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봄에 나무타기 놀이
[시골노래] 우리 집 감나무 놀이터


  두 아이가 문득 어디론가 사라졌다 싶더니 뒤꼍에서 까르르 소리가 퍼집니다. 두 아이가 무엇을 하기에 뒤꼍에서 저렇게 웃으며 노는가 싶어 궁금합니다. 슬금슬금 뒤꼍으로 가 봅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우리 집 뒤꼍 감나무를 타고 놉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작은아이는 이 감나무를 못 탔어요. 작은아이는 지난해까지 누나를 올려다보면서 낑낑거렸습니다. 저도 나무를 타고 싶다고, 저도 올려 달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큰아이도 저도 작은아이를 나무에 올려 주지 않았습니다. 작은아이가 스스로 아귀힘이랑 다리힘을 길러서 나무를 탈 때까지 ‘나무를 못 탈 뿐이지’ 하고 여겼어요.

  올봄 드디어 작은아이가 아귀랑 다리에 힘을 붙여 누나 못지않게 나무를 붙잡고 오릅니다. 오로지 제 힘으로 감나무를 타고 오른 작은아이는 싱글벙글 웃음꽃이 핍니다. 감나무는 두 아이 웃음꽃을 받아들이면서 새잎을 틔워요. 더욱 튼튼하게, 더욱 단단하게, 더욱 싱그럽게 우리 집 뒤꼍을 지켜 주는 감나무입니다.

  “저기 봐. 지붕 너머에 우리 집 후박나무가 보여!”
  “저기 봐. 모과나무가 아주 많이 컸어. 거의 감나무 키만 해!”
  “우와, 여기에서 우리 도서관이 보여!”

  사월이 무르익는 봄날 감나무를 타며 노는 아이들 말소리에서는 !가 꼭 붙습니다. 나무를 타며 높은 데에서 둘러보고 내려다보니 모두 달라 보이나 봐요. 아버지는 저 밑에 있습니다. 구름하고 한결 가까워집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부럽지 않습니다. 감나무를 타고 높이 올라가서 맞이하는 바람은 매우 시원하고 싱그럽습니다.

  앞으로 이 나무가 더 크게 자라서 아이들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쉰 해 뒤에도 백 해 뒤에도 새로운 아이들이 우람한 감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싱그러이 봄바람을 쐴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1000원 버스’가 된 고흥 시골버스

[시골노래] 포근하며 멋진 버스를 꿈꾼다



전남 고흥은 2017년 1월 1일부터 버스삯이 모두 1000원으로 바뀝니다. 서울시내 버스삯이 1300원인가요? 고흥에 사는 시골사람이니 서울에서 버스삯이 얼마 하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는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1700원씩 치렀으니 버스삯이 700원 내린 셈이에요. 저희는 읍내하고 15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도화면 신호리)에서 살기에 1700원이에요. 저희보다 읍내에서 더 먼 곳에서 사는 분이라면 2200원이나 3500원도 내요. 4000원이 넘어가는 마을도 있어요. 도양읍이나 봉래면이나 도화면 지죽리 같은 곳에서 읍내를 거쳐서 동강면 같은 곳을 가자면 6000 원을 웃돌고요.


이렇게 들쑥날쑥하면서 ‘읍내하고 먼’ 마을에서 살수록 버스삯을 더 많이 치러야 했는데, 새해부터 어디에서 버스를 타든 모두 1000원만 내도록 하는 얼거리로 바뀌었어요. 시골 어르신들이 읍내나 다른 마을로 자주 나들이를 다니시지는 않습니다만, 버스삯 1700원이니 1900원이니 2200원이니 2700원이니 4200원이니 하면, 천 원짜리하고 백 원짜리를 챙기기 만만하지 않아요. 이런 대목에서도 한결 나아졌다고 할 만해요.


시골은 도시하고 많이 달라서, 교통카드를 안 쓰는 어르신이 대단히 많아요. 그냥 맞돈을 챙겨서 타시지요. 그런데 막상 버스를 타자니 잔돈이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시기도 합니다. 잔돈을 미리 챙기지 못한 어르신은 버스를 탈 적마다 버스 기사한테 타박을 듣습니다.


이제 버스삯이 1000원으로 똑같으니 어르신들이 버스 기사한테 타박 듣는 모습은 더 안 볼 수 있구나 싶고, 버스를 타며 잔돈을 챙기느라 허둥대시는 모습도 더 안 볼 만하구나 싶어요. 깊은 시골에 사는 어르신이라면 버스삯 짐이 퍽 홀가분하게 줄어들 테고요.


