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전기삯



  지난달(2026.6.)에는 빛삯(전기세)을 내라는 알림글이 안 왔다. 그러려니 지나갔다. 이달(2026.7.)에는 빛삯을 내라는 알림글이 온다. 지지난달에는 110kw를 썼고, 지난달에는 108kw를 썼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빛삯이 1290원이라서 건너뛰었단다. 이달에 묶어서 내라는 알림글인데, 이달은 지난달보다 2kw를 덜 썼다고 하면서 이달 빛삯은 0원이라고 한다.


  우리집은 늘 쓰는 만큼 쓰는 터라 눈금이 오르내릴 일이 없다시피 한다. 그런데 어느 달에는 눈금이 170∼180kw까지 뛰어서 누가 우리집에 줄을 몰래 꽂고서 빼가나 싶어 아리송하기도 했다. 빨래틀조차 한 달에 다섯 판조차 안 쓰고서 손으로 빨래한다. 바람개비(선풍기)도 찬바람(에어컨)도 안 쓴다. 싱싱칸(냉장고)한테 셈틀(컴퓨터) 빼고는 빛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불은 켜되, 죽음불(led)이 아닌 알불(백열전구)을 쓰느라, 알불은 빛을 좀 먹기는 한다.


  나라에서 가난집(저소득층)에는 빛삯을 10000원쯤 보태 주기는 한다. 그래도 네 사람이 지내면서 0원이 나올 수 있구나. 요즈막에 빛삯을 매기는 눈금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알림그림을 봐도 잘 모르겠다. 손으로 설거지할 뿐, 그릇씻이(식기세척기)도 안 쓰니까. 보임틀(텔레비전)조차 두지 않으니까. 달구지(자동차)를 몰지 않고, 빛을 먹는 달구지나 두바퀴는 더더구나 쓸 일마저 없으니까.


  더 헤아리면, 우리집 네 사람은 꾸밈머리(ai)를 안 쓴다. 스스로 찾아보고 살펴본다. 손수 짓고 빚고 가꾼다. 나라에서는 꾸밈머리를 내세우는 길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큰소리를 내지만, 막상 꾸밈머리를 늘리거나 조각(반도체)을 더 많이 만들려고 하면, 그만큼 빛도 물도 땅도 더 망가뜨리고 헤프게 들이붓는 굴레로 치닫는다고 느낀다.


  종이책을 사읽으면 낮에 읽고 밤에 잔다. 종이책을 펼 적에는 빛을 안 먹는다. 꾸밈머리를 뒤적일수록 빛을 엄청나게 먹는다. 종이책을 뒤적여서 낱말을 헤아리고 줄거리를 짚으면, 그저 우리 손길과 눈길이 자라면서 마음도 생각도 꿈도 나란히 자랄 테지.


  더우면 부채를 쥐면 된다. 더우면 미닫이를 활짝 열면 된다. 더우면 나무를 심어서 푸르게 가꾸면 된다. 더우면 달구지를 치우고서 푸른뜰과 숲정이로 바꾸면 된다. 더우면 불을 다 끄고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된다. 더우면 손빨래를 하면 된다. 더우면 손으로 설거지를 하면 된다. 더우면 나무 곁에 보금자리를 두고서 나무바람을 마시면 된다. 더우면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서 산들바람을 부르면 된다. 2026.7.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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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7.4.

숨은책 1169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육부 엮음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1.3.1.첫/1995.3.1.중판



  1991해에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며 《사회·문화》에 《정치·경제》라는 갈래를 외워야 했습니다. 요즈음은 문과·이과로 다르게 배운다지만, 저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을 하나씩 다 외우면서 ‘고전문법·현대문법·문학·국어’를 따로 외웠습니다. 한 해에 넉 판 치르는 중간고사·기말고사는 달날∼흙날을 꽉꽉 채워서 스물두 갈래쯤 풀었습니다. 그때에나 이제에나 삶과 살림과 사랑에 이바지하는 갈래는 없지 싶습니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1991》를 보면, “단순하고 예외가 없는 자연 현상·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현상(6쪽)”이라든지 “새마을 사업으로 달라진 농촌의 모습(208쪽)”처럼 시골과 숲을 깔보면서 서울을 드높이고, 박정희·전두환 새마을운동을 추켜세우는 줄거리가 그득해요. 엉터리라 할 줄거리를 안 외우면 셈(시험점수)이 안 나옵니다. 까칠한 푸름이는 길잡이한테 “저기요, 숲(자연)이야말로 끝없이 바뀌면서 피어나고 흐르지 않나요? 서울(도시)이야말로 쳇바퀴처럼 똑같지 않나요?” 하고 여쭙니다. 이런 말을 여쭌들, 언제나 꿀밤이 돌아올 뿐이지만, 나라에서는 어린이와 푸름이를 길들이는 줄거리를 달달 외우는 틀을 세울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엉터리로 길들이는 배움터일까요? 이제는 숲과 집과 하늘과 별과 사람과 마을을 어질게 보며 함께 살피는 배움터일까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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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버스



