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 나의 작은 날들에게
류예지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8.

다듬읽기 279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3.7.



  여름에는 햇볕자리에 서야 안 덥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쐬어야 안 춥습니다. 가시밭길은 노래하며 걸으려고 눈앞에 나타납니다. 꽃길은 다같이 뛰놀려고 함께 짓습니다. 더위를 타는 사람은 햇볕자리에 안 서기 일쑤이더군요. 추위를 타는 사람은 찬바람을 참으로 안 쐬느라 몸이 기우뚱합니다. 누구나 가시밭길이며 자갈밭길을 차근차근 나아가기에 깨어납니다. 나 혼자 가면 될 꽃길이 아니라, 누구나 거닐 꽃길이니, 온누리가 꽃길에 숲길에 들길에 멧길에 바닷길에 바람길에 별길일 노릇입니다.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는 시골에서 나고자랐으나 일찌감치 시골을 박차고 서울(도시)로 떠난 발자국을 담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틀림없이 글감은 ‘예전 시골’이되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골’이며 ‘서울살이(도시생활)이 좋다’는 얼거리입니다. 누구나 시골을 싫어할 만하고, 서울을 좋아할 만하며,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시골을 따분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러다 보니 경상도에서 나고자라건 강원도에서 나고자라건 전라도에서 나고자라건, 요즈음 글바치는 하나같이 ‘서울내기 일본옮김말씨’예요. 예부터 시골에서 나고자란 누구나 모든 살림뿐 아니라 말과 마음도 손수 가꾸고 돌보고 지으면서 ‘나답게’라는 길을 지었습니다. 비록 시골과 동떨어진 오늘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멋부리는 겉글이 아닌, 마음밝히는 속글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멋내는 옷과 밥과 집이 나쁘지는 않지만, 멋이란 언제나 남눈에 얽매입니다. 수수한 옷과 밥과 집이란 언제나 스스로 돌보는 ‘나답게’입니다. 말길과 글길은 ‘멋내기’가 아닌 ‘나답게’여야 어울리겠지요.


ㅍㄹㄴ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


촌 동네의 생활을 하품이 날정도로 지루해하는 동안 준비 없어 어른의 길목에 들어섰다

→ 시골살이는 하품이 날 만큼 따분했고 어느새 어른이란 길목에 들어선다

→ 하품이 날 만큼 심심한 시골에서 살다가 문득 어른이란 길목이다

→ 하품이 나도록 지겨운 시골에서 보내다가 덜컥 어른이란 길목이다

4쪽


철새의 삶을 살게 되면서

→ 철새살이를 하면서

→ 철새처럼 살면서

→ 철새마냥 살면서

4쪽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결국 사라져 버릴 날들에

→ 조각조각 흩어지다 끝내 사라질 날에

→ 조각이 나다가 마침내 사라질 날에

6쪽


나의 지난날들이 나에게 그러했듯 당신의 지난날들이 당신에게 보낸 신호에

→ 나는 지난날 나한테 했듯 너는 지난날 네가 보낸 말에

→ 내가 지난날 나한테 했든 네가 지난날 너한테 한 말에

7쪽


동네 초입에 자리한

→ 마을 앞에 자리한

→ 마을 앞

→ 마을 어귀

15쪽


누군가는 제 아빠의 목마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 누구는 아빠 목말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 누구는 아빠 무등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15쪽


이후 일가친척 어르신이 집을 방문하는 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불편함으로 각인되었다

→ 이제 피붙이 어르신이 집을 찾는 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거북하다

→ 곧이어 한집안 어르신이 찾아오는 날,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껄끄럽다

23쪽


새하얀 피부를 가진 탓에 종종 뺨 위의 주근깨가 도드라져 보였다

→ 새하얀 살결이라서 뺨에 난 주근깨가 곧잘 도드라진다

→ 살빛이 하얀 탓에 주근깨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 하얀살이라서 주근깨가 돋보이기 일쑤이다

30쪽


묵직한 동체(動體)가 가한 충격

→ 묵직한 몸이 부딪혀

→ 묵직히 움직이며 때려

35쪽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이한 상흔을 남긴

→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틀린 자국을 남긴

→ 오붓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바보처럼 흉을 남긴

→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엉킨 멍울을 남긴

77쪽


우리는 사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우리는 모래언덕으로 걸어간다

→ 우리는 모래뫼로 걸어간다

86쪽


별다른 공통점 없는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 가는 일이 조금 피로하게 여겨지기도 해서였다

