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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뒹굴며 읽는 책 13
완다 가그 글.그림, 신현림 옮김 / 다산기획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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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그림책

즐겁게 가꾸는 살림꽃은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완다 가그 글·그림

 신현림 옮김

 다산기획

 2008.9.30.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해 줄까?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서 들은 얘기야. (7쪽)



  우리 아버지는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었습니다만, 우리 어머니는 집살림을 살뜰히 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를 낳은 두 어버이는 어떻게 다른 길을 가셨나 하고 돌아본다면, 우리 어머니도 처음부터 집살림이나 집안일을 고이 여미던 손길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배우고 싶었으나 가시내라서 더 배울 길이 꽉 막히고 ‘손에 물 묻히는 길’을 가셨는데, 더없이 씩씩하면서 야무진 마음결이 되어 새빛을 스스로 지으셨다고 느껴요.


  1950년대하고 1970년대는 다르고, 1990년대하고 2010년대도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다 다른 삶길을 얼마나 헤아릴 만할까요? 2020년대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는 가시내도 사내도 집안일을 거뜬히 해낼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함께 살림을 가꾸는 슬기롭고 상냥한 눈빛이어야 합니다. 사내라서 집안일을 안 해도 되지 않으며, 가시내이니까 집안일을 사내한테 모두 넘겨도 되지 않아요. 둘 다 집안팎에서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사랑스레 하루를 짓는 눈빛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아차! 사과주스! 주스통 마개를 잠갔나? 아냐, 잠그지 않은 것 같아. 다시 보니 아저씨는 손에 마개를 쥐고 있었어.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갔지.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단다. (24쪽)


세상에! 사과주스가 계속 쏟아져 지하실이 온통 물바다였지. 아저씨는 맥 빠진 채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야. “어이쿠, 이미 쏟아져 버렸네. 괜찮아, 괜찮아.” (25쪽)



  우리는 왜 누구나 집안일이며 집살림을 즐거우면서 거뜬히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누구나 옷을 걸치고 밥을 먹으며 집에서 자거든요. 옷을 안 걸치고 밥을 안 먹으며 집에서 안 잔다면, 옷밥집이라는 일거리하고 살림을 안 쳐다봐도 돼요. 그러나 우리가 이 몸에 옷이랑 밥이랑 집을 베풀면서 하루를 누리는 삶길이라면,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옷살림이며 밥살림이며 집살림을 차근차근 익혀서 새롭게 가다듬고 가꾸는 걸음걸이여야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삶이 되리라 봅니다.



풀밭에 넘어진 아기는 반쯤 저은 크림과 버터를 뒤집어썼단다. 아저씨는 눈은 껌벅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중얼거렸어. “어이쿠, 버터도 끝났네.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는 흠뻑 젖은 아기를 일으켜 볕이 잘 드는 곳에 앉혀 두었어. 벌써 해가 하늘 높이 떴어. 정오였어. 곧 아주머니가 점심을 먹으러 올 텐데, 아직 점심 준비도 못했지 뭐야. (35쪽)



  1935년에 “The Story of a Man Who Wanted to do Housework” 또는 “Gone is Gone”이란 이름오로 나온 그림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완다 가그/신현림 옮김, 다산기획, 2008)로 나왔는데, 거의 일흔 몇 해 만에 알려진 셈입니다. 일흔 몇 해 만에 우리말로 나온 조그마한 그림책은 오래 사랑받지 못한 채 새책집에서 사라집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이야기를 함께 읽거나 생각하기 어려운 터전인 탓일까요? 어린이하고 손잡으면서 살림빛을 가꾸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삶을 들려줄 만한 어른이 아직 적은 탓일까요?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에 나오는 아저씨는 ‘혼자 밖에서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했다지요. 아저씨가 보기에 아줌마는 집에서 ‘딱히 하는 일도 없어 보이고, 힘도 안 들 텐데’ 싶었다지요. 이리하여 어느 날 ‘서로 일을 바꾸어 보자’고 했다지요.


  자, 생각해 봐요. 집안일을 여태 해본 적이 없던 아저씨가 처음으로 집안일을 하겠노라 나서요. ‘사내가 힘들게 바깥에서 일하고 돌아온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아저씨는 ‘가시내는 집에서 하느작거릴 뿐, 힘들지도 않잖아? 나도 이제 좀 쉬엄쉬엄 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저씨 생각마냥 집안일이란 쉬엄쉬엄 해도 될 만한가요? 그림책 아저씨가 읊듯 집안일은 설렁설렁 해도 누구나 손쉽게 해낼 만한가요?



아주머니가 또 무엇을 보았게? 버터통은 넘어져 있고, 아기는 햇볕에 타고 있었어. 크림과 버터는 말라서 빡빡하고 끈적거렸지. (50쪽)


아주머니는 초조해졌어. 풀밭에는 강아지가 누워 있었지. 소시지를 잔뜩 먹어 배가 남산만 했어. 강아지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어. (51쪽)



  이웃나라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잡아먹던 무렵에 조선총독부에서 내놓은 배움책부터 2020년으로 넘어선 오늘날 이 나라에서 나오는 배움책까지 두루 살피면, 한때 ‘실과’란 이름으로 어린이한테도 집안일을 익히도록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만, 어느새 ‘실과’는 가뭇없이 사라졌어요. 도시락을 쌀 줄 아는 어린이가 매우 적습니다. 아마 ‘도시락’이란 이름조차 낯설 만합니다. 배움수렁(입시지옥)에 빠져든 푸름이라면 집에서 설거지나 걸레질이나 비질조차 안 시키지 않나요? 열린배움터에 들어가려고 새벽부터 밤까지 배움책을 붙드는 푸름이는 마을길을 거닐며 집하고 배움터 사이를 다니는 일도 없지 않나요?


