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좀 안다고



“나도 알아!” 하는 사람은 모른다는 뜻이야. “잘 알아!” 하는 사람은 잘 모른다는 뜻이야. “좀 알아.” 하는 사람은 겉스친 적이 어쩌다가 있다는 뜻이야. “알아.” 하는 사람은 아는척·아는시늉일 뿐이라는 뜻이야. 생각해 보렴. 참으로 ‘아는’ 사람은 어떻게 말할까? 어느 길이나 일을 아는 사람이이라면 빙그레 웃겠지. 아는 사람은 빙긋빙긋 웃으면서 지켜보고 기다릴 테지. 아는 사람은 서두르는 일이 없이 차분하게 다루고 짚고 되살피면서 새길을 여는 삶을 배우게 마련이야. 알지 않기에 아는척 하고 싶단다. 영 모르기에 아는시늉을 하지. 도무지 알 턱이 없는 나머지 어떻게든 비벼 보려고 척·시늉·흉내라는 탈을 쓰려고 한단다. 아는 사람이라면 탈을 쓸 일이 없어. 아는 그대로 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는 대로 모두 펴고 나누고 베풀면서 스스로 거듭나지. 좀 안다고 내세우는 사람이라면 목소리부터 높여. 좀 안다고 밝히는 사람이라면 겉모습부터 꾸며. 좀 안다고 여기느라, “하나도 모르는 늪”에 더 깊이 빠져들어. 너는 어떠니? 너는 무엇을 알거나 모르니? 너는 무엇을 안다고 얘기하고 무엇을 모른다고 털어놓니? ‘안다’고 하기에 ‘끝’이지 않아. 무엇을 알기에 ‘다’이지 않아. 무엇을 모르거나 못 할 적에도 끝이 아니고 다가 아니야. 알거나 모르거나 늘 첫걸음이야. 알기에 아는 만큼 삭이면서 새롭게 알아갈 길로 나아가지. 모르기에 모르는 만큼 곱씹으면서 차근차근 배우는 하루로 나아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좀 안다고 여기면서 안 배우느라 고이고 멈춘 모습을 가리켜. 그러면 둘은 알되 셋넷이나 대여섯을 모르면서 나서는 이도 있겠지. 열이나 스물을 알기에 대단하거나 높지 않아. 그저 새로 배우기에 살아갈 수 있어. 그대로 다시 익히기에 사람으로 설 수 있고. 2026.8.21.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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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사는 동안



햇빛은 수꽃과 같아. 별빛은 암꽃과 같아. 사람들은 얼핏 “해가 높고 크다”고 잘못 여겨. 푸른별하고 아주 가까워서 커 보일 뿐인데 말이지. 정작 별누리 뭇별이 엄청나게 크고 밝단다. 그래서 별빛이 암꽃이고, 햇빛이 수꽃이란다. 예부터 해바람비를 늘 눈여겨보면서 풀꽃나무와 들숲바다를 품는 사람은 암수꽃이 어떤 빛인지 제대로 알았어. 이제는 서울도 시골도 해바람비·풀꽃나무·들숲바다를 다들 등지는 터라, 암수꽃도 모르거나 잊고, 빛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엉뚱하게 짚어. 사는 동안 무엇을 보거나 어디에 있는지 헤아릴 노릇이야. ‘땅’을 디디지 않으면서 ‘아스팔트 길바닥’만 구둣발로 디디는데 ‘땅’을 읽거나 알 수 있을까? 모든 땅은 흙을 비롯해서 돌모레가 어울리고, 풀꽃나무와 풀벌레와 새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야. 사람들이 땅을 돈으로 사고팔더라도 “땅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뭇숨결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낱낱이 만나고 천천히 알아가고 차분히 품으려 해야, 비로소 땅을 조금은 헤아린다고 할 만해. 사는 동안 ‘땅’을 얼마나 디디는지 살펴볼 노릇이야. 사는 내내 “땅에 뿌리내린 풀꽃나무”를 얼마나 마주하는지 돌아볼 노릇이지. 사는 사이에 “땅에 뿌리내린 풀꽃나무에 새와 나비가 얼마나 내려앉는”지 생각할 노릇이란다. 살피는 동안에 문득 알면서 눈을 떠. 돌아보는 동안에 넌지시 알면서 기지개를 켜. 생각하는 동안에 차분히 알면서 이야기를 하지. 흘러가는 그대로 놓을 적에는 ‘나’라고 하는 숨결을 못 보거나 안 봐. 넋을 놓은 채 쳐다보기에 ‘나’가 아닌 ‘나허물(ego)’을 뒤집어쓰면서 ‘껍데기’가 ‘나’인 줄 여기지. 겉몸·겉모습·겉얼굴을 쳐다본달까. ‘알’이 아닌 ‘알껍데기’를 ‘나’로 잘못 여기는 동안에는 ‘삶’이 아닌 ‘삶껍데기’를 부여잡는단다. 2026.7.31.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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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집에서는



집에 있으면

이 여름이 저무는 막바지에

곧 떠나갈 꾀꼬리노래 아직 있고


비가 함박처럼 쏟아지는 사이에

매미와 풀벌레가

처마밑에 깃들어 노래를 베풀고


마당에 우거지는 나무와

뒤꼍에서 뻗는 나무가

바람타며 바다소리 들려주고


집에서는

짓짓 칫칫 살랑 쏴락

온소리를 그득그득 누리고


2026.8.20.나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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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시골밖



