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원사전”을 써냈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말·마음·삶’을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으로




2025년 이른봄에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펴냄)을 선보입니다. ‘말밑’은 ‘어원’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밑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을 이루는 밑(밑동)이기에 말밑입니다. 밑(밑동)을 이루는 말이라 여기면 ‘밑말’이라 하면 됩니다. 우리말은 어느 하나를 굳이 한 낱말로만 안 가리킵니다. 앞뒤를 바꾸어 가리키곤 하며, 크기와 셈여림과 부피와 빛살을 살펴서 끝없이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로 여밉니다. 우리말에는 ‘빨갛다’만 있지 않아요. ‘빨강’도 있고 ‘붉다’도 있으며, ‘울긋불긋’에 ‘발갛다’처럼 말씨를 슬몃슬몃 바꿉니다.


글을 씨앗(씨)으로 여기면서 돌보기에 ‘글씨’입니다. 글씨를 반듯하게 가다듬는 뜻을 돌아봅니다. 글이라는 씨앗을 종이에 얹을 적에 “밭에 씨앗을 심듯” 고르게 다스려야, ‘글로 담아낸 말’을 정갈하게 풀어낼 수 있다고 여기거든요. (44쪽)


‘꽃 + 샘 + 바람’에서 ‘샘’은 ‘새·새롭다’하고 맞물리는 ‘샘물·샘 2’이라고 느낍니다. 꽃망울하고 잎망울을 깨우는 바람 곁에는 ‘꽃샘비·잎샘비’가 내립니다. 꽃이 샘솟으라고 북돋우는 비입니다. (50쪽)


지난날 세종 임금님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씨를 내놓았지만, 그무렵에 훈민정음은 “우리 모두 누리는 글”이지 않았습니다. 그무렵에 누가 붓종이를 건사했을까요? 그무렵에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썼을까요? 논밭을 일구는 사람은 글을 쓰거나 책을 펼 일이며 까닭마저 없던 지난날입니다. 조선이 저물 무렵까지도 장사꾼·논밭지기·종·하님·가시내는 글이건 책이건 붓종이 모두 어깨너머라도 구경조차 하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마음을 말에 담아서 누리고 나누던 첫목이라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지은 주시경 님이 살던 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주시경 님은 이녁 딸아이한테도 글을 가르쳤고, 주시경 집안에서는 딸아들이 똑같은 아이로 자랐다지요. 그러니까 ‘우리글’이라 여기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던 사슬나라(일제강점기)에 이르도록 우리는 우리글이 없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기에 ‘나다’이고,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으면서 즐겁기에 ‘날다’라면, “오랫동안 많이 쓰거나 오래도록 비·바람·해에 바스러져서 더 쓸 만하지 않”을 적에는 ‘낡다’예요. (56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왜 썼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는 우리길을 걷는 살림살이를 일굴 적에 곁에 두면서 이바지하는 꾸러미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말을 그려낸 무늬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입니다. 마음이란, 삶을 고스란히 담는 그릇입니다. 삶이란, 사람으로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누리는 하루입니다.


모가 없이 아우르고 모이기에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두런두런’ 말을 섞기도 합니다. ‘도란도란·두런두런’은 ‘두레’하고도 얽혀요. 두레는 ‘둘레’하고도 만나는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나고 사귀고 아우르면서 크게 펴는 자리인 ‘두레’요, 하나를 두른·둘러싼 곳을 살핀다고 하는 ‘둘레’이며, 두레처럼 둘레를 아우르는 사이인 ‘동무’입니다. (68쪽)


그래서 ‘글 → 말 → 마음 → 삶 → 살림·사랑·사람’이라는 얼거리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는 ‘살림쓰기·사랑쓰기·사람쓰기’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스스로 글이라는 그림으로 옮길 적에, 바로 “우리 스스로 살림을 지어서 삶을 누리는 마음”을 저마다 또렷하면서 즐겁고 넉넉하게 펴려면, ‘말’을 제대로 알거나 넉넉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인 우리말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말밑·밑말’을 찬찬히 새기면 됩니다.


‘우리말’이란, “우리를 바라보는 말”입니다. ‘우리 = 나 + 너 + 뭇숨결’입니다. 나 혼자만 있다고 언뜻 여길 적에도 ‘우리’를 쓰는 우리나라인데, 사람은 나 혼자여도, 돌과 나무와 해와 바람과 새와 풀벌레처럼 뭇숨결이 둘레에 있다고 여기기에 ‘우리’를 씁니다. ‘우리말’이란 ‘순우리말(토박이말)’이라기보다는 “아우르고 어우르는 마음으로 쓰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 ‘길·길이·길다’는 이곳·이때하고 저곳·저때가 어떤 사이인가를 나타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나아가기에 ‘길’이고, 어느 만큼 나아가는가를 따지거나 재기에 ‘길이’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꽤 나아갔기에 ‘길다’라 합니다. (78쪽)


우리말 ‘바’는 ‘밭·바탕’을 밑뜻으로 나타냅니다. 씨앗을 심어서 가꾸는 자리인 ‘밭’이요, 무엇이 태어나거나 깨어나거나 자라는 너른 터인 ‘바탕’입니다. 가장 낮다고 여길 만하도록 넓기에 ‘바탕’이니, ‘바다’는 푸른별에서 ‘바닥’을 드넓게 덮으면서 이곳이 짙푸른 삶터가 되도록 북돋운다고 하겠습니다. (105쪽)





지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선보였습니다. 이 꾸러미를 선보이고 난 지 열 해 만에 《말밑 꾸러미》를 내놓습니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혼자서 온일을 맡는 터라 낱말책을 더 일찍 묶어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림을 가꾸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기에, 이런 여러 가지를 하는 틈에 바지런히 손을 놀릴 뿐입니다.


