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 혼란을 끌어안는 쓰기에 대하여
정세랑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10.20.

다듬읽기 297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정세랑

 마음산책

 2026.6.25.



  읽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보는 글꾼이나 펴냄터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눈여겨보는 글꾼이나 펴냄터가 내놓은 글이나 책만 읽지 않습니다. 여태 모르던 숱한 글꾼과 펴냄터가 내놓는 모든 책을 돌아봅니다. 그저 이웃을 마주하면서 배우고, 이웃이 남긴 글과 책을 고맙게 품으면서, 스스로 새롭게 가다듬어 익히는 길을 가려는 뜻입니다.


  함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혼자 가지 않습니다. 비는 혼자 내리지 않고, 비를 혼자 맞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디디는 발걸음은 나를 비롯한 모든 곳에 퍼집니다. 우리가 나무 한 그루를 심거나 풀씨 한 톨을 심든, 우리가 쓰레기를 버리거나 집을 허물든, 이 모든 짓은 둘레에 퍼집니다.


  서로 눈을 마주하면서 삶을 새롭게 알아가는 길입니다. 아이곁에서 모든 어른과 어버이가 철들고 눈밝게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짓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서는 하루를 일굴 테지요. 낳든 낳지 않든 안 대수롭습니다. 우리가 안 낳아도 둘레에는 아이가 많고, 우리가 낳아도 둘레에는 똑같이 아이가 많아요. 우리가 갓 태어나 오늘에 이르도록 자라기까지 “낳은 우리 어버이” 손길만 타지 않습니다. 둘레 모든 어른뿐 아니라 또래나 언니동생 손길을 타면서 이 삶을 이룹니다.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를 읽었습니다. 안타깝지만, 너무 글멋을 부리는 책이라서 좀 쭉정이 같습니다. 아니, 그냥그냥 치레로 가득한 나머지 “나눌 마음”이나 “함께할 눈빛”이나 “주고받을 손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글을 왜 쓸까요? 멋지게 보이려고 쓰나요? 우리는 말을 왜 할까요? 들어주는 숱한 바라기(팬)가 있기 때문인가요?


  이 가을에도, 가을 다음에 찾아들 새철에도, 한 걸음 두 걸음 느긋이 나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스스로 배우고 가다듬고 익히고 새롭게 펴는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나 먼저 집에서 살림하는 손끝일 노릇입니다. 살림손길일 적에 글을 빛내는 손끝으로 피어납니다. 살림과 등진 채 글붓만 쥔다면 아무래도 겉멋과 겉치레로 사로잡힙니다.


  글쓰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책쓰기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씩 가다듬고 바꾸는 말길을 새롭게 틀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구나 쓰고 읽을 노릇입니다. 누구나 온마음에 사랑을 담은 ‘알찬’ 글과 책으로 마주할 노릇입니다. 삶을 적고, 살림을 담고, 사랑을 얹으면서, 사람이라는 사이를 새롭게 들려주는 말이면 아름답습니다. 왜 삶이 없는 쭉정이가 판칠까요? 손수 살림을 안 하니 할 말이나 쓸 글이 없습니다. 몸소 아이곁에 안 서느라 나눌 말이나 쓸 글이 없어요.


  우리는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라는 사이에 철을 들입니다. 철을 안 들이면 쭉정이만 있는, 허우대만 멀쩡한 늙은이가 됩니다. 철을 들이는 틈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나 쉰 해나 일흔 해가 걸릴 수 있습니다. 누구는 아흔 해로도 모자라기에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거듭 태어난 뒤에라야 철들 수 있습니다.


  철드는 사람이라면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이건, 머스마 아저씨 할아버지이건, 스스로 모든 이름에 걸맞게 가다듬고 익히고 살리는 말글을 꽃피웁니다. 이제 껍데기는 땅에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가라고 맡길 노릇입니다. 애벌레가 허물을 끝없이 벗다가 날개돋이를 하듯, 모든 겉껍데기를 걷어내고 치울 때라야 비로소 “읽고 쓰고 가꾸고 나누는 작은사람”으로 이곳에 설 만합니다.


ㅍㄹㄴ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정세랑, 마음산책, 2026)


책으로 정리해 볼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책으로 추스를 엄두는 아예 하지 못 했는데 갑자기 할 수 있을 듯하다

→ 책으로 추스를 뜻은 아예 없었는데 갑자기 할 수 있을 듯하다

6쪽


창작자에게 다른 창작자만큼 흥미로운 존재는 또 없는 듯하다

→ 짓는이한테는 다른 짓는이가 눈에 띈다

→ 지음이는 다른 지음이한테 마음이 간다

7쪽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시작을 막고 있는 것은 대개 창작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고정관념들이었다

→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분을 만나보면, 맞지도 않는 틀에 갇히느라 글을 못 쓰곤 한다

→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분을 만나보면, 틀린 늪에 막혀서 글을 못 쓰기 일쑤이다

13쪽


문학계에 관련 전공을 택하지 않은 작가들이 무수히 등장해 새로운 도구와 재료로 글을 쓰는 중이다

→ 글밭에 글길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숱하게 나오며 새롭게 글을 쓴다

→ 글밭에서 배우지 않고서 글을 새롭게 쓰는 분이 숱하게 나온다

16쪽


소득 편차가 워낙 큰 탓에 양육자 분들이 안정적인 다른 직업을 권하시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 틈이 워낙 큰 탓에 어버이한테는 꾸준히 벌 다른 일을 얘기할 만하다

→ 사이가 워낙 큰 탓에 아이가 있으면 벌이가 꾸준한 일을 여쭐 만하다

→ 벌이가 워낙 다른 탓에 아이를 돌보면 꾸준벌이를 하시라 할 만하다

17쪽


글은 써지지 않는 게 기본 상태인 것 같다

→ 글은 그냥 못 쓰는 듯하다

→ 글은 그저 안 나오는 듯하다

→ 글은 워낙 쓰기 어려운 듯싶다

→ 글은 으레 못 쓰게 마련 같다

19쪽


물론 겸업에는 체력 안배가 필수다

→ 같이하려면 힘을 고루 써야 한다

→ 함께하려면 몸을 가다듬어야 한다

→ 다함께 하려면 잘 나눠야 한다

→ 모둠일은 몸을 잘 돌봐야 한다

20


분위기가 제일 활기차면서도 친밀했으니 공간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할 것이다

→ 자리가 가장 북적이면서도 도란도란하니 어느 만큼 커야 한다

→ 흐름이 가장 산뜻하면서도 사근사근하니 어느 만큼 넓어야 한다

→ 둘레가 가장 빛나면서도 살가우니 제법 널찍해야 한다

22쪽


매 순간 즐겁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 늘 즐겁다고 외칠 뜻은 아니다

→ 노상 즐겁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 내내 즐겁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27쪽


