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이야기를

이제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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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되읽기 되쓰기 (2020.3.7.)

― 전남 순천 〈도그책방〉



  글쓴이나 엮은이는 책 한 자락을 끝없이 되읽습니다. 적어도 열 벌쯤은 되읽으면서 손보고 다듬고 고치고 추스릅니다. 때로는 한 벌만 읽고서 태어나는 책이 있을 텐데, ‘한벌쓰기’로 그친 글은 아무래도 빛이 바랜다고 느껴요. 풀이며 나무는 날마다 새로 자라기에 짙푸릅니다. 사람도 밤에 잠들어 꿈을 그린 다음에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기에 싱그러워요.


  글을 마치고서 몇 벌쯤 다시 읽어 보나요? 책을 다 읽고서 몇 벌쯤 다시 읽어 보나요? 말을 마친 뒤에도 “내가 아까 한 말이 얼마나 알맞고 알뜰했나?” 하고 끝없이 돌아보아야 말빛이 살아납니다. 이미 한 말을 못 주워담는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아요. 앞서 잘못 말했으면 이제 새로 말할 노릇입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숙이고서 새롭게 “잘 말하”면, 예전 말을 바로잡을 수 있어요.


  글손질은 끝이 없되, 끝이 없기에 끝없이 빛납니다. 가랑잎으로 지기 앞서까지 모든 나무는 마지막까지 푸른숨을 담고 새로 담고 거듭 담아요. 잘 빚은 책이란, 찍음터(인쇄소)로 보내기 앞서까지 더 살피고 더 손본 꾸러미입니다.


  순천 〈도그책방〉으로 책마실을 합니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갑니다. 고흥읍에서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립니다. 순천나루에서 내리면 시내버스를 기다려서 탑니다. 저잣길 들머리에서 내려 천천히 걷습니다. 부릉부릉 내달리면 1시간도 안 걸린다지만, 다리품을 들이면 3시간 남짓 걸려요.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든 먼길이요 하루를 온통 씁니다. 시골에서 나들이를 하자면 길에서 한참 보냅니다. 그래서 버스나 길에서 노래를 쓰고 하루글을 씁니다. 혼자 움직일 적에는 책도 곁들입니다. 걸으면서 책을 읽어요.


  똑같은 길은 없어요. 늘 지나다니더라도 언제나 철이 다르고 날이 달라요. 모든 풀꽃나무는 씨앗이 싹터서 다시 씨앗을 내기까지 날마다 새롭고 다릅니다. 그래서 똑같은 글이며 책을 되읽고 되쓸 적에도 늘 새롭게 배우고 다르게 익혀요.


  글쓰기를 하고픈 이웃님이 있으면 꼭 “다 마친 글은 늘 적어도 다섯 벌을 천천히 되얽어 보셔야 합니다.” 하고 여쭙니다. “다 쓴 글을 곧장 되읽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만, 스스로 다 쓴 글을 한 벌 두 벌 석 벌 되읽어 가는 동안 손보거나 다듬을 곳을 찾아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내가 쓴 글을 바로 나부터 사랑하고 배우는 밑거름으로 삼지요.” 하고 보탭니다.


  그림책을 둘 장만합니다. 다시 천천히 고흥으로 돌아갑니다. 시외버스에서 살짝 쉬고서 기운을 차립니다. 쓰고 읽고 새기고 하늘을 보며 집으로 걸어갑니다.


ㅅㄴㄹ


《왜요?》(린제이 캠프 글·토니 로스 그림/바리 옮김, 베틀북, 2002.10.15.)

#Why? #LindsayCamp #TonyRoss

《치티뱅 야옹》(기쿠치 치키/김난주 옮김, 시공주니어, 2018.6.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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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이야기를

뒤늦게 끄적인다.

뭐 하느라 바쁘다고

여섯 해나 미적거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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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시골별 (2019.10.9.)

― 원주 〈터득골북샵〉



  누구나 몸소 겪은 대로 보고 말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해본 대로 살피고 움직입니다. 안 겪었으면 모릅니다. 모르니 함께하지 못 합니다. 안 해보면 알 길이 없어요. 알 길이 없으니 이웃하지 않고 동무하지 않아요.


  원주 한켠 멧자락에 깃든 〈터득골북샵〉입니다. 아침낮저녁으로 멧바람을 쐴 수 있는 이곳은 그윽한 숲터이자 책터입니다. 다만, 부릉부릉 몰지 않고서는 찾아들기는 까다롭습니다.


  저는 어느 고장 어느 책집으로 마실을 하든, 두 다리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저부터 두 다리로 천천히 에돌며 마실을 할 적에 “책집을 품은 마을”하고 “마을이 품은 책집”을 알아봅니다. 이러면서 “책집이 품은 숲”에다가 “숲이 품은 책집”을 눈여겨보고요.


