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토마토>에 싣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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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6


가깝다고 여기는 길을 굳이 돌아갈 수 있을까? 요즈음은 가깝건 멀건 지름길로 가야 한다고 여긴다. 길찾기(내비게이션)를 켜면 어떻게 가로지르면 되는지 알려준다. 돌잇길을 알려주는 길찾기는 아마 없을 듯싶다. 조금이라도 돌면 길에서 하루를 아깝게 보낸다고 여기는 셈인데, 나와 네가 다르면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헤아리자면 오히려 빙그르르 돌고, 애써 더 멀리 에돌면서 아우를 만하다. 지름길로 달리는 사람은 둘레를 안 본다. 천천히 거닐면서 마을을 느끼려 할 적에 비로소 이웃집과 멧새와 철빛을 마주한다. 이때에는 가만히 틈을 내면서 말길을 가꾸고 말결을 돌보는 눈빛을 연다고 느낀다.



일곱달이

어머니 몸에 깃드는 아기는 으레 열 달을 살고서 새롭게 삶을 연다. 우리말 ‘열’은 ‘열다’와 ‘열매’를 밑동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아기를 밴 어머니는 몸으로 열 달을 품으면서 찬찬히 하루를 짓고 살림을 가다듬어서 맞이하게 마련이다. 때로는 아기가 일찍 태어난다. 일곱달이나 여덟달 만에 태어나는데, 이때에는 몸이 아직 덜 자란 터라, ‘일곱달이’나 ‘여덟달이’인 몸으로는 조금 아프거나 힘들 수 있다. 어머니 몸에서 두어 달을 덜 살았되, 어머니와 아버지 곁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천천히 하루하루 삶을 누린다면, 아프거나 힘든 몸은 차근차근 아물거나 여물게 마련이다.


일곱달이 (일곱 + 달 + -이) : 어머니 몸에서 일곱 달을 살고서 태어난 아이. 으레 열 달을 살고서 태어나게 마련인데, 석 달을 덜 살고서 태어나면서 조금 아프거나 힘들 수 있다. (= 일곱둥이·일곱달둥이. ← 칠삭둥이七朔-)


여덟달이 (여덟 + 달 + -이) : 어머니 몸에서 여덟 달을 살고서 태어난 아이. 으레 열 달을 살고서 태어나게 마련인데, 두 달을 덜 살고서 태어나면서 조금 아프거나 힘들 수 있다. (= 여덟둥이·여덟달둥이. ← 팔삭둥이八七朔-)



냇가뜨락

냇가에 쉼터를 마련한다면 ‘냇가쉼터’이다. 물가에 쉼터를 두니 ‘물가쉼터’이다. 바닷가라면 ‘바닷가쉼터’일 테고. 쉼터란 뜰이며 뜨락 같다. 집에 두는 뜰이며 뜨락은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이웃과 손님도 쉬면서 몸과 마음을 돌보는 푸른터라고 할 만하다. 냇가뜨락에 물가뜨락에 바닷가뜨락을 두면서 파란바람을 맞이한다. 둔덕쉼터에 둔치뜰을 거닐면서 발바닥으로 푸른들을 마주한다.


냇가뜨락 (내 + ㅅ + 가 + 뜨락) : 냇가나 물가나 못가나 둔덕에 마련하여 누구나 쉬거나 놀 수 있는 곳. (= 냇가쉼터·냇가뜰·물가쉼터·둔덕쉼터·둔덕뜨락·둔덕뜰·둔치쉼터·둔치뜨락·둔치뜰. ← 수변공원)



마음멍

흔히 “마음에 멍이 든다”고 말한다. ‘멍’은 워낙 겉으로 드러나는 자리이다. 맞거나 부딪혀서 몹시 아픈 나머지 핏물이 시커멓게 죽은 탓에 밖에서 보면 퍼렇게 맺히듯 물든 자리를 ‘멍’이라 한다. 몸이 다치기에 ‘멍’이고, 마음이 다칠 적에도 ‘멍’일 텐데, 눈으로는 잘 알아차리지 못 하는 멍이라서 따로 ‘마음멍·마음멍울’로 가리킬 만하다. ‘마음앓이’에 ‘속앓이’처럼 좀처럼 못 드러내면서 아프고 괴롭다.


