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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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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비 1>
2025-03-01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오덕 지음 / 삼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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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누가 쓰고 누구한테 읽히나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오덕 글

 삼인

 2011.9.16.



  오늘날 우리나라를 보면, 다 다른 모습을 안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훨씬 깊구나 싶습니다. 다 똑같다면 받아들일 까닭이 오히려 없고, 다 다르기에 그야말로 받아들이는 길을 배우게 마련인데, 나랑 조금이라도 다르면 틀어지거나 등돌리기 일쑤입니다. 곳곳에서 ‘다름(다양성)’을 말하면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주 다른’일 적에는 뜻밖에 ‘미움(혐오)’이라 여기면서 내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아주 다른 ‘저놈’을 끌어안고 헤아릴 적에 비로소 ‘너름새(포용)’이지 않을까요? 나랑 비슷하거나 우리랑 닮을 적에는 끌어안거나 헤아린다면, 이런 몸짓이야말로 ‘따돌림(차별)’에 밉질(혐오)로 쏠립니다. 나랑 안 비슷하거나 우리하고 안 닮은 ‘남·놈·이웃’을 수더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비로소 참답게 너름새입니다.


  누구나 글을 쓰고서 조촐히 꾸러미로 묶을 수 있는 터전이라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몇몇만 글을 쓰거나 번듯하게 꾸러미로 묶는 터전이라면 담벼락이고 사슬터인 갑갑한 굴레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미 우리나라는 너름새 아닌 담벼락인 굴레로 오래 흐른 터라, 누구나 글을 쓰는 길을 열기가 외려 힘들구나 싶습니다. 나라에서도 이런 너름글을 안 반기고, 우리부터 너름글로 좀처럼 안 나아갑니다.


  누구나 마음을 스스럼없이 말로 옮기면서 두런두런 어울리기에 아름다이 보금자리요 마을이요 나라일 테지요. 몇몇만 목소리를 높인다면, 숱한 사람들은 그저 따라가거나 듣기만 해야 한다면, 이러한 곳은 집도 마을도 나라일 수도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있지 않던 ‘맞춤길·띄어쓰기’입니다. 이웃나라도 매한가지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도 ‘맞춤길·띄어쓰기’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맞춤길·띄어쓰기’는 바로 ‘몇몇(소수 특권층·권력자)’이 엮어서 굴레처럼 씌우는 길에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적잖은 분들이 글을 마음껏 못 쓰거나 책을 신나게 못 내는 까닭이 있어요. 바로 ‘맞춤길·띄어쓰기’가 첫째요, ‘나 같은 사람 삶이 무슨 글이나 책이 될 만한가?’ 하고 스스로 깎아내리고 맙니다. 이러면서 글보람(문학상)을 받은 책이 있으면 덥석덥석 사들이는 물결입니다. ‘오직 글빛’을 보려는 눈이 아니라, ‘글보람이라는 허울’에 따라서 휩쓸리는 나라입니다.


  글읽기 없는 글쓰기란 없습니다.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먼저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은 제대로 ‘말하기’를 못 하거나 혼자 큰소리로 떠들면서 둘레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무는 굴레로 치닫기 일쑤입니다. 이른바 잘난책(베스트셀러)을 쓰는 분을 보면 ‘글읽기·책읽기·이웃소리 듣기’를 아주 못 하거나 아주 조금 하거나 아예 안 한다고 느낍니다. ‘아름책(평생 곁에 둘 책)’을 쓰는 분을 보면 이분이 글이나 책을 바지런히 내놓더라도 언제나 ‘글읽기·책읽기·이웃소리 듣기’가 밑바탕이게 마련입니다.


