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발닿는 곳으로 들락날락 책숲을

― 작은배움숲 8 마을에 나무와 어린이를



  부산으로 이야기마실을 다녀왔습니다. 고흥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로 고흥교육장이 된 분한테 찾아가서 손글(손편지)을 건네었습니다. 다만, 새 교육장님은 고흥교육지원청에 안 계셔서 곁일꾼(비서)한테 맡겼습니다. 이러고서 이튿날은 고흥 어린이하고 글놀이꽃(시쓰기 수업)을 폈고, 오늘에서야 겨우 숨돌립니다.


  새로 장만한 책을 주섬주섬 꾸려서 우리 〈숲노래 책숲〉으로 나릅니다. 누렇게 물결치는 가을들을 바라보면서 먼고을 이웃님이 마주하는 책살림을 헤아립니다. 부산에서는 ‘구’를 넘어서 ‘동’에까지 부산시에서 꾸리는 책놀이터(도서문화예술공간)를 늘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서울은 이미 어느 마을에서나 가볍게 거닐며 드나들 작은책숲이 무척 많다지요. ‘살림꽃(문화도시)’이기를 바라는 부산이기에, ‘들락날락’이라는 이름으로 책놀이터를 늘리는구나 싶은데, 전남광주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무척 오래도록 시골에는 책숲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러다가 읍내에 ‘군립도서관’이 태어납니다. 읍이 둘이 있는 군이라면 더 큰 읍에 먼저 하나 열고, 한참 뒤에 다른 읍에 하나 엽니다. 군에서는 책숲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기 일쑤였으나, 이럭저럭 긴 나날이 흐른 끝에 작은책숲이 면에도 하나둘 엽니다. 다만 시골 면에서 여는 작은책숲은 서울에 있는 동이나 아파트에서 여는 작은책숲에 대면 아주 조그맣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철마다 다른 시골빛을 누리는 아이어른을 만나기는 안 쉽습니다. 오히려 서울사람이 철마다 다른 숲빛을 누리거나 느끼려고 애쓰는 듯합니다. 읍내에 사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외려 서울아이보다 들살림을 모르기 일쑤요, 면소재지에 사는 어린이와 푸름이도 서울아이보다 멧살림이나 바다살림을 모르기까지 합니다. 이미 시골배움터는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뿐 아니라 ‘서울에 가서 신호등에 따라 건널목 건너기’라든지 ‘에스컬레이터 타기’라든지 ‘지하철 타기’라든지 ‘버스 갈아타기’를 미리 일러주고서 ‘해보기(수학여행으로 체험학습)’를 시키는 얼개라고도 할 만합니다.


  시골이라면 철마다 다를 뿐 아니라 달마다 다른 해바람비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아직 이렇게 들려주거나 배우는 길은 없다시피 합니다. 따로 ‘작은배움숲(학교 밖 학교)’을 꾸리지 않고서야 첫봄해와 첫가을해가 어찌 다른지 알려주기란 어렵습니다. 한봄비와 한가을비는 어찌 다른지 들려주려면, 늦봄밤과 늦가을밤은 또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려면, 그냥그냥 흘러가는 ‘서울바라기 제도권교육’으로는 하나도 못 합니다.


  왜 자꾸 시골은 줄어들 뿐 아니라 사라지려 하는지 돌아보기에는 한참 늦은 듯합니다. 그러나 한참 늦었어도 이제라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짚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사람도 일터도 돈도 서울에 몰렸고, 펴냄터도 책도 서울에 넘칩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에 책집이 없으니 누리책집으로 시켜서 책을 사읽게 마련인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책을 사읽는 사람도 대단히 적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이미 가을빛과 겨울빛부터 읽지 않는 터라 책빛도 시큰둥할 만합니다. 여름빛과 봄빛을 반기려는 마음이 스러진다면, 애써 주머니를 헐어서 책을 사읽으려는 마음도 없을 테고요.


