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6.6.28. 오소리 길죽음
오늘은 큰마음 먹고 멀리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한다. 읍내까지 자전거를 몰기로 한다. 나 혼자 달리는 길이 아니라, 두 아이를 이끌며 다녀오기로 한다. 아침부터 일찍 짐을 꾸려서 길을 나선다. 읍내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만만하지 않을 테니 밥을 든든히 먹인다.
자전거는 마을을 벗어나고 면소재지를 가로지른다. 아이들은 이 자전거가 바다로 가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반긴다. 마침 더웠는데 잘되었노라 한다. 우리는 바닷마을을 옆으로 끼고 신나게 달린다. 바닷가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바닷바람을 쐬며 마음껏 달린다. 얘들아, 바다는 이따가 오자. 읍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도 이 길을 지나가거든.
남당마을에서 다리를 쉰다. 풍남항이 가까이 있는 남당마을까지는 반반한 길이었다면, 이제부터 멧자락을 넘어야 하는 길이다. 이곳에서 기운을 모아서 힘차게 오르막을 달리려 한다.
지난해에는 아이들하고 자전거로 읍내를 다녀오지 않았다. 읍내까지 가는 길에는 자동차가 제법 많고 그리 재미있지 않다고 느꼈다. 읍내는 버스로 다녀오고, 자전거로는 골짜기나 바닷가만 달리자고 여겼다. 오늘은 자전거를 손질하러 읍내에 간다. “저기 산 보이지? 우리가 넘어갈 고갯마루야.” 아이들한테 얘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딱히 느낌이 없는 듯하다. 앞에서 아버지가 끌어 주니까. 냉정마을을 지나 천등산 멧줄기를 옆으로 끼고 가쁘게 고개를 넘는다. 훅 훅 훅 훅 천천히 천천히 숨을 고르며 천천히 천천히 발판을 구른다. “우리가 저 산을 빙 돌아서 이리로 왔지. 산을 바로 넘지는 못하고, 옆으로 크게 에둘러서 바다를 끼고 왔어.”
경찰차 한 대가 뒤에서 다가온다. 순찰을 하는 경찰차인 듯싶다. 경찰차에 탄 경찰이 아이들을 보며 웃음으로 인사한다. 나는 숨이 가빠서 고개를 돌리기도 벅차지만, 아이들은 즐거이 인사를 하며 조잘조잘 떠든다. 경찰차가 사라지고 이 고갯마루에 아무 자동차도 없을 즈음, 오직 멧새 노랫소리와 우리 자전거가 천천히 달리는 소리만 흐를 즈음, 더없이 조용하면서 맑은 바람이 흐른다. “어때? 자동차가 없으니 아주 조용하지? 어떤 소리가 들려?” 우리가 숲에 깃들어 산다면 이 바람을 더욱 기쁘게 쐬리라. 우리가 숲집을 이루어 지낸다면 이 그늘과 냄새를 더욱 살뜰히 누리리라.
한참 오르다가 자전거를 세운다. 숨을 돌리기도 하고, 숲바람을 느긋하게 쐬어 볼 생각이다. 그런데 자전거로 고갯마루를 넘을 적에는 조용하더니, 살짝 다리를 쉴 즈음에는 이래저래 자동차가 제법 지나간다.
다시 힘을 내어 자전거를 달린다. 왼쪽 길바닥에 어떤 짐승이 차에 치여서 죽은 모습을 얼핏 본다. 오르막이라 힘이 드니 그냥 지나가려 하는데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외친다. “아버지! 저기! 저기 누가 죽었어! 쟤 풀숲에 옮겨 주고 가야지!” 큰아이는 얼른 자전거를 멈추라고 한다. 이리하여 오르막을 달리던 자전거를 돌리기로 한다. 숲짐승 길죽음 자리로 가 본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이 꽤 크다. 이 숲짐승을 숲에서 따로 본 적은 없는데, 길죽음인 모습으로 비로소 만나네. 오소리이다. “오소리야.” “오소리? 나 오소리 처음 봤어.” “나도 처음 봐.” 두 아이는 오소리라는 숲짐승을 처음 본다고 얘기한다. 가만히 살피니 이 오소리는 암컷이고 새끼를 배었다. 자동차에는 언제 치였을까? 새끼를 배어 몸이 한결 묵직한 오소리를 영차 들어서 풀숲으로 옮긴다. 고갯마루 길이라 풀숲이 그리 넓지 않다만, 부디 풀숲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빌어 본다.
