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토마토



  다달이 태어나는 작은책인 《월간 토마토》에 글을 실은 지 벌써 세 해가 지난다. 대전과 충청도 이야기를 아우르는 달책에는 글을 싣지만, 정작 전라남도나 전라북도 이야기를 아우르는 달책이나 새뜸(신문)에는 글을 아예 안 싣는다. 앞으로는 전라도 달책이나 새뜸에도 글을 보낼까 헤아리지만, 마음이나 눈을 끄는 곳을 아직 못 찾는다.


  《월간 토마토》는 처음 태어나던 무렵부터 지켜보았다. 책집마실을 가는 곳에 이 달책이 있으면 서서읽기를 하거나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었다. 이러다가 받아보기를 하자고 생각했고, 받아보기를 한참 하다가 서로돕기처럼 서로이바지를 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띄워 보았다.


  ‘서울달책(서울에서 나오는 잡지)’이라면 ‘서울밖’ 사람들이 글을 잔뜩 실으면서 ‘서울안’ 이야기가 푸짐할 수 있다. ‘부산달책’이라면 ‘부산밖’ 사람들이 글을 실컷 실으면서 ‘부산안’ 이야기가 넘실댈 수 있다. 모든 곳이 매한가지이다. 전남광주에서 나오는 새뜸이나 달책이라면 ‘전남광주밖’ 작은글꾼 목소리를 실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반짝인다고 느낀다.


  예부터 ‘우물개구리’란 말을 그냥 하지 않는다. 우물인 이곳도 늘 맑게 샘솟을 수 있는 길을 열면서, 우물을 둘러싼 너른들과 너른숲 모두 아우르는 눈길을 틔울 적에 싱그럽다. 이리하여 나는 ‘시골개구리’로 살아가려고 생각한다. ‘푸른개구리’라든지 ‘멧개구리’라든지 ‘숲개구리’라든지 ‘하늘개구리’ 같은 길을 그린다. 나부터 내가 깃든 터전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나를 둘러싼 뭇이웃이 살아가는 터전에 푸른씨앗을 푸른바람에 얹어서 띄우는 길을 걸어가는 셈이다.


  작은달책에 실린 글을 하나하나 읽는다. 요사이는 한 달에 하루씩 대전에서 ‘토읽(월간토마토 읽기모임)’이 있다는데, 그곳에 가서 ‘읽쓰(《월간 토마토》를 읽을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으나, 여태 날이 안 맞는다. 올해가 가기 앞서 ‘토읽’에 ‘읽쓰’로서 함께할 수 있으려나. 올해에 섣달까지도 날이 영 안 맞는다면, 새해에는 날이 맞을 수 있기를 빈다. 2026.9.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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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서울 한복판에 작은들 한 뙈기를

― 작은배움숲 5 들빛(ㄷ)에 띄우는(ㄸ) 틈새(ㅌ)



  틈틈이 나누는 글 한 자락은 스스로 돌보고 가꾸는 살뜰한 글씨(글씨앗)를 이루곤 합니다. 틈내어 들려주는 말 한 마디는 스스로 되새기고 일구는 알뜰한 말씨(말씨앗)로 잇습니다. 틈을 내기에 나부터 어떤 하루인지 알아보고, 틈을 내지 않기에 나부터 닫아걸면서 숨막힙니다.


  국립국어원은 틀린말(비표준어)이라 여기지만 ‘튿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서울말(표준어)은 ‘뜯다’라 하지요. 황해도 말씨가 남은 우리 할아버지(1985해 무렵 가심)도, 충청도 말씨가 흐르던 우리 어머니도, 어릴적에 마을(인천 중·동·남구)에서 마주한 아주머니나 아저씨나 또래나 언니오빠도 ‘튿다’라는 말을 으레 썼습니다. 쉰 해 남짓 살아오며 여러 고장 여러 이웃을 만나서 문득 “옆구리가 튿어졌어요” 하고 말하곤 하는데, ‘튿’이라는 말씨를 그대로 받아쓰거나 함께쓰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튿’을 처음 듣는다는 서울사람도 곧잘 만났습니다.


