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 시설사회를 멈추다
홍은전 외 지음, 정택용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외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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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1.11.

인문책시렁 371


《집으로 가는 길》

 홍은전 외

 오월의봄

 2022.4.20.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들었습니다. 그무렵에는 시골버스를 탈 적에 자리를 앉기 어려웠습니다. 시골버스에는 할매할배가 늘 붐볐는데, 갓난쟁이를 안고서 작은아이 손을 잡은 채 덜컹덜컹 다녔어요. 길쭉한 손잡이를 한 팔로 감싸면서 아기를 안았지요. 걷기도 서기도 버거운 할매할배는 갓난아기를 안은 몸에 커다란 등짐을 멜 뿐 아니라 한 손으로는 네 살 아이를 잡고서 흔들흔들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한테 자리를 못 내줍니다. 그분들부터 다릿심이 없는걸요.


  그런데 2014년을 지날 즈음부터 시골버스에 자리가 생기고, 2024년에는 그냥 누워서 다닐 만큼 빈자리가 넘칩니다. 그동안 흙으로 돌아간 어르신이 많기도 합니다만, 시골버스는 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반반한 길만 있는 서울이나 큰고장에는 낮은버스가 잔뜩 있으나, 지팡이를 쓸 수도 없어서 작은수레를 겨우 밀면서 거니는 할매가 탈 만한 낮은버스는 아예 없는 시골입니다.


  시골자락 할매할배는 ‘장애인’이 아닙니다만, 걸음빛(보행권·이동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없어요. 시골에서 쇳덩이(자동차)를 안 모는 사람한테도 걸음빛이란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시골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어떠한 걸음빛조차 누리지 못 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읽었습니다. 태어난 몸은 있으나, 태어난 몸을 느긋이 누이거나 쉬면서 살림을 짓고 삶을 누릴 터전인 집이 없다시피 하거나 빼앗긴 채 오래도록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아픈 이웃하고 작은길을 거닐려고 하는 분들 나날을 갈무리한 줄거리입니다. 여러모로 뜻깊습니다. ‘장애인복지재단’이나 ‘장애인인권단체·시설’을 둘 일이 아닌 ‘장애인’한테 곧바로 살림돈(지원금)을 주어야 할 일입니다. 별빛사람이 스스로 이녁 뜻을 나타내기 어렵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누리고 다루는 길을 열고 북돋아야지요.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고 싶습니다. ‘복지·권리·인권’을 외치는 분들이 제발 서울이나 큰고장에만 머물지 말고, 시골로 좀 오시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사람값’을 못 누리기 일쑤인데 그야말로 안 쳐다보더군요. 이른바 오늘날 가장 따돌림받는 작은이(소수자)라면 ‘시골사람’이요, 이 가운데 ‘시골아이’가 어마어마하게 따돌림을 받는데, 이 대목을 들여다보거나 목소리를 내는 분이 몇이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ㅅㄴㄹ


(그 법인은) 1년에 받는 정부 보조금이 100억이 넘었어요. (33쪽)


시설 비리의 가장 흔한 수법은 시설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건설사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는 거예요. 난방유와 주·부식 재료를 대는 업체와 짜고 돈을 빼돌리고 자기네 집안에 필요한 물품을 여기에 얹어서 사요. (61쪽)


뉴질랜드 정부는 국립 시설에서 살았던 장애인의 삶을 조사한 뒤 〈시설은 학대의 공간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고요. 자신들이 한 일을 반성한 후 책임지고 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돌려보낸 거죠. (99쪽)


생활재활교사로 일하다가 2008년 말쯤 회계 업무를 하면서 법인의 비리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어요. 원장이 모든 장애인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있더라고요. (108쪽)


좋은 시설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장애인의 삶을 가로막는 말이 될 수 있다. (177쪽)


자립한 후에 절대 안 먹는 반찬이 몇 개 있어요. 마늘종무침, 깻잎지, 단무지, 짠지는 안 먹어요. (245쪽)


시설은 창살 없는 감옥이거든요. 시설에서의 하루는 먹고, 목욕하고, 싸고 끝이에요. 하루 종일 누워서 천장 보고 벽 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248쪽)


+


《집으로 가는 길》(홍은전 외, 오월의봄, 2022)



