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987
세대 문제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85
카를 만하임 지음, 이남석 옮김 / 책세상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대 문제 Das Problem der Generationen>는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 ~ 1947)이 저술한 책으로 '세대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기존의 방법론을 종합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만하임의 '세대론(世代論)'의 특징과 <세대 문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책이 씌여진 1920년대 말에는 '실증주의적(positivistschen) 세대론'과 '낭만주의적-역사주의적(romantisch-historitischen) 세대론'이 대표적인 연구 방법론이 었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 두 방법 모두 한계가 있었다. 


 '실증주의적 세대론은 역사가 발전한다는 단선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양적 시간에 천착한 반면, 낭만주의적 세대론은 동시대에 서로 다른 세대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바탕으로 질적 시간에 집중했다. 실증주의적 세대론은 통시적 개념으로 세대에 집중했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당연히 진보이고 나이 든 세대는 보수라는 천편일률적인 개념에 도달했다. 반면 낭만주의적 세대론은 공시적 개념에 집중했기 때문에, 같은 세대가 경험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동일 세대 내에 진보적인 목소리와 보수적인 목소리가 공존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즉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p113)'


 실증주의적 세대론은 '젊은 세대 = 진보' , '나이든 세대 = 보수'라는 획일화된 공식을 제시하여, '젊은 보수'의 개념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적 세대론은 동일 세대내의 다른 성향(性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집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성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들의 문제점을 모두 고려하여 만하임은 통합된 시간관을 제시하고 있다. 


 '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자신이 놓인 "사회 내 위치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만하임은 양적시간과 "사회적 위치의 특수성" 그리고 질적 시간과 "사회 위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시간관을 제시한다.(p119)'

 

 또한 저자는 세대를 사회운동론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세대의 내용을 '세대위치', '실제세대', '세대단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동일 세대 내에 복수의 세대 단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동일 세대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세대위치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역사적으로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세대는 같은 시대, 같은 역사를 경험한다는 것만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 세대를 살아가는 공동 운명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p121)... 세대단위는 실제세대보다 훨씬 더 깊이 세대 운동에 관여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p122)... 세대단위에서 중요한 것은 동일 세대 내에 단 하나의 세대 단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세대 단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만하임의 세대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성이자 독특성이다.(p122)'


  '동일한 실제 세대 내에서 이러한 경험을 각각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소화하는 이러한 집단들은 동일한 실제 세대의 범주 내에서 각각의 다양한 "세대단위"들을 구성한다.(p67)'


 그렇다면, 세대문제는 '세대'로 통합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세대단위'별로 구분해서 분석해야하는 대상인가? 만하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세대단위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엔텔레키(enteleechie)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대단위로는 파악될 수 없고, 범주 단위(세대)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세대단위들은 완성된 형상이 결코 아니며, 세대단위들은 때에 따라 고유한 엔텔레키(통일된 의도의 중심, 형성적 원리)를 발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엔텔레키는 그 자체로 파악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조류 엔텔레키들의 범주 내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p85)'


  '엔텔레키'는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의 <모나드론 單子論>에서 언급된 단순한 지각만을 가진 실체다. 세대단위들을 '엔텔레키'로 해석한다면, 세대단위들의 구체적 의사 행위는 보다 상위 개념인 '세대'를 통해 표현된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그림] 라이프니츠( 출처 : 위키백과)


 이것을 보다 쉽게 풀이하자면, '세대단위-유전자(遺傳子)', '세대-개체(個體)'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유전자가 모여서 개체를 이루고, 유전자들의 의도가 개체를 통해 표현되듯 세대단위와 세대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대 문제>에서는 세대 내의 다양한 목소리 표현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1920년대 씌여진 만하임의 <세대 문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이 있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에서 보듯이 군부 독재를 무너뜨린 80년대 민주화를 이루었던 세대가 시간이 흘러 50 ~ 60대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또는 최근 20대의 젊은 층에서 급격하게 우경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세대 문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당시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세대 단위'들과 지금 주도적인 '세대 단위'는 다를 수 있다는 것.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대단위들과 현재 대한민국의 50 ~ 60대를 구성한 세대단위들은 동일한 '세대 위치'에 놓여있지만, 이들은 다른 '세대 단위'들이며 다른 성향을 가진 집단들이 아닐까. 마치 유기체에서 보다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전자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세대 내에서 세대 단위들의 역학관계 역시 변화할 수 있다는 점.  이러한 점을 가볍게 보고 '세대'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는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일전에 이웃분이신 oren님의 글 <아... 1987>에 이 주제와 관련한 답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답글 속에서 이러한 오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oren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하면, 만하임의 <세대 문제>의 결론으로 다가간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oren님과의 대화를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했던 문제를 <세대 문제>를 통해 정리하게 되었다.  동시에, 얼마 전 촛불 혁명을 완성시켰던 우리 역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촛불 혁명을 통해 우리가 '촛불 세대'라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촛불 세대'가 단순히 동일한 경험을 했던 '세대 위치'의 용어가 될 지 아니면,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끈 세대를 일컫는 '세대 단위'의 용어로 남을 지는 향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비록 1920년도에 씌여졌지만 지금도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명확하게 짚어준다는 점에서 <세대 문제> 역시 고전(古典)이라 생각된다.oren님의 글이 이달의 페이퍼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리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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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2-13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 님의 <아... 1987>에 남기신 댓글 잘 읽었습니다

