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말/사자성어] 부정행위



 경기 중 부정행위가 드러나 → 경기에서 나쁜짓이 드러나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시험에서 실격되었다 → 나쁜짓이 들통나 시험에서 떨어졌다


부정행위(不正行爲) : 올바르지 못한 행위



  올바르지 못한 짓이라면 “잘못된 짓”이나 “못된 짓”이나 “못난 짓”이나 “궂은 짓”일 테지요. ‘잘못’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새롭게 한 낱말로 ‘나쁜짓’이라 할 만하고, ‘훔침질’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어디선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 구조인 것이다

→ 어디선가 나쁜짓을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 틀이다

→ 어디선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굶어죽는 판이다

→ 어디선가 훔치지 않으면 굶어죽는 얼개이다

→ 어디선가 빼돌리지 않으면 굶어죽는 살림새이다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 리수, 2009) 18쪽


시험이 끝난 뒤에도 부정행위는 끝나지 않았어

→ 시험이 끝난 뒤에도 나쁜짓은 끝나지 않았어

→ 시험이 끝난 뒤에도 훔침질은 끝나지 않았어

《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백범일지》(강창훈, 책과함께어린이, 2018) 33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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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28. 장문의 글



  요즈음 분들은 ‘긴글’은 잘 안 읽을까요? 손전화를 오래 손에 쥔 채 하루를 누리다 보니 ‘짧은글’에만 익숙한 채 조금이라도 ‘짧지 않다’ 싶으면 죄다 ‘길구나’ 하고 여기지는 않을까요?


  이웃님이 저한테 글월을 띄울 적에 저도 맞글월을 띄워 줍니다. 때로는 다른 일을 하느라 깜빡 잊고서 글월을 놓치기도 합니다만, 바로 글월을 적든 뒤늦게 글월을 띄우든 마음을 기울여서 온힘을 다해 쓰려고 해요. 이러다 보면 이 수다 저 얘기가 넘치곤 하는데, 이런 제 맞글월을 받는 분들이 으레 이렇게 말합니다.


 장문의 글을 답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적이 어지럽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이 말씨가 요즈음 ‘관공서 말씨’이거나 ‘격식 말씨’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써야 마치 다소곳하거나 얌전하거나 상냥하다고 여기시는구나 싶은데요, 이런 말씨는 하나도 안 다소곳하고 안 얌전하며 안 상냥합니다. 말이 안 되는 말씨일 뿐입니다. 이 말씨는 다음처럼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손질’ 아닌 ‘바로잡기’를 할 말씨예요.


 긴글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긴글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길게 얘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얘기 고맙습니다


  아직도 퍽 많은 분들은 ‘한자말(일본 한자말+중국 한자말)’을 한국말로 풀어내면 길어진다고 잘못 알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한자말을 한국말로 풀어내거나 손질하거나 옮기면 훨씬 짧고 단출하며 쉽습니다. 이러면서 부드럽지요.


  그도 그럴 까닭이 한국사람이 쓰는 말이 ‘한국말’이니까요. 오랜 옛날부터 한겨레를 이룬 사람들이 쓰던 텃말이 한국말인 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분이 뜻밖에 대단히 많아요. 한문·한자말이란, 임금과 지식인과 벼슬아치 몇몇이 주먹힘을 거머쥐면서 그들 웃자리를 지키려고 쓴 바깥말인 줄 제대로 읽어내는 분이 매우 적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쓸 적에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를 거의 못 배웠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부터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배운 적이 없이 입시공부만 하면서 대학바라기를 하며 자란 터라, 이런 어른이 닦은 사회라는 곳에서 흐르는 말은 ‘삶말, 삶이 숨쉬고 피어나고 자라고 고운 말’이 아니기 일쑤예요. 딱딱한 질서와 메마른 틀과 차가운 계급과 위아래 신분으로 갈린 말씨이기 마련입니다. 이리하여 이러한 ‘사회 어른’이 엮은 교과서를 읽는 어린이·푸름이는 삶말도, 사랑말도, 참말도, 슬기말도, 살림말도, 고장말도, 꿈말도, 믿음말도, 놀이말도, 일말도, 나눔말도, 고운말도 모두 못 듣거나 못 배우곤 하지요.


