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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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7.26.

책으로 삶읽기 838


《고르고 고른 말》

 홍인혜

 창비

 2021.11.24. 



《고르고 고른 말》(홍인혜, 창비, 2021)을 읽었다. 고르고 골라서 쓴 글을 엮었으리라. 그런데 ‘무엇’을 ‘왜’ 골랐을까? ‘어디’에서 ‘누구’로서 살아가는 ‘어떤’ 마음을 골랐을까? 고르는 길이란 하나도 안 나쁘다만, 고르기만 할 적에는 언제나 곪는다. 우리는 삶을 지어서 살림을 사랑하려고 푸른별에 태어난다. 골라내기만 하거나, 가려내기만 하거나, 가르기만 하는 길이라면, 어느새 스스로 굴레에 갇힌다. 마음이 왜 안 보일까? 마음을 안 보려 하니까 마음이 안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을 볼까? 얼굴이나 몸매나 옷차림을 안 쳐다보고서 가만히 눈을 감기에, 오히려 마음눈을 밝게 뜨면서 오롯이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 ‘클래식한 면’이 있다는 ‘문학계 공모전’이란 무엇일까? 일본스런 한자말에 영어를 뒤섞은 글쓰기가 ‘고르고 고른 말’인 셈일까? 그래도 끝까지 다 읽고서 내려놓았다. 부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서거나 살거나 있고 싶다면, ‘고르기(취사선택 + 소비지향 + 물질문명)’를 가만히 내려놓고서 ‘짓기(사람 + 사랑 + 숲 + 살림)’이라는 오늘을 바라보는 길을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ㅅㄴㄹ


우리는 불투명 인간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영혼이 담긴 두툼한 가죽 부대 같다. 마음은 단단한 외피 속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4쪽)


문학계 공모전은 클래식한 면이 있어서 출력한 원고를 우체국에서 부쳐야 한다. 나는 동네 출력소에서 투고작을 뽑았다. (16쪽)


프로야구를 즐겨 본다. 특정 구단에 집념에 가까운 애정을 쏟고 있다. 스포츠 팬이 된다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그날 나의 바이오리듬이나 업무 성과와 무관하게 오직 게임 승패에 따라 기분이 천상계로 승천하기도 하고, 마계로 추락하기도 한다. (19쪽)


+


사람은 저마다의 영혼이 담긴 두툼한 가죽 부대 같다

→ 사람은 다 다른 넋이 담긴 두툼한 가죽 자루 같다

4쪽


단단한 외피 속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어

→ 단단한 껍질 깊숙한 곳에 웅크려

4쪽


문학계 공모전은 클래식한 면이 있어서

→ 글꽃마당은 예스러워서

→ 글잔치는 옛날스러워서

16쪽


게임 승패에 따라 기분이 천상계로 승천하기도 하고, 마계로 추락하기도 한다

→ 이기고 지면 하늘로 오르기도 하고, 수렁으로 고꾸라지기도 한다

→ 이기거나 지면서 하늘로 춤추도 하고, 불굿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1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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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속 건축 도시 속 건축 시리즈
이승헌 지음 / 안그라픽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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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7.5.

책으로 삶읽기 830


《부산 속 건축》

 이승헌

 안그라픽스

 2016.9.5.



《부산 속 건축》(이승헌, 안그라픽스, 2016)을 읽었다. 그런데 “부산 속 건축”은 말이 안 된다. “부산 건축”이라고만 하든지 “부산집”이나 “부산사람 집살림”이나 “부산에서 집”이나 “부산 살림집”이라 해야 올바르다. 우리말은 영어가 아니라서 아무 데나 ‘in’을 넣듯 ‘속·안’ 같은 낱말을 안 넣는다. 책이름부터 ‘무늬만 한글’이다. 겉멋을 부리려고 하기에 일본말씨나 옮김말씨를 쓰게 마련이다. 속을 보거나 살림살이를 품으려 하면 ‘멋 아닌 살림’을 보고 품고 사랑하려 하겠지. 글쓴이는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겉을 꾸민’ 곳만 ‘디자인’이라고 가르치는 듯싶다. 이 책을 읽어 보니 그렇다. 그러나 보금자리를 일구는 모든 손길은 언제나 ‘가꿈(디자인)’이다. 부산에 있는 ‘골목마을’을 놓고서 “낡아 허름하고 불편한 달동네”라든지 “색이 바라고 낡아 남루해”처럼 말하는 이가 부산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디자이너·건축가’가 목돈을 받고서 새로 올린 집만 ‘건축 디자인’이라고 여긴다면, 이리하여 “칙칙함을 벽화가 감춰 주고 생기가 돌게” 바꾸었다고 읊는 대목을 보면, 이 책은 그저 허접할 뿐이다. 스스로 골목마을에서 안 살기에 이런 허접글을 쓰고야 만다. ‘대학교수’를 하기 앞서 ‘마을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ㅅㄴㄹ


