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처음 엄마라고 부른 날 - 일러스트레이터 홀링의 2인분 성장 일기
홍유경 지음 / 북극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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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0.12.

까칠읽기 143


《네가 처음 엄마라고 부른 날》

 홍유경(홀링)

 북극곰

 2021.5.8.



《네가 처음 엄마라고 부른 날》을 곱새긴다. 아기를 낳아서 곁에 둔 발자국을 글그림으로 묶은 줄거리이되, 이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 한다. 아기가 고작 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 미리맞기를 넉 벌째 했다는 대목에서 놀란다. 어버이라면, 아기몸에 무엇을 넣는지 낱낱이 짚어야 하고, 아기한테 늘 말로 들려주어야 한다. 아기는 젖만 물지 않는다. 젖은 아기한테 밥이라서, 젖을 문 아기는 어버이가 등을 토닥여서 트림이 나오도록 북돋기도 해야 하면서, 물도 조금씩 떠먹일 노릇이다.


아기가 가루(약)를 먹어야 한다면, 왜 아기한테 이런 가루를 먹이는지, 가루가 어떻게 이바지하는지 먼저 차분히 들려주고서 한참 기다릴 노릇이다. 아기는 못 알아듣는 말이 없다.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인 터라, 언제나 온마음으로 말을 들려주고 눈을 마주보면서 서로 한마음으로 흘러야 할 노릇이다.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기 앞서 돌봄길을 귀담아들을 노릇이고, 이제는 알찬 돌봄책이 아주 많으니 온갖 돌봄책도 미리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읽을 일이다. 둘레 어른한테서 들은 말이 있거나 책으로 짚었어도 놓치게 마련이다. 어버이란, 아이곁에서 늘 새롭게 배우는 자리이다.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버이’가 아닌 ‘어버이흉내’이다.


집안일에 끝이 있는가? 없다. 나무가 겨울이라고 해서 안 자라나? 깊이 잠드는 듯 보여도 나무는 겨우내 잎눈과 꽃눈을 키울 뿐 아니라, 나이테도 천천히 늘어난다. 아기가 온하루를 자라는데, 아이곁에 있을 어버이도 늘 새롭게 자라는 마음과 몸을 건사할 노릇이다.


아이가 자란대서 어버이가 늙지 않는다. 안 배우려고 하기에 늙을 뿐이다. 아기는 스스로 크고, 어른도 스스로 배운다. 둘은 처음에는 안고 업고 어르고 품는 사이였어도, 나중에는 나란히 손을 잡고서 걸어가며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함께 짓는 사이로 피어난다. 부디 아기한테서 배우고, 아이한테서도 배우고, 푸름이한테서도 배울 뿐 아니라, 어른이나 어버이란 이름은 우리 스스로한테도 배울 일이다. ‘힘든’ 일이 아니다. ‘힘들이는’ 일이다. ‘힘겨운’ 일이 아니다. ‘힘쓰’면서 기쁘게 웃고 ‘마음쓰’면서 활짝 웃는 일이다.


그나저나 ‘D-’가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인지 모르는 분이 수두룩하다. ‘D-day’는 불싸움(전쟁)을 세는 이름이다. 아기를 맞아들인 기쁜 삶과 살림을 그릴 적에는 끔찍한 불싸움에 붙이던 이름을 섣불리 매기지 않기를 빈다. 아이하고 살아갈 나날을 헤아리면서 ‘아무 말’이나 안 쓸 줄 아는 매무새여야 한다.


ㅍㄹㄴ


생후 네 번째 예방접종을 하고 왔다. 거니는 이번에도 으앙 으앙 으앙 세 번 울고 울음을 그쳤다. 아직 주사가 뭔지 몰라서 주삿바늘이 들어갈 때만 무서운가 보다. (D-60/56쪽)


거니가 잘 때 육아 서적을 읽는 건, 어쩐지 퇴근 후 집에 와서도 회사 일을 하는 기분이다. (D-85/79쪽)


처방은 지난번과 같았다. ‘일주일간 쉬었다가 다시 수유할 것’.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그때마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계속 수유하라는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D-90/82쪽)


동생을 업고 내 손을 잡고 아픈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서 병원에 모시고 다녔던 젊은 날의 엄마를. 그때의 엄마가 너무 가엽다. 내가 털어놓은 말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D-111/97쪽)


안아 줘도 잠시뿐이었다. 이렇게 서럽게 울 일이 뭐가 있을까. 여러 작전을 써 보다가 마지막에 비닐소리를 들려줬는데 그 소리를 듣고 진정이 돼서 잠이 들었다. (D-112/98쪽)


거니가 일찍 잠들어서 엄마랑 오붓하게 맥주를 마셨다. 그동안의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갔다. (D-158/134쪽)


나이 듦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거니가 자라는 만큼 내가 늙어 간다고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 (D-181/154쪽)


하루에 두세 시간이라도 어린이집에 보내면 지금보다 낫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은 엄마와 떨어지기 너무 이르겠지? (D-364/322쪽)


+


《네가 처음 엄마라고 부른 날》(홀링, 북극곰, 2021)


남편은 방문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안내하고 식사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 곁님은 찾아오는 살붙이와 동무를 이끌고 밥먹으러 다니느라 바쁘다

