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일요일 문학의전당 시인선 361
이유선 지음 / 문학의전당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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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5.3.

노래책시렁 494


《그래도 일요일》

 이유선

 문학의전당

 2023.5.31.



  누구나 말을 합니다. 더더리인 사람이 있고, 재주꾼인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를 읊어도 혀가 꼬이는 사람이 있고, 온 마디를 풀어도 술술 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삶을 들려주고 듣습니다. 이때에 한 가지를 헤아릴 만합니다. 우리는 누가 듣기를 바라면서 말을 하나요? 우리는 누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나요? 《그래도 일요일》을 읽었습니다. 혼잣말 같기도 하지만, 사람들 곁에서 들려주고 싶은 말 같기도 합니다. 어디에 서서 읊거나 외거나 들려주는 말인지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즈음 흐르는 숱한 글은 ‘듣는 귀’인 이웃과 너를 그리 안 헤아리더군요. ‘말하는 입’인 숨빛과 나를 그다지 안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메마르다거나 외톨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시’나 ‘문학’이 아니라, “서로 나눌 말”이라고 여긴다면, 낱말 하나를 어떻게 골라서 어떤 실로 엮고 여미어 옷으로 지을 적에 서로 ‘이야기’로 피어날 만한지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풋감이 지붕에 떨어질 적에 내는 소리는 ‘풋감소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낮을 누리고 저녁을 맞이한 뒤에 밤에 잠드는 길이란 우리가 다 다르게 보내는 삶입니다. 그저 삶을 적으면 모두 노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서럽지도 않게 왔다가 / 서럽지도 않게 떠나가기에 바쁜 / 우리는 풀꽃이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뜯어 / 점심으로 먹고 싶은 일요일 / 오후의 귓불 느닷없이 아카시 향기에 닿았다 (어린 기억들/26쪽)


비탈길 폐지 싣고 오르는 할머니에게 / 전봇대 위에서 기다리던 비둘기 / 물똥을 쌌다 // 흥건한 이마의 땀을 닦는 할머니 / 일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 눈길 마주친 / 전봇대 위의 비둘기 / 꽃 한 송이 더 필요한가요? (낮달/68쪽)


+


《그래도 일요일》(이유선, 문학의전당, 2023)


허무주의자도, 무골호인도, 외톨박이도, 불한당도, 한량도

→ 넋빈이도, 뭉술이도, 외톨박이도, 각다귀도, 노는이도

→ 멀뚱이도, 느물이도, 외톨박이도, 날라리도, 빈둥이도

13쪽


바람 부는 날 잎들은 비워졌고

→ 바람 부는 날 잎을 비우고

14쪽


과육의 살갗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를

→ 살점도 살갗도 더는 부풀어 오를

→ 열매살은 더 부풀어 오를

14쪽


나날의 고통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 괴로운 나날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나날이 고달파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15쪽


바퀴와 노면 사이에

→ 바퀴와 바닥 사이에

24쪽


용서와 배려라는 너의 말은 그만

→ 봐주고 살피라는 네 말은 그만

→ 눈감고 보라는 네 말은 그만

31쪽


결국엔 일족인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 끝내 한집안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 뭐 집에서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61쪽


나는 형용사를 버렸다

→ 나는 그림씨를 버렸다

62쪽


전봇대 위의 비둘기 꽃 한 송이 더 필요한가요

→ 빛줄대 앉은 비둘기 꽃 송이 더 바라는가요

68쪽


물의 보법을 본다

→ 물살을 본다

→ 물씨 걸음새 본다

72쪽


나그네로 머물게 하는 수상가옥이 된다

→ 나그네로 머물 물살림집이 된다

→ 나그네로 머무를 물살이집이 된다

73쪽


매 순간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수변 물빛은

→ 늘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둔덕 물빛은

→ 노상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냇가 물빛은

→ 언제나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기슭 물빛은

89쪽


직립의 시간에 눌려

→ 바로설 때에 눌려

→ 곧설 틈에 눌려

→ 곧게펼 짬에 눌려

9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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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지음, 설찌 설지혜 그림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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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30.

노래책시렁 496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창비

 2018.9.7.



