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7


《轉換時代의 論理》

 리영희 글

 창작과비평사

 1974.6.5.



  ‘책낯을 종이로 싸서 가리기’는 책이 손때를 덜 타도록 간수하여 두고두고 아끼려는 뜻 말고 더 있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나라지기 노릇을 하던 무렵에는, 또 그 뒤를 이은 여러 나라지기가 있던 무렵에도, ‘책에 빨간띠’를 그어서 짓밟거나 억누른 줄 내내 몰랐어요. 배움터나 마을에서 이 대목을 알려주거나 가르친 일이 없으니, 여느 새책집만 다녀서는 알 길이 없겠지요. 덧배움(보충수업)을 몰래 빠져나와 헌책집을 드나들던 열아홉 살 무렵, 헌책집 지기한테 “저기 이 책은 왜 이렇게 겉을 가렸나요?” 하고 여쭈었어요. “아, 모르나? 잡아가잖아. 미친 나라이지. 책을 책으로 읽지 않으니. 경찰들이 한 해에 두 번씩 헌책방에 나와서 불온도서가 있는지를 살펴. 경찰은 한눈에 알 수 있거든. 그들이 와서 ‘이런 책 팔면 안 됩니다’ 하고 말해. 그러면 정중하게 ‘그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이 나라가 정상으로 갑니까?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보고 도리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지.” 책이름을 가린 《轉換時代의 論理》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자취를 보니 ‘1975.7.1. 4판 1300원’으로 찍은 자리에 ‘1976.10.15. 6판 1700원’이라 찍은 종이를 덧대었네요. 뭐, 워낙 살림값이 치솟긴 했다지만 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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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7


《人間의 壁 中編》

 石川達三

 육순복 옮김

 보성사

 1962.3.1.



  스물다섯 살 무렵일 즈음, 군대도 다녀오고 책마을 일꾼으로 지내다가 어느덧 어린이말꽃(어린이 국어사전) 엮음이로 일할 때, 인천 배다리 헌책집 아주머니가 “그런데 자네 《인간의 길》이라는 책 읽어 봤나? 다른 책도 많이 읽는 줄 알지만, 그 책부터 좀 읽어 보면 어떨까?” 하셨어요. 요새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인간의 길》은 열 자락으로 나온 꽤 긴 책이요, 일본이 여러 나라를 짓밟을 적에 ‘그 일본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멍울과 생채기’를 붙안는 사람이 어떤 마음앓이를 치르는가를 담습니다. 그런데 헌책집지기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인간의 벽》이란 책을 찾아서 읽었지요. 이러고서 “이 책 말씀하셨지요? 참 아름답던데요?” 하니 “아니, 난 ‘벽’이 아니고 ‘길’을 말했는데 …….” “네? 어, 다른 책이 있나요?” “그래, 그런데 ‘벽’도 ‘길’처럼 아름다운 책이지.” 책이름을 잘못 알아듣고서 ‘이시카와 다쓰조(1905∼1985)’를 만났어요. 책이름을 제대로 들었다면 아마 못 만났거나, 한울림에서 1984년에 새로 옮긴 책이나, 양철북에서 2011년 다시 옮긴 책을 만났겠지요. 1965년 일이 있기 앞서까지 아름다운 일본 글이 이 나라에 무척 많이 나왔다가 1980년에 이르도록 꽉 막혔어요. 갑갑한 나라였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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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6


《노란 손수건》

 오천석 엮음

 샘터

 1975.12.5.