몸을 기댈 수 있는 땅 한 뙈기 확보하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잇고 이어서 허름한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 겨우겨우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지붕을 뜯어 고치고, 금 간 흙벽을 벽돌로 바꾸어가며 지금껏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낡아 허름하고 불편한 달동네에 최근 외지인의 발길이 잦다.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 삶의 온갖 체취가 퀴퀴하게 묻어나는 동네를 사람들은 왜 찾는 걸까. (86쪽)


한때 상권을 형성하던 식육점과 양복점, 이용원, 미용실, 세탁소, 의상실, 약국 등은 색이 바라고 낡아 남루해 보인다. 적어도 40∼50년은 더 되었을 법한 세월의 흔적은 시간이 동결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 곳곳의 폐가와 공가는 을씨년스럽기도 하지만 칙칙함을 감추려 새로이 바른 페인트와 벽화 때문에 마을에 다시 생기가 돈다. (123쪽)


+


부산이라는 도시는 다양한 무늬로 직조되어 있다

→ 부산이라는 고장은 여러 무늬로 짰다

→ 부산이라는 마을은 온갖 무늬로 땋았다

→ 부산이라는 데는 온갖 무늬로 엮었다

17쪽


마천루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이 즐비한

→ 높은집과 일집이 가득한

→ 솟은집과 일집이 넘치는

→ 뾰족집과 일집이 늘어선

18쪽


서울 조정에 소식을 알리는 당시 최고의 통신수단이었다

→ 서울로 새뜸을 알리는 첫손꼽는 이음길이었다

→ 서울 임금한테 얘기를 알리는 훌륭한 다리였다

31쪽


풀빌라 성격의 노천 풀장까지 갖추고 있어 부티크 호텔의 면모를 갖췄다

→ 트인헤엄터까지 갖춘 길손채여서 멋스럽다

→ 트인물놀이터를 갖춘 멋스러운 손님채이다

35쪽


삶의 온갖 체취가 퀴퀴하게 묻어나는 동네를 사람들은 왜 찾는 걸까

→ 사람들은 온갖 삶내음이 퀴퀴하게 묻어나는 마을을 왜 찾을까

→ 사람들은 온갖 삶빛이 퀴퀴하게 묻어나는 마을을 왜 찾을까

86쪽


곳곳의 폐가와 공가는 을씨년스럽기도 하지만

→ 곳곳 낡은집과 빈집은 썰렁하기도 하지만

→ 곳곳에 비고 낡은 집은 서늘하기도 하지만

123쪽


칙칙함을 감추려 새로이 바른 페인트와 벽화 때문에

→ 칙칙해서 감추려 새로이 바른 물감과 담그림 때문에

12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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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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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4.7.

책으로 삶읽기 814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비채

 2006.3.8.첫/2013.12.26.120벌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비채, 2006)를 누가 읽어 보라고 건네었다. 그분은 읽고서 좋았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도 ‘좋은 기운’을 나누어 주고 싶었나 보다. 그 뜻은 고맙다. 책을 쓴 놈이 얄궂을 뿐이지, 책이 얄궂을 수 있는가? 겉발림말이 가득한 책을 받고서 한 해 남짓 바깥마루에 내놓고 안 쳐다보았다. 숲에서 온 나무로 여민 종이꾸러미가 나쁠 까닭은 없으나, 2006년에 처음 나와서 2013년에 벌써 120벌을 찍었다는 책은 영 손조차 대기 싫었다. 시골에서 사는 살림이니 불쏘시개로 삼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하나쯤 남겨 놓자고 여기며 들추어 보았다.