- 6.10 민주 항쟁을 주도한 세대가 시간이 흘러 급격하게 우경화 되면서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는가?

- 시간이 흐르면 시대와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 만일 그렇다면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

나와같다면 2018-02-13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늘 생각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이였습니다

얼마전 유시민님의 말을 들으면서 그 마음이 좀 위로가 됐어요

˝사람은 살다보면 한 번 쓰이는 때가 있다˝

˝일정 시기에 옳은 일을 못하고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시기에 옳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한 시기에서 옳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옳은 삶을 산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말이 겨울호랑이님에게도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2-13 21:28   좋아요 1 | URL
^^: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1987년 이후 일시적으로 퇴행했었지만, 그 소중했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라 여겨지네요. 앞으로 잘해야겠지요.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만일 우리가 또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와같다면 2018-02-13 21:35   좋아요 1 | URL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으면서 보호하려고 했던 선배 박종운
박종운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치 행보를 걷지요..

저는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상처가 되는거예요

근데 썰전에서 유시민님의 말이 진심 마음에 평안을 가져왔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한 번 쓰이는 때가 있다..

얼마나 인간이 신념을 지키기가 어렵고 나약한 존재인지

겨울호랑이 2018-02-13 22:30   좋아요 1 | URL
정말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저 역시 한 인간이라 자신의 무기력을 절감하게 되네요... 그저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제 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2018-02-14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4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8-02-25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롭고도 시의적절한 글이네요. 만하임이 ‘세대 문제‘를 연구해서 책으로 펴냈다는 사실도 놀랍고요.

이념적인 성향으로서의 진보와 보수의 대립에 관해서는, 비단 ‘세대 사이‘에서뿐 아니라 그 어떤 시대나 지역이나 세대를 불문하고 늘상 ‘보편적인 성향상의 차이‘가 언제나 폭넓게 존재해 왔다고 봅니다. 다만, 동일 세대 단위에서의 편차가 다른 세대 단위에 비해 훨씬 더 적을 뿐이었을 테고, 그 또한 사례별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났으리라 여겨지고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물론 과거에도 늘 그래왔겠지만) ‘서로 다른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를 아주 극명하게 표출했던 여러 놀라운 사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기성세대‘들이 적잖이 당황해 하는 모습도 자주 엿볼 수 있는 듯합니다. 단적인 예가 이번 ‘평창 올림픽‘ 때문에 유난히 도드라지게 표출된 ‘세대간의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젊은 층들의 놀라우리만치 부정적인 여론과 남북 공동 응원이나 북측 인사들의 개폐회식 참석에 대한 과거에 비해 훨씬 싸늘해진 반응들은 일부 기성세대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예상밖의 반응이었을 테니까요.

이것 말고도 최근에 확산일로에 있는 ‘미투 운동‘도 한켠으로는 ‘달라진 세대 간의 인식 차이 문제‘로 살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운동이 지금에서야 갑자기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날로 빠르게 확산되는 데에는 물론 과거와는 아주 다른 여러 요인들이 있을 테지요. 과거 20년 혹은 30년 전에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을 만큼 ‘남녀 성평등 의식‘이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몰라보게 빠르게 확산된 측면도 있겠고, SNS 등 각종 미디어 매체의 발달도 큰 몫을 했을 듯하고요.