글쓰기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도 한다

→ 글쓰기는 마음이 어두울 적에 스스로 다스리는 길이기도 하다

→ 글을 쓰면서 나쁜빛을 잘 추스를 수도 있다

→ 글을 쓰며 시커먼 곳을 잘 삭일 수도 있다

31쪽


느리게 세상을 소화하는 일에 가깝고 요약할 수 없음에 방점을 둔다

→ 둘레를 느리게 삭이는 일에 가깝고 간추릴 수 없기도 하다

→ 삶을 느리게 받아들이는 일이고 가려뽑을 수 없다

39쪽


위에서 열거한 창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특징들 또한 한 사람의 관찰에 불과하니, 통하는 구석이 있으면 잠시 들여다보시고 아니어도 고심하실 필요는 전혀 없다

→ 글을 쓰려는 사람들 모습을 몇 가지 들었으나 내가 본 눈일 뿐이니, 닿는 구석이 있으면 살짝 들여다보시고 아니어도 걱정할 일은 아예 없다

→ 글을 쓰려는 사람을 이렇게 들었지만 내가 본 대로일 뿐이니, 와닿는 구석이 있으면 슬쩍 들여다보시고 아니어도 근심할 일은 조금도 없다

41쪽


그다음으로 배웠던 것은 캘리그래피였다

→ 그다음으로 손글씨를 배웠다

→ 그다음으로 꽃글씨를 배웠다

43쪽


줄기차게 쓰다 보면 어느새 습작이었던 글들이 엉성함을 벗어나 투고할 만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 줄기차게 쓰다 보면 어느새 풋글에 가닥이 잡히며 내보낼 만큼 거듭난다

→ 줄기차게 쓰다 보면 어느새 밑글에 틀이 서면서 내보일 만큼 바뀐다

51쪽


자세히 살피면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자신의 성향을 이르게 분별하는 일이 보기보다 중대하지 않을까 고민해왔다

→ 가만히 보면 엇갈리기도 하는 줄 깨닫고서, 내 길부터 가려야겠다고 여겼다

→ 잘 보면 아주 다른 줄 깨닫고서, 내 빛살을 일찌감치 찾아야겠다고 보았다

→ 살펴보면 거꾸로이기도 한 줄 깨닫고서, 내 바탕부터 알아봐야지 싶었다

54쪽


사람들이 곧바로 이입할 만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이 있고,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이질적인 이야기를 과감하게 쓰는 작가들이 있다

→ 사람들이 곧바로 빠져들 만한 이야기를 쓰는 분이 있고,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다른 이야기를 당차게 쓰는 분이 있다 

→ 사람들이 곧바로 잠길 만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새 이야기를 두말없이 쓰는 분이 있다

61쪽


혹평에 상처를 받아 다음 글을 쉬이 못 쓰는 이들도 생기는데

→ 꾸중에 괴로워서 다음 글을 쉬이 못 쓰기도 하는데

→ 나무라면 다쳐서 다음 글을 쉬이 못 쓰는 이도 있는데

69쪽


쓰기에 대한 책인데 잇따라 읽기에 대해 말하게 된다

→ 쓰기책인데 잇따라 읽기를 말한다

→ 쓰기를 말할 책인데 잇따라 읽기를 말한다

79쪽


전작주의자가 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 다 읽어 볼 만도 하다

→ 통읽기도 해볼 만하다

→ 온읽기도 고를 만하다

82쪽


집요하고 강박적인 성격이라면 특히 전작주의자로서 전도유망하다

→ 검질기고 바득바득한다면 누구보다 모두읽기로 앞길이 밝다

→ 사리물고 무릅쓴다면 더더구나 온책읽기 꿈나무이다

→ 날카로우며 매달린다면 참말로 통째읽기로 반짝일 만하다

83쪽


우리가 여상히 여기지만 실질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영역들에서도 주제를 찾을 수 있다

→ 우리가 대수롭잖게 여기지만 막상 크게 물결치는 곳에서도 글감을 찾을 수 있다

→ 우리가 가볍게 여기지만 정작 엄청나게 바뀌는 데에서도 얘깃감을 찾을 수 있다

→ 우리가 하찮게 여기지만 바로 확확 거듭나는 자리에서도 밑감을 찾을 수 있다

90쪽


겹침의 이쪽에도 서보고 저쪽에도 서보다 보니 창작 분야에서 표절 시비가 불거지면 신중해진다

→ 이쪽에도 저쪽에도 겹쳐서 서 보니 글밭에서 짝퉁이 도마에 오르면 가만히 본다

→ 이쪽과 저쪽에 겹쳐서 서니 글마당에서 베껴쓰기가 말밥에 오르면 지그시 본다

→ 이쪽저쪽 겹쳐서 서 보니 글누리에서 훔침글이 말썽에 오르면 곰곰이 본다

101쪽


큰 수정들을 끝낸 후에는 단순하고 명쾌한 방법을 택하기를 권하고 싶다

→ 크게 고친 뒤에는 가볍고 또렷하게 쓰라고 말하고 싶다

→ 크게 손보고 나서 단출하고 똑똑히 가라고 여쭙고 싶다

→ 크게 다듬고서 깔끔하게 해보라 말씀하고 싶다

122쪽


절제적이고, 짧고, 서로 연결될 때만 의미가 생기는 문장들을 골라 쓰는 게 원치 않는 상황에 빠지지 않을 방책일지도 모르겠다

→ 다독이고 짧고 서로 이을 때만 뜻이 있는 글을 쓰면, 뜻하지 않는 흐름에 빠지지 않을 길일지 모른다

→ 멈추고 짧고 서로 맺을 때만 뜻이 있는 글을 고르면, 뜬금없는 물살에 빠지지 않을는지 모른다

→ 가다듬고 짧고 서로 얽힐 때만 뜻이 있는 글을 쓰면, 난데없는 길에 빠지지 않을는지 모른다

169쪽


단 한 번도 화내지 않는 보살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 아예 부아내지 않는 빛지기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 아주 골내지 않는 빛님 같은 사람이 되라는 소리는 아니다

179쪽


지난 10여 년, 죽은 가족이 나오는 꿈을 통해 애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드는지 알 수 있었다

→ 지난 열 해 즈음, 죽은집이 나오는 꿈에서 눈물을 얼마나 오래 쏟는지 알 수 있었다

→ 지난 열 해 남짓, 죽은집안이 나오는 꿈으로 얼마나 오래 눈물꽃인지 알 수 있었다

195쪽


바깥의 온갖 현란함이 진정 하고 싶은 일들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지는 않는지 경계하고 있다

→ 바깥이 온갖 빛깔인 탓에 참으로 하고 싶은 일과 멀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 바깥이 온통 번쩍이느라 참말 하고 싶은 일하고 멀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20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ㅣ 총총 시리즈
이슬아.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7.26.

다듬읽기 294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남궁인

 문학동네

 2021.7.12.



