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70


《불론디의 英語》

 Chic Young 글·그림

 신동운 엮고 옮김

 문학사

 1963.9.20.



  그림꽃(만화)을 좋아하고 동무하고 뛰놀기를 즐기지만 어머니가 갖은 일을 다 하는 줄 알기에 집안일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보내던 어린날입니다. 어머니는 이웃집 아주머니하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노릇도 합니다. 형하고 틈틈이 어머니를 거드는데, 다 돌리고 한두 자락쯤 남으면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우리가 돌리는 새뜸’을 드리고 ‘아주머니가 돌리는 새뜸’을 받아요. 예전에는 집마다 아버지(아저씨)가 새뜸을 펴서 읽기를 좋아하는 만큼, 이 새뜸 한 자락이 퍽 값졌습니다. 어른이 다 보고 나면 이제 헌종이로 삼을 테니 모두 이 새뜸종이를 노립니다. 저는 이 가운데 한칸그림이나 넉칸그림을 노려요. 그무렵 〈한국일보〉에는 ‘블론디 만화’를 실었습니다. 영어를 배울 적에 좋다면서 둘레에서 많이 오려모으는데, 어쩐지 미국살림이 낯설어 영 재미없었습니다. 《불론디의 英語》는 진작부터 ‘만화 몇 칸’으로 ‘살아숨쉬는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짚어 주는 길잡이책입니다. 이 책에는 “경기여자고등학교 도서관 “標語 : 讀書는 向上의 길, 注意 : 책장을 넘길때 손에 침칠을 마십시요”나 “기증도서 : 중 1학년4반 김용주·고영신·신창숙·지정애 (1964.11.14.)” 같은 자국이 있습니다. 새삼스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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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82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

 편집부 엮음

 진주프린트사

 1946.10.20.



  어릴 적에는 흰종이 구경이 어려웠습니다. 흰종이는 배움터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할 적에 글살림집(문방구)에 가서 한 자락에 20원을 치르고 샀어요. 1982년에 어린이는 버스를 타며 60원을 치렀습니다. 하얀 그림종이 한 자락에 20원이란 만만하지 않은 값입니다. 이와 달리 누런종이(갱지)는 20원이면 스무 자락을 사지요. 그렇다고 누런종이를 마음껏 쓰지는 못해요. 다 돈이거든요. 딱종이(딱지)를 접을 종이조차 모자라고, 배움터에서는 다달리 마병모으기(폐품수거)를 시키니, 늘 종이 한 쪽이 아쉬운 나날이었습니다. 우리 종이살림은 1990년으로 접어들며 나아졌지 싶은데, 총칼굴레(식민지)에서 갓 풀린 1946년이라면 종이가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은 경남 진주에 있던 ‘진주프린트사’에서 쇠붓(철필)으로 그려서 찍은 배움책인데, 겉종이는 미군이 쓰던 길그림(지도)을 잘라서 댔어요. 안쪽에 ‘U.S.Navy Hydrography’ ‘From Netherlands Government charts to 1941’ 같은 글씨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미군은 길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버렸을까요. 한글이 아닌 다른 글씨요, 종이가 두껍고 좋으니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를 가르치는 책에 쓸 종이로 삼자고 여겼을까요. 배우려는 마음은 언제나 대단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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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528


《1·21의 증인》

 김신조 글

 대한승공교육문화사

 1971.1.21.



  우리 아버지가 싸움밭(군대)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21’이 일어났고, 그 뒤로 사내는 싸움밭살이(군대생활)가 늘어나고, 예비군이 생기고, 온나라 사람한테 주민등록번호를 매겨서 집안살림까지 샅샅이 부라립니다. 1996년 여름에는 강원도로 북녘 물밑배(잠수함)가 넘어오고, 이때 강원 양구에서 싸움밭살이를 하던 저는 한 달 남짓 잠을 못 자는(24시간 전원 경계근무) 나날이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여느 사람들이 시달립니다. 옛날부터 어느 나라이든 싸움붙이(전쟁무기)를 잔뜩 움켜쥐면서 여느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1·21의 증인》을 읽으면 북녘이 얼마나 차갑고 서슬퍼런 바보짓을 하는가를 엿볼 만한데, 남녘이라고 안 차갑거나 안 서슬퍼렇지 않아요. 우두머리하고 벼슬자리가 사라지지 않고서야 어깨동무(평화)가 싹틀 틈은 없지 싶습니다. 총칼을 들고 으르렁거리는 곳에는 사랑이 없어요.


