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58 낮은 데로 임하소서



  어릴 적부터 “낮은 데로 임하소서”란 말을 들으며 늘 거북했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못 하고 속으로 “뭐야? 그냥 우리 곁에 있으면 되지, 뭘 낮은 데로 오라고 그래? 높은 데 있는 어느 누가 우리 곁에 온다고?” 같은 혼잣말을 했다. 열네 살이 되어 1988년에 들어간 푸른배움터(중학교)에서 옛자취(역사)를 배우는데, 그때 길잡이가 “브 나로드(민중 속으로)”를 알려주었다. “민중 속으로”로 풀이한 러시아말을 다시 듣자마자 코웃음이 나왔다. “뭐야? 처음부터 우리(민중)하고 같이 안 살았으면서 우리한테 온다고? 그래서 어떻게 산다는 얘기야? 버틸 수나 있어?”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들(진보·좌파)은 아주 쉽게 말한다. “낮은 데”로 가겠다느니 “민중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왜 외치지? 그냥 ‘우리(가난하고 이름이나 힘이나 돈이 없는 사람)’하고 나란히 이웃집으로 살면 되지 않나? 우리 곁에서 살려고 할 적에 왜 자꾸 먼저 이름을 붙이고 글을 써서 알려야 할까? 건축이나 예술이나 사진이나 문학이나 철학이나, 아무튼 뭔가 한다는 이들치고서 골목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꼴을 본 적이 아예 없다. 굳이 가난해야 뭔가 할 수 있지 않다. 가난하건 가멸차건 그저 살림살이가 다를 뿐이다. 가멸찬 살림이라면 가멸찬 살림을 누리면서 글을 쓰건 문화예술이건 하면 된다. 가난한 살림이라면 가난한 살림을 돌보면서 이모저모 하면 된다. 내가 살던 마을이나, 내가 다닌 배움터는 가난한 데였지만, 이 가운데 꽤 가멸찬 집도 있었다. 가멸차게 살던 이웃 가운데 돈티를 내는 이가 드물게 있었으나, 그저 스스럼없이 섞였다. 곰곰이 보니, 가난마을에서 살아가는 글바치(작가·기자)는 여태 못 봤다. 그들은 다 하늘나라에서 사는 듯하더라. ‘가난한 이웃’을 사진으로 담겠다고 하는 이들은 으레 ‘안 가난한 사람’이다 보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길로 사진을 찍더라. 골목집에서 안 살고 잿집(아파트)에서 살며 이따금 골목마을로 ‘출사(사진마실)’를 나오는 이들이 골목을 어떻게 보고 느껴서 담겠는가? 겉치레나 허울일 뿐이다. 스스로 골목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골목빛을 담아내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아주 다르다. 스스로 마을사람이나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며 ‘순이돌이(장삼이사)’를 담는 글도 무척 다르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하고 읊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에 겉치레이다. “민중 속으로” 또는 “국민과 함게”라 읊는 이도 언제나 뻥에 겉핥기이다. 적어도 열 해 남짓 가난한 골목집이나 시골집을 보금자리로 일구어 보고 나서야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면 조금은 기웃거릴 만하리라. 열 해조차도 골목집이나 시골집에서 살아내지 않는 몸으로 ‘구도심 재개발 건축디자인’이라든지 ‘소멸위기 대책 수립’을 읊으려 한다면, 하나같이 그들 돈벌이를 하는 셈이다. 걸어다니거나 시골버스를 타지 않는 사람이 시골이나 마을을 알 턱이 없다. 아이를 업은 채 자장노래를 부르고 똥오줌기저귀를 손수 삶고 말려서 대는 수수한 살림을 누린 적이 없는 이들이 쓰는 글이나 내놓는 예술작품이 ‘서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없다. 부디 낮은 데로 오지 마십시오. 그저 어깨동무를 하며 살아갑시다. 굳이 민중 속으로 오지 마십시오. 모든 돈과 이름과 힘을 내려놓고서 조용조용 흙을 만지고 풀꽃나무랑 동무하면서 바람을 읽고 새노래랑 풀벌레노래를 들으십시오. 열 살 어린이가 알아들을 말을 하면 된다. 열 살 어린이가 지켜보고 살펴볼 만한 즐겁고 반가운 이슬받이로 하루를 지으면 된다. 열 살 어린이가 쇳덩이(자동차)를 모는가? 안 몬다. 그러니까 낮은 데로 오지 말고, 쇳덩이를 버리면 된다. 열 살 어린이가 몇 억을 훌쩍 넘는 잿집(아파트)을 사들이는가? 아니겠지. 잿집은 집어치우고서 ‘마당 있는 시골집’으로 터전을 옮기면 된다. 입발린 글은 ‘낮은 사람들’한테도 이바지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낮은 데로 가겠다’는 그들 스스로한테부터 이바지하지 못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2023.11.12.

