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은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한 '고조선 古朝鮮'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청동기(靑銅器)와 고인돌(支石墓)로 대표되는 이 시대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그  관심은 고조선의 강역(疆域)이 어디까지인지, 중국 왕조와 고조선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에 그친다. 물론 이러한 주제가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일반인들의 삶이 진정한 우리의 역사가 아닐런지. 그런 점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이 주는 의미는 크다고 여겨진다. 2권의 내용을 통해서 고조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우리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생생하게 확인'한다는 표현이 다소 진부하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고조선 생활사와 더불어 시각적으로 전달된 정보와 문자적으로 전달되는 정보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고조선의 의(衣), 식(食), 주(住)에 대해<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에 그려진 그림과 함께 우리나라 고조선 연구가인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에서 생활사 내용을 살펴보자.


1. 고조선의 의(衣)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부여와 고조선 관리의 정장(p45)


 '<삼국지> <동이전> <부여전>에는, "(부여 사람들은)국내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 했는데, 부여는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으므로 부여인들이 입었던 큰 소매 달린 도포는 고조선 때부터 입었던 두루마기 같은 겉옷이었을 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예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곡령을 입는데 남자는 넓이가 여러 치 되는 은화(銀花)를 옷에 꿰매어 장식한다"... 이로 보아 고조선 사람들은 목둘레의 깃을 둥글게 만든 옷에 은화를 장식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p298)...고조선 사람들은 모자를 즐겨 썼던 것으로 보인다. 서포항 유적의 흙인형 머리 위는 수평을 이루어 양쪽 옆으로 넓게 퍼지고 양쪽의 모서리는 각을 이루고 있어 고깔을 쓴 것처럼 보인다.(p299)' <고조선 연구(하)>


2. 고조선의 식(食)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고조선의 식생활(p40)


 '기자가 망명했던 서기전 12세기에 고조선의 전민은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전민(田民)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므로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는 생활 풍습이 고조선의 농민 사회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p309)... 고조선에서는 청동이나 뼈보다는 대나무 또는 나무를 이용한 나무를 이용한 숟가락이 더 많이 보급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썩어 없어져 유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p311)... 고조선에서는 벼, 보리, 조, 기장, 콩, 팥, 수수, 피 등의 오곡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곡물이 재배되었다... 고조선 사람들의 음식은 익히거나 끓인 것이 주류를 이루었겠지만 쪄서 먹기도 했다... 고조선 사람들은 이미 소금을 조미료로 사용했을 것이다.(p312)<고조선 연구(하)>


3. 고조선의 주(住)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언덕마을의 삶(p39)


 '고조선의 농촌 주택은 지상식 건물도 일부 있었으나 대개 지하 50 ~ 60센티미터 정도로 깊지 않은 반지하 움집이었으며 대부분 직사각형이었다. 집자리 바닥의 면적은 80제곱미터의 큰 것과 10제급미터 이하의 아주 작은 것도 있었으나 20제곱미터 정도의 것이 가장 많았다. 고조선의 주택은 지붕을 짚이나 풀 따위로 이었고 그 위에 두텁게 진흙을 바르기도 했다. 고조선 사람들은 집자리를 단단하게 다진 후 그 위에 집을 지었다.(p343)<고조선 연구(하)>


 고조선사를 비롯한 고대사(古代史)는 기록된 문헌의 수도, 남아있는 유물의 수도 적기에 많은 연구과제가 남아있는 분야다. 또한, 많은 연구가 세력권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 등 정치, 외교, 군사 부문에서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렵게 이루어진 연구 성과는 문자(Text)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현실 속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2권은 충실하게 시각적으로 당대의 모습을 복원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시리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자료로서도 유용하지만,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생활사박물관>의 그림을 보면서 '애니메이션(animation)'과 '만화'가 문자로 구성된 책을 밀어내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가 복잡해지면, 생각하기 싫어하고 끈기가 부족한 세태의 변화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어(言語)가 가진 이중성과 모호성이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명한 사실 전달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호하다는 언어(문자)의 한계 대신 분명한 시각을 우리는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시각 선호' 성향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임을 우리는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 ~ 1753)의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 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0. 참된 시각 이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들을 다루는데 언어는 불명료함과 혼란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기 쉽다. 언어는 사람들의 공통 개념과 선입관에 순응하기 때문에 대단히 완곡한 표현, 부정확한 용법, 그리고 (조심성 없는 독작에게는) 외관상의 모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진리를 거의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시각에 관해 써왔던 것을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누구나 이러저러한 구절이나 표현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이야기의 전체 요점과 취지로부터 내 의미를 숨김없이 추측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낱말에 얽매이지 않고 개념 자체를 있는 그대로 고려하며, 그 개념이 진리와 자신의 경험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것을 단호하게 원한다.(p158)'


 인간이 느끼는 감각의 70~80%가 시각이라고 하니, 아마 '책의 시각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것 같다. 하긴, 이미 1979년에 이미 음악 역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바뀌었으니, 책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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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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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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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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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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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02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눈이 와서 오늘은 날씨가 추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덜 추워서 다행이예요.
아마 고조선 시대에 살았다면, 추워서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2-02 21:03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이 계신 곳에서는 어제 눈이 왔었군요. 제가 있는 곳은 비록 눈은 안왔지만 춥네요.ㅋ 고조선 시대에 있었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추웠겠지만, 미세먼지는 없었을 것 같아요. 만약 선조들이 지금 우리 사는 곳으로 올 수 있다라면 ‘그 곳은 따뜻하긴한데, 눈과 목이 따끔거려 못 살겠어!‘라고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 서니데이님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with 다육이들)

2017-12-02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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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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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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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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