마음멍 (마음 + 멍) : 마음에 든 멍. 괴롭거나 힘들거나 아플 뿐 아니라, 모질거나 사납거나 끔찍한 일을 거치거나 겪으면서 도무지 차분하거나 느긋하게 돌볼 수 없는 마음. 씻거나 털거나 벗지 못한 채 고스란히 떠안은 괴롭거나 힘들거나 아픈 마음. (= 마음멍울·마음흉·마음흉터·속멍·속멍울·속흉·속흉터. ← 트라우마, 쇼크shock, 쇼킹shocking, 정신적 충격, 후유중, 내상內傷, 마음고생-苦生, 내면의 상처, 상처傷處, 환부患部, 단장斷腸, 한恨, 한스럽다恨-, 속병-病, 전전긍긍, 성장통, 고통, 고역苦役, 고행苦行, 심적 고통, 내적 고통, 고충)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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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달이 나오는 <월간토마토>에 실은 글이다.

아마 2025년 5월호에 실었지 싶다.

다달이 올려놓으려고 하지만

어쩐지 다달이 깜빡깜빡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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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5


나는 열 살에 처음 한자를 익혔는데, 한자를 익히고 보니 ‘어른들이 그냥 쓰는 얄궂거나 아리송한 말’이 하나둘 보였다. 어머니나 둘레 어른하고 곧잘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어머니, ‘수돗물’이란 말 참 아리송하지 않아요?” “왜? 뭐가?” “‘수도’라 하면 ‘물길’이란 뜻인데, ‘수돗물’은 ‘물길물’이잖아요?” “그런가? 그러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 잘 모르겠지만, 말을 바꿔야 하지 않아요?” “말을 바꿔? 어떻게? 귀찮아, 그냥 써.” 마흔 해 앞서인 1984년 무렵에는 그냥 ‘수돗물’을 써야 하나 싶어 입에 안 붙었으나, 이제는 ‘꼭짓물’로 바꿔서 써 본다. 말이 안 된다고 느끼는 한 사람부터 바꾸면 될 일이지 싶다.



꼭짓물

‘수도’라는 한자말은 매우 아리송하다. 우리말로 옮기면 그저 ‘물 + 길 = 물길’인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물길물(수돗물)’이라는 엉뚱한 말을 쓴다. 엉뚱말을 늘 쓰면서도 엉뚱한 줄 못 느끼기 일쑤이다. ‘물길꼭지(수도꼭지)’란 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도록 마련한 살림을 가리키는데, “꼭지를 틀어 물이 나오는 살림”이라면 수수하게 ‘물꼭지’라 하면 된다. 집에서 물꼭지만 틀어도 물을 쓰는 살림길이라면, 슬쩍 앞뒤를 바꾸어 ‘꼭짓물’이라 할 수 있다. 낱말을 참 쉽게 짓는다고 여길 만한데, ‘물길(수도水道)’이라는 낱말부터 그저 수수하고 쉽다.


꼭짓물(꼭지 + ㅅ + 물) : 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 으레 서울이나 큰고장에서 물을 쓰는 길을 가리키는데, 큰못에 가둔 물을 길게 이어서 언제 어디에서나 쓸 수 있도록 다스리는 물이다. (← 수도水道, 수돗물水道-)



비나리물

새벽에 처음 길어서 마음을 고이 다스리면서 내놓는 물이 있다. 새벽에 내놓는 ‘새벽물’일 텐데, 물 한 그릇을 마주하고서 고요히 추스르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가만히 비손을 한다. 비나리를 이루려는 정갈한 손짓과 몸짓이 어울린다. 바로 오늘 하루를 새롭게 열면서 가꾸려는 꿈과 사랑이 만난다. 빌고 바라고 그리고 꿈을 심으면서 마음빛을 물빛으로 적신다.


