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파릇파릇



  사흘은 작은아이랑 큰아이가 등허리를 눌러주었다. 어제는 곁님이 눌러주었다. 나흘 동안 손길을 받으면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우리는 지난 나흘을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는 마음을 다시 짚었다. 곰곰이 보면 여태 살아낸 모든 나날은 늘 이곳과 이때를 새롭게 짚는 길이다. 온하루와 온때를 스스로 새롭게 가다듬기에 파란숨을 쉬면서 파란하늘과 나랑 너랑 느루 나란한 줄 알이볼 수 있다.


  낯선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은 일본이 총칼로 헤집던 때부터 퍼졌다. 박정희 무렵에 날뛰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때에도 서슬퍼렇게 으스스했다. 이동안 들사람은 ‘몸뒤짐(불심검문)’에 내도록 시달렸다. 그러나 이 모든 굴레살이에서도 ‘낯선남(낯선 남인 너)’이 아닌 ‘이웃너(이웃으로 만나는 너)’로 마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제 우리는 모든 총칼잡이는 걷어냈는데, 막상 아직도 ‘낯선놈(낯선 남보다 싫은 너라는 놈)’을 두려어하면서 멀리해야 한다는 틀에 사로잡힌다.


  숨결은 파릇파릇 오른다. 풀꽃나무는 푸릇푸릇 오른다. 하늘은 파랗게 일렁인다. 들녘은 푸르게 일렁인다. 자귀꽃을 만난 지 보름쯤 흐른다. 어제 큰아이도 드디어 밀잠자리를 알아보았다. 두 아이는 ‘잠자리 날갯짓’을 알아보면서 꽁무니를 좇는 눈길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밀잠자리 한 마리가 우리 곁에서 ‘제자리날기’를 한동안 선보여 주었다.


  나는 파랗게 춤춘다. 너는 푸르게 춤춘다. 우리는 한 하늘을 함께 마시면서 나란히 걷는다. 아니, 나는 늘 걷는다만, 너는 안 걸을 수 있어. 넌 가깝거나 멀거나 노상 달구지(자동차)를 몰 수 있어. 달구지로 움직이느라 하늘과 들과 바다를 못 보거나 안 볼 수 있어. 밤꽃이 하얗고 달개비꽃이 파란 여름날을 안 보거나 못 보면서 그저 덥다고 푸념할는지 몰라. 땀흘려 걷다가 문득 부는 바람에 온땀이 훅 식는 줄 아예 모를 수 있어. 여름 어귀에 어미새가 새끼새를 어떻게 돌보면서 날갯짓과 사냥을 물려주는지 하나도 모를 수 있어.


  아직 몰라도 돼. 이제부터 알아가면 돼. 앞으로도 한참 몰라도 돼. 오늘부터 느긋이 천천히 가만히 하나씩 조금조금 가볍게 익히면 돼. 그러니까, 좀 걷자. 날마다 10km쯤, 아니 하루에 20km쯤, 일하고 놀며 느긋이 걷고 읽자. ‘운동’을 하려고 걷지는 말자. ‘노는’ 마음으로 걷자. 노는 마음으로 거닐면서 콧노래를 부르자. 너무 크게 노래하면 둘레(남·놈)에서 “저놈 미쳤나?” 하고 싫어할 수 있겠지. 목소리는 나즈막이 부드러이 사근사근 입술노래를 부르면서 걷자. 이렇게 걷는 손에는 책 한 자락을 쥐자. 걷다가 건널목에서 멈출 적에 읽자. 걷다가 나무그늘을 만나면, 나무 곁에 서서 읽자. 그러면 돼. 이렇게 하면 돼. 함께 거닐고 노래하고 웃고 나무랑 사귀고 바람을 마시고 볕을 쬐면서 여름날을 기뻐하면 돼. 2026.6.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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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다니는



