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지 친구이야기
이와타 겐자부로 지음, 이언숙 옮김 / 호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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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었나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군더더기 같은 잔소리를 덜어내고서

새로 써 보았다.


숲노래 책읽기/숲노래 아름책

동무하며 걷는 길


《백 가지 친구 이야기》

 이와타 켄자부로 글·그림

 이언숙 옮김

 호미

 2002.5.25.



  《백 가지 친구 이야기》(이와타 켄자부로/이언숙 옮김, 호미, 2002)가 갓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쓰고 엮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을 꾸리는 분(출판사 사장님)은 멋스러운 책이 나왔다면서 잔뜩 장만하셨고 둘레에 하나씩 건네셨어요. “그래, 너도 좀 봐라. 순 글씨가 가득한 책만 읽지 말고, 이런 그림도 읽고 시도 읽으면서 마음 좀 다스려 봐.” 하고 한마디 보태셨어요. “사장님, 저, 시집도 많이 읽는걸요?” “에그, 그런 시 말고, 이렇게 여백을 남기면서 노래하는 글을 읽으라고!” “그럼 시에 빈자리(여백)가 있지, 빈자리가 없는 시가 어디 있어요?” “됐다. 그냥 읽어라.”


  그때 그 어른은 왜 제가 《백 가지 친구 이야기》 같은 책을 안 좋아하거나 못 알아보리라 여겼을까요? 우리말꽃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글이 빼곡하고 두툼합니다. 이런 책을 지어야 하는 일을 한대서 글책만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2002년 무렵에 저한테 아이가 없었어도 그림책이며 동화책을 늘 곁에 두고 살았어요. 나라를 꾸짖는 노래(시)도 읽고, 숲을 사랑하는 노래(시)도 같이 읽었어요. 나라를 꾸짖는 노래하고 숲을 사랑하는 노래는 동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요. 둘은 한마음입니다.


  저를 낳아 돌본 어버이는 제가 열일곱 살이던 해까지 ‘13평짜리 잿빛집(아파트)’에서 살림을 꾸렸는데, 이듬해부터 ‘48평짜리 잿빛집’으로 덜컥 옮겼습니다. 빚을 지면서 옮기셨는데, 열석 평은 코딱지만 한 집이라서 더는 못 살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코딱지만 한 열석 평짜리가 아닌 ‘나고 자란 마을에서 늘 어울리는 동무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저한테 집은 ‘크기’가 아닌 ‘동무’하고 어울리는 삶자리예요.


  우리 아버지가 넓은 잿빛집으로 옮긴다고 할 적에 차마 아버지한테는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어머니한테 “어머니, 이 집을 팔고 나가야 하니 어쩔 길 없더라도, 한 칸짜리 조그마한 데를 얻어서 저는 이 마을에 그대로 살면 안 될까요? 제 동무는 모두 여기에 있는데 동무가 하나도 없는 그 커다란 곳으로는 가기 싫어요.” 하고 귓속말을 했어요. 어머니는 “너만 그러니? 어머니도 어머니 동무가 다 이 마을에 있잖아. 나도 가기 싫어.” 하시더군요.


  잿빛집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한테 마을이며 골목을 빼앗은 자동차일까요. 자동차한테 동무가 있다면 크고작은 벌레와 길짐승을 비롯해 사람조차 마음놓고 건너다닐 수 없는 까만 찻길일까요. 까만 찻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나날이 바닥나는 까만 기름일까요. 까만 기름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하루 한때도 잊을 수 없어서 꼭 껴안으려는 돈일까요. 돈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날마다 손쉽게 쓰고 버리는 갖가지 살림인, 뚝딱터(공장)에서 뽑아낸 것일까요.


