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16. 아른아른 어른어른



  보드라우면서 아이스러운 빛살로 아른아른하다. 부드러우면서 어른스러운 빛발로 어른어른하다. ‘아이’하고 ‘어른’은 어떤 사이인지 곱씹어 본다. 아이는 ‘알·알깨기·알다·아침·씨앗·앓다·알차다’처럼 흐른다. 어른은 ‘얼·얼찬이·어질다·어둑(밤)·심다·어르다·참(참하다·착하다)’같이 감돈다.


  아이는 어른이다. 어른은 아이다. 아이는 스스로 알아가는 놀이·노래이다. 어른은 스스로 살림하는 말·이야기이다. 아이는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다. 어른은 새롭게 무르익는 열매이다. 아이는 언제나 즐겁게 달린다. 어른은 언제나 기쁘게 걷는다. 아이는 들녘으로 솟아오른 해이다. 어른은 멧숲으로 돋아나는 별이다. 아이는 같이 웃고 어깨동무를 한다. 어른은 함께 울고 손잡기를 한다.


  아이는 철이 들고 싶다. 어른은 철을 물려주고 싶다. 아이는 꿈을 그리고 싶다. 어른은 꿈씨를 돌보는 밭을 베풀고 싶다. 아이는 사랑하고 싶다. 어른은 사랑스러이 아이를 품고 싶다. 아이는 온하루를 마주하고 싶다. 어른은 온빛을 마시고 싶다. 아이는 구름을 타고 싶다. 어른은 바람에 꽃씨를 띄우고 싶다. 아이는 봄바람도 여름바람도 실컷 느끼고 싶다. 어른은 봄비도 겨울비도 노래하고 싶다.


  나는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라면서 어른으로 살림하는 오늘을 맞이한다. 나는 어른으로 일하면서 아이를 곁에 두면서 아기를 바라보는 숲을 반긴다. 나는 아른아른 별송이를 지켜본다. 너는 어른어른 꽃송이를 살펴본다. 우리는 함께 배우면서 같이 이야기한다. 나란나란 나아간다. 


ㅍㄹㄴ


《어른 노릇 아이 노릇》(고미 타로)

《아이들은 모두 문제아》(나카가와 리에코)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이오덕)

《숲속 나라》(이원수)

《어떻게 어린이를 사랑해야 하는가》(야누시 코르착)

《은자의 황혼》(페스탈로치)

《슈렉!》(윌리엄 스타이그)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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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15. 본다면



 보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알아보기도 하고, 천천히 알아차리기도 하고, 어느덧 알아내기도 하고, 느긋이 알아듣기도 한다. 보려고 안 한다면 코앞에 있어도 딴청이고, 자꾸 보여도 등돌리고, 이윽고 귀막고 눈감고 마음갇혀서 죽음늪에서 헤맨다.


  읽으려고 한다면 바람과 해가 흐르는 길을 읽고, 바다와 별이 만나는 길을 읽고, 사람과 새가 어울리는 삶을 읽는다. 읽으려고 안 한다면 책집에 가도 안 읽고, 책숲을 베풀어도 눈돌리고, 사랑을 속삭여도 도리도리한다.


  보려고 한다면, 남들이 보려고 하든 말든 나부터 스스럼없이 사랑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보려고 하기에, 먼저 눈여겨보고서 이웃과 동무한테 사근사근 속삭이면서 함께 배우는 길을 그린다. 보려고 안 한다면, 둘레에서 알아보려는 사람을 막더니 이내 괴롭히고 싸움을 건다. 보려고 안 하는 사람은, 사랑을 알아보는 사람을 미워할 뿐 아니라 죽이려고 한다.


  타고나야 잘 알아보지 않는다. 마음을 사랑으로 기울이는 누구나 찬찬히 알아본다. 솜씨나 재주로는 못 본다. 살림하는 손길과 눈길이 만날 적에 마음에 샘솟는 별빛이다.


