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60 중년남성 출입금지 (도서관 방문기)
나는 ‘도서관’이라는 데를 안 간다. 안 간 까닭을 밝혀 본다. 먼저 1984년, 이른바 ‘국민학교 3학년’이던 무렵에 동무들하고 ‘책을 읽으려’고 〈인천 율목도서관〉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곳 〈인천 율목도서관〉을 지키는 사납게 생긴 어른들(도서관 경비 및 사서)은 “너희가 도서관에 왜 와? 여기서 놀려고 하지? 도서관은 애들이 노는 데가 아냐! 너희들 볼 책은 없어!” 하면서 내쫓았다. 1984년에 인천에 있던 국민학교에는 학교도서관도 학급문고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책이 고파’서, 우리가 사는 마을에 있는 가장 큰 책터인 〈인천 율목도서관〉을 넷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갔다. “도서관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 틀림없이 책이 많겠지? 우리가 볼 책도 있겠지?” 하면서 웃는 마음이었지만, 아예 들머리에서 갖은 막말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쫓겨나면서 넷은 나란히 풀죽을 뿐 아니라 “우리가 왜 도서관에 놀러간다고 여겨? 너무하지 않아? 어른들은 우리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욕부터 해! 너무 미워!” 하고 서로 얘기하면서 울었다.
어릴 적에 인천에서 ‘도서관 쫓겨나기(문전박대)’ 탓에 멍울이 든 마음은 채 씻기지 않았으나, 푸른배움터에 들어간 열네 살인 ‘중학교 1학년’일 적에 〈인천 화도진도서관〉에 갔다. 이때에 ‘도서관 사서’는 “여기는 언니들이 공부하는 데야. 너희는 아직 오기 일러.” 하면서 부드럽게 내쫓았다. 암말도 못 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서 뒷걸음을 쳤다.
열여섯 살에 이르러 드디어 ‘중3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시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입장권’을 받았고, 이 ‘도서관 입장권’은 두 시간마다 도장을 새로 받아야 했다.
1992년 8월 28일에 인천 배다리책거리에서 여러 배움책(참고서)을 살피다가 〈아벨서점〉에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태까지 어느 어른(교사·어버이)도 헌책집에 이렇게 온갖 책이 멧더미처럼 넘실거린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여태까지 둘레 어른은 “대학입시 공부만 해!”라는 말만 했을 뿐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배우렴” 같은 말을 들려준 적이 없다. 이날 뒤로 나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얼씬하지 말자고 여겼다. 인천에 있는 〈대한서림〉이나 〈동인서관〉이나 〈한겨레문고〉는 댈 수 없을 만큼 책이 많은 데가 헌책집인 줄 처음으로 느꼈고, 이 책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어서, 이레마다 이틀씩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빼먹고서 책마실을 다녔다.
1994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인천을 떠나 서울 이문동에 있는 대학교까지 전철로 날마다 네 시간 남짓 납작떡이 되면서 오갔다. 왜 ‘지옥철’이라는 이름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인천에서 서울 이문동까지 네 해 동안 지옥철로 오간 윗내기는 웃으면서 “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인천에서 대학교를 다니면 하나도 배울거리가 없어서 숨이 막혀. 지옥철로 오가야 배울 수 있단다.” 하고 들려주더라.
1995년 봄부터 ‘대학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책갈무리를 맡으며 일했다. 그런데 이해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들어가기까지 예닐곱 달을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면서 ‘다른 근로장학생’을 아예 본 적이 없다. 나 혼자서 대학도서관에서 책갈무리를 하더라. 나는 10월 즈음에 대학도서관 책지기(사서)한테 여쭈었다. “여기 장부(출퇴근 장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은 많은데 왜 얼굴도 안 보이지요?” 대학도서관 책지기는 흠칫 놀라면서 “어, 네가 이상한 거야. 다들 장부에 이름만 적고 일은 안 해. 그냥 이름만 적으면 근로장학생한테 장학금을 주거든.” 하고 알려주더라. “네? 근로장학생은 일을 해야 돈을 받고서 학비로 보태는 얼개가 아닌가요?” “아, 내가 말을 안 했나? 그러고 보니 학생(너)은 점심시간에 일을 안 했다고 해놓았네. 그냥 09∼18 이렇게 여기에 있었다고 적으면 되는데.” “네? 제가 여기에서 일을 안 하고도 장부에는 마치 일을 했다고 적으라고요?” “다 그렇게 해. 넌 여태 그렇게 안 했니?” “일을 안 하고서 일을 했다고 적으면서 장학금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 그래도 그렇게 하지? 너도 굳이 책정리 안 해도 돼. 그냥 이름만 적고서 장학금을 받으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여기 도서관에서 아무 일을 안 하고서 근로장학금을 받더라도, 저는 제가 일한 시간만 똑바로 적고서, 제가 일한 만큼만 장학금을 받겠습니다.”
