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읽는 어른" 2019년 10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우리말 이야기꽃

여섯걸음 ― 마음을 읽고 쓰다


삶을 노래하면서 살림을 짓는 마음으로 이오덕 님 책을 새로 읽어 보았습니다. 꿈을 그리면서 생각을 짓는 손길로 이오덕 님 책을 하나하나 되읽었습니다. 사랑을 지피면서 책을 짓자는 꿈으로 이오덕 님 책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가슴에 품어 봅니다. 《이오덕 마음 읽기》 9쪽


  제가 나고 자란 고장은 인천입니다. 이 인천은 예부터 바다가 아름답고 고개가 가득한 조그마한 바닷마을입니다. 한자를 새기면 ‘어진내’라고도 하는데, 높은 멧자락은 없어도 구백아흔아홉 고개가 있다고 할 만큼 고개나 언덕이 많아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군수공장이 들어서야 했고, 서울로 보내는 물건을 실어나르는 길목이 되어야 했습니다. 해방 뒤에는 아주 공장도시로 바뀌었어요. 저는 ‘아름다운 바닷마을’인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매캐한 공장도시’일 적에 이 고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은 골목집이되, 마을 둘레는 어디를 보아도 겹겹이 공장이었어요. 여름에도 창문을 열기 어려웠는데 때때로 매우 새로운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제법 커다랗기에 동무들하고 타고 오를 만한 나무 곁에 있으면 한여름에 안 덥더군요.


  어른 눈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은 대목일 수 있고, 교과서나 방송에서 한 마디로도 안 가르친 대목일 텐데, 나무그늘은 선풍기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시원했고, 늘 바람이 감돌았어요. “야! 나무 곁에 앉으면 되게 시원해!” 하는 말이 늘 절로 터져나왔어요. 나무그늘이 아닌 곳에서도 바람이 화악화악 화라라락 들어오면 어찌나 시원하던지, 바람이야말로 불볕을 식히는 멋진 동무라고 느꼈습니다.


  한여름에 선풍기를 틀고 마루에 앉아서 수박을 먹다가도 그랬어요.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바람이 아주 시원하다!” 하고 어느새 외쳤습니다. 다만 이 바람결에 매캐한 기운이 늘 묻어났는데, 그래도 바람이 반가워 회오리바람이 치니 밖에 나가지 말라고 타이르던 때에도 몰래 밖에 나가서 회오리바람을 실컷 맞으면서 놀곤 했습니다.


  오늘날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어린이는 어떤 터전을 누릴까요? 어릴 적에 나무그늘에 감도는 바람을 누릴까요, 아니면 선풍기도 그닥 안 쓰는 채 에어컨 바람을 누릴까요? 나무그늘에 감도는 바람은 숲이 거저로 베풀 뿐 아니라 전기도 발전소도 송전탑도 아무것도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줄 몸으로 얼마나 받아들이는 삶터일까요?


  《이오덕 마음 읽기》(자연과생태, 2019)라는 책을 써내는 동안 내내 나무를 떠올렸습니다. 멧골에서 멧노래를 부르는 멧새로 다시 태어나고 싶던 이오덕이란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기보다는 ‘마음동무’로 만나려고 이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이오덕 어른 유족은 저더러 ‘아버지(이오덕) 평전이나 전기’를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으셨으나, 저는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하고 책을 갈무리하는 데까지만 일하겠다고, 평전이나 전기는 다른 사람 몫이 되도록 하겠다고 손사래쳤습니다.


  다만, 떠난 어른을 책으로 만날 이웃을 헤아리자면, 어른이 책에 남긴 마음은 조금 짚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말 우리 얼〉 1999년 2월호에 “책도 보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 속에 빠져 버리지는 말라(20쪽)” 하고 말씀하셨어요. 곧, 이오덕 어른이 글이며 책을 쓴 바탕이라면, 에어컨도 선풍기도 아닌, 더구나 부채조차 아닌, 집이며 마을에 나무가 우거져서 ‘숲이 베푸는 바람’을 언제나 누구나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이 마음을 밝혀 보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틀 ← 기반. 기초. 여건. 조건. 요소. 요건. 토대. 근간. 베이스. 포인트


  제가 쓰는 말은 제가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이 쓰던 말이면서, 저 스스로 삶을 가꾸어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익힌 말입니다. ‘기틀’은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이 으레 쓰던 말이라 귀에도 손에도 눈에도 익어요. 아무렇지 않게 ‘기틀’이란 말을 쓰는데, 어느 날 어느 분이 ‘기틀’이란 말을 저한테서 처음 듣는다고, 그런 한국말이 있느냐고 갸우뚱해 하셨습니다. 그때에 저도 갸우뚱했어요. ‘아니, 이 말을 모르는 분이 있네?’ 이러다가 다시 생각했어요. 강원도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어느 이웃님은 인천이나 충남 바닷가에 처음 찾아가던 때에 ‘밀물썰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그분이 서른 살에 이르도록 그분 고장에서는 ‘밀물썰물’이란 말을 듣지도 못했다고 한 적이 떠올랐습니다.


  삶자리에서 흐르는 말은 그 삶자리에 있는 사람한테는 매우 익숙하면서 마땅합니다. 삶자리에서 보기 어렵거나 못 보는 살림하고 얽힌 말이라면, 서른 살이나 쉰 살이 되더라도 그러한 말을 알기도 힘들지만, 문득 소리로 들어도 알아차라기 어렵습니다.


  ‘기틀’이란 낱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여러 한자말하고 영어가 떠오릅니다. 온갖 말을 재미나게 쓰고자 여러 한자말하고 영어를 끌어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어쩌면 ‘기틀’이란 말을 어릴 적부터 못 듣고 자란 터전이라서 ‘기틀’을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쓰는 길을 아직 익히지 못한 셈일 수도 있습니다.


  삶 아닌 책으로 글을 읽으며 말을 배우다 보면, 글이나 책 아닌 삶으로 말을 배운 이웃하고 멀어질 수 있습니다. 책이나 글 아닌 흙살림으로 말을 편 시골 할배는 ‘기둥·뿌리·줄기·나들이’ 같은 말을 으레 쓰지만, 책이나 글에서는 ‘근간·근본·맥·외출’ 같은 낱말이 흘러요.


  반드시 이쪽 낱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저쪽 낱말을 꼭 이쪽 낱말로 고쳐서 써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모든 밑바탕은 오롯이 하나, 삶에서 피어난 말을 즐겁게 쓰며 기쁘게 나누는가이지 싶어요. 돌개바람을 느끼고, 빗물을 마시고, 흙내를 맡는 말씨를 새로우면서 즐겁게 가꾸어 오늘에 맞게 산뜻하게 북돋우면 참으로 넉넉하리라 봅니다.


