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사라진 말 8 나 2024.9.2.



  이곳에 오늘 스스로 있는 줄 알 적에 나오는 한 마디란 ‘나’이다. 온누리 모든 ‘나’는 어버이가 ‘낳’는다. 두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가 사랑으로 맺은 씨앗이 천천히 ‘하나(하·한 + 나 : 하늘인 나)’로 모이기에 새삼스레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꿈으로 살아낸다. 이윽고 빛을 듬뿍 쬐는 어버이 품인 집으로 ‘나온’다. 바람을 타듯이 나오기에, 두 분 손길을 타면서 나오기에, 온몸을 살리는 기운으로 불타듯 따뜻하게 나오기에, ‘태어나다(태나다)’라 한다. 나는 ‘너’를 본다. 너는 ‘나’를 본다. 서로 선 자리가 다를 뿐, 똑같이 사람이라는 숨결이기에 ‘나·너’로 갈라서 마주한다. 둘이 마음이 하나로 움직이면서 즐거우면 ‘너나들이’라 하고 ‘넘나들다’로 나타낸다. 둘이 어긋나거나 등돌리면 ‘남’이다. 등돌릴 뿐 아니라 밉거나 싫으면 ‘놈’이다. 미움도 싫음도 아닌 사랑으로 마주하려는 마음을 가꾸면 ‘님’이다. ‘남·놈·님’ 모두 ‘나’한테서 비롯한다. 이리하여, 서로 알아보고 알아차리는 동안 저마다 스스로 “내가 나를 나로서 나부터 사랑하기”를 바라보면서, 저마다 스스로 “내가 나로서 나답게 걸어갈 길을 차근차근 나아가기”를 할 때에, 비로소 둘레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씨앗”을 심을 수 있다. 내가 나아간다. 내가 날개를 편다. 날개돋이를 한 나비를 바로 내가 물끄러미 본다. 뿌리를 내리면서 남는다고 여겨 ‘나무’일 텐데, 가지를 벌린 나무를 보면, 팔을 벌리면서 바람을 쐬고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인 ‘나’를 닮는다. 나는 나로서 하나이니 ‘낱’이다. 낱낱을 세듯 사람뿐 아니라 풀포기도 다 다른 숨빛이니, 풀열매를 ‘낟알’로 여기면서 밥살림을 지으려고 밀과 수수와 보리를 거둔다. 너랑 나 가운데 누가 낫지 않다. 어깨동무를 하며 나긋나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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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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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7 비 2024.9.13.



  비가 쏟아진다. 쏟아지는 비는 ‘소낙비’라고 한다. 비가 부슬부슬 바닥을 적신다. ‘부슬비’이고, 부슬비보다 가늘다면 ‘보슬비’이다. 새벽에 맺는 이슬처럼 부드러이 드리우면 ‘이슬비’이다. 봄이면 ‘봄비’가 내리고, 겨울이면 ‘겨울비’가 내린다. 철에 따라 ‘여름비’하고 ‘가을비’가 있다. 우리를 둘러싼 들숲에서 자라나는 풀꽃나무는 해바람비를 머금기에 푸르다. 사람이 아무리 따로 물을 준들, 빗물에 대지 못 한다. 그래서 들과 숲과 논과 밭을 촉촉히 적시면서 풀꽃나무를 살찌울 적에 ‘단비’라고 한다. 가뭄을 씻을 뿐 아니라 ‘마실물’을 달게 채우는 고마운 비라고 하겠다. 예부터 비가 올 적에는 여러 말씨로 나타낸다. 하늘에서 땅으로 오기에 ‘내리다’라 하고, 저 먼 곳에서 이리로 오니까 ‘오다’라 한다. 무엇보다도 들지기·숲지기·논지기·밭지기·흙지기는 으레 “비님이 오신다” 하고 노래했다.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빌기에 ‘비나리’이다. ‘빌다’가 밑동이기도 하되, ‘빌다’는 바로 ‘비’가 더 깊은 밑동이요, ‘비’라는 낱말에서 ‘빛’과 ‘빚’이 태어났고, ‘빌다’도 퍼졌다. 비가 내릴 적에는 줄줄이 한참 잇는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결을 보면서 ‘내내’나 ‘내리’나 ‘내처’ 같은 낱말도 태어났다. 비가 온누리를 말끔하게 씻는다고 느껴서 ‘비(빗자루)’에 ‘비질’이라는 살림을 지었고, 빗줄기와 빗살을 고스란히 따서 머리카락을 고르는 ‘빗(머리빗)’이라는 살림도 지었다. 바닷물이 아지랑이로 하늘로 올라 구름을 이루고서 내리는 빗물은 ‘민물’이다. 냇물도 샘물도 모두 빗물이다. 우리는 빗물을 마시며 몸을 살리는 얼거리인데, 어느새 그만 ‘게릴라성 폭우’나 ‘물폭탄’처럼 비를 미워하는 말씨가 불거진다. 비가 잔뜩 내리면 ‘함박비’에 ‘벼락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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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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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6 가다 2024.9.2.



