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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지음 / YNK MEDIA(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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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



《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10.25.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서 건넌다는 옛말이 있어요. 돌다리라고 하면 튼튼한 다리를 떠올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나 걷는 길이 이 돌다리나 돌길처럼 언제나 튼튼하면 좋겠다고 꿈꿀 만합니다.


  돌머리라고 하면 굳어버린 머리를 떠올려요.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려 하지 않을 적에 이런 말을 씁니다. 다리가 되어 누구나 홀가분하게 건너도록 하는 돌다리라면 듬직하다고 여기고,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리면 꿈도 사랑도 모두 멀어지고 만다고 여겨요.



“걱정 마. 너한테 책임을 전가하진 않을 테니까. 자신의 의지로 정한 일이야.” (10쪽)



  모든 돌은 다릅니다. 모래가 굳었다는 돌이 있고, 흙이 굳었다는 돌이 있어요. 불을 뿜는 멧꼭대기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이 굳은 돌이 있다지요. 그런데 돌은 이렇게 다른 무엇이 굳을 적에 태어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야무진 굳음이나 굳셈이라면, 다른 눈으로 보면 멈추거나 고이거나 갑갑한 굳음이나 버팀인 돌이로구나 싶어요.


  이런 갖은 돌 가운데 빛나는 돌이 있습니다. ‘빛돌’이에요. 이 빛돌이 아니어도 모든 돌은 서로 다른 빛이 흘러요. 조약돌이든 몽돌이든 참말로 다르면서 새삼스러운 빛결입니다. 온갖 빛결인 돌인데, 그러한 빛결 사이에서 한결 눈부신 빛돌이 있어요. 이 빛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값있다’고도 생각하고요.



“이 가루가 선배들이라는 건가요?” “맞아.” (35쪽)



  아홉걸음째에 이르며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새롭게 앞으로 뻗는 《보석의 나라 9》(이치카와 하루코/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을 읽다가 생각을 기울입니다. 다 다른 빛돌은 다 다른 굳기와 세기입니다. 다 다른 빛돌이기에 이 빛돌에 서린 넋이며 숨결이 다르기 마련이에요. 다 다른 빛돌인 터라 빛돌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바라는 삶이 달라요.


  이때에 고개를 갸웃할 수 있어요. 아니, 빛돌은 사람도 아닌데 무슨 넋이나 숨결이 있느냐고 말이지요. 어떤 분은 풀이나 나무한테는 넋이나 숨결이 없다고 여기기도 해요. 짐승을 고기로 삼을 수 없어서 풀이나 열매만 밥으로 삼는 분이 있는데, 풀하고 나무도 짐승하고 똑같이 넋이며 숨결이 있어요. 개나 고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도 아픈 줄 느낄 뿐 아니라, 풀꽃이며 나무도 아픈 줄 느껴요.


  돌도 그렇습니다. 돌도 아픈 줄 느껴요. 돌은 딱딱할 뿐더러 목숨이 없겠거니 여기며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으나, 돌한테 흐르는 넋을 읽고 숨결을 느끼며 마음을 만난다면, 그 어느 곳에 있는 돌도 마구 걷어차거나 밟지 않겠지요.



“나에게 행복을 준 너희에게 깨끗하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지금껏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제약을 가진 나로선 계속되는 투쟁에 너희를 희생시키면서 이상과 거리가 먼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지.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제부터는 나를 두고 떠나거라. 아름다운 보석 생명체여.” (64∼65쪽)



  돌을 돌 그대로 바라볼 줄 모르기에 나무를 나무 그대로 바라볼 줄 몰라요. 돌빛을 돌빛대로 마주할 줄 모르기에 풀빛을 풀빛대로 마주할 줄 모릅니다. 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떨까요? 사람마다 다른 마음이 흐르며 다른 사랑이 샘솟는 줄 느낀다면, 우리는 나라를 어떻게 가르더라도 군대나 전쟁무기를 키울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넋이며 숨결인 줄 읽는다면 위아래로 가른다든지 괴롭힌다든지 따돌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는 마음이기에 짐승이며 푸나무이며 바다벗이며 돌을 마구마구 다룹니다. 사람마다 다른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사랑할 줄 알기에 이 별을 이룬 모든 빛을 고루고루 아끼면서 손을 맞잡는 길로 나아가요.



“내가 너희에게 저지른 짓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어.” “비틀렸다는 이유로 과거를 버리면, 앞으로도 저희는 성장할 수 없어요. 이제부터는 서로 다른 존재로서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터.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용과 평등은 고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으나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8쪽)



  만화책 《보석의 나라》는 내내 싸움판 이야기입니다. 빛돌은 처음 태어날 적에 싸울 마음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 빛돌을 둘러싼 사람이며 문명이며 기계이며 다들 제 눈앞만 바라보고 말아요. 제 눈앞만 바라보니 제 앞가림만 따지고, 제 앞가림만 따지니, 빛돌은 처음부터 언제나 빛돌일 뿐이었지만, 더없이 솜씨좋은 싸울아비로 바뀝니다.


