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오셨다! - 3학년 1반 이야기 다릿돌읽기
고토 류지 지음, 김정화 옮김, 후쿠다 이와오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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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3.21.

맑은책시렁 343


《선생님이 오셨다!》

 고토 류지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김정화 옮김

 크레용하우스

 2010.2.18.



  우리말 ‘스승’은 ‘스스로’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길을 열면서 몸소 살림빛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한자말 ‘선생(先生)’은 ‘먼저·앞에서’ 나거나 나아가는 길을 나타냅니다. 먼저 태어나서 삶을 누리기에 조금 일찍 배우거나 익히게 마련이고, 남보다 앞장서서 걸으면서 먼저 배우고 살피고 익힌다는 결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길잡이(교사·선생)’는 어린날과 푸른날을 거쳐서 ‘교사 자격증’을 딴 다음에 서는 일자리입니다. 어린날이나 푸른날을 보내는 아이보다는 먼저 삶을 돌아보게 마련이지만, 종이(자격증)를 따기까지는 배움터 언저리에서 맴돌아요. 다시 말하자면, 길잡이도 아이도 ‘처음부터 다시’ 보고 듣고 배울 자리라는 뜻입니다.


  《선생님이 오셨다!》는 어린배움터에서 석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이 ‘제발 무서운 어른은 싫어! 부디 착한 어른하고 한 해를 지내기를 바라!’ 하고 빌면서 첫머리를 엽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배움터 길잡이는 확 바뀌었습니다. 아니, 지난날 어린이와 푸름이로 자라던 사람들이 바야흐로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고 길잡이로 일하는 동안, 스스로 바꾸어 냈습니다.


  마구 때린다든지, 돈을 함부로 걷는다든지, 막말을 일삼던 얄궂은 지난날 꼰대처럼 일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은 아이들이 자라서 새롭게 길잡이에 선 터라, 이제 어린배움터와 푸른배움터는 꽤 달라요. 그렇다면, 어린배움터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가요? 어린배움터 아이들도 지난날과 다릅니다. 마음껏 뛰놀지 못 하는 나날이자 마을에서 쳇바퀴로 도는 아이들입니다. 조잘조잘 말로 마음을 나누던 길이 아닌, 손전화에 고개를 처박는 버릇을 일찌감치 들인 아이들입니다. 함께 뛰놀며 땀흘리는 하루가 아닌, 손가락을 놀리는 누리놀이에 익숙한 아이들입니다.


  《선생님이 오셨다!》는 이렇게 갈마드는 한복판에 새롭게 길잡이로 나선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아이들을 마주하는지 보여줍니다. 젊은 길잡이도 아직 길잡이라는 길이 낯설고 어리숙합니다. 어린이도 무서운 어른을 보면 오그라듭니다. 서로 배우면서 손을 맞잡을 곳인 배움터인데, 이도 저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럴 적에는 길잡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일입니다. 아이들은 곧 어른이라는 길로 접어드는 줄 바라보면서 스스로 가다듬을 눈망울과 매무새와 마음을 돌아볼 일입니다.


  같이 나아가려고 마음을 모을 적에 같이 바꿉니다. 누가 더 애써야 바꾸지 않아요. 이런 대목을 헤아려 보면, ‘새내기 길잡이’도 ‘어린이’와 마찬가지이니, 더 작게 더 낮게 다가서면서 비로소 이야기꽃과 배움꽃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나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지기란, 밑사람을 부리거나 이모저모 시키는 자리가 아닙니다. 더 스스로 낮추면서 더 아이곁에 서려고 할 적에 나라지기입니다. 꼰대스러운 사람을 나무라면서 아이곁에서 살림길을 펴기에 비로소 어른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고, 길잡이로 삼을 만합니다.


  참, 이 책에 나오는 두바퀴는 ‘멧바퀴(산악자전거)’가 아닌 ‘그냥바퀴(생활자전거)’이다. 글쓴이나 옮긴이가 두바퀴를 모르네.


ㅍㄹㄴ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열심히 기도를 했다. 1학년 때처럼 무서운 선생님은 싫다. 2학년 때처럼 공부 잘하는 애들만 예뻐하는 선생님도 싫다. ‘우리 편인 선생님이 오게 해 주세요!’ (10쪽)


“괜찮아?” 옆줄에 서 있던 마호가 나를 덥석 안아 주었다. 오렌지색 손목 보호대를 두른 마호의 팔은 가늘었지만 팔힘은 엄청 셌다. (14쪽)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 자전거가 그만 비탈길에서 체인이 끊어져 버렸어요.” 그 사람은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3학년 1반 담임인 가자모리 준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절대로, 아니 가능하면 지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20쪽)


표범의 얼굴에서 사람으로 돌아온 선생님은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나도 소리를 지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소리를 지르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소리 지르지 않고 재미 철철 넘치게 잘 지내봐요. 부탁합니다.” (24쪽)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휘익 회오리바람이 불어왔다. 선생님의 제비 비행기는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날아올랐다.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철망을 넘는가 싶더니 멀리 사라져 버렸다. ‘와! 종이비행기가 저렇게 멀리 날 수도 있다니!’ (48쪽)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했어요.” 정말로 선생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하야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두었으니 넌 행운아구나.” (69쪽)


#ジュン先生がやってきた

#福田岩緖 #後藤二


+


《선생님이 오셨다!》(고토 류지/김정화 옮김, 크레용하우스, 2010)


아부가 심한 거 같아

→ 너무 아양 같아

→ 너무 어리광 같아

→ 너무 알랑거려

→ 너무 굽신거려

35쪽


급훈을 예쁘게 써서 칠판 위에 붙였을 때도

→ 다짐글을 예쁘게 써서 글판에 붙일 때도

→ 곁다짐을 예쁘게 써서 글씨판에 붙일 때도

5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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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빈둥 투닉스 왕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2
미라 로베 지음, 수지 바이겔 그림, 조경수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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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2.6.

맑은책시렁 340


《빈둥빈둥 투닉스 왕》

 미라 로베 글

 수지 바이겔 그림

 조경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1.12.5.



  집에 기둥(가장)이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만, 한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기둥입니다. 한 사람만 기둥이지 않습니다. 한집에서 한 사람이 사라지면 여러 기둥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기에 한쪽으로 기울어요. 그러나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다른 여러 기둥이 새롭게 힘을 모아서 집을 꾸리거든요.