  집안일을 모르고 자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앞으로 어떤 젊은이(대학생)가 될까요? 집살림을 어려서부터 배운 적이 없이 몸뚱이만 어른이 된 젊은내기는 짝꿍을 사귈 적에 어떤 마음이나 눈빛이나 몸짓이 될까요?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이 자라서 짝을 맺은 가시내랑 사내는, 새집에서 새로 아기를 낳아 돌보는 길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건사할까요? 나라에서 어린이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나요, 스스로 아기를 돌볼 줄 아는가요? 아기는 할머니한테 맡기고 바깥에서 돈만 벌면 되는지요, 어버이로서 두 사람이 아기가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자라는 살림빛을 펼는지요?



아저씨가 소리를 버럭 질렀어. “당신이 하는 일이라곤 꾸물거리며 집 주변을 어슬렁대는 게 전부잖아. 그런 일이 뭐가 힘들어.”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어. “그러면 내일부터 일을 바꿔 볼까요. 내가 바깥일을 할 테니, 당신은 집안일을 해 봐요. 내가 들에 나가서 풀을 자를게요. 당신은 집에서 꾸물거리며 어슬렁대 봐요. 어때요? 바꿔 볼래요?” 아저씨는 얼마든지 잘할 거 같았단다. 풀밭에서 뒹굴거리며 아기를 돌보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버터를 젓고, 소시지 몇 개 굽고 수프나 좀 끓이면 되지 뭐. 흠! 무척 간단한 일이잖아! (14∼15쪽)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를 푸름이 배움책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이 그림책을 젊은 가시버시가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이 그림책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둘러앉아서 함께 넘기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이 그림책을 나란히 소리내어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푸름이를 돌보는 어버이가 푸른 아이들하고 함께 빨래하고 밥하고 비질하고 집안을 돌보면 좋겠습니다. 젊은 가시버시가 집안일을 ‘난 이만큼 넌 저만큼’으로 뚝 가르지 말고, ‘모든 집안일을 노래하면서 함께하기’로 가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면서 하루살림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아기는 소꿉놀이로 집살림을 즐겁게 그리면서 무럭무럭 크면 좋겠습니다.



“집안일이 처음이라 좀 어려웠을 거예요. 내일은 아마도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말했어. “아냐, 이제 그만! 오늘로 집안일도 그만이야. 제발, 부탁이야, 여보, 사랑해. 다시 들에서 일할게. 당신 일보다 내 일이 힘들다고 다시는 투정하지 않을게.” 아저씨가 애원했어. “예, 좋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행복하게 잘 살겠죠? 영원히 말예요.” (58쪽)



  온누리 모든 어머니는 얼마나 슬기로우면서 상냥한 넋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온누리 모든 아버지는 슬기로우면서 상냥한 넋을 사랑으로 즐겁게 배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꿉니다.


  멀리 나가서 배우지 마요. 집에서 배우기로 해요. 곁에서 하루를 기쁘게 짓는 손길을 같이 익혀 봐요. 잔치밥을 차려야 하지 않아요. 사랑밥을 차리면 넉넉해요. 꽃빔을 지어야 하지 않아요. 사랑옷을 지으면 돼요. 으리으리 우람한 집을 지어야 하지 않아요. 사랑이 피어나는 보금자리이면 좋아요.


  즐겁게 가꾸는 살림꽃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집안일을 하지 않는 사람한테 나라지기를 맡기지 말아요. 집안일을 모르는 사람한테 고을지기나 벼슬자리를 맡기지 말아요. 아기 기저귀를 갈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배움터에서 배움이를 가르치지 말아야겠지요. 우리 모두 살림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로 살림순이랑 살림돌이가 되고, 살림지기가 되며, 살림님으로 어깨동무하는 앞날을 그려 봅니다.


#TheStoryofaManWhoWantedtodoHousework #GoneisGone #WandaGag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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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의자
고우야마 요시코 글, 가키모토 고우조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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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그림책/숲노래 푸른책

작은 손길은 징검다리



《토끼의 의자》

 고우야마 요시코 글

 가키모토 고우조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2010.11.30.



  요새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큰고장 긴걸상 사이에 팔걸이를 일부러 덧댄다는 말을 듣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벼슬아치(공무원)는 한뎃잠이(노숙자)가 자꾸 긴걸상에 누워서 자기 때문에 긴걸상에 못 눕도록 팔걸이를 덧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긴걸상은 누워서 쉬는 자리가 되기도 해야 합니다. 생각해 봐야지요.