  2011년에 나온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이오덕 님이 1980년 언저리에 쓴 글을 모읍니다. 이오덕 님은 이 꾸러미를 1980∼90년 무렵에는 책으로 내놓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온나라에 들너울이 몰아치던 1980∼2000년이기도 했고, 이럭저럭 들너울이 자리를 잡던 2000년 즈음부터는 몹시 몸앓이를 하느라, 그만 꾸러미를 제때 선보이지 못 했습니다.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은 ‘동화’라는 이름을 굳이 붙여야 글이 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자꾸 ‘문학·소설·동화·동시·시’ 같은 허울에 매달리려고 하는구나 싶기에 짬짬이 쓴 글을 모았다고 할 만합니다. 이오덕 님은 ‘동화’가 아닌 ‘글’을 쓰자는 길을 말씀합니다. ‘문학’이 아닌 ‘삶글·살림글’을 쓰자고 말씀하지요.


  어린이는 어른으로 자라고, 어른은 어린이를 낳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으로 크는 길을 걷고, 어른은 새로 빚는 어린이 목숨을 늘 몸속에 건사합니다.


  어른이 되면서 어린이였던 나날을 잊는 사람이 많은데, 참말 뼛속까지 몽땅 잊는 사람이 많은데,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으려고 마음을 바치고 땀을 흘릴 수 있다면, 언제라도 어린이 넋을 되찾으면서 사람다운 꿈을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노상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잠드는 모습은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 두 사람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씨라고 느껴요. 이와 함께, 아이들이 미운짓을 한다거나 소리만 꽥꽥 지르면서 뒷북놀이를 한다면, 이때에도 이 슬프거나 못난 매무새란 저희 어버이 두 사람한테서 이어받은 아픔이나 생채기라고 느껴요.


  착한 넋으로 사랑스레 살아가는 어버이일 적에는 착한 넋으로 사랑스레 살아가는 아이들이에요. 샘내는 몸짓으로 안쓰러이 살아가는 어버이일 적에는 샘내는 몸부림으로 안쓰러이 살아가는 아이들이고요. 어버이는 어버이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 길을 찾을 일입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즐거울 적에 우리 아이들도 즐겁습니다. 아이들만 곱게 자랄 수 없어요. 아이들만 숱한 배움터를 다니며 똑똑할 수 없어요. 아이들만 서울로 나아가서 일꾼(회사원)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며 ‘잘살’ 수 없어요. 어버이와 아이가 나란히 잘살 노릇입니다.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배우며 살림할 일입니다. 어버이와 아이가 다함께 곱게 살아야지요. 어버이와 아이가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펼 하루입니다.


  저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이원수나 권태응이나 권정생이나 임길택이나 현덕을 듣지도 배우지도 못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 길잡이였는데도 집에서 글(동시·동화)을 읽어 준 적도, 동시집이나 동화책을 챙겨 준 일마저 없습니다. 어린배움터 길잡이였던 우리 아버지는 날마다 밤늦도록 술을 퍼마시고서 고주망태짓을 실컷 했을 뿐입니다.


  어릴 적에는 도무지 읽을 겨를도 책도 없었으나, 싸움터(군대)를 다녀온 1998년부터 스물서넛 언저리 나이에 비로소 스스로 글(동시·동화)을 혼자 찾아보고 찾아읽는 하루였습니다. ‘집안에 책이 없으’니 ‘집밖서 책을 찾을 수 있던’ 셈이라 할 만하지요. 집안에 책이 없으니 그저 안 읽고서 살 수 있고, 고주망태로 시끄러운 우리 아버지 술버릇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만, 이 모두 받아들일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었습니다.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쉰 살에도 꾸준히 글(동시·동화)을 읽습니다. 이제는 글(동시·동화)을 쓰기도 합니다. 마음을 살찌울 글을 바랐기에 집밖에서 오래오래 길을 찾아나섰다면, 스스로 어버이란 자리에 서서 두 아이를 곁님하고 낳아서 살림하는 동안에는 ‘내가 스스로 되읽’을 글에다가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글’은 바로 어버이가 몸소 쓸 노릇이라고 깨닫습니다. 온누리 모든 어버이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남겨주어야 참하고 어질고 착합니다. 온누리 모든 엄마아빠는 아이 곁에서 하루를 노래하는 이야기를 말이나 글로 물려주면서 아름답고 슬기롭고 즐겁습니다.


