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창비시선 123
김준태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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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2.19.

노래책시렁 318


《꽃이, 이제 地上과 하늘을》

 김준태

 창작과비평사

 1994.10.20.



  대구는 대구에 갇혔다면, 서울은 서울에 갇혔고, 광주는 광주에 갇힌 나라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깨동무란, 나하고 다른 너를 마음으로 맞아들여서 한몸짓으로 천천히 거닐려는 노래놀이입니다. 빨리 걸어갈 까닭이 없는 어깨동무입니다. 노래하고 놀려는 어깨동무입니다. 우리나라에 ‘들불터(민주화 성지)’ 아닌 고을은 없습니다. 모든 고을에서 들불이 타올랐기에 이 나라가 바뀔 수 있습니다. 모든 고을은 저마다 다르게 들불이 피었고, 들풀이 피어나는 삶터입니다. 이 얼거리를 읽어야 비로소 ‘들사람이 짓는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서 풀어냅니다. 《꽃이, 이제 地上과 하늘을》을 읽는 내내, ‘앞(아이들)’을 바라보지 않고서 ‘뒤(지난날 들불)’에 스스로 가두고서 뒷수다만 끝없이 펴는 글바치 모습을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발걸음(역사)도 가르쳐야지요. 그러나 아이들한테 발걸음만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가 어떤 숨빛인지 먼저 가르치면서,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살림을 어른스레 몸소 보여줄 노릇입니다. 그런데 대구도 서울도 광주도 자꾸 쳇바퀴처럼 뒷수다(과거사)만 보여주려는 매무새입니다. 고을마다 어떻게 들불이 다 다르게 타올랐는지 그러모을 때에 비로소 ‘빛고을’이요, 이 들불이 지난 자리에 어떻게 들풀이 자라도록 삶터를 일굴 노릇인지 이야기할 때에 ‘빛글’입니다. 들풀은 ‘地上’이 아닌 ‘들·땅·마을’에서 자랍니다.


ㅍㄹㄴ


가냘픈 남자들의 두 손에 사랑과 힘을 넣어주고 / 남자들이 오랑캐와 폭풍우와 싸우는 시절이면 / 속고쟁이가 다 젖도록 지게질 쟁기질하던 여자들 / 밤 벌판에 들불이 달리고 곶감이 떨어져도 / 접시꽃이 시들고 동서남북 앞뒷산에 도깨비가 설쳐도 / 가을이 오고 창구멍이 뚫리고 눈보라고 밀려와도 / 오, 그러나 두꺼비 같은 아이를 낳고 또 낳고 / 온 산천이 가득하도록 콩덕쿵쿵 아이를 낳는 / 밥짓는 마을마다 절시구 좋아라 우리나라 여자들 / 봉화산 지나 콩밭에 가면 잘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여자들/76쪽)


때로는 나의 영어수업 시간을 몰래몰래 들여다보고 / 때로는 내가 읽고 있는 문학서적도 흠칫흠칫 바라보며 / (김선생, 혹시 뭐 이상한 책 안 읽고 있는지 몰라 / 뭐 도대체 어떤 시들을 발표하는지 몰라) / 날마다 나의 움직임을 스케치해서 보고하던 교장선생님 (김갑동 교장선생님/102쪽)


+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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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유고시집 창비시선 128
김남주 지음 / 창비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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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2.17.

노래책시렁 334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김남주

 창작과비평사

 1995.2.1.



  모든 일은 우리가 그리는 대로 갑니다. 안 시끄럽기를 바라니 시끄러운 복판에 섭니다. 안 힘들기를 바라니 그야말로 힘들게 헤맵니다. 안 미워하려는 마음이려고 하니 자꾸자꾸 미움씨가 자랍니다. 안 먹으려고 내치기에 자꾸 눈앞에 보여요. 안 받아들이려는 몸짓이니까 다시금 싫거 꺼릴 만한 일이 찾아듭니다.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은 김남주 님이 몸을 내려놓고서 태어난 조그마한 꾸러미입니다. 더는 몸뚱이를 버틸 수 없는 줄 느끼면서 끝까지 가다듬은 노랫소리를 포근히 남겼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심은 말씨는 늘 우리 삶을 이루는 밑동입니다. 글을 글씨로 심고, 꿈을 꿈씨로 심고, 사랑을 사랑씨로 심습니다. 왜 모지리에 떠벌이에 돈바치가 나타날까요? 바로 우리 스스로 심은 씨앗이거든요.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멍텅구리란 없습니다. 너와 내가 이곳에서 아름길을 그리지 않기에 마을을 어지럽히고 나라를 뒤흔드는 사납빼기가 나옵니다. 나와 네가 보금자리부터 사랑으로 살림하는 씨앗을 심을 적에 모든 부스러기는 차분히 풀어없앨 만합니다. 오늘 마음에 무슨 씨앗을 심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노래가 사라지기를 바라니 노래가 사라집니다. 노래하는 웃음꽃을 그리기에 작은집은 작은숲으로 갑니다.



