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자락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5.26)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며칠쯤 노래꽃을 풀어내지 못하면 ‘어쩌면 며칠씩 노래꽃 한 자락을 못 펼까?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다고?’ 하고 여깁니다. 그러나 며칠 만에 노래꽃 한 자락을 풀어내고 보면 어느새 술술 쏟아져서 여러 자락을 그자리에서 냉큼 써냅니다. 이러면서 생각하지요. ‘뭐, 며칠 못 써도 걱정이 없네. 하루에 며칠 몫을 바람처럼 냇물처럼 구름처럼 들꽃처럼 쓰면 되는구나.’ 새벽 세 시 무렵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늘몫 글손질을 하고 보니 어느새 다섯 시가 지납니다. 어제 미리 챙긴 짐을 살피고 머리를 감습니다. 날이 밝는 하늘을 보다가 길을 나서려는데 작은아이가 일어나서 마당에서 뛰고, 이내 큰아이도 일어납니다. 아이들하고 이야기하며 오늘 하루 즐겁게 그려 보라고 하는데, 작은아이가 외쳐요. “어라? 저기 버스 지나가는데?” 아침 시골버스를 눈앞에서 놓칩니다. 아이들하고 더 느긋이 아침얘기를 하고서 길을 나서란 뜻인가 봐요. 이웃마을로 걸어가서 시골버스를 탑니다. 시골버스에서 노래꽃 두 자락을 쓰고, 고흥읍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순천으로 가는 길에 노래꽃 두 자락을 더 씁니다. 오늘 이웃님을 아마 네 분쯤 만날 듯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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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다

2014.1.5. 자가용을 타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숱한 빛과 바람을 모두 놓치고 말곤 합니다. 무엇보다 ‘아무런 책도 못 읽고’ 말아요. 굳이 자가용을 탈 까닭이 없어요. 자가용을 몰아 보셔요. 두 손은 손잡이를 잡아야지, 책을 손에 쥐지 못해요. 자가용을 모는 이 옆에 앉아 보셔요.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먼길을 달릴 적에는 자가용을 모는 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또 졸지 않도록, 두런두런 말을 걸어 주어야 해요. 그러니, 자가용을 모는 이뿐 아니라 자가용을 타는 이까지 책을 읽지 못해요. 자가용을 타면, 종이책뿐 아니라 삶책 또한 못 읽어요. 다른 자동차를 살펴야 하고, 길알림판을 찾아야 하며, 이래저래 앞 찻길만 한참 쳐다보아야 해요. 자동차를 모는 이와 자동차를 함께 탄 이 모두 둘레를 살피지 못해요. 게다가, 자동차 소리만 들어야 할 뿐, 자동차가 지나가는 마을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퍼지는 숱한 소리는 하나도 못 들어요. 아니, 다른 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틈을 못 내지요. 봄에 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맡아요. 가을에 가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느껴요. 자가용에서 내려야 비로소 봄빛과 가을빛을 온몸으로 누려요.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비로소 종이책과 삶책 모두 가슴으로 안을 수 있어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도 좋지만, 들하고 나무하고 숲하고 바다하고 하늘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여 봐요. 기계가 들려주는 노래는 살그마니 내려놓고, 우리 목소리를 가다듬어 스스로 예쁘게 노래를 불러 봐요. 우리 이야기를 동무한테 들려주고, 동무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요.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맡고, 나무 곁에 서서 나무를 포옥 안으며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요.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는 책을 읽어요. 늘 우리 곁에서 따사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숱한 책을 사랑스레 누려요.


2019.5.26. 출판사는 ‘믿음’으로 우리 책을 내주지 않고, 우리는 출판사에 ‘믿음’으로 우리 글꾸러미를 보내주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이 이어진 둘은, 그동안 서로 지켜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그렸기에, 반가이 만나 기쁘게 책을 짓는 길을 함께 뚜벅뚜벅 걷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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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1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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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476


《이누야샤 13》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2.6.25.