11쪽


모자동실(엄마와 아기가 같은 방에 있는 것) 두 시간 동안 기저귀를 세 번 갈았다

→ 나란칸 한나절에 기저귀를 석 벌 갈았다

→ 함께칸 한나절에 기저귀를 셋 갈았다

20쪽


나도 모유 수유 기본 자세인 요람 자세에서 풋볼 자세까지 익숙해졌다

→ 나도 눕혀서뿐 아니라 안고서 젖을 먹일 수 있다

→ 이제는 눕혀서도 안고서도 젖을 물릴 수 있다

21쪽


남편도 나도 당황의 연속이다

→ 곁님도 나도 자꾸 놀란다

→ 짝지도 나도 또 허둥댄다

→ 짝도 나도 내내 어리바리다

31쪽


원더웍스(아기의 급성장기. 평소보다 더 많이 보채기 쉽다) 기간이 찾아왔는지

→ 부쩍 자라려는지

→ 얼른 자라려는지

→ 껑충 크려는지

→ 바람처럼 크려는지

→ 활짝 피려는지

→ 활활 솟아나려는지

37쪽


유두 백반까지 다시 찾아왔다

→ 젖꼭지흉까지 다시 찾아온다

→ 꼭지고름까지 다시 찾아온다

→ 꼭지흰고름까지 다시 온다

→ 젖꼭지얼룩까지 다시 온다

42쪽


엄마표 음식을 실컷 먹고 밀린 이야기도 실컷 나누었다

→ 엄마밥을 실컷 먹고 밀린 이야기도 실컷 했다

49쪽


누군가의 처음을 보는 건, 그리고 그 존재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건, 굉장한 일인 것 같다

→ 누구 처음을 보고, 누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놀라운 일이다

→ 한사람 처음을 보고, 한사람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참 엉청나다

54쪽


나도 아기였을 때 젊고 서툰 엄마아빠에게 소중하게 다뤄졌을 것이다

→ 나도 아기일 때 젊고 서툰 엄마아빠가 알뜰살뜰 돌보았겠지

→ 젊고 서툰 우리 엄마아빠도 아기인 나를 고이 보살폈겠지

68쪽


남편이 모로반사를 막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 곁님이 활갯짓을 막으려고 새길을 찾았다

→ 짝꿍이 버둥짓을 막으려고 새로 찾아봤다

71쪽


내가 단유 문제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 내가 젖떼기로 허둥지둥 보내는 동안

→ 내가 젖끊기로 바삐 보내는 동안

→ 내가 젖막이로 덤벙대는 동안

84쪽


터미타임(아기의 상체 힘을 길러 주기 위해 엎어 놓는 것)을 하루 두 번씩 연습시키고 있는데

→ 하루에 두 벌씩 엎어놓는데

→ 하루에 두 판씩 엎드리기를 하는데

94쪽


오늘부터 4개월 차 아기가 되었다

→ 오늘부터 넉 달 아기이다

→ 아기는 오늘로 넉 달이다

→ 오늘로 아기랑 넉 달째 산다

106쪽


4개월 막바지 이유식을 시작했다

→ 넉달 막바지 젖떼기밥을 먹인다

→ 넉달 막바지에 젖을 뗀다

122쪽


나이 듦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 나이들기를 자주 곱씹는다

→ 나이를 자주 돌아본다

→ 나이를 자주 헤아린다

→ 나이드는 길을 자주 살핀다

15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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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실의 사계절
김효선 지음 / 낮은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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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8.20.

까칠읽기 138


《오춘실의 사계절》

 김효선

 낮은산

 2025.7.31.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보금자리’하고 ‘둥지’가 어떻게 비슷하면서 다른지 도무지 풀이하지 못 하거나 않는다. 보금자리나 둥지를 곁에서 지켜보거나 새를 늘 마주하는 삶이 아니라면, 두 낱말 ‘보금자리’하고 ‘둥지’를 가르지 못 한다. ‘둥우리’는 또 어떻게 다른지 모르리라.


‘보금자리’는 ‘보금(보곰) + 자리’이고, ‘둥지’는 ‘둥 + 지(짓·집)’이며, ‘둥우리’는 ‘둥 + 우리(울)’이다. ‘보금’은 ‘보다(돌보다·돌아보다)’를 밑동으로 삼는다. 알을 낳아서 어린새를 돌보는 자리라는 뜻이다. ‘둥지’는 둥글게 지은 집이라는 뜻이면서, 알을 낳아서 어린새를 둥글게 품는 곳이라는 뜻이다. ‘둥우리’는 둥글게 아우르며 사는 곳이라는 뜻이면서, 알을 낳아서 부드럽게 감싸듯 지키는 곳이라는 뜻이고.


새는 지붕을 얹지 않는 집을 지으면서 별과 바람과 해와 비를 고스란히 맞아들이는 삶을 지낸다. 어미새로 큰 뒤에도 비오는 날에 멀쩡히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하루를 살아가고, 빗살을 가르며 날지. 의젓한 숨빛과 살림결을 드러내는 이름인 ‘보금자리·둥지·둥우리’이지 싶다. 사랑으로 품는 집을 가리키면서 새집(새로운 집)을 가리키기도 하니, 서울에서 난데없이 어린이쉼터(용산어린이공원)를 밀어대면서 잿더미(아파트단지)를 올리려는 짓은 멈출 노릇이라고 본다. 어미새가 어린새를 헤아려서 보금자리를 짓고 둥지를 틀고 둥우리를 엮듯, 우리는 어른으로서 어린이가 앞으로 이 땅에서 즐겁게 지낼 집(살림터)을 물려줄 노릇이지 싶다.


《오춘실의 사계절》을 읽은 지 한 해가 넘는다. 둘레에서 사람을 속빛보다는 겉몸으로 따지거나 재려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도 스스로 떨치며 일어서려는 줄거리를 들려주는구나 싶었는데, 막상 이러한 줄거리는 첫머리에 조금 나오고서 차츰 옅다. ‘네철(사계절)’이란 무엇인가? 봄을 봄으로 마주보고, 여름을 여름으로 열고, 가을에 갈무리하면서 가고, 겨울에 겹겹이 품는 길이라서 네철이고, 한 해를 이루는 네 갈래 철을 헤아리기에 시나브로 어른이라는 길을 걷는다.


엄마(오춘실 씨) 이야기를 쓰려면 ‘엄마가 되어 봐야’ 한다. 엄마처럼 집일을 하고, 엄마마냥 집살림을 꾸리고, 엄마가 어떤 몸마음으로 삶을 견디고 버티고 오늘까지 남았는지 온통 겪을 노릇 아닐까. 엄마는 어떻게 나(글쓴이)까지 낳아서 가시밭길을 이겨냈는지 글쓴이(나)도 뼛속 깊이 느끼는 길을 걸은 다음에라야 비로소 책을 낼 만하지 않을까.