  “잘못이 있다”나 “오해가 있다”는 잘못 쓰는 말씨입니다. 영어라면 이렇게 쓸 테지만, 우리말은 이렇게 안 써요. ‘잘못하다’나 ‘오해하다’ 꼴로 씁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같은 책이름은 이미 옮김말씨에 틀린말씨입니다. “우리는 오해했다”라든지 “우리는 잘못했다”라 해야 알맞습니다. 또는 “우리 사이는 멀다”나 “우리 사이는 안 가깝다”라든지 “우리 사이엔 바다가 있다”나 “우리 사이엔 담이 있다”처럼 써야 맞아요.


  누구나 미처 말글을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집이나 배움터는 “말글을 알맞고 즐거우면서 또렷하게 다루면서 나누는 길을 베푸는 터전”하고 먼 터라, 그냥그냥 배움길을 따라서 스무 살이나 서른 살까지 보내면, 오히려 우리말과 우리글을 까맣게 모르면서 ‘무늬한글’과 ‘우리말시늉’을 하기 일쑤입니다. 글을 쓰면서 밥벌이를 하는 일을 하더라도 말글을 모르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배움터에서 말글지기(국어교사)로 일하든, 국립국어원에서 말글지기(국어학자)로 있든, 말과 글을 잘못 알거나 엉뚱하게 짚기도 합니다.


  배움터를 다닌 적이 없거나 책을 읽은 바가 없어도 말글을 찬찬히 짚고 가리는 어르신이 많았습니다. 이 많은 어르신은 하루하루 사라집니다. 지난날에는 아이한테 ‘할매할배’가 말을 가르쳤어요. 할매할배는 글을 모르더라도 “우리가 마음을 나누는 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슬기로운지” 짚고 넌지시 알려주면서 수수께끼를 속삭이고 말놀이를 짓는 하루를 살아내는 길잡이였습니다. 책이나 글이나 그림(동영상·유투브)만 들여다보아서는 말도 글도 못 익히게 마련이에요. 삶과 살림과 사랑과 사람도 책이나 글이나 그림만으로는 자칫 헛짚기까지 합니다.


  겉멋을 부리려고 하니 “배우지 않”습니다. 배우지 않기에 겉멋을 부려요. 글멋을 부리려고 하니 “배우지 않”아요. 배우지 않으니까 글멋을 부립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언제나 삶자리에서 하루를 짓고 가꾸고 여미고 일구면서 일하고 쉬고 놉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자리에서 스스로 마음을 틔우기에 어느새 “마음을 소리로 얹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입을 틔우지요.


  글을 쓰고 싶다면 말부터 틔울 노릇입니다. 말을 틔우고 싶다면 집안일과 집살림부터 할 노릇이요, 이러면서 스스로 하루살림을 짓는 즐거운 나날을 살아낼 노릇입니다. 삶이 있어야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어야 말이 있으며, 말이 있어야 글이 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숱한 글바치는 삶과 마음과 말에 앞서 글부터 붙들고 말아요.


  풀꽃나무하고 한 해 내내 살아내어야 풀꽃나무한테서 풀빛과 꽃빛과 나무빛을 배우고 스스로 익힙니다. 풀꽃책(식물도감)을 달달 외운들 풀꽃나무를 터럭만큼도 모르고 맙니다. 말글을 배워서 익힌 다음에 즐겁게 펴고 싶다면, 언제나 “말글을 이루는 삶과 살림과 사랑과 사람”부터 짚을 노릇입니다. 글은 맨 나중입니다. 글을 앞쪽에 놓을 적에는 모두 엇나가면서 겉치레와 껍데기와 멋내기에 얽매입니다.


ㅍㄹㄴ


+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이슬아·남궁인, 문학동네, 2021)


바쁘고 피곤하고 건조해 보인다

→ 바쁘고 고단하고 메말라 보인다

→ 바쁘고 지치고 따분해 보인다

→ 바쁘고 힘들고 멋없어 보인다

7쪽


아침부터 점심까지 쓰러졌다 일어난 뒤 그는 많은 글을 쓴다

→ 그는 아침부터 낮까지 쓰러졌다 일어난 뒤 글을 잔뜩 쓴다

→ 그는 아침부터 낮까지 쓰러졌다 일어난 뒤 글을 실컷 쓴다

8쪽


부연하자면 저는 치열한 학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 덧붙이자면 저는 피튀기는 늪에서 푸른날을 보내고

→ 보태자면 저는 불꽃튀는 쌈밭에서 푸른날을 보내고

10쪽


입 밖으로 내기에는 망설여졌습니다

→ 입밖으로 내자니 망설입니다

→ 말로 하자니 망설입니다

11쪽


그의 꾸짖음을 달게 받을 작정으로 서간문을 시작합니다

→ 그분 꾸짖음을 달게 받을 뜻으로 글을 씁니다

→ 그가 꾸짖어도 달게 받으려고 글월을 씁니다

12쪽


실제로 뵙게 된 선생님의 용안은 물론 미남이었으나

→ 막상 뵌 님은 몹시 잘생겼으나

→ 몸소 뵌 님은 무척 말끔했으나

15쪽


동종업계인 만큼 조심스럽고 따뜻한 응원만 건네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 같은장사인 만큼 살며시 따뜻이 북돋아야만 할 듯해요

→ 옆장사인 만큼 살짝 따뜻이 거들어야만 할 듯싶어요

→ 이웃집인 만큼 가만히 따뜻이 곁들여야만 할 듯해요

16쪽


경력이 쌓일수록 제 글에 대한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이 경우는 얘기가 다릅니다

→ 발걸음이 쌓일수록 제 글을 놓고서 너울대는 일이 차츰 줄어들지만 이때에는 다릅니다

→ 하루하루 쌓일수록 제 글과 얽혀서 들뜨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지만 이때에는 다릅니다

20쪽


그렇게 되더라도 제가 순두부찌개적일 때의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했다는 점만은

→ 그렇더라도 제가 순두부찌개 같던 님을 무척 좋아했으니

→ 그렇다지만 제가 순두부찌개를 닮은 님을 참 좋아했으니

21쪽


이 편지의 서설은 난잡합니다

→ 이 글은 첫머리가 구질합니다

→ 이 글월은 노두가 다랍습니다

25쪽


글쓰기란 늘 누군가에게 간파당하고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면서 죄책감도 남겨주는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글을 쓰면 늘 누가 읽어내며 나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면서 나무라니 놀랍습니다

→ 글을 쓰면 늘 누가 알아채며 나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면서 꾸짖으니 놀랍습니다