  《이오덕 마음 읽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까지 얼추 열다섯 해쯤 걸렸지 싶습니다. 지난 열다섯 해가 길었다면 길지만, 새롭게 배우며 걸어온 나날로 본다면 알맞춤하게 흐른 하루하루였다고 느낍니다. 책이름에 ‘마음’이란 낱말을 굳이 넣었는데, “이오덕 읽기”라고만 하지 않은 까닭이 있어요. “이오덕을 읽는” 데에서 그쳐도 나쁘지 않지만 “마음을 읽는” 길로 뻗어 본다면 한결 즐겁거나 기쁘게 마음동무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떠난 어른이 쓴 ‘우리 글 바로쓰기’이든, ‘동시하고 동화’이든, ‘교육·사회 비평’이든, ‘권정생 님하고 나눈 글월’이든, ‘긴긴 해를 채운 일기’이든, ‘어린이문학 비평’이든, ‘숲을 그리며 쓴 수필’이든, 어떤 마음을 글로 그려내어 우리한테 어떤 빛을 건네거나 물려주고 싶어하셨나 하고 ‘마음’을 돌아본다면, 새삼스레 나무그늘 바람 한 줄기가 후욱 끼친다고 느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어른 한 사람은 ‘우람한 나무’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신나게 타고 노는 나무 한 그루’요, 이 나무 한 그루는 예닐곱 아이들쯤이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땀을 식힐 적에 후욱후욱 싱그럽고 푸른 바람을 일으켜서 살살 어루만져 주는 셈일 수 있습니다.


마음동무 : 1. 마음이 맞거나, 마음을 나누거나, 마음을 서로 읽거나, 마음이 같이 흐르는 사이 2. 낯설거나 어려운 일을 마음으로 헤아려 주면서 차근차근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어 기운이 나도록 이끄는 사이.


  여느 한국말사전에 아직 ‘마음동무’란 낱말이 없습니다. 제가 새로 쓰는 한국말사전에는 ‘마음동무’라는 낱말을 넣을 생각이고, 뜻풀이를 붙여 보는데, 얼핏 새 낱말 하나가 가슴으로 스칩니다. 마음동무가 되는 사이가 있다면, ‘마음어른’으로 곁에 모시면서 삶이며 살림을 배울 분이 있을 만하겠다고. 마음에 빛이 될 만한 어른이라면 ‘마음어른’이겠구나 하고.


  ‘절친’이나 ‘소울메이트’ 같은 말도 쓸 수 있지만, ‘마음동무’를 써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신적 지주’나 ‘멘토’ 같은 말도 쓸 수 있는데, ‘마음어른’을 써도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제 나름대로 길을 찾았습니다. ‘즐겁게’입니다. 쉽게 읽지도 않되 어렵게 읽지도 않는 길이란 ‘즐겁게’ 읽는 길이지 싶습니다. 이오덕 님을 함께 읽을 이웃님도 늘 마음자리에 ‘즐겁게’를 씨앗으로 놓아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오덕 마음 읽기》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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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 어른>

2019년 9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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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글쓰기

우리말 이야기꽃 : 다섯걸음 ― 글이란 꽃



이원수는 동화 창작, 동시 창작, 외국 어린이문학 번역, 어린이잡지 편집장, 젊은 어린이문학가를 키우고 북돋우는 일, 나라에서 젊은 어린이문학가한테 궂은 일(정권 입맛에 맞는 글쓰기)을 시킬라 치면 이를 손사래치는 방패막이 구실을 하였다. 이원수를 따르는 쪽에서도, 이원수가 못마땅한 윤석중 무리에서도, 이원수가 일제강점기에 친일시를 쓴 줄은 다들 알았다. 이원수를 따르는 쪽에서는 이원수가 ‘입에 발린 겉치레’로 참회록을 쓰기보다는 ‘온몸으로 참회하는 삶’을 보내기에 너그러이 받아들였고, 이원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군사독재 부역자로 지낸 어린이문학가 무리는 이원수 스스로 키운 커다란 문학판에서 딴소리를 하지 못했다. 남북녘 모두 군대와 총칼을 버리고 평화롭게 어깨동무를 하는 새로운 어린이나라를 지어야 한다는 뜻을 밤낮으로 글로 펴다가 몸을 너무 많이 쓴 탓으로 그만 몸져누워서 이승을 떠난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332쪽



  이오덕·권정생 두 어른이 주고받은 글월은 책으로 두 판 나왔습니다. 첫 판은 2003년에 어느 출판사에서 두 어른 몰래 펴내며 말썽이 되었고, 둘째 판은 권정생 님이 이승을 떠난 지 여덟 해 뒤인 2015년에 나왔습니다. 이미 지난 일일 수 있습니다만, 바로 이 지나간 일을 몇 가지 적어 본다면, 이오덕 어른은 이녁 몸도 나쁜데다가 권정생 어른도 몸이 나쁘다 보니, 둘 가운데 누가 먼저 저승길로 갈는지 모르는 터라, 둘이 주고받은 글월을 한자리에 모아 보자고 했습니다. 권정생 어른이 물었지요. ‘선생님, 그 편지, 책으로 내시게요? 편지를 책으로 내시겠다면 이제 더는 편지 안 쓰겠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지금 내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다 죽고 나서 내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죽기 앞서 아직 조금이라도 건강할 적에 정리를 해두면 좋겠습니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이리하여 권정생 어른은 그동안 이오덕 어른한테서 받은 글월을 추슬러 이오덕 어른한테 보냈고, 이오덕 어른은 서로 나눈 글월을 차곡차곡 갈무리했어요. 권정생 어른은 처음에 ‘둘 다 죽고 백 년 뒤’를 말씀했는데, 이오덕 어른은 그러면 너무 기니 ‘둘 다 죽고 십 년쯤 뒤’가 어떻겠느냐 여쭙니다. 권정생 어른은 ‘십 년쯤 뒤’는 좀 짧아 보여 ‘삼십 년 뒤’를 물으시다가 ‘그래도 십 년 뒤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지요.


  두 어른이 나눈 글월에 깃든 푸른사랑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얼른 이 글월꾸러미를 읽고 싶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기다리고 지켜보면서 우리 마음을 돌아볼 만하지 싶어요. 아름다운 사랑이란 오늘도 아름다울 테지만, 열 해 뒤에도, 서른 해 뒤에도, 백 해나 이백 해 뒤에도 아름다울 테니까요.


