.

만화 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어요. "움직이는 손가락이 글을 쓴다. 집필을 끝낸 뒤엔 3주에 걸쳐 20개 도시로 북투어를 다닌다."16 물론 현실에서 북투어를 가야 하는 건 손가락이 아니라 불운한 인간의 몸입니다. 작가의 그 빌어먹을 손가락, 실제로 글을 써내려간 그 녀석은 북투어는 나 몰라라 하고선 혼자 어딘가에서 햇볕을 즐기는 동안 말이지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훨씬 멀리 나아갔습니다. 〈보르헤스와 나〉라는 작품에서 그는 그저 손이나 손가락에 만족하지 않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주제에 작가를 결합시켜 자기 자신(보르헤스)을 둘로 나눕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 보르헤스라는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이다."17 스스로를 ‘나’라고 칭하는 나머지 반쪽이 이렇게 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자신과 취향을 공유하지만 "헛되이 배우의 상징으로 바꾸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의 관계가 적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내 자신이 계속 살아가게 하므로, 보르헤스가 용케 자신의 문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그 문학이 나를 정당화시켜 주는 것이다"라며 말을 이어나가지요.

오직 나의 일부 순간들만이 그의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가 사물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괴팍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조금씩 그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만약 내가 어떤 사람인 게 맞다면) 보르헤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을 작품(가식과 거짓 요소들을 품고 있지요) 속에 집어넣는데, 이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짜 자아라 할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심지어 이렇게 적으면서도 보르헤스는 글을 씁니다. 그는 이 역설을 잘 압니다. 다음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는 걸 보면요. "우리 중 누가 이 글을 쓴 건지 모르겠다."

말하기의 역사는 길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말하기는 대부분 유아기에 습득하지만, 읽기는 평생 못 배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읽기는 해독이고, 해독을 하려면 임의적인 표식의 집합, 즉 추상적인 공식을 배워야 하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을 깨친 사람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읽기는 희귀한 기술이었으며,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건, 즉 이상하게 생긴 표식을 쳐다보면서 멀리 있는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술술 풀어내는 건 경외의 대상이었어요.

신도 구원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그들이 직접 쓴 건 아니지만요)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둘 중 어디든 한 번 이름이 오르면 지우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언제나 악마의 악한 책보다는 신의 선한 책에서 이름을 없애는 게 더 쉬웠어요.19

기록된 글은 고정되고 변치 않는 성질을 얻게 되었지요.

주목할 건,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는 이야기꾼이라는 겁니다. 예수는 우화로 가르치지 글로 적지 않습니다.20 그 자신이 말씀이요, 소망하는 곳으로 흘러가는 성령인 까닭이지요. 또한 음성처럼 유동적이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의 원수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법문, 즉 기록된 글을 고수합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책으로 배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존 키츠는 자신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이 새겼습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잠들다." 이름을 기록하면서 영혼의 유동성까지 한꺼번에 얻다니, 참으로 탁월한 안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사도 마태가 그토록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손에는 펜이 들려져 있고, 곁에선 천사가 살짝 강압적인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쓸지 지시하고 있잖아요.

글쓰기는 마음에 부담을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록된 말은 증거와 흡사해요. 나중에 나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으니까요.

평론가가 작가가 마침내 진짜 자기 ‘목소리’를 냈다고 비평하는 걸 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작가는 ‘진짜’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 대신 목소리라는 ‘착각’이 들게끔 쓸 뿐이지요.

평론가들도 작가를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그러기엔 너무 늦어서죠. 책이 나올 때면 텍스트는 완성됐고, 루비콘 강은 건넜으며, 작가의 일은 끝난 뒤니까요. 다음 책에는 지적인 비평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가엽게도 갓 출간된 책은 이 넓고도 사악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제 운에 맡겨야 합니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듣는 것과 비슷해요. 이때 독자는 고유한 통역가가 됩니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를 모릅니다.

창조하는 행위와 작품을 손에 넣는 행위가 시기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데다 책을 무한정 복제하는 게 가능해진 탓이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현대 작가들이 자신을 모호하게 바라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인쇄 기술과 유통 방식이 개선되고 문맹률이 급속히 낮아지면서 별안간 작가들은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던 규모로 빠르게 인기를 끌고 엄청난 유명세를 얻게 되었어요. 즉,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훌륭한 존재로 비춰지게 된 거지요.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책은 메가폰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목소리는 확대시키지만 그 목소리를 낸 개인은 지우는 거예요.

