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2024.7.27. 진주는 진주를



  나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기는 하지만, “언어적 가치”를 지키는 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말빛’을 쓰다듬고서 스스로 ‘말씨’를 심으면서 이웃이랑 함께 ‘말결’을 사랑하는 살림길을 바라볼 뿐이다. 마을(서울이건 시골이건)을 ‘지킨다’고 할 적에는, 꼭 그곳에 사람이 우글우글하면서 장사가 잘 되어야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문화적 가치”라는 말은 “경제적 가치”라는 말처럼 붕뜬 허울일 텐데 싶다. 〈진주의 진주〉라는 영화를 찍으신 분이 “못 찍지”는 않았겠지만, 〈진주의 진주〉가 아닌 〈진주는 진주를〉이나 〈진주가 진주로〉처럼, 토씨 하나만 바꾸면서 바라보는 눈길을 열어 보려고 했다면, 아무래도 진주를 진주스러우면서 바다구슬(진주)로 밝히는 빛을 새롭게 일굴 만했으리라 느낀다.


  ‘문화예술’이란 ‘음악·문학·공연·회화·영상’이라는 겉모습이 아닌, ‘사람이 서로 사랑으로 짓는 푸른 살림살이’에서 비롯한다고 느낀다. “삼각지다방이라는 이름을 지켜야 할 까닭이 없는” 줄 알아야, 그곳 삼각지다방을 지킬 수 있다는 대목을, 감독도 배우도 시나리오작가도 놓치거나 안 본 듯싶다. 이를테면, ‘삼각지식당’이나 ‘삼각지도서관’이나 ‘삼각지책방’이나 ‘삼각지극장’이나 ‘삼각지어린이집’이나 ……, 그곳을 새롭게 가꾸어서 ‘찻집’ 노릇은 한켠에서 하되 그곳 속빛을 확 바꾸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데에 마음을 기울이면 저절로 되살림도 지킴도 돌봄도 이룰 만하겠지.


  목소리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지킬 뿐 아니라, 지킬 수 있는 길까지 그르치기 쉽다. 몸으로 움직이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지키고 돌보고 가꾸고 일으키고 나누면서 사랑한다. ‘죽어가’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지켜야 하지 않는다. ‘추억·낭만’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없어지면 안 될까? 아니다. 삶과 살림과 사랑을 숲빛으로 품은 터전을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주면서 누릴 빛씨앗 한 톨이 있을 때에 비로소 그곳이 스스로 이어갈 수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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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일하는 책



일하러 가면, 일할 곳 둘레에 책집이 있는지부터 살핀다. 일하기 앞서하고 일마치고서 꼬박꼬박 책집마실을 한다.


바깥일을 받아들일 적에는 바깥일보다는 바깥일 핑계로 책집마실을 누리려는 속뜻이다. 그러나 책집이 없거나 사라진 고장이나 마을이 수두룩하다.


책집이 사라지는 곳에서는 포근히 나누는 손길과 눈길이 나란히 사라진다고 느낀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고 높다랗게 솟는 아파트가 넘실대는 곳에 살림(문화)이 있는가? 살림 잊은 죽음(부동산)만 있지 않은가?


2024년 광주책집에서 1969년 부산책집 자취를 보았다. 두 고장을 오가며 어느 책을 읽은 분은 어떤 발걸음으로 이웃나라 책을 폈을까?


2024년 나는 2079년 뒷사람한테 어떤 이야기와 넋을 글씨와 말씨로 물려줄까? 오늘로 온 어제를 읽으면서, 오늘이 나아갈 모레를 그린다. 책으로 채운 등짐으로도 모자라서, 가슴팍에 책더미를 하나 안는다.


땡볕이 반갑다. 이 한여름에 나락이 잘 익고, 포도가 여물고, 감알이 굵고, 온낟알과 온열매가 기쁘게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를 느낀다.


뙤약볕 내리쪼이는 하얀길을 성큼성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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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합니다

나는 노래한다. 나는 시를 안 쓴다. 나는 문학을 안 한다. 나는 등단을 안 한다. 나는 다른 시인을 안 만나고 문단 이너서클도 아웃서클도 다 멀리한다.

나는 놀이한다. 아이한테 놀이를 안 가르친다. 나는 그저 사람이니까 놀이를 하고, 놀이를 하니까 노래한다. 노을처럼 노래하고, 너울처럼 놀이한다.

나는 울다가 웃는다. 나는 우레처럼 울고, 우듬지에 둥지를 지어서 사랑으로 낳은 알을 품고 돌보아 활활 활개치는 한새처럼 울고 웃는다.

나는 마신다. 바람을, 빗물을, 샘물을, 냇물을, 골짝물을, 눈물을 마신다. 두 손을 모두어 한마음으로 살아가며 살 림할 길을 찾고 나누며 빛살을 마신다.

나는 걷는다. 책짐을 휘청휘청할 만큼 질끈 메고서 걷는다. 아기를 안고 업고서 걷다가 이제는 아이랑 나란히 수다꽃을 누리며 걷는데, 걷다가 자꾸 웃음이 새어나오다가 와하하 터진다.

나는 그린다. 별을 그린다. 눈을 감고서 셋쨋눈은 틔워서, 이 마음이 밭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꿈을 그린다.

나는 본다. 애벌레가 잎을 갉는 하루를 본다. 애벌레가 허물벗기를 하며 우는 몸짓을 본다. 이러다가 고치를 틀며 또 우는 모습을 본다. 이제 깊이 잠든 고치를 보고, 보름이 지나서 나비로 날개돋이를 한 너를 본다.

