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의 시간 창비시선 494
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9.6.

노래책시렁 447


《니들의 시간》

 김해자

 창비

 2023.11.24.



  소쩍새가 둘 있으면, 둘이 내는 노랫가락은 두 가지입니다. 꾀꼬리가 셋 있으면, 셋이 내는 소릿가락은 세 가지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넷 있으면, 넷이 내는 노래마디는 네 가지입니다. 온누리에 들숲바다가 있으면 온누리 갈래만큼 다 다른 들숲바다입니다. 이 나라에 마을이 있으면 모든 마을마다 다른 빛과 터와 삶입니다. 《니들의 시간》을 읽으며 무엇이 다르려나 헤아리지만 썩 종잡지 못 합니다. 글쓴이 이름을 가려 놓으면,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구나 싶어요. 적잖은 글지기는 애써 다른 티를 내려고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를 뒤섞는데, ‘시집’으로 나온 꾸러미에 깃드는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어떤 하루를 살기에 글결이 닮을까 하고 돌아본다면, 사람들 옷차림부터 다 닮고, 사는 집도 다 닮고, 읽는 다른 책도 다 닮습니다. 담으려고 닮는다기보다, 닮아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닳는다고 느낍니다. 다가가려고 담은 몸짓이 아닐 테니까, 담벼락처럼 높다랗게 쌓아서 가로막기도 합니다. 소쩍새처럼 그저 노래하면 됩니다. 꾀꼬리처럼 마냥 노래하면 됩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언제나 노래하면 됩니다. 새를 곁에 놓는 삶자리라면, 입과 손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저절로 노래입니다.


ㅅㄴㄹ


가출했다 잡혀 온 내 손모가지 꽉 붙들고 / 엄마는 딱 한마디 했다 / 집에 가자이, / 아무 말 못하고 엄마 손에 끌려갔다 / 목표역 앞이었다 // 머를 좀 잘못 알았는갑소, / 잘 좀 알아보쇼이, / 우리 애기는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랑께요, / 경찰서 안이었다 (모국어/18쪽)


동인천 중국인 거리에서 한잔하고 / 하인천 골목 우럭구이집에서 한담 나누는데 / 근처 율목동 사는 최원식 선생께서 / 인천에서 활동하던 조직 이름이 뭐였냐 물으시길래 / 우리는 이름이 없었다고 말하자 / 그거 재밌다 이름 없는 조직이라니, / 소년처럼 웃으시며 / 야아! 이름이 없다니 그거 대단하다 대단해, / 그 점잖으신 양반이 파안대소하시다 / 그런 시는 왜 안 쓰냐, 한 말씀 보태시는데 (이름 없는 조직/26쪽)


+


《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


몸빼와 꽃무늬 스웨터

→ 일바지와 꽃무늬 털옷

→ 꽃바지와 꽃무늬 털옷

10


논바닥 위로 쌓여가는 눈 위에 눈

→ 논바닥에 쌓여가는 눈에 눈

11


울지 못한 울음 그의 등짝이 젖고 있었다

→ 울지 못한 그는 등짝이 젖는다

→ 울지 못한 채 등짝이 젖어든다

13


마사토와 진흙 잡석 사이

→ 굵모래와 진흙과 돌 사이

→ 굵은모래 진흙 잔돌 사이

16쪽


경찰서 앞이었다

→ 살핌터 앞이었다

→ 지킴터 앞이었다

18쪽


탁발 순례 마치고 큰오빠 집으로 간 지 한달 만에 영영 가셨다

→ 동냥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끝내 가셨다

→ 모심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그저 가셨다

→ 꽃손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내처 가셨다

→ 섬김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아주 가셨다

19쪽


집 우(宇) 집 주(宙)

→ 집과 집

→ 온과 누리

19


아직도 근무 중인가 독서대에 세워진 책을 투과하여 벽을 째려보는 것 같다

→ 아직도 일하나 읽기판에 세운 책을 비추어 담을 째려보는 듯하다 

→ 아직도 일하는가 책판에 세운 책을 꿰뚫어 벼락을 째려보는 듯하다

22


딸은 시방 면벽(面壁) 수행 중

→ 딸은 막 담바라기

→ 딸은 이제 마주담

22쪽


오리들의 창가(唱歌) 허공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오리노래 하늘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오리가락 높이 두드려대는 북소리

25쪽


그 점잖으신 양반이 파안대소하시다

→ 점잖으신 어른이 활짝 웃는다

→ 점잖으신 분이 껄껄댄다

26쪽


중구난방 회합장이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들끓며 나누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흩날리며 같이하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춤추는 모임터가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오락가락 만나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42쪽


