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원사전”을 써냈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말·마음·삶’을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으로




2025년 이른봄에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펴냄)을 선보입니다. ‘말밑’은 ‘어원’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밑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을 이루는 밑(밑동)이기에 말밑입니다. 밑(밑동)을 이루는 말이라 여기면 ‘밑말’이라 하면 됩니다. 우리말은 어느 하나를 굳이 한 낱말로만 안 가리킵니다. 앞뒤를 바꾸어 가리키곤 하며, 크기와 셈여림과 부피와 빛살을 살펴서 끝없이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로 여밉니다. 우리말에는 ‘빨갛다’만 있지 않아요. ‘빨강’도 있고 ‘붉다’도 있으며, ‘울긋불긋’에 ‘발갛다’처럼 말씨를 슬몃슬몃 바꿉니다.


글을 씨앗(씨)으로 여기면서 돌보기에 ‘글씨’입니다. 글씨를 반듯하게 가다듬는 뜻을 돌아봅니다. 글이라는 씨앗을 종이에 얹을 적에 “밭에 씨앗을 심듯” 고르게 다스려야, ‘글로 담아낸 말’을 정갈하게 풀어낼 수 있다고 여기거든요. (44쪽)


‘꽃 + 샘 + 바람’에서 ‘샘’은 ‘새·새롭다’하고 맞물리는 ‘샘물·샘 2’이라고 느낍니다. 꽃망울하고 잎망울을 깨우는 바람 곁에는 ‘꽃샘비·잎샘비’가 내립니다. 꽃이 샘솟으라고 북돋우는 비입니다. (50쪽)


지난날 세종 임금님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씨를 내놓았지만, 그무렵에 훈민정음은 “우리 모두 누리는 글”이지 않았습니다. 그무렵에 누가 붓종이를 건사했을까요? 그무렵에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썼을까요? 논밭을 일구는 사람은 글을 쓰거나 책을 펼 일이며 까닭마저 없던 지난날입니다. 조선이 저물 무렵까지도 장사꾼·논밭지기·종·하님·가시내는 글이건 책이건 붓종이 모두 어깨너머라도 구경조차 하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마음을 말에 담아서 누리고 나누던 첫목이라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지은 주시경 님이 살던 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주시경 님은 이녁 딸아이한테도 글을 가르쳤고, 주시경 집안에서는 딸아들이 똑같은 아이로 자랐다지요. 그러니까 ‘우리글’이라 여기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던 사슬나라(일제강점기)에 이르도록 우리는 우리글이 없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기에 ‘나다’이고,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으면서 즐겁기에 ‘날다’라면, “오랫동안 많이 쓰거나 오래도록 비·바람·해에 바스러져서 더 쓸 만하지 않”을 적에는 ‘낡다’예요. (56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왜 썼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는 우리길을 걷는 살림살이를 일굴 적에 곁에 두면서 이바지하는 꾸러미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말을 그려낸 무늬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입니다. 마음이란, 삶을 고스란히 담는 그릇입니다. 삶이란, 사람으로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누리는 하루입니다.


모가 없이 아우르고 모이기에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두런두런’ 말을 섞기도 합니다. ‘도란도란·두런두런’은 ‘두레’하고도 얽혀요. 두레는 ‘둘레’하고도 만나는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나고 사귀고 아우르면서 크게 펴는 자리인 ‘두레’요, 하나를 두른·둘러싼 곳을 살핀다고 하는 ‘둘레’이며, 두레처럼 둘레를 아우르는 사이인 ‘동무’입니다. (68쪽)


그래서 ‘글 → 말 → 마음 → 삶 → 살림·사랑·사람’이라는 얼거리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는 ‘살림쓰기·사랑쓰기·사람쓰기’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스스로 글이라는 그림으로 옮길 적에, 바로 “우리 스스로 살림을 지어서 삶을 누리는 마음”을 저마다 또렷하면서 즐겁고 넉넉하게 펴려면, ‘말’을 제대로 알거나 넉넉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인 우리말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말밑·밑말’을 찬찬히 새기면 됩니다.


‘우리말’이란, “우리를 바라보는 말”입니다. ‘우리 = 나 + 너 + 뭇숨결’입니다. 나 혼자만 있다고 언뜻 여길 적에도 ‘우리’를 쓰는 우리나라인데, 사람은 나 혼자여도, 돌과 나무와 해와 바람과 새와 풀벌레처럼 뭇숨결이 둘레에 있다고 여기기에 ‘우리’를 씁니다. ‘우리말’이란 ‘순우리말(토박이말)’이라기보다는 “아우르고 어우르는 마음으로 쓰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 ‘길·길이·길다’는 이곳·이때하고 저곳·저때가 어떤 사이인가를 나타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나아가기에 ‘길’이고, 어느 만큼 나아가는가를 따지거나 재기에 ‘길이’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꽤 나아갔기에 ‘길다’라 합니다. (78쪽)


우리말 ‘바’는 ‘밭·바탕’을 밑뜻으로 나타냅니다. 씨앗을 심어서 가꾸는 자리인 ‘밭’이요, 무엇이 태어나거나 깨어나거나 자라는 너른 터인 ‘바탕’입니다. 가장 낮다고 여길 만하도록 넓기에 ‘바탕’이니, ‘바다’는 푸른별에서 ‘바닥’을 드넓게 덮으면서 이곳이 짙푸른 삶터가 되도록 북돋운다고 하겠습니다. (105쪽)





지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선보였습니다. 이 꾸러미를 선보이고 난 지 열 해 만에 《말밑 꾸러미》를 내놓습니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혼자서 온일을 맡는 터라 낱말책을 더 일찍 묶어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림을 가꾸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기에, 이런 여러 가지를 하는 틈에 바지런히 손을 놀릴 뿐입니다.


