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제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듣고 흘려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겁쟁이의 이 한탄이 어째서 예리한 바늘이 되어 제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인지요?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57/206


 저는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통과한 부락은 모두 관리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머릿속에 의심이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관리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배교한 자들이 관리의 앞잡이로 이용된다는 것을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배교자는 자신의 비참함과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동료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과 같은 운명 속으로 끌어넣으려고 합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74/206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침묵 沈默>에는 두 침묵이 나온다. 하느님의 침묵과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의 침묵. 로드리고 신부는 끊임없이 자신과 일본인 신자들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기도를 드리며 탄원을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 뿐이다. 다른 한 편으로 로드리고 신부는 기치지로의 고백성사 요청에 대해 침묵한다. 계속 이어지는 기치지로의 배교(背敎)와 회개(悔改). 로드리고는 나약한 기치지로의 모습에 대해 침묵한다.


 농민들 중에 저희 종교를 불교와 비슷한 종교로 혼동하는 사람조차 상당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 자비에르 신부님조차도 통역의 실수로 처음에는 비슷한 오역을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은 우리가 믿는 주님을 그들이 오랫동안 믿어 온 태양의 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73/206


  로드리고 신부는 하느님의 침묵을 '신(神)의 부재(不在)'로 해석하고 절망에 빠져든다. 자신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처럼. 자신보다 앞서 일본에 들어와 배교하고 일본인이 된 페레이라 신부는 제자 로드리고 신부에게 자신의 배교를 정당화하고 자신의 길을 따를 것을 권유한다. 참된 진리인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일본의 신자들은 진정한 신자가 아니며, 교회를 통한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페레이라 신부. 그렇지만, 이러한 말이 로드리고 신부의 마음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정작 그를 움직인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일본인 신자들의 순교.


 일본인은 인간을 미화하거나 확대시킨 것을 신이라 부르고 있어. 인간과 동일한 존재를 신이라 부르지.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하나님은 아니야.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55/206


  성 자비에르 신부가 가르치신 하나님이라는 말도 일본인들이 멋대로 오오히(大日)라고 부르는 신앙으로 변해 있었어. 태양을 숭배하는 일본인에게 데우스(Deus)와 오오히는 거의 비슷한 발음이었던 거야. 그 착오를 비로소 깨닫게 된 내용의 편지를 자네는 읽지 않았던가? (p153)... 데우스와 오오히를 혼동한 일본인은 그때부터 우리의 하나님을 그들 식으로 바꾸고, 그런 다음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 언어의 혼란이 없어진 뒤에도 이 굴절되고 변화된 신앙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거야. 자네가 아까 말한 포교가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가서도,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만을 믿고 있었던 거지.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53/206


 이 나라는 늪지대야. 결국 자네도 알게 될 테지만, 이 나라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늪지대였어. 어떤 묘목이라도 그 늪지대에 심으면 뿌리가 썩고 잎이 누렇게 말라 버리지. 우리는 이 늪지대에 그리스도교라는 묘목을 심은 거야.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52/206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신부의 믿음으로 인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 이들을 바라보며 로드리고는 결심하고 바로 이 순간, 로드리고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답을 듣는다. 침묵이 깨진 것이다.


 "밝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단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이루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94/206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였을까. 분노하는 하느님, 질투하는 하느님, 욥의 하느님, 요나의 하느님이 아니었을까. 죄에 대해 심판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더 큰 재산을 돌려주며, 이방인들을 회개시켜 주시는 약속의 하느님. 절대적인 교회의 아버지로서 하느님을 생각했기에 이들은 낯선 문화와 약해지는 신자들의 마음에 대해 침묵하며 배척했던 것은 아닐까. 로드리고 신부의 침묵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하느님의 침묵은 선택이라는 상황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목자(牧者)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모든 고통에서 나오는 선택을 '수고했다'며 받아들이는 마음.


