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기억력 산지니시인선 14
윤현주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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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26.

노래책시렁 522


《맨발의 기억력》

 윤현주

 산지니

 2017.7.28.



  저희는 설과 한가위에 아무 데나 안 가며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기를 한 지 꽤 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야 서운하시겠지만, 얼굴을 보고 싶다면 어느 때이건 느긋할 때 보면 됩니다. 마음을 다독이는 말로 한집안을 가꾸려는 길에는 “마음을 함께 하는 배움하루”가 있을 노릇입니다. 낳고 돌보고 함께 지낸 나날이 있기에 한마음이지는 않아요. 이래라저래라 핀잔하거나 가르치려는 말이 아닌, 촛불 한 자루를 사이에 놓고서 응어리를 풀 만한 사이여야 비로소 ‘한집안’이라고 느낍니다. 《맨발의 기억력》을 돌아봅니다. 여러모로 어깨에 힘이 안 빠진 글자락인데, 글은 맨손에 맨발에 맨몸으로 쓸 일입니다. 말부터 오롯이 맨마음에 맨빛으로 펼 일이에요. 한 마디를 꾸미면 두 마디 석 마디를 꾸밉니다. 한 줄에 멋을 담으면 그만 온통 멋내는 말씨로 기울어요. “맨발로 떠올리는” 이야기를 적으면 투박하기에 빛납니다. “맨발로 돌아보는” 하루를 옮기면 수수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시’도 ‘문학’도 ‘창작’도 아닌, 그저 이 삶을 글로 그리면 됩니다. 언제나 오늘 이곳을 글로 노래하면 됩니다. 서로서로 어울리는 마음을 가만히 말하듯 글로 담으면 그만입니다.


ㅍㄹ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어진 골목엔 / 배고픈 개와 고양이들이 / 혈전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산복도로 풍경-골목/52쪽)


골다공증 앓는 초가집, 밤은 / 깊어 찬바람 삼투처럼 새어드는데 / 집안의 온기 죄다 그러모은 // 큰방 아랫목 / 쌀밥 한 그릇 냄새가 (아랫목 쌀밥 한 그릇/128쪽)


+


《맨발의 기억력》(윤현주, 산지니, 2017)


이곳은 열 달 동안 발을 차며 놀았던 자궁처럼 둥글고 캄캄하고 편안해요

→ 이곳은 열 달 동안 발을 차며 놀던 아기집처럼 둥글고 캄캄하고 아늑해요

16


한바탕 잔치 파한 뒤끝이다

→ 한바탕 잔치 뒤끝이다

→ 한바탕 잔치 끝난 뒤이다

24


세풍世風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 가시밭을 바꿀 수도 있구나

→ 된바람을 바꿀 수도 있구나

67


난해했던 아버지라는 암호를 해독하면서 나의 청춘은 조금씩 낡아 갔다

→ 나는 고약하던 아버지라는 수수께끼를 풀며 젊음이 조금씩 낡아갔다

→ 나는 까다롭던 아버지라는 변말을 풀며 젊은날이 조금씩 낡아갔다

124


골다공증 앓는 초가집, 밤은 깊어 찬바람 삼투처럼 새어드는데

→ 느물뼈 앓는 시골집, 밤은 깊어 찬바람 새어드는데

→ 엉성뼈 앓는 풀집, 밤은 깊어 찬바람 스며드는데

128


시골 누옥에 누워 즐겁게 외풍을 맞는다

→ 시골 오막에 누워 즐겁게 바람을 맞는다

13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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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시-LIM 시인선 1
고선경 지음 / 열림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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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18.

노래책시렁 518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고선경

 열림원

 2025.1.10.