절대악을 내쳤으면 됐지, 어차피 그 집안의 사업이고

→ 몹쓸놈을 내쳤으면 됐지, 뭐 그 집안 일감이고

→ 망나니를 내쳤으면 됐지, 뭐 그 집안 일이고

69쪽


후속 조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돌아가야 했어요

→ 저는 다음일 때문에라도 돌아가야 했어요

→ 저는 뒷일을 하려고 돌아가야 했어요

74쪽


처음에는 사생결단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 처음에는 악착같이 했어요

→ 처음에는 목숨걸고 했어요

→ 처음에는 젖먹던 힘으로 했어요

22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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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으로의 휴가 - F/25
김현경 지음, 노보듀스 그림 / 자화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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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15.

인문책시렁 376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

 김현경 글

 노보듀스 그림

 자화상

 2019.2.20.



  나라는 늘 미쳐돌아갑니다. 설마 이를 몰랐다면, 모르는 사람이 바보라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모든 ‘나라’는 하나도 안 아름다웠습니다. 나라를 세우려고 할 적에는 언제나 사람들을 짓밟고 주무르면서 싸울아비로 부려서 괴롭힙니다. 그래야 “나라가 서”거든요. 이른바 ‘나라지기’를 맡는 이는 ‘사랑’이 없이 ‘힘’으로 찍어서 누르고 죽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따릅니다. 오늘날은 ‘민주’라는 이름을 쓰지만, 민주를 내세우는 나라에서도 ‘나라지기’는 썩 다를 바 없습니다. 뒤에서 속이고 꿍꿍이를 일삼으면서 사람들이 눈멀고 귀멀어 고분고분 따르는 틀을 세웁니다. 그래서 공문서나 법이 어려운 말로 가득하고, 학교는 계급장 노릇을 하고, 돈으로 옭아매다가, 군대로 서슬퍼렇게 휘감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왼오른으로 갈려서 다투도록 부추겨서, 막상 “나라 민낯을 못 보도록 길들”이게 마련입니다.


  말끝 하나가 다를 뿐인데, 우리는 ‘나라’ 아닌 ‘나’를 보아야 합니다. 한자말로 치지만 ‘국가(國家)’가 아닌 ‘집(家·가)’를 보아야 하지요. 저마다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찾고 생각할 적에 눈을 뜨고 마음을 틔워서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저마다 스스로 보금자리(집)를 가꾸고 돌보면서 하루를 지을 적에 “나랑 네가 어울려서 우리가 집을 짓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나랑 너’는 두 어버이를 이루는 어른 두 사람(엄마·아빠)이기도 하고, 아이어른이기도 합니다. 나랑 너를 사랑으로 아우를 적에 하늘빛으로 하나로 모이는 ‘우리’를 함께 이룹니다. 그래서 ‘나·너’라는 말이 얽히고, ‘하나’라는 낱말에 ‘나’와 ‘하늘’이라는 밑뜻이 깃들고, ‘나 + 너 = 우리 = 하늘’인 수수께끼를 들여다볼 만합니다.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를 읽었습니다. 돌봄담(폐쇄병동)에 갇힌 나날을 그렸나 하고 읽어 보는데, 갇혔다기보다 ‘열흘쯤 쉬려’고 들어가서 보낸 줄거리를 엮었습니다. ‘열흘쯤 바깥을 닫아걸고서 쉬려고 들어가는 정신병원’이 나쁠 일이란 없어요. 워낙 이 나라는 미쳐돌아가니까, 열흘뿐 아니라 보름이나 달포를 틈틈이 쉬지 않고서는 ‘나라’뿐 아니라 ‘나’까지 미쳐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서울(도시)에 머물 적에는 자꾸 나라꼴을 쳐다볼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열흘을 쉬려고 돌봄담에 들어가서 목돈을 쓰기보다는, 아예 서울을 떠나서 시골이며 들숲바다에 깃을 들이는 길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시골에 작은집을 마련해서 다달이 이레쯤 푹 쉬면서 손전화도 끄고 셈틀도 안 켜면서 숲과 들과 바다를 품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헤아리고, 풀벌레와 새와 바람과 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면, 아무리 미쳐돌아가는 나라꼴이 춤추더라도, 누구나 아늑하면서 고요하고 즐겁게 마음을 다독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이라는 담벼락에 갇히기 때문에 미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에서 돈벌이를 찾으려고 하니까 늘 미칠 수밖에 없어요. 돈이 아닌 살림을 가꾸는 시골집을 헤아리는 길로 마음을 살며시 틔워 본다면, 어떠한 병원도 학교도 정부도 없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이웃하고 도란도란 하루를 노래하겠지요. 병원에 가지 말고, 시골로 갑시다.


