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생각하는 길



떠오르는 모든 말이나 길이 다 ‘생각’이지 않아. 바다에 잠기며 하나로 어울리는 물방울이 홀가분히 하늘로 올라서 노닐다가 맑고 밝게 뭍으로 좌악좌악 내리는 빛방울과 같을 적에 ‘생각’이라고 할 수 있어. 너희는 ‘삶’부터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기에 삶을 모르지. 삶을 모르기에 ‘살’을 입은 몸으로 지내는 ‘사람’이 어떤 숨결인지 몰라. 겉보기로는 사람이되 ‘삶’과 ‘사람’을 모르니까 ‘사랑’은 도무지 알 턱이 없어. ‘사랑’을 알면서 깨우고 싶다면, 삶부터 바라보면서 눈뜰 노릇이고, 사람으로서 이 별에서 어떤 사이로 지내는지 배워서 익혀야겠지. 삶을 짓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하기에 ‘생각’을 편단다. ‘생각’을 펼 줄 알 적에는, 어느덧 철들어서 어질게 눈뜬다는 뜻이야. 그래서 철이 안 들거나 사랑을 모르고 등지거나 삶짓기를 까맣게 잊은 채 뭘 자꾸 뚝딱거리는 짓은 ‘생각’이 아닌 ‘꾀’라고 해. ‘꾀’를 부리는 길은 ‘생각’이 아니야. ‘생각흉내’요 ‘생각척’이지. 누구나 생각하는 길을 가되, 아무나 생각길을 걷지 않아. 삶을 배우고 익혀서 하루를 짓는 사람으로 일어서는 동안 스스럼없이 사랑을 꽃피울 적에 문득 웃으면서 노랫가락으로 일으키는 ‘생각’이야. 숱한 사람은 ‘생각하다’를 모르는 채 ‘꾀하다’를 하지만, 스스로 ‘생각 아닌 꾀’를 부리는지조차 몰라. ‘생각’은 만들어내거나 만지지 않아. 모든 사람과 숨결이 하늘과 바다처럼 함께 담는 ‘마음’에서 샘솟는 ‘생각’이니, 갑자기 뚝딱거리듯 ‘만들’거나 ‘만지’려고 할 적에는 ‘꾀’나 ‘꿍꿍이’나 ‘꾸미기’란다. ‘꾸미’면 얼핏 “생각처럼 보일” 테지. “-처럼 보이”면서 속이려고 하는 짓인 ‘꾸미기·꿍꿍이·꾀’야. 너는 “생각처럼 보이게 꾸미기”가 아닌 “생각하는 길”을 가면 돼. 2026.6.21.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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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참기까지



속으로 참하게 받아들일 적에 ‘참다’라고 해. 억지쓰거나 힘쓰는 일은 ‘참다’하고 멀어. 남하고 견주듯 받아들이는 ‘견디다’도 다르지. 둘레에서 무엇이 일어나거나, 남이 무엇을 일삼거나 저지르든 남을 안 쳐다보면서 스스로 차분히 다스리는 길이 ‘참다’야. 누가 시켜서 한다면 ‘참다’하고 멀어. 남이 보아주기 바라는 티를 내도 ‘참다’하고 멀어. 오직 네(내)가 너(나)로서 오늘 이곳에 고스란히 서려는 길이기에 ‘참다’야. 누가 무어라 떠들거나 말거나 안 휩쓸리는 매무새인 ‘참다’란다. 누가 시키기에 끝까지 붙들려고 하는 ‘견디다’이고, 남이 보는 눈을 느끼는 ‘견디다’야. 휩쓸리는 한복판에 잠긴 수렁인 ‘견디다’야. ‘참’을 적에는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고 생각한단다. 남이나 딴곳이 아닌, 제 속빛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기운을 차리는 길인 “참다”야. 남한테 자꾸 눈길을 빼앗기기에 ‘견디’려고 해. 손가락질이나 화살이나 시샘이나 미움을 견디려 하지. ‘나’하고 ‘너’는 ‘빛’으로 ‘하나’인 줄 알아보면서, 나란히 ‘참하’게 서고 ‘착하’게 만나려는 몸짓인 ‘참다’야. 그래서 “불(화)을 참다”라 할 적에는, 마음에 불씨가 아닌 풀씨를 두면서 스스로 푸르게 풀리는 길을 가. “불(화)을 견디다”라 할 적에는, 이글거리는 미움과 시샘을 다 마주하고 받으면서 아프고 다치더라도 끝까지 간다는 몸짓이야. ‘견딜’ 적에는 사랑이 없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어. 