29쪽


이번 옆모습에는 부티가 흐른다는 점이 달랐지만

→ 이 옆모습은 돈있어 보여서 다르지만

→ 이 옆모습은 배불러 보여서 다르지만

→ 이 옆모습은 가멸차 보여서 다르지만

33쪽


저의 선제공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더군요

→ 제가 먼저쳤는데 다음과 같이 추리셨더군요

→ 제 앞손을 다음과 같이 간추리셨더군요

34쪽


덕분에 저희 아빠 웅이님의 증상은 호전되었어요

→ 그래서 우리 아빠 웅이 씨는 나았어요

→ 그래서 우리 아빠는 기운을 차렸어요

→ 그래서 아빠는 나았어요

→ 그래서 웅이 씨는 기운을 차렸어요

35쪽


제 몸은 대체로 건강합니다. 유병장수有病長壽형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제 몸은 꽤 튼튼합니다. 골골대며 오래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제 몸은 제법 멀쩡합니다. 앓으며 오래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36쪽


편의상 그 힘을 느끼느끼력이라고 줄여 부르겠습니다

→ 쉽게 그 힘을 느끼느끼힘이라고 줄이겠습니다

→ 가볍게 그 힘을 느끼느끼힘이라 하겠습니다

→ 그냥 그 힘을 느끼느끼힘이라 하겠습니다

38쪽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 우리는 으레 지고 가끔 이긴다고 여기겠지만 다시 집니다

→ 우리는 거의 지고 가끔 이긴다고 느끼겠지만 다시 집니다

51쪽


저는 무감하게 나이를 먹었고 내년에 마흔 살이 됩니다

→ 저는 그냥 나이를 먹었고 이듬해에 마흔 살이 됩니다

→ 저는 밋밋하게 나이를 먹고 새해에 마흔 살입니다

65쪽


대체로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 같겠지요

→ 그저 걱정없이 살아가는 듯하겠지요

→ 꽤 멀쩡하게 살아가는 듯싶겠지요

72쪽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제 품을 넓혀야 합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테두리를 키워야 합니다

95쪽


치열하게 글을 썼던 시기를 언급하고 지금의 나태함까지 고백하니,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라떼를 떠올립니다

→ 뜨겁게 글을 쓰던 날을 밝히고 이제는 게으르다고 털어놓으니, 누구한테나 있는 라떼를 떠올립니다

94쪽


누군가는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 누구는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나날을 삽니다

→ 사람들은 우리가 여태 못 살아본 하루를 삽니다

→ 이웃은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길을 삽니다

102쪽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 사이에 또 오해가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는 서로 잘못 봅니다

→ 우리는 안타깝게도 담벼락이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 사이에 담이 있습니다

→ 우리는 서로 엉뚱하게 바라봅니다

106쪽


시력에 좋지 않습니다

→ 눈에 좋지 않습니다

→ 눈을 버립니다

109쪽


제가 조금 딱하고 부조화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 제가 조금 딱하고 엉뚱한 줄 눈치챈 사람은

→ 제가 조금 딱하고 어긋난 줄 눈치챈 사람은

123쪽


오늘은 여성의 날이고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늘은 가시내날이고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 오늘은 순이날이고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135쪽


두피가 찢어지고 손발이 부서져서 그들은 찾아왔습니다

→ 그들은 머릿살이 찢어지고 손발이 부서져서 찾아옵니다

144쪽


복부를 칼에 찔려서

→ 배에 칼이 찔려서

145쪽


아직도 신열이 감돌고 있습니다

→ 아직도 몸이 뜨겁습니다

→ 아직도 몸은 후끈합니다

148쪽


치욕을 예견하면서도 용기를 내서 사랑에 대해 적을 때

→ 부끄러워도 기운을 내서 사랑을 적을 때

→ 낯없더라도 씩씩하게 사랑을 적을 때

171쪽


인간들이 남기고 간 엄청난 체취가 있었습니다

→ 사람들이 남기고 간 엄청난 냄새가 있습니다

→ 사람들이 남긴 엄청난 몸내가 있습니다

189쪽


우리가 서로를 지칭한 부분을 합산한 결과입니다

→ 우리가 서로를 가리킨 곳을 더했습니다

→ 우리가 서로를 나타낸 바를 모았습니다

209쪽


그간의 편지에서 누구보다 성실한 존경을 보여주어서 감사합니다

→ 그동안 글로 추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 여태 글월로 섬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제껏 글자락으로 모셔 주셔서 고맙습니다

224쪽


가녀장이 가세를 통치하는 이야기를 잘 보고 있습니다

→ 들보로 집안을 다스리는 이야기를 잘 봅니다

→ 대들보로 집을 돌보는 이야기를 잘 봅니다

→ 꼰대로서 집살림을 맡는 이야기를 잘 봅니다

235쪽


정리하자면, 전 재산을 털어서 선지자가 굽어보는 주거공간에 투자하셨네요

→ 그러니까, 온돈을 털어서 슬기님이 굽어보는 곳을 장만하셨네요

→ 그래서, 모든 돈을 털어서 어진님이 굽어보는 집을 사셨네요

259쪽


이슬아 생가에 놀러오시면

→ 이슬아 집에 놀러오시면

→ 이슬아네에 놀러오시면

264쪽


그 안에는 다른 몸, 다른 세계, 그리고 한 우주가 들어있습니다

→ 그곳에는 다른 몸과 나라와 누리가 있습니다

→ 거기에는 다른 몸과 터와 온누리가 깃듭니다

268쪽


신맛의 반가움 속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 신맛을 반기며 글월을 주고받았다

→ 신맛을 즐기며 글을 주고받았다

276쪽


이제 나와 남궁인 선생님께 남은 일은 이 편지들로부터 멀리 떠나는 일이다

→ 이제 나와 남궁인 님은 이 글월을 멀리 떠나보내면 된다

→ 이제 나와 남궁인 씨는 이 글자락을 멀리 보내면 된다

27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
한유주 지음 / 마티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7.20.

다듬읽기 293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

 한유주

 마티

 2025.6.18.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를 읽었다. 글쓴이가 107쪽에서 다룬 책꾸러미는 《세계의 어린이》(웅진출판주식회사)이다. 일본에서 1986해에 《世界のこどもたち》(偕成社)라는 이름을 붙여서 서른넉 자락으로 처음 냈다. 한글판은 통째로(전집) 팔기만 했고, 헌책집에 으레 나오지만 바로 팔리며 사랑받는다. 이제 이 꾸러미에 담은 어린이 모습이 ‘예스러울’ 수 있지만, 숱한 나라는 이 책에 담긴 모습을 고스란히 잇는다. 우리나라만 유난히 마흔 해 사이에 확 뒤집혔다.


  일본스런 한자말 ‘계속’을 우리말로 풀면 ‘잇다’이다. 밑뜻은 ‘잇다’요, 쓰는 자리에 따라서 ‘또·자꾸·다시·내내·내처·그대로·한결같이·오래’를 가리킬 수 있다. 언뜻 보면 일본스런 한자말 한 마디로 여러 뜻을 나타내는 줄 잘못 알 만하다. 우리말 ‘또’이든 ‘잇다’이든 ‘내내’이든 ‘오래’이든 한두 가지 뜻만 깃들지 않는다. 숱한 뜻과 쓰임새가 다 다르게 도사린다.


