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한여름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기에 서울 곳곳을 알지는 않아. 으레 다니는 곳만 다니지. ‘서울사람’이기에 서울 곳곳을 한이웃으로 삼으면서 어울리며 즐거울 길을 찾아나서지는 않아. 또한 ‘서울곁’이나 ‘서울밖’을 한나라 한이웃으로 삼으려는 뜻이 없을 수 있어. 푸른별 모든 나라를 한누리 한이웃으로 못 삼기도 하고.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기에 논밭을 다 알지는 않아. 모심개(이앙기)와 벼베개(콤바인)가 큰소리로 울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얼핏 보았어도, 논을 어떻게 갈거나 벼를 낫으로 어찌 베는지 영 모를 수 있어. 시골사람이기에 논거미나 우렁이를 알지는 않고, 시골사람이기에 나무나 나비를 사귀지는 않아. 숱한 사람들은 무늬로만 살아가기 일쑤야. ‘서울무늬’에 ‘시골무늬’를 입어. ‘가시내무늬’에 ‘사내무늬’도 입지. 무엇보다도 사람이면서 ‘사람빛’이 아닌 ‘사람무늬’로 기울기까지 해. 말을 하지만 ‘말무늬(말시늉)’ 같고, 글을 쓰지만 글무늬(글시늉) 같아. 일을 한다지만 일무늬(일시늉) 같기까지 하고, 놀거나 노래를 한다지만 놀이무늬(놀이시늉)에 노래무늬(노래시늉) 같구나. 높거나 낮은 마을이 없어. 좋거나 나쁜 나라가 없어. 훌륭하거나 모자란 일이 없어. 잘나거나 못난 사람이 없지. 스스로 사람이라는 빛을 바라보면서 알아보려고 할 적에 천천히 잠들다가 문득 눈뜨고서 깨어나. 잠들어서 생각할 틈이 있어야 하고, 눈뜨고서 둘레를 본 다음 온누리를 살필 틈이 있어야 해. 깨어난 뒤로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고서 길을 찾아내는 틈이 있어야 하고. 자, 한여름논을 보렴. 첫여름하고 어떻게 다를까? 늦여름하고 어떻게 다를까? 논에 벼만 있니? 논에 숱한 목숨붙이와 새가 어울려서 살아가니? 한여름 뙤약볕을 반기는 논을 네 마음에 담아 봐. 2026.7.23.나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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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구원



심지 않은 씨앗은 싹트지 않아. 심은 씨앗이기에 싹터. 심지 않은 씨앗이 싹트기를 바라기에 헛물을 켜. 어떻게 심을는지 모르는 채 아무렇게나 심으니, 아예 씨앗이 죽기까지 해. 네(내)가 바라보는 곳에 네(내)가 있어. 네(내)가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면 네(내)가 있을 일이 없어. 어떻게 가든 누구나 ‘먼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고, ‘이제 어디로 갈는지’ 그려서 똑똑히 알아야 하지. 모르는 곳에 왜 가겠어? ‘어디’를 그리지 않았으니까 ‘아무곳’이나 가게 마련이고, ‘아무곳’이란 뭔지 모르는 투성이일 테지. 낯설기에 모르지 않아. 낯설기에 차분히 둘러보면 하나씩 알아보면서 눈길을 틔울 수 있어. 처음이기에 모르거나 못 하지 않아. 씨앗을 심지 않은 마음이라서 모르거나 못 해. 씨앗을 심고서 차분히 돌보는 삶이기에, 처음이든 낯설든 어느덧 익숙하고, 바야흐로 씨앗이 싹터서 숲을 이루는 길에 이른단다. 누가 도울는지 생각하렴. 네(내)가 그리지 않은 사람은 도울 수 없어. 이웃손길을 바란다고 할 적에는, 이웃이 누구인지 그릴 노릇이고, ‘이웃이 펼 손길’도 낱낱이 그릴 노릇이야. 