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노래

책을 사들이는 말



학우서방 : 《보리 국어사전》을 짓는 편집장이자 자료조사부장으로 일하던 2001년 여름, 처음으로 나라밖으로 가 본다. 우리가 새로 쓸 사전을 헤아리며 숱한 밑책이며 밑글을 건사해야 하는데, 우리말은 남녘·북녘뿐 아니라 일본·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로 흩어져야 한 겨레붙이 말살림을 모두 아우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 태어날 어린이하고 시골에 사는 할매·할배에다가 이 나라를 사랑하며 찾아와서 우리말을 배울 이웃나라 사람을 어우러야지. 남녘책만으로는 우리말사전을 지을 수 없기에 일본에서 의젓하게 살아가는 한겨레 말살림을 돌아보고자, 또 사전짓기를 몇 발 앞선 몸짓으로 일구는 일본 책밭을 배우러, 출판사 지기님을 심부름하고 책짐을 나를 일꾼으로 일본에 갔는데, 이때에 ‘학우서방’도 물어 물어 걸음했다. 지난날에는 달랐을 테지만 어느덧 초라하게 쪼그라든 〈학우서방〉을 마주하며 서글펐다. 책하고 책집은 ‘개인사업’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를 살리는 숨빛이다. 알차고 알뜰하던 ‘학우서방’ 자취를 서울 신촌 헌책집에서 만났다. 2020.10.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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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후 : 책집에는 책을 보러 간다. 어느 책을 어떻게 왜 보러 가느냐 하면, ‘즐겁게 장만해서 느긋이 읽고는 두고두고 물려줄 만한 어느 책이 있을까’를 살펴보러 간다. 그냥 장만할 책이 아닌, 두고두고 물려줄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알아보려는 셈이다. 한 벌 읽고서 덮어버릴 책이 아닌, 꾸준히 되읽으면서 생각을 살찌우도록 길잡이가 될 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헌책집에서는 “구입 후 읽어 주세요” 같은 알림글을 안 붙이지만 모름지기 어느 책이든 “사서 읽을 만한가”를 헤아리려고 살몃살몃 넘기기 마련이다. 아직 내 살림으로 건사하기로 한 책이 아니라면 내 손때가 타지 않게끔 가벼우면서 부드러이 다룰 일이다. 그러면 이 손길은 누가 어떻게 가르칠까? 집에서 어버이가 삶으로 보여주고 함께해야지. 언제 어디에서나 손을 깨끗이 하고서 책을 쥐도록, 아니 책뿐 아니라 어느 살림을 다룰 적이든 손을 정갈히 씻도록 이끌어야지. 아름살림을 다스리는 아름손길이기에 책을 마주할 적에도 아름눈빛을 밝혀 아름책을 두 손에 쥐는 아름길이 되리라. 2020.10.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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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성 : 내가 군대에 들어가던 1995년은 삐삐가 한창 나돌며 손전화가 조금씩 퍼지는 무렵이었는데,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면서 중대마다 무전병을 이끌고 움직이는데, 이 무전기란 조금만 떨어지면 씨알조차 안 먹혔다. 감감하지. 그때 소대장은 남몰래 손전화를 켰고, 더듬이(안테나)가 뜨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주고받았다. 대대장은 소대장·중대장이 무전기를 안 쓰고 손전화를 쓰는지 알기는 했으나, 저 스스로도 중대에 뭘 시키고, 중대에서 소대에 뭘 시킬 적마다 무전기는 으레 먹통이기에 그냥 손전화로 시키기 일쑤였다. K-2도, M60도, 박격포도, 무반동총도, 날마다 닦고 기름을 먹이지만 정작 총알이 안 먹힐 만큼 낡았으니 “야, 우리, 싸움 나면 총도 못 쏘고 그냥 죽겠네.” “뭐, 저쪽(북녘)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고 수다. 책을 구경하기 어렵던 그곳이지만, 말미를 얻어 바깥을 다녀온 이들은 으레 책을 샅에 숨겨 들어왔고, ‘보안성’을 안 거친 책을 읽던데, 난 26달 동안 책 하나 못 읽고 뺑뺑이만 했다. 2020.9.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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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 :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만난다. 예전에 읽을 무렵 어떠한 빛줄기가 내 마음으로 스며들면서 환하게 피어올랐는가 하고 떠올린다. 지난 어느 날 이 책을 읽은 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데 헌책집에서 새로 만난 그 책에는 ‘읽은 자취’가 없다. 손자국도 손때도 없이 그저 ‘묵은 나날 먼지’만 살짝 덮였다. 그래도 제법 깨끗하게 오늘까지 왔으니 고마운 셈일까. 읽히지는 못했으되 곱게 이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럭저럭 건사해 주다가 내놓아 준 그곳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야 할까. 어떻든 좋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서울 한켠에서 1999년부터 스물두 해째 헌책집살림을 꾸리는 지기님이 캐낸 이야기꾸러미이다. 먼저 눈으로 알아보고, 다음으로 마음으로 읽고, 이윽고 두 손에 쥐어 살살 쓰다듬다가, 어느새 가슴에 품고서 묵은 먼지를 내 옷자락으로 닦는다. “넌 언제나 빛나는 책이란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한결같이. 넌 늘 사랑스러운 숨결이란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그곳에서나 똑같이. 이제 우리한테 오렴. 우리 책숲으로 가자.” 2020.9.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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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책으로 보는 눈’을 끝내며