새랑 나란히 한집에서 지내지 않으면서 ‘새구경’만 하는 삶으로 새책(새를 다룬 책)을 쓰는 분이 많다. 풀과 나란히 한집에서 살아가지 않고서 ‘풀구경’만 하는 삶으로 풀책(풀을 다룬 책)을 쓰는 분도 많다. 아직 철들지 않았어도 ‘철이 안 든 대로’ 글을 쓰고 책을 내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내(글쓴이) 이야기’가 아닌 ‘엄마 이야기’로 책을 내려고 했다면, 그야말로 ‘엄마가 어떤 마음과 눈망울로 지난길을 헤쳐왔는지’ 몸소 살아내는 일부터 해야지 싶다. 엄마가 들려준 말을 몇 자락 옮겨적고서 끝이라면, 같이 헤엄터에서 노는 나날을 너무 길게 풀어놓으면, 이도 저도 아닌 밍밍한 알껍데기로 그친다.


보금자리에 알을 낳아서 어린새가 스스로 껍데기를 다 쫄 때까지 기다리고 지켜보는 어미새는 어떤 마음이겠는가. 어미새는 끝까지 기다리고 지켜본다. 어린새가 스스로 마지막 알껍데기를 다 쪼아내어야 비로소 어린새 털을 고르고 어루만지면서 품는 어미새이다.


ㅍㄹㄴ


분하고 억울한 할머니의 화를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35쪽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쑥쑥 자랐다.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가난하다는 것도 몰랐고 개천가 너머 얼핏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산다는 것도 몰랐다. 90쪽


아빠에게도 사정이 있었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덜 병들었을 것 같다. 아빠가 미우니까 최대한 아빠와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했다. 168쪽


“난 왜 엄마가 그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걸 몰랐지?” “내가 말 안 했으니까. 처음부터 알고 간 건 아니고 용역이 태워 준 대로 봉고차 타고 가 보니까 거기였어.” 187쪽


2024년 한 해 엄마는 폐품을 주워 192만 원을 벌었다. 205쪽


+


《오춘실의 사계절》(김효선, 낮은산, 2025)


김효선 MD가 쓴 리뷰를 읽고 나면 나는 언제나 울고 싶어졌다

→ 나는 김효선 돌봄이가 쓴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울고 싶다

→ 나는 김효선 지기가 쓴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울고 싶다

5쪽


할아버지는 그래서 엄마에게 춘실이라는 이름을

→ 그래서 할아버지는 엄마한테 춘실이라는 이름을

13쪽


엄마가 우아하고 세련된 이름을 가진

→ 엄마가 곱고 맵시있는 이름인

→ 엄마가 매끄럽고 멋진 이름인

→ 엄마가 꽃같고 산뜻한 이름인

→ 엄마가 그림같고 미끈한 이름인

→ 엄마가 멋있고 말쑥한 이름인

13쪽


할아버지 묘를 정리하느라 파묘하러 다녀온 날

→ 할아버지 무덤을 추스르느라 파내러 다녀온 날

→ 할아버지 뫼를 가다듬느라 헤치러 다녀온 날

14쪽


엄마는 염전에 나가 소금밭에서 심부름을 했다

→ 엄마는 소금밭에서 심부름을 했다

→ 엄마는 소금밭에 나가 심부름했다

16쪽


수영 초급반 수업은 정해진 루틴대로 돌아간다

→ 걸음마 헤엄이 모둠은 똑같이 돌아간다

→ 첫걸음 헤엄이는 판박이처럼 돌아간다

→ 햇내기 헤엄이는 쳇바퀴처럼 돌아간다 

20쪽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적당한 자리에 두고

→ 그렇게 태어난 책이 제대로 손길을 받을 수 있도록 제자리에 두고

→ 그렇게 나온 책이 제대로 읽힐 수 있도록 알맞게 두고

22쪽


내 일을 업신여긴다고 존재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는데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분리를 못 했다

→ 내 일을 업신여긴다고 나를 업신여기는 줄 받아들일 까닭은 없는데 나한텐 이 일밖에 없어서 못 갈랐다

→ 내 일을 업신여긴다고 나를 업신여긴다고 받아들일 만하지 않은데 나는 이 일밖에 없어서 못 나눴다

24쪽


오전 회의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해장할 생각을 하던 평범한 날이었다

→ 아침모임을 마치고서 낮에 속풀이를 하던 여느 날이다

→ 아침자리를 마치고서 낮밥에 속을 풀려던 어느 날이다

27쪽


서울은 언제 올라왔어?

→ 서울은 언제 왔어?

→ 서울에 언제 살았어?

