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1.10. 다시 천천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사흘 앞서 매듭지으려던 글을 오늘 아침에 끝내려 했으나, 이래저래 밤으로 미룹니다. 짐을 꾸려서 얼른 사상나루로 가서 순천버스를 탑니다. 고흥으로 돌아가서 느긋이 추스르면 될 테지요. 시외버스 짐칸에 등짐과 책짐을 놓습니다. 아지매랑 아재가 짐가방을 잘 놓지 못 하셔서 거듭니다. 이웃나라 젊은이가 가방 놓을 데를 못 찾기에 옆짐칸을 열고서 이쪽으로 놓으라고 알려줍니다. 헛. 그런데 영어가 아닌 “이쪽으로 놓으셔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웃나라 젊은이는 그냥 알아들었을까요. 우리말로 “고맙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지난 사흘은 해날 비날 해날로 잇습니다. 오늘도 해날인데 어제보다 따뜻하고 하늘이 새파랗습니다. 해바라기를 하기에 즐거운 하루입니다. 볕바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늦가을해를 듬뿍 머금으면 올겨울을 포근히 보낼 만합니다.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손으로 빚고 몸소 짓는 길을 헤아리면 누구나 튼튼하고 빛난다고 느낍니다. 손을 안 쓰거나 멀리하면 저절로 풀죽고 스스로 가라앉고요. 벌써 한참 떠도는 도깨비불 같은 ‘치유·존중·환대·행복·자신감·배려·여가·여행·……’ 같은 이름은 다 허울이지 싶습니다. 굳이 ‘자기개발’이나 ‘자아발견’은 안 해도 되거든요.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가꾸는 손길을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펴면 넉넉합니다. 집안을 돌보고 집둘레를 작은숲으로 가꾸는 하루이면 스스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일도 남이 안 해줍니다. 작든 크든 다들 스스로 그리고 돌보고 바라보고 배우고 펴는 사이에 천천히 싹트고 움틉니다. 사랑을 일으키는 씨앗을 내가 틔우고 네가 틔우는걸요. 서로 틔우며 마주보고, 느긋이 둘러보며 고즈넉이 깨웁니다.


  다시 하나씩 합니다. 먼저 시외버스에서 눈을 좀 붙이고서 하루쓰기부터 하자고 생각합니다. 바깥일을 나오느라 거의 못 잤고, 바깥일을 하며 제대로 못 잤습니다. 버스에 버스에 버스를 석 벌 갈아타면 집에 닿습니다. 한 걸음씩 내딛으면 별돋는 밤하늘을 누리는 집입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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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1.1. 그냥 들려준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저는 늘 뼈를 깎으면서 살아갑니다. 뼈를 그토록 깎았다면 하나도 안 남을 만한데 어째 멀쩡해 보이느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만, 하도 뼈깎이를 해대느라 막상 남은 뼈는 없되, 뼈깎이를 하면 늘 새뼈가 곧장 돋더군요.


  밑바닥을 구르며 사느라 더는 떨어질 마음도 없다고 여기는 나날인데, 밑바닥을 구르노라면 참말로 예서 더 어데가 밑바닥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닷새이건 열흘이건 실컷 굶으며 살아왔습니다만, 굶더라도 안 죽는 줄 숱하게 느꼈어요. 어릴적부터 싸움터(군대)에 이르는 동안 날마다 얻어맞는 굴레였는데 그토록 얻어맞더라도 용케 멍이 이튿날이나 사흘쯤 뒤면 사라지고, 부러진 듯하거나 찢어진 데도 이레나 보름이 지나면 아물어요.


  사는 내내 되새깁니다. 어떻게 살점이 다시 돋지? 어떻게 뼈가 다시 나지? 어떻게 머리카락이 새로 돋지? 어떻게 피멍이 사라지고 새살이 반듯하지?


