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노나냐가누



  “무섭노”는 ‘일베말씨’일 수 없다. “집이노·어디노·뭐하노·밥먹었노”도 일베말씨일 수 없다. 지난날에는 경상사람이 흔히 쓰면서 온나라 여러 고장에서도 곧잘 썼다면, 이제는 꼭 경상사람이 아닌 어느 곳 사람이든 홀가분히 쓸 수 있는 말씨이다.


  말끝에 ‘-노’를 붙이기도 하지만, ‘-나’나 ‘-냐’나 ‘-가’나 ‘-누’를 붙이기도 한다. ‘-니’를 붙이거나 ‘-는데’나 ‘-쟈’나 ‘-자’나 ‘-제’를 붙이기도 한다. “무섭노”뿐 아니라 “무서운데”나 “무섭쟈”나 “무섭제”나 “무섭누”나 “무서운가”나 “무섭냐”처럼 말끝이 다르다. 예전에는 고장과 고을과 마을에 따라서 다른 말씨였다면, 요즈음은 서로서로 이웃으로 어울리면서 넘나드는 말씨로 번진다.


  이미 오래도록 자리잡은 말씨 가운데 하나인 ‘-노’인데, 이 말씨가 마치 ‘일베말씨’라고 못박으면서 “쓰면 몹쓸놈!”이라고 얽매려 한다면, 참으로 어쭙잖은 노릇이다. 말은 나라(정부)에서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따져서는 안 되는 살림길이다. 굴레(독재정권)를 씌우려는 무리는 예부터 ‘말(언어)·눈금(도량형)’을 함부로 바꾼다고 했다. 이 말씨는 이래서 나쁘고 저 말씨는 저래서 좋다고 섣불리 눈금을 매기는 짓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를 쩍쩍 가르면서 싸움불씨를 붙이게 마련이다. ‘이쪽(아군)’과 ‘저쪽(적군)’을 가르려고 말부터 가르는 셈이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자랐어도 ‘노나냐가누’를 비롯한 온갖 말끝을 다 듣고 나란히 썼다. 워낙 인천은 “서울에 깃들지 못 하지만 서울에 깃들려 하는 숱한 사람이 온나라에서 모이는 곳”이라서, 그저 인천에서 나고자라기만 해도 ‘온곳말씨’를 듣고 나눈다. 전라이웃을 마주하면 전라말씨를 듣고, 강원이웃을 만나면 강원말씨를 나누고, 경상이웃을 어울리면 경상말씨를 주고받는다. 서울도 지난날에는 “우리나라를 이루는 고을(지역)” 가운데 하나라서, ‘표준말’이 아닌 ‘서울사투리’가 따로 있다. 《민중자서전》(뿌리깊은나무)을 읽은 분이라면, 글을 하나도 모르며 일한 서울내기가 들려주는 서울사투리가 무척 낯설어 거의 못 알아들을 수 있다. 요즈음 자리잡은 ‘서울표준말’은 억지로 짜맞추며 태어났다. 새뜸(신문방송)에 내고, 나라(정부)에서 내놓는 “틀에 박은 말씨로 만들었다”고 할 만하다.


  어떤 이는 떠난 누구를 놀리거나 비아냥대거나 헐뜯으려는 꿍꿍이로 ‘-노’를 마구마구 붙일는지 모른다. 어떤 이가 쓰는 말씨는 사투리라 하더라도 말끝이 늘 다른 줄 헤아리지 않으니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이가 엉뚱하면서 얄궂은 꿍꿍이로 ‘-노’를 마구잡이로 붙인대서, 사투리일 뿐 아니라 그저 ‘우리말씨’인 ‘-노’를 쓰면 몹쓸놈(혐어표현자)이라고 갈라놓아도 될까? 여태 사투리를 쓰던 사람뿐 아니라, 사투리를 쓰는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사람을 그냥 싸잡아서 ‘-노’를 쓰면 안 된다고 읊는 잣대야말로 “어깨동무(민주·평화·화합)와 어긋나게 윽박지르면서 쇠그물에 가두는 몹쓸짓”이라고 느낀다.