  두 아이를 곁님과 함께 낳고 살아가면서 언제나 찬찬히 돌아봅니다. 이 아이들 나이 즈음에 나는 우리 어버이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나는 다섯 살이던 1980년에 뭘 했는지 떠올리고, 열 살이던 1985년에 무엇을 보았는지 되새기고, 열다섯 살이던 1990년에 어떤 마을에서 지냈는지 곱씹습니다.


  그저 곰곰이 되짚습니다. 도무지 안 떠오르든 환하게 생각나든, 그동안 걸어온 길과 오늘 걸어가는 길을 맞물립니다. 지난날 어리석거나 어설픈 대목을 뉘우치면서,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심고 가꿀 꿈씨앗과 살림씨앗을 그립니다.


  어버이란, 늘 아이 곁에 있는 동무이자 이웃입니다. 아이란, 언제나 어버이 곁에서 노래하는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둘은 사근사근 어울리면서 어깨동무합니다.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은 없고,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아닌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낳은 아이를 돌보건, 이웃집 아이를 헤아리건, 한결같이 아이 곁에서 하늘빛으로 꿈을 그리면서 하루를 일구는 손길과 몸짓일 적에 천천히 어른으로 자라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어버이인 내가 먹고 싶은 밥을 아이도 먹고 싶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즐겁게 차려서 맛나게 먹는 밥을 아이도 맛나게 먹어요. 어버이인 나부터 아이하고 곁님한테 곱게 가다듬은 빛나는 말씨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아이도 나와 곁님한테 곱게 가다듬은 빛나는 말결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지만, 이보다는 ‘흐르는 사랑’이로구나 싶습니다. 나한테서 아이한테 흐르는 사랑이 있고, 아이한테서 나한테 흐르는 사랑이 있어요. 나한테서 곁님한테 흐르는 사랑처럼, 곁님한테서 나한테 흐르는 사랑이 있습니다.


  착하고 참한 길을 반가이 맞아들이면, 어버이요 어른인 나부터 기쁜 나날을 누립니다. 착하고 참한 길을 반가이 맞아들이는 어버이요 어른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라면, 이 아이는 하루하루 씩씩하게 착하고 참한 길을 반가이 맞아들이면서 어여삐 자랄 수 있어요. 어버이 스스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아이들 삶이 달라요. 이름나다는 배움터나 훌륭하다는 책만 붙잡는들, 아이들 삶이 나아가거나 자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배움터에 넣으면 안 돼요. 아이들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곳에서 함께 살고 살림하면서 저마다 스스로 사랑꽃을 피울 수 있으면 돼요.


  아이에 앞서 어른부터 아름답고 푸르디푸른 숲을 품으면서 흙을 사랑하는 나날을 일구는 터전이면 넉넉합니다. ‘학교’란 이름에 매일 까닭이 없습니다. ‘동화’나 ‘문학’이나 ‘작가’라는 이름에 붙잡힐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부터 일찌감치 쳇바퀴를 떠나야 합니다. 아이를 살리고 어른 스스로 살아나고 싶다면 시골에서도 쳇바퀴를 붙잡으면 안 됩니다. 아이를 살리는 길이란 누구보다 어버이요 어른인 나부터 살리는 길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살아나면서 어깨동무할 꿈누리를 이루는 길을 걸어가야 사랑과 꿈을 이룹니다. 맨발로 흙을 디뎌야 합니다. 맨손으로 흙을 만져야 합니다. 흙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운 목숨인 이 삶을 깨닫고, 흙으로 돌아가는 아리따운 목숨을 알아차려야지요.


