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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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40


《작가란 무엇인가 1》

 파리 리뷰 엮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다른

 2014.1.31.



하지만 독창적이지 않은 생각에서 소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생각을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37쪽/움베르트 에코)


일단 그의 의식이 속한 공동체의 의식과 달라지면 그는 국외자, 외로운 사람이 됩니다. 텍스트의 풍요로움은 국외자의 관음증적인 시선으로부터 옵니다. (90쪽/오르한 파묵)


잃어버리고 찾아다니고, 발견하기. 그러고 나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인 실망이 기다리고 있지요. (129쪽/무라카미 하루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로부터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해내면 낼수록, 점점 더 문학과 저널리즘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370쪽/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가란 무엇인가 1》(파리 리뷰 엮음/김진아·권승혁 옮김, 다른, 2014)를 읽는다. 글님이란 글을 쓰는 님이요, 삶을 글로 얹어서 나누는 님이고, 살아가는 길을 사랑스레 갈무리해서 글로 들려주는 님이고, 즐겁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지으면서 사랑스레 갈무리해서 누구나 누리도록 글로 들려주는 노래를 펴는 님이라고 본다. 글로 노래할 줄 아는 사람, 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글로 이야기를 씨앗처럼 심어서 푸른별을 새롭게 가꾸려는 꿈을 키우는 사람, 이이가 모두 글님이라고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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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 산지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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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48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산지니

 2018.6.20.



그 책들을 통해서 나는 삶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앞서는 생활의 중요함을 알았다. (10쪽)


출근이라는 전쟁을 겪고 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는 즉시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해 버리게 된다. (73쪽)


월급은 내 노동력을 회사에 제공하고 받는 정당한 대가이기보다는 한 달 동안 이어진 노예 생활을 참고 견딘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02쪽)


책으로 쌓은 100년 역사는 곧 그 나라 문화의 힘을 말한다. (213쪽)


진정한 자립이란 무얼까?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버텨낸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54쪽)



  몇 해 앞서 미국에서 ‘트럼프’란 사람이 꼭두자리에 설 무렵, 온나라 붓판에서는 ‘돈만 아는 저 사나운 놈팡이 때문에 이 푸른별은 싸움불구덩이가 된다’고 호들갑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꼭두자리에 선 동안 싸움불구덩이는 커녕 총칼이 춤추는 싸움을 일으킨 적이 없어요.


  2020년에 미국에서 꼭두자리를 새로 뽑는 일을 꾀하면서 여러모로 드러납니다만, 총칼질을 앞세운 쪽은 따로 있고, 총칼장사로 떼돈을 거두어들이던 쪽도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푸른별에서 트럼프 미국이 싸움판을 벌이지 않는 바람에(?) 떼돈을 벌던 길이 크게 막힙니다.


  이반 일리치 님은 ‘총칼질·싸움불구덩이’가 벼락꾼(억만장자)이 더 벼락꾼이 되도록 가는 길이라고 밝힌 적 있습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윤성근, 산지니, 2018)를 읽으며 그 대목이 떠오르고, 요즈막 미국에서 왜 ‘뒷짓(부정선거)’이 말썽이 되는가도 찬찬히 알아차릴 만하구나 싶어요.


  새는 틀림없이 두 날개로 납니다. 왼날개나 오른날개 하나만으로는 못 날아요. 게다가 한쪽 날개만으로는 걷기도 벅찹니다. 우리는 어느 한켠으로 기울 수 있지만, 어느 한켠으로 기울든 말든 대수롭지 않아요. 이웃이나 동무가 왼날개이건 오른날개이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이웃이나 동무가 ‘착하냐 참하냐’를 볼 노릇일 뿐이요, ‘슬기롭고 아름다운 길을 사랑이란 살림으로 다스리느냐’를 볼 뿐입니다.


  왼날개가 옳지도 오른날개가 틀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날개일 뿐입니다. 왼날개가 아니면 안 된다면서 사납게 구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만, 오늘날 숱한 왼날개를 보면 돈·이름·힘을 거머쥔 이들(기득권)이기 일쑤입니다.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면서 왼날개 자리를 자랑하는 이들이 대단히 많아요. 그런데 그들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수수하게 숲을 사랑하는 살림길인 왼날개는 얼마나 있는가요? 불나방처럼 서울이란 단물을 빨아들이려고 서울바라기로 흐르는 왼날개 글꾼 붓쟁이 몸짓이지 않을까요?


  서울 한켠에서 헌책집을 꾸리는 윤성근 님은 그 책집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으며 ‘달삯쟁이(회사원)를 그만둔 일’이 아름다운 길이었다고 되새깁니다. 달삯쟁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사람들을 달삯쟁이로만 내몰면서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꽁꽁 감추거나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달삯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며 노래하는 살림길을 못 볼 만큼 바빠맞도록 내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아닌 ‘그저 날개’를 달면서 날면 됩니다. 이쪽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쪽으로 가야 맞지 않습니다. 그저 ‘삶길·살림길·사랑길’을 봐야지요. 우리는 왼길이나 오른길로 가려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우리 길’을 가려고 태어났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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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 세 여자의 ‘코믹액숀’ 인도 방랑기
윤선영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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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3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윤선영

 북로그컴퍼니

 2017.12.20.



