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4.23. 아찔하게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4월 19일에 부산으로 이야기마실을 떠났고, 4월 21일에 부산서 대구를 거쳐 서울로 간 뒤에, 4월 22일 아침에 이야기꽃을 펴고서 이날 14:40 버스를 타고서 밤에 고흥으로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보내는 나흘이란, 쉬거나 잠들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길입니다. 그런데 고흥집에 돌아온 저한테 고흥교육지원청에서 글자락을 보내었고, 바로 이튿날 나래터로 가서 ‘폐교임대신청서’를 손글씨로 적어서 내야 하더군요. 그나마 고흥집에서 네 시간쯤 딱딱한 나무바닥에 등허리를 펴고서 누우니 살짝 개운했고, 4월 23일 한낮에 아주 낡아 몹시 덜컹거리는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갑니다. 한참 걸으며 이모저모 꾸린 뒤에 고흥교육지원청에 글자락을 보냈고, 큰아이가 바란 고기빵(햄버거)에 곁님이 바란 신물(식초)를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는 그야말로 눈이 감기다 못해 쓰러질 판입니다.


  곁님은 제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기다린 듯싶습니다. 짐을 내리고서 발을 씻으려 하니, “그러니까 spirit과 soul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해요?” 하고 묻습니다. 우리 낱말책은 우리말을 제대로 못 다룹니다. 그런데 영어 낱말책도 ‘spirit·soul’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지 모르는구나 싶어요. 다만, 지치고 졸린 몸으로 곁님한테 두 낱말을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을 텐데 하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자니, 마음으로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네 몸이 졸립거나 힘들대서, ‘네’가 졸립거나 힘들지 않잖아?”


  그야말로 참말입니다. ‘내 몸’이 힘들거나 아프거나 졸립거나 지친다고 느끼더라도 ‘나’라는 넋과 얼과 빛과 숨이나 마음이 힘들거나 아프거나 졸립거나 지칠 수 없습니다. ‘내 몸’은 살덩이라는 옷을 입고서 삶을 겪어서 배우는 구실입니다. ‘내 몸’은 어느 때에 힘들다거나 아프다거나 졸립다거나 지친다거나 심심하다거나 지겹다거나 골난다거나 싫다거나 좋다거나 밉다거나 괴롭다거나 어찌저찌하다고 느끼면서, 다 다른 때와 곳마다 다 다른 삶과 하루를 배웁니다.


  그러나 ‘나’는 ‘몸’이 아닙니다. ‘나’는 ‘몸’을 입을 뿐, “몸은 나일 수 없”습니다. 내가 마주하는 ‘너’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너도 ‘몸’은 나와 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넋으로 마주하고, 얼로 헤아리고, 빛으로 주고받고, 숨으로 나누고,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더없이 졸립고 지친 터라 ‘몸뚱이 아닌 숨빛’으로만 곁님하고 마주하면서 한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곁님은 끝없이 묻고 새로 묻습니다. 저는 끝없이 대꾸하고 들려주고 보탭니다. ‘낱말그림’까지 큼직하게 그리면서 하나하나 짚고, 어떻게 다른 결이면서,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서, 어떻게 아이곁에서 우리 스스로 배우며 익히는 길을 풀어낼 적에 ‘깨닫는 오늘’로 걸어갈 수 있는지 속삭입니다.


  드디어 곁님이 궁금한 곳을 다 푼 듯싶습니다. 바야흐로 드러누울 수 있습니다. 나뭇바닥에 몸을 눕히고서 눈을 감으니 곧장 꿈누리로 날아갑니다. 다섯 시간을 죽은 듯이 잠들고서 개구리소리에 깨어납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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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0일

이튿날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 모임을 꾸립니다.

이날 나누는 밑글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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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기 모임 (12걸음)
― 바보눈 + 나살림 : 바라보고 보살피는 눈 + 나를 살리는 씨앗


곳 : 부산 거제동 〈책과 아이들〉과 함께
때 : 2025년 4월 20일 (일요일) 10∼12시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80세 마리코 1∼16》


얼개
ㄱ. 이오덕을 바라보면서 나를 보살피는 눈을 틔운다.
ㄴ. 드높은 봉우리가 아닌,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을, 아이한테 쉬운말로, 상냥하게 이야기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고서, 우리 손으로 적으면서, ‘나살림’으로 나아간다.
ㄷ. 이오덕을 읽어가면서 ‘나’라는 마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생각한다.
ㄹ. 여태 이오덕 책은 두루 읽었으니, “‘이오덕’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사랑으로 읽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줄거리 : ‘모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글쓰기연구회 ……)

  모인다고 하는 뜻인 ‘모임’입니다. ‘모이다·모으다’는 옛꼴이 ‘모히다·모흐다(뫼흐다)’이고, 밑동은 ‘뫃(모 + ㅎ)’입니다. 모으거나 모인다고 할 적에는 덩이를 이룬다는 뜻이고, 덩이를 이룬 하나이기에 ‘몸’이고, 덩이로 바라보기에 ‘모습’이고, 덩이가 덩치를 이루어 커다랗기에 ‘뫼(메)’입니다.