  우리말에는 ‘말씨’에 ‘글씨’가 있습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않을 노릇이라는 오랜 말씀이 있습니다. 옛사람은 ‘양자물리학’이라는 이름은 몰랐어도 “말이 씨가 된다”라든지 “뿌린 대로 거둔다”라든지 “콩 심은 데 콩 난다” 같은 살림말을 차근차근 이었어요. 게다가 “팥 심은 데 콩 난다” 같은 말까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심는 그대로 피어나고 이룬다는 뜻이요 삶이자 슬기입니다. 엉터리로 그리니 엉터리를 이루지만, 사랑으로 그리니 사랑을 이룬다는 오래빛입니다.


  이따금 스무 살 무렵에 “하루에 책 100자락을 못 읽으면 안 자겠어!” 하고 다짐하던 일을 떠올립니다. 쉰 살을 넘었다지만 “예나 이제나 하루에 책 100자락을 읽으려고 하면 읽을 테지.” 하고 여기면서 책바다에 뛰어들곤 합니다. 스무 살 무렵이건 쉰 살을 넘은 때이건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100자락 읽기”를 나설 적에는 이미 ‘셈(숫자)’을 잊습니다. 첫 책을 손에 쥘 적에는 “몇 자락을 읽을 하루”이냐가 아닌 “손에 쥔 책에 흐르는 마음씨를 고스란히 맞아들여서 이 하루를 노래하려는 꿈”으로 접어듭니다.


  두 아이가 꽤 어리던 때에는 안고 업은 채 자장노래에 놀이노래를 부르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두 아이는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듣느라’ 자기 싫었다고 하더군요. 두 아이가 ‘아버지 노래를 들으려’고 안 자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더 노래를 불렀고, 너덧 시간을 쉬잖고 불렀고, 으레 예닐곱 시간쯤 노래를 부르는데, 용케 목이 안 쉬더군요. 스스로 놀랐습니다. “와, 내가 하루 여덟 시간을 쉬잖고 노래할 수 있다고? 대단한걸?” 아이들한테 노래를 불러 주면서 말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두바퀴(자전거)에 태워서 골골샅샅 달리면서 온몸 뼈마디가 새롭고 튼튼하게 붙었습니다. 아이들이 읽을 글을 스스로 써서 들려주면서 글빛을 가다듬었습니다. 늘 이뿐입니다.


  “하면 된다” 같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할게”였고 “노래로 할게”라는 마음입니다.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파헤쳐서 알아낸 이야기나 수수께끼를 그냥그냥 누구한테나 바로바로 들려줍니다. ‘내 것’이 아니니까요. 모든 이야기를 다 들려주면 어느새 새롭게 길을 살피면서 이다음 이야기를 캐내고 찾아내고 알아내게 마련입니다. ‘내 것’이라며 움켜쥐면 언제나 고인물이 되어 썩지요.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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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0.21. 잇는말 있는마음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곧 순천에 있는 어느 푸른배움터에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밑글을 보내면서 이야기꽃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잇는말 + 있는마음 ― 우리말을 읽는 눈빛’


  푸른나이란,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잇는 길을 거닐면서 새롭게 싹틔울 씨앗을 온몸과 온마음에 새기는 때라고 느껴요. 스스로 어떤 말씨와 글씨뿐 아니라 마음씨와 생각씨와 살림씨를 놓으면서 사랑씨로 피어날는지 헤아리기를 바라며 ‘잇는말 + 있는마음’ 같은 이름을 떠올립니다.


  누구나 하루를 잇습니다. 저마다 이곳에 있습니다. 어제하고 오늘을 잇고, 오늘하고 모레를 이어요. 이동안 보금자리에 있고, 마을에 있고, 푸른별에 있어요. 잇고 있기에 ‘이(사람)’인 줄 느끼면 사르르 일어나는 물결과 바람을 품고서 눈뜬다고 느낍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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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0.9. 한글날이 대순가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훈민정음을 선보인 세종 임금은 ‘우리글’을 선보이기는 했으되, 우리글을 가르친 바는 없습니다. 우리글이라는 훈민정음으로 중국글을 옮기고, 중국을 기리는 책을 내고, 이 나라 임금을 섬기라는 책을 내고, 한자를 읽는 길을 밝히는 책을 내었습니다. 조선 무렵에 있던 글칸(서당)은 ‘중국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입니다. 훈민정음을 안 가르치고 못 배우는 얼개입니다.


