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은 없다 - 위대한 사랑이 있을 뿐
문숙 지음 / 샨티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5 : 학교를 하루쯤 빠져도 대수롭지 않아


《위대한 일은 없다》

 문숙

 샨티

 2019.10.18.



우리는 모두 뭔가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너무나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그 위대한 일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27∼28쪽)


“중학교 들어간 이후 결석한 날 하루도 없었지?” (딸) 조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네가 특별한 경험을 한번 해봤으면 해.” “무슨?” “학교 결석.” (43쪽)


로데오라는 생뚱맞은 이름의 거리가 도시의 중심에 떡하니 들어앉은 이유가 무엇인지 …… 그렇게 이름 지은 그 누군가에게도 묻고 싶다. “그 길이 진달래 길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08쪽)


우리는 빛 가운데서 아름답게 빛나는 또 하나의 빛이다. 빛을 받고 자란 것으로 먹을거리를 삼고, 바람을 맞으며 춤을 추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꿈을 키운다. (156쪽)


내가 할 일은 사랑이 아닌 어떤 것도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무조건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191쪽)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는 김에 빨래를 하곤 합니다. 거꾸로 빨래를 하는 김에 머리를 감거나 씻기도 합니다. 물을 쓸 적에 두 가지를 나란히 하는 셈입니다. 요새는 빨래틀을 곧잘 쓰지만, 씻는그릇에 빨래감을 담가 놓고서 조물조물하기를 즐깁니다. 이렇게 손으로 주무르면 옷가지를 누린 아이들이나 곁님 숨결을 느끼기도 하고, 이 옷을 말끔히 빨고 나서 기쁘게 입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컸기에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들 기저귀랑 저고리랑 바지랑 이불을 모두 손빨래로 하면서 보냈는데요, 요즈음 가끔 돌아보면 예전에 참 씩씩하게 잘 살았구나 싶더군요. 기저귀 빨래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기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느끼며 자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니 딱히 힘들거나 고되지 않았습니다.


  삶책 《위대한 일은 없다》(문숙, 샨티, 2019)를 읽고서 곰곰이 그려 보았어요. 대단하지 않은 일도, 대단한 일도 따로 없겠지요. 그렇다면 저한테 대단하지 않으면서 대단했던, 또는 대단했으나 대단하지 않은 일은 무엇이었나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우리 손길을 받아서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도 어버이 손길을 받으며 어른이 되었어요. 어버이가 들려준 말을 하나씩 받아들이면서 생각을 살찌웠고, 이 말은 다시 새로운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말이 되어요.


  날마다 뜨고 지는 해는 날마다 다른 볕이랑 빛이랑 살을 베풉니다. 이곳저곳 어디나 드리우는 해님이면서, 누구한테는 적게 가거나 많이 가지 않는 해님입니다. 그러니 해한테 님이란 이름을 붙일 테지요. 나무도 풀도 꽃도 그렇습니다. 누구한테 더 향긋하게 퍼지지 않고, 누구한테 그늘을 더 주지 않아요.


  대단한 나무도 별이 없겠지만, 모든 나무하고 별이 대단하지 싶습니다. 대단한 새나 풀벌레가 없을 테지만, 모든 새하고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가 대단하지 싶습니다. 《위대한 일은 없다》를 쓴 문숙 님은 이녁 아이가 학교를 빠지는, 이른바 하루이틀쯤 빼먹고 노닥거리는 재미난 일을 누려 보기를 바랍니다. 숙제가 많다고 징징거리던 아이는 막상 하루이틀쯤 학교를 빠지자고 하는 말에 선뜻 나서지 못하더라고, ‘남들 다 학교에 있을 한낮’에 멀쩡히 집에서 뒹굴다가 어머니하고 마실을 다니는 일이 너무 멋쩍다고 이야기했다지요.


  학교도 회사도 하루이틀쯤 빠질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몸이 아파서 빠질 수 있고, 그냥 느긋하게 오롯이 아침볕 낮볕 저녁볕을 누리려고 빠질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굳이 100점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98점도 88점도 68점도 48점도 28점도 좋습니다. 대단하지도 대수롭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새롭게 바라보는 때에 우리 눈길이 트이지 싶어요.