무력한 자들의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 힘없는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 기운잃은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46


하얀 어둠 속에서 잊어버린 말들이 방문했다

→ 하얗게 어두운데 잊어버린 말이 찾아온다

→ 하얀밤에 잊어버린 말이 다가온다

51


다시 시작해도

→ 다시 해도

→ 다시 가도

53


듣고도 모른 척한 말들이

→ 듣고도 모른 척한 말이

56


깨진 돌의 말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깨진 돌이 하는 말로 그대를 모십니다

→ 깨진 돌이 말하니 너를 부른다

58


페이지만 달라질 뿐

→ 쪽만 다를 뿐

86


인간은 어디까지 자율적일 수 있을까요

→ 사람은 어디까지 스스로 할까요

→ 우리는 어디까지 마음대로일까요

86


천개의 언덕 위에서

→ 즈믄 언덕에서

9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씽씽카 타는 참새들 상상 동시집 21
조수옥 지음, 양민애 그림 / 상상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9.6.

노래책시렁 444


《씽씽카 타는 참새들》

 조수옥

 상상

 2023.6.30.



  길이나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요사이는 잿집(아파트) 안쪽에 놀이터가 있다고 합니다. 잿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은 굳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습니다. “울타리 안쪽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 집으로 쪼르르 돌아가면 됩니다. 지난날에는 딱히 놀이터라는 곳이 없었고, 마을과 골목과 들숲바다가 온통 놀이터였습니다. 우리 마을끼리만 놀지 않았습니다. 이웃 또래나 동무를 만나러 가볍게 섞였어요. 《씽씽카 타는 참새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꽤 많이들 서울·큰고장에서 살 뿐 아니라, 잿집에서 사니까, ‘살아가는 그대로’ 잿집 울타리에 깃든 어린이 모습을 그려낼 만합니다. 들숲을 본 일도 없고, 바다는 놀러갈 뿐이니까, 아이도 어른도 이제는 ‘서울 잿집 놀이터’하고 ‘서울 배움터(학교·학원)’라는 울타리에서 쳇바퀴하는 모습을 글로 쓸 테지요. 그런데 이름은 ‘놀이터’라지만 그곳이 참으로 ‘놀이’를 하는 곳일까요? 우리말 ‘놀이·노래’는 한동아리입니다. 놀기에 노래하고, 노래하기에 놀아요. 그렇지만 오늘날 서울 놀이터나 배움터에는 노래가 없어요. 악쓰고 떼쓰는 외마디가 판칩니다. 아이들을 귀엽게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요. 잊기에 잃은 놀이와 노래와 들숲바다를 부디 찾아보기를 빕니다.


ㅅㄴㄹ


아파트 놀이터에서 / 참새들이 씽씽카를 탄다 // 머리에 노랑, 파랑, 빨강 / 헬멧 쓴 참새들 (씽씽카 타는 참새들/10쪽)


떨어져야 부를 수 있는 / 빛나는 이름 (별똥별/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동장 편지 창비청소년시선 5
복효근 지음 / 창비교육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9.1.

노래책시렁 446


《운동장 편지》

 복효근

 창비교육

 2016.3.25.



  시골에서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맞는 신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골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신이나 옷을 장만하려면 가깝거나 먼 큰고장으로 갑니다. 전남 고흥·보성·장흥에서는 순천이나 광주를 다녀오지요. 시골에는 책집도 없기에 누리책집으로 사느라, 거의 책이름만 믿고서 사기 일쑤입니다. ‘시’라 하더라도 마땅한 책집이 드물 수 있고, ‘군’이라면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시골 벼슬꾼(군수·군의원·국회의원·공무원)은 이런 데에 아무 마음도 눈길도 없어요. 온나라 교육청도 똑같습니다. 《운동장 편지》를 가만히 읽었습니다. 푸름이한테 들려줄 글로 여미었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서울스러울 뿐, 작은고장과 시골에서 나고자라는 푸름이한테는 참 동떨어진 수다 같습니다. 삶을 스스로 새롭게 읽는 눈썰미를 노래로 담을 적에, 푸름이뿐 아니라 길잡이와 뭇어른이 함께 마음을 틔우리라 봅니다. 쳇바퀴로 돌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 이 쳇바퀴에서 부딪히거나 부대끼는 굴레를 그냥그냥 옮기는 글로 맴돕니다. 갈수록 옷값도 신값도 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요? 푸름이가 손수 신을 삼고 옷을 짓는 길을 어른스럽게 이야기와 글과 노래로 들려줄 수 있나요? 아니면 수렁(대학입시)만 쳐다보는지요?