  예부터 ‘어른’이라는 이름을 얻을 적에는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난 어른이 아닌걸?” 하고 둘러대고 아무 말이나 뱉으면서 마구 할퀴는 사람이 잔뜩 있습니다.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아니기도 하지만, “난 어른이 아냐. 난 못난이야.”라든지 “난 어른이 못 돼. 난 못난 사람이야.” 하고 내세우면서 막말을 일삼거나 이웃을 할퀴는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이 마치 아이들한테 ‘너희도 나처럼 어른이 안 되어도 돼!’ 하고 외치는 듯한 꾸러미입니다. 참으로 너무합니다. 글쓴이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안 되어도 된다’고 이런 글을 내놓아도 되는지요? 스스로 어른이 아닌 줄 안다면, 창피해서라도 글을 안 쓸 노릇이지 싶고, 더더구나 어른이한테 들려줄 글은 안 쓸 일이라고 봅니다. 막말(욕)이란 ‘스스로 더럽힌 마음으로 남도 더럽히고 싶어하는 끔찍한 덫’입니다. 막말을 아무리 한들 후련하거나 개운할 수 없습니다. 막말을 할수록 마음을 스스로 옥죄고 할퀴고 괴롭힐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만 먹는 사람’으로는 안 갈 노릇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짓고 집안일을 기쁘게 맡으면서 어깨동무라는 사랑을 새롭게 배워서 나눌 사람’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제발 철부터 들고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뭐가 나올지 모르고 / 땅을 파헤치는 두더지처럼 / 나는 그 애 마음속에 / 굴을 팠지 내 마음대로 /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느라 /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지 // 그 애가 누구냐고? / 학교 운동장을 다 파헤쳐 봐라 / 그 애 그림자라도 나오나 / 하지만 열심히 파다 보면 / 세상 모든 두더지를 / 만날 수는 있을 거야 (모든 첫사랑은 두더지와 함께/13쪽)


안경 쓴 나무늘보 같은 / 우리 선생님 손에 잡히는 여자는 / 여자가 아니겠지 // 1학년이겠지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학년 2/22쪽)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하물며 몸통까지 우리에게 다 주고도 (달과 돼지/30쪽)


시골 외할머니 집에 누워 있는데 / 감나무가 아직 익지도 않은 / 감을 자꾸 던진다 // 감보다 큰 혹이 머리에 /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 기분이 나쁘다 //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참지만 / 좀 심하다 //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던지는 땡감이 무슨 질문 같다 / 개똥 같다 (땡감/54쪽)


욕을 하고 싶은 날이 있지.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착한 아이는 욕을 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착하다고 소문난 문방구 아저씨도 욕을 하는 날이 있지.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홱 뱉어 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 그런 날은 욕을 사러 가지.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어떤 욕이 좋을까?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나는 혀 위에 욕을 올려놓고 생각하지. (초콜릿/104쪽)


+


가끔씩 하늘에서 내려온다

→ 가끔 하늘에서 내려온다

23


거미줄을 타고 공중을 내려오듯

→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듯

23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밥자리로 부르면

→ 우리 마을 가장 가난한 집으로 모시면

30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달은 잔칫자리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30


집에 누워 있는데

→ 집에서 눕는데

54


혹이 머리에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기분이 나쁘다

→ 혹이 나는 듯해 자꾸 손이 간다. 싫다

54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감나무도 싫은 일이 있다고

→ 감나무도 들끓는 일이 있다고

→ 감나무보 발끈할 일이 있다고

54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버금어른처럼 떠억 멋을 부리고서

→ 꼰대처럼 떠억 잘난 척하고서

54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 마구 뱉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한 날이 있지

→ 까대지 않으면 죽을 듯한 날이 있지

104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 막말은 곱게 차분히 골라야 해

→ 꾸지람은 곱게 찬찬히 골라야 해

104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 어떻게 할퀴어야 걔가 더 싫어할까

→ 어떻게 깎아내려야 걔가 더 아플까

104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 나는 거칠게 말할수록 즐겁지

→ 나는 마구마구 뱉을수록 신나지

10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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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 몰개시선 4
황화섭 지음 / 몰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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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집을 읽고서

별꽃을 다섯 모두 붙인 지 언제였는지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얼마만에 별꽃을 다섯 붙이는가?

스스로도 놀란다.

.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23.

노래책시렁 495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

 황화섭

 몰개

 2023.7.28.



