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토마토>에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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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5


아이들하고 호두에 땅콩을 함께 먹다가 문득 ‘견과’라는 낱말을 돌아본다. 언제부터 이 한자말을 썼을까? 아이들이 대여섯 살이던 무렵에는 ‘견과’라는 소리를 내기도 버거워 했는데, 그때에는 ‘땅콩·호두·잣’이라고만 뭉뚱그리고서 넘어갔다고 느낀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낱말책도 뒤적인다. 우리 낱말책에 ‘굳은열매’라는 올림말이 있지만, 거의 죽은말이다. 아무도 이 낱말을 안 쓴다. 그러면 그냥 ‘견과’를 써야 할까? 아니면 앞으로 태어나서 자라날 뒷사람을 헤아려 오늘부터 새말을 엮을 수 있을까? 무슨 호박씨 하나로 골머리를 앓느냐고 핀잔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지만, 해바라기씨를 즐겁게 까먹고 싶으니 마음을 기울이고 머리를 쓰고 생각을 여미어 본다.



단단알

우리 낱말책을 펴면 ‘굳은열매’가 올림말로 있다. 그러나 이 낱말을 아는 사람을 여태 못 봤다. 다들 그냥 으레 ‘견과·견과류’만 쓸 뿐이다. ‘견과 = 堅 + 果’이니, ‘단단 + 열매’라는 뜻이다. ‘굳은열매’는 잘 지었되, 제대로 알리거나 살리지 못 했다고 느낀다. ‘견고’ 같은 한자말은 ‘굳은’도 뜻하지만, 이보다는 ‘단단·든든·딱딱·탄탄’ 쪽에 가깝지 싶다. 그러니 ‘단단열매’로 돌아볼 만한데, 밤나무나 참나무나 호두나무는 ‘밤알·호두알’이라 하듯 ‘열매’보다는 ‘알’이라는 낱말로 가리키곤 한다. 그러니 ‘단단알’처럼 새말을 지어서 쓰자고 할 적에 어울리다고 느낀다. 또는 ‘굳알’처럼 ‘-은-’은 덜고서 단출하게 쓸 수 있다.


단단알 (단단하다 + ㄴ + 알) : 껍데기와 깍정이가 단단한 알. 껍데기와 깍정이로 단단히 감싼 알. 밤·호두·도토리·개암·잣에 땅콩·은행에 호박씨·해바라기씨이 있다. (= 단단열매·굳은알·굳은열매·굳알·굳열매. ← 견과堅果, 견과류堅果類)



난해달날

태어난 해랑 달이랑 날을 한자말로는 ‘생년월일’이라 하고 ‘생 + 년월일’인 얼개이다. 이 얼개를 조금 뜯으면, 우리말로 쉽게 “태어난 해달날”이라 할 만하고, 줄여서 ‘난해달달’이라 할 수 있다. ‘난날·난해’처럼 더 짧게 끊어도 된다.


난해달날 (나다 + ㄴ + 해 + 달 + 날) : 태어난 해·달·날. 몸을 입은 모습으로 이곳으로 나오거나 온 해·달·날. (= 난해난날·난날·난때·난무렵·난해. ← 생년월일)

난해달날때 : 태어난 해·달·날·때. 몸을 입은 모습으로 이곳으로 나오거나 온 해·달·날·때. (← 생년월일시)



마흔돌이

나이를 셀 적에 우리말로는 ‘살’이라 한다. 한자말로는 ‘세(歲)’라 하는데, 이 한자말은 높임말로 여기기도 하는데, 참 얄궂다. 왜 우리말로 나이를 세면 낮춤말이고, 한자말로 나이를 세면 높임말인가? 우리는 나이를 셀 적에 굳이 ‘살’을 안 붙이곤 한다. 스무 살이면 ‘스물’이라고, 여든 살이면 ‘여든’이라 한다. 이리하여 ‘마흔돌이’나 ‘마흔순이’처럼 가리킬 만하고, ‘마흔줄·쉰줄’ 같은 말씨는 꽤 널리 쓴다.


마흔돌이 : 마흔 살인 돌이. 마흔∼마흔아홉 살 사이인 사내. (← 40대 남성)

마흔순이 : 마흔 살인 순이. 마흔∼마흔아홉 살 사이인 가시내. (← 40대 여성)

마흔줄 : 마흔∼마흔아홉 살 사이인 나이. (← 40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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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온천 溫泉


 온천에라도 들러 → 포근샘에라도 들러 / 샘꽃에라도 들러

 온천광광을 계획하는 중이면 → 꽃샘마실을 생각한다면 / 푸근샘길을 살핀다면


  ‘온천(溫泉)’은 “1. 온천에서 목욕할 수 있게 설비가 된 장소. 또는 온천이 있는 곳 = 온천장 2. [지구] 지열에 의하여 지하수가 그 지역의 평균 기온 이상으로 데워져 솟아 나오는 샘. 온천의 온도 한계는 일정하지 않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5℃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광물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의료에 효과가 있다 ≒ 열천·영천·온정·탕천”을 가리킨다고 하는군요. ‘더운곳·더운데·더운터’나 ‘더운샘·더운씻이·뜨끈샘·뜨끈씻이’로 손볼 만합니다. ‘포근샘·푸근샘·포근씻이·푸근씻이’로 손볼 수 있고, ‘불가마·불솥’이나 ‘찜질샘·찜질집·찜질채·찜질칸‘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수수하게 ‘샘·샘물·샘길’이나 ‘샘빛·샘꽃·샘줄기’라 할 수 있어요. 새롭게 ‘꽃샘·꽃샘물·꽃샘빛·꽃샘길·꽃샘줄기’ 같은 낱말을 여미어도 어울려요. ㅅㄴㄹ