  2022년에 〈조선일보〉에 글을 내어 뽑히고서 선보인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이라고 합니다. ‘시-LIM 시인선’이라고 하면서 ‘젊은작가’라는 이름을 내세우는데, ‘젊다’란 “나이가 적다 + 부딪히고 넘어지며 절다”라는 두 가지 밑뜻이 흐르는 낱말인 줄 알까요? ‘젊은글’이란 온몸으로 ‘늙은담’에 달려들어 깨부수며 이 삶을 새롭게 가꾸면서 배우는 하루를 적는 글이라는 뜻이어야 어울립니다만, ‘부딪히는 삶’을 적는다기보다는 ‘낱말짜기’에 얽매인다고 느낍니다. 나이만 늘려서 낡기에 ‘늙다’라 합니다. 나이만 앞세우느라 어진빛이 안 보이기에 ‘늙은글(원로작가)’이라 합니다. 나이테가 굵어가는 나무는 둘레에 푸른바람을 일으키고 꽃내음이 더없이 향긋하듯, ‘어른글’이란 살림빛을 낳을 줄 아는 나이를 품을 노릇인데, 막상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어른글부터 드뭅니다. 숱한 늙은글부터 ‘낱말짜기’에 갇히니, 젊은글도 어느새 ‘부딪히는 삶’을 팽개친 채 이래저래 낱말만 신나게 짜는 늪에 스스로 잠겨든다고 느낍니다. 깎는말(욕)을 안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씨발’이라는 막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 이런 말씨를 버젓이 쓰려나요? 얼뜬 늙은글을 갈아엎는 길은 언제나 하나이니, 바로 ‘일’입니다. 스스로 바람과 바다를 일으키듯, 땀방울로 이 삶을 일구는 ‘일’을 할 적에는 더없이 젊어서 빛나는 이야기를 담아 노래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점심은 가볍게 먹자 / 그렇게 말하는 네가 좋다 (늪이라는 말보다는 높이라는 말이 좋아/19쪽)


내일도 놀이터에 하트가 남아 있을까? / 아이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 나는 제자리보다 테두리를 생각하네 (한양아파트/48쪽)


교수한테 내가 쓰다 만 시를 이어서 쓰라고 한다든지 / 집주인한테 이 집 내 거지? 문자를 보낸다든지 / 엄마한테는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 이만 원 쥐여 주고 싶네 (디올 전속 디자이너가 내 옷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71쪽)


침대에 모로 누워 울다가 씨발! 하고 외쳤다 / 씨발…… 나직하게 읊조릴 수도 있었지만 / 누구라도 들어 주었으면 해서 소리를 질렀어 (검은 고양이와 자객/73쪽)


+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고선경, 열림원, 2025)


나를 슬프게 만들면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 내가 슬프면 넌 반드시 괴로워

→ 나를 울리면 넌 반드시 아파

12쪽


슬플수록 사나운 표정을 짓게 되는 내가 있고

→ 슬플수록 사납게 구는 내가 있고

→ 나는 슬플수록 사납고

12쪽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 떨어져야 맛있습니다

→ 워낙 곤두가 맛있습니다

16쪽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 이 모두가 씨앗에서 비롯했단 말이죠

→ 다 씨앗이 처음이란 말이죠

→ 다 씨앗부터 있단 말이죠

→ 다 씨앗에서 퍼졌단 말이죠

17쪽


이렇게까지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다니

27쪽


나에게도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 나도 눈물 흘릴 짬을 바란다

→ 슬퍼할 틈이 있어야 한다

30쪽


실은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정작 나한테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 마치 내가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싶다

44쪽


내일도 놀이터에 하트가 남아 있을까

→ 이튿날 놀이터에 사랑이 있을까

→ 다음날 놀이터에 사랑이 남을까

48쪽


약속이나 마법처럼 석양이 폭신폭신 녹아내리고 있었다

→ 다짐이나 꽃힘처럼 놀이 폭신폭신 녹아내린다

→ 말씀이나 별빛처럼 노을이 폭신폭신 녹아내린다

49쪽


정중히 사과하면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 가만히 빌면 아이는 울려는 얼굴짓이다

→ 곱게 고개숙이면 아이는 울 듯한 얼굴이다

57쪽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계속해서 걸었다

→ 살짝 떨어져서 그대로 걷는다

→ 조금 틈을 두고서 걷는다

61쪽


내가 내 인생 잠깐 빌려주는 거니까 다들 부담은 안 가졌으면 좋겠네

→ 내가 내 삶 살짝 빌려주니까 다들 어려워하지 마

→ 내가 내 삶 슬쩍 빌려주니까 다들 꺼리지 마

72쪽


살아 있는 꽃의 냄새가 났다

→ 산꽃냄새가 난다

→ 꽃냄새가 싱그럽다

79쪽


뜨개질의 귀재여서

→ 뜨개질을 잘해서

→ 솜씨있게 떠서

→ 뜨개쟁이여서

→ 뜨개순이여서

95쪽


누군가가 나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고

→ 누가 나한테 멀쩡하냐고 묻고

→ 누가 나더러 제넋이냐고 묻고

97쪽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행거가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옷걸이는 내가 바라지 않았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말코지는 내가 안 바랐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횃대는 내가 바란 바 없을 텐데

130쪽


소파에 하트 모양 쿠션이 놓여 있기 마련이지

→ 폭신이에 사랑무늬 깔개를 놓게 마련이지

→ 걸상에 사랑그림 깔개를 놓게 마련이지

13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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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유고 시집 -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 이오덕 교육문고 5
이오덕 지음 / 고인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15.