  해마다 한글날을 맞이할 즈음에 곧잘 둘러보지만, ‘한글·우리글’과 ‘훈민정음·한문’을 제대로 맞대어서 살피는 글바치는 여태 못 봅니다. 일부러 안 쓸 수 있지만, 몰라서 못 쓴다고 해야 맞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어서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주시경 님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한글날’을 제대로 세웠으리라고도 봅니다. ‘한글날’이란 ‘훈민정음날’이 아닌 ‘한글날’이요, “누구나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는 길을 배우고 가르치는 아름다운 나라”를 기리는 날인걸요.


  스승날에 ‘스승’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지 않는 이 나라입니다. 어버이날에 ‘어버이’가 어떤 자리인지 헤아리지 않는 이 나라입니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살피지 않는 이 나라입니다. 설날에 ‘설’이 무슨 뜻은지 짚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이 나라입니다. 한가위에 ‘한·가위’가 무슨 숨결을 품는지 곱씹는 사람은 너무 드문 이 나라입니다.


  한글날은 안 대수롭습니다. 한글날은 하늬옷(서양 양복)을 차려입고서 우쭐대는 날이 아닙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을 짓고서, 한글을 처음으로 누구나 배우도록 가르친 주시경 님은 짚신에 두루마기 차림이었습니다. 보따리를 움켜쥐고서 걸어다녔습니다. 중국한테도 일본한테도 하늬(서양)한테도 휘둘리지 않는, 손수 살림을 짓는 작은사람과 언제나 함께 나아간다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이녁 집부터 어깨동무(성평등)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한글날을 기린다는 자리에 모인 사람이 어떻게 찾아왔고,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신을 꿰었는지, 그리고 ‘책가방’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는 눈이 있다면, 이 나라 한글날이 여태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조금은 어림을 하겠지요.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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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은 갔고,

한글날이 갔으니,

그저 한 해 내내 헤아릴 말글살림 이야기를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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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말·마실

― 마음을 담은 말을 나누는 마실길



  마음이 있기에 말을 나누며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마음이 없기에 말이 끊기고 막히며 담을 세웁니다. 마음을 쓰면서 말 한 마디를 말씨앗으로 삼습니다. 마음을 안 쓰기에 말빛이 없는 채 꾸밈말을 합니다. 마음을 일으키면서 말씨 한 톨을 맺고, 말씨 한 톨을 새삼스레 마음에 심으면서 마음이 바다처럼 일렁입니다.


  어떻게 말하고 글쓰기 스스로를 사랑할까요? ‘나’라는 빛을 차분히 바라보는 하루를 살면서, ‘너’라는 이웃빛을 차근차근 알아보는 오늘이면, 누구나 스스로 짓는 살림길을 돌아보면서 어느새 샘물처럼 솟는 맑고 밝은 생각이 싹트고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 + 너 = 우리’라고 하는 길을 배우고 익히는 이 삶을 누립니다. 내가 나부터 나로서 설 적에, 네가 너부터 너로서 서는 길을 알아봅니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눈을 뜰 적에, 네가 너로서 너답게 눈을 뜨는구나 하고 마주봅니다. 이러는 사이에 서로 새롭게 한마음을 이루는 하늘(하나·하양)이라는 빛을 느끼고 품어요. ‘하늘’은 “하나인 우리”를 나타내고, ‘하나’는 “하늘인 나”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손수 살림을 가꾸는 마음을 그저 수수하게 담고 나누면 됩니다. ‘어렵게’ 말하려고 꾸미기보다는, 몸소 살아가며 돌보는 숨결을 그저 스스럼없이 얹고 주고받으면 됩니다. 쉽게 쓰려고 하기에 말글이 쉽지 않습니다만, 어렵게 쓰려고 할수록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지 못 합니다.