  가을바람이 잠들면서 겨울바람이 다가옵니다. 가을햇볕이 내리쬐니 이윽고 가을걷이를 마치고, 어느새 겨울햇볕이 찾아옵니다. 해는 봄부터 겨울까지 골고루 내리쬡니다. 철마다 다르게 흐르는 빛과 볕과 살을 읽기에, 천천히 철들면서 찬찬히 차오르는 참눈을 틔웁니다.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어떤 책일까요. 이오덕 님은 속삭입니다. ‘동화를 쓰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사랑’을 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어린이를 사랑해야 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인 나부터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런 글을 펼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이 없을 적에는 어떠한 일도 일굴 수 없다고 밝힙니다. 또한, 글만이 아니라 나라(정치·사회·교육·노동·환경)도 늘 사랑으로 마주할 노릇이라고 밝힙니다. 잔재주나 이름값이나 바깥힘이나 돈으로는 어느 길도 어질게 펼 수 없다고 밝혀요.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사랑이 없는 나라에서는 무슨 길이 나올까요. 사랑이 없는 가게에서는 무엇을 장만할까요. 사랑이 없는 새뜸(신문·방송)에는 어떤 이야기를 실을까요.


  오늘날 숱한 글바치는 그야말로 ‘글로 글을 쓰’고 ‘지식으로 지식을 다룹’니다. 글로 쓰는 글은 무슨 보람인지 아리송합니다. 지식으로 지식을 다룰 적에는 누구한테 이바지하는지 알쏭합니다.


  ‘글로 쓰는 글’이나 ‘지식으로 다루는 지식’에는 사랑이 없어요. 따뜻하지 않아요. 너그럽지 않을 뿐 아니라, 꿈조차 없어요. 저는 이 삶에서 부스러기(지식)를 쌓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밭에 글조각을 채우고 싶지 않아요. 이 삶을 알차게 일굴 나무 한 그루가 사랑스러워요. 이 삶을 알뜰히 보듬을 풀 한 포기가 반가워요.


  제가 어릴 적에는 이름조차 모르고 읽지도 못하던 이원수·권태응·권정생·현덕·임길택 같은 분이 남긴 글을 차근차근 읽습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습니다. 또 읽고서 거듭 읽습니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서 읽히다가, 아이들이 스스로 소리내어 읽습니다.


  ‘동화’는 어른이 써서 어린이한테 읽힙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동화책이든 동시책이든 스스로 돈을 치러서 장만하지 못해요.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이나 동시책은 모두 어른이 책집에서 사서 내밀어야 합니다. 짐(독후감 숙제)으로 읽히는 동화책이든, 마음밥으로 살찌우는 이야기꾸러미이든, 한결같이 어른이 사들인 다음에 어린이가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화’란 어른이 써서 어른이 읽는 글입니다. 어른이 써서 어른이 읽은 다음에, 찬찬히 거르거나 가리거나 솎아서, 우리 아이한테 조금씩 베푸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어린이와 살아가는 어른이 온사랑을 기울여 쓴 글(동화·동시)을 어린이와 살아가는 또다른 어른이 온사랑을 기울여 알뜰살뜰 읽은 다음에, 온사랑을 기울여 보살피는 우리 아이한테 글을 읽혀야 아름답습니다.


  동화가 이러하다면, ‘동화 비평’이나 ‘동시 비평’은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일까요. 동화나 동시 모두 사랑으로 쓰고 사랑으로 읽는다면, 동화와 동시를 비평하는 글은 어떻게 써야 참답게 비평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할까요.


  오직 하나일 테지요. 글쓰기도 사랑으로 이루고, 글읽기도 사랑으로 이룹니다. 글나눔이든 글꽃이든 모두 사랑으로 이룹니다. 우리 삶도 사랑이며, 우리 아이들 삶도 사랑입니다. 이웃과 동무 모두 사랑이에요. 풀꽃나무와 벌레와 짐승 모두 사랑입니다. 구름과 바람과 들판과 바다와 멧자락 모두 사랑이에요. 사랑이 없이 쓴다면 쭉정이입니다. 사랑을 잊은 채 쓰고 읽는다면 허수아비입니다. 사랑을 등지거나 속이면서 쓰고 읽는다면 꼭두각시입니다. 사랑을 모르거나 안 배우면서 쓰고 읽는다면 얼뜨기입니다.


