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구르는 속도 - 제4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5년 고양시 올해의 책 사계절 아동문고 113
김성운 지음, 김성라 그림 / 사계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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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3.25.

다듬읽기 282


《행운이 구르는 속도》

 김성운

 김성라 그림

 사계절

 2024.9.10.



  즐겁게 구른다면 빠르느냐 느리느냐 안 따집니다. 즐겁게 구를 적에는 좋으냐 나쁘냐 안 가립니다. 즐겁지 않기에 ‘행복’이나 ‘복’을 거머쥐기를 바라지요. ‘행(幸)’도 ‘복(福)’도 ‘살림’하고는 아주 멉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행복 :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으로 풀이하지만, ‘행복’은 ‘기쁘다·흐뭇하다’하고는 맞닿지 않는 한자말입니다. “어쩌다가 길이 풀려서 좋다”는 밑뜻입니다. 벼슬아치나 나라지기나 돈바치가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좋아하는 굴레를 가리키는 ‘행·행복·행운’인 터라, 막상 우리가 이런 한자말이 마치 ‘좋은’ 줄 잘못 바라볼 적에는 모두 뒤틀리거나 꼬이게 마련입니다.


  스스로 손길을 펴서 살림을 가꾸지 않더라도, 남이 다 해주면서 좋기를 바라는 얕은 굴레가 ‘행·행복·행운’이고 ‘요행·다행’입니다. 이 얼거리를 읽어낸다면 “좋게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하루하루 제 보금자리에서 땀흘리고 살림을 짓는 길을 걸”을 테지요. 우리 다리로 걷고, 우리 손으로 가꾸고, 우리 눈으로 돌보고, 우리 마음으로 심는 길일 적에 ‘살림·삶·사랑’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살림·삶·사랑’하고 등지거나 먼 굴레와 늪과 수렁이 ‘행·행복·행운·요행·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행운이 구르는 속도》는 ‘살림을 짓는 나’가 아니라 ‘좋게 풀리기를 바라며 남을 자꾸 쳐다보는 늪’에서 아이가 어떻게 ‘좋게 풀리’는지 다루는 줄거리입니다. 날씬하거나 미끈하거나 이쁘장하거나 두 다리와 온몸이 멀쩡하게 태어나야 ‘좋게’ 태어난 삶이지 않습니다. 어떤 몸으로 어떻게 태어나든 이 별에 온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사랑을 누리면서 하루를 맞이합니다.


  삶에는 가시밭길과 자갈길이 있어요. 꽃길만 흐르지 않습니다. 겨울이 반드시 있어야 봄이 있고, 봄이 반드시 끝나야 열매가 맺는 여름이며, 여름이 반드시 저물어야 가을에 드디어 열매가 익습니다. 다 다른 네 철인데, 모두 석 달씩 흐릅니다. 어느 철이든 더 길지 않아야 하고 짧아야 하지 않아요. 겨울이 길어 보인들 그저 석 달입니다. 여름이 짧아 보인들 고작 석 달이에요. 다 다른 네 가지 철이 흐르듯 우리 삶도 언제나 다르게 오르내리거나 너울칩니다. 이렇게 삶을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즐겁게 구르는 길”입니다. 얼마나 빨라야 좋으느냐 하고 따지는 “행운이 구르는 속도”가 아닌,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살림을 하고 가꾸고 돌아보면서 차분히 지내는 마음을 줄거리로 잡는다면, 글결도 멋내기가 아니라 수수하게 살림을 들려주는 길이었을 테지요.


ㅍㄹㄴ


《행운이 구르는 속도》(김성운, 사계절, 2024)


그건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 빛물결 안 터지는

→ 이음길 안 터지는

7쪽


갈매기들 사이에서도 “거긴 노잼.”이라고 소문난 것 같다

→ 갈매기 사이에서도 “거긴 잼없어.” 하고 퍼진 듯하다

→ 갈매기도 “거긴 재미없어.” 하고 떠드는 듯하다

8쪽


나의 장애나 할아버지와의 의리 같은 것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 내가 못 걷거나 할아버지와 후더워서 그러지 않는다