  가슴이 답답하거나 아파서 갑자기 길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을 그냥 맨바닥에 눕히나요? 아니지요. 긴걸상에 옮겨야지요. 갓난쟁이는 바람을 쐬고 햇볕을 머금어야 튼튼히 자랍니다. 그래서 아기 어버이는 으레 아기를 데리고 바람을 쏘입니다. 아기를 업거나 안으며 다닌 어버이라면 다들 알 텐데, 아기만 업거나 안지 않습니다. ‘아기살림’을 잔뜩 거느립니다. 아기는 틈틈이 젖을 물려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야 합니다. 쉼터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물려야 할 적에 긴걸상에 눕히기 마련이에요.


  자, 이럴 적에 긴걸상이 긴걸상 아닌 ‘팔걸이 때문에 턱이 있’으면 어쩌나요. 갑자기 아파서 누워야 하는 사람도, 아기랑 어버이도, 몹시 버겁겠지요.



토끼가 작은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토끼가 만들었다는 표시로 의자에 조그만 꼬리를 달았습니다. (2쪽)



  그림책 《토끼의 의자》(고우야마 요시코 글·가키모토 고우조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0)는 나무질을 좋아하는 토끼가 짠 작은 걸상 하나가 일으킨 자그마한 물결을 들려줍니다. 토끼는 그저 걸상을 짰고, 고갯마루 나무 곁에 문득 놓았어요.


  고갯마루를 넘는 숲짐승은 나무 곁에 새로 나타난 걸상을 보면서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지만 저마다 똑같이 ‘누려’요. 누가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은 걸상을, 또 작은 걸상 곁에 있는 바구니를, 또 바구니에 담긴 것을, 다 다르게  ‘누리’면서 다 다르게  ‘나누려’는 마음이 됩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건 당나귀. ‘아무나’ 의자를 보더니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아이쿠, 참 친절한 의자로군그래!” (8쪽)



  걷다가 다리를 쉽니다. 몸이 힘들어 다리를 쉽니다. 쉬엄쉬엄 가려고 다리를 쉽니다. 서두르지 않으려고 다리를 쉽니다. 새롭게 기운을 내고 싶어 다리를 쉽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려고 다리를 쉽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리를 쉽니다. 신나게 뛰어논 아이들도 살짝 땀을 들이려고 다리를 쉽니다.


  할머니가 다리를 쉽니다. 아줌마가 다리를 쉽니다. 아이가 다리를 쉽니다. 저마다 다른 삶길을 걸어가면서 느긋하게 쉬고는 씩씩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차근차근 가는 길입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입니다. 때로는 손을 잡고서 걷는 길입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란히 디디는 길이기도 합니다.



등이 가벼워지니 얼마나 좋은지. 나무에 기대니 얼마나 좋은지. 나무 그늘은 또 얼마나 좋은지. 당나귀를 자기도 모르는 새 그만 낮잠에 스르르. (12쪽)



  길다란 걸상이 곳곳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른 자리가 이곳저곳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사람도 나그네도 누구나 누리는 걸상이며 자리가 넉넉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걸상하고 자리를 마련한 곳에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기도 하고, 바람을 가려 주기도 하면 더욱 좋겠어요.


  걸상은 등걸이어도 좋습니다. 굵고 큰 나무줄기를 놓아도 걸상 구실을 합니다. 이 걸상은 사람도 쉬고 나비나 새가 앉아서 쉬는 데가 될 만합니다. 바람이 스치고 눈비가 머물고 햇볕이 따사로이 비춥니다.


  한켠에 쉼터입니다. 한복판에 쉼마당입니다. 숨을 돌리고, 숨을 고르고, 숨을 가누고, 숨을 폅니다. 이러면서 새롭게 조곤조곤 이야기가 피어나겠지요.



곰은 바구니 속 도토리를 몽땅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빈 바구니만 놔 두자니 다음 사람에게 미안한걸.” (16쪽)


곰은 도토리 대신 꿀이 든 병을 바구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나귀는 낮잠만 쿨쿨. (18쪽)



  서로 징검다리가 되는 길을 보여주는 《토끼의 의자》일 텐데,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만한 조그마한 마음 한 자락이야말로 대수롭게 어우러지는 상냥한 사랑꽃으로 이어가지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에는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요? 우리가 지내는 마을에는 무엇을 놓으면 즐거울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보금자리에는 무엇을 갖추면 아름다울까요?


  아이들은 어떤 손길로 자랄 적에 사랑스러울까요? 아이들한테 어떤 눈빛을 북돋우면 기쁠까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어른한테서 물려받으며 의젓하고 어질게 자랄까요?



“아, 잘 잤다.” 당나귀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습니다. 바구니를 들여다본 당나귀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어?” (32쪽)


“어어어? 도토리가 알밤이 됐네. 아하! 도토리가 알밤의 아기였구나.” (34쪽)



  눈이 내려 마을을 덮습니다. 눈이 소복히 덮은 마을은 하얗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은 모두 일손을 멈추고서 눈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눈이 소복소복 쌓인 곳을 오롯이 어린이 차지로 내주고서 어른들은 버스랑 자동차를 모두 멈출 수 있을까요?


