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2 믿음길



  예전에는 철(학기)이 바뀌면 길잡이(교사)가 아이들더러 손을 들라 하면서 물었어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이나 “고기를 한 달에 몇 날 먹나?”나 “어머니만 있는 사람? 아버지만 있는 사람? 둘 다 없는 사람?”도 묻는데 “아버지하고 얼마나 얘기하나? 하루 한 시간? 한 주 한 시간? 한 달 한 시간? 한 해 한 시간?”도 묻고, 그야말로 아이들 마음에 멍울이 질 만한 얘기를 서슴지 않고 물으며 손을 들어서 셌으니 더없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막짓(학교폭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합니다. “무슨 종교를 믿나?” 하고도 묻는데, 우리 집은 아무런 절(예배당)을 안 다니기에 ‘무교’라 했다가 ‘유교’라고도 장난을 하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나는 나를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꿀밤을 먹었어요. 이제 와 돌아보면 ‘책을 얼마나 읽느냐?’라든지 ‘어떤 나무나 꽃을 좋아하느냐?’라든지 ‘어떤 새랑 노느냐?’라든지 ‘어떤 바람이나 구름을 아느냐?’ 하고 물은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묻고 가르치며 길들일 셈속일까요? 모든 거룩책(경전)은 어른이 씁니다만, 어린이더러 ‘믿음책’을 쓰라고 한다면 덧없는 틀이나 굴레란 하나도 없이 오직 한 마디 ‘사랑’만 적지 않을까요? 스스로 믿고 가꾸려고 읽는 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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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 내 등판은



  멧골에 가는 차림새가 아닌 책집에 가는 차림새입니다. 겉옷도 가볍습니다. 한겨울이라면 반소매 한 벌에 긴소매 한 벌을 두르는데, 찬바람이 매섭다면 비로소 얇은 겉옷을 더 입습니다. “왜 이렇게 옷이 얇아요? 안 추워요?” “하하, 이 등짐을 짊어져 보시겠어요? 조금 걷다 보면 온몸이 따듯하답니다. 책을 가득 담은 등짐 차림으로 걸으면 한겨울에도 포근포근하지요.” 혼자 살며 늘 책에 빛꽃틀(사진기)을 짊어진 터라, 아이가 찾아온 뒤부터 책을 덜어내고서 기저귀에 포대기에 물병에 배냇옷을 챙겼습니다. 오랫동안 책짐이 익숙하던 몸은 ‘아기를 돌보는 옷살림’을 한가득 짊어지고서도 아기를 품에 안고서 걸을 만했어요. 작은아이가 찾아온 다음에는 이런 등짐 차림에 두 아이를 안고 걷기도 했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수월할 텐데.” 하고 혀를 차는 이웃님한테 “아이를 품에 안고 걸으면 아이한테서 저한테 따스한 기운이 스미고, 저한테서 아이한테 포근한 숨결이 퍼져요. 얼마나 사랑스러운걸요.” 하고 들려줍니다. 기꺼이 집니다. 즐거이 멥니다. 신나게 안고 업어요. 아이가 없던 무렵에는 종이책이 제 사랑이었다면, 아이가 곁에 있는 오늘은 아이들이 제 사랑이요, 이 사이에 책을 살그마니 놓습니다.


ㅅㄴㄹ


2009년 3월 9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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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0 갈무리