  길을 간다. 앞으로 가다가 뒤로 간다. 이쪽으로 가다가 저쪽으로 간다. 나는 너한테 가고, 너는 나한테 온다. 우리는 서로한테 다가가고, 서로서로 다가온다. 마음이 가더니, 눈길이 간다. 이윽고 손이 가고, 말이 나아간다. 어느새 마음이 가만히 가더니, 가볍게 웃음도 노래도 춤도 오고간다. 새롭게 찾으려고 간다. 찾아가고 살펴가고 돌아가고 이어간다. 새삼스레 찾아보고 싶기에 간다. 나아가고 넘어가고 달려간다. 누구나 혼자 갈 수 있고, 함께 갈 수 있다. 문득 ‘같이가다·함께가다’처럼 붙여서 새말을 여미어 본다. ‘혼자가다·그냥가다’처럼 붙여서 새말을 엮어도 즐겁다. 우리는 가고 또 가고 다시 가고 자꾸 가고 거듭 가고 내처 가고 줄기차게 간다. 가니까 간다. ‘이동(移動)·이전(移轉)·이사(移徙)’를 하지 않는다. 다들 간다. 그저 가다가 떠나간다. 살며시 가더니 다녀간다. 옮겨갈 때가 있고, 옮겨올 때가 있다. 빙그르르 돌잇길은 돌면서 갈 텐데, 둘러갈 수도 있다. 여기저기를 슬슬 들렀다가 갈 만하다. 바쁘기에 질러서 ‘바로가기’를 한다. 굽이굽이 느끼면서 ‘느긋가기’도 한다. 가만히 가볍게 가다듬으면서 간다. 가꾸면서 가고, 일구면서 가는구나. 가시는 길이란, 오시는 길이기도 하다. 비가 시원스레 오시기에, 어느덧 구름이 걷히면서 부드럽게 가신다. 몸을 내려놓을 적에도 가는 길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간다. 높이높이 올라가면서 하늘을 만나고, 낮게낮게 내려가면서 땅밑살림을 돌아본다. 알아가고 싶기에 하나씩 읽어간다. 깜빡하고 잊고서 그냥 간다면, 얼른 뛰어가서 가져다준다. 샘은 어디부터 솟아서 냇물로 흘러갈까. 바다는 어떻게 너울너울하면서 찰랑찰랑 물길을 갈까. 바람은 언제나 불어오는데, 바람이 불어가는 곳은 모두 싱그럽고 포근하겠지. 이제는 별을 보고 싶어서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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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5 말 2024.9.1.



