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잠들려는 암사마귀하고
― 작은배움숲 6 ‘못난 나’를 토닥토닥
암사마귀 한 마리가 힘을 거의 못 쓰면서 몸을 흔들흔들합니다. 틀림없이 〈숲노래 책숲〉 안쪽 어느 책시렁에 알을 낳은 듯합니다. 아직 사마귀알집을 찾아내지 못 했습니다. 이제 막 낳은 알집이니, 이듬해 새봄에 깨어날 테고, 새봄까지 찾아내면 됩니다. 사마귀알집을 찾아내어야, 이 알집이 깨어날 첫봄 즈음에 풀밭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배가 홀쪽한 암사마귀하고 한참 눈을 맞추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운을 다한 나머지, 걷기도 서기도 힘들어 합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몸집으로 올봄에 깨어나서 첫가을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허물벗기를 하며 새몸으로 거듭났고, 마침내 알을 속으로 품고서 내놓았으니, 대견하게 한해살림을 해냈습니다.
힘없는 암사마귀를 풀밭 한켠에 옮겨주었습니다. 이 아이가 굳이 우리 책숲으로 들어와서 알을 낳을 까닭은 없지만, 엊그제 마을에서 풀베기를 엄청나게 해대었기에, 풀베는 소리라든지 사람들한테 놀란 탓에 알을 느긋이 낳을 곳을 못 찾았구나 싶어요. 윙윙윙 큰소리와 함께 사르르 무너지는 풀밭을 바라보던 암사마귀로서는, 쇳소리도 칼날도 없는 곳을 문득 찾아내었다고 느낍니다.
엊저녁에 이웃님 한 분이 들려주는 말씀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못 하고, 모자라고, 모르는’ 모습과 몸짓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힘들어하는 말씀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하룻내 곱씹었습니다. 작은시골 작은배움숲에서 작은말씨로 일구는 작은이야기를 들려주자고 여기면서 글월을 적어 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질게 다루면서 즐겁게 편다면, 우리 누구나 속에 깃든 넋을 깨워서 참하게 살림하는 하늘빛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언뜻선뜻 이때에는 이렇게 잘못하고, 저때에는 저렇게 넘어지고, 그때에는 그렇게 흔들린다고 느낄 수 있는데, 잘못하거나 넘어지거나 흔들려도 됩니다. 잘못하고 넘어지고 흔들리기에 배우거든요.
다치면 아프게 마련이고, 앓으면 고단하고 지치고 힘겹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프거나 앓기에 싫거나 미울 수 없습니다. 아프면서 배우고, 앓으면서 익히는 삶입니다. 아기가 목을 가누기까지 꽤 긴날을 들입니다. 하루아침에 목을 가누지 않아요. 더구나 갓난아기는 젖을 빨기까지도 한참 걸려요.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가 젖을 물린대서 바로 빨아먹지 못 합니다. 게다가 아기는 알맞게 젖을 빨아먹는 길을 모르는 나머지, 서두르다가 목에 걸린다든지 얹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버이는 천천히 토닥이면서 느긋이 먹으라고 다독입니다. 또한 젖을 다 먹은 아기를 어깨에 가만히 걸쳐서 등을 두들기지요. 아기가 트림을 할 때까지 토닥토닥합니다.
아기뿐 아니라, 아이일 적에도 으레 넘어지고 다치고 울면서 자랍니다. 모든 아이는 다치면서 큽니다. 어린이라는 길로 접어들고 푸름이라는 꽃으로 피어날 무렵에도 매한가지예요. 늘 다치고 아프고 앓는 나날을 맞아들입니다. 싫어할 일이 없고, 미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되면 되는 대로 반갑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고마운걸요. 모두 배움날이고 배움길이며 배움씨인데다가 배움빛이니까요.
나랑 네가 무엇을 못 하는지 느낄 수 있다면, 이미 하나부터 배웠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난 이럴 적에 이런 일을 참 못 하는구나!” 하고 배우고, “너는 이때에 이렇게까지 못 하네!” 하고 배웁니다. 모든 때에 배우는 줄 느낀다면, 싫거나 밉다는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할 적에 눈을 살며시 감고서 마음을 다독일 만해요. 서두르지 말자고, 섣불리 붙들지 말자고, 이 같은 일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배우며 노래할 만한지 헤아리자고, 천천히 혼잣말을 읊을 노릇입니다.