  빛돌은 빛돌스러운 길을 찾을까요? 사람이나 기계나 문명이 빛돌한테 새길을 찾아 줄까요? 아니면 빛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부대끼고 알아보면서 새길을 찾을까요?



“자유다. 금강은 너희를 아끼면서도 가둬두진 않았어. 금강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이었지. 엄격한 제약에 묶인 자신에 대한 반동심 때문이었거나, 혹은 너희가 과거 주인이었던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되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군.” (103쪽)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입니다. 우리는 모두 눈부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꿈입니다. 야무진 마음이 되어 빛나면 좋겠어요. 눈부신 사랑 그대로 활짝 웃으며 깨어나면 좋겠어요. 맑은 꿈이 되어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지으면 좋겠어요.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술력이 있었으면 우리의 문제도 이미 해결했겠지.” (119쪽)



  남보다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이 누리는 살림을 빼앗거나 가로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흐르는 빛을 알면 되어요. 우리한테서 샘솟는 빛을 둘레에 넉넉히 흩뿌리면 되어요.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 한 톨이 첫걸음이 되어 앞으로 새롭게 깨어날 숲을 그립니다. 우리 스스로 빛돌이면서 씨앗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빛나면서 이야기꽃을 이룹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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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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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줄세우기에는 마음이 없어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우리 집에서 사람 손길을 타고 싶다며 찾아온 마을고양이가 있습니다. 어느새 한두 달 남짓 지내는데, 이 아이는 스스로 사냥할 줄 압니다. 사냥할 줄 알되, 사냥을 못하면 사람이 주는 밥을 먹기를 바라더군요. 겨울바람이 매섭고 꽁꽁 얼어붙은 날이 아니고는 따로 밥을 안 줍니다. 자칫 사냥솜씨를 잃을 수 있거든요.


  우리 집에 여러 나무하고 풀이 우거지니 갖은 새가 찾아오고, 마을고양이는 곧잘 이 새 가운데 한 마리를 잡아챕니다. 고양이가 새를 잡아챌 적에는 날렵합니다. 바람처럼 뛰어올라 앞발을 확 놀려서 바로 잡더군요. 새를 못 잡을 적에는 어설퍼요. 아하, 잡을 적하고 못 잡을 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양자의 증오가 이 기회를 빌려 폭발. 연재 기회의 습득보다도 상대를 향한 살의가 우선이다. 살고 싶은 동네 넘버원, 키치조지를 향한 증오. 시부야와 신주쿠가 가까운 시모키타자와에 대한 증오. 증오와 증오가 맞부딪쳐 만들어내는 지옥도. (8∼9쪽)



  잘할 때가 있으면서, 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설플 때가 있지만, 날렵한 때가 있습니다. 같은 몸인 목숨이지만 두 모습이 나란합니다. 같은 몸이어도 마치 다른 몸이라도 되는 듯이 달라 보이곤 합니다.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늘 잘하기만 하는 사람일는지요, 넘어지다가 일어서는 사람일는지요. 일어서서 멀쩡히 달리다가 그만 넘어지기도 하는 사람일는지요.



“연재에서 잘리고, 단행본 발행도 중단.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하할, 재능 없는 자신을 원망하라고.” (21쪽)



  불꽃이 튈 뿐 아니라, 불바람이 몰아친다고 할 만한 만화밭을 다룬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가만히 읽습니다. 누가 낫고 모자라다는 금을 죽 긋고는 이 금을 못 넘으면 얼간이라 여기고, 이 금을 넘으면 우쭐거리는 판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어느 금을 넘은 이라 하더라도 제 앞에 있는 이를 물리치고 싶습니다. 아직 금을 못 넘은 이들은 악다구니가 되어 발톱을 사납게 세웁니다.



“작살을 내주겠어.” “과연 잘 될까? 만화가 지망생 출신들.” “!”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이 좌절되고 마음이 꺾여 이렇게 먹고살 수밖에 없는 거겠지. 만화를 사랑했던 만큼, 그 반동으로 뒤틀려버린 걸까? 중지에 박힌 굳은살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어.” (36∼37쪽)



  어깨동무를 하는 이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내가 살려면 너를 밟아야 하고, 그냥 밟아서만 안 되고 다시는 못 일어나도록 죽여야 한다는 마음이란 왜 자꾸 불거질까요. 넘어진 이한테 손을 내밀면, 손을 내미는 사람도 진 사람이 될까요.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한테 손을 내미는 이가 있으면 냅다 잡아채어 넘어뜨리고 우리만 일어서서 앞서가면 될까요.


  경제성장율이나 순위표란 모두 싸움판입니다. 다같이 넉넉한 길을 가도 될 테고, 다함께 대학교에 들어가도 될 테며, 누구나 일자리를 누리면 될 테지요.


  생각해 봐요. 왜 누구는 들어가도 되고, 누구는 들어가면 안 될까요? 왜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할까요? 왜 인기투표를 하고, 왜 숫자를 매길까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삶길을 고등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아요. 중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을 테고, 초등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겠지요. 또는 아무 학교를 다니지 않고서 스스로 배워도 좋을 테지요.