  요즈음은 시골 읍내나 배움터에서 마련하는 책숲도 꽤 크고 책도 제법 갖춥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왜 이곳인지” 짚거나 다루는 책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흥군이라면 고흥군이 왜 ‘고흥’이며, 이곳에서 어떻게 살림을 지으면서 푸른빛을 누리고 품고 나눌 만한지 들려주는 책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 고을책숲(지역도서관)은 고을지기(지역작가)가 쓴 책을 앞장서서 알리기도 하고 읽히기도 할 뿐 아니라, ‘서울바라기’를 멈추고서 ‘마을바라기’를 하자는 뜻을 넓힙니다. 이와 달리 아름다운 들숲메바다를 품은 시골일수록 ‘관광객’과 ‘기업유치’와 ‘개발투자’에 얽매일 뿐, 막상 이곳 시골에서 나고자란 어린이와 푸름이가 이곳을 사랑하며 살림하는 길을 들려주고 알려주고 배우면서 함께 일굴 이야기는 없다시피 합니다.


  무엇을 사랑할 만한지 이야기하지 못 하면서 ‘관광객’과 ‘대형 토목사업’에 치우치는 행정이라면 ‘지자체’를 하는 뜻이 있을까요?


  서울 영천동 영천시장 끝자락에 〈골목책방〉이라는 마을책집이 있었습니다. 1970해부터 2021해까지 하루조차 안 쉬면서 책집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쉰 해 남짓 책빛을 일군 셈입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책마실을 다녀온 때가 2017해였지 싶습니다. 그 뒤로는 좀처럼 발걸음을 못 했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마실이란 멀거든요. 이러다가 〈골목책방〉 아주머니가 전화로 책집을 닫는다고 알려주셔서 마지막길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우리 책숲을 추스르다가 한참 앞서 〈골목책방〉 아저씨가 고흥으로 보낸 꾸러미를 보았습니다. 되도록 안 버리고 모으다 보니, 책짐을 받을 적에도 빈 꾸러미(상자)를 포개어서 건사하곤 합니다. 빈 꾸러미 한켠에는 〈골목책방〉 아저씨가 슥슥 적은 손글씨가 고스란합니다. 손글씨가 남은 곳을 잘라서 쓰다듬습니다. 저는 “쉰 해 남짓 땀흘리다가 흙으로 돌아간 작은책집 일꾼이 남긴 손글씨 한 자락”도 길(역사)이라고 느낍니다. 누가 책(역사문서)으로 이런 손글씨를 남기지는 않을 테지만, 우리가 날마다 짓는 모든 살림살이야말로 우리 스스로 이루고 일구는 빛이요 씨앗이라고 여깁니다.


  부산시에서 꾀하는 ‘들락날락’처럼 전남광주 작은시골 작은마을마다 ‘작은배움숲’이 싹틀 수 있으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고흥군 도화면 시골마을 한켠에서 폐교인 흥양초를 〈숲노래 책숲〉으로 살려쓰듯, 다른 이웃님은 다른 마을에서 폐교를 빌려서 책숲이며 배움숲이며 노래숲이며 이야기숲이며 그림숲으로 살릴 만합니다. 빈집이나 헛간을 살려서 이음숲을 꾸릴 만합니다.


  목돈을 들이는 토목사업이 아닙니다. 더 크거나 멋지게 세울 학교나 아트센터도 아닙니다. 작은마을에 작은책숲이 있으면 됩니다. 마을을 둘러싼 들과 숲과 메와 바다를 아우르면서 배우고, 우리가 두고두고 남기는 작은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배우는 터전을 열면 됩니다.


  시골에서 여러 배움터를 묶으면(통폐합) 100억이니 200억이니 나라에서 내려준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만, 시골에 있는 여러 배움터를 자꾸 없애면서 읍내로 쏠리는 얼개로 뻗으면, 읍내 배움터도 머잖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면소재지 배움터’는 ‘읍내 배움터’로 빠져나간다면, ‘읍내 배움터’는 ‘서울 배움터’로 빠져나가거든요. 이렇게 빠져나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다시 시골로 돌아올 마음이 없기 일쑤입니다. 나고자라는 시골에서 “시골이 왜 푸른터요 아름터인지 듣거나 겪거나 배운 바가 없다”면,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거나 일자리를 얻은 뒤에 굳이 시골로 돌아갈 까닭을 하나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바람이 들락날락 흐르는 틈이 있기에 모든 숨붙이가 싱그럽습니다. 햇볕이 들락거릴 틈새가 있기에 모든 씨앗이 싹틉니다. 빗물이 스며들 틈이 있기에 나무가 자라서 푸르게 우거집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해바람비라고 하는 푸른빛을 한복판에 두고서 ‘푸른바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마을과 고을이 저마다 알맞게 흐르면서 어울리고 만날 때라야, 서울도 알맞게 몸집을 줄이면서 넉넉히 어울리는 한나라 한살림 한노래로 피어나리라고 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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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9


