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5 빌린책에 밑줄을?

책벌레수다 : 자랑질은 다르게 해야지



  2026해 늦겨울 어느 날, 열린책숲(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을 그을 뿐 아니라 늦게 돌려주어 말밥에 오른 분이 누구일까 하고 문득 찾아보았다. 그분이 내 또래인 줄 보고는 아주 창피했다. 내 또래인 사람이라면 ‘도서관 책에 밑줄긋기’라든지 ‘도서관 책에 침을 묻혀서 넘긴다’든지 ‘도서관 책 귀퉁이를 접는다’든지 했다가는, 예전(1980해무렵)에는 책지기(사서)가 달려와서 따귀를 갈기던 무렵이다. 나는 따귀를 맞은 바 없지만, 따귀를 맞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철썩 하는 소리가 책숲을 쩌렁쩌렁 가르면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때’에는 책숲뿐 아니라 배움터에서도 따귀를 갈기는 길잡이가 넘쳤고, 그냥 마을이나 골목에서도 ‘어른’이란 이름으로 윽박지르는 덩치 큰 사람은 어린이나 푸름이를 찰싹찰싹 갈기기 일쑤였다.


누군가를 우상화시키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 오직 그를 향해 세계가 집중되어야 한다. 과오를 숨긴 채 엄지를 세우며 그를 추앙하고, 다른 해석을 금지시킨다 … 하고 싶은 말과 글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으면 느끼고 싶은 감정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반성하고 희망할 수 있는 기회마저 숨겨야 한다. 《때가 되면 이란》 100, 126쪽


 요즈음은 ‘공공도서관 대출표’에 굳이 안 적는 듯싶지만, 예전에는 ‘책에 밑줄 긋지 마시오’를 비롯해서 ‘책을 침 묻혀서 넘기지 마시오’에 ‘책을 접거나 찢지 마시오’ 같은 알림글을 빼곡하게 적었다. 나는 일부러 이런 알림글을 차근차근 읽었다. 이런 알림글은 곧잘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틀리더라. 틀린글씨를 찾아낸 뒤에는 동무하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칫! 알림글부터 틀리게 쓰면서 주먹이나 휘두르고!” 하고 툴툴댔다. 그나저나 책숲에서 이렇게 알림글을 적어 놓아도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은 으레 있게 마련이다. 요새는 ‘책숲에서 밑줄긋기’나 엉뚱짓을 하는 버릇을 나무라거나 꼬집으면 오히려 ‘꼰대 같다!’는 핀잔을 들을 테니까 나무라거나 꼬집는 사람이 확 줄기는 했다만, 그분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구나 싶다.


나는 잔돈을 놓을 때도 큰돈을 둘 때도 항상 똑같이 고맙다고 적는데 팁에 따라 태도를 확 바꾸는 그녀가 거북했다 …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안녕이라 그랬어》 83, 141쪽


  부끄러운 줄 모르니까, 밑줄긋고 싶은 책을 사읽지 않았겠지. 밑줄을 긋고 싶은 책이라면 곁에 두고서 되읽고 거듭읽고 다시읽을 노릇이니까, 사읽기를 해야 맞다. 책 한 자락 값이 얼마나 되는가. 참으로 요즈음 책값은 매우 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온누리 여러 나라에 대면 책값이 대단히 싸다. 비록 책집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일본만큼 책집이 많지는 않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책집이 제법 많은 나라로 손꼽을 수 있다. 밑줄을 긋고 싶은 책을 만난다면 사읽으면 된다. 책숲에서 빌려읽은 책이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얼른 책숲에 돌려주고서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갈 노릇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한 자락 장만하는 김에, 새삼스레 우리 마음을 녹이는 다른 책도 몇 자락 더 장만하면 된다.


“같이 늙어서 이렇게 힘을 쓸 수 있는겨.”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거구먼, 영감.” “하하하, 맞네, 맞어.”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1》 72쪽


  책을 왜 읽나? “나, 책 좀 읽어!” 하고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읽는가? 책에 왜 밑줄을 긋나? “봐, 나 책 읽는다구!” 하고 둘레에 자랑하고 싶어서 밑줄을 긋는가? 누리길(SNS·인스타) 자랑질을 하고 싶으면, 책집에 가서 샀다고 찰칵찰칵 찍고서 자랑을 하면 될 일이다. 참으로 자랑놀이를 하고 싶다면, 책집마실을 하는 발걸음을 자랑하기를 빈다. 마을책집을 찾아가는 하루를 자랑하는 이웃이 늘기를 빈다. 마을책집에서 책을 열 자락쯤 장만하면서 배가 부르다고 자랑하는 이웃이 늘기를 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손소리를 뚝 끊고서 가만히 종잇결을 느끼면서 책을 읽을 뿐 아니라, 따로 빈종이에 “밑줄을 긋고 싶은 대목을 천천히 옮겨적은” 다음에, “옮겨적은 손글씨”를 찰칵찰칵 찍어서 자랑잔치를 해보기를 빈다. 그러니까 “책읽은 자랑하루”를 선보이고 싶다면, 자랑할 일이나 길이 수두룩하다. 열린책숲에서 누구나 스스럼없이 손에 쥘 책은 정갈하고 곱게 다루고서 제때에 돌려주어야 맞다.