자연스레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에 의해 가려져버리지요.

바이런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면서 자신의 시처럼 비장하고 낭만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몸무게가 늘자마자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릴까봐 대중의 시야로부터 벗어났지요.

비장하고 낭만적인 바이런적 영웅이 되는 것은 심지어 바이런에게조차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었던 겁니다.

어떤 이야기가 실은 꾸며낸 게 아니라 권위 있는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실화라고 말하면 하찮은 거짓이 아니라는 뜻으로 오히려 타당성을 얻었지요.

누군가 천재적인 작품을 쓴다면 그 사람 자체도 틀림없이 천재라는 소리였지요. 언제나 말입니다.

알곤퀸 인디언,25 윌리엄 버로스,26 그리고 스티브 벨과 같은 몇몇 영국 만화가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사람의 항문이 그만의 목소리와 개성을 가진 완벽한 제2의 자아로 거듭나는 우화를 지었습니다.

시가 자아의 표현이라면 위대한 시인은 자기 안에 든 훌륭한 것들을 작품에 쏟아부었기에 인간으로서 남아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논리지요.

대문자 A인 작가Author와 그의 닮은꼴 존재, 그들은 교대합니다.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서 말이지요. 각자 자신의 중요한 본질을 비워내 상대방을 채워줍니다.

글을 쓸 때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작업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두 층위의 에너지 사이를 위아래로 오가며 이중 도약한 이 세포가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 이곳에, 이 점을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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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침 내 생일이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절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그날은….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곁에는 정서적 의존 관계 전문가가 있었고, 최고의 업무 능력을 갖춘 그녀 덕에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예순셋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예순셋이란 여타 사람들의 마흔에 버금갔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그녀는 많은 작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탄과 배리, 안젤루, 콜린스가 전화기 너머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 주었다.

나는 명성 높은 여성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참 많았고 그녀는 친절히 답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올해도 책 홍보 투어를 다니느라 자신이 돌보는 백합들이 피어나는 광경을 놓치게 되었다고. 그녀는 절친한 사이인 마이클 코다에게 스케줄을 바꿔 줄 수 없냐고 부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작을 출판하기에 좋은 시기란 1년에 딱 한 번뿐이다.

참 놀랍게도 라임색 양말을 신은 남부 출신의 작가와 매력적인 금발의 신인 작가 두 사람은 이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완전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쓴 글에서는 어떤 우울감이 풍겨난다. 그건 우울감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해 악과 고통으로부터 아름다움을 건져 올린다.

한 방문 작가가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왔다. 난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고 생각했다. ‘잠깐만, 내가 아는 사람인가?’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매리언 위닉, 당신을 만나다니 정말 놀랍군요." 그는 예순다섯의 나이에 고통스러운 신경 질환을 앓으면서 신체적 손상을 입고 이르게 나이 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어느 때 못지않게 따뜻했고 기억력은 나보다 확실히 더 나았다. 우리는 여전히 또 다른 문학 행사가 열리는 곳에 있었고, 그가 지적했듯, 집에 두고 온 백합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도 여전히 피어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작가들과 옛 제자들이 깊은 감정을 담아 쓴 추도의 글을 읽었다. 다들 그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십 대 중반 이후부터 책을 출간했는데도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이 일곱 권이나 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야 진정으로 시작된 참이었다.

젊은 시절 춤추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꽤 괜찮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겼다. 그때 그녀가 제일 즐겼던 일은 오스틴이나 샌안토니오까지 차를 몰고 가서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를 보고 오는 일이었다.

"내가 좀 제멋대로였지." 나중엔 그녀도 인정했다. "그래도 난 수준이 높았다고." 재미있게도 그녀는 스물한 살에 한 남자와 결혼하겠다며 경영대를 다니다 말고 돌아왔다. 그 남자는 훗날 내 친구의 아빠가 될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춤도 전혀 못 췄고, 확실한 직업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내의 신용 조합을 넘겨받으려던 참이었기에 금전적인 면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도회장의 미녀가 어떻게 춤을 못 추는 남자와 결혼했을까?

친구는 아빠에게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양육의 대부분을 아빠가 책임지고 있던 때였다. 아빠가 상황을 설명하자 딸은 말했다. "듣기론 아플 것 같은데요." 아빠가 말했다. "아, 그래. 처음엔 그렇지. 근데 그다음에는 말이야, 네가 그 남자를 붙잡으려 방 안을 돌아다니게 될걸."