1994년에 ‘새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이 이름을 듣지만, 그무렵에는 낯설었는데, “새내기 새로 배움터”를 줄인 낱말이라고 하더라.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나 ‘신입생 환영회·교육회’를 우리 나름대로 풀어낸 얼개이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땀흘려 맨손으로 새로 일군 터전을 ‘새말·새마을·새골·새고을·새터’라 한다. 여러모로 보면 시골마을 이름에서 살며시 딴, 또는 시골마을 이름을 새롭게 살린, 함께 즐겁게 어울리자는 뜻을 품은 ‘새터’라고도 여길 만하다.



산들바람 선들바람

우리말은 ‘ㅏ·ㅓ’하고 ‘ㅗ·ㅜ’가 늘 맞물린다. ‘산들바람’이 있으면 ‘선들바람’이 있다. 사람들은 으레 ‘선선하다·서늘하다’만 쓰지만, ‘산산하다·사늘하다’라는 우리말이 있다. ‘사늘하다’를 세게 나타내니 ‘싸늘하다’이다. ‘산들바람’이라면 산산히 드나드는 바람이다. ‘선들바람’이라면 선선히 드나드는 바람이다. 산들바람 같은 매무새에 말씨이기에 ‘사근사근’하다. 선들바람 같은 몸짓에 말결이라서 ‘서글서글’하다. ‘산들·선들’은 그냥 가볍거나 그냥 시원하기만 한 바람이지 않다.


산들바람 (산들 + 바람) = 산산하다 : 1. 산산하다고 느낄 만큼 부는 바람. 보드라우면서 가볍게 감싸듯 시원한 바람. 2. 마음·몸짓·말글·모습이 보드라우면서 가볍게 감싸듯 마주하거나 다가오다.


선들바람 (선들 + 바람) = 선선하다 : 1. 선선하다고 느낄 만큼 부는 바람. 부드라우면서 조금 가볍게 감싸듯 시원한 바람. 2. 마음·몸짓·말글·모습이 부드러우면서 퍽 가볍게 감싸듯 마주하거나 다가오다. 거칠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다.



하얀눈이

독일 옛이야기에 나오는 ‘Schneeweisschen’을 영어로는 ‘Snow White’로 적는다. 이 말씨를 일본에서는 ‘しらゆきひめ(白雪姬·白雪公主)’로 옮겼다. 우리는 일본말씨를 그대로 소리만 따서 ‘백설공주’라 쓰는데, 이제는 독일말 ‘Schneeweisschen’과 영어 ‘Snow White’를 우리말씨로 가만히 풀어서 ‘하얀눈이’로 쓸 만하다. ‘하얀눈꽃’이나 ‘흰눈꽃’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린다.


하얀눈이 (하얗다 + -ㄴ + 눈 + -이) : 얼굴빛과 살빛이 겨울눈처럼 하얀 사람. 《그림 동화》에 담긴 독일 옛이야기에 나오는 아가씨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 하얀눈꽃·흰눈꽃. ← 백설공주白雪公主)



온누리

따로 낱말책에 없지만, 일찍부터 누구나 흔히 쓰던 낱말 가운데 ‘온누리’하고 ‘온나라’가 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안 실렸으니 ‘온 누리’나 ‘온 나라’처럼 띄어야 할까? 아니면 ‘온마리·온바탕·온몸·온통’처럼 붙여쓰기를 해야 어울릴까? 우리는 붙여쓰기를 할 노릇이다. 낱말책이 없던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온마음·온몸·온마을’을 그저 한 낱말처럼 삼았다. 우리나라 낱말책은 ‘온누리·온나라’뿐 아니라 ‘온마음·온마을’조차 아직 올림말로 못 다룬다. 이제는 ‘온’을 오롯이 볼 노릇이다. 온빛과 온꽃을 보고, 온말과 온글을 보며, 온숨과 온나무를 품을 노릇이다.