  언제라도 읽고 싶다면 언제라도 쓸 노릇이다. 글만 쓸 일이 아니라, 마음을 쓰고, 생각하는 빛을 쓰고, 나누려는 꿈을 쓸 노릇이다. 살림이라는 길을 쓰고, 사랑이라는 노래를 쓰고, 아이곁에서 어질게 피어나는 어른이라는 눈망울을 쓸 노릇이다. 책만 쥐려고 하면 ‘책벌레’가 아니라 ‘먹물’이 되고 만다. 글만 쓰려고 하면 ‘글벌레’가 아니라 ‘벼슬아치·감투잡이’가 되고 만다.


  우리는 이제부터 말과 글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새롭게 짚을 때라고 본다. 그냥그냥 배움터에서 가르치거나 길들인 말글이 아닌, 그냥그냥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쓸 말글이 아닌, 그냥그냥 책에 나오고 새뜸(언론)에 흐르는 말글이 아닌, 그야말로 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삶을 짓고 살림을 펴는 동안 온마음으로 피워낸 말빛을 돌아볼 일이다. 누구나 사투리를 쓰던 때를 잊는다면, 누구나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터전을 나란히 잃는다. 서울말(표준어)에 스스로 갇힌다면, 누구나 책을 이야기하고 글월을 나누는 마을을 어느새 잃는다.


  읽고 싶다면 익히고 일굴 노릇이다. 읽으려는 뜻이라면, 눈을 뜨고서 일어날 노릇이다. 읽고 쓰는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면, 언제나 먼저 스스로 사랑하고 살림하는 숲빛으로 걸어갈 노릇이다. 돈과 이름과 힘을 다 내려놓고서, 시골에서 오두막집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늘 즐겁고 아름답게 읽고 쓴다고 본다.


ㅍㄹㄴ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한유주, 마티, 2025)


책상 위를 둘러보며

→ 책자리를 둘러보며

→ 자리를 둘러보며

7쪽


이 짧은 소설이 언급되고 있어서다

→ 이 짧은글을 다루기 때문이다

→ 이 짧은얘기를 들기 때문이다

7쪽


이전까지 틈이나 갭(gap)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대신 라쿠나라고 부르면 텍스트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비밀의 공간 혹은 공백이 한층 심원한 탐사를 요하는 물리적인 공간처럼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 이제까지 틈이나 사이라는 말을 썼는데, ‘빔’이라고 쓰면 마땅히 담아낼 뒤켠이나 빈곳을 더 깊이 헤아리고 넓히는 글로 바뀌는 듯하다

→ 여태 틈이나 금이라고 했는데, ‘없’이라고 하면 반드시 깃드는 숨은터나 빈자리를 한결 고즈넉이 살피고 넓히는 글로 피어나는 듯하다

8쪽


작가가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설명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경우에도

→ 글쓴이가 알게 모르게 넘어가는 때에도

→ 지은이가 이래저래 건너뛰는 때에도

8쪽


읽기라는 행위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아포리아(aporia)다

→ 읽는 일을 자주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하나는 구석이다

→ 읽기를 생각하면 자주 떠오르는 하나는 막다른길이다

→ 읽기란 무엇인지 생각하는 다른 길은 벼랑끝이다

10쪽


읽는 행위를 계속해서 흔들고 지연시킨다

→ 읽는 짓을 자꾸 흔들고 늦춘다

→ 읽는 길을 내내 흔들고 뭉갠다

11쪽


나는 여전히 문학의 언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법의 언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상태나 다름없다

→ 나는 아직 글꽃말을 잘 알지 못하고, 기틀말은 아주 모른다

→ 나는 여태 이야기말을 잘 알지 못하고, 따지는 말은 젬치이다

→ 나는 도무지 포근한 말을 잘 알지 못하고, 깐깐한 말은 까맣다

14쪽


신기하게도 좋은 책들은 존재하는 모든 책들보다 많다

→ 놀랍게도 알찬 책은 온누리 모든 책보다 많다

→ 재밌게도 아름책은 푸른별 모든 책보다 많다

15쪽


작업실의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 일터에 둔 책을 추스른다

→ 일곳에 놓은 책을 치운다

17쪽


나는 호더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특별히 물건에 미련을 가져본 적은 없다

→ 나는 사냥꾼에 가깝지만 딱히 붙잡을 마음은 없다

→ 나는 그러모으는 사람이지만 굳이 붙들 마음은 없다

18쪽


허나 내 집의 용적량은 당연하게도 한계가 분명해서

→ 그러나 우리집에 놓을 곳은 끝이 있어서

→ 그런데 우리집에 둘 자리는 끝이 있기에

18쪽


중고서점 근처까지 가는

→ 헌책집 가까이 가는

→ 헌책집 둘레로 가는

19쪽


다시 한번 지도 앱을 확인해 중고서점이 영업 중이라는 내용을 확인했지만

→ 다시 길그림꽃을 켜서 헌책집이 있다고 알아봤지만

→ 다시 길그림모를 보며 헌책집이 열린 줄 살폈지만

20쪽


재활용품 버리는 곳에 책들을 유기하고 말겠다는

→ 되살림을 버리는 곳에 책을 버리고 말겠다는

→ 되살림터에 책을 내팽개치고 말겠다는

20쪽


애매한 대화를 신나게 나누었던 사람들은 나랑 비슷한 유였다

→ 어정쩡한 말을 신나게 나눈 사람들은 나랑 비슷했다

→ 뜬금없고 신나게 얘기한 사람들은 나랑 비슷했다

31쪽


그때도 지금처럼 기골이 장대한 편이었기에 얼마간 지내게 될

→ 그때도 요즘처럼 덩치가 컸기에 한동안 지낼

→ 그때도 요새처럼 우람했기에 얼마쯤 지낼

35쪽


다시 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 다시읽으며 즐거웠다

→ 다시읽기가 즐거웠다

38쪽


의외로 냉정한 조언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뜻밖에 까칠히 들려주는 말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고 봤다

→ 어쩌면 무뚝뚝히 짚는 말을 반기는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48쪽


심지어 우철제본에 세로줄쓰기로 인쇄되어 있다

→ 게다가 오른매듭에 세로줄쓰기로 찍었다

→ 더구나 오른묶음에 세로줄쓰기로 찍었다

55쪽


어머니 글씨가 외할아버지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 어머니 글씨가 할아버지 글씨와 무척 닮았다

55쪽


누군가가 물도 없는 수영장 옆 선베드에 수영복을 입고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 누가 물도 없는 헤엄터 옆 햇살받이에 헤엄옷을 입고 누워 책을 읽는다