  책집만 덩그러니 있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는 사람바다로 북적이지만 어쩐지 썰렁합니다. 틀림없이 발디딜 틈이 없이 넘치는 사람물결인데, 서울 광화문 큰책집에는 빛이 없어요. 아무래도 “책만 있”을 뿐, “마을도 마음도 없”는 탓입니다. 숱한 책이 “제발 나 좀 봐! 날 쳐다봐!” 하고 악악거리는 끔찍하고 사나운 외마디소리가 끝없이 도사리는 서울 광화문 큰책집이에요.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지 않아요. 책을 더 많이 팔아야 하지 않아요. 똑같은 책이 하루에 100이나 1000씩 팔린다면, 오히려 이 나라는 썩었다는 뜻 아닐까요? 다 다른 책이 날마다 100이나 1000씩 팔릴 적에, 그야말로 이 나라는 살아숨쉰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집 한 곳에서 파는 책은 날마다 다 다른 책이어야 아름답습니다. 글님이나 그림님을 모셔서 이야기하는 자리라면, 책집 한 곳에서 하루에도 똑같은 책을 여럿 팔 수 있되, 이날을 뺀 모든 날은 모두 다른 책을 고루 팔아야 즐거워요.


  원주 멧자락에서 별을 바라보며 고흥을 떠올립니다. 어느 멧숲을 가든 다들 “우리 시골이 별이 가장 잘 보여요!” 하고 말씀하는데, 제 나름대로 새하늬마높을 다 디뎌 보면서 아직 ‘강원 양구’하고 ‘전남 고흥’ 두 곳처럼 별이 쏟아지는 곳은 못 봤습니다. 밤마다 온(100) 가지 별자리쯤 그려야 비로소 “별이 보인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온 가지 책을 차근차근 읽을 줄 안다면, 종이책뿐 아니라 벌나비와 해바람비와 구름과 흙과 풀꽃나무와 풀벌레와 개구리 같은 ‘뭇숨결책’에다가 서로 ‘마음책’을 읽을 줄 안다면, 우리 삶터는 새로 깨어날 만해요.


  오늘은 한글날이라는데, 이제는 ‘한말날’에 ‘한넋날’을 보고 싶습니다.


ㅅㄴㄹ


《싸워도 우리는 친구》(이자벨 카리에/김주영 옮김, 다림, 2016.3.18.)

《엄마의 공책》(서경옥 글·이수지 그림, 시골생활, 2009.5.10.)

《오냐나무》(이효담 글·강혜숙 그림, 벌레구멍, 2016.1.5.)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의 3.1운동 일기》(김영숙 글·장경혜 그림, 풀빛, 2019.2.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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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코앞에 두고서

아직 못 추스른

2018년 11월 이야기를

이제서야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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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씨앗살림 (2018.11.10.)

― 진주 〈형설서점(즐겨찾기)〉



  아이는 처음부터 잘 하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자빠지면서 배웁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 잘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곧잘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면서 배웁니다. 그림책 《생쥐와 고래》(윌리엄 스타이그)는 삶과 살림과 사랑이 무엇인지 아주 쉽고 부드럽게, 더구나 상냥하게 들려줍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순이 마음을 달래는 어른그림책’이 부쩍 나오는데, ‘어른 마음을 달래는 그냥그림책’은 오히려 드물어요. 그저 그림책으로 여미면, 아이어른이 나란히 마음을 달랠 뿐 아니라 북돋우게 마련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그림책’을 지을 때입니다.


  힘이나 몸집이 비슷하기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지만, 힘도 몸집도 다르기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힘도 몸집도 다른 사이가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길이 어깨동무일 수 있어요. 순이돌이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 나란히 짝을 맺어서 새롭게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을 아이들한테 씨앗으로 물려주는구나 싶습니다. 다 똑같기만 하다면, 몸도 마음도 그저 똑같기만 하다면, 아마 우리는 서로 만날 일도 부딪힐 일도 없을 테고, 아무 이야기가 없어요.


  얼어붙는다는 늦가을에 진주마실을 합니다. 이튿날 〈진주문고〉에서 우리말과 우리말꽃을 놓고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하면서, 하루 일찍 건너옵니다. 먼저 〈형설서점〉을 들릅니다. 새책집만 있는 고장은 책이 고이다가 사라질 뿐 아니라 죽습니다. 손길을 탄 책이 부드러이 되읽히면서 두고두고 돌아볼 길목을 여는 헌책집입니다. 이 작은 헌책집은 그야말로 작지만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책”을 건사하는 쉼터입니다. 헌책집에서 버리면 그 책은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모든 책은 지음님 손길을 받고서 태어나고, 펴냄터 손길을 누리며 살아나고, 새책집지기 손길을 얻으며 피어나고, 읽님 손길을 거치며 깨어나고, 헌책집지기 손길을 만나서 거듭납니다. 씨앗은 안 서둘러요. 씨앗은 태어나기까지 고요히 잠듭니다. 태어난 씨앗은 천천히 살아가고서, 새삼스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는, 가만히 해바람비를 머금는 삶으로 깨어납니다. 이러고서 다시 씨앗으로 가지요.