  말을 가두려는 무리는 사람들 마음을 가두려는 속셈이다. 말을 옭아매려는 무리는 사람들이 마음껏 이야기를 펴는 길을 몽땅 끊고 잘라서 끼리끼리 담벼락을 치기를 바라는 뒷뜻이다. 말을 쫙쫙 갈라서 싸움을 붙이는 불씨를 퍼뜨리는 무리는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지피는 씨앗인 ‘말씨(씨앗인 말 한 마디)’를 짓밟는 주먹질이기도 하다.


  “누가 그랬노”나 “누가 그랬누”나 “언제 왔노”나 “언제 왔나”나 “이제 온나”나 “이제 오는가”나 “맛있게 먹노”나 “맛있게 먹쟈”나 “사랑하노”나 “사랑한데이”나 “뭘 찾노”나 “뭘 찾는감”이나 그저 마음과 마음을 잇는 씨앗인 말씨이다. 말씨를 함부로 건드리면서 손가락질을 하려는 무리는 부디 넋을 차리고서 마음에 이슬 한 방울을 맑게 두기를 빈다. 갈라치면서 싸움을 부추기려고 하지 말자. 말과 마음을 맑게 읽으면서 사람이 되어야 할 노릇이다. 2026.7.5.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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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리센느 '무섭노' 논쟁에 등판…"부산 사람 구별법 참조하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48/0000624448?sid=102


"무섭노" 걸그룹의 이 말, 사투리? 일베식 표현?...정치권도 논란 가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5381612?sid=102


'노' 구별법 올린 조국…이준석 "이 시대의 '쥬고엔 고짓센'"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957000


‘일베몰이’ 당한 리센느 원이, 사투리 쓰는 게 죄는 아니잖아[스경연예연구소]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144/0001124453


리센느 “무섭노”가 일베 말투? “부산말 달라” “지나친 낙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535418?s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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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눈길



  나는 전남 고흥에 2011해에 깃들 때까지 ‘후박나무’를 몰랐다. 후박나무를 몰랐으니 ‘후박엿’도 몰랐다. 둘레에서 아무렇게나 읊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호박엿’”이라는 말도 이냥저냥 지나쳤다. 뱃사람이 먹는 후박엿은 후박알과 후박꽃차례와 후박잎과 후박껍질을 고아서 얻는다. ‘박달나무·동박나무’처럼 ‘박’으로 잇는 말씨이고, 지붕에 하얗게 크게 열리는 ‘박’은 ‘밝다’를 가리킨다. 뒤늦게 알고 보니 ‘朴’이라는 한자는 “후박나무 박”이다.


  후박나무에 깃들고 알을 낳는 나비가 있다. 까만 바탕인 날개에 푸른띠가 눈부시게 돋는 나비로,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 마당과 마을을 반짝반짝 밝힌다. 푸른띠를 날개에 놓은 나비가 휙 날면 놀랍도록 곱다. “푸른띠가 있는 나비”이지만, 나비책에는 ‘청띠제비나비’란 이름으로 오른다. ‘푸른띠제비나비’라 해야 올바른데.


  종이에 찍거나 새기거나 옮긴 글씨를 첫줄부터 끝줄까지 죽 넘긴다고 해서 ‘읽기’라 하지 않는다. 책을 쥐고서 종이를 넘기면 ‘넘기다’이다. 글씨를 죽 훑으면 ‘훑다’이다. 사람을 위아래로 훑거나 차림새를 훑는들 ‘읽어내’지는 못한다. ‘훑다’는 겉모습만 문득 스치는 몸짓을 가리킨다. 책을 아무리 많이 사더라도, 한 쪽 두 쪽 넘기더라도, 모든 글씨를 훑더라도 “읽는 눈길”하고는 멀다.


