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어제 했으니 : 어제 했으니 오늘은 잊거나 미룬다면, 오늘은 ‘죽은날’이 되기를 바라는 셈일까. 어제 하던 길을 오늘은 하지 않는다면, 오늘은 쳇바퀴에 뒷걸음이 되기를 꿈꾸는 판일까.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루인 줄 스스로 알아차리면서 날마다 번쩍 눈을 뜨는 기쁨을 누린 그때부터 신나게 새로 하면 될 뿐이라는 말이다. 어제 한 멋진 길을 오늘은 새롭게, 어제 지은 아름다운 길을 오늘은 사랑스럽게, 어제 걸은 즐거운 길을 오늘은 휘파람을 불면서 늘 처음이라는 마음이 되어 하면 넉넉하다. 1993.1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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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 “난 참 자유롭게 사는데?” 하고 말하는 사람이 조용히 있도록,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입을 싹 다물도록 할 만큼 ‘깨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이때에 “난 참 자유롭게 사는데?” 하고 말하던 사람은 그이가 입으로는 ‘자유롭게’를 밝히고 다녔으나 막상 제대로 자유로운 적이 없는 줄, 홀가분한 길이 아니라 ‘남이 보기에 이녁이 나아 보이도록 꾸민 몸짓’이었네 하고 느끼기 마련이다. 자, 이런 판이 벌어진다면, 언제나 두 가지 다음 길이 드러난다. 첫째, 이제는 입으로 “난 참 자유롭게 사는데?” 하는 말을 더는 읊지 않고서 참다이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길을 간다. 둘째, 앞으로도 입으로 “난 참 자유롭게 사는데?” 하는 말을 끝없이 읊을 마음으로 저 ‘깨면’서 사는 사람을 시샘하거나 미워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려고 한다. ‘자유롭게’ 한 가지를 보기로 들었는데, 이 낱말을 ‘진보’라든지 ‘개혁’이라든지 ‘평화’라든지 ‘평등’이라든지 ‘친환경’이란 낱말로 바꾸어 놓고 보아도 매한가지이다. 2001.7.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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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리다 : 처음 말이 태어날 적에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흘렀을 말일 텐데, 어느새 많이 뒤바뀐다. 왜 뒤바뀌거나 뒤틀리는가? 말이 사람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빛인 줄 알기에, 사람들이 이 빛을 못 누리거나 등돌리거나 저버리거나 몇몇이 거머쥔다면, ‘말빛을 잊거나 잃은 사람’을 ‘종(노예)으로 부릴 수 있는’ 줄까지 알아챈 이들이 있기에 그렇다. 총칼로 사람을 윽박지르는 이들이 왜 ‘말’을 마구 뒤흔들까? 또 사람들이 막말을 일삼거나 아무 말이나 하는 판을 꾸밀까? 슬기롭거나 어질거나 참한 말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스스로 깨어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아름답고 사랑스레 깨어날 적에는, 그 어떤 총칼도 덧없는 노릇이 된다. 말빛을 잊거나 잃기에 종살이에 허덕인다면, 이들 종은 그저 쳇바퀴에 스스로 갇힌 채 총칼질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맴돌기 쉽다. 말빛을 바로잡아서 환하게 퍼뜨리는 길이란, 총칼질을 이 땅에서 걷어내는 춤사위이다. 그렇다고 ‘바른말 고운말’을 써야 좋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쓸 말은 ‘맞춤법 띄어쓰기’도 아니자만 ‘바른말 고운말’도 아니다. 오직 ‘아름말 사랑말 슬기말 참말 꽃말’이다.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날 아름말을, 스스로 사랑이 샘솟을 사랑말을, 스스로 슬기롭게 살림할 슬기말을, 스스로 참답게 생각하며 꿈꿀 참말을, 스스로 꽃이 되어 어깨동무할 꽃말을 쓰면 된다. 뒤바뀌거나 뒤틀린 결을 하나씩 바로잡으려고 새말을 새로운 삶터인 숲에서 짓는다. 2019.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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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놀이 : 으레 틈이 없어서 이런 놀이를 하기 어렵다고 여기지만, 서울 한복판에서도 마음으로 잠자리라든지 새를 부르면 어느새 곁으로 찾아와서 어깨에 내려앉는다든지 손바닥에 앉힐 수 있다. 다만 ‘놀이’로만 불러야지, ‘시험’을 한다든지 ‘자랑’을 한다든지 하려는 생각이 아주 터럭만큼이라도 있으면 이 아이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손바닥에 잠자리나 나비나 벌이나 풀벌레나 새를 앉히는 놀이란 무엇일까. 마치 흙물이 가라앉듯 몸이며 마음을 고요하게 두면, 어느새 어느 아이라도 우리 머리에 어깨에 팔에 손가락에, 때로는 마당에 가만히 엎드린 발가락에 내려앉는다. 이때에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무엇을 보았니?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니?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니?” 2019.9.2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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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쟁이였어 : 말을 더듬는 어린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나한테 나빴을까? 잘 모르겠다. 하나는 알 수 있으니, 말더듬이로 살아온 터라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마을 할아버지가 천자문을 가르쳐 주고 난 뒤에, 내가 더듬는 말씨는 거의 한자말인 줄 알았고, 쉬운 한국말은 말더듬이도 소리를 내기 쉬운 줄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버스도 사람도 차도 거의 없는 새로 세우는 아파트마을로 집을 옮긴 바람에 날마다 네 시간 남짓 이 호젓한 길을 걸으면서 말더듬이로도 소리가 새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짧은 혀에 더듬는 내 나름대로 소리를 알맞게 내거나 조곤조곤 말하는 길을 스스로 지었다. 내가 혀도 안 짧고 더듬쟁이가 아니었으면 어떤 길이었을까? 아마 나는 말 한 마디나 글 한 줄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어린 나날을 살았을 테고, 말더듬으로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을 받지 않았을 테며, 이렇게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동무나 어른들이 얼마나 한 아이를 들볶을 수 있는지 몰랐을 테며, 그 가시밭길을 견디거나 떨치는 길을 스스로 찾거나 알아내지 않았을 터인데다가, 한국말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만하지 싶다. 나쁘거나 좋은 일은 없지 싶다. 그저 바람처럼 흐르고 물결처럼 지나간다. 2019.10.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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