  굳이 의무교육을 떼어야 하지 않고, 애써 대학교육을 지나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일으킬 삶을 스스로 배우면 될 뿐이며, 스스로 사랑할 하루를 스스로 깨달으면 될 뿐입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이러한 삶길이 되도록 이바지하면 되어요.



‘멸시받던 예전의 나는 죽었다. 이번엔 내가 작살낼 차례야.’ (74쪽)


‘참 잔혹한 책이다. 필사적으로 싸우는 작가들에게 랭크 따윌 붙이다니! 톱10 같은 건 상관없어. 작가는 자신의 기술을 구사해서 헤쳐나갈 뿐.’ (109쪽)



  만화책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는 줄세우기를 끝없이 따집니다. 아름다운 만화는 그저 아름다운 만화일 뿐이고, 재미난 만화는 그냥 재미난 만화일 뿐이며, 놀라운 만화는 그대로 놀라운 만화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나는 내가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너는 네가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릴 꿈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꿈을 그리고, 너는 네가 사랑할 꿈을 그리지요. 더 낫지 않고,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 선으로는 내 영혼을 조각낼 수 없다. 선의 숫자만으로 승부하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신념과 긍지를 불어넣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에는 꽂히지 않으니까.” (134∼135쪽)



  재주가 빼어나야 하지 않아요. 사랑이 어린 손길이면 되어요. 솜씨가 훌륭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웃는 노래를 담으면 되어요. 글을 쓸 적에 글재주는 덧없어요. 글사랑으로 빚을 적에 비로소 글이에요. 책을 솜씨있게 읽어야 잘 배우거나 깨달을까요? 아니지요. 어느 책에서든 우리 하루를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는 마음을 살펴서 받아들이면 넉넉해요.


  내로라하는 자리에 서야 하지 않습니다. 자랑할 만큼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우쭐우쭐 할 만큼 올라가야 하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사랑이면 됩니다. 언제나 즐거우면 넉넉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꿈꾸며 피어나면 아름다워요.



“저는 그거 좀 별로라서, 40점 정도일까요.” “크윽.” ‘솔직한 감상을 말했을 뿐이야. 빈말은 만화를 모독하는 거니까.’ “40점, 그건 작가에 대한 모독이 아니려나?” “네? 작가세요?” (183쪽)



  줄세우기로는 줄세우기만 보여줄 뿐이에요. 줄세우기에는 상냥한 웃음도 참한 눈빛도 기쁜 춤사위도 없습니다. 내가 너보다 잘나야 하지 않고, 네가 나보다 못나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 됩니다. 다 다른 하루를 그리면서 걸어가지요. 늘 새롭게 거듭나는 발걸음이 되어 달리면 되어요.


  좁은 판에서 살아남자고 생각하니 싸우고 말아요. 자, 그 좁은 판은 그만 쳐다보기로 해요. 잘 보셔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대학입시는 ‘지옥·전쟁’ 같은 낱말로 나타냅니다. 이뿐인가요? 일삯을 많이 받는 일자리를 얻는 길도 ‘지옥·전쟁’이라 하지 않나요?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시장·군수가 되려는 길도 ‘지옥·전쟁’으로 나타내지 않나요?


  싸우려 하니 불구덩이가 됩니다. 불구덩이에 뛰어들자니 싸우고 맙니다. 어떻게 하든 쳇바퀴입니다. 불구덩이로 안 뛰어들어야 사이좋게 손을 잡습니다. 싸움질을 멈출 적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에 꽃을 피우는 길이라면 오늘 어제 모레를 고요히 잇는 날갯짓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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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6 : ~소설가가 되는 방법~ - S 코믹스
야나모토 미츠하루 지음, 김아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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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마음을, 오늘을, 나를, 너를 쓴다



《히비키 6》

야나모토 미츠하루

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10.25.



  글을 쓰기란 얼마나 쉬울까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니 이 하루를 그저 옮기면 되는 글입니다. 늘 새롭게 꿈을 그리니, 이제부터 이루려는 꿈길을 차곡차곡 그리면 되는 글입니다. 오순도순 짓는 살림이니, 이 살림을 고스란히 담으면 되는 글입니다. 마주하는 이웃을 마음으로 느끼니, 이웃한테서 맞아들이는 숨결을 가만히 나타내면 되는 글입니다.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울까요.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채 바쁘게 몰아치니, 숨을 쉴 기운조차 없어 어렵습니다. 앞으로 이루려는 꿈이 없으니,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즐거울는지 몰라 셈틀을 켜 놓아도 글판을 두들기지 못합니다. 손수 짓거나 누리는 살림이 없노라니 막상 글쓰기도 만만하지 않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할는지 꽉 막힙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이 다 다른 이웃인 줄 알아보지 않으니, 마음으로 맞아들일 만한 숨결이 없어 풀이나 나무나 돌 이야기를 글로 적더라도 싱그럽거나 생생하지 않습니다.



