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사용설명서



모르는 분이 무척 많기도 한데, ‘두바퀴(자전거)’를 새로 사면, 두바퀴 손잡이에 대롱대롱 ‘길잡이글(사용설명서)’이 달린다. 그런데 두바퀴를 아이한테 새로 장만해 주든, 어른으로서 스스로 새로 장만하든, ‘두바퀴 길잡이글(자전거 사용설명서)’을 챙겨서 읽는 사람은 거의 1/1000이라고 한다. 어쩌면 1/2000이나 1/5000이라고까지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두바퀴집(자전거포) 일꾼은 으레 이 길잡이글을 처음부터 떼어서 버린다더라. 손님한테 챙겨 가서 읽어 보시라고 여쭈어도 하나같이 안 챙기고 안 읽는다고 한다.


‘두바퀴 길잡이글’을 읽은 아이어른과 안 읽은 아이어른은 엄청나게 다르다. ‘두바퀴 길잡이글’을 안 챙기고 안 읽는다면, ‘운전면허증을 안 따고서 자동차부터 사서 부릉부릉 몬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길잡이로 삼는 글인 사용설명서란 ‘입문서’나 ‘안내서’라는 뜻이고, 우리더러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이 삶을 즐기는 길을 들려줄게” 하고 풀어낸 줄거리라고 여길 만하다. 글쓰기(문학창작)나 책집지기라는 삶에 따로 틀(기준)이란 있을 까닭이 없지만, 옆에서 이 길을 나란히 걷는 ‘길동무’ 같은 ‘길잡이글’은 있게 마련이다. 구태여 서두를 까닭이 없고, 애써 조바심을 낼 까닭이 없이, 느긋이 넉넉히 둘레를 보는 마음을 스스로 가꾸는 작은길이자 작은글이 ‘길잡이글’이라고 느낀다.


나는 낱말책(사전)을 쓴다. 낱말책이 태어나기까지 꽤나 걸리지만 느긋이 찬찬히 북돋우고 여미고 가다듬는다. 낱말책이란, 글쓰기와 말하기와 삶짓기와 사랑하기라는 이 하루하루에 조촐하고 조그맣게 ‘길잡이글’이다. 이른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누구한테나 ‘길잡이글(사용설명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숱한 낱말책은 ‘길잡이글’이라기보다는 ‘굴레(강제·억압·표준·시험공부·학력·지식·서울화)’이기 일쑤이다. 말이 무엇이며 글이 무엇인지 먼저 차분히 짚고 읽어낸 뒤에라야 글쓰기도 말하기도 저마다 느긋이 즐겁게 펼 만하다. 학교를 오래 다니거나 인문강좌를 챙겨서 듣거나 책을 잔뜩 읽더라도 글쓰기나 말하기를 잘 하지 않는다.


두바퀴 길잡이책을 달포쯤 들여서 느긋이 읽고 나서 두바퀴를 달리는 이웃님을 기다린다. ‘숲노래 낱말책’을 한두 해나 서너 해나 너덧 해에 걸쳐서 천천히 읽으면서 말빛을 느긋이 헤아리고 살찌우면서 기쁘게 글빛과 말씨를 심는 이웃님을 기다린다. ‘길잡이’는 잡아끌거나 잡아당기지 않는다. 길잡이는 언제나 우리 곁에 가만히 서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며 지켜보는 동무요 이웃이다. 2025.8.26.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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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커피가 싫어



  어제(2025.8.14.) 낮에 두바퀴를 달려서 논둑길을 가르는데, 고흥제비 100마리 남짓 날개춤을 베풀었다. “엄청 줄었구나!”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올가을 고이 돌아가서 따스히 누리고서 새해에 보자!” 하고 외친다. 손전화를 켜서 담으려 하니 이동안 모두 옆논 하늘로 사라진다.


  오늘 고흥서 부산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서 쉼터를 거치는데, 버스지기님이 거듭거듭 말씀한다. “제발 버스에서 커피 다 마시고 내려주세요. 버스가 흔들릴 적에 미끄러져서 흘리면 버스 바닥에 냄새가 배고 힘듭니다. 기사들은 커피 들고 타는 분들을 보면 노이로제에 걸려요.” 그러고 보니 부산 시내버스에서도 버스지기님이 커피잔 들고 타는 손님을 다 막더라. 곰곰이 보면, 시외버스는 덜 흔들리지만 시내버스는 서서갈 수 있고 훨씬 흔들린다.


  첫가을로 넘어서려는 흰구름은 아직 몽글몽글하다. 늦장마에 적잖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나라지기는 멀쩡히 논다. ‘싸이’란 사람까지 부르며 신난 듯싶다. ‘무안공항 떼죽음(대참사)’은 아직까지 특검이건 진상조사를 할 낌새이건 없다. 이렇게 뭉개지만 우리 스스로 목소리조차 안 낸다. 떼죽음을 놓고도 갈라치기를 하는 벼슬자리라면 ‘민주’란 그저 허울이다. 깃발만 꽂으면 그냥 뽑히는 전라도는 ‘경선 여론조사’를 앞두고서 ‘당원등록’이 엄청 늘어난다.