  뚝딱터에서 뽑아낸 것한테 동무가 있다면 이 땅 아이들을 괴롭히는 살갗앓이(아토피·피부병)를 비롯한 갖가지 몸앓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며 항생제일까요. 항생제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 입을 길들이는 고기떡(소시지)이랑 튀김닭일까요. 고기떡이랑 튀김닭한테 동무가 있다면 부릉부릉 씨잉씨잉 골목길과 찻길을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씽씽이(오토바이)일까요. 씽씽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경찰일까요. 경찰한테 동무가 있다면 길가에 나뒹구는 담배꽁초일까요. 담배꽁초한테 동무가 있다면 그 옆에 비슷한 크기로 뱉은 엄청난 침덩이일까요. 침덩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로 눌린 다 씹은 껌일까요. 다 씹은 껌한테 동무가 있다면 껌을 싼 비닐 껍질일까요. 비닐 껍질한테 동무가 있다면 비닐 껍질이 처박히는 쓰레기통일까요. 쓰레기통한테 동무가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주전부리 껍데기를 휙휙 집어던지는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젊은이들 손일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주전부리 껍데기를 휙휙 집어던지는 어린이·푸름이·젊은이들 손한테 동무가 있다면 큰일터(재벌회사) 글종이(면접 서류)일까요.


  큰일터 글종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열린배움터(대학교) 마침종이(졸업장)일까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열린배움터 마침종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만 몰아넣는 푸른배움터(고등학교) 길잡이(교사) 회초리일까요. 푸름배움터 길잡이 회초리한테 동무가 있다면 날마다 얻어맞고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 허벅지일까요. 뻘겋게 물드는 아이들 허벅지한테 동무가 있다면 배움터가 싫어 당구장으로 달려가며 붙잡은 길다린 작대기일까요. 길다란 작대기한테 동무가 있다면 짜장국수 한 그릇일까요. 짜장국수 한 그릇한테 동무가 있다면 한 벌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일까요. 나무젓가락한테 동무가 있다면 빈 종이꾸러미와 넝마를 주으러 다니는 할배 할매 손길을 타는 낡은 수레일까요. 낡은 수레한테 동무가 있다면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짐더미를 안고 굴리는 할배 할매가 살짝살짝 쉬면서 걸터앉는 거님길 돌일까요.


  서울은 처음부터 서울이지 않습니다. 서울도 똑같이 숲이자 마을이요 들이고 냇물이었습니다. 어느새 서울은 지하철에 잿빛집에 찻길에 끝없이 잇닿는 가겟길입니다. 바야흐로 서울은 흘러넘치는 열린배움터에 큰일터에 자가용에 매캐한 바람입니다.


  제비는 서울하고 시골을 안 가렸으나, 더는 서울에 깃들기 어렵습니다. 돌멩이도 서울이며 시골이며 두루 있었으나, 더는 서울 한켠 골목에서 구르기 어렵습니다. 서울 아이는 뭘 하며 노나요. 시골 아이는 뭘 하며 소꿉을 할까요.


  골목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골목집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골목사람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누구일까요. 논과 밭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이고, 멧골과 들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냇물이랑 바다는, 바람이랑 구름은, 비랑 눈은, 들꽃이랑 나무꽃은, 나비랑 벌은, 누구를 동무로 삼아서 오늘 이곳을 살아가려나요.


  다람쥐와 너구리한테는 누가 동무가 되나요. 오소리와 여우한테는 누가 동무로 마주하는가요. 곰과 범한테는 누가 동무로 곁에 머무나요. 박새와 동무였던 동박새는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박쥐와 동무이던 올빼미는 어디에 깃들일까요. 매와 동무하던 무지개는 오늘 어디에서 숨을 죽이나요. 쉬리는 동무와 오붓하고 지낼까요. 각시붕어는 동무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할까요. 메기는 동무와 느긋하게 한삶을 마칠 수 있을까요. 땅강아지 동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사마귀 동무는 어디에 숨었을까요. 풀무치 동무는 어디에서 마지막 숨을 쉴까요.


  동무를 하나둘 손꼽아 봅니다. 잃어버린 동무하고 잊어버린 동무를 헤아려 봅니다. 우리 곁에는 누가 동무인가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곁에 두나요?