→ 딱히 닿지도 않는 말을 이어가는 일이 조금 지치기도 했다

→ 썩 뜻이 같지도 않는데 얘기하자니 조금 힘들기도 했다

→ 그리 안 어울리는 얘기를 잇자니 조금 버겁기도 했다

97쪽


엄마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 엄마는 딱히 대꾸도 없이

→ 엄마는 군말도 없이

→ 엄마는 긴말도 없이

→ 엄마는 뭐라 하지 않고

→ 엄마는 따지지도 않고

103쪽


오늘 퇴근길 귀찮아지게 생겼네

→ 오늘 마치며 귀찮겠네

→ 오늘 집에 가며 귀찮겠네

121쪽


친구 A의 간곡한 호소가, 각자의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죽어라 쳐다보던 친구 B와 나를 단합시켰다

→ 동무 ㄱ이 애타게 바라자, 다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나를 묶었다

→ 동무 ㄱ이 빌고 빌자, 저마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내가 뭉쳤다

128쪽


처음 맛본 어죽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맛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 처음 고깃밈을 맛보며 맛결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 처음 고깃보미를 맛보며 맛빛을 새롭게 일깨웠다

129쪽


참새과 텃새의 종류인 딱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참새갈래 텃새인 딱새인 줄 알아냈다

151쪽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 장마를 알리는 장대비가 온다

→ 장마를 알리며 굵게 비가 쏟아진다

159쪽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여름끝을 알리는 비가 내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끝을 알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이 끝난다

17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3.

다듬읽기 283


《눈물 상자》

 한강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2008.5.22.



  꿈과 길이란 늘 스스로 빚고 짓고 가꾸면서 일으킬 테니, 어느새 천천히 이루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도 아이로 자라던 나날은 몸마음에 나란하고, 어릴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모든 하루는 새롭게 어울려서 흘러가는구나 싶습니다.


  꿈을 그리는 글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와 달리 ‘꿈시늉’을 하거나 ‘눈물짜기’나 ‘웃음짜기’를 하는 글은 여러모로 허울스럽습니다. 굳이 시늉글을 쓰거나 ‘짜내기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부리려고 쓰는 글이라면 덧없습니다. 목소리만 높이려는 글이라면 부질없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할머니가 있어서, 스웨덴 어린이한테 이야기꽃을 듬뿍 베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원수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한나라(한국) 어린이한테 이야기밭을 넓게 베풀었습니다. 스웨덴 할머니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꽤 철없이 굴고 놀았습니다만,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천히 철들며 사랑을 지피는 길을 느껴서 글을 일구었습니다. 한나라 할아버지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참 철없이 굴고 바보글(친일시)도 썼습니다만, 1945년을 맞이한 뒤 크게 뉘우치고서 1980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군사독재자하고 맞서서 어린이를 지키는 보금자리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고 안 돌본 분은 이원수 할배가 쓴 〈햇볕〉이라는 노래를 거의 모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았어도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를 모르는 분도 수두룩합니다. 이원수 할배는 ‘뉘우침글(참회록)’을 글꽃(동시·동화)으로 지폈습니다. 이이가 온삶이 뉘우침글이었기에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 같은 노래뿐 아니라 〈불새의 춤〉 같은 어마어마한 글까지 써낼 수 있었습니다. 〈불새의 춤〉은 전태일 님이 온몸을 불살라 박정희한테 맞선 지 석 달이 채 안 되어 선보인 글인데, 이 나라는 1987년까지 ‘빨간글’이라고 여겨 아무도 못 읽게 막은 바 있습니다.


  《눈물 상자》를 읽고서 한숨이 나왔고, 여러 달 한숨을 가다듬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글이라는데 왜 이다지도 일본말씨에 옮김말씨가 춤추어야 할까요? 왜 ‘무늬한글’을 써야 할까요? 우리는 한글을 이렇게 미워해도 될까요? 우리는 한글과 한말과 한빛과 한넋과 한얼을 이렇게 싫어하고 내치고 짓밟고 따돌리고 들볶아도 될까요?


