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4 : 걷다 나는 오늘도 4
미쉘 퓌에슈 지음, 루이즈 피아네티보아릭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미셸 퓌에슈(Michel Puech) 교수는 <걷다 Marcher>를 통해 '걷는다'는 의미를 다시 해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 리뷰에서는 '걷는다'에 담겨진 의미를 저자와 함께 생각해 보자.


1. 세상과 맺는 관계로서의 걸음


 저자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다. 세상과 직접 대면(對面)하는 행위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경험이 된다. 걸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첫 걸음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오게 된다.


 '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2. 첫 걸음 :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의 첫 변환


 첫 사랑처럼 '처음'의 의미가 주는 특별함과 마찬가지로 걸음 중에서도 첫 걸음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남다르게 남는다. 첫 걸음을 떼기 위해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은 아이에게는 아픔으로, 부모에게는 안타까움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렇지만, 첫 걸음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첫 걸음'의 의미를 인생에서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 전환되는 첫 순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는 일단 넘어지기부터 한다. 균형을 잡고 서서 두 발로 쓰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데에는 발가락부터 목에 이르는 수많은 근육을 쓰는 복잡한 신체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배우려면 넘어지기를 받아들여야 하며,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p16)'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3. 함께 걷는다는 것 : 촛불 


 첫 걸음 이후 사람들은 수 많은 걸음을 걷게 된다. <걷다>에서 해석하는 걸음의 의미 속에는 정치적 의미도 포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음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일 년 전 함께 나누었기에 '걷다'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할 때 함께 무리 지어 걷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진은 상징적 행동으로, 공적인 장소를 걸어 지나감으로써 그 공간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위 행진이 있을 때면 수천 명(경찰 추산에 따르면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이렇게 함께 걷는 가운데 생성되는 연대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p57)'


 <걷다>를 통해서 우리는 '걷는다'는 의미가 다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걷다>에는 이러한 '걸음'의 수많은 의미가 열거된다. 그러한 여러 글 속에서 특히 '맨발로 걷기'에 대한 부분이 더 인상깊게 느껴진다.


4. 맨발로 걷기


   <걷기> 속에서는 맨발로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自然)'과의 소통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러한 '자유로움' 의미 외에 다른 느낌은 없을까.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발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심플한 가죽 혹은 플라스틱 샌들이나 털 부츠, 캔버스 운동화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 자칫 잊어버리고 지나치기 쉽지만, 신발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소박한 도구 중 하나이다. 새 신발을 신었는데 발이 아프면 하루가 고역스럽다.(p30)'


 '여름에 맨발로 해변에 처음 들어서거나 테라스의 타일 바닥을 밟으면 묘한 해방감이 든다.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되찾는 것외에도, 걷다보면 세계와 직접 몸을 맞대는 데서 오는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자연 속을 걷다보면 자연과 오감(五感)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p76)'


[사진] 지압용 돌(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br4&articleno=7886109&categoryId=764151®dt=20100916105135)


 지압용 돌 위를 맨발로 걸어 보자. 옮길지 모르는 무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처음 맨발로 걸을 때 그 낯선 느낌과 통증은 처음에 견디기 어렵지만, 계속 걷다보면 몇 차례 걷다보면 어느새 익숙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대하게 된다. 마치 신발을 신는 것처럼. 평소 가면을 쓴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새 우리가 쓴 사회적 가면을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공원의 지압용 돌을 걷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도 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걷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셸 퓌에슈의 다른 철학 시리즈 <나는, 오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걷다>에서도 일상의 행위 속에서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에, 삶에 지칠 때 잠시 걸으며 읽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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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07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요. 걷는 것처럼 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서도 저렇게 꼼꼼하게 의미를 길어올리는 거 보면, 철학자라는 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싶었어요. 맘만 먹으면 짜장면으로도 700페이지짜리 인문서를 쓸 수 있을 사람들이라고....

