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가께 한림 고학년문고 31
기시모토 신이치 지음, 강방화 옮김, 야마나카 후유지 그림 / 한림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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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9.19.

맑은책시렁 350


《봄이 오면 가께》

 기시모토 신이치 글

 야마나카 후유지 그림

 강방화 옮김

 한림출판사

 2014.1.20.



  덧뺄나곱을 모르더라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글을 안 쓰거나 못 읽어도 사랑스레 살림하는 사람이 숱합니다. 이와 달리, 덧뺄나곱뿐 아니라 어렵다는 셈을 풀 줄 알지만 하나도 안 아름다운 사람이 수두룩하지요. 글을 쓰거나 읽되 도무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숱하고요.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마쳐야 훌륭한 사람일까요? 그러나 열린배움터를 마쳤어도 안 아름답고 안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막말을 일삼고 막짓을 휘두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토록 오래 ‘배웠다(공부했다)’고 여기지만, 여러모로 보면, ‘종이(졸업장·자격증)’를 따거나 거머쥘 때까지 ‘책’을 곁에 두지 않는 사람이 흔하고, 살림과 집안일과 아이돌봄하고 등진 사람이 넘칩니다. 달걀부침은커녕 국수삶기조차 안 하면서 ‘대졸자·회사원·공무원·국회의원·시도지사’를 맡는 사람이 그득한 이 나라입니다.


  《봄이 오면 가께》 같은 어린이책은 얼마나 읽힐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아마 읽히기 어려운 우리나라이리라 봅니다. 스스럼없이 알아보려는 눈이 드물고, 아이랑 나란히 쥐면서 곰곰이 짚으려는 손이 드물고, 살피고 배우고 익혀서 먼저 온몸으로 펴려는 마음이 드물다고 느껴요.


  작은책 한 자락은 ‘함께걷기’를 들려줍니다. 작은책 한 자락은 ‘손잡기’와 ‘어깨동무’를 속삭입니다. 작은책 한 자락은 ‘나·너·우리’로 맺는 ‘오늘·하루·삶’이 어떻게 잇고 뻗어서 ‘살림·사랑·사람’으로 닿는지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막말(욕)은 워낙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너나없이 막말을 쉽게 주워섬깁니다. 제가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1982∼87년을 떠올리면, 그무렵에 막말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또래와 동무와 언니가 나무라거나 타일렀습니다. 바보짓을 삼가고 ‘얼뜨기(어른이 아닌 철없는 사람)’를 흉내내지 말라고 했지요. 이와 달리 요새는 아이어른 누구나 으레 막말을 입에 달아요. 아무 데서나 큰소리로 막말이 춤춥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마음을 나누려고 말을 섞을 노릇입니다. 그러나 “넌 나랑 뜻이 달라!” 하고 여기면서 “나랑 뜻이 다른 넌 없어져야 해!” 하며 내치기 일쑤입니다. 어깨동무(민주·평등·평화)란, “나랑 뜻이 다르건 같건 모두 나란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품는 길일 텐데, “넌 저쪽에 섰으니까 네 몫은 없을 뿐 아니라, 네 자리도 없고, 넌 사라져야 해!” 하고 내모는 나라이지 않나요?


  남이 나를 안 받아들였기에, 내가 남을 똑같이 안 받아들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이란, ‘사이’에 서서 ‘살림하는(살리는)’ 숨결이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삶을 짓는)’ 숨빛입니다. 전라도에 살든 경상도에 살든, 서울에 살든 시골에 살든, 누구나 나란히 빛나는 사람이자 삶인 줄 알아차리려 하지 않는다면, 다같이 죽음길로 달려가겠지요.


  우리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울로 올라간다”고 말하는 마음이란, 이미 스스로 금을 긋고서 담벼락을 쳤다는 소리입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말하는 마음이란, 벌써 스스로 값을 매기고서 따지고 잰다는 소리입니다. 아이어른이 다함께 봄에 봄맞이를 하고, 가을에 가을잔치를 하며, 언제나 보금자리숲을 누리는 하루일 때라야, 서로 눈뜨면서 사람으로 설 수 있습니다.


ㅍㄹㄴ


“그렇구나. 난 머리. 머리가 아픈데 고칠 수 없대.” 사유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칠 수 있을 거야. 나도 고칠 수 있고.” “아니, 내 병은 고칠 수 없다고 엄마가 그랬어. 하지만 난 달릴 수 있어. 난 건강해.” (24쪽)


겐지는 말없이 새장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가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유타가 부러웠다. 나도 아빠가 없다고 선뜻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44쪽)


“학교에서는 되도록 많은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더하기를 못해도, 글을 읽을 줄 몰라도 상관없어요. 살아가는 힘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고생하면서 몸에 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59쪽)


“자, 발을 담가 봐. 따뜻한 ‘할짝할짝 벌레’가 발가락 사이로 기어올라 온다니까.” (79쪽)


“유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만약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면 그건 친구들 덕분일 겁니다. 반 친구들은 모두 유타한테 선생님이니까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우리 같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좋은 점, 나쁜 점을 지켜봐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이번 일처럼 자주 폐를 끼치는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89쪽)


“만약 다른 팀들이 1위나 2위를 해도, 유타 팀이 실격되면 마음이 쓸쓸할 것 같아. 다 같이 꼴등하는 게 차라리 좋을 것 같아…….” (158쪽)


유타는 사유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다. “유타, 편지 고마워, 정말 기뻤어.” 사유가 챙을 들어 올리고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했다. “그래? 편지를 받으면 기쁜 거구나.” (161쪽)


#岸本進一


+


《봄이 오면 가께》(기시모토 신이치/강방화 옮김, 한림출판사, 2014)


어째서 이런 비탈길 위에 학교를 만들었을까

→ 어째서 이런 비탈길에 배움터를 세웠을까

7쪽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 멀리서 지켜보는데

21쪽


만약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면 그건 친구들 덕분일 겁니다

→ 그런데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란다면 동무가 돕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란다면 동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89쪽


다 같이 꼴등하는 게 차라리 좋을 것 같아

→ 다같이 꼴찌해도 차라리 나을 듯해

→ 다같이 꼴찌가 차라리 나아

158쪽


그래? 편지를 받으면 기쁜 거구나

→ 그래? 글월을 받으면 기쁘구나

→ 그래? 글을 받으면 기쁘구나

16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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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분 좋은 날 보리 어린이 10
한국글쓰기연구회 지음 / 보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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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7.24.