아. 너는 나비였구나. 난 애벌레인가? 책벌레인가? 아니면 밥벌레인가?

나는 낱말책을 쓴다. 나는 우리말꽃이라고 이름을 새로 붙인 국어사전을 쓴다. 나한테 이웃이 있다면, 내가 쓴 모든 책이, 알고 보면 다 다른 사전인 줄 눈치챘겠지.

사전이란, 잘 팔릴 책이 아닌, 제대로 읽혀서, 사전을 읽는 모든 이가 나비로 거듭나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오솔길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사전이 아직 없구나. 글을 쓰는 이웃도 잘 안 보이는구나. 돈을 벌고 이름을 벌고 힘을 벌려고 글을 쓰는 무리가 신문과 잡지와 문단과 학교와 정부와 온곳에 또아리를 틀고서 스스로 죽어가는구나.

나는 눈물을 거둔다. 여름밤에 잠든 아이 곁에 서서 살살 부채질을 하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나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안 쓰고, 늘 뙤약볕길을 천천히 걷는다. 나는 왼발 오른발 나란히 걷는다. 나는 왼손 오른손 고루 쓴다.

왼날개로만 나는 새는 없다. 오른날개로만 나는 새도 없다. 모든 아이는 온날개로 태어나는데, 둘레에서는 자꾸 아이들을 왼이나 오른으로 치달리도록 몰아세우네. 온나래로 태어난 아이들이 울다가 그만 다들 외날개로 바뀌어 아무도 못 날고 아파서 또 우네.

나는 외날개 아닌 온날개로 살림하는 이 가시밭길에서 멧딸기를 훑는 작은 이슬받이로 나아가면서, 벌레랑 새랑 숲짐승한테 한 톨씩 건네고,  아이들한테도 한 톨씩 건네는 하루를 짓는다.

이제 오늘을 새로 걸어가야겠다. 
ㅅㄴㄹ

#숲노래 #최종규 #우리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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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버스가 제때 오는 일이란 없다만, 오늘 07:05 버스는 07:26에 비로소 들어온다. 고흥읍에서 07:43 광주 가는 버스를 놓친다. 08:23 버스를 기다린다. 멀뚱히 기다리다가 놓쳐야 했다면, 옆마을로 걸어가면 되었을 텐데 싶다.

버스일꾼도 늦을 날이 있겠지. 그러나 늘 어기고 언제나 어긋나는 버릇을 안 고친다면, 군수나 공무원이나 정치꾼은 군내버스를 아예 안 타느라 모른다면, 이런 시골은 곧 사라질 만하다. 고흥군은 버스나루에 "금연. 과태료 10만 원"이라 나붙이기는 하되 버스일꾼부터 뻑뻑 담배를 태우고, 늙수그레한 이들은 가래침과 담배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낸다.

왜 시골아이가 시골버스를 멀리하고 다들 일찌감치 떠나고, 20살 뒤에는 이 시골을 싹 잊고서 서울이나 큰고장으로 가버리겠는가. 서울이라고 해서 "어른다운 어른"이 있거나 많지는 않겠으나, 시골은 참말로 어디에서 어른스러운 빛을 찾아야 할는지 까마득하다. 어린이가 보고 배울 어른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어른인가? 나이만 쌓은 허수아비는 아닌가?

흔들리는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나오는 아침길에, 서서 노래 석 자락을 썼다. 글씨가 춤춘다. 아니, 흔들리는가. 아니, 글씨가 우는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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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읽는가 하고 물으면, 배우려고 읽는다고 들려준다. 나이가 몇 살인데 뭘 또 배우느냐고 물으면, 이 몸을 입은 동안에는 날마다 배우며 스스로 잎빛과 꽃빛과 숲빛과 바람빛과 바다빛과 흙빛과 샘빛처럼 느끼고 누리며 흐르려고 배운다고 들려준다. 배우는 사람이 어른이요, 가르치는 사람은 어린이라고 느낀다. 어른은 어린이한테서 삶을 배우기에 스스로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을 심고 나눈다고 느낀다. 어린이는 어른한테 삶을 가르치기에, 어른이 저마다 사랑을 밝며서 살림을 짓는 길을 지켜보면서 기뻐 웃고 노래하고 놀이하는구나 싶다.

왜 쓰는가 하고 물으면, 기쁘고 고맙게 배우기에 내가 스스로 갈고닦으며 일군 열매를 기꺼이 스스럼없이 글로 옮긴다. 언제까지 쓰겠느냐고 굳이 까칠하게 쓸 까닭이 있느냐고 물으면, 서로 같이 배우자는 뜻으로 쓸 뿐이요, 꺼풀이나 허울을 벗겨서 속내와 민낯을 쓸 뿐이라고 들려준다. 어른이라면 수수하게 쓴다. 어린이라면 스스로 슥슥 쓴다. 어른이라면 치레하지 않고, 어린이라면 감추거나 숨기지 않는다.

우리는 뭘 하는 어떤 삶인 사람으로서 사랑을 바라볼 마음일까? 부산과 진주에서 나흘을 보내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면서 햇볕쬐기를 한다. 이제 졸립다.

ㅅㄴㄹ
#숲노래 #최종규 #고흥으로 #부산에서 #숲노래글쓰기 #숲노래책읽기 #아이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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