2003년 8월까지는 서울에서 살며 일을 했으나, 2003년 9월부터는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충북 충주 멧골자락과 서울을 오가며 일을 했습니다.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다가, 2010년 가을부터 다시 시골로 옮겼으니,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살림을 지은 지 제법 됩니다.


많은 결을 나타내는 말밑인 ‘수’입니다. ‘머리숱’을 가리킬 적에 쓰는 ‘숱’으로도 잇습니다. 머리숱이 적건 많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세기란 어렵거나 까다롭습니다. 아니, 못 센다고 할 만해요. ‘숱 + 하다(많다)’ 꼴인 ‘숱하다’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셀 길이 없도록 많은” 결을 가리켜요. (125쪽)


서울과 서울곁에서 일할 적에는 ‘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여미었고, 시골과 멧슾에서 일하는 요즈음은 ‘들숲바다·해바람비·풀꽃나무·시골·사투리·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엮습니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써낸 뜻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들숲바다에서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품는 살림살이를 일구는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세종 임금님은 글씨를 지었되, 우리말을 짓지는 않았고, 이 나라 모든 사람이 살림살이를 말글로 옮겨서 널리 나누는 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없던 무렵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말(우리말)’을 했고, 이 말(고을말·사투리)은 단군조선보다 아득히 긴 나날에 걸쳐서 흘러왔습니다.


단군 옛이야기에 나오는 ‘곰·범’이나 ‘쑥·마늘(또는 달래)’ 같은 낱말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김치를 담그는 ‘갓’ 같은 풀이름은 언제부터 썼고, 높게 솟은 땅을 가리키는 ‘메·갓’이란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요? ‘하늘’이나 ‘집’이나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일구다’라는 낱말은 ‘일’이 뼈대요, ‘일다·일으키다·일어나다’도 ‘일’이 바탕입니다. 새롭게 펴거나 하는 몸짓을 나타내는 이 말씨는 외따로 ‘일’로 쓸 적에 ‘할거리·지을거리’를 가리켜요. “일하다 = 스스로 새롭게 짓거나 이루거나 나타나도록 하다” 같은 결이라고 읽어낼 만합니다. ‘이름·일컫다·이르다’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177쪽)


삶·살림·사랑을 지으려면 ‘하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누리려면 ‘있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배우려면 ‘보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고, 삶·살림·사랑을 나답게 펴려면 ‘알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생각하려면 ‘가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지요. (186쪽)


아직 우리는 이런 수수하고 오랜 삶말·살림말·사랑말이 어떤 뿌리인지 종잡지 못 하기 일쑤입니다. 글도 책도 없던 까마득히 오랜 나날에 걸쳐서, 모든 사람이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말씨와 말결과 말빛을 헤아리려면,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스스로 품으면서 살필 노릇입니다.


동박새를 곁에 두지 않는다면, 동박새가 왜 동박새란 이름이었을는지 어림조차 못 합니다. 동박새가 겨우내 즐기는 꽃이 피는 나무가 ‘동박나무’여야 올바르다고 느끼려면, 동박새에 ‘동백나무’를 언제나 품는 살림일 노릇입니다.


‘철새’란 철을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본 뒤에, 새로 바뀌는 철에 예전 보금자리로 함께 돌아가는 야무지고 씩씩한 새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숱한 낱말책은 ‘철새’ 뜻풀이가 매우 엉성합니다. 책상맡에 앉아서 옛글을 뒤적일 줄은 알되, 막상 여름새도 겨울새도 만날 일이 없고, 새노래와 새살림을 지켜볼 일마저 없거든요.


속으로는 빛나지 않고 겉으로만 번쩍거리려고 하기에 ‘거짓’이라고 합니다. 돈을 모두 잃은 사람을 ‘거지’라고도 하지만, 돈이 하나조차 없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한테는 ‘거지’라고 하지 않아요. 마음이 가난하면서 돈만 많은 사람한테 오히려 ‘거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236쪽)


‘텃새’란 터(터전)를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보는 살림을 늘 한곳에서 잇는 듬직하고 어엿한 새입니다. 그러나 ‘텃새’가 어떤 결로 사람 곁에 머무는지 지켜본 적이 없거나 지켜볼 마음조차 없다면, 이러한 새를 다루는 뜻풀이와 보기글도 텃새살이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는 집살림을 맡지 않는 삶일 적에는 ‘아기’와 ‘어버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 하기도 하지만, 말밑을 어림조차 못 합니다. 서로 ‘동무’를 하는 사이로 돕고 돌보는 두레를 이루는 삶을 가꾸지 않을 적에도 ‘동무’라는 오랜 낱말에 숨은 수수께끼를 못 읽습니다.





모든 낱말은 서로 얽고 잇고 엮고 이르고 만납니다. 따로 뚝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지는 낱말은 아예 없습니다. 이웃 여러 나라에서는 낱말책을 꾸리거나 여밀 적에 반드시 ‘모든 낱말’이 어떻게 만나고 맺고 어울리는지 차근차근 짚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밑길을 제대로 못 열거나 안 엽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서울에 몰아놓다 보니,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맴돌거나 큰고장 대학교 담벼락에 또아리를 틀기만 합니다.


