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4 : 걷다 나는 오늘도 4
미쉘 퓌에슈 지음, 루이즈 피아네티보아릭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미셸 퓌에슈(Michel Puech) 교수는 <걷다 Marcher>를 통해 '걷는다'는 의미를 다시 해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 리뷰에서는 '걷는다'에 담겨진 의미를 저자와 함께 생각해 보자.


1. 세상과 맺는 관계로서의 걸음


 저자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다. 세상과 직접 대면(對面)하는 행위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경험이 된다. 걸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첫 걸음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오게 된다.


 '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2. 첫 걸음 :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의 첫 변환


 첫 사랑처럼 '처음'의 의미가 주는 특별함과 마찬가지로 걸음 중에서도 첫 걸음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남다르게 남는다. 첫 걸음을 떼기 위해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은 아이에게는 아픔으로, 부모에게는 안타까움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렇지만, 첫 걸음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첫 걸음'의 의미를 인생에서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 전환되는 첫 순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는 일단 넘어지기부터 한다. 균형을 잡고 서서 두 발로 쓰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데에는 발가락부터 목에 이르는 수많은 근육을 쓰는 복잡한 신체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배우려면 넘어지기를 받아들여야 하며,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p16)'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3. 함께 걷는다는 것 : 촛불 


 첫 걸음 이후 사람들은 수 많은 걸음을 걷게 된다. <걷다>에서 해석하는 걸음의 의미 속에는 정치적 의미도 포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음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일 년 전 함께 나누었기에 '걷다'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할 때 함께 무리 지어 걷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진은 상징적 행동으로, 공적인 장소를 걸어 지나감으로써 그 공간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위 행진이 있을 때면 수천 명(경찰 추산에 따르면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이렇게 함께 걷는 가운데 생성되는 연대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p57)'


 <걷다>를 통해서 우리는 '걷는다'는 의미가 다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걷다>에는 이러한 '걸음'의 수많은 의미가 열거된다. 그러한 여러 글 속에서 특히 '맨발로 걷기'에 대한 부분이 더 인상깊게 느껴진다.


4. 맨발로 걷기


   <걷기> 속에서는 맨발로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自然)'과의 소통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러한 '자유로움' 의미 외에 다른 느낌은 없을까.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발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심플한 가죽 혹은 플라스틱 샌들이나 털 부츠, 캔버스 운동화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 자칫 잊어버리고 지나치기 쉽지만, 신발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소박한 도구 중 하나이다. 새 신발을 신었는데 발이 아프면 하루가 고역스럽다.(p30)'


 '여름에 맨발로 해변에 처음 들어서거나 테라스의 타일 바닥을 밟으면 묘한 해방감이 든다.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되찾는 것외에도, 걷다보면 세계와 직접 몸을 맞대는 데서 오는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자연 속을 걷다보면 자연과 오감(五感)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p76)'


[사진] 지압용 돌(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br4&articleno=7886109&categoryId=764151®dt=20100916105135)


 지압용 돌 위를 맨발로 걸어 보자. 옮길지 모르는 무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처음 맨발로 걸을 때 그 낯선 느낌과 통증은 처음에 견디기 어렵지만, 계속 걷다보면 몇 차례 걷다보면 어느새 익숙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대하게 된다. 마치 신발을 신는 것처럼. 평소 가면을 쓴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새 우리가 쓴 사회적 가면을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공원의 지압용 돌을 걷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도 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걷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셸 퓌에슈의 다른 철학 시리즈 <나는, 오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걷다>에서도 일상의 행위 속에서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에, 삶에 지칠 때 잠시 걸으며 읽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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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07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요. 걷는 것처럼 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서도 저렇게 꼼꼼하게 의미를 길어올리는 거 보면, 철학자라는 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싶었어요. 맘만 먹으면 짜장면으로도 700페이지짜리 인문서를 쓸 수 있을 사람들이라고....

왜 걷기 책을 읽었는데 걷기보다 걷기를 쓴 사람에 대해 더 경외감이 드는 걸까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2-07 22:07   좋아요 1 | URL
^^: syo님 말씀처럼 철학자들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개미만한 작은 곤충으로부터 코끼리같은 의미를 발견하니까요. 저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습니다^^:

yamoo 2017-12-07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콩 여행가서 발이 아작나는 바람에 걷는 게 너무 힘듭니다. 한 2킬로 정도 걸으면 발이 무쟈게 아파요. 밤에 자고 읽어나 첫 발을 내 디딜때 역시 매우 아픕니다. 아무래도 족저근막염이 의심되는데....그나마 밑창이 두꺼운 운동화는 발이 별로 아프지 않아 운동화를 주로 신습니다만, 그래도 오래 걸으면 발이 아파 움직이질 못하겠더이다.

걷는 거 정말 좋아했는데, 발이 아프니...ㅠㅠ

겨울호랑이 2017-12-07 22:49   좋아요 0 | URL
이런... yamoo님은 그런 아픔이 있으시군요... 저 역시 걷기를 좋아하기에 yamoo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됩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2017-12-07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2-08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도..
첫 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수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는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17-12-08 01:09   좋아요 2 | URL
^^: 그런 것 같습니다. 기존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모든 행동이 걷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cyrus 2017-12-08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꽃과 나무가 있는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유레카님이 알려주셨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2-08 12:37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예전에 cyrus님께서 유레카님과 만나 맨발로 흙길을 걷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기억납니다^^:

AgalmA 2017-12-16 0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도 정신도 보조를 맞춰서 잘 걸었으면 싶습니다. 가끔 로봇처럼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몸 따로, 정신 따로^,ㅜ;
바꾸신 연의 프사 역시 이쁘네여 :) 연의는 우리가 흐뭇하게 자기 보고 있는 거 알랑가. 마치 조상신 된 기분ㅎ;;

겨울호랑이 2017-12-16 08:13   좋아요 1 | URL
^^: 저도 그렇지만 우리가 걷는 자체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목적지를 가기 위한. 걷는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온다면 더 여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쉽지 않지만요 ㅋ 네. 딸을 아들처럼 씩씩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