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달걀 한 판



  어릴적에 어머니를 따라서 짐꾼으로 저잣마실을 다녀올라치면 두 손에 쥘 저잣짐이 가득했다. 달걀은 으레 판으로 사지만, 달걀만 쥘 손이 모자란다. 비닐자루에 달걀을 살살 옮기고서 한 알이라도 깨질까 싶어 품에 안는데, 두 팔에는 이미 저잣짐을 여러 자루 꿰었다. 지난날에는 달걀에 ‘1·2·3·4’ 같은 셈을 찍지 않았다. 그냥 달걀은 달걀일 뿐이다. 한 알에 5원도 10원도 15원도 했다. 어버이집에서 제금을 난 1995해부터는 혼살림을 돌보는 저잣마실을 혼자 하는데, 혼자 먹을 밥차림으로 바뀌면서 ‘판달걀’을 살 일이 없었다. ‘낱달걀’을 50원이나 100원을 치르면서 샀다. 낱달걀은 비싸고 ‘열알들이’만 해도 훨씬 싸지만, 열알들이를 사더라도 싱싱칸(냉장고)을 안 두고서 지내던 혼살림이라서 따로 달걀을 둘 데가 마땅하지 않았다. 땅밑집(지하실)이나 하늘집(옥탑집) 어느 곳에서도 달걀을 둘 수 없지. 그날 먹고 싶으면 그날 낱으로 조금 웃돈을 주고 살 뿐이다.


  2008해에 큰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비로소 판달걀을 장만한다. 처음에는 열알들이를 장만하다가 ‘열알들이 × 2’로 늘고, 바야흐로 서른알을 담은 한 판을 장만한다. 작은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두 아이를 먹일 밥살림을 꾸릴 적에는 판달걀을 둘씩 장만하기도 했다.


  달걀값은 겉에 찍는 ‘1·2·3·4’에 따라서 값이 널을 뛴다. ‘4’을 찍는 달걀이 가장 싸다. ‘3’을 찍으면 조금 비싸다. ‘2’을 찍으면 곱빼기요, ‘1’을 찍으면 석곱이다. 그런데 가장 값싼 ‘4’을 찍은 달걀이라면, 여러 알을 먹더라도 헛배가 부르는구나 싶다. ‘3’은 되어야 한 알로도 넉넉하고, ‘2’이나 ‘1’를 찍는 달걀은 결이 확 다르다. 눈속임이나 눈가림을 하면서 닭우리를 치는 분도 있을 테고, 제대로 닭우리를 치는 분도 있겠지. 겉에 찍힌 ‘1·2·3·4’을 넘어서, 우리 손으로 오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2026.6.25.)로 치면, ‘1’를 찍는 달걀은 낛(세금)까지 더해서 한 판에 20000원쯤이다. ‘2’을 찍는 달걀은 낛까지 더해서 한 판에 14000원쯤이다. ‘3’을 찍는 달걀은 고흥 시골가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4’을 찍는 달걀은 낛까지 더해서 한 판에 8000원쯤이다. 기름값이 널뛰기를 하듯 달걀값도 널뛰기를 한다. 쌀값은 더더욱 널뛰기를 한다. 그루(주식)가 엄청나게 오른다고 호들갑인데, 달걀도 쌀도 기름도 빵도 밀가루도, 아니 모든 살림살이가 여러 달 사이에 거의 곱빼기로 뛰었다. 그나저나 ‘미국 달걀’이 잔뜩 들어와서 싼값에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는구나. 미국 달걀에도 ‘1·2·3·4’을 찍을까, 안 찍을까? 고흥 시골가게에서는 미국 달걀을 구경조차 한 바가 없어서 모르겠다. 2026.6.2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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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나라지기를 놓고서 사나흘마다 여러 곳에서 ‘까치발(지지율)’을 내놓는다. 누가 나라지기에 앉든 똑같이 살펴서 ‘까치발’을 알린다. 나라지기를 비롯해서 참으로 숱한 사람들이 까치발을 지켜보거나 기다린다. 까치발이 높으면 반기기도 하고, 까치발이 낮으면 낯을 찡그리면서 “거짓말이야!” 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또는, 까치발이 높을 적에 낯을 찌푸리면서 “말도 안 돼!” 하고 고개를 젓기도 한다.