좋은말이나 나쁜말은 따로 없습니다. 어느 말을 어느 마음이 되어 쓰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드러나는 삶을 낱말 하나에 얹어서 나타내고 나눌 뿐입니다. (262쪽)


사람은 속으로 ‘씨·알’을 품는 숨이요, ‘살다·삶·살리다·살림’으로 펴는 길입니다. 길이 숨을 만나고, 숨이 길을 마주하지요. 그래서 살고 살리는 씨이자 알로 있기에, ‘앎(알다)’을 맞아들이는 하루(삶)이고,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스스로 밝은 빛으로 섭니다. 사람 하나하나는 ‘빛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270쪽)


말을 알려면 말이 태어난 숲에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또는 숲을 곁에 두면서 내내 숲을 헤아려야 할 테지요. ‘아이돌봄글(육아일기)’을 쓰려면 아이를 한결같이 삼백예순닷새 내내 지켜보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낱말책을 여미는 분들이 정작 “말이 태어난 곳”하고 너무 멀 뿐 아니라, “말이 태어난 살림”하고 담을 쌓는다고 느낍니다.


《말밑 꾸러미》를 ‘기존 사전 형식’으로도 엮을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안 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스스럼없이 읽으면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말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기에 새틀을 짰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표현”과 “문해력 증진”이 아닌, “살아가는 마음을 나누는 말을 서로서로 즐겁게 펴고 듣고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적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봅니다.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이고, 마음에 담으려고 심을 씨앗이 될 생각입니다. 또는, 마음에 깃든 생각을 꺼내어서 귀로 알아듣도록 그린 소리가 말이에요. ‘마음·말’은 밑뿌리가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소리를 그려내는 말이 된다면, 마음이 안 맞거나 막히는 일이 없어요. 마음 없이 내는 소리는 그저 소리요, 마음 있이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말이랍니다. (350쪽)


스스로 어질게 살림하는 사람이기에 ‘어른’이요 ‘스승’입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한테 심부름을 안 시킵니다. 어른과 스승은 그저 몸소 합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와 젊은이가 스스로 온누리를 맞이하고 겪어 보도록 마당을 펴고 자리를 내주는 몫입니다.


말을 말답게 살펴서 익히는 길은 누구나 스스로 스승이자 어른으로 서는 길입니다. 낱말책 한 자락을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어냈기에 우리말을 다 알아내거나 알아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낱말책이건 모든 우리말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지는 않습니다. 모든 낱말과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자면 5만 쪽은커녕 10만 쪽으로도 모자랍니다. 그저 낱말책이란, 그때그때 갈무리한 만큼 이웃하고 나누려는 작은 꾸러미일 뿐입니다.


다쳐서 구멍이 나거나 틈이 난 데에 넣어서 막는 ‘심’이기도 해요. 이런 쓰임새를 살려서, 초에서 불이 붙도록 안쪽 한가운데에 꼬아서 넣는 실도 ‘심’이란 이름으로 가리키지요. 글붓(연필) 안쪽 한가운데에 놓아 글씨를 쓸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것도 ‘심’으로 가리킵니다. 우리말 ‘심’은 ‘힘’처럼, 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듯 부드럽고 단단하게 한가운데(한복판)를 이루면서 곧고 길게 이어주는 길을 나타냅니다. 촛불심도 연필심도 ‘힘·실’이라는 결을 ‘심’이라는 말꼴로 담아요. (399쪽)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는 배움길은 1984년에 처음 걸었습니다.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자는 마음은 1992년에 처음 했습니다. 1994년에 ‘우리말을 스스로 배우고 나누는 모임’을 조촐히 꾸리면서 한 땀씩 바느질을 해온 살림결 가운데 하나를 2025년에 살짝 풀어놓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말더듬이·혀짤배기’이던 몸이라 오지게 놀림받고 시달렸습니다. 여덟 살이던 1982년부터 열 살이던 1984년까지 날마다 얻어맞지 않은 날이 없고, 언제나 동무와 길잡이(교사)가 제 말소리를 놀려먹었습니다. 이러던 1984년에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어째 마을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버릇없어 보이기에 ‘효’를 익히도록 천자문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온마을 어린이와 푸름이를 어르신집(경로당)에 날마다 불러모아서 한 시간 남짓 가르친 적이 있어요. 이때에 저랑 또래 하나만 할아버지한테서 끝까지 즈믄글씨(천자문)를 익혔는데, 즈믄글씨를 익힌 뒤에 돌아보니, 말더듬이에 혀짤배기가 소리를 못 내거나 엉키는 낱말이 모조리 한자말인 줄 깨달았습니다.


꽃은 열매로 나아가는 끝길입니다. 꽃송이가 숨을 거두는 끝에 열매가 익어요. “꽃이 곱다”고 말하는 밑자락을 들여다본다면, 기나긴 길을 거치면서 끝자락에 닿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애를 쓰며 힘을 다했나 하는 빛을 느낄 만하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438쪽)


‘나비(나방)·알·애벌레’라고 하는 세 갈래 길입니다. 사람도 ‘어버이(어른)·알(씨알)·아이(아기)’라는 세 갈래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나무처럼 든든히 지키고 바라보면서 나란히 삶·살림·사랑을 그리는 사이입니다. 두 어버이가 즐거운 사이인 터라 ‘새(사이)’처럼 아이(아기) 사이에서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노래를 하고 놀이를 노느는(나누는) 나날을 지을 수 있습니다. (476쪽)


저는 이해 1984년부터 옥편과 사전을 샅샅이 뒤져서 “말더듬이와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쉬운 우리말”을 찾아나섰습니다. 얻어맞기 싫고, 놀림받으면 괴롭거든요. 이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부터는 첫 수능·본고사·면접을 치르는 배움불굿(입시지옥)에 맞추어 “언어영역 시험 대비”로 ‘국어사전 통째읽기’를 두 벌 했습니다. 1992년에 두 벌째 다 읽었는데,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아주 후줄근하고 초라하더군요. 차라리 내가 쓰고 말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아침에 ‘다만·단둘·단짝·달갑다·달다·단골’이라는 낱말이 어떤 말밑인지 풀어냈습니다. 그야말로 날마다 동박새 날갯짓마냥 천천히 보드랍게 나아갑니다. 〈말밑 꾸러미〉를 곁에 두면서 말빛을 익히는 이웃님이 그저 느긋하시기를 바랍니다. “안 서두르려는 마음”일 적에도 똑같이 ‘서두르’고 맙니다. “안 서두르기”가 아니라 “느긋이 노래하기”라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말씨앗 한 톨이 우리 마음밭에 깃들어 자라다가 어느 날 생각나무로 자라고 사랑꽃을 피워서 살림열매를 맺습니다.