  모이거나 모은다고 할 적에는 “하나로 크게 이루거나 어울리려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따로 있는 ‘낱’은 “작은 하나”라면, 여럿을 덩이로 이룬 ‘몸·모임·뫼’는 “커다란 하나”입니다. ‘낱’이 따로 있는 작은 하나이듯, 벼나 밀이나 보리나 조나 수수 같은 풀열매는 ‘낟·낟알’이라 합니다. 뭉치기에 ‘뭇사람’이지만, 뭇사람을 이루는 “작은 하나”는 ‘나’예요. 숲을 이루는 ‘나무’는 숲으로 보자면 ‘나무모음·나무뭉치’일 테지만, 낱낱으로 나무가 있기에 숲으로 크게 어우릅니다.

  꾸역꾸역 모아서 덩치만 크다면 ‘뚱뚱’하다고 여깁니다. 알맞게 모아서 뜻과 길과 빛을 아름답게 펼치면 ‘든든·튼튼·단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몇몇 노림길로 기울거나 치우치면 ‘딱딱’할 뿐 아니라, ‘닫아’버리는 ‘담’으로 치닫습니다. 여럿을 아우르며 아름답게 나아가는 몸과 모습과 모임이라면 ‘담는(담다)’ 구실로 단단하면서 서로 닮고 다른 빛을 펼 텐데, 그저 뭉뚱그려서 얕게 노림길을 꾀할 적에는 판박이처럼 닮다가 닳고 말아서 아무런 사랑도 꿈도 빛도 없이 단단하다가 딱딱하게 굳어서 바스라지는 굴레입니다.

  낱과 낟인 나로 있기에 마냥 작거나 초라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나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있는 너”하고 만나서 ‘우리’가 함께 숲을 이룰 만합니다. 그렇지만 낱과 낟인 나를 팽개치면서 그저 뭉뚱그리려고 하면 ‘나·너·우리’를 모조리 밟게 마련이라서, 이때에는 “닫힌 울타리”인 ‘가두리(가둔 우리)’로 치우치니, ‘모임’이 그만 글담(문단권력)처럼 갑갑하게 얽매입니다.

  이오덕 님은 혼자서 온나라 모든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줄 알았기에, 온나라 여러 길잡이(교사)가 작게 뜻을 모으고 힘을 여미어서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같이 글그림을 펴는 작은모임”을 바랐습니다. 처음에는 ‘경북글쓰기회’로 꾸렸고, 이 작은모임을 ‘한국글쓰기연구회’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키우는 동안에도 사람(회원)들은 ‘모임꾸러미(회보)’에 글을 잘 안 냈습니다. 모여서 이루는 술자리만 좋아하는 사람(회원)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처럼 글을 쓰더라도 어린이 살림길하고는 동떨어진 동심천사주의나 ‘문교부 작문교육’에 갇히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해에는 총무 일을 맡은 어느 해직교사가 ‘회비 5000만 원’을 빼돌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모임은 어떻게 열고 어떻게 꾸리며 어떻게 나아갈 적에 스스로 ‘아름몸’을 이루면서 ‘사랑모습’이라는 빛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할 때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아무나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을 맡지 않을 노릇이되, 누구나 나라지기나 벼슬꾼을 맡아도 될 만큼, 우리 모두 고르게 눈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며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숨결로 설 노릇이어야 알맞습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만 길잡이나 일꾼 노릇을 해야 하지 않아요. 누가 어느 자리에 앉든 알맞고 아름답게 살림살이를 북돋우는 일꾼으로 설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글쓰기를 다루거나 가르치는 일을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우리 삶을 살림짓는 손길과 눈길로 풀어내어 사랑스럽게 숲빛으로 담아낼 줄 아는 글이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숲목숨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리는 밥옷집은 숲들메바다에서 비롯합니다. 숲빛과 들빛과 멧빛과 바다빛으로 물들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서기에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으로서 문득문득 그날그날 글살림을 짓고 말살림을 펼 뿐입니다.

  우리는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림을 짓는 손길로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몸짓(연극)도 하고 이야기도 짓고 두런두런 두레를 이루어 일하고 놀이하고 쉬는 사람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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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9일

오늘 부산 마을책집 <카프카의 밤>에서 

'이응모임'을 꾸립니다.

