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내가 ‘달거리천’ 빨래하면 달라집니다
[아저씨 살림노래] 핏기저귀 손빨래 열한 해를 돌아보며


종이와 천, 두 가지 기저귀

  우리는 손이나 낯이나 발을 닦는 천을 한 번만 쓰고 버리지 않습니다. 부엌에서 개수대를 훔치거나 밥상을 닦는 행주를 한 번만 쓰고 버리지 않아요. 속옷을 한 번만 입고 버린다든지, 보자기를 한 번만 쓰고 버리지 않아요. 그러나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살림이 있으니, 이 가운데 하나는 아기 기저귀와 가시내 달거리대입니다.

  이 나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를 통틀어서, 아기 기저귀하고 가시내 달거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린 물질문명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기 기저귀하고 가시내 달거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에 놀랍거나 새롭거나 멋진 물질문명일 수 있을까요?

  저희 집은 두 아이를 천기저귀를 대며 살림을 가꾸었습니다. 아이한테 천기저귀를 대려면 으레 ‘그 많은 빨래를 어떻게?’ 하고 생각할 분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물음이 달갑지 않아요. 아이를 낳아서 돌볼 적에는 어버이가 얼마나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느냐 하는 대목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반기거나 좋아하느냐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아이 몸에 알맞거나 좋은 길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기는 종이기저귀를 좋아할까요? 오줌을 몇 번이고 누더라도 축축해지지 않는다는 화학종이 기저귀를 아기가 참말로 좋아할까요?

  까만 전구가 있습니다. 영어로 블랙 라이트라 하는데, 방을 어둡게 하고서 까만 전구를 켜면 우리가 쓰는 종이나 천에 깃든 형광물질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를 일찌감치 안 분이라면 종이 한 장을 쓰더라도 아무 종이를 쓰지 않아요. 옷을 입을 적에도 아무 천으로 지은 옷을 함부로 입지 않지요.

  저희는 두 아이한테 쓸 천기저귀를 처음 마련하려고 하면서 몹시 어려운 담을 넘어야 했습니다. 2008년에 태어난 큰아이하고 2011년에 태어난 작은아이한테 쓸 천기저귀를 찾아보면서 ‘형광물질이 없는 천기저귀’는 거의 만날 길이 없었거든요. 천기저귀를 지어서 파는 회사에서는 100퍼센트 면이라고 하는 대목을 밝히지만, 정작 면만 썼는지, 면을 잇는 바느질 마감에 형광물질이 있는 실을 썼는지 제대로 밝히는 곳은 없어요. 더욱이 100퍼센트 면이라고 해도 형광물질이 깃든 면이 꽤 많아요. 기저귀뿐 아니라 손천이나 이불이나 담요 모두 이와 마찬가지이고요.

  오래된 포대기라든지, 마을 할머니가 손자한테 쓰고 싶어서 옛날에 미리 마련해 놓은 기저귀천은 형광물질이 없더군요. 저희는 이런 포대기나 기저귀천을 매우 고맙게 얻을 수 있어서 두 아이가 똥오줌을 떼기까지 즐겁게 천기저귀를 쓸 수 있었어요.

아기랑 곁님, 또 다른 두 기저귀

  기저귀 빨래를 놓고 살짝 적어 본다면, 가시내인 큰아이는 세이레가 되기까지 하루에 쉰두 장에 이르는 기저귀 빨래를 내놓았습니다. 저희는 천기저귀를 모두 마흔 장 마련했으니, 날마다 모든 천기저귀를 한 번 넘게 빨아야 했어요. 머스마인 작은아이는 누나하고 다르게 세이레가 되기까지 서른 장 남짓 내놓았어요. 가시내하고 머스마는 이렇게 다르네 하고 새삼스레 느끼고 배웠는데, 작은아이는 내놓는 기저귀 빨래가 적은 듯해도 한꺼번에 많이 누느라 막상 이불 빨래를 훨씬 자주 해야 했으니,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빨래에 드는 품은 같았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천기저귀를 쓰자면 가벼이 마실을 하는 길에도 천기저귀를 잔뜩 챙겨야 하고, 배냇저고리에다가 옷가지도 나란히 챙겨야 해요. 그야말로 짐이 한가득이었는데요, 이렇게 살림을 하면서 벅차거나 힘들다는 생각보다 ‘천기저귀하고 중성세제로 빨래한 옷’을 누리는 아이가 좋아하는 방긋웃음에 언제나 즐겁게 짐을 짊어지고 손빨래를 했어요.