수다꽃, 내멋대로 57 사마귀



  여러 해 앞선 어느 날, 발등에 사마귀가 하나 올랐다. 발을 씻을 적에 일부러 사마귀 돋은 쪽을 더 문질렀더니 사마귀는 하나둘 새로 돋으며 퍼졌다. “내가 사마귀한테 잘못했구나. 널 괴롭힐 뜻이 아니었는데!” 하고 뉘우치고서 왼발등에 돋은 사마귀를 그대로 두었다. 처음 돋은 사마귀는 엄지손톱보다 크게 부풀고, 둘레에 작은 사마귀가 꼬물꼬물 돋았다. 오른발등으로도 사마귀가 퍼지고, 왼손가락하고 오른손가락 몇 군데에도 사마귀가 퍼졌다. 목 뒤하고 등하고 무릎하고 옆구리로도 사마귀가 퍼지려 했다. 내 몸에 새로 돋은 사마귀를 본 이웃은 싫어하거나 꺼리거나 멀리하기도 하고, “원, 징그러운 놈 다 있네!” 하는 속마음을 낯빛에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난 이 모든 낯빛하고 몸짓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여러 해 동안 사마귀를 그냥 두었다. 아니, 사마귀를 쳐다볼 겨를이 없지. 날마다 낱말책엮기(사전편찬)를 하는 일로 바쁘고,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고, 두 아이랑 곁님하고 이야기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살림을 그리는 일로 바쁘며, 온갖 책을 잔뜩 읽어내느라 바쁘고, 바깥일로 살림돈을 버느라 바쁘다. 이러는 사이에 2023년에 열세 살을 누리는 작은아이가 낫질을 익혀서 풀베기를 맡아 준다. 이러는 즈음에 열여섯 살 큰아이가 빨래나 밥짓기를 꽤 거든다. 2023년 10월이 저물려는 어느 날부터 사마귀가 자취를 감춘다. 두 아이가 먼저 알아챘다. “아버지, 아버지 발등 사마귀가 쪼그라들었는데요?” “그래? 어, 그러네.” “다른 사마귀도 사라지는 듯해요.” “그렇구나. 스스로 돋았다가 스스로 사라지네.” 내가 떠올리기로 열한 살 즈음에 처음으로 사마귀가 돋았다. 손가락 등쪽에 뽈록 돋아 눈에 뜨였는데, 사마귀가 난 다른 동무는 “야, 그럴 적에는 풀밭에서 사마귀를 잡아서 뜯어먹으라고 시키면 돼.” 하면서 참말로 사마귀를 잡아서 ‘손가락 등 사마귀’를 뜯어먹으라고 시키더라. “으, 난 못 하겠어. 안 아프니?” “응, 하나도 안 아파. 너도 이렇게 해봐!” “아냐, 난 못 하겠어.” 내 손가락 등에 돋은 사마귀는 석 달 즈음 지나 사라졌다. 2009년 어느 날 오른손등에 사마귀가 하나 돋았다. 씻을 적마다 북북 비볐더니 신나게 번졌다. 오른손등을 몽땅 덮었고, 왼손등으로도 퍼졌다. 가시어머니(장모)가 걱정하면서 “사위, 병원 가야 하지 않아?” 물으셨고, “사마귀는 안 건드리고 안 쳐다봐야 하는데, 제가 사마귀를 미워하면서 긁었더니 퍼졌어요. 이 미움을 씻을 때까지 사마귀가 그대로 있을 듯해요.” 오른손등 사마귀는 인천살림과 충주살림을 깨끗이 치우고서 전남 고흥으로 터전을 옮긴 2011년 가을이 지나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2021년 즈음 문득 돋은 왼발등 사마귀는 내가 미처 느끼거나 살피지 않은, 다스리지 않거나 씻지 않은, 스스로 사랑을 일으키지 않아서 싹튼 어느 미움이라는 씨앗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이라고 본다. 다만, 어떤 미움씨를 심었는지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스스로 사랑씨를 심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자고 달래었고, 문득 볼 적에 더 크거나 퍼진 사마귀를 느끼면, “난 아직도 미움씨가 크구나. 