울타리가 없고 담이 없으면서 넘나드는 데라서 ‘누리’입니다. 누구나 눈을 뜨고서 누리는 삶이기에 ‘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누리에서 조금조금 금을 긋고서 나누는 동안 ‘나라’가 됩니다. 나라에는 울타리가 있고 담이 있어요. 섣불리 넘나들지 못하도록 해요. ‘누리’나 ‘나라’나 똑같은 땅이되, 한쪽은 울타리 없이 흐드러지는 홀가분한 빛이요, 다른 한쪽은 울타리를 세우면서 너랑 나를 가르고 힘으로 누르는, 억누르고 짓누르는 틀입니다. (485쪽)


나무 한 그루가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열 해 남짓 걸립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넉넉히 베풀기까지 으레 스무 해 남짓 기다립니다. 우리말을 마음자리에 푸른숲으로 심고 가꾸고 돌보면서 파란하늘처럼 드리우는 말살림이며 글살림을 차분히 하나씩 일구어 가려는 뜻을 조촐히 꾸러미로 엮습니다.


참새가 노래합니다. 짹짹짹 소리가 아니라, 찌빗찌빗 찟찟 쫏 쫑 쭈루루 짯짯 쫌 쪼비비 째비비 째리리리 쮯 쭈룹 같은 갖가지 가락과 높고낮은 물결로 하루를 엽니다. ‘말’에 ‘마음’을 담는 ‘삶’에 한손을 거들려는 뜻으로 꾸리는 낱말책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쓰는 한국말사전”입니다. “새롭게 쓰는 우리말꽃”이기도 하고, “새롭게 나누는 낱말숲”이기도 합니다.





늦겨울이 저물던 지난 2025년 2월 18일 아침을 떠올립니다. 그날 우리 집 앵두나무 곁에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시든풀이 우거진 곳에서 동박새 둘이 고개를 빼꼼하면서 저를 쳐다보더니 쪼리쪼리쪼리쪼리 쯔릉쯔릉쯔릉쯔릉 소리를 내며 서로 쳐다보다가 포르릉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제 발치에서 멀잖은 곳에서 조금 날다가 다시 시든풀더미에 내려앉습니다.


목숨이 있는 집이 ‘몸’입니다. 우리말에서 받침 ‘ㅁ’은 ‘아우름·집·묶음’을 나타냅니다. 목숨이 집처럼 깃들 수 있는 곳이고, 여러모로 목숨을 움직이는 것을 아우른 곳이 몸이에요. (528쪽)


빨강은 ‘붉다’로도 나타냅니다. ‘붉다’는 ‘불’에서 비롯했습니다. 타오르거나 달아오르는 불길인 빛이에요. 불길은 확 번지고 이내 태웁니다. ‘빠르게’ 타오르거나 태우는 불기운을 담는 ‘빨강’이에요. (558쪽)


동박새를 눈여겨보는 서울내기도 제법 있으나, 여든 살이나 아흔 살에 이르도록 동박새는커녕 박새나 쇠박새는 아예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혀끝에 ‘동박새·박새·쇠박새’라는 낱말을 얹을 일마저 없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동박새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나무에 이 새가 앉았어도 새가 앉은 줄 못 알아채기도 하고, 동박새 노랫가락이 조금도 귀에 안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지난 2025년 2월 16일에는 부산 거제동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이오덕 읽기 모임’을 꾸리고 난 뒤에, 이곳 뜨락에서 겨울볕을 함께 쬐었습니다. 이때에 “똥! 방!” 하고 굵고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를 한참 들었습니다. “똥! 방!” 하는 소리가 나고서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똥! 방!” 소리를 듣는데, 이 소리를 서른 벌째 들을 무렵, 〈책과 아이들〉에서 자라는 동박나무(동백나무)하고 소나무 사이로 동박새가 빼꼼 얼굴을 내밉니다.


‘하얗다(희다·흰)’는 빛깔은 ‘해’가 드리우는 빛을 가리켰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없이 탁 트일 적에는 파랗다면, 이 파란하늘이 눈부시도록 온누리를 밝히는 햇빛은 ‘하얗다’고 여겼고, 해처럼 맑아 ‘해맑다’라 하고, 해처럼 밝아 ‘해밝다’라 합니다. (561쪽)


우리나라 모든 새이름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시골내기가 문득 어느 새를 눈여겨보다가 저마다 다른 빛결을 가르면서 붙였습니다. 어느 새는 노랫가락을 고스란히 옮겨요. 이를테면 뜸부기·제비·꾀꼬리·소쩍새·왜가리는 노랫소리를 그대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박새·딱따구리·뱁새·크낙새·한새(황새)·매는 매무새와 깃빛과 몸짓을 살펴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여기에 까마귀·까치는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러서 담았다고 여길 만한데, 동박새도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렀구나 싶습니다.