비나리물 (비나리 + 물) : 동이 트려고 하는 아직 어둡고 이른 새벽에 우물이나 냇가에서 처음 뜨고는, 그릇·사발·대접에 놓은 다음에 마음 가득히 꿈·사랑을 빌면서 올리는 물. (= 비손물·새벽물. ← 정화수井華水, 정한수井-水)



속꽃나무

영어로 ‘fig’라 일컫는 나무를 한자말로는 ‘無花果’로 적는다. 우리는 한글로 ‘무화과’로 적는데, 이 나무는 “꽃을 안 맺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꽃”이 아닌 “속으로 말리면서 맺는 꽃”일 뿐이다. 어린날 이 나무를 마을에서 흔히 보았다. 마을어른은 으레 ‘무아가’라든지 ‘뫄가’처럼 소리를 내셨다. 뭔 나무라는 소리인지 잘 알아듣지 못 했으나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 시골로 삶터를 옮긴 뒤, 마당 한켠에서 자라는 이 나무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해마다 이름을 곰곰이 돌아보았다. 말벌이 속으로 드나드는 모습을 늘 지켜보는데, 개미와 노린재와 작은 딱정벌레와 무당벌레도 속으로 드나들며 단물을 누리더라. 여러모로 본다면, 우리로서는 “속으로 맺는 꽃”이라는 뜻으로 ‘속꽃·속꽃나무’처럼 이름을 새로 붙일 만하다. 큰꽃과 작은꽃이 있고, 들꽃과 숲꽃과 멧꽃이 있다. 시골꽃과 서울꽃이 있고, 아이꽃과 어른꽃이 있다. 이른꽃에 늦꽃이 있으며, 아침꽃과 밤꽃이 있다.


속꽃 (속 + 꽃) : 속에 맺는 꽃이나, 속으로 맺는 꽃. 꽃이 겉으로 안 드러나기에 마치 꽃이 없다고 여기지만, 속으로 가만히 말려서 들어가듯 도톰하고 통통하게 부풀면서 맺는 꽃. (← 무화과無花果)

속꽃나무 (속 + 꽃 + 나무) : 속꽃을 내놓는 나무. 한봄을 지나면서 느긋이 사람손 비슷한 모습인 잎을 내놓은 뒤에, 조그마한 망울처럼 꽃을 천천히 내놓고서 속으로 꽃을 맺으면서 열매를 남기는 나무. (← 무화과나무無花果-)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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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토마토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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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4


어린이는 좀처럼 못 알아듣는 한자말과 영어가 꽤 많습니다. 그렇지만 숱한 어른은 어린이가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들으니 잘못”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른’이라면, 철들고 어진 사람이라는 뜻인 ‘어른’이라면, 바로 알아들을 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들려주는 낱말과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날개를 펴면서 새말을 손수 엮도록 북돋우는 길을 살필 노릇이지 싶습니다. 벼락을 모아서 땅밑으로 흘려보내는 작대기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서 아이들한테 들려주어야 어울릴까요?



벼락바늘

어릴적에 어머니하고 마을길을 걷다가 “어머니, 저기 저 뾰족한 바늘 같은 작대기 뭐예요?” 하고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는 “뭐? 어디?” 하셨고, 나는 “저기 지붕에 길게 솟은 뾰족한 바늘 같은 작대기요.” 하고 여쭌다. 어머니는 “아, 저거? 저거는 ‘피뢰침’이라고 해.” “네? 뭐라고요?” 하며 선뜻 알아듣지 못 했다. 이제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는 우리 아이가 묻는 똑같은 말을 들었고, 나는 우리 어머니하고 다르게 들려준다. “아, 저 뾰족한 바늘? 저 바늘은 벼락을 모아. 벼락을 받아들이거나 모아서 땅밑으로 흘려보내는 작대기이지. 그래서 ‘벼락바늘’이라고 해. ‘벼락작대’라고 해도 될 테고.”


벼락바늘 (벼락 + 바늘) : 벼락·번개를 모으거나 받아들이는 바늘이나 작대. 벼락·번개가 칠 적에 받아들여서 땅밑으로 곧장 내려가거나 흘러가도록 놓은 길다랗게 끝이 뾰족한 쇠작대. 지붕에 놓곤 한다. (= 벼락작대·벼락막대·번개바늘·번개작대·번개박대·뾰족하다·뾰족이. ← 피뢰침)



잎뜰

잎을 우려서 마시기에 ‘잎물’일 테고, 한자로는 ‘차·다(茶)’라 한다. 해바람비와 이슬과 흙을 푸른숲에서 머금는 잎에 깃드는 기운을 우리거나 내리기에 ‘잎물’일 텐데, 잎내음과 잎빛을 누리는 자리라고 한다면 ‘잎자리’요, ‘잎마당’이면서 ‘잎뜰’이라 일컬을 만하다.