  버스지기님은 졸음과 잠을 쫓으려고 커피를 노상 달고 사는데 커피앓이를 할 만큼 숱한 젊은분이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어지럽힌다. 늙은 아재는 버스나루를 꽁초나라로 더럽히고 젊은분은 커피쏟기를 선보이고, 할매는 쉼터에서 너무 느긋하고, 여러모로 보면 재미난 별이다. 2025.8.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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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무궁화



전남 순천에 닿는다. 시외버스를 내려서 시내버스를 갈아탄다. 기차나루에 닿으니 새마을은 바로 지나간다. 40분 뒤에 오는 무궁화를 기다린다. 순천서 전주 가는 기찻길은 무엇을 타도 똑같다. 거의 모든 곳에 서거든. 이 고장에서는 모든 곳을 구경터(관광지)로 삼는다. 그러려니 싶지만, 곰곰이 보면 고속철도나 새마을이 꼭 서야 한다면서 뒷싸움이 대단하다. 돈 앞에서는 허벌나게 피튀기는 고장이랄까. “우리는 시골잉께 기차는 시끄러버 치우쇼.” 하고 내치는 고장이 없는 전라도이다.


무궁화는 칸이 딱 둘이다. 손님을 안 받겠거나 고속철도로 밀어넣겠다는 뜻이다. 참 바보스럽다. 이렇게 돈바라기로 찌들어야겠는가.


더 빨리 달리는 두바퀴(자전거)가 안 나쁘되, 나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알뜰한 두바퀴를 몰면서 산다. 내가 쓰는 찰칵이도 붓도 책도 모조리 물려줄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 돈? 아파트? 자가용? 기차역? 고속도로? 공장? 농약? 주식? 벼슬? 졸업장?


내리사랑 치사랑과 같은 오래말처럼, 온누리 모든 어른이 참으로 어른으로서 어진씨앗을 물려주기를 빈다. 손길과 발길과 마음길과 숨길과 숲길과 멧길과 바닷길과 눈길과 살림길이면 넉넉하다. 2025.9.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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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공부란 벼슬자리 : 글밥 먹는 이는 으레 ‘공부’라는 한자말을 즐긴다. 손수 일하고 살림짓는 이는 늘 ‘배우다’라는 쉬운 우리말을 쓴다. 지난날에는 아이들 누구나 “공부란 골아프게 외우며 힘들다”고 느꼈는데 “배운다면 즐겁고 멋지고 새롭고 신난다”고 외치곤 했다. 이제 요즈음 아이들은 ‘공부’하고 ‘배우다’가 왜 어떻게 다른지 까맣게 모른다고 느낀다. 요즈음 어른들도 두 낱말을 못 가리기 일쑤이다. 책이나 학교가 없더라도 ‘집·밥·옷·말’ 넷을 스스로 가꾸고 지으며 살림하던 예전 시골사람은 “아무나 못 가르치지만 누구나 배우는” 줄 몸마음으로 알았다. 한마디로, 공부란 벼슬자리요 벼슬따기요 벼슬바라기이다. 배우기란 사랑이고 살림이고 숲인 삶이다. 그래서 벼슬이 아닌 서로 눈빛을 마주하며 오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빈다. 함께 배우기를 꿈꾼다. 공부로 욱여넣는 학교·졸업장·자격증이 아니라, 온몸으로 들숲메바다를 품고서 온마음으로 풀꽃나무랑 노래하는 이웃님을 그린다. 2025.8.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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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터지다 : 몰라서 속터지고 머리터진다고 말하지만, 속도 머리도 펑펑 꽝꽝 터진 채 멍하니 일손을 놓고서 멈추기 때문에, 손놓고서 속과 머리가 텅 빈 그때에, 비로소 빛이 우리 속과 머리로 새롭게 스미면서 알아차린다. 속터지는 말과 머리터지는 일은 하나도 안 나쁘다. 우리가 꼭 거쳐야 할 ‘즐거운 가시밭길’이다. 머리가 터져 주어야지, 이제까지 안 멈추던 바쁜 일손을 비로소 멈추게 마련이고, 이때부터 새머리(새롭게 틔운 머리)로 나아가려고 스스로 낸 틈에 새롭게 받아들일 이야기가 흘러들 수 있다. 여태까찌 똑같은 틀로 마냥 이은 삶을 멈추고 끝내고 터뜨릴 때라야, 빈손에 빈몸으로 처음부터 하나씩 새길을 여미는 마음으로 건너간다. 고개를 건너고 고비를 넘이려면 누구나 펑펑 꽝꽝 터져야 한다. 그런데 속터지거나 머리터기를 싫어한다면, 속터질 일을 살피지 않거나 머리터질 일을 안 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그대로 고이고 갇혀서 썩다가 죽는다. 2005.4.2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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