  팔등에 나비나 잠자리나 풀벌레를 앉히기에 나비나 잠자리나 풀벌레를 알아보지는 않는다. 먼발치에서 보더라도, 살짝 만나고서 헤어지더라도, 나무에 앉은 모습을 지켜보더라도, 온마음에 사랑을 담으면 비로소 ‘읽어낸’다. 읽어낼 때라야 누구나 속으로 가만히 깊게 넓게 고르게 곱게 맞아들인다.


  우리가 ‘읽다’라고 여길 일을 하려면, 바람과 바다가 일듯 먼저 스스로 밑바닥으로 차분히 가라앉고서 이제부터 어디로 가려는지 그릴 노릇이다. 나부터 고스란히 바라보고서 모든 짐을 내려놓을 적에, 새롭게 나아갈 길을 틔우고서 마주할 수 있다. 일으키면서 일구고, 일구는 길을 찬찬히 가꾸고 돌보는 사이에, 차근차근 새기며 가다듬어 익히기에 ‘읽다’라 한다. 수수하고 오랜 우리말을 짚자면, ‘읽다 = 일다 + 익다’이다. 바람이 일면서 바람을 익히니 읽는다. 바다가 일면서 바다를 익히니 읽는다. 그런데 일으켰어도 익히지 않으면 덧없다. 익히려면 먼저 꿈씨를 그리고 심어서 일굴 노릇이다.


  우리가 읽는 눈길이라면, “온누리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어!” 같은 푸념이나 핑계를 안 댄다. 그저 사읽고, 그대로 삭이고, 곰곰이 품어서 풀어내는 하루를 살 테지. 가리지 않으며 헤아리고 살펴야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래서 가리거나 저 책은 저래서 손사래치면, 아예 안 읽는 셈이다. 이 책은 이런 대목을 배우려고 쥐고, 저 책은 저런 눈썰미를 알아보려고 잡을 적에 비로소 ‘읽기’라는 조그마한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자, 보자. 스승이 말하는 대로 안 들으며 뭘 배우겠는가. 〈취권〉이라는 보임꽃에 잘 드러난다. 젊은이는 스승이 시키는 집안일을 지겨워한다. 발차기나 지르기부터 알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스승은 발차기도 지르기도 안 시킨다. 그저 집안일을 시킬 뿐이다. 스승은 어느 날 문득 “넌 이미 다 익혔어.” 하고 속삭인다. 집안일을 하는 동안 온몸이 고르게 자랐고,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길을 깊이 들였다고 알려주지.


  집안일이란 ‘살림’이다. 살리는 일이기에 ‘집일·집안일’이다. 우리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싶다면, 먼저 ‘살림’인 집안일부터 즐겁게 오래오래 할 노릇이다. 집안일부터 도맡을 적에 솜씨길을 익힐 수 있다. 재주부터 들이면 하나같이 자랑질로 기울어서 망가진다. 책을 읽고 싶으면, 아이를 낳거나 돌보면 된다. 책을 읽으려면 바람과 바다부터 읽고서, 나무랑 나비를 읽으면 된다. 다들 거꾸로 갈 뿐 아니라, 샛길로 빠지면서 땀을 안 내려고 하니까 ‘읽는시늉·읽는흉내·읽는척’으로 뒹군다. 2026.7.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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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6.29. 비우며 빚는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비울 줄 알기에 빚습니다. 빚고 싶으면 먼저 비울 노릇입니다. 비워낸 손인 ‘빈손’일 적에 비로소 빗줄기가 온누리를 씻고 살리듯, 두 손을 고르게 다루어서 비비는 동안 찬찬히 ‘빚’고, 이때에 가만히 ‘빛’이 납니다. 우리는 빗으로 머리카락을 고릅니다. 빗질은 빗길과 닮아요. 아니, 비가 내리는 빗길을 살림살이로 옮긴 빗질입니다. 이리하여 마루와 바닥과 마당은 빗자루를 쥐고서 비질을 합니다.