왜 걷기 책을 읽었는데 걷기보다 걷기를 쓴 사람에 대해 더 경외감이 드는 걸까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2-07 22:07   좋아요 1 | URL
^^: syo님 말씀처럼 철학자들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개미만한 작은 곤충으로부터 코끼리같은 의미를 발견하니까요. 저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습니다^^:

yamoo 2017-12-07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콩 여행가서 발이 아작나는 바람에 걷는 게 너무 힘듭니다. 한 2킬로 정도 걸으면 발이 무쟈게 아파요. 밤에 자고 읽어나 첫 발을 내 디딜때 역시 매우 아픕니다. 아무래도 족저근막염이 의심되는데....그나마 밑창이 두꺼운 운동화는 발이 별로 아프지 않아 운동화를 주로 신습니다만, 그래도 오래 걸으면 발이 아파 움직이질 못하겠더이다.

걷는 거 정말 좋아했는데, 발이 아프니...ㅠㅠ

겨울호랑이 2017-12-07 22:49   좋아요 0 | URL
이런... yamoo님은 그런 아픔이 있으시군요... 저 역시 걷기를 좋아하기에 yamoo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됩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2017-12-07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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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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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1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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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1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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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2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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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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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2-08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도..
첫 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수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는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17-12-08 01:09   좋아요 2 | URL
^^: 그런 것 같습니다. 기존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모든 행동이 걷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cyrus 2017-12-08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꽃과 나무가 있는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유레카님이 알려주셨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2-08 12:37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예전에 cyrus님께서 유레카님과 만나 맨발로 흙길을 걷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기억납니다^^:

AgalmA 2017-12-16 0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도 정신도 보조를 맞춰서 잘 걸었으면 싶습니다. 가끔 로봇처럼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몸 따로, 정신 따로^,ㅜ;
바꾸신 연의 프사 역시 이쁘네여 :) 연의는 우리가 흐뭇하게 자기 보고 있는 거 알랑가. 마치 조상신 된 기분ㅎ;;

겨울호랑이 2017-12-16 08:13   좋아요 1 | URL
^^: 저도 그렇지만 우리가 걷는 자체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목적지를 가기 위한. 걷는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온다면 더 여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쉽지 않지만요 ㅋ 네. 딸을 아들처럼 씩씩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ㅋㅋ
 

‘고지도 속에 그려진 세계의 형태가 잘못되었으니 가치가 없는 지도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고지도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형태를 잘 알 수 없었을 때 세계의 존재를 정신 속에 의식했었다는 사실이며, 세계의 표상을 바탕으로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p18)‘

고지도의 의미가 당대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고지도를 통해 우리는 이전 시대의 세계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쿠쉬라메」가 작성된 9세기 이슬람인들의 세계관을 들여다 보자.

‘하멜의 「표류기」 같은 외국인의 직접적인 기록은 드문 편이지만 8세기경부터 신라를 찾아온 아랍인들은 우리나라의 남해안의 섬들을 자신들의 해도에 ˝Sila˝라고 표시하였다.(p27)‘

‘알 이드리시의 지도(1154년) ; 시칠리아의 노르망왕 로제 2세의 명을 받아 알 이드리시는 프톨레미의 지도를 바탕으로 아랍세계의 지리 지식을 첨가하였다. 중국의 남쪽에 여러 개의 섬을 그리고, 신라(Sila)와 와꾸와꾸(Wakuwaku)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신라를 섬으로 표시하고 있다.(p38)‘

당대 사람들이 ‘신라‘를 중국 주변의 섬으로 인식했다면, ‘바실라 Basilia‘가 신라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고전에 대한 인식 기준은 현대가 아닌 고전이 쓰여진 당시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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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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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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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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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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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14: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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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네 집 - 작지만 넉넉한 한옥에서 살림하는 이야기
조수정 지음 / 앨리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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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옥에서 거창한 의식과도 같은 비움의 시간을 가졌다. 비워내자 오히려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쭉 뻗은 나무 기둥과 서까래, 따뜻한 흙벽, 아담한 장독대와 마당, 이미 집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큰 가구부터 작은 수저까지. 하나씩 정리하면서 아름다운 집은 치장된 겉모습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p16)‘