노래책시렁 519


《이오덕 유고 시집》

 이오덕

 고인돌

 2011.7.10.



  1925년에 멧골마을에서 태어난 이오덕 님은 언제나 멧골자락 작은배움터에서 작은아이 곁에 서려고 했습니다. 2025년은 떠난 어른이 태어난 지 온돌(100돌)입니다. 나고, 자라고, 일하고, 걷고, 돌아보고, 쓰고, 읽고서, 마지막으로 숨을 마시고서 잠든 곳은 멧숲입니다. 언제나 멧새노래를 들었고, 멧새노래를 글결로 옮기면서 들려주었고, 스스로 멧새로 돌아가서 온누리 어린이하고 꿈을 그리겠다는 마음을 오래오래 남겼다고 할 만합니다. 《이오덕 유고 시집》을 펴낸 ‘고인돌’은 이오덕 님 책을 함부로·몰래 찍어서 여러모로 말밥에 올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오덕 온돌’을 기린다며 서울 덕수궁에서 모이는 자리가 어제(11.14.) 있었다는데, 왜 굳이 서울 한복판을 고르는지 얄궂습니다. 멧새로 돌아가려 하던 멧사람을 그리려는 뜻이라면 ‘멧숲과 가장 먼 서울’이 아닌, 겨울에도 노래하는 작은새가 깃든 멧자락을 살펴야 맞을 테지요. 큰어른이 아닌 작은사람으로서 나즈막이 일하는 손끝을 헤아리는 작은이웃을 기다립니다. 모든 숲은 처음에 작은씨앗이었습니다. 모든 나라는 언제나 작은아이가 신나게 뛰놀고 자랄 적에 일어설 수 있습니다. 작은집과 작은책과 작은꿈을 품으려고 한다면 노래 한 줄 함께 읽을 테지요.


ㅍㄹㄴ


어둠이 쌓여 이렇듯 고요한 밤엔 / 먼 별나라로 날아가 버린 꾀꼬리와 산새들 / 다시 돌아올 것 같구나. (한 그루 나무가 되어 1958.5./87쪽)


물동이 이고 오는 어머니께 / 눈인사를 보내고 // 마을 앞을 나오면 / 나를 부르는 소리 // 저쪽 못자리 물속에 / 빨강  파랑 그림자가 달려간다 (학교 가는 길/241쪽)


거기 / 학교를 그만두고 식모살이 가던 / 순이의 인동꽃 같이 노오란 얼굴이 살아나고, / 짐을 진 채 벼랑에서 떨어져 병원에 갈 수도 없이 죽어간 / 석이 아버지의 상여가 넘어가던, / 진달래 피고 물들인 고갯길이 보이고, (산나물/323쪽)


대학생 언니가 쇠몽둥이에 맞아 죽었답니다. / 대학생 누나가 불타 죽었답니다. / 선생님, 시를 어떻게 써야 합니까? (시를 어떻게 써야 합니까/500쪽)


아, 우리가 어렸을 때 부르던 그 노래 / 그 노래를 부르지만 이 땅에ㅐ / 제비는 볼 수 없구나 / 제비가 왜 찾아오지 않나 // 제비가 찾아와도 집 지을 곳이 없고 / 집을 지어도 이 땅의 사람들 / 모조리 놀부가 되어 집을 뜯어버리고 / 제비집 더럽다 제비 똥 더럽다고 (제비/645쪽)


이 세상에서 모두가 쳐다보고 부러워하는 / 천국 중에서도 천국이 / 갑자기 끔찍하게 말도 할 수 없는 지옥으로 /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 그날 저녁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 밤을 까먹고 있었다. (천국의 끝장 1 2001.9.14./774쪽)


이제 나도 그 날이 왔구나. / 돌아갈 그곳을 나는 잘 알 수 없지만 / 다만 황홀한 빛 가득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 들리는 곳이라는 굳게 믿는다. / 그곳은 내 본향, / …… / 내 본향으로 /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산새같이 / 한 마리 새가 되어 두 날개 파닥거리며 / 빛과 노래가 가득한 그곳으로 간다. (이승은 하룻밤 2003.8.16./98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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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숲에서 삶을 찾다 - 농부 시인 봄날샘과 이웃들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16
서정홍 지음 / 단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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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15.