모든 낱말은 모든 삶하고 잇습니다. 모든 말은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과 눈길을 생각 한 톨로 여미어서 나누려는 ‘빛씨’라고 여길 만합니다. 늘 쓰는 흔하고 수수한 말씨 한 마디부터 차분히 새기고 어린이하고 이야기할 적에 누구나 말빛을 틔우면서 말길을 새록새록 지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비롯한 조촐한 낱말책을 반가이 맞이하실 이웃님을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하나 = 하 + 나’인 얼개를 눈여겨봐요. 하늘처럼 크고 넓은 ‘나(한 사람·개인)’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입니다. (593쪽)


‘하나’부터 연 셈값은 ‘울’로 마무르는데, ‘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요, ‘나너·너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울’입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말 셈값은 ‘나’랑 ‘너’ 사이를 삶이라는 길로 그려낸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너’랑 ‘나’는 즐겁고 홀가분히 드나드는 ‘너나들이’라는 사이일 수 있으면서, 땅하고 하늘 사이처럼 까마득히 먼 사이일 수 있되, ‘하나’에서 ‘울’로 오니 ‘한울(하늘)’입니다. (606쪽)


‘자람’은 스스로 높거나 크거나 튼튼하거나 기운차게 오르는 빛이요, ‘장다리’는 꽃을 피우려고 곧고 길고 곱게 오르는 빛이요, ‘장대’는 곧고 길며 단단하게 서려는 빛이요, ‘자’는 곧고 길게 서며 고르게 살피는 빛이라면, ‘자랑’은 스스로 꽃이라고 여기면서 곱게 보여주고 싶은 빛입니다. (646쪽)


그저 앞자리이기만 한 처음은 아닙니다. ‘참·찬찬·천천’이란 결을 품은 말씨인 ‘처음·첫’이에요. (687쪽)


꾸밈없고 스스럼없이 빛나는 ‘착하다’라면, 꾸미면서 스스로 잊거나 잃는 ‘척하다(체하다)’예요. 스스로 있으면 넉넉하면서 빛나는 ‘착하다’일 텐데, 겉으로만 좋게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나(스스로)를 잊어서 껍데기만 남는 ‘척하다(체하다)’입니다. (689쪽)


‘책’이란, 참답고 참하게 찬찬히 채우면서 살림빛과 사랑길과 삶넋과 사람씨를 챙기면서 착한 손길로 차분히 여미어 차곡차곡 이야기를 재우는 꾸러미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 숨빛과 눈길로 우리 발걸음을 차근차근 짚은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라도 마음을 챙기고 생각을 참되이 밝히는 첫걸음을 내딛을 때라고 봅니다. (693쪽)


우리글 한글을 으레 ‘소리글(소리를 담는 글)’로 여기는데, 우리글 한글은 ‘소리뜻글(소리하고 뜻을 담는 글)’이나 ‘뜻소리글(뜻하고 소리를 담는 글)’로 여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글뿐 아니라 이웃글(외국 문자)도 뜻뿐 아니라 소리를 함께 담게 마련이요, 소리에다가 뜻을 나란히 담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소리에는 마음소리가 흐르고, 마음소리를 담는 말소리를 옮긴 글씨이기에, 글은 소리랑 뜻을 아우를 수밖에 없습니다. (727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 어원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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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들 읽기 (2025.8.5.)



숲노래가 시골살림을 지으면서(2011∼) 일군 책이 있습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랑 엮는이(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서울살림을 짓는 동안(1995∼2003)에는 책을 안 내놓았고,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며 충주살림을 하는 동안(2004∼2006) 두 가지 책을 내놓았으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려고 돌아간 옛마을에서 인천살림을 하는 사이(2007∼2010) 여러 가지 책을 비로소 내놓았습니다. 여러 책 가운데 판이 끊어지거나 찾기 어려운 책이 아닌,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책을 몇 갈래로 나누어 봅니다. 즐겁게 장만하셔서 즐겁게 삶꽃을 피우시고 즐겁게 사랑살림 가꾸는 길에 동무로 삼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말·넋·삶·숲을 읽는 첫걸음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철수와영희,2025)

《쉬운 말이 평화》(철수와영희,2021)

《이오덕 마음 읽기》(자연과생태,2019)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스토리닷,2017)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2019)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2. 우리말이 노래가 되는 길 : 동시쓰기 + 시쓰기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우리말 동시 사전》(스토리닷,2019)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2020)


3. 곁에 두며 말빛·삶꽃·숲살림 익히는 길잡이 : 우리말꽃(국어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6)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7)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9)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3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자연과생태,2018)


4. 우리말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4)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7)


5. 우리말을 푸름이하고 어깨동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2011)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5)


6. 책넋과 마을책집 : 책읽기를 누리는 하루와 이웃마실

《책숲마실》(스토리닷,2020)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스토리닷,2016)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스토리닷,2018)


7. 빛을 담는 꽃(빛꽃) : 사진과 책과 삶과 마을과 꽃

《내가 사랑한 사진책》(눈빛,2018)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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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hbooks/5784559

(이곳에 들어가면 책바구니(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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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시골학교와 폐교책숲

― 작은배움숲 1 함께 바라봅니다



  2011년 여름에 전남 고흥에 깃들었습니다. 마을 빈집과 빈터를 장만했고, 마을앞에 있는 옛배움터(폐교)를 빌렸습니다. 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언제나 책살림을 잔뜩 짊어지면서 지내는 터라, 저희 책살림은 옛배움터(폐교)쯤 되어야 건사할 수 있습니다. 전남 고흥으로 오기 앞서, 인천 배다리에서부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5톤 짐차 다섯 대에 실은 책짐은 2026년에 5톤 짐차 스무 대에 실을 만큼 늘었습니다.


  이제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서울로 떠나서 옛배움터(폐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푸름이가 자취를 감춘 두멧마을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살림하면, 여러 젊은 이웃이 어린이와 푸름이를 데리고 돌아올 푸른터로 삼을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우리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물려줄 살림이란 ‘온몸으로 뛰고 놀고 달리면서 온마음으로 익힐 숲들바다’라고 봅니다.


