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돌아가다 : 모든 사랑은 사랑을 편 사람한테 돌아간다. 모든 막짓은 막짓을 편 사람한테 돌아간다. 사랑을 심었으니 사랑이 돌아온다. 막짓을 심었으니 막짓이 돌아온다. 사랑이란 ‘끼리질’도 ‘주례사 서평’도 ‘제 식구 감싸기’도 아니다. 끼리질이나 주례사 서평이나 제 식구 감싸기를 ‘사랑이란 이름’을 내세워서 하더라도, 조금도 사랑이 아닌 끼리질이나 주례사 서평이나 제 식구 감싸기일 뿐이니, 이런 모습으로 그대한테 돌아간다.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참사랑이 되려는가? 스스로 참빛이 되려는가? 스스로 참넋이 되는 참사람으로서 참글을 쓰고 참말을 하면서 참삶을 지으려는가? 1994.5.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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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무렵, 꽤나 재미난(?) 일을 겪으며 이러한 생각을 아로새겼고, 이 생각은 2020년 11월이 되어도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왜 스스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옛말을 자꾸 잊을까? 언제나 ‘무슨무슨 빠’가 되면 스스로 망가진다. ‘빠’가 아닌 ‘사랑이’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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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2012년 올해책, 현각, 풀소유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느라 온갖 책을 다 읽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쓰레기책’으로 보이는 책은 차마 읽지 못한다. 우리말꽃은 왼켠도 오른켠도 아니요, 가난이나 가멸이를 가릴 까닭은 없지만, 겉치레나 겉발림으로 돈벌이·이름팔이·힘꾼에 치우친 이들이 허울좋게 내놓은 책까지 읽고 싶지는 않다. 그런 책이 아니어도 읽고픈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며, 우리말꽃에 이바지하도록 보기글이나 낱말을 얻을 책은 수두룩하다.


2020년 11월 15일, ‘그동안 잘나가던 혜민’이란 중을 놓고서 말이 불거지지 싶다. 첫단추는 ‘현각’ 스님이 꿰었지 싶다. 한동안 잊고 지낸 이름이 떠올랐다. 현각 스님이 써낸 《만행》이란 책이 있는데, 펴낸곳에서 너무 장삿속이 드러나게 사진을 찍고 꾸며서 하나도 안 내켰고, 안 쳐다보았다.


1999년 그때에 둘레에서 나더러 “아니 그 좋은 책을 자네는 왜 안 읽나?” 하고 묻기에 “펴낸곳(출판사) 돈셈이 너무 속보여서 거들떠보고 싶지 않아요. 그 책이 아니어도 아름책은 많으니 어르신은 그냥 그 책 보셔요.” 하고 심드렁히, 아니 좀 짜증을 내며 대꾸했다. 현각 스님 책을 왜 안 읽느냐고 묻는 데에서 안 그치고 “내가 사줄게, 사줄 테니 읽어 봐.” 하고 묻는 이웃님도 많았다. “펴낸곳을 조그마한 데로 옮기면 생각해 볼게요. 책낯에서 얼굴을 빼고, 아주 수수하고 작게 꾸미면 읽을게요. 이렇게 돈을 밝히는 펴낸곳에 조금도 제 손길을 보태고 싶지 않아요.” 하고 대꾸했다. 오래도록 이런 실랑이로 꽤 힘들었다.


이러다가 현각 스님 책은 판이 끊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이러고 잊었다. 2012년에 올해책으로 뽑히기도 한 ‘혜민 중’ 책을 놓고도 둘레에서 마치 치근덕거리듯 읽으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고, 책집마실을 하면 으레 보여서 거북했다. 척 보아도 장사꾼 냄새가 나지 않는가? 장사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뒷주머니를 꿰차는 돈벌레 냄새가 나지 않는가? ‘벌레’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돈에 미친 사람들이 ‘벌레’란 이름이 얕보이도록 막짓을 일삼지 않는가?


저런 책을 사읽는 사람 마음을 알고 싶지 않을 뿐더러, 저런 책을 올해책으로 뽑는 누리책집(인터넷서점)이나 글꾼(기자·전문가·지식인·학자·문인)이 모두 쓰레기로 보였다. 그렇게 올해책으로 삼을 책이 없던가? 나는 현각 스님이 쓴 책을 1999년 어느 날 헌책집에서 서서 읽고 다시 꽂았다. 1999년 그무렵 현각 스님 책을 읽으며 ‘이분,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사랑하려고 할 듯하지만 마음이 크게 다쳐서 떠나겠는걸?’ 하고 느꼈다.


2020년 비로소 사람들한테 민낯이 드러난 혜민 중을 놓고는 ‘이놈, 아무래도 이제 돈벌이가 막힐 듯한데 슬슬 짐을 꾸려서 몇 해쯤 숨어살아야 하겠는걸?’ 하고 느낀다.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거나 힘을 누린대서 잘못이 될 턱이 없다. 돈·이름·힘으로 숲을 가꾸고 스스로 숲이 되면서, 헤매고 아픈 이웃을 숲으로 이끌어서 푸른숨결로 노래하고 춤추는 길을 함께 나아가면 된다.