ㅅㄴㄹ


술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죽거나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물건도 금지되어 수건마저도 반으로 잘라 씁니다. (12쪽)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 전화를 했는데, “8월 말에 예약을 잡아 드릴까요?” 하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38쪽)


이제는 잘 모르겠다.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46쪽)


실은 엄마 탓은 없다. (71쪽)


요 얼마간 술값만 몇백만 원을 썼는데 그 누구라도 대충 아무거나라도 사다 주지 않았다. 나는 통장 잔액이 있어도 매일 5000원만 쓸 수 있는데! (183쪽)


+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김현경, 자화상, 2019)


지금의 저도 조증 상태로 이렇게

→ 오늘 저도 들뜬 채 이렇게

11쪽


나보다 어린 누군가가

→ 나보다 어린 누가

21쪽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도와주라고 말해야겠다

→ 돕길 바란다고 해야겠다

46쪽


서울에 다시 올라왔다

→ 서울에 다시 왔다

50쪽


곧바로 들어가는 게 제일 빠르고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 곧바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고 마음에도 나을 듯하다

→ 곧바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고 낫다

60쪽


실은 엄마 탓은 없다

→ 막상 엄마 탓은 없다

→ 정작 엄마 탓은 없다

→ 근데 엄마 탓은 없다

71쪽


혼자 자꾸 자격지심이 든다

→ 혼자 자꾸 부끄럽다

→ 혼자 자꾸 서럽다

→ 혼자 자꾸 슬프다

84쪽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때

→ 동무하고 낮밥을 먹을 때

→ 동무하고 곁밥을 먹을 때

→ 동무랑 덧밥을 먹을 때

103쪽


대변부터 잠을 개운하게 잤는지까지 확인하고 나도 생각하게 된다

→ 똥부터 잠을 개운하게 잤는지까지 살피고 나도 생각한다

113쪽


가운이 아니라서

→ 흰옷이 아니라서

→ 일옷이 아니라서

241쪽


제가 폐쇄병동에 가게 된 이유는

→ 제가 돌봄울에 간 까닭은

→ 저는 돌봄담에 갔는데

2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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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 1956-1961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
윤이상 (Isang Yun) 지음 / 남해의봄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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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5.

인문책시렁 375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11.5.



  소리로 주고받는 말은 서로 마음에 남습니다. 종이에 적어서 주고받는 말은 서로 두고두고 남습니다. 입으로 내는 소리도 곰곰이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한 다음에 흐르고, 종이에 담는 글도 찬찬히 마음을 쓰고 헤아린 다음에 흐릅니다.


  소리로 주고받는 말은 둘한테만 남는 이야기입니다. 종이로 주고받는 말은 둘을 넘어서 이웃이며 둘레에도 남길 수 있습니다.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은 윤이상 님이 이녁 곁님한테 띄운 글월을 꾸립니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 자취를 이 글월꾸러미로 읽고, 사랑으로 만나서 마음으로 주고받아야 하던 나날을 읽으며, 무엇보다도 떠난 분이 남긴 글월을 돌아봅니다.


  함께 낳아서 함께 돌보는 아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함께 아름다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대학교 졸업장’을 얻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의사’를 비롯한 돈을 잘 벌거나 이름을 날리는 일거리를 맡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온나라에 ‘필수의료’를 맡을 돌봄이가 한참 모자라다고 하지만, 돌봄이가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숱한 돌봄이는 돈을 벌려고 할 뿐입니다. 앞으로 의과대학을 늘리더라도 ‘필수의료’는 늘릴 수 없어요. 다들 돈 때문에 돌봄이라고 하는 종잇조각(자격증)을 얻으려고 할 뿐이거든요.


