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6.


《순백의 소리 18》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9.8.25.



조용히 흐르는 바람, 구름에 가린 별빛, 한낮에 포근한 볕, 바야흐로 서울로 돌아가니 다시금 호젓한 시골. 어젯밤에는 마을에서 서울내기들 불꽃놀이로 시끄러웠다. 설이나 한가위를 맞이해 시골로 오는 서울내기는 이때다 하고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을 날린다. 밤에 얼마나 시끄러운 줄 모른다. 몇 해쯤 앞서 곁님이 그러더라. 서울에서는 폭죽도 불꽃도 못 터뜨리니 이때라도 시골에 와서 하는 셈이리라고. 밤새 시끄럽게 노는 사람이야 재미있을는지 모르지만, 저녁 여덟 시 무렵이면 이부자리 깔고 잠자리에 드는 시골사람한테는 이맘때 불꽃놀이가 얼마나 성가신지 모른다. 그러나 하루만 꾹 참고 지나가면 다시 한갓진 시골이 된다. 밤새 달아났던 새가 우리 집 뒤꼍으로 돌아와서 노래를 들려준다. 어느덧 몽글몽글 땅을 뒤덮는 봄까지꽃이 이쁘다. 《순백의 소리 18》을 겨울 끝자락을 보면서 읽는다. 열예닐곱걸음에 이를 즈음 좀 느슨해진다 싶더니 열여덟걸음에서 살짝 팽팽하게 살아나네. 악기를 켜며 배움길에 나서는 젊은이는 가락마다 서린 이야기랑 삶이랑 사랑을 새삼스레 되새긴다. 바람을 읽기에 줄을 뜯고, 바람을 부르기에 줄을 튕기며, 바람을 사랑하기에 줄을 어루만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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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4.


《달을 보며 빵을 굽다》

 쓰카모토 쿠미 글/서현주 옮김, 더숲, 2019.1.9.



빵을 즐겁게 구울 줄 아는 아이는 가장 수수하게 굽는 길이 가장 투박하지만 가장 즐길 만한 빵이라고 배운다. 솜씨가 붙으면 이모저모 다르게 해보아도 즐거울 테고, 투박하게 구운 빵에 이모저모 얹거나 섞거나 곁들여서 누려도 즐겁다. 손맛을 보태는 길이나 손멋을 키우는 길은 안 다르지 싶다. 길을 가되 틀에 매이지 않으면 되지. 길을 가꾸되 판에 박히지 않으면 되고. 겉을 꾸미지 않아도 겉모습이 빛날 수 있다. 속에 사랑을 환하게 담으면 겉모습은 저절로 피어나기 마련이다. 《달을 보며 빵을 굽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는 빵차림을 들려주는 책이 아닐까? 다만 옮김말은 매우 엉성하다. 빵굽기를 즐기는 큰아이한테 먼저 읽으라고 건네기는 했는데 어쩌면 꽤 못 알아들을 수 있겠구나 싶다. 더구나 책이름은 “달을 보며 빵을 굽다”라 붙였으나, 속에는 “빵을 만들다”처럼 ‘만들다’로 잘못 쓰기 일쑤이다. 하기는. 일본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제빵’이라 했으니, ‘제(製)’를 ‘만들다’로 엉뚱하게 옮기는 이 나라이다. 구워서 빵이되, 찌기도 하니 찐빵이다. 달흐름을 살펴 빵반죽이며 빵굽기를 헤아리는 길을 읽으려 한다면, 말 한 마디에 생각을 담아 마음을 살찌우는 길도 나란히 읽으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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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3.


《실종일기》

 아즈마 히데오 글·그림/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2011.3.11.



