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40 레임덕 파행 절름발이
― 말이 아직 말이 아닌 굴레
ㄱ
지난 2024년 10월 1일에 《푸른배달말집》(한실 엮음, 안그라픽스 펴냄)이 나왔습니다. 여섯 해에 걸쳐 흘린 땀방울을 그러모은 낱말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여태 나온 다른 낱말책은 그저 낱말만 더 많이 실으면 된다고 여기는 얼거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쓸 일이 없거나 아예 안 쓰는 중국말과 일본말과 영어와 독일말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 사람이름과 마을이름까지 뜬금없이 잔뜩 실었어요.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낱말책을 보면, 노르웨이사람, 오스트리아사람, 헝가리사람, 터키사람 …… 이름도 줄줄이 실었습니다.
낱말책이란, 낱말을 모은 꾸러미입니다. 우리가 듣거나 마주할 만한 낱말을 차곡차곡 담기에 낱말책이라 하되, 아무 낱말이나 다 싣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낱말책은 ‘낱말책’일 뿐, ‘이름책(인명사전)’이 아니기에 사람이름이건 마을이름이건 굳이 실을 까닭이 없습니다. 낱말책은 ‘풀책(식물도감)’이 아니라서 풀이름을 굳이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만, 낱말책은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이나 벌레이름을 이따금 담아낼 만합니다. 어느 풀이나 나무나 벌레를 둘러싼 삶·살림·사랑·숲을 익히는 길에 이바지한다고 여기면 넉넉히 담습니다. 또한 ‘나비·나무·벌레’ 같은 낱말이 어떤 뿌리요 결인지 차분히 짚으면서 다룰 줄 알아야 하지요.
《푸른배달말집》이라는 꾸러미가 나오는 길에 여러모로 거들기도 했고, ‘푸른배달말집’이란 이름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 꾸러미에 실린 적잖은 ‘새말’은 제가 지난 서른 몇 해에 걸쳐서 지은 낱말이기도 합니다.
쉼숲 : 쉬기 좋게 꾸민 숲. 또는 쉬기 좋은 저절숲 ← 휴양림
다만 여러모로 아쉽기도 합니다. 저는 ‘쉼숲·쉬는숲’이라는 낱말을 짓기는 했습니다만, 낱말뜻을 허술하게 붙이고 싶지 않아요. 저라면 ‘쉼숲’을 “쉼숲 (쉬다 + -ㅁ + 숲) : 몸과 마음을 느긋하거나 가만히 두면서 넉넉히 푸른숨을 맞아들이며 달래거나 풀어내는 숲. 마을에 조그맣게 꾸릴 수 있고, 아름드리로 우거진 숲을 품을 수 있다. (= 쉬는숲. ← 휴양림, 수목원)”처럼 다룹니다.
낱말을 새로 지을 적에는, 어느 낱말 하나를 훌륭하게 삼거나 아끼자는 뜻이 아닙니다. 낱말을 하나 새로 지으면서, 이 새말을 바탕으로 온갖 새말이 태어나는 밑동을 알리는 셈입니다.
제가 ‘쉼숲·쉬는숲’이라는 새말을 지을 적에는, ‘쉼몫·쉼삯(← 실업급여, 주휴수당)’이라는 낱말이 나란히 있으며, ‘쉼이레·쉬는이레(← 주말)’ 같은 낱말이 나란히 있어요. ‘쉼칸(← 화장실, 변소, 해우소, 측간)’이라든지 ‘쉼땅(← 휴경지, 휴한지, 정원, 휴양지, 공원, 아지트, 비밀공간, 은거지, 은신처, 밀실, 게토, 대피소, 피난소, 도피처)’에다가 ‘쉼고을·쉼고장·쉼마을(← 휴양지, 휴가지)’하고 ‘쉼날·쉬는날(← 휴일, 휴무일, 휴식일, 휴업일, 휴양일, 휴관일, 공휴일, 정기휴일, 안식일, 피정, 주말, 바캉스, 일요일, 주일)’ 같은 낱말도 나란합니다.
‘쉬다’라는 쉬운 낱말 하나를 어떻게 살려쓰면서 생각을 밝힐 만한가 하고 들려주는 꾸러미이기에 알뜰살뜰 누릴 낱말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낱말책이란, 낱말을 모으는 구실이 첫째에, 낱말을 누구나 스스로 엮고 짓고 펼쳐서 생각을 담는 길을 밝히고 알려주는 구실이 둘째입니다. 여기에, 낱말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길을 수수께끼를 풀듯 이야기로 들려주는 구실이 셋째입니다. 이러면서, 낱말 하나를 둘러싼 기나긴 삶과 살림과 사랑과 숲을 모든 아이어른이 어질면서 환하게 돌아보도록 속삭이는 구실이 넷째입니다.
