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2021.8.3.

오늘말. 려면


뭘 걸어야 하지 않아요. 내걸지 않아도 기꺼이 나섭니다. 높다란 뜻을 내세워야 값지지 않아요. 누구를 앞세우기보다 다같이 노래하면 넉넉해요.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잡으려면 잡을 테고 이루자면 이루겠습니다만, 먼저 바라볼 곳이 있어요. 우리가 선 자리부터 사랑으로 헤아리면서 밑바탕을 포근히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스스로 사랑인 줄 생각하지 않기에 나중에 말이 어긋나고 토를 붙입니다. 아직 어설프기에 남사스럽다고 여기는데, 아직 엉성하지만 스스럼없이 나설 만해요. 안되어 보이거나 창피하다는 눈길을 잊어요. 넘어지면서 다릿심이 붙는 아이처럼, 후줄근한 우리 모습을 더 깊이 사랑하면서 하루를 지어요.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마음이기에 꿈을 이루고 뜻을 폅니다. 힘이나 돈이나 이름이 반드시 있어야 할까요? 힘이나 돈이나 이름은 겉치레이지 않을까요? 꼭두로 삼고 꽃등으로 다스릴 밑을 잃거나 잊기에 힘이며 돈이며 이름에 매이지 싶어요. 가없이 따스하게 돌봅니다. 그야말로 포근하게 어루만집니다. 꿈으로 가려면 꿈을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으로 가려면 나를 바라보면 됩니다. 나를 알려면 스스로 생각을 지으면 됩니다.


ㅅㄴㄹ


걸다·내걸다·깔다·내세우다·앞세우다·꼭·-려면·-자면·먼저·-부터·밑·밑바탕·밑밥·바탕·틀·얼개·판·생각하다·여기다·보다·해야 하다·토·토씨·말·얘기 ← 전제(前提), 전제조건


고개숙이다·고개꺾다·남사스럽다·남우세스럽다·낯뜨겁다·낯부끄럽다·낯없다·멋쩍다·벌겋다·벌개지다·붉어지다·부끄럽다·쑥스럽다·안되다·창피하다·서운하다·섭섭하다·스스럽다·잘못하다 ← 미안하다(未安-)


딱자르다·바로·참말로·무엇보다·누구보다·아주·매우·무척·몹시·너무·더없이·그지없이·가없이·그야말로·이야말로·꼭·반드시·도무지·조금도·하나도·먼저·마땅히·늘·언제나·노상·첫째·으뜸·꼭두·꽃등 ← 단연코(斷然-), 단연(斷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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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1.8.3.

오늘말. 새뜸


언제 누가 처음 지었는지 알 만한 낱말도 많으나, 어느 때에 곳곳에서 한꺼번에 피어나는 낱말도 많습니다. 아직 아무도 안 쓰는 낱말을 어느 한 사람이 처음으로 쓰며 퍼지기도 하고, 시골이나 마을에서 조용조용 쓰던 말씨를 누가 눈여겨보고서 두루 퍼뜨리기도 합니다. 〈전남새뜸〉은 1997년부터 나오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세종에는 ‘새뜸마을’이 있고, ‘새뜸초등학교·새뜸중학교’가 2017년부터 섭니다. 눈을 새로 뜨고 마음을 새로 뜹니다. 이야기를 새로 띄우고 생각을 새로 띄워요. 다그치지 않고 띄웁니다. 따지지 않고 물으면서 띄워요. 차근차근 찾아보는 동안 어느새 눈을 뜹니다. 귀를 열고서 들으니 눈을 떠요. 가슴을 틔우고서 받아들이니 마음을 떠요. 삶에는 여러 길이 있어요. 이모저모 즐겁게 나아가며 하나씩 살핍니다. 알고 싶기에 눈을 뜨고, 궁금하기에 귀를 뜹니다. 속속들이 알아보기도 하지만, 속내를 제대로 들추려는 뜻입니다. 깊이 말하며 알아가기에 꽃처럼 ‘앎꽃’을 피우고 해처럼 ‘앎빛’을 밝혀요. 길마다 톺아보고 자취마다 물어봅니다. 줄거리만 훑지 않고 속빛을 환하게 익혀서 온몸을 즐겁게 띄웁니다.