그러나 이번 미투 운동에서 발견하는 가장 놀라운 점은 아마도 화석처럼 너무나 단단히 굳어 있는 듯한 일부 기성 세대의 ‘성폭력에 대한 놀랍도록 무신경하고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생사여탈권이 온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전부 쥐어져 있는 것처럼 실로 오랫동안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누려왔던 추악한 일부 문화 예술계의 권력자들은 마치 ‘괴물‘처럼 똬리를 튼 채 무려 수십 년 동안이나 공공연히 끔찍한 성폭력을 계속 저질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직까지도 거의 없더군요. 심지어는 그런 포악한 권력자에 빌붙어 그 추악한 범죄 행위를 도리어 은폐하거나 두둔하려는 세력들까지도 아직까지 버젓이 활개를 치는 걸 보면 실로 경악스러울 정도고요. 돌멩이처럼 단단하기만 하고 또한 야만스럽기 짝이 없는 이런 특이한 세대 차이는 도대체 어떻게 깨부셔야 좋을런지요?

겨울호랑이 2018-02-25 19:06   좋아요 1 | URL
저 역시 평창 올림픽 직전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출전에 대한 20~30대의 부정적 여론을 보면서 통일 문제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0년간 통일정책의 부재가 같은 기간에 유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이질감을 더 느끼게한 측면도 있으리라고도 생각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oren님 말씀처럼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미투운동의 목소리 속에서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새로운 기운 또한 느끼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여러 생명이 솟아나는 봄처럼 새로운 변화가 오지 않았나 기대해 봅니다. 물론 봄에 오는 꽃샘추위처럼 다시 겨울을 느끼는 순간도 있겠지만, 이런 크고 작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봄에 겨울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세대차이를 느끼는 것이 사람사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많은 경우 사업(business)은 전쟁(戰爭)으로 표현된다. 이에 따라 많은 경제경영 관련서적들은 역사(歷史) 속에서 이상적인 CEO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리더십(Leadership)과 연계시키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 불었던 인문학 열풍 역시 이러한 기업의 풍토와 무관치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때 가장 넓은 영토를 점유했던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칸(Genghis Khan, 1162 ~ 1227)과 그의 군대인 몽골군에 대한 연구가 경영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몽골군의 전술에 대한 이야기와 이와 연관된 이야기를 살펴보자. 


1. 몽골군 전술


 몽골군의 전술은 크게 4가지 정도로 구분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카라콜 전술과 측면 공격 및 이중 포위 전술이 몽골군의 기동력을 잘 살린 전술이라 생각된다.

[그림] 몽골군 전술 [출처 : https://www.tes.com/lessons/DIVDAz5N3ZTBVA/mongols-great-unifiers-or-fiends-from-h]


가. 카라콜 전술 Caracole tactic


 몽골군은 백병전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활을 이용하여 적을 격멸하는 방식을 더 좋아했다. 사실 카라콜 전술을 활용한 것은 몽골군만은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 크랏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BC 115 ~ BC 53)은 카르하이(Carrhae) 전투에서 파르티아 군에 의해 처참하게 패배당하는데, 이때 파르티아군이 사용했던 전술 역시 카라콜 전술이었다.(이 전투에 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에서 상세하게 그려진다.)

 

 '첫 번째 열이 돌격하며 화살을 쏘다가 적군과의 거리가 40 ~ 50미터 지점에 이르면 선회한다. 이제 첫 번째 열은 파르티아 화살을 쏘는 동안 두 번째 열이 돌격한다. 돌격하는 열과 선회하는 열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각 열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 중요했다.(p146)'

 

나. 측면 공격 및 이중 포위 전술 Open-the-End Tactics


 다른 한편으로 몽골군은 적을 멀리서 포위하면서 원거리에서 타격을 가하면서 적이 지치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포위망의 한 쪽을 열어주게 되면 화살 세례를 견디다 못한 상대가 그쪽으로 몰리게 되고, 몽골군은 기동력을 활용해서 이들을 추격해서 섬멸시키는 전술이다.


 '몽골군은 적의 전방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후방에 맹공을 퍼부어 적을 혼동시키기도 하였다. 몽골군이 여러 방향에서 공격해 오면 적군은 포위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적이 도망갈 수 있도록 포위망에 빈틈을 남겨 놓았지만, 이는 사실 함정이었다. 겁을 집어먹은 적군은 더 빨리 도망치기 위해 무기를 내팽개치고 군율도 무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면 몽골군은 적의 후방을 공격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헝가리군과 벌였던 모히(Mohi) 전투(1241)였다. 달란타이(Dalantai)는 이 전술을 "열어서 끝장내는 전술(Open-the-End Tactic)"로 불렀다.(p152)'