→ 물도 없는 헤엄터 옆 해자리에 헤엄옷을 입고 누워 책을 읽는 누가 있다

62쪽


스무 번쯤 《마담 보바리》를 재독해왔다

→ 스무 벌쯤 《보바리 씨》를 되읽었다

→ 《보바리 마님》을 스무 벌쯤 읽었다

75쪽


독서와 비독서 사이

→ 읽기와 안 읽기

→ 읽기와 안읽 사이

78쪽


시켜놓고 펼쳐보는 습관이 한동안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 시켜놓고 펼쳐보곤 했다

→ 시켜놓고 펼쳐보기 일쑤였다

→ 시켜놓고 펼쳐보게 마련이었다

80쪽


혹은 그렇다고 믿거나, 이해를 포기했을 텐데, 세부사항들은 모조리 휘발되고 없다

→ 아니면 그렇다고 믿거나, 손을 들었을 텐데, 낱낱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 또는 그렇다고 믿거나, 두손을 들었을 텐데, 마디마디는 모조리 잊었다

82쪽


몇몇 문장을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곱씹었던 경험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 몇몇 글월을 거리불빛에 기대에 곱씹던 일을 오늘도 고이 여긴다

→ 몇몇 대목을 길불빛에 비추며 곱씹던 날은 여태껏 뜻깊다

85쪽


성인 ADHD와 더불어 우울감과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뒤로 내 상태를 규정하는 굳건한 명사를 부여받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 어른 어수선앓이와 눈물앓이와 붕뜨기라 말하기에, 나를 밝히는 굳건한 이름을 받아 고맙다고 느끼면서

→ 어른 딴청과 멍꽃과 덜렁질이라 짚어주기에, 나를 가르는 굳건한 이름씨를 받아 기쁘다고 여기면서

86쪽


예전처럼 독서에의 몰입을 만끽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 예전처럼 책에 빠질 수만은 없다

→ 예전처럼 책사랑을 즐길 수만은 없다

88쪽


무인도에 가져갈 책 목록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 빈섬에 가져갈 책꾸러미를 고치지 않았다

→ 고요섬에 가져갈 책보따리를 갈지 않았다

→ 홀로섬에 가져갈 책다발을 새로하지 않았다

→ 홀섬에 가져갈 책꿰미를 바꾸지 않았다

95쪽


흉터가 여전히 건재하므로

→ 흉터가 멀쩡하므로

→ 흉터가 단단하므로

100쪽


식물채집 표본을 만들었는데 내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훼손해온 식물들의 이름을 어머니는 모두 알고 있었다

→ 들꽃꾸러미를 엮는데 어머니는 내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꺾은 들꽃이름을 모두 알았다

→ 풀꽃담이를 여미는데 어머니는 내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뽑은 풀꽃이름을 모두 알았다

102쪽


전과에는 양대산맥이 있었는데

→ 곁책에는 두갈래가 있는데

→ 도움책은 둘이 있는데

106쪽


그의 답에 따르면 로제와인은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라

→ 그가 말하길 배롱포도술은 가볍고 시원하다며

→ 그는 배롱포도술은 가볍고 상큼하다고 말해서

114쪽


본고장에서는 식전주로 많이 마시지만

→ 그곳에서는 돋술로 많이 마시지만

→ 그쪽에서는 입맛술로 많이 마시지만

→ 그나라는 맛술로 많이 마시지만

114쪽


바로 와독(臥讀)을 포기하진 않았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마다

→ 바로 눕읽기를 멈추진 않았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마다

→ 바로 누워읽기를 그치진 않았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마다

124쪽


여간해서는 복근이 단련되지 않던 와중에 침대에서의 독서를 가능하게 해주는 장비를 하나 마련했다

→ 배힘살을 다지기 꽤 힘든데 자리에 누워서 읽을 수 있는 살림을 하나 마련했다

→ 뱃힘살을 갈닦기 무척 힘든데 잠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살림을 하나 마련했다

124쪽


아침마다 잠과 분투를 벌였다

→ 아침마다 자느라 몸부림이다

→ 아침마다 자느라 발버둥이다

→ 아침마다 졸려서 용쓴다

129쪽


대충 넣어두고 가끔씩만 꺼내 쓰는

→ 아무렇게나 넣고 가끔 꺼내 쓰는

→ 그냥 넣고서 가끔 꺼내 쓰는

13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5.26.

다듬읽기 290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2021.8.18.



  일자리만으로 본다면, 시골일자리는 멧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일자리는 거의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맡는다. 내가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1980해무렵부터 오늘날 2020해무렵까지 마흔 해를 돌아보고, 또 1940해무렵부터 1980해무렵을 짚어도, 배움터에서 시골일자리를 알리거나 북돋우지 않는다. 예나 이제나 언제나 누구나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얼뜬 말만 일삼는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할 까닭이 없다. 사람은 나고자란 터전을 사랑하며 살림하는 사이로 설 줄 알 노릇이다. 서울내기라면 서울을 푸른고을로 일구는 길을 살피면 된다. 시골내기라면 시골을 푸른숲으로 돌보는 길을 헤아리면 된다. 이따금 서울내기가 시골로 깃들 수 있고, 가끔 시골내기가 서울에 눌러앉을 수 있다.


  곰곰이 보면,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시골을 싫어한다. 시골을 안 싫어한다면, 시골이 이토록 망가질 때까지 팽개치지 않겠지. 시골이 싫지 않다면 시골에 으리으리 큰집이 아니라 조촐히 오두막을 짓고서 작은살림을 지을 테지. 그저 시골이 싫기에 시골을 안 쳐다본다. 그냥 서울을 좋아하기에 서울만 바라본다.


  이러다 보니, 서울내기는 서울이 좋으면서도 으레 지겹고 따분하다. 지겹고 따분한 서울에서 숨을 돌리려고 날개를 타고서 먼나라로 놀러간다. 다른 나라 다른 서울을 맛보고 싶은 서울내기이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다. 오로지 서울바라기로 살아온 글님 마음결을 또렷이 느낄 만하다. 시골을 쳐다보지 않기에 “서울나라(도시문명사회)가 망가지고 무너져도, 똑같이 서울을 다른 곳에 억지로 만들어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줄거리”를 짤 수밖에 없다. 서울 탓에 푸른별이 망가져서 먼지보라가 휘날린다는데, 이런 때마저도 ‘서울부스러기’를 뒤져서 살림살이를 챙긴다고 하니, 딱하고 안타깝다.


  시골을 안 쳐다보느라 논밭살림을 다 잊어서 망가진 서울인데, 뭘 얻어서 뭘 먹을까? 먹고사는 일뿐 아니라, 똥오줌은 어찌한다는 소리인가. 구정물은 어찌하며, 마실물은 얻을 수 있는가?