  마음을 조금 기울인다면 씨앗살림을 헤아리면서 집살림과 마을살림을 비롯해서 숲살림과 책살림을 알아봅니다. 마음을 아주 못 기울이니 모든 살림을 등져요.


  오래된 새글을 읽습니다. 오래갈 새길을 걷습니다. 오래오래 반짝이는 넋으로 서로 만납니다. 오늘부터 손을 잡아요.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구름을 보고 바람을 마시면서 볕바라기랑 별바라기를 해요. 같이 짓고 함께 읽어요. 나긋나긋 가꾸고 느긋느긋 나눠요. 작은책을 눈여겨보기에 작은씨를 심으며 홀가분합니다.


ㅅㄴㄹ


《全羅南道方言硏究》(최학근, 한국연구원, 1962.11.12.)

《富民農業》(부민문화사) 44호(1967.8.)

《농작물 따로풀이》(문교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54.3.31.)

《朝鮮》(朝鮮總督府 文書課長, 朝鮮總督府) 351호(1944.8.1.)

《히로시마》(존 허시/최덕일 옮김, 정음사, 1949.10.29.)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랑힐 닐스툰(글)·하타 고시로(그림)/김상호 옮김, 비룡소, 1998)

《그녀, 영어 동시통역사 되다》(신자키 류코/김윤수 옮김, 길벗이지톡, 2006.7.15.)

《몽골의 초원》(시바 료타로/양억관 옮김, 고려원, 1993.10.1.)

《해탈의 길》(앨런 와츠/종서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4.11.1.)

《마호멧》(막심 로댕송/김종철 옮김, 두레, 1983)

《아루나찰라의 노래》(아서 오스본/서민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한국아동문학독본 10 한국전래동요독본》(박두진 엮음, 을유문화사, 1962.8.15.)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이정록, 문학동네, 1994.8.18.)

《산청군 시천면 땅이름 연구》(손순지, 2007)

《한국 지명 총람 2 강원편》(한글학회, 1967.12.20.)

《鬪牛》(이영달, 명진인쇄, 1984.12.)

《눈물을 위하여》(고은, 풀빛, 1990.11.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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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2.1. 좋은 게 좋은 것



  쉰이라는 고개에 열이라는 고개랑 스물 서른 마흔이라는 고개를 돌아본다. 예순과 일흔과 여든을 내다본다. 나는 어느 고개에 있든 늘 같으면서 다르다. 먼저 어느 고개이든 “좋은 게 좋다”라는 말은 안 틀리되 나는 이 말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풀고 품는 곳”에서 푸르게 놀고 파랗게 그리는 하루로 살자고 여긴다. 다음으로 어느 길에 서든 스스로 거닐며 언제나 노래씨앗을 심자고 여긴다.


  얼추 서른고개를 지날 즈음에는 ‘것’을 아무 데나 붙이는 말씨는 누구나 스스로 좀먹는 말씨앗을 심는 줄 알아차렸다. 이때까지 쓰던 말씨 가운데 ‘것’을 도려내고 솎아내고 씻어내느라 한참 걸리는데, 이다음으로 여러 미움말씨랑 굴레말씨를 새록새록 알아차리면서 늘 나부터 다시 일구자고 보았다.


  왜 굳이 나부터 갈아엎을까?


  남한테 시키거나 남을 나무랄 일이 아니더라. 나부터 못 하거나 안 하는 일을 어찌 아이들 곁에서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우리 집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집 모든 아이들 곁에서 살림짓기를 노래할 마음이다. 좋은 게 좋다며 퉁칠 적에는 누구나 제 숨결을 갉는다. 자꾸 어느 쪽을 좋아하면, 어느 한 쪽을 뺀 모든 쪽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면서 내치는 수렁에 잠기게 마련이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그저 보고 들여다보며 살펴본다. 나는 너를 마주본다. 오직 사랑이라는 눈길을 그리면서 눈망울에 별빛 한 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느낀다. 시골에 살기에 들숲바다를 품는 사람이 있고, 어느 곳에 있든 들숲바다를 그리면서 스스로 푸르게 우거지고 파랗게 하늘인 사람이 있다.