“난 죽지 않아. 아직 걸작을 쓴 기억은 없으니까.” (40∼41쪽)


“내 소설을 읽어 줘서 고마워. 재미있게 봐줬다면 기쁘지만, 시시했다 해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소설은 또 쓸 거니까, 다음에도 읽어 주면 좋겠어.” (17쪽)



  글쓰기를 묻는 분이 있으면 마음쓰기를 되묻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분이 있으면 마음쓰기도 어렵겠네요 하고 되묻습니다. 글쓰기를 하고픈 분이 있을 적에는 언제나 마음쓰기를 하시느냐고 되묻습니다. 글쓰기를 잘 다룬 책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는 마음쓰기를 다룬 책을 읽으시면 어떻겠느냐고 되묻습니다.


  글이란 말이며, 말이란 생각이고, 생각이란 우리가 오늘 펼쳐 보이는 마음이 드러난 씨앗이라고 느낍니다. 하나씩 따지면 되어요. 말이 있기에 글이 있습니다. 말이 없다면 글이 없어요. 그렇다면 말이란? 우리가 말을 하려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없이 말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없을 적에는 소리는 낼는지 모르나 말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생각이란? 마음이 있기에 이 마음이란 자리에 씨앗처럼 심어서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심어서 가꾼 뒤에 일으키는 생각이 없으니, 언제나 다른 사람 말을 조잘조잘 따르기만 하는 쳇바퀴나 굴레가 되곤 합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다면, 이 흐름을 헤아리면서 마음부터 쓸 줄 알아야겠지요. 마음을 옮기기에 마음쓰기요, 네가 어떤 마음인가를 하나하나 읽도록 헤아리기에 마음쓰기입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껴 준다면 기쁠 것이고, 아마도 그 소설은 그 사람을 위해 쓰여진 걸 거라는 생각이 들어. 10년 동안 소설을 썼으면 당신의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낀 사람이 적어도 있긴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나일지도 모르고. 안 팔린다는 둥, 졸작이라는 둥, 그래서 죽는다는 둥, 남이 재밌게 본 소설에다 작가랍시고 함부로 꼬투리 잡지 말라구.” (35∼36쪽)



  ‘소설가가 되는 방법’이란 이름이 붙은 《히비키 6》(야나모토 미츠하루/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을 읽으면, 어느새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문학상 두 가지를 한꺼번에 탄 히비키가 하이틴로맨스 소설도 슬쩍 써 보았는데, 이 소설도 덜컥 문학상을 받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느덧 히비키가 쓰는 소설은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 확 사로잡히는 글이 된다고 합니다.


  이 만화책 《히비키》는 ‘소설을 쓰는 여자 고등학생’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길을 줄거리로 삼아서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로 엮습니다. 그렇다고 내로라하는 문학상을 거머쥐는 길을 밝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길’을 그립니다.


  그래서 문학상을 거머쥐지 못한 사람, 문학상을 노리지만 으레 미끄러지는 사람, 문학상을 누가 받을는지 가리는 다른 소설가, 문학상을 거머쥔 사람 책을 찍어내어 돈을 벌려고 하는 출판사 일꾼, 문학상을 둘러싼 자리에서 아옹다옹하는 사람들을 다루어 장사를 하려는 잡지사 일꾼, 이런 뭇사람하고 동떨어진 여느 사람, 소설이고 책이고 마음이 없는 사람 …… 여러 갈래 여러 사람을 찬찬히 아울러서 이야기를 엮지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 금액은 히비키의 소설에 대한 정당한 가치입니다.” “정당이고 나발이고 당신네들 멋대로 정하지 말라고!” (63쪽)



  자동차를 잘 안다고 한다면, 자동차 이야기로 무엇을 쓸 만할까요? “잘 안다”는 무엇이고 “쓸 만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자동차를 만든 회사 이름을 늘어놓으면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어느 곳에 어느 자동차가 어울리는가를 밝히기에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값이나 값어치를 적으니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물건으로 우리 앞에 있는 자동차라지만, 이 자동차도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어요. 입이 아닌 마음으로 자동차한테 말을 건다면, 자동차를 다루는 사람들 모습이나 눈길을 새삼스레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는 자동차는 무엇을 느끼는지, 찻길을 넓힌다면서 숲이며 들이며 마을을 밀어내는 몸짓을 자동차로서는 어떻게 느끼는지, 자동차가 달리며 내뿜는 찌꺼기를 자동차는 어떻게 헤아리는지, 이런 이야기를 자동차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쓸 수 있습니다.



‘이대로 싸워 봤자 이길 수 있을 리 없고. 그러게 얌전히 있으면 될걸. 도저히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어. 난 왜 이렇게 자아가 강한 걸까. 히비키라면 어떻게 했을까.’ (101쪽)



  앞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삶길을 열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차츰 늘어납니다. 대단한 일이라고 여겨요. 돈을 잘 버는 길이 아니라 글을 쓰는 길을 바라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태어난다니, 참말로 우리 삶터를 확 바꿀 만한 빛이 되겠구나 싶어요.