 이러한 전술 역시 몽골군 고유의 것은 아니다. 완벽한 포위보다 불완전한 포위가 보다 바람직한 전술임을 우리는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Flavius Vegetius Renatus, ? ~ ?)의 <군사학 논고 De Re Militari>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주하는 적을 위해서 절호의 교량을 제공하라는 스키피오의 금언은 자주 권장되어  왔다. 왜냐하면 적은 자유롭게 도망갈 여지가 생길 때는 도주하여 각자 살아날 방법만을 생각하게 되고, 그리하여 혼란이 확산되며 대병력이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패배자가 허겁지겁 무기를 내버리고 도주할 때 추격자에게는 어떤 위험도 있을 수 없다.... "패자에게 희망을 주어야만 정복자는 안전하다."(p168)


2. 조선수군과 한산대첩(1592)


 몽골군의 두 가지 성공적인 전술을 결합한 형태를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 ~ 1598)의 해전(海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한산대첩 등 전투에서는 대포를 활용하여 멀리서 적을 격멸하는 카라콜 전술이 활용되며, 적의 패잔병을 소탕할 때는 위장 퇴각 전술을 활용해 적을 넓은 바다로 끌어내어 섬멸시키는 충무공의 전술 속에서 우리는 몽골군의 전술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성공적인 전술은 시대와 장소를 떠나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라 여겨진다.


 '일본군이 어느 결엔가 학익진(鶴翼陳) 안에 갇히게 되자, 거북선은 일본군 대열로 돌진해 쇠돌기와 대포로 대혼란을 야기하며 갈레아스 전함 역할을 수행했다...이순신의 위장된 퇴각 전술을 통해 또다시 일본군 잔존 함대가 보다 깊은 바다로 이끌려 나왔고, 조선 수군은 갑작스레 진로를 역전해 대포로 침략자들을 괴멸시켰다.(p136)... 육지에서처럼 일본군은 주력함에서 널빤지를 댄 현측의 총을 쏠 수 있는 총안(銃眼)에 진을 친 사수 대열이, 배에 쳐놓은 얇은 울타리 뒤에 있는 조선 수군을 도륙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 사수들은 자기네 총알이 조선 수군 뱃전의 두터운 울라리를 뚫을 수 없으며, 조선 대포가 자기네 화승총보다 사거리가 훨씬 길다는 걸 발견했다.(p137)'


[그림] 학익진도(출처 : 아시아경제)


3. 변화(變化)와 불변(不變)


  몽골군의 전술이나 충무공의 전술 속에서 우리는 변화(變化)와 불변(不變)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기회를 포착하는 반면, 상대는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켜 큰 위험없이 반대편을 제압하는 것이 성공하는 전략전술의 기본이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를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불변의 일자(一者)를 강조한 파르메니데스 중 보다 현실에 맞는 사상(思想)을 제시한 이는 누구인지 분명해 보인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가사적인 것을 고정된 상태에서 두 번 접촉할 수도 없다. 그것은 변화의 급격함과 빠름에 의해서 흩어졌다 또다시 모이고 합쳐졌다 떨어지며, 다가왔다 멀어진다.(p244)' <델포이의 E에 관하여> 392b > - 헤라클레이토스 Herakleitos(BC 6C 초 ? ~ ?)-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속박들의 한계들 안에서 부동(不動)이며 시작이 없으며 그침이 없는 것으로 있다. 왜냐하면 생성과 소멸이 아주 멀리 쫓겨나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참된 확신이 그것들을 밀쳐냈기 때문이다. 같은 것 안에 같은 것으로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놓여 있고 또 그 자체만으로 놓여 있고 또 그렇게 확고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p283)' <심플리키오스(DK28B8)> -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BC 510 ~ BC 450)-


3. 기업의 혁신과 적응 : 기업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껍질을 벗어야 한다

 

다시 경영의 세계로 넘어오면 경영의 세계에서도 변화가 강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영의 책 The Business Book>에서는 기업의 혁신과 적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적응과 혁신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제품이 변화하지 않을 때조차 제품 생산과 유통, 마케팅에서 사용되는 절차 중 많은 부분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많은 업무가 자동화돼 컴퓨터와 로봇이 작업을 수행한다. 홍보 활동 역시 변화한 인구학적 통계자료 및 전 세계로 확대된 시장, 소비자 기호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 확실하게 기반을 다진 브랜드조차 혁신을 피하지 못한다.(p57)'


 그리고, 구체적인 혁신의 사례로 <경영의 책>에서는 '이건희와 삼성전자'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혁신하는 데 성공한 유명한 기업이 바로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다.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자회사로, 이제 막 시작된 기술 산업 분야에서 쏟아지는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탄생됐다... 1993년 6월 7일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고위 경연진을 모아놓고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혁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아내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라는 유명한 말은 이건희 회장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보여준다.(p56)... 절차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시장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소비자에게 더욱 친화적인 브랜드로 거듭났다.(p57)'


[사진] 이건희 (출처 : <경영의 책>)


 <경영의 책>에서 말한 바와 90년대 초반 이후 삼성전자는 혁신을 통해 세계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위상에 맞는 처신을 현재의 삼성은 하고 있는가? 현대사회에서 기업은 사회적 존재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생태계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볼 때 기업의 혁신은 기술혁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볼 때 <경영의 책>에서 말하는 다음의 구절은 우리가 아니라 삼성 관계자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 아닐까?