  자동차가 부쩍 늘 뿐 아니라 자동차가 줄어들 낌새가 없는 나라에서는 자동차를 댈 자리를 자꾸 늘립니다만, 나무가 자랄 틈이나 아이들이 뛰놀 빈터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기 일쑤입니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아이들이 신나게 얼크러질 마을이 없다면, 앞으로 어느 나라이든 무너지리라 생각해요. 숲이 푸르고, 자동차 소리가 아닌 새랑 풀벌레랑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가 가득한 곳일 적에 아름답고 멋진 나라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걸상 하나 짜서 나누는 길에는 돈이 거의 안 들거나 아예 안 듭니다. 즐거이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은 딱히 돈이 안 들어요. 오직 마음을 들이고 사랑을 기울이며 웃음꽃이 피어날 뿐입니다.


ㅅㄴㄹ


#香山美子 #枾本幸造 #どうぞのいす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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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물 - 2021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87
오치 노리코 지음, 메구 호소키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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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ちのりこ #メグホソキ

숲노래 푸른그림책

- 물을 마시며 물이 됩니다



《오늘 날씨는 물》

 오치 노리코 글

 메구 호소키 그림

 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1.20.



  사랑스러운 말을 듣는 사람은 사랑이 말에 깃들면 어떠한 숨결이 되는가를 느끼고 맞아들여서 배우고 삶으로 누립니다. 미워하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짓밟거나 억누르는 말을 듣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몸짓에 고스란히 묻어난 말을 들을 적에 어떠한 마음이 되는가를 느끼면서 이러한 삶을 맛봅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는 숨쉬기 어렵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에서는 숨쉬기 좋습니다. 바람이 매캐한 서울 한복판이라든지 핵발전소나 제철소 곁에서 숨을 제대로 쉴 만할까요? 숲 한복판이나 바닷가에서는 누구라도 가슴을 펴고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한껏 숨을 마실 만합니다.



찬이는 밖으로 뛰어나가

손바닥에 눈을 받았습니다.

그 손바닥에서

“찬이야, 찬이야.”

하는 목소리가 났어요. (6쪽)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손수 흙에 심고서 가꾸고 거두고 손질한 남새나 열매로 밥을 차려서 함께 누렸습니다. 이때에는 일본 한자말 ‘유기농·자연농·친환경’ 같은 이름이 없었으나 누구나 어디에서나 숲결을 그대로 살린 밥살림이었어요. 이때에는 먹을거리고 배앓이를 할 일이 없고, 먹을거리 탓에 아픈 사람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손수 심고서 가꾸고 거두는 길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더구나 스스로 손질하거나 차려서 밥살림을 누리는 사람마저 확 줄어요. 이제는 ‘유기농·자연농·친환경’을 따지거나 챙기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는데요, 손수 안 짓고 스스로 손질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어떤 밥살림인 셈일까요?



“넌 누구니?”

“나? 나는 물이야.

 방금 전까지는 눈이었고, 그 전에는 구름이었어.

 비나 강이나 바다일 때도 있었지만,

 물은 언제나 물이지.”

“날 어떻게 알아?”

“조금 전에는 너였으니까?” (9쪽)



  그림책 《오늘 날씨는 물》(오치 노리코 글·메구 호소키 그림/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은 누구나 머리로는 안다고 여기지만, 정작 마음이나 몸으로는 도무지 모르는구나 싶은 물 이야기를 다룹니다. 물이란 무엇인가요? 물이 있으니 어떠하고, 물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플라스틱을 줄이거나 안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플라스틱에 담은 물이 넘치는 오늘날이에요. 물이 맑게 흐르도록 하면서 냇물이나 우물물이나 샘물을 길어다가 쓴다면 그 엄청난 ‘페트병 쓰레기’로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요? 페트병을 만드느라 돈·품·말미를 쓰지 말고, 어디에서나 냇물이며 우물물이며 샘물이 맑게 흐르도록 건사하는 길에 돈·품·말미를 쓸 노릇이 아닐까요?


  우리는 물값을 내야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맑은 냇물이 아니기도 하고, 물은 바람과 똑같이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고서 마음껏 누릴 푸른별 숨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큰고장뿐 아니라 시골조차 수돗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물값을 어마어마하게 치르는데요, 이렇게 물값을 치르면서도 정작 ‘맑은 물’은 아닙니다. 참말로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쓰는 셈일까요? 나라는 물을 어떻게 건사하는 꼴일까요?



“네가 먹는 밥이나 채소, 과일도 물이 없으면 자라지 않아.

 시든 해바라기에 물 준 적 있지? 그 물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10쪽)



  맑게 흐르는 샘물이나 골짝물을 마시면서 자라는 남새랑, 수돗물을 주어 키운 남새는 맛이 어떻겠습니까? 샘물을 마신 남새한테서는 샘물맛이 납니다. 골짝물을 마신 남새한테서는 골짝물맛이 나요. 그리고 수돗물을 마신 남새한테서는 수돗물맛이 납니다.


  딸기란 열매가 있어요. 겨울이 저물고 봄이 깨어날 즈음 비로소 꽃망울을 맺으면서 한봄에 하얗게 꽃을 피우고, 늦봄에 차츰 익어 빨간알을 매달지요. 딸기란 열매는 늦봄이나 이른여름에 누려야 할 제철열매입니다.


  그러나 보셔요. 오늘날 사람들은 딸기를 언제 먹나요? 어떻게 한겨울에 딸기가 나서 누리나요? 한겨울 딸기란 뭘까요?