 <침묵>을 통해 로드리고 신부의 침묵은 구약(舊約)의 침묵이라면, 하느님의 침묵은 신약(新約)의 침묵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배교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성직자로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야 했을 로드리고 신부. 이를 통해 그는 성직자로서 죽었지만, 믿음 안에서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난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인간까지 그리스도는 찾아 구원하셨던 것일까? 문득 신부는 이렇게 생각했다. 악인에게는 또한 악인으로서의 강함과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치지로는 악인의 가치도 없다. 누더기처럼 어딘지 더러울 뿐이다. 불쾌감을 누르며 신부는 고해성사의 마지막 기도를 외우고 습관에 따라서 "평안히 쉬어라"라고 중얼거렸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20/206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나 불평이나 원망을 늘어놓기 위해서다. 신부로서 그것은 굴욕이며 수치였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 위해 있는 것이지 결코 원망을 듣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시련의 날에 악창에 걸린 욥이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_ 엔도 슈사쿠, <침묵> , p97/206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17세기 일본교회를 배경으로 신앙(神仰)의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선교를 둘러싼 기존 사회와의 갈등과 신앙문제를 다루는 작품 속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역시 19세기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기에, <침묵>은 보다 의미있게 다가온다. 로드리고 신부의 인간적인 고민과 함께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를 생각하게 된다. 윤지충(尹持忠) 바오로와 권상연(權尙然) 야고보 등이 제사를 거부하고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며 4대 박해로 이어지는 한국 가톨릭교회 순교사 속에서 북경교회에서 교리(敎理) 해석을 좀 더 유연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천주실의 天主實義>의 저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처럼 동양문화의 천(天)과 하느님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유연성이 있었더라면, 조선교회와 일본교회는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이와 함께, 영화 <미션 MIssion>에서 보여지듯 신부들은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공동체를 낯선 곳에서 펼치려 하지만, 결국 제국주의의 첨병에 설 수 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역사 속에서 로드리고 신부의 기도에 대한 응답에 빠른 응답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결말이었을까라는 의문도 함께 던져본다.


  번역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 하려 한다. 사실, <침묵>은 예전에 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읽고, 이번에 홍성사에서 출간된 책으로 다시 읽었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이지만, 용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불만을 갖는다.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번역도 가톨릭에 맞게 하는 편이 자연스러운데, 개신교식으로 번역된 부분은 낯설게 다가왔다. 가톨릭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 Silence>가 있다는 것을 이웃분이신 레삭매냐님의 소개로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Charles Scorses, 1942 ~ )의 작품이니만큼 기대가 된다. 레삭매냐님께 감사드리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일찍이 나는 당신과 같은 가톨릭 신부에게 물은 적이 있소. 부처님의 자비와 가톨릭교의 하나님의 자비는 어떻게 다르냐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중생이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부처님의 자비, 이것을 구원이라고 일본에서는 가르치고 있소. 하지만 그 신부는 분명히 말했소. 가톨릭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그것과 다르다고 말이요. 가톨릭교의 구원이란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뿐 아니라 신도가 가능한 한 지켜야 할 강인한 마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보면 당신도 역시 가톨릭교의 가르침을 이 일본이라는 늪지대 안에서 어느 틈엔가 잘못 인식해 버린 것이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90/206