노래책시렁 520


《시의 숲에서 삶을 찾다》

 서정홍·청년농부와 이웃들

 단비

 2018.4.15.



  어쩐지 어느 때부터인지 여기저기에서 ‘청년농부’ 같은 일본말씨가 퍼집니다. 우리는 우리말로 ‘젊은-’이나 ‘푸른-’ 같은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논밭을 일군다면 ‘젊은논밭꾼’이요, 흙을 가꾼다면 ‘푸른흙지기’입니다. 젊든 늙든 나란히 ‘논밭님’에 ‘흙님’이라 일컬을 만합니다.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여러 사람이 노래 한 자락을 함께 읽고 나누는 마음을 엮은 《시의 숲에서 삶을 찾다》입니다. 여러모로 뜻깊구나 싶지만 이래저래 아쉽습니다. 들숲메바다는 언제나 푸르고 파랗게 일렁이는 숨빛으로 아름답습니다만, 들숲메바다는 사람한테 목청껏 외치지 않아요. 들숲메바다는 한결같이 차분히 사람을 지켜봅니다. 스스로 높이거나 낮추지 않습니다. 그러면 들노래이건 숲노래이건 멧노래이건 바다노래이건 철마다 새롭게 피고 지는 하루를 가만히 담으면 되어요. 더 낫거나 나쁘다고 몰아대는 글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짓는 결을 적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시의 숲”이란 없습니다. ‘노래숲’은 있습니다. ‘멧노래숲’이 있고 ‘들노래숲’이 있어요. ‘노래들’이 있고 ‘노래들녘·노래들판’이 있으며, ‘노래들꽃’과 ‘노래멧꽃’이 있습니다. 젊은흙손과 푸른흙손이 만나서 그저 푸른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ㅍㄹㄴ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 내가 세상 걱정 때문에 잠 못 들면 / 누군가 아무 걱정 없이 / 깊은 사랑 나눌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58쪽)


+


《시의 숲에서 삶을 찾다》(서정홍·청년농부와 이웃들, 단비, 2018)


고마운 분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 고마운 분한테서 넘치게 사랑받았습니다

→ 이웃님이 고맙게 넘치도록 사랑했습니다

4


청년 농부라 불러 주는 걸 훨씬 더 좋아합니다

→ 젊은 흙지기라 하면 훨씬 반깁니다

→ 젊은 논밭꾼이라 하면 더 반갑습니다

4


예슬이 곁에는 좋은 이웃이 많습니다

→ 예슬이 곁에 이웃이 많습니다

→ 예슬이 이웃은 포근합니다

6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습니다

→ 들숲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 숲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나 같습니다

7


우시장 브로커가 귀찮다는 듯 얼마에 팔 거냐고 물었을 때

→ 소장사가 귀찮다는 듯 얼마에 파느냐 물을 때

15


남편은 요즘 틈만 나면 요리를 만든다

→ 곁님은 요즘 틈만 나면 밥을 한다

→ 짝꿍은 요즘 틈만 나면 밥을 차린다

24


말과 행동과 사상에 탁월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라 생각한다

→ 말과 몸짓과 생각이 훌륭하다면 어머니 사랑 때문이라 본다

→ 말과 몸과 빛이 뛰어나다면 어머니 사랑 때문이라 여긴다

27


서로를 향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던

→ 서로 갸륵해야 한다던

→ 서로 느껴야 한다던

→ 서로 눈물지어야 한다던

35쪽


면발을 만들던 그 모습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 국숫발을 내던 모습은 쉰 해가 지난 오늘도 생생하다

49


어떤 위로를 하는 것조차 부끄러워

→ 어떻게 달래든 부끄러워

→ 어찌 다독이든 부끄러워

57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 참말 그러기를 비네

→ 참 그러하길 바라네

58


누군가 아무 걱정 없이 깊은 사랑 나눌 수 있기를

→ 누구나 아무 걱정 없이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 모두 아무 걱정 없이 깊게 사랑할 수 있기를

58


그저 음식이 아니라 자연이 나를 위해 내어놓은 생명임을 알았다

→ 그저 먹을거리가 아니라 숲이 나한테 내어놓은 숨인 줄 알았다

77


산골 마을에선 귀한 것들끼리 함께 산다네

→ 멧골에선 고운 숨결이 함께산다네

→ 멧마을에선 꽃빛이 함께산다네

95


풍요로운 세상이라는 지구별에서는 모든 것이 넘쳐 나는 듯

→ 넉넉하다는 푸른별에서는 모두 넘쳐나는 듯

→ 가멸차다는 파란별에서는 모두 넘쳐나는 듯

15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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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택배 트럭! 문학동네 동시집 59
임미성 지음, 윤지회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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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23.