  나라에 기둥(대표)이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만, 어느 나라에서든 이 나라를 이루는 모든 사람이 기둥입니다. 그래서 나라지기(대통령)를 비롯해 숱한 벼슬아치(국회의원)가 다 사라지더라도 나라는 안 무너지고 안 기울어요. 나라에는 워낙 ‘기둥(사람)’이 많은 터라, 사람들 스스로 잘 꾸려요.


  나라에서는 오히려 “내가 기둥이요!” 하고 뻐기는 무리가 득시글거리면서 기우뚱합니다. 사람들은 고르게 기둥 노릇을 하는데, 몇몇 우두머리에 벼슬아치가 혼자 뽐내려 하면서 껑충 오르려 하거든요. 오히려 나라나 마을에서는 ‘뽐내는 기둥’이 없을 적에 넉넉하고 아름답고 알찹니다.


  2024년 12월부터 2025년 2월 사이에 우리나라에는 ‘나라기둥(대통령)’이 없습니다. 석 달 동안 나라기둥이 없어도 나라는 멀쩡할 뿐 아니라, 도리어 ‘잘 굴러’갑니다. 나라기둥이 없이 어찌 이웃나라하고 사귀느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여러 나라 우두머리가 만난다고 하더라도, “우두머리가 만날” 뿐입니다. 모든 나라일은 ‘우두머리’나 ‘나라기둥’이 아닌, 작은일꾼이 맡아요.


  《빈둥빈둥 투닉스 왕》은 여태까지 “허울스러운 임금(나라기둥)”이 뽐내면서 빈둥빈둥 “아무 일을 안 하는 나날”이 “오히려 임금으로서는 일하는 모습”으로 굳은 나라를 어떻게 아이들이 바꾸었는지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어린이책이 들려주는 줄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눈이 밝으면 다 알아챕니다. ‘그들(대통령·국회의원·장관·시도지사·군수·군의원·시의원·도의원)’은 아무 일을 안 해요. ‘그들’은 벼슬을 쥐고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느릴 뿐입니다. 모든 일은 우리가 스스로 합니다. ‘그들’은 기둥도 아닌 주제에 거들먹거리면서 떡을 날름날름 집어삼키면서 고물만 지저분하게 흩뿌릴 뿐입니다.


  나라기둥은 누구나 하면 됩니다. 나라기둥도 다른 벼슬자리도 ‘제비뽑기’로 판가름하면 됩니다. 나라기둥이나 벼슬자리는 그야말로 시늉이거든요. 이 땅에는 몸으로 일하고, 온마음으로 살림하고, 참사랑으로 집안을 돌보는 어른이 있을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다운 어른 곁에서 일과 살림을 배우면서 사랑을 새롭게 지피는 눈빛을 밝힐 적에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지난 석 달뿐 아니라 앞으로 석 달도 똑같습니다. 앞으로 세 해나 서른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 선거’ 따위는 이 나라에 없어도 돼요. 어느 누구도 안 뽑으면 됩니다. 벼슬아치(국회의원)도 몽땅 도려내면 되어요. 시골에 ‘군의원·도의원’이 왜 있어야 할까요? 밥그릇잔치인 이들을 모조리 도려내고서 ‘일하는 사람’이 이따금 갈마들어 나라기둥과 벼슬자리를 맡아야 ‘돈 새는 구멍’이 다 사라집니다.


  일하지 않던 ‘그들’이라서, 그들은 일을 안 하면서 돈을 빼먹는 틀(법)만 세웁니다. 이 민낯을 배우는 2024∼25년이라고 느껴요. 눈금(지지율)은 허울입니다. 이쪽 머저리와 저쪽 멍청이와 그쪽 얼간이 모두 도려내고서 우리 손으로 이 땅과 들숲바다와 보금자리를 스스럼없이 도란도란 가꾸는 손짓을 북돋우면서 빛나는 하루입니다.


ㅍㄹㄴ


투닉스 왕은 그밖의 일들은 어찌 되든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333명의 신하들은 가장 중요한 일들이 척척 잘 이루어지도록 애썼다. 식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의자에 쿠션들이 놓여 있고, 가마가 준비되게 했다. (12쪽)


아무도 핌피와 함께 나무에 기어오르거나 연을 날리려고 하지 않았다. 벨벳 양복과 비단 드레스를 더럽힐까 봐 겁이 난 아이들은 숨바꼭질조차 하기 싫어했다. 그리고 핌피가 달리기 경주를 하자고 제안하자 아이들은 곱게 빗질한 머리카락이 헝클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28쪽)


“하지만 아빠한테는 333명이나 되는 신하들이 있는걸요. 대체 어떻게 시중을 받지 않을 수 있단 말이에요!” 가우데오가 웃었다. “그렇다면 그 333명의 신하들을 쫓아내야겠네.” (60쪽)


“뭐라고? 네 생일은 겨울이잖아.”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번엔 여름에 생일을 할래요. 그것도 오늘로요!” 투닉스 왕이 말했다. “깜짝 놀랄 일이구나! 그렇다면 우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네게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 (109쪽)


“전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보물을 파내는 왕은 많겠죠. 하지만 소젖을 짤 줄 아는 왕은 틀림없이 아주아주 드물 거예요.” (114쪽)


모자를 쓴 남자가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요? 화날 일이죠! 궁전에 채워진 자물쇠와 쪽지를 못 봤나요? 우리 국왕이 숲에 살면서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답니다.” 곱슬머리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린 새로운 국왕을 찾아야 합니다.” (120쪽)


#KonicTunix (1979년)

#MiraRobe #SusiWeigel


+


《빈둥빈둥 투닉스 왕》(미라 로베/조경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1)


빈둥빈둥이들로 이루어진 가문이었다

→ 빈둥빈둥이 집안이다

→ 빈둥빈둥이 뼈대이다

9쪽


왕은 날씬하고 기품 있는 몸매를 가졌습니다

→ 임금은 날씬하고 멋진 몸매입니다

27쪽


아버지한테로 돌아가 곧장 첫 번째 비밀을 알려 드려라

→ 아버지한테 돌아가 곧장 첫 수수께끼를 알려주어라

60쪽


우린 새로운 국왕을 찾아야 합니다

→ 우린 새 임금을 찾아야 합니다

12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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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13
이라영 외 지음, 인권연대 기획 / 철수와영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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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1.11.

푸른책시렁 180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

 이라영과 여섯 사람

 철수와영희

 2024.11.13.



  왜 미워하는지는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들거든요. 나하고 다르게 나아가니 마음에 안 들어 미워하게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나하고 다른 사람을 마주하면서 나와 달리 들려주는 말을 들을 적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합니다.