맑은책시렁 351


《아주 기분 좋은 날》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보리

 1999.10.15.



  1999년에 민소매에 깡똥바지 차림으로 펴냄터 일꾼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들 입으로는 ‘옷·얼굴·종이(졸업장·자격증)·쇠(자가용)·돈’을 안 본다고 읊지만, 정작 이 다섯 가지를 안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서울뿐 아니라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 이해에 태어난 《아주 기분 좋은 날》을 아주 신나게 알리고 팔았습니다. 엮음이보다 먼저 느낌글을 써서 띄우기도 했습니다. 파는이(영업자)는 책마다 어떤 줄거리와 삶이 흐르는지 읽는이(독자)한테 제대로 짚고 알리는 몫입니다. 예나 이제나 “책을 안 읽은 채” 마냥 “펴냄터 이름만 내세워서 파는 일꾼”이 수두룩합니다만, 저는 “스스로 안 읽은 책을 어떻게 파느냐?”고 여겼습니다.


  어느새 아이어른 모두 입에 밴 ‘기분 좋은’이라는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는 이런 뜬금없는 말씨가 아니라, 신나면 ‘신나다’로, 즐거우면 ‘즐겁다’로, 실컷 하거나 먹으면 ‘실컷(싫도록)’이라고, 홀가분하면 ‘홀가분하다’로, 흐뭇하면 ‘흐뭇하다’로, 기쁘다면 ‘기쁘다’로 나타낸 삶입니다. 구태여 일본말씨 ‘기분 좋은’을 쓸 까닭도 뜻도 없으며, 아이가 이런 말씨에 잘못 길들거나 물들지 않도록 돌볼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기분 좋은 날》이라는 어린이 글모음은 “아주 신나는 날”이나 “아주 즐거운 날”이나 “아주 웃은 날”이나 “아주 춤춘 날”이나 “아주 노래한 날”이나 “아주 신바람날”처럼 책이름부터 바로잡아야 맞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이 대목을 알아보거나 알아채려는 길잡이는 아주 드물어요. 그냥그냥 길든 대로 씁니다. 이냥저냥 물든 대로 아이들을 팽개칩니다.


  책머리에 이오덕 님이 붙인 글을 되살펴 보아도, ‘우리(어른)’ 스스로 어른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부터 ‘우리말’을 너무 모르고, 거의 안 쳐다보기 일쑤입니다.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쯤 이르기에 ‘우리말’을 안 배워도 되지 않습니다.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쯤 먹기에 ‘우리말’을 새로 안 배워도 되지 않아요. 우리는 여든이나 두온(200) 살에 이르러도 언제나 새록새록 ‘우리말’을 가다듬고 익힐 노릇입니다.


  모든 말이란, 우리 마음이자 삶이에요. 말을 어떻게 가누느냐 하는 일이란, 마음을 어떻게 가꾸면서 삶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실마리입니다. 아무 낱말이나 쓰는 사람은 참말로 아무렇게나 일하더군요. 얼렁뚱땅 지나치려는 사람은 그야말로 얼렁뚱땅 넘기기 일쑤입니다.


  막짓(갑질)이 안 사라지는 까닭을 알기는 쉽습니다. 우리는 이미 말부터 찌들고 주눅들 뿐 아니라, 억누르고 짓밟거든요. 어린이가 쓴 글에 ‘엄마께서’나 ‘선생님께서’처럼 틀린말씨가 끝없이 나옵니다. ‘-께’는 드높이는 말씨이기는 하되, 가까이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한테는 아예 안 씁니다. ‘할아버지가’나 ‘아저씨가’처럼 써야 어린이 말씨입니다. 그저 ‘선생님이’나 ‘엄마가’처럼 써야 어린이 말결입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신명나는 춤사위를 누리면서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구태여 ‘마침종이(졸업장)’를 따지 않아도 넉넉한 터전으로 가꾸기를 바라요. ‘종이 쥔 놈’이 아니라 ‘일하는 이웃’으로 지낼 노릇입니다. ‘돈 쥔 놈’이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우리’로 어울릴 노릇입니다.