  까치발이 높기에 힘차게 가야 하지 않고, 까치발이 낮기에 안 해야 하지 않는다. 할 일을 할 노릇이고, 안 할 일은 삼가야 할 노릇이다. 새로 까치발이 나온 어제(2026.6.17.)이지 싶다. 나라지기를 한 해 맡은 분을 놓고서 처음으로 ‘못믿음(부정평가)’이 ‘믿음(긍정평가)’보다 높게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못믿음’이 ‘믿음’보다 높게 나온 이야기를 다룬 곳(언론사)이 매우 적다. 여태껏 ‘믿음’이 높게 나왔고, 여태껏 엄청나게 글(언론보도)이 쏟아졌는데, 처음으로 ‘못믿음’이 크게 나온 일은 몇 군데만 글로 다룬다. 글로 안 다룬 곳으로 ‘한겨레·경향·오마이·국민’이 눈에 띈다. ‘부산일보’를 비롯한 경상도에서도 거의 안 다뤘고, 전라도와 충청도와 강원도와 경기도에서는 아예 안 다뤘지 싶다. 딱 27곳만 다뤘다고 한다.


  “네가 잘못했는걸?” 같은 말을 코앞에서 들으면 힘들 수 있다. “네가 잘못한 곳은 이러저러해.” 하고 짚는 말을 눈앞에서 들어야 하면 괴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잘못하거나 틀리거나 어긋나거나 못하거나 모자라다는 곳을 가만히 참으면서 들을 수 있을 적에, 이제부터 가다듬고 고치고 손질해서 새롭게 피어날 길을 배울 만하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못 했는지 짚지 않는다면 앞으로 ‘잘’ 할 수 없다.


  요사이 미국에서 공놀이(축구 월드컵)가 한창이지 싶은데, 이를테면 ‘메시’가 어떻게 공을 찰까? 메시라는 이는 스스로 밝히기도 하는데, 여태껏 “넌 안 돼!”나 “넌 못 해!”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고, 무엇이 안 되거나 못 할 만한지 스스로 더 새기고 받아들여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김연경·김연아·안세영’ 같은 이도, 한 판을 뛰고 난 뒤에 “잘 했던 곳”은 나중에 보고, “못 했던 곳”을 끝없이 되감기하듯 짚고 살피고 가다듬는다고 밝혔다.


  까치발이 낮다면, “더 채찍질을 해주십시오! 모자라고 못 하는 곳을 더 짚어 주십시오!” 하고 얘기할 수 있는 나라지기를 그린다. 까치발이 낮든 높든, “걸어다니면서 사람들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버스·전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저녁(퇴근시간)에는 사람들 사이로 가만히 스며서 핀잔을 가만히 듣는 곁일꾼(보좌관·비서)을 두는 나라지기”를 그린다. 나라지기 스스로 걸어다니고 사람들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지만, 나라지기가 너무 바쁘다면 적어도 곁일꾼이 목소리를 듣고서 알려줘야지 싶다. 2026.6.1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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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시골에서는 제때뽑기(본투표)도 미리뽑기(사전투표)도 힘들다. 다 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때뽑기를 하는 날은 쉼날이기에 군내버스가 하루 한두 벌 다니니까 그냥 못 탄다. 그나마 우리 마을은 쉼날에 하루 한두 벌 다니되, 웬만한 마을은 아예 안 다닌다.


  시골사람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고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줄 알고서 시골에 깃들어서 산다. 어쩌다 있는 뽑기날에 다니기 좋은 곳이 아닌, 한 해 내내 호젓하고 짙푸른 숲을 누릴 푸른집에서 지내려는 마음이니까.


  올해에 제때뽑기를 하는 날에는 자칫 고흥에 없을 수 있기에, 미리뽑기를 하자는 마음으로 고흥읍에 나온다. 미리 ‘선관위·네이버’로 알아보고서 뽑는곳(사전투표소)을 짚고서 고흥읍 고흥여중으로 갔다. 그런데 고흥여중 둘레에도 어귀에도 알림글이건 뭣도 없다. 사람조차 없다. 뮐까? 뽑기를 한다는 고흥여중 체육관 앞까지 갔으나 여중생이 까르르깔깔 떠드는 소리만 울린다.


  나중에 고흥읍 농협 담벼락에 붙은 종이를 보고서 헛웃음을 지었다. 고흥여중은 사전투표소로 없다고 하네. 고흥읍에서는 고흥군민회관이란 데만 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다. 그곳(고흥군민회관)은 걸어가기에 너무 멀다. ‘면 안쪽 깊은 작은마을’에서 사는 사람이 시골버스를 타고 읍에 나와서 찾아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타러 다시 버스나루로 걸어가기에는 한참 멀다.


  아까 고흥여중 둘레를 떠올려 본다. 나 말고도 고흥여중으로 미리뽑기를 하러 가는 어르신을 여럿 스쳤다. 이분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느끼고 보내시려나? 이분들 헛걸음은 누가 토닥여 주려나?


