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파란노래 (읽고 잇고 있다)

읽잇있 1 생각하는 너와 나



  이미 사라지고 없는 책이란, 이제 더는 읽히지 않으면서 잊히는 책일 텐데, 새책집에서 새것으로 안 사고팔 뿐, 헌책집에서는 다리품을 팔아서 찾아내어 새롭게 읽을 책이게 마련입니다. 책자취에 ‘100쇄’나 ‘200쇄’쯤 찍히는 책을 굳이 읽어야 우리 스스로 숨결을 살리지 않습니다. ‘30쇄’나 ‘50쇄’에 이르지 못하는데다가 ‘초판’으로 멈춘 책을 읽기에 우리 숨결을 못 살리지 않습니다. 그저 “늘 새롭게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이라는 씨앗’을 우리 스스로 빚어서 심도록 북돋우는 책”을 손에 쥘 적에, 누구나 숨결과 숨빛과 숨꽃을 고스란히 살립니다.


  책에는 ‘새책’과 ‘헌책’이 있습니다. 우리 살림살이도 ‘새살림’과 ‘헌살림’이 있습니다. 왜 둘만 있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워낙 이 별누리는 ‘둘’로 이루거든요. ‘둘’이란 ‘하나 + 하나’인데, 하나에 하나를 더해서 둘을 이룬 숨결이 새롭게 ‘하나’를 낳으면 언뜻 ‘셋’으로 서는구나 싶으면서 새삼스레 ‘하나’로 뭉칩니다. 둘인 ‘하나와 하나’가 낳은 ‘또다른 하나’는 겉몸으로는 셋이되, 마음으로는 ‘그저 하나’요, 사랑으로도 ‘언제나 하나’입니다.


  한걸음을 떼기에 내 곁에 있는 너를 알아보면서 한걸음을 새로 뗍니다. 두걸음인 셈인데, 두걸음을 떼고서 둘이 하나로 피어나면, 어느새 우리는 새록새록 ‘한걸음(첫걸음)’을 떼면서 스스로 새롭게 눈뜨고 깨어납니다. 하나는 둘로 가서 셋을 이루고는 즐겁게 하나로 돌아갑니다.


  이 얼거리를 ‘두하나(모두하나)’라 할 텐데, ‘양자물리학’이라 일컫습니다. ‘하나’하고 ‘하나’로 모두를 그리면서 ‘둘’로 피어나고 깨어날 적에 어쩐지 ‘하나’로 돌아가는데 크기도 부피도 빛깔도 고스란히 하나이되 뭇(무한대)입니다. ‘한길’이 ‘뭇길’인 셈이고, ‘한길 = 뭇길’은 곧장 ‘샘·샘물’로 만나서 흐릅니다.


  두멧숲에서 졸졸 솟는 가장 맑고 싱그러운 물줄기가 ‘샘’입니다. 샘물은 많이도 적게도 솟지 않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똑같이 솟습니다. 가물든 장마이든 샘물은 늘 같아요. 더욱이 샘물을 이루자면 비가 내려서 땅으로 스며야 하고, 비가 내리자면 바다가 하늘빛을 담아서 새파랗게 싱그러울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바다가 비요, 비가 샘이며, 샘이 내요, 내는 다시 바다인데, 우리는 다 다르지만 하나인 물방울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목숨을 이루고 숨빛을 펴며 눈뜨고 깨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사랑으로 살림을 하는 숲빛인 목숨입니다. 사람이란, 샘물을 받아들이는 나(내·냇물·가시내·사내)입니다. 사람은, 샘물을 받아들여서 내를 이루어 흐르는 숨붙이라서 언제나 스스로 새롭고, 늘 저마다 새롭기에 ‘생각’을 씨앗으로 빚어서 마음에 가만히 묻고는, 생각씨가 싹틀 적마다 꿈을 이루고 삶을 누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지내요.


  생각이란, 새롭게 가는 길이요, 샘처럼 솟는 물빛이요, 하늘(사내)과 땅(가시내) 사이를 이으며 노래하는 새(멧새·철새)이면서, 틔워서 해바람비가 드나드는 자리인 ‘틈’과 닮되 다른 ‘새(사이)’입니다. 사내(머스마·아들)는 ‘작은땅(아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논밭을 살찌우는 비를 뿌리는 ‘하늘’과 같다면, 가시내(갓·딸)는 ‘별(크게 하나인 땅·딸)’이라는 이름에 알맞게 온누리를 통틀어 품고 살리는 숲빛과 같습니다. ‘땅(딸)’이라는 낱말은 별(지구)을 통째로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샘물과 같은 ‘내’라는 말씨를 나란히 붙여서 다르며 닮은 사람길인 ‘가시내·사내’라 일컫습니다. 늘 맑고 밝게 흐르는 내처럼 흐드러지는 사랑으로 만나는 사이인 ‘가시내·사내’이기에, 한결같이 새롭게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하루를 짓고 빚고 가꾸고 일구는 길에 함께 기운과 힘을 기울입니다.