아내를 따라 학교 관사로 이사온 지도 벌써2년 반정도 지났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나중에 우리 집을 짓기 전 미리 단독 주택을 체험하자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아파트 생활을 해왔던 저희 가족의 (한옥은 아니지만)단독 주택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옥과 전원 생활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러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가는 극히 드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불편함이 당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책으로 굳이 출판할 이유는 없겠지요.

많은 이들이 전원 생활 또는 마당이 있는 집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이야기합니다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당을 보겠습니다. 처음에 많은 이들이 마당에 잔디를 깔지만, 잔디 관리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마당의 잔디는 자갈로 바뀌고, 자갈은 다시 시멘트로 바뀌게 됩니다. 도시에 살 때는 잘 모르지만, 잡초의 생장 속도와 번식력은 공포스러울 정도라 아예 시골 대부분의 집에서 마당을 시멘트로 덮어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쁜 직장인들은 별도의 정원 관리사를 두지 않는다면 여름 주말에는 잡초 제거를 하느라 반나절 정도는 시간을 비워야할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또, 많은 이들 평상을 펴고 밤하늘의 별을 보는 꿈을 꿉니다. 그렇지만, 시골에서도 요즘은 미세먼지 등으로 별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드물어졌습니다. 여름에는 많은 곤충들과 겨울에는 주변보다 낮은 기온으로 생각보다 마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책에서 느끼는 5분, 10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아파트 생활에는 예상하지 못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가 잠시의 여유를 위해 아깝지 않다고 여겨질 때 전원 생활의 아름다움이 보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율이네 집」은 사실 전원 생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한옥 생활의 여유로움을 말하고 있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 전원 생활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제가 전원 생활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만, 엄연한 현실임을 막연하게 전원 생활을 동경하시는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곳 생활에도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조용하고 진정으로 쉴 수 있으며,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1시간에 1대 오는 마을버스의 불편함 보다 크게 생각할 수 있다라면 전원 생활은 아름다운 삶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라면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사람마다 1대씩 차가 있어야 원하는 때에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율이네 집」은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사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책의 내용 속에서 저는 이 분들의 노력과 배려가 고풍스러운 한옥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리뷰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3 수험생 시절은 누구에게나 힘든 경험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 그 시절을 추억하면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될 것입니다. 힘든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니까요. 그래서,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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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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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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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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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12-03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대한 동의와 함께 제 의견을 남기려 하니, 제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는군요.^^

(아마도 내년에) 자연과 인간 윤리 및 기대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12-03 08:32   좋아요 1 | URL
^^: 네 마립간님 감사합니다. 벌써 12월이군요.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2017-12-03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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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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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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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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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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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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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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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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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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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5: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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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은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한 '고조선 古朝鮮'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청동기(靑銅器)와 고인돌(支石墓)로 대표되는 이 시대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그  관심은 고조선의 강역(疆域)이 어디까지인지, 중국 왕조와 고조선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에 그친다. 물론 이러한 주제가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일반인들의 삶이 진정한 우리의 역사가 아닐런지. 그런 점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이 주는 의미는 크다고 여겨진다. 2권의 내용을 통해서 고조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우리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생생하게 확인'한다는 표현이 다소 진부하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고조선 생활사와 더불어 시각적으로 전달된 정보와 문자적으로 전달되는 정보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고조선의 의(衣), 식(食), 주(住)에 대해<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에 그려진 그림과 함께 우리나라 고조선 연구가인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에서 생활사 내용을 살펴보자.


