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12


《소꿉》

 편해문 글·사진

 고래가그랬어

 2009.7.1.



  갈수록 ‘그냥 사진책’은 자리를 잃지 싶습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어디에서나 사진을 담는 삶으로 퍼지면서, 사진밭은 ‘외곬 예술’로 기울기까지 하는구나 싶어요. 사진길을 걷던 적잖은 분은 여태 ‘사진은 예술인가 아닌가?’를 놓고 온갖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삶자리에서 수수하면서 즐겁게 찍고 나누는 사진은 마치 사진이 아니기라도 한듯 밀쳐내고, 뭔가 이리 꾸미고 저리 만들면서 ‘알쏭달쏭한(형이상학)’ 빛만지기 놀이가 되어야 비로소 사진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 나라 문학비평은 갖은 일본 한자말에 번역 말씨에 영어까지 범벅말이기 일쑤인데, 사진비평은 가장 끔찍하다 싶도록 범범말입니다. 삶을 등진 비평이요, 살림길을 등돌린 예술 사진으로 치달아요. 《소꿉》은 범벅잔치인 사진밭에서 이슬꽃처럼 태어난 사진책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자취를 감춘 어린이 놀이인 ‘소꿉’을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며 같이 즐기면서 신바람으로 담아냈어요. 문득 돌아보면 아직 이 나라에 소꿉놀이가 마을 빈터나 들판마다 춤출 적에 소꿉을 사진으로 찍는 어른이 없다시피 했지요. 곁살림을 담기에 글입니다. 곁삶을 찍기에 사진입니다. 삶이 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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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17


《왜 이제 오셨소》

 너머 글·그림

 심다

 2019.10.26.



  출판사를 안 거치고서 책을 내는 분이 늡니다. 애써 지은 책을 굳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안 넣는 곳이 늘어납니다. 이러한 책을 ‘독립출판물’이라고도 합니다만, 저는 ‘혼책’이나 ‘손지음책’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켜요. 샛장수(도매상)하고 누리책집(인터넷서점)을 등지겠다는 혼책이요, 그때그때 스스로 즐거운 길을 살피며 손수 짓겠다는 손지음책입니다. 혼자 짓는 책에 따로 출판사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돼요. 손수 지어 선보이는 책에 재미나게 출판사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그리고 조촐하게 마을책집을 가꾸면서 알맞춤하게 혼책을 내놓을 수 있어요. 《왜 이제 오셨소》는 전남 순천에 뿌리를 내린 마을책집 〈책방 심다〉에서 펴낸 손지음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할머니를 마주하는 삶을 그리고, 할머니 마음을 읽으려는 눈빛을 들려줍니다. 이 혼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집집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이렇게 수수하게 담아서 나누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손지음책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우리가 저마다 무엇을 사랑하고 꿈꾸는가를 이처럼 스스럼없이 펼치며 노래하면 좋겠네’ 싶어요. “왜 이제?”라기보다는 “이제부터!”예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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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씨앗책 (2020.9.23)

― 순창 〈책다방 밭〉


  논이랑 밭을 어울러 논밭입니다. 풀이 푸르게 일렁이는 풀밭입니다. 눈송이 소복소복 쌓여 눈밭입니다. 사람이 가득한 곳이라 사람밭입니다. 즐겁게 나누는 이야기로 시끌시끌한 이야기밭입니다. 서로 아끼며 환하게 웃음짓는 사랑밭입니다. 새롭게 지피는 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며 고요히 깨어나는 마음밭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으면서 스스로 아름답고 즐거운 길이 되나 하고 새기는 생각밭입니다. 한지붕에서 어깨동무하며 함께 일하고 나누고 쉬고 노래하는 살림밭입니다. 이 온갖 삶을 갈무리하는 글밭입니다. 삶을 갈무리한 글을 이웃하고 널리 나누려고 하는 책밭입니다.


  전북 순창 시골자락에 깃든 〈책다방 밭〉으로 마실할 날을 손꼽다가 ‘책방 하는 농부’라고 하는 누리가게를 알았습니다. 곧바로 순창마실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 마음으로 먼저 누리가게를 만나자고 생각하며 누리마실부터 합니다. 요즈음은 다들 자동차를 몰아 하루치기로도 꽤 먼길을 다녀온다지만, 고흥 시골자락에서 순창 시골자락으로 시골버스를 두루 돌고 돌아서 찾아가자면 하루를 꼬박 써야겠지요. 어느새 한가위가 가까운 9월 끝자락은 날마다 무화과알을 조금씩 따서 누리고, 때로는 감알을 따서 누리며, 초피알을 훑어서 말리고, 붓꽃 씨주머니를 따서 나란히 말립니다.