ㅍㄹㄴ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을 만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마음, 어린이 세계는 어린이 스스로 지키고 키워 가는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6쪽/머리말 : 이오덕)


저 못생겼죠? 다음에 태어날 때는 예쁘게 태어나 예쁜 얼굴 여러분께 보여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 소개-서울 영본 3년 조영진 1996.6.4./16쪽)


“엄마, 우리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 너무 무서워.” “어어! 그럼 잘 됐다.” 그런 엄마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서울 상월 3년 이상윤 1996.2.28./23쪽)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느낌이 이상했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헌 공책이 있는데 왜 새 공책을 쓰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일기-부산 연지 3년 최승아 1990.10.10./29쪽)


선생님은 한참 화를 내시고 돈(이웃돕기 성금)을 내일 가져오라고 하시고는 넘어가셨다. 나는 그 때 가슴이 두근두근 콩콩 뛰었다. (거짓말-서울 영훈 3년 오상윤 1997.11.26./41쪽)


“28등이요.” 엄마께서는 반장이 돼 가지고 그게 무슨 꼴이냐면서 호통을 치셨지요. 그러면서 또 물으셨어요. “그럼 윤아는?” “4등이요.” “으이고, 그래도 윤아는 4등이라도 해서 다행이지.” (엄마,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마세요-경기 광명 연서 4년 이민경 1994.6.20./209쪽)


+

- 영업 : 강우균 김영철 이경님 최종규

- 상, 인표어린이도서관(재단법인 에스콰이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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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분 좋은 날》(한국글쓰기연구회, 보리, 1999)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을 만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 어른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 어른이 쓴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이 드뭅니다

《아주 기분 좋은 날》(한국글쓰기연구회, 보리, 1999) 6쪽


물론 이것은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 다만 이는 어른이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6쪽


나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 나는 참 기뻤습니다

→ 나는 참 즐겁습니다

15쪽


느낌이 이상했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 잘 모르겠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29쪽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 샘님은 나를 보고

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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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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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맑은책시렁 349


《마지막 레벨 업》

 윤영주

 창비

 2021.3.19.



  열다섯 살을 살아가는 우리집 작은아이가 ‘에스에프 소설’을 읽고 싶다고 말씀을 합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를 다시 읽으면서 작은아이 스스로 ‘온누리(우주)’가 참말로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기고 돌아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쓰는 길이 낫지 않겠느냐고 여쭙니다. 오늘날 숱한 ‘에스에프’라는 이름이 붙은 글이나 책을 보면 ‘과학기술’이라고 하는 틀에 스스로 갇히거든요. ‘과학기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줄거리에 얼거리로 열고서 맺는 책만 수두룩합니다. 어떤 ‘에스에프’도 흙살림과 숲살림과 바다살림을 못 짚고 안 짚습니다. 그러니까, 풀 한 포기에 깃든 온누리와 빛(과학)을 읽어내는 글꾼을 찾아보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씨앗 한 톨에 감도는 온누리와 길(기술)을 알아차리는 글꾼도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마지막 레벨 업》은 어떤 글이려나 싶어서 읽었습니다만, ‘인터넷게임을 한다는 학교사회 서울아이’를 짚는 줄거리에 얼거리이기는 하되, 정작 어떻게 밥을 먹고, 어떻게 이 별에서 삶을 누리고, 어떻게 해바람비가 흐르는지는 터럭만큼도 못 들여다보거나 안 쳐다봅니다.


  오히려 오늘날이야말로 ‘인터넷게임을 아예 안 하면’서 ‘가상세계를 아예 안 들여다보’는 작은사람과 시골아이 눈썰미로 바라볼 때라야, 제대로 길풀이를 할 만하지 않을까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가까이 다가서는 시늉 같지만,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 않습니다. ‘게임을 다룬다’고 해서 아이들 삶을 건드린다고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 ‘게임이라는 굴레’를 짐처럼 안기면서 놀이와 노래와 들숲메바다를 모두 빼앗고 망가뜨리는 잘못과 말썽을 일으키는 ‘어른 아닌 꼰대’는 어디 있을까요? 무엇을 줄거리로 다루고 담을 때에 실마리를 풀까요?


  ‘도와주는 사람’인 ‘동무’만 있다고 해서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돕다’가 무엇인지 얼마나 느끼는지 알쏭합니다. ‘돌보다’하고 나란한 낱말인 ‘돕다’이면서, 돌보고 돕는 동글한 사이를 가리키는 낱말인 ‘동무’입니다. 부디 글꾼인 어른부터 스스로 ‘에스에프’라는 허울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빕니다. 어느 갈래(장르)를 글감으로 삼아야 빛날 만하거나 팔릴 만하거나 읽힐 만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말결을 처음부터 하나씩 제대로 짚으면서 가다듬을 노릇이라고도 느낍니다.


ㅍㄹㄴ


《마지막 레벨 업》(윤영주, 창비, 2021)


새파란 하늘 아래, 거대한 붉은 암벽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 새파란 하늘에, 크고 붉은 바위가 끝도 없이 늘어선다

→ 하늘은 새파랗다. 크고 붉은 벼랑이 끝도 없다

7


장엄한 풍경에 기분이 좋아졌다

→ 드넓은 모습이 어쩐지 즐겁다

→ 엄청난 모습이 그저 시원하다

7


씩 미소 지었다

→ 씩 웃는다

8


유유히 날아다니며 강렬한 햇빛과

→ 느긋이 날아다니며 따가운 햇살과

8


선우를 향해 바위를 집어 던지기 시직했다

→ 선우한테 바위를 집어던진다

10


누군가 도움을 준 것이다

→ 누가 도와주었다

→ 누가 도왔다

11


그 아이의 실력은 대단했다

→ 그 아이는 대단했다

→ 그 아이 솜씨는 대단했다

11


범호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피었다

→ 범호는 사납게 웃는다

→ 범호는 능글맞게 웃는다

20


왜 길드에 안 들어가?

→ 왜 두레에 안 들어가?

→ 왜 모둠에 안 들어가?

