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7.13. 사서읽기 + 서서읽기



  아직 혼살림을 지피던 무렵에 으레 둘레에 들려주기도 하고, 손수 쓰기도 한 글자취를 더듬는다. 혼살림을 꾸리던 날이어도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아 돌보면?’이라는 생각을 늘 했다. 난 아이들 앞에서 어떤 어버이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말을 섞을 만한지 곱씹었다.


  책글(서평)을 쓸 적에는 반드시 ‘사서읽기’를 해야 한다고 여겼다가, 이 다짐을 허물기로 하던 즈음 남긴 글을 돌아본다. 가만히 보면, 나는 일찍부터 ‘서서읽기’를 했다. 책을 살 돈이 그냥 없어서 책집에 가도 그냥 ‘서서읽기’를 했다. 둘레에서 숱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서읽기’를 할 적에 속이 쓰리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샘도 자꾸자꾸 했다.


  속쓰림에 부러움에 시샘은 차츰 걷혔다. ‘사서읽기’를 할 만큼 돈이 넉넉하더라도 ‘책눈(책을 고르고 읽고 새기고 익히며 살림하는 눈)’이 누구나 밝지는 않을 수 있는 줄 알아챘다. 책은 넉넉히 사서 읽는다지만, 정작 사랑이나 살림이나 숲하고는 등진 사람을 수두룩하게 만나고 마주했다.


  나는 내 길을 걸어가되, 한 갈래 길만 안 간다. 나는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울 숲길을 갈 뿐이다. 온누리에 숲길이 하나뿐이겠는가? 이 나라에 숲길이 하나만 있겠는가? 숱한 숲길이 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사랑길을 낸다.


  ‘사서읽기’ 곁에 ‘서서읽기’를 둔다. 아니, ‘서서읽기’가 있기에 ‘사서읽기’가 태어난다. ‘거듭읽기’에 ‘다시읽기’라든지 ‘겹쳐읽기’에 ‘마음읽기’를 한다. ‘하늘읽기’하고 ‘풀꽃읽기’를 누리다가, ‘바람읽기’에 ‘사랑읽기’를 한다. 다만, 내가 안 하는 길이 있다. ‘빌려읽기’만큼은 아예 안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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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붙였듯

2003년,

벌써 스무 해가 지난 일을 남긴 글이다.


..


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03.3.5. 산 책과 읽은 책



  날마다 책글(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놀랍다고, 책값은 다 어디서 나느냐고 묻는 이웃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을 다 사서 읽어요?” “그럼, 사서 읽지 누가 줍니까?” “작가나 출판사가 안 보내 줘요?” “보낼 때도 있지만, 돌려보내거나 계좌이체로 책값을 보냅니다.” “와, 너무 까칠하지 않아요?” “까칠하다고요? 거저로 책을 주고서 좋게 써 달라고 하는 뜻이라면, 책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이 돌려보내고, 좀 읽고서 느낌글을 쓸 만하구나 싶으면 계좌이체를 해야지요. 계좌이체를 안 받으려고 하면, 그곳에서 낸 다른 책을 몇 자락 삽니다.”


  웬만한 ‘출판평론가’는 웬만한 책을 거저로 받는다. 차고 흘러넘칠 만큼 받는 나머지, 이들은 ‘거저로 받은 책’을 이웃한테 거저로 나눠주거나 헌책집에 맡긴다. 글쓴이나 펴낸이는 왜 ‘책글지기’한테 책을 보낼까? 책을 널리 알려서 많이 팔려는 뜻이게 마련이다. 글을 써낸 이나 책을 펴낸 이 스스로 “알찰 수 있지만 모자랄 수 있는 대목을 낱낱이 꼼꼼히 거리낌없이 짚어 주기를 바랍니다” 하고 밝히는 일은 거의 없다. 아예 없지는 않으나, 1/1000쯤이라고 여길 수 있다.


  어깨동무하는 이웃이 낸 책이라 하더라도, 그쪽에서 낸 책에서 틀리거나 어긋나거나 엉뚱한 곳이 있으면 모조리 짚고 따진다. “와, 너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서, 일부러 더 꼼꼼히 보고서 낱낱이 짚어 주는데요? 아는 분이 낸 책에 틀리거나 엉터리인 대목이 이렇게 많으면 제가 더 창피합니다. 모르는 분이 낸 책이라면 그러려니 지나칠 수 있지만, 제가 알거나 만나는 분이 낸 책이라면, 이렇게 다 알려주어야 서로 ‘동무(친구)’이지 않나요?”