하지만 나는 아쉽지 않았다. 58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와 다른 문화권의 모든 것들에 폐쇄적이었던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으니까. (222쪽)


“어젠 미안했어. 나는 네가 네팔사람인 줄 알았어. 이제 내 옆에 앉아도 돼.” 세상에! 오, 마이, 갓이다. 네팔사람한테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건가? 나는 뭔가 톡 쏘는 한마디를 하려다 엄마를 봐서 꾹 참았다. (120쪽)


“그럼 모기에 안 물리나?” “글쎄. 인도사람들 몸에서 모기 물린 자국을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여기는 시골이가?” “여기 캘커타잖아. 인도의 5대 도시 중 하나라고.” “그럼 저 염소떼는 뭔데?” (63쪽)


“엄마, 타 보면 알아. 걱정 말고 타.” 베스트 드라이버라 자신하는 엄마와 이모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되겠는지 우물쭈물했다. “우리 나눠서 타고 가까? 셋 다 죽으면 시체는 누가 한국에 가져가노?” (49쪽)



  모든 어머니는 딸이요 아이였습니다. 모든 아버지는 아들이요 아이였어요. 아이로 태어나서 자라지 않은 어머니나 아버지는 없습니다.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아이도 없습니다. 넋은 하나이되 몸이 차츰 바뀌면서 새롭게 마음을 지피는 삶길이라 할 만합니다.


  어느새 어머니 자리에 선 아이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면서 이녁 아이한테 이모저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서 듣는 이야기에다가 스스로 새로 맞닥뜨리는 삶을 녹여내고, 어버이하고 다르지만 닮은 새길을 나아갑니다.


  이런 두 넋이 같이 나들이를 간다면 어떤 이야기가 피어날까요?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윤선영, 북로그컴퍼니, 2017)는 거꾸로 보자면 “어쩜, 아이랑 인도에 가다니!”라 할 만한 이야기가 될 만합니다. 어머니를 이끌고 인도 나들이를 다닌 분은 혼마실이 아닌 함마실을 하며 고단할 적도 있을 테지만, 그동안 혼마실에서는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한 대목을 바라보기도 할 테지요.


  오늘은 ‘어머니하고 나들이를 다닌다’는 길인데, 앞으로 ‘스스로 아이를 돌보는 길을 가면서 아이랑 나들이를 다닌다’고 할 적에는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하려나요. 뭐, 앞날은 앞날이고 오늘은 오늘이니, 오늘 다니는 길만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길을 걸으면서 앞으로 새로 걸을 길이 얼마나 재미나려나 하고 꿈꾸어 본다면, 새삼스레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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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과학수업 - 내 머릿속 발상DNA를 깨워줄 여덟 번의 수업, 일곱 개의 힌트
우에스기 모토나리 지음, 김문정 옮김 / 리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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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8


《교토대 과학수업》

 우에스기 모토나리

 김문정 옮김

 리오북스

 2016.1.5.



이처럼 ‘싫어하는 것’, 그 속에는 분명 그것을 역전시킬 힌트가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18쪽)


어떤 과목이든지 ‘재미있고 신기한’ 부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하면 그렇게 느껴지기가 힘들겠지요. (69쪽)


도요타에서는 ‘타면 탈수록 건강해지는 자동차’, ‘타면 탈수록 공기가 맑아지는 자동차’를 목표로 한다고 얘길 들었어요.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계속해서 태어나겠죠. (95쪽)


저는 아주 작은 의식의 떨림이 기존의 생각에서 우리를 끌어내 새로운 생각 속으로 들여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아닐까요? (111쪽)


자연과학의 절반은 아마 ‘인간이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일 겁니다. 인간이 흥미를 갖는 것, 인간의 행복, 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면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244쪽)



  한자로 보자면 ‘큰배움터’라 할 테지만, 몫으로 보자면 ‘열린배움터’인 ‘대학교’가 있습니다. 한자로 ‘초·중·고’처럼 적으니 ‘대’가 됩니다만, 높거나 큰 배움터라기보다는 누구나 더 깊고 넓게 배우도록 하는 길을 밝히는 데가 대학교일 테니, 이제는 한자로 붙이는 이름을 넘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이름을 붙이며 곁에 둘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열린배움터 마침종이(졸업장)를 얻으려고 몹시 애쓰는 수렁에 스스로 갇히는데요, 벼슬길을 가거나 돈벌이를 바랄 적에는 이 마침종이가 있지 않고서는 어렵다지요. 더욱이 마침종이가 있으면 돈을 더 받는다지요.