혜민 중을 놓고서 ‘풀소유’를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분이 많은데, 부디 ‘full’이 아닌 ‘풀꽃나무’를 건사하기를 빈다. 잿빛덩어리 서울에서 떠나, 부탄이나 네팔 같은 깊디깊은 멧자락에 ‘숲절(산사)’을 지어서 조용히 참살길을 읊으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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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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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나를 맞춘다 : 가을로 접어들면 “춥지 않아요?” 하고 묻는 분이 많다. “왜 추워야 해요?” “네? 왜 추워야 하느냐고요, 아니 옷이 얇아 보이는데 안 추워요?” “그러니까 옷이 얇든 두껍든 왜 추워야 해요?” “…….” “저는 바람이랑 해랑 눈비를 넉넉히 맞아들이고 싶은 차림새로 다니려 해요. 그리고 겨울이라서 춥거나 여름이라서 덥지 않아요. 스스로 춥다고 여기는 마음이니 추위를 끌어당기고, 스스로 덥다고 여기는 생각이니 더위가 찾아들어요.” “…….” “저는 추워 할 까닭도 더워 할 까닭도 없어요. 그저 해를 먹고 바람을 마시면서 제 넋이 입은 옷인 이 살갗으로 날씨랑 철을 누리려고 해요. 제가 날씨한테 맞춰 가야 할 일이 없어요. 날씨가 저한테 맞춰야지요.” “어, 어…….” “날씨는 있잖아요, 우리가 티없이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는 대로 흘러요. 우리 마음에 티끌이 낀 채 날씨한테 대꾸해 봤자 날씨는 콧방귀만 뀌어요. 그렇지만 우리 마음이 고요하면서 환한 사랑빛이 되어 즐겁게 물결치면, 우리한테는 추위나 더위란 없이, 철 따라 다른 바람결에 햇볕에 빗물에 눈송이가 가만가만 찾아들어 우리 몸을 북돋아 준답니다.” 2020.10.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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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프레임 기득권 : 얼굴은 ‘진보’인 척하지만, 정작 ‘진보’가 아닌 이들이 많다. 겉으로는 ‘보수’로 보이지만, 막상 ‘보수’가 아닌 이들이 수두룩하다. 앞에서는 ‘진보’로 굴지만, 뒤에서는 ‘진보’가 아닌 이들이 넘친다. 말로는 ‘보수’라 외면서, 속으로는 ‘보수’가 아닌 이들이 물결친다. 곰곰이 보면 다들 ‘탈’을 쓴다. 입으로 읊는 모습하고 삶으로 가는 길이 다르다. 한마디로 하자면 이들은 죄 ‘진보도 보수도 아닌’ 한낱 ‘기득권’이더라. 힘·돈·이름을 거머쥐면서, 그들이 거머쥔 힘·돈·이름을 언제까지나 악착같이 붙들려고 ‘진보 프레임’이나 ‘보수 프레임’을 내걸 뿐이더라. 탈질을 해본들 달라지지 않는다. 입발림이나 겉발림으로는 그런 척 꾸미는 짓에서 맴돈다. 〈조선·중앙·동아〉라는 새뜸은 보수신문이 아닌 ‘보수 프레임 기득권’이요, 〈한겨레·경향·오마이〉라는 새뜸은 진보신문이 아닌 ‘진보 프레임 기득권’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들은 모두 기득권일 뿐이다. 겉모습만 보수인 척 진보인 척, 더구나 우리 스스로 그들을 보수인 듯 진보인 듯 바라볼 뿐이지. 2020.11.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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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쥐는 손길 : ‘책읽기’도 책읽기일 테지만 ‘책을 쥐는 손길’조차 배움터에서 못 배우기 일쑤이다. 책숲(도서관)이나 배움터에서 책읽기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기 앞서 ‘책을 쥐는 손길’부터 가르쳐야 할 텐데, 책숲도 배움터도 어린이·푸름이한테 ‘책을 어떻게 쥐고 다루고 만지는가’를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나 길잡이(교사) 가운데 쥠새(책 쥐는 손길)를 제대로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 그들도 열림배움터(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쥠새는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쥠새는 먼저 어버이한테서 배운다. 어버이가 집에서 책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지켜보고 고스란히 따라하지. 어버이가 집안살림을 어떻게 매만지느냐를 그대로 따라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책집으로 마실을 다닐 적에 책집지기한테서 쥠새를 배울 수 있다. 이때에는 어버이나 어른도 책집지기한테서 쥠새를 제대로 배울 노릇이다. 같이 배워야지. 생각해 보라. 밥지기(요리사)가 되려 할 적에 쥠새가 엉성하거나 엉터리라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준다. 주먹솜씨(무술)를 가르칠 적에도 몸차림이 엉성하거나 엉터리라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지. 그런데 책은 너무 마구 읽혀 버리고 만다. 책을 제대로 쥐지 않고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망가뜨리는 손길로 책을 많이 읽는들, 엉성하거나 엉터리인 손길에서 어떤 마음길로 이어질까? 왜 예부터 배울 적에는 반듯하게 앉으라 하겠는가? 왜 예부터 배우는 사람더러 등허리를 꼿꼿이 펴고 차분히 지켜보면서 마음을 모으라 하겠는가? 책은 누워서 읽어도 좋고, 국수를 삶아서 먹으며 읽어도 좋다만, 쥠새가 제대로 서지 않은 채 눕거나 국수먹기를 한다면 책이 망가지거나 다친다. 쥠새가 제대로 서면 칙칙폭폭(기차)을 타든 씽씽이(자동차)에서든 책을 고이 건사하면서 즐거이 읽을 만하다. 글씨쓰기를 할 적에 붓을 똑바로 힘을 실어 쥐도록 이끌듯, 책읽기를 할 적에도 책을 참하게 쥐고서 읽도록 먼저 이끌어야겠지. 섣불리 책을 펴서 줄거리부터 읽히지 말 노릇이다. 제대로 쥘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책이고 나발이고 없다. 1999.1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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