우리는 그분들의 패션 신념에 대해 논했다. 친구 어머니의 신념은 피부에 닿는 마지막 옷가지까지 챙기는 것이었다. 만약 그날 핑크색 드레스를 입었다면 확신해도 좋다. 그녀는 분명 핑크색 브래지어와 핑크색 슬립, 핑크색 팬티를 챙겨 입었을 것이다.

그녀는 잘 때 입는, 얇게 비치는 나이트가운만 서랍 하나 가득이었다. 심지어 구십 대가 되어서도 약간의 레이스나마 달리지 않은 파자마는 입지 않았다.

내 친구나 나나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적이 없어서 둘 다 각자의 어머니에게 똑같은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의견을 맞추기 어려웠던 까다로운 여성이 내가 이룬 결과에 감탄하고 칭찬을 할 때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는,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핑크색 실크 란제리는 당신의 영혼을 위한 것이었어요.

나는 텍사스, 이 외로운 별의 주Lone Star State를 사랑했던 만큼이나 친구네 가족을, 그들의 이야기, 말투에 깃든 억양, 요리, 관대함, 옷과 가구와 예술을 보는 탁월한 취향을 모두 사랑했다.

2년 간격으로 두 아들을 땅에 묻고, 남은 모든 걸 빼앗아가는 몹쓸 병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하고. "쉬잇, 다들 조용히 해 봐요." 그녀가 말한다. "여기 와서 저 석양을 좀 봐요. 이제껏 본 어느 하늘보다도 아름답지 않나요?"

그녀는 영민했으며 친절하면서도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딸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었던 아버지는 딸의 이혼 파티에서도 춤을 추었으며, 딸의 두 번째 결혼식에서도 춤을 출 터였다. "얘야,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있겠니. 앞으로 쭉 나아가렴."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따르도록 훈련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리드하는 법까지 가르쳤다.

어머니는 간호사였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매일 아침이면 도자기 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개들과 함께 나와 동네 개울가를 따라 걸었지. 아니 어쩌면 라마, 소 몇 마리, 닭 한두 마리도 함께했을 거야. 어머니는 앵무새야말로 가장 사회성이 뛰어난 새라고 말했어. 그리고 어머니가 가장 바라보기 좋아한 새는 왜가리였지."

친구와 친구의 오빠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동네 개울가를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은 도자기 잔을 들고 걷느라 자꾸만 발을 헛디뎠다. 친구는 그곳을 떠나며 도자기 잔을 나무에 걸어 두었다.

의사는 펜타닐(코카인보다 훨씬 값싸게 봉투 하나를 채울 수 있는)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이 병원에서만 매달 열다섯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내 진정한 친구들! 꽃병이 부서지고 뼈가 부러지고 자동차가 찌그러지듯, 무너져 버렸지.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고 아예 그럴 희망조차 사라질 만큼 무너져 버렸지. 그래도 말이야, 충분히 오래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든 고통은 잦아든다더라.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한 번에 한 단씩. 내가 그 자리에 있을게, 맹세해. 내 눈으로 보고 싶거든.

그는 심장마비를 겪고 살아 돌아온 뒤에, 심장마비란 "마치 곰이 내 가슴 위에 앉아 스포츠 기사를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을 바꾼 어느 한순간에 기여했다.

그는 좋은 남편이 못 되었다. 그는 네 번째 아내가 떠나자 결국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다 나이 팔십 대 초반에 접어든 어느 날, 욕실에서 나오다가 넘어졌다.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다가 나흘 만에 발견되었으며 병원으로 옮겨지고 일주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스티로폼 컵에 테킬라를 담아 마시고 있던 늙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였다.

우리의 우정에는 상식에 맞지 않는, 의아한 마법 같은 면이 있었다. 나보다 여섯 살 어렸고 손톱과 메이크업이 완벽했으며 맞춤복 바지를 입고 다니던 그녀는 마치 1960년대 스튜어디스나 꿈 많은 1학년 담임 선생님 같았다.

이 세계에서는 샤르도네 와인도 진통제 하이드로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닥치는 대로 타이 국수와 소고기 찜과 스파게티를 만들어 계속 차로 실어 날랐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쥐었던 걸 내려놓아야 하는 수많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그걸 친구는 너무나 느닷없이 이르게, 상상할 수도 없고 불가능한 방식으로 해내야만 했고 어쨌든 그 순간은 닥쳐왔다. 장례식을 마치고 8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 가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어여쁜 남매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 없는 이 세상이 어떻게 지속될지, 이보다 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다.