  아무리 서울이 밤을 잊고서 번쩍거리더라도, 서울을 둘러싸고서 들숲메바다가 있기에, 서울나라가 버틴다. 서울도 부산도 큰고장이되, 서울은 다른 큰고장에 둘러싸인 잿더미이고, 부산은 바다를 넓게 끼면서, 멧숲을 퍽 깊게 품는다. 여러모로 보면, 부산이 서울보다 훨씬 살 만하고, 사람빛을 건사할 만한 고장인데, 이런 부산조차 싫어서 서울로 휙휙 떠나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사람이 넘친다.


  푸른별이 망가진 판에 이르러도 ‘포근집(온실)’을 찾는 줄거리에는 아무 앞길도 앞빛도 앞날도 없다. 서울내기 스스로 온나라와 온누리를 망가뜨렸으면, 이제는 잿더미를 그만 놓고서 호미와 낫과 쟁기를 쥘 노릇이다. 이제는 맨발과 맨손과 맨몸으로 흙을 만지고 들을 살피고 숲을 노래하고 멧바람을 쐬고 바다랑 하나인 살림을 지을 노릇이다.


  서울에 갇혔으면서 갇힌 줄 모르기에 ‘오늘꿈’이 없이 ‘살아남기’에 매달린다. 살아남으려고 하니까 ‘겨루고 다투고 싸운다(전쟁)’. 늘 싸움박질을 하니 이웃과 동무를 스스로 버릴 뿐 아니라, 참나(참다운 나)를 들여다볼 짬마저 없다. 오늘까지 오늘꿈을 못 그렸어도, 바로 오늘부터 오늘길을 다스리면서 눈을 뜨려고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다. ‘서울’에도 ‘다른 서울’에서 앞날과 씨앗이란 없다. 덩치를 줄이고, 더께를 벗어야 한다.


  들이 눈부신 줄 알아보는 눈을 뜰 일이다. 숲이 밝은 줄 알아채는 눈썰미를 기를 노릇이다. 해가 환하게 비추기에 서로 즐겁게 살아가는 줄 알아내야지 싶다. 모든 책도 모든 살림도 모든 말도 모든 꿈도 모든 사람도 들숲메바다에서 태어난다.


  ‘별끝(지구 끝)’으로 달아난들 살아남지 못 하나. 빽빽하고 뿌옇고 시끄러운 모든 쇳덩이와 잿덩이를 걷어내면서 흙으로 돌보는 길을 열 때라야 비로소 아름답게 어깨동무한다. 새를 내쫓고 개구리를 밀치고 풀벌레를 짓밟는 서울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내쫓고 밀치고 짓밟게 마련이다.


ㅍㄹㄴ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자이언트북스, 2021)


흙이 말라 있어

→ 흙이 말랐어

→ 흙이 푸석해

→ 흙이 부석해

11쪽


조심 좀 해. 내성이 널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지켜주진 않아

→ 좀 살펴. 넌 모든 더럼먼지를 견딜 수 없어

→ 좀 살펴봐. 넌 모든 더럼치를 버틸 수 없어

→ 좀 삼가. 넌 모든 더럼티를 못 끌어안아

14쪽


안개가 숲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라 역시 안개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안개가 숲을 덮는다. 아마라도 안개를 느꼈는지 걱정스레 둘러본다

→ 안개가 짙다. 아마라도 안개를 느끼며 근심스레 둘레를 본다

15쪽


산딸기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 멧딸기를 놓고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 멧딸기를 먹다가 한바탕 시끌거렸다

25쪽


산딸기가 원래 떪은맛이 나나?

→ 멧딸기가 워낙 떫은맛인가?

→ 멧딸기가 이렇게 떫나?

26쪽


대단한 건 없었어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것과 똑같아요

→ 대단하지 않아요. 밑터하고 똑같아요

→ 대단찮아요. 바탕터하고 똑같아요

43쪽


무성한 잡초들도 지금은 그림자로만 존재했다. 푸른빛의 먼지들만이 느린 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있었다

→ 우거진 풀도 이제는 그림자 같다. 푸른먼지만 바람을 타고서 천천히 흩날린다

→ 풀이 우거져도 이젠 그림자 같다. 푸른먼지만 바람을 따라서 가만히 흩날린다

67쪽


이희수가 흔쾌히 수연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 이희수는 기꺼이 수연이 말을 받아들인다

→ 이희수는 수연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 이희수는 수연이를 덥석 받아들인다

72쪽


아무 말 없이 가버린 것이 무척 서운했다

→ 아무 말 없이 가버려서 무척 서운하다

→ 말도 없이 가서 무척 서운하다

81쪽


고립된 섬에서 자연적인 조건으로 일종의 돔 역할을 하는 기류가 형성되어

→ 외딴섬에서 저절로 둥근지붕 노릇을 하는 기운이 일어나

→ 섬에서 스스로 동글지붕 구실을 하는 바람이 생겨서

94쪽


그 식물들이 이 마을을 먹여살린다는 거야?

→ 그런 풀이 이 마을을 먹여살린다고?

→ 이 마을은 그런 풀로 먹고산다고?

150쪽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일상적인 작업을 중단하고 봉쇄를 준비했다

→ 마을사람은 모든 일을 멈추고서 닫아걸려고 한다

→ 마을사람은 모든 일을 그치고서 막아내려고 한다

204쪽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야

→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일이야

→ 난 아직도 모르겠어

→ 난 여태 모르겠어

224쪽


죽음의 먼지가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물자를 구하기 위해 인근 폐허에 다녀온 사람들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구역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죽음먼지가 온누리를 뒤덮는다. 쓸거리를 찾으려고 가까운 벌판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이 확 줄어든다고 말한다

→ 죽음먼지가 이 별을 뒤덮는다. 살림거리를 얻으려고 둘레 벌판을 다녀온 사람들은 앞으로 살아갈 만한 곳이 확확 줄어든다고 말한다

230쪽


혹은 관측으로부터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확한 분석을 거쳐 귀납적으로 하나의 이론을 이끌어낸다

→ 또는 바라보며 바탕틀을 다지고, 꼼꼼히 짚고 헤아려 얼거리를 이끌어낸다

→ 아니면 살펴보며 밑틀을 쌓고, 하나하나 파고 살펴서 틀거리를 이끌어낸다

257쪽


더스트 폭풍이 지나가고 공동체의 사람들이 절반 넘게 죽자, 남은 이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지수는 보았다

→ 지수는 보았다. 먼지보라가 지나가고 마을사람이 토막날 만큼 죽자, 살아남은 사람이 둘로 갈렸다

→ 지수는 보았다. 먼지회오리가 지나가고 마을사람이 엄청나게 죽자, 살아남은 사람이 다들 엇갈렸다

288쪽


마을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이후 지수는 이 숲을 가짜 더스트로 감추기로 결정했다

→ 마을이 제법 자리잡을 즈음, 지수는 이 숲을 먼지로 속여 감추기로 한다

→ 마을에 집이 꽤 늘어나자, 지수는 이 숲을 먼지시늉으로 감추기로 한다

300쪽


지금 어떻게 그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 이제 어떻게 이를 밝힐 수 있을까 헤아리다가

→ 오늘 어떻게 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살피다가

35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너랑 나랑 노랑 - 시인 오은, 그림을 가지고 놀다!
오은 지음 / 난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291


《너랑 나랑 노랑》

 오은

 난다

 2012.3.28.