밥을 먹다가 목에 걸릴 적에는 뱉으면 돼요. 뱉어낸 밥찌꺼기는 행주나 걸레로 훔쳐서 치우면 되고요. 행주나 걸레는 빨래해서 물을 짜고 말리면 되지요. 그러니까 나쁘거나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그저 차근차근 하나씩 하면 됩니다. 쌈지를 길에 흘려서 잃었으면, 쌈지를 새로 짓거나 장만하면 되고, 잃은 돈은 다시 일해서 벌면 됩니다. 늘 이뿐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다 읽고서 마지막 쪽을 덮으면 그야말로 아쉽습니다. 그러나 아쉽다고 여기기에 아름책을 나중에 새롭게 읽어요. 애벌로 읽고 그칠 아름책이 아니기에, 두벌읽기에 석벌읽기를 지나서 열벌읽기에 스무벌읽기로 잇습니다. 마침내 온벌읽기(100번째 독서)에 이를 만하고, 두온읽기(200번째 독서)도 할 수 있어요. 온누리 모든 어린이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적어도 즈믄읽기(1000번째 독서)를 합니다. 두즈믄읽기를 하는 어린이가 흔합니다. 어린이는 으레 마르고 닳도록 한 가지 책에 꽂혀서 내내 되읽기를 하는데, ‘낡고 닳은 책’은 고이 모셔 놓고서 ‘똑같은 새책’을 장만해서 ‘끝없는 되읽기’를 하기를 바랍니다. 즐기고 배우면서 온마음이 자라기에 온읽기와 즈믄읽기를 가뿐히 하는 어린이입니다.
기쁘게 읽을 때뿐 아니라, 슬프게 배울 적에도 다시금 기꺼이 맞아들이려는 마음이면 넉넉하구나 싶어요. 오늘 한끼를 배불리 먹었기에 이튿날 굶거나 열흘쯤 안 먹어도 되지는 않아요. 다만, 어느 분은 ‘열흘한끼’로 배부를 수 있습니다. 어느 분은 ‘하루두끼’나 ‘하루석끼’여야 배부를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끼니를 잇고 누리면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배울 적에도 “저 사람은 저렇게 하루아침에 깨닫듯 배우는데, 난 왜 서른 해가 넘도록 못 깨닫지?” 하고 푸념할 일이 없습니다. 마흔 해째에 깨달을 수 있고, 예순 해째에 깨달을 수 있거든요.
나 스스로 모자란 줄 느끼는 일이란, 나 스스로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나부터 품지 못 하는 줄 알아챈 일이란, 나 스스로 곱게 품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노래하려는 첫발을 뗀 몸짓이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발짝을 내딛으면 되고, 하루하루 차근차근 이을 삶이라고 봅니다.
서로서로 무엇을 못 하거나 미루거나 못마땅하거나 모자란지, 그저 느긋하면서 즐겁게 웃는 말씨로 나눌 노릇이라고 느껴요. 짜증을 내거나 불타오르면서 “넌 왜 이렇게 못 해?” 하고 따지면 불바다(전쟁)입니다. 여태 서로서로 불바다로 손가락질을 해왔다면, 이제는 서로서로 파란하늘을 담은 파란바다와 같이, 찰랑찰랑 노랫가락을 담은 말소리로 “내가 보기에 너는 이럴 적에 좀 못 하는 듯하더라. 넌 왜 이럴 적에 좀 못 한다고 느껴?” 하고 말을 걸고서 어떻게 대꾸할는지 기다릴 만합니다.
말을 나누는 일이란 마음을 나누는 길이고, 마음을 나누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 언제나 씨앗 한 톨을 말씨로 고이 묻어서 그대로 가꾸어서 빛내는 하루라고 봐요. 함께 살림하는 살림말을 살피고, 함께 생각하는 생각말을 가다듬고, 함께 사랑하는 사랑말을 혀끝과 손끝에 얹자고 여기면, 어느새 내 목소리와 눈길과 몸짓이 참하게 나무 한 그루처럼 서는 줄 느낄 만해요. 이윽고 내 목소리와 눈길과 몸짓은 착하게 나비 한 마리처럼 나풀거리는 줄 느껴요. 이제 내 목소리와 눈길과 몸짓은 차오르는 별빛 한 줄기처럼 흐르는 줄 느낄 테고요.
어떤 일을 잘 해냈다고 할 적에도 서로 북돋우고 말을 나눌 일입니다. 어떤 일을 못 해낸다고 할 적에도 서로 토닥이고 말을 주고받을 일입니다. 그저 모든 하루는 스스로 배우고 나란히 배우면서 서로서로 가르치는 이야기꽃입니다.
가을이 깊을수록 낮볕은 짧지만 마지막까지 따끈따끈 내리쬡니다. 가을이 깊어가니 밤이면 찬바람이 훅 번지면서 춥습니다. 〈숲노래 책숲〉 어느 곳에 잘 자리잡았을 사마귀알집과 긴긴 겨울을 포근하게 나자고 생각합니다. 꽃밭길도 길이고, 가시밭길도 길이니, 모든 길을 고스란히 ‘온길’로 여기면서 함께 나아갈 새길을 그립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