  이오덕·권정생 두 분은 1970년대 끝자락에 ‘글이라는 꽃’이 징검다리가 되어 만났습니다. 아프고 슬픈 마음을 눈물이라는 빛으로 담아서 글을 쓴 사람이 하나 있었고, 이 글에 감도는 포근하면서 시린 사랑을 알아본 사람이 하나 있었지요. 이때부터 둘은 서른 해를 가로지르는 글벗, 글꽃벗, 꽃벗(서로 꽃같은 벗)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권정생 님을 이오덕 님이 알아보고서 둘이 만나 글꽃벗이 되었다면, 이오덕 님을 알아보고서 오래도록 글꽃벗이 된 다른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원수 님입니다. 이원수 님은 해방 뒤에 이오덕 님 동시를 눈여겨보았고, 이윽고 ‘멧골 어린이 글’을 갈무리하는 이오덕 님 배움길을 지켜보면서 눈을 번쩍 떴다고 합니다. 글을 쓴답시고 하나같이 서울로만 몰리는 흐름을 거스른 채, 더 깊은 두멧골로 들어가서 멧골마을 어린이 곁에서 든든한 버팀나무요 글동무에 그림동무가 되려는 교사 한 사람이 짓는 동시하고, 이 멧골학교 교사가 아이들 글을 여미어 내놓는 학급문집은 그 어떤 동시집이나 동화책보다 눈부셨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1965년에 《글짓기 교육, 이론과 실제》라는 이름으로 ‘글짓기 교육 이론’을 갈무리해서 책으로 묶었습니다. 1973년에는 《아동시론》을 써냈지요. 이 두 가지 책은 누구보다 이원수 님이 반겼고, 앞장서서 널리 알리려고 했습니다. 동심천사주의도 반공도 독재도 아닌, 오롯이 어린이를 어린이 그대로 마주하면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글꽃을 피우는 ‘젊은 멧골마을 교사’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이슬떨이와 길동무가 된 이원수 님이었어요.


  다만, 두 사람 이원수·이오덕 사이에는 한 가지 허물이 있습니다. 첫째, 이원수 님은 일제강점기에 친일시를 썼습니다. 둘째, 이오덕 님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한국말) 아닌 국어(일본말)’를 일본말로 가르치면서 이런 노릇이 잘못인 줄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해방을 맞이하고서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이원수 님이 남겼을 일기가 있다면 좋으련만, 해방 뒤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1947년에 써낸 동시책 《종달새》나 동화책 《어린이 나라》를 헤아리면서, 또 한국전쟁하고 군사독재에 이르는 동안 동심천사주의·반공교육 등쌀에서 젊은 어린이문학가를 지켜낸 걸음을 살피면서, 어린이잡지와 어린이책에 그토록 쏟은 땀방울을 돌이키면서, 몸져눕기 앞서 마지막으로 이오덕·권정생·염무웅 세 사람하고 창비아동문고를 꾀해서 펴내도록 온힘을 바친 손길을 생각하면서, 1981년에 눈을 감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겨울 물오리〉라는 동시를 떠올리면서, 2000년대나 2010년대라는 눈높이가 아닌 지난날 삶자락에서는 뉘우침글(참회록)을 어떻게 온몸으로 보여주는가를 곱씹어 봅니다.


  이원수·이오덕 두 분이 1950년대부터 1981년까지 둘도 없는 글꽃벗으로 지낸 삶길이었기에, 1970년대부터 2003년까지 이오덕·권정생 두 분이 다시없는 글꽃벗으로 어우러진 삶길이었구나 하고도 느낍니다.


  곰곰이 보면, 이원수·이오덕 두 분은 해방 뒤에 허물벗기를 ‘입’이 아닌 ‘온몸’으로 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이녁 일기를 고스란히 남겼기에 일제강점기에 ‘일본말로 가르치는 교사 노릇’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밝힌 대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밝혔든 안 밝혔든, 언제나 어린이 쪽에 서서, 더구나 멧골마을 어린이 쪽에 어깨동무를 하고 서서, 어린이하고 사진을 찍을 적조차 늘 귀퉁이나 뒷자리에 서서, 가슴 펴고 노래하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는 한길을 걸었지요. 이원수 어른은 끝없이 새 동시하고 동화를 쓰기도 했지만, 아직 한국말로 안 나온 세계명작동화를 한국말로 옮기는(프랑스말이나 영어가 아닌,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일을 엄청나게 했어요. 장발장도, 꿀벌 마야의 모험도, 미운 새끼 오리도, 플루타르크 영웅전도 ……, 나중에는 페스탈로찌 전기까지 옮겼습니다.


  당찬 몸짓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쓰는 글이라면, 당치면서 씩씩한 기운뿐 아니라, 아름다운 숨결이 흐르겠지요. 고개를 꺾고 빌붙는 몸짓이 되어 쓰는 글이라면, 한때에는 돈을 얻을는지 몰라도, 갈수록 시커먼 빛깔로 얼룩지겠지요.


  글이라는 꽃이 피기까지 겨울을 살아냅니다. 가을날 시들어 겨울날 뿌리를 빼고는 모두 말라죽은 채 잠들어야 새봄에 비로소 싹을 틔워 줄기를 새로 올리고 새잎을 펴요. 풀벌레가 허물벗기를 하듯, 애벌레가 탈바꿈을 하듯, 잘못을 씻거나 털 적에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오덕 님도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감춘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윤이상 님한테서 피아노를 배웠다’입니다. 어느 해에 배웠는지는 또렷이 안 밝히셨기에 어림만 할 뿐인데, 윤이상 님한테서 배운 피아노로 어린이한테 멋진 풍금 솜씨를 선보였지요. 몸져눕는 바람에 큰아들이 바퀴걸상에 앉혀서 모실 적에는 큰아들더러 ‘전자음반’을 사다 달라고, 누운 몸으로는 피아노를 못 치지만, 전자음반이라면 칠 수 있겠다고 하셨다지요. 큰아들은 이때에 이녁 아버지가 그렇게 건반을 잘 치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예전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 멧골마을 어린이가 신나게 부를 만한 동요가 없다고 느껴, 이원수 동시에 손수 가락을 붙여 동요를 짓기도 했습니다. 악보를 얼마나 깔끔하게 쓰셨는지 모릅니다.


  이 대목도 어느 해인지 안 밝히셔서 어림만 할 뿐이지만, 이오덕 님이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입혀 동요를 지었다는 얘기를 들은 이원수 님이, 그 노래를 불러 달라고 바라셨다는데, 온삶을 걸쳐 글꽃벗이었다고 해도 너무 수줍은 나머지 노래를 불러 드리지 못했다지요.


