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열린배움터 사잇길 (2026.9.14.)

― 부산 〈당신의 책갈피〉



  우리나라는 스스로 배움터를 차리지 않았습니다. 나라에서는 임금집 아들과 벼슬아치 아들만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나리집에서는 따로 아들을 가르쳤고, 드물게 딸을 가르치는 집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아들’만 ‘수글(한문)’을 갈고닦아서 ‘그들끼리’ 쥐락펴락하며 온나라를 주무르는 얼개였습니다. 이러다가 임금틀이 무너지면서 어린배움터를 차리는 어른이 나타났고, 잇달아 푸른배움터와 열린배움터를 차리는 어른도 나타납니다.


  올해(2026) 들어 나라돈을 들여 ‘서울대 10곳 만들기’를 한다고 하더군요. 이름부터 ‘서울대 만들기’라고 붙일 적에는 ‘서울대여야 한다’는 뜻이고 ‘서울대 아닌 곳은 볼일없다’는 밑뜻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서울대’가 아닌 ‘참배움터(참답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스스로 빛날 터전)’를 차려야 할 텐데요.


  전남 고흥에서 새벽길을 나섭니다. 한낮에 부산 사상나루에 닿습니다. 등짐을 메고서 〈당신의 책갈피〉를 찾아갑니다. 마을책집 한 곳은 경성대와 부경대 사이에 있습니다. 두 열림배움터 사이에는 ‘문화골목’이나 ‘젊음거리’ 같은 이름이 붙는 듯한데, 온통 술집과 밥집입니다. 먹고마시고 놀고 떠들어야 ‘문화’와 ‘젊음’이라고 여기는 듯싶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살림(문화)은 어디 있을까요. 베풀고 나누면서 어른으로 일어서는 젊음은 어디 있는가요.


  한 해 만에 찾아오는 〈당신의 책갈피〉인데 쉼날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제 해날과 달날을 쉬는군요. 책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노래를 한 자락 적습니다. 왁자지껄하고 어수선하고 냄새나는 ‘젊음문화골목’에서 벗어난 안골목에 깃든 책집은 조촐히 짙푸른 작은숲입니다. 작은나무와 작은풀이 어울리는 작은책집 앞에 서다가 앉아서 손으로 슥슥 이야기 한 자락을 여밉니다.


  아이어른은 언제나 서로 빛나는 눈빛으로 지내려고 한집을 이루는 사이라고 느낍니다. 한집을 이루는 둘(아이어른)은 나란히 별빛으로 깨어나서 한살림을 지피기에 사랑길을 걷는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라며 푸름이로 철들어서 어른이라는 길을 걷습니다. 모든 사람한테는 모든 씨앗이 빛살 한 줄기로 흘러요. 서로서로 빛살을 마주보고 헤아리고 어루만지기에 사람입니다.


  이제 사잇길에서 나옵니다. 젊은 발걸음은 낮에도 부산합니다. 곧 저녁이 되면 젊은 발걸음이 물결칠 테지요. 한 손으로 밥 한 그릇을 먹는다면, 다른 손으로 바람 한 줄기를 마시기를 빕니다. 한 손으로 술 한 모금을 마신다면, 다른 손으로 책 한 자락을 펼치기를 빕니다. 익혀서 가다듬고 꿈꾸기에 젊은씨앗입니다.


ㅍㄹㄴ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김정인, 권혁용, 이재승, 오항녕, 철수와영희, 2026.9.18.)

《강산의 가얏고》(원유순, 서해문집, 2025.6.30.)

《내 운명은 내가 만든다》(이수일, 살림터, 2026.7.31.)

《극채의 집 8》(빗케 글·그림/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6.8.15.)

#極彩の家 #びっけ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7》(호시노 나츠미/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6.7.15.)

#キジトラ猫の小梅さん #ほしのなつみ #ねこぱんちコミックス

《여학교의 별 3》(와야마 야마/현승희 옮김, 문학동네, 2023.

《여학교의 별 4》(와야마 야마/현승희 옮김, 문학동네, 2025.3.31.첫/2025.4.1.2벌)

#女の園の星 #和山やま

《길가의 후지이 1》(나베쿠라오/이미나 옮김, 학산문화사, 2026.4.25.)

#路傍のフジイ #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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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니 시원해 (2026.5.15.)