  읍내 나래터로 가서 부칠 책을 한 자락 챙긴다. 오늘은 큰아이랑 서로 짐꾼으로서 저잣마실을 가기에 ‘걷는읽기’를 할 책은 안 챙긴다. 가볍게 짊어지고서 나선다. 시골버스는 오늘 따라 손님이 우리 둘. 바람이(에어컨)를 안 켜셨다. 고맙게 미닫이를 연다. 들바람을 쐬며 20분 동안 15킬로미터를 아예 아무 데서도 안 서며 달린다. 큰아이도 아버지마냥 시골버스에서 글쓰기를 해보려 했으나 너무 흔들리고 멀미가 나서 못 하겠단다. 나는 시골버스에서 글을 쓰고, 큰아이는 노래를 듣는다. 


  읍내에서 천천히 걸으며 볼일을 마친다. 우리는 제비를 바라보고 들여다본다. 걷는 내내 여러 이야기를 한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타러 버스나루까지 온다. 낯을 씻는다. 종이를 꺼내어 글을 더 쓴다. 바람소리를 듣는다. 여름볕이 반갑다. 땀방울에는 여름바람이 감돈다. 하루는 늘 새롭고, 우리가 나누는 말도 새롭다. 쉬운말 한 마디에 풀내음이 서리고, 살림말 두 마디에 꽃내음이 흐른다.


  문득 큰아이가 부른다. 버스나루에 들어온 물잠자리가 있단다. 나갈 곳을 모르는구나. “얘야, 두렵니? 그저 기다려 봐. 길을 틀게.” 두 손가락을 뒤쪽으로 돌려서 물잠자리 날개를 슥 쥔다. 손가락 앞쪽으로 날개를 쥐면, 우리 손가락·손바닥에서 나오는 뜨끈한 기운 탓에 잠자리가 고달파한다. 손가락을 뒤쪽으로 돌려서 살며시 쥐면 날개를 안 다칠 수 있다.


  미닫이 밖으로 물잠자리를 살며시 놓는다. 자, 이 앞 물가로 날아가렴. 넌 물가가 놀이터인걸. 물잠자리 날개를 오랜만에 쥐어 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손끝으로 만져 보기에도, 물잠자리 날개는 누에천(비단) 같다. 대단히 곱다. 검파란 결에 검푸르게 반짝인다. 잠자리도 날고, 물잠자리도 나는 첫여름이다. 오늘은 읍내 냇가에서 물총새 두 마리가 제자리날갯짓을 한참 하는 모습도 보았다. 처마밑 작은둥지에 다섯 마리 새끼 제비가 올망졸망인 모습도 보았다. 우리랑 함께사는 숱한 이웃을 하나씩 헤아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2026.6.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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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 그들)