‘어머니와 시골로 돌아왔지만 처음엔 논일이 익숙하지 않아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인 형국이었다. 처음엔 진흙투성이가 되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영감을 만나고서, 이 진흙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2》 92쪽


  노래듣기(음악감상)는 자랑이 아니다. 이른바 ‘좋아함(취미)’이기는 하다. 책읽기(독서)는 자랑이 아니다. 그저 삶을 즐기는 길이다. 스스로 즐기는 이 삶을 굳이 남한테 자랑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속없이 텅 빈 수레라고 밝히는 셈이다. “나, 이런 책 읽는다?” 하고 보여주는 매무새는 너무 철없고 어리숙하다. 멋지거나 훌륭한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겉멋이 아닌 속치레를 할 노릇이니까. 그리고, 밑줄긋기를 자랑할 짬이 있다면,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읽고서 “느낀 바”를 글로 적어서 띄워야지. 우리 마음을 울리는 글 한 자락을 일군 이웃을 헤아리면서, 나는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가꾸고 돌보면서 살아가려는 길을 새롭게 배웠는가 하고 쪽글을 써서 둘레에 나누면 아름답다. 책을 읽으며 느끼고 배운 바를 여러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면서 두런두런 책수다를 펼 적에 반갑다.


‘트라우마. 그 녀석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사실은 엄청 충격받은 거 아닐까.’ 《안녕, 아름다운 날 2》 51쪽


  비슷해 보이는 말꼴이지만 달라도 사뭇 다른 낱말인 ‘자람·자라다’하고 ‘자랑·자랑하다’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란, 스스로 자라려고 몸소 하면서 차분히 가다듬고 갈고닦는 살림길이다. 자랑하려고 읽거나 쓴다면 부질없을 뿐 아니라 창피하다. 자라려고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 자랑하려고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은 불쌍하다. 어린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란다. 푸름이도 자라도 할매할배도 자란다. 몸뚱이만 키우려 하지 말고, 나이만 머금으려 하지 말고, 마음과 숨결과 넋과 꿈과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길을 헤아리면서 읽고 쓸 노릇이라고 본다. 몸뚱이만 젊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겉치레에 쉽게 휩쓸리더라. 겉몸과 겉얼굴과 겉이름과 겉모습에 얽매이는 탓에 자꾸자꾸 자랑질이라는 늪에 빠지더라. ‘자랑늪’이 아닌 ‘자람숲’에서 만날 수 있기를 빈다. ‘자랑살이’는 내려놓고서 ‘자람씨앗’으로 살림을 짓기를 빈다.


《때가 되면 이란》(정영효, 난다, 2017.5.28.)

《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문학동네, 2025.6.20.)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1》(아라이도 카기리/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4.30.)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 2》(아라이도 카기리/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5.31.)

#じいさんばあさん若返る #新挑限

《안녕, 아름다운 날 2》(아카네다 유키/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18.8.15.)

#さらば佳き日 #?田千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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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사망 소식에 이란인들, 춤추고 동상 철거까지…트럼프 "나라 되찾을 기회"

https://www.youtube.com/watch?v=s4AEBUmgy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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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4 들풀 들불 들꽃

책벌레수다 : 고꾸라진 우두머리



  나는 1975해에 태어났으되, 1979년까지 이 나라가 어떤 꼴이었는지 알지 못 한다. 1975∼79해 즈음에는 마냥 뛰노는 아이였기도 하고, 고삭부리라서 늘 끙끙 앓아누웠고, 앓아누울 적이건 골목이나 집에서건 도깨비를 밤낮으로 맨눈으로 보며 시달렸다. 1980해에 전두환이 총칼로 벼슬힘을 거머쥐고서 윽박지르는 줄 몰랐다. 여섯살배기가 뭘 알겠나. 열 살이던 1984해 즈음에서야 ‘어린배움터 곳곳에 붙은 얼굴그림’이 ‘전두환 + 교장’인 줄 비로소 알아차렸다. 어린배움터에서는 툭하면 길거리에 한나래(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쉬잖고 흔들라고 시켰다. 노태우가 고꾸라질 무렵까지 어린배움터뿐 아니라 푸른배움터도 ‘새마을청소·근로동원’을 시켰다. 아무튼 나는 전두환이 끌려내려올 적과 박정희가 피를 뿜으며 숨질 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턱이 없었는데, 집이나 마을에서 어떤 어른도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 들려주었다. 보임틀에서 뭐가 나오면 “애들은 보지 마라.” 하는 꾸지람만 들었다.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늘 입꾹닫이면서 몽둥이만 흔들었다.


오늘날 거대 군수산업체들은 전쟁 무기의 생산과 판매, 유통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은 무기를 더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입니다. 《평화는 처음이라》 94쪽


  2026해 첫봄으로 접어들 무렵, 이란 우두머리가 펑펑 터져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제오늘 사이에 안 죽었어도 곧 죽을 만하지 싶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 곳곳을 펑펑 터뜨린 일이란,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꽝꽝 쏘아서 골로 보낸 일하고 나란하다고 느낀다. ‘옳고그름’이 아니라 “온나라를 주먹힘으로 윽박지르고 들꽃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군사독재 우두머리”가 마침내 사라진 일을 바라보아야지 싶다. ‘김재규·트럼프’는 꽃님(영웅)이 아니다만, 우리가 새길로 돌아설 수 있는 갈림길에 돌 하나를 놓았다고 여겨야지 싶다. 우리나라 광주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이란은 테헤란뿐 아니라 그 나라 곳곳에서 숱한 사람이 서글프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우리나라 광주에서 몇 사람이나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낱낱이 모르듯, 이란에서 그야말로 얼마나 숱하게 끔찍하게 죽어야 했는지 제대로 모른다.