  마당에 조용히 서서 두 팔을 벌립니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눈을 감습니다. 이윽고 눈을 뜨고는 후박나무한테 다가가서 줄기를 쓰다듬습니다. 후박나무 우듬지에 앉은 멧새가 시원시원 노래합니다.


  우리는 누구한테 동무일까요. 어떤 사람한테 동무일까요. 우리를 두고 선뜻 동무라고 할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기쁠 때만이 아니라 힘들 적에도 기꺼이 부르면서 웃고 울 동무는 누구일까요. 우리한테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적에 스스럼없이 불러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웃고 울 동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인가요.


  그림이야기책 《백 가지 친구 이야기》를 덮습니다. 책이름에 온(100) 가지 동무라고 나옵니다만, 가만 보니 온한(101)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왜 온한 가지일까 하고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온(100) 가지 동무에다가 ‘나(1)’를 넣어서 온하나(101)가 되더군요.


ㅅㄴㄹ


1

한가로이 길을 걷다 보면 길에서 친구를 만난다.


3

돌멩이의 친구는 작은 시냇물.

작은 시냇물의 친구는 개구리.


15

조개의 친구는 물론 바닷가 모래밭.


25

비는 어느새 땅속으로 스며들고

도토리는 이불인 양 마른 낙엽으로 제 몸을 감싼다.


33

그런데, 정말 친구가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물위에 떨어져 누운 나뭇잎이 묻습니다.


49

난 친구 따위는 필요없어, 하며 늑대거미가 물가를 달린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친구를 찾고 있을는지도

모르지…….


55

그럼,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등불 하나 켜고 태어나고말고!

반딧불이가 장담한다.


65

여뀌의 친구는 소꿉놀이할 때 쓰는 나뭇잎 접시.


74

제비의 친구는 모내기를 끝낸 논의 벼 포기,

파릇한 잎들, 바람 따라 살랑인다.


84

씽씽 부는 바람의 친구는 진눈깨비 섞인 함박눈,

아, 다시 겨울이 ……


93

전철길의 친구는 이젠 끊어져 아무도 다니지 않는

철길에 피어난 잡초,

아마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들국화이겠지요.


98

떠돌이 일꾼들의 친구는 술,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노래도 이곳저곳 여행하였지.


岩田健三郞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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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조금 바꿉니다 - 일상에 작은 습관을 더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정다운 외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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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1.3.24.

숲책 읽기 168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

 정다운과 다섯 사람

 자그마치북스

 2020.8.18.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정다운과 다섯 사람, 자그마치북스, 2020)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요새는 이렇게 살림길을 책으로 여미는군요. 지난날에는 참으로 누구나 이 책에 나온 살림길보다 훨씬 수수하면서 넉넉하고 푸르게 지냈습니다. 수수살림이며 넉넉살림이며 푸른살림을 따로 누가 가르치지 않더라도 어느 집이나 마을이든 그야말로 수수하고 넉넉하게 푸렀어요.


  종이 한 자락을 허투루 쓰지 않았어요. 아무리 비닐자루라 해도 알뜰히 다루었어요. 새끼줄이든 비닐끈이든 요모조모 돌보면서 제대로 살렸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쓰레기 없는 살림”이었습니다. 아니, “쓰레기라 할 것이 나올 수 없던 삶”이라 해야 걸맞을 테지요.