시골에서는 버스를 타는 손님이 거의 할머니하고 할아버지예요. 여기에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있고요. 이러다 보니 시골버스에서는 ‘경로우대’나 ‘경로할인’이 따로 없습니다. 고흥군에서는 버스회사와 협약을 맺고 ‘고흥군 1000원 버스’ 제도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을 보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본다면, 전남 신안군처럼 고흥군도 ‘완전한 버스공영제’로 바꾸어 군에서 버스회사를 넘겨받아서 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신안군에서는 모든 버스가 ‘무상버스’이거든요. 신안군에서는 ‘완전공영 무상버스’로 바꾸고 나니, 그동안 군에서 버스회사에 해마다 대주던 지원금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공영버스를 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손님이 있으면 바로 택시처럼 작은 버스를 몰아서 태울 수 있기도 한답니다. 효율과 예산 아끼기에서도 ‘1000원 버스’는 징검돌이요, 앞으로는 시골에서 새로운 버스 얼거리인 ‘무상버스’가 태어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버스회사에 지원금을 주기보다 군에서 그 지원금보다 적은 돈으로 버스회사를 꾸리는 길이 주민복지에서도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고흥군 ‘1000원 버스’ 뒷이야기를 하나 적어 본다면, 군에서 2017년 새해에 이러한 제도를 마련하면서 제대로 알리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새해에 갑자기 바뀐 제도예요. 이리하여 버스표를 미리 끊어서 내던 분들은 그만 예전 버스표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버스삯이 1700원이거나 2200원이거나 3200원이거나 한 마을에 사는 분들은 예전부터 ‘버스표를 한꺼번에 여러 장 끊어’서 마을에서 읍내로 나올 적에 내곤 했어요. 교통카드를 거의 안 쓰시니, 다들 잔돈을 미리 챙겨야 하니까, 버스표를 미리 끊어서 쓰시지요. 그러니까 군에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서 새해 첫날부터 받아들인다면, 마을 어르신이 버스표를 미리 끊어서 ‘못 쓰는 표’가 생기지 않게 알려주었어야지요. 군에서 무슨 행사를 하면 그동안 이레나 열흘에 걸쳐서 아침 낮 저녁으로 마을방송을 했어요. 이번에 버스삯이 바뀌는 제도를 놓고는 마을방송이 한 차례도 없었어요. 읍내 버스역에 알림판도 안 붙었을 뿐더러, 알림판이 있다 한들 ‘글씨 못 읽는 할머니’도 많은데, 그 알림판은 거의 쓸모를 못 했겠지요.


그리고 버스삯을 내리는 일뿐 아니라, 시골버스를 좀 부드럽게 달리도록 하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버스삯은 1000원으로 내렸으나, 예전이나 요즈음이나 버스를 너무 거칠게 몰아요. 아이들도 어르신들도 버스 손잡이를 움켜잡아도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몹시 힘듭니다. 읍내에 한 번 다녀오면 다들 속이 거북해요.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느낌이니까요. 앉아서 손잡이를 꽉 잡더라도 굽이진 길에서는 짐이 구르고, 사람마저 쓰러질 판이기 일쑤입니다.


저희한테도 ‘못 쓰는 버스표’가 제법 생깁니다. 돈으로 치면 아까울 수 있지만, 그동안 고흥에서 버스표가 바뀐 자취를 돌아보도록 남겨 보자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고흥에 처음 깃들던 2011년에는 누런종이로 조그마한 표였다가, 생김새가 한 차례 바뀌고, 또 한 차례 바뀌었어요. 버스삯도 1500→1700→1000원으로 바뀌었군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재밌어서요!

[나는 나대로 산다] '밥짓는 사내'가 일구는 평화 살림, 시골 살림


(글이름을 누르면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열아홉 살까지 집밥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리신 집밥을 먹었어요. 스무 살에는 바깥밥을 먹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한 해 동안 내내 바깥밥을 사다 먹습니다. 스물한 살부터는 손수 밥을 지어서 먹습니다. 이때부터 제금을 나며 혼자 살았기에, 혼자 살며 밥도 마땅히 혼자 지어서 먹습니다.


  짝님을 만나고 아이를 만난 뒤에는 ‘혼밥’을 열 몇 해 만에 내려놓고 하루 두 끼니 밥을 짓습니다. 남들은 하루 세 끼니 밥을 먹지만 우리 집에서는 하루 두 끼니만 먹기에 두 끼니 밥을 지어요. 제 나이가 마흔 줄이 넘으니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은 지 스무 해가 넘습니다.