― 서울 〈문화온도 씨도씨/식스틴책방〉



  첫봄과 한봄을 지나면 늦봄입니다. 첫봄과 한봄은 늦가을과 한가을처럼 낮볕이 드리우면서 밤바람이 쌀쌀합니다. 늦봄으로 접어들면 첫가을마냥 낮볕이 쏟아지되 밤이면 시원하지요. 지난날에는 서울과 시골 모두 밤낮으로 다른 날씨이면서 푸른숲을 품었다면, 오늘날에는 여름이 가까울수록 얼음바람(에어컨)에 기대려고 하는 집이 부쩍 늘어요.


  “벌써 이렇게 더우니 어찌 살아?” 하며 한숨쉬는 이웃이 꽤 많습니다.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도 으레 이렇게 읊습니다. 그러나 여름으로 가는 늦봄은 “더우니 시원한” 철이라고 느낍니다. 차츰 더위가 무르익기에 땀을 새롭게 빼면서 온몸으로 부스러기를 빼낼 수 있어요. 부스러기가 때나 땀이란 모습으로 빠져나가면 개운하게 마련입니다. 자주 씻고 옷을 자주 빨래하면 한결 홀가분합니다.


  갓 태어난 그림책 《열두 달 소꿉노래》를 조촐히 기리는 자리를 〈문화온도 씨도씨/식스틴책방〉에서 맞이합니다. 먼길을 달려 서울로 갑니다. 엊그제 부산을 다녀오며 찌뿌둥한 몸이지만 시외버스에서 쉬고 자다가 읽고 씁니다. 오늘 마주할 이웃님한테 드릴 노래를 새로 여미고, 어느 책을 드릴까 하고 곱씹습니다.


  배우며 살아가려는 이웃님 누구나 애써서 책집마실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배우려고 하기에 나이를 넘어서 ‘낳을씨앗’을 속으로 건사할 수 있어요. 요즈음은 고을마다 책숲(도서관)이 널찍하고 새책을 잔뜩 꾸준히 들여놓지만, 우리나라 책숲은 “우리가 살아온 자취”를 모두 그러안지는 못 합니다. 책숲을 덩그러니 세워 놓은 뒤에는 책꽂이를 더 못 늘리거든요. 책은 늘 새로 나오기에 책꽂이가 더 늘어야 새책을 품을 테지만, 새책을 받아들이려면 ‘새책이 나오는 빠르기’하고 나란히 ‘있던 책을 치워’야 합니다.


  마을책집(새책집·헌책집)으로 마실을 다니면 ‘치우지 않는 책’을 만날 수 있어요. 마을이웃과 오래도록 새롭게 읽거나 함께 새기거나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책을 마주할 만합니다. 큰곳(공공도서관·대형서점)만 다녀서는 “이야기에 담아낼 삶”을 오히려 놓치거나 못 보거나 잊기 쉽다고 느낍니다. 큰곳도 다니되 ‘마을’이라는 이름인 작은곳을 곁에 둘 일이라고 봅니다.


  더위로 가는 여름이기에 즐겁습니다. 추위로 가는 가을이기에 반갑습니다. 오르기에 내리고, 내리기에 올라요. 오래눈과 새눈을 나란히 놓을 적에 오늘눈을 틔우면서 손끝과 생각이 자라납니다. 왼눈과 오른눈을 함께 포갤 적에 온눈을 열면서 맑고 밝게 깨어납니다. 이 책을 읽으니 저 책을 만나면서 날마다 흐뭇합니다.


ㅍㄹㄴ


《열두 달 소꿉노래》(최종규 글·유한아 그림, 문화온도씨도씨, 2026.2.22.)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문해력》(손석춘, 철수와영희, 2026.4.19.)

《기억의 풍선》(제시 올리베로스 글·다나 울프카테 그림/편집부 옮김, 나린글, 2019.9.1.)

#JessieOliveros #DanaWulfekotte #The Remember Balloons (2018년)

《기동물기》(하민석, 딸기책방, 2023.8.27.)

《주파수를 조율하라》(사라 랜던/채수은 옮김, 샨티, 2026.3.13.)

#You Are a Channel #SaraLandon


《로지가 달리고 싶을 때》(마리카 마이얄라/따루 살미넨 옮김, 문학동네, 2020.5.11.)

#Ruusun matka (2018년) #MarikaMaijala

《티키 티키 템보》(아를린 모젤 글·블레어 렌트 그림/남도현 옮김, 개구쟁이, 2004.9.20.)

#Tikki Tikki Tembo (1968년) #ArleneMosel #BlairLentJr

《제비의 한 해》(토마스 뮐러/한윤진 옮김, 한솔수북, 2017.3.25.)

#Ein Jahr mit den Schwalben (2012년) #ThomasMueller

《반 고흐와 해바라기》(로렌스 안홀트/이복희 옮김, 웅진주니어, 2001.4.30.)