노래책시렁 517


《달려라, 택배 트럭!》

 임미성 글

 윤지회 그림

 문학동네

 2018.3.5.



  낱말마다 우리 삶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어느’ 낱말이든 쓰면 되지만, ‘아무’ 낱말이나 쓰지 않을 노릇입니다. 내가 스스로 소리를 내거나 마음에 놓거나 글로 옮기는 ‘모든’ 말은 우리 하루를 이루면서 우리 몸과 마음으로 스밉니다. 마음을 말로 고스란히 옮기기도 하고, 말이 그대로 마음으로 자리잡습니다. 이런 얼거리라서 ‘막말·낮춤말·깎음말·얕봄말·구지레말·지저분말·추레말·더럼말·사납말’을 혀에 얹거나 글로 옮기면, 남을 깎지 않고 나를 깎아요. 《달려라, 택배 트럭!》을 읽는데, 여러모로 ‘말놀이 아닌 말장난’이지 싶습니다. “둘리 방구”는 이미 마흔 해 즈음 이른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요새 다시 들춰야 할까요? 오늘 이곳에서 ‘어린이부터 어른인 몸으로 이은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면 말장난을 할 일이 없습니다. ‘어른인 몸을 입은 내가 어떤 어린날을 살며 오늘에 이르러 둘레에 어떤 어린 이웃이 있는가’ 하고 돌아보는 눈이라면, 서로 마음을 북돋우는 말살림을 펴게 마련입니다. 노래를 쓰든 수수하게 글을 쓰든, 섣불리 ‘위로·존중·다양성’을 앞세우지 않기를 빕니다. 그저 나란히 서서 나랑 너를 함께 헤아리는 눈빛이면 넉넉합니다. 함께 이야기하려는 마음을 쓰면 됩니다.


ㅍㄹㄴ


‘둘리 문방구’에서 / ‘문’ 자가 없어지고 / ‘둘리 방구’가 되었지만 / 나는 그대로야 (둘리 문방구 유리문의 비밀/18쪽)


종이 한 장이 이렇게나 무겁다 / 글자가 무겁기 때문이다 / 엄마는 이 한 장을 못 들고, 오늘 / 주저앉았다 (종이 한 장/47쪽)


형들은 우리보고 / 야, 나대지 마라 하며 / 축구할 때 빠지라고 한다 // 4학년짜리들은 우릴 보고 / 6학년도 아니면서 뭘 째려봐 / 이런다 (5학년/66쪽)


현장학습 간 날, / 내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은 / 무엇이 될까? // 도깨비가 될까? / 바늘이 될까? (무엇이 될까?/70쪽)


+


《달려라, 택배 트럭!》(임미성, 문학동네, 2018)


즐거움과 따뜻한 위로가 되길 빌어요

→ 즐겁고 따뜻이 달래기를 빌어요

→ 즐겁고 따뜻하기를 빌어요

6쪽


바다 냄새 나는 책을 읽는 게 좋아

→ 바다냄새 나는 책을 읽으며 즐거워

→ 바다냄새 책을 읽으며 즐거워

17쪽


그 애의 손을 잡듯 부드럽게 악수를 하듯 손이 손에게 말을 걸게 하는 거야

→ 그 애 손을 잡듯 부드럽게 맞잡듯 손이 손한테 말을 걸어

25쪽


봉투 안에

→ 글자루에

→ 자루에

47쪽


잠자리 한 마리 나 읽는 책 위에 앉았다

→ 잠자리 한 마리 책에 앉는다

→ 나 읽는 책에 잠자리 한 마리 앉는다

54쪽


새들끼리는 여름 인사 잘 통해서

→ 새는 서로 여름말 잘 들려서

→ 새끼리 서로 여름말 잘 들어서

→ 새는 저희끼리 여름말 잘 나누니

8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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