  보여주거나 알리거나 자랑하려는 말글을 삼갈 적에 스스로 빛납니다. ‘내 하루’를 내 손으로 밝히면서, ‘네 하루’를 내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 하루’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잇기에 ‘이야기’가 깨어납니다. 내 하루를 들려주고 네 하루를 듣는 사이에 서로 북돋우기에 ‘이야기’가 자랍니다. ‘이야기 = 잇는 말·마음·길’이거든요.


  ‘마음소리’인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리’면서 나타내는 ‘글’로 옮기며, ‘노래(시)를 문득 느낄 만합니다. 모든 말은 ‘물’처럼 흐릅니다. 물은 그냥 흐르지 않고 소리와 가락을 이루면서 흐르는데, 이러한 ‘물줄기’처럼 말에는 ‘말줄기’가 있습니다. 물소리가 “물로 일으키는 소릿가락”이라만, 말소리는 “말로 일으키는 노랫가락”입니다. 서로 마음을 틔워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마음과 마음이 말과 말로 흐르게 마련이라서, 이렇게 흐르는 말소리·말가락을 가다듬어서 글로 추스를 적에 저절로 ‘노래(시)’로 피어납니다.


  잘 쓰려는 글이나 노래가 아닌, 잘 펴려는 말이나 이야기가 아닌, 오늘까지 살아오며 헤아린 마음을 나누어 봅니다. 우리 말이 언제나 ‘마음노래’라는 대목을 느끼고 헤아리면서 들려주고 듣습니다.


  ‘낱말’ 하나를 문득 받아서 조그마한 종이에 단출하게 적어 보면, 이 짤막한 글줄은 어느덧 ‘쪽노래(단시)’ 한 바닥으로 거듭납니다. 처음부터 애써서 ‘시’를 쓰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하루를 살아내면서 어떤 눈길로 어떤 살림을 지은 발걸음인지 되새기면서, 이러한 나날을 가만히 말과 글로 담아내는 사이에 시나브로 돋아나는 노래(시)입니다.


  낱말 하나에 얽힌 ‘말밑·말뜻·말결·말씨·말느낌·말빛’을 가만히 헤아려 보는 틈을 낸다면, 여태까지 쓴 말마다 어떤 숨빛이 스몄는지 돌아볼 만합니다. 마음을 그리는 소리인 말이면서, 말을 펴면서 마음을 새롭게 북돋우고 가꿉니다. 마음을 소리로 들려주는 말인데, 말을 새록새록 들려주고 듣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 삶을 밝히는 ‘이야기’를 이루니, 이야기밭을 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야기씨를 심으면서 이야기별을 바라보는 자리를 누립니다.


  함께 말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나누어 봐요. 서로 오가는 말을 헤아리면서 가만히 글을 써 봐요. 우리가 주고받는 마음을 그리는 말 한 마디롤 손끝으로 종이에 사각사각 옮기면, 어느새 노래(시)라는 열매 한 알을 얻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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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10-1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기획을 하고 계시는군요. 가까이 있어도 자주 가지지 않는 부산인데, 책방 투어를 해봐야겠어요.^^ 명절 잘 보내셨어요?

파란놀 2025-10-11 06:24   좋아요 0 | URL
열흘 동안 조용히 시골집에 깃들었습니다.
요새는 시골은 ‘휴일‘에 버스가 안 다니거든요.
어제 열흘 만에 다시 군내버스가 다녀서
부지런히 바쁘게 읍내로 볼일을 보러 움직였습니다.

오늘부터 다시금 부산사람이 되어
책집마실로 바삐 보내겠네요.

march님 한가을 한복판
느긋이 넉넉히 누리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