키가 큰 그녀는 더운 날의 물 한 잔처럼 확 끌리는 사람이었으며, 말이 많은 텍사스 출신의 금발머리였다.

이 화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 어머니는 손녀의 대학 등록금에 보탬이 되고자 이 그림을 팔았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친절하게도 어머니가 요구한 금액보다 두 배는 더 가치가 있다며 제대로 된 가격을 치러주었다. 사실 언젠가 이 그림에 내 손에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았다. 지금쯤은 화가의 딸이 스스로 대학에 가고자 할 것이다. 그녀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란 어렵다. 아마 그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자기 침대에 누워, 자기 머리카락을 지킨 채, 자기만의 엔딩을 써 내려갔다. 끝.

"버티는 게 중요해PERSISTENCE IS KEY."

그는 무슨 일이든 제시간에 맞추는 법이 별로 없었고,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는 것처럼 돈을 썼고, 글 쓰는 속도가 느렸으며, 성적 욕망이 강했다. 또 그는 레스토랑에서 늘 특별한 주문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다시 전자레인지 앞으로 보내면서 웨이터에게 살짝 녹여 달라고, 조지아 사투리로 말하는 식이었다.

그날 밤, 멀리 주차장을 향해 지루하게 걷는 길에서도 그랬다. 그에게는 매혹적인 면모가 있었다. 기사도적 예의와 삶의 기쁨과 느긋함이 흔치 않은 조합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나는 마치 고통 없는 성형 수술을 겪은 기분이었다. 그는 나를 예전보다 조금은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개와의 동반 입장이 허락되지 않을 때 그녀는 답했다. "알았어요, 젠장!" 그러곤 티켓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으로 갔다.

쾌활하고 자기 욕망을 기꺼이 즐기는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절망의 그늘은 있었다. 그녀는 외롭고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고, 나이 든다는 걸 더없이 끔찍하게 여겼다.

장례식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열린 칵테일파티로 대신했다. 그곳에서 난 그녀가 자신의 개를 보살펴 줄 사람들을 지정하고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녀와 다소 걱정스럽게 닮은 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보단 훨씬 운이 좋다.

난 운동선수였던 적도 없고, 비밀도 없다. 그리고 나라면 그 개를 두고 떠나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젊은 작가를 키운 건 거의 자기 형이었다. 형은 기세등등하고 인기 높은 마약 거래상이었으며 자기 남동생을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형은 동생이 열다섯 되던 해에 아버지의 집에서 그를 데리고 나왔고, 길거리에 두는 일 없이 학교에 머물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작 형 본인은 교육을 다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독서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둘이 사는 집은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농구공들과 운동화 상자들도.

보통은 그녀가 북클럽에서 읽고 있다는 소설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그녀는 이 북클럽에 40년째 참석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 여섯 명을 낳아 기른 그녀는 결단력 있게 대응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방식이 옳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나 앤 패칫(미국의 소설가들-옮긴이)에 관해 떠드는 내 모습, 본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

나는 중요한 지점을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예술과 혁명에 관한 거창한 생각들이 얼마나 쉽게 자기 파괴라는 어리석은 로맨스에 물드는지.

"얼마나 이상하고도 흥분되며 경이로운 일인지 모르겠다. 언어와 음악과 현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그토록 변화시킬 수 있다니, 서로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다니." 그렇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 중 일부는 굳이 잘못된 생각을 택하려 했다.

"친애하는 엘라, 레슬리가 지난밤에 죽었어요. 안타까운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졌고 점점 상태가 나빠지다가 결국 떠났어요. 이 일은 일주일 전에 시작되었어요. 내가 어항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레슬리가 뜰채 밖으로 뛰쳐나왔죠.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때 레슬리가 지느러미를 다쳤는데, 그 자리에 감염이 생긴 것 같아요. 며칠이 지나자 퉁퉁 부어오르더니 매끈했던 금빛 몸통이 흉한 빨간 반점으로 덮였어요. 지난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몸이 뒤집어진 채 수면에 떠 있는 레슬리를 발견했어요. 미동도 없고 핏기도 사라져 있었죠. 그런데 레슬리가 날 보더니 몸을 일으켜 흔들어 보려 했어요."

레슬리 노프는 원래 프레첼이란 이름으로 살다가 파양된 금붕어였다.