34


두근두근 뛰는 게 기분 좋게 느껴졌다

→ 두근두근 뛰며 신이 났다

→ 두근두근 뛰면서 기뻤다

→ 두근두근하면서 기운이 났다

45


범호의 존재보다, 원지가 없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 범호보다, 원지가 없어서 더 괴로웠다

→ 범호란 놈보다, 원지가 없어 더 아팠다

52


그게 시작이었다. 아빠가 종종 원지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게 된 게

→ 그때부터다. 아빠는 가끔 원지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운다

→ 아빠는 그때부터 곧잘 원지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운다

92


아이들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법이니까

→ 아이는 저희 쉼터가 있어야 하니까

→ 아이는 제 보금자리가 있어야 하니까

104


다음 퀘스트로 바로 가면 점수가 두 배인데

→ 다음으로 바로가면 두 곱을 받는데

→ 다음길로 바로가면 두 곱을 얻는데

111


두 사람의 물밑 작업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 두 사람은 물밑일을 착착 했다

→ 두 사람은 물밑에서 착착 해나간다

168


햇볕이 따가웠다

→ 햇볕이 뜨거웠다

→ 햇살이 따가웠다

189


선우 스스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 선우는 스스로 달리기를 한다

→ 선우는 달리기를 하며 스스로 바꾼다

19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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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 자기 돌봄 5
변택주 지음, 이승열 그림 / 원더박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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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5.20.

푸른책시렁 186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

 변택주 글

 이승열 그림

 원더박스

 2025.4.3.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를 읽었습니다. 얼핏 여러 우리말을 보드라이 짚으려고 했구나 싶지만, 자꾸만 샛길로 빠지더군요. 왜 이렇게 샛길로 빠지는지 아리송하고 안타깝습니다. 다만, 하나는 아주 또렷합니다. 밑동과 뿌리를 짚지 않을 적에는 그만 겉모습에 사로잡힙니다. 속말과 속빛을 헤아리고 바라보려고 할 때라야 숨결과 숨빛을 품습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로 맞아들여서 배우고 익히려면 우리말을 살필 노릇입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로 안 맞아들인다면, 엉뚱하게 여기저기 빠지거나 새면서 헤맵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를 쓰신 분이 부디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장만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언제나 수수하게 쓰는 가장 쉬운 낱말이 어떻게 태어나고 만나고 얽혀서 뜻과 결을 지피는지 짚을 때라야, 비로소 열세 살하고든 서른세 살하고든 예순 살하고든 마음을 가꾸는 말빛을 나눌 수 있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에서 잘못 짚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엉뚱하게 나아간 대목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데, 다 짚거나 다룰 수는 없기에, 몇 가지만 짚어 놓습니다.


+


나는 동무가 동그라미나 동아리처럼 동그랗게 어우러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받아들여. (40쪽)

→ 동그랗게 맺기에 ‘동그라미’에 ‘동아리’인데, 작을 적에 ‘동글다’이고, 클 적에 ‘둥글다’이다. ‘둥그러미’에 ‘둥지·둥우리’가 한동아리이다. 가볍게 돌고 또 돌아간다면, 넓게 펴듯 ‘둘러보’고 ‘두른’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동무’를 이루고, 너른 사이로 ‘둘레’를 아우르니, 너랑 내가 먼저 ‘둘’이서 ‘두레’를 편다. 둘러볼 줄 안다면, 둘러싼다. 두르면서 때때로 에두르는 먼길을 나서기도 한다. 빙그르르 두르거나 돌면서 ‘모’ 하나 없이 일어서고 피어나고 깨어난다. 뾰족하니 ‘모’이지만, 그래서 ‘모시’가 ‘못’처럼 솟는데, 벼포기를 하나하나 ‘모(볏모)’로 심고, 이러한 모을 하나로 두려고 하니 ‘모으다(모이다)’라 한다. 모으면 가까이 있다. 모으려는 마음을 따뜻하게 여미는 사이로 지내기에 ‘동무’이기도 하다.

서로 동글동글 어울리면서 ‘도르리’와 ‘도리기’를 한다면, 함께 둥글동글 모으거나 모여서 일하는 ‘두레’를 하면서 살림살이를 차곡차곡 ‘둔(두다)’다. 도르리도 두레도 ‘돕는’ 길이다. 서로 도우면서 돌아볼 수 있으니, 돌보는 길과 보살피는 손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두런두런 수다를 한다. 돕는 손길과 돌보는 눈길은 천천히 돋는다. 잎이 돋듯 도드라진다. 즐겁게 주고받는 말이 돋보이듯 귀에 쏙쏙 들어온다. 모으고 무리지어 즐겁고 넉넉히 흐르는 결이기에 ‘물’이다. 동무란 그야말로 한마음에 한몸으로 함께 나아가려는 또래라고 여길 만하다.



‘반기다’의 말뿌리인 ‘반-’에는 밝다는 뜻이 담겨 있어. (64쪽)

→ ‘반기다’는 ‘반갑다·반하다·반색’하고 나란하다. ‘반’은 ‘반반하다·반듯하다·바르다’로 잇고, 이 말씨는 ‘반짝·번쩍’을 지나서 ‘밝다·밤’하고 맞물린다. ‘바’는 ‘바다’처럼 ‘바닥’을 이루어 뭇숨결이 깨어나고 태어나고 자라나는 ‘바탕’이면서 ‘밭’을 나타낼 뿐 아니라, 뭇숨결이 살아가고 살림하고 사랑하는 ‘밭은’ 빛인 ‘바람’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바·밧줄’로 굵고 단단하게 잇는다. ‘받치’는 구실이요, 우리 몸에서 ‘발’과 같다고 할 만하다. 바다와 바람이 늘 새롭게 흐르면서 말밝은 숨빛을 나누듯, 우리는 ‘발’로 땅을 ‘밟’으면서 새길을 나아가기에 새롭게 알아보고 찾아보면서 배우고 익힐 수 있다.