  나는 보러 간다. 우리 집으로. 이 숲으로. 저 별밭으로. 그 꿈으로. 손수 짓는 사랑으로.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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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12. 대통령 없어서 멀쩡한 나라



  ‘그들’은 우리가 불타기(분노·증오)에 치닫기를 바란다고 느낀다. 우리가 불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하고도 안 싸운다. 그러나 ‘그들’이 일삼는 갖은 막짓과 바보짓을 멀쩡히 지켜보면서 ‘그들’한테 마음을 안 빼앗기면서 ‘우리 보금자리 살림짓기를 사랑으로 할’ 적에, 그들은 오히려 힘을 잃는다.


  ‘그들’은 늘 우리가 ‘그들 쳐다보기’를 하면서 ‘그들 민낯에 불타기’를 바란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쯤 싸움을 걸려는지 기다리지. 그들은 ‘몸돌봄(정당방위)’를 외치려고 노려본다. 그들은 아직 그물(법)에 걸리지 않는 테두리에서 ‘우리’를 놀리거나 괴롭히면서 ‘우리가 먼저 주먹질·불타기’를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불기운(분노 에너지)’으로 그들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지키거든.


  바로 이런 불기운이 그동안 일본굴레(일제강점기)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수렁에서 ‘그들’이 일삼은 짓이다. 그들은 들너울(민주화)을 아예 짓밟거나 싹을 꺾지 않는다. 그들한테 맞서려는 불길이 있어야 오히려 그들이 거머쥔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틀어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몰래 들너울한테 뒷돈을 내밀어 들너울을 일으키는 밑돈으로 삼으라고 한다.


  나는 1970∼80해무렵에 어린날을 보내며 온갖 주먹놈을 겪고 지켜보았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나 마을에서 아이들은 돈있는 집이나, 힘센 주먹이거나 하면, 시험성적이 높거나 하면, 다들 이런 채찍을 휘두르면서 또래와 동생을 때리고 돈을 빼앗기 일쑤였다. 어린배움터 여섯 해 내내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는 나날이었는데, 나라에 큰놈(대악마)이 있으면, 배움터와 마을에 작은놈(소악마)이 어우러지는 길을 바로 ‘그들’이 단단하게 세운 셈이다. 1970∼80년대뿐 아니라 1950∼60해무렵과 1900∼40해무렵에도 이런 큰놈·작은놈 얼거리는 똑같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주머니에 1원 한 푼조차 없으면 더 얻어맞더라도 뭘 빼앗기는 일은 없더군. 그들이 주먹이 지쳐서 때림질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면 오히려 때림질이 지겹다면서 침을 뱉고서 떠나더라. 어려운 말로 ‘비폭력·무저항’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린 나는 ‘비폭력·무저항’ 같은 말을 몰랐다. 악을 쓰면서 버티려고 하면 오히려 흠씬 얻어맞을 뿐인 줄 깨닫고는, 그들이 스스로 지칠 때까지 가만히 몸벗기(유체이탈)를 하고서 얻어맞을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늘 불타올라서 그들하고 어지럽게 뒹굴며 싸우기를 바라더라. 그래서 그들하고 안 어울리고, 안 불타오르면 오히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벌이는 바보짓’을 느끼고 돌아보고 되새길 틈이 생기기도 하더라.


  어느덧 모지리 윤씨가 바보짓을 일삼은 지 석 달이 흐른다. 우리나라는 지난 석 달 동안 ‘대통령 없이 멀쩡히 잘 굴러가는 나라’를 보여준다. 아니, 우두머리라는 자리는 오히려 없어도 되고, 그런 자리를 맡는 나라지기가 없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줄 가르치는 석 달이로구나 싶다. 나라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적에 든든히 지키는 줄 알아보는 나날로 삼아야지 싶다.