오늘 나누는 밑글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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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이응모임” 12걸음

―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때 : 2025.4.19.토. 19시 30분

곳 :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 밤〉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일하는 아이들》을 미리읽기, 또는 〈카프카의 밤〉에서 사기



줄거리

가. 하루글

 ㄱ 하루를 읽기

 ㄴ 늘 다른 하루

 ㄷ 어제 오늘 모레

 ㄹ 작은집에서 옹기종기

 ㅁ 철이 흐르다


나. 하루쓰기

 ㄱ 일기검사

 ㄴ 일기를 쓸 틈

 ㄷ 숙제를 할 짬

 ㄹ 준비물 살 돈

 ㅁ 집안일 집살림


다. 글씨

 ㄱ 한글을 배우지만

 ㄴ 동심천사주의와 교과서

 ㄷ 캐릭터북과 문해력

 ㄹ 어린이한테 안 묻다

 ㅁ 교육전문가끼리


라. 일없는 아이들

 ㄱ 자가용으로 모신다

 ㄴ 학원버스로 모신다

 ㄷ 집안일은 누가?

 ㄹ ‘살림’을 본 적 없는

 ㅁ ‘졸업장’과 성과


+


열두걸음 : 하루글·하루쓰기


  우리는 그냥그냥 쓰는 말글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학교’에서 쓰거나, ‘사회’에서 쓰거나 ‘정부·공공기관’에서 쓰거나 ‘언론’에서 쓰거나 ‘책’에서 쓰면 곧이곧대로 외워서 따라해야 하는 듯 잘못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직 학교에서는 ‘일기’를 쓰라고 얘기하고, 정부와 언론은 ‘일기예보’를 내놓습니다. 한글로 옮기면 ‘일기’이되, ‘日記·日氣’인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어린이한테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여기에 ‘一技·一紀·一氣·一期’처럼 한자로 적는 다른 낱말이라면, 아이어른 모두 무슨 말인 줄 더욱 못 알아차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말에 ‘일기’란 없습니다. 중국말이거나 일본말입니다.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쓸 수도 있되, 굳이 ‘일기’를 써야 할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말로 어린이부터 부드럽고 수월하게 알아들으면서 어른도 널리 생각을 나누는 낱말을 우리 나름대로 ‘사투리’로 새롭게 짓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일본말씨라고 여길 만한 ‘日記’는 ‘하루를 적다 = 하루쓰기 = 하루글’로 이야기할 만합니다. ‘日氣’는 ‘하루를 읽다 = 하루읽기 = 하루길’로 이야기할 만합니다. ‘일기(日氣)’를 놓고는 진작부터 ‘날·날씨’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날이 어떤가?”라든지 “날씨는 어떨까?” 하고 으레 말합니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날씨알림·날씨얘기’처럼 누구나 쉽게 곧바로 알아들을 말로 하루길이 어떠한가 하고 들려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정부와 언론이 ‘날씨알림·날씨얘기’처럼 말을 바꾸어야 알맞다고 목소리를 내지 못 합니다.


  아이를 낳거나 돌본 어른이라면, 다음처럼 이야기를 해보았을 만합니다. “자, 이제 일기를 쓰자.” “일끼? 일귀? 잇기?” “일기.” “일기? 일기가 뭐야?” “일기는 오늘 하루 지낸 이야기를 쓰는 글이야.” “오늘 하루 이야기? 그러면 오늘쓰기? 하루쓰기?”


  어린이한테 ‘일기’는 매우 어려운 낱말입니다. 열세 살이 아닌 열여섯 살이나 열아홉 살에 이르러도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에 이르러도 속뜻을 못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쓰기’나 ‘하루쓰기’라 하면 이내 알아차리면서 오늘과 하루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글모음을 꾸리면서 ‘하루글·하루쓰기’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뜻깊으면서 빛날 만한지 가만히 밝혔습니다. 먼 옛날이나 앞날이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 스스로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겪고 마음을 기울인 대로, 우리 손끝으로 찬찬히 적어 보자는 뜻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늦잠이었다면 늦잠 이야기를 쓰면 됩니다. 오늘 아무것도 안 풀려서 아무 일도 못 했다면 이대로 쓰면 됩니다. 오늘 어쩐지 잘 풀렸으면 잘 풀린 그대로 쓰면 됩니다. 오늘 싫거나 좋거나 괴롭거나 반가운 일이 있으면 모두 그대로 쓰면 됩니다. 얻어맞았다든지 동생을 돌본 하루도 그저 그대로 쓰면 됩니다. 스스로 오늘을 읽고서 말할 수 있을 적에 스스로 자랍니다. 스스로 하루를 헤아리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적에, 이 하루를 스스로 그리는 꿈과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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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4.6. 버스살이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4월 5일에 장흥에 마실했습니다. 모르는 분은 모르는데, 서울·큰고장에서는 이웃고을을 오가는 길이 그냥그냥 수월하지만, 시골에서는 이웃고을을 오가려면 크게 돌아야 합니다. 자가용으로는 1시간 길이라면, 시골버스와 시외버스로 돌고돌아서 5시간 남짓 걸립니다.