→ 내 걸림돌이나 할아버지랑 도타워서 그러지 않는다

→ 내 돌담이나 할아버지하고 미더워서 그러지 않는다

8


도망치듯 가게를 나갔다. 메에―롱

→ 달아나듯 가게를 나간다. 메에롱

→ 내빼듯 가게를 나간다. 메에롱

16


사실 나 램프의 요정이다

→ 나 불나래이다

→ 나 불빛날개이다

→ 나 밤나래이다

31


소원 들어줄 사람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 꿈 들어줄 사람 잘 골라야 한다

→ 꿈 들어줄 사람 제대로 골라야 한다

34


빡구가 사악하게 웃었다

→ 빡구가 고약하게 웃는다

→ 빡구가 더럽게 웃는다

→ 빡구가 괘씸하게 웃는다

36


나 짝남 생겼어

→ 나 짝사랑 해

→ 나 짝사랑이야

41


보라의 새로운 소식에 들떴던 것도 잠시

→ 보라가 새로 들려준 말에 살짝 들떴지만

→ 보라가 새로 알린 말에 조금 들떴으나

42


몇 발자국 걷는 건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다

→ 몇 발자국 걸을 수 있지만, 이러려면 몸을 써야 한다

→ 몇 발자국 디딜 수 있지만, 이러자면 몸을 가꿔야 한다

48


심각한 표정으로 얘길 나누는 아저씨

→ 걱정스레 얘기하는 아저씨

→ 괴롭게 얘기를 하는 아저씨

50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했다

→ 우리는 손뼉을 쳤다

→ 우리는 손을 짝짝 했다

52


언니가 온 뒤로 집이 시끌벅적해졌다

→ 언니가 온 뒤로 집이 시끌벅적하다

58


대답과 동시에 으라차차 괴성을 지르며

→ 말하자마자 으라차차 소리를 지르며

→ 말하기 무섭게 으라차차 악을 쓰며

63


제가 사전 답사를 가 봤는데

→ 제가 미리갔는데

→ 제가 먼저봤는데

74


박물관 선생님이 연신 주의를 주었지만

→ 살림숲지기가 연신 나무랐지만

→ 살림숲터님이 연신 꾸중했지만

91


고장 나지 않은 저상 버스를 한 번에 탔다

→ 안 망가진 낮은수레를 바로 탔다

→ 헐지 않은 얕수레를 곧바로 탔다

91


배식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 밥을 나누고서 자리로 돌아오니

→ 밥나눔을 마치고서 자리로 오니

100


누군가 대신 싸울 기세로 나섰다

→ 누가 싸울 듯이 나선다

→ 누가 싸울 듯이 나서 준다

128


나에게 찾아온 행운은 마법 같은 소원이 아니라 바로 친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 나는 놀라운 꿈이 아니라 동무를 만날 적에 즐겁다고 말이다

→ 나는 대단한 꿈이 아니라 동무와 어울리기에 즐겁다고 말이다

137


이 글을 읽는 동안 환대받는 기분을 느끼셨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이 글을 읽는 동안 반갑다고 느끼신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 이 글을 읽으며 반가우셨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 이 글을 반갑게 읽으신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138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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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
애지니아빠 지음, 이강훈 그림 / 파롤앤(PAROLE&)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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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2.29.

다듬읽기 286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

 애지니아빠 글

 이강훈 그림

 PAROLE&

 2021.1.27.



  누구나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말을 배웁니다. 아이는 좋거나 나쁘다는 말을 안 가립니다. 둘레에서 쓰는 모든 말을 귀담아듣고서 즐겁게 배웁니다. 아이는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풀벌레소리도 고스란히 듣고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는 부릉부릉 빵빵 왁자지껄 떠들썩한 소리까지 그저 듣고서 가만히 맞아들입니다. 아이가 듣는 소리란, 어버이와 어른이 늘 누리거나 헤아리는 소리입니다. 아이가 쓰는 말이란, 우리가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물려주려는 숨결입니다.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는 아이가 어쩜 이렇게 빛나는 말씨를 펼 수 있나 놀라면서 지켜본 바를 조금 담아낸 꾸러미입니다. 아버지로서 이모저모 곁들이는 줄거리가 꽤 길어서 살짝 군더더기 같습니다. 서로 나누는 마음만 읽으면 됩니다. ‘우리 아이’만 말을 낳을 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말을 낳는 줄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또한 아이한테 하는 말이 그대로 씨앗으로 자라는 줄 살펴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어진 사람이라면 아이한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따위는 아예 안 묻습니다. 우리가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아이한테 “오늘은 바람이 무슨 얘기를 들려주니?”라든지 “오늘은 나무가 무슨 말을 하니?” 하고 꼬박꼬박 물을 테지요. 아이가 스스로 말빛을 가꿀 만한 말씨를 심을 뿐 아니라, 스스로 어른이라는 마음으로 ‘어른이 어른스러울’ 말결을 찾아야 할 텐데, 이런 대목에서는 몹시 아쉬운 책입니다.


