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5.6. 찍히는 재주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지난 어린이날에 전남 고흥군 팔영체육관에서 ‘어린이날 큰잔치’가 열렸습니다. 작은시골에서 편 작은잔치입니다. 서울·큰고장에서는 어린이를 헤아리는 이런저런 자리나 잔치가 제법 있으나, 시골에서는 몹시 드뭅니다. 또는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고흥에서 1979해에 태어나신 분이 어릴적에는 ‘고흥동초등학교’ 어린이가 1800이 넘었다는데, 제가 2011해에 고흥에 깃들 즈음에는 1200즈음이었습니다. 2026해에는 610입니다. 이듬해에는 600이 무너질 테고, 가장 큰 읍내 어린배움터조차 머잖아 ‘닫을(폐교)’ 걱정을 해야 할 판입니다.


  사라질곳(인구소멸지역)이란, 어린이부터 사라지는 곳입니다. 푸름이가 떠나는 곳이며, 젊은이가 안 돌아오는 곳입니다. ‘스물∼쉰 살’ 사이가 텅텅 비는 곳이면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즐겁게 뿌리내려서 길이길이 보금자리를 지을 꿈을 씨앗으로 심을 수 없다고 여기는 곳입니다.


  서울·큰고장도 어린배움터가 줄어들어요. 무엇보다도 어린배움터가 배움자리 노릇을 잊거나 잃기도 합니다. 푸른배움터는 이미 망가졌습니다. 너른터(운동장)가 놀이터 노릇을 못 할 뿐 아니라, 배움마실(수학여행)을 푸름이 스스로 즐겁게 짜서 온나라를 넓고 깊게 마주하는 길하고 멀어요. 게다가 겨룸마당(대학입시)만 쳐다보도록 내모는 얼개를 안 바꾸는 나라이고, 어린이·푸름이를 ‘볼모’로 잡는 ‘학원장사꾼’이 드잡이를 하는 판입니다. 불늪(대학입시)을 없앤다면 바로 ‘학원장사꾼’이 돈벌이를 잃을 테니까 나라가 휘청할 수 있는데, 불늪에 어린이·푸름이를 몰아넣고서 돈을 벌어야 서울살이(문화생활)를 버티는 얼거리란, 아예 나라가 무너져도 돈만 벌면 된다고 여기는 마음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땀흘리는 벼슬꾼(공무원)도 많지만, 적잖은 벼슬꾼(공무원)은 달벌레(월급루팡)라고 느낍니다.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고, 안 시키면 안 움직이는 벼슬꾼이라면 달벌레입니다. 맡아야 하는 대로만 맡고, 새일이 생기면 낯을 찌푸리면서 손사래치거나 얼른 치우려고 한다면 달벌레입니다. 벼슬꾼이 하도 일을 안 하는 탓에 ‘찾아가는’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합니다. ‘찾아가는’이란 말이 없이 먼저 스스로 찾아다녀야 맞으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1990해 무렵에 1800이던 어린이가 2026해에 610으로 뚝 떨어질 때까지 고흥교육지원청과 고흥군청은 벼슬꾼이 일을 안 했다는 뜻입니다. 손을 놓았고, 마음을 안 썼고, 외려 이곳 어린이와 푸름이가 더 빨리 서울·큰고장으로 떠나라고 등떠밀었다는 뜻입니다.


  ‘찍다·찍히다’라는 낱말은 여러모로 씁니다. 지난날에는 도끼로 나무를 찍어서 기둥이며 서까래에 들보로 삼거나 땔감으로 쓰는 일을 가리켰습니다. 한때 찰칵찰칵 찍는 일을 가리켰고, 이제는 “미운털로 찍히는 사람”을 으레 가리킨다고 느낍니다. 살림을 짓는 삶을 가꾸면서 사랑을 이루자고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찍힌’다고 느껴요. 온나라가 아름다우려면 ‘맞말(맞서는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바꾸고 가꾸고 고치고 손보는 길로 갑니다. 온나라가 안 아름답다면 맞말을 내치거나 귀를 닫으면서 달벌레살이를 할 테고요.


