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3. 더듬다



  둘레를 보면 ‘더듬는’ 몸짓을 썩 반기지 않습니다. 공놀이를 하는데 자꾸 더듬는다든지, 길을 가는데 헤매면서 이리 더듬 저리 더듬한다든지, 말을 하다가 이내 더듬더듬하면, 제대로가 아니라고 여겨요. ‘제대로가 아니다’란 ‘삐뚤빼뚤(비정상)’인 셈입니다. 우리는 공을 던지거나 받을 적에 잘 받을 수 있으나 놓칠 수 있어요. 우리는 할 말을 잃고서 멍하니 있기도 합니다. 틀림없이 길찾기가 알려주는 대로 갔는데 엉뚱한 데가 나올 수 있어요. 빈틈이 없이 해내니 대단하겠지요. 그러나 빈틈이 있으면서 좀 허술하거나 엉성하거나 모자란 탓에, 더 다스리고 애쓰고 힘내고 일어서고 배우고 가다듬고 익히고 기운을 내기도 합니다. ‘빈틈없이’ 태어난 나머지 무엇을 새롭게 하려는 생각을 못 하기도 한다면, ‘빈틈있이’ 태어난 뒤로 무엇이든 처음부터 스스로 지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껴서 씩씩하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맞서는 길을 가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적에 엄청난 말더듬이였습니다. 말더듬이 어린이는 놀림이나 따돌림이나 지청구를 숱하게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 말더듬질을 고쳐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대로가 아닌 몸을 제대로’ 바꾸려고 했는데, 이제는 굳이 이러지 않습니다. ‘제대로’라는 잣대는 따로 없어요. 몇몇 사람 눈길로 따질 수 없고요. 무엇보다도 맨몸이 되어 풀밭에 납작 엎드려 풀벌레를 지켜보면, 또 벌나비를 바라보면, 모두 ‘더듬이’를 살살 흔들며 더듬더듬 바람물결을 살피고 빛물결을 실컷 누리더군요.



더듬다


혀가 짧아 더듬을 수 있어

더 천천히 말해 봐

느릿느릿 말해도 돼

글로 적어 읽자꾸나


어두우니 더듬더듬할 만해

바닥에 손을 짚어 봐

차근차근 헤아리면 나와

촛불 켜면 잘 보일 태지


아직 낯설기에 더듬겠지

나도 예전부터 더듬었어

말도 더듬고 길도 더듬지

뭐, 아직도 으레 더듬어


그런데, 너는 알아?

나비랑 벌레한테 더듬이 있어

나비도 벌레도 더듬이 흔들며

마음으로 얘기하고 별빛 들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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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2. 로자 파크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모두 알아볼 수 없다”기보다는 “모두 알아보려는 마음이 없기에 알아보지 못 한다”고 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부터 활짝 열면서 생각해 봐요. 마음을 닫으니 옆에 누가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닫아걸기에 둘레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풀꽃나무와 새와 벌나비를 하나도 모릅니다. “너무 많”아서 못 알아본다고 느끼지 않아요. 마음이 없거나 마음을 닫은 탓에 안 알아볼 뿐이지 싶습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미국사람이 있습니다. ‘버스 보이콧’으로 ‘민권운동’을 지폈다고 알려진 분인데, 막상 이분은 ‘어깨동무(민권운동)’을 1930년대부터 했습니다. 또한 1955년에 온마을 이웃하고 함께 ‘걷기(버스 보이콧)’를 하면서 담벼락(흑백차별) 가운데 하나를 허물고 나서도, 2005년에 숨을 거두는 날까지 꾸준히 어깨동무(민권운동)라는 길을 걸었어요. 어릴적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배운 살림을 고스란히 품었고, ‘얼뜬 흰살갗’만 있지 않고 ‘눈뜬 흰살갗’도 많은 줄 알아본 로자 파크스 님이라지요. 살갗이 희거나 검기 때문에 얼뜨지 않다고,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면서 살림길을 익히려 하지 않기에 ‘어느 살갗이든’ 눈뜨거나 얼뜨다고 밝히는 걸음걸이였어요. 어깨동무로 나아가자는 검은살갗도 숱하게 목숨을 잃고 고되었고, 이 길을 나란히 걸은 숱한 흰살갗도 따돌림과 가난을 견디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잃어도 어깨동무를 이었다고 합니다. 함께 걸으면서 함께 눈뜨는 살림빛입니다.



