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쥐



  쥐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을까. 들어와서 요리조리 숨으며 헤맬까. 이제 구멍을 새로 찾아서 나갈까. 살아오며 숱한 쥐를 보았고 잡았고 내보냈고 쥐었고 살폈다. 앞으로도 쥐는 또 보고 다시 보고 새로 볼 테지. 우리집은 시골이니까.


  갈수록 쥐를 볼 일이 없는 우리나라 어린이와 어른이다. 가지치기에 안 시달린 멀쩡한 나무 한 그루를 볼 길이 꽉 막히는 판이기도 하다. 돌담을 높이 쌓고서 싸우자는 불길이 더 크게 휘덮는 판이다. 제비와 박새는커녕 참새를 볼 틈이 없는 듯하다. 비둘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입밖으로 말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죽음물(농약)과 죽음거름(비료)은 흙을 죽이면서 돈만 더 농협에 바치는 굴레인데, 이 쇠사슬을 짚는 붓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서로 삿대질을 하는 붓은 놀리더라. 막상 어깨동무하면서 함께사는 이 별에서 어떻게 살림을 지으면서 푸르게 어울릴 적에 나란히 아름다울는지 밝히는 붓은 자취를 감춘다. “밉말을 삼가자!(혐오표현 금지!)” 하고 외친들 밉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꾸로 밉말이 더 불거진다. 왜 그러겠는가? “밉말을 삼가자!”는 목소리는 저쪽에만 대고서 하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밉말을 안 쓰기를 바라면 이쪽에서 먼저 밉말을 안 써야 맞다. 저쪽이 밉말을 한다고 여기면, 저쪽한테 떡 한 조각을 더 주면서 “더 말을 붙이고 더 얘기를 하고 더 만나”야 맞다.


  “밉말을 삼가자!” 같은 말은 늘 밉말씨앗을 심는다. 이와 달리 “살림말을 쓰자.” 하고 다소곳이 속삭일 적에는 늘 살림말씨를 심는다. 아주 마땅하고 쉽고 수수하다. 살림말이 무엇인지 들려주고 속삭이고 나눌 적에는, 어린이부터 이 살림말을 귀여겨듣고 눈여겨보면서 배운다. 살림말은 안 쓰면서 “이런 말은 밉말이야!” 하고 금을 그을 적에는 되레 밉말에 눈이 가고 귀가 쫑긋하고야 만다.


  배움책(교과서)을 제대로 엮는 일꾼이라면, 배움책에는 살림말씨를 담는다. 스스로 짓는 살림말씨를 듣고 말하고 배우고 익히노라면, 둘레에서 어떤 밉말이 갑자기 터지거나 쏟아져도 안 흔들린다. 차근차근 살림말씨로 스스로 가꾼 어린이는 어떤 어른이 막말이나 밉말이나 거친말을 함부로 쓰더라도 안 휩쓸린다. 이와 달리 “밉말을 삼가자!”는 말만 들어온 어린이는 으레 밉말이라는 물결에 쓸려간다.


  마을할배 한 분이 논밭일을 다 내려놓고서 ‘논’ 지 몇 달 만에 까무룩(치매)이 되고 말았다. 흙 묻은 손발과 몸일 적에는 거뜬하던 어른이 하루아침에 훅 간 셈이다. 흙을 놓으면서 넋을 놓은 셈이다. 다른 할매할배도 비슷하다. 아무리 등이 굽어도 천천히 밭뙈기에서 호미를 쥐고서 흙을 만지는 분은 천천히 일하고 천천히 쉬면서 천천히 하루를 가꾸고 돌본다. 그냥 ‘놓’고서 ‘놀’다 보면 그대로 빛마저 놓는 굴레이다.


  깊은 시골마을까지 “기호 몇 아무개”란 소리를 뽕짝에 실으며 퍼뜨리는 작은짐수레가 한참 맴돈다. 시끌수레가 떠난 자리에서 멧딸기를 훑는데 밀잠자리 한 마리가 발등에 앉는다. “넌 뭘 보고 뭘 듣니?”