ㅅㄴㄹ


새뜸 ← 신문(新聞), -보(報), 일보(日報), 일간신문, 언론, 매체, 언론매체, 언론기관, 매스미디어, 매스컴, 방송(放送), 소식(消息), 개안(開眼), 개심, 개벽, 기상, 지각(知覺), 해탈, 달관, 달관적, 자각, 각성, 성찰, 반성, 인식, 이해, 통달, 능통, 통찰, 통하다, 숙달, 숙지, 마스터, 통감, 간파, 인지(認知), 열반(涅槃), 대오각성, 대각(大覺)


다그치다·채찍·채찍질·뒤지다·들추다·캐다·따져묻다·따지다·캐묻다·묻다·물어보다·알아보다·찾아보다·톺다 ← 신문(訊問)


거리·감·결·길·자취·줄거리·궁금하다·듣다·받다·받아들이다·귀띔·씨앗·씨알·씨·알·알갱이·알맹이·알차다·속·속내·속빛·속길·속말·속얘기·속살·속살림·속살·속소리·속속들이·이것저것·이모저모·여러 가지·여러 갈래·여러길·여러모로·말·깊말·수다·얘기·이야기·살펴보다·살피다·알다·앎·알려주다·앎꽃·앎빛 ← 정보(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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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숲에서 짓는 글살림

52. 도꼬마리



  가을이 저물고 겨울로 접어들다가 슬슬 잎샘바람이 부는 어느 날 ‘도꼬마리’가 불쑥 떠오릅니다. 아, 아, 도꼬마리. 요새는 이 들꽃을 아예 못 보다시피 합니다. 제가 어린 나날을 보내던 1980년대에는 큰고장 한켠에 빈터나 골목이 어김없이 있었어요. 배움터 꽃밭에 살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들꽃이 많았어요. 새마을바람이 한창이던 때에도 나라 곳곳 어디에나 빈터나 풀밭은 꼭 있었는데요, 씽씽이(자동차)가 부쩍 늘어난 1990년대를 지나니 바야흐로 빈터도 풀밭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러면서 그토록 흔하던 들풀이며 들꽃이 자취를 감추어요.


  아니, 쫓겨납니다. 아니, 짓밟힙니다. 아니, 잿빛덩이(시멘트)에 옴팡 파묻힙니다.


  2021년 새해에 열네 살이 된 큰아이 곁에서 ‘도꼬마리’가 그립다고 노래를 하니 “도꼬…… 뭐요? 그게 뭐예요?” 하고 묻습니다. “응? 그렇지? 넌 아직 도꼬마리를 못 봤구나. 우리 집에는 아주까리는 많아도 도꼬마리는 없어!” “도꼬마리? 도꼬마리도 풀이에요?” “그럼, 얼마나 멋지고 재미난 풀인데. 그냥 풀로 있을 적에는 잘 눈여겨보지 않지만,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그러니까 씨앗이 영글 적에는 동무들하고 도꼬마리씨를 찾으려고 뻔질나게 빈터랑 풀밭을 뒤졌어.” “왜? 그걸로 뭐하는데?” “응. 도꼬마리씨를 서로 몸에다 던지며 놀았거든. 도꼬마리씨는 갈퀴가 안으로 굽어서 말야, 털옷이나 솜옷에 척 붙어서 안 떨어지거든.”


도꼬마리 ← 창이(蒼耳)

도꼬마리씨·도꼬마리 열매 ← 창이자(蒼耳子)


  큰아이 곁에서 작은아이도 도꼬마리가 궁금합니다. 새해에는 도꼬마리를 찾아내고 싶습니다. 도꼬마리씨를 몇 톨 얻어서 우리 집 뒤꼍이며 책숲에 살살 뿌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들 곁에서 어버이로 살지만, 저 스스로 이 아이들마냥 어린이로 지내던 지난날, 들꽃으로 어떻게 놀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들꽃놀이를 하면서 들꽃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도꼬마리는 도꼬마리일 뿐 ‘창이’가 아니거든요. 도꼬마리씨도 도꼬마리씨일 뿐 ‘창이자’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삽질바람에 같이 휘말리면서 빈터하고 풀밭을 씽씽이랑 찻길이랑 가게한테 모조리 내주면서 우리 들꽃이며 들풀뿐 아니라, 들꽃말하고 들풀말까지 잊거나 잃는구나 싶습니다. 들꽃하고 들풀을 잊거나 잃기 때문에 수수하면서 쉽고 상그레한 말을 어느새 잊거나 잃지 싶어요.