  어제(2026.6.29.) 낮에 고흥읍에 다녀오려고 했다. 전남 고흥군에서 드디어 ‘고흥문화재단’을 차려서 첫발을 내딛는다고 하더라. 잔치마당으로 꾸리는 첫밗(출범식)이라 하기에, 우리집에서 옆마을로 논둑길을 따라 걸어가서 13:05 시골버스를 타고 나가면 되리라 보았다. 첫여름 뙤약볕을 신나게 쬐면서 논둑을 걷는다. 느긋이 나서는 길이라 책을 쥐며 걷는다. 온몸으로 여름볕을 받고, 눈을 거쳐 마음으로는 책을 읽는다. 논둑길을 따라서 옆마을에 닿을 동안 이럭저럭 ¼쯤 읽는다.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노래를 두 꼭지 쓴다. 버스가 아직 안 온다고 느끼며 책을 마저 읽는다. 책 한 자락을 ½ 즈음 읽을 때까지 버스는 안 온다. 이제 13:25. 와야 할 버스가 그냥 안 오는구나.


  첫밗잔치에는 손님이 많을 테니 나까지 안 가도 되리라. 그곳에 가는 이웃님한테 “저도 가려 했는데 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시골버스가 안 오네요. 하하. 마음으로만 갑니다.” 하고 이야기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논둑길에서는 다른 책을 꺼낸다. 아까 옆마을로 걸어갈 때보다 천천히 걷는다. 집으로 가는 논둑길에서 쥔 다른 책은 우리 마을 어귀에서 다 읽는다. 무럭무럭 푸르게 오르는 벼포기를 본다. 아직 풀죽임물이 번지지 않았으니, 논마다 소금쟁이가 실컷 쏘다닌다. 개구리가 폴짝 숨는다.


  집에 닿아 빨래를 하고, 씻고, 등허리를 펴고, 살짝 눈을 감는다. 저물녘에 눈을 뜨고서 빨래를 들이고 미역국을 데운다. 저녁에 저잣마실을 다녀오자고 여기면서,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18:50 시골버스를 탄다. 가볍게 저잣길을 거닐고서 읍내 버스나루로 간다. 낮에 읽던 책을 더 읽는다. 이제 20:00 시골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20:05를 지나도 없네. 뭐지? 읍내 버스나루 버스때(버스시간표)를 다시 들여다본다. 어라? 집으로 돌아갈 끝버스가 언제 20:00에서 19:40으로 바뀌었지?


  띵하다. 어디에도 알림글이 붙은 바 없이, 읍내 버스나로에 붙인 버스때에 조그마한 종이로 슬쩍 덧붙여서 “버스때를 몰래 바꾸었”네. 헛웃음이 나온다. 곰곰이 보면, 2011해부터 2026해에 이르는 동안, 버스때를 이리저리 바꾸거나 버스때가 아예 사라질 적에 마을알림을 한 적이 아예 없다. 그냥 쪽종이 하나를 손글씨로 덧붙여서 ‘바뀐 티’를 넌지시 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가 없으니 택시를 부른다. 등짐을 택시에 얹으니 홀가분할 수 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하루글을 쓴다. 오늘은 낮과 저녁에 잇달아 시골버스로 헛걸음을 한 셈일 텐데, 헛걸음이라기보다 ‘헛버스’이다. 고을(지자체)에서 주는 돈(세금)으로 시골버스를 꾸리면서 정작 시골사람 발 노릇을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벼슬(꽁무원)을 맡은 이는 시골버스를 아예 안 타다시피 하기에, 이런 민낯을 까맣게 모른다. 어쩌다가 이런 민낯을 보거나 듣더라도 시큰둥히 지나간다. 뭐, 헛버스를 기다리느라 책을 잔뜩 읽고 글을 꽤 썼다만. 2026.6.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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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6.29.

숨은책 1165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프란츠 카프카 글

 김윤섭 옮김

 덕문출판사

 1978.1.15.



  헌책집에서 곧잘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라는 책을 만나서 둘레에 건네다가 추송웅 님하고 함께 마당(연극무대)에 서며 땀흘린 분을 뵌 적 있습니다. 저는 책과 글로만 마주하던 사람과 삶인데, 추송웅 님을 ‘온몸으로 겪은 이웃님’ 손끝과 눈길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설레는 지난날을 듣던 자리는 기쁠 뿐 아니라 ‘씨앗이 잇는 길’을 알려준다고 느꼈습니다. ‘카프카’라는 이름과 발자취와 책을 사랑하는 이웃님이 계셔서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건넨 적이 있습니다. 여태 이 책을 딱 하루만 보았을 뿐, 이 책을 이웃님한테 드리고도 새로 장만할 길이 안 보입니다만, ‘책사랑이’보다는 ‘카프카사랑이’ 손에 깃드는 길이 낫다고 여겨요. 드문 헌책을 드리기 앞서 부리나케 읽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추송웅 〈빨간 피터의 고백〉”인 줄 문득 알아챘습니다. 그러니까 추송웅 님도 ‘카프카사랑이’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 대목까지 뒤늦게 알아채고서야 왜 1978해에 이 책이 나왔는지 알았어요. 추송웅 님이 1977해에 선보인 〈빨간 피터의 고백〉은 적잖은 사람들한테 너울을 일으켰어요. 카프카 책을 새로 옮겨서 펴낼 만큼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꽃이 피어난 셈입니다.