  아무나 철들지 않으나, 누구나 철들 수 있습니다. 아무나 글을 쓰면 안 되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어마어마하고 엄청나게 사랑이라는 빛을 베풀 줄 아는 엄마요 어머니에 한어미(할머니)이기에 어질면서 얼찬이로 어울리며 서게 마련입니다. 엄마와 어머니와 한어미는 엄지(으뜸)이기도 합니다.


  조선 오백 해 내내 ‘암클’이라는 이름을 받은 우리글입니다. ‘수클’이라는 중국글(한문)을 붙잡은 꼰대와 힘꾼(권력자)은 조선이 무너진 뒤에는 곧장 일본말씨로 갈아탔고, 1945년 뒤에는 영어로 갈아탔습니다.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는 바로 ‘조선 오백 해 가부장권력자 + 일본부역자·조선총독부 + 군사독재자 꼰대말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글꽃을 받은 분이라면, 이제는 “어진 어른으로 어울리는” 숨빛으로 철들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쓴 모든 부끄러운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를 말끔하게 우리말씨로 가다듬어서 새로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강 씨가 쓴 글을 읽을 적마다 이 무늬한글이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ㅍㄹㄴ


《눈물 상자》(한강, 문학동네, 2008)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 어느 마을에 아이가 있다

→ 어느 마을에 사는 아이가 있다

5쪽


아이에게 특별한 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이가 남다른 줄 알아차린다

→ 아이가 다른 줄 알아본다

5쪽


누군가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 누가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 남이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6쪽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 갓 돋아난 푸른잎이 햇빛에 반짝이자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 갓 돋아난 잎이 햇빛에 반짝이니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6쪽


아빠는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버럭댄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발칵댄다

8쪽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 크고 검은 가방을 들었다

9쪽


꾸벅 목례만 남기고 돌아섰다

→ 꾸벅하고서 돌아선다

→ 목절을 하고서 돌아선다

9쪽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 눈시울이 뜨겁다고 느낀다

→ 눈시울이 뜨겁다

11쪽


무엇인가가 아저씨의 외투 속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뭐가 보인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뭐가 동그랗게 부풀어오른다

11쪽


아이는 문득 자기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그 파란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 아이는 문득 하루 가운데 파란때를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한 얼굴이다

→ 아이는 문득 하루에서 파란무렵을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하다

13쪽


이것들을 모두 수집하는 데 무려 이십 년이 걸렸단다

→ 이 모두를 모으는 데 스무 해나 걸렸단다

→ 이렇게 모두 모으느라 꼭 스무 해 걸렸단다

14쪽


자신이 우는 이유가 순수함이나 아름다움보다는 막막함에 가깝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맑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먹먹하기 때문에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 깨끗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갑갑해서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24쪽


한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 그냥 부끄럽다

→ 그저 부끄럽다

→ 너무 부끄럽다

24쪽


순수한 눈물에 대해서 더 얘기해주세요

→ 맑은 눈물을 더 들려주셔요

→ 깨끗한 눈물을 더 얘기해 주셔요

24쪽


담요 속에 얼굴을 묻고

→ 담요에 얼굴을 묻고

36쪽


눈물들을 모두 삼킨 뒤

→ 눈물을 모두 삼킨 뒤

45쪽


울음이 격해지자

→ 흐느끼자

→ 몹시 울자

45쪽


투명하고 미묘한 빛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 물방울 같고 고운 빛이 햇빛에 반짝인다

→ 맑고 눈부신 빛이 해를 받아 반짝인다

6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봄에 느낌글을 쓰기도 했는데,

옮김말씨만 따로 짚으면서

다시 글을 추슬러 본다.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0.

다듬읽기 281


《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글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2025.1.20.