  싱그러운 들꽃을 보면서 싱글싱글 웃지요. 상그러운 들풀을 쓰다듬으면서 상글상글 노래합니다.


원추리 ← 황화채(黃花菜), 훤초(萱草), 망우초(忘憂草)


  원추리를 아무렇지 않게 훑어서 나물로 삼던 사람은 아스라이 먼 옛날 옛적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아저씨나 아줌마라는 이름인 분들이라면 원추리 나물쯤 가뜬히 누리고 나눈 살림이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원추리꽃빛’을 맑게 떠올릴 만하겠지요.


  꽃다지꽃빛하고 개나리꽃빛하고 원추리꽃빛이 다릅니다. 진달래꽃빛하고 모과꽃빛하고 배롱꽃빛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꽃빛은 서로 얽히고 어울려요. 우리는 먼먼 옛날부터 꽃을 바라보면서 빛깔을 익혔고, 꽃노래를 부르면서 말빛을 가락으로 영글어서 즐겼습니다.


  생각해 봐요. 원추리는 원추리일 뿐, ‘황화채’도 ‘황초’도 ‘망우초’도 아닙니다.


봉긋꽃 ← 튤립


  이 땅에 없던 꽃이 꽤 많이 들어왔고, 새로 들어오며, 앞으로도 들어오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 없던 꽃이니까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이나 여러 바깥말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만, 이 땅에서 아끼고 싶은 꽃마음을 담아서 새롭게 이름을 지어도 즐겁습니다.


  이웃님이 문득 건네준 ‘튤립’ 여러 송이를 받고서 한참 생각에 잠겼어요. 이윽고 말꼬가 터졌습니다. “이 봉긋봉긋 꽃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가!” 가녀리다 싶은 꽃대(줄기)에 꽃송이가 소담스럽지요. 그래요, 그 어느 꽃보다 봉긋봉긋 올라오는 꽃송이가 아름차니, ‘봉긋꽃’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사랑바람꽃·사랑물결꽃·사랑해꽃 ← 카네이션


  사랑해 마지 않는 마음을 새빨간, 아주 빨갛디빨간 꽃으로 나타낸다고 해요. 해마다 오월을 맞이하면 거리마다 이 붉은꽃으로 물결칩니다. 흔히 ‘카네이션’이라 합니다만, 이 꽃송이를 가슴에 달면서, 또 이 꽃송이를 건네면서, 서로서로 “사랑해!” 하고 노래합니다.


  그래요. 사랑한다고 노래하면서 주고받는 꽃,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가슴에 다는 꽃, 사랑하는 사이를 더욱 짙게 물들이는 꽃, 오월 한 달을 온통 붉게 물들여 서로서로 사랑으로 물결치는 꽃, 사랑이라는 바람을 훅 끼치면서 포근히 어루만지는 꽃, 이 꽃한테는 ‘사랑바람꽃’이나 ‘사랑해꽃’처럼 고스란하게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해바라기 ← 규곽(葵藿), 향일화(向日花)


  튤립이며 카네이션한테 이름을 새로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느 이웃님이 시큰둥히 한소리를 합니다. “자네는 식물학자도 꽃 전문가도 아닐 텐데, 꽃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붙여서야 되나?” 시큰둥꾸러기 이웃님을 바라보면서 봉긋웃음을 짓습니다. “‘찔레’를 전라말로 ‘찔구’라 하는 줄 아시지요?” “그걸 모르면 전라사람인감?” “‘찔구’란 이름은 누가 함부로 지었나요?” “아니, 함부로 짓다니, 구수한 사투리 아녀?” “네, 구수한 사투리는 누가 짓나요? 식물학자나 꽃 전문가가 짓나요?” “아, 아니, 그렇지만서도, 이름을 새로 짓는데, 전문가 생각을 들어야 하지 않것나?” “사투리는 여느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어요. 그리고 어린이가 지어요. 사투리란, 그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이 언제나 즐거이 노래하면서 지어요. ‘해바라기’가 이 나라에서 안 자라던 꽃인 줄 아시나요? 그런데 누가 ‘해바라기’라고 이름을 지었을까요? 아무도 모른답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람들이 이 꽃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마음에서 샘솟은 이름이거든요. 우리가 곁에 두고 사랑하고 돌보려는 꽃이라면, 우리가 즐겁게 노래하면서 이름을 지으면 돼요. 구태여 학술이름에 안 매여도 되잖아요? 우리가 사랑할 이름을 붙여서 나누면 넉넉하지요.”


