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 -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12.

까칠읽기 31


《숙론》

 최재천

 김영사

 2024.5.10.



요사이 들르는 마을책집마다 《숙론》(최재천, 김영사, 2024)이 어김없이 있기에, 틈틈이 조금씩 읽었다. 마을책집에서 읽을 적마다 책집지기님한테 “이 책 읽어 보셨나요?” 하고 여쭈는데, 먼저 읽고서 들인 분은 못 만났다. 그저 큰책집이건 작은책집이건 놓기만 하면 잘 팔린다고들 말씀한다. 꼭 한 곳에서만 책자취를 살폈는데, 첫판이 5월 10일이고, 넉벌을 5월 13일에 찍었다고 한다. 장난도 아니고 무슨 날마다 새로찍기를 하나?


많이 찍어서 널리 판다고 자랑하려는 작은 장난일 텐데, “토론討論에서 숙론熟論으로”라든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를 책날개에 넣기도 하는데, 엮은이도 글쓴이도 길을 잃고서 종잡지 못 하는구나 싶다. ‘숙론’은 ‘숙고’하고 결이 비슷하기는 하되, ‘토론’은 ‘토벌’하고 결이 비슷하다. 이미 나라와 배움터에서 ‘민주주의 = 자유 + 토론’으로 달달 외우며 길든 터전인데, 이 뿌리에서 오른 줄기와 가지와 숲을 어떡해야겠는가? 그저 삽차로 밀어서 서울(신도시)을 닦으면 될까? 요모조모 가지치기를 해서 보기좋게 쉼터(공원)로 꾸미면 될까?


‘토론 = 쳐내는 말’이고, ‘숙론 = 익히는 말’일 텐데, 이제부터 ‘익힘말’로 가려면 뭘 해야 할는지 제대로 짚을 노릇이다. ‘익힘말’로 나아가려면 ‘살림짓기’를 할 일이요, ‘살림 = 살리는 길과 빛과 손’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살림 = 집안일’이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치울 뿐 아니라, 아기를 낳아서 돌보고 같이 놀고 소꿉하고 노래하면서 천천히 하루를 즐기는 길이 바로 ‘살림’이다.


말만 주고받는 대서 ‘익힘말(숙론)’로는 안 간다. 집안일부터 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어른으로 설 때라야 비로소 ‘익히는 말’이 피어나서, 서로 도란도란 마음을 나누고, 이 마음이 ‘이야기’로 깨어난다.


‘치다’는 ‘짐승치기’처럼 “먹이를 주어서 몸집을 불리다”로도 쓰되, ‘때리다’라는 말뜻이 바탕이고, ‘가지치기’처럼 ‘자르다’로도 쓴다. 때로는 “그렇게 치기로 한다”처럼 어느 결로 ‘보다’를 나타내는데, 이때에도 ‘쳐낸 바대로 본다’일 뿐이다. ‘치다·치우다’는 맞물린다. 말끔하게 없애려고 친다. ‘토론’이란, 저쪽하고 이쪽하고 그쪽이 불꽃이 튀도록 싸우고 부딪히고 다투면서 어느 하나만 말끔히 남도록 하는 일이다. 여러모로 보면, ‘민주주의’는 높고낮음이 따로 없이 모든 길이 서로 죽도록 싸우는 ‘자유’가 있는 셈이다. 마음껏 싸워서 끝까지 버티고 이기는 쪽을 따라가는 길이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선거는 ‘1등 뽑기’이다. 한 놈만 뽑아서 밀어주는 틀이다.


‘익히다’는 ‘잇다·있다·이다’하고 말밑이 같다. ‘읽다 = 일다 + 익다’이다. 물결이 일듯 새롭게 일으키면서 속으로 고이 맞아들여서 따뜻하게 깨우는 길이 ‘읽다’라는 낱말이 나타내는 참뜻이다. ‘잇다’는 ㅅ(사이시옷)이 깃드는 바대로 사이에 놓은 다리가 있어서, 어제하고 오늘이 만나는 목이면서 너랑 나를 하나로 삼는 길이다. ㅅ을 겹으로 붙이는 ㅆ인 ‘있다’는 ‘사이 + 사이 = 틈새’이니, 하늘과 땅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터·자리·판·마당·마루’로 바꾸어서 그대로 머무는 결을 나타낸다. ‘이다’는 짐을 머리에 놓는 결이면서, ‘올리다’를 나타낸다. ㄱ을 받침으로 삼는 ‘익다’란 무엇이겠는가? ㄱ은 우리말에서 ‘길·가다’를 빗댄다. 머리에 놓아서 나아가는 길이 ‘익다’이니, 씨앗을 품고서 찬찬히 나아가서 속으로 가득한(찬) 삶을 만나는 결을 나타낸다고 할 만하다.