  처음 ‘모금국수(컵라면)’가 나오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무렵 엄마들은 모금국수가 영 못마땅했다. 쓰레기가 많고, 비싸고, 무엇보다 맛없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는 “새로 나온 살림이나 먹을거리”가 있으면 돈을 모아서 꼭 장만해 보셨고, 맛을 보았고, 한참 수다를 떨면서 이러니저러니 생각을 나누셨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니 좋잖아.” “뜨거운 물이 어디 있어? 커피포트를 들고 다니게? 길에서 전기를 꽂을 수 있어?” “하기는, 컵라면을 먹으려면 뜨거운 물은 집에 있으니까 밖에서 먹을 수도 없네.” 우리 어머니와 마을 아주머니가 처음 모금국수를 사서 먹어 보시면서 한참 주고받은 말이다. 마흔 해가 넘었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느 날 동무하고 모금국수를 먹은 적 있다. 어느 동무는 “딱 3분만” 뜨거운 물인 채 놓고서 바로 따서 먹는다. 어느 동무는 “7∼8분을 기다려서” 먹는다. 나는 둘 사이에서 지켜보다가 “3분째에 한입” 먹어 보고서 덮은 뒤, “7∼8분 즈음 되고서 마저 먹”었다. 딱 3분만 뜨거운 물에 놓고서 먹은 동무는 “야, 3분만 있으면 된다잖아? 그러면 3분만 있다가 먹어야지. 아직 덜 익은 듯해도 덜 익은 맛도 있어!” 하더라. 한참 느긋이 기다린 동무는 “3분만으로는 턱도 없어. 맛도 없어. 제대로 익은 다음에 먹어야지.” 똑같은 모금국수이지만, 여러 동무는 저마다 다르게 먹었다. 나는 여러 동무가 어떤 마음과 눈길로 마주보고서 품는지 지켜보면서 ‘그렇구나. 그러면 난 어떤 길을 갈까?’ 하고 속으로 한참 곱씹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모금국수는 너무 맛없어. 솥에 끓여먹는 쪽이 가장 나아.’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림(유튜브·쇼츠)에 사로잡혀서 멍하니 쳐다보노라면 한나절쯤 휙 지나간다는 분이 참 많다. 그림에 사로잡히면 멍하니 “남들 놀음놀이”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들은 그들대로 ‘그들멋’일 뿐인데, 우리는 ‘우리멋·나멋·네멋’을 감쪽같이 잊고 잃는다. 우리가 ‘우리멋·나멋·네멋’을 잊고 잃으면서 ‘그들멋’에 사로잡히기에, 그들은 떼돈을 벌면서 탱자탱자 하느작거린다. 잘난책(베스트셀러)도 똑같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읽눈(문해력·독해력·판단력·해독력)을 틔우지 않고서 스스로 갇히는구나 싶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다. 그림(유튜브·쇼츠)은 그냥 그림이다. 어느 스위스 아저씨가 쓴 글에 《책상은 책상이다》가 있다. 책상은 책상이고, 그림은 그림이고,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겉이름이라는 허울만 바꾼들 알맹이가 안 바뀐다. 우리가 아무리 온갖 그림이나 책을 잔뜩 쳐다보거나 읽는다 한들, 우리 ‘읽눈’을 가꾸거나 틔우거나 북돋우지 않는다. 우리는 이웃이 지은 그림과 책을 기꺼이 읽을 뿐 아니라, 스스로 그림을 짓고 책을 쓸 노릇이다. 이웃그림과 이웃책 곁에 ‘우리그림’과 ‘우리책’을 나란히 놓을 적에 읽눈이 자라고 싹눈을 틔우고 씨눈이 깨어나고 삶눈과 살림눈과 사랑눈이 피어난다. 2026.1.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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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자 없는 나라 (+ 서울국제도서전)



  떠난 권정생 님은 예전에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글을 남겼다. 참 아름답다고 느끼는 글이다. ‘나라사랑(애국)’이라는 이름을 내걸수록 오히려 ‘사랑’하고는 먼 채 ‘나라에 목숨바치기’에 휩쓸려서 그만 넋을 잃고 마음까지 잊는다고 느낀다. 2026해 첫여름에 미국에서 열리는 공마당(축구월드컵)이 바로 ‘나라사랑’으로 치닫는 일 가운데 하나일 테지. 큰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싸움판을 ‘공’으로 주고받는다.


