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4.


《청춘의 독서》

 유시민 글, 웅진지식하우스, 2025.4.30.



노래를 쓰는 꾸러미 하나를 부산에 놓고 온 듯싶다. 노래꾸러미(시창작수첩)를 너무 많이 들고 다니는가 싶으나, 여러 갈래로 쓰자니 꾸러미가 달라야 글을 추스르기에 수월하다. 나래터(우체국)에 가려던 일을 쉰다. 이불을 볕에 말리고 빨래를 한다. 작은아이가 끓인 밥을 먹고서 쉰다. 조용히 해바라기를 한다. 꽃이 핀 돌나물을 훑는다. 마당과 뒤꼍을 둘러싼 멧딸기를 누린다. 쌓은 책을 읽는다. 《청춘의 독서》가 다시 나와서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나는 책집에 서서 옛판을 두어 벌 읽은 적 있다. 굳이 안 읽어도 될 줄거리이지만, 유시민 씨를 좋아하는 이웃님이 많아서 ‘이웃님은 어느 대목과 어떤 글결을 좋아하나?’ 하고 마음을 나누려고 여러 벌 읽어 보았다. 열 몇 해째 드나드는 책집을 일구는 이웃님도 유시민 씨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시 읽었다. 이러다가 새삼스레 깨닫는다. 유시민 씨는 “그냥 촉새”가 아닌 “촉새 흉내”로구나.


조금이라도 눈이 밝다면 “청춘의 독서”라는 책이름이 무늬만 한글인 “그냥 일본말씨”인 줄 안다. 유시민 씨가 아닌 ‘저짝놈’이 쓴 책에 이런 이름을 붙였으면 허벌나게 화살을 맞고 까였을 테지만, “촉새 흉내”인 유시민 씨가 쓴 책이라서 그다지 까이거나 화살을 맞을 일도 없다. 유시민 씨는 “친절한 척하지만 조금도 친절하지 않도록 ‘고전명작’이라 일컬을 책을 ‘나무위키’ 비슷하지만, 나무위키보다는 조금 ‘고상하게 대학입시 언어영역 문제풀이’를 닮은 글”을 선보인다.


우리집 곁님은 《백경》이라는, 또는 《흰고래 모비딕》이라는 책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 곁님이 바라마지 않는 온갖 한글판 《백경》이며 《흰고래》를 손에 닿는 대로 살림돈을 탈탈 털어서 장만해서 바쳤다. 부산이웃님 한 분도 《백경》을 사랑하셔서 〈북카페 백경〉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책집을 차리셨는데, 책집지기 이웃님보다는 우리집 곁님이 먼저라서, 아주 드물게 겨우 만날 수 있는 《백경》은 언제나 곁님한테 사드린다.


스물 몇 해 앞서 서울에서 책동무 한 분이 “최종규 씨라면 나중에 짝을 맺어서 아이를 낳을 텐데, 그럼 아이한테 읽힐 《머나먼 시리즈》를 사셔야겠는데?” 하고 불쑥 말씀했다. 《반지의 제왕》으로 널리 읽히는 톨킨 님이 남긴 책인데, ‘동서문화사 에이브문고’에서는 ‘머나먼’을 붙인 꾸러미로 냈다. 어느새 200자락 넘게 이웃책을 한글로 옮기는 책동무는 “나? 난 이미 이 책이 있지. 그런데 최종규 씨 책읽기 버릇으로 보면 이 책은 아직 안 샀을 듯해. 오늘 마침 아주 깨끗한 판으로 나왔으니까, 다른 책은 사지 말고 이 책부터 들여놔. 나중에 알 거야. 오늘 안 사면 아마 20년 뒤에 후회할걸?” 하더라.