21쪽, 온누리 모두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빛을 못 낸다고 하는데, ‘빛’은 아픔이 아니다. 빛은 기쁨이자 죽음으로 가는 새길이다. 빛에는 환하게 날아오르는 길만 있다. 밤이라는 어둠이 ‘아픈 녹임’인데, 아픔은 안 나쁘다. 아픈 데를 알아보고서 끙끙 앓으면서 나아가는 길이 ‘아픈 녹임’인 밤빛이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갈 뿐이지, ‘괴롭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살 수 없다’고 하는 말은 무슨 터무니없는 뜬구름잡는 소리인가?


202쪽, 목댕기를 한 차림새가 왜 무더위에 안 시달리는 옷인가? 그대는 참말 모르는구나? 인천·서울이나 수원·서울이나 의정부·서울을 날마다 새벽이랑 밤에 납작쿵이 되어 오가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목댕기를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모르는구나? 이런 철딱서니없는 글이 무슨 글이라고?


287쪽, 어떻게 틈(기회)이 두려움 사이에 있는가? 말도 안 된다. ‘두려움’이란 모든 틈(기회)을 막아버린다. 두렵다는 씨앗을 마음에 심기에 누구나 글러먹고 틀러먹는다. 어처구니없다.


315쪽, 글쓴이 속마음을 드러낸 몇 안 되는 대목이다. 그러게, 그대는 글을 쓰지 말고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면 되었겠지. 왜 글을 쓰면서 글판을 겉발림글로 어지럽히는가? 아직 늦지 않았으나 얼른 ‘조선일보사 월간조선부 차장 기자’로 일했던 이름을 내밀고서 문화부장관 자리로 옮겨가시기를 빈다.


390쪽, 하느님은 아무 꽃을 안 꺾는다. 하느님이 왜 꽃을 꺾는가? 하느님은 모든 꽃이 저마다 다 다른 철에 저마다 다 다르게 피어나는 숨결과 빛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사랑한다. 무슨 소리인가? 오래도록 꽃송이를 벌리든 꽃가루받이를 마치자마자 꽃송이를 접든, 꽃마다 다 다를 뿐이다.


ㅅㄴㄹ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 색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21쪽)


한여름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다녀도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을 만한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한다든가, 냉방시설이 잘돼 있는 사무실에서 일한다거나 하는 등의 조건 말입니다. (202쪽)


기회는 두려움 속에 숨어 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두려움과 망설임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가장 큰 실패는 어쩌면 시도해 볼 용기조차 지니지 못했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287쪽)


다른 사람이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또 부럽고, 아내와 한바탕 부부싸움을 하다가 ‘지금 내 나이의 다른 많은 이들은 국사를 논하고 있는데, 나는 집에서 이게 뭐냐’ 하는 생각을 하면 그만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칫 우울해지는 날이 많습니다. (315쪽)


신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가장 먼저 꺾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너무 빨리 꺾여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매달려 있어도 안 됩니다. (39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https://blog.aladin.co.kr/hbooks/14488502

이 글을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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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라는 문장
손세실리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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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4.1.

책으로 삶읽기 813


《그대라는 문장》

 손세실리아

 삶이보이는창

 2011.2.13.