  그리고 곁님 핏기저귀 빨래를 함께 했지요.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어머니는 며칠 동안 핏물을 꾸준히 잔뜩 내놓습니다. 아기한테 천기저귀를 대려면 아기한테뿐 아니라 아기 어머니가 쓸 핏기저귀를 함께 갖추어야 해요. 이 대목은 아기를 낳고 돌보면서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아기가 젖을 떼면 곁님은 바로 달거리를 하니, 이때부터 집안 빨래는 아기 똥오줌 기저귀하고 곁님 핏기저귀를 나누어서 빨래하느라 하루가 참 길었어요. 쉴새없이 빨래하고 널고 말리고 개고,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는 제대로 안 마르니 기저귀천을 하나하나 다림질을 하느라 밤을 잊었지요.

  저희 집 큰아이는 열 살입니다. 머잖아 큰아이는 가시내로서 달거리를 맞이합니다. 큰아이는 종알종알 말을 잘 하고 스스로 옷을 꿰어 입을 무렵, 집에서 기저귀랑 옷이랑 이불이랑 빨래를 해서 널고 말리고 개는 아버지 곁에서 함께 기저귀도 개고 옷도 개면서 살림놀이를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 핏기저귀를 삶아서 빨래하고는 마당에 널 적에 일손을 거들지요. 이러면서 저절로 사람살이와 사랑살이를 배워요. 아기를 낳는 몸이란 무엇이고, 아기를 품는 몸이란 무엇이며, 이 몸이 다달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배웁니다.

아이한테 가르치고 물려줄 살림

  저희는 천기저귀를 쓰기도 하지만, 빨래를 할 적에 화학세제를 안 씁니다. 화학비누도 안 쓰고 화학치약도 안 써요. 어른에 앞서 아이들이 먼저 화학세제 냄새를 잘 느낍니다. 몸이 좋아하는 냄새를 살피는 아이로 자라고, 스스로 몸을 아끼는 살림을 받아들이는 하루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가시내인 큰아이는 ‘큰아이 몫 달거리천’을 두겠지요. 큰아이는 제 달거리천을 앞으로 손수 빨래하는 길을 배우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어머니 핏기저귀와 함께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울 테고, 나중에는 스스로 삶아서 헹구어 내다 너는 몸짓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옷살림은 큰아이만 맡을 몫이 아니라고 느껴요. 작은아이도 한집안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작은아이도 어느 만큼 철이 들어 손놀림이 야무지게 거듭나면, 어머니나 누나 핏기저귀를 삶는 일을 때때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는 배우면서 자라기도 하지만, 살림을 거들거나 손수 맡아 보면서 자라기도 합니다. 아이는 누구나 처음에는 어버이가 씻겨 주는데요, 나중에는 아이가 스스로 씻어요. 몸을 스스로 씻듯이 옷도 스스로 빨래하고 널고 말리고 개며 건사하는, 이러다가 구멍난 데는 스스로 기우고, 뜨개질을 익혀서 제 옷을 스스로 짓는 길을 나아갈 적에 튼튼하며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살림짓기는 가시내(어머니) 혼자 맡아서 이끌거나 가르칠 수 없어요. 반드시 머스마(아버지)가 함께 맡아서 함께 이끌고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아 돌보는 가시내(어머니)는 오래 쉬고 느긋하게 몸을 돌보아야 하니 머스마(아버지) 자리에 선 이라면 오래도록 집안일이며 집살림을 도맡을 줄 알아야지 싶어요. 아들이 태어나건 딸이 태어나건 아이들은 한집안에서 머스마 자리에 있는 아버지가 이러한 살림과 일을 도맡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깊고 넓게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밥을 먹고 누구나 옷을 입어요. 누구나 잠을 자고 누구나 하루를 짓습니다. 가시내도 머스마도 손수 밥을 지어서 차릴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시내도 머스마도 손수 옷을 건사하는 살림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달거리천은 달거리천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느껴요. 말썽이 많은 ‘화학종이 생리대’가 도마에 오르기도 하는데, 우리는 왜 언제부터 이런 화학종이 생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삶을 보내는지 이제부터 다시금 되짚어야지 싶습니다. 이러한 삶은 가시내뿐 아니라 머스마가 함께 되짚을 뿐 아니라, 함께 살림을 짓고 서로 사랑하는 길로 생각을 북돋아야지 싶어요.