  우리말에서 ‘ㅌ’하고 ‘ㄸ’하고 ‘ㄷ’는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세기와 높낮이가 다를 뿐, ‘ㄷ·ㄸ·ㅌ’는 뿌리가 하나이면서 가지만 옆으로 다르게 뻗는다고 할 만합니다. ‘틈’과 ‘뜸’과 ‘듬’이 맞물립니다. 트고 틔우기에 드나들어요. 뜨고 띄우기에 새롭게 오가거나 나아갑니다. 눈을 들어서 봅니다. 눈을 뜨면서 보고요. 눈을 트면서 봐요.


  틈이 밭으면 바쁠 뿐 아니라 답답하고 지칩니다. 뜸을 들여야 밥과 국이 속으로 폭 익습니다. 들·들녘·들판은 온씨(온갖 풀꽃나무 씨앗)가 홀가분히 드나들면서 드넓게 이루는 땅이자 터입니다.


  얼핏 아주 조그맣게 난 곳인 ‘틈’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참말로 커다란 곳을 ‘틈’이라 하지 않습니다. 틈이 있어서 바깥바람이 들어오고, 틈이 나기에 새롭게 마음을 기울여서 일할 수 있으면서 만납니다. 틈이 없으니 서두르거나 허둥지둥합니다. 틈이라고 하는 ‘작은길’을 내려고 눈을 뜨면서 마음을 일으킬 적에는, 온숲과 온누리에 작은씨앗 한 톨을 심어서 차근차근 푸른숲으로 나아가듯,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일을 부드럽게 풀어가는 첫발을 이룹니다.


  빈틈이 없다고 여기니 단단합니다. 빈틈없이 막으니까 못 들어가요. ‘빈틈없다 = 물샐틈없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릇에 물을 담아서 마시려면 단단하게 닫아야 합니다. 물이 새는 틈이 있으면 물그릇으로 못 써요. 곧 ‘닫다 ≒ 담다’인 얼개입니다. ‘닫다·담다’는 비슷한말입니다. 단단히 닫아야 담을 수 있습니다. 틈이 있으면 스르르 새기에 못 담아요. 그런데 너무 단단히 닫아걸면 ‘담’이 되어요. 살림을 건사하려고 ‘담다’이지만,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돌라먹기를 하려는 ‘담(담벼락)’이란 무서운 돌더미입니다.


  틔우는 작은길이란, 서로 마음을 담아서 다가가고 다가오는 자리라고 할 만합니다. 조그맣게 틔우기에 바람과 햇볕이 드나들어요. 바람과 햇볕이 드나들고 빗물이 드리울 수 있기에 ‘들’이며, ‘들’은 ‘논밭’을 가리키는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씨앗이든 우리 손으로 심어서 돌볼 수 있는 푸른터가 ‘들’입니다.


  대여섯 달이 넘도록 틈틈이 〈숲노래 책숲〉을 추스릅니다. 전남 고흥에서 열여섯 해를 살아내는 올해(2026해)인데, 책숲(도서박물관)으로 삼는 작은배움터(폐교)를 더는 쓸 수 없다면 새터를 찾아서 새곳으로 떠나야 하는가 하고 한참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다시 생각합니다. 처음 전남 고흥에 깃든 예전(2011해)에 열여섯 달에 걸쳐서 먼지를 쓸고 곰팡이를 닦고 묵은냄새를 뺐습니다. 스무 해 즈음 닫힌 작은배움터는 그야말로 먼지판에 곰팡이판이었습니다.


  먼지는 열여섯 달 만에 걷었지만, 곰팡이를 마지막으로 걷어내기까지는 여섯 해쯤 걸렸습니다. 책꽂이에 곰팡이가 더 번지지 않기에 한숨을 돌렸지만, 그래도 곰팡이는 이따금 나뭇바닥에서 살며시 올라옵니다. 다시 쓸고닦고 바람길을 틔우면서 건사하는 나날인데, 앞으로 어떤 일을 맞이하든 처음 이곳에 깃들던 때처럼 큰쓸이(대청소)를 해봅니다. 모든 집일은 살림짓기를 하는 손길에서 비롯하듯, 〈숲노래 책숲〉이라고 하는 이곳도 비질과 걸레질을 비롯해서 차곡차곡 더 손끝을 보태어 가다듬고 갈무리하는 일부터 다시 펴려는 마음이랄까요.