ㅍㄹㄴ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애지니아빠, PAROLE&, 2021)


아이는 어른으로부터 말을 배우는 것일까

→ 아이는 어른한테서 말을 배우나

→ 아이는 어른 곁에서 말을 배울까

4쪽


아이의 말들은 처음 그것이 생겨난 그 먼 옛날의 힘을 지니고 다시 태어난다

→ 아이 말은 처음 말이 생겨난 옛날처럼 힘있게 다시 태어난다

→ 아이 말씨는 말이 비롯한 옛날처럼 힘있게 다시 태어난다

4쪽


계속 씰룩거린다. 덜컹 겁이 나서 인터넷을 뒤져 보니 ‘틱’이란다 … 다행히도 일주일 정도 지나니 눈 깜박임은 잦아들었다

→ 자꾸 씰룩거린다. 마음이 덜컹해서 누리집을 뒤져 보니 ‘쥐’란다 … 그래도 이레쯤 지나니 눈은 덜 깜빡인다

→ 또 씰룩거린다. 덜컹 무서워 누리집을 뒤져 보니 ‘떨림’이란다 … 고맙게 이레쯤 지나니 눈은 덜 깜빡인다

12쪽


종일 집에 있는 것이 무료해 보여

→ 내내 집에 있으니 심심해 보여

→ 그저 집에 있으니 따분해 보여

15쪽


이런 말들이 자연스러운 것은 몇 살까지일까

→ 이런 말은 몇 살까지 스스럼없을까

→ 이런 말은 몇 살까지 고스란할까

18쪽


할아버지에게는 저녁마다 애지니와 전화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 할아버지는 저녁마다 애지니와 말을 섞으며 즐겁다

→ 할아버지는 저녁마다 애지니하고 말하며 즐겁다

26쪽


난 내가 죽을까 봐 겁나

→ 난 내가 죽을까 무서워

→ 난 내가 죽을까 두려워

42쪽


본방을 사수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일요일 저녁에는

→ 제때보려고 우리는 해날 저녁에는

→ 바로보려고 우리집은 해날 저녁에는

53쪽


교육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애지니에게 배운다

→ 즐겁게 살도록 가르치는 줄 애지니한테서 배운다

→ 애지니는 기쁘게 살라고 가르친다

82쪽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서 애지니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 애지니는 뭘 알아냈다며 웃음짓고서 똑부러지게 말한다

→ 애지니는 뭘 알아냈는지 웃으면서 다부지게 얘기한다

109쪽


그러나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요하게 이 질문을 애지니에게 계속한다

→ 그러나 이런 줄 알면서도 또 애지니한테 물어본다

→ 그러나 이런 일이 있어도 자꾸 애지니한테 묻는다

125쪽


애지니가 낳은 말 속에서 아빠는 말의 원래 뜻을 배웠다

→ 아빠는 애지니가 낳은 말로 처음 말뜻을 배운다

→ 아빠는 애지니가 낳은 말로 오랜 말뜻을 배운다

12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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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증언 낮은산 키큰나무 2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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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2.10.

다듬읽기 274


《너를 위한 증언》

 김중미

 낮은산

 2022.4.5.



  삶을 사랑으로 짓는 손길이기에 살림을 이룹니다. 하루하루 맞이하지만 사랑이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휩쓸리며 심부름에 얽매이니 살림과 등질 뿐 아니라 사랑을 모릅니다. 온누리 어디에서나 삶·살림·사랑을 품는 사람으로 서는 집이 있지만, 안타깝고 슬프게 삶·살림·사랑이 아니라 돈·힘·이름에 이끌리는 끄나풀과 놈팡이도 있습니다. 《너를 위한 증언》은 살림지기·사랑지기가 아닌 놈팡이·끄나풀이 휘두르는 주먹에 울고 아프고 죽은 가시내한테 맺힌 응어리하고 눈물을 담는 줄거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멍청한 주먹을 ‘남성가부장권력’이라고 일컫습니다. 넋을 잃은, 얼을 잊은, 빛을 등진, 씨앗을 팽개친 무리가 ‘고약한 꼰대(남성가부장권력)’일 텐데, 바로 모든 임금(왕·대통령·권력자)이 고약한 꼰대입니다.