잘못했어. 눈물로 뉘우칠게.” 하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어떤 미움씨’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미움씨’를 ‘오로지 사랑씨’로 품고서 풀어내는 길만 생각하기로 했다. 걸어다니면서, 두바퀴를 달리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이웃을 만나 말을 섞으면서, 책을 읽고 쓰면서, 책집에 깃들면서, 글월을 써서 부치면서, 시골집에서 풀꽃나무랑 들숲바다를 두루 안으면서, 마음하고 몸에 언제나 사랑빛이 너울너울 춤추도록 하루를 살아내자고 생각했다. 사마귀가 문득 수그러든 첫 날부터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사마귀가 자취를 감췄다. 손가락 사마귀는 햇볕을 받고서 아예 사라졌고, 발등 사마귀는 햇볕을 더 받으면 ‘언제 사마귀가 돋은 적 있느냐’는 듯 까무잡잡한 살갗으로 바뀌리라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2023.11.8.

수다꽃, 내멋대로 56 좋아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도 안 좋아했다. 동무도 안 좋아했다. 누가 “좋아하는 사람 없어?” 하고 물으면,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사랑스러운 빛이 있기에, 한 사람만 골라서 좋아할 수 없더라.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요.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없네요.” 하고 대꾸했다. 이런 이야기는 잇고 이어 1975년부터 2023년까지 고스란하다. 질리지도 물리지도 않는지, 둘레 이웃이나 동무는 자꾸 ‘좋다·싫다’로 사로잡힌다. 나는 제발 ‘좋아하지 말자’고, 오직 ‘사랑하자’고 말을 섞는다. “짝꿍도 아이도 안 좋아하나요?” “저는 어느 누구도 안 좋아합니다. 저는 누구라도 사랑하려는 마음입니다.” “‘좋아하다’가 ‘사랑’ 아닌가요?” “‘좋다’란, ‘좁히는 마음’이에요. ‘마음에 드는 쪽’을 ‘좁히’기에 ‘좋아하다’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좁혀서 마음에 들기에, 마음에 드는 쪽이 아니면 다 ‘안 좋아하다’이고, ‘싫어하다’로 흘러요. ‘싫다’는 마음은 어느새 ‘밀어내기’로 잇고, 마음에서 밀어내다 보면 ‘미움·미워하다’로 나아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도 삶도 ‘좋아할’ 일이 아닌, ‘사랑할’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이에요. 사람이 사람다울 적에 사랑이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면서 살림을 짓고 숲을 품기에 비로소 사랑이에요. 사랑이라면 아무런 울타리도 담벼락도 없어요. 사랑이라면 거짓을 벗기고, 참을 빛살로 바라봐요.” “에,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지 않아요? 아무리 말뜻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새 누가 ‘좋다·사랑’을 갈라서 써요?“ “옳은 말씀이에요. 요새는 ‘좋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속살을 헤아리는 사람이 확 사라졌어요. 