  서울에 집이 모자라서 새로 지어야 한다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울에는 이미 집이 너무 많습니다. 서울에는 집이 모자라다기보다 ‘들’이 없고 ‘숲’이 모자랍니다. 서울사람은 서울에서 들(논밭)을 일구지 못 합니다. 서울 한복판은 땅값이 비싸니까 더 높이높이 치솟는 잿더미(시멘트 구조물)를 놓아야 한다고 여기더군요.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모든 잿더미(시멘트 구조물)는 되쓰지 못 합니다. 그저 쓰레기(건축폐기물)입니다. 올해에 쉰겹이나 일흔겹으로 높다랗게 올리더라도, 앞으로 쉰 해나 예순 해 뒤에는 어쩔 셈인지 헤아려야지요.


  나무 한 그루는 서른 해만 자라도 우거집니다. 나무 한 그루는 쉰 해만 자라도 아름드리로 뻗습니다. 나무를 잔뜩 심어야만 숲을 이루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쉰 해를 느긋이 자라면서 두온(200)이나 즈믄(1000)이라는 해를 느긋이 살아낼 수 있는 터일 적에 비로소 ‘마을’이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굴레(일제강점기)에 시달리면서 아름나무를 잔뜩 빼앗기고 잃었습니다. 잇달아 터진 한겨레싸움(한국전쟁)에서는 온나라 온숲이 망가지고 불타야 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떤 작은마을이어도 어귀에 아름드리로 나무가 여러 그루 우람하게 섰습니다. 또한 ‘숲정이’라는 오랜 낱말처럼, 모든 마을은 나무로 푸르게 감싸는 모습이었습니다.


  서울은 새집을 더 짓지 않아야 합니다. 서울은 ‘이미 있는 높은 잿집(아파트)’을 하나씩 허물어서 ‘즈믄해(1000년)를 살아낼 나무’가 자랄 푸른터로 돌릴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시골 작은마을에서 빈집을 고쳐서 느긋하면서 오붓하게 살아갈 보금자리라는 길을 함께 열 노릇이라고 봅니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나무를 돌보고 사랑하는 손길로 함께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크거나 넓다란 잿집이 아닌, 수수하고 조촐한 작은집에 마당과 뒤꼍과 뜨락을 함께 품으면서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푸른집’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틈을 내는 길을 생각할 때 아닐까요? 이제는 집마다 띄엄띄엄 떨어져서 사이에 나무가 우거지는 ‘푸른마을’로 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커다란 흙수레로 커다랗게 짓는 커다란 논밭이 아닌, 누구나 손으로 가볍게 일구어서 짓고 나누는 작은들(작은논밭)부터 서울 한복판에 들어서기를 빕니다.


  시골은 작은들을 없애면서 노래가 사라졌고, 노래가 사라지면서 어린이가 사라졌고, 어린이가 사라지면서 놀이가 사라졌습니다. 손으로 심고 가꾸고 지을 만한 땅뙈기를 모든 살림집이 누릴 때부터 어떤 새일(4차산업)도 즐겁게 싹틀 만합니다. ‘살림짓기’부터 집집마다 자리잡을 수 있어야 ‘서울쏠림’을 풀면서 온나라가 한마음 한뜻 한살림으로 나아갈 만하다고 봅니다. 별빛처럼 배롱배롱 밝은 배롱꽃이 얼추 온날(100일)째 피고 집니다. 배롱꽃과 누런들이 나란한 가을빛을 시골뿐 아니라 서울이웃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앞길을 그립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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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라이헤