쉬다 1 : 먹거리가 싱싱함을 잃어 맛이 시큼하게 되다
쉬다 2 : 목소리가 거칠고 흐리다
쉬다 3 : 고단함을 풀거나 몸을 고요히 하다
《푸른배달말집》은 ‘쉬다 1·2·3’을 단출히 다룹니다. 그러나 이 쉬운 세 가지 ‘쉬다’라는 낱말을 너무 단출히 다루었다고 느껴요. 이런 얼거리는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다른 낱말책도 좀 비슷합니다. 우리가 늘 쓰거나 자주 쓰거나 으레 쓰는 낱말일수록 오히려 너무 가볍거나 짧게 다루고서 지나가고 말더군요.
저라면 ‘쉬다’라는 낱말을 이렇게 다룹니다. “쉬다 ㄱ : 1. 일이며 놀이를 내려놓고서 몸을 가만히 두거나 있다. 바쁘거나 서두르거나 어렵게 하지 않으면서 알맞게 가려고 몸에서 힘을 빼고서 가만히 두거나 있다. 어렵지도 힘들지도 지치지도 않으려고 숨을 느긋이 마시면서 찬찬히 돌보면서 하거나 있다. 2. 더 움직이지 않거나, 더 일을 하지 않다. 몸짓이나 일을 멈추거나 그치다. 3. 몸에서 힘을 모두 빼고서 잠이 들다. 4. 어느 곳에 나가지 않다. 꾸준히 드나들거나 나가는 곳에 안 나가다. 5. 어느 일을 하거나 어느 길을 가다가, 살짝·한동안·조금·몇날 그대로 있다. 6. 어느 일을 하다가, 퍽 오래 하지 않거나, 아예 그만하다.”에다가, “쉬다 ㄴ : 제때에 먹지 않고서 그대로 두는 바람에 빛과 숨을 잃다. 맛이 가다. 싱그럽고 싱싱하게 살던 빛과 숨결이 사라지다. 시들시들하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바뀌다. 맛이 시거나 시큼하다.”에다가 “쉬다 ㄷ : 목을 너무 많이 쓰거나, 목을 따뜻하거나 느긋이 돌보지 않았기에, 목소리를 부드럽거나 또렷하게 낼 수 없다. 목으로 내는 말소리가 맛이 가다. 거칠거나 꺼끌꺼끌하거나 쇳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바뀌다.”에다가 “쉬다 ㄹ : 숨·바람을 마시고서 내보내다.”처럼 다루어야 제대로 낱말책 구실이라고 느낍니다.
저처럼 낱말책을 여미고 엮고 쓰고 추스르자면, 열 해는커녕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내도 낱말책을 선뜻 내놓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땅한 일인데, 어느 나라에서도 낱말책을 뚝딱 내놓지 않았습니다.
ㄴ
낱말책은 모름지기 나라에서 이바지돈을 대어야 비로소 제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두 해나 대여섯 해나 열스물 해나 쉰 해로는 어림도 없거든요. 무엇보다도 밑말(기본어휘)부터 제대로 다루어야, 이 밑말을 바탕으로 모든 다른 말을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나랏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쉼숲’을 비롯해서 ‘쉼날·쉼몫·쉼칸·쉼이레’라든지 ‘쉼뜰·쉼뜨락·쉼밭’ 같은 낱말로 뻗으려면 먼저 ‘쉬다’가 어떤 결이면서 뜻인지 차곡차곡 풀고 맺을 노릇입니다.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 낱말책을 여미려고 200해나 500해를 쓴 까닭을 살펴야 합니다. 200해나 500해를 쓰고도 꾸준히 가다듬고 손보고 추스르지요.