  밀잠자리는 한 마디를 들려주고서 슥 담을 넘어 멀리 날아간다. 뭇새가 노래하고 제비가 난다. 낮에도 노래하는 논개구리가 여럿 있다. 내가 볼 곳은 우리집이요 우리숲이요 우리빛이다. ‘나’라는 넋으로 ‘너’를 바라보려고 눈을 뜨기에, 서로 아우르는 하늘인 ‘우리’를 이룬다. 나랑 너랑 함께짓기를 노래하니 ‘우리’이다. ‘우리’는 ‘연대(連帶)·공동체(共同體)’ 같은 어려운 일본말씨하고 한참 멀다. ‘우리 = 하늘인 우리 + 하나인 우리’라는 밑뜻이다. 우리를 이루기에 웃고 운다. ‘우리 = 하늘’이라서 ‘우·위’를 나타낼 뿐이고 ‘우레’는 하늘(위)에서 우는 소리이다.


  쥐는 어디로 가면 될까. 그래, 쥐는 쥐굴에서 살아야지. 우리집은 모든 마을고양이가 마실하다가 목을 축이고 낮잠과 밤잠을 들고, 새끼도 낳아서 기르는 곳이야. 쥐야, 넌 무서운 줄 모르니? 모르니 기어들겠지만. 2026.5.2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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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서울



  서울에 닿으면 서울책집부터 찾는다. 인천에 닿으면 인천책집부터 찾아간다. 대구·광주·부산·대전·청주·전주·진주 모두 그곳책집부터 헤아린다. 책집이 없는 고장은 없을 테지만, ‘늪책(학습지·참고서)’으로 벌이를 하는 책집만 있는 곳이 꽤 많다. 늪책을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마을책집을 차리는 분이 꾸준히 있되, 서울과 제주와 몇몇 큰고장으로 쏠린다. 작은고장이나 시골에서 꿋꿋하게 마을책집을 차리는 손길은 아직 너무 적다.


  서울에 닿아서 책집 두 곳을 찾아보았다. 이제 종이를 얻어서 책더미 하나를 묶는다. 한결같이 종이책을 만지고 살피고 읽는다. 언제나 종이에 쓰고 담고 생각한다. 셈틀과 손전화도 쓰되,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길은 으레 종이를 바탕으로 삼는다.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모든 사람이 풀포기 속심을 얻어서 실로 삼고 천으로 짜고 옷으로 지었듯, 책과 글을 여미는 속빛은 종이를 다루는 손길로 가꿀 일이라고 본다.


  시골에서는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풀과 나무를 매만지면서 책이라는 이야기를 말없이 마음으로 누리고 나눌 수 있다. 모든 종이는 ‘나무’가 내어준 몸이다. 모든 종이는 아름드리숲을 이룬 아름나무한테서 고맙게 얻는다. 나무가 있기에 종이를 쓴다. 아름숲이 있기에 책을 묶는다. 나무가 없다면 글을 못 쓰는 얼개이다. 숲을 모른다면 책읽기를 모르거나 겉훑기만 하는 셈이다.


  서울이라면 길나무를 보다가 책집으로 간다. 우리나라 서울은 아직 ‘숲’이라 하기는 어려운 ‘쉼뜰’이라고 할 만하다. 사람이 함부로 안 건드리는 풀꽃나무잔치일 적에 비로소 숲이라 한다. 사람이 섣불리 가지나 줄기를 친다면 숲일 수 없고, 사람이 일부러 바닥돌을 놓는다든지 거님길을 낸다면, 이때에도 숲이 아니다. 숲이라고 하려면, 사람뿐 아니라 뭇숨결과 뭇짐승과 뭇새가 그저 해바람비를 나란히 품으면서 아늑한 터전일 노릇이다.


  부산도 인천도 서울도 으레 갈아타고 또 갈아탄다. 한달음에 갈 수 있는 길은 드물되, 꽤 멀어도 이래저래 달구지에 책짐을 싣고서 읽고 쓸 만하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안고 지고 업고 이면서 다녔다면, 이제는 무척 무거운 짐조차 수월히 짐받이나 바닥에 놓고서 느긋이 오갈 수 있다. 짐나래(택배)에 맡겨도 나쁘지 않되, 책짐이라면 되도록 스스로 품고 안고 이고 들면서 다닐 노릇이다. 손길이 닿으면서 속을 읽는 책이다. 손끝에 따라 새롭게 살피는 책이다. 눈끝으로도 훑되, 언제나 손과 발과 팔과 다리와 온몸을 고르게 쓰면서 맞아들이면서 반짝이는 책이다.