  2021년으로 접어들어 열네 살에 이른 큰아이는 ‘푸름이 달꽃천(청소년 생리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따로 안 받으며 지냅니다. 나라에서는 한벌살림(일회용품) 달꽃천만 주거든요. 우리 집에서는 소창을 잘라서 씁니다. 두 아이들 똥오줌기저귀도 곁님하고 큰아이 달꽃천도 모두 아버지인 제가 삶고 헹구고 햇볕에 널어서 건사해요. 그러나 지난날에는 누구나 소창으로 기저귀를 썼어요. 쓰레기가 나올 일이 없습니다. 오래 써서 닳은 소창은 방바닥을 훔치는 걸레도 되고, 뭘 묶거나 동이는 끈으로 삼습니다. 수세미 열매로도 수세미를 삼지만, 소창을 알맞게 끊어서 수세미로 삼을 만하고, 행주도 소창으로 쓰면 돼요. 손닦개(수건)을 열 몇 해쯤 쓰면 낡고 닳는데, 이때에 발닦개나 걸레로도 삼고, 수세미나 깔개나 받침으로도 삼습니다. 이렇게 열 몇 해를 더 쓴 다음에는 땅한테 돌려줘요. 땅에서 태어난 풀줄기나 솜꽃한테서 얻은 숨결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면서 포근히 잠듭니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에 온통 천이랑 유리병이랑 스텐그릇을 바리바리 짊어지고서 다녔어요. 둘레에서는 “어디 여행 가셔요?”나 “산에라도 다녀오나요?” 하고 묻는데 “다 아이들 돌보는 살림입니다. 기저귀에 저고리에 포대기에 물병에 도시락에 ……” 하고 대꾸했어요. 가시어머니는 저를 보며 “예전엔 다 그렇게 살았지만 요새 누가 그렇게 사나? 그렇게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면 안쓰럽지. 자동차라도 몰면 좋을 텐데.” 하시고, “자동차를 몰며 살려면 이렇게 안 살지요. 무엇보다 아이들은 천기저귀를, 어버이 손길을, 유리물병을, 나무토막을 좋아하는걸요.” 하고 여쭈었어요.


  이 책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에도 나옵니다만, 많이 바꾸거나 확 갈아치울 까닭은 없어요. 즐겁게(분방) 가면 됩니다. 즐겁게 하나씩 새로 익혀서 천천히 나아가면 돼요. 다만 ‘제로웨이스트’라든지 ‘테이크아웃’이라 하기보다는, 아이하고 나눌 살림을 헤아리면서 말씨도 가다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푸른살림으로 가려는 마음이란, 푸른말을 쓰고 푸른책을 읽고 푸른동무가 되고 푸른집으로 가꾸고 푸른별을 사랑하려는 길일 테니까요.


ㅅㄴㄹ


테이크아웃 컵의 버려진 이후를 따라가 본 ‘쓰레기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건, 테이크아웃 컵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많은 양의 페트병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지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은 ‘비교 불가’였다. (15쪽)


‘저에겐 이 스티로폼 크기에 딱 맞고 훨씬 예쁜 법랑 통이 있다고요!’ 집에 와 그대로 놓고 먹어도 예쁘고, 다 먹은 후 옮길 필요 없이 보관하면 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23쪽)


이 작은 물건과의 교감이 어느새 설거지를 즐겁게 바꿔 놓았다. 설거지 수세미 하나 바꾸는 일이 자연을 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41쪽)


쓰레기 없는 부엌 그리고 삶을 위해 필요한 법을 주르륵 나열해 보았지만 하나만 꼽아 보라고 한다면, 그건 ‘분방한 마음’이다. (71쪽)


육아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소한 첫걸음이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삶의 패턴이 돼 버린 것 같다. (119쪽)


우리나라는 분리수거를 정말 열심히 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 분리배출이 쉽도록 포장이 된 제품은 참 드문 것 같다. 잘 안 떨어지고 잘 분해 안 되는 것을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소비자의 몫.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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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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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숲책 읽기 165


《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글

 요셉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2019.6.20.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요셉 차페크/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2019)이 새옷을 입고 나오며 사랑받습니다. 2002년에 《원예가의 열두 달》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왔으나 그무렵에는 거의 못 읽히고 자취를 감추었어요. 지난날 이 책을 펴낸 분은 밝은눈이었을 텐데, 읽는눈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셈입니다.


  글님이며 그림님은 꽃뜰을 즐겁게 가꾸는 손길을 글길로 고스란히 옮깁니다. 꽃길을 바라보던 눈길이 차곡차곡 그림길로 피어나고 마음길로 퍼집니다.