  비우기에 들입니다. 먼저 숨을 내쉬기에 들이쉽니다. 먼저 몸에서 내놓기에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빚어서 빛을 내려면 빈몸과 빈손과 빈자리를 추스를 노릇입니다. 무게가 없다고 여기는 비(빗방울)처럼, 우리는 손을 가볍게 두는 ‘빔(비움)’일 적에 하나하나 빚으며, 새롭게 짓는 옷을 ‘빔’이라 일컫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이튿날(6.30) 서울로 ‘비빗빚빛’을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실을 다녀옵니다. 서울이웃이 사뿐사뿐 마실하면서 저마다 빛나는 눈길과 손길을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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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6.27. 알라딘서재 사진 18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누리책집 〈알라딘〉에는 ‘알라딘서재’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알라딘서재’를 열기만 하고 안 쓰다가 이럭저럭 이곳을 쓴 지 스물 몇 해가 지나갑니다. 알라딘서재는 여러 누리집 가운데 가장 오랜 글틀(글을 써서 올리는 얼개)을 잇습니다. 가장 오랜 글틀이기에 쉽고 수수하면서 빠릅니다. 그런데 2026해 첫여름에 접어든 뒤부터 갑자기 느림보로 바뀝니다.


  누리책집 〈예스24〉에는 ‘예스24블로그’가 있었다가 사라지고서 ‘사락’으로 바뀌었는데, ‘예스24블로그’는 그림(사진)을 아예 띄울 수 없었고, 글쓰기 단추를 눌러서 올리기까지 1분 20초가 걸렸습니다. 예스24는 열 해 즈음 이렇게 했는데, 그곳에서 그들(관리자)이 하는 말로는, 2000만 손님(예스24 고객) 가운데 딱 저만 ‘1분 20초가 걸리는 글쓰기 등록’이라는 ‘오류’였다고 밝히더군요.


  알라딘에 이름을 올리고서 알라딘서재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몇일까요? 이분들 가운데 그림 하나를 올릴 적에 ‘18초’가 걸리는 사람은 몇일까요? 20초쯤 걸린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18초’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참말로 꼭 18초이더군요. 말도 말썽도 많은 네이버라지만, 네이버 누리집(블로그·카페)에 그림을 하나 올릴 적에는 0.1초가 안 걸립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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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hbooklove/224328624808

네이버 블로그로 들어가면, 알라딘서재 '사진올리기'가 

참말로 '18초(어쩌면 17.8초)\가 걸리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다.



먹통예스24 https://blog.naver.com/hbooklove/223966341576

먹통 예스24 블로그 글쓰기 (동영상) https://blog.naver.com/hbooklove/222957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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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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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6-2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게 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책 사면 주는 이런 저런 구즈 만들어 파는 시간에 서재 블로그에도 신경 좀 써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파란놀 2026-06-27 09:47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서재에도 마음을 쓰면 될 텐데
자꾸 딴길과 샛길로 빠지려고 한다고 느껴요.

˝있는 서재˝를 살리는 길이
˝알라딘 책장사˝를 살리는 길일 텐데,
관리자라는 자리에 앉으면
이러한 길은 잘 안 보이는 듯합니다.

이 여름에도 싱그럽게
햇볕과 바람과 비와 별을 늘 품는
hnine 님 하루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6.22. 비에는 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누가 “눈에는 눈”이라 왼다면, 저는 “비에는 비”라 욉니다. 누가 “이에는 이”라고 왼다면, 저는 “별에는 별”이라 욉니다. 앙갚음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있다면 “앙갚음을 해서 뭐가 후련하나요?” 하고 여쭙니다. 언제나 모든 앙갚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끝없이 맴돌며 서로 죽이고 미워하는 굴레입니다. 앙갚음을 하는 동안에는 ‘지음(창조)’이 없어요. 지겹도록 미움씨를 뿌리면서 지지리 못난 발톱을 세우느라 막상 너도나도 보금자리를 망가뜨리면서 숨결을 갉습니다.