#Camille and the Sunflowers (1994년) #LaurenceAnholt

《딸기는 딸기 맛!》(노정임 글·안경자 그림, 웃는돌고래, 2016.9.29.)

《아기 곰 보리봉》(마레크 베로니카/김숙 옮김, 북뱅크, 2004.1.17.)

#Boribon (1958/2002년) #MarekVeronika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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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씩 (2023.9.16.)

― 서울 〈악어책방〉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하나하나 늘면, 차분히 바뀔 만하지 싶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하나하나 줄면, 차갑게 식으면서 잊히고 잃어버리고요. 우리 곁에서 자라는 풀꽃나무는 사람이 없더라도 스스로 돋고 자라서 씨앗을 맺고 열매가 굵습니다만, 사람이 따사롭고 즐겁게 바라보는 눈길과 손길을 뻗으면 한결 푸르면서 기쁘게 자라나게 마련입니다.


  어린이도 얼마든지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린이도 얼마든지 혼자 집일이나 살림을 맡아서 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곁에서 어버이나 어른이 동무하면서 함께 읽고 쓴다면, 함께 일하고 살림한다면, 어린이는 눈을 반짝반짝 밝히고 손빛도 야무지게 피어나요.


  서울 강서에 깃든 〈악어책방〉으로 마실하듯 찾아갑니다. 이곳에서 ‘함께노래(함께 말꽃을 피우면서 노래꽃을 나누기)’라는 자리를 꾸리기도 하지만, 마을책집이 깃든 마을 둘레를 거닐고 돌아보면서 “서울 한켠에는 바람이 어떻게 불고 햇볕은 어떻게 비추나?” 하고 헤아리기도 합니다. 비록 서울에서는 별빛하늘을 못 누린다고 하지만, 구름하늘이며 햇볕하늘은 누립니다. 비록 서울에서는 제비춤이나 꾀꼬리노래를 만나기 어렵다지만, 서울에서도 작은새노래를 귀담아들어요.


  마음을 기울이기에 가을노래를 듣습니다. 가을노래를 들으면서 가을하늘을 바라봅니다. 가을하늘을 그리면서 가을밤하늘에 돋는 가을별도 하나둘 마음에 담습니다. 모든 길은 한 발짝씩 떼면서 잇습니다. 모든 일은 한 손씩 얹고 보태고 이으면서 일굽니다. 한 땀씩 길어올린 다 다른 마음이 모이고 닿고 만나는 동안 새록새록 주고받는 말씨 한 톨도 곱게 퍼집니다.


  모든 하루는 새롭습니다. 모든 나날은 즐겁습니다. 아파서 울어도 새롭게 맞는 하루입니다. 넘어지고 슬퍼도 즐겁게 누리는 나날입니다. 낮이 흐르기에 밤이 찾아와요. 밤이 깊으니 낮이 환하지요.


  온누리는 여러모로 시끄럽고 어지럽다지만, 우리부터 스스로 마음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탓일 만합니다. 온누리는 이래저래 싱그럽고 아름다운데, 우리부터 스스로 마음이 싱그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먼저 나부터 고즈넉이 다스립니다. 다시금 나부터 고요히 되새깁니다. 언제나 나부터 사람빛을 찾아나섭니다. 나는 ‘작은씨’이지만 ‘좁은씨’는 아닙니다. 너는 ‘작은집’에 살지만 ‘좁은집’이 아니에요.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안 좋아합니다. 나는 나부터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려는 꿈입니다.


ㅍㄹㄴ


《모자문답집 2》(유이안·김민주, 포포포, 2023.7.26.)

《반짝반짝 반딧불이 춤춘다》(아드리앵 드몽/나선희 옮김, 책빛, 2023.7.30.)

#Lalumieredeslucioles #AdrienDemont

《도서관에서는 모두 쉿!》(돈 프리먼/이상희 옮김, 시공주니어, 2009.3.15.첫/2016.7.25.17벌)

#QuietTheresaCanaryintheLibrary #DonFreeman

There's a Canary in the Library (책숲에 새가 있어요)

《나도 캠핑 갈 수 있어!》(하야시 아키코/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2000.10.10.첫/2010.3.6.17.2판3벌)

#林明子 (1945∼) #はじめてのキャンプ (1984) (첫 숲밤)

- 《할아버지의 코트》(짐 아일스워스 글·바버라 매클린톡 그림/고양이수염 옮김, 이마주, 2015.11.5.첫/2020.11.10.9벌)

#MyGrandfathersCoat (2014) #BarbaraMcClintock #JimAylesworth

《깃털, 떠난 고양이에게 쓰는 편지》(클로드 앙스가리/배지선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5.7.23.)