  요즈음 어린배움터에서 길잡이(교사)는 ‘게이트키퍼’ 노릇까지 맡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문지기’일 텐데, ‘자살예방 교육’을 따로 해야 한다더군요. 불늪(입시지옥) 탓에 숱한 푸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건사하더라도 몸마음이 곯거나 다치거나 망가지기 일쑤입니다. 진작부터 어린씨한테도 불늪바람이 불었습니다만, 나라에서 고작 하는 짓이 ‘게이트키퍼·자살예방’이라니 바보스럽습니다. 허울만 번드레하게 씌운들 안 달라지거든요. 불늪부터 없앨 노릇이고, 온통 서울로 쏠린 얼뜬 얼개를 갈아엎을 일입니다. ‘불늪 + 서울바라기’를 그대로 둔 채 쳇바퀴를 돌린들, 어린씨와 푸른씨뿐 아니라 어른씨도 나란히 고달프고 지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橋の上で”를 옮긴 그림책입니다. “다리에 서서” 새로 흘러갈 앞길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곰곰이 어떤 ‘다리’로 이을는지 생각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우리말 ‘다리’는 몸과 발을 잇는 곳이면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길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냇물이나 멧골 사이를 지나려고 놓는 길다란 자리도 ‘다리’로 나타내요. 다가서려는 다리요, 다가오는 다리이며, 다다르면서 닿는 다리입니다. 이곳(나)하고 저곳(너)을 잇는 다리이기에, 두 길을 오가는 마음이 만나서 ‘사람’으로서 ‘사랑’을 바라보는 틈을 낼 수 있습니다. 일본 그림책에 흐르는 이런 밑뜻을 헤아리면서 한글로 옮겨야 비로소 ‘삶’을 풀어낼 텐데, 낱말뜻도 낱말결도 그다지 살피지 못 한 옮김말씨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다리 위”나 “풀 위”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고 있다”나 ‘것’이나 “-게 되다”나 ‘-ㅁ’ 같은 군더더기 옮김말씨는 다 털어내야지요.


ㅍㄹㄴ


#湯本香樹實 #酒井駒子 #橋の上で


《살아있다는 것》(유모토 가즈미·사카이 고마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5)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날

→ 다리에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어느 날

→ 다리에 서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날

2쪽


스웨터는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년인지 몇십 년인지 오래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 털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해나 몇 열 해나 오래 안 갈아입은 듯했어

→ 윗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아주 오래 안 갈아입었구나 싶었어

6쪽


그냥 보고 있었어요

→ 그냥 봐요

8쪽


그냥 있는 거예요

→ 그냥 있어요

8쪽


사실은 생각하고 있었어

→ 그러나 생각해 보았어

10쪽


그저 묵묵히 강물이 늘 같은 곳에서 하얗게 물결치는 걸 내려다보고 있었어

→ 그저 말없이 냇물이 늘 같은 곳에서 하얗게 물결치는 빛을 내려다봐

→ 그저 조용히 냇물이 늘 같은 곳에서 물결치는 하얀빛을 내려다봐

19쪽


어서 어딘가로 가 주면 좋을 텐데

→ 어서 어디로 가기를 바라

→ 어서 좀 가기를 바라

19쪽


그 물은 어두운 땅 밑 수로를 통해 너한테로 오고 있지

→ 물은 어두운 땅밑에서 흐르며 너한테 오지

→ 물은 어두운 땅밑길을 거쳐서 너한테 오지

20쪽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았어

→ 아까보다 더 큰 듯해

34쪽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 누구하고 눈이 마주친 듯해서 아리송했어

→ 누구랑 눈이 마주친 듯싶어 놀랐어

36쪽


그 다리를 지나지 않게 되었고

→ 그 다리를 지나지 않고

39쪽


아스라한 반짝임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 아스라이 반짝이다 차츰 다가와

→ 아스라이 반짝이며 조금씩 가까워

43쪽


솟아 나오는 물의 작은 파문까지

→ 솟아나오는 작은 물결까지

43쪽


물 주변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있지

→ 물가에는 반드시 누가 있지

44쪽


모두 제각각 생각을 하면서 풀 위에 앉아 있거나 뒹굴거나 하고 있어

→ 모두 생각을 하면서 풀밭에 앉거나 뒹굴어

→ 저마다 생각을 하면서 풀밭에 앉거나 뒹굴어

44쪽


내가 거기 있는 것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 내가 거기 있는 줄 보고는 웃음지으며

→ 내가 거기 있으니 웃으며

45쪽


그때 만약 강에 뛰어들었다면 전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지

→ 그때 냇물에 뛰어들었다면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이지

→ 그때 냇물에 뛰어들었다면 아무도 만날 수 없었지

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0.25.

다듬읽기 278


《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북다

 2025.5.30.