사내가 핏기저귀를 빨래하는 나라를 바란다

  더 좋은 화학종이 생리대를 더 값싸게 사서 쓸 수 있으면 좋을까요? 더 좋다고 하는 화학종이 생리대이든 값싼 화학종이 생리대이든, 이런 화학종이 생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릴 적에는 어디로 갈까요? 아기한테 쓰는 종이기저귀도 한 번 쓰고 나서 버리면 어디에 묻힐까요?

  천으로 지은 수건이나 행주나 옷은 두고두고 입습니다. 천으로 지은 기저귀도 두고두고 쓰지요. 아기가 쓰던 기저귀는 나중에 달거리천 구실을 합니다. 아기가 쓰던 기저귀는 잘 삶고 빨아서 행주로 삼을 수 있고, 무나 배추를 감싸서 냉장고에 두는 좋은 보자기 구실을 하기도 해요. 이렇게 잘 쓰다가 해질 대로 해진 기저귀천은 흙으로 돌아가지요.

  화학약품을 섞은 생리대를 만드는 회사가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이런 화학제품을 이제 멈추고서, 앞으로는 땅에서 푸르게 자란 풀에서 얻은 실로 정갈하면서 좋은 달거리천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런 길로 달라질 수 있으면, 시골에서 흙살림을 하는 분들도 더욱 좋을 테고, 우리 터전은 훨씬 나아질 수 있습니다.

  제가 열한 해째 곁님 핏기저귀를 삶고 헹구면서 살아온 바탕에는 이런 뜻이 있어요. 비록 저 한 사람 몸짓이라 하더라도, 작은 한 사람 몸짓으로 살림을 조금씩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손으로 가꾸거나 지어서 흙을 보듬는 살림을 물려받을 수 있을 테고요.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기저귀 빨래가 따사로운 볕을 받고 싱그러운 바람을 쐬면서 눈부시게 춤추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집집마다 빨랫줄을 걸고서 즐겁고 아름답게 옷살림을 다스리는 새로운 모습을 그려 봅니다. 2017.9.2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내도 가시내도 못질·톱질 함께 배우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7] 아이들하고 책상 짜기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글쓴이 말)


  제가 어릴 적에 간호원(아직 ‘간호사’라는 이름을 쓰기 앞서입니다)이 되려는 꿈을 품은 동무가 있습니다. 이 동무는 제 꿈을 선뜻 밝히지 못했습니다. 사내라면 마땅히 ‘의사’가 되어야지, 간호원이 뭐냐고, 가시내나 하는 일을 사내가 하려 한다고 아주 쉽게 놀림이나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제가 스무 살이 될 무렵(1994년) 제 동무 하나는 중장비 면허를 땄어요. 중장비를 다루는 면허야 따는 사람이 제법 있으니 놀랄 만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 중장비 면허를 딴 동무는 가시내입니다. 으레 사내만 따던 중장비 면허를 가시내가 땄고, 이 동무는 면허로만이 아닌 ‘중장비 기사’로 몸소 일하고 싶어 했어요. 그렇지만 제 동무는 기사로 일하지 못했습니다. 사내 아닌 가시내한테는 ‘기계를 맡길 수 없다’고 한다면서 몹시 슬퍼했어요.


  2010년대를 가로지르는 오늘날에는 택시나 버스나 중장비까지, 굳이 사내만 운전대를 쥐지 않습니다. 가시내도 얼마든지 택시나 버스나 중장비 운전대를 손에 쥡니다. 이와 달리 1980년대를 돌아보면 그무렵에는 자가용 운전대조차 가시내가 쥐기 매우 힘들었어요. 적잖은 사내는 ‘자동차를 모는 가시내’를 보면 일부러 놀리거나 괴롭히기 일쑤였고, 때로는 거친 말을 마구 퍼붓기까지 했습니다.


  더 생각해 보니 고작 서른 해쯤 앞서만 해도 가시내가 손에 망치를 쥐고 못을 박는 일도 말리던 흐름이 있었어요. 가시내가 부엌칼이나 빨래방망이가 아닌 웬 망치나 못을 쥐느냐면서 나무라곤 했어요. 무겁거나 큰 짐을 나를 적에도 으레 이런 일은 사내‘만’ 해야 한다는 듯이 여겼지요.


  이러다 보니 가시내는 형광등 하나 갈 줄 모르도록 내모는 흐름이었어요.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까지 남녀를 뚜렷하게 가르면서, 사내도 가시내도 서로 반쪽짜리 사람이 되도록 하는 흐름이었다고 느낍니다.