  한겨울 딸기는 모두 비닐집에서 키웁니다. 한겨울 ‘비닐집 딸기밭’은 기름(석유)을 땝니다. 수돗물을 듬뿍 먹입니다. 이밖에 다른 무엇을 더 먹이는지는 덧붙이지 않겠습니다만, 겨울 내내 기름하고 수돗물을 머금은 ‘오늘날 밭딸기’한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물은 여러 가지를 녹여서 옮기는 일도 잘해. 

 생물의 몸속을 계속 흐르면서

 필요한 것을 필요한 곳에 가져다주기도 하고,

 필요 없는 것을 버려 주기도 해.” (13쪽)



  들짐승이나 풀벌레는 따로 물을 챙겨서 마시지 않습니다. 들짐승이나 풀벌레는 새벽나절 풀잎에 맺는 이슬을 살짝 훑으면서 하루치 물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들이나 숲에 사람이 물을 주지 않아도 어떻게 들풀이며 숲나무는 그렇게 푸르도록 우거질까요? 들이며 숲은 해가 진 저녁부터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도록 바람결이 바뀌면서 ‘바람이 품은 물’이 찬찬히 방울이 져서 이슬로 바뀌어 풀잎이며 줄기이며 가지에 잔뜩 맺는답니다. 풀이며 꽃이며 나무는 바로 이 ‘바람물’인 ‘이슬’을 머금으면서 하루를 싱그럽고 씩씩하게 납니다.


  이러다가 때때로 비가 내리지요. 비가 내릴 적에는 이 땅에 쌓인 먼지나 부스러기나 쓰레기를 씻어냅니다. 그 어떤 사람도 빗물처럼 말끔하면서 정갈하게 이 땅을 씻어내지 못해요. 비가 훑은 자리는 더없이 깨끗해요. 하늘도 들도 숲도 빗물을 받으면서 몸을 씻고 목을 더욱 든든히 축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이 모습을 ‘물’이라고 부르는 거야.

 물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해.

 고이고, 뿜어져 나오고, 날아가 흩어지기도 하지.

 하지만 날씨가 아주 추워지면…….” (19쪽)



  그림책 《오늘 날씨는 물》은 이야기를 어렵게 꾸미지 않습니다. 누구나 아는 듯하지만 정작 누구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물 이야기를 부드럽고 상냥하고 즐겁고 살뜰하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모두 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물입니다. 우리는 서로 물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이란, 온누리를 돌고돌면서 우리한테 찾아온 빛살입니다. 우리가 마실 물이란 구름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하며 바람이기도 한 숨빛입니다. 어른으로서 돌볼 물이란 이 푸른별을 참말로 푸르게 적시는 물입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나누어 줄 물이란, 모든 숨결이 푸르게 빛나도록 북돋우는 물입니다.



“자, 그럼 이제 새를 부르자.”

“새를 부를 수 있어?”

“하늘에서 보면 뭐가 제일 잘 보일 것 같아?

 햇빛을 반사하는 우리들, 바로 물이라고.”

“아, 그래! 물은 반짝반짝 빛나지.” (26쪽)



  숲바람을 마시고, 손수 지은 밥살림을 누리고, 푸르게 반짝이는 맑은 물을 머금는다면, 어느 누구도 아프거나 앓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푸른별에 돌림앓이가 왜 퍼질까요? 맑은 바람도 물도 모두 줄어들거든요. 이 나라도 저 나라도 싸움연모(전쟁무기)를 새로 만들어서 으르렁거리는 길에 돈·품·말미를 끔찍하도록 쓰고요.


  서울사람은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한가람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은 풀죽임물(농약)이나 핵발전소나 숱한 지음터(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것들이 더럽히지 않는, 그야말로 숨을 살리는 물로 흙살림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꼭지를 돌려서 마시는 물이 아닌, 냇가나 샘가나 우물가에 가서 길어올릴 물입니다. 돈을 치러서 사다 마실 물이 아닌, 누구나 마음껏 맑고 즐겁게 누릴 물이어야 합니다.



“찬이야,

 나는 이대로 지구를 두세 바퀴 돌고 올게.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33쪽)



  물을 마시며 물이 됩니다.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며 서로 사랑이 됩니다. 바람을 마시며 바람이 됩니다.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아름다운 사이가 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어떤 말을 나눌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을 적에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어깨동무를 할 만한가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삶을 먹고 사랑을 마시고 꿈을 나눌 적에 싱그럽고 푸른 마음으로 손을 맞잡는 사람이 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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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그림책/숲노래 푸른책


석걸음 ― 너나들이

: 친구 관계·소울메이트·베프·동무를 나누다



  우리 곁에는 누가 있어 하루를 즐겁게 열면서 닫는가요. 우리는 누구를 떠올리면서 오늘을 반가이 맞이하면서 넉넉히 누리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숨결이 되어 서로 동무나 이웃으로 지내는가요.


