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토마토



  다달이 태어나는 작은책인 《월간 토마토》에 글을 실은 지 벌써 세 해가 지난다. 대전과 충청도 이야기를 아우르는 달책에는 글을 싣지만, 정작 전라남도나 전라북도 이야기를 아우르는 달책이나 새뜸(신문)에는 글을 아예 안 싣는다. 앞으로는 전라도 달책이나 새뜸에도 글을 보낼까 헤아리지만, 마음이나 눈을 끄는 곳을 아직 못 찾는다.


  《월간 토마토》는 처음 태어나던 무렵부터 지켜보았다. 책집마실을 가는 곳에 이 달책이 있으면 서서읽기를 하거나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었다. 이러다가 받아보기를 하자고 생각했고, 받아보기를 한참 하다가 서로돕기처럼 서로이바지를 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띄워 보았다.


  ‘서울달책(서울에서 나오는 잡지)’이라면 ‘서울밖’ 사람들이 글을 잔뜩 실으면서 ‘서울안’ 이야기가 푸짐할 수 있다. ‘부산달책’이라면 ‘부산밖’ 사람들이 글을 실컷 실으면서 ‘부산안’ 이야기가 넘실댈 수 있다. 모든 곳이 매한가지이다. 전남광주에서 나오는 새뜸이나 달책이라면 ‘전남광주밖’ 작은글꾼 목소리를 실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반짝인다고 느낀다.


  예부터 ‘우물개구리’란 말을 그냥 하지 않는다. 우물인 이곳도 늘 맑게 샘솟을 수 있는 길을 열면서, 우물을 둘러싼 너른들과 너른숲 모두 아우르는 눈길을 틔울 적에 싱그럽다. 이리하여 나는 ‘시골개구리’로 살아가려고 생각한다. ‘푸른개구리’라든지 ‘멧개구리’라든지 ‘숲개구리’라든지 ‘하늘개구리’ 같은 길을 그린다. 나부터 내가 깃든 터전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나를 둘러싼 뭇이웃이 살아가는 터전에 푸른씨앗을 푸른바람에 얹어서 띄우는 길을 걸어가는 셈이다.


  작은달책에 실린 글을 하나하나 읽는다. 요사이는 한 달에 하루씩 대전에서 ‘토읽(월간토마토 읽기모임)’이 있다는데, 그곳에 가서 ‘읽쓰(《월간 토마토》를 읽을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으나, 여태 날이 안 맞는다. 올해가 가기 앞서 ‘토읽’에 ‘읽쓰’로서 함께할 수 있으려나. 올해에 섣달까지도 날이 영 안 맞는다면, 새해에는 날이 맞을 수 있기를 빈다. 2026.9.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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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헤



  나스카 유적을 건사하는 길에 온삶을 바친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Grosse-Neumann 1903∼1998)’ 님이 있다. 이녁이 막바지삶을 보내던 끝자락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분이 쓴 책이 1999해 늦봄에 《나스카 유적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더라. 한글판이 갓 나오던 그무렵에는 이 책을 못 알아보았다. 어느 때라도 놓치는 책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면 사놓고서 잊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해 그즈음은 서울 이문동에서 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그야말로 가난 밑바닥을 신나게 누볐다. 새책은 엄두를 못 냈고, 헌책집에서 나달거리는 책만 골라서 겨우 사읽는데, 허름책 한 자락을 사기 앞서 말끔한 헌책을 스물∼서른 자락을 읽었다. 주머니가 가볍기에 서서읽기로 머리와 마음에 담으려 했다. 말끔책은 눈으로 읽고, 허름책은 집으로 데려가서 살살 손질하고서 두고두고 되읽었다.


  올해(2026) 첫달에 부산에서 《나스카 유적의 비밀》을 새로 만났다. 아무래도 낯익은 겉그림이다. 틀림없이 그동안 손에 쥐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제 처음 마주하는 책이라 여기면서 일곱 달째 야금야금 읽는다. 읽을수록 줄어드는 쪽이 아쉬워서 앞으로 슬그머니 돌아가기도 한다. 오늘은 읍내 나래터로 책을 부치러 나왔으니 길에서 ‘걷는읽기’를 한다. 걷는 내내 팔뚝에 땀방울이 솟는다. 이마에서 똑 떨어지는 땀방울이 책을 적신다.