책동무 말대로 나는 ‘동서문화사 에이브문고 머나먼 시리즈’를 거의 열다섯 해 동안 아예 한 쪽조차 안 펼쳤지만, 먼지가 앉을세라 틈틈이 닦고 털면서 건사했는데, 참말로 우리집 큰아이가 톨킨 책을 바라셔서 건네었더니, 다시 읽고 또 읽고 거듭 읽으면서 마르고 닳도록 아껴 주신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촉새 흉내”를 내는 유시민 씨는 《흰고래 모비딕》이나 《반지의 제왕》이라는 꾸러미를 놓고서 느낌글을 적으면서 이 나라 어른아이한테 읽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 꾸러미를 여러 벌 되읽고서 이 꾸러미를 오늘날 우리한테 읽으라고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날 이웃 젊은이한테 《미스 히코리》를 읽히고 싶다. 그림책 《생쥐와 고래》라든지 《펠레의 새 옷》을 읽히고 싶다. 그림책 《아기 물개를 바다로 보내 주세요》라든지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라든지 《닉 아저씨의 뜨개질》을 읽히고 싶다. 그리고 《영리한 공주》라는 동화책은 소리내어 100벌쯤 읽고 읽힐 노릇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유시민 씨는 제발 “촉새 흉내”가 아닌 ‘촉새’가 되기를 빈다. 그러니까 “들숲메와 마을 사이를 잇는 날갯길”이라는 ‘새’가 되기를 빈다. 말많은 흉내를 하면서 돈·이름·힘을 거머쥐려는 바보 ‘흉내’가 아니라, 가볍지만 야무진 깃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이으면서 노래를 베푸는 ‘새’가 되기를 빈다.


예순 살에 이르고도 나이만 먹으면서 ‘새’로 거듭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만 골(뇌)이 썩고 만다. 유시민 씨 스스로 외친 말씀이지 않은가? 새처럼 살아가지 않고, 새바라기를 하지 않으며, 새노래를 늘 부르는 사람으로 서지 않을 적에는, 나이 예순 살이 아닌 마흔이나 스물에도 그만 골이 썩거나 곪을 수 있다.


골이 썩지 않기를 바란다면 《80세 마리코》 같은 만화책을 읽고 널리 알리시기를 빈다. 골이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란다면 《우리 마을 이야기》나 《나츠코의 술》 같은 만화책이 다시 태어나기를 꿈꾼다고 외치시기를 빈다. 그리고, 드디어 한글판이 새로 나오는 《토리빵》을 이레에 걸쳐서 천천히 읽고서 눈물에 젖어 보기를 빈다. 만화책 《토리빵》을 읽으면서 눈물과 웃음이 나란히 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골이 썩어문드러진 놈팡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젊은날에 할 책읽기란 ‘고전명작’이 아닌, ‘아름책’과 ‘사랑책’과 ‘숲책’이어야지 싶다. ‘고전명작·세계명작’은 나이 예순을 넘어설 무렵부터 “골이 안 썩도록” 곁에 두는 조그마한 꾸러미여야지 싶다. 젊은날에는 눈빛을 밝히면서 스스로 살림하고 사랑하는 씨앗 한 톨과 같은 책을 가슴에 품을 노릇이라고 본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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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3.


《탯줄은 끊은 지 오래인데》

 김정 글, 호밀밭, 2025.4.11.