외롭거나 쓸쓸해도 꾹꾹 누르거나 닫으면서 견디려 하지. 누구나 혼자일 수 없이 푸른별에서 온숨결이 어울리는 줄 알기에, 가만히 참고서 지켜보면, 언제나 스스로 찬찬히 풀고 맺고 이으면서 살아나. 견딜 적에는 얼른 끝나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려. 참을 적에는 하나하나 녹이고 풀면서 서로 나란하게 피어날 길을 바라봐. 예부터 “참고 참고 참으면 사람이 된다”고 여겨. 참하고 착하고 채울 줄 알 적에 나누고 베풀거든. 2026.6.27.흙.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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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건져내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내었더니, 보따리부터 내놓으라고 큰소리친다는 옛말이 있어. 목숨이 간당거릴 적에는 목숨만 살리면 다 내주겠노라 읊지만, 막상 목숨줄이 붙으면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는 손아귀에 돈을 쥐려고 한다지. 넌 어때? 넌 밤마다 죽고서 아침마다 살아나는데, 밤에 죽으면서 무엇을 바라니? 아침마다 일어나서 “고맙습니다! 이 하루를 사랑으로 살겠습니다!” 하고 다짐하니?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면서 “간밤에 죽은 줄 까맣게 잊”고는 그저 어제하고 똑같이 쳇바퀴를 도니? 누구나 날마다 죽고서 살아나. 낮잠을 이룬다면 낮나절에 다시 죽고서 살아나는 셈이야. 예부터 ‘잠들다 = 죽다’로 보았어. ‘깨다= 살다’로 여겼지. 밤과 낮이 오가듯, 죽고서 살아나는 하루를 잇기에 ‘삶’이 태어나. 아침저녁으로 살고서 죽으니, 스스로 살리면서 사람으로서 사랑할 길을 그리고 생각하지. 밤에 잠들며 죽는 나날이 있기에, 온누리 뭇숨결은 둘레를 보면서 ‘나’ 곁에 있는 ‘너’를 마주하고 이야기한단다. 밤에 잠들면서 쉬는 길을 싫어하거나 아까워하거나 무서워하면서 스스로 목숨줄을 갉아. 그러니까 모든 숨붙이는 날마다 죽고서 새로 태어나기에 날마다 허물벗기를 크게 해. 날마다 ‘내려놓기’와 ‘일어서기’를 배워. 배우고 익히며 철들기에 나이를 머금어서 낳을 수 있어. 배우고 익히는 ‘내려놓기·일어서기’라는 ‘죽살이’를 기쁘게 여기지 않을 적에는, 안 배우고 안 익히니까 철이 안 들어. 너는 뜻깊거나 커다란 일을 할 까닭이 없어. 바로 이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을 생각하고 온날을 사랑할 노릇이란다. 밤마다 잠들며 죽은 너를 누가 아침마다 건져낼까? 널(날) 건져내는 님은 누구일까? 찬찬히 헤아려 봐. 2026.6.28.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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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보면서도