  시골에서 옛배움터를 빌려쓴 지 열여섯 해입니다만, 이동안 고흥교육지원청과 전남교육청은 으레 ‘오래된 건물이라 철거해야겠다’는 말씀(정책)만 이어옵니다. 지난 열여섯 해에 걸쳐 고흥군과 전라남도에서 닫아야 한 배움터가 참 많습니다. 앞으로도 닫을 수밖에 없는 배움터가 수두룩합니다. 커다란 토목사업이나 공공기관이 전라남도에 들어오더라도 막상 큰고장에 이바지할 뿐, 논밭과 들숲바다를 품은 시골하고 멀기도 하고, 토목사업은 들숲바다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입니다.


  전남과 광주가 어깨동무하는 올해인데, 이제라도 ‘폐교활용 전담부서’를 처음으로 열 만하지 않을까요? 이미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가 몽땅 떠난 시골마을에서 옛배움터까지 허물어서 땅만 내다팔면, 그나마 시골에 자리잡아서 푸른살림을 짓고 싶은 서울이웃을 다 가로막는 담벼락이 되지 않을까요?


  서울은 학원이 숱하게 넘치지만, 시골은 읍내에만 학원이 조금 있습니다. 시골은 학원이 생기기 어렵습니다만, 굳이 학원이 있을 까닭이 없이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가 누구한테나 배움숲(학교·학원)입니다. 옛배움터(폐교)를 허물려는 길(정책)이 아닌, 옛배움터를 ‘숲배움터’로 돌려서 이모저모 고치고 손질하는 새길(대안)을 세울 때라고 봅니다.


  저는 국어사전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희가 빌려쓰는 옛배움터를 ‘국어사전 도서박물관’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을 잔뜩 품은 저희 책숲인 터라, ‘책품책숲(책을 품은 책숲)’으로 일굴 수 있습니다. 기꺼이 몸을 내주어 종이책이 태어날 살림을 베푼 나무는 처음에 다 작은씨앗이었습니다. 작은씨앗이 하나둘 모여서 아름드리숲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종이책을 손에 쥘 적에는 ‘온사랑을 베푼 푸른숨빛’을 함께 누리고 배울 만합니다.


  이제부터는 온나라 모든 옛배움터를 ‘새로배움숲(새롭게 푸른살림을 배우는 숲터)’으로 삼아 보자는 마음을 틔울 시도지사와 군수와 국회의원과 대통령과 담당 주무관을 그립니다. 행정으로 치면야, 폐교쯤 가볍게 슥 허물면 손쉬울 테고, 사업비 집행도 수월할 테지만, 시골에 아무런 앞날도 앞빛도 씨앗도 없고 못 남깁니다.


  작은배움숲(폐교)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작은사람이 작은시골에 하나둘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인구소멸) 걱정부터 사라집니다. 이미 시골배움터는 면소재지에서는 아이(전교생)가 열 남짓이기 일쑤이고, 아이가 열이 안 되는 시골배움터가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이처럼 작은 시골배움터로 ‘시골길(산촌유학·농어촌유학)’을 누리려고 찾아가는 서울이웃이 해마다 부쩍부쩍 늘어납니다. 너무나 많이 바글거리는 서울과 달리, 배움터 모든 어린이(1∼6학년 전교생)가 푸르고 해맑게 나란히 배우고 들숲메바다를 품는 시골에서 ‘마음밭’부터 가꿀 수 있거든요.


  한겨울에는 눈덮인 들판에서 스스럼없이 눈놀이를 누릴 수 있는 시골배움터입니다. 한여름에는 얼음바람(에어컨)이 아닌 들바람과 숲바람을 쐬면서 골짜기와 바다를 품을 수 있는 시골배움터입니다. 우리가 먹는 낟알과 열매와 푸성귀를 어린이가 손수 심어서 가꾸는 길을 배우고 익히면서 “이 삶이란 손수 돌보면서 놀랍도록 즐겁구나” 하고 알아갈 수 있는 시골배움터입니다.


  면소재지에 아직 남은 시골배움터를 든든히 버티는 힘이 될 수 있는 작은배움숲(폐교)이라고 봅니다. 시골에는 따로 학원이 없어도 됩니다. 들과 숲과 메와 바다와 하늘과 별과 비와 풀과 나무와 나비가 스승이고 동무이고 길잡이입니다. 이제까지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다 떠나서 텅텅 비고 만 마을과 폐교이지만, 이제부터는 거꾸로 작은배움숲으로 살리면서 찬찬히 새길을 여는 새빛으로 삼을 만합니다.


  크게 올려세우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크게 올려세우지 않기에 어깨동무합니다. 크게 올려세우려 하느라 자꾸자꾸 서울로 밀어내는 바람에, 서울도 너무 붐비면서 고단하고 괴롭고 지칩니다. 바로 이제부터는 시골배움터(공공학교)와 작은배움숲(폐교활용 문화예술공간)이 나란히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기를 빕니다. 그래서 뜻있는 정치와 행정이 싹트기를 바랍니다. ‘폐교철거’가 아닌 ‘폐교활용’이라는 새싹이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2026.7.2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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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7.28.


《광고회사, 남자기숙사의 오카즈 4》

 오토쿠니 글·그림/김서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6.30.