  그들이 왜 우리가 불타오르기를 바라는지 깨달을 때에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불타오르면서 그들한테 손가락질을 하고 싸움박질로 얼크러지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돌아볼 짬이 사라지고, 우리 집을 멀리하고 만다. 그들을 모두 몰아낸 자리에는 무엇을 세워야 할까? 또다른 모지리가 우두머리나 나라지기를 차지하면 똑같은 굴레가 찾아올 뿐이다. 우리는 이즈음에 ‘아이들이 물려받을 아름길’을 어떤 손으로 어떻게 살림하면서 사랑누리로 가꾸어야 슬기롭고 어진 어른으로 설 만한지 생각할 일이라고 본다. 《아나스타시아 1∼10》(블라지미르 메그레) 같은 책이야말로 오늘날 찬찬히 읽고 새기고 나눌 노릇이지 싶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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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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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7. ‘반 고흐’ 아닌 ‘환 호흐’를



  작은불 하나만 켠 시골집은 그야말로 어둡다. 그러나 이 어두운 시골집은 “눈이 다치지 않을 만큼 밝”기에, 시골사람은 넉넉히 지내고 쉬고 일한다. 햇볕불(백열등)을 켠 작은 시골집일 텐데, 햇볕불을 노랗게 켠 작은 시골집을 서울사람 눈으로 보자면 너무 어두울 테지만, 시골사람으로서는 가장 아늑하면서 포근한 불빛이다.


  햇볕은 눈을 갉지 않는다. 햇볕은 눈을 살린다. 햇볕불 작은빛은 햇볕처럼 눈과 몸을 살리는데, 반짝불(형광등·엘이디)은 눈과 몸을 갉는다.


  네덜란드사람 ‘환 호흐(van Gogh)’ 님이 살던 무렵은 오늘날보다 훨씬 불빛이 적었고, 아예 없었다고도 할 만하다. 그때에는 해가 지면 모든 일을 접게 마련이다. 환 호흐 님이 살던 무렵 켠 촛불이나 작은불은 아주 조그맣게 둘레를 가벼이 밝히는 빛줄기였다. 그렇기에 “감자 먹는 시골 흙지기 살림집”은 “어두운 속마음”을 비춘다기보다는 “밤빛을 품은 포근하면서 고요한 사랑”을 담아내었다고 보아야 알맞지 싶다. 환 호흐 님이 동생하고 주고받은 글을 되읽고, 남긴 글을 돌아볼 적에도, 환 호흐 님은 “시골집에서 아늑한 사랑을 누리고 얻었다”고 밝힌다.


  가만히 보면, 환 호흐 님이 살던 지난날에는 큰고장·서울(도시)에서 본 밤하늘도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었다고 느낀다. 말 그대로 “환 호흐라는 붓지기 스스로 본 눈부신 별밤”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았달까. 맨눈으로 미리내를 볼 적에는, 별빛이 노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하고, 붉거나 파랗기도 할 뿐 아니라, 빛줄기가 죽죽 뻗고 빙그르르 도는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서울내기 눈길(현대 도시인 관점)”으로만 환 호흐 님을 읽는다면, 아주 엉뚱하게 바라보기 쉽다고 느낀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다른 불빛이 없이 한나절쯤 바라보면 그야말로 별빛이 물결친다. 별이 쏟아지는 밤을 이 나라 이 땅 이 들숲바다에서 누리거나 느끼지 못 한 채 환 호흐 님 그림을 바라본다면, 참 뜬금없고 어이없는 짓이라고 느낀다. 그림보기에 앞서 별보기와 숲보기를 할 노릇이다. 그림읽기에 앞서 별읽기와 숲읽기를 할 일이다. 별을 담아내고 밤을 사랑한 붓지기 마음과 눈빛과 손길을 살피고 읽고 헤아리려면, 우리가 나란히 별과 밤을 온마음과 온눈과 온손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땅에 씨앗을 심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씨앗’을 알 턱이 없고, ‘말씨(말씨앗)’와 ‘글씨(글씨앗)’도 까맣게 모르게 마련이다. 하루 내내 나무 곁에 서서 나무바람과 나무그늘과 나뭇잎빛을 마주하는 살림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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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5. 정의는 정의롭지 않다



  “정의는 정의롭지 않다”고 느낀다. ‘정의(正義)’를 외치는 이를 보면 “저놈은 글러먹었으니 우리 쪽에 있는 이분을 모셔야 해.” 하고 덧붙인다. 다른켠에서 ‘정의(正義)’를 외치는 이는 “아냐. 그놈은 안 돼. 우리 쪽에 있는 이분이야말로 알맞아.” 하고 맞선다. 그런데 그쪽도 저쪽도 똑같이 “안 정의로운 민낯”이기 일쑤이다. 두 쪽은 으레 누가 똥이 더 묻었는지 따지고 싸우고 겨룬다.