  마리아 라이헤 같은 분은 온누리에 많다. 온사랑으로 온삶을 짓고서 온마음으로 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지. 또한, 이와 같은 길하고는 영 딴판인, 그러니까 사랑은 터럭만큼도 없을 뿐 아니라, 쳇바퀴인 삶에, 불타는 늪인 마음에다가, 하루가 지겹다고 여기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모든 ‘사랑’은 이분처럼 걷는 발걸음과 살림새일 테지. 우리는 두다리를 사랑하며 늘 걸을 수 있을까. 우리는 두눈을 사랑하며 늘 오롯이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두귀를 사랑하며 늘 귀담아들을 수 있을까. ‘두-’로 잇는 말씨를 하나하나 붙여쓰고 싶다. ‘두다리·두눈·두귀·두손·두발·두날개·두닝·두씨·두사람’처럼, 우리는 둘러보고 두레하는 ‘두빛’을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듯하기에 ‘두-’라는 말씨를 심고 싶다.


  노래책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를 새로 냈어도, 오늘 새삼스레 노래를 찬찬히 새롭게 쓴다. 읽고 살피고 쓰고 나눈다. 일하고 쉬고 빨래하고 씻고 눕는다. 잠자리랑 눈맞추고 별을 그리고 바람을 반긴다. 푸르게 돋아나는 잎이 곱게 깨어나는 꽃으로 잇더니, 알차게 여물며 새롭게 눈뜨는 씨앗과 열매로 나아간다.


  봄에도 여름에도 걷는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걷는다. 해날에도 비날에도 구름날에도 걷는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걷는다. 등짐과 책짐을 이고 지고 안고 품으면서 걷는다. 읽으면서 걷고, 걷다가 쓰고, 읽고 쓰느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발짝 내딛으면서 읽는다.


  작은아이한테 건넬 수박 한 덩이를 짊어진 등짐을 읍내 한켠에 내려놓고서 다리를 주무른다. 살짝 숨돌리며 땀을 훔친다. 등판에 흥건한 땀이 살짝 마를 즈음 집으로 간다. 느긋이 돌아가자. 한여름 무더위는 오늘도 즐겁다. 땀을 실컷 흘렸으니 샘물로 시원하게 씻고서 쉬자. 2026.7.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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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본다



  누가 나를 본다. 뒤통수와 옆통수와 이마로 느낀다. 살갗과 발바닥으로 느낀다. 이렁저렁 느끼고서 그저 걷는다. 등짐에 어깨짐에 가슴짐은 모두 책이다. 이러면서 책 하나를 쥐고서 읽는다.


  나는 누구를 안 본다. 내가 읽을 책이 있고, 내가 쓸 글이 있으니, 늘 스스로책과 스스로글을 바라본다. 슬슬 한여름이 저물면서 뙤약볕이 훅 누그러든다. 시골집에서건 서울에서건 맨발로 노상 걷기에 볕이 바뀌는 길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직 여름볕에 땀이 돋거나 흐르되 ‘가을로 건너가는 늦여름볕’은 무척 부드럽다.


  지난 2023해 첫봄에 서울 길음으로 책집마실을 했다. 그때만 해도 한 해에 한두 걸음씩 길음책집을 들르리라 여겼다. 그러나 두걸음을 하기까지 세 해 남짓 걸렸다. 이다음은 언제쯤 서울 길음책집을 찾아올 수 있을까. 오늘 모처럼 〈문화서점〉과 〈햇살속으로〉에서 찬찬히 책빛을 누렸다. 어제 서울에 와서 이야기꽃(강의)을 펴면서 받은 일삯은 두 군데 책집에서 사들인 책값으로 고스란히 나간다.


  채우기에 비우고, 비우기에 차오른다. 차분히 배우면서 익히고, 익힌 씨앗 하나를 이 땅에 심고 나면 새삼스레 홀가분한 몸짓으로 다시금 배움길로 나선다. 이리하여 책으로 가득한 짐을 이고 걸고 안은 채 ‘새해절’을 미리 한다. 아직 한여름 끝자락이어도 다시 책집지기님 얼굴을 뵐 날을 어림할 수 없으,니 더더욱 한 칸 두 칸 마음에 그려넣는다. 허리를 굽혀 “오늘도 책을 참 잘 보고 장만해서 시골로 짊어지고 돌아갑니다!” 하고 절을 하는데, 나도 책집지기님도 자꾸자꾸 절을 한다. 대여섯 벌째 절을 하다가 얼른 밖으로 나선다. 한여름 끝자락 뙤약볕이 반갑다. 앞뒤옆으로 가득 짊어진 책짐이되 팔등이나 콧등이나 어깨나 무릎이나 종아리나 허벅지에 땀이 얼마 솟지 않는다. 등판에는 땀이 흥건하지만.