  두 아이를 건사하는 우리 집 살림을 짓는 동안 곁님하고 저는 두 아이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날마다 새롭게 되새깁니다. 어느 일이건 하루 빨리 척척 해치우기보다는 서로 이야기하고 거들고 나누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배우면서 ‘아이한테 더 쉽고 부드러이 가르치는 길’을 어버이가 스스로 배우도록 돕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버이답게 더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가르치는 살림’을 새롭게 배워요. 배우는 사람이 저절로 가르치고, 가르치는 사람이 저절로 배우지요.


  널을 엮은 평상을 맨 처음에는 돈을 주고 장만했어요. 어느덧 열 해가 된 지난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쓸 평상을 우리 손으로 짭니다. 평상을 하나 짜고 보니, 새로 짜고 더 짜다 보니, 나무질이 시나브로 손에 익어요. 이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 붙어서 톱질을 구경하고 못질을 구경합니다. 사포질이라든지 옻질을 구경하지요. 하나하나 구경하는 동안 아이들도 저희 깜냥것 톱이나 망치나 사포나 붓을 손에 쥐어 봅니다.


  아버지가 일을 할 적에는 저희도 어렵잖이 해낼 만하리라 여기지만, 막상 아이들이 저희 손에 톱이나 망치나 사포나 붓을 쥐어 보면, 저희 생각대로 하나도 안 됩니다. 아이들 아귀힘으로는 톱으로 나무토막 하나 켜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못 하나 박자면 한나절이 걸릴 만해요.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깨 너머로 지켜보면서 천천히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작은 심부름을 하면서 ‘작은 손길로 함께 짓는 살림’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롭게 헤아립니다.


  다만 아이들은 심부름을 하며 지켜보다가 다른 놀이를 하러 자리를 떠나지요. 도움이로 아버지 곁에 있다가도 꽃삽을 쥐고서 흙을 파거나 나무를 타고 오르며 놀고 싶어요.


  아직 톱이나 망치를 쥘 힘은 안 되어도 꽃삽을 쥘 힘이 됩니다. 나무줄기를 붙잡고 높이 올라갈 힘이 되어요. 살뜰히 일을 거들며 눈썰미를 키웁니다. 신나게 놀이를 즐기며 몸에 새로운 힘을 붙입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톱질 못질 옻질을 함께 배웁니다. 가시내도 사내도 부엌일 집안일 살림살이를 모두 배웁니다. 누구보다 어버이 스스로 보금자리를 가꾸는 길을 스스로 익히고 살피려 합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누리는 삶을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무언가 하나를 바라보면서 배울 만하리라 느껴요.


  서로 돕고 같이 누립니다. 함께 힘을 모으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책상을 짜면서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바꾼다고 깨달아요. 서른 해 앞서나 스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안 받아들이려고 했던 모습을, 오늘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에서 하나하나 새롭게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자고 생각해요.


  지난 스무 해나 서른 해 사이에 거듭난 모습이 있으면, 오늘부터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는 더욱 거듭나고 더욱 눈부시게 아름답도록 깨어나는 이야기가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못을 박고 나무를 켜며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아버지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아니?” “음. 몰라.” “평화.” “평화?” “응, 평화롭게 살려고. 평화롭게 우리 스스로 짓고, 평화롭게 우리 스스로 누리고, 평화롭게 우리부터 바꾸는 삶이 되려고.” “그렇구나.” 2017.6.7.물.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들한테 ‘땅 물려주기’ 하려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6] 재산 아닌 살림자리를


..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


  어릴 적 저희 집안은 퍽 가난했어요. 저희 집안뿐 아니라 이웃 집안도 하나같이 가난했어요. 함께 뛰노는 동무네 집도 나란히 가난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희나 이웃이나 동무가 ‘가난하다’고는 여기지 않았어요. 그때에는 ‘가난’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밥상에 반찬이 한두 가지만 있더라도 ‘반찬 가짓수가 적어’서 서운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고기 반찬’을 어쩌다 한 번 먹어도 그러려니 하고 여길 뿐 아니라, 이런 날은 잔칫날이겠거니 하고 여겼습니다.