쏟아지던 비는 새벽부터 잦아들더니 아침에는 구름이 걷힌다. 마당과 길바닥을 살핀다. 빗물이 다 마를 즈음에 두바퀴를 달린다. 논두렁을 가로질러서 면소재지 푸른배움터에 간다. 한갓진 ‘투표소’에 어느 아재가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우르르 일어나서 “형님 오셨습니까”라든지 “선배님 나오셨습니까” 같은 말소리가 터진다. 속으로 ‘뭔 짓이래?’ 하고 혼잣말을 한다. 이 나라에서 전라남도는 외쏠림이 가장 깊고, 고흥군은 으레 첫째둘째 사이를 오간다. 다들 뭘 보고서 찍을까? 나는 1∼8이라는 이름을 슥 훑고서 “9 어린이 : 어린이를 살피는 사람이 안 보여서 어느 누구도 찍을 수 없다.” 하고 적는다. 이윽고 가게에 들러서 수박을 한 통 장만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논둑길에서 땀방울이 맺는다. 앵두알은 붉게 익고, 초피알은 짙푸르게 굵는다. 《탯줄은 끊은 지 오래인데》를 즐겁게 읽었다. 글님이 ‘아이곁’ 이야기를 더 풀어낼 만하다고 느꼈지만, 이대로도 훌륭하다. 김정 님은 ‘아이를 훌륭히 돌본 하루’가 아닌 ‘아이하고 함께 자란 하루’를 풀어냈다. 아이 엄마요 ‘아줌마’인 이 책을 쓰신 분이 나라지기를 맡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줌마가 대통령·시장·군수·교육감을 맡아야 아이도 살고 어른도 살며 시골과 서울(도시) 모두 푸르게 깨어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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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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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31.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숲노래 밑틀·최종규 글·나유진 그림, 철수와영희, 2025.5.31.



새와 개구리와 바람과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가 아닌, 부릉부릉 왁자지껄 우글우글 같은 소리가 넘실거리는 부산 한복판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글살림을 여민다. 곁에 어떤 소리가 흐르는지에 따라서 글길이 바뀔 수 있겠지. 늘 푸른노래를 듣는 삶터라면 우리가 바라보는 이야기도 푸른숨결이게 마련이고, 늘 시끌소리에 갇힌 큰고장이라면 빛씨앗이 아니라 ‘옳고그름’이라는 줄거리에 기울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서울·큰고장에서 그냥그냥 하루를 온통 보내는 한해살이를 잇는다면, 애써 붓을 쥐어 글을 쓰더라도 ‘사랑으로 살림짓는 숲빛이 흐르는 마음’이 아닌 ‘이렇게 해야 옳고, 저렇게 하면 그르다는 굴레’에 마냥 휩쓸리겠다고 느낀다.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을 일곱 해에 걸쳐서 새로쓰고 고쳐쓰고 다시쓰는 길을 거쳐서 내놓는다. 얼핏 조그마해 보이는 꾸러미인데, 이레나 달포가 아닌 일곱이라는 해가 흐르는 나날을 두고서 가다듬었다. 일곱 해를 더 다듬고서 2032년에 선보일 수 있지만, 일곱 해 뒤에는 이동안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살림말과 숲말 이야기를 쓰면 될 일이지 싶다. 지난 2018년에는 《우리말 동시 사전》을 막바지로 고쳐쓰는 동안 ‘문해력’이라는 일본말을 어떻게 풀고 품어서 우리말씨로 보듬을 적에 어울릴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동안 이 낱말 저 말씨를 헤매고 짚은 끝에 ‘글힘’과 ‘글귀’를 거치고 ‘글눈·글눈길·글눈빛’을 짚으면서 글읽기·글읽는·글읽꽃’ 같은 낱말을 혀에 얹어 보았다. 꼭 한 낱말로만 풀어야 하지 않다. 여러 낱말로 풀 수 있고, 앞으로도 더 생각을 기울여서 새말을 차근차근 지을 만하다. 어린이 곁에서는 ‘어린글눈’과 ‘어린글꽃’을 피우고, 푸름이랑 어깨동무하며 ‘푸른글눈’과 ‘푸른글꽃’을 피울 수 있다. 나부터 어른으로서 ‘어른글눈’과 ‘어른글꽃’이 피어나는 길에 밑흙이 될 수 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하루에 한나절은 책도 손전화도 없이 풀꽃나무와 해바람비와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새빛을 헤아리는 씨앗 한 톨을 일구는 틈을 누리기를 빈다. 우리는 누구나 어른으로서 하루에 한나절은 마음빛을 들여다보고 마음밭을 갈고닦고 마음씨를 심으면서 마음노래를 들려주는 어진 마음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빈다. 다 다른 우리가 다 다른 삶말과 살림말과 숲말로 생각씨앗을 나눌 적에 이곳은 아름나라로 거듭난다고 본다.