#Plume lettre a un chat disparu (2001년) #ClaudeAnsgari

《안녕, 우리 집》(프랭크 애시/김서정 옮김, 그림책공작소, 2015.6.30.)

《마음이 담긴 선물》(다루이시 마코/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2009.8.30.)

#垂石眞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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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을 굽이굽이 (2024.3.16.)

― 부산 〈글밭〉



  마음을 안 쓸수록 안 닿습니다. 마음을 쓰기에 닿습니다. 마음쓰지 않으면서 종이를 쥐면 으레 구겨지거나 찢어집니다. 마음쓰며 종이를 쥐면 반듯반듯 펴면서 정갈하게 글씨나 그림을 담습니다.


  책을 읽다가 복판이 북! 소리를 내면서 튿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쓰며 책을 건사하면 쩍! 소리를 내며 벌어지지 않아요. 시큰둥하거나 대수롭잖게 책을 쥐는 탓에 그만 튿어지거나 벌어지거나 찢어집니다.


  마음을 쓰기에 아무리 낯선 낱말이어도 알아보고 읽어냅니다. 마음을 안 쓰기에 아무리 낯익은 낱말이어도 못 알아보거나 잘못 읽어냅니다. 둘레에서 흔히 쓰는 낱말을 써야 ‘쉬운글’이지 않습니다. 둘레에서 쓰는 사람이 드물더라도 온마음을 실어서 쓴 글줄에 깃든 낱말이라면 차분히 헤아리면서 읽어냅니다. 낯익은 낱말이라서 잘 알아듣지 않아요. 마음을 쓰고 기울이고 담기에 또렷이 알아듣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일렁인다는 첫봄이지만 맨발고무신으로 거닙니다. 해마다 이즈음에 꽃샘바람이 넘실거립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아닌, 꽃을 북돋우도록 새빛으로 샘솟는 바람입니다. 겨우내 찬바람과 눈얼음은 씨앗을 안 죽여요. 겨울바람과 겨울눈은 씨앗더러 “더 깊이 자렴! 더 느긋이 꿈을 그리렴!” 하고 노래하는 가락입니다. 겨울이 떠나는 첫봄에는 볕살과 나란히 아직 차갑게 부는 바람인데, 한봄꽃이나 늦봄꽃은 아직 더 자라고 달래는 바람이에요. 꼭 첫봄꽃만 일어나고 첫봄잎눈만 깨어나라는 바람입니다.


  부산 연산동 작은책집 〈글밭〉을 찾아갑니다. 한 해에 한두걸음씩 〈글밭〉 책마실을 합니다. 다달이 책마실을 할 수 있으면 한결 즐거울 테지만, 먼발치에서 찾아가는 터라, 부산 곳곳에 있는 여러 책집을 둘러보느라 고루고루 띄엄걸음(한 해에 한두걸음)으로 책빛을 누립니다.


  곳곳에 고갯길이 있는 부산입니다. ‘가맛골’이라는 이름마냥 온곳이 크고작게 오르내리는 길이 잇닿습니다. 집짓고 살기에 안 좋다고 여길 수 있지만, 줄줄이 서는 멧기슭 골목집은 서로 햇볕을 고르게 나누면서 조촐하다고 느낍니다. 들꽃은 서로 나즈막이 돋아서 해바람비를 골고루 누려요. 가맛골은 ‘고갯길’로 ‘고루길’을 굽이굽이 노느는 터전이지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숨쉬듯 날마다 새롭게 하늘을 읽습니다. 나날이 새롭게 새소리를 귀여겨듣듯 나날이 새롭게 뭇책을 만지고 돌보고 읽으면서 이야기씨앗을 찾습니다. 배우기에 익히고, 익히면서 펴요. 펴면서 다시 배우고, 새록새록 익히며 웃습니다.


ㅍㄹㄴ


+ <글밭>은 2025년 가을에 조용히 닫았습니다.


《교양국사총서 13 한국 상업의 역사》(강만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5.11.15.)

《禪思想 35》(이재복 엮음, 선사상사, 1985.10.25.)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양희은 글/우석,1993.9.20.)

《나 있는 그대로》(윤복희, 문예당, 1997.7.5.)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돌베개, 1990.6.10.첫/1990.8.20.개정증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조국, 책세상, 2001.8.30.)

- 술 안 마실 자유도 있어야 2001.9.28.