우리말 ‘이야기 = 잇는 말 = 잇는 길’이다. 우리말 ‘말’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이다. ‘이야기를 한다 = 말로 서로 잇는다 = 말을 나눈다 = 마음을 나눈다’인 얼거리이다. 이 얼거리를 모르거나 안 배웠다면, “이야기를 나눈다”처럼 겹말을 쓰고 만다. 이미 ‘이야기 = 나누는 말’인 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이는 이야기를 못 한다.


‘말’은 얼마든지 혼자서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둘이나 여럿이 서로 오가야만 이룬다. 한쪽만 잔뜩 말을 쏟아내면 ‘이야기’가 아닌 ‘혼잣말’이다. 또는 ‘시킴말(심부름)’이다. 이야기라 할 적에는, 서로 고르게 말(마음)을 펴고 나누면서, 서로 고르게 말(마음)을 받아들이는 사이에, 서로 고르게 생각을 살찌우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자리와 길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에 이야기가 있는가? 바로 먼먼 옛날부터 ‘임금님·벼슬아치·글바치·나리’가 아닌, ‘흙을 일구고 아이를 낳아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순이돌이’한테서 이야기가 피어났고 자랐고 흘렀다. 요새는 ‘옛이야기’처럼 ‘옛-’을 앞에 붙이는데, 수수하게 흙살림을 짓던 순이돌이는 그저 ‘이야기’만 했다. 가르침도 배움도 아닌 그저 이야기이다.


수수한 순이돌이는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살림을 짓고 가다듬는다. 순이는 돌이를 가르치고, 돌이는 순이를 일깨운다. 순이는 돌이를 타이르고, 돌이는 순이를 돌아본다(돌본다). 이러는 사이에 둘은 사랑으로 아기를 낳는다. 순이는 아기를 배어 낳기까지 집안일을 못 한다. 돌이는 진작부터 온갖 집안일을 스스로 맡아야 하는 줄 깨닫고, 순이가 아기를 돌보고 젖을 물리는 사이 모든 집살림을 손수 해내되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맡아야 하는 줄 익힌다. 이리하여, 순이는 아이한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말과 노래와 이야기로 부드러이 들려주는 몫이다. 돌이는 순이와 아이가 즐겁게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앞으로 철든 어른으로 피어나도록 모든 집안팎일을 맡을 뿐 아니라 살림을 알뜰살뜰 여미는 듬직한 일꾼으로 거듭나는 몫이다.


순이는 새 숨결을 몸에 품으면서 사랑을 깨닫고, 언제나 숲을 헤아리면서 앞으로도 온누리에 새 숨결이 푸르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말에 얹어서 아이하고 돌이한테 이야기로 들려준다.


돌이는 오롯이 스스로 집안팎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해내는 몸으로 거듭나야 하는 줄 알아채는데, 늘 아이가 저(돌이·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배우기에, 몸짓 하나조차 허투루 기울지 않도록 가다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아본다. 돌이는 일하면서 일깨운 하루를 아이하고 순이한테 이야기로 들려준다.


《숙론》을 다시 짚어 본다. 못 쓴 책이 아니다만, 알맹이가 안 보인다. 이제 이 글쓴이쯤 되는 발자국하고 나이라면, 서울을 기꺼이 버리고서 시골로 갈 노릇이다. 유투브로 ‘말발’만 펴지 말고, 이제는 시골에서 들숲바다를 품으면서 조용히 두꺼비 노래를 듣고, 풀개구리 낮잠을 보고, 제비 날갯짓을 배우는 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가르침teaching’이라든지 ‘학교school’라든지 ‘교육education’처럼 쓰는 글이란 얼마나 덧없는 자랑질인가? 이런 글쓰기는 일제강점기 글바치가 ‘가르치다敎授·訓戒’라든지 ‘학교學校’라든지 ‘교육敎育’이라 적는 글하고 뭐가 다른가?


우리말 ‘가르치다·배우다’나 ‘이야기·말·마음’은 임금님이 안 지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흙살림을 짓고 집을 짓고 밥을 차리며 늘 노래하고 춤추던 수수한 순이돌이가 지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바라볼 곳은 ‘인문지식·교육’이 아닌, ‘시골·살림·숲·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배움터에는 ‘성교육’만 있을 뿐 막상 ‘사랑’이 없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친환경·환경운동’은 있되 정작 ‘숲’과 ‘풀꽃나무’가 없다.