 


  2007년 4월부터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붙여 원고지 다섯 장쯤 되는 글을 썼습니다. 2007년 4월은 제가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던 때입니다. 이때부터 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이때까지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고, 이 일을 끝내고는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1994년에 대학교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두들 서울바라기만 하는 모습이 못마땅하고 달갑지 않아, 대학교에 가더라도 고향 인천을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나도 ‘서울로 가는 흐름’에 함께 휩쓸렸습니다.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 대학교를 그만둔 1998년 가을에도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대로 서울에 남아 일자리와 삶자리를 알아보았어요. 이러다가 2003년 가을에 서울을 벗어나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돌아가신 이오덕’ 님 발자취를 헤아리면서 삶과 책을 돌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요. 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 책을 읽어야 아름다울까요. 집에 건사한 종이책 숫자가 ‘읽은 책’을 말할까요. 죽을 때까지 써서 남긴 책 숫자가 ‘읽은 책’을 말할까요.


  나는 내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틀린 말’이 있은 적은 없다고 느낍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버이인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틀린 말’이 있은 적은 없구나 하고 느낍니다.


  봄에 찾아와서 가을에 떠나는 제비가 사람들한테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잠자리가, 나비가, 메뚜기가, 들꽃이, 나무가, 숲이, 바다가, 들이, …… 사람들한테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어요. 하늘도 구름도 흙도 바람도 언제나 ‘옳은 말’을 합니다.


  종이책만 책일까 궁금합니다. 전자책도 종이책 언저리에 들어가니까,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이렇게 ‘사람이 글로 써서 남긴 이야기’만 책일까 궁금합니다.


  예부터 “날씨를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뱃사람은 “바람을 읽는다”고 말했고, “물살을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시골사람은 누구나 “풀을 읽는다”고 하는 한편 “나무를 읽는다”고 했으며 “흙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차근차근 살피면 그래요. 오늘날이건 옛날이건, 시골에서 흙이나 물이나 풀을 만지는 사람은 종이책을 들여다볼 틈이 없기도 하지만, 애써 종이책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읽다’라는 낱말은 우리 한겨레한테 아주 오래된 낱말이에요. 국어사전 뜻풀이를 살피면 글이나 책에 적힌 글씨를 ‘읽는’ 뜻만 나오지만, ‘읽다’라는 낱말은 사람들이 글도 책도 모르던 때부터 썼어요.


  더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는다”라고도 하지만 “책을 본다”라고도 합니다. 한겨레는 책을 “읽으”며 책을 “봅”니다. 곧, 종이에 앉힌 글을 살피는 일만 ‘읽기’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오래디오랜 옛날 옛적부터 우리 겨레는 누구나 삶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마음을 읽었어요. 사랑을 읽고 숲을 읽으며 하늘을 읽었어요. 뜻을 읽고 꿈을 읽으며 이야기를 읽었지요. 다시 말하자면, 삶을 보고 사람을 보며 마음을 보았어요. 사랑을 보고 숲을 보며 하늘을 보았어요. 뜻을 보고 꿈을 보며 이야기를 보았지요.


  2007년 4월에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내가 이제껏 읽은 종이책을 그러모아 서재도서관을 꾸렸습니다. 2010년에 이 도서관을 충북 충주로 옮겼고, 2011년에 이 도서관을 전남 고흥으로 옮겼습니다.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동안 쓴 글은 내 서재도서관이자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면서 ‘책과 삶’을 나란히 읽은 이야기를 적바림한 사랑 한 마디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책을 읽으면서, 책으로 삶을 읽습니다. 삶에서 책을 깨닫고, 삶에서 사람과 사랑과 꿈이 이어진 실타래를 느낍니다. 이렇게 깨닫고 느낀 이야기를 2007년 5월에 새롭게 태어난 〈시민사회신문〉에 썼습니다. 〈시민사회신문〉은 처음에는 주마다 나왔지만, 신문사 살림살이가 힘들어 시나브로 달에 한 번 나오더니, 두 달에 한 번 나오기도 했고, 2013년 들어서는 두어 차례 나오고 더는 못 나옵니다. 나는 글을 200꼭지 썼지만, 〈시민사회신문〉은 152호까지 나왔습니다. 내 글 가운데 48꼭지는 아예 신문에 못 실렸습니다. 이 신문이 잘되기를 바라며 주마다 글을 쓰려 했지만, 한 달 두 달 신문이 안 나오고 보니, 나도 주마다 글 한 꼭지씩 쓰려던 몸가짐이 흐트러졌어요. 이 신문이 153호를 낼 수 있는지, 앞으로 꾸준히 나올 수 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다시 새힘 얻어 씩씩하게 나온다면 반가울 텐데, 이제 나는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야기는 내려놓으려 해요. 오늘까지 걸어온 200걸음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아름답게 일굴 삶을 생각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꿈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만날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글을 쓰면서 “책은 빛이요, 빛은 책”이라고 깨닫습니다. “삶은 책이요, 책은 삶”이라고 느낍니다. 이 땅에 평화와 민주와 통일이 흐르면서, 누구나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곱게 돌볼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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