느긋이 오는 아침이다. 짐을 꾸려서 서울로 나선다. 시외버스에서 글을 쓰며 이모저모 찾다가 ‘2차 학교복합시설사업 공모’가 지난 6.1.과 6.30.에 난 줄 뒤늦게 알아챈다. 시골자락 옛배움터(폐교)를 나라에서 120억 원을 들여서 ‘고쳐쓰기+새로짓기’ 모두 하라는 뜻을 편단다. 고흥교육지원청 주무관한테 물으니 이런 길(정책)을 처음 듣는단다. 나라(정부)에서 하자는 일을 마을(지자체)에서 몰라도 된다는 뜻인가. 시골 어린이와 푸름이를 북돋우는 일에는 터럭만큼도 마음을 안 쓴다면 ‘고흥교육지원청 공무원’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함께 ‘마을일꾼’이기를 빈다. 저녁에 숭실대 옆 〈라이브러리 두란노〉에서 ‘집이란 무엇인가’를 글감으로 삼아서 이야기꽃을 편다. 《광고회사, 남자기숙사의 오카즈》를 읽는다. 다 다른 나이와 삶인 여러 사람이 이따금 모여서 ‘집밥’을 나눈다는 줄거리이다. 한 사람이 모든 밥살림을 맡지 않는다. 서로서로 한 손씩 보태면서 느긋이 누리는 저녁 한끼이다. 여태 숱한 그림꽃은 이때에 가시내만 다루곤 하는데, 이 그림꽃은 사내를 다룬다. 그럼, 사내도 도시락을 잘 싼다. 사내도 집안일을 훌륭히 한다. 스스로 맡으면 되고, 손수 가꾸면 된다. 집안일을 즐기고 노래하는 이웃사내를 기다린다.


#廣告會社男子寮のおかずくん #オトクニ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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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폐교 400여곳 방치..."지자체가 활용 고민해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6334251?sid=102


교육부, 폐교 탈바꿈한다…'2차 학교복합시설사업' 공모 실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5378947?sid=102


6.30.공고 8.11.신청

2차 학교복합시설사업

https://www.moe.go.kr/boardCnts/viewRenew.do?boardID=72761&boardSeq=106602&lev=0&m=0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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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사이드카 이어 서킷브레이커…낙폭 8%대(종합2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218495?rc=N&ntype=RANKING


7월에만 21번 울린 사이드카… 변동성 못 잡는 ‘고장 난 경보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66/0001182338?sid=101


'장윤기 사건'에 화들짝 전수조사…경찰 가족사건 사각지대 충격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220107?rc=N&ntype=RANKING


“홍명보, 자택 인근서 법인카드 1400만원 결제... 소명서 미제출”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23/0003990093?ntype=RANKING&sid=001


‘초고령 도시’ 부산, 65세 이상 80만 명 돌파

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39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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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18 지키려면 짓는

책벌레수다 : 말더듬이로 보낸 어린배움터



  말 한 마디는 모두 씨앗이기에, 말씨를 눈여겨볼 수 있다면 이 작아 보이는 말씨 한 톨이 다 다르게 빛나는 줄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말은 처음에는 그저 ‘말’이었을 테지만, 우리 마음을 담아낼 소리로 깨어나면서 문득 ‘말씨’로 거듭나고, 이 말씨는 ‘말빛’으로 나아가면서, 어느새 다 다른 모든 사람한테 저마다 새롭게 ‘말길’을 잇는 ‘낱말(나를 나로 틔우는 말)’로 선다.


  나는 일곱 살까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며 잘 뛰놀았다. 여덟 살에 어린배움터에 들고부터 ‘한글’을 모른다며 길잡이한테 꾸지람을 듣고 따귀를 맞아야 했는데, 1982해 언저리에는 웬만한 어린이라면 다 겪은 일이다. 그래도 나는 이레 만에 한글을 익혔다. 한글을 익히자니 이제는 배움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시키고, 내가 혀짤배기에 말더듬이인 줄 이때부터 알아챘다.


  1987해를 맞이할 때까지 혀짤배기에 말더듬이를 놀리는 또래한테 시달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다만, 용케 안 죽었을 뿐 아니라, 어린배움터를 마칠 무렵 동무 하나가 “친구가 말할 때 웃는 거 아냐!” 하고 따끔하게 끊어 준 보람으로, 더는 놀림받지 않았다. 이미 어릴적부터 내도록 ‘말씨·말결·말빛·말소리’가 무엇인지 홀로 찾아나서는 길을 걸었다.


  나부터 말을 더듬고 제대로 소리를 못 내니,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더듬거나 힘든 동무가 어떤 마음인지 곧바로 느끼는 나날이었다. 이른바 “공부 못하는 아이”를 놀리는 아이하고는 안 놀고 싶다. “조금이라도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언제나 “공부 못하는 아이”랑 모둠을 안 지으려고 하더라. 이럴 때마다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를 부르거나 곁에 앉아서 한모둠을 이루었다. 이러면 둘레에서 다들 움찔한다.


  ‘쟤 왜 저래?’ 하는 눈치와 말을 듣는데, 마음씨가 착한 동무가 선뜻 나서서 “공부 못하는 아이”가 잔뜩 있는 모둠으로 들어오더라. 어린배움터 여섯 해 내내 느낀 바 하나를 풀자면, “공부 못하는 아이란 없다”이다. “눈길과 마음길과 손길을 못 받는 아이만 있다”이다. 함께 모둠을 지어서 함께 실마리를 풀어가면 다 다른 빠르기로 다 잘 알아듣고 즐겁다.


  곧잘 어릴적을 떠올린다. 말더듬이 어린이가 아닌 어릴적이었으면 다른 길을 갔을 수 있는데, 말더듬이 어린이로 살아낸 나날이 있기에 한결 둘레를 헤아리면서, 누구보다 나 스스로 돌아보는 길을 가다듬었지 싶다. 더듬더듬 소리내는 말결을 마흔 해쯤 가다듬고 보니, 이제는 혀짤배기여도 이렁저렁 말하는 결을 찾는다. 여러 이웃말을 배우고 익히는 동안,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르게 말소리를 터뜨리는 줄 느낀다.