“천생아는 적과 싸우는 검이 아니다. 치유하는 검이지.” “치유요?” “강한 것을 베어내는 철쇄아에 대해, 천생아는 약한 것의 생명을 이어주는 검이야.” “생명을 이어 줘?” “그럼 설며, 되살려낸다는 뜻이에요?” “잘만 쓰면. 진정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자비심이 있으면, 천생아는 한 번 휘둘러 백 명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148쪽)


‘‘바람의 상처’라니. 그게 대체 뭐야? 셋쇼마루에게는 그게 보인단 말인가?’ (170쪽)



《이누야샤 13》(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2)을 읽는다. 이누야샤도 셋쇼마루도 앞길을 바라보며 나아가되, 서로 알거나 느끼는 대목이 다르다. 언뜻 보기로 빈틈이 없을 듯한 셋쇼마루이지만, 빈틈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빈틈일 수 있는 셋쇼마루이지 싶다. 언뜻 보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누야샤이지만 바로 이 허술한 몸짓이나 머리나 마음이야말로 이누야샤다운 힘이자 슬기이지 싶다. 모자라기에 새로 배운다. 허술하기에 갈고닦는다. 어설프기에 더욱 힘쓴다. 그렇다고 빈틈없는 이가 가만히 놀지는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려 할 적에 ‘내가 이것을 이만큼 잘 알거나 해’ 같은 마음을 모두 버려야 할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갈고닦으려 해야 비로소 배운다. 이누야샤는 갈고닦는 마음을 키울수록 차근차근 자랄 테지. 곁에서 따스히 지켜보는 님도 있고.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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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5.25.


《어디 갔다 왔니?》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우순교 옮김, 논장, 2005.11.5.



보름 남짓, 몸갈이를 하는구나 싶다. 온몸이 뒤틀리고 이래저래 앓으면서 몸갈이를 한다. 이제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몸을 쓰기가 수월하기는 하되, 오른팔은 덜 나았다. 이럭저럭 여러 일을 하더라도 자주 쉬어 준다. 오늘 아이들하고 책숲 들딸기를 훑는 길에는 차마 이 손을 쓰기가 벅차 아이들끼리 들딸을 훑으라 하고는 가만히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 아버지랑 같이 따면 훨씬 많이 훑으나, 아이들끼리 따면 퍽 적게 훑는다. 아직 아이들이 풀밭을 헤치거나 안쪽까지 들여다보기는 만만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둘 다 그릇 하나를 채우고도 더 채우며 실컷 누렸겠지. 《어디 갔다 왔니?》에 흐르는 말놀이하고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여러 이웃하고 동무한테 같은 말을 묻는데, 이웃이며 동무는 저마다 삶이 다르고 살림이나 생각이 다르니 어디를 가든 다르기 마련이요, 무엇을 보거나 느끼는 마음도 다르다. 아이하고 어른은 다르다. 둘은 다르지만 모든 어른은 아이였고, 서로 같은 사람이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같은 사랑이요 숨결이다. 우리는 어느 별에서 이 별로 왔을까. 우리는 이 별에서 어떤 마실길을 누리는 하루일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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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한창 글손질을 하고, 또 예전에 써둔 글을 되살피면서 묶어야 할 테지만, 이웃책집 어느 분이 책집살림을 가꾸면서 미운 손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읽고는, 일찌감치 이 글을 걸쳐 놓고자 한다 ..


+ + +


책집


2013.9.20.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들에서 삽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삽니다. 숲에서 일하는 사람은 숲에서 삽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장에서 삽니다. 운동경기를 하는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삽니다. 책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집에서 삽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이 들바람을 쐬듯, 책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집바람을 마십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닷노래를 부르듯, 책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집노래를 부릅니다. 숲에서 일하는 숲지기는 숲내음을 맡아요. 책집에서 일하는 책집지기는 책집내음과 책내음을 맡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지기는 어떤 내음을 맡을까요.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는 운동선수는 어떤 내음을 맡을까요. 들내음과 바닷내음은 들지기와 바다지기 삶을 어떻게 북돋울까 헤아려 봅니다. 책집지기가 맡는 책내음과 책집내음은 책집지기 삶을 어떻게 살찌울까 생각해 봅니다. 책집지기 스스로 아름다운 하루 일구면, 책집마실 누리는 책손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책에서 길어올리겠지요. 책집지기 스스로 즐거운 삶 가꾸면, 책집마실 즐기는 책손 또한 삶빛 고이 밝히는 책빛을 실컷 맞아들이겠지요. 커다란 책집에서도 조그마한 책집에서도 책내음이 흐르고, 책노래가 감돌며, 책사랑이 퍼집니다. 책빛은 삶빛이면서 사랑빛입니다. 책노래는 삶노래이면서 사랑노래입니다.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 하나 손에 쥔 우리들은 책밥·삶밥·사랑밥을 먹습니다.