  흙을 일구거나 숲을 돌보는 길을 가겠노라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틀림없이 어디엔가 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 나라 터전이 터전이니만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늘지만, 돈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스스로 이루려는 꿈길을 생각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늡니다. 그리고 돈을 알맞게 누리면서 스스로 바라는 꿈길도 아름답게 펴고 싶은 어린이나 푸름이도 늘어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돈벌이가 꿈이라면 굳이 글을 안 써도 됩니다. 돈을 잘 버는 길을 가면 되겠지요. 글쓰기로 돈을 벌 꿈이 있다면 이때에는 글로 돈을 버는 길을 새로 닦으면 돼요. 다만, 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글에도 두 가지가 있지요. 참마음을 담아서 참다이 버는 돈이 있을 테고, 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팔아치우고서 거둬들이는 돈이 있겠지요. 글이름이나 글치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팔이치우고서 글빛을 뽐내는 길이 있을 테고, 오롯이 참답고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글빛을 즐기는 길이 있어요.



“난 상 받을 생각 없고, 카요코도 없는 모양이니까, 수상은 취소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뭐어! 왜? 어째서? 대상인데? 애니메이션화도 된다구?” “으음, 매일매일 책 읽거나 멍 때리면서 여러 가지로 바쁜데다, 상 같은 거 그다지 흥미없어서. 미안해.” (172쪽)



  만화책 《히비키》에 나오는 아이는 여고생입니다. 남고생이 아닌 여고생이지요. 이 여고생을 바라보는 둘레 사람 눈길이 다 다릅니다. 요즈음에도 ‘여자는 짝을 맺고서 아기 낳고 집안일만 하면 될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 ‘아직 제대로 깨이지 않은 이 터전에서 글을 쓰자면 사내 따위는 가까이하지 말고서 오직 글을 사랑하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어요. 꾸준히 사랑받는 글을 쓰는 분이 있고, 좀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글만 되풀이하는 분이 있어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 삶길을 걸을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몸이자 마음으로 태어나서 서로 다른 꿈하고 생각을 키우며, 이 다른 삶에서 피어난 이야기를 저마다 다른 말글로 담아낼까요?



“이제야 그 섬뜩한 웃음이 사라졌네. 농담이야. 설마 진짜로 걸겠어? 흥정하러 온 거 아냐. 선물용 과자까지 싸들고 사과하러 온 거니까. 화내도 좋으니 받아들이시라고.” (176쪽)



  소설을 쓰는 히비키는, 소설쓰기에 앞서 소설읽기를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숱한 소설을 읽으면서 ‘이쪽은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 쓰레기’라고 ‘저쪽은 내 마음을 건드린 아름다운 빛’이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로 마음에 남은 소설을 오래오래 읽다가 어느 날 생각해요. ‘아, 나도 소설을 써 볼까?’ 하고요. 그리고 찬찬히 쓰지요. 누구보다 스스로 ‘내가 썼더라도 내 마음부터 새롭게 건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씁니다. 무엇을 노리고 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널리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쓰지 않아요. 그리고 히비키 소설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읽은 느낌’을 꾸미지 않고 모조리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새롭게 쓸 다른 소설을 부푼 마음으로 꿈꾸면서 ‘좋았거나 아쉬웠던 모든 대목’을 받아들여서 첫걸음을 다시 떼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소설이란 글을 쓰는 길이란 이렇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사랑으로 건드리며 아름다울 글을 쓰면 되어요. 어떤 목소리이든 거스르지 않고서 스스로 녹여내어 새롭게 빛으로 밝히려는 숨결로 글을 쓰면 되지요.


  이리하여 글쓰기는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이렇게 하겠노라 생각을 하고 즐겁게 하루하루 걸어간다면 글쓰기이든 마음쓰기이든 쉽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지레 혀를 내두르면, 아마 죽고 다시 태어나도 글을 못 쓰겠지요. 마음을, 오늘을 씁니다. 나를, 너를 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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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복음 4 - 완결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명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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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가나요



《1파운드의 복음 4》

 타카하시 루미코

 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6.30.



  학교나 도서관에 이야기꽃을 펴러 가면 으레 물어보는 말 가운데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주셔요’입니다. 저는 이때에 곧잘 만화책을 꼽습니다. 그러나 ‘어느 작품’을 꼽는 일은 드물어요. 테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오자와 마리, 오제 아키라, 이런 만화님 책이라면 모조리 장만해 두시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요새는 한 분이 늘어 오시기리 렌스케 님 만화책도 나란히 들어요.



“얘들아, 노력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면 안 돼. 저 도시락집 점원은 일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사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쓸데없이 노력한다는 느낌이랄까.” “결코 그렇지 않아.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그건 남이 정할 게 아니란다.” (60∼61쪽)



  흔히들 테즈카 오사무 님을 놓고서 ‘만화 하느님(만화의 신)’이라고 합니다. 이녁이 살던 무렵부터 이렇게들 가리켰어요. 예나 이제나 이녁처럼 만화를 그린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습니다. 한꺼번에 열두어 가지 다 다른 만화를 잇달아 그리며 주간잡지에 월간잡지에 보내고, 만화영화까지 그렸거든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는 만화를 거드는 일꾼은 틈틈이 쉬거나 잠들기도 하지만, 테즈카 오사무 님이 잠드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이 땅을 떠난 만화 하느님’이라면,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이 땅에 살아 기운차게 만화를 그리는 하느님’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느끼기로 그렇습니다. 이분이 짧게 끝맺으며 그린 만화를 놓고서 일본에서는 “루미코 극장”이란 이름으로 만화영화에 연속극에 영화까지 나오지요.