  그나저나 고흥군 어린이날 큰잔치가 있었다고 알리는 조그마한 자리를 보여주는 그림 한 칸에 파란놀 씨가 가운데에 찍혔습니다. 군수님도 국회의원님도 군의원님도 도의원님도 교육장님도 아닌 제가 찍힌 그림이 나오니 깜짝 놀랄 일입니다. 어린이는 얼굴꽃(초상권) 때문에 섣불리 낼 수 없으니, 큰잔치 모습 한켠을 찍어서 내놓았을 텐데, 어쩐지 이런저런 잔치자리에 도움이로 일하러 가면 으레 찰칵찰칵 찍힙니다. 잘은 몰라도 “찍히는 재주”는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https://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0328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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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5.4. 어린이날 큰잔치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어린이날에

전남 고흥읍에서

어린이랑 글놀이꽃을 폅니다.


고흥군청을 거쳐서

미리 자리를 잡은

31분한테는

손글씨 노래꽃을

하나씩 드립니다.


오늘 낮까지 노래꽃을 새로 쓰고서

옮겨적느라 땀을 살짝 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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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6.5.2. 글판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글일을 늘 하노라니 종이를 엄청나게 쓰고, 글판을 자주 갑니다. 글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서울을 일찌감치 떠나서 들숲메에 깃들 노릇이라고 봅니다. 밑글을 쓰든 책을 내든 푸른숲에서 우거진 나무를 베어야 하는 길이니, 보금자리 곁에서 나무를 심고 돌보는 나날을 보내야 맞습니다.


  종이도 오지게 쓰지만, 글판도 때 되면 갈아야 하는데, 묵은 글판을 치우고서 새로 글판을 놓으면, 아직 손길을 덜 탄 글판은 뻑뻑하고 손목이 시큰합니다. 제가 꿰는 고무신은 열 달을 신고서 갈아요. 열 달이 지나면 바닥이 찢어지고 구멍이 나기도 하지만, 신 뒤꿈치가 다 떨어져서 더는 못 뀁니다. 오래 쓴 글판은 안 눌리거나 뻑뻑하거나 헐겁습니다. 이러구러 우리집에는 글판을 셋 놓는데, 새로 글판을 들이려고 살피면서 ‘alt·ctrl’ 글쇠가 둘이 아닌 하나만 있는 글판이 갈수록 늘어나는 줄 느낍니다. 굳이 글판에 불이 반짝반짝 들어오기도 합니다.


 종이라면 붓을 놀려서 글을 쓰기에 어울리면 됩니다. 종이가 너무 반들반들하거나 너무 멋스러우면 오히려 붓이 안 먹어요. 글판도 겉멋을 부리거나 부피·크기·무게를 줄이는 데에 너무 얽매이면 거꾸로 글치기에 나쁩니다.


  바탕(기본)을 다질 종이요 글판입니다. 종이란, 글을 쓰려는 사람이 담을 이야기를 바로바로 척척 담아서 오래 건사할 수 있어야 제몫을 한다고 여깁니다. 글판이란, 글을 치려는 사람이 손끝을 가볍고 수월하게 놀리면서 오래오래 곁에 둘 만해야 제몫을 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책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책도 여러모로 꾸밈새(디자인·편집)를 따질 노릇이되, 꾸밈새에 너무 기울다가는 정작 책이라는 종이꾸러미에 담을 이야기나 줄거리가 후줄근하거나 허술하거나 어설퍼요.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글은 어떨까요? 치레(격식·형식·예절·문학성·가독성)를 지나치게 따지면, 말글이 아닌 겉치레로 그칩니다. 말치레나 글치레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려는 말글일 노릇입니다. 겉멋이나 겉치레를 부리면 부릴수록 얼핏 ‘문학적 표현’ 같아 보일지라도 그저 쭉정이일 뿐입니다.