  예전에도 읽는 사람이 읽을 뿐이고, 쓰는 사람이 쓸 뿐이다. 요즘도 쓰는 사람이 쓰고, 읽는 사람이 쓸 뿐이다. 종이로 읽든 마음으로 읽든, 나누려고 하기에 읽는다. 마음에 쓰든 종이에 쓰든, 펴려고 하니까 쓴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면, 이제 나무를 안 읽는다는 소리이다.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면, 어느새 숲을 잊거나 등진다는 뜻이다. 손수 나무를 심어서 돌볼 땅을 마당에서 누리는 집에서 살아갈 때라야 책을 푸르게 읽는다. 우리집과 이웃집 모두 숲정이에 안겨서 크고작은 새가 날아들어 노래할 때라야 글을 푸근하게 쓴다.


  한가람을 잇는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고 새로 건넌다. 어느 책은 쭉정이인데 몹시 잘 팔린다. 어느 책은 알찬데 이내 사라진다. 이미 읽눈도 쓰손(쓰는 손)도 길든걸. 늘 새롭게 배우면서 쓰려고 하면, 해를 거듭하며 모든 쭉정이는 곧 걷히면서 모든 알짜가 빛나겠지. 나무가 죽어가고 숲이 시늉인 서울에 눌러앉아서 책을 쥐거나 글을 붙들면, ‘읽눈·쓰손’ 모두 ‘읽눈시늉·쓰손흉내’로 갇히느라 겉치레·겉발림에 파묻혀서 해롱거리는구나 싶다.


  저녁일을 앞두고서 책집마실로 배운다. 세 군데 작은책집까지 들르고서 일할 곳으로 옮긴다. 밥이 바로 책이요, 마음에 얹는 이야기가 저마다 빛이다. 눈으로 머금고 손으로 받아들인다. 눈길로 누리고 손길로 익힌다. 발걸음으로 찾고 발바닥으로 익힌다. 시나브로 슬슬 해가 넘어가면 서울길도 붐비겠구나. 2026.9.29.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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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쉰 살



  오늘(2026.9.14.) 눈금(지지율)이 새로 나온다. 나라지기가 잘한다고 밝힌 사람은 33.6%에, 나라지기가 잘못한다고 밝힌 사람은 63.3%라고 한다. 전라도조차 잘한다고 밝힌 사람이 55.9%이니, 고작 한 해 만에 이렇게 일을 잘못하는 보기를 잘 드러내는 셈이라고 느낀다.


  쉰줄은 42.6%나 잘한다고 밝혔단다. 스무줄은 18.6%만 잘한다고 밝혔다지. 이레 앞서까지만 해도 ‘스물사내(이대남)’가 외쏠림처럼 잘못한다고 밝혔다면, 오늘은 ‘스물사내 19.6%’에 ‘스물가시내(이대녀) 17.6%’라고 한다. 이제 스무줄은 순이돌이 모두 잘못한다고 밝힌 사람으로 확 기울었는데, 스물사내보다 스물가시내가 더더욱 잘못한다고 밝힌다.


  아직도 나라지기가 잘한다고 밝히는 전라도와 쉰줄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일까? “그저 믿습니다!”에 따라서 언제 어디에서나 추켜세우거나 모시려는 셈일까?


  오늘 쉰줄인 사람들은 서른 해 앞서는 스무줄이었다. 서른 해 앞서인 1996해를 떠올려 보자. 얼마나 서슬퍼렇던 나날인가? 나는 1996해에 싸움터(군대)에 있었고, 강원도 양구군 멧골짜기에서 날마다 윗내기한테 얻어맞고 추레짓(성폭력)에 시달리면서 견디고 참고 버티었다. 마흔 해 앞서인 1986해는 1996해보다 훨씬 서슬퍼렇게 무시무시했다. 골목마다 주먹잡이가 버티어 돈을 빼앗고 때리는 판이었고, 지킴이(경찰)는 으레 주먹잡이와 한동아리였다. 쉰 해 앞서인 1976해는 어떠했을까? 나라지기가 잘못한 일을 혀끝에 올려도 갑자기 끌려가서 주검으로 바뀌던 무렵이다. 1966해나 1956해는, 1946해나 1936해는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다. 다만, 이와 같은 지난날에 스무줄이던 사람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며 스스로 살림을 지으려고 했는지 돌아봐야지.