하늘을 이루는 바람을 ‘바라보’는 사이에 ‘바라다’라고 하는 마음을 알아챈다. 바랄 줄 알기에, 바라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물어본다. 밤이란, 별이 밝게 돋아서 반짝반짝하는 때이면서, 바로 별을 우리 숨바탕으로 받아들여서 꿈을 그리는 때이다. 바다는 뭇숨결을 낳기도 하지만 받기도 한다. 바람은 뭇숨결을 살리는 들숨날숨이기도 하면서 모두 받는다. 받아들일 줄 알기에 밝다. 바탕과 밭을 가꾸면서 키울 줄 알기에 밝다.

밝은 길은 ‘붉’은 길하고 잇는다. 별은 그저 그대로 밝은데, 밤에 더 둘레를 잘 보고 싶어서 ‘불’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뜻하거나 포근하게 누리려고 ‘불·붉다’를 일으킨다면, 이 살림살이를 우리가 손수 가꾼 뒤에 이야기를 남기려고 ‘붓’을 쥔다. 붕긋하게 부푸는 결로 여미는 붓이다. 두툼하니 붕긋이라면, 도톰하니 봉긋이다. 봉긋봉긋 봉오리를 맺고, 커다란 모습으로 봉우리가 선다. 말없이 봉긋붕긋 부푸는 꽃과 멧갓마냥, 곁에서 말없이 밝게 빛나는 별처럼 어울리는 마음을 나누는 사이인 ‘벙어리’이다.



‘잘’은 10000이라기보다는 ‘온갖’이라는 뜻이어서, ‘잘몬’은 ‘온갖 것’을 일컫지. (52쪽)

→ 우리말 ‘온’은 ‘100’이고, 온을 곱으로 살피기에 ‘잘’이면서 ‘10000’이다. ‘온·100’은 한자로 ‘백(百)’일 텐데, ‘열’을 곱으로 살핀 값이자 길이면서, 드디어 이곳으로 ‘온(오다)’ 빛이고, 더도 덜도 없이 ‘오롯’이 이룬 결이다. 그래서 ‘온 = 다·모두·몽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가득’하게 있는 결인 ‘차다(참)’를 이룬 때가 ‘온’이다. ‘온갖 = 온 + 것(갖)’이다. ‘갖 = 것·가지’이고 ‘가지가지 = 것것’이다. 그래서 “온갖 = 온 것 + 모든 것(가지·갈래)”이다. 이러한 ‘온’이 깊고 넓게 잠들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참빛으로 퍼지면서 ‘움·움트다’로 나아가고, 움이 트는 천천한 걸음이자 몸짓인 ‘움직이다’이다.

‘오·온·올’은 한묶음이다. 온을 이루어 참하고 가득하고 모두이기에 ‘옳다·올바르다·올곧다·올차다’이면서 하나씩 ‘올(오라기)’을 이루고, ‘알’이라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길목이기에 하나하나 다르게 참하고 가득하면서 모두인 숨결이다. ‘오·온·올’은 저절로 ‘우·움·울’로 이으면서 ‘우리·움·한울(한울타리)’로 뻗는다. 너랑 나를 어우르는 ‘우리’이기에 서로 참하면서 모든 숨빛인 사람으로 바라본다. 하늘(한울)이란 하나인 울타리이자, 서로 하나인 숨빛인 우리를 가리킨다.

셈으로 ‘10000’을 가리키는 ‘잘’은 한자로 ‘만(萬)’이다. ‘온’을 ‘온’으로 곱할 적에 태어나는 ‘잘’이니, 숱하게 많다는 결이다. ‘온’일 적에는 다 다른 알이 참을 이루는 결이라면, 온을 온으로 곱한 ‘잘’은 다 다른 알(씨알·씨앗)이 깨어나서 풀숲으로 우거져서 풀꽃나무를 비롯한 뭇숨결이 크게 어울리는 밑뜻을 나타낸다.

온은 오롯하면서 온통 온마음과 온몸으로 온숨을 이루는 결로 가면서 ‘옳다’나 ‘한울’로 잇는다면, ‘잘’은 숱하게 우거진 풀숲마냥 ‘잘하다’와 ‘잘못’으로 잇는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가없이, 그지없이, 스스로 제 숨빛을 드러낸다고 하는 ‘잘·잘하다’인데, 자칫 이러한 숨빛을 ‘자랑’하려고 들면 거꾸로 ‘자잘’하거나 ‘자그맣게(작게)’ 구른다. 숱하게 있는 빛이 너울너울 춤을 이룰 적에는 ‘잘하다’이지만, 숱하게 있는 빛을 앞세우거나 자랑하거나 뽐내려고 하니 ‘잘다·자잘하다·작다’로 여긴다. 자그맣게 길을 틀어도 ‘잔’으로 간다. ‘잔소리·잔챙이·잔말’이다. 풀숲을 이룬 ‘잘·잘하다’하고 등지거나 거꾸로 가려고 하니 ‘잘못(잘 + 못(모르다)’이다. 스스로 얼마나 깊고 너르면서 즐거운 숨빛인지 몰라보려고 하니 ‘잘못’을 일삼고 만다.