  일솜씨로 일삯을 주는 얼거리로 나라가 선다면, 열린배움터는 ‘열린 길’을 나누는 자리가 됩니다. 일솜씨 아닌 마침종이로 일삯을 가르고 위아래를 벌리려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수렁이며 굴레이며 쳇바퀴에 묶이는 하루가 돼요.


  이웃나라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들려주는 《교토대 과학수업》(우에스기 모토나리/김문정 옮김, 리오북스, 2016)을 펴면서 여러모로 오래도록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라고 이런 배움자리를 못 마련한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이처럼 스스로 마음을 열고 눈을 틔우고 생각을 꽃피우는 배움자리보다는 아직도 마침종이에 얽매입니다.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굳이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를 구태여 마쳐야 하지 않아요. 삶길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고, 살림길을 손수 가꿀 줄 알면 됩니다. 마침종이를 펄럭인대서 그이가 일을 잘 해낼까요? 마침종이가 없으면 그이는 일을 못 해낼까요?


  배울 마음이 있어야 배웁니다. 일할 뜻이 있어야 일합니다. 노래할 생각이 있어야 노래합니다. 꿈꿀 사랑이 있어야 꿈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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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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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46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해냄

 2020.8.28.



물소리에 스미면서 별빛에 빨려든 적이 있는가. 곡성 섬진강 뿅뿅다리에서 처음 접한 아름다움이었다. (43쪽)


서울이 아니면 모두 지방이고, 지방이란 곧 촌이란 등식이 성립했던 것이다. 서울 중심주의는 지금도 여전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방 중소도시를 ‘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차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70쪽)


그러나 막지 못했다고 그동안 이어온 활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131쪽)


“그냥 저처럼 들어와 보시죠? 논에 담긴 물과 흙을 맨살로 느껴 보세요.” 장화를 벗지 않고 다시 물었다. “거머리…… 없나요?” “있죠. 많이.” “물지 않습니까, 맨발인데?” “물 틈을 주지 않으면 됩니다.” (215쪽)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와 이웃하며 살 것인가. 거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276쪽)



소설지기가 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해냄, 2020)는 ‘미실란’이라는 곳을 곡성에서 이끄는 분한테 바치는 책이다. 이렇게 한 사람한테 바치는 이야기를 소설처럼 쓸 수 있네. 새삼스럽지 않지만 서울내기인 김탁환 님이 별빛도 냇물소리도 흙내음도 논물도 사름이나 벼빛도 모를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이 모두를 몰라도 소설을 쓸 수 있고, 서울에서 살 수 있다는 대목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다, 오늘날 거의 모두라 할 사람이 서울이나 큰고장에서 산다. 이제 웬만한 사람은 ‘마당 없는 집’이자 켜켜이 쌓은 잿빛집(아파트)에서 산다. 어느덧 웬만한 사람은 ‘혼씽씽이(자가용)’를 모는데, 하나 아닌 둘셋을 몰기도 한다. 그루(주식)나 벼락종이(복권)를 안 건드리고, 보임틀(텔레비전)을 안 키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하다.


물이며 흙을 맨살로 느껴 본 적이 없이 어떻게 역사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이 갈무리한 글이나 책을 살펴서 이리 엮고 저리 짜면 역사소설이 되는가? 바람이며 눈비를 맨살로 느끼지 못하는, 아니 우리를 둘러싸거나 감싸는 이 푸른별을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채 ‘글로 글을 쓰는 길’이 된다면, 그러한 글로 이 푸른별을 더없이 푸르게 누리는 길을 어떻게 열 만할까?


나는 숲길을 맨발로 걷곤 한다. “발 안 아파요?” “발이 왜 아파야 하지요?” “네?” “그 딱닥한 신을 꿰고 걸을 적마다 풀잎이며 흙이 아파서 외치는 소리가 안 들리나요?” “네?” 모기가 팔뚝에 앉아 피를 빨면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기 무는데 안 아파요?” “제 몸 어느 구석에서 피가 막혔나 봐요.” “네?” “모기는 바늘로 우리 몸에서 막힌 데를 뚫어 줘요.” “네? …… 안 간지러워요?” “한의원 가서 바늘(침) 맞고서 아프거나 간지러우셔요?”


서울에서 소설을 쓰는 그분으 이제는 서울을 떠나도 좋겠다. 굳이 서울집을 버려야 하지는 않는다. 그 집은 그대로 두되, 마음이 맞는 시골자락을 찾아 조그마한 빈집 하나 얻어서 그 시골집에서 글을 쓰시면 좋겠다. 한동안 소설쓰기를 쉬신다고 했으니, 온나라를 두루 돌면서 ‘서울사람으로서 서울하고 아주 멀리 떨어져 지낼 만한 숲자락’을 찾아나서면 좋겠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시골자락에서 글샘을 가꾸면, 마을도 서울도 나라도 이웃도 모두 새롭게 바뀌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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