잎뜰 (잎 + 뜰) : 잎을 우리거나 내리는 물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하거나 쉬거나 즐기는 뜰이나 자리나 모임. (= 잎뜨락·잎마당·잎자리·잎놀이·잎맞이·잎길. ← 차회茶會, 다회茶會)



손밥

먼먼 옛날 옛적부터 누구나 모든 일을 스스로 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고 스스로 쉬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바라보았다. 오늘날은 조그마한 집일이나 살림조차 스스로 안 하는 굴레로 내딛는다. 어느 틀(기계)에 넣어 단추만 누르면 그만인데, 이제는 단추조차 안 누르면서 말로 시키는 틀까지 나온다. 그런데 우리말을 보면, “집에서 하는 일”을 ‘집일·집안일’이라고도 하되, 이보다는 ‘살림·집살림’으로 나타내곤 한다. 누구나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집·밥·옷’을 놓고서 ‘집일·밥일·옷일’이라 안 했다. ‘집살림·밥살림·옷살림’이라 했다. 수수한 말씨인데, 요새는 ‘건축문화(집문화)·음식문화(밥문화)·복식문화(옷문화)’처럼 한자를 붙여서 나타내기도 하더라. 일본말 ‘문화(文化)’는 우리말로 옮기면 ‘살림’이다. 사람으로서 사랑을 하며 살리는 길이니 ‘살림’이다. 지난날에는 언제나 누구나 ‘손일·손살림’이었기에 손수 짓고 가꾸고 빚고 차리고 일구었다. 이러한 결을 새삼스레 되새기며 ‘손밥’을 차리고 ‘손수밥’을 짓고 ‘스스로밥’을 하는 오늘을 누려 본다.


손밥 (손 + 밥) : 손수 짓거나 하거나 차려서 누리는 밥. 남이 차려주기를 바라지 않거나, 밖에서 돈으로 사먹지 않으며, 스스로 밥살림을 하면서 누리는 밥. (= 손수밥·스스로밥. ← 자취自炊, 자취생활, 백반白飯, 가정식家庭食, 가정식 백반, 가정식 요리, 가정요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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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3


포도술을 따는 분이 ‘와인 오프너’라 말씀하기에 여쭈어 본다. “포도술을 따면 ‘포도술따개’이지 않나요?” 병을 따니까 ‘병따개’이고, 병을 덮으니 ‘병뚜껑’이다. 꽈배기처럼 골을 내면 ‘꽈배기못’이고, 해와 바람과 비를 아우르면 ‘해바람비’이다. 한결같이 흐르는 마음을 생각하다가, 나는 ‘한꽃같이’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문득 그린다.



꽈배기못

꽈배기처럼 골을 낸 못이 있다. 소라처럼 빙그르르 돌린 모습으로 골을 낸 못이 있다. 생김새대로 ‘꽈배기못’에 ‘소라못’이다. 줄여서 ‘꽈못’이라 할 만하다. 포도술을 따는 살림은 꼭 꽈배기못이나 소라못을 닮는다. 포도술을 따기에 ‘포도술따개’일 텐데, ‘꽈배기못’이나 ‘소라못’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켜도 어울린다.


꽈배기못 (꽈배기 + 못) : 꽈배기처럼 골을 낸 못. 빙그르르 돌린 골을 낸 못. 골을 돌려서 낸 못은 단단히 박을 수 있다. 포도술을 따는 살림은 빙그르르 돌린 못과 같은 모습이라서, 포도술따개를 가리키기도 한다. (= 꽈못·소라못. ← 나사螺絲, 나사못螺絲-, 스크루screw, 와인 오프너)


포도술따개 (포도 + 술 + 따개) : 포도술을 따는 살림. 포도술은 으레 코르크나무한테서 얻은 껍질울 다뤄서 마련한 마개를 쓰는데, 코르크마개를 병 아가리에서 빼려면 꽈배기처럼 생긴 못·송곳 같은 살림을 돌려박고서 잡아당긴다. (= 송곳·꽈배기못·꽈못·소라못. ← 와인 오프너)