2003년 8월까지는 서울에서 살며 일을 했으나, 2003년 9월부터는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충북 충주 멧골자락과 서울을 오가며 일을 했습니다.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다가, 2010년 가을부터 다시 시골로 옮겼으니,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살림을 지은 지 제법 됩니다.


많은 결을 나타내는 말밑인 ‘수’입니다. ‘머리숱’을 가리킬 적에 쓰는 ‘숱’으로도 잇습니다. 머리숱이 적건 많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세기란 어렵거나 까다롭습니다. 아니, 못 센다고 할 만해요. ‘숱 + 하다(많다)’ 꼴인 ‘숱하다’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셀 길이 없도록 많은” 결을 가리켜요. (125쪽)


서울과 서울곁에서 일할 적에는 ‘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여미었고, 시골과 멧슾에서 일하는 요즈음은 ‘들숲바다·해바람비·풀꽃나무·시골·사투리·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엮습니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써낸 뜻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들숲바다에서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품는 살림살이를 일구는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세종 임금님은 글씨를 지었되, 우리말을 짓지는 않았고, 이 나라 모든 사람이 살림살이를 말글로 옮겨서 널리 나누는 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없던 무렵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말(우리말)’을 했고, 이 말(고을말·사투리)은 단군조선보다 아득히 긴 나날에 걸쳐서 흘러왔습니다.


단군 옛이야기에 나오는 ‘곰·범’이나 ‘쑥·마늘(또는 달래)’ 같은 낱말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김치를 담그는 ‘갓’ 같은 풀이름은 언제부터 썼고, 높게 솟은 땅을 가리키는 ‘메·갓’이란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요? ‘하늘’이나 ‘집’이나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일구다’라는 낱말은 ‘일’이 뼈대요, ‘일다·일으키다·일어나다’도 ‘일’이 바탕입니다. 새롭게 펴거나 하는 몸짓을 나타내는 이 말씨는 외따로 ‘일’로 쓸 적에 ‘할거리·지을거리’를 가리켜요. “일하다 = 스스로 새롭게 짓거나 이루거나 나타나도록 하다” 같은 결이라고 읽어낼 만합니다. ‘이름·일컫다·이르다’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177쪽)


삶·살림·사랑을 지으려면 ‘하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누리려면 ‘있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배우려면 ‘보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고, 삶·살림·사랑을 나답게 펴려면 ‘알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생각하려면 ‘가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지요. (186쪽)


아직 우리는 이런 수수하고 오랜 삶말·살림말·사랑말이 어떤 뿌리인지 종잡지 못 하기 일쑤입니다. 글도 책도 없던 까마득히 오랜 나날에 걸쳐서, 모든 사람이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말씨와 말결과 말빛을 헤아리려면,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스스로 품으면서 살필 노릇입니다.


동박새를 곁에 두지 않는다면, 동박새가 왜 동박새란 이름이었을는지 어림조차 못 합니다. 동박새가 겨우내 즐기는 꽃이 피는 나무가 ‘동박나무’여야 올바르다고 느끼려면, 동박새에 ‘동백나무’를 언제나 품는 살림일 노릇입니다.


‘철새’란 철을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본 뒤에, 새로 바뀌는 철에 예전 보금자리로 함께 돌아가는 야무지고 씩씩한 새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숱한 낱말책은 ‘철새’ 뜻풀이가 매우 엉성합니다. 책상맡에 앉아서 옛글을 뒤적일 줄은 알되, 막상 여름새도 겨울새도 만날 일이 없고, 새노래와 새살림을 지켜볼 일마저 없거든요.


속으로는 빛나지 않고 겉으로만 번쩍거리려고 하기에 ‘거짓’이라고 합니다. 돈을 모두 잃은 사람을 ‘거지’라고도 하지만, 돈이 하나조차 없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한테는 ‘거지’라고 하지 않아요. 마음이 가난하면서 돈만 많은 사람한테 오히려 ‘거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236쪽)


‘텃새’란 터(터전)를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보는 살림을 늘 한곳에서 잇는 듬직하고 어엿한 새입니다. 그러나 ‘텃새’가 어떤 결로 사람 곁에 머무는지 지켜본 적이 없거나 지켜볼 마음조차 없다면, 이러한 새를 다루는 뜻풀이와 보기글도 텃새살이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는 집살림을 맡지 않는 삶일 적에는 ‘아기’와 ‘어버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 하기도 하지만, 말밑을 어림조차 못 합니다. 서로 ‘동무’를 하는 사이로 돕고 돌보는 두레를 이루는 삶을 가꾸지 않을 적에도 ‘동무’라는 오랜 낱말에 숨은 수수께끼를 못 읽습니다.





모든 낱말은 서로 얽고 잇고 엮고 이르고 만납니다. 따로 뚝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지는 낱말은 아예 없습니다. 이웃 여러 나라에서는 낱말책을 꾸리거나 여밀 적에 반드시 ‘모든 낱말’이 어떻게 만나고 맺고 어울리는지 차근차근 짚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밑길을 제대로 못 열거나 안 엽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서울에 몰아놓다 보니,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맴돌거나 큰고장 대학교 담벼락에 또아리를 틀기만 합니다.


좋은말이나 나쁜말은 따로 없습니다. 어느 말을 어느 마음이 되어 쓰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드러나는 삶을 낱말 하나에 얹어서 나타내고 나눌 뿐입니다. (262쪽)


사람은 속으로 ‘씨·알’을 품는 숨이요, ‘살다·삶·살리다·살림’으로 펴는 길입니다. 길이 숨을 만나고, 숨이 길을 마주하지요. 그래서 살고 살리는 씨이자 알로 있기에, ‘앎(알다)’을 맞아들이는 하루(삶)이고,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스스로 밝은 빛으로 섭니다. 사람 하나하나는 ‘빛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270쪽)


말을 알려면 말이 태어난 숲에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또는 숲을 곁에 두면서 내내 숲을 헤아려야 할 테지요. ‘아이돌봄글(육아일기)’을 쓰려면 아이를 한결같이 삼백예순닷새 내내 지켜보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낱말책을 여미는 분들이 정작 “말이 태어난 곳”하고 너무 멀 뿐 아니라, “말이 태어난 살림”하고 담을 쌓는다고 느낍니다.