  아이하고 눈과 마음을 맞추지 않는 모든 말은 ‘주먹질(폭력)’이지 싶습니다. 풀꽃나무하고 눈과 마음을 맞추지 않는 모든 말도 주먹질이지 싶어요. 하늘·바람·냇물·흙·구름·눈비·뭇목숨하고 눈과 마음을 맞추지 않는 모든 말도 주먹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를 ‘인문학적’이나 ‘인문지식’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아이는 싱그러이 꿈꾸고 춤추고 뛰노는 사람인걸요. 씨앗을 묻어 가꾸는 일꾼은 풀꽃나무를 ‘생물학적’이나 ‘생태지식’으로 바라볼 수 없어요. 사람이 억지로 바꾸거나 뒤틀 수 없는 목숨인걸요.


  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아이요 풀꽃나무입니다. 달마다 새록새록 크는 아이요 풀꽃나무예요. 날마다 새삼스레 피어나는 아이요 풀꽃나무입니다. 아이를 보듯 풀꽃나무를 보면 좋겠습니다. 풀꽃나무를 보듯 아이를 보는 숨결이기를 바라요.


  잔가지라 해도 함부로 꺾으면 나무는 아프기 마련입니다. 잔소리라 해도 함부로 쏟아내면 아이가 아픕니다. 작은 들풀이라 해서 마구 밟거나 삽차로 밀어내면 들내숲은 모두 시름시름 앓습니다. 아이를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자그마한 몸짓조차 아이가 시름시름 앓도록 괴롭히는 셈입니다.


  달종이에 적힌 셈값이 아닌 하루입니다. 모든 하루는 다른 날이요 삶입니다. 오늘 이곳을 빛나는 마음으로 맞이하기에 꽃씨를 심고 글씨를 가다듬습니다. 《정원가의 열두 달》을 곁에 둘 적에는 두 손에 꽃씨랑 붓을 나란히 놓으면 좋겠어요. 하루는 풀꽃나무를 돌보고, 하루는 글길을 보살핍니다. 어제는 풀꽃나무를 쓰다듬고, 오늘은 글자락을 어루만집니다.


ㅅㄴㄹ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변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은 정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햇살이 비치면 그건 정원을 밝게 비추는 햇살이다. (30쪽)


이름이 없는 꽃은 곧 잡초요, 라틴어 학명이 있는 꽃은 어떤 식으로든 존엄성을 인정받는다. 만약 당신의 화단에 쐐기풀이 자란다면 우르티카 디오이카라는 팻말을 한번 꽂아 보라.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뀔 것이다. (83쪽)


보통 사무실의 식생은 사장이나 직원의 마음씨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어떤 전통도 작용하는 듯하다. 가령 철도 관련 지역에서는 식물이 매우 번창하는 반면, 우체국이나 전신국은 식물의 불모지다. 또 관공서보단 개인 사무실이 식물학적으로 훨씬 비옥한 편이며, 관공서 중에서도 특히 세무서는 완벽한 사막이다. (129쪽)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비밀스럽게 싹을 틔우는지, 얼마나 많은 힘을 끌어모아 새로운 싹눈을 품는지, 생명을 한껏 꽃피울 순간을 그네들이 얼마나 고대하는지, 우리 내면에 자리한 미래의 비밀스럽고도 분주한 몸짓을 볼 수만 있다면 …… (186쪽)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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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탈핵이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4
최원형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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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1.2.1.

맑은책시렁 239


《선생님, 탈핵이 뭐예요?》

 배성호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11.24.