  시골에서 살며 시골말을 늘 듣다 보면, 이웃시골로 마실을 가서 이웃시골말을 듣다 보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녁 몸과 입과 이와 입술과 마음에 맞게 말소리를 내는 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똑같이 서울말소리를 내야 하지 않다. 서울내기여도 서울말을 다 다르게 하면 된다. 어느 곳이든 어느 것이든 다를 바 없다. 이 삶과 나란히 바라보면 될 일이다. 우리는 글을 놓고서 ‘쓰다·적다·옮기다·담다’를 비롯해서 온갖 낱말로 나타내곤 한다. 쓰다듬듯 쓸 수 있고, 조금조금 적을 수 있고, 이쪽으로 안듯이 옮길 수 있고, 속으로 넉넉히 담을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든 스스로 길을 찾을 일이지 싶다.


  지키고 싶기에 짓는다. 지키는 동안에 지새우고 지내면서 가만히 바라보고 느낀다. 지키고 지새우고 지내는 곳이 바로 집인 줄 알아간다. 집에서 즐겁게 지낼 적에 동무랑 이웃하고 도란도란 어울리게 마련이라고 배운다. 어떤 말씀이더라도 우리가 속으로 밝게 바라보는 눈길이라면 서로 어울리는 어깨동무로 간다. 어떤 글과 책이더라도 우리가 마음을 틔워서 품는 손길이라면 서로 나누고 베푸는 이야기꽃으로 간다.


  한자를 쓰느냐 안 쓰느냐는 썩 대수롭지 않다. 우리말을 정갈하게 쓰느냐 마느냐도 그리 대단하지 않다. 먼저 우리 마음을 어떤 낱말에 어떻게 담으려 하느냐를 바라볼 노릇이다. 삶을 마음에 담기에, 마음을 말로 옮기고, 이 말을 새삼스레 글로 담는 얼거리를 가만히 바라본다면, 모든 실마리는 부드럽게 차분히 풀 수 있다.


  중국이건 일본이건 우리나라이건 같다. 글(한자)이 아닌 말(삶)로 보면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수수한 사람은 어질게 마음을 나누었지 싶다. 중국말이란 중국사투리이자 중국삶말이요, 일본말이란 일본사투리이자 일본삶말이다. 우리말이란 우리사투리이자 우리삶말이다.


  ‘서울말(표준말)’이라 할 적에는 삶이나 마음하고 멀다. 서울이라는 곳으로 틀을 세우면, 모든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르게 나타내는 말씨와 말결과 말빛을 다 버려야 한다. 서울말을 쓰면 쓸수록 우리 스스로 삶을 잊거나 잃다가 마음까지 잊거나 잃는다. 게다가 국립국어원에서 틀을 잡는 서울말은 ‘우리말씨’하고 먼 ‘일본말씨·옮김말씨·중국말씨’가 뒤범벅인걸. 수수하고 쉽게 우리말을 쓰려고 한다면, 숲빛으로 푸르게 삶과 살림을 되찾으면서 나란히 손잡는 하루를 세우려는 길을 걸을 수 있다.


  이 끝에서 늘 저곳을 가만히 본다. 이곳에서 언제나 저 너머를 물끄러미 본다. 지키는 일은 안 나쁘지만, 거머쥐거나 움켜쥐려고 하면 다치다가 닳는다. 그저 품에 지니듯, 집에 두듯, 이러다가 둘레에 두레로 나누면서 동무하고 돕듯, 차근차근 풀어내면 된다. 모든 책은 씨앗이다. 좋은씨나 나쁜씨가 아닌 ‘삶씨’에 ‘살림씨’에 ‘마음씨’이다. 나는 책벌레로서 모든 책을 그냥 안 가리면서 차곡차곡 읽어내려고 한다. 다 다른 동무와 이웃이 어떤 삶과 살림을 어떤 마음과 눈길과 손길로 담았는지 느끼려고 한다. 씨앗을 받아서 함께 심고서 같이 돌보고 나란히 거둔다.


ㅍㄹㄴ


“악어의 입장이 돼서 비를 맞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만!” 《나는 신기한 박물관에 출근한다 10》 92쪽


“그럼 슬슬 갈까요.” 현지 담당자 말에 차에 탄 그녀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여기 있는 일본인 아내 셋은 20대, 30대 때 니카타를 떠난 뒤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254쪽


‘그런 짓을 했다가는 스즈는 정말로 외톨이가 되니까. 아니, 그 녀석이라면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토모에의 딸에게 인생을 바치는 동안, 스즈는 엄마와 똑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다니. 난 죽을 때까지 ‘짝사랑 인생’인 건가? 난 이제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행복한 15년이었어.’ 《나의 아빠 7》 187∼188쪽


그런데 도대체 모르겠다. 왜 아이들이 이 단순한 이야ㅣ에 빠져드는지.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50쪽


“맞아. 호타카가 쌍둥이에게 해주고 싶은 만큼, 쌍둥이도 같은 마음인 게 당연해.” … “희생 같은 거 안 하고 있어. 애들을 구해주고 있는 것도 아니야. 내가 계속하고 싶어. 소중히 하고 싶어.” 《잘 잤니 그리고 잘 자 2》155, 183∼184쪽



《나는 신기한 박물관에 출근한다 10》(사와라 토모/나민형 옮김, 시리얼, 2025.2.25.)

#早良朋 #へんなものみっけ #I Found Something Strange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하야시 노리코/정수윤 옮김, 정은문고, 2020.8.10.)

#朝鮮に渡った日本人妻 #60年の記憶 #林典子

《나의 아빠 7》(니시 케이코/최윤정 옮김, 시리얼, 2025.7.25.)

#西炯子 #たたん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최은경, Denstory, 2017.5.1.)

《잘 잤니 그리고 잘 자 2》(마치타/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6.11.15.)

#おはようとかおやすみとか #まちた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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