온누리를 이은 모든 겨레와 나라에서도 매한가지인데, 글로 남은 자국만 들여다보면서 가라사대를 한다면 늘 쳇바퀴 서울잔치이다. 글을 모르고 붓과 종이를 쥔 일조차 없이, 오직 말로 마음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편 수수한 사람들이 일군 열매인 ‘철’을 바라보고 깨달을 적에 ‘눈’을 뜨면서 ‘살림’을 알아보겠지.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강의·강론·강좌’는 거의 혼잣말이다. ‘이야기’는 ‘나눔말’이다. 아이한테서 배우기에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두꺼비한테서 배우기에 이야기를 한다. 빗물한테서 배우니 이야기를 한다. 구름과 해와 별한테서 배우니 이야기를 한다. 다른 책에서 따오는 인문강연을 글쓴이 스스로 멈출 줄 안다면, 이제야말로 제대로 어떤 ‘책’을 쓰셔야 할는지 알아보겠지? 감투꾼(국회의원)한테 건넬 책은 쓰지 말고, 글쓴이 스스로 늘 되읽고 곱씹을 글을 먼저 말로 펴서 들숲바다 이웃숨결하고 이야기를 해보시기를 빈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 찾아야 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야 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림을 찾고, 사랑을 찾고, 숲을 찾고, 하루를 찾고, 마음을 찾아서, 이야기를 찾을 적에, 다 다르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다르면서 생각을 담는 오늘로 다가가고 다가설 수 있다. 마음에 닿으려고 다스리기에 말을 담는다. 마음을 담는 말을 꾹 닫아건다면 담벼락만 높이 쌓겠지.


이야기란, 닫힌 담벼락을 살살 다독이면서 풀어내는 길이다. ‘토론·숙론’도 아닌, ‘교육·인문’도 아닌, 그저 ‘살림을 사랑으로 숲빛으로 짓는 사람’으로서 풀빛을 닮으려는 눈빛으로 다가온다면, 다 다른 사람이 이제는 닦달도 다그치기도 아닌, 부드러이 당기는 바람결로 가볍게 바다에 닻을 내리면서 사랑을 담뿍 길어올리는 샘물을 이루리라고 본다.


ㅅㄴㄹ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 세계에도 배움은 넘쳐난다. 그러나 가르침teaching은 거의 없거나 매우 드물다

→ 사람 말고 다른 숨붙이도 널리 배운다. 그러나 거의 안 가르치는 듯하다

7


일일이 설명하고instructing 지도하지coaching 않는다

→ 하나하나 풀이하고 이끌지 않는다

→ 하나씩 들려주고 앞장서지 않는다

8


우선 비교적 평평한 돌 위에 견과를 올려놓은 다음

→ 먼저 판판한 돌에 굳은알을 올려놓은 다음

→ 처음은 반반한 돌에 굳열매를 올려놓은 다음

8


이런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급기야 학교school를 만들었다

→ 이런 길을 더 알뜰히 열려고 바야흐로 배움터를 세운다

→ 이런 일을 더 알차게 하려고 드디어 배움터를 연다

9


체계적 가르침, 즉 교육education을 시작한 것이다

→ 차근차근 가르친다

→ 차곡차곡 가르친다

→ 찬찬히 가르친다

9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결기로 충만해

→ 끝내 저놈을 누르겠다면서

→ 꼭 저 녀석을 무찌르겠다면서

15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 익힘길은 저쪽을 누르려는 뜻이 아니라 저쪽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저쪽이 다르게 보는지 살펴보고서 내 생각을 다듬으려는 일이다

→ 익힘꽃은 남을 누르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왜 나와 남이 다르게 보는지 헤아리고서 내 뜻을 다듬으려는 길이다

19


이 책의 집필을 2015년 무렵에 시작해 탈고를 거의 앞둔 시점에서 졸지에 《최재천의 공부》를 내게 되었다

→ 이 책을 2015년 무렵부터 써서 거의 마칠 무렵에 《최재천의 공부》를 얼결에 냈다

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율리우스 베르거 지음, 나성인 옮김 / 풍월당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12.