별 하나 초롱초롱하게 키우지 못하고 / 새 한 마리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 서울의 하늘 // 물 한모금 깨끗하게 마실 수 없고 / 고기 한마리 병들지 않고 살 수 없는 / 서울의 강 //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 공기 한바람 상쾌하게 들이켤 수 없는 / 서울의 거리 // 나는 빠져나간다 / 지옥을 빠져나가듯 서울을 빠져나간다 / 영등폰가 어딘가 구론가 어딘가 / 시커먼 굴뚝 위에 걸려 있는 누르팅팅한 달이 / 자본의 아가리가 토해놓은 서울의 얼굴이라 생각하면서 (서울의 달/10쪽)


그의 시를 읽고 어떤 이는 / 목소리가 너무 높다 핀잔이고 어떤 이는 / 목소리가 너무 낮다 불만이다 / 아직 목소리가 낮다 불만인 사람은 / 지금 싸움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고 / 너무 목소리가 높다 핀잔인 사람은 / 지금 안락의자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19쪽)


일체의 인간적 위대함이 / 일체의 영웅적 행위가 / 술꾼들의 입가심이 되어 희화적 만담으로 끝나는 곳 // 도시여 인간의 도시여 나는 생각한다 / 그대 곁을 걸으면서 그대 속을 생각한다 /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그대 탐욕과 허영의 시장을 걸으면서 / 권모와 술수 이권과 정실 / 쉴새없이 골고 도는 미궁 (밤의 도시/51쪽)


소 몰아 쟁기질하는 사람이 / 논의 주인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가 (달구지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볏섬과 함께/92쪽)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 아무리 아쉬워도 / 나 없이 어느 겨울을 / 나지 못할 수 있다. /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 제각기 모두 제철을 / 잊지 않을 것이다.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128쪽)