  2012해에 한글판으로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David Small + Heather Henson)라 나온 그림책이 있다. 2008년에 미국에서 “That Book Woman”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1930해무렵에 말을 타고서 두멧시골에 책을 나르는 아주머니가 심은 꿈씨앗을 다룬 이야기이다. 책집도 배움터도 마을도 아예 없는 그야말로 두멧시골에 말을 타고서 머나먼길을 간 ‘책아줌마(도서관 사서)’는 오직 책 한 자락으로 사람 사이를 잇는 길을 냈다. ‘더 많은 사람’한테 이바지하는 책지기(사서)가 아닌, ‘오직 한 아이’한테 다가가려고 여러 날에 걸쳐서 말을 몰고, 다시 여러 날에 걸쳐서 말을 몰며 일터로 돌아간 책지기를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올해(2026) 첫여름에 ‘서울국제도서전’을 또 연다. 또 열지만 ‘도서전 사유화’는 터럭만큼도 가시지 않았다. 고름덩이를 그대로 안으면서 ‘책장사’를 이어가는 늪이다. 곰곰이 볼 노릇이다. 더 많은 책을 사고판다든지, 더 드날릴 이름꾼(유명작가)을 만난다든지, 더 좋은 책잔치를 누린다든지, 더 큰 한마당에서 어울린다든지, 다 ‘좋은’ 일이겠지. 그러나 ‘좋은책’으로는 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하고는 멀다. 우리가 책을 읽는 뜻이란 “좋은책 가려읽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나무숨결(종이꾸러미)에 담은 사람숨빛(지은이 꿈씨앗)을 헤아리는 사랑을 누리기”라는 길을 알아가려는 하루이지 않을까. 스스로 깨어나려고 읽을 책이지 않은가. 이웃하고 나란히 눈뜨려고 쓰고 짓고 엮고 여며서 선보이고 작은책집에 들이는 책이지 않은가.


  우리 목소리로 바꿀 수 있고, 또는 못 바꿀 수 있다. 목소리를 낼 적에는 바꾸려는 뜻도 있을 테지만, ‘남(그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뜻보다는 ‘나(우리)’부터 새롭게 눈뜨고 깨어나서 이 삶을 새롭게 사랑으로 지으려는 씨앗을 심으려는 마음이라고 느낀다. ‘몇몇잔치’가 아닌 ‘모두놀이’로 나아가기를 바라기에 목소리를 낸다. ‘그들잔치’가 아닌 ‘모두노래’로 피어나기를 바라기에 목소리를 낸다. 푸른숲을 바라보자는 뜻으로 목소리를 낸다. 이제는 ‘덩치(대규모)’가 아니라 ‘씨앗(너와 나와 우리)’을 품자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낸다.


  지난해(2025해)에 ‘이름을 내놓고서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목소리’를 낸 숱한 분이 엄청나게 화살을 맞았다. ‘사유화 반대 목소리’란, “책은 몇몇 힘꾼(권력자) 사유물(권력수단)이 아닌, 책은 모두가 누릴 빛”이라는 이야기를 펴겠다는 마음이다.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을 뿐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익혀서, 누구나 눈길과 숨길과 마음길을 틔울 뿐 아니라, 누구나 살림길과 사랑길과 사람길을 깨우치고는, 누구나 푸른숲과 파란하늘과 하얀별을 품는 오늘을 살아가는 곁빛으로 책을 읽는다고 본다. 그야말로 ‘누구나잔치’로 가야 맞는 서울책잔치이다. ‘서로잔치’로 가야 아름답다. ‘함께잔치’로 틔워야 즐겁다.


  우리나라 그림책밭을 갓 여는 길에 크게 이바지한 ‘마루벌’이란 펴냄터가 있다. 이 알찬 펴냄터는 가뭇없이 닫았다. 이곳에서 2003해에 옮긴 《무지개를 잡았어요》(돈 프리먼)라는 아름그림책을 오늘 드디어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큰아이(열아홉 살)랑 나란히 앉아서 읽었다. 아무리 아름그림책이어도 펴냄터가 사라지면 다시는 못 찾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첫손꼽는 책잔치라면, ‘책장사’만 하기보다는 ‘책읽기’와 ‘책나눔’과 ‘책노래’를 펼 수 있는 어깨동무로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라사랑(애국)’이 아닌 ‘나사랑(진정한 평화)’일 적에 비로소 서로서로 사이를 틔워서 파란바람이 싱그럽게 불겠지. 2026.6.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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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와 극우 사이