  온누리에 왼쪽하고 오른쪽이 있습니다만, ‘왼’은 ‘외로운’ 길이나 ‘외곬’이 아닙니다. ‘오른’은 ‘옳은’ 길이나 ‘옹근’ 길이 아닙니다. 그저 왼과 오른입니다. 왼길을 가기에 오른길을 나무랄 까닭이 없고, 오른길에 서기에 왼길을 꾸짖을 일이 없어요. 서로 저마다 선 길에서 ‘옳’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을 펼 노릇입니다.


  우리나라는 한자말로 ‘민주·자유’를 으레 내세우지만, ‘민주·자유’는 반드시 ‘대화·타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정작 왼오른 모두 서로 얘기(대화)를 안 할 뿐 아니라, 한뜻(타협)으로 길을 찾으려고 안 합니다. 누가 먼저 귀를 닫거나 눈을 돌리거나 등을 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왼오른이 둘 다 똑같거든요.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는 왜 서로 따돌리거나 미워하는가 하는 줄거리를 다루려나 싶어서 읽는데, 어쩐지 ‘왼쪽이 아닌 오른쪽’은 다 잘못하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고 내모는 얼거리라고 느낍니다. 오른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차근차근 귀담아듣지 않는 얼거리입니다. 오른쪽이 하는 말을 ‘오른쪽이 한 말 그대로’ 살피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매무새는 오른쪽도 똑같아요. 우리나라 왼오른은 서로 누가 똥이 더 묻었나 하고 다투는 꼴입니다.


  서로 만나려고조차 안 하니 이야기는 아예 없습니다. 만나지도 않고 이야기도 안 하니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마음을 안 쓸 뿐 아니라, 지난날 ‘조선일보 짜깁기’처럼 토막토막 앞뒤를 자른 말이 마치 참(진실보도)이라도 되는 듯 덥석 받아물어서 서로 헐뜯거나 할퀴기까지 합니다.


  왜 따돌리겠어요? 안 만나고 말을 안 섞으니까 서로 모르거든요. 서로 모를 뿐 아니라, 왼오른으로 다르다고 여겨서 아주 고개를 돌리면서 금을 긋고 맙니다.


  이제는 만나서 얘기할 일입니다. 서로 어떻게 다른지 깊고 넓게 이야기를 펴면서, 서로 다르게 나아가는 길로 어떻게 아름답고 즐겁게 사랑을 꽃피우는 나라와 마을과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는지 찾아나설 노릇입니다. 이런 일과 만남길과 살림살이와 어깨동무하고는 등진 채, “늘 네가 뜬금없는 소리만 내뱉잖아?” 하면서 갈라치려고 한다면, 밉질과 따돌림질은 더 크게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에서 잘못 짚거나 그저 할퀴는구나 싶은 대목이 꽤 보입니다. 이런 여러 곳을 짚어 보겠습니다.



ㄱ. 매우 과격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돌았다, 미쳤다, 찢었다, 죽인다, 지린다, 쩐다, 싼다 등 청소년들이 쓸 법한 말들이 버젓이 방송 자막으로 나옵니다. (21쪽)


: 곰곰이 보면 다 ‘우리말’이지만, 어느 곳에 어떻게 써야 알맞은지 제대로 다루거나 가르치는 어른이 안 보입니다. “청소년이 쓸 법한 말”이란 없습니다. “먼저 어른이란 사람이 흔히 쓰는 말”이기에 푸름이가 물들어서 나란히 쓸 뿐입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말을 어떻게 다루는지 뉘우쳐야 하고, 우리말을 왜 우리말답게 안 쓰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ㄴ. 결과적으로 과거에 누렸던 남성들의 자유가 상당히 억압을 받게 돼요. 그럼에도 극성스러운 여성주의자들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하는 남성들, 나아가 여성들도 많다, 이런 서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43쪽)


: 예나 이제나 힘꾼(권력자)이 멋대로 사람들을 휘어잡고 휘두르고 괴롭힙니다. ‘힘돌이(남성권력자)’란 임금·벼슬아치·나리입니다. ‘힘순이(여성권력자)’도 매한가지입니다. 예나 이제나 억눌리는 사람은 흙지기(농사꾼)에 일꾼(노동자)입니다. 흙을 만지고 살림하던 여느 사람은 순이돌이 모두 억눌렸습니다. 먼저 우리 발자취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에 누렸던 남성들의 자유”가 아닌 “멋대로 놀던 권력자”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순이돌이로 가를 일이 아닌, ‘힘’을 누가 부리면서 짓밟고 억눌렀는지 뿌리를 캘 일입니다.


ㄷ. 잘 알다시피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71쪽)

ㄹ. 심지어 보수 성향 언론인 폭스 뉴스도 트럼프를 비판했어요. (84쪽)


: ‘민주주의 퇴보’란 무엇인지 짚을 노릇입니다. ‘백신’을 모든 사람한테 밀어붙일 뿐 아니라, 어린이·푸름이한테 마구 맞히는 미국 민주당은 ‘어떤 민주주의’일까요? 바이든·오바마·클린턴은 오히려 푸른별 곳곳에 ‘전쟁’을 더욱 불지르고 퍼뜨렸으며, 이들은 ‘군수산업’을 훨씬 키웠습니다. 촘스키라는 분이 쓴 글을 읽어도 ‘미국 민주당에야말로 민주가 없는’ 줄 쉽게 알 만합니다. 트럼프를 미워하든 말든 대수롭지 않으나, 틀(프레임)을 트럼프한테 씌우면서 ‘미국 민주당 민낯’은 하나도 안 짚는다면, 바로 이런 말글부터 ‘미움말(혐오)·따돌림(차별)’입니다. 그리고 폭스뉴스는 트럼프까지 ‘비판’할 줄 알지만, 비판할 일이니까 비판합니다. 이와 달리 씨앤앤과 뉴욕타임즈는 트럼프를 ‘비난’만 하고, 미국 민주당이 저지르는 잘못에는 입을 다뭅니다. 누가 ‘미움말(혐오)·따돌림(차별)’을 퍼뜨릴까요?


ㅁ. 150미터 거리에서 정조준을 해 사람을 쏠 수 있는 무기가 전국에 널려 있는 사회가 좋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리가 없지요.