  굵은 모과알을 따서 석석 썰어 달콤가루에 재우다가 생각합니다. 〈책다방 밭〉 ‘씨앗책’을 한 자락 받으면 좋겠어요. 누리가게에 올라온 ‘씨앗책’은 9월 이즈막이나 10월에 심을 만한 씨앗 두 가지에다가 ‘숨은책’ 하나가 꾸러미입니다. 숨은책이란 ‘수수께끼책’입니다. 무엇을 담았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는 책이에요. 다만 하나는 틀림없을 테니, 순창 시골자락에서 흙살림을 가꾸는 길에 곁에 두면서 새록새록 반가이 이야기밭이 되는 책일 테지요.


  마당이며 뒤꼍에서 낮에는 나비랑 놀고, 밤에는 반딧불이랑 놉니다. 나무처럼 얌전히 서서 두 팔을 곧게 가지처럼 펴고 서면 나비는 어느새 팔등에 내려앉습니다. 반딧불이도 하늘하늘 푸르고 파랗고 하얗게 반짝이다가 살며시 머리에 내려앉지요.


  풀책(식물도감)이나 벌레책(곤충도감)을 뒤적여야 풀이나 벌레를 알 만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풀을 사귀고 벌레랑 동무하노라면 풀넋이랑 벌레넋을 마음으로 맞아들일 만해요. 앞으로는 어린이도 어른도 글책으로만이 아닌, 삶이며 온몸이며 마음이며 사랑으로 둘레를 마주하면서 지켜보면 좋겠어요. 풀책이나 벌레책에 적힌 이름을 외워도 나쁘지 않지만, 이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결을 헤아려 새롭게 만나면 오래오래 살가이 어울릴 만해요.


  호미질·삽질·낫질·괭이질 소리가 깃든 ‘씨앗책’이 한 톨 두 알 석 자락 넉 꾸러미 고루고루 퍼져 이 땅을 푸르게 물들이기를 바라요. 푸른별에 푸른책입니다.


책다방 밭, 누리가게 https://smartstore.naver.com/batt_sonen90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글·요제프 차페크 그림/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2019).6.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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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1.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10》

 이와모토 나오 글·그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4.6.15.



“어느 우체국에 갈까?” 아이들한테 묻는다. “음, 글쎄?” “그럼, 자전거를 같이 탈까, 아니면 버스를 타고 읍내로 갈까?” “음, 자전거?” 아이들더러 자전거하고 버스 가운데 고르라면 늘 자전거를 고른다. 그래, 자전거가 즐겁지. 자전거를 타면 호젓하게 바람을 마시고, 드넓게 구름을 마주하며, 싱그럽게 풀내음을 먹는다. 버스를 타면 라디오 소리에 귀가 따갑고, 시끌시끌한 읍내에서 눈이 따갑다. 작은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워 함께 우체국마실을 다녀오며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로 들길이나 숲길이나 바닷가를 달리지 못한 어린이라면, 자전거를 달리는 신나는 바람놀이를 하나도 모르겠지. 몸으로 겪지 않은 터라 마음으로 맞아들이지 못하는 이야기가 수두룩하기 마련이다. 나비가 손바닥에 앉아서 쉬도록, 잠자리가 손등에 앉아서 날개를 접도록, 때로는 멧새가 코앞에서 나무열매를 마주보면서 노래하도록 하루를 보낸다면 아이들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겠지.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10》을 읽는다. 갓 나올 적에 찬찬히 읽다가 줄거리가 느슨해서 접었는데, 사이를 건네뛰고 열걸음을 넘기니 조금 볼만하다. 자잘한 줄거리는 덜어내고서 바로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이야기를 지피면 좋을 텐데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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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0.


《제이크 하늘을 날다》

 레인 스미스 그림, 보림, 1996.9.30.



밤별을 본다. 그동안 구름을 실컷 보았으니 이제는 밤별을 본다. 아니 요새도 낮에는 하늘을 뒤덮기 일쑤라, 온갖 빛깔에 무늬인 구름을 보다가, 해가 기울 즈음부터 조금씩 사라지는 구름꼬리를 지켜보다가 새까만 밤에 초롱초롱 아름다운 밤빛을 누린다. ‘학교 밖 청소년 학업비 신청’을 한다. 이 나라에서는 집에서 스스로 배우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여태 안 돌아봤다. 이러면서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후보는 으레 ‘학교 밖 청소년’을 돕겠다고 달콤발림을 내세웠는데, 여태 미적거리기만 하다가 갑작스레 이런 틀이 생겼는데, 고흥교육청도 전남교육청도 군청도 면사무소도 이 일을 안 알려주었네. 어쩌다 스스로 찾아냈다. 벼슬아치는 왜들 그러나? 《제이크 하늘을 날다》를 겨우 장만했다. 어느새 판이 끊어졌더라. 이 그림책은 1999년에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일할 무렵 처음 보았다. 말 한 마디도 안 나오지만 그림결이나 줄거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때에는 이 그림책을 건사하지 못하고 잊었다가 헌책집 나들이를 하면서 새삼스레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아이 제이크는 홀가분히 난다. 누가 하늘을 날라고 시키지 않았고, 날갯짓을 안 가르쳤다. 즐겁게 꿈꾸니 신나게 날고, 신나게 나니 뭇새가 동무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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