스스로 할 적에도 그리고, 이웃을 바랄 적에도 그리지. 비를 그리지 않는 곳에 비가 내릴 수 없어. 비를 반기지 않는 곳에 비가 알맞게 오는 일이 없어. 비를 노래하지 않으니 비없는 날인 가뭄일 테고, 애써 내리는 비를 사랑하지 않으니 벼락비가 세차게 퍼부으면서 휩쓸고 말아. 돕는 빛은 늘 모든 사람 눈망울에서 비롯해. 누가 어떻게 언제 왜 어디에서 도울는지 너(나) 스스로 그릴 노릇이야. ‘하늘’이 돕기를 바라면, 네(내)가 스스로 “하늘이 되”면 돼. ‘너(나)’가 스스로 하늘이 되지 않으면, 너는 하늘빛(하늘도움)을 받을 수 없어. 너(나)는 여태 늘 ‘빛’이었고, 오늘도 빛이며, 앞으로도 빛이야. 모든 사람이 저마다 빛인 줄 알아볼 적에 서로 돕는단다. 2026.7.28.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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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상명하복



스스로 멍청하다고 밝히는 터라 ‘위아래’로 사람을 갈라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른다는 ‘상명하복’을 해. 시키는 대로 따랐으니, “난 아무 잘못이 없다” 하고 핑계를 대는 셈이지. 그저 “주어진 대로 일을 했”으니까 저한테 화살을 돌리지 말라는 셈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누가 위에서 시켰기에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면, “내 넋·생각·뜻·길·빛”은 터럭만큼도 없는 얼거리이니, 그저 ‘허수아비’인 멍청한 짓이란다. 허수아비인 심부름꾼이 수두룩하기에 윗자리에 있는 놈은 아무렇지 않게 멍청한 짓을 일삼아. 아니, ‘일시늉’이라고 해야겠지. 언제나 ‘심부름’만으로 시키고 따르기에, ‘지음’도 ‘빚음’도 ‘가꿈’도 없이 쳇바퀴를 떠도는 멍청한 굴레이지. 누가 위에서 시키기에 사람끼리도 죽여. 누가 위에서 시키기에 이웃집도 숲도 멧골도 들판도 모조리 밀어내며 망가뜨려. 누가 위에서 시키면서 돈을 선뜻 주니까, 넙죽 받아서 챙기며 ‘죽음’이라는 벼랑끝으로 내달려.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림’을 가르치려고 할 적에는, ‘소꿉’을 가볍게 빗대어 작게 ‘심부름’을 맡겨. 아이는 아직 스스로 일거리를 그리고 짓고 맡아서 펴는 몸은 아니거든. 살림살이를 하나씩 익숙하게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스스로 눈떠서 일어나라는 뜻으로 맡기는 ‘심부림’일 때에만 ‘일’과 ‘살림’으로 피어날 수 있어. 위아래로 뚝 끊어서 시키고 따르는 ‘상명하복’이라면, 시키는 놈도 따르는 놈도 철없이 뒹굴면서 나란히 갇히고 가두어 죽어가는 짓이야. 몸뚱이만 크고 철은 안 들기에 얼뜬 상명하복에 얽매여서 늙어가. 2026.7.25.흙.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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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봉인