“쉬운 말이 평화”이고, “쉬운 말이 사랑”이고, “쉬운 말이 숲”이고, “쉬운 말이 노래”이고, “쉬운 말이 집”이고, “쉬운 말이 삶”이고, “쉬운 말이 생각”이다. “쉬운 말이 씨앗”이니, 낱말외우기가 아닌 말익히기라는 살림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온누리를 그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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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30.


《나무의 시간》

 이혜란 글·그림, 곰곰, 2021.6.10.



새벽에 집안일을 추스르고서 아침에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두 아이랑 곁님이 보금숲에서 즐겁게 놀이살림과 배움하루를 누리기를 바라면서 고흥읍을 거쳐 부산으로 달린다. 석 달째 조금씩 여미는 글꽃(동화) 한 자락은 막바지이다. 북적이는 사람물결을 헤치고서 문현동 안골목을 거니니 햇볕이 넉넉하고 조용하다. 〈나락서점〉에 깃든다. 서서 고명재 씨 책을 읽는데, 이분은 2020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을 했다. 우리는 ㅈㅈㄷ뿐 아니라, ‘허울’에 안 기대면서 글빛을 일구는 살림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저녁에 〈책과 아이들〉에서 ‘동심읽기 첫걸음’을 편다. 《이거 그리고 죽어》하고 《마음 속에 찰칵》이라는 두 책을 어떤 눈빛으로 읽어내어 우리 스스로 어떤 살림씨앗을 저마다 마음에 심으면서 피어날 만한지 이야기한다. 한밤에 《나무의 시간》을 돌아본다. 나무는 즈믄해나 두즈믄해를 가볍게 몸살림을 잇는 이웃이다. 석즈믄이나 넉즈믄이라는 긴날을 우람나무로 서기도 한다. 오늘날 글바치와 그림바치는 “가지치기에 안 시달린 나무”를 거의 모른다. 예부터 사람들은 ‘마른가지’를 찾아서 나무를 했다. ‘산나무’를 벨 적에는 절부터 하고서 여름내 해바람에 말려서 썼다. ‘나무한살림’은 누구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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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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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29.


《낭비와 베끼기》

 아일린 마일스 글/송섬별 옮김, 디플롯, 2025.2.17.



비가 갠다. 큰아이가 힘껏 도와서 〈책숲 1019〉 55자락을 부친다. 한나절을 쏟았다. 고흥읍을 걷다가 ‘즈믄살 느티나무’ 굵은가지 하나가 부러진(또는 잘린) 모습을 본다. 이레쯤 된 듯싶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를 푸른꽃(천연기념물)으로 돌볼 줄 모르는 창피한 고흥군 민낯이다. 시골할배들은 아픈 느티나무 둘레에서 지겹게 술담배질을 한다. 시골할배도 창피하다. 나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하나도 못 느끼고 안 듣는다. 《낭비와 베끼기》는 “For Now”를 옮겼다. “오늘로는”이나 “이제는” 즈음일 텐데, 왜 굳이 책이름을 바꿨을까. 언뜻 보면 글쓰기란 ‘닳다·버리다(낭비)’ 같으나, 하루를 고스란히 들일 줄 알기에 ‘배울’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베끼’는 듯싶지만, 자꾸자꾸 옮기고 배우고 살피는 동안 스스로 새롭게 서는 눈썰미를 세우게 마련이다. ‘빈틈’이 많아서 모자라고 바보스러운 나를 받아들이기에, ‘틈’을 내어 배우고 익히면서 피어난다. 숱하게 헛발질을 하는 동안 천천히 피어난다. 긴긴 나날에 걸쳐서 꾸준히 틈을 내고 짬을 내는 사이에, “이제는” 어제하고 다른 나로 있고, “오늘로는” 모레로 나아가는 붓끝을 펼 만하다. 여기 있는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글결을 밝히자면 ‘오늘·이제’가 맞다.


#ForNow #EileenMyles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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