  그런데 갈수록 “사서 읽은 책만 말하기”가 벅차다. 주머니가 홀쭉하기 때문이지 않다. 도무지 “사서 집에 건사하고 싶지 않은 책”이 끝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떡해야 할까? 망설이고 헤맨 끝에, 책숲(도서관)이나 책집에 가서 한참 그자리에서 되읽고 곱새기기로 한다. “‘사서읽기’를 한 뒤에 말하기”만으로는 책글을 더 쓸 수 없구나. “‘서서읽기’를 하고서 말하기”를 할 책이 자꾸자꾸 늘어나는구나.


  책에 담은 줄거리 가운데 1/10이 알차고 9/10가 엉터리라 하더라도 책을 꾸준히 사려고 했으나, 갈수록 5/10쯤은 알차지 않고서야 살 수 없겠다고 느낀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살림을 맞이한다면, 이렇게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이 “아버지, 이 책 순 엉터리인데 왜 샀어요?” 하고 물어보면 무어라 대꾸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너도 알아보는구나. 순 엉터리인 책이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책이 왜 얼마나 어떻게 순 엉터리인지 도무지 안 알아보려고 하네. 그래서 순 엉터리인 책도 이따금 장만하지. 사람들이 이 엉터리를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는 아름다운 책을 새기고 곁에 둘 뿐 아니라, 엉터리인 책도 새기고 곁에 두면서 스스로 사랑이라는 길을 닦아야지 싶어.” 하고 들려줄 수 있을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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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4. 꺾인 나래



  작게 자근자근 살리고 싶기에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란 잔말이기도 하지만 ‘잔꽃’과 ‘잔노래’이기도 하다. 잔소리를 들려주고 듣다가 문득 쉬려고 자리에 누우면 잠들 텐데, 꿈누리를 누비면서 고즈넉이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달랜다. 숱한 잔소리를 어떻게 재워서 새롭게 일깨울 적에 즐겁고 아름다울는지 생각한다.


  가꾸고 일구기를 바라는 뜻으로 살짝 뾰족하게 찌르듯이 꾸중을 하고 꾸지람을 한다. 꾸중이나 꾸지람은 꾸준히 듣는 뾰족말이다. 자꾸자꾸 되풀이하는 잘못을 제발 제대로 느끼라는 뜻으로 좀 뾰족하게 찌르는 말인 꾸중과 꾸지람이다. 이 꾸중을 들으면서 일깨우고 일구라는 뜻이다. 이 꾸지람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가꾸고 갈고닦아 새롭게 서라는 뜻이다.


  잔소리나 꾸중이란, 다른 낱말로 나타내자면 ‘비평’과 ‘평론’이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서로 얼마나 잔소리나 꾸중을 주고받는가? 잘못했기에 타박할 수 있고, 잘못한 나랑 너를 서로 탓할 수 있다. 타박이나 탓이나 타령은 하나도 안 나쁘다. 재거름처럼 재울 수 있는 소리이다. 밑거름처럼 살릴 수 있는 말씨이다.


  잔소리나 꾸중을 안 하는 이들은 으레 나래를 꺾는다. 날개를 분지르더라. 나도 너도 서로 어떤 허물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지 느껴야 허물벗이를 한다. 너도 나도 서로 어떻게 꿈을 그려야 하는지 생각해야 고치를 틀어서 긴긴 잠을 누비다가 날개돋이를 한다.


  잔소리를 해야 작게 알아보고 눈을 틔워서 날아오른다. 꾸중을 해야 꾸준히 곱씹고 되새기면서 꿈을 키우는 얼을 차린다. 잔소리와 꾸중이 사라지는 이 나라는 캄캄하다. 잔소리와 꾸중을 사랑으로 주고받을 줄 아는 마음이라면, 이제부터 ‘이야기’로 거듭나서 서로 도란도란 말꽃을 피우고 살림노래를 펼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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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5. 삼선동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기에 서울에 어느 마을이 있는지 잘 모른다. 작은아버지 두 분이 서울에서 살기에 어릴 적에는 한가위나 설이면 작은아버지한테 찾아가곤 했지만, 서울은 인천에서 참 멀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빽빽하고, 너무 숨막히고, 너무 답답했다. 이렇게 말하면, “인천부터 서울이 멀면, 부산부터 서울은 가깝나?” 하면서 핀잔을 할 분이 많으리라. 그런데,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길보다, 대전에서 서울을 오가는 길이 빠르기도 하다. 1994년에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 대전에 사는 동무가 서울 이문동에서 서울역을 거쳐 대전에 있는 저희 집에 닿는 겨를보다, 내가 서울 이문동에서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건너간 뒤에, 인천 시내버스로 갈아타서 우리 어버이 집에 닿는 겨를이 한참 늦었다.