그래서 다들 ‘좋은밥·좋은옷·좋은차·좋은집·좋은일자리’에 매달리지요. ‘좋은것’에 매달리니까, 사람들 스스로 좋다고 여겨서 품은 것이 아니라면 다 싫거나 미워하지요. 어느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쪽에서 안 좋아하면 바로 싸움이 붙고 서로 밀쳐내면서 미워합니다. 학교에서 반장선거조차도, 또 나라에서 모든 선거마저도, 어느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안 뽑히면 내내 싫어하고 미워하고 삿대질로 치달아요. 어느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뽑히면 그이가 무슨 말썽이나 잘못이나 저지레를 일으키는 각다귀라 하더라도 그냥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좋은밥’을 먹어서는 몸이 오히려 죽어요. ‘좋은밥 = 좁은밥’이잖아요? 좁혀버린 밥을 먹는데 어떻게 몸이 살겠어요?” “네? 좋은밥을 먹으면 오히려 몸이 망가진다고요?” “그럼요. 좋은밥뿐 아니라 좋은책을 읽으면 마음이 망가집니다. 좋은말을 하면 마음이 지저분해요.” “아니, 뭔 소리예요? 좋은책이 오히려 나쁘고 좋은말이 되레 나쁘다고요?” “네, 그래요. ‘좋은책·좋은밥·좋은말’은 반드시 저쪽을 ‘나쁜책·나쁜밥·나쁜말’이라고 여기는 미움을 바탕으로 깔아요. ‘좋은책·좋은밥·좋은말 = 좁은책·좁은밥·좁은말’입니다. 스스로 살리는 기운이 아닌, 내가 아닌 남을 모조리 미워하고 싫어하며 불타오르는 잿더미를 얹고서 책을 읽거나 밥을 먹거나 말을 하니, 겉으로는 이쁘장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썩거나 죽어갑니다.” “…….” “잘 모르시겠지요? 몰라도 됩니다. 다만, 어느 것도 ‘좋아하’려 하지 말고, 그저 ‘사랑’하시기를 바라요. 숲처럼 사랑하고, 바다처럼 사랑하고, 바람처럼 사랑하면 됩니다.” “…….” “아기랑 아이를 봐요. 어떤 아기랑 아이도 엄마아빠가 ‘못생겼다·잘생겼다’로 안 가릅니다. 맞나요?” “네, 그렇긴 하죠.” “‘그렇긴 하죠’가 아닌 ‘그렇습’니다. 참모습을 보시기를 바라요. 좋은책 아닌 책을 읽고, 좋은밥 아닌 밥을 먹고, 좋은말 아닌 말을 하면 돼요. 그리고 어떤 책과 밥과 말을 품더라도 ‘늘사랑’이란 마음일 노릇이에요. 우리는 사람이에요. 사람이니 사랑을 하면 누구나 다 깨닫고 품고 풀어서 빛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2023.11.7.

수다꽃, 내멋대로 55 누구라도



  ‘교육’이 뭔가?‘문학’이 뭔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인가? ‘우리 눈길을 새롭게 틔우기’인가? 누구라도 ‘내 마음’에 들어와 본다면, 또는 ‘나를 만나’ 본다면, 내가 왜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고, ‘말썽을 말썽이라 말하’는지를 조금은 어림하리라. 또는 내가 쓴 책과 낱말책을 찬찬히 읽고 생각을 기울인다면, 왜 ‘벙어리를 벙어리라 말하’는지도 알겠지. 우리말 ‘벙어리’는 ‘벙긋·방긋·봉오리·봉우리·보다’하고 말밑이 같다. 우리말 ‘벙어리’는 따돌림말(차별어)일 수 없다. 처음 태어난 뿌리와 뜻과 결은, ‘꽃과 메(산)와 웃음과 눈짓(봄)’을 아우른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여러 숨빛을 아우른 낱말을 안 쓸 뿐 아니라, ‘오랜 우리말이 마치 따돌림말’인 듯 못박으면서 ‘나쁘다’고 여기더군. ‘바보’도 놀림말이 아니다. ‘밥보’가 밑말이고, ‘밥벌레·애벌레’하고 맞물린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인 애벌레’를 사람한테 빗대면서 가리킨 ‘바보·밥보’이다. 