들풀·들꽃·풀·풀꽃 ← 무명초(無名草), 무명화(無名花), 잡꽃, 잡종, 잡초, 잡화(雜花), 방초(芳草), 야생초, 허브, 약초, 약풀, 초본(草本)


  ‘이름없는 풀꽃(무명초·무명화)’이란 없습니다. 이름을 지으려는 사랑을 마음에 일으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름모를 풀꽃’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되는데, 식물학자나 전문가라는 손길을 기다리니, 우리는 스스로 생각날개를 잊고 말빛을 잃습니다.


  들꽃이요 풀꽃입니다. 들사람이며 들넋입니다. 들길이고 들살림이에요.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투리를 오늘도 새롭게 지으면 좋겠습니다. 머나먼 옛날 옛적에 쓰던 말에만 기대지 말고,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짓는 말을 마주하고 품으면 좋겠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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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38 멋말



  말꽃은 멋을 부리지 않고, 멋을 부릴 수 없으며, 멋으로 가지 않습니다. 말꽃은 오직 맛을 헤아리고, 맛을 밝히며, 맛스러운 길을 갑니다. 고작 ㅏ하고 ㅓ가 다른 ‘맛·멋’인데, 말꽃은 겉으로 예쁘거나 좋아 보이도록 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말꽃은 속으로 든든하면서 새롭게 피어나도록 북돋운다는 뜻입니다. 말풀이를 멋스럽게 꾸미지 않습니다. 더 이름난 사람이 쓴 보기글을 싣지 않습니다. 더 훌륭하다는 보기글을 따오지 않습니다. 굳이 글꽃(문학)에서 보기글을 따지 않습니다. 풀이말은 어느 쪽에도 안 서도록 새로 지어서 붙이기 마련인 말꽃인데, ‘삶을 짓는 기쁨’하고 ‘살림을 노래하는 사랑’하고 ‘숲을 돌보는 손길’을 넌지시 깨달으면서 받아들이도록 가다듬습니다. 어떤 낱말이든 그 낱말이 태어나고 자라난 길을 비추기 마련이에요. 이 길을 말풀이하고 보기글에서 보여주되,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틀이 아닌, 앞으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새롭게 가꾸면서 숨을 빛내는 실마리를 스스로 찾도록, 부드럽고 상냥한 숨결을 담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멋말(멋부린 말)은 외려 멋없습니다. 겉치레 아닌 속가꿈하고 속사랑으로 말을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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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37 말맛



  모든 말은 삶자리에서 태어나기에, 더 낫거나 더 나쁜 말은 없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태어날 뿐입니다.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오던 때에는 총칼로 사람을 억누르던 말씨가 들어와서 퍼지고 새로 태어났어요.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면서 임금님이 중국글(한문)을 높이던 무렵에는 임금 곁에 있거나 임금을 따르던 벼슬아치는 중국글에 맞추어 새말을 자꾸 지었어요. 서로 미워하거나 괴롭히는 판이라면 미움말이나 막말이 자꾸 태어납니다. 서로 돌보거나 사랑하는 자리라면 돌봄말이나 사랑말이 새록새록 태어나고요. 어느 말을 마주하든 말맛을 헤아립니다. 거칠거나 막된 말을 쓰는 사람한테서는 이이가 여태 겪거나 보내야 하던 거칠거나 막된 나날하고 얽힌 숨결을 읽습니다. 곱거나 포근한 말을 쓰는 사람한테서는 이이가 이제껏 삶을 곱거나 포근히 달래면서 가꾼 숨빛을 읽습니다. 우리말에 ‘윽박·호통’이 있고 ‘자랑·뻐기다’가 있습니다. 이런 낱말은 이러한 말이 태어난 삶자리가 어떤 넋이었는가를 알려줍니다. ‘슬픔’은 슬픈 삶을 알려주지요. ‘기쁨’은 기쁜 삶을 알려줍니다. 이쁘장하게 보이는 말은 속마음 아닌 겉모습을 꾸미는 삶을 알려줍니다. 저는 어디에서나 푸르게 노래하는 숲을 말맛에 담고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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