  틀린글씨나 틀린곳을 누가 짚어 주면 고맙습니다. 미처 놓치거나 스친 데를 누가 알리면 반갑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배우되 이웃과 동무가 사근사근 이야기하는 말을 들으면서 새삼스레 깨닫곤 합니다. 넘어지기에 일어서고, 자빠지기에 기운내며, 밤에 잠들기에 새벽에 하루를 엽니다.


  《오역하는 말들》은 책이름부터 알쏭합니다. 우리말은 ‘말들’이라 안 씁니다. 우리말에서 ‘말’이나 ‘글’에는 ‘-들’을 안 붙입니다. 비나 눈에도 ‘-들’을 안 붙여요. 풀이나 나무나 씨앗에도 ‘-들’을 안 붙여요. 바닷물이나 구름이나 바람이나 별에도 ‘-들’을 안 붙입니다. 이 얼거리를 읽지 않는 탓에 “틀리게 옮기”게 마련이니, 틀린 줄 누가 짚거나 가르치거나 알리면 넙죽 절을 할 일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못 배우거나 안 배운 곳을 이제 좀 배우라고 알리는 손길이 있는데 “지금도 오역 지적을 받으면 늘 아프고(6쪽)”처럼 일본말씨로 첫머리부터 핑계를 대는 책이라면, 그야말로 보잘것없습니다. 팔뚝이나 등에 글씨를 안 새겼다지만, 이미 이 책으로 “오만방자한 문장으로 타투를 새(9쪽)”긴 셈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모르는구나 싶은데, ‘옮김말씨(번역체)’는 ‘옮기다(번역하다)’가 아닙니다. 옮겼으면 ‘옮김말씨’가 아닌, 그저 ‘말씨·우리말씨’입니다. 옮기다가 말았거나, 옮기는 시늉에서 그쳤거나, 제대로 안 옮겼거나, 옮기는 척을 했기에 ‘옮김말씨(번역체)’라고 합니다.


  이웃글을 “잘 옮겨”야 하지 않습니다. 이웃글을 “마음으로 옮기”면 됩니다. 동무나 이웃하고 만날 적에 “겉으로 들리는 소리”만 받아들인다면 ‘이야기’가 아닌 ‘겉훑기’입니다. 흐르는 말소리에 어떤 마음과 뜻과 생각을 얹는지 속으로 헤아리고 짚으면서 “나는 어떤 마음인지” 주고받을 적에 비로소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웃글을 옮기는 일이란, 이웃사람하고 처음으로 만나서 이 나라 뭇사람한테 다리를 놓는다고 할 만합니다. 다리를 어떻게 놓고 싶은지 곱씹고, 다리를 왜 놓으려는지 살피고, 다리를 놓는 동안 스스로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거듭나고 싶은가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이 세 가지를 품으면 ‘옮김말씨’가 아닌 ‘옮긴글’입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잊는다면 ‘옮긴글’이 아닌 ‘옮김말씨(옮기는 흉내인 말씨)’입니다.


ㅍㄹㄴ


《오역하는 말들》(황석희, 북다, 2025)


지금도 오역 지적을 받으면 늘 아프고

→ 잘못 옮겼다고 짚으면 아직도 아프고

→ 틀린 곳을 나무라면 오늘도 아프고

6쪽


오만방자한 문장으로 타투를 새기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철없는 글씨를 몸에 새기지 않아 얼마나 숨돌렸는지 모른다

→ 쪼잔한 글을 몸에 그리지 않아 얼마나 한숨돌렸는지 모른다

→ 도도한 글씨를 살에 새기지 않았기에 망정이다

→ 그래도 막나가는 글을 살그림으로 새기지 않았다

9쪽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 문득 나를 지키려는 몸짓일지도 모른다

→ 불현듯 나를 지키려는 짓일지도 모른다

17쪽


결국 터지지도 못하는 휴화산이면서 기저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다

→ 끝내 터지지도 못한 주제에 밑에선 부글부글한다

→ 뭐 터지지도 못하면서 밑바닥에선 끓는다

19쪽


하지만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이미 존재한다면 굳이 부자연스러운 번역체를 쓸 이유가 없다