 첨탑을 가진 건물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곳에 교회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저 진흙과 나무 조각을 반죽해서 만든 가난한 움막 속에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신도들은, 어쩌면 자기들에게 성체성사를 주고 자신들의 고해를 들어주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줄 사제를 굶주린 듯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교사나 사제들이 모두 추방당한 이 광야에서 이제 그들에게 생명수를 가져다줄 사람은 이 황혼의 섬에 있는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선이요, 당신이 계시는 집은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7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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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5-07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이하라 2022-05-07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7 20:53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thkang1001 2022-05-07 1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5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5-08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5-08 12:13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thkang1001 2022-05-08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8 12:14   좋아요 0 | URL
^^:) 다소 흐린 날이지만, 좋은 일요일 오후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5-08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관왕이시군요.
더더욱 축하드리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8 21:16   좋아요 0 | URL
네 이번 달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얄라님 ^^:)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들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그들의 죽음은 결국 교회의 기초가 되는 돌이 된 거라고.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시련은 결코 주시지 않는다고. 모키치도 이치소우도 지금 주님 옆에서 그들보다 먼저 간 많은 일본인 순교자들과 똑같이 영원의 지복(至福)을 얻고 있을 것이라고. 저도 물론 그런 것은 백 번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도 왜 이런 비애의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 남는 것일까요? 어째서 기둥에 묶인 모키치가 숨이 끊어질 듯이 불렀다는 노래가 이렇게 고통스러움으로 머리에 되살아오는 것일까요?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의지와는 달리 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섭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육체의 공포는 의지와 관계없이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가르페가 있을 때는 빵을 두 개로 나누듯이 공포도 서로 나누었습니다만, 앞으로는 혼자서 이 밤바다의 추위와 어둠을 모두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무기둥에 묶여 파도에 씻긴 모키치나 이치소우의 인생은 얼마나 익살스러운 연극인가. 많은 바다를 건너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 나라에 다다른 선교사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환영(幻影)을 계속 뒤쫓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저는 그때까지 계속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통과한 부락은 모두 관리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머릿속에 의심이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관리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배교한 자들이 관리의 앞잡이로 이용된다는 것은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배교자는 자신의 비참함과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동료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과 같은 운명 속으로 끌어넣으려고 합니다. 그 심사는 추방당한 천사가 하나님의 신도를 죄 가운데로 유인하려는 심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기치지로가 하는 말처럼 인간을 모두 성자나 영웅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박해받는 시대에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신도가 배교한다거나 목숨을 던진다거나 할 필요도 없이 은혜받은 그대로 신앙을 계속 지킬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평범한 신도였기 때문에 육체의 공포를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 어디에도 갈 수 없어서 이렇게 산속을 헤매고 있답니다, 신부님." 가련하고 불쌍한 자에 대한 연민이 지금 이렇게 제 가슴을 아프게 조이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으라고 하자 기치지로는 겁에 질린 듯이 명령대로 조심조심 땅 위에 당나귀처럼 무릎을 꿇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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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4-12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과 다른 영화의 결말이
참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침묵의 다양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겨울호랑이 2022-04-12 10:36   좋아요 1 | URL
<침묵>이 영화로도 나와 있군요. 예전에 가톨릭 출판사(바오로딸)에서 나온 <침묵>을 읽고 이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침묵>을 읽고 있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을 듣고 보니 영화로도 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명령을 어긴 사람은 장수이고 사졸이란 장수의 명령을 좇는 사람인데, 또 무슨 죄이겠습니까! 받아들였다가 그 장수를 죽여서 적국에게 사죄하며 사졸을 조문하고 그들을 어루만지니 이는 좋기는 하지만 어찌 반드시 백성을 버리고서 적국에 보탬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여러 신하들이 또 존호(尊號)를 올리기를 요청하자, 당주는 말하였다. "존호는 헛된 미명(美名)이고, 또 옛날 것이 아니요." 드디어 받지 않았다.
그 후로부터 자손들이 모두 그 법을 계승하여 존호를 받지 아니하였고, 또 외척으로 정사를 보좌하지 못하게 하자, 환관들이 정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니, 모든 다른 나라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신미일(9일)에 이숭(李崧)이 주문을 올렸다. "여러 주(州)의 창고에 있는 양식 가운데는 계산하여 장부에 올린 것 외에 나머지가 자못 많습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법령 이외로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면 그 죄는 법을 굽힌 것과 같다. 창리(倉吏)는 그의 죽음을 특별히 용서하지만 각기 그들을 아프게 징계하라."

신이 바라건대, 폐하께서 농업을 가르치고 전투를 익히며 군사를 기르고 백성을 쉬게 하며 나라에 걱정거리가 없고 백성에게는 여력(餘力)을 갖기를 기다리고, 그러한 후에 틈을 보아 움직일 것이며 움직이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또 업도(?都, 광진부·하북성 대명현)는 부유하고 강성하며 국가의 울타리인데 지금 주수(主帥)가 대궐에 가면 군부(軍府)에는 사람이 없으니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곳간을 단속하지 않는 것은 도둑을 유혹하는 것과 같다는 말과 용맹한 장부가 굳게 문을 닫고 있어야 한다는 뜻을 보니, 빌건대 폐하께서는 대략 순행(巡幸)을 덧붙이시고 간사한 모의를 막으십시오."