  말을 잊어가지만, 말을 잊는 줄 모르는 이 나라이다. 말을 잊어가니까 글도 저절로 잊어가게 마련인데, 글만 따로 살릴 수 있다는 듯 너무 시끄럽다. 말부터 말답게 살리는 길로 열어야, 글을 글답게 북돋울 수 있다. ‘문해력’을 아무리 외치거나 떠들거나 가르치려 해본들, 어른도 아이도 글빛을 못 가꾼다. 왜 그럴까? 먼저 ‘말’이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보고 느끼고 알아야 한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이다. 마음이 있기에 말이 있다. ‘마음’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삶이 있기에 마음이 있다. ‘삶’은 살림을 짓는 길에 마주하고 겪고 부대끼는 모든 나날이다. 살림을 지으려는 꿈을 세울 때라야 삶을 맞이한다. ‘살림’은 사랑을 펴려는 생각이 샘솟으면서 스스로 길어올린다. 사랑이 있기에 생각을 하면서 살림을 편다. 사랑이란 ‘사람’으로서 그리고 짓고 펴고 나누는 오직 하나인 뜻이자 길이자 빛이다. 그러니까 ‘사람·사랑·살림·삶·마음’이라는 물줄기를 거쳐서 ‘말’이 태어나고 ‘글’이 나타난다. ‘사람’은 숲이라는 터전을 가꾸고 일구는 숨결이니, 모든 말과 글은 ‘숲’에서 싹튼다고 여길 만하다. 마음소리인 말을 그려내기에 ‘글’인 줄 알아보아야, 차곡차곡 더듬고 짚으면서 ‘마음·삶·살림·사랑·사람·숲’이라는 길을 돌아본다. 그리고 ‘별·넋·빛’이 하나인 줄 깨달을 만하다. 우리는 아이와 어른으로서 나란히 ‘이야기’를 할 때에 말글을 살린다. “이야기 = 잇는 길 = 이으려고 주고받거나 나누거나 오가는 말”이다. 오늘날 어린이는 실컷 뛰놀면서 노래하고 조잘조잘 수다꽃을 피울 틈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 처음부터 말꽃도 말씨도 말빛도 못 자란다. 말을 ‘말’이라고 이를 때부터 눈을 뜬다. ‘언어(言語)’라는 허울을 씌우니 말은 더 갇히고 짓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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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4 배우다 2024.8.31.



  누구나 어머니 ‘배’를 포근하면서 아늑한 품으로 삼으면서 천천히 자란다. 몇몇 숨붙이는 암수가 씨만 뿌려서 알을 이루고 태어난다고 여기지만, 암수가 품은 씨앗도 ‘배’에 깃든다. ‘배’라는 곳에서 숨결을 배고, 이렇게 밴 숨결이 밖으로 깨어나고 나면, 이때부터 저마다 ‘배우’는 길로 나선다. 마치 너른 바다를 가르는 ‘배’처럼 나아간다. 갖은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을 거치더라도 속으로 든든히 배우고 받아들이고 삭이면서 반짝이는 슬기로 빛내게 마련이다. 배나무가 맺는 ‘배’라는 열매를 본다. 두툼하고 단단해 보이는 껍질이지만, 속은 더없이 하얗고 밝고 맑으면서 시원한데다가 달다. 우리가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길이란, 늘 새롭게 배우면서 바다 같고 바람 같은 숨빛을 맞아들이는 나날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어쩐지 요사이는 ‘배우’는 사람이 드물다. 일본말씨로 ‘공부(工夫)’를 할 뿐이요, ‘학습(學習)·학업(學業)·학문(學問)’이라고들 한다. 배워야 배게(배어들게) 마련이고, 배운 여러 살림을 차근차근 가다듬고 추스르고 다듬고 손보면서 ‘익히’ 수 있다. 여러 밥살림을 익히듯, 배움거리도 익힐 적에 비로소 어질게 스며서 슬기라는 빛으로 거듭난다. 배울 줄 알기에 가르치고, 가르치다 보면 새삼스레 배운다. 어른이라면 아이를 가르치면서 아이한테서 배운다. 아이라면 어른한테서 배우는 사이에 저절로 가르친다. 아이어른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살림길을 익힌다. 어우러지는 ‘가배(가르치다·배우다)’를 이루기에 하루를 일구면서 새빛을 익힌다. 셈겨룸(숫자전쟁·입시지옥)에 사로잡히는 굴레는 배움길하고 멀기에 익힘살림하고도 멀다. ‘배우다 = 배도록 하다 = 버릇 = 겉’이다. ‘익히다 = 익도록 하다 = 일 = 살림’이다. 한 걸음씩 내딛고 모든 하루를 돌아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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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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