: 우리나라에는 미국처럼 총이 없어도 칼부림과 주먹질과 방망이질이 춤춥니다. 누구나 총을 살 수 있기에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기 앞서, 총이건 칼이건 주먹이건, 싸우거나 죽이는 짓을 끝내고서, ‘나와 뜻이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더라도 깎아내리거나 싸잡거나 헐뜯지 않을 줄 아는 마음으로 갈 일이라고 가르치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총을 든 민주주의’란 없습니다만, ‘트럼프 따위는 총으로 쏴죽여도 돼’처럼 여기는 사람부터 ‘민주주의 퇴보’입니다.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놈’이 ‘나와 길이 다르니까 미워해야겠어’ 하고 마음을 먹는다면, 총만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군대와 전쟁무기는 마땅히 없애야 합니다만,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하고 품는 마음’으로 가꾸지 않은 채 총만 없다면, 다른 것(칼·주먹·몽둥이·붓)으로 미워하고 죽이게 마련입니다. 길이 다르다고 해서 푸른별을 아름답게 못 가꾸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장사꾼이라고들 말하는데, 트럼프가 미국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여러 해 사이에는 싸움(전쟁)이 멈췄습니다. 부시나 레이건만 싸움짓을 벌이거나 키우지 않았습니다. 바이든·오바마·클린턴도 똑같이 싸움짓을 벌이거나 키웠고, 힐러리·해리스도 똑같이 싸움 쪽에 선 사람입니다.


ㅂ. 비장애인은 고급 승용차를 원하지만, 장애인은 지하철 이용도 어렵습니다. 비장애인들은 택시 호출하는 데 1분도 안 걸리는데, 장애인은 전용 콜택시 타려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이런 격차를 줄이는 것이 인권입니다. (151쪽)


: 저는 ‘비장애인’일 텐데, 저는 ‘운전면허증’부터 안 따고 걸어다닙니다. 저는 으레 두바퀴(자전거)를 달리고, 가끔 버스를 탑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버스타기부터 어렵습니다. 두어 시간에 겨우 하나 오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안 오고, 쉼날(일요일·공휴일)에는 아예 안 다닙니다. 시골에서는 카톡택시가 마땅히 아예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비장애인이건 장애인이건, 택시를 부르려면 적어도 한두 시간쯤 앞서 미리 전화를 걸어야 하고, 이렇게 미리 걸어도 못 타기 일쑤입니다. ‘인권’이란 무엇일까요? 인권 얼거리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시골이야말로 ‘인권공화국(?)’입니다. 우리나라 시골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대중교통을 누리지 못 하고, 경로우대가 없거든요. 웃픈 민낯입니다. 그렇지만, 다들 서울(도시)이라는 틀에 갇힌 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는 65살 무렵이면 버스나 전철을 그냥 타지만, 시골에서는 90살 할머니도 버스삯을 냅니다. 서울은 낮은버스(저상버스)가 많으나, 시골에는 낮은버스가 아예 없습니다. “비장애인은 고급 승용차를 원하지만”은 터무니없는 깎음말일 뿐 아니라, 오히려 밉말과 따돌림을 부추기는 엉터리말이라고도 느낍니다.


ㅅ. 하지만 장애인 앞에서 하면 안 돼요. 공공장소인 학교 복도에서도 안 됩니다. 혐오 표현은 혼자 이불 속에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장애인이 실수로 목발을 치고 가면, “장애인 새끼야.” 그러고 싶겠지만 ‘학교에서 이러면 안 돼.’ 하면서 꾹 참아라, 대신 집에 가서 샤워기 세게 틀어놓고 해라, 머리 말리면서 실컷 욕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될 겁니다. (161쪽)


: 막말(욕)은 비장애인한테든 장애인한테든 할 말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할 말이 아니고, 물을 세게 틀어놓고서 쏟아부을 말조차 아닙니다.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이렇게 가르친다면 참으로 끔찍합니다. 모든 막말(욕)은 내가 남을 깎는 말이 아니라, 내가 나를 스스로 깎는 말입니다. 이웃을 이웃으로 여기거나 바라보지 않으면서 마구 뱉는 말은, 늘 ‘막말을 일삼는 나’를 깎고 할퀴고 죽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깎고 할퀴고 죽이느라 멍들고 멍청하게 뒹군 나’는 다시금 더 세게 막말을 일삼는 버릇으로 길들어요. 막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한 마디도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뱉는다(배설·카타르시스)고 사라지는 막말이 아닙니다. 내뱉을수록 부피가 크고 덩치를 키워서 사납게 춤추는 막말입니다. 이 책을 쓴 분들이 곳곳을 다니며 ‘뒤에서 실컷 욕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렴’ 하고 말한다면, 대단히 잘못이고 끔찍하고 어처구니없습니다. 뒤에서건 앞에서건 한결같이 바르게 말하고 정갈히 다스리고 곱게 가꾸어야, 앞에서도 뒤에서도 바르게 말하고 정갈히 다스리고 곱게 가꿉니다. 사람은 앞뒤가 다를 수 없습니다. 뒤에서는 손가락질을 하고 막말을 일삼는데, 앞에서는 아닌 척한다면, 아이들한테 거짓말과 눈속임과 겉치레를 뒤집어씌우고 길들이면서 바보로 내모는 셈입니다. 사랑이 없으니 막말을 하는데,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고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서, ‘막말 내뱉기’만 시킨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지요? 먼저 스스로 사랑할 노릇입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니, 내가 나를 깎고 할퀴고 죽이는 막말을 한두 마디 하다가 나중에 굳어갑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아이들이라면, 막말을 아예 한 마디조차 안 합니다.


ㅇ. 예컨대 우리는 바퀴벌레를 보면 혐오를 느낍니다. 바퀴벌레를 보고 혐오감을 느꼈다면 이때의 혐오는 우리를 비위생적인 상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오염된 상태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줍니다. 우리가 바퀴벌레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혹은 행복감을 느낀다면, 바퀴벌레가 가득한 환경에서 별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겠죠. 혹은 토사물이나 배설물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183쪽)