2013.10.12. 헌책집이거나 새책집이거나, 책집에 가면 즐겁다. 나를 부르는 책을 만나서 즐겁기도 하지만, 책이 있어서 즐겁다. 어떠한 책이건 내 마음과 눈과 넋과 말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책에 둘러싸여 몸을 쉴 수 있어 즐겁다. 책을 한 권도 못 고른 채 바삐 돌아나와 다른 곳에 볼일을 보러 가야 하더라도, 살짝 책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골마루를 빙 한 바퀴 돌면 숨이 놓인다.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던 실타래가 풀린다. 책내음을 맡는 동안 내 마음자리가 제자리를 잡는다. 푸르게 우거진 숲속에 깃들면 몸속 깊은 데까지 푸른 숨결이 서려 고운 넋 되는 느낌하고 같다고 할까. 따지고 보면, 책이란 모두 종이이다. 종이란 모두 나무이다. 나무란 모두 숲이다. 숲이 종이로 다시 태어나고, 종이는 책으로 거듭 태어나서 책집에 놓인다. 이 책이건 저 책이건 모두 나무요 숲이다. 이 책도 저 책도 다 함께 나무이면서 숲이다. 책내음 맡는 사람은 나무내음을 맡는다. 책내음 즐기는 사람은 숲내음을 즐긴다.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데는 숲이라 하잖은가. 숲에서 책을 읽으면 가장 느긋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에 빨려들 수 있다잖은가. 숲을 숲에서 읽으니 즐거울밖에 없다. 숲을 숲에서 누리니 웃음이 피어나고, 꿈이 자라며, 사랑이 샘솟을밖에 없다. 이리하여, 책집에 가면 즐겁다. 나를 부르는 책을 만나며 즐겁다. 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촉촉히 적시거나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책을 마주하며 즐겁다. 나무내음 맡고 숲바람 쐬고 싶어 책집마실을 한다.


2014.5.15. 책집이라는 곳은 푸른 숨결이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빛나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집이라는 곳은 숲에서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던 나무들이 종이로 다시 태어나면서 깃드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집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빚은 사랑이 고운 노래가 되어 흐르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책꽂이 앞에 책탑을 쌓는다. 나즈막한 책꽂이 위쪽에 책을 하나둘 얹으니 어느새 책더미가 된다. 꽂힌 책을 살피고 쌓인 책을 헤아린다. 빽빽한 책꽂이를 들여다보고 높다란 책탑을 바라본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어떤 책이 있을까.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이 어떤 책마다 싱그럽게 숨쉴까. 책집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 새로운 누리가 열린다. 책집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서 새로운 마음이 된다.