레슬리는 손님이 어항으로 다가온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바로 헤엄쳐 올랐다가 꼬리를 흔들었고 매력적이고 앙증맞은 캉캉 춤을 췄다. 손님은 반투명한 복숭앗빛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를 뽐내며 이리저리 헤엄치는 레슬리의 모습에 눈에 떼지 못하고 진솔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레슬리는 반복되는 이 의식을 전혀 지겨워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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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현관문 옆을 장식할 꽃들 심는 거.
요즘 너무 바쁘다. 바쁠 때 읽는 책이 더 기억에 남을리가 없지만, 그래도 읽을 책이 넘쳐서 든든하긴 한 것 같다. 다만 더 빨리 읽고싶어서 조바심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이 책 작년에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괜히 좋다.
페이지 수는 내 알라딘 모바일 페이지 수. 얇은 책인 것 같다.

나는 명성 높은 여성에게 하고 싶은질문이 참 많았고 그녀는 친절히 답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올해도 책 홍보 투어를 다니느라 자신이 돌보는 백합들이 피어나는 광경을 놓치게 되었다고.
201/413

우리는 여전히 또 다른 문학 행사가 열리는곳에 있었고, 그가 지적했듯, 집에두고 온 백합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도 여전히 피어났다.
20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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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5-1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분 속의 꽃들이 참 단아하고 정갈하니 예뻐요. 덕분에 눈이 힐링했습니다 라로님. 바쁘시다는데 이럴 때일수록 건강 챙기셔요~^^*

책읽는나무 2022-05-19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뉘.....라로님이 왜 저곳에???
근데 어떤 꽃인지 잘 못찾겠네요??ㅋㅋㅋ
왠지 찐분홍 일일초? (맞나요?) 일 것 같아요.
옛날에 일일초 키워봤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져서 잘못 외우고 있나? 여겨지네요^^

바쁜 건 좋은 거라고들 하시지만, 건강은 꼭 챙기셔요^^

파이버 2022-05-19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분 속 다섯 가지 빛깔의 꽃송이들이 너무 예쁩니다. 작은 꽃다발 같네요!
 

정상적인 뇌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기억하는 추론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어서, 공정한 관계가 유지되도록 우리의 행동을 조절한다. 내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당신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인간관계 장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호의를 잊었다간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를 것이다.

내가 나의 형제와 아이들,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에게 헌신하는 이유는 중요한 유전자를 그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표준진화론에 의하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친족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한 개체는 자연에 의해 선택될 확률이 높고, 그의 후손 중 상당수는 여전히 친족 보호 본능을 갖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여럿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분담하면서 공동생활의 효율을 높여 왔기 때문이다.

내가 한 집단에서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해도, 당신이 시도 때도 없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사적인 복수심이 끓어오를 것이다.

‘네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도 너에게 호의를 베풀겠다. 그러나 네가 불공정한 행동을 한다면 곧바로 보복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학계에서는 종교의 적응 효과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이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시 베링Jesse Bering은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다가 가십gossip(험담, 쑥덕공론)이 "집단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결론지었다.

집단의 규율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바람이나 나무 위, 또는 하늘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범법 행위를 자제하게 되고, 가십에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집단에서 추방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즉, 종교적 성향은 혈통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세대가 거듭될수록 종교에 더욱 심취하게 되고 인원수도 많아지는 것이다.2

그러나 현실적이건 상징적이건, 죽은 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

"법치 정신과 공정성에 투철한 사람이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조금만 노출돼도 큰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도 부지불식간에 이와 비슷한 영향을 받고 있을 것"

베커는 이 실험 결과를 두고 인류의 문화가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무력해지는 심리’를 경감시키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웃기고 있네…"라며 비웃는 것도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란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적 기질을 함양하는 수단이며, 서정적 매력이나 정직함, 또는 영웅적 행위의 형태로 삶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했다.2

종교는 자연선택된 뇌를 포용하고, 집단의 결속을 유도하고, 불안감을 해소하고, 개인의 평판과 번식 기회를 높여 주었다.

"두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26 모든 종교는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면서 탄생했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없었고 공간도, 하늘도 없었다.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섞였으며, 이를 주관한 자는 누구인가? 끝없이 깊은 바다가 존재했을까? 태초에는 죽음도, 영생도 없었고 낮과 밤의 구별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숨을 쉬었으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죽음은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순환 과정의 하나일 뿐이며, 윤회에서 벗어나면 존재라는 개념조차 없는 영원한 세계로 진입한다. 우리의 단명한 삶은 영원의 세계로 가는 신성한 통과 의례인 셈이다.