  오늘 이곳에서 두 어른하고 두 어른을 나란히 그려 봅니다. 말을 옮긴 글이 아닌, 온삶을 바쳐 사랑으로 살림을 지으려는 손길로 마음에 생각이란 씨앗을 심어 하나하나 옮긴 글로 벗님이 된 이원수·이오덕 두 어른하고 이오덕·권정생 두 어른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두 어른 더하기 두 어른, 모두 세 어른입니다. 이들 세 어른은 잘잘못으로도 스스로 배우고, 숲하고 멧골에서도 배우며, 어린이하고 이웃하면서도 배운 삶이었지 싶습니다. 이분들 자취를 가다듬어 책으로 엮는 일을 하며 배운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제법 오래 제 가슴에 묻어 놓았는데,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 2019)이란 책에 남김없이 풀어냈습니다. 글을 잘 쓰는 길이 아닌, 글이 꽃이 되는 길을 바라면서 새로운 사전으로, 이야기가 흐르는 사전을 썼습니다. ㅅㄴㄹ



이오덕은 멧골자락 어린이가 읍내 어린이나 도시 어린이한테 늘 놀림을 받으면서 풀이 죽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이 멧골 어린이가 스스로 제 삶을 동시로 담아내고 그림으로 그려내면 차츰 기운을 차리리라 여기면서 ‘글쓰기 교육’을 하다. 돈이 없는 멧골자락 어린이가 많은 터라, 종이에 크레파스를 손수 장만해서 쪽종이에 짧게 이야기를 쓰도록 하고, 그림은 마음껏 그리도록 했다. 이오덕 어른은 네덜란드 그림님 고흐를 사랑해서 집에 늘 고흐 그림을 붙여 놓고서 바라보았는데, 멧골자락 어린이가 그린 해바라기, 어머니나 아버지, 보리밟기, 소뜯기기, 담배따기 같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마치 ‘이 땅에 새로 태어난 고호’ 같다고 느껴 늘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33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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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네걸음 ― 숲하고 서울이 어깨동무하는 꿈



  이오덕 어른은 어느 때부터인가 《쉬운 말 사전》이란 책을 늘 곁에 두고서 글을 쓰셨다고 합니다. 《쉬운 말 사전》을 곁에 두기 앞서까지는 이녁 스스로 어떤 말을 입으로 쓰고 글로 적는가를 제대로 못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전을 곁에 두고서 이녁 글을 손질하거나 가다듬으면서 몇 가지를 느끼거나 생각하셨다지요. 첫째로는 ‘내(이오덕)가 이렇게 쉬운 말조차 모르고서 살았구나’요, 둘째로는 ‘이렇게 고치기보다는 다르게 고치면 한결 쉬운 말이 되겠구나’요, 셋째로는 ‘이 말씨가 쉬운 말이 아니라지만 나(이오덕)한테는 매우 익숙하고 부드러운 말씨인데, 이 어렵다는 내 말씨를 고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합니다.


  몇 가지 마음이 뒤엉키면서도 더 쉽게 쓰려는 생각을 키우셨고, 1970년대가 저물 즈음에는 ‘쉬운 말 쓰기’보다는 ‘시골말 쓰기’가 어울리겠다고 깨달으십니다. ‘쉬운 말’은 지식인이 머리로 짜맞춘 말씨가 많다고 여기셨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림을 짓고 아이를 돌보는 나날을 보내는 시골지기 입에서 저절로 샘솟는 말씨야말로 참답게 쉬운 말이라고 느끼셨다지요.


  이런 마음으로 엮은 책이 《일하는 아이들》입니다. 이다음으로 엮은 《우리도 크면 농사꾼이 되겠지》는 언제나 서울바라기가 되어 시골을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업신여기는 시골 어린이가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기를 바라는 뜻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시골 어린이가 어려서부터 늘 듣고 쓰면서 자라는 시골말이 바로 ‘쉬운 말’이니 교과서나 책이나 신문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시골말을 건사하기를 바라셨어요. 이러면서 바로 시골 어린이 말씨를 서울 어른이 함께 듣고 읽고 배운다면, 머리로 짜맞추는 억지말이 아닌, 누구한테나 삶에서 묻어나는 사랑스러운 말이 새롭게 깨어나리라 하고도 여기셨습니다.


말이란 참 재미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새 말이 태어나거든요. 예쁜 벗님들이 고운 생각으로 떠올리는 낱말은 모두 우리 앞에서 이루어져요.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웃음을 생각하면 웃음이 이루어져요. 옛날 옛적 우리 옛사람, 그러니까 ‘한아비’라고 하는 분들은, 숲을 생각하고 푸른 빛깔을 생각하며, 보금자리를 생각했어요. 온누리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생각하며, 사람과 이웃할 작은 새들 둥지를 생각했어요. 자, 모두 눈을 살며시 감고 생각을 기울여요. 내 생각에 따라 새롭게 태어날 어여쁘며 밝고 싱그러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봐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96쪽


  2011년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란 책을 써내고 나서 늘 아쉽다고 여긴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말을 바르게 쓰든 살려서 쓰든,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만 배울 일이 아니지 싶었습니다. 어른하고 어버이가 함께 배울 적에 제대로 어우러지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앞으로 어른이나 어버이가 될 적에도 배움길을 즐겁게 꾸준히 이을 수 있는 틀이 서야 아름답겠다고 느꼈어요.


  저는 ‘푸름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름 그대로 푸른 나이라서 푸름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린이’는 익히 알려졌듯이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님이 지었습니다. ‘푸름이’는 1980년대에 참교육을 바라거나 꾀하는 젊은 교사들 손에서 조용히 태어난 이름입니다. ‘청소년’이란 이름이 있기는 했으나 막상 나라에서 청소년을 제대로 헤아리는 길을 가지 않을 뿐더러, 청소년 나이에 있는 열넷∼열아홉 푸른 넋이, 이름에서 곧바로 ‘우리는 오늘 푸르게 살고 배우고 자란다’는 꿈이나 사랑을 스스림없이, 또 쉽게, 또 부드럽게, 또 누구나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새로 지은 이름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굳이 ‘푸름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하느냐고 물을 만합니다. 이오덕 어른을 비롯한 분들은 ‘국민학교’란 이름에서 ‘국민’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란 뜻으로 군홧발로 억지로 지어 퍼뜨린 낱말이니, 이 찌꺼기를 털어야 한다고, ‘어린이학교’나 ‘어린이배움터’ 같은 이름으로 고쳐야 알맞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이름이란, 그냥 붙이는 말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이름이란, 늘 말하고 들으면서 그 말씨에 깃든 숨결을 마음으로 헤아리니 그렇습니다. 1980년대에 ‘푸름이’란 이름을 조용히 지어서 잔물결처럼 퍼뜨린 분들도 그런 뜻이었다고 느껴요. 다만 이 말씨는 ‘어린이’만큼 퍼지지 못했어도 ‘푸른문학’이나 ‘푸른책’ 같은 말을 쓰는 곳이 꾸준히 늘어납니다.