  아홉 살 큰아이는 아침저녁으로 물어요.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저는 이런 물음을 듣고는 뾰족히 대꾸를 못 해 줍니다. “음, 음, 오늘은 ‘오늘 밥’이지.” “‘오늘 밥’이 뭐야?” “오늘 먹어서 ‘오늘 밥’이야.” 때로는 좀 달리 대꾸해 봅니다. “오늘은 ‘맛밥’이야.” “‘맛밥’은 뭐야?” “맛있는 밥이니 ‘맛밥’이지.” 때로는 아이들이 마루에서 놀다가 저희끼리 얘기를 나누더니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옵니다. “아, 맛있는 냄새. 오늘 무슨 밥이야?” “맛있는 냄새가 난다니, 오늘은 그야말로 ‘맛밥’이 되겠구나.”



  우리 식구가 아직 도시에 살던 무렵, 도시에 있는 이웃들은 우리를 보며 으레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집은 여자가 일을 안 해? 왜 남자가 밥을 해?” 하고요. 우리 식구가 시골에 사는 오늘날, 마을에 있는 이웃이나 읍내에 있는 분 들은 우리를 보며 흔히 이렇게 물어요. “저 집 가시내는 뭐 하는고? 저 집은 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이런 말을 열 해쯤 듣고 살면서 딱히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대꾸할 만한 말도 없고, 대꾸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니 왜? 왜? 어째서? 밥은 가시내만 지어야 하남? 사내는 가만히 팔짱 끼고 앉아서 밥상만 받으면 되남? 때가 어느 때인데 여즉 사내는 부엌 언저리도 맴돌지 말아야 하는감?’



  저는 집에서 ‘밥짓는 사내’로 삽니다. 밥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열 해째 먹이는 살림을 꾸리는데, 이러는 동안 늘 ‘밥말’을 들려줍니다. ‘밥말’이란 밥하고 얽힌 말이나 이름입니다. 부침개를 할 적에 ‘부침개’가 뭔지 알려주고, ‘부침(부치다)’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지짐(지지다)’를 알려줍니다. 또 ‘볶음(볶다)’을 알려주며, ‘무침(무치다)’이나 ‘데침(데치다)’이나 ‘버무림(버무리다)’을 알려주지요.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낱말을 알려줄 적에는 저 스스로 새롭게 배우기도 합니다. 고기를 삶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끓이기도 하면서, 또 그냥 ‘익힐’ 적하고 ‘데울’ 적에 왜 이렇게 달리 말을 하는가를 알려주며 이때에도 저 스스로 새롭게 말을 배워요.


  밥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면서 이런 이름 저런 말을 그냥 쓰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하는 ‘집밖일’은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는 일이에요. 우리 집에서는 고기를 잘 안 먹지만 더러 고기를 볶거나 지지는데요, 아이들이 당근을 워낙 좋아해서 ‘당근닭볶음’이나 ‘당근돼지볶음’이나 ‘당근소볶음’이나 ‘당근오리볶음’을 곧잘 합니다. 당근을 고기보다 더 많이 넣어서 볶기 때문에, ‘당근’이라는 낱말을 ‘밥이름’에 넣어요.



  ‘닭도리탕’은 아직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매운닭볶음’을 두어 번쯤 해 보았으나 ‘매운볶음’이 되면 아이들이 못 먹어요. 아이가 둘 있는 우리 집에서는 늘 아이 혀맛에 맞춘 ‘부드럽고 여린 간’을 합니다. 카레조차 매운맛이 하나도 없이 부드럽게 해요. ‘밥짓는 사내’는 집에서 김치를 손수 담글 적에도 고춧가루는 되도록 적게 쓰거나 아예 안 쓰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닭도리탕’이 아닌 ‘매운닭볶음’이 제대로 된 이름이기는 한데, 이를 안 맵게 하자니 ‘맑은닭볶음’이 되는 셈일까요? 아니면 ‘하얀닭볶음’쯤 될까요? 아니면 ‘감자닭볶음’이라고만 하면 될까요?