함부로 꺼내거나 열지 말라면서 쪽종이를 붙여. ‘봉인’이라고도 하는데, 뜯을 수 없을 만큼 동여매는 일이 아니야. 그저 얇고 가볍고 작은 종이를 대고는, 손빛으로 가만히 눌러서 “그날 그곳 그사람”만 꺼내거나 열라고 두는 일이지. 그날이 아니고 그곳이 아니며 그사람이 아닌데, 함부로 다가와서 북 뜯어버려서 여는 사람이 꼭 있더구나. 다룰 줄 모르고, 쓸 줄 모르고, 할 줄 모르고, 그릴 줄 모르는데, 시샘과 배짱으로 부러워한 나머지, 마구 손대는 짓이라고 할 수 있어. “그날 그곳 그사람”이 아니면서 봉인을 떼거나 뜯거나 열면, 이런 짓을 한 사람은 그만 불타버리고 말아. 스스로 꿈을 그리지 않기에 봉인을 건드려. 제몫이 아니어도 노리느라 봉인을 뜯어서 들여다보려고 해. 속에 깃든 숨빛으로 무엇을 펴거나 할는지 모르면서 무턱대고 연 탓에, 호되게 일을 치르지. 모름지기 모든 봉인이 쇠사슬이나 말뚝이 아닌 쪽종이 하나인 뜻을 읽어야 한단다. 네 몸이 다쳐서 피가 날 적에 딱지가 생기면서 다친 데가 아물어. 딱지는 두껍거나 무겁거나 단단하지 않아. 마치 쪽종이마냥 가볍고 작고 얇지. 딱지는 그저 그냥 두면 돼. 이제 다 낫고 새살이 돋으면, 딱지는 알아서 떨어져. 봉인도 이와 같아. 넘보거나 지켜볼 까닭이 없어. 제때에 이르면 제풀에 스러지는 쪽종이인 봉인이란다. 너는 네가 뜻을 펼쳐서 날아오를 때에 이르면, 스스로 눈을 반짝이면서 깨어나고 일어나서 빙그레 웃는단다. 일찍 깨워야 하지 않아. 늦게 깨어나지 않아. 걱정도 조바심도 아닌, 하루하루 걸어가듯 온노래로 살아가면 꺼풀은 이내 사라진단다. 2026.7.21.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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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법적인 문제



사람이 “사람으로 가는 길”을 잊을 적에 ‘틀(법)’을 세워. 나부터 사람답지 않게 걸어가기에, 너도 나랑 나란히 사람답지 않게 뒹굴기를 바라느라 ‘틀’을 따지고 짚고 들춰. ‘틀’이 있으면 ‘틀리’느냐 안 틀리느냐 따지면서 모두 나란히 “틀에 박힌 늪”으로 잠기지. 이때에는 ‘삶’이 없어. ‘틀’이 먼저이고 모두이기에, 누구나 “틀에 맞춰”야 “틀리지 않은 모습”이고, 바야흐로 모든 다른 사람을 똑같이 길들인단다. 공장은 틀(기계)을 부려서 똑같이 찍는 곳이야. ‘공산품’은 “틀에 맞춘 모습”이지. 사람은 틀로 찍어낼 수 없이 다 다른 숨결인데, 모두 다른 사람한테서 숨결을 안 읽으면서 “너는 왜 틀려!” 하고 따지면 어찌 될까? 틀에 맞춰야 ‘맞다(안 틀리다)’고 여기기에, 머리카락도 얼굴도 말씨도 글씨도 걸음새도 몸짓도 일거리도 집도 밥도 옷도 그저 ‘틀’에 맞춰서 똑같아야 한다고 여기지. 머리에 담은 조각(지식)까지 모든 사람이 똑같아야 한다는 틀(법·제도·규칙·법칙·추천·시스템·교육)이야. 그래서 예부터 늘 다르게 자란 논밭살림을 모조리 똑같이 짜맞추는(품종개량) 나라란다. 하나라도 다르면 안 된다고 여기거든. 하나라도 다르면 “말을 안 들으”니까.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 ‘틀박이(법치국가)’라서, 언제나 “위에서 시키는 말”을 틀로 단단히 박고서, 사람을 톱니바퀴마냥 윗것·아랫것으로 갈라서 휘두르지. 어떤 풀꽃나무도 ‘틀’에 따라서 싹트거나 자라지 않아. 얼뜬 심부름꾼은 가지치기를 일삼는데, 아무리 싹뚝 치고 잘라도 풀꽃나무는 틀(법)이 아니라 틈(자유)을 내면서 날개를 펴. 틀을 따르거나 지키기에 착하거나 훌륭하지 않아. 사람이라는 숨빛으로 틈을 내면서 씨앗을 싹틔우는 눈길이라서 사랑스러워. 사랑스러운 사람이어야 착하고 참하단다. 2026.7.10.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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