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9.17. 한 도시 한 책



  어느 해부터인가 온나라 여러 곳에서 “한 도시 한 책”을 뽑는다. 책읽기를 북돋우려는 뜻은 돋보인다고 여길 만하지만, “한 책”이라는 얼거리는 “또다른 자랑책(베스트셀러)”으로 기울고 만다. 어느 고을에서 “한 책”으로 삼을 만한 책은 누가 뽑을까? 더 많이 읽혀서 더 많이 안다고 여기는 책을 ‘인기투표’로 삼아도 어울릴까?


  나는 시골에서 살기에 곰곰이 생각한다. “한 시골 한 책”을 뽑을 수 있을까? 설마, 어떻게 어느 시골 한 곳에서 책 하나만 뽑을 수 있는가? 터무니없다. 봄을 알리는 산수유나무나 매화나무만 “우리 시골 한 나무”로 못 뽑는다. 모과나무도 감나무도 배나무도 유자나무도 석류나무도 뽕나무도 후박나무도 동박나무도 미루나무도 버드나무도 느티나무도 팽나무도 다 다르게 아름답고, 등나무에 벚나무에 버즘나무에 탱자나무에 초피나무를 잊을 수 없다.


  “한 고을 한 책”이건 “한 시골 한 책”이건, 자랑삼을 책을 안 뽑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아름책’을 알릴 만하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언제나 자리맡에 놓고서 두고두고 되읽을 만한 아름책만 가린다면 “한 책 뽑기”는 썩 나쁘다고 여길 수 없다.


  이른바 ‘도서관 십진분류표’를 내려놓고서, 그림책도 만화책도 사진책도 노래책도 아우르는 “우리 고을 아름책”을 헤아릴 줄 안다면, 이러한 책길은 북돋울 만하다고 본다. 그저 “한 책”이기만 해서는 여태 그래 왔듯, 몇몇 커다란 펴냄터에서 선보인 몇몇 이름난 글바치가 내놓은 이름책(유명도서)에 머물고 만다.


  “우리 고을 아름만화”라든지 “우리 고을 아름그림책”이라든지 “우리 고을 아름사진책”이라든지 “우리 고을 아름사전”을 살필 수 있을 때에 밑바닥부터 바뀌리라. “우리 고을 아름숲책”이라든지 “우리 고을 아름푸른책”에 “우리 고을 아름어린책”을 헤아릴 때에 비로소 어깨동무하는 책물결을 이룬다고 느낀다.


  “우리 고을 아름꾸러미”나 “우리 고을 아름보따리”라는 이름을 붙여서, 우리 고을을 사랑하는 누구나 누릴 만한 “아름책 즈믄가지(1000권)”를 헤아려도 알뜰하다. ‘추천도서·권장도서·명작·베스트·스테디’가 아닌, 오직 ‘아름다운·사랑스러운·빛나는’ 책을 살필 노릇이다. 쉰 해가 지나도 물려줄 아름책을 가리고, 두온해(200년)가 흘러도 남길 사랑책을 건사할 일이다.


ㄱ. 우리 고을 아름책 . 우리 고을 사랑책 . 우리 고을 숲책 . 우리 고을 푸른책

ㄴ. 우리 고을 즈믄책 . 우리 고을 온책

ㄷ. 우리 고을 아름꾸러미 . 우리 고을 아름보따리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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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8. 사전이라는 책



  이미 ‘낱말책·말꽃(사전·국어사전)’이라는 낱말은 풀이를 마쳤으나,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어서 뜻풀이를 보태려고 한다. 먼저 ‘낱말책·말꽃’이라 할 적에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길잡이책”이라는 뜻풀이를 더할 만하다고 느낀다. 말빛에 서린 넋과 숨결을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서 이 삶을 아우르는 밑자락과 수수께끼를 스스로 헤아리거나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낱말책·말꽃’은 쉬운말로 상냥하며 찬찬하게 풀어쓰는 꾸러미여야 알맞다. 다음처럼 몇 줄을 뜻풀이에 보탠다.


+ 옳거나 밝게 갈무리하기에 낱말책이지 않다. 틀(이론·규칙)을 세우는 꾸러미가 낱말책이지도 않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지펴서 마음을 가꾸도록 이바지하는, 나즈막하고 상냥한 숨결을 ‘말’로 풀어내는 책이다. 낱말만 모은 덩어리가 아닌, 말씨(말씨앗) 하나에 삶을 짓는 생각을 담아서 마음에 심도록 이끄는 징검다리인 꾸러미이고, 어린이하고 어른이 함께 읽을 길잡이책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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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3. 서울로



  우리나라 모든 곳은 서울하고 잇는 길이 촘촘하다. 고흥은 코앞 장흥으로 가는 버스가 없고, 이웃 강진이나 해남이나 구례나 곡성으로 잇는 길도 없다. 그러나 서울로는 길이 잘 뻗고, 광주와 순천도 반듯하게 쳐다본다.


  경남과 경북과 전북과 충남과 충북과 강원과 경기도 똑같다. 제주는 날개(비행기)가 허벌나다. 다들 서울바라기이고, 서울에서 시골과 작은고을로 내려보내는 얼개이다.