“그럼 특훈. 지금부터 특훈할 거야?” “엇?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술 마시고 자고 싶은데.” “특훈.” “야, 이거 놔.” 《쓰레기 용사 4》 151쪽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도 베네수엘라도 북녘도 이란도 쿠바도 ‘가난해야’ 할 까닭이 터럭만큼도 없다. 저마다 다르게 넉넉하고 가멸찬 나라이다. 그렇지만 힘으로 억누르고 쥐어짜는 우두머리가 ‘막짓(군사독재)’을 벌인다. 나라살림을 몇몇이 돌라먹거나 빼돌리거나 움켜쥔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읽고 쓰는 몫(권리)’이 어느 만큼 있지만, 베네수엘라·북녘·이란·쿠바는 ‘읽고 쓰는 몫(언론자유·언론권리)’이 깡그리 없다. 이들 네 나라는 나라지기와 벼슬아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누리길(인터넷)을 통째로 끊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얼거리는 중국도 비슷하다. 중국에는 ‘읽쓰몫’이 없다. 더 돌아볼 노릇이다. ‘북한인권’이라는 낱말을 쓰면 마치 ‘조중동 끄나풀’로 여기는 분이 꽤 있더라. 남녘과 한겨레인 북녘은 ‘사람길(인권)’이건 아름길(민주)이건 아예 없다. 우리는 ‘북한인권’이라는 이름을 왜 못 써야 할는지 곱씹을 노릇이다. 왜 “한겨레 두나라가 그토록 싸움붙이(전쟁무기)에 목매달면서 나라살림은 뒷전일 뿐 아니라, 아름길을 짓밟는”지 낱낱이 짚고 따지고 밝히고 말하면서, 이 모든 수렁을 걷어내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도 북녘도 베네수엘라도 이란도 쿠바도 ‘사회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민주주의’ 같은 겉이름이 아닌, “서로 돌보고 아끼며 어깨동무로 즐겁게 살림하는 아름길”을 걸어가는 속이름을 바라볼 노릇이지 싶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러한 나무들을 친구처럼 보게 되었다. 나무가 내 길을 따라 자라나고, 내가 나무에 다가서고, 그 바늘잎들을 어루만지며 미소짓는다.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68쪽


  진도 앞바다와 용산 가겟길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죽었는데, 무안나루에서도 난데없이 한꺼번에 서글프게 죽었다. 그런데 우리는 ‘무안참사’라는 이름조차 못 쓰거나 안 쓴다. “무안나루를 하루빨리 다시 열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무안참사’가 왜 터졌는지 낱낱이 파헤쳐서 이런 끔찍한 죽음늪이 더는 없도록 온나라를 아름답게 돌보는 길을 펴야 한다. ‘무안참사’에 눈을 감거나 입을 닫을수록 이 나라는 아름길하고 등지고야 만다. 두레(사회주의·공산주의)가 아닌 사슬(군사독재)인 북녘과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햇볕과 별빛이 스며들어서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을 틔우지 않을수록 이 나라도 똑같이 ‘두레 아닌 사슬’에 갇힌다. 들풀을 짓밟고 들꽃을 사납게 꺾어버리는 얼뜬 우두머리가 판치는 이란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나라도 나란히 얼뜬 굴레로 치달으리라 느낀다.


특별법을 만들고 다시 자식 잃은 부모가 되어 기다리면 될 거라 기대했다.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한 참사를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될 안전한 사회가 될 거라 기대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340쪽


  나는 들풀이다. 너는 들꽃이다. 우리는 들빛이다. 조촐히 보금자리를 일구는 수수한 모든 사람은 들동무이다. 나라지기와 벼슬아치는 짐짓 윗자리로 보이지만, 그들도 조그마한 들풀이며 들꽃이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들풀이며 들꽃인 줄 잊어버린 나머지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로 기울고 말았을 뿐이다. 너하고 나도 스스로 들빛인 줄 잊으면 꼭두각시나 노리개가 되고 만다. 한 송이 꽃만 곱지 않다. 모든 송이 모든 꽃이 다 다르게 곱다.


“그럼, 일단 집으로 들어갈까? 쌓인 얘기도 많을 테니.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각자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을래? 여기라면 인간은 들어오지 못할 테고, 이 공간 밖에는 비가 오고 있으니까.” 《은의 밀밭 3》 187쪽


  누구나 날개를 되찾기를 빈다. 누구나 날개를 펴기를 빈다. 돈꾼·이름꾼·힘꾼·벼슬꾼이 저들끼리 담벼락을 쌓으면서 히히덕거리던 모든 막짓과 사납짓을 걷어내기를 빈다. 다 다른 모든 들풀이 온들과 온숲과 온메와 온마을과 온집에서 스스럼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푸른길을 바란다. 다 다른 모든 살림터마다 싸움붙이(전쟁무기)를 모두 걷어내고서 오롯이 살림살이에 온힘과 온마음과 온땀을 들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곁에 둘 ‘온책’이라면, “정의로운 주장”이 아닌 “함께 살림짓는 사랑으로 가꾸는 보금자리 이야기”를 담아야지 싶다. “아이어른이 함께 슬기롭고 눈빛을 밝히면서 돌보고 일구는 즐거운 우리집 이야기”를 글로 쓰고 책으로 읽으면서 푸른별이 푸르게 반짝이는 오늘 하루를 열어야지 싶다.


《평화는 처음이라》(이용석, 빨간소금, 2021.4.2.)