  늘 집에서 밥을 지으니 ‘집밥’을 손수 차려 먹는데, 때로는 어깨가 무거우니 바깥마실을 하며 사다가 먹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모처럼 ‘바깥밥’을 누립니다. 바깥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안 해도 되어 홀가분해요. 더구나 바깥밥을 먹는 동안에 ‘다른 집(또는 가게)에서는 밑반찬을 어떻게 차리고 간을 어떻게 하는가’ 하고 살펴요. 아이들은 밥상에 올리는 대로 맛나게 먹는다면, ‘밥짓는 사내’인 나는 ‘우리 집에서도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바깥밥 반찬을 한 점씩 천천히 씹으면서 간맞춤과 밑손질을 어림해 보곤 합니다.


  요새는 인터넷을 켜서 밥짓기를 배우기도 해요. 열린 인터넷이란 온갖 밥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손길로 짓는 모습과 몸짓을 손쉽게 지켜보면서 배우는 길을 열어 준다고 느껴요. 지난날에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밥짓기를 배워야 하거나 요리학원을 다니거나 요리책을 봐야 했어요. 지난날에는 ‘사내가 왜 밥짓기를 배워?’ 하면서 밥짓기나 반찬하기나 김치담기를 배우기가 몹시 어려웠어요. 웬만하면 사내한테는 아예 안 가르치셨지요.



  하루 두 끼니를 지으며 사이에 ‘샛밥’을 내놓아요. 주전부리일 수 있고 새참일 수 있어요. 가볍게 즐기는 입가심일 수도 있고요. 하루에 두 끼니를 지어서 차려도 밥짓기에 품을 많이 든다고 느껴요. 스무 해 남짓 ‘밥짓는 사내’로 살면서 ‘밥짓는 품’이란 무엇인가 하고 늘 온몸으로 느껴요.


  이 나라 수많은 어머니와 할머니와 가시내는 으레 하루 세 끼니를 지으시는데, 밥도 짓고 옷도 짓고 살림도 하고 수많은 집안일을 건사하는 분들은 그야말로 온 하루가 오롯이 집일이랑 집살림에 쓰인다고 할 만합니다. 저는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리면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뿐 아니라 참말 온누리 가시내가 그동안 어깨에 짊어지던 무게를 늘 느낍니다.


  이러한 무게를 왜 우리 사내들은 ‘사내보다 힘이 여리고 몸집도 작다고 하는 가시내’한테 도맡기나 싶어 아리송하곤 해요. 힘이 세고 몸집도 큰 사내라면, 기꺼이 신나게 씩씩하게 밥도 짓고 살림도 하면 참으로 좋을 텐데 말이지요.




  우리는, 아니 ‘우리는’이라기보다 ‘이 나라 사내’들은 집에서 어떤 사내로 지내는가요? ‘밥짓는 사내’로 지내는가요, 아니면 ‘밥상 받는 사내’로 지내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어느 자리에 서서 어떤 삶·살림을 짓느냐에 따라 말·넋·생각이 모두 다르리라 느껴요. 밥말이란 밥을 짓던 사람들이 널리 쓰면서 이어온 말일 테고, 부엌에서 살림을 짓고 온 집안 살림을 건사하던 사람들이 두루 쓰면서 물려받은 말이에요. 어느 모로 본다면 ‘밥말’은 ‘가시내 말’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부엌일이나 집안일을 퍽 오래도록 오로지 가시내한테 떠넘겼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한겨레 ‘부엌말·살림말’을 가만히 살피면 ‘한자를 모르고 한자를 쓸 일도 없던 수수한 사람들이 쉽고 살가이 쓰던 낱말’이로구나 싶어요.



  요즈음은 ‘셰프’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부엌지기’나 ‘밥지기’나 ‘밥짓는이’가 아닌 외국말 ‘셰프’하고 얽힌 말은 영어나 프랑스말 같은 외국말이 가득해요. 물고기 살점을 날로 뜨는 ‘날물고기살’인 ‘회’를 다루는 곳에서는 일본말이 가득하지요.


  오늘 하루도 하루 두 끼니를 차리고 샛밥을 마련하는 ‘밥짓는 사내’로서 ‘밥말·부엌말·살림말’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제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쓰는 말은 먼먼 옛날부터 수많은 가시내가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면서 빚은 말마디이지 싶어요. 저는 이 밥말·부엌말·살림말을 우리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주고 싶어요. 너무 고되거나 힘겹거나 벅찬 일에 짓눌리며 쓰는 말이 아니라,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쓰는 밥말·부엌말·살림말이 되도록 가다듬어서 물려주려는 마음이에요.