  참말로 올바른(정의로운) 사람은 스스로 올바르다고 안 외친다. 올바른 사람은 그저 이녁 보금자리에서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리면서 허물없이 도란도란 즐겁다. 참으로 올바른 사람은 너나없이 어울리고, 위아래를 안 가른다. 굳이 ‘성평등·페미니즘’을 소리높여 안 외치더라도, 올바른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는 누구나 아름답고 어깨동무를 한다.


  참으로 곧바른(정의로운) 사람은 스스로 안 내세운다. 곧바른 사람은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호젓하게 흙을 만진다. 곧바른 사람은 나무를 돌보고 품으면서 집을 둘러싼다. 밖에서 보면 ‘집’이 아닌 ‘나무’만 보일 만큼 보금자리를 돌보기에 곧바른 사람이다. 곧바른 사람은 풀벌레를 동무하고 멧새를 이웃한다. 곧바르기에 풀씨를 손바닥에 얹고서 스스럼없이 노래한다.


  그야말로 바른(정의로운) 사람은 어린이 곁에 선다. 시골에서 살든 서울에서 지내든, 바른 사람은 어린이하고 눈높이를 맞추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놀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걷고 함께 잠든다. 바른 사람은 힘을 부리지 않는다. 바른 사람은 이름을 드날리지 않는다. 바른 사람은 돈을 뿌리지 않는다. 바른 사람은 올바른 사람하고 동무한다. 바른 사람은 곧바른 사람하고 이웃한다. 이리하여 바르고 곧바르고 올바른 사람은 덩실덩실 춤노래로 하루를 짓는다.


  이윽고 이 세 사람 곁으로 ‘꽃바른’ 사람이 찾아온다. 꽃처럼 바른 사람은 ‘바른길’이 제대로 밝게 빛나는 별로 피어나도록 ‘사랑’이라는 씨앗 한 톨을 건넨다. 사랑이라는 씨앗은 그저 수수한 말씨이다. 아주 흔하게 쓰는 ‘숲’이나 ‘사람’이나 ‘일’이나 ‘비’나 ‘밥’이나 ‘옷’ 같은 낱말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담는다.


  여러모로 보면, “정의롭다고 외치는 사람”이 쓰는 말은 대단히 허울스럽고 어렵고 딱딱할 뿐 아니라, ‘끼리질(제 담벼락 감싸기)’을 일삼는다. 올바르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돈을 움켜쥔 그들이지 않은가? 곧바르다고 외치지만 막상 그들끼리 이름을 거머쥔 얼거리 아닌가? 바르다고 외치는데 속낯을 보면 시키먼 꿍꿍이가 가득하지 않은가?


  그들도 이들도 저들도, 더구나 우리까지도, 하나도 안 올바르고 안 곧바르고 안 바르고 안 꽃바르기에, 무안나루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죽었어도 안 쳐다볼 뿐 아니라,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안 가리고, 이 끔찍한 짓이 일어날 빌미가 된 벼슬아치를 나무라지도 않는다.


  우리말 ‘바르다’는 ‘밝다’를 밑뜻으로 품는다. ‘바른쪽(옳은쪽·오른쪽)’이 바르지 않다. 밝게 눈뜨기에 바르고, 별처럼 밤을 밝히기에 바르다. 겨우내 고이 잠든 눈을 새봄에 밝게 틔우는 꽃눈에 잎눈이기에 바르다. ‘입바른’ 말만 외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그렇다. 오늘날 ‘정의(正義)’를 외치는 이는 하나같이 ‘입바른(입만 바른 척하는)’ 허울이자 허깨비이자 허접하고 허름하며 허술한 허수아비로구나 싶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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