  도시에서 살림을 꾸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두 분 소유 집’을 이루기까지 꽤 오래 걸렸습니다. 늘 다른 사람 집을 빌려서 달삯을 치르는 살림이었어요. 이런 살림을 오래도록 보고 자라는 동안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뭔가를 물려받는다’는 생각은 아예 해 보지 않았어요. 앞으로 제금을 날 적에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장만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스무 살부터 어버이 집에서 나와 따로 살았어요. 모든 일과 살림을 스스로 해내면서 한 살 두 살을 먹었습니다. 집안일이나 집살림이란 무엇인가는 스무 살부터 비로소 몸으로 깨달았고, 두 손에 ‘살림 굳은살’이 생기면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거듭났다고 느껴요. 다만 서른 언저리까지는 ‘즐겁게 살림하자’는 생각은 했되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살림’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서른 한복판을 지나면서 ‘우리 집 아이’를 맞아들이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아이하고 짓는 살림’을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하고 처음 가꾸던 살림집도 우리 어버이 살림집처럼 ‘달삯을 치르는 곳’이었지요. ‘우리 집’이기는 하되 ‘우리가 가꾸어 물려줄 수 있는 집’이 아니었어요. 도시에서 살 적에는 웬만해서는 달삯살림을 벗어나기 어려워요. 더욱이 도시에서 ‘우리 소유 집’을 얻는다고 해도, 도시는 재개발이 너무 잦아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우리 삶과 이야기가 깃든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없는 얼거리로구나 하고 느끼곤 했습니다.

  저나 곁님은 우리 아이들한테 ‘재산’을 물려줄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 ‘재산’이 아니라 ‘살림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얼핏 보자면 ‘집’은 부동산이라고 하는 재산입니다. 깊이 살피자면 ‘집’은 두 어버이가 사랑으로 살림을 하면서 삶을 노래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을 만한 터전이라면 바로 ‘보금자리’이지 싶어요. 또는 ‘살림자리’이지요. 또는 ‘사랑자리’요, 또는 ‘삶자리’이고, ‘이야기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 깃들 적에 장만한 살림집은 2011년에 ‘바가지를 써서’ 1000만 원 돈을 치렀습니다. 97평에 1000만 원을 치렀지요. 측량을 처음으로 하고, 등기도 처음으로 하느라 치른 세금까지 더해서 1000만 원을 치렀어요. 이 집에 깃들고서 한두 해쯤 뒤에 이웃 할아버님이 넌지시 말씀해 주시더군요. 저희 집쯤이라면 300만 원이 알맞은 값(매매가)이었다고요.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희는 두고두고 살아가면서 기쁨으로 지을 살림집을 얻었으니까요.”

  나중에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한테 ‘집을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이 시골마을 작은 집은 ‘돈’이 될 만할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마 그러하겠지요? 저희 스스로도 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고요. 그러면 저희는 왜 이 집을 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삶자리로 가꾸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희는 ‘보금자리·사랑자리’ 같은 이름 그대로 이 터전(집)이 스스로 삶을 짓는 슬기롭고 즐거운 한마당이 되기를 바라요. 어버이 두 사람이 온 슬기와 땀방울을 들여서 알뜰살뜰 가꾸어 아이들이 새롭게 꿈을 지피는 바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집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와 그늘과 바람과 노래를 베풀어 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바랍니다. ‘우리 집 흙’이 숲흙처럼 까무잡잡하고 구수한 내음으로 싱그러워서, 무엇을 심어 키우든 알차고 넉넉하게 얻을 수 있는 살림자리를 바랍니다. 평화롭고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동안, 이 평화로움과 사랑스러움을 아이들이 스스로 누리고 이웃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랑자리를 바라요. 아이들이 손수 가꾸고 짓고 짜고 엮고 건사하면서 ‘작은 하나부터 자급자족하는’ 삶을 새로 배우는 삶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벌나비랑 멧새랑 개구리가 살가이 어우러질 수 있는 숲자리가 되기를 바라요.

  저희가 아이들한테 물려주려고 하는 땅은 그냥 땅이 아닌 ‘숲 보금자리’나 ‘보금자리 숲’입니다. 숲이 될 보금자리, 또는 보금자리가 될 숲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차근차근 가꾸지요. 저희는 ‘숲 보금자리’나 ‘보금자리 숲’을 ‘숲집’이나 ‘집숲’이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말해요. 어버이요 어른인 두 사람으로서 ‘숲집·집숲’을 먼저 가꿉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이 ‘숲집·집숲’을 더욱 사랑스레 가꾸고 돌보면서 먼먼 뒷날까지 새로운 아이들이 꾸준히 물려받기를 꿈꾸지요. 200년이고 500년이고 1000년이고, 싱그러운 ‘마을숲집’으로 퍼지기를 바라요.