  아이들하고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언제나 “식사를 하자”고 말하기보다는 “밥을 먹자”고 수수하게 말합니다. 밥상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비로 바닥을 쓸고 걸레로 훔치고, 설거지를 하고 개수대를 갈무리하고, 밥찌꺼기는 그릇에 담아 뒤꼍으로 가져가서 거름이 되도록 건사해요. 우리 집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이 밭으로 돌아가도록 화학세제는 한 방울도 안 쓰는 살림으로 가꾸고, 플라스틱 없는 부엌살림이 되도록 돌봅니다.


  둘레에서 다른 분들이 앞으로도 “저 집은 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하고 혀를 끌끌 차시면 이렇게 말씀을 여쭈려고 해요. 빙그레 웃으면서 얘기하려고요. “저희는 저희대로 즐겁게 밥을 지으며 살림을 가꾸려 해요. 우리는 모두 밥을 먹는 사람인데, 사내도 가시내도 밥짓기를 함께 배우고 기쁘게 살림을 짓는 길을 배워야 한다고 여겨요. 사내랑 가시내가 함께 밥을 짓고 살림을 해야 집안이 넉넉하고 나라도 평화롭게 거듭나리라 생각해요.” 2016.11.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흙사마귀가 가방에 알을 낳았네

[시골노래] 이 자리가 가장 아늑했구나



봄에 나락을 심은 시골지기는 이 한가을에 나락을 베느라 부산합니다. 제비는 일찌감치 바다를 가로질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참새나 비둘기는 들판에 몰래 내려앉아 나락을 훑고 싶습니다. 뱀이나 개구리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이 날씨에 겨울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리라 느낍니다. 한밤에는 때때로 반딧불이가 나는데, 반딧불이를 비롯한 풀벌레도 곧 겨울이 다가오는 줄 느끼겠지요.


아침에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오늘은 읍내에 볼일이 있어서 곧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광에서 가방을 꺼냅니다.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세운 빨랫대 곁에 가방을 펼쳐서 햇볕을 쪼여 줍니다.


이렇게 하고서 물병이랑 이것저것 챙깁니다. 작은아이는 집에서 소꿉놀이를 하겠노라 말하고, 큰아이만 아버지를 따라 읍내마실을 하겠노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제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서려는데, 제 가방에 뭔가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흙사마귀 한 마리가 제 가방 한쪽에 알을 낳았어요. 아니, 어느새? 어느 틈에 흙사마귀 한 마리는 제 가방으로 찾아들어 알을 낳았을까요? 몇 분 안 되는 그 짧은 겨를에.


우리 집에는 사마귀가 꽤 많습니다. 풀빛이 감도는 사마귀한테는 ‘풀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이고, 흙빛이 짙은 사마귀한테는 ‘흙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여요. 사마귀로서 잡아먹을 다른 벌레가 많으니 사마귀도 많으리라 느끼는데, 요즈막에는 마당 한쪽에 뒹구는 사마귀 주검을 곧잘 봅니다. 아마 알을 낳고 스스로 숨이 다한 사마귀이지 싶습니다.


때로는 짝짓기를 하려는 암수 사마귀를 보고, 암사마귀한테 머리를 잡아먹힌 수사마귀를 보기도 합니다. 나비를 잡아챈 사마귀를 보기도 하고, 이래저래 온갖 모습 사마귀를 늘 마주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제 가방에 찾아들어 알을 낳은 사마귀는 처음입니다.


이 흙사마귀는 제 가방이 아주 아늑하리라 여겼겠지요. 뜨끈뜨끈 볕도 잘 받았고, 가방 천이라 폭신하기도 하고, 구석진 자리도 있고, 여러모로 참 좋다고 여겼을 테지요.


한동안 흙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마음속으로 말을 건넵니다. ‘얘야, 너는 이 자리가 가장 좋았나 보구나. 알았어. 네 알집이 다치지 않도록 잘 건사할게. 네 모든 기운을 쏟아서 지은 알집이고 네 숨결이 고스란히 깃든 알집인 줄 알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풀숲으로 고이 돌아가서 네 새로운 꿈길로 가렴.’


흙사마귀가 혼자 조용히 떠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줍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오니 흙사마귀는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사마귀 알집은 칼로 살살 떼어냅니다. 이 사마귀 알집이 가으내 겨우내 잘 있도록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새가 쪼거나 개미한테 들통나지 않도록 잘 지켜 주리라 다짐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6-10-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사마귀 이름이 흙 사마귀였군요.
아들이 곤충을 좋아하는데 사마귀도 좋아하더라구요.