까칠읽기 18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율리우스 베르거

 나성인 옮김

 풍월당

 2021.11.10.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율리우스 베르거/나성인 옮김, 풍월당, 2021)는 ‘Tautropfen’을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책이름이 뜬금없다. 옮긴이는 “작가의 의도를 우리 독자들에게 좀더 풀어 전달하기 위해 국역 제목”을 바꾸었다고 적는다. 글쓴이 뜻은 옮긴이가 잘 옮기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글쓴이가 수수하게 ‘이슬방울’이라고만 이름을 붙였고, 이 책이 태어난 이웃나라 엮음이와 펴냄이가 수수하게 붙인 뜻부터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보면, 우리나라는 갈수록 허울과 겉멋과 치레가 넘친다. 이슬을 ‘이슬’로 못 보고, 풀을 ‘풀’로 못 보고, 비를 ‘비’로 못 본다. 고스란히 보는 눈을 스스로 잊고, 그대로 읽는 마음을 스스로 잃고, 꾸밈없이 짓는 손길을 스스로 버리는 우리나라이다. 이런 나라인 줄 헤아린다면 책이름을 ‘이슬방울’처럼 수수하게 붙이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길 수 있다.


다만, 참빛을 잊고 잃다 못해 버리기까지 하는 우리나라이니, 더더욱 수수하게 이름을 차려야 알맞다고 느낀다. 참빛을 잃고서 허울에 갇힌 사람들한테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처럼 내려다보는 말씨로 나무란다면 거꾸로 더 쌀쌀맞으리라. 그리고 옮김말씨가 영 우리말씨가 아니다. 이슬은 독일에서도 이슬이고 프랑스에서도 이슬이고 일본에서 이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슬이다. 이와 달리, 이 나라에서 말빛은 차츰 사라지고, 말씨를 자꾸 뜬금없이 심을 뿐더러, 말결이 물결처럼 노래로 흐르던 숨결을 스스로 등돌린다고 느낀다.


밤과 새벽과 아침에 다 다른 이슬을 밤과 새벽과 아침에 늘 새롭게 맞이해 보기를 빈다. 겨울과 여름은 이슬빛이 다르고, 봄과 가을은 이슬맛이 다르다. 철빛을 읽고 물빛을 품고 살림빛을 안을 적에 비로소 우리말씨도 이웃말씨도 제대로 가르는 눈매를 가다듬으면서, 글이건 그림이건 빛꽃(사진)이건 집안일이건 바깥일이건 싱그럽고 맑게 추스르겠지.


#BergerJulius #Tautropfen


ㅅㄴㄹ


가끔씩 종이쪽지가 붙곤 했다

→ 가끔 종이쪽이 붙는다

→ 종이가 붙곤 한다

5쪽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 이슬소리를 들어라

11쪽


독일어 원서의 제목 ‘Tautropfen’을 그대로 옮기면 ‘이슬방울’이 된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우리 독자들에게 좀더 풀어 전달하기 위해 국역 제목은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로 정했다

→ 독일판 ‘Tautropfen’을 그대로 옮기면 ‘이슬방울’이다. 그러나 글쓴이 뜻을 좀더 풀어서 들려주려고 한글판은 ‘이슬소리를 들어라’로 붙인다

12쪽


서른여섯 컷밖에 찍을 수 없는 아날로그 카메라가 있다

→ 서른여섯 칸밖에 찍을 수 없는 오랜 찰칵이가 있다

15쪽


이슬방울을 촬영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발견과도 같았다

→ 이슬방울을 찍을 때마다 새롭게 보았다

→ 이슬방울을 찍으며 새롭게 눈을 떴다

15쪽


내 인생에 내린 이슬방울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 적었다

→ 내 하루에 내린 이슬방울 이야기를 여기 적는다

→ 내 삶에 내린 이슬방울을 여기에 적는다

16쪽


때때로 인생에 각인되는 순간이 있다

→ 때때로 이 삶에 남는다

→ 우리 삶에 아로새기는 때가 있다

→ 문득 남는 때가 있다

22쪽


페스티벌이 끝난 뒤 나는 오래도록 품고 있던 계획을 추진하고 싶었다

→ 오래도록 품은 꿈을 한마당이 끝난 뒤에 펴고 싶었다

→ 오래도록 꿈꾸던 일을 잔치가 끝난 뒤에 벌이고 싶었다

23쪽


물론 우리는 날씨처럼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눴다

→ 우리는 날씨처럼 흔한 이야기도 했다

→ 우리는 날씨 이야기도 가볍게 했다

26쪽


정신 지체를 지닌 우리 누나에 대해 소피아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 느림보 우리 누나인데 소피아는 유난히 마음을 기울였다

→ 소피아는 느린꽃 우리 누나를 눈여겨보았다

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일일책 - 극한 독서로 인생을 바꾼 어느 주부 이야기
장인옥 지음 / 레드스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10.