해바람

해가 쬐면서 따뜻하거나 포근하다. 바람이 불면서 푸르고 파랗게 기운이 일어나고 숨을 맞아들인다. 비가 내리면서 온누리가 촉촉하고 싱그러이 솟고 흐르는 물을 마신다. 흙이 있어서 씨앗이 싹트고 풀과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다. 온누리를 이루는 바탕은 처음에는 ‘해바람’이었을 테고, ‘해바람비’에 ‘해바람비흙’으로 잇는다. 북돋우고 살찌우는 바탕을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해바람 (해 + 바람) : 해와 바람. 또는 해와 바람과 비와 흙을 모두 나타내는 말. 온누리를 이루는 바탕이면서, 온누리가 푸르게 살아숨쉬도록 북돋우는 바탕을 나타낸다. 모든 목숨·숨결이 빛나면서 살아가는 바탕을 나타내기도 한다. (= 해바람비·해바람비흙) ← 자연, 자연환경, 자연조건, 자연스럽다, 자연적, 자연주의, 자연숭배, 섭리攝理, 자연법칙, 천지자연, 대자연)



한꽃같다

저쪽도 그쪽도 기웃거리지 않기에 ‘한결같다’고 한다. 그러나 ‘한결’은 ‘외곬·외길’하고 다르다. 외곬이나 외길은 어느 곳만 쳐다보거나 들여다보느라 다른 곳은 팽개치거나 모르쇠인 매무새도 담지만, ‘한결’이라 할 적에는 하늘처럼 크고 넉넉하며 하나인 빛으로 아름답게 나아가는 매무새를 그린다. 숨결을 한결같이 다스린다면 이 매무새로도 빛나는데, 이곳에서 새롭게 피어나듯 둘레를 한바탕 안거나 품는다는 뜻으로 ‘한꽃같다’로 할 수 있다. 한결같아서 ‘한결넋·한결마음’이라면, 한꽃같아서 ‘한꽃넋·한꽃마음’이다. ‘한마음’에 ‘한넋’이라는 낱말 곁에 ‘한꽃빛’과 ‘한꽃길’과 ‘한꽃사랑’이라는 낱말을 나란히 놓아 본다.


한꽃같다 (한 + 꽃 + 같다) : 하나인 꽃과 같다. 꽃송이 하나로 오래오래 깊고 향긋하고 곱고 맑고 밝게, 잇거나 있거나 흐르거나 빛나는 마음·뜻·숨결·삶·길·몸짓·일·넋·매무새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꽃 한 송이와 같이 오래오래 깊고 향긋하고 곱고 맑고 밝고 빛나다. (= 한꽃마음·한꽃사랑·한꽃빛·한꽃길·한결같다·한결꽃·한결마음. ← 물아일체, 태극太極, 수어지교水魚之交, 일심동체, 일심불란一心不亂, 감응, 조응, 조화調和, 하모니harmony, 혼성混成/混聲, 혼연일체, 영원불멸의 사랑, 일편단심, 부부애, 금실琴瑟, 만년萬年, 수미일관, 시종일관, 백년해로, 초지일관, 영원, 영구, 영속永續, 지속가능. 변함없이, 불변不變, 진심眞心, 정성精誠, 항상성, 롱런long-run, 만고불변, 사시청청四時靑靑, 성평등, 페미니즘)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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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2


“입에 재갈을 물린다”고 한다. 요사이는 이런 옛말을 쓰는 분이 줄었고, ‘입틀막’처럼 새로 여민 말씨를 쓰는 분이 많다. ‘재갈질’ 같은 말씨를 모르더라도, 문득 떠오르거나 느끼는 대로 짓는 말씨에 우리 삶이 흐른다. ‘밥한그릇’을 나누려는 마음이라면 섣불리 ‘입틀막’을 안 하리라. ‘소걸음’으로 둘레를 살필 뿐 아니라 들꽃을 눈여겨보는 눈길이라면, 이제부터 새롭게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길을 일구리라 본다.