1. 고조선의 의(衣)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부여와 고조선 관리의 정장(p45)


 '<삼국지> <동이전> <부여전>에는, "(부여 사람들은)국내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 했는데, 부여는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으므로 부여인들이 입었던 큰 소매 달린 도포는 고조선 때부터 입었던 두루마기 같은 겉옷이었을 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예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곡령을 입는데 남자는 넓이가 여러 치 되는 은화(銀花)를 옷에 꿰매어 장식한다"... 이로 보아 고조선 사람들은 목둘레의 깃을 둥글게 만든 옷에 은화를 장식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p298)...고조선 사람들은 모자를 즐겨 썼던 것으로 보인다. 서포항 유적의 흙인형 머리 위는 수평을 이루어 양쪽 옆으로 넓게 퍼지고 양쪽의 모서리는 각을 이루고 있어 고깔을 쓴 것처럼 보인다.(p299)' <고조선 연구(하)>


2. 고조선의 식(食)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고조선의 식생활(p40)


 '기자가 망명했던 서기전 12세기에 고조선의 전민은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전민(田民)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므로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는 생활 풍습이 고조선의 농민 사회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p309)... 고조선에서는 청동이나 뼈보다는 대나무 또는 나무를 이용한 나무를 이용한 숟가락이 더 많이 보급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썩어 없어져 유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p311)... 고조선에서는 벼, 보리, 조, 기장, 콩, 팥, 수수, 피 등의 오곡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곡물이 재배되었다... 고조선 사람들의 음식은 익히거나 끓인 것이 주류를 이루었겠지만 쪄서 먹기도 했다... 고조선 사람들은 이미 소금을 조미료로 사용했을 것이다.(p312)<고조선 연구(하)>


3. 고조선의 주(住)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언덕마을의 삶(p39)


 '고조선의 농촌 주택은 지상식 건물도 일부 있었으나 대개 지하 50 ~ 60센티미터 정도로 깊지 않은 반지하 움집이었으며 대부분 직사각형이었다. 집자리 바닥의 면적은 80제곱미터의 큰 것과 10제급미터 이하의 아주 작은 것도 있었으나 20제곱미터 정도의 것이 가장 많았다. 고조선의 주택은 지붕을 짚이나 풀 따위로 이었고 그 위에 두텁게 진흙을 바르기도 했다. 고조선 사람들은 집자리를 단단하게 다진 후 그 위에 집을 지었다.(p343)<고조선 연구(하)>


 고조선사를 비롯한 고대사(古代史)는 기록된 문헌의 수도, 남아있는 유물의 수도 적기에 많은 연구과제가 남아있는 분야다. 또한, 많은 연구가 세력권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 등 정치, 외교, 군사 부문에서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렵게 이루어진 연구 성과는 문자(Text)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현실 속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2권은 충실하게 시각적으로 당대의 모습을 복원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시리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자료로서도 유용하지만,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생활사박물관>의 그림을 보면서 '애니메이션(animation)'과 '만화'가 문자로 구성된 책을 밀어내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가 복잡해지면, 생각하기 싫어하고 끈기가 부족한 세태의 변화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어(言語)가 가진 이중성과 모호성이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명한 사실 전달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호하다는 언어(문자)의 한계 대신 분명한 시각을 우리는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시각 선호' 성향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임을 우리는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 ~ 1753)의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 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0. 참된 시각 이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들을 다루는데 언어는 불명료함과 혼란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기 쉽다. 언어는 사람들의 공통 개념과 선입관에 순응하기 때문에 대단히 완곡한 표현, 부정확한 용법, 그리고 (조심성 없는 독작에게는) 외관상의 모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진리를 거의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시각에 관해 써왔던 것을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누구나 이러저러한 구절이나 표현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이야기의 전체 요점과 취지로부터 내 의미를 숨김없이 추측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낱말에 얽매이지 않고 개념 자체를 있는 그대로 고려하며, 그 개념이 진리와 자신의 경험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것을 단호하게 원한다.(p158)'