  나라(농림부·지자체)에서 풀죽임물(농약)을 뿌리는 돈을 대줄 뿐 아니라, 혼날개(드론·무인헬리콥터)나 큰바람개비로 잔뜩 뿌리는 돈까지 대준다. 혼날개로 풀죽임물을 뿌릴 적에도 텃새와 철새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는데, 큰짐수레에 실은 큰바람개비로 한여름부터 끝없이 풀죽임물을 논을 비롯해서 논 둘레로 뿌려대면, 새도 개구리도 벌나비도 거미도 어마어마하게 죽는다. 요즈음 이 나라에서 풀죽임물을 어떻게 뿌리는지 조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새와 벌나비가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시골이건 서울이건 나무를 모질게 괴롭히면서 ‘가지치기’를 넘어 ‘줄기치기’를 해대기 일쑤이다. 새가 쉬거나 깃들 큰나무가 사라지면서 작은새도 큰새도 철새도 그야말로 아주 죽어나간다. 앞으로는 ‘달구지길(자동차 전용도로)’과 ‘달구지집(주차장)’을 차근차근 없애면서 ‘나무가 우람하게 자랄 푸른터’를 늘려야, 새도 사람도 함께 느긋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달구지길’과 ‘달구지집’을 줄이려고 마음을 기울일 나라일꾼(공무원)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부릉부릉 매캐하게 쇳덩이가 널뛰는 길이 아닌,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르신도 느긋이 거닐며 오갈 자리와 마을로 바꾸려는 눈길을 밝힐 수 있을까.


  철이 들지 않기에 오지랖만 부리거나 ‘젊어’ 보이고 싶어서 겉모습만 꾸민다. 철이 들기에 품거나 안거나 쓰다듬을 뿐 아니라 ‘어질게’ 살아가려고 살림짓기에 마음을 둔다. 벼슬자리에 앉는 이를 보면, 이미 어릴적과 젊을적부터 집안일과 집살림을 안 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나날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지내고 나서야 벼슬자리에 앉는 이는 아직 없다시피 하다. 나라일꾼(대통령·장차관·국회의원·기초의원·기관장·공무원)이라면 ‘일(집안일)’과 ‘살림(집살림)’부터 차근차근 익힐 노릇이다. 굳이 중국 옛말을 들추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집’부터 사랑으로 아름답게 돌보는 길을 걸어온 사람일 때라야, 마을일과 고을일과 나라일을 알뜰살뜰 여미게 마련이다.


  글은 누가 쓰면 될까? 글은 어떻게 쓰면 될까? 먼저 집안일과 집살림부터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어릴적부터 어버이 곁에서 함께 집안일을 하고, 같이 집살림을 펴고, 나란히 보금자리를 푸른숲으로 일구는 길을 걸으면 된다. 이렇게 일과 살림을 온몸으로 익히는 동안, 스스로 즐겁게 놀이하고 노래하는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곧 ‘일·살림·놀이·노래’라는 네바퀴를 즐거우면서 사랑으로 다독이는 삶을 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진 일꾼이자 스승이자 동무이자 두레로 마주하는 이웃으로 우리 곁에 있을 만하다.


  지난날에는 ‘극좌’라는 말을 무섭게 쏘아댔다면, 오늘날에는 ‘극우’라는 말을 무섭게 쏘아댄다. 지난날 젊은이(20∼30대)는 ‘극좌’라는 삿대말을 듣고, 오늘날 젊은이는 다시금 ‘극우’라는 삿대말을 듣는다. 지난날에 ‘극좌’라는 삿대말을 듣던 젊은이는 이제 아지매아재(40∼50대)라는 나이에 이르는데, 오늘날 아재아지매는 지난날 할매할배(60∼70대)한테 오지게 얻어맞으면서 가시밭길을 견디었다. 지난날 젊은이인 오늘날 아지매아재는 동생이나 아이인 오늘날 젊은이가 예전처럼 얻어맞거나 가시밭길을 걷지 않는 새나라를 일구려고 온땀과 온힘과 온마음을 쏟았다. 누가 무슨 삿대말을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새길’을 바라보았기에, 이 나라가 조금은 아름길을 걸을 만했다고 느낀다.