까칠읽기 30


《1日1冊》

 장인옥

 레드스톤

 2017.11.15.


  

《1日1冊》(장인옥, 레드스톤, 2017)을 쓴 분은 대구 아줌마라고 한다. 집안일을 도맡던 어느 날 책읽기에 사로잡혔고, 날마다 한 자락씩 읽으려고 애쓴 끝에 이처럼 손수 책을 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누구나 말을 하듯, 이 말을 가만히 옮기면 글이다. 아무렇게나 하는 말은 아무렇게나 옮기는 글일 테지만, 마음을 담아서 들려주고 나누려는 말이라면, 마음을 옮긴 글로 피어나게 마련이다. 글쓴이가 ‘아줌마’이건 ‘아저씨’이건 무엇이 대수롭겠는가. 아줌마도 아저씨도 아닌 젊은이만 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배움끈(학력)이 길어야 글을 쓸 수 있지 않다. 마음이 없는 채 재주를 부리는 글이라면 겉멋이 흐를 뿐이다. 온누리를 숲빛으로 푸르게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꾸면서 쓰는 글이 아니라면 허울이 그득할 뿐이다. 사람으로서 스스로 하루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으레 글치레에 말치레로 번진다. 모든 어른이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랐듯, 몇 살이라는 나이를 머금든 늘 어린이 곁에서 함께 읽고 새기며 노래하려는 마음을 건사할 때라야 비로소 글빛이 살아난다.


《1日1冊》이라는 책이름으로도 이미 엿보듯, 글쓴이는 자꾸 멋을 부린다. “책 좀 읽”으면 “글재주를 좀 부려”야 할까? 해묵은 글바치 흉내를 내지 말고, “1日1冊”이 아니라 “하루한책”이면 넉넉하다. “나날읽기”나 “하루읽기”처럼 투박하게 삶을 돌아볼 만하고, “날마다 책읽기”라 할 수 있다. ‘수불석권’이니 ‘주일무적’이니, 자꾸 “다른 책에서 기웃거리면서 따온 한자말”을 곳곳에 끼워넣는 대목이란 얼마나 아쉬운가. 살림하는 아줌마로서 삶을 사랑한 길에서 지핀 수수한 살림말로 이 책을 여미었다면 대단히 빛났으리라. 멋부리는 글이 아니라, 살림하는 글로 얼마든지 책읽기를 밝힐 만하지 않은가? 멋부리면 오히려 멋없고 맛없다. 멋을 내려놓으면 살림빛이 살아나면서 사랑스러운 글이 깨어나게 마련이다.


ㅅㄴㄹ


조금도 특별할 게 없는 한 주부가 책을 읽고 독(讀)한 여자가 되었다

→ 조금도 대단하지 않은 살림순이가 책순이가 되었다

4


가끔 책을 통해 ‘선하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간단한 에세이를 접했다

→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가끔 단출히 삶글을 읽었다

11


쇼핑과도 담을 쌓고 지냈는데, 책 쇼핑을 했다

→ 사들이기와 담을 쌓았는데, 책을 사들였다

35


무작정 추천도서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 그냥 으뜸책을 시켜댔다

36


책 속 글귀는 천 년 묵은 산삼이었다

→ 책에 나온 글은 즈믄해 멧삼이다

36


성인, 위인, 성공자는 수불석권(手不釋卷: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고 늘 글을 읽는 것)한다

→ 어른, 빛님, 이룬 사람은 손에서 책을 안 놓는다

→ 꽃어른, 마음어른, 꿈을 이룬 이는 늘 책을 읽는다

37


자기를 이김이 진짜 강함이다

→ 나를 이겨야 제대로 단단하다

→ 스스로 이겨야 참말로 굳세다

65


과정의 시간이야말로 정성 들여 우려내는 진국의 시간이다

→ 지나가는 날이야말로 살뜰히 우려내는 때이다

65


책 읽기의 제1원칙은 바로 무대뽀 정신이다

→ 책은 첫째로 덮어놓고 읽는다

→ 책은 무엇보다 묻지 말고 읽는다

142


마음을 다잡고 정신집중을 해야 한다

→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176


전심을 다하는 독서는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주일무적(主一無適) 하는 것이다

→ 온마음을 다하여 읽으려면 다른 곳에 눈을 기울이지 않는다

→ 온넋을 다하여 읽자면 다른 곳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17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4.