2014.7.7. 멋진 찻집에 가 본 사람은 안다. 멋진 찻집이 참말 얼마나 멋진 줄. 멋진 숲에 마실을 다녀온 사람은 안다. 멋진 숲이 어느 만큼 멋진 줄. 멋진 이웃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워 본 사람은 안다. 멋진 이웃이 그야말로 얼마나 멋진 줄. 책집에 가 본 사람은 책집을 안다. 책집을 안 가 본 사람은 책집을 모른다. 복숭아꽃을 본 사람은 복숭아꽃을 안다. 복숭아꽃을 못 본 사람은 복숭아꽃을 모른다. 스스로 보고, 느끼며, 마음에 담아, 생각을 기울일 적에 알 수 있다. 못 보면 못 느끼고, 못 느끼기에 마음에 못 담아, 마음에 못 담으니 생각을 기울이지 못한다. 사람들이 책집에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기를 빈다. 한 달에 한 걸음쯤이라도 책집마실을 할 수 있기를 빈다. 누리집으로 책을 사더라도, 스스로 아주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책이라면, 가까운 마을책집이나 먼 단골책집에 말을 넣어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책마실을 할 수 있기를 빈다. 요즈음은 책 한 자락조차 ‘무료배송’을 하지만 ‘부러 찻삯과 품과 겨를을 들여’ 책빛마실을, 또는 책숲마실을 해볼 수 있기를 빈다. 왜냐하면, 책집에만 책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집에는 온갖 책이 어우러진 기운이 있고, 갖가지 책이 골고루 섞인 바람이 분다. 책집으로 찾아가는 동안 이웃을 만나고 마을을 살피며 내 두 다리를 느낀다. 책집에 서서 ‘내가 미리 여쭌 책’을 찾는 동안 내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책을 만나곤 한다. 책집에 찾아가서 ‘내가 미리 여쭌 책’뿐 아니라 내가 이제껏 헤아리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책을 만나기도 한다. 책집에 가 본 사람은 안다. 책을 사려면 책집에 가야 하는 줄. 책집에 가 본 사람은 안다. 책은 책집에서 빛이 나고, 책집에서 빛이 나는 책을 내 가슴에 고이 품으면서 밝은 노래가 흐르는 줄.


2015.10.17. 책집이 여기 있으니, 즐겁게 찾아간다. 여기에 있는 이 책집은 언제나 마을쉼터 구실을 하니, 나는 이곳에서 마음을 쉬면서 느긋하게 책을 살핀다. 이 조그마한 책집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책터로 고운 숨결을 이을 테니, 바로 이 책집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새록새록 얻는 만남터로 거듭난다. 책집이 여기 있으니, 마을이 한결 싱그러이 춤춘다. 여기에 있는 이 책은 언제나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노래가 될 테지. 나는 노래를 부르려고 책집에 간다. 나는 노래를 함께 나눌 이웃을 만나려고 책집에 선다. 나는 노래를 짓는 슬기로운 숨결을 되새기려고 오늘 여기 이 책집에서 책시렁을 찬찬히 살펴본다.


2018.11.6. 누리책집에서 또각또각 글판을 두들기지 않고, 두 다리로 책집마실을 하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누리책집에서 책을 산 분은 아마 다들 알 테지만, 누리책집에서 책을 고르고 살펴서 값을 치르기까지도 품이나 겨를을 꽤 들여야 합니다. 딸깍딸깍 조금 한대서 쉬 끝나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여 책집까지 스스로 다녀오는 일보다 품이 적게 든다고만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누리책집에서 새책은 그때그때 새로 올라온다지만, 그동안 태어난 오랜 숱한 책은 다 올라오지 않거나 못합니다. 우리가 다리품을 팔면서 마을책집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헌책집을 다니지 않는다면, 온누리에 가득한 어마어마한 책을 두루 만나지 못합니다. 아주 조금만, 아름다운 책을 늘 마주하더라도 아주 살짝 맛볼 뿐입니다. 다리품을 팔면서 마을책집으로 마실을 다니면, 첫째, 우리 마음눈을 넓힐 수 있습니다. 둘째, 도시에 있는 숲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리책집으로도 마음눈을 넓힐 책을 손에 넣겠지요. 그러나 자동차 소리가 뚝 끊긴 채 고요한 숲바람이 일렁이는 숨결은 누리지 못해요. 조그마하든 널따랗든, 마을책집은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을 누리는 쉼터이자 놀이터이자 만남터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적에는, 줄거리(지식)만 받아먹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이루기까지 어떤 숲이 어떤 사랑으로 살았는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요. 살아숨쉬는 이야기가 깃든, 숲에서 자란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며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사랑한 노래가 깃든 종이에 얹은 삶을 누려 봐요.


2019.5.25. 아직 ‘책집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이 많을 수도 있다고 여겨요. 더구나 어릴 적부터 책집을 못 겪은 분이라면 그야말로 모르겠지요. 생각해 봐요. 어릴 적에 숲을 겪은 적이 없는데 숲을 모르겠지요. 어린 나날에 사랑을 누리거나 받은 적이 없다면 참말로 사랑을 모를 만해요.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을는지 모릅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펴며, 꿈을 나누는 일을 널리 넉넉히 신나게 해야겠구나 싶어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또 책집에서도.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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