전홍좌는 따뜻하고 공손하였으며 책을 좋아하고 사인(士人)들을 예우하였고, 몸소 정치에 관한 업무에 힘을 썼으며 사악한 일이나 숨겨진 일을 들추어내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속일 수 없었다. 백성 가운데 좋은 벼를 헌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홍좌가 창리(倉吏)에게 물었다. "지금 비축하여 놓은 것이 얼마나 되는가?" 대답하였다. "10년의 분량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군대양식이 충분하니 내 백성을 관대하게 할 수 있다." 마침내 명령하여 그 경계 안에 3년간 세금을 거두는 것을 면제하게 하였다.


당주(唐主, 李?)는 성품은 절약하고 검소하여 항상 버드나무로 만든 신을 신었고, 손을 씻거나 얼굴을 씻을 때는 철 동이를 사용하였으며, 더우면 푸른 칡으로 만든 휘장 안에서 잠을 잤고 좌우의 사령(使令, 심부름을 하는 사람)은 오직 늙고 못생긴 궁인들이고 의복의 장식도 거칠고 간단하였다.

나라의 일로 죽은 사람 모두에게는 3년분의 녹봉을 주었다. 사자를 나누어 파견하여 민전(民田)을 돌면서 조사하도록 하여 비옥하고 척박한 것을 가지고서 그 세금을 정하였는데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공평하다고 칭찬하였다. 이로부터 강·회(江·淮)에서는 군사를 조달하거나 부역을 일으키는 일과 다른 부세를 징수하는 일은 모두 세전(稅錢)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것을 준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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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경제는 농업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 거래소, 은행, 정기시장(定期市場), 그리고 물론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의 메커니즘들을 뜻한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명료한, 심지어 "투명한(transparent)"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활발히 움직여가고 또 그렇기 때문에 파악하기 쉬운 과정들에 대해서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학은 처음부터 다른 것들을 사상한 채 이런 특권적인 분야만 골라서 보았던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p12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의 기본가정은 '물질문명', '시장경제' 그리고 '자본주의'로 구분된다. 경제학(Economics)가 관심을 갖는 정량화(定量化)된 경제영역이 '시장경제' 부분이라면, 그 아래로 GDP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사노동 등이 위치한 물밀문명 영역이, 상층부에는 계급화된 '자본주의' 영역이 위치한다.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 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폭넓은 영역을 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물질생활(la vie materielle)" 혹은 "물질문명(la civilisation materielle)"이라고 명명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동적인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있다. 이러한 위계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과정을 왜곡시키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다. 원하든, 아니면 의식적으로 원하지 않든 간에, 그것은 비정상과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서 일종의 상방(上方) 한계를 이루는 이 두 번째의 불투명한 영역은 나에게는 특히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시장경제 없이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잡고 그곳에서 번영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p13


 이러한 구조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권의 책 <일상생활의 구조>, <교환의 세계>, <세계의 시간>이 각각 대응한다. 이하 각 권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지만, 피라미드구조로 형성된 삼분법 구조 위에서 브로델이 끌어내려고 한 결론만 간략하게 확인하도록 하자...


 나는 다만 경제의 하층(下層)이 상당히 두텁게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상관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여튼 그것이 존재하며 독립된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회적인 것의 총화이며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타당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7


PS. 물질문명을 다루는 1권에서는 마귈론 투생 사마의 <먹거리의 역사>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고,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는 3권 세계의 시간편과 함께 정리하면 좋을 듯하다. 이는 다음 페이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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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11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앞으로 올려주실 글들이 기대가 되네요*^^* 항상 지적 자극이 되는 글 올려주셔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11 16:18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솜씨로 대작의 전체 모습을 리뷰 안에 담아내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려 합니다. 거리의화가님께서 격려해주시니 미루지 말고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4-11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재독이신가 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4-11 19:31   좋아요 1 | URL
네, 매번 정리한다 해놓고 계속 밀렸네요. 이번 기회에 리뷰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