《말밑 꾸러미》를 ‘기존 사전 형식’으로도 엮을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안 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스스럼없이 읽으면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말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기에 새틀을 짰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표현”과 “문해력 증진”이 아닌, “살아가는 마음을 나누는 말을 서로서로 즐겁게 펴고 듣고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적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봅니다.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이고, 마음에 담으려고 심을 씨앗이 될 생각입니다. 또는, 마음에 깃든 생각을 꺼내어서 귀로 알아듣도록 그린 소리가 말이에요. ‘마음·말’은 밑뿌리가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소리를 그려내는 말이 된다면, 마음이 안 맞거나 막히는 일이 없어요. 마음 없이 내는 소리는 그저 소리요, 마음 있이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말이랍니다. (350쪽)


스스로 어질게 살림하는 사람이기에 ‘어른’이요 ‘스승’입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한테 심부름을 안 시킵니다. 어른과 스승은 그저 몸소 합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와 젊은이가 스스로 온누리를 맞이하고 겪어 보도록 마당을 펴고 자리를 내주는 몫입니다.


말을 말답게 살펴서 익히는 길은 누구나 스스로 스승이자 어른으로 서는 길입니다. 낱말책 한 자락을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어냈기에 우리말을 다 알아내거나 알아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낱말책이건 모든 우리말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지는 않습니다. 모든 낱말과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자면 5만 쪽은커녕 10만 쪽으로도 모자랍니다. 그저 낱말책이란, 그때그때 갈무리한 만큼 이웃하고 나누려는 작은 꾸러미일 뿐입니다.


다쳐서 구멍이 나거나 틈이 난 데에 넣어서 막는 ‘심’이기도 해요. 이런 쓰임새를 살려서, 초에서 불이 붙도록 안쪽 한가운데에 꼬아서 넣는 실도 ‘심’이란 이름으로 가리키지요. 글붓(연필) 안쪽 한가운데에 놓아 글씨를 쓸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것도 ‘심’으로 가리킵니다. 우리말 ‘심’은 ‘힘’처럼, 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듯 부드럽고 단단하게 한가운데(한복판)를 이루면서 곧고 길게 이어주는 길을 나타냅니다. 촛불심도 연필심도 ‘힘·실’이라는 결을 ‘심’이라는 말꼴로 담아요. (399쪽)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는 배움길은 1984년에 처음 걸었습니다.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자는 마음은 1992년에 처음 했습니다. 1994년에 ‘우리말을 스스로 배우고 나누는 모임’을 조촐히 꾸리면서 한 땀씩 바느질을 해온 살림결 가운데 하나를 2025년에 살짝 풀어놓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말더듬이·혀짤배기’이던 몸이라 오지게 놀림받고 시달렸습니다. 여덟 살이던 1982년부터 열 살이던 1984년까지 날마다 얻어맞지 않은 날이 없고, 언제나 동무와 길잡이(교사)가 제 말소리를 놀려먹었습니다. 이러던 1984년에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어째 마을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버릇없어 보이기에 ‘효’를 익히도록 천자문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온마을 어린이와 푸름이를 어르신집(경로당)에 날마다 불러모아서 한 시간 남짓 가르친 적이 있어요. 이때에 저랑 또래 하나만 할아버지한테서 끝까지 즈믄글씨(천자문)를 익혔는데, 즈믄글씨를 익힌 뒤에 돌아보니, 말더듬이에 혀짤배기가 소리를 못 내거나 엉키는 낱말이 모조리 한자말인 줄 깨달았습니다.


꽃은 열매로 나아가는 끝길입니다. 꽃송이가 숨을 거두는 끝에 열매가 익어요. “꽃이 곱다”고 말하는 밑자락을 들여다본다면, 기나긴 길을 거치면서 끝자락에 닿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애를 쓰며 힘을 다했나 하는 빛을 느낄 만하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438쪽)


‘나비(나방)·알·애벌레’라고 하는 세 갈래 길입니다. 사람도 ‘어버이(어른)·알(씨알)·아이(아기)’라는 세 갈래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나무처럼 든든히 지키고 바라보면서 나란히 삶·살림·사랑을 그리는 사이입니다. 두 어버이가 즐거운 사이인 터라 ‘새(사이)’처럼 아이(아기) 사이에서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노래를 하고 놀이를 노느는(나누는) 나날을 지을 수 있습니다. (476쪽)


저는 이해 1984년부터 옥편과 사전을 샅샅이 뒤져서 “말더듬이와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쉬운 우리말”을 찾아나섰습니다. 얻어맞기 싫고, 놀림받으면 괴롭거든요. 이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부터는 첫 수능·본고사·면접을 치르는 배움불굿(입시지옥)에 맞추어 “언어영역 시험 대비”로 ‘국어사전 통째읽기’를 두 벌 했습니다. 1992년에 두 벌째 다 읽었는데,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아주 후줄근하고 초라하더군요. 차라리 내가 쓰고 말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아침에 ‘다만·단둘·단짝·달갑다·달다·단골’이라는 낱말이 어떤 말밑인지 풀어냈습니다. 그야말로 날마다 동박새 날갯짓마냥 천천히 보드랍게 나아갑니다. 〈말밑 꾸러미〉를 곁에 두면서 말빛을 익히는 이웃님이 그저 느긋하시기를 바랍니다. “안 서두르려는 마음”일 적에도 똑같이 ‘서두르’고 맙니다. “안 서두르기”가 아니라 “느긋이 노래하기”라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말씨앗 한 톨이 우리 마음밭에 깃들어 자라다가 어느 날 생각나무로 자라고 사랑꽃을 피워서 살림열매를 맺습니다.