까칠읽기 29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문학동네

 2018.11.23.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문학동네, 2018)는 틀림없이 ‘뚜벅이’ 이야기일 텐데, 어쩐지 뚜벅뚜벅 발소리는 안 나는 듯하다. 꽤 걷는다고 밝히기는 하는데, “걸어다니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다”는 줄거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쓴이가 “걷는 사람”이라고 안 밝히는 자리에서 으레 풀어내거나 흘러나올 만한 줄거리만 가득하다.


책을 다 읽고서 돌아본다. 이 책은 “하정우, 나(내 연기생활)를 말한다”쯤으로 붙여야 어울린다. 그냥 ‘하정우’라는 분이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고 밝히는 얼거리요 줄거리이다. 사람들 앞에서 꽃돌이(남자 배우)로 지내온 길을 ‘한 발짝씩 뗐다’는 뜻으로 본다면, 이 책이름이 아주 틀리지는 않으나, 군데군데 “많이 걸어다녔다”고 드러내는 글자락은 오히려 ‘자랑’ 같다.


글쓴이 스스로 밝히기로는, 머리말부터 ‘자랑할 생각 없’이 썼다고 하지만, “이렇게 돈 잘 벌고 이름값 있는 사람”이 잘 걸어다닌다면서 오히려 자랑하는 얼개로 흘렀다고 느낀다. 이미 여러 곳에 얼굴을 내밀거나 팔면서 “하고픈 말을 많이 할” 텐데, 따로 책을 쓴다고 할 적에는 “내가 나로서 천천히 걸으면서 둘레를 다시 바라보고 마음속을 새롭게 들여다본 삶”을 그저 발바닥으로 옮길 일이었으리라 본다. ‘국토대장정’을 어떻게 했을까? “국토대장정을 했다”라고만 하고, 막상 하루하루 어떻게 걸었다든지 걸으며 어떠했다든지 같은 이야기는 아예 없다. 집하고 일터 사이가 꽤 멀지만 자주 걷는다는데, 자주 걷는다면서 하루하루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지 같은 이야기는 없다. 뭔가?


“자랑할 마음이 없다”고 밝히는 말이 ‘자랑’인 줄 눈치채지 못 했다면, 부디 알아채기를 빈다. 그저 걸으면 된다. 걷는 사람은 떠들지 않는다. 그냥 걸어다니면 된다. 걸어다니는 하루를 누가 자랑하는가? 두바퀴를 느긋이 타는 사람도 그저 두바퀴를 달릴 뿐이다. 자랑하려고 걷거나 두바퀴를 탄다면, 이 삶이란 얼마나 안쓰럽고 딱한가? “난 이만큼이나 걷는다구!” 하고 밝히려고 걷는다면, 그야말로 왜 걸어다니는 셈일까? 마치 “난 국산품을 사랑하기에 제네시스를 탄다구!” 하고 밝히는 분들하고 매한가지이다.


저잣마실을 걸어서 다니려나? 책집마실을 걸어서 하려나? 이웃마실을 걸어서 다니려나? 글쎄, 하정우 님이 “걷는 사람”이기는 하다고 느끼지만, ‘왜’ 걷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걷는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려고 걸어왔다면, 이제는 “그냥 걸어다니는 수수한 이웃 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빌 뿐이다.


ㅅㄴㄹ


내가 이동거리를 말할 때 쓰는 단위는 ‘편도 몇 보’가 되었다

→ 나는 길을 ‘가는데 몇 걸음’처럼 말한다

→ 나는 다닐 때 ‘가는길 몇 발’처럼 말한다

7쪽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나는 이 책으로 누구를 가르치거나 내 삶길을 자랑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 나는 이 책을 쓰며 누구를 가르치거나 내 삶결을 자랑할 뜻이 아예 없다

10쪽


무대에서 슈트를 입고 멋쩍은 웃음을 짓던 나는 얼마 후 등산화를 꿰어신고 길을 나섰다

→ 마루에서 차려입고 멋쩍게 웃던 나는 얼마 뒤 멧신을 꿰고 길을 나섰다

→ 위에서 빼입고 멋쩍게 웃던 나는 얼마 있다가 멧길신을 꿰고 길을 나섰다

21쪽


수많은 소동과 사건 끝에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 숱한 너울과 골치 끝에 나라걷기를 마치고

