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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5일
오늘 부산 마을책집 <카프카의 밤>에서 펴낸 '이응모임'은
20시보다 30분 앞서인
19시 30분부터 꾸립니다.
새로 태어난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우리말 어원사전)>을 곁에 놓고서
이 도톰한 낱말책을 기리는 수다잔치도 살며시 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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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이응모임” 11걸음
―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때 : 2025.3.15.토. 19시 30분
곳 :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 밤〉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나무처럼 산처럼》을 미리읽기, 또는 〈카프카의 밤〉에서 사기
줄거리
가. 다리
ㄱ 다가가다
ㄴ 다다르다
ㄷ 다니다
ㄹ 사이를 놓다
ㅁ 땅
나. 손
ㄱ 솟다
ㄴ 속
ㄷ 소리
ㄹ 소근소근
ㅁ 솥
다. 노래
ㄱ 손가락틀을 배우다
ㄴ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ㄷ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ㄹ 말할 수 없던
ㅁ 윤이상과 부산
라. 이원수 동요
ㄱ 헌 모자
ㄴ 고향의 봄
ㄷ 부끄러워서
ㄹ 전자건반
ㅁ 국가보안법
+
열걸음 : 걷고 생각하고 호미를 쥐고 (윤이상)
우리는 아직 마음을 고스란히 나누기에는 만만하지 않은 나날을 살아갑니다. 일본굴레(일제강점기)에 생긴 ‘국가보안법(치안유지법)’이 버젓하거든요.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내세워서 주리를 틀고 재갈을 물렸다면, 1948년부터 이승만은 이 땅에 새롭게 굴레(독재)를 씌우려고 ‘국가보안법’을 내세웠습니다. 나중에 박정희는 ‘반공법’을 더했으니, ‘국가보안법·치안유지법’이란, 이 나라 우두머리와 벼슬아치를 나무라는(비판) 모든 목소리를 쳐내는 칼 노릇입니다.
‘나라를 지킨다(애국)’는 허울을 내세우지만, ‘나라’는 언제나 ‘권력자(대통령·국회의원·기득권정당·공무원)’였을 뿐,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이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입틀막을 하는 칼 노릇인 국가보안법입니다. 자유·평등·평화·통일, 이런 길을 모두 막는 사나운 굴레인데, 1997년(김대중)과 2002년(노무현)과 2017년(문재인)을 거쳤어도 세 사람 모두 국가보안법을 없애지도 고치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어느 쪽 정당한테만 이바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정당은 언제라도 “최고권력을 거머쥘 때”가 있다고 여겨서 ‘몹쓸굴레(악법)’를 조용히 내버려둘 뿐입니다.
이오덕 님은 1997년에 김대중 씨를 밀었습니다. 김대중 씨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해서 ‘어린이와 여린이를 돌보는 새길’을 열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인데, 막상 김대중 씨는 대통령 자리에 들어서고 나서 어느 다짐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주민등록증 한자 표기 의무’를 밀어붙이고, 공공기관과 공공문서에 한글조차 안 쓰고서 한자와 영어를 즐겨쓰기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이 눈을 감은 2003년까지도 ‘학교 체벌(교사폭력) + 돈자루(촌지)’는 고스란했고, 이승만·박정희 기득권정당이 아닌 민주당이 최고권력을 잡았어도 이 굴레(학교 체벌)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2025년에 이르도록 배움불굿(입시지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배움불굿이 그대로여야 어린이와 푸름이가 나라(사회·정치)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이 ‘교과서(나라에서 외우라고 시키는 지식·정보)’에 갇힌 채, 스스로 생각하는 날개를 못 펴거든요. 이오덕 님은 ‘더 날뛰는 지옥으로 치닫는 대학입시’를 없애기를 바랐습니다. 대학입시(입시지옥)를 없애야 ‘체벌·촌지’를 비롯한 모든 교육 문제를 풀 만하리라 보았습니다.
이오덕 님은 혼자 걸을 수 없어서 바퀴걸상에 몸을 맡겨야 하는 늘그막을 맞이했습니다. 거의 하루를 자리에 누워서 보내야 하면서 멧마실을 못 했습니다. 철이 바뀌는 해바람비를 맞이할 수 없는 삶이 갑갑하여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이때에 큰아들한테 ‘전자건반’을 사 달라고 얘기했고, 집이나 둘레에 아무도 없을 즈음에 혼자서 전자건반을 한참 칩니다.
지난날에는 어린배움터(초등학교) 길잡이를 맡으려면 ‘풍금’을 반드시 치고 다룰 줄 알아야 했습니다만, 이오덕 님은 ‘풍금을 치면서 노래를 가르치는 눈금’을 훨씬 넘을 만큼 피아노를 다룰 줄 알았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일본굴레 막바지이던 무렵을 거치면서 풍금이건 노래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뒷이야기를 따로 글로는 제대로 남기지 않고서 말로만 큰아들한테 얼핏 귀띔을 합니다. 부산에서 한동안 교사로 일할 즈음 윤이상 님한테서 다른 한 사람하고 둘이서 피아노를 배웠다고 합니다.
