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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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문제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85
카를 만하임 지음, 이남석 옮김 / 책세상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대 문제 Das Problem der Generationen>는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 ~ 1947)이 저술한 책으로 '세대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기존의 방법론을 종합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만하임의 '세대론(世代論)'의 특징과 <세대 문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책이 씌여진 1920년대 말에는 '실증주의적(positivistschen) 세대론'과 '낭만주의적-역사주의적(romantisch-historitischen) 세대론'이 대표적인 연구 방법론이 었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 두 방법 모두 한계가 있었다.
'실증주의적 세대론은 역사가 발전한다는 단선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양적 시간에 천착한 반면, 낭만주의적 세대론은 동시대에 서로 다른 세대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바탕으로 질적 시간에 집중했다. 실증주의적 세대론은 통시적 개념으로 세대에 집중했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당연히 진보이고 나이 든 세대는 보수라는 천편일률적인 개념에 도달했다. 반면 낭만주의적 세대론은 공시적 개념에 집중했기 때문에, 같은 세대가 경험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동일 세대 내에 진보적인 목소리와 보수적인 목소리가 공존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즉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p113)'
실증주의적 세대론은 '젊은 세대 = 진보' , '나이든 세대 = 보수'라는 획일화된 공식을 제시하여, '젊은 보수'의 개념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적 세대론은 동일 세대내의 다른 성향(性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집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성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들의 문제점을 모두 고려하여 만하임은 통합된 시간관을 제시하고 있다.
'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자신이 놓인 "사회 내 위치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만하임은 양적시간과 "사회적 위치의 특수성" 그리고 질적 시간과 "사회 위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시간관을 제시한다.(p119)'
또한 저자는 세대를 사회운동론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세대의 내용을 '세대위치', '실제세대', '세대단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동일 세대 내에 복수의 세대 단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동일 세대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세대위치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역사적으로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세대는 같은 시대, 같은 역사를 경험한다는 것만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 세대를 살아가는 공동 운명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p121)... 세대단위는 실제세대보다 훨씬 더 깊이 세대 운동에 관여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p122)... 세대단위에서 중요한 것은 동일 세대 내에 단 하나의 세대 단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세대 단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만하임의 세대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성이자 독특성이다.(p122)'
'동일한 실제 세대 내에서 이러한 경험을 각각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소화하는 이러한 집단들은 동일한 실제 세대의 범주 내에서 각각의 다양한 "세대단위"들을 구성한다.(p67)'
그렇다면, 세대문제는 '세대'로 통합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세대단위'별로 구분해서 분석해야하는 대상인가? 만하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세대단위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엔텔레키(enteleechie)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대단위로는 파악될 수 없고, 범주 단위(세대)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세대단위들은 완성된 형상이 결코 아니며, 세대단위들은 때에 따라 고유한 엔텔레키(통일된 의도의 중심, 형성적 원리)를 발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엔텔레키는 그 자체로 파악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조류 엔텔레키들의 범주 내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p85)'
'엔텔레키'는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의 <모나드론 單子論>에서 언급된 단순한 지각만을 가진 실체다. 세대단위들을 '엔텔레키'로 해석한다면, 세대단위들의 구체적 의사 행위는 보다 상위 개념인 '세대'를 통해 표현된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그림] 라이프니츠( 출처 : 위키백과)
이것을 보다 쉽게 풀이하자면, '세대단위-유전자(遺傳子)', '세대-개체(個體)'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유전자가 모여서 개체를 이루고, 유전자들의 의도가 개체를 통해 표현되듯 세대단위와 세대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대 문제>에서는 세대 내의 다양한 목소리 표현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1920년대 씌여진 만하임의 <세대 문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이 있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에서 보듯이 군부 독재를 무너뜨린 80년대 민주화를 이루었던 세대가 시간이 흘러 50 ~ 60대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또는 최근 20대의 젊은 층에서 급격하게 우경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세대 문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당시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세대 단위'들과 지금 주도적인 '세대 단위'는 다를 수 있다는 것.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대단위들과 현재 대한민국의 50 ~ 60대를 구성한 세대단위들은 동일한 '세대 위치'에 놓여있지만, 이들은 다른 '세대 단위'들이며 다른 성향을 가진 집단들이 아닐까. 마치 유기체에서 보다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전자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세대 내에서 세대 단위들의 역학관계 역시 변화할 수 있다는 점. 이러한 점을 가볍게 보고 '세대'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는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일전에 이웃분이신 oren님의 글 <아... 1987>에 이 주제와 관련한 답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답글 속에서 이러한 오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oren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하면, 만하임의 <세대 문제>의 결론으로 다가간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oren님과의 대화를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했던 문제를 <세대 문제>를 통해 정리하게 되었다. 동시에, 얼마 전 촛불 혁명을 완성시켰던 우리 역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촛불 혁명을 통해 우리가 '촛불 세대'라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촛불 세대'가 단순히 동일한 경험을 했던 '세대 위치'의 용어가 될 지 아니면,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끈 세대를 일컫는 '세대 단위'의 용어로 남을 지는 향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비록 1920년도에 씌여졌지만 지금도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명확하게 짚어준다는 점에서 <세대 문제> 역시 고전(古典)이라 생각된다.oren님의 글이 이달의 페이퍼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리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