우리가 어떤 글(문학활동)을 쓰든, 글이란 말을 담아낸 무늬인 터라, 말부터 말답게 다루지 않는다면, 글꽃이 피지 않습니다. 말이 있기에 글이 있는 만큼, 글살림을 북돋우려면 말살림을 제대로 가꿀 일입니다. 낱말책이란, 우리 나름대로 먼먼 옛날부터 일구고 가꾸면서 나눈 열매를 그러모은 꾸러미여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낱말’이 아닌 ‘1000∼2000’ 즈음을 담은 작은꾸러미를 선보여요. 이러고서 ‘3000∼5000’ 즈음을 담은, 조금은 도톰한 꾸러미를 선보이지요. 이런 잔걸음으로 꾸준히 나아갈 적에 밑말부터 든든한 낱말책이 자리잡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1000낱말 작은꾸러미”라든지 “500낱말 더 작은꾸러미”부터 길을 나서지 않는 바람에 아무래도 뒤엉키고 뒤죽박죽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도 요즈음은 작은꾸러미가 제법 나오는데, 제법 나오더라도 섣불리 나오곤 합니다. 말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안 살피거나 못 헤아린 채 쏟아지는 작은꾸러미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ㄷ
서울(도시)은 시골이 있어야 살림을 잇습니다. 서울에는 논밭이나 숲을 안 두게 마련이라서, 더구나 서울에는 냇물이나 샘물이 맑게 흐르지 않아서, 서울사람은 모든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와 살림거리를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얻어야 하는 얼개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서울은 모두(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모인 곳이라 여기되, 막상 우리 밥옷집을 이루는 밑살림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들숲바다도 없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바로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비롯했습니다.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태어난 말을 가꾸고 가다듬고 갈고닦으면서 ‘글’이 깨어났고, 이 ‘글’이란 ‘말을 이루는 시골과 들숲바다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품게 마련입니다.
글을 글답게 쓰려면 말을 말답게 익힐 노릇인데, 말을 말답게 익히려면 먼저 시골과 들숲바다를 시골과 들숲바다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서 배울 노릇입니다. 이를테면, ‘바람’과 ‘해’와 ‘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글을 쓴다면, 바람도 해도 비도 엉성하거나 엉터리로 얹게 마련이에요. “햇살이 따뜻하다”라든지 “햇빛이 따갑다”는 틀린 말씨입니다. 햇살은 화살과 같아서 “햇살이 따갑다”라 해야 맞고, 햇빛은 빛깔을 펴는 바탕이라서 “햇빛이 밝다(맑다·환하다)”라 해야 맞고, “햇볕이 따뜻하다”라 해야 맞습니다.
글만 쳐다볼 적에는 이런 작은살림조차 잘못 쓰면서 잘못 쓰는 줄 못 깨닫고 못 배웁니다.
ㄹ
우리는 ‘무늬만 글’을 쓰거나 ‘무늬만 말’을 하는 셈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늬만 삶’이거나 ‘무늬만 살림’인 터이니, ‘빛나는 글’이나 ‘눈부신 말’이나 ‘즐거운 삶’이나 ‘사랑스러운 살림’을 영 모른다고 할 만합니다.
‘레임덕·파행·절름발이’라는 낱말 셋을 들어 보겠습니다. 굳이 어떤 뿌리인지 안 밝히고서 한글로만 먼저 적어 보았습니다. ‘lame duck·跛行·절름발이’입니다. 영어와 한자말과 우리말입니다. 셋은 그냥 ‘같은말(동의어)’입니다. 다만, 나라와 겨레마다 다르게 말을 할 뿐이기에, 어느 쪽이 옳거나 바른 낱말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말 ‘절름발이’라는 낱말을 쓰면 마치 따돌림말(차별어)로 삼기 일쑤인데, 한자말 ‘파행’이나 영어 ‘레임덕’은 따돌림말로 안 삼더군요. 우리는 왜 우리말을 따돌리려고 하는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모든 낱말은 그저 우리 삶 한켠을 담을 뿐입니다. ‘절름발이’라는 수수한 낱말은 ‘따돌림말’일 수 없어요. ‘따돌림말’이란 ‘비국민·비장애·비폭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옆나라 일본은 그들 나라부터 억누르고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면서 ‘비국민’이라는 뜬금없는 따돌림말을 지었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을 따르지 않으면 “넌 우리나라 사람이 아냐!” 