2000∼2003년 사이는 아직 ‘윤이상’ 발자취를 우리나라(남녘)에서 글로든 말로든 섣불리 펼 수 없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서슬퍼렇기도 했고, 윤이상 님 발자취를 여러모로 보면 자칫 한두름으로 묶여서 사달이 날 만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 나라지기였어도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던 즈음이요, 이무렵에도 비전향장기수·강제전향장기수와 얽힌 실타래는 크나크게 굴레였습니다. 1950년대 첫무렵에 윤이상 님한테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노래짓기(작곡)도 배우셨을 텐데, 두 분 모두 이 일을 놓고서 글을 남기지 않았고 말도 거의 삼간 탓에 어느 만큼 얼마나 배웠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그저 이오덕 님은 1951년에 부산 동신국민학교에서 길잡이를 맡았고, 윤이상 님은 한국전쟁 언저리에 부산사범학교와 부산고등학교에서 길잡이를 맡았다는 대목만 어림할 뿐입니다.
어린이 곁에서 글(동시·동화)을 나누는 어른이자 길잡이로 서려는 마음이었고, 이원수 님하고 일찍부터 글월을 주고받고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 갈 적이면 으레 만나서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원수 님 글은 곧잘 동요라는 옷을 입었는데, 이오덕 님은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이원수 동요 가락’이 영 못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원수 동시에 깃든 숨결과 이야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 한다고 보았습니다. 〈헌 모자〉 같은 글에 가락을 입히지 않아서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이원수 동시 가운데 열 자락 남짓 손수 가락을 입혀서 경상북도 멧골아이를 가르칠 적에 으레 풍금을 치면서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고향바다〉나 〈부엉이〉 같은 글에 가락을 입혔습니다.
다만, 워낙 여러 일을 돌보느라 책상맡에 앉아서 노래짓기를 할 짬을 내지 못 했고, 이원수 님이 1981년에 눈을 감은 뒤로는 더 노래짓기를 하지 않은 듯합니다. 전두환이 서슬퍼렇던 1980년대에는 내내 국가보안법 사슬에 꼼짝을 못 했고, 노무현·김영삼으로 넘어선 1990년대에도 어린이 곁을 지키면서 우리말을 살리는 일에까지 마음을 쏟느라 노래짓기는 까맣게 잊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두바퀴(자전거)조차 타지 않고서 걸었기에 긴긴 거님길에서 문득문득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멧골마을 작은배움터에서 가르쳤으니 두바퀴를 탈 수 없었겠지요. 그저 멧숲을 따라서 오르고 내리는 기나긴 길에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하고, 바람이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건드리는 노래하고, 햇볕과 햇살이 따뜻하고 따갑게 비추는 숨결하고, 땀이 나도록 걷는 길에 나무그늘이 드리우는 빛하고, 이 멧골자락에서 뛰놀고 일하고 주눅들지만 다시 웃으면서 살림을 짓는 아이들 얼굴을 모두 어우르고 싶은 노래를 몇 남겼습니다.
이원수 님이 살던 무렵에 “이 선생, 이 선생이 내 동시에 가락을 입혔다고 들었는데, 나도 다른 사람이 가락을 붙인 동요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 선생이 가락을 붙여 준 동요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오덕 님은 차마 부끄러워서 이원수 님 앞에서 ‘이오덕 작곡 이원수 동요’를 못 불렀다고 합니다. 1981년에 이원수 님이 눈을 감은 뒤에 “왜 예전에 부끄러워하며 못 불렀을까?” 하며 스스로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먼저 마음으로 마주하는 사이입니다. 마음이 있기에 다리를 써서 다가가고, 다가오고, 서로 다닙니다. 다다가고 다가오기에 다다릅니다. 닿지요. 서로 닿아서 마음을 나누는 동안, 너와 나는 참으로 다르지만 닮은 줄 깨닫습니다. 서로 배울 대목을 새삼스레 마음에 담습니다. 즐겁게 나누고 배운 마음이 가득하면서 어느새 너와 나는 함께 들판을 달립니다. 새봄에 돋는 들딸기를 훑습니다. 손과 입에는 달달한 들딸기물이 듭니다.
우리 손은 속에서 솟는 숨결을 담아서 무엇이든 새롭게 짓고 빚고 가꾸고 일구는 몸입니다. 속에 있듯 포근하다고 여겨 ‘솜’이라는 이름입니다. ‘손·속·솜’에다가 ‘소’까지 모두 같은 뿌리인 낱말입니다. 샘은 땅밑(깊은 안쪽인 속)에서 솟는 물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샘물로 마주하는 ‘샘님(선생님)’일 적에는 마음도 몸도 싱그러이 씻고 적시고 달래면서 어깨동무할 테지요.
어느 틀(법)이 있기에 잘잘못을 다스리거나 이 땅을 지키지 않습니다. 아름나라에는 아무런 틀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안 낳더라도 둘레 뭇아이를 돌아보는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서 살림하는 보금자리와 마을”에는 아무런 ‘틀’이 없이, 오직 ‘사랑’ 하나로 마주하면서 어울리는 줄 알게 마련입니다. 뛰어나거나 빈틈없는 틀(법)이란 없습니다. 모든 틀에는 틈이 있습니다. 틈이 있기에 틀이거든요. ‘틀’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도록 틔우기에 틈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마음이 오갈 만하도록 세우기에 틀입니다. 마음을 틔우고 생각을 틔우기에, 싹트고 움트듯 새롭게 씨앗이 깨어납니다.
어떤 노래를 듣는 하루인지 생각할 일입니다. 그냥그냥 ‘가요(대중가요·민중가요)’에 얽매이는지, 아니면 스스로 노랫말과 노랫가락을 지어서 부르는 ‘틔움(싹틔움·씨앗틔움)’인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말(노랫말)만 훌륭할 수 없는 노래이고, 가락(노랫가락)만 빼어날 수 없는 노래입니다. 둘이 하나로 어울릴 적에 비로소 노래입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