비가 내리는데 비를 보면서도 빗소리와 비내음을 모르면 어찌할까. 별이 돋는데 별을 보면서도 별빛과 별소리를 모르면 어찌하나. 잎이 나는데 잎을 보면서도 잎빛과 잎내음을 모르면 어쩌지. 꽃이 피는데 꽃을 보면서도 꽃빛과 꽃숨을 모르면 어떡할까. 궁금하게 여기면 “보지 않더”라도 느끼고 받아들이고 헤아리면서 알아. 안 궁금하면 “코앞에서 보면서”도 못 느끼고 안 받아들이고 못 헤아리니 그저 몰라. 새가 궁금하면 새소리를 들을 적에 새를 알아보면서 새하고 한마음으로 만나. 새가 안 궁금하면 새소리가 가득해도 새를 못 알아볼 뿐 아니라, “새소리가 흐르는 줄”조차 못 느껴. 사람들은 ‘삶’과 ‘살림’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일쑤야. 삶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살림을 그대로 짓고 사랑이라는 빛으로 스스로 눈뜨려는 씨앗을 마음에 안 심을 적에는 하나도 몰라. 삶이 궁금하고, 서툴거나 엉성해도 손수 살림을 짓고,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하루를 그리는 사람은 문득문득 사랑이라는 빛으로 일어나. 궁금하면서 알아보려는 사람은 ‘겉과 속’을 안 가려. ‘겉(몸)과 속(마음)’을 나란히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빙긋이 웃을 적에 스스로 푸는 수수께끼란다. ‘빙긋웃음’은 문득 알아보는 사랑이 드러나는 빛이야. 사랑이 드러나지 않으면 빛나지 않고, 빙긋 웃지 않아. 궁금하지 않으면 씨앗을 안 심는데, ‘씨앗심기’를 힘으로만 억지부리듯 잔뜩 파묻을 적에는 씨앗이 그냥 죽어버려. 씨앗을 어떻게 심겠니? 가볍게 가만히 땅에 두어야겠지.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보더라도 씨앗숨결을 못 느끼기에 그만 씨앗을 죽인단다. 2026.6.26.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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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책임이 없는



안 배우는 사람은 없는데, “안 배우는 시늉”과 “배우는 흉내”에 젖으면서 그만 틀에 갇히는 사람이 있어. 틀에 갇히면 ‘시늉·흉내’와 ‘척’이 있을 뿐이야. 시늉과 흉내와 척을 하느라 ‘배우’는 길과 멀고, ‘익히’는 살림을 등지지. 책을 안 펴거나 글을 안 쓰기에 “안 배움”과 “안 익힘”이 아니야. “펴는 책마다 똑같거나 비슷하다”면 ‘읽는시늉’이지. 낯설다고 여겨서 안 펴는 책이 있다면, 오히려 틀을 더 단단히 세우면서 갇혀. ‘책읽기’를 하려면 모든 책한테 다가가서 모든 책과 마음을 나눌 노릇이야. 보렴. 네가 ‘나무’를 알고 싶다고 할 적에 “몇 가지 나무”만 좋아하면 될까? 나무 한 그루가 살아가는 “네 철”과 “열두 달”과 “365날”을 하나씩 짚으려 하지 않고서 나무를 배우거나 알아간다고 할 수 없어. 네가 ‘새’를 알고 싶다고 할 적에도 같아. 모든 새를 눈여겨보고, 모든 새를 아껴야지. 네가 마음에 두며 사귀다가 함께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너는 ‘그사람’을 둘러싼 온모습을 지켜보고 품을 노릇이야. 무엇보다도 네가 너(나) 스스로를 참답게 알고 싶을 적에는 ‘좋고나쁨·옳고그름·틀림맞음’을 모두 내려놓고서 그대로 마주하며 품어야지. 왜 숱한 사람이 제몫(책임)을 안 지려 하겠니? “배우는 흉내”에 갇히거든. 게다가 “안 배우는 시늉”까지 하더니 그만 안 배우는 틀로 굳어버려.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늘 제몫(책임)을 다한단다. 배우고 익히기에 손을 내밀어 나무를 쓰다듬어. 배우고 익히기에 어깨에 새를 앉혀. 배우고 익히기에 바람과 하늘과 바다와 비를 읽어. 너는 어떤 하루인지 돌아보렴. 네가 조금이라도 ‘시늉·흉내·척’이 있다면 이제는 다 털어내기를 바라. 2026.6.23.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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