울타리가 없고 담이 없으면서 넘나드는 데라서 ‘누리’입니다. 누구나 눈을 뜨고서 누리는 삶이기에 ‘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누리에서 조금조금 금을 긋고서 나누는 동안 ‘나라’가 됩니다. 나라에는 울타리가 있고 담이 있어요. 섣불리 넘나들지 못하도록 해요. ‘누리’나 ‘나라’나 똑같은 땅이되, 한쪽은 울타리 없이 흐드러지는 홀가분한 빛이요, 다른 한쪽은 울타리를 세우면서 너랑 나를 가르고 힘으로 누르는, 억누르고 짓누르는 틀입니다. (485쪽)


나무 한 그루가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열 해 남짓 걸립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넉넉히 베풀기까지 으레 스무 해 남짓 기다립니다. 우리말을 마음자리에 푸른숲으로 심고 가꾸고 돌보면서 파란하늘처럼 드리우는 말살림이며 글살림을 차분히 하나씩 일구어 가려는 뜻을 조촐히 꾸러미로 엮습니다.


참새가 노래합니다. 짹짹짹 소리가 아니라, 찌빗찌빗 찟찟 쫏 쫑 쭈루루 짯짯 쫌 쪼비비 째비비 째리리리 쮯 쭈룹 같은 갖가지 가락과 높고낮은 물결로 하루를 엽니다. ‘말’에 ‘마음’을 담는 ‘삶’에 한손을 거들려는 뜻으로 꾸리는 낱말책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쓰는 한국말사전”입니다. “새롭게 쓰는 우리말꽃”이기도 하고, “새롭게 나누는 낱말숲”이기도 합니다.





늦겨울이 저물던 지난 2025년 2월 18일 아침을 떠올립니다. 그날 우리 집 앵두나무 곁에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시든풀이 우거진 곳에서 동박새 둘이 고개를 빼꼼하면서 저를 쳐다보더니 쪼리쪼리쪼리쪼리 쯔릉쯔릉쯔릉쯔릉 소리를 내며 서로 쳐다보다가 포르릉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제 발치에서 멀잖은 곳에서 조금 날다가 다시 시든풀더미에 내려앉습니다.


목숨이 있는 집이 ‘몸’입니다. 우리말에서 받침 ‘ㅁ’은 ‘아우름·집·묶음’을 나타냅니다. 목숨이 집처럼 깃들 수 있는 곳이고, 여러모로 목숨을 움직이는 것을 아우른 곳이 몸이에요. (528쪽)


빨강은 ‘붉다’로도 나타냅니다. ‘붉다’는 ‘불’에서 비롯했습니다. 타오르거나 달아오르는 불길인 빛이에요. 불길은 확 번지고 이내 태웁니다. ‘빠르게’ 타오르거나 태우는 불기운을 담는 ‘빨강’이에요. (558쪽)


동박새를 눈여겨보는 서울내기도 제법 있으나, 여든 살이나 아흔 살에 이르도록 동박새는커녕 박새나 쇠박새는 아예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혀끝에 ‘동박새·박새·쇠박새’라는 낱말을 얹을 일마저 없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동박새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나무에 이 새가 앉았어도 새가 앉은 줄 못 알아채기도 하고, 동박새 노랫가락이 조금도 귀에 안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지난 2025년 2월 16일에는 부산 거제동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이오덕 읽기 모임’을 꾸리고 난 뒤에, 이곳 뜨락에서 겨울볕을 함께 쬐었습니다. 이때에 “똥! 방!” 하고 굵고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를 한참 들었습니다. “똥! 방!” 하는 소리가 나고서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똥! 방!” 소리를 듣는데, 이 소리를 서른 벌째 들을 무렵, 〈책과 아이들〉에서 자라는 동박나무(동백나무)하고 소나무 사이로 동박새가 빼꼼 얼굴을 내밉니다.


‘하얗다(희다·흰)’는 빛깔은 ‘해’가 드리우는 빛을 가리켰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없이 탁 트일 적에는 파랗다면, 이 파란하늘이 눈부시도록 온누리를 밝히는 햇빛은 ‘하얗다’고 여겼고, 해처럼 맑아 ‘해맑다’라 하고, 해처럼 밝아 ‘해밝다’라 합니다. (561쪽)


우리나라 모든 새이름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시골내기가 문득 어느 새를 눈여겨보다가 저마다 다른 빛결을 가르면서 붙였습니다. 어느 새는 노랫가락을 고스란히 옮겨요. 이를테면 뜸부기·제비·꾀꼬리·소쩍새·왜가리는 노랫소리를 그대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박새·딱따구리·뱁새·크낙새·한새(황새)·매는 매무새와 깃빛과 몸짓을 살펴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여기에 까마귀·까치는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러서 담았다고 여길 만한데, 동박새도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렀구나 싶습니다.


모든 낱말은 모든 삶하고 잇습니다. 모든 말은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과 눈길을 생각 한 톨로 여미어서 나누려는 ‘빛씨’라고 여길 만합니다. 늘 쓰는 흔하고 수수한 말씨 한 마디부터 차분히 새기고 어린이하고 이야기할 적에 누구나 말빛을 틔우면서 말길을 새록새록 지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비롯한 조촐한 낱말책을 반가이 맞이하실 이웃님을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하나 = 하 + 나’인 얼개를 눈여겨봐요. 하늘처럼 크고 넓은 ‘나(한 사람·개인)’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입니다. (593쪽)


‘하나’부터 연 셈값은 ‘울’로 마무르는데, ‘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요, ‘나너·너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울’입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말 셈값은 ‘나’랑 ‘너’ 사이를 삶이라는 길로 그려낸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너’랑 ‘나’는 즐겁고 홀가분히 드나드는 ‘너나들이’라는 사이일 수 있으면서, 땅하고 하늘 사이처럼 까마득히 먼 사이일 수 있되, ‘하나’에서 ‘울’로 오니 ‘한울(하늘)’입니다. (606쪽)