온누리 (온 + 누리) : 1. 모든 숨결이 함께 있고 어울리고 살고 지내는 곳. (← 우주, 세상, 세계) 2. 우리가 살아가는 별에 있는 모든 나라. (← 전세계, 지구, 지구촌) 3.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나 자리나 터. (← 사회, 세상, 세계) 4. 처음 이 땅에 와서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나기까지 살아온 날. (← 평생, 일생) 5. 널리 움직이거나 일하거나 어울리거나 지내는 곳 6. 오늘 있는 곳. 오늘 살아가는 자리. 오늘 있는 터전. (= 이곳. ← 지상, 현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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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써둔 글인데 여태 묵혔다가 올려놓는다.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뱁새라는 너



  참으로 가득할 만큼 사람 곁에서 어울리는 참새가 있고, 밝게 노래하는 박새가 있고, 톡톡 내려앉듯 슬슬 나는 할미새가 있고, 더없이 조고만 몸으로 살랑대는 뱁새가 있다. 오래오래 속삭인 새이름에는 오래오래 이웃으로 지낸 마음이 흐른다. ‘참새·박새·할미새·뱁새·딱새·콩새·한새’ 같은 이름은 더 낫거나 좋거나 나쁘지 않다. 굳이 ‘뱁새’라는 이름을 나쁘게 여기어 ‘붉은머리오목눈이’로 바꾸어야 하지 않다.


  이른아침에 논둑길을 달려서 옆마을로 간다. 제비 셋이 머리 위로 가까이 스치며 노래한다. 참새 여럿이 가볍게 날며 노래하더니, 시든 억새포기에 사뿐히 앉는다. 작고 가벼운 몸이니, 시든 풀줄기에도 앉지. 달리다가 슬슬 거닐면서 참새떼를 바라본다. 이내 구름이 걷히고서 해가 난다. 이웃마을 느티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느티잎을 나물로 즐길 무렵이다. 2003년 가을 어느 날 권정생 할배가 “마, 예전에 먹을것이 없어서 느티잎도 떡으로 해먹었지.” 하고 알려준 적이 있다. 이 말씀을 듣고서 이듬해 봄을 기다렸다. 느티잎이 새로 돋을 한봄을 기다려서 한 잎씩 톡톡 끊어서 머금어 보았다. 처음에는 낯선 맛이었으나 이내 느티잎 푸른맛을 반겼다. 따로 떡을 안 하고서 잎을 나물로 삼으면 되더라.


  옅푸른 잎빛이 짙게 물들면 슬슬 억세다. 이때에는 다른 나뭇잎을 훑으면 된다. 불긋나무(단풍나무)도 갓 돋은 새잎을 이레나 열흘쯤 나물로 삼을 수 있다. 애벌레는 한 가지 잎만 갉지만 사람은 모든 잎을 다 훑을 수 있다. 들풀과 숲나무는 철철이 새빛으로 누구한테나 베풀면서 싱그럽다.


  시골버스를 타고서 붓을 쥔다. 사람 곁에서 나란히 하루를 살아가는 조그마한 이웃넋을 글줄로 그려 본다. 그래, 뱁새 이야기를 그리자. 이 조그마한 날갯짓과 몸짓으로 여태 우리 곁에서 싱그러이 춤노래를 베푼 새빛(날아다니는 새로서 새롭게 사이를 잇는 빛)을 적자.