→ 그런데 더 부드러이 쓸 수 있다면 굳이 딱딱하게 옮김말씨를 쓸 일이 없다

→ 그러나 알맞게 쓸 말씨가 있다면 굳이 엉성하게 옮김말씨를 쓸 까닭이 없다

25쪽


어떤 경우엔 토착어가 가진 정서적 함의와 문화적 맥락이 탈각되기도 한다

→ 때로는 밑말에 흐르는 마음과 살림결이 빠지기도 한다

25쪽


언중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 말은 사실상 사어死語다

→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옛말이다

→ 사람들이 안 쓰면 죽은말이다

→ 사람들이 안 쓰는 말은 죽는다

→ 사람들이 안 쓰면 사라진다

26쪽


평생 꿈도 못 꿀 호사다

→ 꿈도 못 꿀 호강이다

→ 꿈도 못 꿀 봄꿈이다

→ 꿈도 못 꾸도록 넘친다

37쪽


경력 페이지 늘리는 재미를 얼마나 좋아했냐면

→ 길자취 늘리기를 얼마나 재미나게 했냐면

→ 걸음꽃을 늘리며 얼마나 좋아했냐면

44쪽


요새 뮤지컬을 자주 번역하면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 요새 춤노래를 자주 옮기면서 두 마음이다

→ 요새 판노래를 자주 옮기면서 둘을 느낀다

67쪽


지금이야 그런 글들이 워낙 많아져 어렵지만 그때만 해도 일일이 찾아다닐 만했다

→ 요새야 그런 글이 워낙 늘어서 어렵지만 그때만 해도 하나하나 찾아다닐 만했다

79쪽


책을 내고 책에 대한 평을 듣고 내 글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게 많다

→ 책을 내고 책느낌을 듣고 내 글을 돌아보는 길에서 여러모로 느낀다

→ 책을 내고 책느낌글을 읽고 내 글을 돌아보면서 이모저모 느낀다

83쪽


나는 그 표현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고 의례적인 칭찬으로 생각했다

→ 나는 그 말을 딱히 뜻있게 듣지 않고 그냥 띄운다고 여겼다

→ 나는 딱히 뜻있다고 안 듣고 가볍게 추켜세운다고 보았다

83쪽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말하자면 “네가 뭔데 날 정의해?” 같은 거다

→ 흔히 하는 말로 “네가 뭔데 날 나눠?”와 같다

→ 우리가 하는 말로 “네가 뭔데 날 매겨?” 같다

90쪽


또 다른 누군가가 이 말은 원어로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하며

→ 또 다른 누구한테 이 말은 워낙 무엇이었을까 그리며

→ 다른 사람은 이 말이 처음에 무엇이었을까 헤아리며

98쪽


별 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문장이 순식간에 힙해진다

→ 그리 안 다른 듯하면서도 글이 확 반짝인다

→ 썩 안 다른 듯하면서도 글월이 갑자기 새롭다

→ 비슷한 듯하면서 글자락이 어느새 다르다

→ 그냥저냥 같으면서도 글결이 톡톡 튄다

101쪽


의미에서 탈선한 문장이 여러 채널을 오랫동안 거치며 정역의 탈을 쓰면 문장은 물론이고 화자의 의도도 곡해된다

→ 무슨 뜻인지 모를 글이 여러 곳을 오랫동안 거치며 바른글이란 탈을 쓰면 글에다가 글쓴이 마음도 비튼다.

→ 뜻모를 글이 이곳저곳 오랫동안 거치며 바른글이란 탈을 쓰면 글이 뒤틀리고 글쓴이 뜻도 뒤틀린다

101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의 목적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지 스릴이 아니다