서울을 한복판에 두는 탓에 ‘서울’도 ‘마을·고을·고장’ 가운데 하나인 줄 잊어. ‘서울곁(수도권)’과 ‘서울밖(비수도권·지방)’을 가르기도 하고. 참으로 서울밖에 누가 있고 무슨 삶이 흐르는지 하나도 몰라. 서울이 아니고 서울과 멀대서 ‘시골’이라 여기는데, 서울이란 ‘시골밖’이라는 소리이기도 해. 시골에서 멀리 떨어지느라 들숲메바다를 잊는 늪인 서울이야. 푸른터를 등지면서 “나 스스로 누리(우주)이자 집”인 줄 모르는 채 헤매는 서울이고. 조금만 짚어도 알아챌 테지. 서울밖에 있으니 서울을 몰라. 시골밖에 있으니 시골을 몰라. 숲밖에 있으니 숲을 몰라. 하늘밖에 있으니 하늘을 몰라. 별밖에 있으니 별을 몰라. 빛밖에 있으니 빛을 몰라. 밤밖에 있으니 밤을 몰라. 그러니까 스스로 오롯이 사랑으로 있지 않느라 ‘사랑밖’이면 사랑을 모르지. 요즈음은 서울을 알아야 돈을 벌고 이름을 얻고 힘을 부린다고 여겨. 서울을 멀리하면 돈도 이름도 힘도 멀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데, 이럴수록 서울밖에서 더 돈·이름·힘을 쥐려고 악착같이 굴어. 시골에 있기에 시골을 배우면서 품는 길하고 오히려 동떨어지는 셈이야. 사랑을 짓는 집에서 지내지만 “어떡해야 이 집구석을 벗어나나?” 하고 싫어하고 걱정하는 나날이기도 해. 나무를 알려면 ‘서울나무’나 ‘시골나무’가 아닌, “나무 스스로 넉넉히 뿌리를 내려서 기쁘게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을 푸른터”를 그리는 나무 곁에 있어야겠지. 사람을 알려면 ‘서울사람·시골사람’도 ‘가시내·사내’도 아닌 “스스로 사랑으로 하루를 지어서 살아가는 새로운 사이”를 찾아보고 알아보아야 하고. ‘싸움밖’과 ‘평화밖’이란 무엇일까? ‘학교밖’과 ‘집밖’은 어떤 곳일까? ‘사랑밖’에 ‘꿈밖’에 ‘노래밖’에 ‘이야기밖’에서 헤매는 너(나)이지는 않니? 2026.8.17.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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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보이드 void



‘없는곳’이 어디일는지 생각할 수 있을까. ‘있는곳’은 어디인지 찾아볼 수 있을까. 없다고 여기지만 “‘없는곳’이 있”고, 있다고 여기는데 “‘있는곳’이 없”어. 이 두 갈랫길을 읽어내면서 이을 적에 ‘빈곳’과 ‘빛곳’을 나란히 품지. “거기 없잖아!” 하고 여길 적에 ‘없다’고 하는 모습이나 길이 있단다. “여기 있네!” 하고 찾아내면, 여태 못 찾았기에 여태 ‘없다’가 이제부터 ‘있다’로 돌아서지. ‘빈곳’이란, 없다고 여기는 곳이면서, 있던 빛을 지워서 비운 곳이야. 놓은 곳이요, 내린 곳이고, 끝을 내면서 처음으로 서는 곳이기도 해. 이제는 ‘없는곳’으로 있는 ‘빈곳’이기에, 여태 씨앗이 싹트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없는곳·빈곳’이기에 ‘싹틀 곳이 있는’ 결로 갈 수 있어. 없고 비니까 틈이 있고, 이 틈이란 바로 “드나드는 길”이 처음이자 새롭게 난 곳이야. 이른바 보이드(void)로 가려면 모든 몸을 비워야 해. 겉을 다 놓고서 오직 “비운 채 있는 빛”으로 있을 노릇이야. ‘보이드’는 빈곳이자 빛꽃으로 나란한 곳이야. 비거나 비운 곳이라서 틈이 있기에, 이제·오늘·이곳부터 싹이 터서 꽃이 필 수 있어. 그래서 빈곳은 ‘빛곳’이자 ‘빛꽃’으로 나아가지. 새롭게 솟아나는 빛인 ‘생각’은 빈곳이자 빛곳이자 빛꽃을 이룬단다. 비우기에 빚고, 빚기에 빛나. 빛나기에 다시 비우고, 비우니까 빚을 틈이 나서 피어나지. 비우지 않으면 ‘없는곳’이 없어. 비우지 않으니 ‘있는곳’도 없어. 비우기에 비로소 ‘없는곳’이 생기고, 비우는 사이에 ‘있는곳’이 깨어나. 온누리가 다 어지럽고 어렵고 밉고 싫고 힘든 나머지 ‘씻기(명상)’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씻는 일은 ‘좋’겠지. 그러나 씻고서 무엇을 할 셈이지? 비는 하늘땅을 씻기만 하지 않아. 비는 하늘땅을 씻기며 노래하는데, 적시고 채우고 살리면서 놀아. 너는 비워서 ‘없는곳’을 이루면서, 빚을(빚어낼) ‘있는곳’으로 이을 노릇이야. 비웠으면 빚을(빚어낼) 그림을 지어야지. 2026.8.7.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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