36쪽


엄마랑 걸으면 항상 느려졌다

→ 엄마랑 걸으면 늘 느리다

→ 엄마랑 걸으면 느리다

45쪽


엄마는 배영에 도전한다

→ 엄마는 눕헤엄을 해본다

→ 엄마는 등헤엄에 나선다

→ 엄마는 옆치기로 간다

70쪽


상급 레인에서 초급 레인으로 놀러 왔다

→ 윗칸에서 밑칸으로 놀러왔다

→ 윗길에서 밑길로 놀러왔다

→ 윗자리에서 밑자리로 놀러왔다

75쪽


채광과 뷰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지어진 집들은 지붕을 맞대고 있었다

→ 빛받이와 둘레를 안 살피고 마구잡이로 지은 집은 지붕을 맞댄다

→ 볕자리와 보임빛을 안 따지고 마구잡이로 지은 집은 지붕을 맞댄다

91쪽


상부하고 사는 거지 뭐

→ 같이돕고 살지 뭐

→ 나누며 살지 뭐

→ 도우며 살지 뭐

95쪽


그렇게 몇 번 노 젓듯 스트로크를 하면

→ 그렇게 몇 판 삿대 젓듯 팔을 저으면

→ 그렇게 슬슬 삿대처럼 팔을 치면

100쪽


나이 든 여자들의 영법은 대체로 비슷하다

→ 아줌마는 비슷하게 헤엄친다

→ 나이든 분은 비슷하게 가른다

104쪽


“짤순이를 여기서 보네.” 수영장에 놓인 공용 탈수기를 보고 엄마는 20년 전 그 물건이 돌아온 듯 반가워했다

→ “짤순이를 여기서 보네.” 엄마는 헤엄터 함께짜개를 보고서 스무 해 앞서 살림이 돌아온 듯 반가워한다

109쪽


우리 집에선 아직 현역이다

→ 우리집에선 아직 잘 쓴다

→ 우리집에선 아직 멀쩡하다

→ 우리집에선 아직 그대로다

110쪽


평발이라고 못 한 거 없어

→ 판발이라고 못 한 일 없어

→ 납발이라고 못 한 적 없어

136쪽


그땐 하혈을 수시로 해서 얼굴이 샛노랬었다

→ 그땐 걸핏하면 피를 쏟아 얼굴이 샛노랬다

→ 그땐 늘 피가 나서 얼굴이 샛노랬다

141쪽


공공근로 일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30대 후반이던 엄마보다

→ 두루거리 일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서른 뒤쪽이던 엄마보다

→ 이바지 일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서른 끝자락이던 엄마보다

146쪽


이렇게 그해의 신입 회원들이 사라지면 남는 건 결국

→ 이렇게 그해 햇내기가 사라지면 남는 사람은 그만

→ 이렇게 그해 첫내기가 사라지면 남는 사람은 뭐

151쪽


백수 생활에 적응하면서 엄마는 식사량을 차차 줄였다

→ 엄마는 일없는 삶에 맞추면서 밥을 차츰 줄인다

→ 엄마는 빈손인 삶에 따르며 조금씩 적게 먹는다

→ 엄마는 뒹구는 삶이라면서 조금씩 적게 먹는다

153쪽


수영복만 봐도 수력을 알 수 있다

→ 물옷만 봐도 물길을 알 수 있다

→ 헤엄옷만 봐도 헤엄빛을 안다

157쪽


계단을 내려와 입수했다

→ 섬돌을 내려와 뛰어든다

→ 발판을 내려와 들어간다

160쪽


각 가정에서 16만 원씩 갹출해 수업 시작 전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사서 넣어 주자는 거였다

→ 집마다 16만 원씩 내서 배우기 앞서 아이들한테 샛밥을 사주자고 했다

→ 집집이 16만 원씩 모아 배움자리에 앞서 아이들한테 참을 사주자 했다

→ 집에서 16만 원씩 추렴으로 배움자리 주전부리를 사주자고 했다

→ 집집마다 16만 원씩 도리기로 배움마당 덧밥을 사주자고 했다

172쪽


엄마가 별안간 하체를 좌우로 돌리며 하는 사이드킥을 성공했다

→ 엄마가 냅다 아랫몸을 돌리며 옆차기를 해낸다

→ 엄마가 문득 아랫도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물살을 가른다

200쪽


용역 몫을 제하면

→ 넘긴 몫을 빼면

→ 바깥몫을 덜면

210쪽


엄마는 추위를 더 타게 됐다

→ 엄마는 추위를 더 탄다

→ 엄마는 더 춥다고 한다

24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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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의 연애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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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7.14.

까칠읽기 134


《수짱의 연애》

 마스다 미리

 박정임 옮김

 이봄

 2013.7.22.



짝을 맺는 길은 ‘짝맺기’이다. 짝을 지으니 ‘짝짓기’이다. 짝을 맺거나 짓더라도 사랑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사랑을 할 적에는 오롯이 ‘사랑’이라 할 뿐이다. 사랑을 하면서 짝을 맺거나 짓기도 하지만, 사랑을 하기에 한결같이 돌아보고 헤아리면서 한빛인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수짱의 연애》는 “수씨 짝맺기”라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한글판은 그냥 ‘수장(す-ちゃん)’이라 적는데, ‘짱(ちゃん)’은 일본말이다. ‘수’라는 이름에다가 귀염말씨인 ‘-짱’까지 그대로 붙여서 쓸 수도 있으나, 일본말로 일본이웃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면, 한글판으로 내놓는 자리에서는 다시 짚을 노릇이다. “-의 연애”도 이미 일본말씨이다.


그러면 온통 일본말씨인 “수짱의 연애”는 어찌 옮겨야 어울릴까?


우리 스스로 곱씹어야지. 사랑은 늘 하나이지만, 사랑을 이루는 빛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랑은 하나이되 사람마다 다르게 이 빛을 알아보고 눈뜨며 나누게 마련이다. 이웃말은 하나이되, 이 이웃말을 어떻게 우리 삶자리에 녹이고 풀어서 나누느냐 하는 길도 사람마다 스스로 짓는 말살림에 따라서 새롭게 피어날 만하다.


짝을 맺고 싶으면 짝맺기를 하면 된다. 요즘으로 본다면 ‘남자친구·여자친구’를 사귀면 된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사랑을 하면 된다. 그저 ‘사랑’일 적에는 겉몸이나 겉모습이나 나이나 돈이나 이름값을 아예 안 쳐다본다.


그런데 예부터 짝맺기(연애·결혼)를 할 적에는 먼저 ‘사랑’에 눈을 뜨려고 했다. 사랑에 눈뜨지 않은 채 섣불리 짝맺기를 하다가는 철없이 구는 줄 알았다. 사람살림이 깨어난 뒤로는, 아이가 철들어 어른으로 듬직하게 서는 길에 사랑을 알아차리면서 밝게 눈빛을 틔운다고 여겼다. 사랑으로 눈빛을 틔운 뒤에라야 ‘짝짓기(짝을 지어서 보금자리를 짓기)’를 하기에 사람으로서 반짝인다고 보았다.