: 왜 바퀴벌레를 미워하지요? 바퀴벌레를 미워해도 되나요? 파리하고 모기를 미워해도 될까요? 터무니없습니다. 모든 목숨붙이는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뜻이 있고, 몫이 있습니다. 시골에도 바퀴벌레는 조금 살지만 대단히 조그맣고, 이내 지네라든지 고양이라든지 사마귀라든지 다른 맞잡이한테 잡아먹힙니다. 시골에는 왜 바퀴벌레가 못 살까요? 시골에는 바퀴벌레가 ‘없애야 할 쓰레기’가 대단히 적거나 없습니다. 서울에는 왜 바퀴벌레가 득시글할까요? 서울은 온통 쓰레기밭이거든요. 바퀴벌레하고 파리는 말끔이(청소부)입니다. 바퀴벌레하고 파리는 쓰레기를 먹어서 ‘흙’으로 바꾸어 줍니다. 바퀴벌레하고 파리가 쓰레기를 다 먹어치워서 흙으로 돌려놓기에 이 별이 아직 살 만합니다. 개미와 쥐며느리도 바퀴벌레하고 파리 곁에서 쓰레기와 주검을 몽땅 먹어치워서 흙으로 돌려놓습니다. 바퀴벌레가 맡은 몫이 무엇인지 하나도 안 짚고 안 생각하고 안 찾아보면서 그저 미워한다면, 이런 밉마음을 아이들한테 함부로 ‘내뱉는다’면, 이 나라에는 밉마음(혐오)하고 따돌림질(차별)이 오히려 더 춤추게 마련입니다. 바퀴벌레에 파리에 거미에 지렁이에, 그야말로 서울사람은 하나같이 다 미워하고 싫어하고 끔찍하게 여기면서 마구잡이로 죽이는데, 여느 삶자리에서 이렇게 ‘작은벌레 삶몫(생명권)을 짓밟는 마음’이 씨앗으로 퍼지고 싹트기에, 그만 나라 곳곳에 밉질과 따돌림질과 주먹질이 판치기도 합니다. 쓰레기가 사라진 곳에는 바퀴벌레가 더는 없습니다. 바퀴벌레는 쓰레기를 치우려고 쓰레기밭으로 찾아가서 자라는데, 왜 쓰레기를 안 치우고서 바퀴벌레만 미워하나요?


ㅈ. 한국은 굉장히 자본가 중심적인 사회죠? 재벌을 너무 좋아해요. 당연히 재벌을 비판하는 노동자, 노동조합은 혐오합니다. 그래서 분쟁이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노동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갈라치게 하는 정치적 수사가 굉장히 잘 먹히죠. (186쪽)


: 처음부터 잘못 짚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본가·재벌’을 그리 안 좋아합니다. 그저 ‘돈’에 미쳤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돈에 미쳤”는데, “모든 사람이 우르르 돈바라기로 쏠려서 서울에 우글우글한 민낯”을 먼저 뉘우치고 돌아보고 되새기지 않으면서 ‘자본가·재벌’을 좋아하는 듯 말한다면, 이미 이야기가 어긋나고 맙니다. 숱한 사람들이 돈에 미쳤지만, 또 숱한 사람들은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살림하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는 수수한 길’을 바랍니다. 알맞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자본가·재벌’을 아예 안 쳐다봅니다. 이러면서 ‘알맞은 돈’을 알맞게 벌어서 스스로 알맞게 쓸 뿐 아니라, 이웃하고 알맞게 나누는 길을 걸어갑니다. 오늘날 적잖은 일두레(노동조합)도 그만 “돈에 미친” 나머지 안타깝고 얄궂은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일두레가 돈에 미친 얄궂은 민낯을 드러내었다고 해서, 일두레를 없애거나 미워해야 하지 않습니다. 일두레는 일두레대로 잘못과 민낯을 바로잡고서 뉘우칠 노릇입니다. ‘자본가·재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쪽이건 ‘알맞은 돈’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그리고 말하고 나누고 살필 노릇입니다. 처음부터 ‘자본가·재벌’한테는 “저놈들은 미워해도 돼!” 하면서 밉놈으로 삼는다면, 바로 이곳부터 밉마음이 싹트고 번집니다. 그저 잘잘못만 바라보고서 가리고 다룰 노릇입니다. 참모습을 제대로 보는 사람들은 자본가가 잘못하든 노동조합이 잘못하든 그저 ‘잘못’만 보고 다스리려고 할 뿐, 자본가나 노동조합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조합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알맞게 돈을 벌고서 나누는 길을 가야 할 이웃일 뿐입니다.


ㅊ. 요즘에는 “동네 바보 형” 이런 표현 안 쓰죠. 혐오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자주 썼어요. 쓰면서도 문제인 줄 몰랐습니다. ‘바보’라는 말이 비정상이라는 뜻이잖아요. 공동체 안에서 정상으로 놓는 기준과 맞지 않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197쪽)


: ‘바보’는 ‘비정상’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닙니다. ‘바보’는 ‘아직 철이 없는 사람’이나 ‘늦둥이’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사람들 누구나 누구를 가리키며 ‘바보’라고 불렀어도 잘못 굴러가거나 미워하거나 따돌리지 않았습니다. ‘바보’도 ‘바보 아닌 사람’도 마을(공동체)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래서 ‘깍두기’라고 해서 ‘바보’인 아이를 스스럼없이 품고 안으면서 같이 놀았습니다. 다리를 저니까 ‘절름발이’라고 할 뿐입니다. ‘벙어리’나 ‘장님’은 따돌림말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저마다 다 다른 모습과 삶이기에, 다른 모습과 삶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런 말을 누구나 스스럼없이 썼고, 두레와 마을에서 더 포근히 품으면서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바보·절름발이·벙어리·장님’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말이나 영어로 바꾸기만 했을 뿐, 오히려 마을과 나라에서는 이웃을 더 따돌리고 내칩니다. 이름만 바꾼대서 안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바꿀 적에는 오히려 속깊이 따돌리고 미워하는 얼거리가 굳어가기 때문입니다. ‘절름발이’를 영어로 ‘레임덕’이라 합니다만, 영어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도 ‘따돌림말’이라고 안 여기더군요. ‘벙어리’는 ‘벙긋·봉긋·방긋·방그레·빙그레’하고 ‘봉오리·봉우리’로 잇는 수수한 말씨입니다. ‘장님’은 ‘자다·잔잔하다·잠기다·잠·잣·꿈’으로 잇는 수수한 말빛입니다. 더구나 ‘-님’을 붙인 낱말인데 어떻게 따돌림말일까요? ‘바보’는 ‘책바보’나 ‘영화바보’라는 데에도 흔히 붙이듯, 어느 하나만 바라보느라 다른 곳을 다 안 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보’는 ‘밥보’하고도 맞물리는데, 어느 하나만 바라보느라 다른 곳을 안 보기에 아직 철이 덜 든 매무새라는 뜻입니다. 밥보란, 밥만 좋아하고 다른 일은 안 보는 몸짓이라는 뜻입니다. 밥만 먹고 일은 안 하려고 하니 밥보입니다. 아무렇게나 모든 우리말에 섣불리 ‘차별어·혐오표현’이라는 틀(프레임)을 씌우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틀(프레임)이야말로 따돌리고 미워하는 씨앗만 흩뿌립니다.