ㅅㄴㄹ


‘얌마, 그건 샘이 너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야.’ / 할 겁니다. // 나 좀 냅둘 수 없나요? / 사랑 좀 안 해 주면 안 되나요? (사랑받지 않을 권리/19쪽)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자기네만 마시지? / 이렇게 독한 것을 왜 마시지…… / 이게 바로 체험학습이지…… 낄낄대면서 / 생수병에 든 소주 나눠 마셨다. // 밤새 과음했는지 선생님 눈도 쾡하다. / 알고도 모른 체하는 건지, 정말 몰랐던 건지 / 저 미묘한 웃음은 또 뭐지? (현장체험학습/80쪽)


+


《운동장 편지》(복효근, 창비교육, 2016)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 어둠이 차갑게 스며들고

→ 밤은 시리고

10


꿈틀거리고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 꿈틀거리는 줄도 처음 알았다

12


두 날개로 하나 되어 날아간다는 비익조처럼

→ 두 날개로 하나되어 날아간다는 암수새처럼

→ 두 날개로 하나되어 날아간다는 나란새처럼

14


편편하게 잘 마른 나뭇잎에 우리는 간절한 단어를 썼습니다

→ 반반하게 잘 마른 나뭇잎에 애타는 낱말을 씁니다

→ 판판하게 잘 마른 나뭇잎에 목마른 말씨를 씁니다

16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 가슴이 먹먹합니다

17


꿈도 많고 개성도 가지가지

→ 꿈도 많고 가지가지 다르고

→ 꿈도 많고 나다움도 다르고

→ 꿈도 많고 멋도 다르고

22


세상 모든 싸움이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 온누리 싸움이 모두 이러기를 빌어요

→ 모든 싸움이 이러하기를 바라요

29


폭우가 쏟아진대도 좋을 텐데

→ 비가 쏟아져도 될 텐데

→ 큰비가 와도 될 텐데

42


그녀가 내 손에 쥐어 준 핫팩

→ 그 아이가 쥐어 준 포근이

→ 그 애가 쥐어 준 푸근이

46


참아 보기 위해 별의별 생각을 다 해 보는 중이다

→ 참아 보려고 온갖 생각을 해본다

→ 참아 보려고 갖은 생각을 한다

→ 참아 보려고 이 생각 저 생각 다 한다

49


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럴 때가 있단다. 발정기라고 했다

→ 늘 그렇지는 않고 그럴 때가 있단다. 사랑철이라고 한다

→ 늘 그렇지는 않고 그럴 때가 있단다. 짝짓기철이란다

54


그 둘 다 나에겐 힘든 거라는 거

→ 둘 다 나한텐 힘들다

→ 둘 다 힘들다

59


소변 볼 때 정조준 잘해서

→ 오줌 눌 때 잘 겨누어

→ 오줌을 반듯하게 누어

64


소년 가장의 위의를 잃지 않고서

→ 어린기둥 품새를 잃지 않고서

→ 어린돌봄이 이름을 잃지 않고서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런닝구 보리 어린이 3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 보리 / 199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23.

노래책시렁 432


《엄마의 런닝구》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보리

 1995.4.15.



  아직 어린이가 걸어서 집과 마을과 배움터 사이를 오가던 무렵에는, 어린이가 저마다 하루를 느끼고 하늘을 바라보고 땅과 들과 숲을 헤아렸습니다. 아직 어버이가 도시락을 싸서 아이한테 건네던 즈음에는, 어버이도 아이도 ‘손길을 담는 사랑’을 나란히 느끼고 누렸습니다. 이제는 걷는 어린이가 확 사라집니다. 어느새 집집마다 도시락을 안 싸는 판입니다. 안 걷고, 밥살림을 등졌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면서 어떤 말을 섞으려나요? 《엄마의 런닝구》는 1995년에 처음 나왔고, 꽤 예전 어린이가 보내던 나날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어느새 해묵었구나 싶은 글일 수 있지만, 스스로 걸어다니던 모든 어린이가 느끼던 마음을 담았고, 어버이하고 아이 사이에 사랑이 흐르던 마음을 옮겼어요. 요즈음은 어린이한테 이처럼 삶글을 쓰라고 북돋울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시 나올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걷는 아이어른’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함께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는 아이어른’도 만나기 힘든 만큼, 손빛이 흐르는 글이란 어떤 노래(동시·어른시)에서도 엿볼 수 없겠더군요. ‘짓다’는 손으로 새롭게 일구는 삶을 나타냅니다. 지을 줄 모른다면, ‘짓다’라는 낱말부터 잊고 잃었다면, 삶글뿐 아니라 살림글도 잊고 잃을 테지요.