길을 잃기에 나쁠 일은 없다. 그저 길을 잃었을 뿐이다. 길을 잃었으니 헤맨다. 헤매는 일은 나쁘지 않다. 그냥 헤매면서 낯선 곳을 돌아본다. 낯선 곳을 돌아보니 나쁠까?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터를 디디면서 앞으로 새롭게 생각할 만한 이야기를 찾는다든지, 우리를 둘러싼 뭇숨결을 새삼스레 맞아들이곤 한다. 이제는 손전화 길찾기가 훌륭하기에 길을 잃거나 헤매는 사람이 드물겠지. 손전화도 길그림책도 없다시피 할 무렵 서울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부러 헤매면서, 길을 잃으면서 작은 헌책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길을 잃거나 헤매기에 찾는 빛이 많다. 여태 디딘 적 없던 곳을 디디면서 설레거나 놀라기도 한다. 《실종일기》는 길을 잃은 만화님이 아주 길을 잃고서 살아가며 겪은 하루를 그린다. 만화도 지겹고 술도 지겹고 무엇보다 삶이 지겨워 헤매면서 보낸 떨꺼둥이 나날을 들려준다. 이녁은 길을 다시 찾았을까? 모를 노릇이지. 헤맨 나날을 만화로 남기기도 했으니 어쩌면 이제 길을 더는 안 잃을는지 모르고, 슬그머니 또 헤매려고 낯선 곳으로 떠날는지 모르리라. 익숙한 틀로만 가면 배우지 못한다. 하던 대로만 하면 새롭지 않다. 잘하지 않다 싶으니 일부러 자꾸자꾸 해보면서 스스로 거듭나고 빛날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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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2.


《식물의 책》

 이소영 글·그림, 책읽는수요일, 2019.10.25.



주어도 사랑이고 받아도 사랑일 테지. 누려도 사랑이고 길어올려도 사랑이겠지. 사랑이 아닌 자리란 없고, 사랑이 아닐 곳도 없으리라. 풀밥즐김이가 하는 말 가운데 “고기가 되는 짐승이 불쌍하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밥이 되는 풀이나 열매도 불쌍하다”고 해야 할 테니까. 눈앞에서 죽는 개나 돼지나 소나 닭만 딱할까? 바닷물고기나 민물고기는 어떨까? 무엇보다도 사람들 삽질에 죽어나는 풀이나 나무는 어떠하지? 뭇목숨을 아낀다고 말하면서 밭일을 할 적에 ‘쓸모없는 풀’이라 여겨 여느 들풀을 마구 뽑아대는 사람을 보면 앞뒤나 겉속이 다르다고 느꼈다. 생각해 보자. 왜 들풀하고는 말을 안 섞을까? 왜 들풀이 들려주는 말을 들으려 안 할까? 왜 들풀에 흐르는 숨결을 안 느끼려 할까? 《식물의 책》을 처음 장만할 적에는 이 그림꾸러미를 지은 분이 풀소리나 풀말이나 풀얘기를 마음으로 들었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온통 다른 책이나 자료에 기대어 그림을 곁들이는 얼개이더라. 왜 마음으로 풀한테 바로 묻지 않고 책부터 뒤져야 할까? 왜 학술이름에 얽매이면서 터 들 숲 밭 골목 마을마다 다르게 돋는 풀살림을 옮기지 않을까? 사람마다 밥맛이나 김치맛이 다르듯 터마다 모든 풀노래가 다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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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1.

《북숍 스토리》
 젠 캠벨 글/조동섭 옮김, 아날로그, 2017.9.27.


책이 속삭인다. “처음 날 살 적에는 바로 읽는 듯하더니, 벌써 몇 해째 그대로 두니?” “그렇지. 하루하루 미루니 어느새 오늘이네. 오늘은 더 미루지 않을게.” 설을 앞두고 마을 빨래터 물이끼 걷기를 한다. 작은아이는 빨래터 물살에 띄울 대나무 배를 다 깎았으면서 집에서 다른 종이놀이를 하느라 바쁘다. 큰아이는 따라나선다. 1월 한복판 아직 시린 샘물을 느끼며 물이끼를 걷는다. 발을 말리면서 《북숍 스토리》를 편다. 발이 말랐다 싶을 무렵 책을 덮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을 할매가 우리를 보고 고맙다며 절을 한다. 우리도 꾸벅 절을 한다. 미역국을 끓일까 생각하며 큰아이하고 읍내에 저자마실을 다녀온다. 가게를 지나는 길에 ‘산딸기 치킨’이란 이름이 붙은 닭집이 새로 보인다. 튀김닭을 다루는데 ‘산딸기’란 이름을 붙인다니 무척 재미있는 곳이로구나 싶다. 무척 오랜만에 튀김닭을 장만하기로 한다. 저자마실을 하는 길에 책은 다 읽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버스에서 ‘부들’을 놓고 동시를 한 자락 적는다. 이러고도 틈이 남아 2분쯤 가볍게 눈을 붙이니 우리 마을로 돌아오네. 《북숍 스토리》는 퍽 허술했다. 300곳에 이르는 책집을 겉핥기로 다루기보다는 30곳쯤 알차게 다루는 틀이었다면 좋았겠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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