  얼핏 보면 임금이란 놈팡이는 하나 아니냐고 여길 텐데, 피를 잇는 임금은 수두룩하고, 임금이 되려는 사내(왕자)도 수두룩합니다. 임금을 모시는 벼슬아치는 하나같이 사내(신하·사대부·귀족)이면서 수두룩합니다. 임금과 벼슬아치는 그들 돈·힘·이름을 움켜쥐려고 사람들을 억누르고 짓밟아서 싸울아비(군인)로 데려가고, 나라 곳곳에 나리(양반·지식인·공무원)를 두는데, 싸울아비하고 나리도 줄줄이 사내입니다. 몇몇 사내하고 얽힌 굴레가 아닌, 고린틀(봉건사회)이 고스란히 굴레입니다.


  굴레에 길들기에 돈벌이는 하되 살림은 안 짓거나 못 짓습니다. 굴레를 꿰는 허수아비에 끄나풀로 떡고물을 얻는 자리를 누리려고 하니, 사납짓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합니다. 이른바 ‘이씨 조선 500해’가 끝장났어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어도, ‘박·전·노·김 군사독재’를 끌어내렸어도, 왜 고약한 꼰대짓이 안 사라지는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사회·국가·정부)라고 하는 꼴이 그대로 고약한 꼰대틀이거든요.


  《너를 위한 증언》은 줄거리를 펴려는 뜻은 나쁘지 않다고 느끼지만, 고약한 꼰대틀이 서슬퍼런 얼거리를 썩 못 읽거나 안 읽는 듯합니다. ‘모든 아버지’도 ‘몇몇 아버지’도 아닌, ‘모든 사내’도 ‘몇몇 사내’도 아닌 실타래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살림이고 사랑이고 삶이고 사람인지 밝힐 때라야, 응어리를 달래고 눈물을 씻고 생채기를 토닥이면서 일어설 수 있어요. 옳은길(정의)이라는 목소리를 내기에 새길이나 새글을 이루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옳은길’이되, 이 목소리에 ‘삶·살림·사랑·사람’이 없이 ‘미움씨·불씨·싫음씨’로 채운다면, 더구나 글결이 온통 ‘일본말씨 + 옮김말씨(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말씨·번역체)’라면, 겉훑기로 헤매다가 그치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너를 위한 증언》(김중미, 낮은산, 2022)


나는 가출도 해본 적이 없어 아무리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 나는 집나간 적이 없어 아무리 속쓰리고 불나는 일이 있어도

→ 나는 뛰쳐나간 적이 없어 아무리 쓰리고 싫은 일이 있어도

11쪽


저어새가 가족 단위로 사는데 그 가족이 불가피하게 깨지면 남은 생을 외톨이로 산다고

→ 저어새는 한집을 이루는데 누가 죽으면 남은 삶을 외톨이로 산다고

→ 저어새는 둥지를 짓는데 한쪽이 먼저 가면 남은 삶은 외톨이라고

16쪽


잘 자게 되면 나갈게

→ 잘 자면 나갈게

17쪽


자궁과 난소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 아기집과 알집을 크게 도려냈다

→ 아가집과 암씨집을 크게 잘라냈다

18쪽


하늘에 빛의 요술이 펼쳐진다

→ 하늘에 빛잔치가 열린다

→ 하늘에 빛이 반짝인다

→ 하늘이 빛꽃을 이룬다

19쪽


미투 얘기가 나오면

→ 같이 얘기가 나오면

→ 나도 얘기가 나오면

→ 함께 얘기가 나오면

23쪽


결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 결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 결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지만

→ 결이가 하는 말을 영 못 알아듣지만

36쪽


새들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떨까

→ 새처럼 하늘에서 땅을 보면 어떨까

40쪽


넌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넌 나란꽃을 어떻게 여겨?

→ 넌 무지개사랑을 어떻게 봐?

44쪽


너희 언니가 레즈비언이라서 가족들이 장례식에 안 갔다는 거야?

→ 너희 언니가 한꽃이라서 집에서 죽음길에 안 갔다고?