《쓰레기 용사 4》(로켓상회 글·나카시마723 그림/ 옮김, 대원씨아이. 2026.1.26.)

#勇者のクズ #ロケット商會 #ナカシマ723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게리 폴 나브한·스티븐 트림블/김선영 옮김, 그물코, 2003.3.31.첫/2003.12.30.2벌)

#TheGeographyofChildhood #GaryPaulNabhan #StephenTrimble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1.16.첫/2015.2.12.5벌)

《은의 밀밭 3》(이나 츠자와/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25.5.25.)

#銀の麥畑 #津澤イナ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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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3 순이가 앞서는 우리말

책벌레수다 : 가시버시·암수·어버이



  우리가 대단히 잘못 아는 여러 가지 가운데 ‘웃사내틀(가부장권력)’이 있다. 이 땅에 웃사내틀이 선 지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우리로서는 즈믄해(1000년)나 두즈믄해(2000년)만 해도 너무 길다고 여기는 터라, 게다가 조선 닷온해(500년)가 무시무시했고, 일본사슬을 거치고서 오늘날에 이르도록 아직 웃사내틀이 버젓하기에 “여태 가시내를 사람으로 친 적이 없는 듯해!” 하고 여기고 만다. 그러나 이 땅뿐 아니라 푸른별 모든 곳은 처음에 ‘엄마누리(모계사회)’였고, 엄마누리는 아득히 기나긴 해에 걸쳐서 이었다. 멍청한 웃사내틀로 흐른 나날은 발톱에 낀 때만큼도 안 되지만, “발톱에 낀 때만큼도 안 되는 나날”에 걸쳐서 멍청한 웃사내가 온누리를 휘어잡으면서 그야말로 멍청한 굴레를 돌담벼락으로 세웠다.


“아톰, 안녕. 나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살리고 싶구나!” 《우주소년 아톰 18》 234쪽


  모든 말은 마음을 담고, 모든 마음은 삶을 담는다. 그냥 태어난 말이란 없다. 수수하게 오래도록 쓴 낱말을 짚으면, 이 삶이 어떻게 태어나서 흘렀는지 엿볼 만하다. 오늘날 숱한 사람은 웃사내틀에 찌든 ‘부부(夫婦)’라는 낡은 중국말을 그냥 쓴다. ‘夫 + 婦’라는 얼개로 엿보듯, 중국은 일찌감치 한문이라는 고리타분한 굴레로 웃사내틀을 세우면서 임금을 섬겼고, 이런 뿌리가 중국한자말에 익히 남는다. 이와 달리 한겨레는 ‘가시버시’라 했다. ‘가시(갓) + 버시(벗)’란 얼개요, ‘가시 = 가시내’이고, ‘버시 = 머스마·사내’를 가리킨다. 우리는 해마다 ‘어버이날’을 기리는데 ‘어버이 = 어머니 + 아버지’인 얼개이다. 이와 달리 중국스런 한자말 ‘부모(父母)’를 보라. ‘父 + 母’인 얼개이다. 국립국어원은 2026년에도 고지식하게 ‘아들딸’만 올림말로 삼고서 ‘딸아들’은 올림말로 안 삼는다만, 워낙 ‘딸아들’이 말소리를 내기에 수월하고, 우리말 얼개에 맞다. 모든 아이는 ‘엄마아빠’라 말한다. 아주 드물게 ‘아빠엄마’라 말한다. ‘암수’라 일컬을 뿐, ‘수암’이라 안 한다. 이미 모든 우리말은 깊고 긴 엄마누리(모계사회)를 드러낸다. 그냥 수수하고 쉽게 우리말을 쓸 적에 차분히 찬찬히 참하게 웃사내틀을 떨치면서 어깨동무로 거듭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나라에서 여성이 인간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과장일까요?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136쪽


  ‘어버이’라는 수수한 낱말이 “어머니 + 아버지”인 줄 제대로 가르치는 어른을 여태 본 적이 없다. 낱말결과 말뿌리를 옳게 읽어내어 어질게 들려주고 이야기할 때부터 사람답게 어울리는 길을 찾지 않을까?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살피면 “어버이 :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아주 뜬금없다. 우리는 ‘어미(어매)·아비(아배)’하고 ‘어머니·아버지’라는 낱말을 쓴다. 낱말풀이를 할 적에 “어버이 : 아이를 돌보는 어른.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바로잡을 노릇이다. 게다가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가시버시 :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처럼 다루니, 이런 낱말책을 문득 뒤적이는 사람은 저절로 우리말을 낮잡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시내’가 앞서는 낱말을 낮춤말처럼 잘못 여긴다.


“하지만 인간도 불량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 아예 나랑 같이 제대로 불량해지지 않을래?” 《고물 로봇 퐁코 9》 115쪽