  이 나라 앞날을 헤아리는 어른이라면 ‘의대정원 늘리기’가 아니라 ‘시골 흙일꾼 늘리기’부터 해야 합니다. 어느새 이 나라 시골 논밭일을 ‘이 나라 젊은이’가 아닌 ‘이웃나라 젊은이’가 도맡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돌봄터(병원)를 아예 안 갈 수 있으나, 우리는 날마다 밥을 먹어요. 우리는 어쩌다 돌봄터에 갈 수 있지만, 날마다 먹는 밥을 스스로 짓지 않으면 다 굶습니다. 정작 걱정해야 할 곳은 시골이요 논밭입니다. 몇몇 땅임자한테 뒷돈을 챙겨 주는 뒤틀린 길을 걷어치우고서, 논밭일꾼으로 지내고 싶은 누구나 ‘손수 가꿀 땅’을 장만해서 시골에 뿌리내리도록 이바지하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윤이상 님이 곁님한테 띄운 글월을 묶은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을 펴면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도 명예욕도 다 버리고 우리의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도리만 장만합시다(39쪽)” 같은 이야기가 꾸준히 흐릅니다. 모든 벼슬아치(공무원)는 밑일삯(최저임금)에서 열 곱이 넘는 일삯은 받지 못 하도록 틀을 잡아야 할 테고, 조금이라도 뒷돈을 챙겼다면, 그들이 챙긴 뒷돈에 열 곱을 더한 값을 뱉어내는 틀을 단단히 세울 노릇입니다. 굳이 그들 잘못을 따져야(재판해야) 하지 않아요.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따라 “열 곱 물어주기”만 시키면 되고, 열 곱을 다 뱉어낼 때까지 사슬살이(감옥살이)를 시키면 됩니다.


  그나저나 윤이상 님은 “답장이 늦다”면서 자꾸 골을 냅니다. 글월이 늦는 곁님한테 투덜대는 모습은 여러모로 사랑스럽습니다. 이 작은 골부림과 서로 아이를 바라보는 손길이 더했기에, 둘은 다르면서 하나인 살림길을 지으려고 뚜벅뚜벅 걸어갈 만했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훌륭한 문장은 절대로 과장하는 데 있지 않소. 마음의 알맹이를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남의 가슴을 찌른다오. 추상적인 문구의 되풀이는 오히려 흥미를 깨뜨리는 법이니까. 여보, 당신과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나의 향수가 사실인즉 나의 피요, 나의 정신을 길러주는 원천이오. (30쪽)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도 명예욕도 다 버리고 우리의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도리만 장만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나머지 여생을 신선처럼 지내요. 아, 얼마나 아름다우냐. (39쪽)


파리에서 일본 정부의 선전은 대단하오. 대부분의 프랑스사람, 또 여기 오는 외국 사람들은 일본에 한번 가고 싶어 하오. (61쪽)


여보, 당신이 편지를 늦게 내는 바람에 내가 화가 났소. 그래서 당신이 밉소. (90쪽)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매일을 보내오. (109쪽)


여보,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의 깊은 애정을 다하오? 절대로 나무라지 마오. 곱게 타이르고 타일러도 안 될 때는 그만 두오. 그것을 고치려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요. 어른들의 욕심은 어른들의 주관인데 아이들은 어른과 같은 주관을 갖지 못했으니까 강요하는 것은 무리요. (138쪽)


당신의 편지는 언제든지 늦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때는 화가 많이 나서 감당할 수가 없소. 그리고 우리 정아 쓰던 피아노는 절대로 팔지 말고 정아가 사용할 수 있도록 두고 와야 하오. 그럼, 당신에게 뜨거운 뽀뽀를 낭군이. (293쪽)