  '가장 성공한 기업은 혁신이 끊임없는 과정임을 잘 안다.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해야 하듯, 기업도 변화무쌍한 생태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훌륭한 리더는 적응 실패가 소멸로 이어짐을 안다.(p57)'


PS.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 中

 

  1. 무협지같은 재미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제4권과 제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2. 건축학도에게는 <제10권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를

  3.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바라보는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 역사를 읽고 싶으신 분에게는 <제14권 : 그리스도의 승리>를

 4. 잠이 오지 않으시는 분들께는 <6권 : 팍스 로마나>를 추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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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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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0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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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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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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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1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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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2-11 12:18   좋아요 1 | URL
전쟁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에 선호에 관계없이 알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로운 혐의가 2심 재판 후 불거지고 있으니, ‘히드라‘가 생각나네요.. 덕분에 주가 부양은 잘 되겠어요^^:

야상곡(夜想曲) 2018-04-15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골군의 기동및 포위전술은 바로 몽골군들이 즐겨사용하는 품종의 군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전술 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5 09:0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몽골산 말은 작지만, 먼 거리까지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품종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상곡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외모와 달리 내실있는 말과 이를 잘 활용한 지혜가 몽골의 세계 제패의 한 원인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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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 ~ 1980)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현대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기력'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자유, 평등, 인간 본성, 사랑 등의 개념을 통해 무력감의 원인을 밝히고 있는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의 본문 내용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무기력을 떨쳐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평등(平等, Equality)


 오늘날 '평등'의 개념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과거 평등의 의미가 '인간은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을 가지는데 반해, 오늘날의 평등의 의미는 타인과 구별되지 않음을 뜻한다. '개인은 개별 존재로서의 의미 대신에 추상적인 존재(전체)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전체로서의 개인(추상화된 개인)이 아닌 개별화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평등의 개념은 계몽주의 철학에서 절대주의 국가에 저항하며 발전하였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 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한에서 서로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계몽주의 철학과 인문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평등을 동일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같다는 것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p30)'


2. 인간의 본성(本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은 주어진 부분(상수)과 변화되는 부분(변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이처럼 규정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면서 이성과 사랑의 힘을 통해 자신의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적극적인 '자유'를 통해 행동화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분열을 해결하는 수단인 이 대답들은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정의를 낳는다. 분열과 불균형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구성하는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이다.(p48)'


 '인간의 본성은 원칙일 뿐 아니라 능력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과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능력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인간 본성의 기본 요인이다.(p49)'


3. 자유(自由, Liberty)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자아실현(自我實現)'은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자유의 활동으로 달성가능하며,  적극적인 자유와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개인은 점점 더 성장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적극적인 자유는 현대적 의미의 '평등'과는 달리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로부터 적극적 자유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자아실현이 사고 행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인격의 실현을 통해, 모든 감정적 가능성과 지적 가능성이 활발하게 표현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극적 자유는 통합된 전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다.(p78)'


 '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발견, 혹은 인간 본질 그 자체이다. 그러니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유한성으로 인한 장애, 제약,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p61)'


 '자발적 활동은 자아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그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p81)... 모든 자발적 활동에서 개인은 세계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온전해지고 더 강해지며 더 탄탄해진다.(p82)'


 '자아실현으로서의 적극적인 자유는 개인의 고유함을 완벽히 긍정한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다르게 태어난다. 이 차이는 태어날 때 물려받은 신체적, 정신적 기질이 다른 탓이며, 거기에는 수많은 상황과 각자의 경험이 추가된다.(p85)'


4. 사랑(愛 Love)


 적극적인 자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기에, 우리는 상처받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p73)


 '사랑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이 방식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할 때 유일하게 만족을 주는 방식이다. 사랑이란 그 사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온전함과 현실을 둘 다 보존하는 유일한 형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복종하거나 그에게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사랑"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람은 자신의 온전함과 독립이라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상실한다. 진정한 사랑에서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존된다.(p20)'


5. 교육(敎育 Education)