‘자람’은 스스로 높거나 크거나 튼튼하거나 기운차게 오르는 빛이요, ‘장다리’는 꽃을 피우려고 곧고 길고 곱게 오르는 빛이요, ‘장대’는 곧고 길며 단단하게 서려는 빛이요, ‘자’는 곧고 길게 서며 고르게 살피는 빛이라면, ‘자랑’은 스스로 꽃이라고 여기면서 곱게 보여주고 싶은 빛입니다. (646쪽)


그저 앞자리이기만 한 처음은 아닙니다. ‘참·찬찬·천천’이란 결을 품은 말씨인 ‘처음·첫’이에요. (687쪽)


꾸밈없고 스스럼없이 빛나는 ‘착하다’라면, 꾸미면서 스스로 잊거나 잃는 ‘척하다(체하다)’예요. 스스로 있으면 넉넉하면서 빛나는 ‘착하다’일 텐데, 겉으로만 좋게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나(스스로)를 잊어서 껍데기만 남는 ‘척하다(체하다)’입니다. (689쪽)


‘책’이란, 참답고 참하게 찬찬히 채우면서 살림빛과 사랑길과 삶넋과 사람씨를 챙기면서 착한 손길로 차분히 여미어 차곡차곡 이야기를 재우는 꾸러미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 숨빛과 눈길로 우리 발걸음을 차근차근 짚은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라도 마음을 챙기고 생각을 참되이 밝히는 첫걸음을 내딛을 때라고 봅니다. (693쪽)


우리글 한글을 으레 ‘소리글(소리를 담는 글)’로 여기는데, 우리글 한글은 ‘소리뜻글(소리하고 뜻을 담는 글)’이나 ‘뜻소리글(뜻하고 소리를 담는 글)’로 여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글뿐 아니라 이웃글(외국 문자)도 뜻뿐 아니라 소리를 함께 담게 마련이요, 소리에다가 뜻을 나란히 담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소리에는 마음소리가 흐르고, 마음소리를 담는 말소리를 옮긴 글씨이기에, 글은 소리랑 뜻을 아우를 수밖에 없습니다. (727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 어원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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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들 읽기 (2025.8.5.)



숲노래가 시골살림을 지으면서(2011∼) 일군 책이 있습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랑 엮는이(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서울살림을 짓는 동안(1995∼2003)에는 책을 안 내놓았고,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며 충주살림을 하는 동안(2004∼2006) 두 가지 책을 내놓았으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려고 돌아간 옛마을에서 인천살림을 하는 사이(2007∼2010) 여러 가지 책을 비로소 내놓았습니다. 여러 책 가운데 판이 끊어지거나 찾기 어려운 책이 아닌,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책을 몇 갈래로 나누어 봅니다. 즐겁게 장만하셔서 즐겁게 삶꽃을 피우시고 즐겁게 사랑살림 가꾸는 길에 동무로 삼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말·넋·삶·숲을 읽는 첫걸음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철수와영희,2025)

《쉬운 말이 평화》(철수와영희,2021)

《이오덕 마음 읽기》(자연과생태,2019)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스토리닷,2017)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2019)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2. 우리말이 노래가 되는 길 : 동시쓰기 + 시쓰기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우리말 동시 사전》(스토리닷,2019)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2020)


3. 곁에 두며 말빛·삶꽃·숲살림 익히는 길잡이 : 우리말꽃(국어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6)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7)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9)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3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자연과생태,2018)


4. 우리말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4)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7)


5. 우리말을 푸름이하고 어깨동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2011)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5)


6. 책넋과 마을책집 : 책읽기를 누리는 하루와 이웃마실

《책숲마실》(스토리닷,2020)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스토리닷,2016)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스토리닷,2018)


7. 빛을 담는 꽃(빛꽃) : 사진과 책과 삶과 마을과 꽃

《내가 사랑한 사진책》(눈빛,2018)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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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hbooks/5784559

(이곳에 들어가면 책바구니(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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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니아 이야기 14
토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6.6.

만화책시렁 844


《칼바니아 이야기 14》

 TONO

 박소현 옮김

 서울문화사

 2013.8.30.



  숲을 만나면 푸르게 물들면서, 숲빛을 푸근히 품는 하루를 살아낼 만하지 싶습니다. 숲을 등지니 푸른빛을 잊으면서, 숲을 모르는 채 잿빛에 스스로 가두어 매캐하게 죽어나가는구나 싶어요. 모든 숲은 작은씨앗 한 톨에서 비롯해서 풀과 나무가 저마다 다르게 우거지면서 푸르게 마련이에요. 모든 삶터도 작은사람이 서로 얼기설기 만나고 헤어지고 어울리고 뒤섞이면서 다 다른 빛을 하나로 모두어 하늘마음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칼바니아 이야기 14》을 돌아봅니다. 어느덧 스물두걸음(2026.2.)까지 나오는 줄거리인데, 이미 너덧걸음 무렵부터 쳇바퀴를 돌면서 붓질로 넘칩니다. 아니, 처음부터 붓질로 꾸미면서 이런 줄거리를 하염없이 이으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아침연속극·주말연속극’ 같은 얼거리라고 할 만합니다. 이쁘장하고 잘빠진 얼굴(캐릭터)을 요모조모 내세우면서 ‘보는맛 + 씹는맛’을 누리는 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발딛은 이곳은 따분하거나 지겹기에, 이렇게 붓끝을 놀리면서 짜증풀이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붓을 잘 놀릴 수 있다면, 숱한 얼굴(캐릭터)은 얼굴대로 살리면서 이야기빛을 얼마든지 가꿀 만합니다. 멀끔한 얼굴이 똑같이 나오는 《백귀야행》(이마 이치코) 같은 그림꽃은 ‘사람과 마음과 넋을 하나로 잇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칼바니아 이야기》는 오직 얼굴마당(캐릭터 대잔치)으로 열고 맺습니다.