  오늘은 나흘 만에 해를 본다. 봄해는 밝고 맑게 들숲마을을 비춘다. 눈을 떠서 하늘을 본다. 눈을 감고서 하루길을 헤아린다. 참새 못잖게 뱁새가 확 줄었다. 제비 못잖게 한새도 왜가리도 확 줄었다. 새 한 마리한테 땅 한 뼘 나누는 마음을 살리고 싶다. 박쥐도 소쩍새도 뻐꾸기도 꾀꼬리도 깃들 만한 숲이 서울 한복판에도 있기를 빈다. 새바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마을일꾼(지자체장·기초의원)으로 나서기를 빈다. 온 가지 새이름까지 알기를 바라지 않으나, 마을일꾼이라면 적어도 서른 가지 새이름을 알면서 마을 곳곳에 품을 줄 아는 눈썰미여야지 싶다. 나는 새랑 노래하고 놀이할 줄 아는 사람을 마을일꾼으로 뽑고 싶다.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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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9.27.

숨은책 1201


《普通 朝鮮語讀本 卷四》

 조선총독부 엮음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1933.1.25./1937.1.10.고침



  오늘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한글’을 쓰되, ‘한글’이라는 이름은 ‘한힌샘 주시경’이라는 사람이 지은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조선을 다스리던 임금 가운데 ‘세종’이라는 분은 ‘훈민정음(정음)’이라는 이름으로 글씨를 선보였습니다. 나라지기는 ‘훈민정음’처럼 한자로 이름을 붙였고, 벼슬아치·글바치는 ‘암글’이라 여겼습니다. 벼슬아치·글바치는 한문을 ‘수글’이라 여겼고요. 그런데 조선이 무너질 무렵까지 벼슬아치·글바치가 아닌 사람들은 ‘우리글(훈민정음)’이 있는 줄 모르기 일쑤였습니다. 살림을 짓고 가꾸는 수수한 사람들은 수글도 암글도 구경할 일이 없으니까요. 《普通 朝鮮語讀本 卷四》은 1933해에 처음 나옵니다. 이른바 ‘보통학교’에서 길잡이책으로 삼은 ‘한글책’이라 할 텐데, 이때 조선총독부는 일본글을 ‘국어(國語)’라 일컬으면서 한글은 ‘조선어’라 일렀습니다. 허울은 ‘한글길잡이(조선어독본)’이되 속내는 온통 일본 살림살이와 발자취와 우두머리와 옛이야기를 익히라고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혹부리 할배가 나오는 옛이야기에 샛그림을 넣는데 ‘도깨비’가 아닌 ‘각다귀(오니おに ·鬼)’입니다. 일본굴레이던 무렵 배움터에서는 한말글을 쓸 수 없는 얼개이면서 시늉으로만 한글을 가르쳤으니, 한겨레를 다스릴 일꾼(공무원)이 되려면 일본말글뿐 아니라 한말글도 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마음껏 한말글을 쓰는 나라입니다만, 얼마나 한빛과 한결과 한꽃과 한넋을 살리는 말과 글인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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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잠들려는 암사마귀하고

― 작은배움숲 6 ‘못난 나’를 토닥토닥



  암사마귀 한 마리가 힘을 거의 못 쓰면서 몸을 흔들흔들합니다. 틀림없이 〈숲노래 책숲〉 안쪽 어느 책시렁에 알을 낳은 듯합니다. 아직 사마귀알집을 찾아내지 못 했습니다. 이제 막 낳은 알집이니, 이듬해 새봄에 깨어날 테고, 새봄까지 찾아내면 됩니다. 사마귀알집을 찾아내어야, 이 알집이 깨어날 첫봄 즈음에 풀밭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배가 홀쪽한 암사마귀하고 한참 눈을 맞추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운을 다한 나머지, 걷기도 서기도 힘들어 합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몸집으로 올봄에 깨어나서 첫가을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허물벗기를 하며 새몸으로 거듭났고, 마침내 알을 속으로 품고서 내놓았으니, 대견하게 한해살림을 해냈습니다.


  힘없는 암사마귀를 풀밭 한켠에 옮겨주었습니다. 이 아이가 굳이 우리 책숲으로 들어와서 알을 낳을 까닭은 없지만, 엊그제 마을에서 풀베기를 엄청나게 해대었기에, 풀베는 소리라든지 사람들한테 놀란 탓에 알을 느긋이 낳을 곳을 못 찾았구나 싶어요. 윙윙윙 큰소리와 함께 사르르 무너지는 풀밭을 바라보던 암사마귀로서는, 쇳소리도 칼날도 없는 곳을 문득 찾아내었다고 느낍니다.