ㅋ. 최근에는 집게손가락만 보면 화를 내는 사람들도 등장했죠. 왜 그러는 걸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에 정색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는 여기에 어떤 불안이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정치 상황을 보면 이해가 가요. (201쪽)


: 추레질·엉큼질·노닥질(성추행·성폭력)은 ‘크기·세기’로 따지지 않습니다. 가볍다고 여길 익살이나 우스개란 없습니다. ‘집게손가락’을 어느 사람들을 놀리거나 깔보거나 깎거나 할퀴는 자리에 함부로 쓰니까, 집게손가락만 보면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추레질과 엉큼질과 노닥질로 마음이 다친 어느 사람한테 “왜 그러는 걸까요?” 하고 되묻는다고요? 참말로 너무합니다. 이렇게 서로 말을 안 섞고, ‘저쪽 사람이 왜 마음이 다쳐서 짜증을 내는지’ 쳐다보려 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이럴 때에 새삼스레 밉질과 밉말과 따돌림질과 따돌림말이 또 불거집니다. “어떤 불안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듣기 싫거나 놀리는 말을 모두 걷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순이돌이는 더 활활 타오르면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보는 말씨로 사랑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온통 불바다로 치닫습니다.


ㅅㄴㄹ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이라영과 여섯 사람, 철수와영희, 2024)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데에 합리적인 까닭은 없습니다

→ 누구를 따돌리고 미워하면서 올바른 까닭은 없습니다

→ 누구를 가르고 싫어하더라도 마땅한 까닭은 없습니다

5쪽


인격체가 아닌 멸시의 존재로 살았기에 투신하는 순간에도

→ 사람이 아닌 낮잡히며 살았기에 뛰어드는 즈음에도

→ 빛살이 아닌 깎이며 살았기에 뛰어내리는 그때에도

16쪽


서문에 “한 사회의 문해력은 다양한 관계들의 뒤섞임”과 밀접하다고 썼습니다

→ 머리말에 “우리 글눈길에는 여러 갈래가 뒤섞인”다고 썼습니다

→ 앞자락에 “나라 글눈에는 온갖 얘기가 뒤섞인”다고 썼습니다

17쪽


어떤 개념이 줄어든다는 건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 어떤 뜻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 어떤 밑감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22쪽


우리를 유혹하는 혐오의 책동에 무릎 꿇지 않으려면

→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으려면

→ 우리가 함부로 까대지 않으려면

→ 우리가 이웃을 깎아치지 않으려면

98쪽


수많은 민족지사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북풍한설 속에서 풍찬노숙하면서 싸웠습니다

→ 숱한 겨레길잡이가 머나먼 땅에서 찬바람에 한뎃잠으로 싸웠습니다

→ 여러 겨레지기가 먼나라에서 얼음바람에 이슬살이로 싸웠습니다

99쪽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도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 오늘 나눌 말도 여기를 다룹니다

→ 오늘 이야기도 여기에 맞춥니다

180쪽


우리 일상도 견리망의가 촘촘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우리 삶도 밥줄이 촘촘하게 얽혔다고 봅니다

→ 우리 하루도 돈셈이 촘촘하게 다스린다고 느낍니다

→ 우리 나날도 길미가 촘촘하고 드세구나 싶습니다

18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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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 우후 두 번째 이야기 난 책읽기가 좋아
간자와 도시코 지음, 이노우에 요스케 그림, 권위숙 옮김 / 비룡소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1.6.

맑은책시렁 339


《꼬마 철학자 우후 두 번째 이야기》

 간자와 도시코 글

 이노우에 요스케 그림

 권위숙 옮김

 비룡소

 2004.2.6.



  《꼬마 철학자 우후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일본책 “くまの子ウ-フ”를 옮겼으니 “곰돌이 우후”나 “꼬마곰 우후”라고만 하면 될 텐데, 뜬금없이 ‘꼬마 철학자’로 이름을 바꾸었군요.


  모든 아이는 늘 물어봅니다. 모든 아이는 둘레 어른이며 언니한테 물어보려고 태어났다고 할 만합니다. 조그맣게 입은 몸으로 마주하는 모든 일이 낯설면서 새롭기에 널리 받아들이면서 궁금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기에 물어봅니다. 아이 스스로 느낀 바가 얼마나 어울리거나 맞는지 궁금하기에 물어요. 낯설면서 새롭게 맞이한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받아들여서 삭이기는 하되, 둘레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는지 알고 싶어서 끝없이 묻고 다시 묻습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삭이고 말하는 얼거리인 아이입니다. 그래서 모든 아이를 ‘철학자’로 여길 만하면서 ‘과학자’로 삼을 만하고 ‘살림꾼’에 ‘사랑꾼’으로 마주할 만합니다.


  아이는 귀찮게 묻지 않아요. 아이는 즐겁게 묻습니다. 예전에 물었지만 새로 묻고, 어제 물었는데 다시 묻고, 아침에 물었으면서 저녁에 새삼스레 묻습니다. 아이는 이야기를 하려고 묻습니다. 아이가 먼저 묻지 않으면 어른들은 좀처럼 말길을 안 트거든요. 아이가 먼저 물어야 어른들은 비로소 “아, 그래! 아이하고 얘기해 봐야겠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적잖은 어른은 아이한테 시킵니다. 시키는 말만 하는 어른이라면 아이는 굳이 묻고 싶지 않습니다. 시키는 어른 둘레에 있는 아이는 언제나 입을 다물어요. 시키는 어른한테서는 새롭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빛이 하나도 없는걸요.


  《꼬마 철학자 우후 두 번째 이야기》를 곰곰이 보면, 아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서 온마을과 온숲이 이야기동무로 나섭니다. 모든 언니동생이 아이한테 다가와서 끝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 어른은 다 다른 삶을 걸어온 나날을 바탕으로 아이한테 상냥하고 나긋하고 부드럽고 즐겁게 ‘살림수다’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어른다운 어른이라면, 아이가 물어볼 때까지 기다릴 노릇입니다. 우리가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면, 아이가 물어볼 적에 다른 모든 일을 멈추고서 아이 눈높이에 맞추고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노릇입니다.