→ 너희 언니가 나란꽃이라서 집에서 보냄길에 안 갔다고?

45쪽


쇼윈도 부부만 있는 게 아니라 쇼윈도 가족도 있어

→ 눈가림 갓벗만 있지 않고 눈가림 집안도 있어

→ 꽃밭 사이만 있지 않고 꽃밭 집안도 있어

→ 겉보기 단짝만 있지 않고 겉보기 집안도 있어

57쪽


자궁 안에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존재가 떠올랐다

→ 아기집에서 내내 알리던 아기가 떠오른다

→ 아가집에서 늘 말을 하던 숨결이 떠오른다

67쪽


M에게 느껴야 할 부채 의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 ㅁ한테 느껴야 할 빚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데

→ ㅁ한테 무엇을 빚졌는지 돌아보는데

79쪽


그런 행동을 용납하고 변명해 준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컸어

→ 그런 짓을 받아들이고 감싼 사람이 몹시 미웠어

→ 그렇게 굴어도 봐주고 들어준 사람이 참 싫었어

→ 그 따위를 들어주고 밀어준 사람이 꼴보기싫었어

129쪽


열한 살 때부터였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

→ 열한 살 때부터 괴로웠습니다

→ 열한 살 때부터 고달팠습니다

→ 열한 살부터 아팠습니다

→ 열한 살부터 힘겨웠습니다

153쪽


스스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힘을 얻었습니다

→ 스스로 길을 걸어갈 힘을 냈습니다

→ 스스로 길을 내려고 일어섰습니다

→ 스스로 길을 찾으며 힘냈습니다

154쪽


나는 절대로 엄마아빠 같은 사람이 안 될 거라는 것이다

→ 나는 엄마아빠 같은 사람이 될 마음이 아예 없다

→ 나는 엄마아빠처럼 살 마음이 조금도 없다

→ 나는 엄마아빠처럼 살 바에야 죽으련다

23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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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재미 말고 -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조경국 지음 / 유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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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2.9.

다듬읽기 285


《책, 읽는 재미 말고》

 조경국

 유유

 2025.12.4.



  누가 책을 ‘재미’로 읽는다고 한다면 ‘재주’를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재미·재주’는 나란합니다. ‘재다’로 뻗는 몸짓이면서 ‘재’로 마무르는 길이에요. 재미나 재주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재는(자랑하는·뻐기는) 굴레로 나아가느라, 재(잿길)를 넘느라 활활 타올라야 하기에, 그만 재(잿더미)로 되기 일쑤입니다.


  누구는 밥을 재미로 먹을는지 모르고, 말도 재미삼아 할는지 모르나, 옷도 재미나게 입을 수 있을 텐데, 저는 여태 밥도 말도 옷도 책도 재미로 한 적이 없습니다. 굶든 먹든 즐거울 노릇이고, 한 마디이건 열 마디이건 즐겁지 않다면 안 할 일이며, 남한테 자랑하듯(재듯) 걸칠 옷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누릴 옷입니다.


  《책, 읽는 재미 말고》는 ‘책재미’를 찾는 여러 가지를 다루는구나 싶으면서도, 그만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에 가두느라 이리저리 맴돌다가 그친다고 느낍니다. 재미란, 책재미란, 글재미란, 참으로 안 나쁠 테지만, 언제나 굴레나 늪이게 마련입니다. 재미로 읽거나 따지려 할 적에는 겉을 훑다가 끝나요. 재미로 보거나 때우려 하기에 그만 삶이 아닌 재주를 펼 줄 알거나 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맙니다.


  글을 쓰는 재주는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아예 없는 쪽이 낫습니다. 글재주나 말재주를 부리는 하루란 으레 겉모습과 겉치레로 흐르면서 속빛과 이야기하고 멀어요. 속으로 빛나는 이야기를 펴면서 이 삶을 즐겁게 누리려고 한다면, 재미와 재주를 모두 내려놓을 노릇입니다. 그래서 모든 ‘재미·재주’는 ‘잔재미·잔재주’로 기울다가, 어느새 쳇바퀴로 헤매는 얼개예요.