로자 파크스 Rosa Parks 1913∼2005


땅 한 뙈기에 심으면

나무도 풀도 남새도 자라

땅 한 자락서 거두면

너도 나도 우리도 먹어


아버지 곁에는 어머니

할머니 곁으로 할아버지

작은새 둘레로 큰새 큰숲

작은꽃 포근히 큰들 큰벌


아이가 힘들면 어른이 안아

이웃이 지치면 서로 거들어

어른도 고단하니 앉고 싶지

동무랑 나란히 걸으며 수다


손으로 가꾸고 빚고 지어

다리로 다니고 잇고 선다

눈으로 살피고 보고 알아

꿈으로 만나고 살고 그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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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어떤 꽃을



나도 꽃일까 하고

어릴적에 돌아볼 때면

난 아무래도

돌바닥에 낀 이끼일까

아니

이끼한테도 창피한

조그만 티끌일까 하다가

아니

씨앗이 웅크리며 잠들

흙을 이루는

알갱이 하나일까 하고

느끼곤 했다

오늘도 나는

흙알갱이 한 톨이지 싶다


2025.6.14.흙.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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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오늘 아침에



오늘 아침 2025년 6월 14일

무릎셈틀이 간당간당하다

지난해 이맘때 광주에 가서

“존것 드릴게” 하는 말을 듣고서

헌것으로 샀는데

숨을 벌써 거두려 한다


부산에서 고칠 수 있을까

오늘 새로 사야 할까


깜빡깜짝하는 무릎셈틀한테

고맙다고 말을 한다

아침 빗소리를 듣는다


2025.6.14.

※ 무릎셈틀 : 노트북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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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따뜻하지 않아서 2025.6.3.불.



따뜻하지 않아서 싫을 수 있어. 따뜻하지 않아서 네가 둘레를 덥힐 수 있어. 따뜻하지 않아서 추울 수 있어. 따뜻하지 않아서 네가 둘레를 품을 수 있어. 바꾸려면 먼저 느껴야 하지. 가꾸려고 할 적에도 먼저 느끼고 알 노릇이란다. 먼저 느끼고 알아보고 헤아리기에, 바꿀는지 가꿀는지 가릴 수 있거든. 어쩐지 내키지 않거나 못마땅한 나머지 처음부터 내내 등돌리거나 눈감다 보면, 느낄 일부터 없고, 넌 아무것도 스스로 못 바꾸고 못 가꿀 뿐 아니라, 안 배우고 고이면서 곪다가 죽어가게 마련이란다. “나쁠 삶(경험)”이란 없어. “좋을 삶(체험)”도 없지. 모든 삶은 ‘좋음·나쁨’이 아닌, “네(내)가 느끼기를 기다리면서 찾아오는 일”이란다. 너는 처음에는 그저 느끼고 바라보면서, 이 일을 넌지시 스쳐 보낼는지, 네가 풀거나 녹여서 없앨는지, 알맞을 곳으로 띄워 보낼는지, 네 나름대로 느끼고 받아들여서 바꾸거나 가꿀는지 가누면 돼. 넌 네 몫대로 하면 되거든. 넌 네가 못할 만한 일을 구태여 끌어안거나 붙잡아야 하지 않아. 넌 네가 마주하는 일을 그저 그 모습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자, 그러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을 그릴 노릇이야. 너(나)는 생각하려고 몸을 입은 넋인 빛이거든. 그저 빛으로 온누리를 흐를 적에는 빛 그대로 모두 밝히는 길이야. 빛으로 그대로 모두 밝히는 길로 있다가, 네가 새롭게 씨앗을 일으켜서 심고 싶은 마음이기에, 몸을 입고서 사람으로 태어나지.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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