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0 즐겁다 2024.9.4.
즐거워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말 ‘즐겁다·기쁘다’는 뜻과 결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즐겁다’는 ‘즈믄’하고 닿고, ‘기쁘다’는 ‘깊다’하고 닿는다. ‘즈믄’은 ‘1000(천·千)’을 가리키는 우리말이고, 받침으로 붙는 ‘ㄹ’은 ‘물’처럼 노래하며 흐르는 결을 나타낸다. ‘깊다’는 속으로 고요하면서 포근히 품는 결을 나타낸다. 환하게 틔우듯 가없이 웃고 노래하는 마음을 ‘즐겁다’로 들려준다면, 그윽하면서 포근히 품는 마음을 ‘기쁘다’로 들려주는 얼거리이다. 밖으로 터뜨리는 웃음꽃이 ‘즐겁다’요, 속(안)으로 넉넉히 차오르는 웃음꽃이 ‘기쁘다’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결을 읽지 못 하다 보니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행복(幸福) =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처럼 풀이한다. 더구나 ‘만족 = 흡족’이고, ‘흡족 = 만족’이라고도 풀이하니 뜬금없다. 게다가 “흐뭇하다 =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로 풀이하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누구나 하루가 즐겁고 삶이 기쁘려면, 무엇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모두 지우면서, 스스로 오늘을 살림하는 빛살인 사랑을 품는 푸른숲이라는 길을 씨앗으로 새롭게 심어야지 싶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은 오히려 기쁨이나 즐거움하고 먼 꺼풀이라고 느낀다. 스스로 우리 길을 헤아리고 찾아나서면, 바로 이 하루가 가시밭길이건 꽃길이건 즐겁게 마련이다. 이 하루가 차곡차곡 모이면서 어느새 삶을 기쁨으로 이룬다고 느낀다. 샘물처럼 싱그럽게 솟는 즐거운 마음을 그린다. 바다처럼 넉넉하게 일렁이는 기쁜 마음을 살핀다. 빗물처럼 노래하며 내리는 즐거운 몸짓을 바라본다. 바람처럼 파랗게 하늘을 채우면서 아늑하게 어루만지는 기쁜 몸짓을 헤아린다. 즐겁게 한 발을 떼고서, 기쁘게 두 발짝 나아간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