  좋은책과 나쁜책이 없기에 어느 책을 읽어도 즐겁지만, ‘책즐김(즐겁게 읽기)’이 아니라 ‘책재미’에 빠질 적에는 자꾸자꾸 ‘좋은책’을 좇느라 ‘좁은책’을 움켜쥐면서 못 벗어납니다. 좁게 읽어도 안 나쁩니다만, 좋아하는 대로만 해도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만, “타고난 재주”처럼 “타고난 재미”를 좇다 보면, 스스로 손빛을 가꾸는 손씨(솜씨)를 잊고 잃습니다. 천천히 오래오래 차근차근 하나하나 스스로 가꿀 적에 열 해이건 서른 해이건 쉰 해이건 느긋이 피어나는 살림길이 ‘손씨(솜씨)’입니다. 책을 손에 쥐고서 읽는다면, 책을 손수 보듬고 다듬는다면, 책손질을 스스로 하는 하루라면, ‘재미·재주’뿐 아니라 ‘잔재미·잔재주’를 모두 걷어내고서 ‘손씨·손길’과 ‘손빛·눈빛’으로 나아갈 노릇일 텐데 싶습니다.


ㅍㄹㄴ


《책, 읽는 재미 말고》(조경국, 유유, 2025)


향기만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존재다

→ 냄새만으로 사로잡는다

→ 내음만으로 홀린다

→ 향긋하게 잡아끈다

→ 무척 향긋하다

9쪽


책에는 꼭 읽는 재미만 있는 건 아닌데, 다른 재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없나 궁금했다

→ 책은 꼭 읽는 재미만은 아닌데, 다르게 이야기하는 책은 없나 궁금했다

→ 책은 꼭 읽어야 재미나지 않은데, 다른 길을 들려주는 책은 없나 궁금했다

10쪽


이 책을 쓴 목적은 단 하나,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 사람들이 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사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 누구나 책집으로 마실하며 책을 사기를 꿈꾸며 이 글을 쓴다

12쪽


책이 가진 냄새야말로 기억을 소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 책냄새로 옛일을 훅 떠올린다

→ 책냄새로 지난일을 확 되새긴다

19쪽


낡은 헌책들에 비해 이제 막 서점에 진열된 새 책 냄새는

→ 헌책과 달리 이제 막 책집에 놓는 새책 냄새는

→ 오래책과 달리 막 책집에 들이는 새책 냄새는

23쪽


책등과 내지를 단단히 붙이기 위해 발랐을 접착제가

→ 책등과 속종이를 단단히 붙이려고 바른 풀이

→ 책등과 샛종이를 단단히 붙이는 풀이

24쪽


고향에 내려와 헌책방을 열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중앙서점에서의 따뜻한 추억 때문이다

→ 옛고을로 와서 헌책집을 열겠다 마음먹는데 중앙서점에서 따뜻이 보낸 날 때문이다

→ 중앙서점을 따뜻이 누렸기에 옛마을로 돌아와 헌책집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32쪽


책갈피를 만든 건 서점만이 아니다

→ 책집만 책갈피를 내놓지 않았다

→ 책집만 책갈피를 마련하지 않았다

→ 책집만 책갈피를 꾸미지 않앗다

46쪽


헌책방에 손님으로 다니던 시절에는 사인본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었다

→ 헌책집 손님이던 무렵에는 손글씨책에 매달렸다

→ 헌책집을 드나들던 때에는 손글책에 붙들렸다

58쪽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혼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 사람과 어울린대서 싫진 않지만 혼자 있어도 싫지 않고

→ 누구와 어울리더라도 안 싫지만 혼자 있어도 안 힘들고

73쪽


타고난 성격 외에도 필사하는 습관이 자발적 폐관수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타고나기도 했고 베껴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갈고닦을 만했다

→ 타고난 마음에다가 옮겨쓰기를 하며 몸소 벼릴 수 있었다

→ 타고난 데다가 꾸준히 받아쓰기를 하며 섶쓸개를 했다

73쪽


서점에서 예쁘게 포장된 블라인드 북을 사면, 포장지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책싸개를 한다

→ 책집에서 예쁘게 꾸린 두근책을 사면, 겉종이를 책싸개로 살려쓴다

→ 책집에서 예쁘게 싼 수수께끼책을 사면, 겉종이를 책싸개로 되쓴다

90쪽


서점원들이 무거운 재단 가위를 들고 무림고수가 초식을 펼치듯

→ 책집일꾼이 무거운 가위를 들고서 품새를 펼치는 멋잡이처럼

→ 책집일꾼이 무거운 가위로 솜씨있게

→ 책집일꾼이 무거운 가위로 척척

91쪽


상주 작가로 활동해서 몇 년 만에 진주에서 다시 만나 회포를 풀기도 했다

→ 깃새지기로 지내서 몇 해 만에 진주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 깃새글꽃이어서 몇 해 만에 진주에서 다시 만나 얘기도 했다

