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속에 그려진 세계의 형태가 잘못되었으니 가치가 없는 지도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고지도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형태를 잘 알 수 없었을 때 세계의 존재를 정신 속에 의식했었다는 사실이며, 세계의 표상을 바탕으로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p18)‘
고지도의 의미가 당대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고지도를 통해 우리는 이전 시대의 세계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쿠쉬라메」가 작성된 9세기 이슬람인들의 세계관을 들여다 보자.
‘하멜의 「표류기」 같은 외국인의 직접적인 기록은 드문 편이지만 8세기경부터 신라를 찾아온 아랍인들은 우리나라의 남해안의 섬들을 자신들의 해도에 ˝Sila˝라고 표시하였다.(p27)‘
‘알 이드리시의 지도(1154년) ; 시칠리아의 노르망왕 로제 2세의 명을 받아 알 이드리시는 프톨레미의 지도를 바탕으로 아랍세계의 지리 지식을 첨가하였다. 중국의 남쪽에 여러 개의 섬을 그리고, 신라(Sila)와 와꾸와꾸(Wakuwaku)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신라를 섬으로 표시하고 있다.(p38)‘
당대 사람들이 ‘신라‘를 중국 주변의 섬으로 인식했다면, ‘바실라 Basilia‘가 신라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고전에 대한 인식 기준은 현대가 아닌 고전이 쓰여진 당시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