 인간이 느끼는 감각의 70~80%가 시각이라고 하니, 아마 '책의 시각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것 같다. 하긴, 이미 1979년에 이미 음악 역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바뀌었으니, 책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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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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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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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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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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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02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눈이 와서 오늘은 날씨가 추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덜 추워서 다행이예요.
아마 고조선 시대에 살았다면, 추워서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2-02 21:03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이 계신 곳에서는 어제 눈이 왔었군요. 제가 있는 곳은 비록 눈은 안왔지만 춥네요.ㅋ 고조선 시대에 있었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추웠겠지만, 미세먼지는 없었을 것 같아요. 만약 선조들이 지금 우리 사는 곳으로 올 수 있다라면 ‘그 곳은 따뜻하긴한데, 눈과 목이 따끔거려 못 살겠어!‘라고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 서니데이님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with 다육이들)

2017-12-02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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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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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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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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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칼 마르크스 외 지음, 박종철출판사 편집부 엮음, 김세균 감수 / 박종철출판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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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에 실린 여러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저작은 <공산주의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 (1847 ~ 1848)>일 것이다. 이 단편은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에 의해 쓰여진 선언문으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의 두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 두 문장 외에도 <공산주의당 선언>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번 리뷰에서는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봉건 사회의 몰락으로부터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기하지 못하였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들과 바꿔 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커다른 계급들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다. :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p401)'


1.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공산주의당 선언>에 의하면 부르주아지는 기존의 사회 관계를 파괴하고, 기존의 사회 관계를 금전 관계로 대체시켜 버렸다. 그리고, 끊임없이 세계를 부르주아지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면서 규모를 확장시켜 왔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인 관계들을 파괴하였다.(p402)...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로부터 그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 관계로 되돌려 놓았다.(p403)'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넣는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p404)... 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 소유 및 인구의 분산을 점점 더 폐기한다.(p405)'


 그렇지만,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확장성은 '과잉 생산'이라는 한계점을 만났을 때, 오히려 자신의 질서에 독 毒이 된다. 한편, 프롤레타리아트는 기계화, 대량화 되는 생산 구조의 변화 속에서 점점 부속품화된다. 이러한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는 찰리 채플린(Sir Charlie Chaplin, 1889 ~ 1977)의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1936)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황시에는, 이전의 모든 시기에는 어불성설로 보였을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한다-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 왜 그런가? 그것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너무 많은 생활 수단, 너무 많은 공업, 너무 많은 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뜻에 맡겨져 있는 생산력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들의 촉진에 봉사하지 않는다.(p406)'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들을 벼려 낸 것만이 아니라 ; 그들은 이 무기들을 쓸 사람들도 만들어 내었다 - 현대 노동자들, 프롤레타리아들을.(p406)...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기계제의 확장 및 분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립적 성격을,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주는 모든 매력을 상실하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오진 가장 간단하고, 가장 단조롭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손동작만을 요구받는 단순한 기계 부속품이 된다.(p407)'


[사진] 영화 모던 타임즈(출처 : 조인스 닷컴)


 노동가치가 저하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지고, 저임금의 노동자로 대체된다. 또한, 대자본과의 경쟁을 견뎌내지 못한 기존 중상층 계급도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내려앉게 되고, 결국 사회는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로 양분화가 심화된다.


 '지금까지의 소중간 小中間 신분들, 즉 소공업가들, 소상인들과 소금리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 등의 이 모든 계급들은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였는데, 이는 일부는 그들의 소자본이 대공업의 경영에 충분하지 않고, 더 큰 자본가들과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일부는 그들의 숙련이 새로운 생산 양식들에 의해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주민의 모든 계급들로부터 충원된다.(p408)


2. 자본주의 붕괴


  우리는 앞서 과잉생산으로 인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위기에 빠지게 됨을 살펴봤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는이러한 상황 속에서 점차 세력을 키우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부르주아 지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혁명 革命임을 주장한다.  <공산주의당 선언>이 말하는 혁명궐기문의 성격이 다음의 글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 정치 상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 모든 운동들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이 더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든 덜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든 소유 문제를 운동의 기본 문제로 내세운다.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정당들간의 결합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의 무력적 전복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p433)'


3.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 Capitalism)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꿈꾸었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점차 세력을 불려나간 프롤레타리아트처럼 이들의 혁명은 '사적 소유의 철폐'부터 시작하여, 국가 단위로, 다시 세계단위의 연합체로 발전하게 된다. (맑스에게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통치기구이기에 국가 역시 타도 대상이 된다.)