  우리는 마음을 으레 바다나 하늘이나 그릇에 빗댑니다. 누구나 마음이란, 바다와 하늘과 그릇마냥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푸짐하게 담을 뿐 아니라, 푸근하게 담고, 푸지게 나눌 뿐 아니라 모든 앙금과 응어리를 풀어내는 바다와 하늘과 그릇과 같은 마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를 대구 ‘앞산’ 곁에 있는 ‘노래책집(시집 전문서점)’ 〈산아래시〉에서 만났습니다. 손바닥에 가볍게 안기는 자그마한 노랫자락을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에 천천히 읽습니다. ‘시’나 ‘문학’을 한다는 티나 허울은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저 ‘노래’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래를 짓고 나누는 사람이 있나 싶어 놀랍니다. 어떤 이는 이 노래책을 ‘산문시’라 여기는데, 덧없는 말입니다. 이 노래책은 “노래를 담은 꾸러미”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고 살아가고 살아온 발걸음을 발바닥에 새긴 이야기 그대로 손바닥에 얹어서 하나하나 돌아본 뒤에, 마룻바닥에 앉아서 차분히 써내려간 노래입니다. 온누리에는 ‘좋은노래’나 ‘나쁜노래’란 없습니다. 그저 ‘삶노래·살림노래’하고 ‘꾸민노래·허울노래’가 있습니다. 참으로 드문 삶노래에 살림노래를 다 읽고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즈넉이 눈을 감고서 긴긴 책집마실 발걸음을 되새겼습니다.


ㅍㄹㄴ


한낮이 되어 마당에 두껍던 눈이 반쯤 녹을 즈음에도 / 새들은 하늘을 한없이 날다가도 / 다시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 “야야, 새들한테 좁쌀 좀 뿌려줘라.” / 아버지 말씀에 좁쌀을 뿌려주니 / 참새들이 쫑알쫑알 신나게 좁쌀을 먹어치운다. (새/16쪽)


내 나이 34세 때, 어머니는 76세에 돌아가셨다. / 어머니 돌아가신 날 산소에서 훌쩍이다가 / 해가 지자 무서워져서 집으로 내달렸다. / 집 마당까지 달려와서 어머니한테 큰절을 했었다. (외갓집 가는 길/23쪽)


“교수님 왜 하필이면 서울에서 멀기도 먼 이곳에 박물관을 지으셨습니까?” “여기 예천이 밤하늘 별 관찰하기가 젤 좋은 곳이야.” (53쪽)


나는 슬금슬금 강의실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다시 나갔다. 수업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정문 바깥쪽 길가에 헌책을 팔고 있었다. 《思想界》 《씨알의 소리》 곰팡내가 나는 것 같은 책. 당시 형님은 약수동에서 헌책방을 열고 계셨다. 그때 산 헌책을 다 읽고 나면 형님한테 갔다 드렸다. 형님 말씀 “야야, 대학 들어갔으면 전공책을 읽어야지 뭐 이런 헌책을 읽노.” … 느닷없는 석사장교 6개월 제도로 그의 아들, 그의 친구 아들도 석사장교 6개월로 군제대한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석사장교 6개월 제대 후 얼마 안가서 석사장교 제도는 폐지되었다. 대학 졸업 정원제도 없어졌다. (낮은 땅에서 살아보려고/58, 59쪽)


나에겐 내 몸과 같은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던 여자친구를 대학 다니던 시절에 운동권 선배하테 빼앗긴 친구.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던 그 친구는 현장에서 손가락이 두 번이나 잘려 나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슬픔을 딛고서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띠면서 (반가사유상/62쪽)


한참 후에 그분한테 물었다, 여자처럼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 자기는 직업군인으로 군 헌병대에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 무슨 사건이 생겼는데 그 사건으로 해서 너무나 억울하게 너무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 그 후에 군에서 쫓겨났다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남자들이 싫어서 여장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화장하는 남자/84쪽)


+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황화섭, 몰개, 2023)


기억의 처음은 내가 기어 다니다가 첫걸음을 걸으면서 똥을 내질렀다는 것

→ 떠오르는 처음은 내가 기어다니다가 첫걸음을 떼면서 똥을 내질렀다는

→ 되새기는 처음은 내가 기어다니다가 처설음을 디디며 똥을 내질렀다는

5쪽


가끔씩은 고양이 수염 따라

→ 가끔은 고양이 나룻 따라

5쪽


바람의 향기,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들 톱밥의 냄새

→ 바람내음,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마다 톱밥냄새

→ 바람내,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에 톱밥내

13쪽


한없이 곡식 씨같이 생긴 것을 가끔씩 쓸어주었다

→ 가없이 낟알같이 생긴 알을 가끔 쓸어주었다

20쪽


정한수 물을 귀한 반상에 올리고서

→ 새벽물을 값진 자리에 올리고서

→ 비나리물 고운 밥자리에 올리고서

27쪽


바보가족들의 행진에도 바다는 그저

→ 바보네가 거닐어도 바다는 그저

→ 바보집안이 걸어도 바다는 그저

35쪽


서른 호 정도의 집들이 서로 다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 서른 집 즈음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큼 알맞게 떨어져서