  이 대목에서 말이란 참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삶을 바꾸려는 첫길에서 말부터 바꾸거든요. 말을 바꾸지 않고서는 삶을 좀처럼 못 바꾸는 셈이라고 할 만해요.


이 나라에 컴퓨터라는 물건이 처음 들어오던 무렵, 이 컴퓨터를 다루던 젊은 일꾼은 ‘셈틀’이라는 낱말을 새로 지었어요. ‘틀’은 기계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뜀틀이나 재봉틀이나 베틀 같은 자리에 쓰지요. 빨래하는 기계는 ‘빨래틀’이 되고요. ‘셈+틀’이라는 얼거리로 컴퓨터에 새 이름을 붙인 까닭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숫자 세기(이진법)’ 때문이에요. 컴퓨터는 이진법 숫자로 모든 것을 읽거든요. 그래서 셈틀이에요. 둘째는 ‘셈(세다)’이라는 낱말은 ‘생각(생각하다·헤아리다)’에서 비롯했기 때문이에요. “숫자 셈”으로 움직이는 컴퓨터이지만, 마치 사람 머리처럼 “생각하는 몸짓”이 되어서 새로운 누리로 우리를 이어 준다는 뜻에서 ‘셈틀(생각틀·슬기틀)’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79∼80쪽


  저는 1994년부터 201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글을 쓸 적에 ‘새롬데이타맨 프로’라는 풀그림을 씁니다. 1994년 무렵 이른바 피시통신을 하도록 잇는 풀그림이 있는데, 그 풀그림에 곁딸린 문서편집기를 써요. 오늘날 눈으로 보자면 퍽 낡은 풀그림이고, 문서편집기 말고는 어디에도 써먹지 못한다고 할 텐데, 스물 몇 해를 묵은 이 오래된 풀그림에 곁딸린 문서편집기를 다루다 보면, ‘컴퓨터-피시통신-인터넷 살림’이 이 땅에 갓 퍼지거나 뿌리내릴 무렵 어떤 낱말을 써야 사람들이 더 쉽고 즐겁게 다가설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을 기울이던 젊은 일꾼 땀방울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셈틀’이란 이름은 1990년대 첫무렵 젊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가 머리를 맞대어 지었다지요. 짧고 굵고 쉬우면서 깊은 뜻을 담은 이름을 지으려고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여럿이 우리말을 엄청나게 새로 배웠다고 합니다. 사전도 샅샅이 읽고 이곳저곳에 끊임없이 묻고 되물었대요. ‘셈틀 = 세다 + 생각 + 슬기’를 담은 이름이라지요. ‘풀그림’은 ‘프로그램’을 걸러낸(또는 풀어낸) 낱말인데, “풀어서 그려낸 것, 또는 풀어 쓰면서 새로운 것을 그리도록 돕는 연장”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요새 우리는 ‘즐겨찾기, 갈무리, 붙여넣기, 불러오기, 끼워넣기, 잘라내기’ 같은 낱말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만, 처음에는 모두 영어였어요. 이 영어를 국립국어원 공무원도 국어학자도 아닌 프로그램 개발자가 서로 모여 하나하나 새로 엮고 지어서 선보였으며, 피시통신에서 제안을 꾸준히 받기도 하면서 가다듬었어요.


  ‘약손’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어서 이 어린이한테 ‘약손’이 무엇인가 하고 풀이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요새는 어디가 아프거나 힘들면 쉽게 병원에 가지요. 예전처럼 할머니나 어머니가 포근하게 사랑으로 쓰다듬는 손길보다는 병원 치료가 먼저이다 보니 ‘약손’이란 이름을 모를 수 있겠구나 싶어요. ‘약손’이란 이름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이 말이 낯선 어린이가 말뜻뿐 아니라 말에 얽힌 삶을 따스히 헤아려 주기를 바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랑손’하고 ‘포근손’이란 말을 지어서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네 어머니가 우리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얼른 나으렴 하고 바라는 ‘사랑손’이랍니다. 우리 몸에서 아픈 데를 사랑이 어린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면 어느새 그 아픈 데가 따뜻해져요.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도록 하는 손이기에 ‘포근손’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하고.


  2014년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책을 썼습니다. 저는 2011년부터 전남 고흥이란 시골로 옮겨서 사는데, 시골에서 만나는 어린이마다 ‘빨리 이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 놀랐습니다. 마음도 아팠어요. 푸름이도 매한가지였어요. 시골 어린이가 시골이란 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포근한 사랑으로 스스로 읽고 새롭게 배우며 가슴으로 고이 품어 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러고서 생각을 찬찬히 가다듬어 2017년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책을 썼지요. 오늘날은 시골보다 도시 인구가 훨씬 많고, 도시 독자가 훨씬 많아요. 도시에 사는 이웃님이 ‘도시가 아름다운 숲이 있는 마을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자주 물으셨어요. 그 실마리를 말 한 마디에서 풀도록 이끌고 싶어서 쓴 책입니다. 삶터는 시골하고 도시로 다르겠지만, 마음은 언제 어디에서나 숲일 수 있고, 우리가 마음을 먹는 대로 생각이 자라서 말이 될 테니,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말길을 트고 만나면 아름답겠다고 여겼습니다.


  주고받는 말이기에 ‘이야기’입니다. 한켠으로 쏠리는 말이 아닌, 주고받는 말이 되기를 바라면서 ‘강의’보다는 ‘이야기꽃’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써 봅니다. ‘글쓰기’란 수수한 이름도 좋으나 ‘글꽃’을 피워 보자는 얘기를 곧잘 합니다. 모두 꽃길을 걸으면 즐거울 테니 ‘꽃살림’을 가꾸어 보자는 얘기를, ‘꽃어른’이 되고 ‘꽃아이’가 되어 보자는 말을, 이러면서 ‘꽃책(꽃다운 책)’을 읽고, ‘책꽃잔치(북페스티벌)’를 열어 보자는 말을 넌지시 해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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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읽는어른' 2019년 6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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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세걸음 ― 하얀 딸기꽃 곁에 “비슷한말 사전”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사전을 써냈습니다. 글종이로 5000쪽(원고지 5000장) 남짓인 꾸러미를 글꼴을 줄이고 엮어 500쪽이 채 안 되게 내놓았습니다. 고작 글종이 5000쪽만큼 사전으로 꾸렸기에 1000낱말 남짓 다루었는데, 사전 짓는 길을 스물 몇 해를 산 끝에 처음 선보인 사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비슷한말 2》을 선보이고 싶었으나 목돈을 들여야 하는 일감인 터라 아직 엄두를 못 냅니다.