  쳇바퀴를 따라서 갈 까닭이 없는 하루인 줄, 늦게 가거나 일찍 가도 좋은 마실길인 줄, 하루에 책을 열 자락 읽어도 좋지만 달포 동안 책 한 자락 안 읽어도 좋은 줄 느낀다면 삶이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첫째로 갈 일도 막째로 갈 일도 없어요. 저마다 다른 우리는 저마다 다른 걸음으로 가면 됩니다. 이 저마다 다른 걸음이란 언제나 우리 몸이며 마음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사랑일 테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7 : 사람이 다 똑같다면 무시무시하겠지요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아비요

 2013.7.7.



내 친구는 개는 물론 나무와도 대화한다. 산골 길고 긴 하루 내내 말 거는 사람은 없지만 내 친구가 말 걸 친구는 무진장 많다. 언젠가 아궁이 옆에 있는 개복숭아나무에 칡넝쿨이 감겨 올라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칡넝쿨에게 말했단다. “너네 날 자리가 아닌데 저렇게 개복숭아가 숨도 못 쉬고 꽃도 못 피고 하니 할 수 없이 너네를 쳐내야겠다. 미안하다.” (61쪽)


산에 올라가다 아이들이 내 IQ를 물었다 … 그 아이가 초콜릿 하나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쌤, IQ 나빠도 괜찮아요. 마음씨만 좋으면 되죠 뭐.” 웃음을 참다 그 아이를 꼭 껴안고 말았다. (65쪽)


도토리 한 알에는 미래의 떡갈나무가 이미 다 들어 있다. 그 작은 한 알에 들어 있는 미래의 나무가 그를 올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도토리에 뿌리가 뻗고 줄기가 솟고 잎이 생겨 피어난다. (165쪽)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먹이고 재워 주기만 했다. 소처럼 방목했다고나 할까. 산과 들, 논과 밭, 풀과 나무, 돼지와 소 닭 등 열거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무변광대한 동물과 식물과 흙과 돌과 바람이 우리를 키웠다. (290쪽)


아침이 밝으면 늘 새로운 날이듯 정신은 늘 초짜여야 한다. (328쪽)



  이제는 어떠할까 모르겠습니다만, 나무나 풀하고 말을 섞는 사람을 돌았다고 여기는 눈은 좀 수그러들었지 싶습니다. 돌이나 집하고 말을 주고받는다든지, 새나 벌레하고 말을 나누는 사람을 미쳤다고 여기는 눈도 좀 잦아들었지 싶어요. 그러나 아직 사람 아닌 숨결하고 말을 하는 사람을 얄궂게 바라보는 눈길은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무랑 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고작 백 해가 안 된 일일는지 모릅니다. 신문도 책도 없던, 아니 흙을 만지며 씨앗을 심어 가꾸는 사람이 가득하던 무렵에는, 으레 누구나 흙이랑 말을 하고 풀잎이며 바람하고도 얘기를 했지 싶어요. 고작 백 해 앞서까지만 해도, 그때에는 벼슬아치나 나리가 아니라면 마땅히 나무랑 말할 줄 알던 삶이었다고 느껴요.


  시인 아주머니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김해자, 아비요, 2013)를 펴면 재미난 사람들 모습이 잇달아 흐릅니다. 나무하고 이야기하는 벗님, 시인 아주머니가 아이큐 낮다는 말을 듣고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달래는 어린이, 그리고 시인 아주머니 스스로 떠올리는 숱한 이웃이 새삼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시인 아주머니부터 ‘아리송한’ 사람일 수 있어요. 시인 아주머니가 만나는 사람이 하나같이 아리송하다기보다 아리송한 사람이 아리송한 사람을 만난달까요. 그리고 아리송한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아름답다지요. 알 수 없는 깊이하고 너비로 사랑을 나누는 그들 숨결은 더없이 알차면서 알뜰하다지요.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다 똑같아 보이는 곳은 재미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림새에, 키에, 몸매에, 얼굴에, 목소리에, 생김새에, 몸짓에, 또 똑같은 자가용을 몰고 똑같은 아파트에 살며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집안 모습이라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숨결인 만큼, 언제나 다 다른 빛으로 자라서 다 다른 어른으로 설 적에 아름답지 싶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요. 참으로 아리송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아리송한 맛으로 아름다운 길을 걷고, 그 아름다운 길에서 알뜰살뜰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운 하루가 될 만하지 싶습니다.