  어른들은 ‘친구 관계·교우 관계’ 같은 말을 쓰고, ‘베프(베스트 프렌드)’나 ‘영혼의 짝·소울메이트’를 말하기도 합니다만, 어쩐지 ‘동무 사이’를 말하기에는 알맞지 않구나 싶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오랜 옛날부터 사이좋게 지내면서 나눈 말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사이좋다’를 생각해 볼까요? ‘사이’란 너랑 내가 떨어진 길이나 자리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목숨이면서 사람이니 한몸이 아닌 다른 몸이에요. 다르게 있는 우리가 떨어진 길이나 자리가 ‘좋다’면, 우리는 가까이에서 만나도 멀리 떨어진 채 자주 보기 어려워도 동무라는 뜻입니다. ‘너나들이’란 말이 있어요. 너랑 나 사이를 드나든다는 뜻인데, 너하고 나라는 다른 두 몸이지만, 거리낌없고 스스럼없고 티없고 허물없는 모습을 가리켜요. 마음으로 만나면서 손을 잡기에 너나들이입니다. ‘마음동무·마음벗’이나 ‘어깨동무·사랑동무’라는 길을 들려주는 그림책을 열 가지 추려 봅니다.



《생쥐와 고래》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이상경 옮김, 다산기획, 1994.9.10.

 : 뭍에 사는 작은 아이랑 바다에 사는 큰 아이는 만날 길이 있을까요? 어쩌다가 하루 만나는 일조차 놀라운 일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쥐하고 고래가 만난 일이란, 더구나 쥐하고 고래가 서로 도우면서 마음으로 그리는 사이가 된 일이란, 다시없이 애틋한 하루일 테지요. 아모스·보리스 둘은 참다운 동무란 어떤 마음인가를 산들바람처럼 봄물결처럼 싱그러우면서 넉넉하게 들려줍니다.


《호기심 많은 꼬마 물고기》

 엘사 베스코브 글·그림/김상열 옮김, 시공주니어, 2007.11.10.

 : 헤엄을 치고 싶다면 물하고 사귀어야 합니다. 냇물이건 바닷물이건 못물이건, 이 물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하나가 될 적에 비로소 헤엄을 치고 물장구를 치며 자맥질을 합니다. 물에는 물벗(물고기)이 있어요. 물벗이 물하고 사귀면서 마음껏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또 우리가 물벗이랑 어우러진다면, 이때에도 헤엄치기란 수월하겠지요. “먹는 물고기”가 아닌 “물에 사는 벗”을 만나면 좋겠어요.


《밀리의 특별한 모자》

 키타무라 사토시 글·그림/문주선 옮김, 베틀북, 2009.4.15.

 : 마음에 드는 동무한테 무엇을 주고 싶은데 돈이 한 푼도 없다면 어떡하면 좋을까요. 언제나 즐거우면서 새롭게 꿈꾸는 동무가 우리한테 들려주는 훨훨 날갯짓하는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나요. 아이하고 어른은 서로 동무가 될 수 있을까요. 아이하고 어른은 서로 어떤 마음이자 눈빛이라면 상냥하게 얼크러지는 동무가 될까요.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눈일 적에 쓸 수 있는 갓(모자)이 있습니다.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사노 요코 글·그림/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2004.9.20

 : 푸른별에 나무가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나무 없는 별에서 목숨을 건사한대서 ‘산다’고 할 만할까요? 큰고장에는 으레 숲을 밀어내고 집이며 길만 크고 높게 올려세우는데, 나무숲·풀숲이 없다면 바람이 불지 않고 싱그러이 숨쉬지 못해요. 더구나 나무는 우리 곁에서 어마어마한 살림이자 세간 구실을 합니다. 이 나무를 사귀어 볼 수 있을까요. 이 나무를 미워하거나 성가시게만 바라보려나요.


《작은 새가 좋아요》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2002.8.1.

 : 오늘날 사람들은 이 터를 ‘사람 것’으로만 여기지만, 지난날에는 사람도 살고 새랑 벌레랑 짐승도 함께 살았습니다. ‘누구누구만 땅임자’이지 않아요. ‘사람만 땅임자’라는 생각이 퍼진 다음부터 새는 마을에서 쫓겨났어요. 콩 석 알 가운데 한 톨을 늘 나누던 새인데, 이 새를 아낄 줄 알고 반길 줄 아는 마음이라면, 마을이며 나라이며 이 별을 곱게 가꾸고 이웃을 사랑으로 품는 길을 나아가겠지요.


《하루거리》

 김휘훈 글·그림, 그림책공작소, 2020.1.30.

 : 혼자 있다면 혼자 놀며 즐겁습니다. 여럿이 있다면 여럿이 놀며 신납니다. 홀로 떨어진 채 놀이를 잊은 또래가 있다면, 이 또래를 모르는 척하면서 끼리끼리 어울리며 신날 수 있을까요? 여러 아이는 언제나 함께 놀다가 ‘혼자서 따로 지내며 놀지 않고 어두운 아이’를 지켜봅니다. 이 아이한테 자꾸자꾸 다가서면서 말을 붙이고 하루를 함께 보내려 하지요. 차근차근 살가이 가까이하기에 동무가 되어요.


《내가 열 명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모토 요코 글·그림/김활란 옮김, 은하수미디어, 2006.6.1.