  나스카 유적을 건사하는 길에 온삶을 바친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Grosse-Neumann 1903∼1998)’ 님이 있다. 이녁이 막바지삶을 보내던 끝자락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분이 쓴 책이 1999해 늦봄에 《나스카 유적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더라. 한글판이 갓 나오던 그무렵에는 이 책을 못 알아보았다. 어느 때라도 놓치는 책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면 사놓고서 잊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해 그즈음은 서울 이문동에서 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그야말로 가난 밑바닥을 신나게 누볐다. 새책은 엄두를 못 냈고, 헌책집에서 나달거리는 책만 골라서 겨우 사읽는데, 허름책 한 자락을 사기 앞서 말끔한 헌책을 스물∼서른 자락을 읽었다. 주머니가 가볍기에 서서읽기로 머리와 마음에 담으려 했다. 말끔책은 눈으로 읽고, 허름책은 집으로 데려가서 살살 손질하고서 두고두고 되읽었다.


  올해(2026) 첫달에 부산에서 《나스카 유적의 비밀》을 새로 만났다. 아무래도 낯익은 겉그림이다. 틀림없이 그동안 손에 쥐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제 처음 마주하는 책이라 여기면서 일곱 달째 야금야금 읽는다. 읽을수록 줄어드는 쪽이 아쉬워서 앞으로 슬그머니 돌아가기도 한다. 오늘은 읍내 나래터로 책을 부치러 나왔으니 길에서 ‘걷는읽기’를 한다. 걷는 내내 팔뚝에 땀방울이 솟는다. 이마에서 똑 떨어지는 땀방울이 책을 적신다.


  마리아 라이헤 같은 분은 온누리에 많다. 온사랑으로 온삶을 짓고서 온마음으로 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지. 또한, 이와 같은 길하고는 영 딴판인, 그러니까 사랑은 터럭만큼도 없을 뿐 아니라, 쳇바퀴인 삶에, 불타는 늪인 마음에다가, 하루가 지겹다고 여기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모든 ‘사랑’은 이분처럼 걷는 발걸음과 살림새일 테지. 우리는 두다리를 사랑하며 늘 걸을 수 있을까. 우리는 두눈을 사랑하며 늘 오롯이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두귀를 사랑하며 늘 귀담아들을 수 있을까. ‘두-’로 잇는 말씨를 하나하나 붙여쓰고 싶다. ‘두다리·두눈·두귀·두손·두발·두날개·두닝·두씨·두사람’처럼, 우리는 둘러보고 두레하는 ‘두빛’을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듯하기에 ‘두-’라는 말씨를 심고 싶다.


  노래책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를 새로 냈어도, 오늘 새삼스레 노래를 찬찬히 새롭게 쓴다. 읽고 살피고 쓰고 나눈다. 일하고 쉬고 빨래하고 씻고 눕는다. 잠자리랑 눈맞추고 별을 그리고 바람을 반긴다. 푸르게 돋아나는 잎이 곱게 깨어나는 꽃으로 잇더니, 알차게 여물며 새롭게 눈뜨는 씨앗과 열매로 나아간다.


  봄에도 여름에도 걷는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걷는다. 해날에도 비날에도 구름날에도 걷는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걷는다. 등짐과 책짐을 이고 지고 안고 품으면서 걷는다. 읽으면서 걷고, 걷다가 쓰고, 읽고 쓰느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발짝 내딛으면서 읽는다.


  작은아이한테 건넬 수박 한 덩이를 짊어진 등짐을 읍내 한켠에 내려놓고서 다리를 주무른다. 살짝 숨돌리며 땀을 훔친다. 등판에 흥건한 땀이 살짝 마를 즈음 집으로 간다. 느긋이 돌아가자. 한여름 무더위는 오늘도 즐겁다. 땀을 실컷 흘렸으니 샘물로 시원하게 씻고서 쉬자. 2026.7.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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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9.5.

숨은책 92


《지나온 歲月》

 이방자 글

 동서문화원

 1974.7.30.