‘비슷한말’이란 비슷해 보이지만 막상 다른 말입니다. 다른 말은 다르기에 ‘닮다’랑 ‘비슷하다’를 섣불리 섞어 쓸 수 없고 ‘힘’하고 ‘기운’을 함부로 뒤섞을 수 없어요. ‘자라다’하고 ‘크다’도 비슷하지만 다른 말이에요. ‘즐겁다·신나다·기쁘다·신바람나다·흐뭇하다’는 비슷해 보여도 결이나 쓰임이 다른 낱말이니,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찬찬히 밝히는 몫을 사전이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2016) 464∼465쪽

휘다·굽다·꺾다·부러뜨리다

→ ‘굽다’는 몸이나 어느 한쪽을 ‘접은 뒤에 다시 펼 수 있을’ 때에 쓰는구나 싶고, ‘휘다’는 몸이나 어느 한쪽이 ‘접힌 뒤에 다시 펴지 못할’ 때에 쓰는구나 싶습니다.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가게 하기에 ‘접다’라 합니다. 몸이나 어느 한쪽이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도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에 ‘굽다’요,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기에 ‘휘다’라 할 만합니다. ‘팔굽혀펴기’라고 하듯이 “팔을 굽혔다 폈다”처럼 씁니다. “팔이 휘었다”고 하면 팔이 한쪽으로 접혀서 다친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리하여 “나뭇가지가 휘었다”처럼 쓸 뿐, “나뭇가지가 굽었다”처럼 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허리가 휘게 일을 하다”라고는 말을 하지만 “허리가 굽게 일을 하다”라고는 안 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 옛말이 있으나 “팔은 안으로 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를 미루어 살피면, ‘굽다’는 ‘굽고 펴다’와 맞물리면서 쓰는 낱말이고, ‘휘다’는 안쪽으로 접지 않고 바깥쪽으로 접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이라 할 만합니다 …….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휘다·굽다·꺾다·부러뜨리다’를 꾸러미로 다룬 모둠풀이 첫자락을 옮겨 보았는데요, 여느 사전은 이 낱말을 돌림풀이·겹말풀이로 다룹니다. 《보리 국어사전》 한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 《보리 국어사전》 뜻풀이

[휘다] 곧은 것이 힘을 받아 구부러지다

[구부러지다] 한쪽으로 굽거나 휘어지다

[굽다] 1. 한쪽으로 휘거나 꺾이다 2. 한쪽으로 휘어 있거나 꺾여 있다

[꺾다] 1. 어떤 것을 구부려서 부러지게 하다 2. 허리, 팔, 다리 들을 구부리거나 접다


사전은 말을 읽고 제대로 배워서 삶을 새롭게 돌아보도록 이끄는 디딤돌 같은 책이라고 여깁니다. 드문 말이나 어려운 말보다는, 쉽고 흔하다 싶은 낱말부터 제대로 옳게 알맞게 즐거이 풀이하고 다룰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낱말을 더 많이 실을 사전이 아닌, 사전에 실은 낱말부터 꼼꼼히 알뜰히 여미어야지 싶어요.


사람들은 흔히 ‘어려운’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만,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말이나 ‘흔한’ 말을 신나게 찾아봐야지 싶습니다. 사전까지 찾아봐야 하는 ‘어려운’ 말이라면 처음부터 안 써도 될 말은 아닐까요? 늘 쓰고 자주 쓰며 으레 쓰는 ‘쉽고 흔한’ 말일수록 참뜻·제뜻·속뜻을 찬찬히 짚으면서 알맞고 즐겁게 쓸 노릇 아닐까요?


외국말을 어떻게 배워서 쓰는가를 생각해 보면, 어려운 외국말부터 배우지 않아요. 가장 쉽고 흔한 외국말부터 온갖 결이나 쓰임을 헤아려서 낱낱이 따지고 깊이 익히려 하지요. 어린이가 말을 어떻게 배워서 쓰는가 하면, 어려운 말부터 듣거나 익히지 않아요. 어린이는 가장 흔하고 쉬운 말부터 즐겨듣고 즐겨말하면서 신나게 살려서 씁니다.


어린이가 제 나라 말을 익힐 적에도, 어른이 외국말을 익힐 적에도, 언제나 살림말이나 삶말, 그러니까 가장 쉽고 흔하게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펴고 마음을 여는 이야기에서 바탕이 될 말을 진득하게 꾸준하게 오래오래 차근차근 바라보고 되새기면서 온몸으로 받아들여요. 쉬운 말을 제대로 알아야 말도 글도 제대로 일어서는 셈입니다.


*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뜻풀이

[휘다] 1. 한쪽으로 기울거나 쓰러지다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느낌으로 쓴다) 2. 뜻·마음·생각을 다른 쪽으로 바꾸거나 내려놓다

[굽다] 1. 한쪽으로 기울다 (곧지 않다,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할 적에도 쓴다) 2. 뜻·마음·생각을 다른 쪽으로 바꾸거나 내려놓다

[꺾다] 1. 길고 단단한 것을 동강이 나게 하다 (다시 펴지지 않거나 아주 끊어지게 하다) 2. 가는 길을 다른 곳으로 바꾸거나 돌리다 3. 몸통이나 몸 한쪽을 어느 한 곳으로 기울도록 하다 (‘굽히다’처럼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가도록 한 뒤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느낌으로 쓴다) 4. 한쪽으로 기울게 해서 겹치다 (접다, 한쪽으로 가서 마주 붙거나 닿도록 하다) 5  …….


돌림풀이·겹말풀이 없이 새로 뜻풀이를 붙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차근차근 해보면 되지요.


우리는 세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어떤 마음으로 들려줄까요? 어린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기 앞서,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린이에 앞서 어른부터 스스로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삭이고 익히고 가다듬어서 살림꽃으로 펼 적에 즐겁지 않을까요? 가게에 삼백예순닷새 내내 놓인 빨간 딸기가 아닌, 오월이 무르익어야 비로소 열매를 누리는 딸기알인 줄, 우리 어른부터 스스로 느끼고 누리면서 어린이하고 딸기 열매를 맛볼 적에 훨씬 신나리라 느껴요.


서로돕기, 같이돕기, 함께돕기 ― 상부상조, 상호원조

서로좋아, 같이좋아, 함께좋아, 좋아좋아 ― 윈윈, 상승효과


사전에 없는 말이어도 ‘서로돕기’랑 ‘같이돕기’ 같은 말을 혀에 얹습니다. ‘서로좋아’하고 ‘함께좋아’ 같은 말도 슬그머니 종이에 적어 봅니다. 어깨동무하듯이 서로 즐거울 말을 머리에 담고 눈에 얹고 가슴에 싣고 두 손에 놓고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


이러면서 슬쩍 새말을 지어요. 어떤 말인가 하면, ‘딸기알빛’하고 ‘딸기꽃빛’입니다. 딸기알은 새빨가니까 ‘딸기알빛 = 새빨강’이요, 딸기꽃은 새하야니까 ‘딸기꽃빛 = 새하양’이에요. 유월로 접어들 즈음 찔레꽃이며 감꽃이 피어나요. 감알은 바알갛거나 새빨갛습니다. ‘감알빛’이라 하면 어떤 빛깔이 될까요? ‘말랑감알빛’하고 ‘단감빛·단단감알빛’처럼, 우리 몸에 기쁜 숨결이 되는 감알을 더 찬찬히 바라보면서 새 빛깔말을 쓰면 어떨까요.