  엊저녁에 이웃님 한 분이 들려주는 말씀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못 하고, 모자라고, 모르는’ 모습과 몸짓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힘들어하는 말씀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하룻내 곱씹었습니다. 작은시골 작은배움숲에서 작은말씨로 일구는 작은이야기를 들려주자고 여기면서 글월을 적어 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질게 다루면서 즐겁게 편다면, 우리 누구나 속에 깃든 넋을 깨워서 참하게 살림하는 하늘빛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언뜻선뜻 이때에는 이렇게 잘못하고, 저때에는 저렇게 넘어지고, 그때에는 그렇게 흔들린다고 느낄 수 있는데, 잘못하거나 넘어지거나 흔들려도 됩니다. 잘못하고 넘어지고 흔들리기에 배우거든요.


  다치면 아프게 마련이고, 앓으면 고단하고 지치고 힘겹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프거나 앓기에 싫거나 미울 수 없습니다. 아프면서 배우고, 앓으면서 익히는 삶입니다. 아기가 목을 가누기까지 꽤 긴날을 들입니다. 하루아침에 목을 가누지 않아요. 더구나 갓난아기는 젖을 빨기까지도 한참 걸려요.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가 젖을 물린대서 바로 빨아먹지 못 합니다. 게다가 아기는 알맞게 젖을 빨아먹는 길을 모르는 나머지, 서두르다가 목에 걸린다든지 얹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버이는 천천히 토닥이면서 느긋이 먹으라고 다독입니다. 또한 젖을 다 먹은 아기를 어깨에 가만히 걸쳐서 등을 두들기지요. 아기가 트림을 할 때까지 토닥토닥합니다.


  아기뿐 아니라, 아이일 적에도 으레 넘어지고 다치고 울면서 자랍니다. 모든 아이는 다치면서 큽니다. 어린이라는 길로 접어들고 푸름이라는 꽃으로 피어날 무렵에도 매한가지예요. 늘 다치고 아프고 앓는 나날을 맞아들입니다. 싫어할 일이 없고, 미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되면 되는 대로 반갑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고마운걸요. 모두 배움날이고 배움길이며 배움씨인데다가 배움빛이니까요.


  나랑 네가 무엇을 못 하는지 느낄 수 있다면, 이미 하나부터 배웠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난 이럴 적에 이런 일을 참 못 하는구나!” 하고 배우고, “너는 이때에 이렇게까지 못 하네!” 하고 배웁니다. 모든 때에 배우는 줄 느낀다면, 싫거나 밉다는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할 적에 눈을 살며시 감고서 마음을 다독일 만해요. 서두르지 말자고, 섣불리 붙들지 말자고, 이 같은 일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배우며 노래할 만한지 헤아리자고, 천천히 혼잣말을 읊을 노릇입니다.


  밥을 먹다가 목에 걸릴 적에는 뱉으면 돼요. 뱉어낸 밥찌꺼기는 행주나 걸레로 훔쳐서 치우면 되고요. 행주나 걸레는 빨래해서 물을 짜고 말리면 되지요. 그러니까 나쁘거나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그저 차근차근 하나씩 하면 됩니다. 쌈지를 길에 흘려서 잃었으면, 쌈지를 새로 짓거나 장만하면 되고, 잃은 돈은 다시 일해서 벌면 됩니다. 늘 이뿐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다 읽고서 마지막 쪽을 덮으면 그야말로 아쉽습니다. 그러나 아쉽다고 여기기에 아름책을 나중에 새롭게 읽어요. 애벌로 읽고 그칠 아름책이 아니기에, 두벌읽기에 석벌읽기를 지나서 열벌읽기에 스무벌읽기로 잇습니다. 마침내 온벌읽기(100번째 독서)에 이를 만하고, 두온읽기(200번째 독서)도 할 수 있어요. 온누리 모든 어린이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적어도 즈믄읽기(1000번째 독서)를 합니다. 두즈믄읽기를 하는 어린이가 흔합니다. 어린이는 으레 마르고 닳도록 한 가지 책에 꽂혀서 내내 되읽기를 하는데, ‘낡고 닳은 책’은 고이 모셔 놓고서 ‘똑같은 새책’을 장만해서 ‘끝없는 되읽기’를 하기를 바랍니다. 즐기고 배우면서 온마음이 자라기에 온읽기와 즈믄읽기를 가뿐히 하는 어린이입니다.