  예전에는 시골에서 뽑기를 할 적에 마을지기(이장)가 탈탈이(경운기)에 할매할배를 태우고서 다녀왔다. 이러다가 짐수레(트럭)가 퍼진 뒤에는 마을지기가 뽑기날에 새벽부터 바지런히 짐수레로 할매할배를 태워서 오갔다. 이제 웬만한 시골마을에서는 할매도 할배도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저잣마실이건 그냥마실이건 못 다닌다. 시골할매와 시골할배는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한다. 이분들은 뽑기날이래서 뽑으러 오가지 못 하는 몸일 뿐 아니라, 시골버스마저 안 다니니 애써 나가려고 해도 나갔다가 들어올 길마저 없다. 뽑기란, 민주란, 자유란, 평등이란, 여기에 ‘전라도’와 ‘시골’이란 뭘까? 아무튼 나는 이튿날(5.30.) 시골버스를 타고서 면소재지로 나가야겠다. 이튿날은 그나마 흙날이라서 시골버스로 면소재를 다녀올 수 있다. 다만, 시골집에서 면소재지에 뽑기를 하러 다녀오려면 길에서 한나절(4시간)을 써야 한다. 시골은 그곳(투표소)에 걸어서 다녀올 수 없다. 2026.5.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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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서울로



  시골에서 서울로 간다. 시골내기가 서울바람을 쐬려고 간다. 엊저녁에 곁님이 “서울에 왜 가요?” 하고 묻기에 “그림책 《열두 달 소꿉노래》를 펴낸 곳에서 그림지기(화가)를 미국에서도 모시고, 그림책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해서 거기 가려고요.” 하고 들려준다.


  마을앞에 잿더미가 수북하다. 여태 마을앞에 있던 마을집(회관)을 허문 부스러기이다. 곧 크게 새 마을집을 세운다고 한다. 시골버스는 읍내에 닿고, 읍내에서 시외버스가 빠른길을 가른다. 고흥읍 곳곳을 보면 숱한 길나무가 줄기치기로 시달린다. 요새는 가지치기가 아닌 줄기치기를 끔찍하게 하더라. 빠른길을 한창 달리자니 길가에 우거진 아름드리를 마구 솎거나 뽑아낸 자국이 보인다. 벌써 잎이 다 시든 나무가 있고, 아직 푸른잎을 버티는 나무가 있다.


  서울(도시)에서 살면서 마음을 푸르게 돌보면 서울집(도시거주)도 푸른집이게 마련이다. 시골에서 살지만 마음이 하나도 안 푸르면 시골집(농촌거주)도 안 푸르게 마련이라서 잿집이다. 풀밥을 먹기에 풀몸(푸른몸)으로 바뀌지 않는다. 풀포기에 흐르는 풀빛을 읽고 느껴서 우리 마음으로 이으려 할 적에 비로소 풀몸(푸른몸)으로 가꿀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도 몸이 바뀌되, 무슨 마음을 머금느냐에 따라서 몸을 가꾼다. 밥은 몸을 바꾸되 가꾸지는 못 한다. 마음은 몸을 바꾸기보다는 가꾸는 길이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못 하거나 안 하는 길”을 자꾸 쳐다보면서 “오늘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짓고 펴고 노래하는 길”을 잊어갈 적에는 푸른집도 푸른마음도 푸른밥도 푸른말도 모두 잃어버린다. 고기밥을 즐기면서도 몸이 멀쩡한 사람은 “먹어서 바꾸려는 몸”이 아닌 “마음을 돌보면서 가꾸려는 몸”이다. 풀밥을 하지만 몸이 더 지치고 고단하면서 자꾸 불길(분노)이 솟는 사람은 “밥만 바꾸면 다 바뀌리라 잘못 여긴 탓”에 그만 짜증과 싫음과 미움과 불길이 끝없이 쳇바퀴질이게 마련이다.


  풀을 두 포기 먹어야 푸르지 않다. 풀을 한 포기 귀퉁이만 살짝 손끝으로 스쳐도 풀몸(푸른몸)으로 피어날 수 있다. 풀잎만 먹는데 몸이 푸른빛이지 않은 애벌레가 얼마나 많은가? 그저 풀잎만 갉았을 뿐이고, 고치를 틀고서 날개돋이를 했을 뿐인데 눈부신 날개를 매단 범나비에 제비나비에 모시나비에 부전나비에 네발나비에 그야말로 아름답다. 꽃가루와 꿀을 먹기 앞서 풀만 먹었으나 ‘몸’이 아닌 ‘마음’을 가꾸려고 하기에 스스로 거듭난다.