《그대라는 문장》(손세실리아, 삶이보이는창, 2011)을 읽었다. 글을 쓰는 분들은 하나부터 아홉까지 ‘문장’이라는 한자말을 좋아한다만, 나는 어린이 곁에서 살며 ‘글·글자락·글월·글가락·글발·글결’ 같은 우리말을 쓴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아이들 곁에서 ‘그녀’ 같은 얼뜬 일본말씨를 쓰지 않는다. 우리말로는 ‘그놈·그년’처럼 따로 가르는 때도 있으나 모두 ‘그’일 뿐이고, 우리말씨를 살피자면 ‘아무개 씨’라고 해야 어울린다. 요새는 ‘아무개 님’이라고 하는 말씨가 어울릴 테고. 모든 글은 삶에서 태어난다.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말을 하고, 이 말을 가다듬어 글로 빚는다. 다만, 모든 글은 모든 말일 뿐이다. 말씨하고 다른 글씨라면 꾸밈글이나 치레글로 기울고 만다. 삶말을 쓴다면 삶글을 쓸 테고, 사랑말을 편다면 사랑글을 쓰게 마련이다. 모든 글은 모든 말일 뿐인데, 모든 말은 모든 마음이다. ‘마음 → 말 → 글’인 얼개이다. 그리고 ‘사랑 → 살림 → 삶 → 마음’이며, ‘밤(어둠·고요) → 꿈 → 씨앗 → 빛(새벽·아침) → 숨결 → 넋’인 얼개이다. 글은 늘 맨 나중이다. 글은 ‘끝’이다. 처음은 ‘밤’이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에서 꿈을 그리고, 이 꿈은 씨앗으로 맺어 빛을 바라보며 태어나니 숨결을 얻어 넋으로 영근다. ‘넋’이란 다 다르게 흐르는 ‘우리 스스로’이다. 글만 쳐다본다면 글은 굴레에 갇히곤 한다. 말을 담는 글인 줄 알면 글이 조금 살아난다. 마음을 담은 말을 옮기는 글인 줄 알면 글이 더 깨어난다. 이러면서 삶과 살림과 사랑이 얽힌 길을 읽으면 누구나 글꽃을 여밀 수 있고, 사랑은 다 다른 우리 넋이 저마다 빚는 꽃인 줄 알면 글쓰기가 어떠한 노래인지를 깨닫겠지. 벼슬이나 감투도 허울이지만, ‘문학·문장’도 허울이다. 밤마다 별빛을 그리면서 꿈자리에 깃들고서, 새벽에 새 하루를 그리는 씨앗을 품고서 일어나는 숨결을 읽고 느끼고 보는 넋으로 이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펴면, 누구나 글순이에 글돌이로 어우러지리라. 글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그저 글이되, 글만 바라보면 글을 모르고 만다.


ㅅㄴㄹ


그녀는 내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지만 나는 오히려 동갑내기인 그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반성한다. 하루 열세 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맨 먼저 책을 펼쳐드는 자세라든가 독서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와 미래의 희망 등을 발견해내는 모습, 그리고 좋은 글을 쓰는 글쟁이가 되면 좋겠지만 좋은 글을 읽어내는 훌륭한 독자로 남아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57쪽)


아이들은 예의 신록 같은 짱짱함으로, 오월 햇살 같은 반짝임으로 낭송을 마쳤다. 모두들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마음 한 바닥 없이 국어교과서 읽듯 또랑또랑 읽어내던 것이었다. (212쪽)


상징성 있는 몇 줄 직함, 몇 줄 공약, 몇 줄 출마의 변이면 안 되는 걸까? 길거리 약장숴럼 되는 말, 안 되는 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말고, 담담하고 진솔하고 호소력 강한 유세전을 펼칠 순 없는 걸까? (30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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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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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3.3.22.

인문책시렁 300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수다

 2009.1.20.



  《대한민국 표류기》(허지웅, 수다, 2009)를 읽다가 끝에 붙은 ‘우석훈 추천글’이 아리송하다가, 이런 추킴글을 고스란히 싣는다면, 한동아리라는 뜻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돼지’라는 짐승을 ‘그들(글쓴이 + 우석훈)’은 얼마나 잘 알기에 “돼지똥으로 가득 찬”이라든지 “농지투기에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돼지가 어떤 숨결인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돼지를 따돌리는(차별)’ 뜬금없는 말을 함부로 쓰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허지웅 씨가 〈디 워〉를 “말을 꺼내 봤자 욕할 수밖에 없으니(240쪽)” 하고 읊은, 깎음말보다 더 깎음말을 읊은 대목을 알 만합니다. 영화이든 책이든 글이든 오롯이 영화요 책이요 글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나 얼거리가 허술하대서 글이 허술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는 〈디 워〉일 텐데, 그런 껍데기만으로 바라보자니 그저 깎음말밖에 나올 말이 없겠지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술에 절어 술바보가 된다든지, 나라(정부·담배인삼공사)에서 파는 ‘니코틴 + 필터’가 붙은 담배에 얽매일 적에는 ‘담배’라 할 수 없습니다. 퍼마시는 술도 ‘마약’하고 똑같으며, 나라에서 파는 ‘니코틴 + 필터 담배’도 ‘마약’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술바보 + 필터담배 태우기’를 나란히 하면 무시무시한 ‘마약’을 하는 셈입니다.