+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


수림에 싸인 호수 안에는 밤인데도 보트를 타는 선남선녀들이 빨간 초롱을 달고

→ 숲에 싸인 못에는 밤인데도 배를 타는 사람들이 빨간 촛집을 달고

→ 너른숲에 싸인 못에는 밤에도 배를 타는 곰네가 빨간 촛불집을 달고

15


행복이란 것, 안식이란 것, 아무 걱정 없는 인생, 생활의 무풍지대를 말하는 거야

→ 기쁨이란, 아늑이란, 아무 걱정 없는 삶, 고요한 삶이야

→ 즐겁고 포근한 삶이란, 아무 걱정 없고 고요한 길이야

20


강태공의 생활도 당신과 같이 할 수 있다면

→ 낚시꾼 삶도 그대와 같이 할 수 있다면

30


달을 쳐다보니 만월이 아니겠소

→ 달을 쳐다보니 둥글지 않겠소

→ 하늘을 보니 보름달 아니겠소

34


한번 야심작으로 나의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고

→ 당차게 내 힘을 뽐내 보고 싶고

→ 배짱으로 나를 드러내 보고 싶고

→ 나를 힘차게 펼쳐 보고 싶고

43


그의 강의는 대단히 밀도가 있고 철저해요

→ 그는 대단히 꼼꼼하게 빈틈없이 가르치오

44


순회공연은 약 10개국의 35명이 참가하는데 내가 정식으로 그 단장을 위촉받았으니

→ 바람마당은 열 나라 서른다섯 분이 함께하는데 내가 길잡이를 맡았으니

→ 맴돌꽃은 열 나라 서른다섯 사람이 같이하는데 내가 길꽃을 맡았으니

19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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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 미래 세대를 위한 인문 교양 3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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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9.29.

인문책시렁 373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

 정주진

 철수와영희

 2024.8.30.



  일본스런 한자말 ‘평화통일’은 ‘평화 + 통일’입니다. 곰곰이 보면, 조선도 고려도 신라도 백제도 고구려도 으레 싸움질로 ‘하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우두머리는 늘 싸울아비를 앞세우면서 조무래기(졸병·병사)를 거느렸고, 여느때에는 시골에서 아이를 돌보며 흙살림을 짓던 사람들이 얼결에 붙잡히거나 끌려가서 ‘목숨을 빼앗길 때’까지 낯도 이름도 모를 이웃사람을 죽이는 짓에 수렁처럼 갇혀야 했습니다.


  오늘날 배움책(교과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가 서로 어떻게 윽박지르면서 땅뙈기를 넓히거나 잃었는지 짚을 뿐입니다. 고구려 흙사람이나 백제 어린이나 신라 아가씨나 가야 할머니나 부여 할아버지가 하루하루 어떤 삶을 짓거나 가꾸었는지는 한 마디조차 안 다루거나 못 짚습니다. 우두머리 이름을 외우는 짓이 ‘역사 공부’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발걸음으로 살림을 지었는지 돌아보는 일이 ‘발걸음 배우기(역사 공부)’입니다.


  이를테면,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싸움박질을 안 하면서 도란도란 어울렸다면, 저마다 다르면서 눈부시게 피어나는 살림길을 이루었을 테지요. 오늘날 ‘두나라 한겨레’인 남녘·북녘도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는 어마어마하다 싶은 목돈을 쏟아부어서 싸움연모를 마구마구 때려짓고 늘리고 거느립니다.


  요새는 그나마 ‘여느 조무래기(일반 사병)’가 목숨삯(군인수당)을 어느 만큼 받습니다만, 고작 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조무래기’는 그저 ‘총알받이’였고, 스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조무래기’는 막말과 주먹질과 발길질로 시달리다가 얼결에 스무 살에 앳된 목숨을 빼앗겨야 했어요. ‘군의문사’라는 이름인 슬픈 굴레입니다.


  더럼짓 가운데 하나인 ‘군대비리’로 쇠고랑을 찬 이를 보기 어렵습니다만, 이 나라 싸움터(군대)에는 갖은 군대비리가 춤춥니다. 북녘도 매한가지예요. 그렇지만 ‘두나라 한겨레’에 어떤 군대비리가 있는지 차근차근 짚거나 따지는 글바치를 볼 수 없습니다. 글바치 가운데 싸움터(군대)에서 죽음수렁을 맛본 사람이 없거나 드문 탓일까요? 스스로 죽음수렁을 맛보지 않았어도 눈여겨보지 않는 탓일까요?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모로 뜻있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평화·통일·군대’를 말하기 앞서 군대비리부터 따져야 합니다. 어떤 군대비리가 언제부터 얼마나 또아리를 틀었는지 캐내야 합니다. 이 군대비리를 캐내다 보면, 왜 남녘도 북녘도 ‘평화통일’에 아무 마음이 없는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해마다 돈을 얼마나 쓰는지 짚어야 하고, ‘무기 개발과 연구’에 돈을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낱낱이 따져야 합니다.