  살림물이란 모두 살리는 물입니다. 이놈만 살리거나 저놈은 죽인다면 살림물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뿌리는 ‘농약’은 그저 ‘죽임물’입니다. 논밭에 심은 한두 가지 씨앗만 남기고서 모조리 죽이거든요. 죽임물(농약)을 뿌리면 논에서는 벼도 죽임물을 머금고 밭에서는 과일과 낟알과 푸성귀가 고스란히 죽임물을 빨아들여요. 이뿐 아니라, 죽임물은 거미와 벌나비를 모조리 죽입니다. 죽임물은 참새와 박새와 딱새와 까마귀와 제비와 왜가리와 꿩과 뜸뿍새와 할미새도 몽땅 죽입니다. 죽임물은 잠자리와 개구리와 맹꽁이와 뱀과 구렁이와 고양이와 개도 죽입니다.


  지난날에는 막말(욕) 하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면, 어느덧 ‘미움말(혐오표현)을 다스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면서, 이제는 막말(욕)을 다들 아무렇지 않게 쓰더군요. 더구나 요사이는 옳은말(정의구현·PC·WOKE)을 앞세워서 막말(욕)도 미움말(혐오표현)도 함부로 써대기까지 합니다. ‘이쪽’에 안 서는 사람이라면 “탱크로 밀”거나 “몽둥이로 두들기”거나 “참교육을 해야” 하거나 하나같이 사납게 쏘아대는 말이 넘칩니다.


  ‘옳은말’이란 워낙 ‘오른말(오른쪽에 서는 말)’을 가리킵니다. ‘바른말’도 워낙 ‘바른손(오른손)에 서는 말’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누가 옳은말(정의구현·PC·WOKE)을 하는가 하고 지켜보면 몹시 아리송합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이 싸우려고만 할 뿐, 마음을 나누는 말을 주고받을 틈을 서로 도무지 안 내려고 합니다. 길이 다르니까 만나서 말로 풀어야 하는데, 길이 다르다면서 ‘화살말(공격표현)’만 잔뜩 쏟아붓는 굴레요 불늪입니다.


  언제나 “비에는 비”입니다. “숲에는 숲”입니다. “해에는 해”이고, “사랑에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람’이니, “사람에는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마주할 노릇입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사람’입니다. 왼팔도 오른팔도 나란히 ‘팔’입니다. 왼눈도 오른눈도 언제나 ‘눈’입니다. 왼길도 오른길도 고스란히 ‘길’이니, 옳거나 그르다고 따지면서 갈라놓고서 싸울 적에는 늘 우두머리(권력자)가 뒤에서 팔짱끼고 구경하면서 웃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볼 노릇입니다. ‘두 손’으로 일할 하루입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오가고 만나면 됩니다. 다른 두 손이기에 맞잡으면서 아름답습니다. 다른 두 몸이기에 언제나 하늘빛으로 파란바람을 마시는 한마음인 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옛노래에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살갑구나.” 하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암 + 수’요, ‘어 + 버(어버이)’입니다. 누가 앞이나 뒤가 아닌, 나란히 서는 길을 밝히는 즐거운 하루입니다. 우리말은 늘 ‘왼오른’이라 밝힙니다. 우리말은 ‘오른왼’이 아닌 ‘왼오른’입니다. 그러나 ‘왼’을 먼저 말하더라도 ‘오른’을 나란히 둡니다.


  수수하고 쉬운 모든 말마디에 도사리는 슬기로운 숨빛을 읽을 적에 누구나 사람으로서 사랑을 찾으며 살림을 짓습니다. 수수하고 쉬운 모든 말마디를 거스르거나 안 쓰거나 등지거나 잊는다면, 사람빛과 사랑빛과 살림빛과 숲빛을 다 팽개치는 굴레입니다. 시골 논밭에 잔뜩 뿌려댄 죽음물을 씻어내는 비가 차분히 내립니다. 비는 모두 씻고 달래면서 살립니다. 언제나 비에는 비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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