  기쁘게 읽을 때뿐 아니라, 슬프게 배울 적에도 다시금 기꺼이 맞아들이려는 마음이면 넉넉하구나 싶어요. 오늘 한끼를 배불리 먹었기에 이튿날 굶거나 열흘쯤 안 먹어도 되지는 않아요. 다만, 어느 분은 ‘열흘한끼’로 배부를 수 있습니다. 어느 분은 ‘하루두끼’나 ‘하루석끼’여야 배부를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끼니를 잇고 누리면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배울 적에도 “저 사람은 저렇게 하루아침에 깨닫듯 배우는데, 난 왜 서른 해가 넘도록 못 깨닫지?” 하고 푸념할 일이 없습니다. 마흔 해째에 깨달을 수 있고, 예순 해째에 깨달을 수 있거든요.


  나 스스로 모자란 줄 느끼는 일이란, 나 스스로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나부터 품지 못 하는 줄 알아챈 일이란, 나 스스로 곱게 품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노래하려는 첫발을 뗀 몸짓이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발짝을 내딛으면 되고, 하루하루 차근차근 이을 삶이라고 봅니다.


  서로서로 무엇을 못 하거나 미루거나 못마땅하거나 모자란지, 그저 느긋하면서 즐겁게 웃는 말씨로 나눌 노릇이라고 느껴요. 짜증을 내거나 불타오르면서 “넌 왜 이렇게 못 해?” 하고 따지면 불바다(전쟁)입니다. 여태 서로서로 불바다로 손가락질을 해왔다면, 이제는 서로서로 파란하늘을 담은 파란바다와 같이, 찰랑찰랑 노랫가락을 담은 말소리로 “내가 보기에 너는 이럴 적에 좀 못 하는 듯하더라. 넌 왜 이럴 적에 좀 못 한다고 느껴?” 하고 말을 걸고서 어떻게 대꾸할는지 기다릴 만합니다.


  말을 나누는 일이란 마음을 나누는 길이고, 마음을 나누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 언제나 씨앗 한 톨을 말씨로 고이 묻어서 그대로 가꾸어서 빛내는 하루라고 봐요. 함께 살림하는 살림말을 살피고, 함께 생각하는 생각말을 가다듬고, 함께 사랑하는 사랑말을 혀끝과 손끝에 얹자고 여기면, 어느새 내 목소리와 눈길과 몸짓이 참하게 나무 한 그루처럼 서는 줄 느낄 만해요. 이윽고 내 목소리와 눈길과 몸짓은 착하게 나비 한 마리처럼 나풀거리는 줄 느껴요. 이제 내 목소리와 눈길과 몸짓은 차오르는 별빛 한 줄기처럼 흐르는 줄 느낄 테고요.


  어떤 일을 잘 해냈다고 할 적에도 서로 북돋우고 말을 나눌 일입니다. 어떤 일을 못 해낸다고 할 적에도 서로 토닥이고 말을 주고받을 일입니다. 그저 모든 하루는 스스로 배우고 나란히 배우면서 서로서로 가르치는 이야기꽃입니다.


  가을이 깊을수록 낮볕은 짧지만 마지막까지 따끈따끈 내리쬡니다. 가을이 깊어가니 밤이면 찬바람이 훅 번지면서 춥습니다. 〈숲노래 책숲〉 어느 곳에 잘 자리잡았을 사마귀알집과 긴긴 겨울을 포근하게 나자고 생각합니다. 꽃밭길도 길이고, 가시밭길도 길이니, 모든 길을 고스란히 ‘온길’로 여기면서 함께 나아갈 새길을 그립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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