ㅅㄴㄹ


나무 밑에 있으니 / 바람 소리가 / 파라파라거린다. / 그 소리가 좋다. / 바람이 피리를 분다. (바람 소리-서울 구일초 2년 박철순/19쪽)


달롱과 꼬들빼기를 캐 먹고 / 또 마늘을 심고 / 그러면 싹이 트고 / 아후 빈 밭은 없는가 보다. (빈 밭-강원 정선 봉정분교 5년 배연표/24쪽)


내가 집으로 혼자 걸어오는 길 / 어쩌다 풀 속에 뱀이 있으면 / 막 앞으로 달려와 / “와아 시껍아! / 내일부터는 일로 안 와야지.” 하는데도 / 그 다음 날에도 오는 길. (논두렁길-경북 경산 부림초 6년 성재욱/38쪽)


비가 오는데도 / 어미소는 일한다. / 소가 느리면 주인은 / 고삐를 들고 때린다. / 소는 음무음무거린다. / 송아지는 모가 좋은지 / 물에도 철벙철벙 걸어가고 / 밭에서 막 뛴다. (비 오는 날 일하는 소-경북 울진 온정초 4년 김호용/59쪽)


아침 일찍 시장에 나와 / 아직도 고기를 못 판 어머니 / 지나가는 사람보고 / “마수요, 좀 사 가소.” 한다. // 어머니 옆에서 파는 아주머니는 / 벌써 다 팔고 / “뜨리미요 뜨리미, 많이 주께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 억지로 판다. (어머니-부산 감전초 6년 박미정/140쪽)


이모 집에 갔다 오는 길 / 서부 정류장에서 어떤 할머니 한 분 / 머리에 목도리를 두르고 / 허리엔 헝겊을 칭칭 감고 / 한 푼만 주세요 하며 / 사람들에게 졸랐다. / 돈은 아무도 주지 않았다. / 할머니가 나한테 다가왔다. / 이모가 날 데리고 / 다른 데로 가 버렸다. (어떤 할머니-대구 북동초 6년 이경미/20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괴 전시회 상상 동시집 26
강벼리 지음, 정마리 그림 / 상상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23.

노래책시렁 443


《요괴 전시회》

 강벼리

 상상

 2024.1.5.



  곰곰이 짚으면, ‘요괴’나 ‘괴물’이나 ‘마녀’ 같은 한자말은 우리 삶터하고 아예 멉니다. 일본이 이 땅으로 쳐들어온 뒤부터 잔뜩 퍼진 일본말씨일 뿐입니다. 요즈음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이 많지만, 그냥그냥 쓰기 앞서 “이런 말을 누가 왜 들였을까?”를 살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우리 삶자리에 없던 말이라면, 왜 없었을까?”를 나란히 헤아려야 할 테고요. 《요괴 전시회》를 가만히 읽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숱한 ‘요괴·괴물·마녀’란, 그야말로 일본에서 꾸며낸 그림(이미지)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본 옛이야기하고 하늬(서양) 옛이야기를 이래저래 섞어서 갖은 깨비(요괴) 새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우리는 이 삶을 어떤 눈으로 읽고 살피면서 하루를 여밀 만할까요? 오늘 우리가 어른이란 자리에 있다면, 오늘 어린이란 자리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는 눈망울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생채기나 멍울이나 고름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나요? 아이들이 뒤집어쓴 생채기나 응어리나 짐을 이렁저렁 몇 가지 꾸밈말로 눙치면서 ‘문학’만 하고 싶나요?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뛰놀 틈을 누릴 노릇입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언제나 새롭게 살림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사랑으로 들려줄 노릇입니다.


ㅅㄴㄹ


어두운 활자 속에 파묻혀 내가 누군지도 몰랐네 / 새 옷 입은 기쁨에 들떠서 말이야 어디로 가는 줄도 몰랐어 / 가 보지 못한 세상 속으로 맘껏 떠나고 싶었네 (모험의 결과/34쪽)


자꾸자꾸 “산만해!”, “산만해!”  야단만 쳐 / 나는 막 기지개를 켜고, 산(山)보다 커지는데 (나는 산만해/4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