  ‘이방자’라는 이름을 듣기 앞서 ‘자행회’라는 이름부터 들었습니다. 자행회는 별님(장애아)을 돕는 배움터입니다. 이곳에서 옮긴 《사과란 토끼야》라는 책이 있어요. 일본에서 별님을 슬기롭게 돕는 배움터 이야기를 다루지요. 팔지 않는 책으로 문득 나온 책인데, 헌책집에서 《사과란 토끼야》를 처음 만나서 읽은 뒤 알아보니, 우리나라 여러 열린배움터(대학교)에서 이 책을 떠서(복사) 길잡이책으로 삼더군요. 어느 날 이 책을 되살려 펴내겠다는 분이 있기에 빌려주었습니다만, 그분은 빌린 적 없다고 발뺌을 하셔서 그만 책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러구러 자행회에서 옮긴 여러 책을 하나둘 찾아서 읽다가 ‘이방자’라는 이름이 눈에 뜨였어요. 이이가 일본굴레이던 무렵 조선 임금과 짝을 맺으며 이 땅에 첫발을 디뎠다고 하더군요.이녁은 1945해 뒤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나 헤아리며 어느 스님을 찾아가서 말씀을 여쭈었답니다. 그때 스님은 “한겨레에 잘못을 비는 마음으로 별님을 돕는 일을 하라”고 넌지시 나무랐다더군요. 이 말씀을 곧장 따르지는 않았으나 열 몇 해를 묵은 뒤에 자행회를 열어서 오래도록 꾸리며 별빛길(장애인권 교육) 첫돌을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여러 나라지기와 ‘나라지기 곁님’은 어떤 길을 걸으려나요? 한껏 누린 달콤물을 사람들한테 돌려주는 길을 걷는지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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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9.3.

숨은책 1191


《디스이즈텍스트: 논픽션 북페어 디렉토리북》

 김미선·김애란·오주연·이나영·이송찬 엮음

 디스이즈텍스트 사무국

 2026.1.31.



  서울 한복판에 ‘알라딘집’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이틀(2026.1.31.∼2.1.) 동안 ‘this is text’라는 글잔치가 열린 적 있습니다. 시골내기로서는 그림떡 같은 자리였는데, 부산에서 서울마실을 한 이웃님 한 분이 《디스이즈텍스트: 논픽션 북페어 디렉토리북》을 하나 더 장만하셔서 고흥 책숲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먼발치에서 ‘오롯이글’로 ‘this is text’를 구경했습니다. 여러 펴냄터에서 엮음이로 일하는 손끝과 눈매를 어떻게 ‘글’로 담는지 헤아리는 징검돌 같구나 싶습니다. 다만, 좀더 느긋이 오래 이야기가 흐른 글을 엮으면 한결 나았을 텐데 싶더군요. 이만큼으로 나쁘지 않되, ‘오롯이글’을 얼마든지 넓고 깊으면서 즐겁게 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text’라는 낱말만 쓰임새가 넓거나 깊다고 잘못 여기는 듯합니다. ‘글’이라는 낱말도 쓰임새가 넓고 깊습니다. ‘그’를 밑동으로 ‘ㄹ’을 받침으로 붙인 뜻을 읽어내려는 엮음이는 보이지 않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글과 금과 그림은 어떻게 다르면서 닮을까요? 글과 그릇과 그루는 어떻게 다르면서 닿을까요? 모름지기 ‘말’이 있어야 글이 있습니다. 글을 읽고 익히며 이으려면 언제나 말부터 읽고 익히며 이을 노릇입니다. 말을 놓치거나 잊을 적에는 글이 따로 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널뛰게 마련입니다.


- this is text


+


너무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출판은 사실 매일이 환희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는 ‘우와’라는 감탄사를 달고 사는 직업이거든요. 기다리던 초고가 들어오는 순간, 디자이너님이 보내 주신 표지 시안을 처음 열어보는 순간, 원고가 종이에 찍혀 처음으로 ‘책’의 형태를 갖추는 순간, 편집의 매 단계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58쪽 (아르테 엮음이 최윤지)


제 연차 역시 5년인데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새내기예요

→ 저도 다섯해째인데 아직도 아주 많이 배우는 새내기예요

→ 저도 다섯해짬인데 아직도 무척 많이 배우는 새내기예요

88쪽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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