#Ein Bericht fur eine Akademie #FranzKafka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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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98 : 2 (+ 에어컨 없는 집)



  ‘온누리 찬바람 살림새(전세계 에어컨 보급률)’를 문득 보았다. 2023해로 놓고 볼 적에 우리나라는 ‘98%’가 찬바람(에어컨)을 집에 갖추었다고 한다. 이때 뒤로 세 해가 지났으니 99%까지 이르렀을 수 있고, 99.5%까지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값은 100%에 닿을 수는 없다. 우리집에는 찬바람을 안 놓으니까. 우리집에는 바람개비(선풍기)조차 안 놓으니까.


  한여름에 찬바람과 바람개비 없이 어찌 사느냐고 놀라거나 “미쳤어!” 하고 소리지르는 분이 많더라. 그러나 우리집은 따로 빛살(전기) 먹는 바람틀을 안 들여도 여름에 덥지 않다. 이따금 땀이 살짝 돋을 때가 있는데, 땀이 돋으면 샘물로 씻는다. 샘물은 얼음장 같다. 샘물로 씻고 나면 한나절이 서늘하다. 씻고 나서 땀이 또 돋으면 더 씻으면 된다. 손빨래를 하면 된다. 설거지를 해도 온몸이 시원하다.


  처음 시골집에 깃든 2011해에는 여름뿐 아니라 한봄에도 더웠다. 2011해에는 이미 봄부터 집안이 31℃를 넘기더라. 그때에는 왜 이렇게 펄펄 끓었겠는가. 바로 살림집을 둘러싼 나무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해에 가끔 가지치기를 아주 살짝 할 뿐, 나무가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도록 지켜보고 돌아본다. 가지나 줄기를 함부로 쳐서 열매를 더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다리를 대어 오르거나, 그냥 나무타기를 하며 열매와 꽃을 딴다. 우듬지에 맺는 열매는 새한테 베푼다.


  해마다 나무가 우거질수록 집안은 덜 덥더라. 여름에 35℃까지 오르던 집안이었으나 33℃에 31℃에 29℃로 떨어지나더니, 이제는 한여름에 27℃ 즈음에서 더 오르지 않으며, 요사이는 24∼26℃ 사이였고, 여름밤에는 23℃ 안팎이다. 한겨울에도 14℃ 밑으로 안 떨어진다. 겨울에도 낮이면 17℃ 안팎이다. 올해에는 우리집 마당에 우거진 후박나무 가지를 조금 쳤다. 마당과 바깥닫이 사이를 오갈 길을 내려고 살짝 잘랐다. 이렇게 길을 트고 보니, 마당과 바깥닫이 사이를 오갈 적마다 나무 밑에서 푸른그늘을 한바탕 누린다. 큰나무가 포근히 품는 푸른숨을 그저 집에서 넉넉히 누린다. 마당도 뒤꼍도 옆밭도 나무가 차츰 자라면서 뙤약볕과 눈바람을 모두 가려 준다.


  우리나라 집집마다 찬바람(에어컨)을 98%나 들였다고 할 적에는 98%에 이르는 집이 “나무 없이 매몰찬 수렁에 잠겼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나무가 잘 자라서 푸른바람을 넉넉히 베푸는 곳이라면 바람개비조차 쓸 일이 없다. 부채질조차 할 일이 없다. 그래, 올해에는 우리집에서 부채질조차 안 하면서 지낸다. 다만, 셈틀을 켜서 일할 적에는 ‘나(사람)’한테 부채질을 안 하되, 셈틀(컴퓨터)이 애써 주기 때문에 셈틀더러 몸(하드디스크)을 식히라고 부채질을 한다.


  ‘98 : 2’라는, 또는 ‘99.5 : 0.5’라는, 더없이 슬픈 값을 우리 스스로 뒤바꿀 수 있기를 빈다. 모든 집에서 찬바람을 확 걷어치우고서 “나무를 심는 마당을 누리는 작은집이나 시골집이나 골목집”으로 살림터를 옮길 수 있기를 빈다. 집집마다 나무를 적어도 다섯 그루씩 건사하면 된다. 시원한 여름과 포근한 겨울을 바란다면 집집마다 나무를 적어도 열 그루씩 품으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시멘트덩이’로 세우는 돈판(부동산)이 아닌, 나무를 엮고 맞춰서 세우는 작은집으로 바꾸어 가기를 빈다. 나무로 집을 짓고서 둘레를 나무로 감싸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가 늘어나야 이 나라 앞길이 푸르게 빛난다. 2026.6.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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