붉게 열매를 맺는 감이지만, 꽃은 마알갛습니다. ‘말갛다’하고는 다른, 마알가면서 하이얗고, 살풋 노르스름한 감꽃이에요. 고욤꽃도 살짝 비슷하지요. 소한테서 얻는 젖인 소젖, 한자말로 하자면 ‘우윳빛’이란 ‘감꽃빛’이나 ‘고욤꽃빛’이지 싶습니다.


‘화이트’나 ‘백색’을 쓰지 말자고 하기보다는, ‘딸기꽃빛·감꽃빛·찔레꽃빛·앵두꽃빛’처럼 우리 곁에서 상냥하며 곱다시 피어나는 숨결을 헤아리는 빛깔말을, 새빛을, 숨빛이며 꽃빛을 조용히 눈을 감고서 품어 봅니다. 이 빛깔말을 품는 마음으로 도요새이며 저어새이며, 온갖 철새가 이 나라 새파란 바다로 찾아와서 마음껏 날갯짓하면 좋겠어요. 


* ‘어린이’ 뜻풀이

[보리 국어사전] 나이 어린 사람. 흔히 네다섯 살 먹은 아이부터 초등학교에 다닐 만한 아이까지를 이른다. (같은말 : 아동)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어린아이’를 한결 곱게 바라보거나 아끼려고 가리키는 말. 놀며 배우고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하루가 되려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 (나이로만 치자면, 갓 태어난 때부터 열 살을 지나 열두어 살 즈음까지 ‘아이’라고 일컫습니다. 너덧 살 즈음부터 열두어 살 즈음까지는 따로 ‘어린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나 “우리 아이”처럼, 어버이가 이녁 딸아들을 가리킬 적에 ‘아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어린이’는 어버이가 낳은 딸아들을 가리킬 적에는 못 씁니다)


사전은 ‘단어장’ 아닌 ‘풀이하는 이야기책’이지 싶습니다.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보려는 뜻으로 ‘어린이’를 새롭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한국말사전 짓는 사람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리고,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길을 걷는다.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 《책빛숲》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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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어른"이란 모임책에 싣는 글입니다.

모임책에는 몇 대목을 줄여서 싣고, 누리집에는 통으로 올립니다. ㅅㄴㄹ


+ + +


우리말 이야기꽃
두걸음 ― 치마 두른 사내


  저는 하루에 글종이로 500쪽쯤 글을 씁니다만 글종이 500쪽이 무엇인지 어림을 못 하는 분이 있어요.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으니 고분고분 이렇게 얘기합니다만, 쓰는 글이 이쯤이라면 읽는 글은 훨씬 많습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 무렵까지는 ‘한 줄을 쓰려면 백 줄을 읽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참말로 그 나이에는 그렇게 읽고 썼어요.

  요새도 이 다짐은 그대로인데, 종이책으로 치자면 ‘한 줄을 쓰는 사이 스무 줄을 읽는다’고 할 만해요. 그리고 종이책을 적게 읽기로 하면서 다른 읽기를 합니다. 이를테면 열 줄은 바람읽기로, 열 줄은 풀읽기로, 열 줄은 나무읽기로, 열 줄은 벌레읽기로, 열 줄은 별읽기로 갑니다.

  아이읽기로도 가고, 살림읽기랑 사랑읽기로도 가고요. 예전에는 종이책을 읽는 데에 온마음을 썼다면, 이제는 종이책은 매우 조금 읽고, 삶책하고 숲책하고 넋책을 읽는 길에 한마음을 쓰는 길입니다. 종이책을 거의 못 읽을 수밖에 없이 바깥일을 하는 날이면 ‘다른 숱한 책’을 신나게 읽어요.

치마 (숲노래, 2019.1.29.)

정강이까지 드리워 긴치마
허벅지 훤히 깡동치마
무릎 언저리 무릎치마
속에 따로 속치마

바람에 나비처럼 팔랑치마
한 땀씩 곱게 넣은 꽃치마
가지런히 줄 잡아 주름치마
머리 덮는 쓰개치마

치마를 둘러 시원하면
너도 나도 입어 보자
옛날 옛적엔
누구나 치마차림이었다지

속에 덧입는 치마바지
얌전히 치마저고리
어머니 누나는 치마순이
아버지 나는 치마돌이

  2017년 늦가을부터 치마를 두릅니다. 저는 사내라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겉보기로는 “치마 두른 아저씨”입니다. 이런 차림을 보고는 거북하다고 여기는 분이 있고, 재미있다고 여기는 분이 있으며, 아랑곳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둘레에서 어떻게 보든 저는 스스로 살아가려는 결을 생각합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옷을 걸칠 뿐이니 대수롭지 않습니다.

  언젠가 바깥마실을 하는 길에 서울에서 전철을 타는데, 어느 할머니가 저를 보며 “무슨 남자가 치마를 입어?” 하시기에, “어머나, 할머니! 바지 입었네. 왜 여자가 바지를 입어?” 하고 대꾸했어요. 할머니는 낯빛이 싹 바뀌면서 허둥지둥 다른 칸으로 건너갑니다.

  생각해 봐요. 바지를 꿰고 싶으면 바지를 꿰면 되어요. 치마를 두르고 싶으면 치마를 두르면 되지요.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마음껏 즐거이 신나게 홀가분히 재미나게 웃음으로 사랑스레 꽃답게 별처럼 노래하면서 옷을 갖추면 아름답습니다. 이런 뜻으로 ‘치마’라는 동시를 썼어요. 앞쪽에는 여러 가지 치마 이야기를 다루고, 이 치마란 옷을 예전에는 모든 사람이 입었다는 대목을 밝힌 다음, ‘치마돌이’란 말을 살그마니 넣었습니다.

  자, 더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이제 뭇 가시내는 즐겁게 머리카락을 짧게 칩니다. 머리카락을 박박 밀기도 합니다. 적잖은 사내는 즐겁게 머리카락을 기릅니다. 노래하는 몇몇 사람이 아니어도 치렁치렁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멋사내가 많아요. 바야흐로 멋이든 아니든 마음 가는 결로 삶길을 짓습니다.