  좋은 게 좋다고 여기니, 나쁜 게 나쁘다고 여기면서 싸움불씨를 서로 심는다. 싸움씨나 불씨는 안 살리고 안 가꾼다. 모두 태우고 죽여서 잿더미로 간다. 곁님이 미리맞기(백신)가 끔직굴레인 줄 아느냐고 물어보았을 적에 어렴풋 헤아리기만 했을 뿐, 먼저 스스로 찾아볼 생각을 못 했다. 곁님이 애써 하나하나 찾아내어 가르치고서야 뒤늦게 눈뜨면서 엉금엉금 뒤따랐다.


  왜 스스로 먼저 느끼고도 스스로 안 찾아보았을까? 입으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가 허울이고 눈속임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몸을 나란히 안 움직인 탓이다. “사랑으로 풀고 품다”로 걸어가려면 늘 스스로 스스럼없이 한 발자국씩 디딜 일이다. 남이 해주기를 기다리는 하루란 아직도 굴레살이에 스스로 가둣 채 맴돌이를 한다는 뜻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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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쥐순이 쥐돌이 (2024.11.30.)

― 부산 〈마우스 북페어 2〉



  부산에서 서면이라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습니다. 인천에서도 동인천이나 주안을 굳이 안 찾아갔습니다. 서울에서도 명동·종로·강남을 구태여 안 갔습니다. 제 발길은 책집으로만 뻗고, 책을 쥔 손으로 쉴 풀밭이나 숲으로 이었습니다.


  큰고장 큰거리는 매우 닮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가게가 줄달음칩니다. 이 길거리에는 책집이 들어설 틈이 없어요. 예전에는 먹자골목 한켠에 큰책집이 나란히 있곤 했습니다. 요새는 이런 곳에 알라딘헌책집이 들어서더군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입기만 할 수 없습니다. 먹은 만큼 누고, 마신 만큼 쉬고, 입은 만큼 빨래하고 씻습니다. 논 만큼 일하고, 놀고 일하는 만큼 살림하고, 살림하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새롭게 배우고 익혀서 다시금 이 별에서 일어설 기운을 숲빛으로 차립니다.


  부산 서면 한켠 ‘KT&G 상상마당’에서 〈마우스 북페어 2〉을 엽니다. ‘마우스 북페어’를 꾸리는 분들이 자리를 빌려서 이틀 동안 130자락 책동무하고 “우정이라는 원동력”을 이야기합니다. 〈부산국제아동도서전〉부터 들르고서 〈마우스 북페어 2〉에 찾아간 탓인지, 〈책쥐는 우리〉라는 자리는 더없이 아늑하면서 즐겁게 북적인다고 느낍니다. 책을 둘러싼 아기자기한 맛에다가, 책에서 비롯하는 즐거운 눈길과 손길에다가, 새삼스레 천천히 책을 읽고 쓰는 마음을 고루 풀어놓습니다.


  부산 벡스코에서 하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을 보면, 지치고 고단한 엄마아빠가 곳곳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쉴 뿐 아니라, 숱한 아이들은 떼쓰고 악씁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고즈넉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많지만, 덥석덥석 아무 책이나 홱 집어채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와 달리 〈책쥐는 우리〉로 찾아온 엄마아빠와 아이들은 손길도 눈길도 말길도 부드럽습니다. 두런두런 북적북적 책수다와 책잔치를 이루는 길을 새록새록 들여다봅니다.


  두 책잔치는 모두 “책을 팝”니다. 그런데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꾸린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은 ‘도떼기장사’라면, 지음이(창작자) 130두레에 33일꾼이 뜻을 모은 〈책쥐는 우리〉는 “책을 쥔 우리 놀이터·노래터”로구나 싶어요. 책으로 놀며 나무를 돌아봅니다. 책으로 노래하며 풀꽃을 헤아립니다.


  책은 책에 적힌 값대로 사고팔면 됩니다. 책에 적힌 값으로 팔아야 이다음에 새롭고 꾸준히 여러 책을 일구는 밑돈으로 삼습니다. 책을 짓고 엮고 읽는 모든 사람이 꽃님(주인공)입니다. 몇몇 얼굴만 내세우거나 추키거나 높여야 하지 않습니다. “책쥐는 우리”라는 이름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주부, 퇴근하겠습니다》(최진경, 혜윰터, 2023.8.17.)

《한 달의 훗카이도》(윤정, 세나북스, 2023.8.21.)

《어부의 무덤》(존 오닐/이미경 옮김, 혜윰터, 2020.1.30.)

《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최수진, 세나북스, 2020.4.6.)

《시거랫 20 저 세상에서 하는 사랑이나 할까》(김선률과 열아홉 사람, 주머니시, 202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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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스트 레코드》(하야테, 땅꽁빵, 2023.10.2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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