  새해에 올려다보는 별빛은 지난해와 다르게 눈부십니다. 아하, 그렇지요. 밤하늘에 바라보는 별 가운데 똑같은 별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아리송한 노릇이지만, 이렇게 다 다른 별빛이 새삼스레 어우러져 빛나니, 밤도 낮도 언제나 아름답겠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농의 공부 - 소설가 농부가 텃밭에서 배운 작고 서툰 손의 힘
조두진 지음 / 유유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11 : 도시야말로 텃밭이 꼭 있어야


《소농의 공부》

 조두진

 유유

 2017.10.14.



내 아들은 나보다 100배 이상 돼지고기를 먹었지만, 나만큼 돼지고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기회는 없었다. (18쪽)


사람은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지 않아도 탈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겨울에도 여름철 과일을 먹기 위해 수많은 오염원을 가동하고, 이를 비용으로 지불한다. (37쪽)


사과 재배 농가에서는 추석 대목시장을 겨냥해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살포한다. (55쪽)


농산물 유통 담당 공무원과 술자리에 마주앉아 어지간히 취한 뒤에 물었다. “진짜 전수 조사합니까?” “잔류농약 검사비용이 얼만데 전수 조사합니까? 하나하나 다 조사하면 친환경 농산물 값이 지금보다 훨씬 비싸져야 합니다.” (110쪽)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과 친숙해지고, 계절을 잘 느끼고,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이 확실히 발달한다. (206쪽)



  서울에서 사는 아이라면 서울에 있는 살림을 늘 바라보고 느끼면서 잘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숲을 품고서 사는 아이라면 숲을 둘러싼 살림을 언제나 마주보고 받아들이면서 잘 알아차리기 마련이에요. 어느 아이는 날씨를 알리는 방송을 들어야 날씨를 압니다. 어느 아이는 바람을 맛보거나 읽으면서 날씨를 알아요. 어느 아이는 씽 달리는 자동차가 어느 이름인지 알고, 어느 아이는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말거나 안 쳐다봅니다.


  슥 스치고 지나가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는 아이가 있다면, 살짝 나무를 스치고 지나갔는지 아닌지 못 느끼는 아이가 있어요. 꽃내음을 물씬 느끼며 알아보는 아이가 있고, 꽃내음이 나는지 안 나는지 안 쳐다보는 아이가 있어요.


  조그마한 책 《소농의 공부》(조두진, 유유, 2017)는 도시란 터전에서 살아가면서도 텃밭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들려줍니다. 도시이기에 더더욱 텃밭이 대수롭다는 뜻을 밝히고, 도시라면 더더구나 스스로 앞장서서 곳곳에 텃밭을 돌보면서 숨통이 트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텃밭은 어떤 곳일까요? 집 곁에 있는 땅뙈기입니다. 푸성귀를 심어서 거두기도 하는 땅이자, 온갖 풀을 만나는 땅이에요. 푸성귀 아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땅이면서, 맨손이며 맨발로 흙을 만질 만한 땅입니다.


  서울에 공원만 있다면 심심하겠지요. 보기좋게 가꾸는 나무하고 거님길만 있는 공원에서라면 스스로 살아서 숨쉬는 노래가 흐르기 어렵겠지요. 철마다 다른 빛을 느끼고, 살림마다 새로운 풀빛을 먹는 곳이 텃밭이지 싶습니다.


  작은 책 《소농의 공부》는 도시에서 텃밭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글쓴님 스스로 살펴서 알아낸 이야기를 찬찬히 보탭니다. 어떤 과일에 어떤 성장촉진제가 얼마나 쓰였는가를 알려줍니다. 밥상머리 살림을 지킬 공무원이 막상 ‘잔류농약 검사’를 허술하게 한다는 대목도 슬며시 곁들입니다.


  굳이 너른 땅을 누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푸성귀를 거두는 밭 한 자락을, 아이들이 흙놀이를 할 풀밭 한 자락을, 나무그늘을 누리며 나무열매도 맛볼 한 자락을, 이웃하고 어우러져서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우려고 걸상을 놓을 한 자락을 다같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5 : 하루를, 마음을, 사랑을 쓰기에 일기


《밥보다 일기》

 서민

 책밥상

 2018.10.29.