  북녘에서 핵무기를 만들려고 돈을 얼마나 써댔을까요? ‘국방과학’이라는 허울로 쓰는 돈은 참말로 ‘무기개발’에 오롯이 썼을까요? 아니면 우두머리와 벼슬아치와 돈바치(재벌기업)가 슬금슬금 뒷돈을 빼돌릴까요?


  이제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이름보다는 ‘어깨동무’하고 ‘이웃사랑’을 참답게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어깨를 겯는 동무로 지내려면, 너도 나도 손에 총칼을 못 쥡니다. 다 내려놓아야지요. 이웃사랑을 하는 사이일 적에도, 뒤에 총칼을 못 숨깁니다.


  허울로는 좋아 보이는 ‘평화통일’이라는 이름만 높일 적에는 오히려 남녘과 북녘이 숱한 군대비리를 감추면서 무기경쟁을 끝없이 해대면서 눈가림과 눈속임으로 ‘정권유지’를 하겠지요. 지난날 고구려·백제·신라가 이렇게 했거든요. ‘군수산업’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이 막상 ‘군대비리’투성이인 ‘군산복합체’인 민낯을 파헤치지 않는다면, 두나라 한겨레가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이야기할 적에도 뭔가 알맹이가 크게 빠진 줄거리에서 그칠 수 있습니다.


ㅅㄴㄹ


“북한은 잘못된 점이 많아도 우리의 통일 상대인데 ‘그런 말(비정상국가)’로 비하하는 건 현명하지 않습니다(84쪽).”


“인도주의 지원 물품이 지배층에게 간다는 생각 또한 오해입니다(87쪽).”


사실 남한과 북한은 통일의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에 대해 한 번도 깊게 논의해 본 적이 없습니다. (20쪽)


남한과 북한은 적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력 대결과 경쟁을 해 오고 있습니다. 통일에는 매우 좋지 않은 조건입니다. 더 안 좋은 건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합의가 없고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고집하면서 대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51쪽)


같은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접촉과 교류를 통해 공동의 경험과 역사를 만들어 나갈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65쪽)


정부의 대북 정책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국민은 되도록 남북 관계가 좋게, 최소한 싸우지 않고 원만하게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120쪽)


북한도 성실하게 핵무기 포기 과정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127쪽)


핵 실험으로 마셜제도와 폴리네시아 주민 대부분이 피폭을 당했고 많은 암 환자가 생겼습니다.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됐고 지금까지도 방사성 물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핵 실험 피해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핵 실험은 사람과 자연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141쪽)


+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24)


평화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고민해 봐야 합니다

→ 함께살기와 얽혀 여러 가지를 헤아리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 너나우리를 놓고 여러모로 살피고 곱씹어 봐야 합니다

→ 담을 허물려면 이모저모 돌아보고 짚어 봐야 합니다

6


다른 주장도 만들어 보길 바랍니다

→ 다른 소리도 내어 보길 바랍니다

→ 다른 길도 열어 보길 바랍니다

7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또는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겁니다

→ 꼭 한나라여야 한다고 여기거나, 이와 달리 아니라고 여깁니다

→ 마땅히 하나여야 한다고 보거나, 하나가 아니어도 된다고 봅니다

29


두 체제의 평화적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 두 얼개가 사이좋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 두 나라가 손잡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47


이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 이 글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 이 글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81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타당해 보입니다

→ 여러모로 헤아리면 옳아 보입니다

→ 여러 가지를 보면 맞아 보입니다

1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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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
표재명 지음, 박정원 엮음 / 드림디자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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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9.5.

인문책시렁 369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

 표재명 글

 박정원 엮음

 드림디자인

 2021.11.17.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는 덴마크에서 배움길을 닦으면서 ‘키에르케고어’를 따라서 걸어가려고 했던 발자취를 들려줍니다. 글님은 이 땅을 떠나고 없지만, 글님이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띄운 잎글(엽서)은 고스란하다지요. 덴마크 옛사람을 헤아리면서 쓴 글도 그대로이고요.


  우리는 가까운 이웃나라로도 먼 이웃나라로도 배움마실을 떠납니다. 이웃나라 옛사람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우리말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거꾸로 생각해 봅니다. 이웃나라에서도 우리나라로 배움마실을 올까요? 이웃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옛사람을 돌아보면서 배움빛을 밝힐 만할까요?