+


새 한 마리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서울의 하늘

→ 새 한 마리 마음껏 날지 못하는 서울하늘

→ 새 한 마리 신나게 날지 못하는 서울하늘

10


지금 안락의자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다

→ 한창 아늑걸상에 앉아 꿈을 꾸는 사람이다

→ 이제 포근걸상에 잠겨 꿈을 꾸는 사람이다

19


대지를 발판으로 일어서서 그 위에 노동을 가하는 농부의 연장과 땀입니다

→ 땅을 발판으로 일어서서 이곳에서 애쓰는 시골지기 연장과 땀입니다

→ 땅뙈기를 발판으로 일어서서 힘쓰는 논밭지기 연장과 땀입니다

20


수갑을 차고 삼등열차에 실려 어딘가로 이송되어 오는

→ 멍에를 차고 셋쨋칸에 실려 어디로 넘겨가는

→ 사슬을 차고 셋쨋수레에 실려 어디로 옮겨가는

38


일체의 인간적 위대함이 일체의 영웅적 행위가 술꾼들의 입가심이 되어 희화적 만담으로 끝나는 곳

→ 모든 훌륭한 사람이 모든 빼어난 일이 술꾼들 입가심이 되어 우스개 수다로 끝나는 곳

→ 모든 빛나는 사람이 모든 뛰어난 일이 술꾼들 입가심이 되어 장난 말솜씨로 끝나는 곳

51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그대 탐욕과 허영의 시장을 걸으면서

→ 흙물이 넘실거리는 그대 길미와 치레란 저잣길 걸으면서

51


권모와 술수 이권과 정실

→ 눈비음 돈 섶

→ 꿍꿍이 길미 끈

→ 뒷질 돈힘 노

51


이가가 박가이고 박가가 이가이고

→ 이씨가 박씨이고 박씨가 이씨이고

72


문전옥답 빼앗기던 시대

→ 살진들 빼앗기던 나날

→ 알뜰밭 빼앗기던 고개

→ 기름밭 빼앗기던 때

88


모를 일이다 나는 사기꾼 정상배가 아닌 바에야

→ 나는 모를 일이다 속임꾼 길미꾼이 아닌 바에야

→ 나는 모를 일이다 거짓꾼 만무방이 아닌 바에야

→ 나는 모를 일이다 뒷장사 더럼치가 아닌 바에야

89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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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 독립서점시인선 1
정덕재 지음, 권현칠 그림 / 월간토마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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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2.13.

노래책시렁 478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

 정덕제 글

 권현철 그림

 월간토마토

 2024.8.26.



  다른 분이 쓴 노래(시)를 베껴쓰거나 옮겨써도 우리 나름대로 말맛을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수하거나 늘 비슷해 보이는 우리 삶을 그저 투박하다 싶은 우리 손길로 가만히 적어 본다면,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적은 ‘수수하 글’ 몇 줄이 오히려 빛나는 노래씨앗으로 번진다고 느낍니다. 이제 다들 잊어버리고 말지만, ‘번지’라는 흙살림이 있습니다. 논삶이를 하면서 흙을 고를 적에 쓰는 ‘번지’인데, ‘번지다’란 낱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엿볼 만합니다. 반반하게 다루는 길인 ‘번지(번디)·번지다’이듯, 판판하게 펴는 길은 ‘퍼지다(퍼디다)’예요. 노래지기가 쓴 글을 한 자락 옮겨 본다면, 살림지기인 우리가 스스로 노래 한 자락을 새롭게 써 볼 만하지 싶습니다.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를 읽고서 덮습니다. 노래라기보다는 타령 같은, 아니 타령이라기보다는 구시렁 같은 줄거리를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사랑이 아닌 채 다가서기에 자꾸 손을 잡거나 만지거나 몸이 달아오릅니다. 사랑으로 마주하면 눈을 감으면서도 밝게 빛나는 마음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사랑노래를 까맣게 잊어버렸나요?


ㅍㄹㄴ


언제 L의 손을 잡을까 망설였다. 술집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대략 5분 남짓, 편의점 환한 불빛이 흐려지는 복권가게 앞을 지날 때가 적당하다. (연애의 진보를 이끄는 손 2/51쪽)


횡단보도 앞에서 / 젊은 남녀의 실용적 포옹을 보는데 / 여자의 손이 / 남자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는데 / 왜 / 내가 두근거리지 (실용적인 포옹/61쪽)


+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정덕제, 월간토마토, 2024)


L과 K가 만나고 C와 S가 헤어진다

→ ㅇ과 ㄱ이 만나고 ㅊ과 ㅅ이 헤어진다

5쪽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네요

15


세상의 무늬들은 꼼꼼히 보면 무늬를 가장한 오염이 많아요

→ 온누리 무늬는 꼼꼼히 보면 무늬로 꾸미며 지저분해요

→ 온나라 무늬는 꼼꼼히 보면 무늬 시늉일 뿐 더러워요

20


네 번의 문자에 대한 답장이었다

→ 넷째 쪽글에 맞글이었다

37


젊은 남녀의 실용적 포옹을 보는데 여자의 손이 남자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는데

→ 단출히 보듬는는 젊은이를 보는데 순이 손이 돌이 엉덩이를 두드리는데

→ 멋스러이 안는 젊은이를 보는데 가시내 손이 머스마 엉덩이를 두드리는데

61


얼굴이 잡히지 않는 CCTV가 없는 숲속도 좋아

→ 얼굴이 잡히지 않고 살핌눈 없는 숲도 돼

→ 얼굴이 안 잡히고 지킴눈 없는 숲도 즐거워

12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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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염없는 바깥 걷는사람 시인선 2
송주성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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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2.10.

노래책시렁 479


《나의 하염없는 바깥》

 송주성

 걷는사람

 2018.4.30.