잘하는 길이란, 자랑이 아닌 물줄기처럼 흐르면서 ‘즐겁(즈믄·1000)’게 노래하는 길이다. 열·온을 거친 셈은 즈믄(1000)을 지나서 잘(10000)에 이른다. 너울너울 온누리 숨결이 하나로 새롭게 어울려서 피어나는 셈이다. 이러한 숨빛을 물줄기처럼 품어서 살찌운다고 여기니 ‘잣(잣나무)’이다. ‘잣 = 숲젖’이다. ‘잣다’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메마른 땅에 샘물을 길어올리는 몸짓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맨바닥에 새롭게 살림을 이루거나 일구는 몸짓을 나타낸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것이잖아. 그러니 설렐 때는 먼저 설레는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이며 어디서 온 것인지 짚어 봐야 해. 이 설렘이 그저 새롭고 고와서 끌리는 것인지 아끼려는 마음인지 요모조모 따져야 하지. (74쪽)

→ ‘사랑’과 ‘아끼다’는 다르다. ‘아끼다’는 ‘에끼다’ 쪽으로 바라볼 낱말이고, ‘안쓰럽다·안타깝다’하고 맞물려서 살피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살리는(살림하는)’ 길을, 나랑 너 ‘사이’에서 ‘새롭’게 일구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새’를 ‘새삼’스레 알아보면서 곁에 둘 줄 아는 슬기롭고 철든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누구나 스스로 품는 빛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랑’은 ‘좋다’하고 아주 딴판일 뿐 아니라, ‘아끼다’하고 아주 다르다. 좋아하거나 아낄 적에는 ‘사랑’하고 그야말로 멀다. 좁히면서 조이다가 졸졸 좇으면서 조무래기로 뒹구느라 조바심을 내는 결이 ‘좋다’이다. 마음에 들려고 하는 길인 ‘좋다’는 그저 ‘좁’아서 ‘조인’다. 숨막히는 마음이 바로 ‘좋다·좋아하다’이다. ‘알다’로 가지 못 하는 채 자꾸자꾸 안쓰럽고 안타깝게 나아가려고 하니 ‘아끼’는 결로 맴돈다. 아끼기에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끼다 보니 ‘앗긴’다. 오히려 ‘앗아’간다. 마음을 어떻게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씨앗(씨알)’로 가거나 ‘앗다·앗기다·빼앗다·빼앗기다’로 간다. 자꾸 아끼려 하기에 그만 서로 앗기고 앗는다. 아끼려는 손길을 내려놓고서 사랑으로 나아갈 적에 비로소 ‘씨앗·씨알’을 이룬다.

태어난 몸으로만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몸빛이나 살빛이나 뼈로 가리키지 않는다. 삶과 살림과 사이와 새와 생각을 스스로 품어서 씨앗으로 심고 가꾸어서 싹을 틔우고 숲을 푸르게 이루는 길을 걸어갈 적에 바야흐로 ‘사람’이면서 ‘사랑’을 깨닫는다. 알을 깨서 달려가야 깨닫듯, 스스로 이 삶을 살림으로 일구어 내면서 서로서로 나눌 줄 아는 생각을 씨앗으로 일구면서 펼치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집을 짓는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 ‘다듬는다’라고 하던 건축가 김중업은 (98쪽)

→ ‘지’어서 이루고 누리는 곳이라서 ‘집’이다. ‘집’은 ‘짓다’로 나타낸다. ‘빚다’는 물(빗물)과 가루를 고르게 섞어서 손으로 비비면서 이룰 적에 쓰는 낱말이다. ‘다듬다’는 ‘가다듬다·쓰다듬다·비다듬다·보듬다’로 엿보듯, 이미 이룬 살림을 다시 만지면서 곱게 여미는 자리에 쓴다.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를 살펴야 우리말을 제대로 쓰는 길을 읽고 펴지 않을까? 왜 뜬금없이 아무 낱말이나 아무 곳에 끼워맞추려고 할까? 오직 흙과 물로 반죽을 해서 올리는 집을 세우려 한다면, 그때에는 ‘빚다’를 써도 되겠지.



‘없다’는 어디서 왔을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있다’에서 왔어. (106쪽)

→ ‘없다’라는 낱말은 ‘어’를 바탕으로 ‘ㅄ’을 헤아려야 알 수 있다. ‘있다’라는 낱말은 ‘이’를 바탕으로 ‘ㅆ’를 살펴야 알 수 있다.

우리말 ‘있다’는 ‘이(니)·이다·잇다·일다·익다·임(님)·입·입다’ 같은 낱말하고 나란히 살핀다. 이곳이기에 ‘있’이고, 일어나거나 일으키기에 ‘있’고, 여기 있는 나(삶)라서 ‘이’요, 두 곳을 맞물리기에 ‘잇’이며, 있는 숨이기에 ‘임(님)’이고, 이곳에 있어서 몸을 ‘입’는다.

‘없다 = 어 + ㅄ’이라는 얼개요, ‘어’는 ‘얼·어리다·얼다·엎다·얼핏·엄(움)·어디·어느(언)’ 같은 낱말하고 나란히 살핀다. 넋도 얼도 맨눈으로는 못 본다다고 여긴다. 눈으로는 못 보기에 얼핏 없는 듯하지만, 참으로는 있다. 어느 곳에 얼핏 어리듯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몸(모습)은 안 보이게 마련이다. 얼면(얼어붙으면) 예전 몸이나 모습이나 빛이 사라진다. 엎으니 이곳에서 사라지거나 떠난다. 우듬지마냥 높이(엄지) 있으면 우리가 못 본다고 여기는 곳이다. 움이 트기 앞서까지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서 ‘없’다고 본다. 콕 짚을 수 없기에 ‘어디·어느’이다.

‘어렴풋’하듯 ‘어스름’이 깔린다. 이제 ‘어둡’다. 어둠이라는 ‘밤’은 해가 물러나고서 별이 돋는 때인데, 하늘에 별빛이 있지만 ‘없다(어둠)’로 여긴다. 까맣게 덮는 빛살처럼 ‘어둡다’는 ‘모르다(앎이라는 빛이 없다)’를 나타낸다. 앎이라는 빛이 없는 ‘어둡다·모르다’이기에 ‘어리다’라고도 한다. 언뜻 얼핏 보일 듯하지만 없기에 ‘어리다 ㄱ’이라면, 아직 알지 않는 빛이라서 ‘어리다 ㄴ’이다. 우리 숨결을 이루는 빛살인 ‘얼’이란 어렴풋하게 느끼면서도 막상 보아내지 못하는 결이다.



