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8.14.
숨은책 975
《가난한 마음》
김영교 글
성바오로출판사
1979.11.15.
가난한 사람은 예나 이제나 있습니다. 일하지 않거나 땀흘리지 않기에 가난하지 않습니다. 착하게 일하거나 반듯하게 땀흘리는 사람일수록 거꾸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안 착하거나 안 반듯할 적에 외려 가멸차게 지내는 나라이고요. 서울내기는 ‘풀죽임물·죽음거름’을 안 쓴 낟알·열매·남새를 바랄 텐데, 정작 이 나라 모든 시골은 ‘풀죽임물·죽음거름’을 부추깁니다. 죽임물에 죽음거름을 안 쓴다든지, 흙수레(농기계)를 안 거느리려고 하는 작은밭은 가볍게 따돌립니다. 가난하다면 “밖에서 술먹는 일”이 없이 “집에서 조용히 먹”거나 안 먹어요. 누가 술지랄(음주운전)을 할까요? “안 가난”한 이들이 술지랄이고, “안 가난”한 이들이 노닥술집(단란주점)을 옆에 낍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마음》 같은 책을 어렵잖이 만났습니다. 높자리를 손사래치면서 마을 한켠에서 조촐히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작은일꾼이 차츰 사라집니다. 요새 누가 걷는가요? 몸매를 가꾸려고 걷거나 달리는 일이 아닌, 종이(면허증·자격증) 없이 걷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가요? 가난하더라도 눈이 좁은 사람이 있을 테지만, 안 가난한 탓에 눈이 좁을 뿐 아니라, 눈감고 등돌리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이 나라는 안 가난해요. 그저 도둑이 많습니다.
ㅍㄹㄴ
교회와 사제관이 현대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가는 중에 가난하고 무력한 노동자·농민들에겐 그것들이 자신과는 먼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본당의 운영과 살림을 맡은 사람들의 눈에도 초라한 차림들보다는 경제적 기반을 가진 인사들의 발걸음이 훨씬 더 반가왔을 게다. (181쪽)
교회의 큰 병원들이 구호를 위하여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도 그를 가난한 이의 구호기관으로 하려는 자세는 되어 있지 않다. 학교처럼 수익성이 없고, 까다로운 일에는 손을 안 대는 게 상책이라는 소극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 하느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게 원칙이라고 외치면서도 교회 자신은 가난한 이를 위한 구호비로 십일조를 떼어놓지 않는 모순 속에 빠져 있다 …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선 거짓말이다. 풍부할 때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영영 남을 도울 수 없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가난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18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