오늘날은 그냥그냥 ‘연애·결혼’ 같은 일본스런 말씨를 쓰기는 하되, 막상 ‘맺음·지음’뿐 아니라 ‘사랑’마저 멀기 일쑤이다. 길을 찾아나선다든지, 사랑에 눈을 뜬다든지, 맺음과 지음이 삶에서 어떤 빛인지 헤아리는 줄거리가 없구나 싶은 《수짱의 연애》이다. “독신여성 자아실현 및 위로위안” 같은 이름을 붙이는 듯한데, 스스로 사랑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서 ‘나찾기(자아실현)’를 할 수는 없겠지. 모든 나찾기는 ‘나사랑’에서 비롯한다. ‘나좋음’이 아니라, ‘나싫음’도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하루를 짓고 맺는 내가 어떤 숨빛인지 들여다보는 곳에서 길을 열고서 날갯짓을 펼 테지.


그나저나 ‘아이’를 이렇게 대놓고 싫어하는 줄거리를 그려도 되나? 서른 살이건 마흔 살이건, ‘오늘 먹은 나이’일 뿐, 그린이 스스로도 ‘아이’로 자랐는데 말이다. 아이는 ‘다뤄’야 하지 않는다. ‘아이를 다루는 길’이란 있을 수 없다. ‘아이사랑’이어야 할 뿐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서 ‘다루려’ 하니까 온갖 말썽과 잘못과 사달이 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아이를 다루려는 허튼짓은 모두 사라지면서 ‘아이랑 놀며 웃는 하루’를 짓게 마련이다.


아이는 어른을 일깨우고 가르친다. 아이는 어른이 저(아이)랑 어떻게 놀고 얘기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일깨우고 가르친다. 그저 아이곁에 서서 아이가 들려주는 길을 가만가만 배우면 된다.


ㅍㄹㄴ


“나는 주변에 애들이 없어서 다루는 방법은 잘 몰라.” “나도 그래요. 돌도 안 된 애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요.” “맞아, 맞아!” “왜∼ 친구가 애기를 낳아서 축하해주러 가면 말이야, 친구가 안아봐도 된다고 애를 건네주는데, 사실 그런 거 내키지 않아.” … “근데 사람들이 막 호들갑떨면서 아이를 좋아한다고 어필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20, 21쪽


“아이가 없다는 건, 첫손자 축하파티도 없다는 것이고, 거기다가 내 집 장만 집들이도 없겠지. 그렇다는 건, 주연급으로 부조금을 받는 건 자신의 장례식뿐?” 25쪽


“유우는 역시 먹지 않았어요.” “즐거워 보였어, 유우도. 괜찮지 않아? 일단은 그걸로!” 54쪽


“누군가에게 그쪽 길은 실패였어, 그렇게 보이는 게 무서운지도.” 103쪽


#益田ミリ #す-ちゃんの戀


+


《수짱의 연애》(마스다 미리/박정임 옮김, 이봄, 2013)


어렸을 적 식습관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도

→ 어릴적 밥버릇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지도

→ 어릴적 밥차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지도

7쪽


먹는다는 것은 큰다는 것이었습니다

→ 먹는 일은 크는 일입니다

→ 먹으며 큽니다

→ 먹으면서 큽니다

→ 우리는 먹으며 큽니다

7쪽


자전거만 타도 ‘앉았다∼’ 하는 편안함이 느껴져

→ 두바퀴만 타도 ‘앉았구나!’ 하며 느긋해

→ 두바퀴만 타도 ‘앉았다!’ 싶어 아늑해

→ 두바퀴만 타도 ‘앉았네!’ 싶어 가벼워

8쪽


어라포(어라운도 포티around 40의 준말인 일본식 조어로 40대 전후의 미혼 직장여성을 말함. 일본판 골드미스)니 어쩌니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지만

→ 마흔 언저리니 어쩌니 그럴듯한 말로 꾸미지만

→ 곧 마흔이니 어쩌니 그럴듯하게 감싸지만

23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왜 그렇게 느낄까

→ 왜 그처럼 여길까

26쪽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 같아

→ 나를 온몸으로 말하는구나 싶어

→ 스스로 온몸으로 밝히는 듯해

31쪽


수분은 충분히 섭취하게 하니까

→ 물은 잘 마시라고 하니까

→ 물은 잘 먹이니까

35쪽


인기녀는 이럴 때 어떻게 하지?

→ 꽃순이는 이럴 때 어떻게 하지?

→ 사랑꽃은 이럴 때 어떻게 하지?

83쪽


매상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팔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 주셔서 고맙습니다

95쪽


아∼∼∼∼ 보류 버튼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

→ 아아아아아, 미룸단추가 자꾸 늘어가

→ 아! 나중단추가 차츰 늘어가

128쪽


오늘부로 이곳을 그만두게 되었거든요

→ 오늘부터 이곳을 그만두거든요

→ 오늘 이곳을 그만두거든요

13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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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소풍 - 아무 때나 가볍게 ㅣ 온(on) 시리즈 4
김서울 지음 / 마티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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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6.9.

읽었습니다 345



  저는 책집에는 가되, ‘도서관·박물관’에는 안 갑니다. 두 곳에 간들 볼거리나 누릴거리가 없다고 느낍니다. 책으로 여미는 숲이 되어야 할 곳은 새로 쏟아진다는 책을 받으려고 아름책을 꾸준히 버려야 하는 얼개입니다. 살림살이를 건사하여 숲이 되어야 할 곳은 더 돋보이거나 커다랗거나 대단하거나 놀랍다는 우두머리나 벼슬아치가 거머쥐던 몇 가지에서 그치기 일쑤입니다. 이따금 ‘생활사박물관’처럼 이름을 붙이는 자리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제살림’과 ‘어제살림’과 ‘모레살림’을 잇는 길이 그곳에 있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사람”이란 “살림하는 사람”입니다. “살림하는 사람”이란 “바로 오늘 이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다 다르게 하루를 맞이해서 저마다 짓는 바탕을 담아내야 할 ‘도서관·박물관’이지만, 두 곳은 일본이 붙인 이름과 얼거리를 아직도 못 떨치거나 못 느끼면서 그냥그냥 이어요.