글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써야 늡니다. (29쪽)


자, 그렇다면 일기를 매일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38쪽)


이참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날 일기를 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73쪽)


이 말을 한 이유는 남이 보기에 사소한 일들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5쪽)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루에 얼마나 오래 생각하십니까? (247쪽)



  열두 살 큰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늘 글살림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스스로 한글을 일찍 깨쳤고, 뭔가 끄적이기를 무척 즐겼습니다. 큰아이가 터뜨리는 놀라운 말을 아버지가 수첩에 꼬박꼬박 옮기기를 열 해를 하다가, 이제는 큰아이 스스로 ‘제(큰아이) 말’을 제 손으로 제 공책에 적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는 “하루를 남겨요”입니다. ‘일기’라는 말을 굳이 안 씁니다. 굳이 안 쓸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린이가 처음 맞닥뜨리기에는 매우 힘겨운 낱말 가운데 하나가 ‘일기’입니다. 한자말이라서 아이한테 높은 울타리가 되는 말은 아니라고 여겨요. ‘일기’라고 툭 내뱉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하나도 알기 어려울 뿐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하루를 남겨요”란 말을 쓰는 까닭은 수수해요. 말 그대로이거든요. “자, 오늘 하루를 남겨 볼까?” 하고 말합니다.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어느 때이든 좋습니다. 마음에 남고 몸에 새긴 이야기를 스스로 공책에 옮깁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밥보다 일기》(서민, 책밥상, 2018)는 무엇보다 “일기를 쓰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은 하나를 통틀어 오롯이 ‘일기를 이렇게 쓸까요?’ 하고 묻습니다. 다만 이 책은 어린이나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지 않습니다. 적어도 서른 살 즈음 눈높이에 걸맞다고 느낍니다. 또는 마흔 살 언저리에 읽을 만하구나 싶어요.


  학교에서는 ‘일기’라 하고, 군대나 회사나 기관에서는 ‘일지’라 합니다. 말 그대로 “그날그날 있던 일을 적는 글”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본다면 “하루 쓰기”이기도 하면서 “그날 쓰기”라고도 할 만해요. 살을 붙인다면, 오늘 하루를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요, 그날그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삶을 쓰기라 할 테지요.


  글쓴님이 《밥보다 일기》에서 살짝 짚기도 합니다만, 꾸며야 하는 글이 아닙니다. 예뻐 보이거나 멋져 보여야 할 글이 아닙니다. 남한테 자랑하거나 드러내려고 쓸 글이 아닙니다. 누리집 같은 곳에 올리는 글이라 하더라도 ‘남한테 보이려는 뜻’에 앞서 ‘내가 언제라도 다시 읽고서 삶을 스스로 되새기려고 쓸 글’입니다.


  우리 삶을 담는 글이니, 우리가 누리집에 올린 글에 누가 덧글을 남겨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기울여서 덧글을 쓰거나 그냥 지우거나 지나가면 되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오늘 하루를 꾸밈없이 쓴다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겪고 맞닥뜨리며 느낀 삶을 고스란히 옮긴다면, 아마 우리 삶터는 대단히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속마음을 감추기에 겉치레가 불거지거든요. 속내를 나누지 않기에 허울좋은 겉모습이 커지거든요. 하루를 쓰고, 마음을 쓰며, 사랑을 쓰는 글이 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 벼 쌀 - 겨레의 숨결 국토의 눈물
김현인 지음 / 전라도닷컴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10 : 다 같은 논이 아닌, 다 다른 논으로


《논 벼 쌀》

 김현인

 전라도닷컴

 2019.10.31.