하면서 따돌리려는 뜻을 담은 ‘비국민’이고, 이 말이 불거지면서 갖가지 ‘비(非)-’붙이 따돌림말이 생겼습니다. ‘비(非)-’를 붙일 적에는, 너는 왜 우리 무리에 안 끼느냐고 나무라고 윽박지르고 짓밟던 군국주의 군홧발을 그대로 담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뜻은 좋더라도 ‘비장애·비폭력’ 같은 말을 섣불리 쓸 수 없습니다. 어깨동무로 나아가려는 길이라면, 이쪽이건 저쪽이건 담을 허무는 길이어야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말이 아직 말이 아닌 굴레입니다. 말답게 말을 하거나, 글답게 글을 쓰기보다는, 겉모습에 얽매이고 치레를 지나치게 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르게 마련이라, 치마를 두르건 바지를 꿰건 그저 ‘옷’입니다. 요즈음은 “자리에 맞게 입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데, “자리에 맞지 않다”고 여기거나 나무라는 말씨가 바로 ‘비국민’이라고 을러대면서 괴롭히던 군국주의 일본 모습 그대로인 줄 알아볼 오늘날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구두를 신고서 모내기를 하건, 한겨울에 깡동바지 차림으로 걸어다니건, 스스로 즐기는 차림새일 뿐입니다. 이러한 겉모습이 아닌, “삶을 담은 마음을 옮긴 말을 그린 글”을 찬찬히 짚고 생각을 기울이는 길을 생각해 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ㅁ
또다른 세 낱말을 들겠습니다. ‘트라우마(trauma)·상처(傷處)·흉’입니다. 영어와 한자말과 우리말입니다. 요새 ‘흉’이란 우리말을 쓰는 분을 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잊히는 낱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어 ‘트라우마’이든 한자말 ‘상처’이든, 그저 우리 마음에 생긴 ‘흉·흉터’나 ‘멍·멍울’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마음흉’이나 ‘속흉’처럼 새말을 여미어서 새롭게 나타내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그저 수수하게 ‘흉·흉터’나 ‘멍·멍울’이라 하는 결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씻고 털 자리라고 여긴다면 수수한 말씨가 낫습니다. 좀처럼 마음이며 속내를 사랑하기 어렵다는 이웃한테는 ‘마음흉·속흉’처럼 따로 ‘마음-’이며 ‘속-’을 붙이는 말씨가 어울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더 헤아린다면, 우리 마음과 속에 깃든 멍과 흉을 달래는 일이라면 “트라우마 치유센터”처럼 엉성한 영어를 “마음멍 씻음터”처럼 풀기보다는 “마음쉼터”나 “포근터”처럼 아주 단출히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느껴요. 마음을 달래고 다스리고 씻을 적에는 굳이 ‘멍·흉’ 같은 낱말을 일터나 일에 더 붙여야 하지 않거든요.
‘국어(國語)’는 ‘나라말’이 아니라 ‘일본말’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못 느끼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왜 ‘초등학교’로 바꾸었는지 모르는 분도 숱하더군요. 총칼을 앞세운 군국주의 일본 우두머리가 여러 나라를 짓뭉개면서 쓰던 ‘국민·국가·국어’입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국민’ 하나는 ‘국민학교’ 이름에서 겨우 벗겼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국민’이라는 일본말은 버젓이 곳곳에 쓰이고, ‘국어’하고 ‘국가’도 못 털어냅니다.
낱말책은 낱말을 담는 꾸러미이되, 그냥그냥 낱말만 담을 수 없습니다. 낱말을 어질게 다루는 길을 들려줄 몫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낱말을 어른스레 돌보면서 슬기롭게 밝히는 길을 찾아서 나란히 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낱말책이 든든하게 태어나는 나라일 적에, 그 나라는 글(문학)도 빛납니다. 영어 낱말책이나 프랑스 낱말책이나 독일 낱말책이나 네덜란드 낱말책이나 스웨덴 낱말책을 보면 참으로 대단합니다. 일본 낱말책도 엄청나다 싶도록 대단합니다. 우리 낱말책은 아직 굼벵이조차 아닙니다. 우리 글꽃 가운데 하나가 2024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만, 우리나라 낱말책이 얼마나 후줄그레한 민낯인지 좀 돌아봐야지 싶습니다.
더 좋은 낱말을 많이 외워서 써야 글이 빛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손길을 고스란히 담은 말을 옮길 줄 알기에 글이 빛납니다. 두툼하지 않더라도 알뜰살뜰 살림하는 손으로 여민 ‘아줌마스러운 낱말책’과 ‘아저씨스러운 낱말책’과 ‘할머니스러운 낱말책’과 ‘할아버지스러운 낱말책’이 두런두런 태어나는 터전을 함께 보듬고 지필 수 있기를 꿈꿉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