  요즈막에 일렁이는 한바람(한류)은 거의 허울스럽다고 느낍니다. 슥 흘러가는 노래나 보임꽃(영화·연속극)은 나쁠 일이 없습니다만, 여러 노래나 보임꽃으로는 우리 살림살이나 삶이나 삶터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아니, 우리 삶빛이나 살림꽃을 엿볼 수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돈을 더 버는 길에 이바지하는 한바람이라면 덧없어요. 덴마크 옛사람은 덴마크라는 나라가 어떻게 거듭나기를 바랐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이 땅에서 땀흘리다가 스러진 숱한 옛사람 자취를 비롯해서, 오늘 새롭게 땀흘리면서 아이들 곁에서 살림을 짓는 숱한 살림지기 손길을 차곡차곡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마실로도 배우겠지만, 누구나 이녁 집에서 하루를 짓는 손길과 발걸음으로도 넉넉히 배웁니다. 바깥일로도 돈을 벌 테지만, 누구나 이녁 집에서 살림을 돌보고 집일을 하는 동안 스스로 깨어납니다.


ㅅㄴㄹ


악아, 그림(복사한)으로만 보아왔던 것을 직접 현물로 본다는 것은 예사로운 기분이 아니다. (91쪽)


이번에 스칸디나비아 4국을 돌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특히 이모저모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 땅이 그동안 무심한 손에 의해 얼마나 상처입고 헐벗어 왔는가를, 그 가운데 인심이 얼마나 메마르고 각박해져 왔는가를 생각했다. 우리 집에도 꽃, 나무를 심을 수 있음녀 좋겠다. (120쪽)


가끔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그 책을 썼을 때의 나이와 내 나이를 헤아려 보고는 심한 자책과 분발을 다짐하기도 하지만, 온몸에 피곤이 일시에 몰려오고 의욕을 잃기도 한다. (165쪽)


이제 국민들은 부자나 지식인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강압 받는 무지한 농민에서 그들 자신의 의견을 가지며 그 의견이 존중되기를 원할 만큼 정신 차린 국민으로 변해가고 있다. (231쪽)


+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 드림디자인, 2021)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기타를 튕기며

→ 한 무리 젊은이가 여섯줄고를 튕기며

→ 젊은이 한 무리가 엿줄고를 튕기며

17쪽


또 다른 보행자 도로인

→ 또 다른 거님길인

→ 또 다른 걷는길인

24쪽


확장 때 만들어진 것으로

→ 넓히며 세웠고

→ 늘릴 적에 마련했고

31쪽


덴마크 문화의 황금시대라고 하는데

→ 덴마크 살림빛에 꽃날이라고 하는데

→ 덴마크 삶꽃에 무지개길이라 하는데

35쪽


키에르케고어의 죽음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 키에르케고어가 죽자 너울이 일었습니다

→ 키에르케고어가 죽으며 크게 물결쳤습니다

54쪽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을 하느님의 진노하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하느님이 발칵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 젊은 나이에 갔으니 하느님이 버럭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54쪽


어느 알피니스트의 말을 따라

→ 어느 멧사람 말을 따라

155쪽


이렇듯 이론과 애국적인 행동이 실은 심리적 결함의 표현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생각할 때

→ 이렇듯 말잔치와 나라바라기는 정작 다친 마음을 적잖이 드러낼 뿐이니

→ 이렇듯 목소리와 나라사랑은 막상 흉진 속내를 적잖이 보여줄 뿐이니

174쪽


그것은 자연법칙을 알아내고 그 법칙을 이용해서 자연으로 하여금 그렇게 기능하게 할 수 있을 뿐이지

→ 이는 숲길을 알아내고 살려서 숲흐름을 북돋울 뿐이지

→ 이는 해바람비를 알아내고 살려서 숲을 북돋울 뿐이지

194쪽


물질적인 삶의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능화되고 공동空洞화된, 다른 사람과의 연대 관계를 그 내면에 있어서 회복하고자 한다

→ 돈으로 넉넉하고 아늑한 삶을 좇다가, 쓰임새만 남고 텅빈, 이웃과 어깨동무하던 길을 마음부터 되찾고자 한다

→ 배부르고 느긋한 삶을 바라다가, 값만 남고 비어버린, 이웃과 손잡던 삶을 마음부터 되살리고자 한다

24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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