94쪽


이 책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매물이 사라졌다

→ 이 책은 누리집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 이 책은 누리가게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114쪽


그 책들도 이제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렵다

→ 그 책도 이제 사라져 찾기가 어렵다

142쪽


훌륭한 서평이 되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 느낌글을 잘 쓰려면 몇 가지를 짚어야 한다

→ 책얘기를 잘 쓰려면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145쪽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배로 넓어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 글쓴이와 글을 곱으로 헤아린다고 느낄 수 있다

→ 지은이와 글을 담뿍 살필 수 있다고 느낄 만하다

166쪽


재판을 찍을 때 수정하겠다고, 잘못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공손히 말씀드렸다

→ 다시찍을 때 고치겠다고, 잘못을 알려주셔서 고맙다고 얌전히 여쭈었다

→ 새로찍을 때 바로잡겠다고, 잘못을 알려주셔서 고맙다고 곱게 여쭈었다

192쪽


훼손되어서 고칠 수 없거나 손을 본다 해도 그 정성과 노력에 비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만

→ 망가져서 고칠 수 없거나 손을 본다 해도 땀방울을 살릴 만한 책값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지만

218쪽


책을 수리할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 책은 차분히 손질해야 한다

→ 책은 느긋이 손봐야 한다

→ 책은 천천히 깁어야 한다

219쪽


혹 부스에서 아는 분을 만난들 편히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 어느 칸에서 아는 분을 만난들 느긋이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 어느 곳에서 아는 분을 만난들 가볍게 말을 나누기도 어려웠다

242쪽


이리저리 지인들을 찾아 동가식서가숙하며 서울살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 이리저리 동무를 찾아다니며 서울살이를 하던 무렵이다

→ 이리저리 이웃을 찾아 바람처럼 서울에서 살던 때이다 

258쪽


완전한 착각이었다. 누구나 가졌을 책방지기에 대한 로망은 1년 차에 바로 깨졌다

→ 깨끗이 틀렸다. 책집지기라는 달콤한 꿈은 첫해에 바로 깨진다

→ 아주 헛짚었다. 책집지기라는 멋진 꿈은 처음부터 바로 깨진다

263쪽


13년 차인 지금까지도 솔직히 뾰족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 열세 해째인 오늘도 뾰족히 길을 찾지는 못한다

→ 올해로 열세 해인데 딱히 길을 찾지는 못한다

26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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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 나의 작은 날들에게
류예지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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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8.

다듬읽기 279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3.7.



  여름에는 햇볕자리에 서야 안 덥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쐬어야 안 춥습니다. 가시밭길은 노래하며 걸으려고 눈앞에 나타납니다. 꽃길은 다같이 뛰놀려고 함께 짓습니다. 더위를 타는 사람은 햇볕자리에 안 서기 일쑤이더군요. 추위를 타는 사람은 찬바람을 참으로 안 쐬느라 몸이 기우뚱합니다. 누구나 가시밭길이며 자갈밭길을 차근차근 나아가기에 깨어납니다. 나 혼자 가면 될 꽃길이 아니라, 누구나 거닐 꽃길이니, 온누리가 꽃길에 숲길에 들길에 멧길에 바닷길에 바람길에 별길일 노릇입니다.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는 시골에서 나고자랐으나 일찌감치 시골을 박차고 서울(도시)로 떠난 발자국을 담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틀림없이 글감은 ‘예전 시골’이되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골’이며 ‘서울살이(도시생활)이 좋다’는 얼거리입니다. 누구나 시골을 싫어할 만하고, 서울을 좋아할 만하며,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시골을 따분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러다 보니 경상도에서 나고자라건 강원도에서 나고자라건 전라도에서 나고자라건, 요즈음 글바치는 하나같이 ‘서울내기 일본옮김말씨’예요. 예부터 시골에서 나고자란 누구나 모든 살림뿐 아니라 말과 마음도 손수 가꾸고 돌보고 지으면서 ‘나답게’라는 길을 지었습니다. 비록 시골과 동떨어진 오늘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멋부리는 겉글이 아닌, 마음밝히는 속글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멋내는 옷과 밥과 집이 나쁘지는 않지만, 멋이란 언제나 남눈에 얽매입니다. 수수한 옷과 밥과 집이란 언제나 스스로 돌보는 ‘나답게’입니다. 말길과 글길은 ‘멋내기’가 아닌 ‘나답게’여야 어울리겠지요.