  말을 잘해야 하지 않습니다. 얼굴은 잘생겨야 하지 않습니다. 돈은 잘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름은 잘나야 하지 않습니다. “말을 잘하기”가 아니라 “말을 하기”로 가야지요.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얼굴”이어야지요. “돈을 잘 벌기”가 아니라 “일을 아름답게 하기”여야지요. “잘난 이름”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이름”이어야지요. 자꾸자꾸 온나라가 ‘속’이 아닌 ‘겉’으로 휩쓸립니다만, 껍데기를 벗지 않고서야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말글이라고 할 수 없고, 책이라고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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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4.19. 상업적·문학적·과학적·철학적·사회적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엄연’이라는 한자말이 있습니다. 혀짤배기 어린이는 이 한자말을 소리내기 몹시 힘듭니다. 뜻도 아리송합니다. 차츰 나이가 들며 온갖 책을 읽는 사이에 이렁저렁 뜻을 모르지는 않으나, 쉽게 소리낼 만한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써야 하는지 아리송하다고 느낍니다. ‘불우’ 같은 한자말은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아랫사람을 딱하게 깔보는 한자말씨입니다. 나쁜말이지 않습니다. 그저 이 한자말을 쓰는 자리는 깔보는 결일 뿐입니다.


  돈이 되거나 이름을 팔 만한 말글을 펴야 둘레에서 알아본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돈을 바라보는 분은 “돈이 될 만하다”라 말하지 않아요. 일본말씨로 ‘상업적’이라고 덧씌웁니다. 수수하게 글을 써서 책을 수수하게 팔고 살림돈을 수수하게 벌 적에도 틀림없이 “돈이 되는 글”을 쓰는 셈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이라는 이름을 내걸 적에는 “돈놓고 돈먹기”마냥 잔뜩 찍어내어 잔뜩 팔아치워서 목돈을 굴리는 늪으로 치닫습니다.


  요즘 같은 나날에 굳이 낱말을 하나하나 가리거나 따져서 써야 하느냐고 핀잔하거나 타박하거나 꾸짖는 분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나날일수록 어린이와 푸름이 곁에서 낱말을 낱낱이 가리고 따지고 돌보고 추리고 다듬고 보듬어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분이 차츰 늘어납니다. 갈수록 숱한 어린이와 푸름이는 ‘글눈(문해력·리터러시)’이 떨어진다고 여기지만, 어린이와 푸름이는 글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돈·이름·힘을 쥔 ‘어른 아닌 꼰대’인 분들이 글담을 단단히 치고서 “너희가 이렇게 어렵고 잘나고 멋진 한자말·일본말씨·옮김말씨·영어를 안 쓰고 배길 수 있어? 너희가 한자말·일본말씨·옮김말씨·영어를 한 톨조차 안 쓸 수 있어?” 하면서 높다란 벼슬자리에 또아리를 틀고서 팔짱을 끼며 내려다보는구나 싶어요. 바로 이 탓에 어린이와 푸름이가 고단하지요. 요즈음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펴는 배움책을 보면, 참으로 글이 매우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배우라는 책”인 ‘배움책(교과서)’이 아닌, 그저 달달 외워서 솎아낼(변별력) 잠자리채로 삼는 글늪입니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높이 올라갔으니 ‘내려가’거나 ‘내려옵’니다. 그저 내려가고 내려온다고 말하면 됩니다. 따로 ‘하산’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하산’쯤 그냥 써도 되지 않느냐고 여길수록 어린이가 괴롭고 푸름이가 고단합니다. 이제는 거의 잊히는 낡은 ‘백년가약’ 같은 말씨도, 우리가 어른이라면 새말을 쉽고 반짝이는 손끝으로 어질게 지을 줄 알아야 할 테지요.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메인(main)’은 없지만 ‘메인이벤트(main event)’는 있더군요. 우리 낱말책에 굳이 ‘메인이벤트’라는 영어를 실어야 할까요? 우리가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널리 쓸 쉽고 수수한 낱말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 어떻게 새말을 빚을 만한지 짚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을 다듬으려고 하기에 글을 다듬습니다. 삶을 가꾸려고 하기에 글을 가꿉니다. 겉모습을 꾸미니까 말과 글도 꾸미고 맙니다. 누구나 다른 몸과 키와 마음이기에, 잘나거나 못난 몸도 키도 마음도 없어요. 그러나 ‘상업적’과 ‘전문적’과 ‘과학적’과 ‘문학적’과 ‘교육적’과 ‘철학적’과 ‘사회적’이라는 허울을 자꾸 앞세우는 나라입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억누르는 ‘문해력·리터러시’ 돌더미를 자꾸 만들어 내고야 맙니다. 이제는 “알맞고 즐겁게 돈을 벌어서 널리 나누는 길”을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어린이 곁에 서서 쉽고 수수하게 주고받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살피는 참한 어른”으로 다시 배우고 새로 익혀서 어깨동무할 일이지 싶습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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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4.10. 잎물 한 모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둘레에서는 늘 건드립니다. 우리말 ‘건드리다’는 가볍게 대거나 살짝 닿는 몸짓도 가리키지만, 일부러 긁거나 할퀴려고 자꾸자꾸 부아를 일으키려는 몸짓도 가리킵니다. 한자말 ‘자극(刺戟)’도 매한가지입니다. 더구나 우리말 ‘건드리다’는 이웃이나 동무를 함부로 괴롭히는 짓까지 담아내요.