→ 온갖 물결과 벼락 끝에 가로질렀고

→ 갖은 사달과 불굿 끝에 나라마실을 마치고

22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 나는 길에서 늘 즐거웠고, 자주 웃었다

→ 나는 걸으며 언제나 즐거웠고, 자주 웃었다

25


과체중인 사람에겐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치는 활동인 것이다

→ 무거운 사람은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친다

→ 큰사람은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친다

46


시간상으로는 루트1과 비교했을 때

→ 짬으로 길1과 견줄 때

→ 길1보다 얼마나 걸리는지 잴 때

→ 길1하고 얼마나 다른지 따질 때

63


바게트 같은 빵도 사오면 한 번에 다 먹어치우기 어려우므로 바로 썰어서 냉동보관한다

→ 막대빵도 사오면 하루에 다 먹어치우기 어려우므로 바로 썰어서 얼린다

134


침대에 누워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 본다

157


바빠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못하고 각자 책을 읽었다

→ 바빠서 따로 못 만나고 저마다 책을 읽었다

→ 바빠서 만나지 못하고 다들 책을 읽었다

209


한글의 장음과 단음까지도 가려듣는다

→ 한글을 긴소리 짧소리까지 가려듣는다

28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화로운 삶 - 헬렌과 스콧 니어링이 버몬트 숲속에서 산 스무 해의 기록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29.

까칠읽기 14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

 류시화 옮김

 보리

 2000.4.15.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류시화 옮김, 보리, 2000)은 “Living The Good Life”를 옮겼다고 한다. “즐겁게 살기”나 “잘 살기”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이 처음 한글판으로 나오던 무렵에 ‘보리출판사 영업부 막내’로 지냈고, 갓 찍어서 펴냄터에 처음 닿은 책을 밤새워 읽으면서 몇 가지를 느꼈다. 첫째, 처음 받은 옮김글을 그렇게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엮은이가 영어를 맞대면서 바로잡은 옮김말씨라지만, 얄궂거나 아리송한 대목이 잔뜩 있다. 둘째, 2000년에 ‘수습(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달삯으로 62만 원을 받는 나로서는 뜬구름 잡거나 텅빈 소리 같았다. 셋째, 나는 두다리(보행자)나 두바퀴(자전거)로만 살아갈 마음인데, 글쓴이는 이미 쇳덩이(자동차)를 아주 즐길 뿐 아니라, 니어링 님은 쇳덩이를 버릴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 넷째, 이 책으로는 뭔가 줄거리를 제대로 들려주지는 못 한다고 느껴서, 《The Maple Sugar Book》을 따로 사서 읽었는데, ‘어떻게 일했는가’를 다룬 책이 훨씬 낫더라. 《Living The Good Life》가 아니라 《The Maple Sugar Book》을 읽는 길이 우리나라에도 이바지하리라 느꼈다. 다섯째, ‘강연·여행’을 바탕으로 ‘하루 한나절(4시간) 일하기’는 너무 허울스럽더라.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라면 ‘온하루(24시간) 일하기’이다. 아이를 안 낳고서 둘이서 ‘강연 수입’만으로도 넉넉하다면, 두 사람처럼 땅도 널찍하게 장만하고, 쇳덩이를 굴리면서 여기저기 누빌 테지. 그러나 ‘강연 수입’이 없으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볼 사람한테는 아주 머나먼 소리일 수밖에 없다.


《조화로운 삶》은 나쁜책일 수 없다. 날마다 알맞게 일하면서 둘이 즐겁게 어우러지는 길을 부드럽게 들려준다. 아이를 안 낳겠다면, 또 앞으로 이 푸른별에서 아이가 더는 안 태어나도 된다고 여긴다면,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여러모로 돌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짝을 맺어서 아이를 낳는 길을 가지 않더라도 이웃집 아이를 사랑하려는 삶이라면, ‘우리 집 아이’를 넘어서 ‘온누리 모든 아이’를 헤아리고 품고 돌아보면서 사랑하는 길을 새롭게 짓고 싶은 살림이라면, 《조화로운 삶》은 퍽 심심할 뿐 아니라, 살갗으로 안 와닿는 줄거리라고 느낄 만하다.


2000년에 처음 읽은 이 책을 2024년에 모처럼 되읽었다. 스물네 해 만에 되읽었어도 두 사람이 걸은 길은 우리나라하고 안 맞아도 한참 안 맞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난하거나 수수한 사람’으로서도 넘볼 수 없는 ‘잘난(부자)’ 길이로구나. 잘난 길이 나쁠 일이란 없지만, 잘난 길이 ‘아름답다’거나 ‘어울림(조화)’이라고 덮어씌우려 한다면, 하나도 안 맞으리라 본다.