  많이 읽기에 많이 쓰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읽고서 사랑으로 삭이기에 사랑으로 씁니다. 사랑으로 듣고서 사랑으로 풀기에 사랑으로 짓습니다. 우리는 으레 “저 사람 참 글 많이 쓰네!” 하고 여기기도 하는데, 많이 쓰든 적게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무엇’을 쓰는지 볼 노릇이고, ‘어떻게’ 쓰는지 살필 일입니다. 사랑이 없는 채 ‘조금’ 쓰면서 잘난책을 내놓는다면,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피어나면서 기쁘게 아름책으로 여민다면, 이렇게 태어나는 책은 한 해에 100자락이더라도 ‘안 많’습니다. 아름답게 사랑으로 일구는 책은 한 해에 100자락이더라도 거꾸로 ‘적다’고 느낄 만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책을?’ 하고 여기면 이미 스스로 갉고 할퀴고 깎는 바람에 스스로 아프고 스스로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마음이라면, 우리가 함께 나눌 말이라면, 바로 ‘가장 작고 낮고 수수하고 흔한 오늘 이야기’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나처럼 작은사람’이니까 글을 쓸 노릇이고, ‘나처럼 작은일’이니까 책으로 묶을 일입니다.


  마음에 그리는 꿈을 담은 ‘하루(일상·생활)’를 손수 일구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야기이기에 ‘오늘(역사·문화)’을 이룹니다. 굳이 어렵거나 일본스런 말씨인 ‘일상·생활·역사·문화’라는 낱말을 안 써도 됩니다. 그저 우리가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사람으로서 주고받는 ‘하루·오늘’이라는 낱말로 나를 나타내고 너를 맞이하면서 이야기하면 넉넉합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을 이야기하는 글”이라면 누구나 쓸 만하고, 하나하나 아름답게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꾸미려고 하기에 맞춤길에 따라야 합니다. 번듯하게 치레하려 하기에 띄어쓰기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글이란, 모름지기 말입니다. 말을 옮기기에 글입니다. 말이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을 소리로 담아서 나누려 하니 말입니다.


  이 얼거리를 읽어낼 수 있다면, 다 다른 사람은 늘 다 다르게 ‘사투리’를 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하루인 줄 알아봅니다. 우리는 ‘우리말(나로서 너로서 우리로서 하는 말)’을 하면 됩니다. 내가 하는 ‘우리말’이란, 내가 내 삶터에서 스스로 삶을 짓듯 스스로 마음을 지으면서 스스로 말로 그리는 ‘사투리(나답게 사람답게 사랑으로서 나누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즐겁게 쓰고 읽어 보셔요.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쓰고 읽어 보서요. 그저 그대로 쓰고 읽으면서 그냥 그대로 담는 글이기에 빛난다고 느낍니다.


+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이오덕, 삼인, 2011)


요즘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 어머니고 할머니고 아버지고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서 벙어리가 되었고,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함께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11쪽)


동화문학이란 것을 좀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참모습을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쓰는 글”이다. 또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이야기로 쓰는 글”이다. (17쪽)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동화를 쓸 수 있다 …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실성, 어린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 참으로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만이 동화작가가 될 수 있다. (20쪽) 


우리 모두가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더욱 높은 자리에 서서 나날의 일들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 나날의 일들이 결코 평범한 이야기로 처리될 수 없을 것이다. (25쪽)


이 생각(주제)을 그대로 바로 쓰면 설교가 되고 논문이 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감동으로 느껴지도록 쓰면 소설이 되고 동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주제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의 행동과 말과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 있어서 독자들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그 생각에 따르고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주제는 지은이의 인격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으니 훌륭한 삶의 태도와 인생관,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라야 훌륭한 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이다. (28쪽)


동화를 어린애들에게 주는 장난감이나 과자 같은 것 정도로 보아 온 작가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지만, 어린이와 겨레가 살아가는 문제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모나 교사들이라면 철학이 있어야 동화를 쓸 수 있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29쪽)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에게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그 뜻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33쪽)


문장이 어려운 것은 그 뜻이 깊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용은 아무것도 아닌데 글이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36쪽)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벌써 오래 전에 민간설화를 모아 정리하는 일을 끝내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저마다 자기 나라의 풍토에 맞는 아동문학을 창조해 왔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아프리카·동남아의 여러 약소국가들도 모두 설화를 수집·정리·보존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 왔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사회에서는 거의 내버려둔 상태다. (59∼60쪽)