“하타나카 씨, 제가 늦었죠.” “수, 수녀님. 오셨어요? 어째서.” “그야, 오라고 하셨으니까.” “이제 못 만나는 줄 알았는데.” (53쪽)



  《란마 1/2》이나 《이누야샤》나 《경계의 린네》는 더없이 엄청나면서 훌륭한 만화라고 느낍니다. 어쩜 그렇게 생각힘을 끝없이 길어올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한 얼개에 재미에 눈물웃음에 이야기꽃을 지피는가 싶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만화를 사랑하기에 온마음을 만화에 바쳐서 하루를 살아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전 당신과 정반대예요. 전 당신과의 시합에서, 복싱을 계속하기 위해 싸울 겁니다.” (84쪽)



  《1파운드의 복음 4》을 반가이 읽었습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온 이 만화책은 한국에 해적판이 살짝 나왔다가 2019년에 이르러 새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줄거리를 단출히 들자면, 미련퉁이 사내하고 상냥한 가시내가 어우러지는데요, 미련퉁이 사내는 권투선수이고, 상냥한 가시내는 수녀입니다. 미련퉁이 사내는 고등학교를 집어치우고 일찌감치 권투선수가 되었고, 상냥한 가시내는 앳된 나이에 일찌감치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돈이 아깝지도 않아?” “아깝지 않아요. 그걸로 수녀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 기뻐요.” (149쪽)



  만날 길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납니다. 아마 하느님 뜻 아닐까요? 어울릴 길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자꾸 어울립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아마 꿈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랑이 아닐까요?


  생각해 봐요. 초·중·고등학교를 착착 다니며 졸업장을 따면, 또 대학교까지 척척 다니며 졸업장을 더 모으면, 그리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차곡차곡 건사하면,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오직 몸뚱이 하나만 믿고서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하나도 안 모은다면? 그리고 오로지 마음 하나만 바라보면서 졸업장이건 자격증이건 ‘사회에서 말하는 이름이며 돈이며 힘’을 모조리 내려놓는다면?


  배움끈 없는 젊은 권투선수 사내입니다. 아무런 이름도 돈도 힘도 없이 앳된 나이에 홀로 수녀원에 깃들어 모든 끈을 잊고 싶은 수녀원 가시내입니다.



“수녀님이 행복하게 웃어만 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하타나카 씨.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신은, 뭘 위해 복싱을 하는 거죠?” “저를 위해서라느니, 돈을 위해서라느니,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자신을 위해 싸워야죠!” (169∼170쪽)



  미련퉁이 권투선수라고 했어요. 이이는 그야말로 미련퉁이라서 권투선수인데 밥에 목을 매답니다. 밥먹기를 그치지 못해서 늘 몸무게가 불어요.


  상냥한 수녀라고 했어요. 이이는 그야말로 상냥해서 마음에 걸리는 일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길을 잃은 미련퉁이를 본 나머지 이이를 지나치지 못합니다. 상냥하게 말을 걸고, 상냥하게 도우며, 상냥하게 북돋웁니다.



“너, 역시 돈이냐? 그렇게 80만 엔이 아까워?” “돈이 아냐! 사랑이다!” (215∼216쪽)



  앞길이 아득하다고 여기는 푸름이를 만나면 선뜻 이 만화책 《1파운드의 복음》을 읽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고등학교라는 길에서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고, 대학입시란 짐이 벅차다고 하는 푸름이한테도 이 만화책을 읽어 보라고 말합니다.


  미련퉁이하고 상냥님 사이에 흐르는 숨결을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련퉁이입니다만 바탕이 상냥하기에 미련할 수 있어요. 상냥한 사람은 사회나 정치나 문화나 종교나 교육이나 예술로 보자면 ‘제 뱃속을 채우려 하지 않아 미련퉁이’처럼 보일 만합니다.


  이제 알 만할까요? 미련한 사람은 상냥합니다. 상냥한 사람은 미련합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상냥하기에 사랑을 스스로 심어서 키워요. 상냥하면서 미련하기에 사랑을 손수 돌보며 북돋웁니다.


  대수롭잖은 만화책으로 여기면서 《1파운드의 복음》을 읽지 않는다면 이 얼거리를 못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구태여 이 만화책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마음눈을 켜서 바라본다면 이 얼거리쯤이야 너끈히 알아내겠지요.


  그런데 있지요, 오늘날 이 삶터는 다들 너무 바빠요. 너무 옥죄어요. 너무 갑갑해요. 그저 쳇바퀴에 굴레요 수렁판입니다.