  《선생님, 탈핵이 뭐예요?》(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를 읽으며 ‘핵발전소’뿐 아니라 ‘탈핵’이란 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어린이도 전기를 많이 씁니다. 손전화에 셈틀에 이모저모 거느리거나 다뤄야 하거든요. 어린이는 전기를 어떻게 얻어서 누려야 즐거울까요? 어린이한테 전기를 어떻게 가르칠 만할까요? 석유·석탄·우라늄 같은 땅밑살림을 캐내어 태워야 얻는 전기일까요? 햇볕이나 바람이나 물결이 베푸는 힘으로 얻는 전기는 어떤 얼개일까요? 햇볕판은 몇 해쯤 쓸 수 있고, 낡거나 닳은 햇볕판은 ‘어떤 쓰레기’가 나오며, 햇볕판에 티끌이 안 붙도록 뿌리는 물은 이 땅에 어떻게 스며들까요? 커다랗게 지어서 엄청나게 뽑아내는 전기여야만 하는지,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지어서 쓰는 길이 있는지, 이러한 실마리는 얼마나 알려졌는지, 무엇보다도 꼭 전기가 있어야 하는 삶인지부터 다룰 노릇이지 싶습니다.


  한자 ‘탈-(脫)’은 벗거나 씻거나 털거나 없애거나 치우거나 끝낼 적에 붙인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탈-’붙이 말도 벗거나 씻거나 털거나 없애거나 치우거나 끝낼 노릇이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핵씻이’나 ‘핵그만’이나 ‘핵멈춤’이나 ‘핵끝’처럼 말씨부터 바꾸어야지 싶어요. 나라에서 ‘핵무기·핵발전소’로 잇닿는 얼거리를 감추려고 일부러 ‘원자력발전소’란 이름을 쓴다고 한다면, 이런 허울을 벗기려는 분도 ‘탈-’ 같은 낡은 말씨를 벗겨서 어린이한테 무릎맞춤으로 다가서야겠지요.


  어떤 분들은 “핵 그만!”이라 외치면 “탈핵!”이라 외칠 적보다 힘이 덜 난다고 합니다. 옆나라 일본에서 숱한 한자말을 일부러 쓰는 뜻하고 맞물리는데, 수수한 일본말은 매우 쉬우며 부드럽지만, 총칼을 내세우는 나라가 되면서 온갖 한자말을 퍼뜨렸어요. 바른길이나 참길이나 사랑길을 열려는 뜻이라면, 총칼나라(군국주의)에서 쓰던 낡은 말씨도 버리면서 바른목소리나 참목소리나 사랑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지 싶어요.


  이 책 《선생님, 탈핵이 뭐예요?》에서도 다루지만, 모든 발전소는 시골에 있거나 서울·큰고장 기스락에 있습니다. 정갈한 시골에 커다란 발전소를 때려지은 다음에 송전탑을 무시무시하게 처박습니다. 크게 때려짓고 송전탑을 박는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손수 지어서 쓰는 길이 있다면 시골을 망가뜨릴 일도, 송전탑으로 숲을 괴롭힐 일도 없고, 누구나 전기를 손쉽고 값싸게 쓸 테지요. “핵 그만!”이란 목소리 곁에는 이제 “서울 한복판에서 스스로 전기를 깨끗하게 짓는 길”을 나란히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핵 발전소에서 연료로 쓰고 난 폐우라늄을 고준위 핵폐기물이라 부르는데 방사능 농도가 상당히 높아요. 안전한 곳에 두어야 하는데 둘 데가 없어요. 그런데도 계속 핵 발전소를 짓자고 해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핵 발전소가 안전하게 느껴져서 그러는 걸까요? (32쪽)


어른들은 종종 기준치 이하니까 안전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아무런 의학적 근거가 없어요. 의학적으로 안전한 방사능의 피폭 기준치는 0입니다. (44쪽)


잘못은 핵 발전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와 후쿠시마 핵 발전소 운영사인 도쿄 전력에 있는데도 사고를 책임지고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66쪽)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인구수도 적고 전기도 도시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게 써요. 그런데 왜 이런 고통을 시골사람들이 고스란히 받을까요? (84쪽)


회의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어요.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할 때부터 ‘핵 없는 세상’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이 회의와 내용을 잘 살펴보면 모순된 부분이 있어요. 핵 안보는 핵을 안전하게 지키자는 뜻이거든요.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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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플로라 - 꽃 사이를 거닐다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정수윤 옮김 / 늦여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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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1.2.1.