  생각이란, 눈으로는 못 본다고 여기지만, 늘 우리 몸마음에 흐르는 ‘빛나는 씨앗’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늘 ‘말’로 나타내지요. 남이 시키는 대로만 심부름을 한다면 ‘마음·말·삶’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 싹을 못 틔우지만, 아무리 작든 크든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씨앗 한 톨을 심으려는 꿈을 키울 적에는 이 꿈이 어느새 ‘생각씨’로 거듭나서 싹트고 자랍니다.


  생각씨를 스스로 일으켜서 마음에 심을 적에는 눈이 반짝입니다. 비록 ‘생각’을 못 본다고 여기더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어떠한 숨결인지 ‘눈에 어리는 빛’으로 알아채요.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은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합니다. 생각시늉이나 생각흉내를 하면서 짐짓 꾸미거나 치레하는 사람은 눈이 안 빛나요. 마음에 두고 가꾸면서 사랑하는 별씨나 빛씨인 생각이니, 생각을 하면 나부터 살리고, 나를 마주하는 너한테 사랑빛을 베풀며, 우리가 나란히 파란하늘과 파란바다를 품는 사람으로 이곳에 섭니다. 2025.9.29.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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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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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곁말

곁말 114 반짝나래



  젖먹이로 그저 바닥에 누워 보꾹만 쳐다보던 무렵, 처음으로 눈앞뿐 아니라 둘레가 환하면서 나타난 ‘반짝나래’를 보았습니다. 그 뒤로도 얼핏설핏 보았지 싶으나 어린배움터에서 내는 짐(숙제)에 허덕이면서 하늘을 볼 짬이 없었습니다. 낮에 문득 바깥하늘을 바라볼라치면 길잡이(교사)는 으레 머리를 쾅 때리면서 “딴청 부리지 말고 앞을 봐!” 했습니다. 열 살 무렵,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에 반짝나래가 새삼스레 훅 나타나서 “넌 뭘 바라니? 네가 바라는 대로 줄게. 돈이 있으면 돼? 아니면 멀리 떠나고 싶어? 힘이 세고 싶어? 잘생기고 싶어?” 하고 묻습니다. 바라는 대로 준다는 말에 솔깃하려다가 “아냐. 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어. 돈은 어른이 되어 벌 수 있고, 어른이 되면 어디로든 돌아다닐 수 있을 테고, 비록 힘이 여리지만 힘이 세면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주먹을 휘두를까 싶어서 싫어. 그리고 사람은 잘생기고 못생기고로 따질 수 없어. 고마워.” 하고 대꾸했습니다. 이날 뒤로 서른 해 넘게 반짝나래를 못 보았다가, 전라남도 고흥 시골자락에 깃들고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나래를 자주 봅니다. 아이들도 곁님도 알아채고는 “저기 있다! 저기서 춤추네. 어, 멈췄네. 다시 춤추네!”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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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나래 (반짝 + 나래) : 반짝하는 빛으로 날면서 나타나는 무엇. 사람이 보기에는 눈부시거나 환하거나 반짝거리는 빛살·빛줄기·빛덩이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위아래왼오른을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날 뿐 아니라, 아주 빠르게도 느리게도 날고 멈추기도 하며,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 반짝날개·반짝빛·반짝별·반짝이·반짝벗·반짝님. ← 유에프오UFO, 미확인비행물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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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곁말

곁말 113 앉은풀



  여름에는 풀이 우거집니다. 온누리를 푸르게 덮어요. 예부터 풀을 함부로 안 베었고 ‘잡초’ 같은 한자말도 안 썼습니다. 그냥 ‘풀’이고, 마소가 누리는 밥이자, 모두한테 푸르게 베푸는 숨결이요, 사람은 나물이나 살림풀(약초)로 삼았어요. 성가시거나 나쁘다고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임금이나 벼슬아치가 사는 곳에는 풀 한 포기 없고 나무도 없습니다. 경복궁·광화문이나 절이나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보면 알 만해요. 들꽃 같은 사람들이 지내는 곳은 집을 나무로 둘러싸고 숲에 안겨서 들풀을 들나물로 삼았어요. 겨울이 저물 즈음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듯 돋는 첫 봄나물을 먼 옛날부터 ‘앉은뱅이꽃’이라 했어요. 납작 앉았다는 뜻입니다. 요새는 ‘앉은뱅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 이 이름도 안 써야 한다고 여기는 분이 많은데, ‘-뱅이’를 덜어 ‘앉은풀·앉은꽃’이라고만 해도 확 달라요. 바깥말 ‘로제트’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납작풀·납작꽃’이나 ‘바닥풀·바닥꽃’ 같은 이름을 붙여도 어울려요. 아늑하게 깃들어 햇볕을 머금고 바람을 마시는 조그마한 풀꽃을 고이 쓰다듬습니다. 아름드리로 크지 않더라도 옅푸르거나 짙푸르게 이 땅을 폭 덮으며 봄을 노래하는 작고 상냥한 들빛을 가만히 안습니다.