  바다를 가르는 고래가 바다에서 풀만 먹는가? 머리가 뛰어나다는 돌고래는 바다에서 무엇을 먹을까? 눈밭에서 어버이사랑을 베푸는 얼음새(펭귄)는 풀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북극곰은 무엇을 먹는가? 곰은 풀과 꽃과 낟알과 열매도 즐기지만, “풀만 먹는 곰”이란 없다. 풀을 먹기에 사람빛을 되찾지 않는다. 푸른마음을 먼저 돌보면서 가꾸려고 할 적에 비로소 찬찬히 사랑이라는 빛을 펴면서 둘레를 포근히 품어서 풀어낸다. 밥이 안 대수롭다는 뜻이 아니라, 밥에만 얽매이면 밥보(바보)가 되고 만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푸르게’ 살려는 마음으로 아침저녁과 밤낮을 짓고 그리고 펴려고 하는 나날이다. 비록 푸르지 않은 말과 몸짓과 마음이 곧잘 드러나더라도 늘 푸른길을 걸어가려는 그림을 늘 새롭게 그린다. 나는 ‘걷는이’이다. 나는 두다리로 선다. 나는 두눈으로 본다. 나는 두손으로 짓는다. 나는 두귀로 듣는다. 나는 왼눈만 뜨거나 오른눈으로만 볼 마음이 아니다. 나는 왼눈과 오른눈을 나란히 뜨면서 셋쨋눈을 한결같이 틔우려고 한다. 나는 왼손만 쓰거나 오른손만 쓰지 않는다. 나는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도 글씨를 쓰고 부엌칼을 다루고 두바퀴(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 나란히 공을 던지고 받을 수 있다. 나는 왼날개만 펴지 않는다. 나는 오른날개만 펴지 않는다. 나는 두날개를 나란히 펴면서 가운몸에 사랑이라는 빛줄기를 담아서 가슴을 열려고 한다.


  오늘 나는 푸른별이라는 집으로 간다. 시골에서 서울로 일하러 가는 길이되, 돈벌이가 아닌 ‘일’을 하려는 마음이다. 바람이 일듯 일을 한다. 바다가 일듯 일을 한다. 휘파람을 일으키듯 일을 한다. 이야기를 잇듯 일을 한다. 읽고 익혀서 일구려고 일을 한다. 나랑 너를 사랑이라는 눈빛으로 이으려고 일을 한다. 2026.5.1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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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너는 네가



  내가 쓴 책에서 되새길 대목을 짚어 달라고 묻는 분이 늘 있어서 “왜 책쓴이가 고갱이까지 알려주어야 하나?” 싶었다. 누구나 스스로 알아보고 찾아보고 즐겨보면 되는 삶이니까. 어느 날 어느 이웃님한테서 “책쓴이로서 스스로 눈물짓고 웃음짓는 밑줄”을 손수 적바림하는 일이 새록새록 즐거울 수 있구나 하고 배웠다. 나는 나대로 읽고, 너는 너로서 읽으며 “마음으로 읽고 만나기”라는 책놀이를 하는 새길이 있더라.


  누가 고갱이를 짚어 달라 하기에 밑줄을 그을 마음은 아예 없다. 우리집 아이랑 이웃집 아이랑 말놀이랑 소꿉놀이랑 생각놀이랑 하루놀이랑 숲놀이를 누리는 길을 그리면서 밑줄긋기에 빛입히기를 해본다. 글쓴이나 책쓴이라면 스스로 쓴 모든 글에 밑줄을 그어야 할는지 모른다만, 몇 곳만 뽑아서 읽는다는 마음으로 “내가 스스로 더 되읽는 대목”을 헤아릴 만하다.


  서로서로 바라보며 새롭다. 나란나란 걸으며 노래한다. 두런두런 오가며 배운다. 느긋느긋 주고받아 알뜰하다. 이러고서 홀로 고요히 촛불보기와 동틀녘보기를 하며 눈결을 추스른다. 밤빛을 품으려고 촛불을 바라본다. 낮빛을 안으려고 동틀녘에 아침해를 바라본다. 밤낮 사이에 별빛과 풀빛을 바라보고, 새가 들려주는 노래빛을 마주한다.


  밑줄긋기란, ‘같이읽기’랑 ‘함께읽기’랑 ‘서로읽기’랑 ‘새로읽기’를 하나씩 되새기는 길일 만하다. 나는 이미 책이 나오기까지 숱하게 되읽은 대목이지만, 아이랑 이웃로서는 이제 처음 마주하는 두근두근 콩닥콩닥 첫글이요 첫씨이다. 그러니 즐겁게 밑줄을 그어 본다. 이른바 “저는 이 책이 태어나기 앞서 글손질을 한창 할 적에, 저부터 이 대목을 되읽으며 웃고 울었습니다.” 하고 속삭일 곳을 하나하나 짚는다. 2025.10.27.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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