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12. 대통령 없어서 멀쩡한 나라
‘그들’은 우리가 불타기(분노·증오)에 치닫기를 바란다고 느낀다. 우리가 불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하고도 안 싸운다. 그러나 ‘그들’이 일삼는 갖은 막짓과 바보짓을 멀쩡히 지켜보면서 ‘그들’한테 마음을 안 빼앗기면서 ‘우리 보금자리 살림짓기를 사랑으로 할’ 적에, 그들은 오히려 힘을 잃는다.
‘그들’은 늘 우리가 ‘그들 쳐다보기’를 하면서 ‘그들 민낯에 불타기’를 바란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쯤 싸움을 걸려는지 기다리지. 그들은 ‘몸돌봄(정당방위)’를 외치려고 노려본다. 그들은 아직 그물(법)에 걸리지 않는 테두리에서 ‘우리’를 놀리거나 괴롭히면서 ‘우리가 먼저 주먹질·불타기’를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불기운(분노 에너지)’으로 그들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지키거든.
바로 이런 불기운이 그동안 일본굴레(일제강점기)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수렁에서 ‘그들’이 일삼은 짓이다. 그들은 들너울(민주화)을 아예 짓밟거나 싹을 꺾지 않는다. 그들한테 맞서려는 불길이 있어야 오히려 그들이 거머쥔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틀어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몰래 들너울한테 뒷돈을 내밀어 들너울을 일으키는 밑돈으로 삼으라고 한다.
나는 1970∼80해무렵에 어린날을 보내며 온갖 주먹놈을 겪고 지켜보았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나 마을에서 아이들은 돈있는 집이나, 힘센 주먹이거나 하면, 시험성적이 높거나 하면, 다들 이런 채찍을 휘두르면서 또래와 동생을 때리고 돈을 빼앗기 일쑤였다. 어린배움터 여섯 해 내내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는 나날이었는데, 나라에 큰놈(대악마)이 있으면, 배움터와 마을에 작은놈(소악마)이 어우러지는 길을 바로 ‘그들’이 단단하게 세운 셈이다. 1970∼80년대뿐 아니라 1950∼60해무렵과 1900∼40해무렵에도 이런 큰놈·작은놈 얼거리는 똑같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주머니에 1원 한 푼조차 없으면 더 얻어맞더라도 뭘 빼앗기는 일은 없더군. 그들이 주먹이 지쳐서 때림질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면 오히려 때림질이 지겹다면서 침을 뱉고서 떠나더라. 어려운 말로 ‘비폭력·무저항’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린 나는 ‘비폭력·무저항’ 같은 말을 몰랐다. 악을 쓰면서 버티려고 하면 오히려 흠씬 얻어맞을 뿐인 줄 깨닫고는, 그들이 스스로 지칠 때까지 가만히 몸벗기(유체이탈)를 하고서 얻어맞을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늘 불타올라서 그들하고 어지럽게 뒹굴며 싸우기를 바라더라. 그래서 그들하고 안 어울리고, 안 불타오르면 오히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벌이는 바보짓’을 느끼고 돌아보고 되새길 틈이 생기기도 하더라.
어느덧 모지리 윤씨가 바보짓을 일삼은 지 석 달이 흐른다. 우리나라는 지난 석 달 동안 ‘대통령 없이 멀쩡히 잘 굴러가는 나라’를 보여준다. 아니, 우두머리라는 자리는 오히려 없어도 되고, 그런 자리를 맡는 나라지기가 없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줄 가르치는 석 달이로구나 싶다. 나라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적에 든든히 지키는 줄 알아보는 나날로 삼아야지 싶다.
그들이 왜 우리가 불타오르기를 바라는지 깨달을 때에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불타오르면서 그들한테 손가락질을 하고 싸움박질로 얼크러지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돌아볼 짬이 사라지고, 우리 집을 멀리하고 만다. 그들을 모두 몰아낸 자리에는 무엇을 세워야 할까? 또다른 모지리가 우두머리나 나라지기를 차지하면 똑같은 굴레가 찾아올 뿐이다. 우리는 이즈음에 ‘아이들이 물려받을 아름길’을 어떤 손으로 어떻게 살림하면서 사랑누리로 가꾸어야 슬기롭고 어진 어른으로 설 만한지 생각할 일이라고 본다. 《아나스타시아 1∼10》(블라지미르 메그레) 같은 책이야말로 오늘날 찬찬히 읽고 새기고 나눌 노릇이지 싶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