힘을 내고 내어 고갯마루에 이른다. 백석마을을 지나서 내리막을 맞이한다. 내리막에서는 다리를 쉬면서 시원하게 달린다. 풍양면을 지나고 읍내로 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아직 읍내는 멀다. 아직 더 가야 한다.
읍내하고 가까우니 찻길이 넓어진다. 자동차도 늘어난다. 읍내로 접어드니 자동차는 더욱 늘어나는데, 따지고 보면 이 시골 읍내 자동차는 도시에 대면 ‘거의 없다’고 할 만하다.
읍내 자전거집으로 간다. 내 자전거를 샛자전거하고 수레에서 떼어낸다. 자전거집 아저씨한테 내 자전거를 맡긴다. 먼저 뒷바퀴를 간다. 앞바퀴는 더 탈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앞바퀴는 다음에 갈기로 한다. 멈추개는 앞뒤 모두 새 것으로 간다.
나는 이튿날 서울에 다녀올 생각이기에 살짝 저자마실을 해 본다. 고흥에 남는 세 사람이 이틀 동안 즐겁게 먹기를 바라며 수박 반 통을 장만한다. 읍내에서 집까지 이십 킬로미터 즈음 수박 한 통을 싣고 달리기는 좀 많이 힘들다. 천 미리 우유도 석 통을 장만하고, 이모저모 장만하니 제법 묵직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읍내로 나오는 길보다 힘이 들 텐데 자전거를 더욱 무겁게 하네.
오던 길을 짚어 한 발 두 발 기운을 낸다. 나는 나대로 다리이며 몸에서 힘을 잔뜩 쏟아내지만, 아이들도 샛자전거랑 수레에서 잘 견디어 준다. 참으로 대견하지.
아까 내리막이던 고갯마루를 오른다. 아까 내려올 적에 시원했던 만큼 이제는 땀바람이 된다. 이윽고 아까 만났던 바다를 새삼스레 만난다. 자, 이제 바다야. 마음껏 놀아도 돼.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놀도록 하고, 나는 자전거를 붙잡고 끙끙 앓는다. 서지도 않지도 못하는 몸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큰아이는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좋아한다. 작은아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돌밭에서 굴리고 바닷물에도 넣으면서 논다.
주전부리를 먹이고 길을 나서려는데 빗방울이 듣는 듯하다. 아니야, 우리가 집에 닿을 때까지 비가 오면 안 되지. 마음속으로 해님을 부른다. 구름이 아닌 해님을 부르면서 발판을 구른다. 다시 면소재지에 닿는다. 면소재지를 벗어날 무렵 고양이 한 마리를 본다. 이 고양이는 길바닥에서 꼼짝을 안 한다. 이번에는 큰아이가 못 보았다. 자전거를 세운다. 길죽음 고양이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다리가 뻣뻣하지 않고, 핏물도 굳지 않았다. 아마 자동차에 치인 지 십 분 안팎인 듯하다. 몸에도 따스한 기운이 그대로 있다. 부디 아름다운 곳에서 즐겁게 태어나렴. 마음속으로 빌면서 풀밭으로 옮긴다.
면소재지를 벗어난다. 동호덕마을을 지난다. 이제 우리 마을이 코앞이다. 그러나 발판질을 하는 다리힘은 자꾸 줄어든다. 너무 벅차서 더 달리지 못하고 자전거를 세운다. “우리 좀 걸어가 보자.” 큰아이는 뒤로도 걷고 앞으로도 걸으면서 잘 놀아 준다. 다시금 더없이 고맙다고 느낀다. 십 분 즈음 걸어 준 힘으로 마지막 힘을 내어 집 앞까지 이른다.
잘 다녀왔습니다. 자전거도 잘 고쳤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신나게 씻읍시다. 아버지는 그동안 새롭게 기운을 내어 저녁을 차려 놓을게요. 모두 멋있고 훌륭했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고흥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