ㅍㄹㄴ


옛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졌던 왕비는 남몰래 칼바니아의 이웃나라에서 20kg이나 살이 쪄 있었나. 그리고 칼바니아의 여왕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50쪽


“이거 게이 만화야?” “아니에요. 저도 당신의 가슴이 납짝꿍이 되면 며칠이고 삐칠 거예요.” 180쪽


#TONO #カルバニア物語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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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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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6.6.

까칠읽기 121


《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홍한별 옮김

 윌북

 2025.12.31.



  1966해에 나온 《해석에 반하여》를 2026해에 새로 냈다고 한다. 1966해에 나온 책이라면 1950∼60해무렵을 가로지르던 나날에 바라본 바를 풀어낸 글일 테지. 그때 “미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은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배웠을까 하고 돌아본다. 나는 미국이라는 땅을 밟은 일이 없되, 둘레에는 미국을 다녀온 사람이 많다. 이웃 가운데 미국으로 건너가서 지내는 분도 꽤 있다. ‘사잇땅(기회의 땅)’이라고도 일컫는 미국이고, 옆나라 일본은 그곳을 ‘쌀나라(米國)’라는 한자로 가리킨다. 하늬(유럽)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텃사람을 내몰고 죽여서 ‘홀로서기(독립)’를 했다고 여기는 나라요, 검은사람을 종으로 부려서 솜밭(목화농장)에 묶어두고 괴롭힌 나라이다. 검은사람을 ‘밭일꾼(농노)’으로 부리느냐 ‘뚝딱일꾼(공장노동자)’으로 부리느냐를 놓고 저희끼리 피터지개 싸운 나라이기도 하다.


  그나라에는 들길(민주)하고 멀지만 ‘들길’이라는 이름을 내거는 무리가 있고, 함께(공화)하고 멀지만 ‘함께’라는 이름을 내거는 무리가 있다. 파랑이와 빨강이가 악착같이 다투면서 총칼을 무시무시하게 만들어내기도 하는 나라이다. 어느 무리이건 총칼을 무척 좋아한다. 이러한 나라에서 1966해에 나온 《해석에 반하여》는 무슨 풀이를 거스른다는 목소리일까. 목소리로는 모든 옳거나 좋거나 바르다고 여기는 말은 다 외칠 수 있되, 막상 그곳에 그냥그냥 눌러앉아서 모든 길미를 누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풀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그무렵 우리나라는 미국이 거저로 내준 ‘흰가루 셋’으로 벼슬꾼과 돈꾼이 엄청나게 길미를 챙겨서 온나라를 휘어잡았다. 총칼을 앞세운 우두머리는 으레 ‘경제개발·경제성장’ 같은 허울스런 말을 일삼았는데, 그들끼리 길미를 돌라먹으면서 사람들한테는 ‘떡고물’도 아닌 검부러기를 조금 흩뿌렸을 뿐이다. 요즈음(2026해)에는 그루(주식)라는 검부러기를 조금 흩뿌리면서 사람들을 홀려서 멍청이로 길들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시내가 고개를 들고서 배움터를 느긋이 다닐 수 있던 때는 1980해무렵이다. 1970해무렵까지는 숱한 가시내가 어린배움터에 발을 디디기도 힘들었다. 으레 서울이나 서울곁 뚝딱터(공장)에 잡아먹히면서 값싼 일삯으로 부려먹히는 굴레였고, ‘식모·차장’ 같은 자리에서 말 그대초 찬밥 노릇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나고자라면서 1966해에 《Against Interpretation》를 영어로 읽었다면 무엇을 느꼈을까 하고 어림해 본다. 그무렵 미국은 우리나라하고 사뭇 달랐지만, 그때나 이제나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은 그저 가난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글을 모른다. “SF영화에는 사회 비판이란 것이 없다. 암시적인 형태로조차 들어가지 않는다(322쪽)” 같은 대목을 읽다가 이제 이 책은 덮기로 한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너무 길다. 미국사람이라면 ‘옮김말씨(번역체)’가 없는 ‘그냥 말’로 이 책을 읽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말’이 아닌 ‘옮김말씨(번역체)’를 ‘다시 우리말로 풀어서 헤아려’야 한다.


  삶터(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글과 그림도 ‘목소리’이다. 목소리란 “마음을 나누려는 소리인 말”이기도 할 뿐 아니라, “민낯(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기에 저절로 ‘말(표현) + 타박(비판)’이게 마련이다. 익살(코미디·유머·개그)에 ‘사회비판’이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할 사람이 있을까? 들일을 하는 사람이 부르는 들노래(노동요)에 말과 마음과 삶이 녹아나지 않는다고 읊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말 ‘풀다’를 제대로 읽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 아니, 책을 읽거나 보임꽃(영화)을 쳐다보거나 이야기꽃(강의)을 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풀다’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 아예 없고, 집일을 하거나 들일을 하거나, 들숲메바다를 품는 사람은 으레 누구나 다 안다고 느낀다.


  일본스런 한자말로 한다면 ‘해석·해설·해제·해명·해결·해소·해방·해독·해득·해체·해부……’를 줄줄이 읊을 텐데, 우리말로는 나란히 ‘풀다’라는 쉽고 수수한 낱말을 바탕으로 하나씩 갈래를 짓는다. ‘풀다 = 풀 + 다’이다. ‘풀다’를 알려면 ‘풀’을 알아야 한다. 풀을 모르는 채 ‘풀다’를 알 수 없다. ‘풀다·풀’을 읽어내어 차분히 알아간다면 이윽고 ‘품다·품’을 읽어내면서 알아본다. 이러면서 ‘푸르다·풀빛’과 ‘푸지다·푸근하다·푹·폭·포근·포동’ 같은 낱말이 모두 한타래로 잇는 줄 헤아린다.