 : 학교도 가고 숙제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싫은 일도 하고, 이러면서 반가운 짝꿍이랑 놀고 싶으니, ‘내가 열 사람’쯤 있다면 이리저리 나누어 느긋한 하루가 될는지 모릅니다. 열로 나눈 다 다른 내가 있어 열 가지를 걱정없이 ‘해치운다’면, 막상 스스로 하는 일놀이는 하나도 없겠지만요. 스스로 하루를 누리기에, 스스로 하루를 같이 어울리기에, 스스로 자라며 서로 깊이 알아갑니다.


《the Witch Next Door》

 Norman Bridwell 글·그림, scholastic, 1965.

 : 숲아씨(마녀)가 이웃에 살 수 있습니다. 숲아씨는 굳이 학교를 안 다닐 수 있습니다. 숲아씨는 빛힘(마법)으로 무엇이든 손가락이나 눈짓만으로 척척 해낼 수 있습니다. 숲아씨는 하늘을 날거나 바람을 타면서 놀 수 있습니다. 숲아씨하고 어울리다 보면 하루가 언제 갔는지 모를 만큼 재미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달라서 이웃이에요. 서로 다른 사람이라, 똑같은 놀이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누립니다.


《신기한 우산가게》

 미야니시 다쓰야 글·그림/김수희 옮김, 미래아이, 2017.11.30.

 : 하늘은 빗물을 상큼하게 흩뿌리면서 이 땅을 촉촉히 적십니다. 땅은 풀싹이 해맑에 돋으면서 온누리를 환하게 덮습니다. 하늘에서 무엇이 내리거나 떨어지면 즐거울까요? 땅에서 무엇이 솟거나 나오면 재미날까요? 동무하고 무엇을 나누고픈 마음인가요? 이웃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오늘을 생각하면서 맞이하기를 바라나요? 웃는 얼굴이 돼 봐요. 무섭다는 생각을 씻어 봐요. 활짝 피어나는 놀이로 달려가요.


《바솔러뮤 커빈즈의 모자 500개》

 닥터 수스 글·그림/김혜령 옮김, 시공주니어, 1994.11.28.

 : 손길을 탄 살림 하나를 아끼는 마음이 이쪽에 있습니다. 스스로 손길을 내어 살림을 건사해 본 적이 없는 마음이 저쪽에 있습니다. 이쪽 손길에는 언제나 상냥한 바람이 흘러 누구라도 동무가 됩니다. 사람동무도, 풀동무도, 구름동무도 있어요. 저쪽 손길에는 늘 차디찬 바람이 가득해 누구라도 동무가 안 됩니다. 모두 겉치레이지요. 힘으로 차지한 높은자리에서 우쭐댄다면, 동무 없이 지내겠다는 뜻이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숲노래 사전] https://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C%88%B2%EB%85%B8%EB%9E%98&frameFilterType=1&frameFilterValue=359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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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두걸음 ― 보금자리꽃

: 한식구·가정불화·가정폭력·집안일을 나누다



  ‘가정불화·가정폭력’는 무엇일까요? 이런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어쩐지 소름이 돋거나 무섭거나 싫거나 괴로울 수 있습니다. ‘한식구’나 ‘한지붕’이란 무엇일까요? ‘집안일’이나 ‘집살림’이란 무엇일까요? 낱말을 살짝 바꾸어 보아도 말결이 사뭇 다릅니다. 집안일을 어머니 혼자 맡거나 아버지 홀로 떠안아야 한다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고단해요. 그렇지만 ‘일’이 아닌 ‘살림’으로 바라보면서 어머니랑 아버지가 함께 짓는 집살림이라 한다면, 여기에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어버이하고 사이좋게 사랑으로 가꾸는 집살림이라 한다면, 이 또한 확 다르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집안은 어떤 길을 갈 적에 즐겁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재미나고 느긋하며 아늑할까요?


  집 안팎에서 불거지는 아픈 주먹다짐이나 매질이나 막말이나 막짓을 고스란히 다루는 그림책도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다른 결로 이 실타래를 바라보는 그림책을 함께 읽고 헤아리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집’이란 무엇이고 ‘보금자리’란 무엇이며 ‘어버이’ 노릇이란 무엇이고 ‘살림’은 누가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을 열 가지 추려 봅니다.



《펠레의 새 옷》

 엘사 베스코브 글·그림/정경임 옮김, 지양사, 2002.10.1.

 : 옷 한 벌은 어떻게 마련해서 나누면 즐거울까요? 옷을 사러 나들이를 가기도 하지만, 손수 옷을 짓기도 해요. 먼 옛날부터 누구나 집에서 어버이가 사랑으로 옷을 지어서 아이한테 입혔습니다. 옷을 지으려면 천이, 천을 짜려면 실이, 실을 자으려면 풀줄기나 솜털이나 양털이나 누에고치가 있어야 해요. 이 모든 길을 어린이가 손수 헤아리면서 스스로 옷을 짓는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이상경 옮김, 다산기획, 1994.9.1.

 : 한자말 ‘식구’는 “밥먹는 사이”를 나타내고, 한자말 ‘가족’은 “피를 나눈 사이”를 나타내며, 오랜말 ‘한지붕’은 “함께 지내는 사이”를 나타내요. 우리는 집에서 서로 어떤 사이일까요? 우리 사이를 새롭게 나타낼 이름을 지으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사랑지기·살림지기·삶지기’처럼 서로 지키는, ‘사랑님·살림님·삶님’처럼 서로 아끼는 뜻으로. 한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그려 봐요.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 2001.10.15.