  예나 이제나 젊은이는 ‘새길’을 바라본다. 어느 곳에도 안 치우치면서 아름답게 살림을 짓는 ‘사랑집’을 그린다. 지난날 젊은이였고 오늘날 아지매아재인 사람은 ‘왼끝(극좌)’이 아니었다. 오늘날 젊은이요 앞으로 아지매아재로 설 사람은 ‘오른끝(극우)’이 아니다. 둘 모두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그저 ‘새길·새집·새사람·새나라·새빛·새눈’을 바란다. 지난날에는 새길과 새눈이 왼끝으로 쏠린다고 느낄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새길과 새눈이 오른끝으로 쏠린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새길과 새눈은 왼끝도 오른끝도 아니다. 새길과 새눈은 언제나 나란하고, 한결같이 ‘가운쪽’이다.


  가운데는 ‘중도·중용’이 아니다. 가운데·가운쪽이란 ‘가슴’이다. ‘가슴’이란 ‘마음’이요, 스스로 가슴(심장)이 느끼는 결을 살펴서 마음(영혼)이 이끄는 곳을 바라보기에 젊은이일 테지. 흔히 젊은이를 ‘불타는(열혈·열렬)’ 쪽으로 잘못 여기기 일쑤인데, 젊은이는 ‘가슴·마음’에 샘솟는 길인 새길을 바라보면서 새빛을 새꽃으로 피우고는 새눈을 틔워서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해야 맞다.


  철들지 않은 모든 벼슬아치는 끌어내릴 노릇이다. 철들지 않은 벼슬아치는 왼켠이건 오른켠이건 다 끌어내릴 노릇이다. 벼슬아치라는 감투는 ‘일자리’여야 한다. 일하는 사람은 왼켠이나 오른켠으로 가를 까닭이 없다. 날개지기(비행기 조종사)는 왼켠도 오른켠도 아닌 가운켠에 서야 한다. 버스지기와 택시지기도 가운켠에 서면 될 뿐이다. 우리는 고린내(남성 가부장권력)를 거의 쓰러뜨렸다. 그러나 고린내를 쓰러뜨리기에 끝나지 않는다. ‘집’을 ‘지어’서 ‘즐겁’게 ‘지내’는 길을 새로 세워야 한다. 한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기둥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둘(가시버시)이 나란히 기둥이어야 하고, 나중에는 아이가 셋째 기둥이어야 하며, 이윽고 할매할배도 나란히 넷째 기둥이어야 한다. 한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한기둥(함께 하나로 기둥)’으로 거듭날 적에 비로소 모든 고린내가 사라지리라고 본다.


  우리나라에 일하러 찾아오는 이웃나라 사람은 ‘이웃일꾼’이다. 이웃이니까 ‘이웃일꾼’이다.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노동자’가 아닌 ‘이웃 + 일꾼’이다. 지난날 젊은이였던 오늘날 아지매아재는 오늘날 젊은이를 가만히 볼 수 있기를 빈다. 오늘날 젊은이는 오른끝이 아니요, 왼끝으로 가야 하지 않는다. 그저 가운쪽에 서면서 가슴과 마음을 사랑으로 밝히는 살림길을 넉넉히 펴도록,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는 새길을 바라볼 노릇이지 싶다. 우리는 두 손을 함께 쓰기에 ‘빚’고 ‘짓’고 ‘가꾸’고 ‘일구’고 ‘나눈’다. 두 손을 함께 쓰는 둘인 사이라서 ‘두레’라 하고, 둥그렇게 만나서 둥글둥글(동글동글)하기에 ‘동무’로 만나고 ‘동아리’를 이루며 ‘돕’고 ‘돌보는(돌아보는)’ 사람으로 나란히 선다.


  지난날 젊은이와 오늘날 젊은이가 ‘서로이웃’으로 마주하기를 빈다. 오늘날 젊은이와 지난날 젊은이가 그저 ‘이웃’으로서 ‘사랑’을 나란히 펴는 ‘함께짓기·함께살기·함께노래’를 이룰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다. 2026.3.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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