  이야기를 풀든, 책과 줄거리를 풀이하든, 삶과 삶터를 풀어내든, 먼저 풀빛을 품는 보금자리와 살림살이일 노릇이다. 푸른숲과 등진 곳에서 붓끝만 놀릴 적에는 어떠한 길도 못 풀거나 안 푼다고 느낀다. 왜 이 별을 ‘푸른별’이라 하겠는가? 왜 이 별은 푸른별이면서 ‘파란별’일까? 모두 하나인 수수께끼부터 풀지 않고서야, 허울스러운 이름을 줄줄이 읊거나 늘어놓는들, 어느 길도 못 풀게 마련이다.


ㅍㄹㄴ


엄밀한 의미에서 의식의 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66쪽)


말할 필요도 없지만 문학은 둘 다 하지 못한다. (105쪽)


사실상 애도할 이유가 없다. 죽은 것은 먼 친척이기 때문이다. (196쪽)


한때는 기이하고 어리석은(어린아이 같고 무법적이고 음탕한) 존재였던 ‘흑인’이 현재 미국 연극계에서 대표적인 선의 가면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게다가 흑인은 외형적으로 명확하기 때문에 신체적 특성이 모호한 ‘유대인’을 넘어서는 유용성이 있다 … 흑인은 언제나 ‘흑인’처럼 보일 것이다. 진정한 흑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한. 또한 고통과 핍박의 희생자라는 면에서 흑인은 미국의 다른 어떤 경쟁자보다 앞서 있다. 단 몇 년 사이에, 유대인을 전형적 인물로 삼던 구식 진보주의가 흑인을 영웅으로 삼는 새로운 전투적 태도에 도전받게 됐다. 그러나 이런 전투적 태도와 흑인 영웅을 부추기는 성향이 진보주의 사상을 조롱하더라도 그 감수성 가운데 한 가지는 계속 이어간다. 여전히 희생자들 가운데서 미덕의 이미지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222쪽)


SF영화에는 사회 비판이란 것이 없다. 암시적인 형태로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322쪽)


#AgainstInterpretation #SusanSontag


+


《해석에 반하여》(수전 손택/홍한별 옮김, 윌북, 2025)


이 책에 실린 비평과 리뷰는 내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쓴 글들이다

→ 이 책에 쓴 글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썼다

→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쓴 글을 이 책에 싣는다

13쪽


페이퍼백으로 재출간되는 지금 시점에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 작은책으로 다시내는 오늘에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 손바닥책으로 새로찍는 이즈음 더욱 그렇게 보인다

→ 주머니책으로 더찍는 요즈음 더욱 그렇게 보인다

13쪽


모든 예술은 정교한 트롱프뢰유trompe l’oeil(실물처럼 정밀하게 묘사해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그림)이며

→ 모든 그림은 잘 빚은 눈속임이며

→ 모든 꽃은 꼼꼼한 시늉그림이며

→ 모든 멋은 감쪽같은 흉내그림이며

→ 모든 아름꽃은 아주 능청이며

21쪽


내용 자체가 달라졌거나 내용이 이제는 덜 구상적이고 덜 사실적일 수도 있다

→ 줄거리가 달라지거나 이제는 덜 뚜렷하고 덜 고스란할 수도 있다

→ 속살이 달라지거나 이제는 환하지 않고 삶과 멀 수도 있다

22쪽


이런 식으로 텍스트를 변환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어떤 상황에서 시작되었을까

→ 이렇게 글을 바꾸는 재미난 일은 언제부터 했을까

→ 언제부터 이처럼 재미나게 바꾸는 글을 썼을까

24쪽


우리 시대의 해석은 그것보다 더 복잡하다

→ 오늘날은 이보다 더 얼기설기 풀이한다

→ 우리는 이보다 더 여러 가지로 읽는다

→ 요새는 이보다 더 온갖길로 헤아린다

25쪽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범속한 태도로 나타난다

→ 흔히 그대로 두려고 안 한다

→ 으레 내버려두려고 안 한다

27쪽


최소 세 부대의 비평가들에게 대대적으로 파헤쳐졌다

→ 적어도 석 자루쯤 되는 분들이 잔뜩 따졌다

→ 얼추 석 자루쯤 되는 분들이 실컷 파헤쳤다

27쪽


스타일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 멋이란, 곰곰이 보면 지나온 날을 뜻한다고들 말할 수 있다

→ 맵시란, 아무래도 살아온 길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41쪽


엄밀한 의미에서 의식의 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곰곰이 보면 넋은 말로 그릴 수 없다

→ 가만히 보면 마음은 말로 못 그린다

66쪽


우리는 왜 작가의 일기를 읽을까? 작품에 대해 알게 해주니까?

→ 우리는 왜 글쓴이 하루를 읽을까? 글을 잘 알 수 있으니까?

→ 우리는 왜 글님 하루글을 읽을까? 속내를 짚을 수 있으니까?

→ 우리는 왜 글바치 삶글을 읽을까? 줄거리를 알 수 있으니까?

73쪽


일기에 두 페르소나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하루글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 삶적이에 두 마음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77쪽


현대에 성애적 애착은 본질적으로 허구라고 믿게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 이제 사랑놀이는 다들 허울이라고 믿으면서 또 한켠으로는

→ 이즈막에 몸섞기는 무릇 빈껍데기라고 믿으면서 한켠으로는

79쪽


토디의 번역이 부실하다는 것을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 토디가 엉성히 옮겼다고 말해두겠다

→ 토디는 어설피 옮겼다고 말해두겠다

→ 토디는 제대로 못 옮겼다고 말해두겠다

95쪽


레리스가 《성년》에서 답한 질문은 지성적인 것이 아니다

→ 레리스가 《어른》에서 들려준 말은 그리 밝지 않다

→ 레리스는 《어른》에서 썩 똑똑히 얘기하지 못한다

103쪽


우리 시대의 진지한 사유는 대개 집을 잃은 듯한 느낌에 시달린다

→ 오늘날은 깊이 돌아볼수록 집을 잃은 듯 시달린다

→ 요새는 차분히 살필수록 집을 잃은 듯 시달린다

→ 이제는 가만가만 짚을수록 집을 잃은 듯 시달린다

109쪽


역사주의적 접근은 분명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 차근차근 다가서야 제대로 깨어난다