 : 이제는 어머니 혼자 집일을 하기보다는 아버지도 함께 하고 어린이·푸름이가 함께 하는 흐름으로 달라진다지만, 아직 적잖은 어른은 ‘집안일은 가시내 몫’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저마다 꿈으로 품는 길을 갈 적에 즐겁거나 아름답지 않을까요? 어머니는 집에서 어떤 자리인가요? 우리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나요? 그리고 어머니랑 아버지는 어린이·푸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요?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

 헬메 하이네 글·그림/문성원 옮김, 달리, 2003.11.10.

 : 돈 많고 이름 높고 힘이 센 집안에서 태어나 ‘돈·이름·힘’을 물려받은 어린이·푸름이 앞날이 밝거나 걱정없거나 좋을까요? 우리는 굳이 어버이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거나 따라야 할까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게 하루를 지을 만해요. 저마다 다른 우리는 스스로 즐겁게 노래할 길을 찾을 만해요. 나랑 너랑 다르기에 서로 동무가 됩니다. 다른 몸짓이며 숨결을 더 아끼고 싶으니 이웃이 되어요.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사노 요코 글·그림/이영미 옮김, 나무생각, 2008.12.17.

 : 으레 ‘산타 할아버지’처럼 산타라는 분은 사내 몫으로 여겨 버릇합니다만, ‘산타 할머니’라면 어린이한테 어떤 사랑을 베풀거나 나누려는 길을 가려나 하고 생각해 봐요. 할아버지 사랑도 아름다울 테고, 할머니 사랑도 포근할 테지요. 사내라서 파랑옷에 자동차 장난감만 받아야 할까요? 사내여도 얼마든지 꽃을 그리고 치마를 입고 인형놀이를 할 수 있어요. 어떤 몸이냐보다 어떤 마음빛이냐를 살펴봐요.


《승냥이 구의 부끄러운 비밀》

 기무라 유이치 글·미야니시 다쓰야 그림/양선하 옮김, 효리원, 2009.10.15.

 : 낳은 사랑이 있고, 돌보는 사랑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높거나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르면서 빛나는 사랑일 뿐입니다. 남한테 자랑할 만해야 하는 어버이가 아닌, 우리가 즐거우면서 상냥하게 마주하며 반길 어버이라고 느껴요. 새는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는 새를 사랑합니다. 승냥이는 토끼도 다람쥐도 족제비도 사랑할 수 있고, 거꾸로도 매한가지예요. 모든 아이는 사랑을 받아 이 별에 태어납니다.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드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4.6.30.

 : 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아직 때가 덜 무르익거나 철이 들지 않을 뿐입니다.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바로 해내는 사람이 있고, 숱하게 고꾸라진 끝에 해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때로는 끝내 못해도 좋아요. 아무 솜씨가 없어도 돼요. 굵은 나뭇가지에 줄을 매어 그네를 타면서 꽃내음을 맡아 봐요. 차근차근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내딛어요. 넘어져도 즐겁습니다. 새로 일어나 활짝 웃으면 돼요.


《바구니 달》

 메리 린 레이 글·바버러 쿠니 그림/이상희 옮김, 베틀북, 2000.7.15.

 : 오늘날 웬만한 집안은 가게에 가서 돈으로 사다가 쓰는 살림입니다만, 고작 쉰 해쯤 앞서만 해도 웬만한 집안은 스스로 짓는 살림이었고, 백 해쯤 앞서는 그야말로 거의 다 스스로 지어서 나누고 물려주며 오순도순 알뜰한 살림이었어요. 어린이·푸름이는 어떤 마음이며 손길을 물려받을 적에 기쁠까요? 어른·어버이는 어떤 사랑이며 숨결을 물려줄 적에 아름다울까요? 알뜰살뜰 가꾸기에 넉넉한 하루입니다.


《사과씨 공주》

 제인 레이 글·그림/고혜경 옮김, 웅진주니어, 2007.10.15.

 : 씨앗 한 톨을 심을 적에는 나무를 심는 셈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람히 크기까지는 열 해뿐 아니라 쉰 해가 훌쩍 지나야 합니다만, 나무를 심을 적에는 ‘오늘 누리는 열매나 꽃이나 그늘’보다는 ‘앞으로 한결 푸짐하게 나눌’ 보금자리랑 마을을 헤아린다고 할 만해요. 이 땅에 무엇을 심어 볼까요? 우리 마음밭에는 무엇을 심을까요? 그리고 동무하고 이웃하고 만나는 자리에는 무엇을 심어 보겠는지요?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완다 가그 글·그림/신현림 옮김, 다산기획, 2008.9.30.

 : 어린 동생을 돌보는 언니는 듬직합니다. 갓난아기인 동생을 살살 안고 어르면서 노래하는 언니는 믿음직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기였어요. 우리는 모두 빛나는 넋으로 이 별을 두루 날아다니며 놀다가 우리 어버이를 찾아서 태어났어요. 우리가 자라는 동안 건사하는 어버이 살림길이란 무엇일까요? 집안일을 같이 해볼까요? 집살림을 함께 여며 볼까요? 힘이 드니까 어깨동무하고, 서로서로 도우며 웃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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