숲책 읽기 167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

 시부사와 다쓰히코

 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7.15.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시부사와 다쓰히코/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는 몇 가지 얼개로 꽃 사이를 거닌 자취를 들려줍니다. 옛그림하고 옛이야기에 글님 나름대로 마주한 꽃내음을 엮습니다. 한 해 가운데 길어야 이레쯤 마주할 만한 꽃이기에, 예부터 이 꽃을 그림으로도 담고 노래로도 불렀어요. 요새는 빛그림으로도 담습니다. 숱한 사람이 꽃을 곁에 두며 살림을 짓는 사이에 차근차근 익힌 길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고, 때로는 글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꽃은 한 송이조차 없습니다. 이름은 같더라도 모두 다른 꽃이에요.


  이름은 ‘사람’이어도 모두 다릅니다. 배움터에서 모두 똑같은 차림새로 맞추더라도, 일터에서 다 같은 차림으로 일하도록 하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입니다. 콩나물 배움칸에 빼곡히 들어차야 하던 예전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숨결이에요. 꽃찔레(장미)를 한 다발 묶더라도 다 다른 꽃찔레입니다.


  꽃 사이를 거닐겠다면, 남이 갈무리한 글을 읽거나 살피되, 언제나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코로 맡고, 우리 손으로 쓰다듬고, 우리 머리로 생각할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풀꽃지기가 오래도록 살펴보고서 갈무리한 글에 남은 꽃 한 송이랑,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바라보는 꽃 한 송이는 다른 숨결이거든요. 전라도 경상도 서울에서 보는 꽃 한 송이는 결이 다릅니다. 때에 따라서도 다르고, 고장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눈을 감고서 풀밭에 가만히 앉아 들풀을 찬찬히 쓰다듬어 보면, 다 다른 들풀마다 다 다른 숨결이 우리 손으로 스치는 줄 느낄 만합니다. 눈을 감은 채 나무 곁에 서서 나무꽃한테 다가가 냄새를 맡으면 가지마다 맺힌 꽃송이에서 조금씩 다르게 냄새가 흐르는 줄 느낄 만합니다.


  꽃이란 너이면서 나입니다. 꽃빛이란 우리 빛이면서 모든 빛입니다. 마음으로 만나려 하면 스스로 읽어내는 길을 찾습니다. 마음이 아닌 다른 이들이 살펴보고서 갈무리한 책이나 글을 찾으려 한다면 판에 박힌 이야기만 되풀이하겠지요.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를 쓴 글님은 능금나무에서 떨어져 흙바닥을 뒹구는 능금을 처음으로 주워서 깨물어 보고서 대단히 놀랐다고 합니다. 과일가게에서만 보던 능금이 아닌, 또 과일밭지기가 딴 능금이 아닌, 그저 다 익어서 떨어진 능금을 손수 주워서 ‘오직 하나뿐인 이 능금’을 마주하여 맛본 삶이란 글님한테만 있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ㅅㄴㄹ


(시든 수선화를) 한번 잘랐더니 한동안 그 가지에 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그 후론 잘라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14쪽)


일본에선 제비꽃을 어떻게 다뤘나 살펴보니, 고대시대 이래 원예식물로 재배한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37쪽)


옛사람들의 상상력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 어째서 이렇게 섬세하고 가련한 꽃을 보고 모시실 감긴 실꾸리를 연상했을까. (104쪽)


마리화나 때문에 대마를 수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게 된 것처럼 양귀비도 아편 때문에 악동 취급을 받게 됐다. 원래 고대 일본에서 대마는 유서 깊은 식물이었다. (169쪽)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상륙하자마자 전국에 퍼진 코스모스가 유럽에서는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85쪽)


길가에 떨어진 사과도 있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사과를 주워 껍질째 베어 먹어 보았다. 입안 가득 신맛이 퍼지는데 무척 맛이 좋았다. 길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먹은 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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