  《박물관 소풍》을 읽고서 얌전히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우리는 ‘국립·시립·도립·군립’이 아닌 ‘우리’ 책숲과 살림숲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살림숲에 ‘놀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면, ‘놀러가기’란 이름을 쓸 노릇입니다. 시골내기도 가볍게 드나들 만하기를 바란다면, ‘나들이·마실’이란 이름을 쓸 노릇입니다. 아니면 ‘기웃기웃’이나 ‘서성서성’이나 ‘구경’이나 ‘들여다보기’나 ‘찾아가기’를 하면 되겠지요. 그곳에서 그분들이 쓰는 말씨는 예나 이제나 하나도 안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한자를 드러내어 일본한자말로 적었으면, 요새는 무늬만 한글에 영어를 뒤섞을 뿐이에요. 겉만 살짝 바꾼들 알맹이가 바뀌지 않아요. 앞치마와 밥그릇과 부엌칼을 놓지 못 하는 곳이라면 살림숲과 멉니다. 포대기나 처네를 못 놓는다면, 천기저귀와 종이기저귀를 나란히 놓지 못 하는 곳이라면, 머리끈이나 머리띠나 작은종이 하나를 살피는 손길이 없는 곳이라면, ‘박물관’일 수는 있어도 ‘살림숲’하고는 멀기에, 살림하는 이웃과 나들이를 할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ㅍㄹㄴ


《박물관 소풍》(김서울, 마티, 2023.7.20.)


박물관을 언제, 왜 가야 하는지 원칙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박물관이 설립된 초기에는 ‘관람객’이라는 범위에 보이지 않는 틀이 있었다. 만인에게 공개되어 있었으나 아무나 가던 곳이 아니었고, 전시 및 관람 목적의 방점이 ‘교육’에 찍혀 있었다 … 요즘 박물관은 많이 변했다. 동네 언저리에 들어서기도 하고, 유물 안내문의 어조가 좀더 편안하게 바뀌기도 했다. 관람객이 박물관을 즐기는 방법은 훨씬 극적으로 바뀌었다.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인증한 유물을 직접 …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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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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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6.6.

까칠읽기 121


《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홍한별 옮김

 윌북

 2025.12.31.



  1966해에 나온 《해석에 반하여》를 2026해에 새로 냈다고 한다. 1966해에 나온 책이라면 1950∼60해무렵을 가로지르던 나날에 바라본 바를 풀어낸 글일 테지. 그때 “미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은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배웠을까 하고 돌아본다. 나는 미국이라는 땅을 밟은 일이 없되, 둘레에는 미국을 다녀온 사람이 많다. 이웃 가운데 미국으로 건너가서 지내는 분도 꽤 있다. ‘사잇땅(기회의 땅)’이라고도 일컫는 미국이고, 옆나라 일본은 그곳을 ‘쌀나라(米國)’라는 한자로 가리킨다. 하늬(유럽)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텃사람을 내몰고 죽여서 ‘홀로서기(독립)’를 했다고 여기는 나라요, 검은사람을 종으로 부려서 솜밭(목화농장)에 묶어두고 괴롭힌 나라이다. 검은사람을 ‘밭일꾼(농노)’으로 부리느냐 ‘뚝딱일꾼(공장노동자)’으로 부리느냐를 놓고 저희끼리 피터지개 싸운 나라이기도 하다.


  그나라에는 들길(민주)하고 멀지만 ‘들길’이라는 이름을 내거는 무리가 있고, 함께(공화)하고 멀지만 ‘함께’라는 이름을 내거는 무리가 있다. 파랑이와 빨강이가 악착같이 다투면서 총칼을 무시무시하게 만들어내기도 하는 나라이다. 어느 무리이건 총칼을 무척 좋아한다. 이러한 나라에서 1966해에 나온 《해석에 반하여》는 무슨 풀이를 거스른다는 목소리일까. 목소리로는 모든 옳거나 좋거나 바르다고 여기는 말은 다 외칠 수 있되, 막상 그곳에 그냥그냥 눌러앉아서 모든 길미를 누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풀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그무렵 우리나라는 미국이 거저로 내준 ‘흰가루 셋’으로 벼슬꾼과 돈꾼이 엄청나게 길미를 챙겨서 온나라를 휘어잡았다. 총칼을 앞세운 우두머리는 으레 ‘경제개발·경제성장’ 같은 허울스런 말을 일삼았는데, 그들끼리 길미를 돌라먹으면서 사람들한테는 ‘떡고물’도 아닌 검부러기를 조금 흩뿌렸을 뿐이다. 요즈음(2026해)에는 그루(주식)라는 검부러기를 조금 흩뿌리면서 사람들을 홀려서 멍청이로 길들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시내가 고개를 들고서 배움터를 느긋이 다닐 수 있던 때는 1980해무렵이다. 1970해무렵까지는 숱한 가시내가 어린배움터에 발을 디디기도 힘들었다. 으레 서울이나 서울곁 뚝딱터(공장)에 잡아먹히면서 값싼 일삯으로 부려먹히는 굴레였고, ‘식모·차장’ 같은 자리에서 말 그대초 찬밥 노릇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나고자라면서 1966해에 《Against Interpretation》를 영어로 읽었다면 무엇을 느꼈을까 하고 어림해 본다. 그무렵 미국은 우리나라하고 사뭇 달랐지만, 그때나 이제나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은 그저 가난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글을 모른다. “SF영화에는 사회 비판이란 것이 없다. 암시적인 형태로조차 들어가지 않는다(322쪽)” 같은 대목을 읽다가 이제 이 책은 덮기로 한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너무 길다. 미국사람이라면 ‘옮김말씨(번역체)’가 없는 ‘그냥 말’로 이 책을 읽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말’이 아닌 ‘옮김말씨(번역체)’를 ‘다시 우리말로 풀어서 헤아려’야 한다.