누가 뭐라 해도 과학의 기초는 단연 수학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세상은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알려 주는 이야기와 바람직한 행동을 안내하는 지침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종교의 교리와 연결되어 신도들의 마음에 굳건한 ‘믿음’을 만들어 낸다.

몸에 내장된 패턴 감지 장치가 과도하게 반응하여, 아무런 관계도 없는 패턴들 사이에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가끔은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도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따지면 우리는 네 번에 한 번꼴로 카드의 무늬를 맞출 수 있고, 열세 번에 한 번은 숫자를 맞출 수 있습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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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모로칸 룸El Moroccan Room에 들어가고 싶어서 끈질기게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젠더, 섹슈얼리티, 미술, 음악, 저항. 이 모든 게 그 사람 덕에 더 큰 의미를 얻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결정하는 데 더 큰 자유를 얻었다.

카리스마 있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 덕에 내향적이던 어머니와 대장은 의외로 빠르게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분스 농장에서 사과주를 과음한 자들, 도를 넘는 사춘기 소년소녀들,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녀석들은 엄한 사랑과 훌륭한 유머를 갖춘 캠프 대장이 다스렸다

난 베이비시터 노릇은 영 별로였지만 그의 아이들을 잘 돌봐 주려 노력했다.

골든 보이가 마지막으로 동생을 만났을 때는 둘 다 50대 중반의 나이였다. 이제 도시 계획가이자 자랑스러운 아버지, ‘골든 맨’이 된 친구는 쿠바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플로리다에 들러 형을 만났다. 그날 만난 형은 오래된 난파선 같은 모습이었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허풍 떠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렇지만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며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건 변함없었다.

큰 아이가 자기보다 작은 동생을 보호하려는 듯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동생은 마음이 울렁이면서도, 자신이 그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순다섯 살은 너무 젊은 나이였지만 짧은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구나 싶다.

그녀는 바톤 스프링스의 얼음처럼 차가운 에메랄드빛 물에서 매일같이 수영했다. 이 천연 수영장은 한 번 나아갈 수 있는 거리가 800미터쯤 되며 새와 절벽,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개발될 위기에 처하자 사방에서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녀는 관련 위원회의 일원으로 모임에 참석해 자기 의견을 밝혔고, 시 의회에서 이 사태를 강력히 규탄하기 위한 시들을 낭송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악랄한 계획과 성명을 들고 나왔으며 그들의 턱수염 졸업장의 학과목에는 문학도, 윤리학도, 철학도, 예술도 없었다. 하나둘셋, 숨 쉬고. 하나둘셋, 숨 쉬고."

우아했던 할머니는 우리가 함께하는 걸 즐거워하셨다. 다만 사람 많은 곳에 갈 때는 우리와 동행하지 않고 본인의 신용카드를 건네며 저녁을 먹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 ‘플로리다의 유대인’의 100번째 생일은 4대에 걸친 아름다운 여성들이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모여 축하했으며 청바지를 입고 집에서 만든 할라 빵을 가져온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막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집으로 가지 못하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지만. 어쩌면 로비에 걸린 안내문, 마치 필체를 숨기려는 범죄자의 메시지처럼 조각조각 오려서 붙인 글자들이 그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오늘은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계절은 여름. 날씨는 고온 다습. 돌아오는 휴일은 노동절."

어쩌면 내가 말년에 알아야 할 것이라곤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재미난 게 최고로 좋았던, 70년대 형편없는 백인 꼬마들. 그게 우리였다.

그녀가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운 게 시동생이 했던 가장 잘한 일이었다. 공놀이도, 바닷가로 향하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도, 한밤중에 호수에서 벌이는 불꽃놀이도 어느 하나 빼먹지 않았다. 험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인자한 새아버지를 모두 겪어본 그는 아이들을 대할 때 오로지 다정한 아버지이기만 했다. 훈육은 아이들의 엄마에게 맡겨야 한다는 정도는 잘 알았다.

그는 마치 두 명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고 물건을 훔치고 몰래 돌아다녔던 어두운 쪽의 자아는 떠나 보내지 못했다.

그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어디에도 속박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은 항상 슬퍼 보였다.

뉴 밀레니엄이 와 있었고 우리의 운은 여러 번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했다.