‘한’에는 ‘환하다’와 ‘크다’가 담겼어 (120쪽)

→ 하늘을 날려면 홀가분할 노릇이다. 홀로 가볍게 몸마음을 다스리기에 하늘을 난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낳는 빛이 있기에 ‘날개(나래)’를 달 수 있으니, 이러한 날개를 크고 시원하게 열어젖힐 적에 ‘활개’라 한다. 활짝 펴는 날개인 ‘활개’이다. ‘환하다’는 ‘활개’를 치듯 ‘활짝’ 열어젖히거나 펼쳐놓으면서 시원하게 틔우고 품으려는 결이다.

하늘이란 ‘한울’이요, “하나인 울(우리·울타리)”이다. ‘울’은 ‘우리’를 줄인 낱말이면서, “너랑 나를 아우르는 빛”인 ‘울·우리 ㄱ’에다가, “모두 크게 덩이를 이루어 한 곳에 놓는 빛”인 ‘울·우리 ㄴ’으로 있다. 울타리는 덩이를 이루어 한 곳에 놓는 빛을 감싸는 결이라서, 비도 바람도 작은짐승도 벌레도 새도 가볍게(홀가분하게) 드나든다. 너랑 나를 아우르는 ‘우리’도 둘 사이가 넉넉하기에 서로 어떤 마음과 말이든 신나게(실컷) 드나든다.

“하나인 우리”인 ‘하늘’이니 그저 ‘하나(1·일·一)’이면서 “하나인 나”이기도 하다. 셈으로 가리키는 ‘하나’는 “하나·하늘인 나”를 줄인 얼거리이다. 곧, 하늘은 “또다른 나”이면서 “또다른 너”이다. 우리가 모두 서로 다르면서 같은 하늘이면서 ‘나’라는 뜻을 품은 낱말인 ‘하늘·한울’이다. 가두려는(가두리) 굴레가 아니라, 틔우고 열면서 드나드는 바람빛과 파란하늘을 이루니 ‘크댜’고 할 테고, 덩치나 몸만 클 뿐 아니라, 마음과 숨도 나란히 ‘큰다(자란다)’.

예부터 ‘한길 = 큰길’이라 했고, ‘한껏 = 큰껏(크게)’을 가리킨다. 키우는(크게 하는) 결이고, ‘키우’는 길이란 ‘키(키잡이·뱃키)’를 잡으면서 ‘길’을 찾는 숨결이 자란다(큰다)는 뜻이자, 키워서 키잡이로 설 적에 우리 길이(몸길이)가 반듯하게 서는 ‘키’를 얻는다.

셈을 보면 ‘하나·열·온·즈믄·골·잘·울’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셈에서 처음이 ‘한’이고 끝이 ‘울’이라서, 마침내 우리말에서 셈을 하나하나 짚을 적에는 ‘나(하나)’가 ‘나(한울)’로 돌아가는 실타래와 수수께끼를 넌지시 들려주고 품는다.


ㅍㄹㄴ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변택주, 원더박스, 2025)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 때와 배움이 달라져요

→ 푸름이가 되면 어린이 때와 다르게 배워요

→ 푸름이는 어린이하고 다르게 배워요

4


내가 쓰는 말이 내 삶을 빚어 나가눈구나 하고 알게 되어 참된 말을 가려 쓰려고 하게 될 거예요

→ 내가 쓰는 말대로 삶을 빚어 나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말을 참되게 가릴 수 있어요

5


높임말을 쓰면 거리감이 느껴지고 낮춤말은 가깝지만 거칠게 느껴져요

→ 높임말을 쓰면 멀다고 느끼고, 낮춤말은 가깝지만 거칠다고 느껴요

→ 높임말은 멀다고 느끼고, 낮춤말은 가깝지만 거칠다고 느껴요

6


겹겹이 정이 든 우리 삶결은

→ 겹겹이 빛이 든 우리 삶결은

→ 겹겹이 살가운 우리 삶결은

→ 겹겹이 따뜻한 우리 삶결은

14


축구장 크기 다섯 개만 한 솔숲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힘을 냈대

→ 공놀이터 다섯 곳만 한 솔숲을 가꾼 셈이었대

→ 너른터 다섯 곳만 한 솔숲을 일군 셈이래

16


곰곰이 오래 궁리한 끝에 네가 만나게 될 말이 궁금하다

→ 곰곰이 오래 헤아린 끝에 네가 만날 말이 궁금하다

→ 곰곰이 오래 짚은 끝에 네가 만날 말이 궁금하다

→ 곰곰이 오래 찾아본 끝에 네가 만날 말이 궁금하다

37


사전에 풀어져 있어

→ 낱말책에 풀었어

→ 낱말책에 풀이해

→ 말책에 풀이를 해

42


얇은 냄비보다는 두꺼운 무쇠솥이 되었으면 해

→ 얇은 솥보다는 두꺼운 무쇠솥이 되기를 바라

→ 얇은 솥보다는 두꺼운 무쇠솥이기를 바라

9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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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와 만도 씨 창비아동문고 290
안미란 지음, 정인하 그림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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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5.16.



《뭉치와 만도 씨》

 안미란 글

 정인하 그림

 창비

 2017.12.8.