  국립국어원이 참 얄궂고 엉터리라고 나무라기는 쉽다. 그러나 벼슬꾼(공무원)을 나무라기보다는 새길을 스스로 찾아나설 노릇이다. 벼슬꾼이 낱말풀이를 엉성하고 어리석게 한다면, 우리 스스로 낱말풀이를 제대로 새롭게 하면 된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나라면 ‘가시버시’라는 아름다운 낱말을 “짝을 이룬 가시내와 사내를 아우르는 이름. 어른으로서 함께 지내고 살림을 짓는 길을 펴려고 보금자리를 이루려는 두 사람을 아우르는 이름. 두 어버이 사랑을 받고서 태어난 다른 두 사람이, 이제부터 새롭게 다른 두 사랑을 하나로 빛내어 아기를 낳거나 품으면서 돌보는 길을 이루려고 함께 지낼 적에 가리키는 이름”처럼 차근차근 풀이를 하겠다. 그냥그냥 짝을 맺는다고 적기보다는, 어떤 마음과 눈빛과 숨결로 함께 보금자리를 이루려 하는지 낱말풀이에 담을 노릇이라고 본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와 푸름이가 읽고서 새길 뜻풀이를 이제부터 차곡차곡 일굴 일이라고 본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삼십 분 뒤 오토바이와 함께 음식이 도착하는 시대에 《던전밥》을 읽는다. 식량자급률이 낮고 농업인을 귀히 여기지 않는 국가에 살며 거식과 폭식 사이를 자주 오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어떤 감각을 돌려준다. 《갈등하는 눈동자》 48쪽


  우리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란다. 철들며 무르익는 나날을 보내는 푸름이로 크고서 스무 살을 넘기면 얼핏 ‘어른’으로 여긴다. 일찍 철든다면 열다섯 살이나 열 살에도 어른스럽게 마련이다. 새나라이든 새터이든 새마을이든 새집이든, 어른인 우리 손으로 새록새록 가꾸면 된다. 우리 마음을 나누는 말 한 마디도 우리가 손수 돌보고 보듬고 다듬으면서 북돋우면 된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글쓸 수 있고, 누구나 책읽기와 책쓰기를 할 수 있다. 오늘부터 우리가 하나씩 새롭게 짓고 빚고 여미면 된다. 앞서서 태어난 어른이 비록 슬기롭게 일하지 못 했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슬기롭게 일하면 된다. 지난날 어른이 남긴 굴레와 늪과 벼랑이 까마득하다면, 바로 오늘 이곳에서 하나하나 손보고 추스르면 된다.


‘어떡하지? 나, 이걸로 끝내고 싶지 않아.’ 《아사코의 희곡 2》 154쪽


  ‘가시버시·암수·어버이’뿐이 아니다. 말밑을 제대로 짚으면, 우리말은 워낙 가시내를 앞세우면서 사내가 나란히 걸어가며 배우고 익히고 나누는 얼거리이다. 앞장서서 아침을 여는 암빛이다. 수더분히 따라가면서 머슴마냥 머드러기로 일할 줄 아는 수빛이다. 더구나 ‘암수’이면서 ‘아버지·어머니’처럼 사내가 ‘아’를 품고 가시내가 ‘어’를 품기도 한다. 아직 아이스럽고 알에서 덜 깬 아버지로 볼 만한데, 어머니가 어질게 이끌면서 어여삐 보아줄 만하다. 땀흘려 논밭을 짓는 일꾼을 나타내는 이름인 ‘머슴(머스마)’이기에, 멋스럽고 맛깔스러우며 멧자락을 이루는 머드러기요 머리이며 마루를 이룬다. 가장 높고 빛나고 밝은 갓(산정山頂)이기에 머리에 씌우는 옷이기도 하고, 빛나는 풀꽃나무에 맺는 가시처럼 야물게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가시내는, 갖추고 간직하기에 ‘감다(검다)’를 품는다. ‘가시버시’에서 ‘가시’는 ‘감·검·곰·굼’으로 닿고, ‘버시’는 ‘벗·범·벼락·별’로 닿는다. 낱말로는 가시내가 앞서더라도 함께 나아가려고 나란히 서는 두 빛이요 씨앗이다. 오래말에 서린 숨결을 읽고 이야기하고 이으며 서로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다.


ㅍㄹㄴ


《우주소년 아톰 18》(테즈카 오사무/박정오 옮김, 학산문화사, 2002.3.25.)

#鐵腕アトム #手塚治蟲 #てづかおさむ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황효진·윤이나, 세미콜론, 2021.10.28.)

《고물 로봇 퐁코 9》(야테라 케이타/조원로 옮김, 소미미디어, 2025.10.22.)

#ぽんこつポン子 #矢寺圭太

《갈등하는 눈동자》(이슬아·이훤, 먼곳프레스, 2026.1.5.)

《아사코의 희곡 2》(와다 후미에/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9.30.)

#朝子のムジカ!! #和田フミ江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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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2 아무것도 아닌

책벌레수다 : 아이한테서 배우는 길



  혼자 책벌레로 노닐던 사람은 2008해에 큰아이를 낳는다. 아기가 태어나는 보금자리로 바꾸려고 여태껏 살던 얼개를 모두 버린다. 새로 이곳에 오는 아기는 새길을 바라보고 맞이하며 놀고 노래할 노릇이다. 책으로만 그득그득 채울 뿐 아니라 손에도 따로 질끈 동여맨 책더미를 쥐던 사람은 이제 ‘아기살림’을 짊어지고 손에 안는다. 이러면서 아기를 안는다. 아기수레를 쓸 마음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그동안 두바퀴로 온나라를 달리면서 느낀 바가 있다. 이 나라는 두바퀴를 굴리다가 으레 자빠지거나 구멍에 빠지거나 미끄러지거나 턱에 걸리는 길바닥이다. 아기수레를 끌다가는 아기가 너무 힘들 테지. 길바닥이 고르지 않으니, 아기수레에 앉는 아기는 둘레를 덜덜 떨면서 봐야 하고, 눈을 버리기 쉽다.