  도시에서 사는 이웃님도 재산 아닌 집을 가꾸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파트나 빌라라는 곳은 어쩔 수 없이 자꾸 재개발을 해야 하잖아요? 도시에 사는 이웃님 스스로 꿈을 키워서 아파트나 빌라 아닌 ‘마당 있는 집’을 어여쁜 보금자리로 맞아들여서 이러한 보금자리를 아이들이 물려받아 더 싱그러이 일굴 만한 ‘숲집’으로 돌보신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우리는 ‘임시 거주지’나 ‘적은 돈으로 얻을 거주지’가 아닌, ‘적어도 200년은 건사하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보금자리’를 누려야지 싶어요. 2017.5.2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쓴이 말)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우리는 ‘아이 성 새로 짓기’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5] ‘어버이 성 안 쓰기’를 하는 마음


  어릴 적에 동무들은 흔히 저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니? 넌 참 다르다, 달라!” 

  요즈막에 이웃들은 으레 저한테 이렇게 얘기합니다.

  “최종규 씨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해요? 참 다르네요.” 

  어릴 적에 동무들한테는 이렇게 대꾸했어요.

  “거참, 너는 왜 안 다르니? 너하고 다른 동무는 안 다르니? 너하고 나는 안 다르니? 우리는 모두 달라. 다 다르니까 다를 뿐이야. 여기에 너하고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니? 너도 참 달라.” 

 요즈막에 이웃들한테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에요.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숨조차 쉴 수 없어요. 풀밭에 자라는 풀도 다 같은 풀이 아니라 다 다른 풀이에요.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풀밭에 납작 엎드려서 바라보면 다 다르게 생겼고 크기도 달라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게 아름다워요.”

  저는 어릴 적에 저한테 붙은 성인 ‘최’를 좋아했습니다. 이러면서도 왜 저한테는 ‘차’라는 성이 안 붙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제 성인 ‘최’는 우리 아버지 성입니다. 저한테 안 붙은 ‘차’는 우리 어머니 성입니다.

  어릴 적에도 어딘가 아리송했어요. 아니 왜 ‘아버지 성’만 써야 하나 싶더군요. 나는 ‘최’도 ‘차’도 함께 쓰고 싶었습니다. 이때가 1980년대 첫무렵입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어버이 성’을 함께 쓰자고 생각한 분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저는 어린이였으니 둘레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었어요. 다만 동무들한테 이런 말을 하면 하나같이 벙뜬 얼굴로 “야, 그게 말이 되니? 어떻게 두 가지 성을 다 써?” 하고 대꾸하더군요.

  어릴 적에 처음에는 아버지 성도 어머니 성도 함께 쓰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한 가지를 깨달아요. 우리 어머니 성은 ‘우리 어머니를 낳은 아버지한테서 받은 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를 낳은 아버지’하고 성이 달라요.

  이 대목을 깨달으면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아아, 이건 뭐야? 그러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자꾸자꾸 거슬러 올라가는 숱한 어머니들은? 할머니들은?

  2008년에 우리 집 첫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이러한 생각이 머리에서 어지럽게 춤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지러운 생각을 곁님이 아주 손쉽게, 참으로 슬기롭게,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게, 여기에 매우 곱게 실마리를 풀어 주었어요. 2008년에 태어날 우리 첫 아이를 맞이하기 앞서 곁님하고 이런 얘기가 오갔어요.

  “여보, 우리 아이한테는 성을 새로 지어 주면 어때요?” “응? 성을 새로 지어 주자고? 안 돼. 법으로는 그렇게 안 되어.” “법으로 안 된다고요? 무슨 법이 그래? 성 하나를 새로 지어서 쓸 수 없다고? 한국에서 사람들이 성을 쓴 역사가 얼마나 된다고 성을 새로 못 지어?”

  곁님이 마지막으로 물은 말에는 저로서는 차마 대꾸할 수 없었습니다. 이 대목을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제 머리는 ‘현행 법 틀’만 헤아렸을 뿐, ‘현행 법이 슬기롭지 못한 틀’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악법도 법이다’라는 생각에 멈춘 제 모습이었어요.

  곁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새로운 생각을 들려줍니다.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해요. 아이들 성을 새로 짓기는 하되, 법(주민등록)으로 등록할 때에는 그 법대로 하기로. 다만 우리 집에서는 법으로 등록한 성을 안 쓰고 우리가 지은 성을 쓰기로 해요.”