싸움터에 다녀온 뒤로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안 가기로 했다. 이러면서 2007년 4월 5일에 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라는 이름으로 책마루(서재도서관)를 연다. 우리나라에는 ‘허울 도서관’만 있다고 여겨서, 그냥 내가 ‘책숲다운 책숲’을 꾸리자고 생각했다.
2017년 즈음, ㅇ이라는 고장에 있는 도서관에 갔더니 “중년남성 출입금지”라는 알림글이 있다. 그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는 몸으로 갔기에 그곳 책지기한테 이 알림글이 뭐냐고 물으니 “하도 사회에서 어린이 성범죄로 말이 많아서, 요새는 이렇게 합니다.” 하고 알려준다. “중년여성은 아무 문제가 없나요?” “아, 그게…….” “범죄자만 막아야 하지 않나요? 아저씨야말로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으면서 배움길을 넓히도록 도와야 할 텐데요? 그래야 우리나라가 바뀌지 않나요?” “…….”
2024년에 이르도록 우리나라 여러 도서관은 “어린이·청소년 칸은 중년남성 출입금지”를 하더라. 적잖은 도서관은 “여성 전용 구간”도 마련해 놓는다. 가만히 보면 젊은 사내도 나이든 사내도 “거의 도서관 출입금지”로 가로막는 얼거리이다. 그리고 적잖은 독립서점(동네책방)도 ‘중년남성 방문’을 대단히 꺼린다. 어느 곳은 ‘중년남성’은 책손님으로 아예 안 받기도 한다.
나는 사내라는 몸을 입고서 태어났기에, 우리나라에서 둘레 숱한 사내가 어떤 뻘짓과 막짓을 일삼는지 참 흔하게 숱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안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사내라는 몸’이기에 창피하게 여길 만하다. 그런데 젊거나 나이든 사내가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을 아예 읽지 못 하도록 막아 놓고 닫아 놓는다면, 게다가 ‘페미니즘’ 책까지 사내들은 건드리지 못 하도록 닫아건다면, 사내들은 뭘 배울 수 있을까? 오히려 “중년남성 절대환영!”이라고 내걸면서, 철없는 아저씨를 차근차근 달래고 가르치는 길을 열어야 이 나라가 바뀌지 않을까?
철없는 아저씨도, 아직 앳된 젊은이도,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부터 읽으면서 마음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하나하나 새롭게 익혀야 한다고 여긴다. 아저씨도 젊은이도 푸름이도, 집안일을 즐겁게 맡으면서 집살림을 어질게 돌보는 길을 배워야 한다고 여긴다. 이렇게 하자면 “도서관 어린이·청소년칸 중년남성 출입금지”는 좀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동화읽는 아빠모임’을 나라에서 앞장서서 북돋우고 꾸려야 하지 않을까? ‘동화읽는 할배모임’을 시골과 서울 모두 앞장서서 이끌고 펼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열아홉 살이던 때부터 동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비로소 읽었다. 열아홉 살에 이르던 때까지는 학교도서관이 아예 없기도 했고, 그무렵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어린이책은커녕 그림책은 구경조차 못 했다. 1992년 8월에 인천 배다리책거리에 있는 헌책집에서 비로소 동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만났고, 그때부터 꾸준히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살찌우는 배움길을 걷는다. 나는 내 곁에 ‘중년남성’과 ‘젊은사내’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마음밥을 누리는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꿈꾼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