맨손과 맨몸으로, 쇳덩이(자동차) 없이, 땅을 장만할 밑돈이 없는 누구한테나, 이 삶을 어떻게 짓고 이 살림을 어떻게 일구고 이 사랑을 어떻게 펼 적에 스스로 빛나는 사람으로 설 만한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는 마음일 때라야, 비로소 ‘아름다움’에 ‘어울림’일 테지.


ㅅㄴㄹ


#LivingTheGoodLife #HelenNearing #ScottNearing


미국은 정해진 대로 파국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면 그만이었다

→ 미국은 그대로 무너지라고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 미국은 그저 사라지라고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5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 골칫거리를 풀려면

→ 근심을 씻으려면

5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 서울을 떠날 때 세 가지를 내다보았다

→ 큰고장을 떠날 때 세 가지를 뜻하였다

6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농사일을 만족스럽게 해냈다

→ 죽음거름을 안 쓰고도 논밭을 잘 지었다

→ 죽음재 없이도 땅을 건하게 일구었다

7쪽


우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 우리는 삶을 다독이지 못했다

→ 우리는 삶을 바꾸지 못했다

→ 우리는 삶을 풀어내지 못했다

8


용기를 내서 우리처럼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면 좋겠다

→ 기운을 내서 우리처럼 새길을 나서기를 빈다

→ 우리처럼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 우리처럼 꿋꿋이 해보기를 바란다

9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 게 아닐까

→ 새롭게 나서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지 않았나

→ 새롭게 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13


시골 일은 내 허리를 휘게 만드는 또 다른 중노동이 되지 않을까

→ 시골일로 허리가 휘지 않을까

→ 시골일을 하다가 허리가 휘지 않을까

13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

→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지어서 쓰기를 바랐고

→ 우리는 되도록 손수짓기를 바랐고

35


두 번째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 둘째는 아마 이렇게 물어본다

→ 둘째로 이렇게들 묻는다

54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웃 사람들 몇몇과 별 소득도 없는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 우리는 이 때문에 여러 이웃하고 덧없이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 우리는 이 일을 놓고서 여러 이웃하고 애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55


흐르는 물을 발견하고 나자 넘치는 물을 지하실 하수구로 내보내는 문제에 부딪쳤다

→ 흐르는 물을 찾고 나서는, 넘치는 물을 수챗구멍으로 내보내야 했다

76


돌에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다

→ 이렇게 돌을 아끼는 사람이 또 있다

→ 이렇게 돌을 살피는 사람이 또 있다

84


숲 속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더 많은 양식이 필요해지자

→ 숲밭을 찾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먹을거리도 늘려야 하기에

→ 숲밭을 찾아오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밥살림이 모자라자

98


땅이 웬만큼 기울어져 있으면 우리는 계단식 밭을 만들었다

→ 좀 기운 땅이면 디딤밭을 일구었다

→ 퍽 기운 땅이면 다락밭을 지었다

99


화학 물질을 써서 밀가루를 표백했으며

→ 죽음재를 써서 밀가루가 하얗고

128


우리가 제분에 대해 꽤 자세하게 설명한 데는 까닭이 있다

→ 가루내기를 꽤 낱낱이 들려주는 까닭이 있다

→ 빻음질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까닭이 있다

128


수입이 적은 집의 생활비에서 먹을 거리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주거비인데

→ 벌이가 적은 살림돈에서 먹을거리 다음으로 집값이 차지하는데

157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풀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 이야기를 하며 풀 수 있다고 여겼다

→ 이야기로 풀 수 있다고 보았다

162


서로 돕는 전통을 세우려는 우리 노력이 성공했다면, 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 마을에 중요한 구실을 했을 것이다

→ 서로돕기가 자리를 잡으면 마을이웃은 두레를 짠다

→ 서로돕는 살림이 자리잡으면 마을사람은 품앗이를 한다

→ 서로도울 줄 알면 마을에서는 울력을 한다

178


우리가 시골을 선택했듯이, 우리는 지금도 도시보다 시골에서 사는 것이 사람 하나하나에게나 집단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시골로 갔듯이, 우리는 오늘도 서울보다 시골에서 살아야, 한 사람이며 모두한테 더 낫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시골에서 살듯이, 큰고장보다 시골에서 살아야, 한 사람한테나 모두한테나 더 낫다고 생각한다

20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