  거미나 벌레나 지렁이를 보며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많고, 파리나 모기를 보며 싫다고 여겨 바로 때려죽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미와 벌레와 지렁이가 없으면, 사람은 밥을 아예 못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없으면, 사람은 쓰레기밭에 파묻혀 죽습니다. 다름(차이·차별)을 자꾸 작은이(소수자) 쪽으로만 몰아가려는 ‘진보’가 넘치는데, 여태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자가용 없이 군내버스 타는 작은이 권리’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농약·농기계·비료·비닐 없이 논밭을 돌보는 작은이 인권’을 말한 적마저 없어요. 예부터 ‘깍두기’라고 해서 모든 쪽에 어울리며 같이 노는 살림살이로 ‘다름’을 품었습니다. 틀에 박는 ‘인권·태도’가 아닌, 너랑 내가 다르기에 다른 만큼 새롭게 어울리는 사랑을 바라볼 때라야 모든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나의 하염없는 바깥》을 읽고서 덮습니다. 부산말로 문득 읊는 이웃과 동무 이야기는 살갑지만, 서울말로 틀에 짜맞추는 말만들기는 따분합니다. 둘레를 보고 스스로 돌아보면 노래가 저절로 나옵니다. 틀에 맞추려 하고 멋스럽게 보이려고 하면 ‘딱딱한 문학’으로 틀어박힙니다. 굳이 ‘시문학’을 안 하기를 바라요. ‘노래’하면 돼요.


ㅍㄹㄴ


그는 매일같이 자신의 노래를 구출하러 나갔다 / 일평생, 천 길 깊이의 절벽 안쪽으로 길을 뚫고 / 겹겹이 세워진 삼천억 개의 돌문 하나하나 노크 (바깥 10/69쪽)


야! 직업 군인이 머꼬? / 울 아부지 직업이 군인이라고 / 그라믄 그냥 군인이지 와 직업 군인이라고 쓰노? / 몰라, 울 아부지가 꼭 그래 쓰라칸다 아이가 (무필이 아버지/101쪽)


+


《나의 하염없는 바깥》(송주성, 걷는사람, 2018)


소리 없는 공중을 올려다보게 된다

→ 소리 없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3쪽


나의 빈 알맹이를

→ 내 빈 알맹이를

→ 빈 알맹이를

13쪽


멀어져 웅성거림이 되고 웅성거림 멀어져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 멀어서 웅성거리고 웅성거리다 멀어 더 들려오지 않는다

17쪽


아주 짧았던 것이 점점 길어진다

→ 아주 짧다가 차츰 길다

→ 아주 짧더니 어느새 길다

17쪽


당신의 안에서 굴절되지 않으면

→ 그대 품에서 굽지 않으면

→ 네 품에서 접지 않으면

23쪽


낙타였음을 안다

→ 곱등말인 줄 안다

25쪽


먼저 숙소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먼저 나들채에 닿아 우리를 기다린다

→ 먼저 길손채에 와서 우리를 기다린다

39쪽


눈물 많은 그녀, 떠나가는 그녀

→ 눈물 많은 너, 떠나가는 너

→ 눈물 많은 사람, 떠나가는 사람

41쪽


오리들에게 게토ghetto를 지어주고 나면

→ 오리한테 집을 지어 주고 나면

→ 오리한테 굴을 지어 주고 나면

→ 오리한테 쉼터를 지어 주고 나면

→ 오리한테 울을 지어 주고 나면

→ 오리한테 품꽃을 지어 주고 나면

44쪽


조류독감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 새앓이 따위엔 마음조차 없는

→ 새몸살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

45쪽


흐르는 빗물 위의 동심원

→ 흐르는 빗물에 한동아리

→ 흐르는 빗물에 한동글

56쪽


너를 헛되이 바라보고 있나니 마주한 시선과 응시는 서로의 과녁에 닿지 못하네

→ 너를 헛되이 바라보나니 마주한 눈과 눈매는 서로 과녁에 닿지 못하네

63쪽


배달의 민족도 아닌 찢어진 눈의 동양 여자를

→ 배달겨레도 아닌 찢어진 눈인 샛녘 순이를

83쪽


마지막 잔액을 찾아가던 급한 발걸음

→ 마지막 돈닢을 찾아가던 바쁜 발걸음

→ 마지막 단돈을 찾아가던 동동걸음

96쪽


두 번째로 비등점에 오른 물은

→ 둘째로 끓눈에 오른 물은

→ 둘째로 끓는곳에 오른 물은

126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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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시인선 84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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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29.