ㅅㄴㄹ


오늘 이렇게 인간 된 양심으로 신조의 전부를 말하게 된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읍니다. 저에게 새로운 인간이 될 기회를 열어 주시고 따뜻한 정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박대통령 각하와 정부 및 전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사랑과 지도 편달이 있으시기를 바라겠읍니다. (이 책을 내면서/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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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99


《한국의 굿 5 평안도 다리굿》

 김수남 사진

 황루시·김열규·이보형 글

 열화당

 1985.3.20.



  어릴 적 곳곳에서 굿집을 보았습니다. 굿집에서 사는 동무도 여럿 있습니다. 어느 아이는 굿집을 숨기고, 어느 아이는 스스럼없습니다. 굿집이건 쌀집이건 책집이건 자랑거리도 숨길거리도 아닐 텐데, 배움터에서는 굿을 나쁘게 여기도록 얘기했습니다. 아이가 몹시 아플 적에 곧잘 굿을 했어요. 저는 워낙 여린 몸이라 “얜 굿을 해야 나으려나?” 소리를 들었어요. 칼로 째거나 뭘 먹으며 낫기도 할 테지만, 온마음을 기울여 튼튼하기를 비는 굿판일 텐데 싶어요. 푸른배움터까지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굿을 다룬 책을 하나둘 스스로 챙겨서 읽었습니다. 《한국의 굿》 꾸러미는 열일곱 살에 처음 만났고 스무 살을 넘어서며 모두 챙겨 읽었는데, 인천은 바닷마을이기에 굿집이 그렇게 많을밖에 없더군요. 바닷일을 하러 멀리 나가는 뱃사람이 걱정없기를 비는 굿이 흔했다더군요.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던 굿인데, 지난날 어린배움터(국민학교)는 왜 굿을 낡고 나쁘다고만 다뤘을까요? 인천에서 두고두고 내림으로 흐르던 굿살림을 문화·문화재로 보는 눈길을 왜 진작 키우지 못했을까요? 수수한 살림자리에서 조촐히 잇는 삶에는 ‘문화·예술·전통’ 같은 한자말 이름을 거의 안 붙이던 버릇 탓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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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6.19.

숨은책 524


《부에노와 말로》

 이원복 글·그림

 새소년

 1987.10.10.



  아주 어릴 적에는 그림꽃(만화)을 누가 그렸는가는 안 보았습니다. 그저 손에 쥐고서 파라락 펼치기 바빴습니다. 열 살 즈음 이르자 이제는 이름(그림꽃 이름·그림꽃님 이름)을 들여다봅니다. 열 살 언저리까지는 그림꽃이라면 다 들여다보았다면, 열 살을 지나고부터 마음에 드는 그림꽃님 이름을 찾아서 그 그림꽃부터 펼쳤습니다. 《부에노와 말로》는 그리 눈에 가지 않았으나 로봇을 그린 드문 그림꽃이라서 챙겨 보았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착한이·나쁜이를 가르는 틀에 맞추고, 나쁜이는 박살나도 좋다는 얼거리로 흐르는데, 착한이가 나쁜이를 골탕먹일 적마다 도리어 쓸쓸하고 읽기 힘들었습니다. 착한이라면서 왜 골탕을 먹일까요? 나쁜이는 착한이가 늘 괴롭히고 골탕을 먹이니 더 악에 받치지 않을까요? 이 그림꽃을 빚은 분은 이윽고 《먼나라 이웃나라》를 그리고, 〈조선일보〉에서 붓을 매섭게 휘두릅니다. 곰곰이 보면, 한쪽 길만 옳다고 여기면서 이웃을 골탕먹이거나 괴롭혀도 좋다는 틀을 아이들한테 넌지시 심은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이러다가 《ロボット三等兵》이라는 그림꽃을 문득 보았어요. 일본에서 1955년부터 나왔는데, 어쩐지 ‘부에노’ 같고, 어느 모로 보면 ‘로봇 찌빠’ 같기도 하더군요.


ㅅㄴㄹ


1 : https://ja.wikipedia.org/wiki/%E5%89%8D%E8%B0%B7%E6%83%9F%E5%85%89

2 : https://ja.wikipedia.org/wiki/%E3%83%AD%E3%83%9C%E3%83%83%E3%83%88%E4%B8%89%E7%AD%89%E5%85%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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