  저는 이 말을 듣고 곁님을 꼬옥 안았습니다. 법이 어떠하든 우리는 ‘법이 없이 즐거우며 아름답고 사랑스레 사는 길을 걸으면 되는 살림’이라는 대목을 깨달았어요. 아이 성은 주민등록에서는 ‘아버지 성’으로 올리되(곁님은 굳이 ‘어머니 성’으로 하지는 말자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 곧 아이 어버이인 우리가 지은 새로운 성’을 쓰기로 합니다.

 사름벼리
 산들보라

  2008년에 이어 2011년에 둘째 아이가 찾아옵니다. 둘째 아이한테는 둘째 아이한테 알맞을 새로운 성하고 이름을 생각하여 사랑으로 지어 줍니다. 둘째 아이도 첫째 아이하고 똑같아요. 법으로는 ‘아버지 성’을 올립니다만, 집에서는 언제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사랑으로 지어 준 성’만 쓰지요.

 사름(성) + 벼리(이름)
 산들(성) + 보라(이름)

  저희는 ‘어버이 성 안 쓰기(부모 성 안 쓰기)’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아이들한테 걸맞을 새로운 성하고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서 주기로 합니다. 저희는 아이들한테 ‘가부장 흐름에 따라 이어주거나 이어받는 성’이 아니라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새롭게 가꾸며 펼칠 꿈이 스며드는 성’을 주기로 합니다.

  다시금 따져 본다면, 저희가 하는 일은 ‘아이 성 새로 쓰기’입니다 ‘아이 성 새로 짓기’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아이들 나름대로 어버이가 지어 준 성이나 이름이 아닌, 저희 깜냥껏 새로운 성이나 이름을 슬기롭게 지어서 쓸 수 있어요. 아이들은 ‘최 사름벼리’나 ‘전 산들보라’처럼 이름을 쓸 수도 있겠지요. 아이들 마음이니까요.

  아이들한테 어버이로서 이름을 지어서 물려준다고 할 적에는 ‘지나온 길(옛 역사)’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길(아이 스스로 지을 역사)’를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펼치고 스스로 이루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평등하게 아버지 어머니 성을 ‘함께 쓰기’를 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하나를 더 생각해 본다면, ‘어버이 성 함께 쓰기’는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짝꿍을 만날 적에 몹시 골치가 아플 만합니다. 아이들 성은 하루하루 자꾸자꾸 길어지면서 어지러워질 테니까요.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어느 쪽 성을 앞에 쓰느냐를 놓고도 골치가 아플 테고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닌, 사내나 가시내를 넘어선, 오롯이 서는 사랑이라는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살림을 물려받기를 바랍니다. 사내랑 가시내라는 성별을 모두 가슴으로 품으며, 우리는 모두 그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다 같이 홀가분한 숨결로 씩씩하게 서기를 바라요. 2017.5.1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이 글을 쓰는 뜻)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


아이들한테 살림 가르치는 아버지
[남자도 여자도 아닌 4] 가르치면서 배우는 집안일


  골이 띵해서 자리에 누워 허리를 폅니다. 부산하게 아침을 차려서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치우고, 부엌을 쓸고, 빨래를 해서 널고, 물병을 내놓아 햇볕을 쪼인 뒤에 들여놓고, 이것저것 갈무리를 하고 나서 ‘이제 되었나?’ 싶으면 바야흐로 골이 띵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토요일하고 일요일, 또 방학 때면 어머니가 하루 내내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형하고 저랑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두 아이 밥상을 차려 준 뒤에 다른 일을 하느라 언제나 바쁩니다. 어머니로서는 이 일이나 저 살림을 마무리짓지 않고서는 도무지 수저를 들 수 없는 마음이었지 싶어요.

  어릴 적 그무렵에서 서른 몇 해가 지난 오늘날 가만히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는 우리 어머니가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지 못하던 모습이나 몸짓을 헤아릴 길이 없었어요.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먹고 나서 함께 부엌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 될 텐데 싶었어요.

  일손이 익숙한 살림지기로서는 남한테 일을 맡기기가 오히려 어렵기도 합니다. 손에 익은 대로 혼자 해치울 적에 한결 빠르다고 느낄 만해요. 이것을 이 아이한테 시키고, 저것을 저 사람한테 맡기자면 오히려 손이 더 간다고 여길 만해요. 때로는 이 일을 저렇게 하느라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고, 저 일을 이렇게 해 놓고 가 버린 탓에 되레 일거리가 늘기도 하지요.