 '공산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런데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계급 대립에, 즉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들의 착취에 근거하는 생산물의 생산 및 전유의 최후의, 그리고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단 하나의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 사적 소유의 철폐.(p413)'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계급으로 단결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를 지배 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들을 폭력적으로 폐기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생산 관계들과 아울러 계급 대립의 존립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p421)'


 <공산주의당 선언> 속에서 우리는 당대의 상황을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으로 규정한 맑스 사상의 체계와 함께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주장한 혁명가로서의 맑스, 엥겔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90년대말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관심밖으로 멀어졌으나, 최근 신자유주의 新自由主義의 물결 속에서 자본의 집중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요즘 우리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산주의당 선언>속의 자본주의 붕괴 모습을 보다 상세히 알기 위해서는 칼 맑스, 엥겔스의 <자본>을 읽어야겠지만, 개략의 주장만을 알고 싶다면 <공산주의당 선언> 을 통해 전체 모습을 집작할 수 있어, 짧은 단편이지만 읽을만한 내용의 책이라 여겨진다. 다만, 개인적으로 맑스, 엥겔스에게 아쉬운 점이 하나 생긴다. 


4. 노동운동 그리고 소비자 운동


 맑스, 엥겔스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단결과 혁명을 주장했지만, 그들의 다른 면을 볼 수는 없었을까? 노동자는 다른 한 면으로 '소비자'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을 乙'의 위치에 서지만, 소비자는 자본가에게 '갑 甲'의 위치에 놓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다 성공적인 혁명을 위해서 맑스와 엥겔스는 '소비자 운동'을 내세웠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를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노동자가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것은 아니다. 이는 다음의 문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공장주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가 끝나서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현금으로 지불받게 되면, 부르주아지의 또 다른 부분들, 즉 집주인, 소매 상인, 전당포 영업자 등등이 그에게 달려든다.(p408)'


 거칠게 생각한다면, '소비 consumption'를 생산적 소비(산업적 소비)와 개인적 소비(비생산적 소비)로 나누고 새로운 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적 소비만 가치있는 것으로 규정한 맑스 사상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생산이 분배, 교환, 소비를 총괄한다는 그의 사상적 한계가 노동자의 다른 면인 소비자를 가렸고, 이를 통해 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궐기해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칼 맑스의 다른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자본>을 정리할 때 살펴보도록 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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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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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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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02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때는 지금처럼 소비가 만연한 시대는 아녔으니까요. 소비는 부르주아지의 특권에 더 가까웠을 듯.
한국도 경제개발 할 때 거의 대부분 당장 의식주를 해결할 돈 벌기 바빴잖아요. 이후 소비의 물결은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이었죠. X세대 나오고 해외여행 자율화 등등~ 소비의 붐이 일었죠.
어디까지나 제 소견^^; <소비의 역사>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 자료 바탕은 어렵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12-02 08:35   좋아요 3 | URL
^^: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0세기 이후 대량 소비 시대가 열렸고, 소비자의 힘이 강조된 것도 그 이후인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19세기 유럽 대룩에서의 산업혁명 초기 모직을 비록한 경공업 제품이 초기 자본주의 생산품임을 생각해보면, 의류의 최종소비자는 중공업제품과는 달리 결국 일반인들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옷은 누구나 입어야하니 소비자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AgalmA님 말씀처럼 그럼에도 소비가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갑니다 ㅋㅋ

2017-12-02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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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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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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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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