밥한그릇

‘밥공기’나 ‘공깃밥’은 매우 어정쩡하다. 그러나 이렁저렁 그냥 쓰는 우리나라이다. 사람들이 널리 쓰면 이대로 받아들일 만하되, 알맞게 쓰거나 새롭게 살리는 길을 함께 짚고서 알릴 수 있으면, 우리 스스로 말빛을 마음빛으로 담으면서 생각을 북돋울 만하다. 이미 ‘그릇’이라는 낱말 하나로 다 가리킨다. 살림살이를 넓히면서 ‘물그릇’이며 ‘꽃그릇’이며 ‘돈그릇’이며 ‘마음그릇’이며 쓰임새가 늘기에 새말을 지을 만하므로, ‘밥그릇’을 따로 쓴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집에서 손수 밥을 짓고 차려서 누렸다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밖에서 손쉽게 사다먹을 수 있는 얼거리에 마을이다. 따로 어떤 밥을 시키기보다는 그날그날 차리는 대로 받아서 한끼를 누린다면, 이때에는 ‘밥그릇’이라는 낱말을 요조모모 헤아려서 ‘밥한그릇’이나 ‘한그릇밥’처럼 쓸 만하다. 단출히 ‘그릇밥’이라 해도 어울린다.


밥한그릇 (밥 + 한 + 그릇) : 한 사람이 먹을 그릇으로 차린 밥. 한끼로 먹을 만큼 차린 밥. 때로는 그릇에 담은 밥을 세는 말씨로도 쓴다. (= 그릇밥·한그릇밥. ← 공기空器, 공깃밥空器-, 백반白飯, 가정식家庭食, 가정식 백반, 가정요리)



입틀막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소리가 조금이라도 새면 안 되기에, 입을 아주 힘주어서 막을 때가 있다. 그런데 누구도 아뭇소리를 못 내도록 가로막거나 틀어막거나 억누르거나 짓누르기도 한다. 그저 숨기는 몸짓이라면 ‘입막음’이요, 마치 재갈을 물리면서 고삐를 채우는 수렁이라고 한다면 “입을 틀어막다”이다. 차갑게 얼어붙는 나라나 마을이나 집이라면 ‘입틀막’이다. 사랑을 잊은 채 힘으로 누르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주먹으로 괴롭히는 굴레가 멈추지 않기에 새말이 하나 또아리를 튼다.


입틀막 (입 + 틀다 + 막다) : 입을 틀어막다.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지 못 하도록 입에 물리는 것. 터져나오는 마음·소리·눈물을 참거나 막으려고 하는 몸짓. 사람들이 마음껏 말을 하지 못 하도록 힘으로 막거나 누르는 자리·나라·힘을 가리키기도 한다. 몇몇 우두머리와 힘꾼이 온통 휘어잡거나 거머쥐거나 짓밟는 차디찬 자리·나라도 가리킨다. (= 입을 틀어막다. ← 마함馬銜, 함륵銜勒, 방성구防聲具, 부자유, 통제, 언론통제, 봉쇄, 비밀, 대외비, 기밀유지, 기밀엄수, 비노출, 속박, 주박じゅばく·呪縛, 억압, 억제, 감옥監獄, 수갑手匣, 수감收監, 옥獄, 옥고獄苦, 옥살이獄-, 징역懲役, 교도소, 유치장留置場, 유배, 유폐, 유형流刑, 적소謫所, 형무소, 노비奴婢, 노예, 동토, 구속, 질곡桎梏, 규제, 구금拘禁, 금고禁錮, 영어囹圄, 종속從屬, 속국屬國, 부자유, 제한, 제약制約, 제재制裁, 식민, 식민지, 강점强占, 혹독, 강압, 계엄戒嚴, 신분제, 계급제, 양반제兩班制, 긴장, 제국주의, 군국주의, 군사주의)



소걸음

소는 서둘러 걷지 않는다. 사람이 채찍을 휘두르고 고삐를 잡아끌기에 겅중겅중 달리듯 걷는다. 멀리 가든 가까이 가든 차근차근 내딛는 소를 헤아리면서 ‘소걸음’이라는 낱말이 태어났다. 오늘날에는 소하고 살아가면서 논밭을 일구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소가 어찌 걷는지 볼 일이 사라진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 곁에서 오래오래 한집안을 이루던 소를 떠올릴 사람이 아직 남지 않았을까. 소걸음을 그리고, 즈믄길을 살피고, 느긋이 살림을 짓는 눈빛을 그린다.


소걸음 (소 + 걷다 + -ㄹ -음) : 소처럼 나아가는 걸음. 서두르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길·몸짓·일·마음·걸음. (= 소즈믄길·천천길·천천걸음·천천히·찬찬길·찬찬걸음·찬찬히·즈믄길·느긋길·느긋걸음·느긋이. ← 완행, 완행노선, 완보緩步, 우보牛步, 우보천리牛步千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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