노래책시렁 476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문학동네

 2016.6.30.



  시골에서는 요사이(2024년)에 쉼날(일요일·연휴)에 아예 시골버스가 안 다니다시피 합니다. 하루에 하나 지나가는데, 그나마 이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에 마실을 다녀올 수 없어요. 서울에서는 다리꽃(이동권) 이야기가 있는데, 시골에는 어떠한 다리꽃조차 없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나고자랐는데, 1982년에 여덟 살 어린이로서 처음 혼자 배움터에 가던 날, 어머니가 120원을 주면서 버스 타고 다녀오라 했는데, 먼저 60원을 내고서 마을앞에서 탔더니 또래와 언니가 바글바글했고, 길잡이(버스안내양)는 “웬 애새끼들이 이렇게 많이 탔어! 아, 짜증나!” 하고 윽박지르는 소리에 무서워서, 이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부터 열세 살까지 늘 걸었습니다. 윽박소리도 고단하고 찜통도 괴로웠어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읽는 내내, 노래님 뜻 그대로 ‘영 아름답지는 않’으면서 ‘하염없이 쓸모없는 잔소리’를 물씬 느낍니다. 잔소리를 잔소리로 쓰려고 꾸린 글자락은 맨몸을 비춥니다. 맨얼굴을 숨길 까닭이 없고, 맨손이 창피할 까닭이 없습니다. 덧씌우니 마음을 감추고, 덮어씌우니 허울이 어느새 허물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어떤 글(문학)도 틀(형식)이 없습니다. 삶을 쓰기에 글이요 노래에 이야기입니다. 이다음에는 “굳이 안 아름다울 까닭도 영 쓸모없을 일도 없는 하루”만 읊어 본다면 더 빛나리라 느낍니다.


ㅅㄴㄹ


만나보라는 남자가 82년생 개띠라고 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핏덩인데요, 이거 왜 이래 영계 좋아하면서 젖비린내 딱 질색이거든요. 이래 봬도 걔가 아다라시야, 아다라시. 두툼한 회 한 점을 집어 우물우물 씹는데 어느 대학의 교수씩이나 하는 그가 내게 되물었다. 아나, 아다사리? (그럼 쓰나/17쪽)


캐나다 사시는 박상륭 선생께서 한국에 들어올 때면 머무시던 댁이 광화문에 있을 적의 얘긴데 초대를 받아 찾아간 것이 토요일 이른 점심의 일이었고 사모님이 해주신 스파게티를 먹고 마신 술이라 하면 두 발로 걸어들어간 이들이 네 발로 기어다니는 진풍경으로 셀 수 없는 술병으로 가늠해보게 되는데, 해도 떨어지기 전에 허둥지둥 현관에서 신을 신긴 신는데 신은 좀처럼 신겨지지 않고 (시의 한 연구/21쪽)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어떻게 / 스님과 바람난 엄마 친구랑 셋이 그 영화를 봤는지 / 120년 전통의 〈애관극장〉이라고 들어는 봤나 / 뻔하잖아 보는 것을 사랑하라 / 사랑을 보기만 해야지 / 보는 것을 사랑하면 / 저렇게 얻어터지는구나 / 자개 문갑 속 겹겹이 들어차 있던 / 에로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양손에 쥔 채 / 아저씨가 아줌마의 귀싸대기를 갈겨대기 시작했지 / 왜 맞을까 안 맞으면 또 어쩔 건데 (소서라 치자/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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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모없기를》(김민정, 문학동네, 2016)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 샘은 버릇인데 버릇이 이 벼락이 아니더라도 글은 길이라서 더 열어 보고 싶다

→ 시샘은 길드는데 길들면 담이 아니더라도 글은 길이라서 더 열어 보고 싶다

5쪽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 김이 나갈까 싶어 빗장그릇 뚜껑에 돌을 얹어두었다

→ 김이 나갈까 싶어 잠금그릇 뚜껑에 돌을 얹어두었다

9쪽


혹자는 대설주의보라 했고 잽싸게 그걸 싸고 그걸 닦은 증거라고도 말했으며

→ 누구는 눈벼락이라 했고 잽싸게 싸고 닦은 티라고도 말했으며

→ 누구는 함박눈이라 했고 잽싸게 싸고 닦은 자국이라고도 말했으며

4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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