논둑을 세우던 날, 하늘을 땅 위에 새기던 날이면 내 육신의 목숨줄도 이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니 천지간의 목숨이 복되고도 귀하구나, 굵은 땀에 흔들려 뼛골이 다 닳는들 하나하나 흙을 일으키고 돌을 옮기며 세세연년의 복전을 기약하노라. (47쪽)


벼의 반응은 직선적이다. 너희는 내가 필요한가. 그렇게 벼는 묻고 있는 듯했다. (67쪽)


1962년부터 각급학교에서 보리 혼식을 감시하는 도시락 검사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이는 향후, 어느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산골 누옥의 밥상머리까지 들여다보는 강력한 국민 통제수단으로 자리잡는다. (142쪽)


어찌 보면 여러분은 똑똑해질 것이 아니라 한없이 다양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217쪽)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될 즈음, 해마다 시골마을에서는 마을지기 알림말이 구석구석 퍼집니다. 어떤 알림말인가 하면, 새해에 논에 심을 볍씨를 두어 가지 가운데 골라서 마을지기한테 말해 달라는 알림말이에요. 요즈막은 웬만한 논마다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한 볍씨를 내다팔고, 시골 흙지기는 농협 볍씨를 사다가 심습니다.


  가을에 거둔 벼를 농협에 내다팔자면, 봄에 농협 볍씨, 그러니까 씨나락을 사야 하고, 농협에서 내다판 씨나락이어야 농협에 가을벼를 팔 수 있어요. 나라에서 사들이는 모든 벼는 나라에서 심으라고 콕 집어서 흙지기한테 파는 몇 가지 볍씨입니다.


  시골지기로서 흙을 만진 나날을 갈무리한 《논 벼 쌀》(김현인, 전라도닷컴, 2019)을 읽으며 논살림 얼거리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나라에서는 왜 똑같은 볍씨만 심도록 이끌까요? 지난날에는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또 집마다 다른 볍씨를 심었다는데, 왜 오늘날에는 모조리 같은 볍씨를 심어야 한다고 북돋울까요?


  마을 어르신 말씀을 들으면, 농협에서 파는 볍씨는 심어서 가을알을 거둔 다음에 이듬해에 심으면 그럭저럭 나지만, 이태 뒤부터는 거의 안 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라(농협)에서 흙지기한테 팔아서 온나라 논을 채우는 여느 볍씨는 ‘씨알을 거두어 심을 수 없는 씨앗’인 셈입니다. 여느 밥상에 오르는 쌀이란, 여느 밥집에서 다루는 쌀이란, 땅에서 새롭게 자랄 수 없는 알맹이랄까요.


  나라에서 볍씨를 다룬다면, 나라에서는 통계를 내거나 돈을 벌기 쉽겠지요. 그러나 다 다른 고장이며 고을이며 마을에서 다같은 볍씨를 심다가는 비바람이나 가뭄에 쉽게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고장마다 날씨가 다를 텐데 고장마다 엇비슷한 볍씨를 심도록 한다면, 또 한 고장이어도 고을이며 마을마다 날씨가 다르기 마련인데, 모조리 같은 볍씨로 맞추려 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요? 무엇보다도 ‘농협 볍씨를 손수 심고 거두어 새로운 씨나락으로 삼을 수 없도록 품종개량’을 했다면, 이러한 쌀이 우리 몸에 얼마나 이바지할까요?


  흙지기 김현인 님은 《논 벼 쌀》이라는 책을 쓰면서 이 대목을 아프게 밝힙니다. 이러면서 외치지요. “사람들이 똑똑해지기보다는 다 다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우리가 나아갈 길은 ‘쉬운 관리와 표준화’가 아닌, 고장맛 고을멋 마을살림을 다 다르게 가꾸면서 ‘서로 다르기에 아름답게 새로 어우러지는 사랑’이 될 노릇 아닌가 하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우리 삶터를 가꾸는 길이란, 우리 마음이며 몸을 살찌우는 길이란 무엇일는지 돌아봅니다. 밥 한 그릇에 담는 온누리를 흙지기뿐 아니라 나라일꾼도 어린이도 푸름이도 풀내음하고 바람결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빕니다. “보리 혼식”을 밀어붙이고 나중에는 ‘혼분식’이라 해서 하루 한끼는 반드시 밀가루를 먹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던 새마을운동이었는데, 논뿐 아니라 밥상까지 지켜보며 억누른 그 눈초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셈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 다만, 이 책은 글결이 너무 딱딱하고 덧없는 한자말을 잔뜩 써서 아쉽다. 흙지기님은 왜 이렇게 낡은 중국 말씨에 일본 한자말을 잔뜩 집어넣어서 글을 써야 했을까? 흙말을, 시골말을, 마을말을, 무엇보다도 나락말을 쓴다면 좋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