  나는 ‘책집이 있는 마을’을 바라본다. 나는 우리집 둘레 시골자락을 ‘책숲이 있는 보금터’로 가꾸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켜보고 헤아리고 노래한다. 책이란, ‘이야기숲’이자 ‘이야기씨’에 ‘이야기꽃’이지 싶다. 숲과 씨와 꽃인 종이책이 시골과 서울에서 나란히 빛나기를 그린다. 우리 시골살림집은 지난 열여섯 해에 걸쳐서 뒤꼍과 옆뜰과 마당을 나무숲으로 감쌌다. 나무 곁에 서면 여름이 시원하고 겨울이 포근하다. 나무 곁에 서면 모든 시끌소리가 바람가락에 휩쓸려서 휙 사그라든다.


  이 여름에도 얼음바람(에어컨)뿐 아니라 바람개비(선풍기)가 없는 작은시골집을 누린다. 둘 다 없이 부채로 쉰 해 남짓 살았다. 앞으로도 나무 곁에서 살림짓기를 할 뜻이다. 즐거이 종이책을 쥐려고 한다. 어제오늘 서울마실을 하는 동안 거님길을 천천히 디딜 적에는 볕길을 골라서 해바라기를 한다. 서울에서는 버스와 전철과 가게 모두 얼음늪(에어컨지옥)이다. 우리는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한테서 온 종이책’을 누리면서 눈뜰 만하지 싶다.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림하고, 나무로 불을 때어 밥살림을 잇고, 나무한테서 받은 몸으로 여민 종이에 이야기를 담아서 우리가 오늘부터 나눈 씨앗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으면, 이동안 보금자리를 작은숲으로 돌볼 줄 안다면, 누구나 푸른눈과 푸른귀와 푸른입과 푸른머리와 푸른마음과 푸른생각으로 깨어날 테니, 푸른말과 푸른글을 펴는 ‘숲말·숲글·숲노래·숲사랑’으로 어깨동무할 만하겠지.


  밤과 새벽은 이슬로 노래한다. 한낯은 땀으로 춤춘다. 아침저녁으로는 볕바람으로 속삭인다. 어제 일하며 받은 일삯을 몽땅 털어서 책을 샀다만, 앞으로 다시금 일삯을 벌면 되니까, 그때에도 또 책값으로 가만히 쓸 텐데, 언제나 기쁘게 집으로 돌아간다. 배우려고 종이책을 품에 안는 사이에 살림돈과 살림살이는 시나브로 피어나리라 본다. 종이꽃이여, 우리 함께 시골책숲으로 날아가자. 2026.7.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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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바구니 500



  누리책집 알라딘 바구니에 담은 책이 주섬주섬 늘다가 즈믄(1000)을 넘어서니 더는 못 담는다고 하더라. 그러려니 하면서 즈믄 언저리인 책바구니를 붙들다가 조금씩 줄여서 700 언저리까지 왔다. 그런데 이레쯤 앞서 갑자기 500을 넘으면 바구니에 못 담는다고 하네.


  바구니에 담을 책을 1000에서 500으로 줄인다면, 엄청난 일인데, 이런 일을 알렸는지 안 알렸는지 모르겠다. 어느 귀퉁이에 손톱만 한 알림글을 띄웠는지 모르겠으나, 누리책집 알라딘에 드나들 적에 쪽글로조차 알림글이 뜬 적은 아예 없다. 다른 알림글은 신물나거나 지겹게 띄우면서 왜 ‘바구니 500’이라는 새틀은 안 알릴까?