  길그림으로 보면 고흥하고 장흥은 맞닿지만, 둘 사이를 잇는 시외버스는 2015년 무렵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고흥과 목포를 잇는 시외버스가 장흥을 거쳤는데, 이 길이 사라졌거든요.


  엎어지면 코 닿을 길에 있는 이웃고을을 오가자면 거의 서울·부산을 다녀오는 길인 터라, 길바닥에서 한참 보냈습니다. 하루 사이에 길바닥에서 오래오래 보내는 동안 손으로 글을 꽤 많이 쓰기는 했으되, 고흥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죽은듯이 여덟 시간쯤 곯아떨어졌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집이란 가장 아늑한 곳입니다. 살림살이도 일거리도 누구나 집에서 건사할 적에 몸이며 마음이 그야말로 포근하면서 즐거울 테지요. 그래도 우리집에서 못 본 벚꽃을 어제오늘 한참 보았습니다. “논밭짓는 시골”에서는 벚나무를 보기 어렵지만, “마실하는(관광지) 시골”에서는 벚꽃잔치가 한창이더군요.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재미난, 뜻있는, 즐거운 

버스 책이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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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꽃

― 마음을 노래하기 : 우리말로 시쓰기



곳 : 부천 원미동 〈용서점〉

때 : 2025.3.25.16시.

누가 : 파란놀(최종규).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쓴 사람.



〈마음꽃〉이란?


: 글을 잘못 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글’이란 “그린 말”입니다. 말을 그려 놓았기에 ‘글’입니다. 글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말이 없으면 아무런 글이 없어요. 글을 쓰고 싶다면 말을 하면 됩니다. 다만, 사람들 앞에서 왁자지껄 떠들어야 말이지 않아요. 내가 나로서 어떤 마음인지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밝히면서 나타내려고 하기에 비로소 ‘말’입니다. 마음소리인 말을 손수 옮기기에 글입니다. 〈마음꽃〉이란, 우리가 스스로 우리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고 담아서 나누려고 할 적에 저절로 꽃이 피어난다는 뜻으로 펴는 노래쓰기(시창작) 자리입니다.



〈마음꽃〉을 나누는 길


ㄱ.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어떤 말로 담아서 서로 나누는지 먼저 차분히 짚고 돌아봅니다.


ㄴ. 우리는 늘 ‘우리말’을 하지만, 정작 우리말이 무엇인지 거의 모릅니다. ‘순우리말(토박이말)’이어야 우리말이지 않습니다. 나와 너를 아우르는 말이기에 우리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 ‘나 + 너 = 우리’를 이루려고 서로 마음을 잇는 말”처럼 뜻풀이를 새로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ㄷ. 우리말 : 누구나 스스로 뜻과 생각을 나타내고 나누면서, 너와 내가 ‘우리’로 어울리는 길을 여는 즐거운 마음소리. 너하고 나를 아우르면서 나누는 말. 우리가 쓰는 말. 우리나라 사람이 쓰는 말. 우리가 예부터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쓴 말. 우리가 스스로 삶을 짓고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나누고 하루하루 즐겁게 일군 말. 우리 스스로 생각해서 쓰는 말. 우리 나름대로 삶을 가꾸고 지으면서 나란히 가꾸고 지어서 쓰는 말.


ㄹ. 낱말뜻을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기대어 살피지 않습니다. 모든 말은 바로 “우리 스스로” 지어 왔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나처럼 너처럼 우리처럼 수수한 누구나 스스로 이 살림자리에서 지은 ‘우리말’인 터라, 우리는 이 〈마음꽃〉을 펴면서 “그저 우리말에 담은 나와 네 마음”을 읽기로 합니다.


ㅁ. 말빛과 말결과 말씨를 찬찬히 짚고 나서, 문득 낱말 하나를 글감으로 삼아서 쪽글을 적어 봅니다. 손바닥만 한 조그마한 종이에 열 줄 안팎으로 나와 너를 아우르는 이 삶에서, 나는 나로서 내 이야기가 무엇일까 하고 헤아리면서 내 손으로 사각사각 글을 적어 봅니다.


ㅂ. “입으로 하는 말”을 “손으로 담는 글”을 여민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마음을 말로 이으니, 다시금 이 마음과 마음을 글로 여미기도 합니다.


ㅅ. 남한테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라, 바로 내가 스스로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내 마음을 다스릴 이야기”를 씁니다.


ㅇ. 내 나름대로 내 말씨로 쓴 글을 살며시 손질해 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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