  삶터(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글과 그림도 ‘목소리’이다. 목소리란 “마음을 나누려는 소리인 말”이기도 할 뿐 아니라, “민낯(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기에 저절로 ‘말(표현) + 타박(비판)’이게 마련이다. 익살(코미디·유머·개그)에 ‘사회비판’이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할 사람이 있을까? 들일을 하는 사람이 부르는 들노래(노동요)에 말과 마음과 삶이 녹아나지 않는다고 읊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말 ‘풀다’를 제대로 읽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 아니, 책을 읽거나 보임꽃(영화)을 쳐다보거나 이야기꽃(강의)을 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풀다’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 아예 없고, 집일을 하거나 들일을 하거나, 들숲메바다를 품는 사람은 으레 누구나 다 안다고 느낀다.


  일본스런 한자말로 한다면 ‘해석·해설·해제·해명·해결·해소·해방·해독·해득·해체·해부……’를 줄줄이 읊을 텐데, 우리말로는 나란히 ‘풀다’라는 쉽고 수수한 낱말을 바탕으로 하나씩 갈래를 짓는다. ‘풀다 = 풀 + 다’이다. ‘풀다’를 알려면 ‘풀’을 알아야 한다. 풀을 모르는 채 ‘풀다’를 알 수 없다. ‘풀다·풀’을 읽어내어 차분히 알아간다면 이윽고 ‘품다·품’을 읽어내면서 알아본다. 이러면서 ‘푸르다·풀빛’과 ‘푸지다·푸근하다·푹·폭·포근·포동’ 같은 낱말이 모두 한타래로 잇는 줄 헤아린다.


  이야기를 풀든, 책과 줄거리를 풀이하든, 삶과 삶터를 풀어내든, 먼저 풀빛을 품는 보금자리와 살림살이일 노릇이다. 푸른숲과 등진 곳에서 붓끝만 놀릴 적에는 어떠한 길도 못 풀거나 안 푼다고 느낀다. 왜 이 별을 ‘푸른별’이라 하겠는가? 왜 이 별은 푸른별이면서 ‘파란별’일까? 모두 하나인 수수께끼부터 풀지 않고서야, 허울스러운 이름을 줄줄이 읊거나 늘어놓는들, 어느 길도 못 풀게 마련이다.


ㅍㄹㄴ


엄밀한 의미에서 의식의 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66쪽)


말할 필요도 없지만 문학은 둘 다 하지 못한다. (105쪽)


사실상 애도할 이유가 없다. 죽은 것은 먼 친척이기 때문이다. (196쪽)


한때는 기이하고 어리석은(어린아이 같고 무법적이고 음탕한) 존재였던 ‘흑인’이 현재 미국 연극계에서 대표적인 선의 가면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게다가 흑인은 외형적으로 명확하기 때문에 신체적 특성이 모호한 ‘유대인’을 넘어서는 유용성이 있다 … 흑인은 언제나 ‘흑인’처럼 보일 것이다. 진정한 흑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한. 또한 고통과 핍박의 희생자라는 면에서 흑인은 미국의 다른 어떤 경쟁자보다 앞서 있다. 단 몇 년 사이에, 유대인을 전형적 인물로 삼던 구식 진보주의가 흑인을 영웅으로 삼는 새로운 전투적 태도에 도전받게 됐다. 그러나 이런 전투적 태도와 흑인 영웅을 부추기는 성향이 진보주의 사상을 조롱하더라도 그 감수성 가운데 한 가지는 계속 이어간다. 여전히 희생자들 가운데서 미덕의 이미지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222쪽)


SF영화에는 사회 비판이란 것이 없다. 암시적인 형태로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322쪽)


#AgainstInterpretation #SusanSontag


+


《해석에 반하여》(수전 손택/홍한별 옮김, 윌북, 2025)


이 책에 실린 비평과 리뷰는 내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쓴 글들이다

→ 이 책에 쓴 글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썼다

→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쓴 글을 이 책에 싣는다

13쪽


페이퍼백으로 재출간되는 지금 시점에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 작은책으로 다시내는 오늘에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 손바닥책으로 새로찍는 이즈음 더욱 그렇게 보인다

→ 주머니책으로 더찍는 요즈음 더욱 그렇게 보인다

13쪽


모든 예술은 정교한 트롱프뢰유trompe l’oeil(실물처럼 정밀하게 묘사해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그림)이며

→ 모든 그림은 잘 빚은 눈속임이며

→ 모든 꽃은 꼼꼼한 시늉그림이며

→ 모든 멋은 감쪽같은 흉내그림이며

→ 모든 아름꽃은 아주 능청이며

21쪽


내용 자체가 달라졌거나 내용이 이제는 덜 구상적이고 덜 사실적일 수도 있다

→ 줄거리가 달라지거나 이제는 덜 뚜렷하고 덜 고스란할 수도 있다

→ 속살이 달라지거나 이제는 환하지 않고 삶과 멀 수도 있다

22쪽


이런 식으로 텍스트를 변환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어떤 상황에서 시작되었을까

→ 이렇게 글을 바꾸는 재미난 일은 언제부터 했을까

→ 언제부터 이처럼 재미나게 바꾸는 글을 썼을까

24쪽


우리 시대의 해석은 그것보다 더 복잡하다

→ 오늘날은 이보다 더 얼기설기 풀이한다

→ 우리는 이보다 더 여러 가지로 읽는다

→ 요새는 이보다 더 온갖길로 헤아린다

25쪽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범속한 태도로 나타난다

→ 흔히 그대로 두려고 안 한다

→ 으레 내버려두려고 안 한다

27쪽


최소 세 부대의 비평가들에게 대대적으로 파헤쳐졌다

→ 적어도 석 자루쯤 되는 분들이 잔뜩 따졌다

→ 얼추 석 자루쯤 되는 분들이 실컷 파헤쳤다

27쪽


스타일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 멋이란, 곰곰이 보면 지나온 날을 뜻한다고들 말할 수 있다

→ 맵시란, 아무래도 살아온 길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41쪽


엄밀한 의미에서 의식의 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곰곰이 보면 넋은 말로 그릴 수 없다

→ 가만히 보면 마음은 말로 못 그린다

66쪽


우리는 왜 작가의 일기를 읽을까? 작품에 대해 알게 해주니까?