  내가 이쪽에 손을 든다고 하더라도, 이쪽에서 저지르는 잘못을 나무라야 맞다. 내가 저쪽에 손을 든다고 하더라도, 저쪽에서 일삼는 말썽은 꾸중해야 맞다. 내가 나라지기한테 손을 들었든 안 들었던, 그이가 일을 잘하면 ‘잘한다!’ 하고 손뼉칠 노릇이다. 일을 잘못하면 ‘잘못하네!’ 하고 타박하면서 타이를 노릇이다.


  얼마 앞서까지 스물사내(이대남)는 ‘극우’에 물들었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넘쳤다. 나라지기를 나무란대서 스물사내한테 ‘극우 프레임 씌우기’를 일삼은 붓잡이가 수두룩하다. 자, 그러면 이제는 스물가시내한테도 똑같이 ‘극우 프레임 씌우기’를 할 셈인가? 아니면, 잘못한 일은 잘못인 줄 알아보면서 이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겠는가?


  순이돌이는 싸워야 할 사이가 아니다. 순이돌이는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라는 오랜 낱말처럼 서로 어질게 돕고 어깨동무하면서 살림꽃을 피우며 사랑으로 마주할 사이로 살아갈 일이다. 우리말은 ‘어버이’와 ‘암수’와 ‘가시버시’와 ‘엄마아빠’처럼 언제나 가시내를 앞세워서 길을 짓고 사내가 뒤서면서 받치는 얼개이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에는 ‘아들딸’만 올림말로 싣지만, 우리말로는 ‘딸아들’이라 얘기해야 어울린다.


  쉰줄인 사람들은 스무줄인 사람들한테서 배울 노릇이다. 스무줄인 사람들은 쉰줄인 사람들한테 가르칠 노릇이다. 언제나 나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치게 마련이다. 나이든 사람은 나어린 사람이 들려주는 말에 귀기울이면서 스스럼없이 먼저 움직이고 일하고 살림하기에 어른스럽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 ‘어른’으로 서야 집과 마을과 나라와 별(지구)이 나란히 아름답다. 우리는 모두 어른으로 살아내면서 아이라는 숨빛을 사랑으로 품을 노릇이다. 그대가 스무줄이건 쉰줄이건, 서른줄이건 일흔줄이건, 마흔줄이건 예순줄이건, 아흔줄이건 열줄이건, 온하루를 사랑으로 짓는 살림씨앗을 심기를 빈다. 2026.9.14.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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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권 (+ 이기주 사재기/고루띠앗)



  한 사람은 한 해에 책을 몇 자락이나 읽을 수 있을까?


  나는 푸른배움터를 다닐 즈음부터 보임틀(tv)을 멀리했다. 꽃님이라는 사람들 이름은 ‘최진실·이지연’이 마지막이고, 이들 뒤로 나온 사람들 이름을 먼발치에서 둘레에서 읊을 적에 스치기는 하지만 도무지 알지 못 한다. 아주 이름난 ‘유재석’ 같은 이름조차도 정작 이이가 보임틀에 나오는 모습은 거의 안 보았다. 이웃집에 마실을 간다거나 이웃하고 밥집에 있을 적에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보임틀이 있으면 힐끔했을 뿐이다.


  ‘우순실’이나 ‘김완선’이란 이름은 듣거나 보았어도 ‘룰라’ 같은 이름은 듣도 보도 한 적조차 없이 싸움터(군대)에 끌려간 1995해 늦가을인데, 논산에서 두 달 남짓 뒹굴면서 106mm무반동총이라는 쇳덩어리를 다루는 길까지 익히고서야 강원 양구 멧골짝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에 윗내기가 나한테 처음으로 시킨 짓은 “야, 룰라 좀 부르고 춤춰 봐!”였다. 콜라도 아닌 룰라는 뭔가 싶어 멀뚱히 서서 암말도 할 수 없는데, 갑자기 발차기가 날아와서 가슴을 냅다 차더라. 내무반이라는 곳에서 뒤로 날아가서 관물대라는 곳에 쿵 박았다. 온갖 막말을 실컷 들었다. “대학물을 먹은 xx가 사람을 x같이 보고서 꼼짝을 안 하느냐”는 둥 이런 막말과 저런 막말을 한참 쏟아붓더라.