→ 꿈을 바라보며 나아갈 뿐, 아슬아슬하게 가지 않는다

→ 꿈으로 가는 길일 뿐, 아찔하게 가지 않는다

120


빽빽하게 짜인 계획 속에 살지만 반드시 건설적이고 실용적인 시간만이 필요한 건 아니다

→ 빽빽하게 짠 대로 살지만 반드시 낫거나 알찬 때만 있어야 하지 않다

→ 빽빽하게 살지만 반드시 훌륭하거나 알뜰한 나날만 보내야 하지 않다

147


결혼과 육아의 가장 끔찍한 케이스만 모아서 지옥도처럼 전시하는

→ 가장 끔찍한 꽃가마와 아이돌보기만 모아서 불늪처럼 보여주는

→ 가장 끔찍한 함께살기와 아이돌봄만 모아서 불바다처럼 늘어놓는

174


우리가 아이를 철저히 무시했고 아이를 우리 대화에 끼워 주지 않았다

→ 우리가 아이를 아주 얕봤고 아이를 우리 얘기에 끼워 주지 않았다

→ 우리가 아이를 무척 깔봤고 아이를 우리 이야기에 안 끼워 주었다

191


사실상 아무것도 못 누렸지만 빈고에 허덕이진 않았다

→ 여태 아무것도 못 누렸지만 가난에 허덕이진 않았다

→ 이제껏 아무것도 못 누렸지만 굶고 허덕이진 않았다

221


나의 온기를 나누거나 타인의 온기를 인식하는 것은 감각의 영역 같기도 하다

→ 내 숨결을 나누거나 이웃 숨결을 느끼는 삶은 마음길 같기도 하다

→ 내 숨꽃을 나누거나 다른 숨꽃을 느끼는 길은 마음살이 같기도 하다

278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에서 부르는 노래
손세실리아 지음 / 강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0.11.

다듬읽기 276


《섬에서 부르는 노래》

 손세실리아

 강

 2021.11.30.



  놀이를 하면서 저절로 피어나는 즐거운 가락이기에 노래입니다. 아이라면 소꿉놀이에 들놀이에 갖가지 놀이를 하는 동안 스스럼없이 노래합니다. ‘놀다’는 몸을 쓰는 모든 일을 가리키는 낱말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놀이노래라면 어른은 일노래입니다. 살림을 짓는 모든 길에 살림노래를 부를 텐데, 살림노래란 일노래이면서 삶노래이고 하루노래입니다. 《섬에서 부르는 노래》는 책이름에 ‘노래’가 깃들지만, 막상 속에는 ‘시’하고 얽힌 줄거리만 흐릅니다. 우리는 아직 스스로 너울처럼 놀지 못하는 터라, 노을처럼 노랗게 빛나지 못하는 탓에, 놀이로 높다랗게 피어나지 않는 바람에, ‘노래’가 무엇인지 까맣게 잊습니다. 놀이와 노래와 놀(노을·너울)과 높을 잊은 마음에는 “삶과 살림과 사랑과 숲을 담은 사투리인 말”이 스미지 못합니다. 여러모로 보면 ‘시’는 ‘노래하고 동떨어진 채 꾸미는 글’이기 일쑤입니다. 꾸밈글에 갇히기에 시만 쓴다고 여길 만합니다. 꾸미는 굴레가 아닌 가꾸는 살림이자 일구는 오늘이라면 누구나 기쁘게 노래한다고 느껴요. 노래하는 마음일 적에 말결을 풉니다. 노래하는 오늘이기에 말꽃을 피웁니다. 노래하는 나랑 너이니 말씨를 심습니다.


ㅍㄹㄴ


《섬에서 부르는 노래》(손세실리아, 강, 2021)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입도(入島) 열망을 포기하는 게 다반사지만

→ 값이 마구 치솟아 섬살이를 내려놓기 일쑤이지만

→ 값이 부쩍 치솟아 섬살림을 뒤로하게 마련이지만

7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선 심히 유감이란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 이 일은 몹시 서운하다

→ 이런 일은 참 섭섭하다

→ 이러면 무척 떨떠름하다

7


가장 값진 재산을 익명의 방문객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

→ 가장 값진 살림을 손님한테 내놓은 셈이다

→ 가장 값진 세간을 나그네한테 내놓았다

9


한 점 수묵화로 변하는 백 년 누옥

→ 한 자락 먹빛그림 되는 온해 오막

→ 한 자락 먹그림 되는 온살 작은집

9


활자중독증처럼 닥치는 대로 탐닉했다

→ 글벌레처럼 닥치는 대로 기웃댔다

→ 글깨비처럼 닥치는 대로 먹었다

17


불혹 즈음에 시인이 되었고, 지천명 즈음에 책방&카페를 시작했다

→ 마흔 즈음 노래꾼이 되고, 쉰 즈음에 책집·잎물집을 열었다

19


노경(老境)의 아름다움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 늙어 아름답다고 여기기도 하고