  사람들이 책을 덜 읽거나 안 사기에 바구니를 줄일는지 모르나, 사람들이 책을 덜 읽거나 안 사면 바구니는 건드릴 까닭이 오히려 없지 않을까? 알라딘 꿍꿍이는 예나 이제나 알쏭달쏭하다. 2026.8.2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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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꿈치



  서서 오래 일하며 땀빼면 앞꿈치가 욱씬거린다. 이렇게 일하는 날은 저녁에 절뚝절뚝 걷는다. 발바닥에 불이 나듯 저릿저릿하다. 집에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비틀거리지만 밥을 짓고 부엌일을 한다. 빨래를 하고, 몸을 씻고, 빨래를 마친 옷을 마당으로 들고 나가서 천천히 물을 짠다. 우리집 나무하고 들꽃한테 헹굼물을 베푼다.


  오늘 새벽에 논두렁을 신나게 달린다. 어찌저찌 집에서 06:39에 나섰다. 옆마을을 지나가는 첫 시골버스를 06:40에 타야 한다. 시골은 으레 늦으니 얼른 달린다. 책짐을 진 채 땀내어 달리니 06:45요, 막 지나가려는 시골버스를 손흔들며 잡는다. 고맙게 타서 자리에 앉으니 왼뒤꿈치가 송곳으로 쑤시듯 아프다.


  논두렁을 달릴 적에 오른고무신이 자꾸 벗겨지려 했다. 새신으로 바꾼 지 한 달이 안 되는데 벌써 닳을 수 없을 텐데. 벗겨지려는 오른고무신에 마음을 쓰며 달리느라 왼발이 너무 힘들었구나 싶다. 아주 빡빡하게 집을 나선 터라 논두렁을 달리면서 쉴 겨를을 못 냈다. 오른고무신이 벗겨지려 하더라도 왼발에 더 힘주면서 끝까지 달렸다.


  고흥읍에서 시골버스를 내릴 즈음은 못 걷을 만큼 아프고 쑤신다. 겨우 순천 시외버스를 탄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내리고서 서울버스로 갈아탈 적에 끙끙거린다. 정안쉼터에서 뒷간을 가려고 내리려다가 그만둔다. 도무지 못 걷겠다. 그런데 서울길 한켠에서 길이 제법 막힌다. 서울에 일찍 닿으려고 부산을 떨었으나 덧없는 짓이 된다. 그러나 순천 08:40 서울버스가 아닌 고흥 08:30 서울버스를 탔다면 서울에 훨씬 늦게 닿았으리라.


  이러구러 서울나루에 닿아서 내리자니 왼발이 덜 욱씬거리지만 무척 아프다. 절름절름 천천히 걷는다. 아기 아장걸음보다 느릿느릿 나아간다. 이제 쇳길(전철)을 갈아탄다. 안국동 가는 데까지 선다. 선 채로 있자니 발이 덜 아프다. 안국나루에서 내리고 걸으니 아직 아프되 이렁저렁 내딛을 만하다. 오늘 뵐 분을 뵙고서 등짐을 내리니 한결 수월하다. 뒤꿈치가 찌릿찌릿하되 아주 느리지는 않다.


  잎물집에 앉아서 이야기하고서 일어난다. 꽤 낫는다. 다시 쇳길을 탄다. 빈자리가 나서 앉는데 옆에 털썩 앉은 아지매가 손전화를 만지작대며 자꾸 옆구리를 친다. 자리에서 일찌감치 일어선다.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둔다. 짐을 메고서 걷는다. 섬돌을 오르내릴 적에는 거의 안 아프다만, 판판한 길을 걸을 적에는 찌릿하구나.


  마침내 부산버스 타는 데까지 온다. 모든 짐을 내리고서 맞이칸에서 뒤꿈치를 주무르고 푼다. 곧 나으리라. 서울서 부산으로 달리는 한나절(4시간)이면 꽤 나을 테지. 서울-부산 기차표는 빈자리가 아예 없고 비싼데, 버스표는 빈자리가 널널하고 싸다. 사상나루로 가면 쇳길을 갈아타야 하니 노포나루로 간다. 노포나루에서는 쇳길을 안 갈아타고서 〈책과아이들〉까지 바로갈 수 있다.


  고흥은 비가 더 내릴까. 우리집은 이제 늦여름비가 그칠까. 부산은 날이 갤까. 부산도 밤에 별을 만날 수 있을까. 어젯밤 고흥에서는 쏟아지는 미리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씻은 밤하늘은 가없이 반짝이는 별잔치이다. 늦여름 가시는 길에 조금은 쉬엄쉬엄, 아니 제대로 싸목싸목 다니자. 땀흘린 등판이 축축하다. 2026.8.19.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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