《왜 사느냐고 묻거든》(김동길, 동천사, 1987.2.15.)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 엮음, 오래된미래, 2005.3.15.첫/2012.7.16.276벌)

《꽃의 고도》(심옥남, 문학의전당, 2018.6.29.첫/2019.3.7.2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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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고 듣기 (2023.11.10.)

― 부산 〈우리글방〉



  짓는 사람은 손끝으로 차근차근 매만집니다. 듣는 사람은 귀를 쫑긋 세우면서 차분히 받아들입니다. 짓는 사람은 모두 손길로 태어나는 줄 느낍니다. 듣는 사람은 말꼬를 트기 앞서 귀여겨듣는 매무새부터 추스를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기쁘게 배우기에 즐겁게 지어서 나눕니다. 반갑게 듣기에 즐겁게 들려주며 얘기합니다.


  ‘짓는이(창작자)’도 ‘즐김이(애호가)’도 온마음으로 품으려는 길에서 맞물립니다. 흐트러지는 마음이라면 짓지 못 하다가 지겹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이라면 즐기지 못 할 뿐 아니라 지칩니다.


  비는 줄기차게 내립니다. 물은 줄기차게 흐릅니다. 풀은 줄기차게 돋아요. 참하게 차오르듯 내리고 흐르고 돋으니, 참하게 채우고 읽으면서 흐뭇하게 돌아보며 배우고 익힙니다.


  부산 보수동에 닿아서 〈우리글방〉을 들릅니다. 새로 나오는 책만 해도 끝없는데 뭣하러 옛날책을 뒤적이느냐고 묻는 분을 으레 만납니다. 이렇게 묻는 분을 마주하며 빙그레 웃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많은데, 나이든 사람은 왜 살아야 할까요?” 하고 먼저 되묻고서 “나무 한 그루는 즈믄해를 거뜬히 살아요. 즈믄살을 먹는 나무더러 ‘넌 언제 죽을 셈이니?’ 하고 묻지 않아요. 그저 즈믄나무 곁에 다가가서 즈믄살림을 마음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책이건 오래된 책이건 마찬가지로 배울거리요, 옛날책이라면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살아낸 자취를 읽으면서 돌아볼 이야기가 수두룩해요.” 하고 보탭니다.


  요즈음은 오솔길이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오솔길이기에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직 있는 오솔길을 사뿐히 찾아갑니다. 헌책집은 틀림없이 확 줄었지만, 헌책집도 마실하고 작은책집(새책집)도 나들이합니다.


  큰몫이나 큰일을 맡는 길이 아닌, 큰씨앗이나 큰나무를 쳐다보는 길도 아닌, 오늘몫과 오늘일을 헤아리면서, 오늘씨앗과 오늘나무를 마주하는 길입니다. 더 크거나 세거나 높아야 하지 않아요. 서로서로 다르게 살아낸 하루를 이야기로 짓고 듣고 적바림합니다. 함께 이곳에서 만나는 길을 돌아봅니다.


  새책이나 헌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습니다. 새사람이나 헌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납니다. 새길이나 헌길을 걷지 않습니다. 길을 걷습니다. 새바람이나 헌바람을 쐬지 않습니다. 바람을 쐽니다. 노래책 한 자락을 손에 쥡니다. 노래 한 마디를 스르르 읊다가 글로 옮깁니다. 오늘 걸어가는 길에서 길어올린 빛씨 한 톨을 낱말 하나로 옮기면서 다리를 쉬고 생각을 나눕니다.


ㅍㄹㄴ


《나의 소소한 일상》(다자이 오사무/김춘미 옮김, 시공사, 2007.3.23.)

《한마디의 말》(강은교, 자유문학사, 1986.7.25.)

- 예림서점. 장림시장버스정류소앞 29-2069 모든 양서보급에 힘쓰겠읍니다

《한국현대극작가론 3 함세덕》(한국극예술학회 엮음, 태학사, 1995.9.30.)

《늦깎이》(김하기, 친구, 1991.6.30.)

《문둥이 성자 다미안》(존 패로우/김영호 옮김, 정신세계사, 1990.11.7.)

#JohnFarrow #Damien the Leper

《우리의 여름은 거기에 있어》(정세진, 개미북스, 2023.7.31.)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전종환, 난다, 2021.6.10.첫/2021.6.15.2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추적단 불꽃, 이봄, 2020.9.23.)

《텃밭에서 발견한 충만한 삶》(알린 번스타인/변용란 옮김, 디자인하우스, 2006.2.25.)

#GrowingSeason (1995년) #ArleneBernstein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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