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2024.3.4.
말 좀 생각합시다 79
주먹비
이웃님 한 분이 ㅋ이란 달책을 펴냅니다. 이 달책 어느 머릿글에 박남수라는 분을 다루는데, 이분은 1918년에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던 터에 서울로 이야기마실을 간 어느 날, 용산에 있는 헌책집 〈뿌리서점〉에서 이분이 예전에 썼다는 《어딘지 모르는 숲의 기억》(박남수, 미래사, 1991)을 보았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만나고 잇는 실이며 끈은 이렇게 닿는군요.
서울에서 움직이는 길에 이 책을 읽는데 31쪽에서 “쏟아지는 주먹비에 터진, 개구리는”이라는 글월을 보았지요. 문득 덮었습니다. 고요히 생각에 잠깁니다. 눈을 살며시 감고 ‘주먹비’라는 낱말을 읊어 보았습니다. 이 낱말은 박남수 님이 처음 짓지 않았습니다. 낱말책에 “주먹비 : 쏟아지는 비 같은 매우 심한 주먹질”처럼 실립니다. 그러나 글님은 주먹비를 달리 썼습니다. 비처럼 쏟아지는 주먹이 아닌, 주먹처럼 쏟아지는 비라는 뜻으로 썼지요.
언제부터인가 ‘물폭탄’이란 말이 퍼집니다. 날씨를 알리는 목소리에서 비롯했지 싶은데, 여느 사람들도 이 말을 따라서 써요. 비가 왕창 쏟아지면 다들 아무렇지 않게 ‘물폭탄’이라 합니다.
참말로 하늘은 우리한테 꽝꽝(폭탄) 퍼부을까요? 총칼에 비를 빗대어도 어울릴까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듣거나 배워도 될까요?
수수하게 ‘큰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구 쏟아진다면 ‘막비’라 할 만합니다. 엄청나게 퍼붓는다면 ‘엄청비’라 해볼 만합니다. 빗물이 마치 주먹처럼 굵으면서 퍼붓는다면 ‘주먹비’라는 이름을 쓸 수 있어요. ‘함박비’나 ‘소낙비’나 ‘벼락비’ 같은 말을 알맞게 가려서 써도 어울립니다.
우리는 노래를 읽어야지 싶습니다. 삶을 아름다이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가꾸는 손길로 쓴 노래를 읽어야지 싶어요. 어른끼리 주고받는 노래보다는 아이하고 함께 읽을 노래를 읽고 써야지 싶어요. ‘문학이 아닌 노래’를 쓰다 보면 말이 한결 부드러이 흐를 테고, 여느 자리를 비롯해서 날씨를 알리거나 삶터를 다루는 자리에서도 노랫말이 퍼지리라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노래하듯이 말해야지 싶습니다. 아니, 노래하며 말해야지 싶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