온천의 여명은 비록 산에 가려져 다소 늦지만

→ 더운샘은 비록 메에 가려 좀 늦게 동트지만

→ 뜨끈샘은 비록 메에 가려 살짝 늦게 밝지만

《유키×츠바사 8》(타카하시 신/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14) 137쪽


각종 노천온천에 그 지역의 신선한 재료로 만든 맛있는 요리가 나오고

→ 온갖 마당포근샘에 그곳 싱싱한 먹을거리로 지은 맛있는 밥이 나오고

→ 여러 한뎃푸근샘에 그 고장 싱싱한 먹을거리로 지은 맛밥이 나오고

《경계의 린네 23》(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6) 98쪽


이전에 온천 지역으로 떠들썩했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지역 전체의 활동이 정체해 버렸다

→ 예전에 샘마을로 떠들썩하던 모습이 거짓말인 듯 마을이 모두 가라앉아 버렸다

→ 한때 더운샘마을로 떠들썩하던 모습이 거짓말인 듯 마을이 모두 멈추어 버렸다

《동네서점》(다구치 미키토/홍성민 옮김, 펄북스, 2016) 39쪽


온천의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 트인포근샘에 몸을 담그고

→ 한뎃찜질샘에 몸을 담그고

《신들이 노는 정원》(미야시타 나츠/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 50쪽


무색투명하고 언뜻 평범한 온천물처럼 보이지만

→ 맑고맑아 언뜻 여느 더운샘물처럼 보이지만

→ 말갛고 언뜻 수수한 포근샘물처럼 보이지만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2》(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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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일본말] 마사토(まさど/磨砂土)



마사토 : x

まさど(眞砂土) : [광물] 마사토, 화강암이 풍화하여 생긴 모래


 마사토를 주문했다 → 굵은모래를 시켰다

 마사토를 적절히 조합하여 → 굵모래를 알맞게 섞어



  우리 낱말책에 없는 ‘마사토’는 ‘まさど/磨砂土’라고 적는 일본말입니다. 굳이 일본말을 그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말로 ‘굵은모래’나 ‘굵모래’로 나타낼 일입니다.



마사토와 진흙 잡석 사이

→ 굵모래와 진흙과 돌 사이

→ 굵은모래 진흙 잔돌 사이

《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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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니트NEET



니트(nit) : [전기·전자] 휘도(輝度)의 단위. 1니트는 1㎡당 1칸델라의 밝기를 갖는 겉면의 휘도이다. 기호는 nt.

NEET : 니트족(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젊은이)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ニ-ト(NEET) : 니트(족), (취업에 대한 의욕이 없는) 자발적 실업자,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 무직자. (= 無業者)



스스로 일을 안 하는 나날이라고 한다면 ‘일없다·일이 없다’라 할 만합니다. ‘맨손·맨몸’이나 ‘빈손·빈몸·빈그릇’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빈둥거리다·빈둥빈둥’이나 ‘피둥피둥·핀둥핀둥’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탱자탱자·하느작’이나 ‘놀다·노닥거리다’나 ‘뒹굴다·놀고먹다’로 나타낼 만하지요. 때로는 ‘빈둥이·노닥이’처럼 나타내어도 되고요. ㅅㄴㄹ



저와 똑같은 니트니까요

→ 저와 똑같이 노니까요

→ 저와 똑같이 뒹구니까요

→ 저처럼 핀둥대니까요

→ 저처럼 빈손이니까요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2》(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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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탁발순례



 전국 곳곳을 찾아간 탁발순례 → 나라 곳곳을 찾아간 모심길

 오늘부로 탁발순례를 종료한다 → 오늘로 동냥길을 마친다

 탁발순례의 길을 회상하며 → 손빛길을 떠올리며 / 꽃손길을 되새기며


탁발순례 : x

탁발(托鉢) : [불교] 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 가장 간단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 당시부터 행하였다 ≒ 행걸

순례(巡禮) : 1. [종교] 종교의 발생지, 본산(本山)의 소재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여 참배함 2.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절집에서 쓰는 한자말 ‘탁발’은 ‘동냥’을 가리킵니다. 절집을 비롯해서 어느새 제법 쓰는 ‘탁발순례 = 동냥 + 길’인 얼거리입니다. 동냥을 하더라도 한자말로 ‘탁발’이라고 말을 하면 좀 달라 보인다고 여기는 셈일까요? 절집이 펴려는 뜻이나 길이 나눔빛이요 어울림이자 수수꽃이라면, ‘동냥·동냥질·동냥길’이나 ‘동냥중·동냥스님’으로 나타낼 노릇이지 싶습니다. 동냥을 할 적에는 집집마다 돌면서 이웃집을 모시거나 섬긴다는 뜻일 테니 ‘모시다·모심길·모심손·모심질’이나 ‘섬기다·섬김길·섬김질·섬김손’이라 할 만합니다. 이웃집 손길을 받으면서 새롭게 넋을 북돋우려는 길이라고 한다면 ‘손길·손빛·손길꽃·손빛꽃’이나 ‘고운손·고운손길·꽃손·꽃손길·꽃돌봄’이나 ‘아름손·아름손길·아름돌봄·빛손·빛손길’이라 할 만해요. ‘바라지·받다·받아들이다·받아들임·받아주다’나 ‘베풀다·베풂길·베풂빛·베풂씨’나 ‘보태다·부축·이바지’라 해도 어울려요. ㅅㄴㄹ



탁발 순례 마치고 큰오빠 집으로 간 지 한달 만에 영영 가셨다

→ 동냥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끝내 가셨다

→ 모심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그저 가셨다

→ 꽃손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내처 가셨다

→ 섬김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아주 가셨다

《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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