우리말에서 ‘-보’를 붙일 적에 낮춤말일 수 없는데, 그야말로 말도 넋도 삶도 안 들여다보려 한다면, 껍데기에 휘둘려 눈을 감고야 만다. 요사이는 ‘비장애인’ 같은 말이 태어나는데, ‘비장애인’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은 ‘장애인을 아끼는 말’일 수 없다. 오히려 ‘장애인을 장애라는 굴레에 가두는 말’이 ‘비장애인’이다. 왜 사람을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로 가르려 하는가? 사람을 ‘장애’가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아이도 저 어른도 오로지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말씨가 확 다르다. 다리를 절뚝이거나 절기에 ‘절름발이’라고 한다. ‘젊은이(청년)’라는 우리말은 “(다리를) 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 나이가 푸릇푸릇한 사람을 왜 ‘젊은이’라는 낱말로 가리키겠는가? 아직 제대로 배우거나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힘’으로 나서다가는 그르치거나 기울고 말기에, 서두르거나 달려들지 말라는 뜻으로 붙이는 이름인 ‘젊은이’이다. ‘다리’란 잇는 곳이자 몸이다. 다리를 전다면, 이곳(이 사람)하고 저곳(저 사람)을 슬기롭게 잇는 마음이 없거나 얕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둘레를 보라. ‘젊게’ 보이려고 얼굴이나 몸매를 꾸미는 사람들이 넘친다. 철들거나 사랑을 익히는 길이 아닌, 그저 겉몸뚱이만 보기좋게 꾸미려고만 든다. ‘젊다 = 아직 철들지 않다’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자면, ‘젊다 = 바보(밥보) = 애벌레 = 앞으로 고치에 깃들어 꿈을 고요히 그리고서 나비로 깨어날 길에 서는 사람’인 얼거리이다. 어려 보이려고 꾸미는 사람은 어리석다. 젊어 보이려고 꾸미는 사람은 절뚝거린다. 어린이는 어른한테 사랑을 가르친다. 푸름이(청소년)는 어른한테 숲을 가르친다. ‘벙어리(꽃망울님)·장님(잠님·꿈님)·앉은뱅이(앉은뱅이꽃님·봄꽃님)·젊은이’라는 이름에 어떻게 사랑을 담았는지, 이 이름을 말소리로 얹으면서 서로 어떻게 깨어나고 피어나려고 했는지 헤아릴 적에 우리는 저마다 어진 어른으로 선다. 누구라도 아기로 태어난다. 이 별을 알려고 알에서 태어난다. 엄마알하고 아빠알을 함께 맞아들여서 태어나는 아기는, 하나하나 새로 알아가는 기쁨을 웃음꽃과 춤노래로 어버이한테 베푼다. 틀을 세우려 하면 틀리고 뒤틀리고 비틀린다. 틈을 내려 하면 틔우고 싹트고 움터서 튼튼하다.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길이 사뭇 다르다. 아무 말이나 쓰기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아무개로 갇힌다. 알(씨알·씨앗)로 삼을 말을 가리고 생각해서 쓰기에 알차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알아가는 ‘나’로 서면서 날개가 돋는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삶읽기 2023.11.7.