  좋게 보면, 서울이 나라를 빛내는 모습이되, 곰곰이 보면 모든 곳을 서울이 빨아들이고 빨아먹는 길이다. 이 나라는 모두가 서울한테 종살이를 하면서 떠받치고 우러르는 굴레라고도 할 수 있다.


  거창에서 하동으로 사뿐히 못 가면서, 문경에서 보은으로 가볍게 못 가면서, 장흥에서 고흥으로 이웃마실을 못 하면서, 이런 서울굴레인 뼈대에서 무슨 마을살림(지방자치)을 펼 수 있겠는가. 온나라가 서울바라기로 허덕인다.


  나는 쓴다. 시골아이가 시골을 바라보기를 바라며 쓴다. 인천아이가 인천을 보고, 대구아이가 대구를 보고, 부산아이가 부산을 보고, 광주아이가 광주를 바고, 서울아이가 시골과 들숲바다와 이웃을 바라보기를 바라면서, 우리말꽃(국어사전)과 책과 글을 쓴다.


  나는 나부터 스스로 나를 보려고 쓴다. 나를 둘러싼 뭇이웃이 저마다 그분들 스스로 돌아보시기를 바라면서 쓴다.


  서울로 곧장 이으면 수월할는지 모르나, 모든 서울길은 이웃마을과 이웃길을 싹둑 자른다. 서울로 그만 가거나 덜 가면서 이웃한테 갈 수 있어야 나도 너도 함께 살아난다. 서울로 그만 보내야 누구나 넉넉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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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3. 어디를 봐?



  우리한테는 눈이 있으니, 눈을 뜨면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아무것이나 보기도 한다. 스스로 그리는 길이 있으면, 이 길을 나아가는 바람빛을 보고, 아무 길을 안 그렸을 적에는 아무 데나 두리번거린다.


  우리한테는 귀가 있으니, 귀를 틔우면 무엇이든 들을 수 있고, 아무 소리에나 어지러울 수 있다. 스스로 그리는 하루를 살아가기에, 이 하루를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아무 하루를 안 그렸을 적에는 아무 소리에나 허둥지둥한다.


  어디를 봐? 왜 봐? 뭘 봐?


  마음을 나누는 이웃을 바라본다. 이웃하고 별과 꽃과 구름을 본다. 호젓이 들길을 걷다가 나란히 숲길을 걷는다.


  비가 오는 오늘은 비내음을 머금고 빗소를 누린다. 햇볕 쨍쨍한 오늘은 해바라기로 뜨끈뜨끈 달군다.


  어디에나 풀이 돋고, 풀벌레가 속삭인다. 나는 풀빛을 맞이하면서 별님하고 이 밤을 노닌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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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2024.9.3. 공중전화와 책



  아마 1998년 이른봄이었을 텐데, 싸움터(군대)를 마치고 바깥으로 돌아온 어느 날,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을 쥐고서 길에서 걸어다니며 읽다가 길소리(공중전화)를 걸던 일이 있다. 그무렵에는 손소리 없이 길소리를 걸던 사람이 훨씬 많았다. 만나기로 한 사람한테 길소리로 얘기한 뒤에 나왔는데, 조금 걷다 보니 어쩐지 손이 허전하더라. 아차, 아까까지 길을 걸으면서 읽던 책을 길소리에 얹어놓고서 그냥 나왔구나! 오던 길을 거슬러서 부랴부랴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은 이미 사라졌다. 감쪽같았다. 그리 길지 않은 틈이었는데, 사이에 길소리를 쓴 분이 슬쩍했겠지. 한동안 둘레를 이리 달리고 저리 뛰었지만, 책을 슬쩍한 사람을 찾을 길은 없었다. 그 뒤로 한동안 이 책을 다시 못 보기도 했는데, “책을 슬쩍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도둑이로구나!” 하고 느꼈다. 책에 이름도 적었고, 읽다가 책갈피를 꽂아놓았으니, 누가 깜빡한 책인 줄 뻔한데, 슬쩍한 분이 이 책을 읽고 싶었으리라 여기면서도 왜 책임자가 찾아오도록 그냥 두지 않았나 하고 한참 곱씹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움직이다가 무릎셈틀이며 사진기를 담은 묵직한 짐을 짐칸에 올려놓았다가 깜빡 잊고서 내린 뒤에 역무원한테 전화한 적이 있는데, 고작 다음 나루에 닿는 사이에 이미 무릎셈틀하고 사진기를 담은 묵직한 짐을 슬쩍한 사람도 있었다. 택시 짐칸에 실은 사진기가방을 안 내려주고서 달아난 택시일꾼도 있었다. 그들은 얼핏 눈앞에서 쏠쏠히 재미를 본다고 여길는지 모르는데, 빼앗는 사람은 으레 즈믄곱(1000배)으로 잘못을 씻으리라고 느낀다. 나라지기란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우쭐거리는 적잖은 무리도 언제나 한때일 뿐이다. 높자리는 오래 안 간다. 곧 바닥으로 떨어질 텐데, 그들은 그들이 바닥에 떨어질 줄은 아예 어림조차 못 하면서 쳇바퀴에 갇힌 콧대에 사로잡혔어도, 이 모습을 알아보지 못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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