  고단하거나 골이 띵할 적에 일손을 멈추고 생각해 봅니다. 왜 굳이 고단하도록 일을 하거나 골이 띵하도록 일손을 못 놓을까요? 왜 이 집일을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재미나게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물려주지 못할까요? ‘빨리 해치우’거나 ‘얼른 끝내야’만 하는 까닭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서 살림을 짓는 길을 익히면, 살림지기로서도 한결 수월할 뿐 아니라, 집일은 ‘고단하게 떠맡는 일거리’가 아닌 줄 스스로 새롭게 배울 만하지 않을까요?

  거의 모든 어머니는 집안일을 짐이나 멍에로 떠안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내몰아요. 그러나 이 집안일을 즐겁게 고이 받아들여서 알차게 일구는 어머니가 많아요. 아무리 사회가 가시내를 고단한 길로 내몰아도 슬기롭고 씩씩하며 사랑스레 집안을 돌보는 분이 많습니다.

  어머니 아닌 아버지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내들이 ‘사회가 내몰아 모든 집안일을 홀로 떠맡아야 한다’고 할 적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우리 사내들은 가시내처럼 슬기롭고 씩씩하며 사랑스레 집안을 돌보는 몸짓이 될 수 있을까요? 부드럽고 상냥하며 따스한 손길로 집살림을 건사하는 아름다운 살림지기가 될 수 있는 사내는 얼마나 있을까요?

  마루나 방이나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부릅니다.

  “배고프니?” “음, 안 배고픈 듯한데?” “그러면, 밥 차려 놓으면 안 먹을 생각이니?” “음, 먹, 을, 까?”

  어째 배고픈지 안 배고픈지도 모르랴 싶지만, 이때에 우리 아이들이 아닌 ‘제가 어릴 적’에 어떠했는가를 떠올리면 됩니다. 저도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가 “얘들아, 밥 먹어라.” 하고 부르면 ‘글쎄, 아직 배가 안 고픈 듯한데?’ 하고 생각했어요. 노는 데에 온마음을 쏟으면 놀기에 바쁘기에 배고픈 줄 잊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다면, 이때에는 그림이나 책에 사로잡혀서 배가 고픈 줄 잊지요.

  살림을 맡은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언제 밥을 먹었는가’를 살펴서 ‘배가 고플 때에’ 밥을 지어서 차립니다. 아이들은 이 대목을 거의 못 헤아리기 마련이로구나 싶어요.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집안을 가꾸고 살림을 꾸리며 사랑을 길어올리자는 생각을 하면서 ‘배움’을 되새기려 합니다. 두 아이가 저희 힘이나 몸이나 손길에 걸맞게 차근차근 익힐 수 있는 살림을 보여주면서 가르쳐 보려 합니다. 함께 밥을 짓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밥상을 치우고, 함께 입가심을 하다가,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쉬고, 다시 함께 기운을 내어 우리 보금자리를 일구는 길을 걸어 보려 합니다.

  “마당에서 솔(부추)을 뽑아 줄래?” “마당에서 파를 끊어 줄래?” “마당에서 돌나물을 함께 훑을까?” “밥에 넣을 모시잎을 따 줄래?” “지짐이로 할 만큼 소쿠리에 쑥을 뜯을 수 있을까?”

  아이들한테 하나하나 맡겨 봅니다.

  “자, 작은 도마를 꺼내고 작은 칼을 꺼내 보세요. 한 사람씩 오이를 썰어 봐요.” “누나가 오이를 썰면 동생은 토마토를 썰어 봐.” “스스로 먹을 만큼 주걱으로 밥을 푸세요.” “어머니 수저를 누가 챙겨 줄까?” “밥상을 펴면 행주로 잘 닦아 주세요.”

  끼니마다 날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말을 몇 해 동안 날마다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끼니마다 으레 한 가지씩 거들면서 시나브로 어른이 되어 가지 싶어요. 우리 어른은 아이들한테 언제나 고운 마음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고 일손을 이끌어 심부름을 맡기면서 한결 무르익는 어른으로 우뚝 설 만하지 싶어요. 나이만 어른이 아닌 마음으로 아름다운 어른으로 거듭난다고 할까요. 아이들이 배울 ‘한살림(함께 가는 하나 될 살림)’은 어른들도 함께 배울 ‘사랑살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5.1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