 이러한 '적극적 자유 -> 자발적 활동 ->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현대 사회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며, 외부에서 바라는 바를 우리에게 강제하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어렸을 적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 소망은 물론 심지어 감각적 느낌까지도 주관적으로 우리 것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고,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p119)'

 

 '우리의 느낌과 감정 못지 않게 독창적 사고 역시 왜곡된다. 처음부터 우리의 교육은 아이의 독자적 사고를 막고 아이의 머리에 완성된 생각을 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이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한 손으로, 이성으로 세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낯설고 거대한 세상에서 방향을 잡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p93)'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는 현대적 의미의 '평등'을 추구한 결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현대인들이 '무기력'에 빠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 및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것이다. 무지와 인식의 결핍은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무력감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온갖 망상을 총동원하여 절망적으로 저항해 봤자 개인은 결국 내면적으로 그 무기력을 인식하게 된다.(p180)'


  저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결국 현재 상화에 대한 '관찰'로부터 올바른 현실 '인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발적 활동'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의 결론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는 현대인들의 무기력 문제를 정신분석학의 방법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우리의 무기력을 완전하게 치유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 사회적인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 역시 현대인들에게 많은 무력감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주는 무력감은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행위를 통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 평등, 우애(自由, 平等, 友愛, Liberte, Egalite, Fraternite)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대부터 사용된 구호 '자유, 평등, 우애(또는 박애)'는 그러한 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앞서 '자유'와 '평등'이 개인의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덕목이라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이념으로서 우애(Fraternite)가 실현될 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무력감이 온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자유, 평등, 우애(박애) [출처 : 뉴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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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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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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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2-08 17: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요 위의 사진 제가 가지고 있는 ‘레미제라블‘ 표지랑 닮았어요.
이 참에 레미제라블 시도해 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2-08 19:07   좋아요 2 | URL
^^: 「레미제라블」표지하면 어린 코제트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저는 방대한 양에 도전을 미루고 있습니다만, 양철나무꾼님의 좋은 리뷰 기대해 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2-08 17: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 읽은 책인데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읽으니 뭔가 책을 다 읽어버린 느낌이예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8 19:09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다만, 책의 문장과 작은 단락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 조그만메모수첩님께서 직접 읽으시면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케 2018-02-08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애 fraternité라는 번역을 늘 수상쩍게 봅니다. 맥락 상 피지배계층 간의 ‘형제애적 연대˝로
뜻을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예전엔 ‘박애‘라는 얼척없는 일본식 번역어로 불렸으니 뭐.
현 시대에선 계급, 계층간 정서적, 물리적 연대 solidarité로 새기는게 맞을 듯합니다

프롬 할배는 60년대 미국 사회당 시절의 글들이 이채롭죠. 프롬 할배에게서 프로이트를 -10
마르크스를 +20하면 좋을텐데....ㅋ

겨울호랑이 2018-02-08 19:12   좋아요 0 | URL
^^: 알케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혁명구호에 ‘박애‘는 좀 어색하지요. 알케님 말씀처럼 ‘형제애적 연대‘ 또는 ‘계급 내 단결‘정도의 의미가 보다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리히 프롬의 다른 저작도 폭 넓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알케님 글을 읽고 하게 됩니다^^:

[그장소] 2018-02-09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부분에선 그 시대에 이런 통찰이 ? 싶다가 결론에선 맥이 탁 풀린 , 그 시대의 통찰력도 어쩔 수 없구나 싶었던 책였는데요 . 그래도 처음 무기력을 들여다 보게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랬네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9 08:56   좋아요 2 | URL
^^: 그렇군요.. 저는 대체적으로 프롬의 통찰력에 대해 많이 감탄한 편이었습니다.. 그장소님께서 말씀하신 프롬의 한계에 대해서는 제가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8-02-09 12:14   좋아요 2 | URL
시대를 생각하니 , 옛 사람의 통찰에 놀랐던 거더라고요 . 감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걸 고민한다는데 놀라운 감탄을 했었고요 . ㅎㅎ이미 예견된 무기력이라 , 알아도 안다는 것 외에 별수 없겠네..그랬어요 . 저 감정이 너무 마이너한 가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2-09 12:35   좋아요 2 | URL
무슨 말씀을... ^^: 그장소님께서 마이너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라구요.. 프롬이 1980년에 사망했으니, 아주 옛날 사람도 아니지만, 요즘 우리가 하는 고민이나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온 것들이 다수인 것 같습니다. [기출문제]가 중요한 것은 반드시 자격시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것 같네요ㅋ
 

1. 도덕경


노자(老子, BC 604 추정)의 <도덕경 道德經> 에서는 무위(無爲)를 말하며, 자연의 법칙에 따를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제16장에서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순리(順理)에 따를 것을 강조한다.