  우리말꽃(국어사전)이란 책을 쓰기에 늘 갈무리를 합니다만, 처음에는 그저 쓰면서 밑감을 모아요. 어느 만큼 모일 적에 비로소 갈래를 지어 차곡차곡 담습니다. 이렇게 ‘먼저 써서 모아 놓고 나중에 갈래짓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처음부터 갈래를 어떻게 지으면 좋을까를 알아챕니다. 참말로 처음에는 그냥 죽 할 뿐이에요. 잔뜩 장만한 책을 갈무리할 적에도 똑같더군요. 처음에는 그저 사서 읽고 죽죽 쌓아요. 책값은 있되 책칸(책장)을 들일 돈은 없으니까요. 이러다가 누가 골목에 내놓은 책칸을 보면 낑낑대면서 들고 오지요. 골목에서 얻은 책칸이 생기니 이때부터 비로소 ‘슬슬 갈래짓기를 해볼까?’ 하고 소매를 걷습니다. 모이기에 갈무리를 합니다. 모이지 않으면 가를 알맹이가 없어요. 차근차근 지어서 모으기에 갈무리할 부피가 생겨요. 글을 빨리 써내어 갈래도 빨리 짓고 꾸러미로도 빨리 묶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빨리 읽거나 느낌글을 얼른 써내야 하지 않습니다. 삶을 누리는 오늘에 맞추어 느긋이 바라보고 즐겁게 헤아리면서 한 올 두 올 실타래를 여밉니다. 잘 보이도록 가누어야 하지 않아요. 오늘을 되새기고픈 마음이기에 가누어요. 보기좋게 묶어야 하지 않아요. 손길마다 사랑을 담아서 하나하나 어루만져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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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9 아버지 책



  어린배움터 으뜸길잡이(초등학교 교장)로 일자취를 마친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정년퇴임식’을 으리으리하게 하셨고, 그자리에 그 고장 국회의원이 와서 ‘축하금 5000만 원’을 냈다며 자랑처럼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버지가 책을 얼마나 읽으셨는지는 모릅니다만, 돈을 벌고 ‘돈을 벌 일을 꾀하’고 ‘돈을 벌 일을 꾀하느라 뭇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느라 손에 책을 쥘 겨를은 거의 없다시피 한 줄은 압니다. 아버지 책시렁에 새로운 책이 늘어나는 모습은 거의 못 보았어요. 이 책시렁에 ‘제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얹었고, 2004년부터는 ‘제가 쓴 책’을 보태었습니다. 언젠가 보니 제가 꽂은 책이 무척 많더군요. “나는 왜 이다지도 책에 파묻히면서 책길을 갈까?” 하고 돌아보면 아버지랑 어머니 때문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을 읽고서 어린이를 슬기롭게 가르칠 자리에 있되 책을 안 읽은 아버지 때문이고, 책을 읽고 싶으나 집안일에 집살림으로 책을 손에 쥘 틈이 없는 어머니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 책시렁에 꽂혔던 책치고 제가 좋아할 만하거나 곁에 두고픈 책은 드뭅니다만, 외려 이 때문에 더더욱 혼자서 책길을 파고 책밭을 넓히면서 스스로 갈고닦거나 담금질하는 나날을 오늘까지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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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3.29.

책하루, 책과 사귀다 8 존경하는



  책하고 얽혀 “어느 분을 존경하셔요? 스승이 누구예요?” 하고 묻는 말이 몹시 듣기 싫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똑같은 사람이자, 저마다 새로우면서 빛나는 숨결인 사랑을 품고 살아가기에, ‘누가 누구를 우러르거나 높이거나 섬기거나 모시거나 받들거나 따를 수 없다’고 느껴요. 저는 으레 “왜 누구를 존경해야 하지요? 왜 누구를 스승으로 두어야 하나요?” 하고 되묻습니다. 저처럼 되묻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배울’ 뿐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존경하지 않’되, ‘굳이 높이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를 높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그랬어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열 살 무렵, 배움터에서 낸 ‘존경하는 인물 써 오기 독후감 숙제’에서 “나는 나를 존경합니다. 어느 누구도 존경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내가 나를 존경할 줄 알 적에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고 적어서 냈어요. 이러고서 흠씬 두들겨맞았지요. 1984년 배움터 길잡이는 이런 글쓰기를 장난질이라고만 여겼어요. 우리는 누가 쓴 글이든 기꺼이 배울 만하되, 우리 스스로 쓴 글에서 가장 깊고 넓게 사랑을 배워요. 부디 스스로 높이고, 돌보고, 사랑해 주셔요. 우리한테는 우리가 스승이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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