  만화는 머리를 식힐 뜻으로 읽지 않습니다만, 머리를 식히면서 보기에 좋기도 해요. 자,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으니 만화책 하나를 한 손에 쥐어 볼까요?



“관장님, 또?” “네, 또입니다. 지금부터 이래서야, 방어전은 무리라고.” “알겠어요. 같이 찾아보죠.” “이 시기에는 식수대보다 식당이 중요합니다.” ‘안젤라 자매님, 가시밭길을 선택한 건가?’ (222쪽)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어떤 뜻이 있는지 스스로 물으며 스스로 빛을 찾아냅니다. 우리가 서는 길에는 어떤 꿈이 있는지 스스로 되물으며 스스로 사랑을 알아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스스로 물으며 스스로 찾고, 스스로 되묻는 사이에 스스로 알아요.


  밥 한 그릇에 헤매는 미련퉁이입니다만, 상냥한 웃음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깨닫습니다. 상냥하면서 미련한 아가씨입니다만, 미련한 바탕에 감도는 포근한 숨결을 느끼면서 다시 손을 내밀고 기꺼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아무래도 이 길은 서로서로 가시밭길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가시밭길이 꽃길이에요. 잘 봐요. 찔레꽃이며 장미꽃이며 그 엄청난 향긋꽃밭은 온통 가시투성이입니다. 한봄에 무르익는 딸기는 가시넝쿨입니다.


  언뜻 보자면 가시밭길이나, 깊이 보자면 꽃길이요 달콤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설 길이라면 바로 이러한 길이 아름답겠지요. 서로 얼크러지면서 빛나는 이 길에 선다면 더없이 기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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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11
오쿠보 케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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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새롭게 나아갈 길을 꿈꾸네



《아르테 11》

 오쿠보 케이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만화책을 어느덧 마흔 해째 읽습니다. 언제부터 만화책을 처음 폈는지 모르나, 우리 형이 읽던 만화를 곁에서 구경했을 테고, 이때가 너덧 살이나 서너 살 무렵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군대살이를 하던 때를 빼고는 만화읽기를 끊은 적이 없습니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상대를 더 잘 알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걸 의식해 가면서 남이랑 얘기해 본 적이 없거든요.” (19쪽)


“우선 자기 마음속을 상대한테 털어놓는 거야.” “자, 자기 마음?” “그래, 맞아. 자기 마음은 감추면서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걸 끌어내겠다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야.” (21쪽)



  만화책을 안 읽거나 멀리하는 분은 제가 만화책을 그토록 오래 무척 많이 읽는다는 말을 들으면 으레 놀랍니다. 그런데 저는 만화책뿐 아니라 그림책도 많이 오래도록 읽습니다. 사진책도 그렇지요. 어린이책도 시집도 참 꾸준히 오래 많이 읽어요. 소설책은 아예 안 읽다시피 하고, 인문책은 틈틈이 읽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읽을까요? 만화책에 무엇이 있기에 소설책은 아예 안 읽다시피 하면서 만화책은 그토록 읽을까요?


  이 물음을 풀이하기는 쉬워요.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이 어우러진 이야기꽃이거든요. 글만 있을 수 없고 그림만 있을 수 없어요. 드물게 ‘글 없이 그림으로만 엮는’ 만화책도 있습니다만, 이때에는 ‘말풍선이 없다’뿐이지, 칸칸이 나눈 자리에 깃든 그림마다 마음으로 깊고 넓게 들려주는 말을 느껴요.


  다시 말해서, 글하고 그림을 새롭게 엮어서 온누리 살림자락을 한결 깊고 넓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그리기에 만화책이라 할 만합니다. 만화를 담은 책이 만화책이 아니라, 글꽃하고 그림꽃이 상냥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꽃으로 꿈·사랑·살림·오늘이 피어나도록 들려주는 책이기에 만화책인 셈입니다.



“저도 사랑에 빠져 넋을 잃으면, 그렇게 될지도 몰라요.” “그 사람이 불행하다는 건 누가 정한 거죠?” (39쪽)



  이태째 한국말로 꾸준히 나오는 《아르테 11》(오쿠보 케이/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9)를 읽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너덧 해쯤 앞서 나온 만화요, 한국에서는 이제 옮기는 셈인데, 이탈리아란 나라를 둘러싼 중세란 때에 ‘사내 아닌 가시내’로서 그림지기 길을 걷는 아가씨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이 만화는 ‘참말 있던 일’을 그리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참말 있던 일일 수 있으나, 만화님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만화는 무엇이든 그려내어 새로운 길을 닦아 주거든요.


  이를테면 이래요. “웃기지 마. 그때 무슨 가시내가 그림을 그려? 터무니없는 소리!” 하고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니야. 생각해 봐. 역사책에만 안 적힌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아?” 할 만하고, “비록 그때 그런 일이 없었어도, 그때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 삶이며 이 별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레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하고 싶어.” 할 만하며, “그래, 다 지어낸 이야기이지. 그러나 이렇게 지어내는 이야기로 오늘 우리가 새롭게 나아갈 꿈하고 사랑을 다루고 싶어.” 할 만합니다.