그가 저 멀리 있었다. 키 157센티미터이며 미니애폴리스 출신인 채식주의자, 여호와의 증인, 달만큼 거대한 천재(가수 프린스를 일컬음-옮긴이).

마지막으로 그를 본 그때는 볼티모어 폭동 직후의 시기였다. 그는 어머니의 날에 평화를 기원하는 콘서트를 열었다. 나는 이게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다는 듯, 나와 내 딸이 앉을 공연장 세 번째 줄 자리에 천 달러를 썼다.

내가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프린스, 마돈나, 키스 헤링, 마이클 잭슨, 그리고 나, 가끔 불러 보곤 하는 이름들이다. 이제 마돈나와 나 둘만이 남아 이곳을 지키고 있다.

나는 몇 주째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찾아대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다른 결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처럼.

2014년 여름,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고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이름을 단 영상이 엄청나게 늘었다. 일단 찬물을 뒤집어쓰고 흠뻑 젖은 희생자는 이 챌린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호명된 사람은 루게릭병 연구소에 기부하거나 몸을 흠뻑 적시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둘 다 했다.

영상 속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남자의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가 카메라 앞에서 연설하는 동안, 남자의 머리 위로 얼음물 열네 통이 쏟아졌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다른 영상들은 우리까지 머리가 얼어붙는 기분이라서 지켜보기가 힘들다면, 이 영상은 다르다. 남자의 쇠약한 두 팔, 저절로 비틀어지는 몸, 주름지도록 눌린 목, 너무 이르게 희끗해진 턱수염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 마흔두 살인 그는 14년째 이 병을 앓으며 살아왔다.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최후의 근육을 써서, 미소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남자는 암벽 등반가, 카약 선수, 야생 지역 가이드였다. 두려움 모르는 탐험가였으며 가망 없이 낭만적인 시인이었다. 그러다 병이 찾아왔을 때의 그는 여전히 20대를 벗어나지 않은 나이였다. 처음에는 자꾸 발을 헛디뎠고 이상하게 몸이 허약해졌으며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진단된 병명, 앞으로 모든 걸 잃게 됨을 의미하는 그 끔찍한 음절들의 모음. 그저 운동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웃음도 섹스도 맥주도, 눈을 가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동작조차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 쇠약한 젊은 헤라클레스는 웨일스에 뿌리를 둔 남자들의 계보를 이어받았으므로,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의 축복 혹은 저주를 받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내가 198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했던 소프트웨어 회사의 상사였는데, 불이 난 건물에서 사람들을 구했으며 주말 동안 컴퓨터 언어 전체를 익힌 사람이었다.

얼음물 열네 통. 14년의 한 해마다 한 통씩. 그리고 미소. 잔인한 신들도 지켜보고 있었길 빈다.

오스틴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서른둘이었다.(굳이 나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를 혹시라도 우리의 고등학생 시절이라고 여길까 싶어서이다.)

그녀의 머리칼은 완벽하게 쭉 뻗은, 빛나는 연갈색이었다. 햇볕에 잘 그을린 얼굴빛, 시원시원한 미소, 크고 푸른 눈. 매일 몸에 꼭 맞는 청바지와 잘 다림질한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다녔다. 글씨체는 아름다웠고 사무실은 나무랄 데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비록 컴퓨터 언어를 잘 알진 못했지만 그녀가 만든 프로그램이 얼마나 우아할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종 양념통들은 알파벳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전생에 풍수 사상을 만든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온화하고 겸손하며 친절한 사람이었고 기민한 투자가였으며 동물 애호가였다. 하루에 두 번씩 자기 책상에 앉아 명상을 했다. 그 덕에 열네 시간씩 내리 앉아서 집중력 있고 정확하게 업무를 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이며 대표인 상사와 함께 밤새 사무실에 틀어박혀 프로그램의 버그를 수정하곤 했다.

그때, 우리의 찻주전자 속에 어떤 폭풍이 일었는지 당신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상사가 동거 중이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마침 그 여자 친구는 부사장이 되고, 그녀는 이제 성공한 변호사가 된 어린 시절의 연인, 즉 남편을 떠나면서 결국 그녀와 상사 두 사람이 결합할 수 있었던 바로 그때 말이다.

나 역시 부사장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대체로 분노하는 분위기도 이해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모든 비밀스러운 일을 벌인, 그리고 이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고 자기 삶 전부를 무너뜨린 그녀의 기개. 내가 언제까지나 찬탄할 그것. 그게 사랑이란다, 베이비.