‘와, 반 아이들이 전멸. 어쩌다가? 앗! 선생님까지 잠들었어.’ 《옆자리 세키군 1》 153쪽


  1998해부터 혼자서 그림책을 눈여겨보았고, 1999해에 들어간 펴냄터 ‘보리’에서 나라안팎 그림책을 실컷 보았으며, ‘보리·도토리’ 펴냄터 책칸에 없는 나라안팎 그림책을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챙겨 주는 나날을 보냈다. 2001∼2003해에는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모음빛(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하면서 더더욱 신나게 혼배움으로 온갖 그림책을 읽고 살피고 느낌글을 썼다. 2003∼2007해에는 이오덕 님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더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돌아보는 나날을 살았다. 아직 아기를 안 낳은 젊은사내 가운데 혼자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사읽고 챙기면서 익힌 이는 드물다. 이 나라에 ‘동화읽는 엄마’ 모임은 있되 ‘동화읽는 아빠’ 모임은 없을 뿐 아니라, ‘그림책 읽는 젊은이’ 모임마저 아직 없다고 느낀다. 이리하여 2008해에 큰아이가 태어났을 적에 “아이한테 그림책 읽히기”는 그냥그냥 늘 하던 일이라서 수월했고, 외려 아이한테서 그림책과 책읽기를 새롭게 배우는 하루였다.


‘세키가 하는 일에 괜히 신경 쓰지 말자. 즐거운 점심시간이 다 날아가잖아. 《옆자리 세키군 2》 25쪽


  어릴적에도 신은 혼자 손빨래를 했고, 집일을 거들며 걸레빨기를 언제나 했다. 1995해부터 혼살림을 지으며 늘 손빨래를 했기에, 2008해에 낳은 큰아이를 돌보면서 기저귀빨래가 하나도 안 힘들었다. 기저귀를 비롯해 배냇저고리에 이불에 포대기에 처네를 날마다 끝없이 빨고 말리고 다리고 개는데, 늘 노래를 부르고 아기를 안으면서 흥얼흥얼 했다. 앉으나 서나 누우나 걸으나 아기랑 함께 보내는 나날이란,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밝히면서 엄마아빠 두 사람을 새롭게 가르치고 일깨워서 ‘사람’으로 가꾸는 길이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제 몸으로 아기를 낳든, 이웃에서 태어난 아기를 보살피고 헤아리든, 우리가 사람으로 살림하며 살아가려면 온누리 모든 아기와 아이를 푸근하게 품을 줄 아는 품새로 거듭날 일이다. 집과 마을과 나라는 언제나 아기와 아이한테 맞출 노릇이라고 새삼스레 배웠다. 우리가 나누는 말과 글도 언제나 어린이 눈높이로 헤아려서 가다듬을 일이라고 다시금 익혔다.


처음 학원을 등록하고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일주일에 두 번씩 홍대에 가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것도 피곤한 홍대에 그렇게나 자주 갈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벌써 지쳤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163쪽


  글을 굳이 쉽게 써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 분이 꽤 있는 줄 안다. 그분들은 아기를 안 낳거나 이웃 아기를 보살핀 바가 없다고 느낀다. 몸소 낳든 온누리 아이를 살피든, 한집에서 어린이와 함께 지낼 적에 ‘아무 말글’이나 쓰면 안 되는 줄 배운 바가 없기에 ‘쉬운말(쉽게쓰기)’이라는 길을 못 배우고 못 보고 놓치는구나 싶다. 이를테면 나라일터(청와대·국회의사당·도청·시청·군청)가 어린배움터나 어린이집 귀퉁이에 있다면, 늘 어린이를 마주할 테니 얼뜬짓이나 멍청짓이나 더럼짓이나 뒷짓을 아예 못 한다. 모든 나라일터가 어린배움터나 어린이집하고 너무 먼 곳에 있다 보니, 숱한 벼슬아치는 그만 얄궂게 뒷짓을 하고야 만다. 왜 서울과 부산 같은 큰고장마저 어린배움터가 닫고야 말까? 이름은 ‘어른’이되 정작 어른이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 줄 안 보고 안 배우는 탓이다. 어린배움터와 어린이집을 늘 곁에서 지켜볼 뿐 아니라, 보금자리에서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 살아낼 적에는, 어떤 곳도 아기가 안 태어나서 ‘사라질(인구소멸)’ 까닭이 없다. 마을 한복판에 어린배움터와 어린이집과 놀이터와 빈터가 있어야 한다. 나라 한복판에 어린이가 실컷 뛰놀 쉼터와 들숲메가 있어야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오롯이 나무길과 들길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껏 맨발로 마을과 마을 사이를 넘나들면서 만나고 놀고 노래하는 터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온나라 젊은이는 즐겁고 느긋하고 아늑하게 아기를 낳아서 새록새록 돌보는 길을 열 수 있다.