  서울비둘기하고 멧비둘기는 몸도 깃도 무늬도 다릅니다. 둘은 다른 터전에서 다르게 살기에 울음소리도 다릅니다. 날갯짓마저 달라요. 서울에서는 부딪힐 만한 곳이 많고 시끄럽고 어지럽고 빽빽하기에 비둘기도 크고작은 새도 제대로 날지 못 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너른하늘을 마음껏 누비기에 날갯짓부터 확 다르면서 울음소리가 사뭇 다르지요.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들어앉아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시골이라면, 나무 열 그루를 줄지어 심어도 제대로 못 자라고 가지치기에 시달리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시골도 나무를 괴롭혀요. 멀쩡한 줄기에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내는 ‘서울스런 사람’이 모질게 늘었습니다.


  《뭉치와 만도 씨》는 ‘집개’하고 얽힌 줄거리를 부산을 터전으로 들려주는 듯하지만, 여러 글감이 뒤엉켰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곁짐승(반려동물)과 함께살기’라는 글감이라기보다 ‘오직 서울사람 눈금으로 재는 틀’이라는 글감에서 맴도는구나 싶어요.


  서울비둘기가 “그야말로 뻔뻔(24쪽)”할 수 있을까요? 벌레가 살아갈 틈이며 나무 한 그루가 설 짬마저 모두 잡아먹는 서울사람이야말로 뻔뻔하지 않나요? ‘새대가리’란 말은 누가 했고, 누가 그냥그냥 받아쓰기를 할까요? 스스로 사람다움을 잊고 잃은 사람이기에 ‘새대가리·소대가리·돼지대가리’ 같은 말을 함부로 씁니다.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94쪽)”하다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아리송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35쪽)”이란, 집에 가두어 똥을 치우고 먹이만 바치는 굴레하고 멉니다. ‘가두리’는 돌봄길이 아니에요. 잡아먹으려는 죽임길일 뿐입니다.


  새를 우리에 가두는 몸짓은 곁짐승을 돌보는 길하고 맞닿을 수 없지 않을까요? 하늘빛을 머금고 바람빛을 노래로 베푸는 새가 우리 곁에 깃들 수 있는 마당과 뜰과 밭과 숲정이를 건사하는 길이 비로소 ‘곁’에 두는 이웃일 테지요.


  《뭉치와 만도 씨》를 써낸 뜻은 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딸바보라는 얼거리를 일부러 억지스레 맞춰야 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뱉는 아버지로 구태여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쪽까지 종잡기 어렵게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어영부영 맺는다면, 이런 줄거리에서 어떤 마음을 읽거나 느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동물권’을 외치기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굴레에 갇히면서 뭇숨결도 나란히 굴레에 가두려 하는지 짚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아이들이 마냥 “해 줘! 사 줘!” 하고 외치는 모습을 그냥그냥 담는다고 해서 ‘어린이 마음’에 다가설 수 있지 않기도 합니다.


ㅍㄹㄴ


비둘기는 도망가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앉아 기어이 콩 한 알을 더 쪼아먹고 갑니다. 그야말로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24쪽)


“오호, 이런 좋은 방법이 있군. 역시 새들은 머리가 나빠. 괜히 새대가리 같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거든.” (25쪽)


“꼬마 숙녀님들, 여기 새 모이 대령이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이 아버지가 다 구해 줄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영이가 말했습니다. “나도 앵무새 사 줘요!” (28쪽)


아영이랑 함께 똥도 치우고 모이도 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을 키울 수 있겠군.’ (35쪽)


“우리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꼭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한데요.” (94쪽)


“아니, 무슨 멧돼지가 산에 있지 않고 이제는 바다까지 넘나들어?” “쟤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멧돼지 맞기는 맞아요?” (108쪽)


아내는 모릅니다. 아침에 만들어 놓은 나물 반찬을 만도 씨가 점심에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를. 고춧가루와 설탕, 햄을 듬뿍 섞어서 만도 씨표 볶음밥이나 만도 씨표 섞어찌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요. (134쪽)


응원석에 있던 만도 씨는 화가 나서 콧김을 쉭쉭 내뿜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놈이 대체! 왜 남의 귀한 딸 주위를 알짱거려? 당장 운동장 밖으로 끌어내야지.” (149쪽)


+


《뭉치와 만도 씨》(안미란, 창비, 2017)


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 개라는 자리에서 보면

→ 개로서 보면

→ 개가 보면

7쪽


만도 씨의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 만도 씨 외동딸입니다

8쪽


만도 씨의 약을 살살 올려놓습니다

→ 만도 씨를 살살 약올립니다

14쪽


물기가 남김없이 흩뿌려집니다

→ 물을 남김없이 흩뿌립니다

18쪽


새가 집에서 키워지면 스트레스에 약한 건 당연해

→ 새를 집에 가두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힘들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골을 부릴 테지

36쪽


덥석 사 주는 건 결사반대

→ 덥석 사주지 마

→ 덥석 사주기 안 돼

38쪽


이 거친 삶의 전선에 나서는 거니까

→ 이 거친 삶에 나서니까

→ 이 거친 싸움터에 나서니까

51쪽


내 집에 들어와도 괜찮은 짐승이 있고

→ 이 집에 들어와도 되는 짐승이 있고

→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짐승이 있고

52쪽


시장 골목을 시찰하듯이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59쪽


마당이 널찍한 촌집을

→ 마당 널찍한 시골집을

102쪽


희망퇴직 한 거 맞죠?

→ 그만두셨죠?

→ 옷벗으셨죠?

→ 물러나셨죠?

105쪽


사실은 만도 씨의 절대미각에 질투가 났습니다

→ 그런데 만도 씨 입맛이 부러웠습니다

→ 막상 만도 씨 혀끝을 시샘했습니다

123쪽


내가 마신 게 몇 포더라

→ 내가 몇 자루 마셨더라

→ 내가 몇이나 마셨더라

133쪽


나의 아이들이

→ 우리 아이들이

→ 우리집 아이가

16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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