  그래요. 만화란 이렇습니다. 게다가 만화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쉽게 다가갈 수 있기에, 이러한 새길 새꿈 새삶 새사랑 새별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더욱 부드럽고 쉬우며 찬찬히 그려내곤 합니다.



“돈은 안 낼 겁니다. 저는 ‘그 여자 분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여기 온 겁니다. 하지만 돈을 내 버리면, 그건 제가 ‘돈으로 산 이야기’가 되어 버릴 테죠.” (54쪽)


“이제 알겠죠? 사람을 사랑하는 건 멋진 거라는 걸.” “앗. 아뇨, 그게!” “사람을 사랑하는 건 존엄한 거예요.” (72쪽)



  요즈음 한국은 ‘만화’라 이름을 붙일 만한 만화가 거의 죽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웹툰은 만화가 아닙니다. 웹툰은 웹툰입니다. 만화가 만화인 까닭은 ‘화면 구성’이나 ‘빠르고 쉽게 넘기기’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에요. 만화는 말풍선에 적힌 말 한두 토막뿐 아니라, 뒷그림 하나하까지 모조리 훑도록 이끌기에 만화입니다.


  영화하고 만화가 닮았다고 보면 됩니다. 영화에서 뒤쪽에 나오는 것들, 이른바 소품을 아무렇게나 담지 않아요. 모든 소품에든 모두 다른 뜻이 있습니다. 만화에서 칸칸이 담아내는 뒷그림 구석구석까지 모두 다른 뜻하고 이야기가 흘러요.


  주인공 한두 사람만 뜻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도, 슬쩍 지나가는 사람도, 자잘한 뒷모습도, 또 말풍선 안팎에 넣는 속말이나 소리도, 칸나눔이며 흐름결까지도, 깊고 넓게 읽는 뜻하고 이야기가 어우러져요.



‘생각해도 소용없어!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96쪽)



  중세 무렵에 그림님이 빚은 그림을 떠올리기로 해요. 그때 그림님은 얼굴만 잘 그리려 하지 않았어요. 옷차림이며 옷무늬이며 노리개뿐 아니라, 둘레나 뒤쪽 모습까지 모두 꼼꼼히 생각하면서 담았습니다. 뒷그림이라며 아무렇게나 슥슥 발라서 채우지 않아요.


  만화에서도 슥슥 채우는 그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화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어우러지기에, 이 이야기를 글하고 그림을 알맞게 갈라서 다룹니다. 그림은 그림대로 훌륭히 담는 만화책이면서, 글은 글대로 짜임새있을 뿐 아니라, 시요 노래요 수다요 동화이면서 살림꽃이 되는 글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생각?” “내가 혼자 설 힘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내 걱정을 하시는 거야. 그럼, 나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으면 되는 거네.” (156쪽)



  만화책 《아르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르테’란 이름인 아가씨는 그림이 무척 좋았다고 해요. 어릴 적에는 집안에서 ‘쟤가 그림을 좋아하나 보구나’ 하고 여겼지만, ‘난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먹고살겠어요’ 하고 외치니까 ‘미쳤구나’ 하고 여겼대요. 아르테 집안뿐 아니라 마을이며 나라에서도 똑같이 바라보았다지요. ‘가시내라는 몸은 사내 집안에 들어가는 돈붙이’쯤으로밖에 여기지 않고 ‘부엌데기’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기던 무렵에 홀로서기를 하는데 그림을 그리며 밥벌이를 하겠다니, 그야말로 미친 사람으로 보였겠지요.


  이때에 아르테는 참으로 외로웠지만, 아르테를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그림을 가르치고 받아들이기로 한 스승(사내)이 한 사람 있습니다. 딱 하나이지요. 이 스승은 사내인 몸인데 왜 가시내를 그림지기로 받아들이기로 했을까요? 오늘은 스승이지만, 이이는 사내란 몸이었어도 ‘자리(계급)’가 낮은 곳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힘겹게 살았어요. 이이는 사내이건 아니건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거나 마주하지 않는 틀’을 달가이 여기지 않아요. 그러니 아르테를 보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서 심부름을 맡기고 그림길을 짚으며 일거리를 찾아주었습니다.



“여류 화가를 만난 건 분명 처음이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화가가 되고 싶다는 선택은 아르테에게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 아니었나요?” (159쪽)



  어느덧 열한걸음에 이르는 《아르테》입니다. 열한걸음에 이르는 이야기는 아르테 아가씨가 그동안 스스로 어떻게 맞서고,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거듭나고, 어떻게 어깨동무하고, 어떻게 웃고 노래하고 떠들면서 빛나는 길을 가는가 하고 들려줍니다.


  앞으로 몇 걸음이 더 나올는지는 모릅니다만, 마무리가 되는 그날에는 ‘아마 참말로 있지 않았다고 할 테지만, 이러한 삶길을 연 다부진 아가씨 한 사람이 어떻게 둘레를 환하게 바꾸어 내면서 우리가 오늘 이곳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밝히는 알찬 꾸러미가 태어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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