→ 우리는 왜 글쓴이 하루를 읽을까? 글을 잘 알 수 있으니까?

→ 우리는 왜 글님 하루글을 읽을까? 속내를 짚을 수 있으니까?

→ 우리는 왜 글바치 삶글을 읽을까? 줄거리를 알 수 있으니까?

73쪽


일기에 두 페르소나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하루글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 삶적이에 두 마음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77쪽


현대에 성애적 애착은 본질적으로 허구라고 믿게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 이제 사랑놀이는 다들 허울이라고 믿으면서 또 한켠으로는

→ 이즈막에 몸섞기는 무릇 빈껍데기라고 믿으면서 한켠으로는

79쪽


토디의 번역이 부실하다는 것을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 토디가 엉성히 옮겼다고 말해두겠다

→ 토디는 어설피 옮겼다고 말해두겠다

→ 토디는 제대로 못 옮겼다고 말해두겠다

95쪽


레리스가 《성년》에서 답한 질문은 지성적인 것이 아니다

→ 레리스가 《어른》에서 들려준 말은 그리 밝지 않다

→ 레리스는 《어른》에서 썩 똑똑히 얘기하지 못한다

103쪽


우리 시대의 진지한 사유는 대개 집을 잃은 듯한 느낌에 시달린다

→ 오늘날은 깊이 돌아볼수록 집을 잃은 듯 시달린다

→ 요새는 차분히 살필수록 집을 잃은 듯 시달린다

→ 이제는 가만가만 짚을수록 집을 잃은 듯 시달린다

109쪽


역사주의적 접근은 분명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 차근차근 다가서야 제대로 깨어난다

→ 하나씩 짚어가야 뜻있게 눈뜬다

→ 길눈으로 보아야 뜻깊게 알아본다

140쪽


이 책의 방대함과 다급한 호흡은 철학적 딜레마 탓이다

→ 이 책은 엇갈린 눈 탓에 펑퍼짐하고 숨가쁘다

→ 이 책은 갈팡질팡 보느라 늘어지고 덤빈다

144쪽


이오네스코의 성취는 무엇일까

→ 이오네스코는 뭘 이뤘을까

→ 이오네스코는 뭘 했을까

174쪽


원래 이오네스코의 초기 창작 동력은 상투적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 이오네스코는 처음에 수수한 삶에서 노래를 찾았다

→ 이오네스코는 워낙 작은삶에서 노래를 캐냈다

→ 이오네스코는 모름지기 모든 곳에서 노래를 보았다

→ 이오네스코는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느꼈다

→ 이오네스코는 늘 노래를 만났다

175쪽


이오네스코가 클리셰를 발견했다는 것은 언어를 의사소통이나 자기표현의 도구로 보기를 거부하고, 대체 가능한 개인이 (일종의 무아지경 상태에서) 분비한 진기한 물질처럼 간주했다는 것이다

→ 이오네스코가 타령을 찾았다면 말을 마음나눔이나 마음그림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내가 (이른바 고요히) 내놓는 놀라운 빛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176쪽


여기에서 브레송 인류학의 세 가지 기본 공리를 얻을 수 있다

→ 이 글에서 브레송이 편 사람길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 이 글로 브레송이 꾀한 사람길 셋을 엿볼 수 있다

274쪽


갑자기 누군가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 갑자기 누가 얄궂게 군다

→ 갑자기 누가 엉뚱히 군다

→ 갑자기 누가 막나간다

305쪽


희망적 사고가 무척 많이 담겨 있는데

→ 앞길을 밝게 여기는데

→ 앞날을 푸르게 보는데

→ 무척 밝게 여기는데

→ 매우 환하게 보는데

→ 꿈에 부푸는데

317쪽


카우프만의 책이 갖는 의의는 이 책이 오늘날 전반적인 태도의 또 다른 사례라는 데 있다

→ 카우프만 책은 오늘날 흔히 보는 책을 새삼스레 보여주기에 뜻깊다

→ 카우프만이 쓴 책은 오늘날 나도는 숱한 책을 다시금 보여준다

→ 카우프만이 쓴 책은 오늘날 떠도는 책과 다르지만 닮았다

362쪽


해프닝은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시성을 추구한다

→ 오늘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갑작스레 사달을 일으킨다

→ 하루에 붙들리지 않으려고 확 깜짝짓을 일으킨다

→ 하루하루 마음껏 살려고 문득문득 이런저런 일을 한다

→ 삶을 마음껏 드러내려고 일부러 느닷없이 군다

→ 홀가분하다고 보여주려고 그냥 가볍게 군다

379쪽


컬트적 이름으로 불린다

→ 높이는 이름이다

→ 우러르는 이름이다

→ 치켜세운다

→ 떠받는다

→ 섬긴다

→ 엎드린다

391쪽


간단히 말해 ‘두 문화’라는 문제는 오늘날 문화적 상황에 대한 무지하고 낡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 다시 말해 ‘두길’이란 오늘살림을 모르고 낡은눈으로 보는 셈이다

→ 그러니까 ‘두빛’은 오늘살이를 모르는 채 낡게 본다는 뜻이다

→ 곧 ‘두살림’이라 하면 오늘삶터를 모르고서 낡게 짚은 셈이다

42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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