  한 사람은 한 해에 책 한 자락쯤 읽을 수 있을까?


  지난 2016해에 ‘이기주’라는 이름으로 《언어의 온도》란 책을 쓴 젊은이가 있다.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며, 적어도 170만 자락이 넘게 팔렸다고도 하는데, 이이가 그동안 해온 사재기가 2026해에 드디어 들통이 나면서 누리책집에서 이녁 책이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사라졌다.


  찔리는 일이 없다면 모든 책이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안 사라지리라. 다만, 말밥에 오른 이들은 몇몇(신경숙·고은·김제동·정지돈·박위)을 빼고는 모든 책이 싹 사라지기는 한다. 한예찬이건 료이건 황석희이건 이병한이건 다들 지나가는 바람이다. 이런저런 말썽꾼이 낸 책을 헌책집에서 문득 들춰보다가 헤아려 본다. 이들은 책을 사읽기나 했을까? 이들은 주머니를 털며 마을책집에서 책을 사기는 하나?


  한 사람은 한삶을 지내는 동안 책을 몇 자락쯤 사읽을까?


  나는 여러 책집에서 이미 1만 자락이 넘는 책을 사읽었다. 2026해에 이르니 누리책집 〈알라딘〉에서 사읽은 책도 1만 자락이 넘는다고 한다. 열 몇 째로 1만 자락을 넘게 책을 산 곳이 생긴 셈이다. ‘이기주 사재기’ 이야기를 들으며 곱씹는다. 이기주 씨가 ‘사재기’ 아닌 ‘사읽기’를 했다면, 말밥에 오르거나 말썽을 일으킬 까닭이 터럭만큼도 없다. ‘사읽기’를 하는 나날이라면 스스로 글결과 말결과 삶결과 숨결을 늘 새롭게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배우는 하루이리라. ‘사읽기’가 아니라 ‘사재기’를 하느라 내내 돈·힘·이름을 쳐다보았을 테지.


  돈을 벌려면 아름답게 벌면 된다. 힘을 찾고 싶다면 사랑스럽게 힘을 내면 된다. 이름을 드날리고 싶다면 나비와 새처럼 푸르게 노래하면서 날아오르면 된다. 아주 쉽다. 마을책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거나 두바퀴를 천천히 달려서 느긋이 사읽으면 된다. ‘내가 쓴 책’은 이웃한테 드리려고 이따금 펴냄터에서 사면 된다. ‘이웃이 쓴 책’을 끝없이 가없이 아낌없이 기쁘게 사서 읽고 새기고 생각하는 하루를 지을 줄 알면 된다.


  ‘만(萬)’이라는 셈값을 우리말로는 ‘골’이라 한다. 물골이나 골짜기나 고을을 가리키기도 하고, 골고루라든지 곳·곰·곱과 얽히는 낱말이면서 ‘뇌(腦)’를 가리키는 우리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루띠앗(1만 권 북클럽)’을 함께해 보기를 빈다. 사재기로 저지르는 돈팔이·힘팔이·이름팔이 같은 헛짓은 멈추고서, “책집 한 곳에서 1만 자락 사읽기”라는 고루띠앗을 함께해 보자. 글을 쓰거나 읽는 이웃 누구나, 책을 쓰거나 읽는 분들 누구나, 함께 고루띠앗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빈다. 2026.9.11.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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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닳는



  이웃을 만날 적마다 눈망울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이·차림새·쌈지·얼굴·몸·노리개는 아예 볼 일이 없다. 서로 눈과 눈을 거쳐서 속마음이 맞닿을 적에 반짝반짝 별빛을 잇는다. 서로 별 한 톨로 이곳에 있으니 가만히 본다. 눈으로 보면서 별빛을 잇기에, 입을 열면서 말을 틔운다. 귀를 쫑긋하면서 빛소리를 담는다.


  너랑 나랑 나란히 별 한 톨이지 않다면 굳이 한자리에 있을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너이든 나이든 별빛이 없이 어둡게 잠긴 눈이라면 수렁과 늪에 빠져드는 덫일 테지. 바다에 잠겨서 깊이 헤아리는 눈이 아니라면, 바람에 잠겨서 널리 살피는 눈이 아니라면, 너하고 나는 이곳에서 마주할 일이 없지.