→ 아름다운 늘그막으로 풀기도 하고

27


타인의 심금까지 울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으니 애창곡(愛唱曲)이 곧 애창곡(哀唱曲)인 셈이다

→ 이웃 가슴까지 울릴 수도 있는 줄 처음 알았으니 사랑노래가 곧 눈물노래인 셈이다

→ 네 마음까지 울릴 수도 있는 줄 처음 알았으니 사랑가락이 곧 눈물가락인 셈이다

32


내 노래 중 기억에 남는 열창의 순간을 되돌아본다

→ 내가 뜨겁게 노래한 일을 되돌아본다

→ 내가 불타듯 노래한 때를 되돌아본다

36


개인차가 있겠으나 내게 시작(詩作)은 어떤 의식과도 같아서 절대적 몰입을 요하는 고도의 내밀한 작업이다

→ 다 다를 텐데 나는 노래를 비나리처럼 쓰기에 오롯이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비나리마냥 노래를 쓰기에 온마음을 쏟아야 한다

46


나의 소확행은 문우들이 우편으로 보낸 신간을 받아 들 때다

→ 나는 글동무가 띄우는 새책을 받아 들며 즐겁다

→ 나는 글벗이 보내는 새책을 받아 들며 들뜬다

53


항목마다엔 각각 대여섯 편의 시를 배치해 자기 점검에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 꼭지마다 노래를 대여섯씩 놓아 곰곰이 깊이 들여다본다

→ 자리마다 노래를 대여섯씩 두고 꼼꼼히 널리 짚는다

56


각설하고, 책이 가진 순기능의 신봉자인 연유로

→ 그러니까 책이 맞다고 여기는 터라

→ 그래서 책이 바르다고 믿는 터라

66


그것이 주는 만족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 이동안 어마어마하게 즐겁다

→ 이러며 어마어마하게 흐뭇하다

67


G를 통해 그녀와 첫 만남을 가진 게 지금으로부터 대략 15년 전의 일이다

→ ㄱ을 거쳐 그이와 처음 만난 때는 얼추 열다섯 해이다

→ ㄱ을 사이로 그사람과 만난 첫날은 이제 열다섯 해이다

71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처지라는 걸 알게 된 이후 아이가 겪을 고통과 분노에 대해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어버이한테서 버림받은 몸인 줄 알고서 아이가 얼마나 괴롭고 불탈는지 어림조차 할 수 없다

→ 어버이가 버린 줄 알고서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불타오를는지 어림조차 못 한다

76


뭍에서의 며칠을 유유자적 보내고 섬으로 내려가기 전날

→ 뭍에서 며칠을 느긋이 보내고 섬으로 가기 앞서

→ 뭍에서 며칠을 널널히 보내고 섬으로 돌아가기 앞서

88


어떤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사전 준비가 착실한 이들에게 섬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다

→ 어떤 일을 차근차근 미리짓는 이라면 섬은 그야말로 디딤땅이다

→ 어떤 일을 벌이며 찬찬히 다지는 이라면 섬은 그야말로 새땅이다

105


누군가는 담소를 나누고, 누군가는 토막 잠에 취해 있다

→ 누구는 얘기를 하고, 누구는 토막잠을 누린다

→ 누구는 말을 나누고, 누구는 토막잠을 즐긴다

118


그동안 등한히 하거나 무시했던 나무와 풀에게, 달과 강에게 사과한다

→ 그동안 등돌리거나 얕본 나무와 풀한테, 달과 내한테 고개숙인다

→ 그동안 팽개치거나 깔본 나무와 풀한테, 달과 냇물한테 뉘우친다

150


대부분의 독서가 그렇지만 특히 이 책은 차분하게 읽고 싶고

→ 읽을 때는 으레 그렇지만 이 책은 더 차분하게 읽고 싶고

→ 책읽기는 무릇 그렇지만 이 책은 더욱 차분하게 읽고 싶고

179


거창한 말 같지만 남의 말을 빌려온 게 아니라 평소 나의 독서 지론이다

→ 대단한 말 같지만 남말을 빌리지 않고 여태 읽은 바를 밝힌다

→ 잘난 말 같지만 남말을 빌리지 않고 늘 늙어온 바를 적었다

18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