나의 갱년기 서사를 기록하는 동안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가 쓰는 언어가 합당한가? 나도 모르는 부정적인 함의가 들어 있는 말을 쓰고 있진 않은가? 《웰컴 투 갱년기》 175쪽


  어른은 무턱대고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는 마냥 배우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이름일 적에는 아이한테서 어질게 배워서 슬기롭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아이라는 이름일 적에는 어른을 가르치고 일깨우면서 스스로 익히고 가다듬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른·아이’라는 두 낱말이 어떤 속뜻과 밑뜻과 참뜻인지 하나도 모른다. 아니, 지난날에 손수짓기를 하던 시골살림이던 때에는 누구나 익히 알았으나, 오늘날에 서울살이를 하느라 몽땅 잊고 까맣게 놓친다. 아이는 어른을 지켜보고 가르치면서 스스로 철든다. 어른은 아이 곁에서 보금자리를 돌보고 살림을 지으면서 차분히 철든다. 어른아이는 다르게 무르익는데, 어른한테는 늘 아이빛이 흐르고, 아이한테는 노상 어른빛이 스며든다. 누구나 아이요 어른일 뿐 아니라, 어른이며 아이인 줄 알아챈다면, 나이로 근심걱정을 안 한다. ‘나이’라는 낱말이 워낙 ‘낳이’였다가 요샛말(표준어)로는 ‘나이’로 다듬어서 쓰는 줄 잊어버리니, 새롭게 살림을 낳을 줄 아는 슬기를 익히는 해(한 해)를 머금어 한 살씩 얻기에 ‘낳이(나이)’인 줄 모르고 만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SF의 서사 기법과 스펙터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이미 천 번도 더 본 신파적 이야기를 포장하는 데 이용한다. 《필수는 곤란해》 59쪽


  책벌레는 책을 읽는다. 책과 책 사이를 잇듯 책을 읽는다. 책벌레는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한다. 책벌레는 책을 못 가린다. 아니, 안 가린다. 이 책은 이 책대로 읽으면서 배우고, 저 책은 저 책대로 읽으면서 배운다. 온누리 모든 어린이를 사랑으로 마주하고픈 어른으로 살아갈 마음인 책벌레이니, 모든 숨결을 푸르게 맞이하듯 모든 책을 새롭게 품는다.


ㅍㄴㄹ


《옆자리 세키군 1》(모리시게 타쿠마/정은서 옮김, AK COMICS, 2011.9.25.)

《옆자리 세키군 2》(모리시게 타쿠마/정은서 옮김, AK COMICS, 2012.3.25.)

#となりの?くん #森繁拓?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하현, 빌리버튼, 2019.2.25.)

《웰컴 투 갱년기》(이화정, 오도카니, 2025.2.10.)

《필수는 곤란해》(피어스 콘란/김민영 옮김, 마음산책, 2023.12.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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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1 책벌레란

책벌레수다 : 입시지옥이 베푼 읽눈



  나는 낱말책을 쓴다. 여태 쓴 여러 책에 드문드문 밝히기는 했는데, 낱말책을 쓰자고 처음 마음먹은 때는 1992해이다. 우리 낱말책(국어사전)을 첫벌로 다 읽으면서 “뭐 이렇게 엉터리인 책이 국어사전이지?” 하고 느꼈고, 두벌로 다시 읽으면서 “이 따위가 국어사전이라면 차라리 내가 쓰겠어!” 하면서 책상을 두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때 나는 ‘민중서림 이희승판 엣셋스 국어사전’을 읽었는데, 일본말과 일본영어와 일본상표를 이렇게 잔뜩 실어 놓고서 ‘올림말을 확 늘렸다’고 뻔뻔하게 자랑하는 얼거리가 어처구니없었다. 이런 엉터리이니 “마치 우리말이 적고 한자말이 많은 줄 잘못 여기”는 사람마저 많다. 이러다가 1999해였나, 국립국어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은 중국 땅이름을 엄청나게 올림말로 삼았고, 중국뿐 아니라 푸른별 웬만한 나라 땅이름에 사람이름까지 마구잡이로 올림말로 삼았으며, 이제 어느 누구도 안 쓰는 뜬금없는 옛 한문에 나오는 ‘죽은 한자말’도 마구마구 올림말로 삼더라. 왜 우리말을 안 싣고서 딴나라 딴이름을 국어사전에 실어야 할까? 조선 무렵 나리나 벼슬아치 이름을 왜 국어사전에 실어야 하지?


“그러고 보니, 나 유카타를 입은 것도, 다함께 불꽃놀이 보러 간 것도, 다 처음이었어. 고마워.” 《태양의 집 5》 20∼21쪽


  아무튼 1988해에 어린배움터를 마치고서 푸른배움터로 들어가는데, 1990해에 난데없이 배움늪(입시지옥)이 확 바뀐다. 나라에서는 그저 깜짝잔치로 바꾸었고, 1993해부터 ‘학력고사’를 안 하고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으로 바꾸면서, 첫 해에는 9달과 11달에 두 벌 치러서 나은 값으로 배움늪을 치르라는 틀을 내놓았다. 더구나 1993해 여름까지 모든 큰배움터에서 ‘본고사’를 치른다고 하다가 막바지에 이르러 ‘본고사’를 안 치르기로 한 곳이 잔뜩 나왔는데, 내가 들어가려는 큰배움터는 다 본고사를 치르기로 했고, ‘면접’까지 치렀다.