<도덕경 제 16장  第16章> 


지허항야至虛恒也, 수중독야守中篤也 

텅 빈 상태를 유지해야 오래 가고, 중(中)을 지켜야 돈독해진다.


천내도天乃道 도내구 道乃久 몰신불태 沒身不殆

하늘에 부합하는 일이 곧 자연(自然)의 이치다. 자연의 이치대로 하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p145)'


2. 엔트로피 법칙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  우리 주변의 자연(nature)법칙에는 물리학의 법칙이 포함되며, 열역학의 법칙도 여기에 속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며, 엔트로피의 증가는 다른 말로 유용(有用)한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한다.


'열역학은 우리가 아는 과학적 개념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놀라운 것이다. 제1법칙과 제2법칙을 합쳐서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


제1법칙을 부연설명하자면 에너지를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p50)... 제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가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이 벌금은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그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Entropy)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츨정하는 수단이다.(p51)'


 엔트로피의 증가는 평형상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데, 이 극대점은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일정량의 에너지가 무용한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뜻이다.(p52)... 평형상태는 엔트로피가 극대점에 달한 상태이며,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클라우시우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요약했다. "엔트로피(무용한 에너지의 총량)는 극대점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p53)'


3.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에너지는 변환되고, 변환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는 손실된다. 물론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되지만, 유용한 에너지는 손실된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했을때,  자연의 이치에 따른다는 '무위(無爲)'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으면 엔트로피의 억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을 것인지. 

 환경 오염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부(負)의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행동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선택하는 '무위(無爲)'는 단순히 비움(虛)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행(行)함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정한 '무위'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자는 그 컵을 채우려는 인간의 행위를 유위라고 부른다. 유위란 곧 존재에 있어서 허(虛)의 상실이다. 그러니까 그 반대방향의 행위, 즉 빔을 극대화(極大化)하는 방향의 인간의 행위를 바로 무위라고 부르는 것이다.(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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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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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0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올해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따뜻한 일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04 11:03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한 해 좋은 일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행복의 정복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행복(幸福)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만족함. 또는 그러한 상태. [출처 : 네이버 사전]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의 <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는 행복(幸福)에 관한 에세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불행(不幸)과 행복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행복한 사람에 대해 정의한다.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사는 사람이자 자유로운 사랑과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 그리고 다음에는 그의 사랑과 관심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사람이다.(p234)'


  러셀이 말한 불행의 원인은 경쟁, 권태와 자극,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다. 반면, 행복의 원인은 행복의 원인인 열의, 사랑, 가족, 일, 일반적 관심사, 노력과 체념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독자적으로 개인의 불행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의 감정을 구성한다. 예를 들면, 지나친 경쟁은 개인의 피로를 유발하고, 다른 이들의 성공을 질투하면서 자신의 삶에 권태를 느끼고 자극을 추구하게 만드는 등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너무나 유명한 톨스토이(Lev Tolstoy, 1828 ~ 1910)의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의 첫 문장처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나름나름의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를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자.


 철학자인 러셀은 서두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의 범위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행복으로 한정한다. 일생 한두 번 정도 발생하는 극단적인 경우에 행복과 불행을 말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말일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나는 극단적인 외부적 불행의 요인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한정시키고자 한다. 일용할 양식이나 주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수입이 있고, 일상적인 활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 충분히 건강한 사람들을 전제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식을 모두 잃었다든가 사회적 위신을 잃었다든가 하는 극단적인 불행을 고려하지 않기로 하겠다... 나의 목적은 문명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p14)'


1. 경쟁 Competition

 '고통의 뿌리는 경쟁에서의 성공을 행복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데서 돋아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성공은 행복의 한 요소에 불과하며, 따라서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그 성공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p50)... 인생의 주요한 목표로 간주되는 경쟁은 너무 잔인하고도 집요하며,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삶의 기반으로 삼기 힘들다.(p56)'


2. 권태와 자극 Boredom and Excitement

 '권태의 본질 중 하나는 현재의 상태와 보다 더 유쾌한 다른 상태를 비교하는데 있다... 권태는 본질적으로 어떤 일에 대한 욕망이 좌절된 것을 뜻한다. 그것은 권태의 희생자로 하여금 그 날을 다른 날로부터 구별하게 하는 사건이면 충분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권태의 반대는 쾌락이 아니라 자극이다.(p58)'