→ 하나씩 짚어가야 뜻있게 눈뜬다

→ 길눈으로 보아야 뜻깊게 알아본다

140쪽


이 책의 방대함과 다급한 호흡은 철학적 딜레마 탓이다

→ 이 책은 엇갈린 눈 탓에 펑퍼짐하고 숨가쁘다

→ 이 책은 갈팡질팡 보느라 늘어지고 덤빈다

144쪽


이오네스코의 성취는 무엇일까

→ 이오네스코는 뭘 이뤘을까

→ 이오네스코는 뭘 했을까

174쪽


원래 이오네스코의 초기 창작 동력은 상투적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 이오네스코는 처음에 수수한 삶에서 노래를 찾았다

→ 이오네스코는 워낙 작은삶에서 노래를 캐냈다

→ 이오네스코는 모름지기 모든 곳에서 노래를 보았다

→ 이오네스코는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느꼈다

→ 이오네스코는 늘 노래를 만났다

175쪽


이오네스코가 클리셰를 발견했다는 것은 언어를 의사소통이나 자기표현의 도구로 보기를 거부하고, 대체 가능한 개인이 (일종의 무아지경 상태에서) 분비한 진기한 물질처럼 간주했다는 것이다

→ 이오네스코가 타령을 찾았다면 말을 마음나눔이나 마음그림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내가 (이른바 고요히) 내놓는 놀라운 빛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176쪽


여기에서 브레송 인류학의 세 가지 기본 공리를 얻을 수 있다

→ 이 글에서 브레송이 편 사람길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 이 글로 브레송이 꾀한 사람길 셋을 엿볼 수 있다

274쪽


갑자기 누군가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 갑자기 누가 얄궂게 군다

→ 갑자기 누가 엉뚱히 군다

→ 갑자기 누가 막나간다

305쪽


희망적 사고가 무척 많이 담겨 있는데

→ 앞길을 밝게 여기는데

→ 앞날을 푸르게 보는데

→ 무척 밝게 여기는데

→ 매우 환하게 보는데

→ 꿈에 부푸는데

317쪽


카우프만의 책이 갖는 의의는 이 책이 오늘날 전반적인 태도의 또 다른 사례라는 데 있다

→ 카우프만 책은 오늘날 흔히 보는 책을 새삼스레 보여주기에 뜻깊다

→ 카우프만이 쓴 책은 오늘날 나도는 숱한 책을 다시금 보여준다

→ 카우프만이 쓴 책은 오늘날 떠도는 책과 다르지만 닮았다

362쪽


해프닝은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시성을 추구한다

→ 오늘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갑작스레 사달을 일으킨다

→ 하루에 붙들리지 않으려고 확 깜짝짓을 일으킨다

→ 하루하루 마음껏 살려고 문득문득 이런저런 일을 한다

→ 삶을 마음껏 드러내려고 일부러 느닷없이 군다

→ 홀가분하다고 보여주려고 그냥 가볍게 군다

379쪽


컬트적 이름으로 불린다

→ 높이는 이름이다

→ 우러르는 이름이다

→ 치켜세운다

→ 떠받는다

→ 섬긴다

→ 엎드린다

391쪽


간단히 말해 ‘두 문화’라는 문제는 오늘날 문화적 상황에 대한 무지하고 낡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 다시 말해 ‘두길’이란 오늘살림을 모르고 낡은눈으로 보는 셈이다

→ 그러니까 ‘두빛’은 오늘살이를 모르는 채 낡게 본다는 뜻이다

→ 곧 ‘두살림’이라 하면 오늘삶터를 모르고서 낡게 짚은 셈이다

42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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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6.1.


《죽은 해적》

 시모다 마사카츠 글·그림/봉봉 옮김, 미운오리새끼, 2025.9.20.



볕바른 아침을 연다. 하루일을 그리면서 국을 끓인다. 낮나절에 “투표했느냐?”고 묻는 손전화를 받는다. 이런 전화를 하면 안 되지 않나. ‘선거인명부’를 아무나 쥐고서 전화를 돌려도 되는가. 낮에는 구름이 제법 보인다. 큰아이하고 앵두를 훑는다. 닷새쯤 앞서만 해도 사마귀알집이 조용했으나 그새 사마귀가 깨어났네. 앵두를 훑는 손을 따라서 팔등으로 쪼르르 올라오더니 기웃기웃한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새끼사마귀인데 앞발을 휙휙 흔든다. 넌 참 대단하구나. 저물녁에 빗방울이 듣는다. 밤에는 빗줄기가 굵다. 《죽은 해적》을 돌아본다. 죽살이란 무엇일는지 차분히 보여주는 바다밑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몸을 입고서 삶을 누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넋으로 이 삶을 지켜보면서 마음에 이야기를 담는다. 다 다른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 겪는 하루를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는다. 그런데 마음그릇은 하늘처럼 하나이다. 새끼발가락이 아파도 온몸이 아프듯, 푸른별 누가 아파도 내가 나란히 아프다. 내가 기쁘면 푸른별 먼발치 작은나무도 기쁘며, 둘레에서도 나란히 기쁘다. 미워하거나 부아내면 이런 불씨도 ‘하나인 마음그릇’에 담겨서 다같이 불탄다. 모든 땅과 바다와 하늘은 ‘내 것’이 아닌 ‘우리 터전인 빛살’이다. 그러니까 ‘하나인 마음그릇’이란 바다나 땅과 별과 같다고 볼 수 있다.


#下田昌克 #死んだかいぞく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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