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떠난 김민기 (2024.12.10.)
― 부천 〈용서점〉
간밤과 새벽에 김민기 님 노래를 새삼스레 들었습니다. 2024년 7월 21일에 너무 일찍 흙으로 돌아가셨는데, 싸움터(군대)에도 끌려가서 싸움터 속낯을 보고, 조용히 시골살이를 하다가 시골텃힘 속내를 보고, 들너울(민주화) 한복판을 지켜보면서 숱한 민낯을 보아야 하던 삶길이 노랫가락에 어떻게 스몄는지 되새겨 봅니다. 누구처럼 ‘문화부장관’이나 ‘기관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어깨띠를 하나도 꿰차지 않은 김민기 님입니다. 어깨띠가 아닌 어깨동무로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찾고 스스로 살아내야 온누리를 바꾼다고 느낍니다.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타고서 부천으로 건너옵니다. 아침해를 느끼면서 노래(시)를 두 자락 씁니다. 원미구청 언저리에서 내리고 〈용서점〉에 닿습니다.
노래란, 책이란, 삶이란, 길이란 무엇일는지 곱씹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여기느라 살아남으려고 팔릴 책으로 기운 책은, 얼핏 사람들이 손에 쥐어 읽을 수 있지만, 팔려서 살아남으려고 태어난 책은 오히려 더 쉽게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오늘 바로 팔리지는 않더라도 사람들 마음에 사랑씨앗과 살림씨앗과 숲씨앗을 심으려는 꿈을 그리는 이야기를 담은 책은 아무래도 제대로 안 팔리는 듯싶지만, 사랑씨·살림씨·숲씨로 이야기를 여민 책을 누가 문득 손에 쥐면, “아! 책이란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온누리를 새롭게 북돋우는 길은 바로 우리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천천히 한 걸음을 떼면 넉넉한 줄 들려줄 만하지 싶습니다.
‘걸작이 되면서 잘팔리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책’은 언제나 더 빨리 잊히고 사라지면서 거꾸로 ‘사람들이 책한테 등지는 빌미’를 이룬다고 느낍니다. ‘오늘 이곳에서 서로 이웃으로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지피려는 수수한 책’은 여러모로 적게 팔리거나 더디 팔리거나 잘 안 팔리는 듯 보이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건네는 수수한 책이 하나둘 늘어날 적에 오히려 차근차근 책마을도 살아나고 우리 마음도 스스로 살린다고 봅니다.
떠난 김민기 님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안 섰습니다. 늘 ‘사람 곁’에 섰고, ‘아이 곁’에 있었고, ‘들숲바다 곁’에서 하늘빛을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책을 놓은 어떤 책집 곁으로 다가가는 하루일까요. 누리책집에서 손쉽게 장만해도 될 책이지만, 이웃을 안 느끼면서 책(지식·정보)만 쥘 적에는 저마다 이쪽저쪽으로 갈려서 끝없이 싸운다고 느껴요. 하루하루가 놀라운 일인 나날입니다. 겨울 첫머리를 느긋이 넉넉히 누리려면 “‘내’가 ‘나’로서 ‘너’랑 ‘함’께 ‘있’을 곳”을 차분히 그릴 노릇입니다. 새별을 곁에 두는 하루란 늘 빛나는 삶입니다.
ㅅㄴㄹ
《유한양행, 미스 고》(고성순, 부크크, 2024.8.1.)
《맛의 달인 104 먹을거리와 환경문제》(테츠 카리야 글·하나사키 아키라 그림/장수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0.7.15.)
《싸가지 없는 진보》(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4.8.29.)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곽재식, 북스피어, 2019.10.10.)
《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열림원, 2019.7.5.)
《비행운》(김애란, 문학과지성사, 2012.7.18.)
《상냥한 폭력들》(이은의, 동아시아, 2021.11.3.)
《우울이라 쓰지 않고》(문이영, 오후의소묘, 2022.10.31.)
《‘국민’이라는 노예》(김철, 삼인, 2005.3.25.)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헬렌 니어링/이석태 옮김, 보리, 1997.10.10.첫/1997.11.15.2벌)
《동물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김보경, 책공장더불어, 2021.1.25.)
《세월호와 역사의 고통에 신학이 답하다》(조석민과 여섯 사람, 대장간, 2014.8.8.)
《브레히트의 여성관》(우테 베델/장지연 옮김, 미크로, 1999.3.31.)
《플랜P vol.3》(이은주 엮음, 평화저널, 2021.3.20.)
《플랜P vol.14》(김유승 엮음, 평화저널, 2023.12.15.)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정운현, 한울, 1995.10.2.첫/1996.1.10.재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