→ 서른 채 남짓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큼 슬슬 떨어져서

56쪽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있었다

→ 한꽃사랑인 둘이 있다

→ 꽃사랑인 짝지가 있다

7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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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기준 문학동네 동시집 84
김준현 지음, 송선옥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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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12.

노래책시렁 491


《토마토 기준》

 김준현 글

 송선옥 그림

 문학동네

 2022.2.3.



  사람도 ‘숲’입니다. 풀과 나무만 숲을 이루지 않습니다. 늑대와 곰과 여우와 범도 숲을 이룹니다. 멧돼지와 멧토끼와 지렁이와 나비도 숲을 이루고, 풀벌레와 딱정벌레도 나란히 숲을 이룹니다. 누구나 다르면서 어울리는 숲인 줄 느낀다면, 언제나 스스럼없이 파란하늘을 머금는 푸른들녘인 마음으로 살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토마토 기준》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린이가 어린배움터에서 고단하게 마련이라 여기는 틀로 “해보자! 해보자!” 하고 북돋우려는 줄거리 같습니다. 그러면 뭘 해봐야 할까요? 배움터 여섯 해를 버텨내고, 이다음 여섯 해도 버텨내어, 이른바 ‘대학졸업장’까지 따내면 될까요? 우리 삶터가 푸른숲이나 아름숲이라면, 어린배움터만 마치고도 삶터 곳곳에서 즐겁게 일할 만해야 맞습니다. 어린배움터조차 안 다니더라도 스스럼없이 꿈을 펼 만한 터전이어야 아름답습니다. 배움길이 아닌 배움수렁에 배움굴레로 옥죄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괴롭고, 어버이도 고단하고, 배움터 길잡이까지 힘겹습니다. 말로만 꿈(희망)을 품자고 귀여운 말로 속삭이기보다는,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풀씨에 나무씨인 줄 느끼도록 들려주는 이야기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집안일을 하고, 철빛을 읽고, 새롭게 배우는 기쁜 하루를 누리는 길을 들려줄 적에 비로소 글(문학)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ㅍㄹㄴ


김밥을 말자 / 품은 게 많아서 따뜻한 김밥을 말자 // 마르고 여린 김이라도 / 밤하늘처럼 넓고 깊은 품으로 / 계란 걔랑 우엉 부엉 단무지 무지무지 깨소금 깨작깨작 / 어묵을 오물오물 밥알 봐봐 / 안을 만큼 안아 / 데굴데굴 구르자 // 달팽이 집처럼 돌돌 말자 (김밥을 말자/28쪽)


가끔 한숨이 나올 때가 있어 / 마음의 공기가 다 빠져나올 때가 있어 // 그럴 때는 잊지 말고 / 풍선을 불자 // 아픈 병아리 한숨은 노랑 풍선 / 수학 시험 한숨은 빨강 풍선 / 그 아이 불 때마다 나는 한숨은 분홍 풍선 /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한숨은 파랑 풍선 / 시든 꽃을 든 아이 한숨은 초록 풍선 (한숨 기억/54쪽)


사람한테는 작은 콩 소리가 / 파리한테는 온몸이다 // 파리는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스스로의 모습에 / 온몸으로 부딪쳤다 (푸른 고어럼/62쪽)


+


《토마토 기준》(김준현, 문학동네, 2022)


톡, 셔틀콕을 톡

→ 톡, 깃공을 톡

→ 톡, 깃털공을 톡

12쪽


더 아래층에서 기다리는 누군가를 향해

→ 더 밑칸에서 기다리는 누구한테

→ 더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한테

23쪽


세상의 절반은 어둠에 담갔다 꺼내는

→ 온누리 한켠은 어둠에 담가서 꺼내는

→ 온누리 한쪽은 어둠에 담가서 꺼내는

48쪽


인공호흡을 하듯이 후― 후― 불어 넣자

→ 숨을 후 후 불어넣자

→ 후 후 불어넣자

→ 숨살림을 후 후 하자

54쪽


개구리를 노리는 중이야

→ 개구리를 노려

56쪽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스스로의 모습에

→ 저켠에서 날아오는 제 모습에

62쪽


하나씩 들고 다녔음 좋겠다

→ 하나씩 들고 다니길 빈다

→ 하나씩 들고 다니길 바라

78쪽


너를 위해 동시 한 편 써 줄게

→ 너한테 노래 하나 쓸게

→ 너한테 노래 한 자락 쓸게

97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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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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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7.