민중을 멸시하고 민족을 열등시하는 처지에 서 있는 사람은 민중의 전통을 멸시하고 옛이야기를 열등시할 것이 당연하다. 민중을 높이 보고 민족에 애정을 갖는 사람만이 민중들의 느낌과 말을 사랑하고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속속들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66쪽)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가꾸려는 태도는 대단하며, 아이들도 그렇게 풍부하게 기록된 옛이야기를 즐겨 읽으면서 자라고 있다. (67쪽)


이렇게 옷을 깁고 신을 삼으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것이 옛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가 전수되던 자리는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일을 하는 자리, 생산을 하는 자리였다는 것,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창조하는 사람과 받아 누리는 사람, 어른과 아이가 온전히 하나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민중성의 본질을 이해해야 되는 것이다. (75쪽)


이러한 민중들의 소망과 지혜가 담긴 교훈성이 있기에 옛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문학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다. (79쪽)


어린이들은 어른들(더구나 글을 쓰는 사람들)같이 사색에 잠기거나 추상된 이론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감으로 진리를 깨닫는다. 삶 속에 움직인다. 공상도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출발한다. (80∼81쪽)


저들을 잡아먹으러 올라오는 호랑이에게 도리어 올라오는 수를 가르쳐 주는 아이들이기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고, 기적이 기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 아이들의 말은 하늘과 땅의 모든 목숨에 가 닿는다. 하느님이 아이들의 소원을 어찌 모르겠는가. (131쪽)


농과대학을 나와도 농사지을 줄 모르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데가 없어 빈둥거리면서 놀고, 그러다가 그제야 무슨 기술을 배운다고 전문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꼴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153쪽)


그토록 알뜰히 배우고 널리 익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고, 그 모든 배움의 알맹이가 되고 밑바탕이 되는 것은 못 배웠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람의 목숨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기르고 가꾸고 해서 그것을 장만하는 일이다. (159쪽)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교육, 문학, 철학, 정교, 그밖에 우리 어른들이 쌓아 놓은 모든 고귀한 것들의 알맹이가 되고 바탕이 되는 것, 근원이 되는 것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5쪽)


놀이가 없는 공부는 참 공부가 될 수 없다 … 사람은 누구든지 놀이로 된 어린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연장해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196쪽)


어른들이 아이들을 억압해서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거나 비뚤어지게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운 자리에서 놀게만 한다면, 이 아이들은 지금까지 어른들이 상상도 못했던 참으로 놀랍고 훌륭한 공부를 스스로 즐기면서 하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200쪽)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가 시인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친다고, 문학교육을 한다고 아이들을 방 안에 가두어 놓고 죽은 글만을 읽게 하고 외우게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이다. 이래서 아이들과 교육은 교과서에 올려놓은 그 죽은 글과 함께 죽어 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그 모든 것이다. 자연을 잃은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자연을 빼앗긴 아이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언제나 포근하게 안아 주는 어머니가 된다. (207쪽)


일제시대에 쓴 작품, 더구나 아동문학 작품에서는 이런 잘못 쓴 말을 그대로 두지 말고 마땅히 우리 말로 고쳐서 읽도록 하는 것이 옳고, 그렇게 해야 작품을 써서 남긴 분의 뜻도 바로 이어 주는 일이 된다고 본다. (275쪽)


잘못된 공부라는 짐에 짓눌려 그 몸과 마음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아이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곧 아이들에게 삶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겠는가? (307쪽)


거의 모든 동요시인들이 겨레의 삶과 아이들의 현실을 등지고 방 안에서 읽은 글 속에 갇혀 머리로 고운 말만 꾸며 만들어 내어서 아이들에게 읽히고 노래 부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어린이들의 참된 삶과 노래의 전통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다행히 아이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어 준 동요시인이 있었다. 권태응과 이원수 두 사람이다. (318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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