  아이는 집과 마을과 들숲바다가 온통 놀이터이자 배움터입니다. 따로 ‘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곳만 배움터일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름답게 배우면서 즐겁게 뛰놀고 사랑스러운 어른이라는 사람으로 자라고 싶습니다. 이 수수께끼와 삶과 길에 부디 눈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랑 이야기하지 않거나 못 하는 사람이라면, 어른이 아닌 꼰대요 늙은이입니다.


ㅅㄴㄹ


“괜찮아. 우후야, 실망하지 마. 엄마가 좋아하는 건 이곳에 잘 있으니까.” (16쪽)


“삐삐츄츄. 어, 이상하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좋은걸. 나로 말하면 말이지, 되고 싶은 대로 됐으니까.” (33쪽)


나비가 대답했어. “애벌레였을 때도 무척 즐거웠지. 초록 잎사귀 위를 굼실굼실 기어다니며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실에 매달려 그네를 탔어. 사람 머리 위로 떨어져서 놀라게 해 주기도 했지.” (38쪽)


“그랬구나, 우후야. 해님은 천천히 하늘을 걸으면서 딸기를 빨갛게 해 주고 가지랑 토마토를 크게 해 준단다. 꽃도 나무도 해님이 없다면 크게 자라지 않아요. 자, 집에 들어가서 간식 먹자, 츠네타도!” (67쪽)


“이 세상엔 신기한 일들이 아주 많단다. 나는 지금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지만 우후를 만나다니 정말로 반가운걸. 자, 우후야 아기 강을 보고 싶니? 그럼 한숨 쉬고 나서 할머니랑 함께 찾으러 가자.” (103쪽)


뱀이 물었어. “우후야, 정말 무슨 일 있니?” 우후는 풀이 죽어서 말했지. “엄마가 내 바지를 남한테 준대요.” 뱀이 말했지. “우후야, 옷은 작아지면 당연히 벗는 거란다. 이렇게 멋진 줄무늬 옷이라도 작아지면 벗어 버리는걸.” “어, 그게 옷이에요?” “그럼, 옷이지. 몸에 딱 맞는 옷. 하지만 벗을 때는 섭섭해.” (112쪽)


#かんざわとしこ #いのうえようすけ

#こんにちはウーフ #神沢 利子  #井上洋介


+


《꼬마 철학자 우후 두 번째 이야기》(간자와 도시코·이노우에 요스케/권위숙 옮김, 비룡소, 2004)


식탁 위에 놓을 꽃이 필요했는데

→ 밥자리에 놓을 꽃을 바랐는데

16쪽


강 속을 송사리가 헤엄치고 있었어

→ 냇물에 송사리가 헤엄쳐

20쪽


이불이 젖어서 차가운 건 싫지만

→ 이불이 젖어서 차가우면 싫지만

21쪽


투덜대고 있는 건 누구지

→ 투덜대는 아이 누구지

→ 누가 투덜대지

54쪽


무엇을 굽고 계세요

→ 무엇을 구우셔요

55쪽


달님에게 줄 경단을 만들지

→ 달님한테 줄 구슬떡 빚지

→ 달님 줄 밤톨떡 굴리지

69쪽


우후한테로 다가왔어

→ 우후한테 다가와

70쪽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하더니

→ 어젯밤부터 내리더니

80쪽


옆에 오면 위험해. 아빠는 제설차니까

→ 옆에 오면 다쳐. 아빠는 눈쓸이니까

81쪽


저쪽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고 있었어

→ 저쪽에서 누가 손을 들어

85쪽


바지가 무척 작아졌네

→ 바지가 무척 작네

10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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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전설 힘찬문고 32
고토 류지 지음, 박종진 옮김 / 우리교육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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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1.2.

푸른책시렁 179


《열두 살의 전설》

 고토 류지

 박종진 옮김

 우리교육

 2003.11.30.



  어쩐지 갈수록 “걷는 어른”도 “걷는 어린이”하고 “걷는 푸름이”도 확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으레 교육청에서 노란버스로 집과 배움터 사이로 실어나르고, 서울에서는 거의 어버이가 자가용으로 집과 배움터 사이로 실어나릅니다. 멀건 가깝건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서 마을과 이웃을 느끼고 헤아리면서 하루를 누리는 사람이 확확 줄어들어요.


  걸어다니는 사람은 따로 몸쓰기(운동)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걷기란 언제나 온몸쓰기입니다. 걸어다니기에 해바람비를 날마다 새로게 느끼고 누리면서 온하루를 오롯이 온몸으로 배울 수 있어요. 걷는 동안 풀꽃나무를 돌아볼 만하고, 풀내음과 새소리와 하늘빛과 살림살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걷지 않으니 따로 몸쓰기를 합니다. 걷지 않으니 날씨뿐 아니라 철을 등집니다. 어릴 적부터 마을길을 안 걷는 아이는 나중에 쉽게 마을을 떠나요. 다다른 철과 해와 날을 누린 적이 없으니 굳이 시골에 머물거나 깃들면서 꿈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지 않아요. 철을 익힌 바가 없기에 ‘철을 등진 얼개’인 서울을 바라보면서 냉큼 ‘시골벗이(시골탈출)’로 내달립니다.


  《열두 살의 전설》은 어린배움터에서 여섯 해째를 맞이한 다 다른 아이들이 한동아리로 새롭게 잇는 마음을 서로 어떻게 열고 풀면서 철들어 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본 책이름 “12歲たちの傳說”를 일본말씨대로 옮겼는데, 우리말씨로 다듬자면 “12살 이야기”입니다. 열한 살까지는 둘레 어른들이 시키거나 억누르는 대로 휩쓸리기도 했고, 스스로 괴로운 나머지 갖은 몸부림으로 펑펑 터뜨리거나 동무를 괴롭히는 바보짓으로 치닫기도 했다지요. 열두 살에 만난 새 길잡이는 몸집도 키도 조그맣고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었다는데, 작고 작고 그저 작은 사람은 여러 아이들한테 처음으로 ‘어른스러운’ 빛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어른이란 네모반듯한 틀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위에서 시키려는 굴레가 아닌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아이 곁에 나란히 서서 함께 배우고 먼저 익혀서 새롭게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해야 옳다고 외치거나 밀어대면 어른이 아닙니다. 저렇게 하면 틀리다가 윽박지르거나 나무라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은 언제나 참하고 착하면서 차분하게 빛나는 눈망울로 이야기꽃을 지피는 사람입니다. 어른은 언제나 아이 말씨를 귀담아듣고서 토닥이고 달래면서 품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거의 안 걸어다닌다면, 이 아이들 둘레 숱한 사람도 ‘어른 아닌 어른 흉내’일 뿐이면서 안 걸어다닌다는 뜻입니다.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비슷한데, 서른 언저리에 이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수수길(대중교통)하고 등집니다. 시골버스에서도 서울버스에서도, 참말로 서른 언저리부터 예순 사이인 나이일 적에는 쇳덩이(자가용)를 몰아댑니다.