  그러니까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빠르게 기차로 달리면, 오히려 인천보다 먼저 닿을 수 있다. 그만큼 인천하고 서울은 “얼핏 가까워 보여도 대단히 먼 사이”라고 여길 만하다.


  서울 골목골목을 두 다리로 누비면서 헌책집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할 적에 어느 날 어느 책이웃님이 “삼선동에도 헌책집 많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삼, 뭐라고요?” 하고 되물었다. 서울내기가 아니니 ‘삼선동’이란 이름을 바로 알아듣지 못 했다.


  서울 혜화동이 어디인지, 돈암동과 보문동은 또 뭔지, 이화동이나 숭인동이나 창신동은 또 뭔지 골이 아팠다. 그렇지만 마을 한켠에 깃든 작은 헌책집을 한 곳씩 찾아보고 꾸준히 드나드는 동안 천천히 마을이름을 사귀었고, 한 해 세 해 다섯 해 열 해 남짓 흐르는 동안 서로 다른 마을이 어떻게 맞물리면서 어울리는지 시나브로 알아차렸다.


  삼선동이라는 곳에 여러 헌책집이 없었으면 그곳 이름을 귀여겨들을 일이 없었으리라. 굳이 그 마을을 찾아갈 일도 없었으리라. 삼선동에 헌책집 〈삼선서림〉이 새로 연 뒤에는 퍽 자주 삼선동을 찾아갔다. ‘삼선교’라는 다리를 다달이 걸어서 건넜다. 여름에는 ‘낙산’이라는 곳에 책짐을 이고 지고 올라가서 해바라기를 하며 책을 읽었다. 이렇게 대여섯 해를 삼선동하고 사귀던 어느 날 〈삼선서림〉이 깃든 오랜 집터를 큼지막하게 찰칵 찍었다. 이때까지 둘레에서는 ‘삼선교 나폴레옹 빵집’이라고 하면 알더라도 ‘삼선교 헌책집’이라고 하면 모르기 일쑤였다.


  그런데 〈삼선서림〉이 닫았다. 작은책집이 둥지를 튼 큰집을 찰칵 찍었되, 이 빛그림을 삼선지기님한테 건네지 못 했다.


  책집을 닫고서 어디로 떠나셨을까. 책집을 닫으면서 어떻게 지내실까. 삼선지기님은 “나도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들 가난한데, 가난한 책벌레한테 책값을 받기가 늘 미안했어요.” 하고 말씀하곤 했다. “이 책이 귀하잖아요? 5000원에 사온 책인데, 5000원만 받을게요. 그런데 더 싸게 주지 못 해서 어쩌지요?” 하는 말씀도 곧잘 했다.


  작은 헌책집이 커다란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집을 통째로 헐어서 뭘 더 크게 올려세운다고 하더라. 삼선동에 있던 마지막 헌책집이 사라진 뒤부터, 수더분한 책집지기님을 더 만날 수 없던 뒤부터, 이제 삼선동 쪽을 바라보기가 어렵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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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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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흑염소



  서울 성북구에 헌책집이 참 많았다. 사람이 많고 배움터도 많으면 책집도 저절로 많다. 앞서 배운 사람이 한창 읽던 책을 기꺼이 내놓고, 새로 배울 사람이 ‘오래면서 새로운 헌책’을 만난다. 〈가람서점〉이 닫고, 〈이오서점〉이 닫고, 〈그린북스〉가 닫고, 〈책의 향기〉가 닫았다. 〈삼선서림〉도 곧 닿을 듯싶다.


  책집이 있던 자리를 찰칵 남길 마음은 없었다. 책집이 있는 자리를 헤아리면서 찾아갔다. 책집만 사라지지 않았다. 책집이 깃든 세모난 집이 통째로 사라졌다. 빈터 옆으로 ‘흑염소’ 글씨만 또렷하고, 옆으로는 103번 서울버스가 멈추려고 한다. 책집이 있던 자리가 텅 비면서 짐차가 여럿 선 모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찰칵 찍었다.


  서울 성북구 한켠에 있던 헌책집을 ‘빈터만 휑뎅그렁한 모습’으로 떠올릴 책이웃이 있겠지. 웬 ‘흑염소’ 알림판을 찍었느냐고 갸우뚱할 분이 많을 테고, 뭘 보여주려고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여길 분이 많으리라. 그러나 이 빛그림 하나로 〈책의 향기〉라는 마을책집을 떠올려 본다. 이 마을책집에 드나들며 만나던 책을 헤아려 본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나서 읽은 책을 그리고, 미처 이곳에서 사들이지 못 한 책을 곱씹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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