ㅍㄹㄴ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


촌 동네의 생활을 하품이 날정도로 지루해하는 동안 준비 없어 어른의 길목에 들어섰다

→ 시골살이는 하품이 날 만큼 따분했고 어느새 어른이란 길목에 들어선다

→ 하품이 날 만큼 심심한 시골에서 살다가 문득 어른이란 길목이다

→ 하품이 나도록 지겨운 시골에서 보내다가 덜컥 어른이란 길목이다

4쪽


철새의 삶을 살게 되면서

→ 철새살이를 하면서

→ 철새처럼 살면서

→ 철새마냥 살면서

4쪽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결국 사라져 버릴 날들에

→ 조각조각 흩어지다 끝내 사라질 날에

→ 조각이 나다가 마침내 사라질 날에

6쪽


나의 지난날들이 나에게 그러했듯 당신의 지난날들이 당신에게 보낸 신호에

→ 나는 지난날 나한테 했듯 너는 지난날 네가 보낸 말에

→ 내가 지난날 나한테 했든 네가 지난날 너한테 한 말에

7쪽


동네 초입에 자리한

→ 마을 앞에 자리한

→ 마을 앞

→ 마을 어귀

15쪽


누군가는 제 아빠의 목마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 누구는 아빠 목말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 누구는 아빠 무등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15쪽


이후 일가친척 어르신이 집을 방문하는 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불편함으로 각인되었다

→ 이제 피붙이 어르신이 집을 찾는 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거북하다

→ 곧이어 한집안 어르신이 찾아오는 날,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껄끄럽다

23쪽


새하얀 피부를 가진 탓에 종종 뺨 위의 주근깨가 도드라져 보였다

→ 새하얀 살결이라서 뺨에 난 주근깨가 곧잘 도드라진다

→ 살빛이 하얀 탓에 주근깨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 하얀살이라서 주근깨가 돋보이기 일쑤이다

30쪽


묵직한 동체(動體)가 가한 충격

→ 묵직한 몸이 부딪혀

→ 묵직히 움직이며 때려

35쪽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이한 상흔을 남긴

→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틀린 자국을 남긴

→ 오붓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바보처럼 흉을 남긴

→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엉킨 멍울을 남긴

77쪽


우리는 사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우리는 모래언덕으로 걸어간다

→ 우리는 모래뫼로 걸어간다

86쪽


별다른 공통점 없는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 가는 일이 조금 피로하게 여겨지기도 해서였다

→ 딱히 닿지도 않는 말을 이어가는 일이 조금 지치기도 했다

→ 썩 뜻이 같지도 않는데 얘기하자니 조금 힘들기도 했다

→ 그리 안 어울리는 얘기를 잇자니 조금 버겁기도 했다

97쪽


엄마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 엄마는 딱히 대꾸도 없이

→ 엄마는 군말도 없이

→ 엄마는 긴말도 없이

→ 엄마는 뭐라 하지 않고

→ 엄마는 따지지도 않고

103쪽


오늘 퇴근길 귀찮아지게 생겼네

→ 오늘 마치며 귀찮겠네

→ 오늘 집에 가며 귀찮겠네

121쪽


친구 A의 간곡한 호소가, 각자의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죽어라 쳐다보던 친구 B와 나를 단합시켰다

→ 동무 ㄱ이 애타게 바라자, 다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나를 묶었다

→ 동무 ㄱ이 빌고 빌자, 저마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내가 뭉쳤다

128쪽


처음 맛본 어죽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맛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 처음 고깃밈을 맛보며 맛결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 처음 고깃보미를 맛보며 맛빛을 새롭게 일깨웠다

129쪽


참새과 텃새의 종류인 딱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참새갈래 텃새인 딱새인 줄 알아냈다

151쪽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 장마를 알리는 장대비가 온다

→ 장마를 알리며 굵게 비가 쏟아진다

159쪽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여름끝을 알리는 비가 내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끝을 알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이 끝난다

17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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