  쇳덩이를 몰기에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쇳덩이에 몸을 맡기면 12월과 1월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고, 3월과 4월이 왜 다른지 몰라요. 안 걷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날씨와 바람결과 비내음을 이야기로 못 들려줍니다. 안 걷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새소리와 풀벌레노래와 구름결을 이야기로 못 알려줍니다.


  아이는 배움굴레(학교·학원 지옥)에 갇히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른은 아이를 배움굴레에 가두려는 자리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웃을 모르고 못 만나면서 저 스스로 고요히 들여다보는 눈길을 함께 잃고 잊습니다. 나이를 먹기만 할 뿐인 사람이라면 어진 넋하고 자꾸 멀어가면서 그만 꼬부라지고 꼬인 막대기처럼 굴고 맙니다.


  열두 살 아이들이 스스로 열두 살 하루를 노래하는 이야기를 짓도록, 우리가 느긋하고 넉넉하게 아이 곁에 설 수 있기를 바라요. 열두 살 이야기는 스물네 살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윽고 서른여섯 살 이야기와 마흔여덟 살 이야기와 예순 살 이야기로 차츰차츰 뻗으면서 슬기롭고 아름다이 피어난다면, 온누리가 환하게 깨어나리라 봅니다.


ㅅㄴㄹ


“6학년이 된 여러분은 5학년 때와는 다르고, 여러분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알아가는 건 오늘부터. 오늘부터가 전부입니다.” (28쪽)


릴라 선생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아주 좋아한다. ‘1분 동안 마음대로 말하기’라는 시간도 만들었다. 공부 시작 전에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발표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는 시간이다. (54쪽)


그때 아이들은 정말 지쳐 있었다. 하야가와는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살고, 아침엔 새벽 5시부터 엄마에게 감시받으며 학습장을 한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띵하다. (77쪽)


내심 겁이 났지만 어머니가 지켜 줄 거라고 믿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일주일도 안 돼서 등판 한가득 난 여드름이 싹 없어졌다. 피부가 매끌매끌! 사실이다 … 어머니도 깜짝 놀랐다. “미안하다. 이렇게 맘고생하는 줄 정말 몰랐다.” 어머니는 울면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왜, 왜 이래?’ 나는 어쩔 줄 몰랐다. (104쪽)


열혈 선생님은 우리 집에 몇 번이나 쳐들어와서 설교. 나는 대답할 힘도 없었다. 학교는 당한 만큼 돌려주는 그런 곳인가? 솔직히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일부러 학교에 갈 기운이 없었다. (140쪽)


사실이 그래. 우리는 집이나 학교나 전부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야. 보이는 건 모두 적. 너나 할 것 없이 덜덜 떨면서 틈만 노리는 거지. (161쪽)


선생님은 약한 아이를 보호한다는 생각에 기분 좋았을지 몰라도, 미키는 뒤로 몇백 배 더 괴롭힘을 당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모를까? (175쪽)


#後藤?二 #鈴木びんこ 

#後藤龍二 #12歲たちの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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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전설》(고토 류지/박종진 옮김, 우리교육, 2003)


탁탁 때리며 기합을 넣었다

→ 탁탁 때리며 기운을 넣는다

→ 탁탁 때리며 힘을 넣는다

8쪽


탄식하고 한숨 쉬고

→ 한숨 쉬고

8쪽


소곤소곤대는 말투. 입 안에서 웅얼웅얼거려서

→ 소곤소곤하는 말씨. 웅얼웅얼해서

→ 소곤대는 말씨. 웅얼거려서

22쪽


하야가와의 생떼는 유명하다

→ 떼쟁이 하야가와는 이름나다

→ 하야가와 떼쓰기는 알아준다

→ 하야가와 억지는 왁자하다

30쪽


하기 힘든 말을 과감하게 꺼낸다는 건 장말 용기가 필요하지요

→ 하기 힘든 말을 모두 하려면 참말 씩씩해야 하지요

→ 하기 힘든 말을 당차게 한다면 참으로 의젓하지요

30쪽


농담을 던져 교실에 웃음소리가 터졌다

→ 말놀이로 모둠에 웃음소리가 터진다

→ 익살말로 모둠에 웃음소리가 터진다

47쪽


열의 없는 박수를 쳤지만

→ 힘없이 손뼉을 쳤지만

→ 그냥 손뼉을 쳤지만

51쪽


그래도 대단한 거야. 공인한 거잖아

→ 그래도 대단해. 받아들였잖아

→ 그래도 대단하지. 널리 폈잖아

→ 그래도 대단한걸. 되었잖아

51쪽


허락해 주시지 않아도 단행하려고 했어

→ 받아주시지 않아도 벌이려고 했어

→ 받아들이지 않아도 꾀하려고 했어

→ 안 받아주어도 밀려고 했어

52쪽


나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턱을 고였다

→ 나도 중얼거리며 책상에 턱을 고인다

56쪽


대변을 보고 왔는지까지

→ 똥을 누고 왔는지까지

57쪽


한밤중에 이불 속에서 호호호

→ 한밤에 이불을 쓰고 호호호

85쪽


한숨을 내쉬면서 중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그림책 읽기 연습을 시작했다

→ 한숨을 내쉬면서 큰일이라도 다짐한 듯 그림책을 읽어 본다

→ 한숨을 내쉬면서 크게 다짐한 듯 그림책을 읽어 본다

87쪽


아동 학대 얘길 들어 보면 애들도 힘든 것 같고

→ 아이들볶음 얘길 들어 보면 애들도 힘든 듯하고

→ 아이괴롭힘 얘길 들어 보면 애들도 힘들고

88쪽


그런 공부 시간에 앉아 있는 건 고문이야

→ 그렇게 배우며 앉으라면 괴로워

99쪽


누군가가 중얼거리고 있다

→ 누가 중얼거린다

114쪽


식물의 씨앗은 괜찮은데

→ 풀씨는 걱정없는데

→ 풀씨앗은 멀쩡한데

138쪽


오늘 1번 타자는?

→ 오늘은 누가?

→ 오늘은 누구부터?

1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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