“언니를 울트라 캡숑 사랑한다고 쓰여 있어.” “사랑한다고만 쓰여 있잖아.” “마음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거야.” “뭐라는 거야.” “히로 오빠도 나를 본받도록 해. 그럼 히나랑도 친해질 수 있을걸.” 《태양의 집 7》 112쪽


  어찌저찌하다 보니, 1991∼1993해 세 해 동안 국어사전·영어사전·영영사전·독일어사전·옥편 다섯 가지 낱말책을 날마다 바리바리 들고 다녔다. 내가 나고자란 인천에 있는 배움터는 짐칸(사물함)이란 없었고, 이른바 ‘고등학교’에 시늉처럼 있던 짐칸에 뭘 두면 으레 도둑맞았다. 내가 쓰는 배움책(교과서·참고서)을 훔치는 또래가 잦았다. ‘내신 15등급’으로 촘촘히 가르던 그때에 나는 ‘1등급’까지 들지 못 했으나 ‘1.5등급’ 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동 말 동했다. 내가 쓰는 배움책은 글적이(필기)가 좋다며 빌리는 또래가 많았는데, 짐칸에 둘라치면 어김없이 이튿날 사라지더라. 그래서 세 해 내내 다섯 가지 낱말책에 모든 배움책을 큰짐으로 그냥 들고 다녔다. 이때 내 책가방은 무게를 달면 30kg이 넘었다. 낱말책과 배움책뿐 아니라 ‘그냥책’도 날마다 대여섯 가지를 챙겨서 다녔다. 쉬는틈이나 낮밥틈하고 혼배움(자율학습)이면 으레 ‘그냥책’을 펼쳐서 읽었다. 집과 배움터 사이를 오가는 2시간 즈음에도 으레 그냥책이나 성문영어나 수학정석을 읽으면서 살았다.


‘모두 다 보물이야.’ 《태양의 집 11》 101쪽


  아무래도 책벌레 밑싹은 푸른배움터 여섯 해에 차근차근 다졌지 싶다. 첫 세 해(중학생)에는 06:00∼22:00를 배움터에 붙들리면서 ‘읽눈’과 ‘짐꾼살이’를 다졌고, 나중 세 해(고등학생)에는 05:30∼23:00를 배움터에 붙들리면서 ‘온갖읽기’와 ‘낱말찾기’에 ‘짐꾼살이’를 뿌리내리는데, 1992∼1993해 이태에는 이레마다 이틀씩 저녁에 자율학습·보충수업을 빼먹으면서 인천 배다리책거리에 있는 헌책집으로 책집마실을 다녔다. 17:00에 긴긴 하루(정규수업)가 끝나는데, 이레마다 이틀씩 몰래 담을 넘었고, 인천 용현동에 있는 배움터부터 달음박질을 했다. 용현동부터 금창동까지 시내버스가 다니기는 했으되 버스틈이 길고, 길삯이 아쉽더라. 마을버스하고 시내버스를 타자면 200원 즈음 드는데, 200원이면 낡은 손바닥책 한 자락을 살 돈이다. 배움터에서 내내 앉아야 하니 엉덩이가 짓무를 듯해서 달리고 싶기도 했다. 건널목에서 기다릴 때를 빼고는 아예 안 쉬면서 25∼30분을 달리면 책거리에 닿았다. 땀을 오지게 쏟더라도 책집에 깃들어 책을 쥐면서 책바다에 뛰어들면 이내 식게 마련이다.


이십몇 년 어치의 신경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 본 적이, 나의 무겁고 둥근 몸, 그런 몸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면 모두 꼴사납다 여겼으므로 … “야 이 ×야, 할머니가 사 준 바람막이란 말이야! 아, 진짜 나도 좀 살자!”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 64쪽


  그때 왜 읽었을까. 그때는 모든 곳에서 늘 주먹질과 매질이 춤사위였고, 배움터 골마루에는 으레 보름마다 치르는 갖가지 셈겨룸(중간·기말·월말고사 + 모의고사)을 값으로 매겨서 담벼락에 줄줄이 붙이는데, 으레 30∼50자리까지만 이름을 올렸지 싶다. ‘첫 수능세대’는 쥐(모르모트)였기에 그무렵 모든 입시학원에서 거저로 모의고사를 베풀었다. 그야말로 내도록 셈겨룸이 안 끊이는 죽음수렁이었다. 셈겨룸이 안 끊인다고 할 적에는 배움터 길잡이가 값(성적)에 따라서 몽둥이질을 끝없이 베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나 고르게 맞았다. 지난 셈겨룸에서 100이었어도 다음 셈겨룸에서 95라면 5만큼 맞는다. 참으로 고르게 가르치는 배움터에서 ‘고르다’가 무엇인지 스스로 길을 찾고 싶어서 배다리책거리로 달려가서 “학교에서 안 읽히고 안 가르치고 안 말하는 책”을 차곡차곡 챙기면서 읽고 또 읽었다.


왜 쓰는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쓰는 겁니다.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정상태, 유유, 2018) 23쪽


  흔들리는 버스에서 멀쩡히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는 버릇은 1991해부터 들였다. 1991해 7달까지는 걸어서 40분쯤이면 닿는 곳에서 살았고, 그 뒤로는 시내버스로 40분 남짓 달려야 닿는 곳에서 살았다. 인천 연수동에서 이제 막 잿더미(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마구마구 올려세우느라 하염없이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새벽 첫버스와 밤 끝버스를 가까스로 타면서 다녔다. 어두침침한 시내버스에서 멀미를 안 하려고 책을 읽고 낱말책을 외우고 수학정석을 풀고 성문영어 푸른책을 한 쪽씩 뜯으면서 읊었다. 1991∼1993해에 비탈길에서 흔들거리다가 굴러떨어질 듯한 시내버스를 30kg짜리 책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한 손으로는 책을 읽으며 타던 얼척없는 앳된 책벌레 한 마리가 태어난 셈이다.


ㅍㄹㄴ


《태양의 집 5》(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4.6.15.)

《태양의 집 7》(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4.8.15.)

《태양의 집 11》(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5.9.15.)

#たいようのいえ #Taamo #タアモ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정세랑, 창비, 2019.6.21.)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정상태, 유유, 2018.4.2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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