  한자말을 쓴대서 잘못일 수 없습니다. 한자말을 쓴대서 틀리거나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영어를 섞든 한자말을 섞든 그 낱말이나 말씨가 어떤 뜻이나 결인가를 제대로 짚고서 똑바로 다룰 줄 알 노릇입니다. 그리고, 한국말 아닌 한자말이나 영어는 바깥말이라는 대목을 깨달아, 바깥말로서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야지요.


  앞서 “장문의 글”을 보기로 들었는데, 우리가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즐겁고 아름다이 배운 적이 있다면, 말뜻대로 고치는 글 말고 새롭게 써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를 들어 볼게요. 무엇보다 ‘장문 = 긴글’이니 “장문의 글”은 겹말입니다.


 넉넉한 말씀 고마워요

 넉넉히 들려준 얘기 고맙네요

 푸짐한 이야기꽃 즐거웠습니다

 푸진 글월 반갑군요


  글월을 주고받은 분이 서로 오랜 동무라면 말씨가 다를 수 있습니다. 또 몇 가지를 들어 볼게요.


 넉넉한 말 고마워

 넉넉히 들려준 얘기 고맙구나

 푸짐한 이야기꽃 즐거웠어

 푸진 글월 반갑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말을 배우거나 가르칠까요? 사람마다 다 다른 삶터에서 나고 자라면서 다 다른 꿈과 사랑을 키우고, 이를 다 다른 말씨로 담아내어 ‘다 다르면서도 다 같은 즐겁고 슬기로운 사랑이 꿈처럼 날개돋이를 하는 이야기’를 펼치는 말을 배우거나 가르칠까요? 아마, 아니지 싶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도,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도, 하나같이 너무 메마릅니다. 더욱이 말재주 부리기나 어려운 한자말로 논설·논술 펴기가 가득하고, 쉽고 부드러우면서 상냥하고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어깨동무를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꼭지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이 부디 거꾸로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초·중·고등학생이 배워야 하는 교과서를 어른들한테 건네면서 ‘자, 이 교과서로 공부하세요’ 하면 배울 맛이 날까요? 문학을 문학이 아니게 쪼개어 객관식 문제를 내고, 말을 말이 아니게 뒤틀어서 논설·논술로 꾸미는 국어 수업은 삶말하고는 매우 동떨어집니다.


  앞서 보기로 든 “장문의 글”을 다시 고쳐 보겠습니다. 여느 동무가 아닌 마음으로 사귀는 벗님하고 주고받는 글월일 적에는 이처럼 얘기할 수 있습니다.


 긴글 좋다

 긴글 좋았어

 긴글 고맙

 반가운 긴글


  우리 삶터에서 바로잡을 곳이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느 곳이든 제대로 손보고, 슬기롭게 가꾸며, 즐거이 북돋울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뜻이 같은 줄거리를 펼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우리 마음을 담아내면 스스로 즐겁고 서로 기쁜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길을 이제부터 열어야지 싶습니다.


  더 미루지 말 노릇입니다. 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어렵다면 ‘비정규 과목’으로라도 하루 빨리, 하루 정규 과목을 마치고 날마다 5분이나 10분 틈을 내어, 말을 말답게 가꾸거나 돌보면서 마음을 마음답게 살찌우거나 키우는 이야기꽃을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가 듣고 익히도록 자리를 열어야지 싶습니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모든 말은 마음입니다. 껍데기 아닌, 주파수나 파동이나 소리값이 아닌 마음입니다. 우리 숨결은 잘생기거나 이쁘거나 못생기거나 못난 얼굴·몸매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우리 숨결은 껍데기인 몸이 아니요, 이 몸을 감싼 옷이 아닌, 몸을 입고 옷을 걸친 속에 깃든 넋이요 얼이자 마음이요 꿈이며 사랑이고 생각입니다.