노래책시렁 490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창비

 2020.7.24.



  꿈을 그리지 않을 무렵에는 여기저기서 들은 대로 읊거나 시늉하게 마련입니다. 차츰 알아보면서 하나하나 익히는 동안 스스로 꿈을 그려야 하는 줄 깨달으면서 이제부터 “마음을 소리로 얹은 말”을 터뜨립니다. 아기는 처음에는 소리를 따라하고, 이윽고 말을 뱉을 수 있는데, 삶과 하루와 오늘과 이곳을 하나로 아우르는 길을 알아보았다는 뜻입니다. 말마디를 빚어낼 적에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읽는 길을 걷는다고 하겠지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전문시인이 쓴 글이로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굳이 ‘전문시인’으로서 쓰기보다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오늘을 바라보는 나’로서 쓰면 될 텐데 싶습니다. 나를 나로서 드러내고 말하고 밝히는 글을 쓸 적에는 아무런 꾸밈말이 없습니다. 나를 나로 안 드러낼 뿐 아니라, 멋(문학성)을 내려고 할 적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밈말입니다. 꾸미는 말씨가 나쁠 까닭은 없되, 온통 꾸미고 붙이고 보태고 치레하다 보면, 막상 줄거리나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남습니다. 요즈음 글판은 줄거리와 이야기를 숨기는 채 글멋을 펴는 얼거리일 수 있습니다만, 모름지기 노래(시)라면, 이 삶을 눈물로든 웃음으로든 읊는 길일 노릇이어야지 싶습니다.


ㅍㄹㄴ


그는 날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조금 외롭다고도 //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 / 그는 마른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웠다 (불이 있었다/10쪽)


소란스러운 기억이 얼굴을 만든다 / 파묻힌 발을 쓰다듬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75쪽)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창비, 2020)


가장 찬란했다는 것을 모르고

→ 가장 눈부신 줄 모르고

→ 가장 빛난 줄 모르고

15쪽


털실의 길이는 제각기 달랐지만 어떤 뭉치든 빛과 어둠의 총량은 같았다

→ 털실은 다 길이가 다르지만 빛과 어둠은 같다

→ 털실은 다 길이가 다르지만 빛과 어둠은 나란하다

18쪽


겨울은 길고 혼자인 그는 적적함을 느낀다

→ 겨울은 길고 혼자라서 쓸쓸하다

→ 겨울은 길고 혼자이니 외롭다

23쪽


그는 나의 잠 속까지 따라왔다

→ 내 꿈까지 따라온다

→ 내가 자도 따라온다

26쪽


우리는 곧장 보트에 오르려 했지만 더 어두워져야 한다고 했다

→ 우리는 곧장 배에 오르려 하지만 더 어두워야 한단다

30쪽


호수에 이르는 길은 수십가지였다

→ 못에 이르는 길은 갖가지이다

→ 못에 이르는 길은 많다

34쪽


우리는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 우리는 쉼뜰을 거닌다

→ 우리는 쉼터를 걷는다

34쪽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나에게 두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 외딴별로 간다 나한테 두 가지 틈이 생긴다

→ 홀로별로 간다 나는 두 가지 짬이 생긴다

50쪽


할아버지께 호되게 혼이 났다

→ 할아버지가 호되게 말했다

→ 할아버지가 꾸짖었다

52쪽


저마다의 이유가 있으나 결국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 저마다 까닭이 있으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 저마다 뜻이 있으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55쪽


초침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 가는바늘이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63쪽


나는 이곳의 포플러나무를 좋아합니다

→ 나는 이곳 미루나무를 좋아합니다

71쪽


소란스러운 기억이 얼굴을 만든다

→ 시끄러운 어제가 얼굴이 된다

→ 시끌시끌한 일이 내 얼굴이다

75쪽


나는 투명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나는 안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 나는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

9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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