두 사람이 몸담았던 소프트웨어 회사가 매각되면서 그녀는 동네 고등학교의 임시 교사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녀라면 교실은 풍수에 맞추고, 모두에게 채식 컵케이크를 권하고, 아이들에게 초월 명상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62번째 생일이 되었을지도 모를 자리였다. 데크 위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일몰, 마지막 마르가리타 한 잔, 혹은 다섯 잔. 유난히 단정하고 다정했던 사람, 안녕히.

어슬렁거리던 나는 그녀의 작은 침실로 들어갔다. 화려한 색감을 써서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린 그녀의 그림들이 벽마다 걸려 있었고 한쪽에서 그녀가 삶은 달걀을 먹고 있었다. "당신은 늘 삶은 달걀을 먹네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난 두 주 동안 삶은 달걀만 먹었다고. 그때 사람들이 무얼 먹는지 관심이 많은 젊은 엄마였던 나의 눈에는 그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연스레 금욕주의로 나아갔다.

청록색 수영장 옆에서 열린 파티에서 베라크루즈식 생선 요리를 먹고 멕시코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녀의 친구들은 모른다. 이 떠들썩한 보헤미안 무리에 비하면 그는 조용한 편인데,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지금 술병을 입술에 대고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두렵다.

당신이 만약 늑대인간을 본 적이 없다면, 그 존재를 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시카고에서 온 벌꿀색 머리칼의 소년이 위스키 석 잔과 맥주 세 병을 비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그의 눈이 얼마나 차갑게 번뜩이는지, 목소리가 어떻게 그르렁거리는지, 두 손이 어떻게 오그라드는지 한 번쯤 목격한 다음이라 해도, 아침에 깨어 보니 온몸에 물어뜯긴 자국과 멍이 가득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늑대인간 같은 건 없다고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아니, 내 남편은 늑대인간이 아니야.

두 사람이 남자의 부모님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주위에서 오래된 털 뭉치를 발견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가 바뀔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녀는 평소와 다른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건 피임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메스꺼움이었다. 늑대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의 다음 여자는 좀 더 똑똑했다. 그가 총을 구입했을 때, 접근 금지 명령을 어겼을 때, 여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그 후, 늑대 인간은 얼마간 구금되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술에 취한 채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다. 그렇게 두통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고 그대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온 벌꿀색 머리칼의 소년은 동의했을지 모르겠다.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집을 비운 밤, 그녀의 친구들이 찾아와 그녀와 딸을 픽업트럭에 태웠고,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어설픈 모습으로 오프라 쇼에 출연한 적 있었는데, 마침 방청석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게이였고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당시 쇼의 주제에 딱 들어맞았다. "젠장, 이 남자 동성애자인가 봐."

그녀에겐 멋진 애인이 여럿 있었지만, 소중했던 마지막 연인은 오스틴 싸구려 식당의 웨이터인 스티브였다. 비록 그녀에게 병이 생기기까지 5분쯤 남았을 때 만났지만, 어쨌든 둘은 끝내주게 멋진 연애를 했다.

곧 죽음이 닥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니 참 잔인한 사치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이뤄질지 알 수 있단 데서 기묘한 위안을 느낀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인생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아무 계획도 없었다. 오랫동안 농담처럼 말했지만, 난 뒷문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내가 누굴 들여보낼 수 있을지 보려고 뒷문으로 달려간다."

암이 일흔셋이 된 그녀를 빼앗아갔을 때, 모두가 상실감에 빠졌다.

작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자기 길을 찾는 중이에요."
"네?"
이때, ‘자발적 운동가’는 작가에게 팔을 두르더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이렇게 외쳤다. "요는, 엄마가 아들이 아직 자기 길을 찾는 중이라고 말할 때는 그 대화가 끝났다는 뜻이에요."

그녀는 단 한 문장으로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가짜 대화를 끝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성년이 된 이후의 삶 가운데 결혼한 시절보다 혼자인 시절이 더 길어진 지금, 나는 다른 집 남편들이 보여 준 친절한 순간들을 보물 상자에 모아 두고 있다.

그와 그의 아내는 흔치 않게도 서로 비난하지 않고 헤어졌다. 그때 우리 집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였다.

일터에서 만난 매력적인 금발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그가 약혼반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터놓고 의논해 온 적이 있었는데, 상대 여성이 반지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에 낚싯대를 선물하는 남자랑 결혼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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