  빛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는 《너랑 나랑 노랑》은 책이름에만 ‘노랑’을 쓸 뿐, 내내 ‘옐로’라고 글을 쓴다. ‘레드·블루·그린·화이트·블랙·그린·옐로’는 ‘무늬한글’일 뿐이다. 우리말이 아니기도 하지만, ‘빛말’이라 할 수도 없다. 왜 빛말을 꺼릴까? 왜 빛말을 멀리할까?


  우리말 ‘노랑·노랗다’는 ‘누렁·누렇다’하고 다르지만 닮는다. 다르기에 닮고, 닮으니 담는다. 담는 대서 같지 않다. 담으니 서로 닮으면서 나란히 간다. 노란 빛깔은 노을이며 너울로 뻗고, 노을과 너울을 줄인 낱말은 똑같이 ‘놀’이라 적지만, 하나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바다를 가리킨다.


  노란 빛깔은 ‘놀다’하고 ‘노래’하고 만난다. 이윽고 ‘노느다·나누다’랑 만난다. ‘놓다’로도 만나며, ‘넣다’에 ‘낳다’로 흐른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저 수수하고 흔하다고 여길 우리말 ‘노랑’일 뿐이지만, 노랗다는 빛깔 하나가 우리 삶자락에 어떻게 스미고 퍼지는가 하는 이야기만으로도 책 여러 자락을 써낼 수 있다.


  느긋이 넉넉히 빛살을 노래하면 된다. 놀이하듯 나긋나긋 글길을 펴면 된다. 서로 마음을 노느듯 차분히 근심걱정을 내려놓으면 된다. 높이 오르려 하기보다는, 높이 모시거나 섬기려 하기보다는, 너울가지마냥 어깨동무하는 놀이를 지으면 된다.


  꾸밀수록 꿈하고 멀다. 수수할수록 숲으로 다가선다. 모든 말뿐 아니라 모든 빛은 숲에서 비롯했다. 빛깔을 노래하며 놀고 싶다면, 서울이 아니라 들숲메바다를 품는 시골에서 손수 살림짓기를 하면서 하루하루 차분히 해바람비를 아우르면 된다. 해바람비도 풀꽃나무도 돌흙모래도 없는 ‘레드·블루·그린·화이트·블랙·그린·옐로’ 타령으로는 죽도 밥도 아무것도 아닌 허울스러운 꼭짓물(수돗물)일 뿐이다.


ㅍㄹㄴ


《너랑 나랑 노랑》(오은, 난다, 2012)


우리가 색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까

→ 우리는 빛을 오롯이 읽을 수 있을까

→ 우리는 빛깔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9쪽


기다렸다는 듯 길고 긴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기다렸다는 듯 길고긴 나날을 헤맸다

→ 기다렸다는 듯 한참 땀흘리며 찾아보았다

→ 기다렸다는 듯 오래도록 더듬더듬했다

10쪽


레드는 탐스럽습니다. 레드는 모든 익는 것들의 종착지입니다

→ 빨강은 먹음직합니다. 열매는 익으며 빨갛습니다

→ 붉으면 맛있습니다. 익으면 모두 붉습니다

16쪽


화염에 휩싸인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건 거리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 길바닥도 불길에 휩싸인 듯했다

→ 거리거리도 이글이글했다

→ 길거리도 타올랐다

→ 길바닥도 새빨갛게 탔다

42쪽


스스로 삶에서 퇴장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허공에 대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 스스로 삶에서 물러나기로 한다. 떨리는 손으로 하늘에 대고 마지막을 찍는다

→ 스스로 삶을 떠나기로 한다. 떨리는 손으로 하늘에 대고 마침꽃을 찍는다

44쪽


우리는 모두 탑 위에 올라가 있었으니까요

→ 우리는 모두 뾰족이에 올라갔으니까요

→ 우리는 모두 높이 올라갔으니까요

54


코발트블루를 발음하다가 어느 순간, 이 다섯 음절의 단어를

→ 바닷빛을 말하다가 문득, 이 석 낱내 낱말을

→ 쪽빛을 소리내다가 얼핏, 이 두 동강 낱말을

→ 짙파랗다고 하다가 설핏, 이 넉 도막 낱말을

78쪽


저녁엔 매양 어스름과 푸르스름이 감돌지요

→ 저녁이면 어스름하고 푸르스름하지요

→ 저녁마다 어스름에 푸르스름하지요

96


하나가 되지 못한 자들은 여러 가지 것들을 퍼즐처럼 끌어모은다

→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은 여러 가지를 끼워맞춘다

→ 하나가 되지 못하면 여러 조각을 끌어모은다

138


이 세상의 소음들이 파묻히고 있다

→ 모든 시끌먼지가 파묻힌다

→ 모든 시끌티끌이 파묻힌다

163


종종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 가끔 스스로 물어본다

→ 곧잘 스스로 돌아본다

→ 더러 스스로 되새긴다

→ 이따금 혼자 곱씹는다

→ 때때로 홀로 되짚는다

174쪽


말들이 범람하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용암처럼 흘러갈 것만 같다

→ 말이 넘치는 듯하다. 곧장 불길물처럼 흘러갈 듯하다

→ 말이 끓는 듯하다. 이내 불꽃물처럼 흘러갈 듯하다

→ 말이 부글대는 듯하다. 이내 불물처럼 흘러갈 듯하다

209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말 것. 너의 눈보단 너의 가슴을 믿을 것

→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마. 네 눈보단 네 가슴을 봐

→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말자. 눈보단 가슴을 보자

→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가슴으로 바라봐

→ 눈에 보인다고 그리지 말고 가슴으로 봐

241쪽


그날의 시작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어요

→ 그날 아침은 여느때와 같아요

→ 여느때 같은 아침이에요

287


스크램블드 에그를 먹고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죠

→ 달걀휘부침을 먹고 책가방을 챙기죠

→ 달걀휘볶음을 먹고 책가방을 챙기죠

287쪽


서른다섯, 절규할 공간이 필요한 나이였다

→ 서른다섯, 외칠 곳을 바라는 나이다

→ 서른다섯, 내뱉을 데를 그리는 나이다

305


블랙은 단정해요

→ 검정은 깔끔해요

→ 까망은 말쑥해요

→ 검으면 매끈해요

334


그런 생각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 멋잡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여길 수 있다

→ 꽃바치라면 누구나 그처럼 볼 수 있다

35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