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칼 마르크스 외 지음, 박종철출판사 편집부 엮음, 김세균 감수 / 박종철출판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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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에 실린 여러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저작은 <공산주의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 (1847 ~ 1848)>일 것이다. 이 단편은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에 의해 쓰여진 선언문으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의 두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 두 문장 외에도 <공산주의당 선언>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번 리뷰에서는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봉건 사회의 몰락으로부터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기하지 못하였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들과 바꿔 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커다른 계급들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다. :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p401)'


1.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공산주의당 선언>에 의하면 부르주아지는 기존의 사회 관계를 파괴하고, 기존의 사회 관계를 금전 관계로 대체시켜 버렸다. 그리고, 끊임없이 세계를 부르주아지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면서 규모를 확장시켜 왔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인 관계들을 파괴하였다.(p402)...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로부터 그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 관계로 되돌려 놓았다.(p403)'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넣는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p404)... 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 소유 및 인구의 분산을 점점 더 폐기한다.(p405)'


 그렇지만,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확장성은 '과잉 생산'이라는 한계점을 만났을 때, 오히려 자신의 질서에 독 毒이 된다. 한편, 프롤레타리아트는 기계화, 대량화 되는 생산 구조의 변화 속에서 점점 부속품화된다. 이러한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는 찰리 채플린(Sir Charlie Chaplin, 1889 ~ 1977)의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1936)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황시에는, 이전의 모든 시기에는 어불성설로 보였을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한다-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 왜 그런가? 그것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너무 많은 생활 수단, 너무 많은 공업, 너무 많은 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뜻에 맡겨져 있는 생산력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들의 촉진에 봉사하지 않는다.(p406)'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들을 벼려 낸 것만이 아니라 ; 그들은 이 무기들을 쓸 사람들도 만들어 내었다 - 현대 노동자들, 프롤레타리아들을.(p406)...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기계제의 확장 및 분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립적 성격을,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주는 모든 매력을 상실하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오진 가장 간단하고, 가장 단조롭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손동작만을 요구받는 단순한 기계 부속품이 된다.(p407)'


[사진] 영화 모던 타임즈(출처 : 조인스 닷컴)


 노동가치가 저하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지고, 저임금의 노동자로 대체된다. 또한, 대자본과의 경쟁을 견뎌내지 못한 기존 중상층 계급도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내려앉게 되고, 결국 사회는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로 양분화가 심화된다.


 '지금까지의 소중간 小中間 신분들, 즉 소공업가들, 소상인들과 소금리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 등의 이 모든 계급들은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였는데, 이는 일부는 그들의 소자본이 대공업의 경영에 충분하지 않고, 더 큰 자본가들과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일부는 그들의 숙련이 새로운 생산 양식들에 의해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주민의 모든 계급들로부터 충원된다.(p408)


2. 자본주의 붕괴


  우리는 앞서 과잉생산으로 인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위기에 빠지게 됨을 살펴봤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는이러한 상황 속에서 점차 세력을 키우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부르주아 지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혁명 革命임을 주장한다.  <공산주의당 선언>이 말하는 혁명궐기문의 성격이 다음의 글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 정치 상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 모든 운동들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이 더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든 덜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든 소유 문제를 운동의 기본 문제로 내세운다.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정당들간의 결합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의 무력적 전복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p433)'


3.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 Capitalism)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꿈꾸었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점차 세력을 불려나간 프롤레타리아트처럼 이들의 혁명은 '사적 소유의 철폐'부터 시작하여, 국가 단위로, 다시 세계단위의 연합체로 발전하게 된다. (맑스에게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통치기구이기에 국가 역시 타도 대상이 된다.)


 '공산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런데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계급 대립에, 즉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들의 착취에 근거하는 생산물의 생산 및 전유의 최후의, 그리고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단 하나의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 사적 소유의 철폐.(p413)'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계급으로 단결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를 지배 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들을 폭력적으로 폐기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생산 관계들과 아울러 계급 대립의 존립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p421)'


 <공산주의당 선언> 속에서 우리는 당대의 상황을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으로 규정한 맑스 사상의 체계와 함께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주장한 혁명가로서의 맑스, 엥겔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90년대말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관심밖으로 멀어졌으나, 최근 신자유주의 新自由主義의 물결 속에서 자본의 집중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요즘 우리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산주의당 선언>속의 자본주의 붕괴 모습을 보다 상세히 알기 위해서는 칼 맑스, 엥겔스의 <자본>을 읽어야겠지만, 개략의 주장만을 알고 싶다면 <공산주의당 선언> 을 통해 전체 모습을 집작할 수 있어, 짧은 단편이지만 읽을만한 내용의 책이라 여겨진다. 다만, 개인적으로 맑스, 엥겔스에게 아쉬운 점이 하나 생긴다. 


4. 노동운동 그리고 소비자 운동


 맑스, 엥겔스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단결과 혁명을 주장했지만, 그들의 다른 면을 볼 수는 없었을까? 노동자는 다른 한 면으로 '소비자'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을 乙'의 위치에 서지만, 소비자는 자본가에게 '갑 甲'의 위치에 놓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다 성공적인 혁명을 위해서 맑스와 엥겔스는 '소비자 운동'을 내세웠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를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노동자가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것은 아니다. 이는 다음의 문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공장주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가 끝나서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현금으로 지불받게 되면, 부르주아지의 또 다른 부분들, 즉 집주인, 소매 상인, 전당포 영업자 등등이 그에게 달려든다.(p408)'


 거칠게 생각한다면, '소비 consumption'를 생산적 소비(산업적 소비)와 개인적 소비(비생산적 소비)로 나누고 새로운 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적 소비만 가치있는 것으로 규정한 맑스 사상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생산이 분배, 교환, 소비를 총괄한다는 그의 사상적 한계가 노동자의 다른 면인 소비자를 가렸고, 이를 통해 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궐기해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칼 맑스의 다른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자본>을 정리할 때 살펴보도록 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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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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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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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02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때는 지금처럼 소비가 만연한 시대는 아녔으니까요. 소비는 부르주아지의 특권에 더 가까웠을 듯.
한국도 경제개발 할 때 거의 대부분 당장 의식주를 해결할 돈 벌기 바빴잖아요. 이후 소비의 물결은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이었죠. X세대 나오고 해외여행 자율화 등등~ 소비의 붐이 일었죠.
어디까지나 제 소견^^; <소비의 역사>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 자료 바탕은 어렵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12-02 08:35   좋아요 3 | URL
^^: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0세기 이후 대량 소비 시대가 열렸고, 소비자의 힘이 강조된 것도 그 이후인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19세기 유럽 대룩에서의 산업혁명 초기 모직을 비록한 경공업 제품이 초기 자본주의 생산품임을 생각해보면, 의류의 최종소비자는 중공업제품과는 달리 결국 일반인들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옷은 누구나 입어야하니 소비자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AgalmA님 말씀처럼 그럼에도 소비가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갑니다 ㅋㅋ

2017-12-02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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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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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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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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