 3. 피로 Fatigue

 '오늘날처럼 발달된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피로는 신경의 피로이다.(p70)...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걱정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때에도 그들은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한다.(p72)... 대부분의 걱정은 그 문제가 대단치 않은 것임을 깨달으면 감소될 수 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며, 우리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 또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p74)'


 4. 질투 Envy

 '평범한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 중에서 질투는 가장 불행할 것이다. 질투가 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불행하게 되기를 바라고, 또 처벌을 받을 염려가 없을 때에는 언제나 그렇게 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마저 불행을 초래한다.(p85)'


5. 죄의식 The sense of sin

 '인간이 자신의 합리적인 도덕률을 어겼을 때라 할지라도, 과연 죄의식이 보다 나은 생활 방식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를 느낀다. 죄의식은 비천한 것, 자존심이 결여된 것이다.(p104)... 사실상 죄의식은 바람직한 생활이 되기는 커녕 그 반대이다. 죄의식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준다.(p105)


6. 피해망상 Persecution Mania

 '피해망상은 아주 극단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공인된 형태의 정신이상이다. 상상적인 박해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종종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그 결과 자유를 속박당하게 된다.(p109)'


7. 여론에 대한 공포 Fear of Public Opinion

'대부분의 경우 불필요한 체면이 필요 이상으로 문제를 악화시킨다. 여론은 여론에 무관심한 사람들보다는 여론을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난폭하다.(p128)... 여론을 경멸한다는 것은 비록 전도된 방식이기는 할지라도 아직 여론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징조이다. 그러나 정말로 여론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힘이며 행복의 원천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사회적 자유의 원천을 상실하고 있으며, 획일적인 것만이 바람직한 것이 되었다.(p133)'


 <행복의 정복>은 불행과 행복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우리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다. 다른 한 편으로 철학자인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 속에서 우리가 깨닫지 못한 일상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우리 삶의 방향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다만, 저자와는 생각을 달리 하는 지점이 생기는데 다음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행복'은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림] 대상화된 행복과 우리 마음의 상태(by 겨울호랑이) 


 행복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 정복의 대상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불행한 상태에 놓여 영원히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영원한 갈증과 배고픔으로 저승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탄탈로스(Tantalos)와 같은 존재의 모습을 <행복의 정복>이라는 짧은 문장에서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타자(他者)화되는 대상이 아닌 우리 자신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타자화 된 '행복'은 정복(conquest)의 대상이 되어 죽을 때까지 목적이 될 것이다.( the conquest of happiness) 이와는 반대로, '행복'이 단순히 상태의 표현이라면 마음의 변화만으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 I am unhappy에서 I am happy가 되는 것처럼. 행복은 우리 밖 어딘가에 쫓아가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상태임을 다시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그림] 탄탈로스 (출처 : http://www.arkeorehberim.com/2015/09/tantalosun-cezasn-kime-vermek-isterdiniz.html?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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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2-03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고 싶은 책들은 겨울호랑이님께서 죄다 읽으셨더군요.흐흐~러셀도 좋아하는 철학자이고 탄탈로스 이야기도 요즘 빈번히 접하고 있어요.
안나까레리나의 문장으로 리뷰를 구성하시는 글~ 총균쇠가 떠오르네요~^^

겨울호랑이 2018-02-03 15:19   좋아요 2 | URL
^^: 저 역시 북프리쿠키님께서 읽으신 책 목록 속에서 제가 읽어야할 책들을 발견하게 되니 서로 돕고 사는 좋은 이웃이 되겠군요. (아직 괴테까지 게을러 손이 못가고 있어요.ㅋ) 아는 문장이 몇 문장 없어서 최대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총, 균, 쇠>는 오래 전 글인데, 북프리쿠키님, 제 오랜 글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02-03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의 수치는 계속 고정인가요?
겨울호랑이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03 15:52   좋아요 2 | URL
^^: 주관적인 행복의 상태를 수직선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변화로 표현하기는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요 ㅋ 바람이 세차게 부네요. 서니데이님도 여유로운 주말 보내세요!^^:

2018-02-03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2-03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이 정복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된다는 말 정말 공감가네요. 한때 삶의 목적이 행복일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주관적인 영역이다보니 내가 행복해도 타자가 그로인해 불행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이 과연 목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러니 행복엔 윤리적인 전제가 항상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3 20:05   좋아요 1 | URL
조그만 메모수첩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살다보니 ‘행복하더라‘는 말은 가능해도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구나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행복감을 느낀다면 정말 잘못된 일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행복의 의미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2-03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