  2007년에 200벌을 찍었다는 《노란 손수건》인데, 펴낸곳에서 말하기를 1977년에 처음 냈다고 하더군요. 꽤 아리송합니다. 제가 장만해서 읽은 《노란 손수건》은 1975년에 780원으로 값을 매겨 나온 검파란 빛깔인 책이거든요. ‘샘터’는 노란 빛깔인 겉그림으로도 《노란 손수건》을 내놓았지만 검파란 빛깔로도 《노란 손수건》을 내놓았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사랑을》이란 책도 검파란 빛깔로 1975년 12월 5일에 나란히 펴냈습니다. 어쩌면 펴낸곳에 이 첫판이 없는지 모릅니다. 노란 빛깔로 낸 첫판은 있되, 검파란 빛깔로 낸 첫판은 건사하지 않거나 못했을 수 있어요. 가만 보면 웬만한 곳마다 따로 발자취를 건사하지 않거나 못합니다. 바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뿐 아니라, 일터를 옮기다 보면 잃기도 하고, 책을 알리고 파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느라, 정작 그동안 흘린 땀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 발자취는 일꾼이 나가고 나면 모두 지워지기 마련이라, 누가 언제 어떤 책을 엮고 꾸미고 알리며 팔았는가도 모르기 일쑤이지요. 함께 일한 사람들이 쓰던 이름쪽(명함)을 알뜰히 건사해서 ‘펴낸곳 발자취’로 갈무리하는 손길이 있을까요? 200벌을 찍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손길이 깃들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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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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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4


《자전거 B.전문가》

 이방황 글·사진

 이방황

 2019.11.25.



  어린이일 적에는 달림이(자전거)를 타고서 배움터를 다닌다는 생각을 아예 못 했습니다. 배움터에는 달림이를 둘 자리가 없었을 뿐더러, 제 달림이가 멀쩡할 턱이 없으리라 여겼어요. 푸름이일 적에는 걸으면서도 책을 읽고 살던 터라 자전거를 달릴 겨를이 없고, 새뜸(신문)을 돌리는 곁일을 할 적에는 두 다리로 달렸어요. 스무 살부터 새뜸돌리기(신문배달)를 밥벌이로 삼으며 달림이는 저한테 새로운 다리가 되었습니다. 비눈바람 모두 거뜬히 맞아들이며 즐거웠어요. 《자전거 B.전문가》를 보면서 ‘B.전문가’도 ‘A.전문가’도 ‘C.전문가’도 아닌 ‘꽃달림이’나 ‘노래달림이’나 ‘바람달림이’로 지내면 더없이 즐거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잘 타야 하지 않아요. 멋있게 달려야 하지 않아요. 오래 달려야 하지도 않고, 늘 달려야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을 사랑하고 온몸을 아끼며 이 땅을 돌보고픈 눈길이며 손길이며 발길이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한겨울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달림이를 몰면 “안 추워요? 보기만 해도 추운데?”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만, “같이 달려 보시겠어요? 달려 보시면 안 추워요. 땀이 신나게 흐르지요. 재미있어요.” 하고 대꾸합니다. 두 다리를 잊거나 멀리하면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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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3


《싸우는 아이》

 손창섭 글

 새벗

 1989.12.30.



  푸름이일 적에는 몰랐지만, 책을 내놓은 사람이라면 으레 ‘글을 숱하게 고칩’니다. 책이 나왔어도 고치지요. 이를 따박따박 밝히기도 하지만 굳이 안 밝히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책짓기를 잘 모르던 어린 나날에는 ‘책으로 나올 때까지 손질이 안 끝날 수 있나?’ 하고 여겼으나, 막상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자리에 서고 보니 ‘책이 나오기 무섭게’ 손보고 싶은 데가 보이기 마련이더군요. 출판사에 꾸러미를 넘길 때에는 그때까지 익힌 가장 빛나는 글일 테지만, 그 뒤 책이 나오는 사이 새로 익히고 가다듬은 삶이 있으니 ‘조금 더 보태거나 덜면 좋겠는걸’ 싶은 데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최인훈 님이 《광장》을 숱하게 고쳐썼대서 헌책집을 뒤지며 갖은 판을 챙겨서 읽었으나 엇비슷하더군요. 이녁 글손질은 겉멋 같았습니다. 이와 달리 《잉여인간》을 쓰기도 한 손창섭 님은 조용히 이 나라를 떠나고 붓까지 꺾으셨는데, 어쩜 이리 빛나는 속살림이 흐르나 싶어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글이 쉬웠고 어린이한테도 글을 남겼지요. 손창섭 님 동화는 뒤늦게 책으로 나왔고, 2001년에 ‘우리교육’에서 새옷을 입혔습니다. 의젓하게 살도록, 스스로 사랑하도록, 눈치 아닌 마음을 보며 꿈꾸도록 글빛을 가꾸셨더군요. 고마운 글어른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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