  우리한테 ‘머리’가 있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잎담배’를 태웠습니다. 대나무로 길게 마련한 담뱃대에 ‘밭에서 거두어서 손수 집에서 말린 담뱃잎을 조금 재워서 가볍게 태웠’어요. 이런 ‘잎담배’는 북아메리카 텃사람도 으레 태웠습니다. 머리를 맑게 틔우려 할 적에 쓰던 ‘잎담베’는 ‘담배인삼공사 필터담배’하고 아주 다릅니다.


  손수 논밭을 지어 거둔 낟알로 손수 담가서 마시던 ‘집술(밀주)’도 가게에서 파는 술하고 다르지요. 그러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기만 할 적에는, 또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며 술담배를 할 적에는, 삶이 아닌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기에 걸맞습니다.


  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미국도 우리나라도 ‘양당제 정당’이 이름만 다를 뿐, 두 무리가 하는 짓은 매한가지입니다. 이명박·박근혜만 삽질을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김대중·노무현·문재인도 매한가지입니다. 누가 우두머리에 섰든, 또 누가 감투(국회의원·시도지사·군수)를 썼든 똑같이 삽질을 밀어붙였습니다. 이 나라에는 왼쪽(좌파)도 오른쪽(우파)도 똑같이 삽질로 뒷돈벌이를 일삼아요.


  나라를 갈아엎자면, 뭔가 배우거나 깨우친 이들이 스스로 서울을 떠나면 됩니다. 먼저 서울부터 떠나고, 인천과 부산과 대전과 광주와 대구에서도 떠나, 가까운 작은고장(중소도시)으로 옮겨서 살 노릇이요, 아예 시골로 깃들어 작은집에서 나무를 심고 풀꽃을 돌보면서 손수 씨앗을 심는 하루를 누릴 노릇입니다.


  《대한민국 표류기》를 내놓던 무렵에 허지웅 씨는 주머니에 돈 1000만 원도 없었다고 밝히는데, 돈 1000만 원이면 작은 시골집을 살 수 있습니다. 시골집을 사면, 서울하고 달리 살림돈(생활비)이 얼마 안 나갑니다. 1000만 원에 장만하는 시골집은 ‘재산세’가 한 해에 1만 원이 안 됩니다. ‘내 집’은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장만해서 손수짓기를 하나씩 늘려나갈 적에, 이 나라는 헤맴(표류)을 멈추고서 제자리를 찾을 만합니다. 부디 하나라도 눈을 떴으면 하루빨리 서울을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술담배에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가게도 멀어서 술담배를 못 사거든요.


ㅅㄴㄹ


이명박의 이데올로기를 나눠 공유하는 자들의 희망인질 사익추구 계획, 뉴타운 개발은 이 땅의 서민들을 끝내 서울 밖으로 모두 밀어내고야 말 것이다. (69쪽)


진보 운운하는 성격의 모임들에 참석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당비만 낸다. 그들은 아니꼬운 진정성을 거들먹거리며 작은 진영을 쪼개고 분열시켰다. 이제 와 진보 진영은 거의 게토화됐다. 그들만의 정의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당신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어차피 지금 이야기는 그런 자칭 ‘진짜 좌파’들을 위한 게 아니다. 나는 1등급 한우마냥 거들먹거리는 ‘진짜 좌파’들이 싫다. (218쪽)


실제 〈디 워〉는 기존의 비평 담론으로 평가 받기 어려운 영화다. 내러티브부터 플롯, 응집력, 연기, 구성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짜임새를 갖춘 게 아무것도 없다. 결국 말을 꺼내 봤자 욕할 수밖에 없으니 함구할 따름이다. (240쪽)


이 돼지똥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아름다움을 고민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문화생산자들, 대한민국은 앞으로 이들이 지키는 것이지, 돈과 땅투기, 농지투기에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이 지키는 것이 아니다. (우석훈 추천글/31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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