  ‘마음속’이란 낱말을 제대로 읽고 느끼면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삶터와 배움터와 마을과 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겉모습에 사로잡히지 말고, 마음속을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손잡기를 바랍니다. 이제 가시내 누구나 마음껏 바지를 걸칠 수 있는 자유·민주·평화를 누리듯, 사내 누구나 신나게 치마를 두를 수 있는 자유·민주·평화로도 거듭난다면, 우리 삶터는 매우 재미나면서 웃음이 넘치고 아름다이 깨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바로 껍데기를 벗어야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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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만남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우리는 뜻밖에 만나지 않았어 / 우리는 문득 만나지 않았어

 작가와의 만남에 초대되었다 → 지은이와 만나는 자리에서 불렀다

 할머니와의 만남이 설렌다 → 할머니와 만나니 설렌다


  ‘-의 + 만남’은 일본 말씨에 번역 말씨입니다. 먼저 ‘-의’만 털 수 있고, 흐름을 살펴서 ‘만나다’ 얼개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ㅅㄴㄹ



소이치 씨랑 시나코 씨의 첫 만남은 언제쯤이었어?

→ 소이치 씨랑 시나코 씨는 첫 만남이 언제쯤이었어?

→ 소이치 씨랑 시나코 씨는 언제 처음 만났어?

《파란 만쥬의 숲 3》(이와오카 히사에/오경화 옮김, 미우, 2017) 88쪽


사실 우리의 만남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거다

→ 따지면 우리 만남은 그만큼이나 대단하다

→ 가만 보면 우리는 그만큼 대단하게 만났다

《할망은 희망》(정신지, 가르스연구소, 2018) 42쪽


장제스와 김구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

→ 장제스와 김구는 어떻게 만났을까

→ 장제스와 김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백범일지》(강창훈, 책과함께어린이, 2018) 134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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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2.16.


《이이솝 이야기》

 이이솝 글/정인섭 옮김, 동서문화사, 1978.10.1.



아이들하고 책을 같이 읽으면서 돌아보면, 아이들한테 새책이나 헌책이 하나도 안 대수롭다. 재미있는 책이냐 아니냐가 대수롭다. 재미난 책이라면 책종이가 바스라질 듯한 낡은 책을 붙잡고 꼼짝을 안 하면서 읽는다. 배가 고프다고도 않고, 밥을 차려도 책을 파며, 바깥에서 신나게 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두 가지 밥을 먹는다. 하나는 몸을 살찌우는 밥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을 북돋우는 밥이다. 아이들은 두 밥을 나란히 먹어야 튼튼하면서 아름다이 자란다. 그렇다면 어른은? 우리 어른도 몸밥하고 마음밥을 즐겁게 먹을 적에 사랑스러운 숨결로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리라. 1978년에 나온 《이이솝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소리내어 읽어 주다가 한동안 잊었는데, 큰아이가 이 책을 문득 보고는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낸다. 아차차. 우리 두어 꼭지씩 소리내어 읽기로 했는데 ……. 이솝 이야기 같은 오랜 이야기는 새로운 옮김말보다 예전 옮김말이 훨씬 좋으리라 여긴다. 그러나 새로운 옮김말로 된 책도 한두 가지 챙겨 보자고 생각한다. 둘을 나란히 놓으면 아이들도 “어라? 아버지, 두 책이 같은 이야기인데 글이 달라요?”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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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2.15.


《우리말 동시 사전》

 최종규 글,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19.1.15.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시’라는 글을 처음 썼다. 마음을 담아내는 생각을 짤막하면서 즐겁게 간추려서 노래로 엮는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마 열일곱 살이었을 텐데, 언제 어디에서나 춤추고 웃으면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어른이 된다면 참 아름답겠네 하고 생각했다. 이런 모습이라면 아주 사랑스럽겠지 하고 여겼다. 이러다가 스무 살 무렵 동시다운 동시를 처음 만났다. 이오덕 어른이 멧골마을에서 가르친 아이들이 쓴 1960년대 글이었고, 그 뒤에 이원수 어른 글을, 권정생 어른 글을 만났고, 탄광마을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임길택 어른 글을 만났다.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시’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이만큼은 써야 하는구나 싶어 1995년부터 시쓰기는 너무 어렵다고 여겼다. 2008년, 큰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부터 동시를 쓴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눈빛을 밝히면서 듣는다. 다른 어느 책보다 아버지랑 어머니 입에서 흐르는 노래를 반긴다. 《우리말 동시 사전》은 이렇게 태어났다. 아이들이 어버이 스스로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려 활짝 피어나는 꽃님처럼 눈부시기를 바라는 뜻을 맞아들여 열한 해를 갈고닦아서 비로소 도톰하면서 작은 ‘동시 사전’으로 여미었다. 내가 썼지만, 내가 쓰지 않은 글꽃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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