숲노래 2016-10-11 11:53   좋아요 0 | URL
학술이름은 아니고 제가 시골에서
아이들한테 알려주는 이름이에요.
몸빛을 보고서 지어 본 이름이랍니다 ^^

사마귀는 참 사랑스러운 풀벌레 가운데 하나라고 느껴요
 

조용한 가을바다는 통째로 우리 놀이터

[시골노래] 큰 물결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을바다는 이제 조용합니다. 여름이 끝나면서 관광객은 모두 떠났어요. 여름 휴가가 휩쓸고 간 자국도 어느새 사라졌으니 더없이 조용합니다.


이런 가을바다를 보려고 자전거를 달립니다. 아이들은 긴긴 여름 가운데 가장 더운 한복판에는 바다마실을 하지 못한다며 서운하게 여겼어요. 그렇지만 어쩌는 수 없어요.


여름 휴가철에는 시골 바닷가에는 평상을 놓으며 자리값을 받아요. 너무 시끄러워요. 더욱이 쓰레기까지 넘쳐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자리가 없어요. 도시에서 시골 바닷가로 찾아온 관광객은 유행노래를 아주 크게 틀어놓아요.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여름 휴가철에 바다에서 더위를 식히지 못해요. 그래도 우리한테는 남들이 모르는 고즈넉한 골짜기가 있어요. 마을 어귀 빨래터가 있지요. 우리 집 마당도 있고, 뒷산에서 흘러서 내려오는 차디찬 냇물까지 있습니다.


한가을에 바다마실을 하는 아이들은 몹시 들뜹니다. 어떤 장난감을 갖고 가서 놀까 하는 생각으로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장난감 삽차하고 짐차도 싣고, 아이들이 가져가려는 장난감을 자전거수레에 싣습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달립니다. 두 아이를 이끄는 자전거이니 퍽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땀을 흘리면서도 즐거워요. 이 자전거마실에 즐거움이 없다면, 그저 힘들기만 하다면 자전거를 못 달리리라 생각해요.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빵을 몇 조각 장만해서 바닷가에 닿으니, 아이들은 벌써 바다를 보며 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갑니다. 나는 손발을 씻고 낯을 씻은 뒤 자전거를 대 놓습니다. 등허리를 톡톡 두들기며 걸상에 앉아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물결이 꽤 높네. 아이들은 저희 키보다 높게 치는 물결인데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참 씩씩하구나. 다리를 쉬고 땀을 식히면서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모래밭을 걸어서 아이들한테 갑니다.


물결이 치든 말든 바다로 뛰어드는 아이들은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립니다. 물결이 안 칠 적에는 모래밭이 훤히 드러나지만 물결이 한 번 쳤다 하면 아이들 어깨까지 바닷물이 튑니다.


오늘 물결 한번 대단하네. “오늘은 깊이 들어가지 말자. 요 앞에서만 놀자.” “응, 알았어.” 그러나 아이들은 슬금슬금 더 들어가려 하고, 모래밭에 엎드리거나 앉아서 물결을 온몸으로 맞으며 데굴데굴 구릅니다.


아이들을 보며 “재미있니?” 하고 물을 일도 없어요. 아이들 낯빛에 웃음에 목소리에 몸짓에 매우 재미있다는 기운이 철철 넘칩니다.


“바람이 그리 불지 않는데 물결은 참 높구나.” 아이들하고 섞여 바닷물을 함께 맞습니다. 한참 바닷물하고 뒹군 뒤에는 모래놀이로 접어듭니다. 모래를 만지며 놀려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이 아이들은 머리카락도 옴팡지게 모래를 뒤집어쓰면서 놉니다.


마치 금빛으로 물들인 머리카락 같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언제나 금빛으로 물든 노래와 웃음과 놀이로 삶을 짓는다고 할 만하지 싶어요. 금빛 아이들은 금빛 모래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구나 싶어요.


큰아이는 모래를 뭉쳐서 공을 빚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를 따라하려 하지만 잘 안 된다면서 “누나는 공이고, 나는 만두야.” 하면서 웃습니다. 얘야, 너도 곧 누나처럼 만두에서 공으로 넘어갈 수 있단다.


빗방울이 들어도 바다놀이를 그치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실컷 놀도록 둔 다음 부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쫄딱 맞지 말고, 다음에 다시 바다마실을 오자고 달랩니다. 비를 맞으며 바다놀이를 더 즐긴 뒤, 우리 셋은 가을비를 시원하게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니 오히려 시원한 하루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