늑대 (사름벼리, 2019.1.10.)

왜 옛날이야기 그림책에선
늑대가 나빠?
‘빨간 모자’ 그림책에서도
늑대가 나쁘게 나와!

언제나 미움 받다가
책끝에서는 물에 빠져죽거나 그래.
‘아기 돼지 삼형제’라는 책에서도
늑대가 나쁘게 나오잖아.

이렇게 저렇게 되다가
마지막엔 불에 타죽어.

난 늑대 이야기가 그런 건
아주 반대야!!!!

  늑대가 얼마나 똑똑하면서 착한 짐승인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이제는 늑대가 얼마나 대단하면서 사랑스러운 짐승인가를 또렷이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어느 사람은 늑대를 외눈으로 바라보고, 어느 사람은 늑대를 마음눈으로 바라볼까요?

  2011년에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리 곁님은 아이를 아이답게 돌보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함께 살아가려면 숲에서 살림자리를 가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숲집을 가꾸는 길을 이루리라 여기며, 이때부터 시골에서 사는데요, 인천을 떠나던 이해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란 책을 썼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집 아이들이 열 살 즈음 되면, 우리가 쓰는 말이랑 글을 찬찬히 짚고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뜻으로 썼어요. 2015년에는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을 썼는데요, 네 해 사이에 ‘바로쓰기’란 이름에서 ‘새롭게 살려낸’이란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첫째, ‘바로쓰기’란 우리가(또는 나부터)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굳거나 길든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슬기롭게 가다듬자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살려쓰기’란 우리가(또는 나부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즐겁게 꿈꾸면서 사랑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는 바탕은 같되, 풀어내는 결이 살짝 달라요.

  ‘바로쓰기 = 옛버릇을 털고 새몸짓으로 거듭나기’인 셈이요, ‘살려쓰기 = 새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노래하기’인 셈입니다.

  2003∼2007년에 이오덕 어른 책하고 글을 갈무리하면서 어른이 남긴 글을 모조리 읽어 보니, 이오덕 어른은 ‘우리글 바로쓰기’란 이름으로 쓴 책을 몽땅 ‘우리말 살려쓰기’로 고쳐쓰고 싶어하셨더군요. 그런데 ‘우리글 바로쓰기’를 낸 출판사는 옛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니 새 이름으로 고치면 책장사를 하기 어렵겠다고 밝혔대요.

  바르게 가다듬는 틀을 세워도 훌륭하지만, 고장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새 말씨를 즐겁게 가꾸면 한결 아름답게 자라지 싶어요. 고장말·마을말·집말, 이 갖가지 사투리가 눈부시게 피어나는 말꽃이라면, 손수 짓는 말길을 노래한다면, 참 곱겠지요.

 고르다. 가지런하다. 판판하다. 반반하다 ― 편평하다. 평평하다
 배우다. 익히다 ― 공부하다. 학습하다

  ‘편평하다’로 적어야 맞는지, ‘평평하다’로 적어야 맞는지 헷갈리는 분이 꽤 있는 줄 압니다. 이때에는 둘 다 안 쓰면 됩니다. 한국말 ‘판판하다·반반하다’를 쓰면 되어요. 때로는 ‘고르다·가지런하다’를 쓰면 되고요.

  아이들은 ‘공부·학습’이 지겨울 만합니다. 어른도 그래요. 그런데 ‘배우다·익히다’는 달라요. 아직 몰라서 새롭게 찾거나 살펴서 받아들이려고 하기에 ‘배우다’입니다. 새롭게 찾거나 살펴서 받아들인 살림을 몸에 잘 붙도록 애쓰면서 살기에 ‘익히다’입니다.

  한자말을 굳이 한국말로 걸러야 하지는 않아요. 이 대목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어느 말을 누가 어떤 뜻으로 썼는지 곰곰이 헤아리면 좋겠어요. ‘배우다’하고 ‘익히다’라는 수수한 낱말 하나에 깃든 너른 숨결을 냠냠짭짭 받아먹으면서 새롭게 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배우는 사람, 곧 ‘배움이’입니다. 서로 배우니 ‘배움동무’입니다. 오래도록 같이 배우니 ‘배움벗’으로 거듭나요. 사랑스러운 배움벗이기에 따로 ‘배움님’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배우는 길에 든든한 이웃이니 ‘배움지기’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이란 끝없이 가지를 치면서 생각을 새로 뻗도록 북돋웁니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터에서 태어나서 자란 말이 한국말이거든요. 다른 나라 말도 그 나라 그 터에서 죽죽 뻗고 자라요.

  아이는 ‘배움아이’요, 어른은 ‘배움어른’입니다. 배우는 모든 곳이 ‘배움터’입니다. 학교에서만 배우지 않기에, 우리 집은 언제나 ‘배움집’입니다. 마을도 학교라는 뜻으로 ‘배움마을’이 되고, 온나라가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나라’예요. 슬기롭게 배워서 환하게 빛나는 사람한테는 ‘배움빛’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리를 가르치는 슬기로운 사람은 ‘스승’이자 ‘배움빛’이기도 하겠지요. 스승이란, 가르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배울 수 있도록 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사람을 가리킬 테니까요.

  치마를 놓고서 동시를 한 자락 썼습니다만, 치마를 입으면서 여러모로 배웁니다. 치마란 아주 홀가분하면서 즐거운 옷이더군요. 다리에 햇볕하고 바람을 쪼이려고 할 적에 참으로 좋은 옷이고요.

  울타리란 남이 쌓지 않고 우리 스스로 쌓는구나 싶어요. 남녀나 여남이라는 울타리를 걷어내는 길에 치마 한 벌은 매우 재미난 징검돌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가시내가 바지를 꿰면서 어깨동무란 길에 씩씩하게 징검돌을 놓았다면, 이제 사내는 치마를 두르면서 어깨동무란 오솔길에 살뜰히 징검돌 하나를 더 놓을 수 있구나 싶어요.

  전철에 ‘쩍벌사내’가 제법 있지요? 모든 쩍벌사내한테 깡동치마를 입히면 좋겠어요. 애써 다그치지 않아도 저절로 달라지지 않을까요? 대통령 시장 군수도 한겨울에 깡동치마를 입도록 하면 좋겠어요. 이래야 이 나라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스스로 겪을 적에 비로소 생각합니다. 스스로 할 적에 바야흐로 배웁니다. 스스로 생각할 적에 비로소 살림을 짓는 길로 가고, 스스로 배울 적에 바야흐로 사랑을 가꾸는 몸짓으로 달라져요.


최종규(숲노래) : 한국말사전 짓는 사람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리고,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길을 걷는다.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 《책빛숲》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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