  누가 우리를 ‘건드릴’ 적에는 반가울 수 있되, 서운하거나 싫거나 끔찍할 수 있습니다. ‘건드리’는 손짓은 좋거나 나쁘지 않아요. 그저 우리가 늘 새롭게 배우는 길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인 ‘건드리기’입니다.


  저는 늘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노라니, 둘레에서 저를 일부러 건드리려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반갑게 다가와서 말을 섞거나 노래하려고 어깨를 톡톡 건드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최종규 씨라고 해도, 이런 말까지는 못 고치고 못 바꾸겠지?” 하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건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네깟놈이 뭔데 내 글을 그렇게 고쳐쓰라고 해?” 하면서 건드리려는 분도 있고요.


  열 해쯤 앞서 어느 날 어느 이웃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다른 말은 다 우리말로 바꾸더라도 ‘차·다(茶)’는 어쩌시렵니까? ‘차’와 ‘다’는 못 바꾸겠지요? 바꾸더라도 ‘차’와 ‘다’라 하는 맛을 못 살리겠지요?” 하고 한마디를 하시더군요. 이웃님 말을 가만히 듣고서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러고서 “저는 물을 그냥 물로 마실 뿐, 따로 끓이거나 달여서 마시기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물부터 제대로 알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우리 몸을 이루는 수수께끼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숨결을 이루는 몸에 깃든 실마리를 풀거든요. 사람은 따로 끓이거나 달여서 물을 마시기는 하지만, 사람을 뺀 어느 짐승도 물을 안 끓이고 안 달여요. 게다가 풀꽃나무한테 끓인 물을 조금이라도 주면 그만 타죽거나 시들거나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요. 사람은 참 유난하지요. 그냥 마시면 될 물을 굳이 끓이니까요. 그런데 국이나 찌개는 끌인 물이고, 밥도 끓여서 먹는 낟알인데요, 임금님이나 벼슬아치나 나리는,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안 하는 채, 또 논밭을 일구지 않으면서, 심부름꾼이 바치는 ‘끓인물’과 ‘달인물’을 마셨을 텐데, 수수하게 논밭을 일구고 살림을 짓는 흙사람과 들숲사람이라면 ‘차·다’를 어떻게 여기고 풀어낼는지 헤아려 볼 만하구나 싶습니다.” 하고만 말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맺고서 여러 해 헤아렸어요. 이때 뒤로 곧잘 ‘끓인물·달인물·우린물’을 곰곰이 즐기고 돌아보았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쑥잎과 감잎을 그만 ‘덖’기로 하면서, 그냥 햇볕말림으로 ‘쑥내림물’과 ‘감잎우림물’을 마시기로 하면서 문득 눈을 반짝였습니다. “옳구나, 모든 ‘차·다(茶)’는 잎이로구나. 잎을 나물로 안 삼고 물로 삼는 ‘차·다(茶)’라면, ‘잎으로 내린 물’이야. 그러니까 ‘잎내림물’이고, 단출히 ‘잎물’이라 하면 어울리구나. ‘내림물’이나 ‘꽃물’이나 ‘꽃내림물’이라 할 때도 있을 테고.” 하고 혼잣말이 터졌습니다.


  길은 하루아침에 찾아내어도 즐겁습니다. 삶길을 여러 해에 걸쳐서 찾아보아도 기쁩니다. 말길을 열 몇 해나 서른 몇 해 만에 풀어도 새롭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잎물’을 마시고, ‘잎물그릇’을 받아들입니다. ‘잎’을 떠올리면서 물을 끓이거나 달여서 우리거나 내리면, 나무 한 그루가 베푸는 푸른숨빛에 서리는 햇볕과 바람결을 살랑살랑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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