앉은풀 (앉다 + 풀) : 땅바닥에 폭 앉은듯이 잎이 퍼지면서 자라는 풀. 잎이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듯이 퍼지면서 자라는 풀. (= 납작풀·납작꽃·앉은꽃·앉은뱅이꽃·앉은뱅이풀 ← 로제트ros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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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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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68 풋글



  처음 적은 글을 그대로 옮겨서 책으로 낸 적이 없습니다. 누리집(블로그·홈페이지)에 올리기 앞서 밑글로 적어 놓고서 숱하게 손질하고 고치며, 나중에 책으로 여밀 적에도 새록새록 손보고 뜯어고칩니다. 누리집에는 으레 풋글을 올린다고 할 만합니다. 풋글이어도 굳이 올려놓지요. 애벌글을 두벌 석벌 열벌 스무벌 고치기만 해서는 끝이 안 나요. 어느 만큼 추슬렀구나 싶으면 아직 풋내가 나는 글이어도 올려놓습니다. 이러고서 다른 일을 하고 글을 쓰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보고는 살핏살핏 또 다듬고 새삼스레 가다듬습니다. 종이에 얹어서 선보이는 책일 적에도 글손질은 끝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낼 적에 이모저모 쓰다듬고 어루만집니다. 글 한 자락을 온벌(100벌)이고 즈믄벌(1000벌)이고 되읽고 다독인달까요. “나는 글을 잘 쓰지 못 한다”고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풋글을 씁니다. 다 풋내기예요. 풋풋한 글을 가만히 내놓고서 여러 사람 숨결하고 손빛을 받아 하나둘 매만지노라면 어느새 풀빛글로 거듭나고, 파란하늘빛을 담는 글로 다시 태어나요. 어느 만큼 무르익는다면 이제는 풋글이 아닌 빛글로 피어나겠지요. 또는 꽃글이 될 만해요. 풋글은 씨앗글이라 할 만합니다. 씨앗 한 톨을 심어서 가꿔요.


풋글 (풋 + 글) : 가볍게·처음으로 적거나 옮긴 글. 나중에 살리거나 쓸 생각으로 몇 가지만 적거나 옮긴 글. (= 밑글·적바림·애벌글. ← 메모, 초기草記, 초기抄記, 초록抄錄)

애벌글 (애벌 + 글) : 처음으로 적거나 옮긴 글. 앞으로 더 쓰거나 고칠 생각으로 먼저 몇 가지를 적거나 옮긴 글. (= 밑글·첫글. ← 초고草稿, 초기草記, 초안, 각본, 극본, 대본, 시나리오, 본本, 설계, 도면圖面, 구상構想,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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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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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67 까막까치다리



  예전 어른들은 으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른바 ‘옛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견우랑 직녀라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둘은 그만 한 해에 꼭 하루만 만날 수 있다는데, 이때에 까마귀랑 까치가 하늘을 까맣게 덮으면서 저희 등판으로 다리를 놓는다지요.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은 “이리하여 하늘에 ‘오작교’가 놓이고 …….” 합니다. 어린 우리들은 “‘오작교’? 오작교가 뭐예요?” 하고 묻지요. “어허, 말 끊지 마라! 에헴, 까마귀하고 까치가 다리를 놓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까막까치가 놓는 다리가 ‘오작교’야.” 어릴 적에는 또 꾸지람을 들을까 싶어 더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만, “뭐야? 까막까치가 놓는 다리라면 ‘까막까치다리’이지, ‘오작교’가 뭐래?” 하고 동무하고 수군댔어요. 어른들은 순 알 길이 없는 말을 마구 지어서 쓴다고 여겼습니다. 어느덧 어른이 된 저는 아이를 낳아 돌보다가 아이들한테 이 옛이야기를 새삼스레 들려줍니다. 우리 아이들도 지난날 저처럼 똑같이 물어요. “아버지, 오작교가 뭐야?” “오작교? 그래, 까마귀랑 까치가 놓는 다리를 한자로 가리키는 이름인데, 우리말로는 ‘까막까치다리’야.” “아, 새들이 놓는 다리로구나.” 그래요, 새가 새롭게 놓는 다리입니다.


까막까치 : 까마귀랑 까치를 함께 가리키는 이름. (← 오작烏鵲)

까막까치다리 : 까막까치(까마귀랑 까치)가 하늘·미리내에 놓는 다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견우·직녀가 해마다 달셈(음력)으로 7월 7일에 만날 수 있도록, 까막까치가 모여서 놓아 주는 다리로, 까막까치는 저희 등판을 다리로 삼아 견우·직녀가 건너가서 꼭 하루만 둘이 만나도록 잇는다고 한다. (← 오작교烏鵲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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