수다꽃, 내멋대로 54 귀신 보는 마음



  지난 2014년 1월까지 깨비(귀신)를 으레 맨눈으로 보면서 고단했다. 깨비가 무섭지 않은 줄 알기는 했으나, 왜 깨비가 늘 보이는지 몰랐고, 알려주는 이웃이나 어른을 못 만났다. 이해 이달에 어느 넋이 곰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서 눈을 떴다. 두 눈을 동여맨 채 둘레를 보는데 모든 사람이 빛줄기로 보이더라. 그래, 난 여태까지 ‘감은눈’인지 ‘뜬눈’인지 모르는 채 살았네. 겉으로는 ‘뜬눈’이었으나, 막상 ‘뜬눈인 척’이었을 뿐이다. 나만 이러할까? 숱한 사람들은 ‘뜬눈인 척하는 감은눈’이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뜬눈을 감은 채’ 태어난다. 그리고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어른한테서 사랑을 받을 적에 ‘뜬눈을 뜬다’고 여길 만하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어버이가 욱여넣는 배움터(유치원·학교·학원)에서 그만 억눌리고 길들면서 ‘뜬눈을 잊다가 잃고서 감은눈’으로 바뀐다. 나처럼 깨비를 맨눈으로 늘 보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아마 다들 말도 못 하면서 스스로 바들바들 떨거나 걱정이나 근심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서른아홉 해를 ‘깨비가 보이는 눈’으로 살아왔지만, 이 깨비를 어떻게 녹이거나 풀어내는지 아주 쉽게 깨달았다. “가렴. 넌 네가 있을 곳으로 가렴. 이곳에서 떠돌지 말고, 네가 이루고 싶은 곳에 있을 수 있도록 네 마음에 꿈을 그리렴.” 하고 속삭이면 된다. 넋씻이(한풀이·정령·해원)는 아주 쉽더라. 말 한 마디이면 된다. 다만, 오롯이 사랑으로 스스로 감싼 숨결로 부드러이 읊는 말 한 마디여야 한다. 2023년 11월 6일, 열여섯 살 큰아이하고 고흥읍을 다녀왔다. 곁님이 쓰는 셈틀(컴퓨터)이 먹통이 되었다. 속을 뜯고 먼지를 털고 이모저모 손보아도 먹통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셈틀을 안고서 흔들흔들 사나운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갔고, 며칠 앞서 들이받침(교통사고) 탓에 도진 무릎을 누가 송곳으로 찌르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천천히, 그저 천천히 걸었다. 셈틀집에 우리 셈틀을 맡길 적에 큰아이가 조곤조곤 얘기했다. 나는 옆에서 큰아이 말을 들으며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묵직한 셈틀을 내려놓고서 무릎을 달랜다. 둘이서 저잣마실을 하는데, 걷기 힘들 만큼 무릎이 쑤셔서 길가에 서거나 앉아서 쉬고, 다시 걷고 또 쉬기를 되풀이했다. 부릉부릉 쇳덩이(자동차) 소리가 좀 시끄러워서 읍내 안골숲을 걸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잎노래를 들으며 무릎을 어루만졌다. 셈틀집에서 전화를 한다. “멀쩡한데요? 잘 움직이고 말썽인 데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큰아이가 웃으면서 말한다. “아버지, 이 아이(셈틀)가 바람을 쐬고 싶었나 봐요. 바람을 쐬니까 즐거워서 스스로 낫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컴퓨터가 마음이 없다고 여기지만, 컴퓨터한테 어떻게 마음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 셈틀도 바위도, 우리가 멘 가방도, 우리가 쥔 붓과 종이도, 우리가 읽는 책도 모두 마음이 있어. 모든 곳은 모든 숨결이고, 이 숨결을 느끼면서 품는다면 총칼(전쟁무기)뿐 아니라, 허울(권력·재산·명예)을 모두 내려놓고서 어깨동무를 하겠지.” 언제 어디에서나 바람을 느낀다. 요새는 깨비를 얼핏 느끼기는 하되 거의 안 느낀다. 왜냐하면, 깨비가 아닌 숨결을 읽고 느끼면서, 내 숨결하고 이웃 숨결 사이에 사랑이라는 다리를 놓을 마음이거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부른다. 보임꽃 〈여섯결(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은 ‘다섯결(오감)’을 넘어 ‘여섯째로 보고 느끼고 아는 결’을 잘 그려내었다. 나는 〈여섯결〉을 숱하게 다시 보았는데, 다시 볼 적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쩜 그렇게 ‘깨비 보는 아이’ 마음을 안 읽을 수 있을까? 그러나 마지막 아이는 끝까지 사랑으로 기다려 주었고, ‘눈감던 어른’은 마침내 눈을 뜨고서, 모두 사랑으로 녹여야 하는 줄 알아차리고서 몸을 내려놓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