  지난해에 문득 만난 이웃님 한 분이 다른 이웃님을 알려주었다. 이 이웃님과 저 이웃님이 함께 어울리는 배움자리를 지난해에 길고 느슨하면서 꾸준하게 이었다. 이렇게 한 해가 흐르고서 어느 달책에 글을 싣기로 했다. 달책에 이야기 한 자락이 실린 뒤에는 새롭게 또다른 이웃님을 만난다. 새롭게 만나는 또다른 이웃님은 다시금 다른다른 이웃님으로 잇고, 이제껏 어림도 하지 못 하던 숱한 이웃이 이곳에서 발걸음을 내딛는 하루를 지켜볼 수 있다.


  늘 하듯 책과 노래를 띄웠다. 새로 마주하는 이웃님은 내가 띄운 책과 노래를 반갑게 맞이했다고 알려준다. 날마다 되읽으면서 더없이 기쁘게 배운다고 알려준다. 나는 덩달아 이웃님하고 쪽글을 주고받는다. 날마다 주거니받거니 쪽글 한두 자락씩 날아가고 날아온다. 나한테 작은아버지 또래일 ‘할아버지 이웃님’은 책 한 자락을 마르고 닳도록 읽어 주신다.


  닳고 낡는 책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나도 책이 닳도록 읽기는 하지만, 이웃님이 손빛으로 넘기며 닳는 책을 보니 새삼스럽다. 씨앗 한 톨을 고이 심었나 하고 돌아본다. 슥 스치는 글이나 책이 아니라, 서로 하나인 하늘마음으로 마주할 글과 책일 적에 별 한 톨이 밤마다 가만히 돋을 테지.


  손끝은 빚고 짓고 일구는 사이에 굳은살이 밴다. 책끝은 읽고 새기고 나누는 사이에 보드랍게 부푼다. 손길을 담고 펼치는 동안에 솜씨가 무르익는다. 책길을 여미고 여는 동안에 책밭이 푸르게 피어난다.


  모처럼 서울로 이야기마실을 나온 김에 책집 세 곳을 바람처럼 돌아본다. 거의 나아가던 왼뒤꿈치는 다시 절뚝절뚝. 왼발 앞꿈치에 제대로 힘주어 걷지 못 한다. 절뚝절뚝 기우뚱기우뚱 몸짓으로 이럭저럭 걸어다닌다. 저절로길(에스컬레이터)이 보이면 디딤돌로 오르내린다. 천천히 걸어서 신촌 〈홍익문고〉에 닿는다. 아침에 열자마자 들어간다. 책 한꾸러미를 느긋이 장만한다. 이윽고 〈알라딘중고샵 신촌가게〉에 들른다. 여기에서는 판끊긴 만화책을 한꾸러미 고른다. 마지막으로 〈숨어있는책〉 쪽으로 걸어간다. 건널목을 건너고서 골목으로 들어설 즈음 과일집을 본다. 길가 과일집에서 파는 복숭아는 고흥보다 알이 굵고 값마저 착하다. 들고 갈까?


  끙 망설이다가 지나간다. 〈숨어있는책〉에서는 책짐을 두 꾸러미 더 장만한다. 이제 뒤뚱뒤뚱 걷는다. 등에 가슴에 어깨에 팔뚝에 손에 쥔 책짐이 수북수북하다. 버스나루까지 씩씩하게 온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등짐과 앞짐과 손짐을 다 풀어서 내려놓는다. 낯을 씻는다. 밑칸에 책을 실으려다가 모두 안고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오롯이 읽으면서 돌아가자. 어제는 바삐 움직이느라 책읽기를 누릴 틈이 밭았다. 밤조차 등허리를 펴며 일찍 누웠다. 오늘 아침도 여러 곳에 보낼 글을 가다듬느라 책을 못 폈다.


  손과 눈과 마음과 몸이 하나로 닿으며 함께 일어나는 오솔길을 달리면서 집으로 간다. 읽다가 자고, 다시 읽다가 자면 어느새 고흥읍일 테지. 고흥읍에 닿으먼 시골버스를 탈 수 있고, 택시를 부를 수 있다. 다 즐거운 길이다. 2026.8.26.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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